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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즈베키스탄공 타슈켄트(세계속 한인촌 탐방:2)

    ◎30년대 연해주서 이주… 8만여명 정착/근면은 타민족 본보기… 80%가 농업 종사 옛소련 땅의 한인최대밀집지역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타슈켄트주에 있는 한 목화농장.초로의 황 스타니슬라브씨(53)가 이곳 치르치크구역내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목화수확반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며 독려하고 있었다.다른 한쪽 켠에서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을 비롯해 10여종족으로 구성된 종업원들이 그의 감독하에 목화송이를 거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황씨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콜호스의 농장장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회장님이라 불린다.우즈베키스탄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농장(콜호스)이던 이 목화밭이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영농장 회장이 한인 황회장의 오늘은 아버지 황만금씨(74)의 후광이 컸다.아버지 황씨는 지난 30년간 이 목화농장을 옛소련지역 최고의 콜호스로 이끈 장본인이다.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빈농가에서 태어난 아버지 황씨는 지난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선친과 함께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내던져졌다.타슈켄트 교외 사막 허허벌판에 던져진 이들 부자는 10년동안 막노동과 농업전선을 전전했다.그러던 1947년,특유의 한인기질인 성실성과 총명함이 돋보여 황만금씨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 콜호스의 관리위원장에 선출됐다.지금의 목화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것은 53년.이후 30년간 그는 이 농장을 옛소련의 모델농장으로 끌어올렸다.목화재배에 과학영농기법을 도입,다른 지역 콜호스 생산량의 최고 10배까지 달성하기도 했다.58년 노동영웅칭호를 시작으로 그는 3번의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소련인민위원회 계관칭호 등 더이상 받을 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곳에 사는 문 피요트르씨(64)는 『그는 어려울수록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한 콜호스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황씨의 바통은 90년대초반 아들이 이어 받았다.그가 아버지의 농업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비닐하우스 재배기법을 우즈베키스탄에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점이 발탁의이유였다. 황회장의 경영능력도 아버지 못지않다.이른바 새 콜호스건설에 신사고를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는 요즘 토지의 유상분배와 인센티브제의 도입,컴퓨터농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황회장은 『일을 시켜보면 역시 한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라면서 『한때 도시로 빠져나갔던 한인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러한 역유입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주 요인은 바로 언어문제.한인들 가운데는 소련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는 하면서도 현지어인 우즈벡어는 제대로 구사할줄 모르는 이가 많다.그런데 올해부터 우즈벡정부가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채택,우즈벡어를 모르면 공공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대도시에서의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인들은 22만 2천여명.이중 8만 9천여명이 타슈켄트주에 살고 있다.타슈켄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60%가 농업에,나머지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그러던 것이 최근들어 농업종사자수가 80%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따라서 최근들어 한인들 사이에는 우즈벡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특히 40대이하 청년층가운데는 우즈벡어를 배우는 부담때문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해 우리 말을 할줄 아는 교포가 전체의 3%도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변호사도 배출 이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현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한국인이 많다.김 블라디미르씨(62)도 그가운데 한사람이다.타슈켄트시에서 80㎞ 떨어진 타슈켄트주 아쿠르간 마을.마을 전부라야 2백50호정도밖에 되지않는 아담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김씨의 주택에는 하루종일 이웃주민들의 발길이 북적거린다.취직문제에서부터 한인지위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포「민원인」들의 발길이다.남의 집을 빈손으로 찾지못하는 한인들의 기질탓인지 이들은 과일을 담은 비닐백같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교포들이 이처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김씨부자가 우즈베키스탄 변호사동맹의 소문난 변호사이기 때문이다.아들 보로니야씨(38)도 변호사다.김씨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타슈켄트사회에서 동포들의 억울한 일들을대변,사건해결사 혹은 인권변호사로 지내오기가 올해로 꼭 40년째다.그 역시 37년 극동의 연해주지역에 살다 삼촌과 함께 카자흐스탄땅에 버려졌다.아버지는 일본스파이라는 누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7살때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고아원을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한 해인 55년.시민권도 없던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변호사자격을 따냈다. ○조선인 자치지역 건의 그는 지난 89년 고르바초프대통령때 『연해주를 조선인자치지역으로 돌려달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이 문제는 당시 상무위원회에 보고돼 대통령에 직접 전달됐으나 고르비가 『기다려보라』는 답신을 한뒤 얼마되지 않아 실각해 문제제기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90년때의 일.당시 우즈베키스탄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인사이에 종족갈등이 폭력사태에까지 이르자 우즈벡공화국정부는 「24시간안에 모든 소수민족은 우즈벡을 떠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투르크메니스탄인 등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거 국경을 넘어갔다.하지만 한인들만은 모두 마을을 고스란히 지켰다.『연해주에 이어 또다시 조선사람들의 일터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곡한 그의 청원이 큰 작용을 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언어에는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문화·풍습은 나름대로 보존해가고 있다.우즈벡인의 70%가 이슬람교도로 이슬람식 일상풍속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1%의 한인소수민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이곳 한인들은 주로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문화·풍습을 보존해 나가고 있다.현재 우즈벡공화국내에 24곳의 한인문화센터가 있다.이곳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우리 전통예술보존을 위한 전시회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한인들의 춤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악단·청춘가무단·금붕어아동무용단·한인합창단 등 예술단체만도 20여개소나 된다.이곳 한인들의 최대 명절은 역시 추석.우즈벡인들이나 한인마을에 함께 사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아예 이날을 자기들의 명절로 인식할 정도다. 황씨의 목화농장에 살고 있는 30대의한 교포주부는 『설날이나 명절때 한인들은 구역별로 모여 음식을 차리고 잔치를 벌인다』면서 『결혼식과 돌·환갑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들의 유대의식의 장』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윷놀이 등은 잘 알지못한다고 했다. ◎라술로프 카리드라슬로비치 대통령 자문위원장/“한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개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지혜 돋보여 무려 1백40여민족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인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민족을 포함해 가장 훌륭한 민족이 한인이다.특유의 부지런함과 화합하며 사는 법,개인보다는 집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한민족은 역사와 교육·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한인들은 특히 언어와 종교,기질 등이 틀리지만 다른 민족과 쉽게 잘 화합해왔다.소수민족가운데 우즈베키스탄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민족도 한인들이다.소련에서 독립한 뒤 우즈베키스탄에는 명절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한인의 추석명절을 다른 민족이 본받아 함께 쇠기도 한다. 한민족은 이곳에서 예술분야에서도 단연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최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유명화가 초대전에 20명의 우즈베키스탄화가가 초대됐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18명이 한인들이었다.우즈베키스탄이 독립된 뒤 각국에 파견하는 경제·문화사절단도 때때로 거의 한인으로 채워지기도 한다.그러한 한인들의 단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해방처녀」(외언내언)

    말은 곧 민족의 얼이라고 한다.정신세계의 표현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라를 잃은 백성이라 하더라도 그 말을 잃지 않으면 다시 소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주시경·이윤재 같은 선각자들이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우리말을 지키려했던 것은 겨레의 얼을 지키려는데 그 참뜻이 있었던 것이다.거꾸로 일제가 기를 쓰고 우리의 말과 글을 못쓰게 한 것도 같은 이치에서 였다. 다국적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 국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불편과 고통을 겪는다.가령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의 3개국어를 쓰고 있다.캐나다의 몬트리올로 이민간 우리 교포들은 프랑스어와 영어 둘을 배워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두 언어가 통용되기 때문.몇개의 부족들이 저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 통치는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통치뿐만 아니라 부족의 통합도 지극히 어려울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구약에 나오는 바벨탑 건립의 실패도 언어의 혼란에서 야기된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우리는 남북한이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민족이다.통일을 위해 이보다 더 기여적인 필요충분조건은 없을 것이다.같은 생각,같은 의식을 갖도록 연결시켜 주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까지 결정한다는게 언어철학쪽의 주장이다. 분단 반세기동안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가 심화돼 일상·전문용어중에 5만단어 이상이 다르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우리의 토요일은 북한에서는 「문화일」로,잔돈은 「사슬돈」으로,미혼모는 「해방처녀」,손자는 「두벌자식」으로 다르게 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질화가 촉진되면 나중에는 언어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든다.어휘뿐 아니라 방송어의 억양도 기묘한 가성으로 규격화 되어 거부감을 준다.통일에는 문화적 동질성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북한 언어의 변화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 「윈도95 한글판」 28일 출시/「컴」업계 긴장… 소비자는 냉담

