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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교회공동체 ‘진일보’

    남북 교회공동체 ‘진일보’

    북한에서 사용되는 성경은 남한 성경을 북한식 한글표기법에 따라 교정한 수준으로 남한의 표준말과 북한의 문화어 차이에 따른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신도들이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부연회가 남북한 성경과 찬송가를 비교 분석해 8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성경은 독자적으로 번역한 성서라기보다는 1977년 남한의 대한성서공회가 발간한 공동번역성서(이하 공동번역)의 북한식 교정본인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1983년과 1984년 각각 신·구약전서 초판을 낸 데 이어 1990년 재판을 간행했는데 양쪽 모두 대한성서공회 공동번역의 본문을 북한식 한글표기법에 따라 교정해 쓰고 있다. 번역본문은 공동번역의 본문과 대동소이하지만 북한식 표기법에 맞춘 어휘나 띄워쓰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성경은 두음법칙이나 사이시옷을 쓰지 않고 숫자표기에서도 남한의 우리말 대신 아라비아 숫자를 쓴다. 또 북한식 관용어에 따라 어휘를 교정한 것이 많으며 용어나 어휘도 북한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맞춘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번역보다 우리 고유어를 더 많이 쓰고 있으며 우리말 뜻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러나 우리말 표현을 살리려다가 구약 원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본문을 오해했거나 옛 이스라엘 신앙의 종교·문화·역사적 상황을 알지 못해 잘못 표현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구약 창세기 35:14의 ‘전제물을 붓고’ 대목에서 북한성경은 ‘술을 붓고’로 쓰고 있지만 여기에서 전제물이란 포도주로 드린 제물이란 뜻인만큼 술로 한정하면 오류라는 것이다. 감신대 왕대일 (구약학)교수는 “북한성경이 오래전 남한의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이룬 공동번역을 기초대본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모든 교회와 교파가 하나되는 화해와 일치를 교회공동체의 기본자세로 삼아야 한다는 진리를 내세우고 있는 노력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광화문 문화포럼 아침공론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차범석 전 대한민국 예술원 원장)은 8일 오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소연회장에서 정현기 연세대 교수를 초청하여 ‘인문학적 물음과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주제로 아침공론을 갖는다.
  • [‘영역 확대’ 나선 아나운서들] 개성·끼 무장…‘뉴스 앵커’ 틀 깬다

    [‘영역 확대’ 나선 아나운서들] 개성·끼 무장…‘뉴스 앵커’ 틀 깬다

    최근 MBC 간판 아나운서인 손석희 아나운서국장이 성신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에 방송계가 들썩이고 있다. 아나운서의 일거수 일투족이 세간의 관심사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스타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아나운서 집단의 세력화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딱딱한 뉴스 전달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PD나 기자와는 또 다른, 아나운서만의 자리와 파워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장면 하나 지난달 20일 오후 교보문고.MBC 아나운서들이 함께 쓴 책 ‘쓰면서도 잘 모르는 생활 속 우리말 나들이’ 홍보를 위해 열린 출판 사인회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마치 인기 연예인 사인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장면 둘 지난 설 연휴에 인기를 끈 SBS·MBC 등의 ‘댄스 경연대회’. 화려한 복장의 아나운서들이 출연해 연예인 못지않은 뛰어난 춤솜씨를 보인 것이 인기에 한몫 했다. ●정형화된 이미지 틀 깬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아나운서의 이미지는 뉴스 앵커로 대변됐다. 그만큼 저널리스트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아나운서도 정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10년차인 한 아나운서는 “손석희 아나운서가 학계로 가는 것은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중시해온 고참 아나운서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은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만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교양·오락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개성과 끼를 발휘할 수 있다면 그 방향으로 특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지상파 3사 아나운서실의 분위기이다. 이에 따라 아나운서 선발과정도 예전과 많이 바뀌고 있다.SBS 아나운서팀 유영미 차장은 “과거에는 뉴스에 맞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선호했다면 이제는 외모나 목소리 등에 개성 있는 후배들이 각광을 받는다.”면서 “‘제2의 누구’라는 이미지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사 내 아나운서의 활동이 넓어지면서 역할도 강화되고 있다. 각종 교양·오락프로그램의 사회나 패널을 맡아 단순한 전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의견제시 등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해외 이슈를 다루는 시사교양프로그램 ‘W’의 진행을 맡고 있는 MBC 최윤영 아나운서는 “여성 아나운서 혼자 진행하는 만큼, 여성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적극적인 회의 참여는 물론, 취재 일선에서도 뛸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세지는 아나운서 상품화 아나운서의 파워는 곧 상품화로 이어진다. 특히 젊은 아나운서들은 인터넷 팬카페가 생길 정도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과시한다.KBS 오락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여걸식스’와 ‘상상플러스’에 출연하고 있는 강수정·노현정 아나운서 등이 대표적이다.KBS 표영준 아나운서팀장은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은 연예프로그램에 아나운서들이 참여, 성공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면서 “아나운서가 지켜야 할 선만 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스타 아나운서들의 활약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정신 없으면 못해” 물론 아나운서들의 상품화·연예인화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나운서 본연의 역할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준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들 사이에서도 인기에 급급하기보다 전문성과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여성 아나운서는 “연예인과 비교할 때 옷 협찬도 없고, 광고도 찍지 못하고, 보수는 100분의1도 되지 않지만 아나운서라는 자부심 하나로 일에 열중하고 있다.”면서 “연륜과 경력이 쌓일수록 책임감이 더 커지는 것이 아나운서란 직업”이라고 말했다. MBC 이윤철(52)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맡은 바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면 시청자들이 인정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정부,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하반기 제정

