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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도시와 인간(마크 키로워드 지음, 민유기 옮김, 책과 함께 펴냄) ‘중세부터 현대까지 서양도시문화사’. 1000년의 기간 고대 도시의 생성과 소멸, 성장과 팽창을 통해 사람사는 모습을 담았다. 뉴욕, 런던, 파리, 베네치아, 암스테르담, 런던, 맨체스터, 로마를 소개. 4만 8000원. ●엄마가 차려 주는 자연밥상(쓰루타 시즈카 지음, 손성애 옮김, 여성신문사 펴냄) 수필가이자 채식문화연구가인 저자가 계절에 따라 77가지의 제철 자연음식의 만드는 법을 담았다. 건강하고 편안한 움식을 보여 준다. 사진은 사진작가인 저자의 남편이 찍었다. 1만 1800원.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오주석 지음, 월간미술 펴냄) 평생을 보일듯 말듯한 옛 그림과 숨바꼭질하던 끝에 49살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난 저자의 글을 담은 유고집. 신윤복의 ‘월하정인도’를 비롯해 27점의 그림과 그 그림을 보는 법이 실려 있다. 1만 2000원. ●한국의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임현진 지음, 서울대 출판부 펴냄)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20년간 시도된 진보정당의 등장과 전개, 성패의 조건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서. 한겨레민주당, 민중당, 개혁민주당, 민주노동당를 사례분석했다. 1만 3000원. ●신자유주의 대안론(최태욱 엮음, 창비 펴냄)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한국 신자유주의정책의 현황, 문제점, 대안 등을 다각도로 조망했다. ‘이중과제론’‘87년체제론’과 더불어 창비담론총서의 하나로 나왔다. 각권 1만원. ●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엄민용 지음, 다산초당 펴냄) 한국사람이 왜 모국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고, 어려워하고 있는가를 해결하는 책. 저자는 일간지 교열기자 출신으로 파격적인 문체로 우리말의 이해를 도왔다. 1만 3000원. ●똑똑한 여자보다 매너좋은 여자(이수연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일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직장여성들은, 일은 못하지만 잘 지내는 남자직원을 잘 지켜 보길. 부서장이 기피하는 여직원은 능력보다 태도에 문제라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1만 2000원.
  • [우리말 여행] 표지

    표시나 특징으로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한다는 말이다. 또는 그 표시나 특징을 뜻한다. ‘공중전화 표지’ ‘화장실 표지는 눈에 띄게 해야 한다.’ 이처럼 쓰인다. 그런데 ‘찾기 쉽게 표식을 해 놓았다.’라고 쓰는 경우가 있다. ‘표지(標識)’의 ‘識’는 유식(有識)처럼 ‘아는 것’을 뜻할 때는 ‘식’으로 읽는다. ‘기록하거나 나타내다’의 뜻일 때는 ‘지’다.
  • “9월 도쿄서 한·일공동대축제 열 계획”

    │도쿄 박홍기특파원│권철현 주일 한국대사는 오는 9월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 동안 도쿄 히비야공원과 긴자에서 한·일공동대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권 대사는 이날 대사 취임 1주년을 맞아 가진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내년이 일본의 한반도 강점 100년이 되는 해인 만큼 한·일간 긴장관계를 사전에 완화하기 위한 취지”라면서 “민간 차원의 교류와 이해를 증진하는 장이 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축제의 효과적인 행사준비를 위해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쓰의 나리타 유타카 최고고문을 실행위원장으로 내정했다. 권 대사는 또 “재일교포들의 한국어 사용운동을 적극 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일교포 2세들이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익숙한 현실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을 중심으로 교포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한국어 쓰기를 적극 권장하기로 했다. 올해 초 열린 민단 신년회에서 정진 단장의 인사말 등이 모두 일본어로 이뤄진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이 적잖았다. 재일교포와 일본 주재원을 대상으로 일본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의 통장 갖기 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한국계 은행에 계좌를 개설함으로써 모국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단은 오는 21일 도쿄의 중앙본부에서 우리말 배우기 및 한국계 은행 통장 개설하기 결의대회를 갖는다. 권 대사는 “취임 이후 대일외교의 원칙으로 신뢰 외교, 예방 외교, 끈질긴 외교를 견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7월 중학교 사회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기술 문제, 최근의 지유샤(自由社)판 중학교 왜곡 역사교과서 문제 등으로 외교 원칙이 다소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7월 이후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한·일 관계가 안정되고 긴밀히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서로가 서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단계가 아닌가 한다.”고 평가했다. hkpark@seoul.co.kr
  • [우리말 여행] 사열