    ◎회심의 카드 「MSN」 관심 못끌어/고급 이용자들까지 불매운동… 「반마이크로 소프트」 확산 말썽많던 윈도95의 한글판이 마침내 오는 28일 출시된다.그동안 한글코드채택문제 등으로 사용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던 한글윈도95가 과연 국내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8월24일 미국에서 발표된 윈도95가 한글화돼 발표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소프트웨어를 우리말로 알아보기 쉽도록 언어만을 바꾸는 것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기본적으로 윈도95는 PC에서 쓰이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가동할 수 있게 해주는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이의 한글화는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은 물론 하드웨어 시장전체를 뒤흔들만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를 비롯한 일선 컴퓨터매장 상인들도 한글윈도95의 성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전자랜드에서 하드웨어대리점을 하고 있는 최용원씨(33)는 『아직 시장이 결정되지 않아 예측이 어렵지만 고급컴퓨터 사용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최소 수십만원의 업그레이드비용이 드는 한글윈도95의 시스템운영체제를 선택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글윈도95가 야심작으로 내놓고 있는 카드 MSN도 폭풍의 눈이었으나 이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컴퓨터운영체제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온라인네트워크시장마저 한손에 넣기 위해 개발한 MSN이 처음 미국에서 발표된 이후로 생각과는 달리 별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때문에 MSN을 두고 한때 긴장이 고조됐던 국내통신업계도 이제는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눈치다. 한글윈도95는 이밖에도 고급사용자들의 곱지않은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 등 PC통신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정도다. 「반마이크로 소프트 정서」는 한국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한글윈도95에서 한글의 언어체계를 왜곡했다는 점과 다국적기업의 밀어붙이기식 제품판매행태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고 있다.비교적 고급사용자축에 드는 이들 PC통신 이용자들은 오는 28일 한글윈도95 시판 및 판매행사가 열리는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하오2시부터 침묵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전단 등을 뿌릴 계획도 세우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시스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닌 일반사용자들에게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략이 초기에는 먹혀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하든 고급사양을 갖춘 PC를 파는데 혈안이 된 국내 대기업들이 다투어 한글윈도95 발표와 함께 판매되는 PC의 90% 이상에 한글윈도95를 기본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밖에도 국내에서 「잘나가는」 프린터업체들도 한글윈도95를 기본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PC사용자들의 일반적인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판매에만 급급,다국적기업과 담합하여 수익만을 올리려는 대기업의 굴절된 의식이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목을 점점 조여만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박갑천 칼럼)

    『울음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것들」은 이렇게 시작된다.김진섭의 명역으로해서 많이 읽히면서 진실로 슬프게 하는것이 무엇인가 생각케 했던 향기짙은 수필이다. 오늘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아이들 울음이 아니라 삐약삐약 울면서도 눈물은 안보이는 병아리울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자기 죽을날 모르는 점쟁이의 야살이,맥주를 마셔대면서 화장실 안가는 것을 자랑하는 곧은 창자의 넉살이,저먼저 구원받아야할 사람이 오히려 대중을 향해 구원을 외치는 소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여름날의 매미소리 그리면서 허우룩함에 떨고 서있는 나목의 마지막 잎새가,목숨 얼마 안남은 단풍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찬미하는 탄성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제겨레 젖혀두고 멀리 해와 달에게 자식혼처 구하는 두더지 어버이가,추워서 소름돋은 짧은치마밑의 가녀린 안짱다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뒷동산 동백나무들은 어디 갔나,어령칙이 가물거리는 얼굴들하며 변해버린 고향산천이,그리고 어린날 짝사랑했던 암암한 여인의 요절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책장에 꽂힌 헌 책갈피에서 보게 되는 젊은날의 까맣고도 튼실한 머리칼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어미 숨거둔줄 알리 없는 갓난아기의 칭얼댐이,백혈병 진단 내린걸 모르는 어린이의 해맑은 웃음에 울가망해있는 어버이의 얼굴그늘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말글 바로 못쓰면서 남의 말글 잘하는 걸 내세우는 지식인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제 부모형제와는 척져있는 주제에 나라와 겨레위해 몸바치겠노라고 소리소리 높이는 「우국·애국지사」의 얼렁수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담비털 만지면서 개털로 여기고 개털 만지면서 담비털로 여기는 눈뜬 소경의 시답잖은 판단력자랑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친애할 자격도 없는 사람의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하는 물탄 꾀입술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희극배우보다 더 희극적인 엉너리 연기를 하면서 관중들의 숨넘어가는듯한 비웃음소리를 못듣는 뻔뻔스런 얼굴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이전투구 행짜 못버리면서도 청강에 좋이 씻은 백로같은 소리만 늘어놓는 갈가위트레바리꾼이 우리를 슬프게한다.죽지 떨어진 주인한테 냉갈령 부리는 지난날의 측근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것이 어디 한두가지랴.하지만 가장 슬프게 하는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줄 모르고 계속 슬프게 해주고만 있는 사람들 아닌가 싶다.
  • 국제전화카드 발행/우리말로 통화안내/데이콤 새달부터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 손쉽게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선불카드가 다음달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데이콤은 12월1일부터 국제전화용 「데이콤 선불카드」를 발행,외국에서 일반전화나 공중전화로 우리말 안내음성에 따라 국제전화를 걸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일반전화를 통해 한국어·영어등 7개 국어의 음성안내에 따라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23일 밝혔다. 외국에서 선불카드를 이용하려면 우선 국가별로 지정된 데이콤서비스 접속번호를 누른 뒤 우리말 안내에 따라 카드번호·국내지역번호·전화번호를 차례로 누르면 된다.현재 선불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은 미국·일본·중국·프랑스등 모두 25개국이다. 국내에서 선불카드를 이용해 외국으로 전화를 걸 경우 먼저 서비스접속번호인 「00352」를 누른 뒤 한국어·영어·일어등 7개국별 「언어식별번호」를 선택,음성안내에 따라 카드번호·상대방전화번호를 차례로 누르면 된다.
  • 특별정담 오늘의 서울신문을 말한다(서울신문 50돌 특집)