    올 하반기에 정부 차원의 연구윤리 가이드 라인이 제정된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태를 계기로 논문작성과 발표 등 연구자들의 연구활동에 수반되는 윤리 시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5일 이같은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제정 방침을 밝혔다. 교육부는 미국 연방정부 연구윤리 가이드 라인을 우리말로 번역, 전국 대학에 2만부 정도 배포한 다음, 공청회 등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정부차원의 연구윤리 가이드 라인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황 교수 연구논문 조작사건 이후 일부 학회 등에서 연구 윤리헌장을 만드는 등 부분적인 자정 노력은 있었으나 연구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연구용 기자재는 개인적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다른 대학에서 연구를 위해 빌려 사용할 수는 있다. 최근 검찰 수사결과, 한 연구자는 연구용으로 구입한 텔레비전을 자신의 집에 갖다 놓았다가 적발된 바 있다. 또 하나의 실험결과를 토대로 다수의 논문을 작성하는 행위도 연구윤리에 위배되는 사항으로 규정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연구논문 심사위원 자격도 구체적으로 명시된다. 예를 들어 논문 제안자와 친구지간이거나 같은 실험실에서 동료로 일한 사람은 연구논문 심사에 참여할 수 없게 배제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심사위원과 연구논문 제출자가 같은 대학 소속이 되지 않도록 배제하는 정도다.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는 연구윤리 가이드 라인을 제정함으로써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연구 윤리의식에 대한 경각심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각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는 이를 토대로 연구윤리를 위반할 경우 제재수준 등 구체적인 사항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연구비 활용범위를 식비나 다과비로 제한하고 연구를 위해 해외출장을 갈 경우, 비즈니스 클래스는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 교수들의 경우, 비즈니스 클래스를 편법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교육부 지적이다. 함께 출장하는 외국교수들은 이코노미석에 앉는 반면, 국내 학자들은 비즈니스클래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한국을 배우려고 한류스타의 나라에 유학 온 일본인 모녀가 있다. 구보타 가즈코(51)·아야노(17) 모녀. 히로시마에서 온 이들은 지난 9일부터 3개월 과정으로 고려대 한국어문화센터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엄마는 최고령, 딸은 최연소 학생 이들을 특별한 경험으로 이끈 것은 지난해 일본내 한류전문 출판사가 주최한 한국어 모녀 어학연수 희망자 공모. 한쌍의 모녀에게 3개월간 학비와 체류비를 전액 지원하는 대신 한국 생활을 날마다 일기로 적어 사진과 함께 무선인터넷에 공개하라는 조건이었다. 평소 무선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자주 접해 온 ‘한류 마니아’ 아야노양이 공모에 참가하자고 엄마를 졸랐다.3차례 심사를 거쳐 420여쌍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발의 영예를 안았다. 딸은 지난해 2월부터 틈틈이 한국말을 공부해 왔고 엄마는 ‘가, 나, 다, 라’부터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반이 서로 다르다.“우리 딸이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죠.‘이런 건 제때 제때 외웠어야지.’‘이건 활용법이 틀렸잖아.’라면서 어찌나 무섭게 혼내는지.” 아야노양은 가장 어린데다 성격이 활달해 반에서 인기가 좋다.“일본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들으러 가도 아줌마나 아저씨들뿐이었어요. 이번에 한국에서 나이 비슷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돌아가고 싶어요.” 가즈코씨는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워낙 한국어에 대한 기초가 없어 처음에는 “몰라요.”만 연발하며 당황해 했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고 들은 단어들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게 마냥 뿌듯하다. 길거리를 걸을 때에도 간판들을 더듬더듬 읽으며 신기해 한다. ●딸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선생님 이들이 한국에 빠진 것은 2004년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부터였다. 드라마 ‘풀하우스’와 ‘아름다운 날들’에서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류스타 중에 엄마는 강동원을, 딸은 류시원을 가장 좋아한다.‘욘사마’(배용준)는 자기들 취향이 아니란다. 이번 한국행에 앞서 가즈코씨는 가슴앓이가 컸다.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기 위해 오랫동안 해온 간호사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한국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과 한동안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일은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딸에게는 이번 연수가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50대 들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고요. 결국 남편도 1주일 만에 화를 풀더군요.” 가즈코씨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려워져 걱정”이라면서 “우리 모녀를 보고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야노양은 “대학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공부를 해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모녀는 20일 아침 일찍 강릉에 현장 학습을 떠났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아리랑/이상배 글·김세현 그림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이 있었다.‘아라’산이라고 했다.…고갯마루에 늙은 소나무가 우뚝 서 있다.…눈길이 가는 데까지 들녘이다.” 아이들에게 읽힐 창작동화 치고는 운을 떼는 품새가 범상찮다. 인기 동화작가 이상배의 ‘아리랑’(김세현 그림, 파랑새어린이 펴냄)은 첫장부터 우리말의 유려한 질감이 혀끝을 착착 감친다.‘우리 노래’ 아리랑의 유래를 작가 나름대로 재구성했으니 불끈불끈 서사의 힘줄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난한 소작농들이 많이 모여사는 작은 고을 구만리. 김 좌수의 집에서 대물림 종살이를 하는 고아 머슴 리랑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그런 어느날 우물가에서 말뚝댕기를 한 반빗간(음식 만드는 곳) 소녀 성부를 만나는데, 이상하게도 그 아이에게선 그리운 어머니 냄새가 난다. 흉년이 극심해져 김 좌수가 곡식을 있는 대로 빼앗아가자 견디다 못한 리랑과 소작농들이 난을 일으킨다. 김 좌수에게 멍석말이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리랑, 동변상련의 우정을 키우던 성부는 안타깝기만 한데…. 고만고만한 생활동화들 속에 우뚝 키가 커보이는 책이다.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파렴치 벼슬아치와 소작농들의 대결을 그린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모처럼 색다른 글 소재의 향미를 만끽할 듯하다. 순우리말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달구비’‘똥탈’‘살꽃’ 등 토박이말의 향연에 배가 불러진다. 책 뒤쪽에 ‘우리말 찾아보기’가 따로 붙어 있어 학습효과를 챙기는 데에도 그만이다. 초등생.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논술 길라잡이] 초등생 영어조기교육