    ◎증면경쟁 탁류속 「소신의 질경쟁」 호감/정보 홍수시대의 「알짜정보지」로 “우뚝”/상업성­선정성 배격… 「건강한 신문」 특화/“연재소설 등 작가 창작정신 존중” 정평/1950년대부터 한글신문­가로짜기 실험 선도 서울신문은 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세계화를 선도하는 초일류 고급정론지로의 제2창간을 선언,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오직 독자를 주인으로 일체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배격한채 언론의 정도를 걸어온 서울신문의 50년 역사는 그대로 현대사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시대의 영욕을 국민과 함께 나누며 성장해온 서울신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21세기에의 비전을 그려보기 위한 특별좌담회를 마련했다.정진석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연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소설가 김주영씨가 자리를 같이 했다. ▲정진석 교수=서울신문은 구한말인 1904년 러일전쟁 특파원으로 와 있던 영국인 베델이 만든 대한매일신보가 그 전신입니다.대한매일신보는 한글과 영문판으로 제작돼 당시 최대의 독자층을 향유한 대표적인항일민족지였고 일본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지요.그러다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 총독부는 이 신문을 매입해 「대한」이라는 제호를 떼고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습니다.1910년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논조가 1백80도 달라졌지만 지령만큼은 계속 잇게 했습니다. 또 서울신문은 일제 전 기간동안 한글로 발행된 유일한 신문이었습니다.해방직후 명칭을 서울신문으로 변경했는데 정부·여당을 대변하는 쪽이었어요.물론 신문이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방적인 비판 또한 경계해야될 일이죠. ○항일민족지가 전신 ▲김주영씨=서울신문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시대를 앞서간 신문이었습니다.지난 54년부터 7개월여 연재된 정비석씨의 「자유부인」은 장안의 화제가 됐었지요.또 60년에는 현상공모 사상 처음으로 5백만환이라는 파격적 고료를 내걸고 장편소설을 공모해 문단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죠.저의 대표작 「객주」를 탄생케한 신문도 바로 서울신문입니다.79년 6월부터 84년 2월까지 1천4백65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그당시 서울신문은 작가들의 창작정신을 최대한 존중해 「작품」이 잉태될 토양을 마련해주는 신문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하나의 예로 저는 「객주」를 쓰면서 『신문사쪽에서 언제쯤 주문이나 간섭을 해올까』했지만 5년동안 단 한번도 클레임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경영진의 판단보다 담당 데스크의 재량에 맡기는 문화풍토였죠.독자의 말초적 구미에 맞춰 일회용 흥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매회 간섭을 일삼았던 타 신문에 비해 서울신문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우리 작가들에겐 강했습니다.이는 여타 상업지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서울신문만의 독보적인 영역이었다고 봅니다. ▲이연숙 회장=우리 여성단체협의회의 경우 넉넉치않은 재정형편에도 불구,지금까지 서울신문을 한번도 끊지않고 구독해오고 있습니다.소비자문제나 여성문제를 일관성 있고 성의있게 다루어주는 신문이기 때문이죠. ○서울만의 독보영역 ▲정교수=서울신문은 56년부터 4·19때까지 한글판 신문을 따로 낸 적이 있습니다.68년엔 한글전용으로 하고 글씨체와 편집방법에도 변화를 주는 등 선도적인 신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최근 한글전용이나 가로짜기를 시도하고 있는 신문들의 실험적 모델이었던 셈이죠. ▲이회장=저도 어릴때 서울신문이 한글신문이어서 굉장히 친근감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또 미국대사관에 근무할때 보니까 외국인들이 서울신문으로 우리말을 공부하기도 하더군요. ▲김씨=잃어버린 우리말 찾기운동을 지면을 통해 벌이기도 했습니다.지금도 박갑천씨의 컬럼은 시사문제에 대한 안목을 넓혀줄뿐 아니라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독특한 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교수=사실 서울신문은 해방직후까지만 해도 인적 자원과 시설등의 면에서 가장 뛰어난 언론사였습니다.또 김진섭,김동리,장만영씨 등 유명문인들이 편집책임자로 있던 종합잡지「신천지」는 50년 「사상계」가 나올때까지 당시 지식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교양지였지요.「자유부인」같은 연재소설로 문학계에 더할나위없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4·19이전까지는 정치적인 영향력도 막강했습니다.그동안 역사적 격랑에 따라 시련을 겪으며 때로 침체되기도 했지만요. ▲김씨=역사도 역사이지만 우리의 의식과 감정도 지나치게 흑백논리에 감염되어 있는게 오늘의 현실입니다.요즘은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신문들이 정부의 대변지 역할을 하는 측면이 더 강해요.서울신문은 오히려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회장=서울신문은 산간벽지 등 어느 지역 가지않는 곳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지요.또 요즘 신문들 가운데 면수가 가장 적습니다.증면경쟁으로 페이지가 늘어난 신문들을 보면 광고일색이에요.정보홍수시대에 알짜배기 정보를 섭렵하는데 편한 신문이 바로 서울신문입니다. ▲정교수=손주환 서울신문 사장은 올해 제2창간을 선언하면서 『물량경쟁을 지양하고 오로지 질적인 경쟁만을 벌이겠다』고 선언하고 증면경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젊은 기자나 언론학교수가 아닌 신문사의 최고 책임자가 이같은 한국신문의 「반사회성」을 과감하게 지적한 것을 두고 학계에서는 커다란 화제가 됐습니다. ▲김씨=굳이 신문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최근 신문들의 증면경쟁과 부수경쟁에 따라 지국으로 배달되는 신문이 곧바로 폐기장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국내 용지값을 기준으로해 1년에 무려 1천1백억원 이상의 돈이 낭비되는 이같은 폐단에 모두 비분강개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스스로에 대해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회장=그런 점에서 서울신문이 신문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희망입니다.민간단체들은 비판을 하려고 해도 언론의 막강한 힘앞에 지레 겁을 먹고 독자들에겐 조직된 힘이 없고하니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교수=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역사를 통해 민족사의 험난한 굽이마다 이정표 역할을 해온 서울신문이 문민시대를 맞아 무한 물량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김씨=잘 알다시피 다른 신문은 모두 상업지입니다.그 틀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은 서울신문만이 가질 수 있는 크나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한글 교과서 ▲이회장=저는 서울신문이 정부만 의식하지 말고 정부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을 보다 많이 생각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이제까지는 다분히 오해받을 만한 역사도 없지 않았습니다.그런만큼 창간 50돌을 맞은 이 시점에서 대대적인 환골탈태의 노력은 한층 절실한 것이라고 봐요. ▲김씨=요즘 신문사간의 보도경쟁의식은 뉴스가치 여부를 떠나 거짓정보를 양산하는데까지 이르게 만들었습니다.일례로 최근 미국흑인남성대회를 주도한 인물이 유태인과 한국사람은 돈만 아는 민족이라고 말한 것으로 우리 각 신문이 보도했는데 실제로는 미국에 이민온 모든 이민족들을 향해 한 소리였어요.정확한 사실확인없이 일단 신문을 팔고 보겠다는 상업지들의 선정적 보도태도가 낳은 해프닝이었죠.상업주의를 배제하는 서울신문만은 이같은 폐해에서 벗어나 제대로된 정보를 취사선택해 독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회장=신문들이 국민의 세계관을 오도하는 경우도 많아요.언론인이 올바른 시각과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교수=한국언론은 한미관계나 한일관계 특히 대일문제에 있어서는 이성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맹목적인 애국심에 호소하려는 성숙되지 못한 보도자세를 보이고 있어요.이 역시 국익과 공익을 앞서 생각하는 서울신문이 주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회장=언론사간의 무분별한 보도경쟁에서 탈피,서울신문만이라도 반듯한 생각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할 것입니다. ▲김씨=요사이 신문은 여배우의 아슬아슬한 사진을 실어대는 등 선정적이고 충동적으로 흘러 「읽는 신문」이 아니라 「보는 신문」이라는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그런 맥락에서 볼때 서울신문은 어느 신문보다 「정독하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예를 들어 「두만강 7백리」「압록강 2천리」같은 기획시리즈를 들 수 있습니다.특히 이 기사는 그동안 접했던 단편적인 주마간산식 리포트가 아니라 현지 연변 조선족 작가의 눈을 통해 그려진 한폭의 세밀화라고도 할 수 있어요.저는 스크랩까지 해가며 읽고 있습니다. ▲정교수=「보는 신문」의 역할은 TV로 족합니다.신문성이 강화되어야해요.언젠가부터 각 신문들이 해외토픽란을 통해 지나치게 노출된 여성의 사진을 크게 다룸으로써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는데 서울신문은 그렇지 않더군요.특별히 재미있고 눈길을 끌진 않지만 비교적 건강한 신문으로 온 가족이 함께 돌려 볼 수 있는 신문이라는 느낌이에요. ○딱한 이웃에 애정을 ▲이회장=요즘 신문들은 하지말아야할 일들은 하고 정작 해야할 일은 하지않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민간단체들이 주최하고 언론이 소개·지원해야 마땅할 행사를 신문사가 직접 나서서 벌이고 있어요.사세과시적 행사보다는 애정어린 보도정신이 중요합니다.AIDS문제나 가족파괴 등 절실한 현안을 유야무야 지나쳐선 안되죠.여성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언론이 좀더 충실히 보도해주었으면 합니다.서울신문은 반세기의 연륜이 있으니 타 신문보다 한발 앞서 갈 수 있으리라 여겨져요. ▲정교수=그렇습니다.영국의 「더 타임스」가 보수 대변지이고 그 독자가 따로 있듯이 서울신문도 그 색깔을 살리면서 타 신문과의 차별화를 이루어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회장=서울신문이 위치한 프레스센터는 모든 다양한 여론이 모아지는 자리입니다.그같은 의견들을 걸러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특히 서울신문의 「입법예고」라든가 「법령공포」같은 란은 정부와 국민의 가교역할을 자임하는 서울신문만의 특화지면이라고 할만해요.좀 더 알기쉽고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서울신문에 비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서울신문50돌 특집:Ⅰ)

    ◎해방후 판·검사 한글공부 진풍경 「서울신문으로 매신이 갱생」.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은 이같은 1면 제목을 통해 창간을 선언했다.일제의 오랜 질곡에서 해방된 조국의 대변기관이 되겠다는 의지와 함께 첫발을 내디딘 서울신문의 역사는 바로 해방 50년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서울신문과 더불어 온 그 50년동안 서울신문 지면에 비친 우리의 세태도 세월의 깊이 만큼이나 변화무쌍 했다.해방의 감격과 환희가 묻어났던 창간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세태 변화를 연대별로 묶어 본다. ◎해방이후 40년대/“엉터리 기생을 일소 풍기 향상시키고저…” 이색 시험광고 눈길 창간 당시는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사회상이 지면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창간호 만큼은 특성상 각계의 격려와 기대의 말들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음 날인 23일자부터는 상해임정요인 귀국,미소공동회담,3·8선 긴장 등 해방직후인 당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1면 톱은 「중경의 김구선생 일행께서 개인자격으로 23일 오후 4시 김포에 환국하며­」라는 기사로 임시정부요인들의 환국을 알리고 있다. 이같은 어지러운 정국 분위기와 함께 한동안 지면을 장식한 것은 이를 틈타 정치테러와 집단강도가 성행한다는 내용들이다.심지어 강도들이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처럼 한동안 살벌하던 지면은 점차 민생 분야로 그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46년으로 접어들면서는 판검사들이 토요일 하오 법원에서 한글을 배우는 진풍경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일제통치 36년이라는 세월속에 우리말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없지 않았던 것이지만 무식쟁이나 농민 보다는 유식한 사람이 오히려 더 우리말을 소홀히 했던 세태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모자 광고가 어느 것보다 많이 광고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당시는 모자를 안쓰면 행세를 못하던 때라 모자광고가 지금의 패션광고 만큼이나 많았던 것이다. 「엉터리기생을 일소하여 풍기를 향상시키고저­」라는 기생자격시험 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50년대/연재소설 「자유부인」 장안의 화제/전쟁중 밍크·귀금속 걸치면 처벌/“갈아보자” “구관이 명관” 유행어로 50년대는 6·25의 발발로 인한 여파가 사회 모든 분야에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다. 6·25는 같은 겨레끼리 죽이고 죽는 민족상잔의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피란민으로 만든 가난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전시체제하에서 나온 「배급쌀」이라는 말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50년 10월에는 양곡배급이 시작됐다는 기사들이 사회면을 채우고 있다. 6·25는 또 전술용어와 투쟁용어를 양산해 내기도 했다.「진충보국」 「빨간딱지」(병역 기피자 등을 일컫는 말) 등 생소한 용어들이 생겨났고 의지할 데 없는 월남민들을 별볼일 없는 빈털터리의 대명사로 「38따라지」라 부르기도 했다. 마카오에서 밀수해온 외제양복과 구두를 갖춘 「마카오신사」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시중에는 마카오복지 등 사치스런 옷감이 범람해 당시 신문에는 「당신의 옷차림은 전시생활에 알맞습니까」라는 글이 실리고 「전시생활 개선법」이 만들어져 밍크목도리와 귀금속을 착용하면 처벌까지 당하기도 했다. 이무렵에는 전쟁이 심어놓은 퇴패와 성문화도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서울신문에 연재되던 소설 「자유부인」을 놓고 벌인 유명한 논쟁은 그 세태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소설가 정비석이 쓰고 김영주화백의 삽화를 곁들인 소설 「자유부인」은 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2백15회에 걸쳐 6·25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서울 수복 이후 여성들의 취업전선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계바람,댄스바람 등 만연한 퇴패적 분위기 속에 바람난 한 대학교수 부인의 이야기가 소설의 큰 틀이었다. 논쟁의 발단은 서울법대 황산덕교수가 3월1일자 대학신문에 『대학교수를 상대로 모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유부인에게 드리는 말」이란 공개 비난문을 발표하면서 전개됐다. 이에 작가 정씨가 3월11일자 서울신문에 『황교수의 비난은 문학가에 대한 모욕과 감정적 흥분으로 일관돼 있다』는 반박문을 게재,반격을 가했고 여기에 홍순엽변호사가 3월21일자 지면을 통해 정씨의 입장을 지지하는 기고를 하면서 점입가경으로 빠져 들었다. 이같은 논쟁은 고정독자와 판매부수가 늘어나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당시 호사가들은 물론 국민들의 정서가 어디쯤에 있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혼란은 사회상에만 내비친 것이 아니었다.전쟁이 끝나자 자유당의 부패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치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변해갔다.「막걸리선거」 「피아노선거」 온갖 부정을 저질러오던 자유당은 54년 11월29일 부결된 초대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 개헌안을 사사오입을 통해 가결시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야권이 집결,민주당을 창당했고 56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당과 맞붙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들고나와 일반국민들의 정서를 파고 든 반면 이에 맞서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 수 없다.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희극적인 이러한 정치형태는 일반 모임이나 가정에서도 유행을 탈 수 밖에 없었다. 55년에는 국산 자동차 1호인 시발자동차가 등장,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6·25의풍파로 시작된 50년대는 마지막까지 국민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며 저물어 갔다.59년 9월16일 사라호 태풍이 영·호남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이 태풍으로 이 지역에서만 사망 8백30명,부상 2천2백여명,실종 3백4명,이재민 39만명이 발생했다. ◎60년대/“KS마크”는 출세보장… 과외열풍 불고 연탄가스·불발탄 사고 사회면 단골로 60년대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허무와 무력감속에 「빽」과 「와이로」가 난무해 「러키스트라이크」담배와 양주「조니 워커」가 민원인들에게 필수품이던 시절이다. 「조국근대화」를 내세우며 등장한 박정희의 혁명정부는 「우리가 살길은 수출이고 돈이 되면 무엇이든 판다」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펴나갔다. 담배는 고급담배인 「신탄진」한갑에 50원,「아리랑」 한갑이 25원이었는데 당시 귀했던 쇠고기 한근이 1백58원이고 연탄 한장에 8원,소주 2홉들이 한병이 43원이고 보면 담배 권하는 인심을 마다하지 않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금 한돈쭝이 1천6백60원인데 결혼예물로 금반지 세돈쭝쌍가락지 끼고 「도고온천」이나 「경주」로 신혼여행을 가는게 보통이었다. 대학입시 열기도 대단해 대학생과외가 널리 유행처럼 번졌고 경기고(K)와 서울대(S)를 나오면 출세는 보장된다는 「KS마크」도 이때 등장 한다. 전후 서민들의 유일한 문화·오락 생활은 영화관에서 필름이 낡아 화면이 비가 내리는 듯한 영화속의 현실에 빠져 드는 것이다.이런 열기에 힘입어 60년대는 우리 영화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시기가 된다. 최초의 컬러시네마스코프 「성춘향」을 비롯해 「빨간 마후라」「맨발의 청춘」「남과북」「저하늘에 슬픔이」등과 함께 68년「미워도 다시한번」은 장안의 돌풍을 일으켜 이후 속편이 4번이나 만들어진다. 당시 「한국의 제임스 딘」신성일은 뭇여성의 우상이었고 그가 빠진 영화는 흥행에 실패해 한해 50여편 이상의 영화에 겹치기출연이 보통이다.한편 문희·윤정희·엄앵란등의 「트로이카」여배우의 연기대결도 볼만해 그야말로 영화사에 꽃을 피운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화는 61년 KBS-TV 개국에 이어 잇따라 등장하는 상업방송에 서서히 그 자리를 내주기 시작해 70년대 들어서는「아씨」「여로」등 TV연속극에 밀려 「안방극장시대」에 자리를 내준다. 겨울만 되면 연탄가스에 일가족이 몰사했다는 기사가 하루 걸러 지면을 메웠고 지방에서 한해 불발탄 폭발사고로 2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또 3월이면 보릿고개 때문에 「춘궁…농촌현장을 가다」등의 단골 시리즈도 있었다. 당시의 신문광고는 주로 약·영화·책 광고 등이 대부분인데 「원기소」「테라마이신」「개풍경옥고」등 요즘 세대들에겐 익숙지 않은 약이름과 「천지 캬바레 개업」「연말연시 선물엔 역시 신탄진」「벌꿀비누 애용자 사은 쇼 파티」「통신강의록 독학생모집」「경기중·이화중 학생 대모집」등도 이채롭다.
  • 해외동포 어디에 얼마나(서울신문 50돌 특집)

    ◎그들의 위상은 어떠한가/6대주 142국에 520만명 근면·성실로 기반 확고히/2년새 5.7% 증가… 중국에 최고 194만 거주/미 180만·일 69만·중앙아시아 46만명 생활/최근 취업·유학·투자이민 급증/망국·가난의 한 딛고 현지 빠른 적응/정·관·재·교육계서 활약 숱한 인재 배출/한민족 동질성 유지가 최대의 과제로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주로부터 시작된 한국이민사가 90여년에 이르면서 해외교민수가 5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그리 길지않은 역사이지만 한민족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어느 나라에 얼마나 살고 있으며 그들의 현재 위상은 어떤가를 알아본다. ▷교민현황◁ 94년12월31일을 기준으로 외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의 해외교포는 모두 5백22만8천36명이다. 지역별로는 아시아에 2백72만,미주에 1백96만,유럽에 52만,중동에 9천2백,아프리카에 3천2백명이 분포하고 있다. 국가별로 볼 때는 중국에 1백93만명으로 가장 많다.이어 미국에 1백53만,일본에 71만,러시아를포함한 독립국가연합에 46만명이 거주중이다. 전세계 1백92개국 가운데 우리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무려 1백42개국이나 된다.중국이나 미국·일본등처럼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 민족이 옮겨간 경우도 있다.그러나 우리동포의 분포가 이처럼 넓어진 것은 최근 늘어난 선교이민과 태권도교관의 파견 때문이라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2년마다 해외교포의 현황을 파악하는 외무부가 92년12월31일자로 파악한 해외교포는 4백94만3천5백90명이다.해외교포는 지난 2년동안 5.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교포가 증가한 것은 교포의 2세·3세·4세가 태어났고,해외경제활동의 증가로 우리 기업등의 파견원이 많이 진출하기 때문이다. 해외교포 가운데 95%인 4백70만명은 거주국의 국적을 갖고 있거나 거주국에서의 영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5%는 상거래나 취업·유학등으로 체류중이다. ▷중국 교민◁ 중국에 한국인이 건너간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이다.이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전쟁포로나 인질·공녀등의 형태로 한국인의 이주가 시작됐다.그러나 중국에 2백만의 교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외무부에 따르면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민의 중국이주가 급격히 증가,1907년에 7만1천명,1910년에 10만9천명,1916년에 20만명,1921년에 30만7천명이 조국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해방이후 80만명 귀국 1945년 이전까지 약 2백16만명의 한국인이 만주지역에 거주했으며,해방과 더불어 80만명이 귀국하고 나머지가 잔류했다. 현재 우리교민은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2번째 규모다.전체의 약 97%인 1백87만명이 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등 동북 3성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특히 길림성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82만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중국 교민들은 해방후부터 냉전시대까지 남한과는 별다른 접촉을 가질 수가 없었다.따라서 정부도 이들에 대해 특별한 정책을 세울 수 없었다. 지난 88년부터 우리정부가 사회주의권 교민의 자유로운 모국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중국동포와의 교류가 본격화됐다. ○동북 3성에 집단촌 그러나중국교민들의 모국 방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교민들이 경제수준이 월등한 모국에서 돈벌이를 하고자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밀입국,불법취업,취업사기,절도·강도등의 사건이 잇따랐다. 정부는 이에 따라 중국교민들에 대한 사증발급 심사를 강화하고,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내에서 교민들은 한인이나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경제·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또 중국 교민들은 스스로를 한국인 혹은 북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선족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미국 교민◁ 한미우호통상조약에 따라 1903년 한국인 1백21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면서 미국 이민사가 시작됐다. 이후 1961년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62만6천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이 기간 동안의 총 해외이주자 79만2천명 가운데 미국이민 비율이 79%를 차지하고 있다. 재미교민의 상당수는 한국내의 중산층,식자층 출신이며 자녀의 교육문제,경제적 이해관계,혹은 한국사회에서의 불만 때문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이다. ○구한말 하와이로 나가 이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물론 언어장벽과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아직 미국사회의 주류에 진출하는데는 한계를 보이지만,최근들어 의사·변호사등 전문직 진출자가 늘어나고 있다.캘리포니아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김창준씨가 대표적인 한국교민의 성공사례이다. 교민 1.5세와 2세 이후세대는 현지에서 교육,성장해 비교적 빠르게 현지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또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교민 사회에 북한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과거 음성적으로 활동해오던 친북인사의 활동도 표면화하고 있다고 외무부 당국자는 밝혔다. ▷일본 교민◁ 일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다른 지역의 교민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태평양전쟁 발발후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강제적으로 징용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강제 징용자의 숫자는 19 45년 당시 2백10만명에 달했으나,해방후인 46년 이후 65만명이 잔류하고 있다. 재일교민들은 오사카를 필두로 나고야·고베등지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으며,주로 상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교민들은 본국에서의 좌·우익 대립을 그대로 답습,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그러나 최근에는 남북간의 국력차이가 워낙 커져서,민단과 조총련이 특별히 경쟁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교민1세들은 우리국적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으로,일본에 귀화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교민 2세이후부터는 모국과의 연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으며,이에 따라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이 늘고있다.지난 50년 이래 일본에 귀화한 한국인은 모두 20만명 정도다.특히 교민 2,3세들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선호해 91년 결혼한 사람 가운데 82.5%가 일본인 배우자를 맞이했다. ▷독립국가연합지역 교민◁ 현재 옛 소련 지역내에는 러시아에 11만명,우즈베키스탄에 22만명,카자흐스탄에 10만명,우크라이나에 9만명등 모두 46만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우리 교민의 2,3세들이다. 각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뒤 이들은 자연적으로 그곳의 문화에 동화되었다.따라서 우리말과 문화적 전통을 많이 잃은 상태고,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교민들 말고는 우리말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적다. 그러나 이들은 국제고려인단체연합회등 31개의 교민단체를 조직,모범적으로 혈연의식을 이어가고 있다.또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화단체 활동,출판물 발간활동과 함께 대학교수,영농지도자를 다수 배출했다.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은 우리교민의 근면성,높은 교육수준과 사회기여도를 평가하고 있다. ○사회기여도 평가 받아 이 지역에 대해서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우리업체와 현지 교민들간의 고용과 취업지원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내각 안에 「민족문제 및 지역정책부」가 설치돼 소수민족과의 화합 및 육성지원 정책을 마련한다고 표방하고있으나 체첸 공화국 사태에서 보듯이 러시아의 범위를 이탈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정부는 이러한 점을 감안,교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민족의식과 민족적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해 한글교육,전통문화 재생,학술·체육 교류를 중심으로 지원책을 마련해가고 있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4만명의 교민들 가운데 1세들을 본국으로 귀환하는 문제는 한·러·일간의 현안으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주추이◁ 우리나라의 최근 해외이주자 추이를 보면,80년 3만3천3백명에서 83년에 2만3천3백명으로 하강세를 보이다,86년 3만7천80명으로 다시 늘었다.이후 다시 감소해 93년에는 1만4천4백명으로 매우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러나 사업과 취업이주는 지난 10여년동안 꾸준히 증가했다.이는 그동안의 연고초청 이주,즉 막연한 동기의 해외이주보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주형태가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민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역이민도 늘어나고 있다.80년 역이주자수는 1천49명으로 그해 이민자의 2.8%였다.86년에는 역이민자의 비율이 7%를 차지했다가 89년 25%로 급증했으며,91년 40%,92년 50%를 기록한 뒤 93년에는 60.65%를 차지,이민자의 반이상이 되돌아오는 현상을 보였다. 역이주자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돼 국내에서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무부는 설명하고 있다.같은 이유로 해외이주자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최근 국내외에서 해외교민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해외동포에 대한 이중국적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교민에게 이중국적을 부여, 국내 왕래를 자유롭게 하고 각종 할동 및 재산권 행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교민의 권익을 크게 신장할 수 있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을 수반한다. 우선 교민들이 국적을 가진 두나라로부터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게 되고, 범죄가 발생할 경우 자국민 불인도 원칙을 고수,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또 납세·병역 등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과 비교할 때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의 형평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국민들과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크다.
  • 강 주석,반도체 생산라인 돌며 진지한 질문/방한 사흘째 이모저모