    [논술 길라잡이] 초등생 영어조기교육

    오는 9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이 시범실시된다. 현재는 3학년생부터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실시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11일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시범운영은 2008년 8월까지 한다.16개 시·도 교육청별로 1곳에서 1·2학년생을 대상으로 시범실시한 뒤, 그 결과와 국민 여론수렴 등을 거쳐 전면 확대 여부를 정한다. 포인트 조기영어 교육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글 교육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부정론과 국제화 시대 영어공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지지론으로 나뉜다.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한 지 여부에 대해 고민해보자. ●조기교육 실태 현재 전국 초등학교의 30%인 1711곳에서 특기적성 교육시간이나 재량활동시간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 266곳, 경기 224곳, 부산 138곳 등이다. 수업시간은 일주일 평균 30분에서 3시간 정도다. 하지만 조기영어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수요를 학교에서 만족시키기란 역부족이다. 사실상 영어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게 그 방증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1997년 241명이던 초등학생 유학생은 2004년에는 6276명으로 26배나 늘었다. 한국교육개발 연구원 조사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자녀 조기유학을 시키는 이유를 학부모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외국어 습득이 22.9%로 가장 많았다. ●찬성 이유 언어는 어릴수록 배우기가 쉽다는 것이다. 아동은 어른에 비해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국어 습득 적정연령이 5∼6세라는 얘기도 이런 찬성론자들의 발언에서 나온다. 영어학습이 학원 등 사교육 시장에서 보편화된 마당에 이를 공교육에서 흡수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영어가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갖춰야 할 필수도구라는 현실적 필요성도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영어공용화 주장까지 펴고 있다. 국제언어인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영어체험 마을을 운영하는 것이나 정부에서 조기 영어교육 시범운영 방안을 마련한 것도 이런 흐름의 하나다. ●반론도 적지않아 하지만 조기영어 교육 실시에 대한 반론도 적지않다. 우리말 습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울 경우, 학생들에게 문화적, 언어적인 정체성 혼란만 불러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영어학습 여건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영어 조기교육 시기를 초등학교 1·2학년으로 앞당기기보다 3·4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수업을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같은 차원에서 중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배치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 2935곳의 중학교에 배치된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는 221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2010년까지 이들 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1명씩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가속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경우, 미취학 어린이들에게조차 비싼 돈을 마다 않고 영어공부를 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교조 등에서는 이번 정부 발표가 사교육 시장을 오히려 더 과열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외국은?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공립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2003년 초에 실시한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공립 초등학교의 절반 이상이 3학년 이상에서 일주일에 1시간씩 영어회화를 배운다. 싱가포르는 1956년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66년부터 영어를 필수로 하는 이중언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타이완의 경우, 초등학교 5학년부터 영어를 배운다. 일주일에 2시간(80분)씩 수업한다. 스웨덴은 지방마다 다르나 1학년 때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경우가 33%,3학년 때에는 39%로 파악되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정부가 초등학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시범적이나마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교육 양극화’현상을 최소화하려는 긍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도시 빈민층이나 농어촌 지역의 경우, 부모가 경제력이 없다면 해외유학은커녕, 국내 영어학원에도 자녀를 보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소득격차에 따른 교육투자의 차이가 대를 이은 계층의 고착화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 조기교육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영어를 배우려고 해외유학길에 나서는 행렬이 줄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영어 수업시간을 늘리거나 학생들 수준에 맞는 적절한 교재개발 등 질적인 영어학습 여건 개선에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MBC아나운서 “시청자 곁으로”

    MBC 아나운서국이 시청자 곁으로 바짝 다가서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아나운서의 진솔한 모습과 방송 뒷이야기를 보여주는 웹 매거진 ‘언어운사(言語運士,ann.imbc.com)’를 17일 창간한 것. 우리말과 글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도 제공하게 된다. ‘언어운사’는 한 주 동안 가장 화제가 될 만한 아나운서를 집중조명하는 ‘아나운서 여겨보기’, 알려지지 않은 아나운서 생활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아나더월드’, 아나운서 개인의 전문성을 살려 여러 정보를 전달하는 ’아나 스페셜’ 등으로 구성됐다. 한편 최문순 MBC 사장은 이날 격려사에서 “아나운서들이 때로는 ‘PD수첩’처럼 억울하게 욕을 먹기도 하지만 시청자와 직접 호흡하는 MBC의 얼굴”고 말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데스크시각] 행정도시 이름짓기/서동철 공공정책부장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줄여서 ‘행복도시’라고들 부르는 모양이다. 이름부터가 ‘행복(幸福)한 도시’라니…. 추진한 쪽에서 보면, 우여곡절 끝에 시동이 걸린 행정도시의 미래상을 이보다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우연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행복(行復)’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문패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행정도시는 충남 공주시와 연기군에 걸쳐 있다. 위상에 걸맞게 따로 떼어내 이름을 새로 짓고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개편하는 일은 불가피해 보인다. 행정도시에 이름을 짓는 작업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우선 20세기 이후 뒤죽박죽이 된 우리 땅이름의 혼란상을 바로잡는 전기가 될 것이다. 분당신도시가 그렇다. 당나라 시대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갈 것 같은 분당이라는 이름은 알고 보면 한세기도 되지 않았다. 토지박물관에 따르면 이곳에는 동이점(분점·盆店)과 당모루(당우리)마을이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1906년 당우리(堂隅里)는 당우리(唐隅里)로 바뀌었다. 이후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마을을 합치면서 머릿글자를 이어 분당(盆唐)이 됐다. 당나라 당(唐)을 집 당(堂)으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일산신도시와 이웃한 화정(花井)의 역사도 비슷하다. 꽃우물이라는 예쁜 이름도 분당과 같은 시기, 화수(花水)마을과 찬우물(冷井)을 합치면서 최선의 선택이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다. 분당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1990년 한글학회와 땅이름학회는 분당이 아닌 돌마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분당은 성남시가 생기기 전까지도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에 속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돌마(突馬)라고 쓰지만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 순 우리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돌마는 분당의 고등학교와 길 이름으로만 남았다. 신도시는 왜곡된 땅이름에 역사성을 되찾아 주거나, 개발로 옛모습을 잃어버린 마을에 아름다운 새이름을 붙여주는 기회가 되어야 했다. 원주민이 대부분 떠나버린 신도시에서 달라진 땅이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많은 신도시는 기회를 놓쳤다. 일산신도시의 강촌마을도 그렇다. 사람들은 한강 물줄기의 혜택을 받고 살던 강촌(江村)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강(姜)씨가 모여 살던 곳이라 강촌(姜村)이라고 이름붙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강씨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언가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강씨의 흔적은 사라지고, 주변 지형도 완전히 달라졌는데 동네이름은 여전히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라니…. 이 사례는 행정도시 작명(作名)이 도시 이름만 새로 짓는데서 그쳐서는 안되고, 그 아래 행정단위의 이름까지 모두 정비할 때 의미가 극대화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글학자들과 지리학자들은 ‘동(洞)’을 순수한 우리말인 ‘골’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꼭 골이 아니더라도, 행정도시에서는 새로운 우리말 행정단위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동에만 그치지 말고, 구(區), 나아가 시까지도 순수한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들은 행정기관 이전 및 주민입주가 2012년 이후로 계획되어 있으니 이름을 짓는 일은 아직도 먼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작명이 제대로 되려면 예정지역의 지명조사부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내년이면 기반조성공사가 시작되고, 주민들이 예정지역을 떠나가는 만큼 지명조사는 지금 당장 시작해도 결코 이르지 않다. 행정도시의 의미가 부각되고, 지역의 역사성이 담겨 있으며, 나아가 순수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되살릴 수 있는 이름짓기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행정도시를 어떤 이유에서든 반대하던 사람들도 높은 평가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신도시를 비롯한 다른 개발지역의 이름짓기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는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dcsuh@seoul.co.kr
  • 부산시 영어 공용어 주거단지 조성