    ◎“청와대 단풍곱다”며 북경의 단풍 자랑/조깅트랩선 뛰는 시늉하며 관심 표명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방문 사흘 째인 15일 역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강주석은 이날 아침 청와대 상춘재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한 뒤 기흥에 있는 삼성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이어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직원 및 화교대표들을 접견하고 경주로 직행,이의근 경북지사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청와대 상춘재에서 있은 김대통령과 강주석의 조찬회동은 두 정상의 개인적 친분과 돈독한 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임을 상징하듯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1시간동안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상오 7시30분 반코트 차림으로 상춘재앞 녹지원에 나와 넥타이를 매지 않은 간편복 차림의 강주석을 맞아 아침인사를 나눈 뒤 강주석을 조찬장인 상춘재로 안내했다. 김대통령은 강주석과 함께 녹지원 뜰을 걸어가는 동안 청와대 뒷산을 가리키며 『단풍이 아름답다』고 말하자 강주석은 「단풍이 꽃보다 곱다」는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의 한시를 소개하고 『북경에도 향산의 단풍이 유명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김대통령이 녹지원 주변 조깅트랙을 가리키며 『이곳이 내가 매일 아침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자 강주석은 잠시 뛰는 시늉을 해보이며 『제자리에서 뛰느냐.아니면 실제로 달리기를 하느냐』며 조깅에 관심을 표명했다. 김대통령이 『상춘재가 전통 한식건물』이라고 설명하자 강주석은 『목조건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중국인도 목조가옥을 좋아한다』고 화답하는 등 두 정상은 우리의 전통가옥과 서울의 공기 등을 화제로 환담을 나누다 양측의 통역만 배석시킨 가운데 조찬회동을 시작했다. ○…강주석은 김대통령과 조찬회동을 끝낸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을 방문,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안내로 시설들을 둘러봤다. 강주석은 1층 로비의 제품전시장에서 휴대용 무선전화기로 북경의 삼성지사에 전화를 걸어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장시설 보호를 위해 방진복 방진화와 헬멧 장갑까지 착용한 강주석은 생산라인을 둘러보면서 정통 기술관료답게안내인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궁금한 점을 빠짐없이 물어보는 등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강주석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이 좋아서 인상적』이라면서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듯하다』고 평가했다. 삼성반도체공장 시찰을 마친 강주석은 육로를 이용해 숙소인 신라호텔에 도착,주한 중국대사관 직원 및 화교대표 등 80여명과 만나 격려했으며 이어 이날하오 다음 방문지인 경주로 출발했다. 강주석은 경주 힐튼호텔에 여장을 푼뒤 이날 저녁 이경북지사가 주최하는 환영만찬에 참석했으며 16일에는 불국사를 관광하고 울산의 현대자동차 공장을 시찰할 예정이다.
  • 40분예정 단독회담 95분간 계속/강택민 주석 방한 이모저모

    ◎우리측의 북 쌀지원 “참 잘한일” 평가/국회연설중 9차례 박수 “환영 표시”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강택민중국 국가주석은 방한 이틀째인 14일 하룻동안 공식환영식,김영삼 대통령과의 단독및 확대정상회담,공동기자회견,경제4단체장 주최 오찬,국회방문 및 연설,이홍구 총리접견,김대통령 내외주최 국빈만찬에 참석하는 등 강행군을 했다. ▷공식 환영식◁ ○…강주석은 이날 상오 청와대 본관앞 대정원에서 거행된 공식환영식에 참석했다.환영식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김대통령이 『우리 둘다 걸음이 너무 느리지요』라고 말하자 강주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날 환영식행사에는 청와대 인근 재동국민학교 학생 1백여명이 나와 양국국기를 흔들며 강주석의 한국방문을 환영했는데,강주석은 환영행사가 끝난뒤 이들 학생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정상회담◁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통령과 강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은 당초 예정시간(1시간10분)을 훨씬 넘은 1시간40분동안 진행됐다.회담시간이 이처럼 길어지게 된 것은 당초 40분으로 잡혀있던 두정상의 단독회담이 예정시간의 두배나 넘는 95분동안 계속됐기 때문으로 이때문에 확대정상회담은 15분만에 끝났다. 강주석은 이날 『정상의 방문은 다른 방법으로 대체할 수 없는 뜻이 있다』며 정상간 교류의 의미를 강조한뒤 양국간 관계증진을 위해 김대통령이 다시한번 중국을 방문해주도록 초청했다고 유종하외교안보수석이 전했다.강주석은 특히 양국관계가 「진성호혜(진성호혜)」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우리의 북한에 대한 쌀지원에 대해 강주석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정상회담이 끝난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강주석은 답변이 끝날때마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친근감을 표시했다.특히 일본측의 망언이 잘못됐음을 얘기할때는 양손을 올리며 강력한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환영만찬◁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열린 국빈만찬 환영사를 통해 『한중 두 국민의 크나큰 잠재력과 각분야에 걸친 상호보완성을 감안할 때 양국간 우호협력은 무한히 확대·심화될 수 있다』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에 언제나 중국의 따뜻한 이해와 적극적인 협력이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답사에 나선 강주석은 『양국이 노력하기만 하면 양국관계가 반드시 전면적인 발전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찬을 마친 양국 정상 내외와 참석자들은 공연장으로 이동,승무와 판소리·사물놀이등 우리 민속공연을 관람했다.이날 만찬에는 3부요인과 정계·경제계·언론계·학계 등 각계 인사와 중국측 수행원등 2백10명이 참석했다.청와대측은 만찬에 경제계 초청인사를 대거 축소한데다 대기업의 총수들 대신 전문경영인을 초청해 눈길을 끌었다. ▷국회연설◁ ○…강주석은 이날 하오 3시30분 국회의사당에 도착,1층 현관에서 황락주 국회의장의 영접을 받은 뒤 여야 대표들이 기다리고 있는 2층 의장 접견실로 안내를 받았다.강주석은 여야대표들과 환담중 국회 연설시간인 하오 4시가 가까워지자 벽시계를 여러차례 쳐다보면서 『공학도 출신이라서 본회의장까지 가는 시간을 따진다』며 조크,웃음을 유도하기도했다. 강주석이 하오 4시 이종율 국회사무총장의 안내로 본회의장에 도착하자 여야의원들은 기립박수로 맞아 국가원수에 대한 깍듯한 예우를 보였으며,연설 중간에도 9차례나 박수를 보내는등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특히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남북관계의 상호협력을 강조한 대목에서는 의원들의 박수가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강주석은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연설을 마무리,다시 한번 기립박수를 보냈다. 강주석은 생중계로 중계된 탓인지 처음 긴장한 듯했으나 곧 담담한 표정으로 연설을 이어갔다.강주석은 하오 4시30분 황의장과 이총장의 환송을 받으며 국회를 떠났다.한편 본회의장은 의원들 대부분이 빠짐없이 참석,의석을 가득 메웠다.
  • 개정판 「동주 열국지」 출간/시인 김구용씨,한글세대 맞게 재편집

    ◎동실바탕 인물 1천명 등장 지난 6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돼 큰 인기를 끌다 지금은 절판된 「구용 열국지」가 새 모습으로 단장해 최근 「동주열국지」란 이름으로 다시 나왔다(민음사 펴냄). 「열국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5백50년동안 명멸한 인물 1천여명의 이야기를 그린 일종의 역사소설.이 시대는 주나라가 흔들리면서 각지방 제후들이 패권다툼을 벌여 국력 경쟁과 전쟁이 끝없이 이어진 때이다. 따라서 「제자백가」라고 부르는 각종 사상이 넘쳐나고 사상가·정치인·군인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웅호걸들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요즘도 자주 쓰는 한문 고사성어는 대부분 이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열국지」는 흔히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연의」와 비교된다. 삼국지 연의는 허구를 많이 도입해 극적인 재미는 높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이에 견줘 「열국지」는 각종 사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적을 간추려,풀어쓴 것이므로 성격은 역사책에 가까운 편이다. 또 「삼국지」가 한 세대의 영웅들을중심으로 웅대한 서사적 구조를 갖췄다면,「열국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이야기를 소화하느라 상대적으로 아기자기하다.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삶은 제대로 들어 있으면서 그만큼 다양하다. 다만 지금껏 전해내려온 「열국지」가 언제,누가 썼는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열국지」를 우리말로 옮긴 사람은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김구용 시인(73).8년동안의 번역작업 끝에 지난 64년 「구용 열국지」를 선보였을 때 세상은 책의 내용 못잖게 그의 뛰어난 문체를 격찬했었다.노학자는 한글세대를 위해 첫판 원고 1만5천장을 다듬어 30여년만에 개정판을 내놓았다. 「동주 열국지」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되며 이번에 먼저 6권이 나왔다.
  • 집 팔고 빚 얻어「돈벌이 엑소더스」/조선족 밀입국 기도 현지실태

    ◎중국 항구마다 조선족 1천여명 북적/밀항 실패땐 패가망신… “그래도 간다” 중국 요녕성의 단동·대연·산동성의 영성 등 한국을 마주보는 항구도시와 동항·김주·영구 등에는 한국으로의 밀입국 기회를 기다리는 조선족 동포들로 북적인다. 몇명씩 짝을 이뤄 여관 등을 전전하며 브로커들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린다.한국에서 불법 취업했다가 귀국한 동족들이 잘 사는 현실이 이들로 하여금 한국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최근 중국 공안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출항 항구도 당초의 요령성 항구에서 지금은 산동성과 강소성의 연운항으로 광역화되고 있다. 흑룡강성이 고향인 김모씨(42·농사)는 지난 8월 초 이런 식으로 동항항을 떠나 목선을 타고 한국으로 떠났다.13시간만에 경기만까지 닿았으나 우리 해양 경찰에 적발돼 다른 14명의 동포들과 함께 강제 송환됐다. 한국에 갈 수 있다는 다른 조선족의 꼬임에 빠져 집을 판 1만여위안(1백만원)등 3만5천위안을 들여 밀항선을 탔다가 패가망신한 경우이다. 지난 해부터 한국 정부가 중국 조선족에 대한 입국심사를 강화한데 비례해 그들의 밀항도 늘고 있다.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산업기술 연수생 제도가 있기는 하나 대상인원이 턱없이 적은데다 연령 제한마저 있어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밀항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길림성과 연변 치주의 농부들이다.드물지만 의사와 교사 등 엘리트들도 끼어있다.중국에서 평생 벌 돈(2천만∼3천만원)을 서울에서 2∼3년만에 벌려는 꿈 때문이다.고리의 사채를 쓰더라도 7∼8개월 안에 갚을 수 있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고향을 등진다. 심양시의 조선족 거리인 서탑가도 이용국 부주임은 『1만위안도 안 되는 시골 집을 팔고 월 3%의 사채까지 얻어 밀항선을 타겠다는 조선족들이 줄을 잇는다』며 『집을 판 뒤 항구 주변을 떠도는 동포들이 늘면서 흑룡강과 길림의 조선족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밀입국 희망자가 늘며 밀항선의 배삯도 종전 3만∼4만위안(한화 3백만∼4백만원)에서 최근 5만위안(5백만원)으로 뛰었고,8만위안에라도 타겠다는 사람까지 생겼다.대련시 한국인회 송진하고문(전 조선족 중학교장)은 밀항을 꿈꾸며 항구도시에서 서성대는 조선족들이 1천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들을 유혹하는 브로커는 한국에 연고가 있거나 친지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들로,사채도 알선한다.운송은 선주인 중국인들이 맡는다. 브로커들은 밀입국 이후 서울로 가는 방법과 일자리를 찾는 방법,송금 방법도 알뜰하게 가르쳐 준다.이런 브로커 조직은 1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로커들은 취업광고지 등을 통해 밀입국 희망자들을 공공연하게 모집한다.심지어 이 곳의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밀입국을 알선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주중대사관 김문호 치안관은 올해 초에는 바다 복판에서 한국 배에 밀항자를 넘겼으나 요즘은 중국 배가 한국 영해까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브로커들이 밀항자들로부터 배삯의 절반을 선금으로 받고 도착한 뒤 나머지를 받거나,이미 한국에 자리를 잡은 동업자 조선족들을 통해 이자를 쳐 받기도 한다고 말한다. 최근 한국대사관은 동북 3성의 우리말 신문에 한국에서 적발한 밀항 건수를 제시하며 밀항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그럼에도 조선족들의 한국행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일확천금의 꿈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강제 송환자가 늘어나며 조선족들의 반한 감정은 높아지고 있다.지난 해 조선족에게 6천명을 배정한 산업연수생을 올해 2천명 이하로 줄인 조치도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동포에 대한 대접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이들은 밀항과 비자 위조 등에 한국인들이 깊숙이 개입됐다며 가난한 동포들을 등치는 한국인에 울분을 터뜨린다. 이른바 3D업종에 일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한국의 실정에서 차라리 이들을 합법적으로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중국속의 한국 붐(한·중 새 시대:4)