    부산에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된다. 부산시는 12일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되는 강서구 명지·신호 주거지역에 공공시설은 물론 각종 편의시설에서 우리말과 영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영어도시(E-타운)를 조성키로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E-타운에는 병원과 은행, 식당 등 편의시설에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내국인이나 원어민을 배치하는 한편 도로표지판과 각종 문서에 의무적으로 영어를 표기하게 된다. 시는 특히 동사무소 등 공공시설에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을 상시 배치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키로 했다. 시는 이와 함께 E-타운내 초·중·고교에 원어민 교사를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영어체험 시설을 갖춰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아카데미를 유치키로 했다. 시는 이를 위해 23만평 규모로 조성되는 명지주거단지에 15만평을 확보하고 있는 영조주택 측과 실무적인 협의를 진행 중이다. 시는 또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을 위해 부지 1만평에 300명이 유치원과 초·중·고교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국제외국인학교를 신설,2008년에 문을 열기로 하고 부지 물색에 나섰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초등학교 1·2학년도 영어교육 하반기부터 시범실시

    올 하반기부터 초등학교 1·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조기교육이 시범실시된다. 현재는 3학년 이상이 대상이다. 학년을 3월 대신 9월부터 시작하는 9월 학기제 도입도 추진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11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10년까지의 국가인적 자원개발 5개년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초등1·2년생, 주1시간씩 영어 기본계획에 따르면 초등학교 1·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범 영어교육은 전국 16개 학교에서 실시된다. 시·도 교육청별로 한 곳이다. 시범운용 기간은 2007년까지다. 교육부 김영윤 초중등교육 정책과장은 “영어능력이 우수한 교사가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시범학교로 선정하되 교육여건에 있어서도 양극화 현상이 있는 만큼 도 교육청의 경우, 읍면 지역에 안배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시범실시 이후 확대여부에 대해서는 2008년에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조기영어 교육에 대한 찬반논란이 있어서다. 이밖에 2008년부터 인천, 부산ㆍ진해, 광양 등 3곳의 경제특구와 제주 국제자유 도시에서는 각각 2개교씩 모두 8곳의 초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영어 몰입교육(English Immersion Program)이 시범 실시된다. ●초등학생 유학생 급증 현재 전국 초등학교의 30%인 1711곳에서 특기적성 교육시간이나 재량활동시간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 266곳, 부산 138곳 등이다. 수업시간은 일주일 평균 30분에서 3시간 정도다. 하지만 조기영어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컨대 영어때문에 해외유학가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1997년 241명이던 초등학생 유학생은 2004년에는 6276명으로 26배나 늘었다. ●반대론도 적지않아 우리말 습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어와 영어를 함께 배우면서 생기는 혼란도 반대론의 근거다. 때문에 조기영어교육 시기를 초등학교 1·2학년으로 앞당기기보다 3·4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수업을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중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배치하는게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말 현재 전국 2935곳의 중학교에 배치된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는 221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는 2010년까지 이들 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1명씩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9월 학기제 도입 검토 2007년까지는 학제개편 종합계획을 마련한다. 현행 6-3-3-4제의 기간학제를 조정하고 외국처럼 9월 학기제 도입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식 차관은 “교원수급계획이나 학교신설계획 등 논의대상이 많아 내년 말까지 이러한 쟁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젠틀 매드니스/니콜라스 바스베인스 지음

    1800년대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아이제이어 토머스를 가리켜 ‘가장 고귀한 질병’에 빠진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인쇄업자이자 출판업자로 꼽히는 아이제이어 토머스가 앓은 그 고귀한 질병이란 다름아닌 책에 대한 엄청난 열정, 곧 애서광증(愛書狂症)이다. 신문에 광고까지 내면서 책을 구했다고 하니 그쯤되면 병이긴 병이다. 하지만 그 질병은 그래도 ‘고상한 광기(gentle madness)’라 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펴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애서가와 애서광, 즉 책에 미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독일의 서지학자 한스 보하타의 설명에 따르면 애서가는 자기 책의 주인이고 애서광은 자기 책의 노예다. 물론 그 경계는 모호하다. 1000쪽이 넘는 이 방대한 책의 저자는 미국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바스베인스. 미국 클라크 대학에선 그의 이름을 딴 재학생 도서수집 경연대회가 열릴 정도로 그는 도서수집광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소설가 김연수, 출판기획자 박중서 등 3인이 3년에 걸쳐 우리말로 옮겼다. 책은 80만권의 책을 소장한 전설적인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서부터 미국과 관련된 책은 무엇이든 사들였다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사양길에 접어든 이디시어 책들을 보전하기 위해 애쓰는 도서수집가 아론 랜스키(50)의 이야기까지 고금을 넘나들며 도서수집에 얽힌 일화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압권은 20여년 동안 미국 전역 268개 도서관에서 훔친 2만 3600여권의 희귀본으로 ‘블룸버그 컬렉션’을 구축한 희대의 책 도둑 스티븐 블룸버그(57) 이야기다. 그가 훔친 책은 시가로 2000만 달러. 도서절도범으로 징역만 10년 넘게 산 그는 그 덕분에 범죄세계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책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절도 이상의 만행도 부추긴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아내가 죽자 자신의 미출간 시 원고 한 묶음을 아내와 함께 묻었다. 그러나 책을 향한 광기는 그로 하여금 7년 후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을 파헤치도록 만들었다. 원고를 다시 꺼낸 그는 1870년 마침내 ‘시집’이란 제목의 시집을 냈다. 당시의 원고 묶음은 현재 하버드 대학 호우튼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책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꼽히는 게 ‘제임스 앨런, 일명 버디 그로브의 회고록’이다.1830년대 악명높은 노상강도였던 제임스 앨런이 처형되기 직전에 쓴 이 책의 장정은 놀랍게도 사람 가죽으로 돼 있다. 감옥에서 죽어가던 앨런이 자기가 죽으면 가죽을 벗겨 책을 만들어 자신을 체포한 사람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보스턴 애시니엄에 소장돼 있는 이 책은 불필요하게 흥미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일반 공개가 금지됐다. 책 경매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그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 석유재벌의 부인인 에스텔 도헤니의 장서 경매다. 미국 최고의 도서수집가 가운데 한 명인 그녀의 장서는 1987년부터 2년에 걸쳐 뉴욕 크리스티에서 여섯 번으로 나뉘어 팔렸다. 값은 3740만 달러로 세계 장서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재벌가의 책 사랑은 유별나다. 미국의 은행재벌 존 피어폰트 모건, 록펠러의 동업자인 스탠더드 오일의 헨리 클레이 폴저, 미국 서부의 철도재벌 헨리 에드워즈 헌팅턴 등은 모두 책을 극진히 사랑하고 수집했다. 이들은 사후에 자신의 장서로 공공도서관을 만들어 개방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책에 대한 이런 열정이야말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 할 만하다. ‘젠틀 매드니스’는 이제 우리도 독서문화와 함께 도서수집문화 혹은 장서문화에 눈을 돌려야 함을 일깨워주는 흥미로운 책이다.4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실전논술] 한국인의 사고하는 태도 문제점과 해결책