    ◎북경 등 대도시에 우리 기업 광고탑 즐비/한국어과 개설 열풍… 한국식당 성업/한국특수속 조선족사회엔 「한국병」도/곳곳에 한국산 자동차… 가전제품 매장 “북적” 증국은 더이상 한국인에게 낮선곳은 아니다.수도 북경의 관문,북경공항에 내리면 개인용 짐수레에는 어김 없이 국내 대기업 광고판이 부착돼 있다.공항에서 시내까지 30분가량 달리는 동안 고속도로 양편 길옆으로 현대·대우·우방등 국내 기업의 대형 간판이 늘어서 있다. 북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심도로인 장안대로주변으로 국내기업들의 대형광고탑이 경쟁하듯 솟아있다.중국학술연구의 전당이라는 사회과학원 본부건물 옥상엔 삼성전자 광고탑이 일본 도시바 것과 함께 서 있고 전국신문공작자 건물위에는 한아항공(아시아나항공)의 네온사인이,국무빌딩에선 대한항공 광고판이 빛나고 있다.번화가인 동단과 왕부정거리엔 아예 금성등 국내 가전품 전문매장이 자리잡고 있다.한국기업의 광고탑은 북경만은 아니다. ○공항 짐수레에도 광고 요녕성의 성도 심양의 상징인 거대한 모택동주석 동상뒤로 양담배인 「켄트」 광고판과 함께 영문으로 골드스타(금성)라는 대형광고탑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에는 프린스와 엘란트라·쏘나타등 대우와 현대 자동차가 적잖게 눈에 띈다.북경 뿐 아니다.베트남과 국경지역인 운남에서나 변방인 청해도에서도 한국차는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중국인에게 한국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과 같다.한국차는 한국의 경제기적의 표본 같은 것이다. 한국 사랍이 택시에 오르면 운전사들은 일본 사람이냐는 질문을 더이상 하지않는다.대뜸 한국인이냐 묻는 경우도 늘고 있다.그만큼 한국인이 북경등 주요도시마다 메워 터진다.수교다음해인 93년 15만명에서 지난해엔 30만명이 중국을 다녀갔다.올 연말엔 5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주중대사관은 예상한다.고급쇼핑센터,관광지 등에선 한국 사람을 부딪치지 않고 지나가는 방법은 없다.북경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고궁에는 동시 통역서비스 7개 언어 가운데 우리말이 들어있다.북경공항에는 조선족 관광안내원이 상주해 있고 우의상점,북경호텔 상품부등 주요 쇼핑지의 귀금속과 고가품점에는 조선족종업원이 어김 없이 자리를 지킨다.중국 사람은 한국인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에 대해 묻던 택시운전사들의 요사이 질문이 노태우씨의 비자금사건으로 바뀔정도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높다.TV와 신문에서도 한국관련 기사를 적잖게 다루는 것도 이유다. ○한국 사정에 많은 관심 북경 거리의 조선족음식점과 한국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부쩍늘어 수교이후 한국인의 물밀듯한 중국진출현상을 상징한다.두산주가·경복궁·보배원·진로주가·대정·한국음식점경영은 북경과 중국의 대도시에서 유망산업이다.두사람의 한번 식사에 2백∼3백위안(2만∼3만원)정도는 거뜬히 나오는 이 한국식당의 3분의 2 가량의 손님은 중국인이다.예약 없이 갔다간 낭패하기 십상이다.보배소주에서 직영하는 보배원의 고병창부장은 『북경에만 조선족음식점을 제외하고도 1백여개의 한국인 음식점이 있다』면서 『한국인을 겨냥한 한국음식점의 진출이 오히려 중국인의 입맛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중국인의 큰 반향을얻으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북경의 한국음식점은 소규모투자에서 대규모 기업형으로 바뀌고 있다.싸이트어호텔부근에서 개인이 운영하던 싸이트어 아리랑은 개점초기부터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호황을 맞자 효성그룹이 달려들어 합작형태로 규모를 2배가량 넓혔다.기업형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한우리의 서라벌은 북경시에만 체인점을 4곳으로 확장하기도 했다.이러한 한국음식점은 심양·청도등 한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은 물론 해남도에까지 뻗어있다.수백개를 헤아리는 북경의 가라오케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인을 겨냥한 곳이다.아예 간판도 한글인 경우도 적잖다. 대학등 학원가는 중국의 한국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중 하나다.수교전 십수명에 불과하던 한국학생은 3년사이에 6천명으로 뛰어올랐다.인민대학 70명,어언문화대 어학연수생 5백50명등 7백명,북경대 어학연수생 89명등 2백30명….하오삔 북경대 부총장은 『올 신학기(9월학기)부터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유학생수로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고 한국 유학생의 급증 추세를 설명했다. 이러한 한국열기를 타고 북경대·상해복단대·어언문화대등 주요 대학의 한국학 연구와 한국어학과 개설붐이 일고 있다.지난 93년 길림대·대련외국어대등,지난해엔 북경외대·요령대·산동대·산동사범대등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고 올 9월 새학기엔 북경어언문화대·북경 제2외국어대학·남개대학등 13개 대학에 무더기로 한국어학과를 개설해 한국열기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학 연구센터 발족 북경 서성구의 184중학(고교과정)에선 한국어학과를 설치,올해 35명의 학생을 모집하는 등 우리말 배우기 열풍이 고등학교까지 퍼져나가고 있다.어언문화대학의 양경화총장은 『지난 93년부터 국제교류재단의 협력으로 추진해온 한국어과를 신설,올 신학기부터 학생들을 받게 됐다』며 『한국어학습 및 한국학열기는 두나라 관계발전과 국민사이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고말했다.수교후 중국사회과학연구의 본산이라는 사회과학원과 북경대학에 각각 한국학연구센터가 발족,불모지였던 한국학연구의 새지평이 열리고 있다.중국의 2백만 조선족사회에서의 한국열기는 이제 과열단계를 넘어섰다.한국가면 돈번다는게 한국행의 직접 동기다.주중대사관은 올 한해 1만3천여명의 조선족이 한국으로 건너갔다고 밝히고 있다.정식비자를 얻기 어려워지자 비자위조에서 밀입국,위장결혼까지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는 등 「한국병」이란 신조어를 낳고 있다.이제 한참 달구어지기 시작한 한국열기는 중국사회 각 분야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 현토 통감절요/김도련·정민 역주(화제의 책)

    ◎「자치통감」 발췌한서 우리말 토 달아 중국 송나라 재상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의 주요 내용을 송나라 선비 강지가 간추려 엮은 책.중국사 초기 1천3백여년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인물들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통사이다.조선시대 선비들이 4서3경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긴 고전인데다 당시 나온 역사서 대부분이 이 책을 본뜰만큼 중요한 사서로 평가받는다. 원전인 「자치통감」은 주나라 위열왕 13년(서기전 403)부터 후주 현덕 5년(서기 959)까지의 중국사를 정리한,편년체 최고의 역사서로 꼽힌다.또 사마천의 「사기」에 버금가는 사서로로 꼽힌다. 그러나 워낙 양이 방대해서 읽는 사람이 드물었다.이같은 단점을 보완해 자치통감의 주요 내용만을 뽑은 것이 통감절요다. 전통문화연구회가 동양고전국역총서 24권째로 냈으며 앞으로 세권을 더내 완간할 계획이다.「현토완역」이란 한문을 읽기 쉽게 중간중간에 우리말 토를 단 것을 말한다.주를 풍부하게 달아 이해를 도운 것도 장점. 1만5천원.
  • 「나」보다는 「우리」가 좋은 사회여야(박갑천 칼럼)

    얼마전 「한국대학생의 가치성향과 상담효과」라는 책이 나왔다.전국의 대학생 1천2백여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대학교수들이 쓴 것이다. 거기에 오늘의 젊은이들 의식구조가 밝히 나타난다.『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61.5%),『길에서 연인과 포옹이나 키스를 할수 있다』(64.3%),『내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지 않다』(80.1%),『버스나 지하철에서 내가 피곤하고 지쳤을 때는 노인이 앞에 섰더라도 자리를 양보않는다』(67.4%)는 반응들이다.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나」를 위하는 마음들이 널리 자리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은 엷어져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라는 뜻을 갖는 한자는 「사」다.그 옛글자는 「사」인데 자신을 둘러쌈(포환)을 뜻하는 지사문자였다.후세로 내려오면서 「화」(벼화)가 붙어 물질적·이기적 성격을 띠게 된다.그에 비해 「공」은 「팔」과 「사」로써 이루어진 지사문자.「팔」은 「여덟」의 뜻이 아니라 「사」를 등져 멀리한다(배거)는 뜻이다.이 글자들의 생겨남을 두고 「한비자」(오두편)는 『공사가 서로 배치되는 것임을 창힐(창힐:한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적 인물)은 알고 있었다』고 써놓고 있다.「나」와 「우리」는 그렇게 부딪쳐야 하게 돼있는 관계라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말 「우리」도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그 「우리」는 모든 「나」가 하나로 있게 하는 「큰나」였다.따라서 「우리」는 한우리(한울타리)속에 있다.한우리 속에서 이해를 함께 해야하는 존재가 우리들이었다.그러니까 백제초기의 서울 위례성(창례성)도 토박이말로는 「울ㅅ기」(안재홍 「조선상고사감」).이 「울­우리」는 「□」에서 출발되는 말로서 알(난)·얼(영)과는 4촌간이다.그런 운명공동체로서의 「우리」가 「나」앞에서 굽잡혀야 할 것인가. 한무제때 사람 동방삭(동방삭)은 나 좋을대로 했던 기인으로 알려져온다.임금과 함께 식사하다 남은 것을 호주머니에 담고갈 정도로.이건 남을 언걸먹이는건 아니니 그래도 낫다치자.하지만 감기노이로제에 걸린 앙드레 지드같이 극장안 객석에서 바지를 벗고 샤쓰를 껴입는 것은나 좋으려면서 저지르는 염의없는 짓이다.나만이 아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극기복례)』(「논어」 안연편)은 예나 이제나 지켜져야할 덕목 아닐까 한다. 「나만 좋으면 고만」이 아니다.오히려 나는 좋지 않아도 우리가 좋을수 있게 살아가는 사회가 바람직스럽다 할 것이다.
  • 국어용례사전 출간/국어정보학회 남영신 이사 엮음