    ●다음 글을 읽고, 한국인이 사고하는 태도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며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사고는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서, 이성의 엄격하고 보편적인 법칙을 따라서 어떤 사실·사태·사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자 그대로의 ‘이치(理致)’의 추구력을 말한다. 진리와 오류는 반드시 증명되어야만 한다. 증명하려는 불 같은 의욕이 없는 사고는 있을 수 없으며 이성을 등한히 하는 사고는 사고의 죽음과 마찬가지다. 참된 사고에는 엄청난 지적 긴장이 수반돼 피땀나는 지적 노력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결론만을 찾으려는 가지가지 유혹이 사고하는 과정 속에 항상 따르고 있음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한국인의 사고의 빈곤은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뚜렷하게 독창적인 이론이 하나도 한국에서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증명되거니와 학계나 문화계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학자, 지식인들의 태도 혹은 경향 속에서 한국의 사고가 얼마만큼 자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인의 사고하는 태도에서 대략 세 가지 경향을 들 수 있다. 첫째, 사대주의이다. 멀쩡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신문, 잡지에는 그런 말 대신 알 수도 없는 외국어를 쓰려는 경향이 근래 심해지고 있다. 빌려 쓴 외국어가 흔히 잘못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습고도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러한 경향은 잠재적이나마 외국어 숭배의 심리를 반증한다. 사대 심리는 여기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외국 문학의 인기, 무조건적인 외국인 학자에 대한 엄청난 관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용상으로 볼 때, 별로, 아니 전혀 관계도 없는 기사나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것이라고, 외국의 것이라고, 무조건 대대적으로 신문이나 잡지에 보도되고 실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권위주의는 일종의 사대주의이다. 왜냐하면 사대주의는 근본적으로 외국 문화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인 사고의 권위주의에서 일종의 사대 사상을 또한 찾아볼 수 있다. 대단치도 않은 학술론·잡문에도 필자의 학술적 양심·유식을 보이려는 듯이 흔히 외국 문서의 참조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면, 필요도 없는데 공연히 외국어를 원문대로 삽입한다. 그뿐 아니다.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기에 앞서 이미 권위 있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의 견해를 인용함으로써 그 주장이 옳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은근한 압력이 많다. 그러나 사고는 권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참다운 사고는 우선 권위를 일단 비평적으로 대하는 데서만 출발한다. 어떠한 사실 혹은 주장은 권위 있는 사람이 그것을 인정해서 옳아지는 게 아니다. 어떤 사실이 정말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사실이 정말이기 때문이요, 어떤 주장이 옳다면 그것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에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사대주의의 반동으로 나타나는 국수주의이다. 이 경향은 첫째의 경향에 비해서 약하지만 무시 못할 경향이다. 국수주의적 사고는 ‘옳고’,‘그름’의 기준, 가치의 기준을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념 혹은 감정에 두고 있는 사고 방식이다. 한 이론이나 주장은 그것이 동양인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옳은 것이 되고, 한 예술 작품은 그것이 한국인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좋아진다. 사대 사상? 열등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동양적인 것, 한국의 것을 무조건 무시하는 자학을 해서는 안 됨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애국심이나 어떤 감정에 좌우되어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택함은 사고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고의 자위 행위이다. 자위 행위가 건전한 기쁨을 가져오지 않음을 물론이거니와 그런 행위를 하는 본인에게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해로움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적 사고의 특색은 냉소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냉소주의자들은 전혀 사고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어떤 우연이나 딴 이유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들, 즉 학자·교수·문화인이란 명칭을 받게 된 사람들이거나 혹은 사고할 능력은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사고하기를 중지한 게으름뱅이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고인의 범주 속에 넣고 있고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삼사십이 못 되어 이미 ‘도(道)’에 통해서 우주적 고차원에서 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의 눈에는 무엇을 더 알고 따지고 캐 보려는 모든 지적 노력이 철없는 짓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열심히 수학을 따지고 예술을 논하며 정의를 찾으려는 사고가 유치한 것으로 보이고, 참다운 사고는 그러한 작은 사고의 테두리를 넘어서 주말이면 낚싯대나 잡고 바라보는 구름 속에서만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사고의 죽음을 의미한다. 냉소주의자들은 사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를 부정하는 패배자에 지나지 않는다. -박이문 <한국인> ●지문의 분석 이 글은 한국인에게 사고의 자립이 필요한 이유와 그 방안에 대해서 언급하기 전에 먼저 한국인의 사고하는 태도를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있는 글이다. 먼저 자립성이 없는 한국인의 사고로 이성적 활동이 빈약하고, 이성을 등한시하는 한국인의 사고는 빈곤하다고 보고 있다. 참된 사고에는 지적 긴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한국인이 어떻게 사고하는가를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하나는 외국어 숭배 등의 사대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외국의 것이라면 무조건 숭배하는 사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사고의 권위주의는 일종의 사대 사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사고의 자위 행위로써의 국수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국수주의는 이념과 감정 등에 가치의 기준을 두는 사고 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고의 자학 행위, 자위 행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사고를 부정하는 패배자의 자세인 냉소주의도 지적하고 있다. 학문적 진리를 따지고 천착하려 하기보다는 현실을 벗어나 자연에서 소요하는 행위가 참다운 사고라고 보는 관점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태도는 사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냉소주의적 사고 방식은 사고를 부정하는 패배자의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다. ●출제의도와 생각하기 이 문제는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단점이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뒤에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를 묻는 문제이다. 즉, 나 개인이 아닌 우리 민족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러면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한국인이 자립적인 사고를 갖지 못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이 논술에서 찾고자 하는 사고의 자립을 위한 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제 해결을 위한 정신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 보도록 하는 데 중요한 출제 의도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사고의 자립을 위한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두 가지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논술 문제는 애초에 분량상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내용을 마구 늘어놓으면 논리적인 서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사고 방식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머문다든지 너무 주관적인 색채가 가미되면 문제에서 의도하고 있는 바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문제의 핵심적 원인을 진단한 다음에 그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 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중 하나로 사물에 대한 올바른 비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이러한 문제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하게 되면 자립성이 있는 사고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수업 현장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할 수도 있고,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토론이 일반화되는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은 논술의 기본적인 성격에서 벗어나는 태도이므로 지양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우선 주제의 방향은 논제에서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사고의 자립을 위한 방안’ 정도로 정리하면 된다. 이와 관련된 주제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주성과 독립을 위해서 사고의 독립이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서론 부분에서는 우리의 사고 과정이라든지 사고 방식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고의 자립성을 찾을 수 없는 상황 비판하는 정도에서 논의를 도입하면 될 것이다. 이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방향이 분명히 제시되면 글의 방향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본론 부분에서는 사고의 자립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면 된다. 먼저 본론의 처음 부분에서는 사고의 자립을 위한 교육적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사고의 자립과 관련된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개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특징들인데, 예를 들면 주입식 교육의 수업이 지닌 폐해를 생각해 그러한 점을 지양하고 비평적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 둘째 부분에서는 한국적 사고의 자립을 위한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정신이 요구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는 앞서 논의한 내용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사고의 독립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은 없다는 점을 논의의 전제로 하여 한국인에게 사고의 자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 “오라~이” 추억의 버스 안내양 돌아온다

    “오라~이” 추억의 버스 안내양 돌아온다

    “내리실 분 더 안 계세요. 오라∼이” “기사아저씨 빠꾸 빠꾸, 스톱….” ‘말죽거리잔혹사’ 등 영화를 통해서나 볼수 있었던 버스 차장(안내양)이 내년부터 충남 태안에서 부활한다. 태안군은 다음 달 중순부터 태안∼안흥간 농어촌버스에 안내양을 태우기로 하고 최근 종료된 정례회에서 차장 월급과 유니폼제작비 등으로 2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27일 밝혔다. 군은 1년간 이 노선에서 차장을 투입한 뒤 성과가 좋으면 관내 76개의 농어촌버스로 전면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에 뽑는 차장은 1명으로 100여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차장은 1970∼80년대의 고풍스러운(?)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군은 차장에게 계절마다 푸른색 등 색깔이 다른 모자와 상·하의 유니폼을 착용케 할 방침이다. 차장은 길이 25㎞의 이 노선을 하루 5차례 왕복하면서 손님들에게 출발과 정지신호를 육성으로 알리고 승하차하는 손님들을 돕는다. 차장이 버스요금을 받아 거슬러주는 모습은 기계가 대신해 볼 수 없다. 박상규 태안군 지역경제과장은 “대부분 노인과 부녀자인 농어촌 손님을 돕는 것 말고도 옛 정취를 살려 관광상품화하려는 뜻도 있다.”고 말했다. 차장은 1980년대 중반까지 버스요금을 받고 만원일 때 손님을 차 속으로 밀어넣는 등 운전수 보조역할을 하다 자가용 증가 등으로 버스회사가 적자를 내기 시작하자 인력감축 차원에서 완전히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다. 박 과장은 “안내양이 옛날 쓰던 말이 영어와 일본식 발음으로 뒤섞여 그대로 쓸지 순수 우리말로 바꿔 쓰게 할지 고심 중”이라면서 “차장이 농어촌버스회사들이 적자에서 벗어나는 계기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TV 웰빙프로는 간접광고판?

    웰빙. 순 우리말로 ‘참살이’라고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웰빙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았다. 의식주는 물론 문화생활 전반에 걸쳐 건강한 삶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웰빙이 일상 용어로 떠오른 이면에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정작 매스미디어, 특히 TV는 이 웰빙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TV방송은 웰빙과 관련된 여러 주제(음식, 의학·건강, 미용·뷰티, 여행·관광, 레저, 예술 등) 가운데 유독 음식에만 치우쳐 균형감을 잃고 있으며,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원장 유균)은 지난 10월31일부터 1주일 동안 지상파 3사 채널의 전체 프로그램에 포함된 웰빙 코너를 분석한 ‘지상파TV의 웰빙 프로그램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자료를 최근 발표됐다. 이 기간 동안 방송된 웰빙 코너들은 모두 90개에 달했다.SBS가 33건,KBS2가 23건,MBC가 18건,KBS1이 16건 등이었다. 대부분 교양프로그램의 고정 꼭지였다. 이 가운데 66건(73.3%)이 먹을거리에 집중됐다. 특히 MBC는 17건(94.4%)이 먹을거리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기현 책임연구원은 “음식은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분야지만, 웰빙 코너가 음식에 집중된 것은 방송사들이 상호경쟁을 의식한 결과”라면서 “자칫 소재 고갈은 물론 간접광고나 신변잡기 코너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러한 코너들의 성격은 맛집소개(30.3%)나 음식소개(51.5%)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특히 지난달 5일 방송된 MBC ‘찾아라 맛있는 TV’ 200회 특집에서는 무려 25곳 이상의 음식점을 소개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상세한 정보를 올려 건강한 외식문화 정보 전달이라기보다는 상업적 성격이 짙다고 지적됐다.지난달 3일 방송된 KBS2 ‘건강테크’도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 방송분과 관련된 업소의 연락처와 인터넷 주소까지 알려줘 간접광고의 의혹을 받을 소지가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책임연구원은 “웰빙 코너 가운데에는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55.6%에 달해 지나치게 오락화됨은 물론 정보의 신뢰성도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전문가를 통해 코너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송두율칼럼] 사회자정능력의 조건