    우리말 정확한 쓰임새 소개/사라져가는 토박이말 7만여개 수록/뜻풀이 이어 문학작품속 사례 알려줘 곱고 바른 우리말,우리글을 쓰고자 해도 정확한 쓰임새를 몰라 망설일 때가 있다.자주 쓰지 않는 말은 비록 뜻을 알아도,왠지 어색하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말 쓰임새를 폭넓게 보여주는 국어사전인 「국어용례사전」이 최근 나왔다(성안당 펴냄). 국어정보학회 이사 남영신씨(47)가 엮은 이 사전은 낱말 뜻을 풀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쓰는 사례(용례)를 하나하나 소개한 특수사전이다. 예컨대 「싫거나 불쾌한 마음」을 뜻하는 「끙짜」를 찾아 보면 뜻풀이에 이어 김정한의 소설 「낙일홍」의 한토막이 나온다.「또 고구마밥인가.(중략)이밥에 넌더리 난 사람이 별미 삼아 가끔 먹을 때 말이지,허구한 날을 노 그놈만 처맡기니 끙짜가 아니날 수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이란 뜻으로 요즘 자주 쓰는 말 「시나브로」를 설명하면서는 신석정시인의 시 「망향의 노래」를 예로 든다.「한 이파리/또 한 이파리/시나브로 지는/지치도록흰 복사꽃을/(후략)」 이처럼 낱말이 사용된 문장만 달랑 내보이질 않고 앞뒤 글을 같이 실음으로써 낱말의 느낌까지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아울러 잘된 글의 표본을 보여주는 구실도 한다. 「국어용례사전」에 실은 올림말(표제어)은 토박이말 7만,한자어 1만 등 모두 8만가지쯤이며 6만여 낱말에 용례를 실었다.그 가운데 2만5천개는 고전·신소설·근현대소설·시조·가사·민요등 우리 문학 2천5백여 작품에서 따왔으며 모두 원전을 밝혔다.북한 문학작품도 과감하게 활용했다. 이와 함께 흔히 잘못 쓰는 낱말에 대해서는 따로 「주의」표시를 넣어 틀린 점을 설명했고,그동안 국립국어연구원이 발표한 순화대상 용어들도 일일이 지적해 옳은 말을 쓰도록 이끌었다. 엮은이 남영신씨는 명문대 법대를 다니면서 우리말사랑 운동에 빠진 뒤 20여년을 우리말 연구에 바쳐온 재야 국어학자.지난 87년에는 우리말 6만여 단어를 생활 중심으로 아홉 범주로 나눈 「우리말 분류 대사전」을 낸 바 있다. 그는 『토박이말이란 지식이전에 삶에서 체득한 진짜 우리말』이라고 정의내리고 우리 얼이 담긴 토박이말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걱정했다.또 『한자어에 토박이말을 대입하면 서투르고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의도적으로라도 순수 우리말을 써야 하며,또 잘 쓰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박갑천 지음(화제의 책)

    ◎일상용어·잊기쉬운 우리말 어원 재미있게 소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인 「딴따라」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지은이는 이 말이 영어에서 나팔·피리 소리를 표기한 의성어 「탠태러(tantara)에서 나왔다고 추정한다.「탠태러」가 일본에 들어가 그들 발음으로 「딴따라」가 되고,다시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 이 책은 우리가 자주 쓰거나,또는 이제는 잊혀져가지만 버리기 아까운 말들의 어원을 밝혔다.사랑·아들·꽃처럼 기본적인 우리말과 가시버시(부부)·고뿔·고수레같은 지금 거의 쓰지 않는 토박이말,김치·얌체처럼 한자어에서 바뀐 말,샐러리맨·호치키스·샤프펜슬 따위 잘못된 외국어들을 두루두루 소개했다. 어원찾기라니까 괜히 학문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책장을 들춰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소재 하나하나가 재미있는데다 논리전개가 정연하고,글이 구수해 마치 옛날얘기를 듣는듯 하다. 지난 70년대 초반 나온 「어원수필」을 큰폭으로 개정한 것으로,「어원수필」은 그때만 해도 사회에서관심을 끌지 못한 말뿌리캐기에 불을 지피는 구실을 했다.6순인 지은이는 지금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을유문화사 5천5백원.
  • 부실 교과서/이수열 방송위 전문심의원(굄돌)

    국어가 앓고 있다.우리말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국어교과서에도 잘못된 표현이 많다. 현행 국민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읽기 교과서 11째쪽 「말을 타고 지나가는 허름한 차림의 장군을 보고…」는 일본식 연결구조로 된 잘못된 글이다.「허름한 차림의 장군」을 「허름하게 차린 장군」이라고 고쳐야 하는데,그렇게 해도 문장의 흐름은 자연스럽지 못하다.성분의 차례를 바꿔 「허름하게 차리고 말타고 가는 장군을 보고…」나,「허름한 차림으로 말타고 가는 장군을 보고…」라고 고쳐야 국어다워진다. 16째쪽 「포근한 햇솜의 꽃사슴 이불」도 「햇솜의」와 「꽃사슴 이불」의 연결구조가 일본말을 닮은 것으로 우리말에는 어울릴 수 없다.「햇솜」이 「꽃사슴 이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꽃사슴의,포근한 햇솜 이불」이나 「포근한,꽃사슴의 햇솜 이불」이라고 해야 국어답고 시의 리듬도 산다. 47째쪽 「가운데 부분을 내용에 따라,다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에서 「몇개의 부분」은 국어를 치졸하게 만드는 일본말투 찌꺼기다.「개의」를 빼고 「몇부분」이라고 해야한다.「다섯곳」을 「다섯개소」,「백 석」을 「백 개석」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예다. 54째쪽 「나무야,누워서 자라」에서 「자라」는 「자거라」로 고쳐야 한다.「자다」는 거라변칙동사이기 때문이다. 98째쪽 「원님으로부터 상을 받은 욕심쟁이 농부는 왜 울었을까요」는 영어 from 구문을 흉내낸 문장이다.국어의 탈격(탈격)조사는 「께서」와 「에게서,한테서」이므로 「원님으로부터」는 「원님께서」나 「원님에게서」 「원님한테서」라고 해야 한다. 이처럼 잘못된 글이 각급학교 교과서에 두루 스며들어 마약처럼 작용해서 슬기로운 새싹들의 배달겨레다운 얼을 죽인다.
  • 고대생 매년 1천명 해외유학/세계화 4대 전략

    ◎5천평규모 「국제관」 97년까지 건설 고려대는 오는 2000년까지 해마다 1천여명의 재학생을 해외 우수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보내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한국학 교육기관을 설치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고려대 세계화 4대전략」을 발표했다. 고려대 홍일식총장은 10일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운동」 1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국제교류의 대폭 확대 ▲학문활동의 세계화 ▲언어능력의 세계화 ▲한국학의 세계화 등 고려대 세계화 4대전략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홍총장은 이를 위해 지금까지 걷은 발전기금 1백50여억원을 투자,국제어학원과 국제관계 연구기관 등이 들어설 지하2층 지상5층,연건평 5천평 규모의 국제관을 오는 97년까지 안암캠퍼스에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해외 분교 설치의 토대를 마련하고 한국학의 세계화를 지원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교포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문화 등을 가르칠 한국학교육기관을 설립키로 했으며 일본 등지로 설립 지역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 국제교류재단 발행 계간 「코리아나」 가을호

    ◎「하근찬 문학」 세계에 소개/단편 「수난2대」·「흰종이 수염」2편 수록/선정위 “앞으로 신예작가로 적극 추천”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서온 계간지 「코리아나」 가을호가 최근 나왔다.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최창윤)이 발행하는 이 잡지는 영어·일어·스페인어·중국어·불어등 다섯가지 언어로 나와 세계 1백70 나라,2만2천 기관에 뿌려진다. 가을호는 특집인 「한국의상의 전통미­한복」과 함께 광주비엔날레,광복50주년기념 음악회 기사를 실었다.또 연재물인 「한국문학기행」에서는 작가 하근찬씨를 다뤘고,「문화지역탐방」에서는 송강 정철이 유배를 산 전남 담양을 소개했다.이 기사 가운데 「한국문학기행」 연재는 한국문학 세계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코리아나」에 우리 문학 소개란이 등장한 것은 93년 여름호부터.그동안 소설가로는 한말숙(작품은 장마)·황순원(두메)·이청준(눈길)·오정희(별사)·김동리(황토기·동구 앞 길)·서기원(마록열전 가운데 2·3·5편)·강신재(젊은 느티나무·달 오는산으로)씨가 소개됐다.시인으로는 서정주·구상씨의 작품세계와 대표작이 실렸다.소설은 단편 2∼3편이나 중편 하나,시는 5∼7편정도를 한번에 싣는다. 이번 가을호에 실린 하근찬씨의 작품세계 해설은 송희복교수(동국대 국문과)가 맡았고 수록작품 「수난 2대」와「흰 종이수염」 두편은 케빈 오룩교수(경희대 영문과)가 번역했다. 「한국문학기행」의 작가·작품선정은 예술원 문학분과위원회에서 하는데 보통 8∼10명정도를 한꺼번에 뽑아둔다.올 겨울호로 예정된 이문열씨(그 해 겨울)를 비롯,소설가 최인훈·박완서·김승옥·이문구·최윤·김주영·서정인·김원길·윤흥길·황석영씨등이 이미 선정돼 있다. 이처럼 많은 작가를 미리 고르는 까닭은 1∼2년 시간여유를 갖고 번역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또 한국문학 번역가가 많지 않은 점도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그동안 실린 작품은 오룩교수와 존 홀스타인교수(성균관대 영문과)·신현송교수(옥스퍼드대 경제학과)·데이비드 매칸(코넬대 아시아연구소장)씨등 10명이 돌아가며 우리말로 옮겼다. 선정위원회는 앞으로 중견작가만이 아니라 최근 화제작가도 소개해 한국문학의 흐름을 더 분명하게 보여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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