    [송두율칼럼] 사회자정능력의 조건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결과를 둘러싼 국내의 시끄러운 논란은 이곳 독일에서도 각종 매체를 통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발표된 연구결과가 획기적인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그만큼 충격 또한 만만치 않다. 연구결과를 검증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연구결과의 진위를 가려내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들린다. 국내검증결과의 향방을 세계의 언론도 지금 호기심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어떻든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가 여러 가지로 훼손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전사회적인 충격 속에서도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국내 분위기가 있으며 그 가운데 사회자정능력(自淨能力)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극심한 충격과 혼란 속에서도 한국사회는 이제 비정상적인 상황을 곧 정상적인 상황으로 복원시킬 수 있는 내재적인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원래 자정능력이라는 단어는 (1)생물체를 둘러싼 환경이 어떤 조건 속에서 균형을 잃지만 곧 균형 잡힌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거나,(2)작은 충격이나 혼란으로 인하여 아예 다른 상태로 변질하거나,(3)충격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상태 속에 곧 안주하거나, 아니면 (4)충격이전보다도 훨씬 안정된 상태를 지닌다는, 대체로 보아 네 가지 현상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사회자정능력은 주로 이 마지막 의미를 주로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사회에도 생물계의 법칙이 관통한다는 사회과학적 전제는 상당히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이러한 이론적 전제는 여러 가지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칠레 출신의 신경생물학자 마투라나(H Maturana)와 바렐라(F Varela)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지만 꼭 집어 정의하라면 결코 쉽지 않는 ‘생명’을 ‘자기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생산하는 것(autopoiesis)’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유기체는 환경으로부터 자신에 필요한 물질만 받아들이고 필요치 않은 것들은 철저하게 무시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을 사회이론에 도입해서 가장 정교하게 전개시킨 독일의 사회학자 루만(N Luhmann·1927∼1997)은 사회체제도 살아있는 유기체의 자기생산처럼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 사회체제적인 자기생산의 기본단위가 바로 ‘정보(Kommunikation)’라고 이야기한다. 이 정보도 역시 유기체처럼 자기에게 꼭 필요한, 또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첨가할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대체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말이 말을 낳는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이 바로 이 복잡한 이론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말이 말을 낳고, 또 이 말이 또 다른 말을 낳는 식으로 전개되다 보면 애초에 발설한 사람의 주장과 의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결국 말싸움만 남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황도 바로 정보가 부단히 자기 생산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체제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보’로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루만의 주장도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사회’의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다. 이번 황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둘러싼 논란과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바로 한국적 정보사회의 핵심인 언론매체의 자기생산과정이 지니는 구조적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선악을 가르는 윤리적 문제나 진위를 가르는 과학적 검증이 충분히 작동할 수 있는 독립적인 코드도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손익만을 계산하는 경제문제나 권력의 문제와 연결된 코드로 무리하게 해석한 언론매체는 위험수준을 넘은 정보의 과도한 자기생산을 하였다. 그 결과는 전체 사회의 집단적 조울증(躁鬱症)이다. 이번 일은 사회의 진정한 생명력과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언론매체가 스스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사건이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녹색공간] 새만금 논쟁을 다시 생각함/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지난 3년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복잡해지기는 굉장히 복잡해졌다는 사실이다. 이 기간에 뭔가 훨씬 복잡해진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은데, 경제학은 시대에 대한 처방은 고사하고 도대체 지금이 위기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법대를 졸업한 행정법원의 판사인 내 친구는 경제성 평가와 기술 검토 자료 같은 걸 보면서 기술적인 문제를 검토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검사가 된 또 다른 친구를 생각하면서 이제 검찰이 DNA 핑거프린팅은 물론 줄기세포의 태라토마도 공부해야 한다고 혼자 웃기도 하였다. 세상이 복잡해지는 만큼 인문계와 이공계의 지식이 서로 분야를 넘나들면서 연결되는 소위 ‘학제적 접근’이 3년전만 해도 그냥 외국에서 하는 얘기 이상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이 질문이 바로 눈앞의 현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새만금은, 현재까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내년 3월이면 마지막 구간의 공사가 종료되어 생태학에서 보통은 ‘복원 불가능성’의 기준으로 삼는 ‘임계점’을 지나게 된다. 물론 파국점이라고 부르는 소위 ‘콜랩스’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그로부터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나는 시점이 될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그후부터 새만금은 ‘보존’의 대상에서 ‘복원’의 대상으로 그야말로 중요한 형질 변경이 발생하는 셈이다. 새만금 재판은 1심에서 자료만 23권에 1만쪽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인 데다가 여기에 감사원 감사 결과 수천 쪽에, 총리실 검토자료가 또 수천 쪽이다. 이 새만금 논쟁에 현재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실린 사이언스지와 경쟁 관계에 있는 네이처지의 논문이 올라 있고, 그 논문의 진위 여부가 사실은 새만금 논쟁의 결정적 단서 중의 하나이다. 그러데 우리나라가 국제화된 만큼 이제는 네이처나 사이언스의 논문이 검찰만이 아니라 법원에까지 정식 법정자료로 채택되는 현실을 드디어 보게 되는 셈이다. 네이처에 실린 코스탄자의 논문은 보통은 ‘ 랜드’라고 부르는 우리말의 갯벌에 해당하는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 반대하는 피고측 증거물의 핵심을 형성하는 것은 ‘안보미’라는, 경제학적으로는 약간은 이상한 개념이다. 말은 복잡하지만 새만금에서 앞으로 자라나게 될 쌀의 가격은 국가 안보를 지켜주는 특별한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가장 고급의 쌀값보다 3배만큼 사회적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 이 안보미 개념이다. 네이처의 논문과 안보미 개념이 새만금 재판의 경제성 평가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데, 국내 쌀시장을 지키기 위해 홍콩까지 간 한국 농민들이 지불한 ‘여행비용’과 그동안 그들이 가졌던 고통, 농림부에서 내세우는 ‘안보미’ 개념, 그리고 네이처에서 추정한 갯벌의 경제적 가치를 전부 다 고려한 법원의 판결문에 대해 사실 대단히 흥미 있게 지켜 보는 중이다. 이제 검찰이 줄기세포도 알아야 하고, 법원도 사이언스·네이처의 논문을 읽어야 할 만큼 국내적 논란도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한마디를 하고자 네이처지 논문을 읽어야 하는 현상황에서 나는 우리의 고등법원이 1만쪽에 달하는 각종 논문과 검토 자료를 잘 읽고 현명하게 판결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은 새로 바뀐 재판부가 어떻게 한달만에 1만쪽의 자료를 전부 검토하고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재판연기를 부탁하는데, 내 상식으로도 그게 맞을 것 같기는 하다. 판결 이후의 많은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생각하면, 최소한 네이처의 논문과 농림부의 안보미 계산 사이의 충돌 정도는 꼼꼼히 검토해야 할 텐데, 그것만으로도 한달이 길어보이지는 않는다. 더많은 타협과 양보 그리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 법원이 솔로몬처럼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네이처나 사이언스 급의 전문지식도 가질 것이 요구되는 세상이다. 복잡해지기는 정말 복잡해졌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 [책꽂이]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전진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980년대 이래 국제 역사학계의 주요한 흐름이자 방법론으로 결국 역사학의 전환을 이끌어낸 신문화사 연구로 이어져오고 있는 ‘기억문화’의 이론과 실제를 소개한다.2만 3000원.●우리말에 대한 예의(이진원 지음, 서해문집 펴냄)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우리말의 오용과 오류의 사례들을 바로잡고, 잘못된 말글살이에 대한 따끔한 비판과 함께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방안들을 제시한다.1만 1900원.●철학, 역사를 만나다(안광복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플라톤의 이상 국가와 ‘제자백가의 시대’로 불리던 춘추전국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과 마르크스 시대를 거쳐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에 이르기까지,2000여년에 걸친 철학의 주요 장면을 세계사와 함께 읽어나간다.9800원.●소리의 자본주의(요시미 야 지음, 송태욱 옮김, 이매진 펴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축음기, 전화, 라디오로 대표되는 음향미디어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다양한 집단, 계급, 젠더 사이의 다툼 속에서 살펴본다 . 1만 8000원.●우리는 지금 빙하기에 살고 있다(더그 맥두걸 지음, 조혜진 옮김, 말글빛냄 펴냄) 45억년에 달하는 지구역사에서 빙하기가 언제, 몇번이나 뒤덮었고, 지구의 생명과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고 멸종시켰는지, 빙하기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1만 7000원.●대교약졸-마치 서툰 것처럼 보이는 중국문화(박석 지음, 들녘 펴냄)‘‘도덕경’에 나오는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의 대교약졸의 관점에서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중국 문화사를 살펴보고, 현대 자본주의 문제점을 찾아 제시한다.2만 1000원.●인디고 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아람샘과 인디고 아이들 지음, 궁리 펴냄) 16년간 부산에서 독서토론 교실인 ‘아람샘 소행성 612호’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문화공간인 ‘인디고 아이들’과 ‘인디고 서점’을 운영해온 허아람씨와 아이들의 책 읽기 이야기를 담았다.1만 8000원.●전복적 스피노자(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이기웅 옮김, 그린비 펴냄) 과거 ‘범신론’에만 주목했던 스피노자 연구에서 벗어나 그의 인식론·존재론·정치철학 모두에 주목하는 ‘스피노자 르네상스’ 관점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현재의 문제로 끌어들인다.1만 4900원.●성경과 코란(오아힘 그닐카 지음, 오희천 옮김, 중심 펴냄) 모두 구약성서에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유사성과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서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1만 5000원.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24)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24)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men,both one year away from retirement,are working on an assembly line.One says to the other,“Last night I made love to my wife three times.” “Three times!” says his friend.“How did you do it?” “It was easy,” says the first man.“I made love to my wife,and then I rolled over and took a nap for ten minutes.I woke up,I made love to my wife again,then rolled over and took another nap for ten minutes.I woke up,I made love to my wife again,and then I went to sleep.I woke up feeling like a bull!” His friend says,“Well,that is fantastic! I’m going to have to give that a try.” So he goes home that night and goes to bed.He makes love to his wife,then rolls over and takes a nap for ten minutes.He wakes up,makes love to his wife again,then rolls over and takes another nap for ten minutes.He wakes up,makes love to his wife again for a third time,then rolls over,and falls asleep. He wakes up in the morning and he´s twenty minutes late for work.He throws on his clothes and runs down to the factory.When he gets to his station,the boss is standing there waiting for him.The man says,“Boss,I´ve been working for you twenty years,and I‘ve never been late before.You’ve got to forgive me these twenty minutes this one time!” The boss says,“What twenty minutes? Where were you Tuesday,where were you Wednesday …?” (Words and Phrases) one year away from retirement:정년을 1년 앞둔 assembly line:조립 라인 make love to∼:∼와 잠자리를 하다 roll over:(몸을)돌려 눕다 take a nap:선잠을 자다 wake up:깨다 go to sleep:잠자리에 들다 feel like a bull:황소처럼 불끈 솟는 기분을 느끼다 give that a try:그것을 시험해보다 for a third time:세 번째로 fall asleep:곯아떨어지다 throw on∼:∼을 급히 걸치다 (해석) 정년을 일년 앞둔 두 남자가 조립 라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말하길,“어젯밤 마누라랑 세 번 했어.” “세 번이나!”라고 친구가 말했습니다.“어떻게 그렇게 해?” “그야 쉽지”라고 먼저 사람이 말했습니다.“마누라랑 한 탕 하고 돌아누워 선잠을 십 분을 자. 일어나 마누라랑 다시 한 번 하곤 돌아누워 십 분을 또 자. 깨어나서 마누라랑 다시 한 번 더 하고 잠들지. 깨어나면 황소처럼 불끈 솟거든!”친구가 말했습니다.“아, 그거 환상적이네! 한 번 시도해 봐야겠는걸.” 그래서 그 남자는 그 날 밤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내와 한 탕 하고 돌아누워 십 분간 선잠을 잤습니다. 깨어나 다시 아내와 한 탕 더 하고 돌아누워 선잠을 다시 십 분간 잤습니다. 깨어나 아내와 세 번째로 한 번 더 하고 돌아누워 곯아떨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직장에 20분이 늦었습니다. 옷을 걸치고 공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역에 도착했을 때, 보스가 그곳에서 서서 그 남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사장님, 사장님을 위해 20년을 일했는데 이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 번 한 번만 20분 늦은 걸 용서해주십시오.”사장이 말했습니다,“무슨 20분을 말하는 거예요? 화요일에 어디 있었어요, 수요일에는…?” (해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습니다. 못된 친구와 어울리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한 남자가 부인과 세 차례나 연거푸 했다는 친구 말을 좇아 자기 부인과 세 번이나 한 것은 좋았는데, 그만 직장에 20분 늦었습니다. 사실은 20분이 늦은 것이 아니고, 처음 한 날과 두 번째 한 날은 아예 결근을 했습니다. 이에 사장이 무슨 일이 생겼는가 걱정이 돼서 이 남자의 집 근처에 와 본 것입니다. 나이를 잊고 정력을 발산하다가는 10분 선잠이 하룻밤이 되어버립니다. ■ Life Essay for Writing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 초등 영어 시장의 개척, 파닉스 교재의 도입, 아이들을 깨우는 전화 관리 등으로 분주하던 어느 날, 함께 근무하던 교육연구실의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교재를 만들고 회사를 창업했는데, 김 회장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의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과 치밀함을 아는 그는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는 많은 돈을 계약금으로 내밀었다. 당시 김 회장은 업계에 이미 이름 석자를 충분히 알렸지만 광주에서 자리잡기 위해 버는 돈은 모조리 사업에 재투자하던 시기라 아직 임대주택의 설움을 겪고 있던 중이었다(President Kim was still living in the second floor of a two-story rental house because he reinvested all the money he earned to settle himself in business in Kwangju,although he made a series of successes and thus became well-known in the business world at that time). 김 회장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동료가 고마웠다. 그는 계약을 체결하러 전주에 위치한 약속 장소로 나갔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으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동행한 아내가 도장을 가지고 광주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이, 남자의 앞길을 막아도, 이렇게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How dare she stand in her husband´s way?)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회장은 생각했다. 이혼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 절대문법17 자리매김학습 동사의 기본적인 역할 중에 한국인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보어다. 한국어에는 보어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동사에는 주어가 따르고 시제가 있다는 특성이 있다. 동사는 또한 목적어와 수식어, 그리고 보어와 함께 쓰일 수도 있다. 동사 turn 뒤의 white는 앞에 나온 주어의 상태나 모습을 설명한다. 나의 손이 변하는데, 어떤 상태로 변하는 가를 보충 설명해 주기 위해 사용된 보어다. 이처럼 동사는 보어를 가질 수 있다. 동사의 자리와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제시된 표의 빈칸을 채우시오. 정답:1.became (1)My son (2)과거 (4)a sheriff 2.looks (1)The thief (2)현재 (4)exhausted 3.ate (1)Fox (2)과거 (5)in the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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