    조사하거나 검열하기 위해 하나씩 쭉 살펴본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 공항 등에서 많이 한다. 이때 군 의장대를 둘러보는 의식을 말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바뀐 것이 된다. 대통령이 사열을 한다고 해야 말이 된다. 사열의 주체는 대통령이다.
  • [우리말 여행] 비키다와 비끼다

    ‘비키다’는 ‘무엇을 피해 방향을 조금 바꾸다’는 의미다. 문장의 주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쓰인다. ‘그는 사람들을 비켜 가며 뛰었다.’ ‘비끼다’에는 ‘비스듬하게 놓이거나 늘어지다’는 뜻이 있다. ‘칼을 비껴 찬다’고 한다. ‘비껴가다’는 ‘비스듬히 스쳐 지나다’는 정도의 뜻이 된다. ‘태풍이 비껴가다.’ ‘공이 골대를 살짝 비껴갔다.’
  • 멕시코 이민사 104년만에 ‘애니깽’ 첫 국내 대학 진학

    멕시코 이민사 104년만에 ‘애니깽’ 첫 국내 대학 진학

    “가슴속 깊이 그려 왔던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돼 꿈만 같다.” ‘애니깽’(선인장의 일종)으로 불려온 멕시코 노동이민자의 후손이 멕시코 노동이민사 100여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 대학에 입학한다. 주인공은 마헬리 나(19·여)씨. 나씨는 내년 3월부터 인천대 무역학부에서 공부하게 됐다. 지금은 경희대 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나씨는 구한말에 돈을 벌기 위해 멕시코 선인장 농장으로 이민을 떠난 조선인 4세대다. 14일 나씨에 따르면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당시 나씨 성을 가진 증조부가 멕시코로 처음 건너 갔다.”고 말했다. 나씨가 고국에서 대학생이 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선교사 김무선(71)씨의 공이 컸다. 1977년 도미한 김씨는 1996년 우연히 애니깽 후손들의 열악한 사정을 듣고 현실을 확인하기 위해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건너갔다. 현재 멕시코에는 4만여명의 이민자 후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가 본 이민자 후손들의 생활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 비가 새는 움막에서 돼지 등 가축과 함께 생활하는가 하면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김씨는 “일제 강점기 때 끼니를 굶어 모은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애니깽의 후손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 눈물이 났다.”면서 “이들에게는 물질적 지원보다 교육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후손들의 부모들은 선인장 농장에서 일하다가 6년 전부터 농장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대부분 벽돌을 나르거나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김씨는 1999년 유카탄 현지에 ‘무지개학교’를 설립했다. 한인 27명을 모아 우리말과 글, 노래, 태권도 등 한국 문화를 가르쳤다. 김씨는 “마헬리 나는 전교생 중 학업성적도 가장 뛰어났고 의지도 강한 학생이었다.”면서 “우수한 학생들을 한국에서 교육시켜 그들이 다시 이민자 후손들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씨가 적합하다고 판단해 유학을 주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씨는 유카탄 반도의 중심도시인 메리다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인천시의 주선으로 인천대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학비와 생활비는 기업은행이 1년에 120 0만원씩 향후 5년 동안 지원해 주기로 했다. 2년 전 기업은행측의 멕시코 방문 때 김씨가 가이드를 맡았던 게 인연이 됐다고 한다. 나씨는 “공부를 마친 뒤 멕시코로 돌아가 한국의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핏줄임을 잊지 말고 가난에 시달리는 동포들에게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우리말 여행] 슬하

    그대로 풀면 ‘무릎(膝) 아래(下)’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부모의 무릎 아래를 말한다. 부모가 자식을 언제나 손으로 돌볼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슬하’에 ‘어버이나 조부모의 보살핌 아래’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주로 부모의 보호를 받는 테두리 안을 이른다. ‘부모 슬하를 떠났다.’ 부모의 곁이나 품 안의 의미도 있다. ‘슬하에 자식이 없다.’
  • [우리말 여행] 나아가다와 나가다

    ‘이제 사회로 나가게/나아가게 된다.’ 여기서는 ‘나아가게’보다 ‘나가게’가 더 적절해 보인다.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다’라는 ‘나가다’의 기본 의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나아가다’는 ‘앞으로 향해 가다’라는 뜻이 첫째 의미다. ‘나가다’에도 이와 비슷한 ‘앞쪽으로 움직이다’라는 뜻이 있으니 ‘그들 앞에 나아가다/나가다’에서는 어느 것도 잘 어울린다.
  • [우리말 여행] ‘-기에’와 ‘-길래’

    원인이나 근거를 나타내는 어미들이다. 그런데 국어사전들은 ‘-길래’는 ‘-기에’의 잘못이니 ‘-기에’를 쓰라고 권한다. 그래도 현실은 ‘길래’를 선호한다. 차이도 보인다. ‘-기에’가 문어적이라면 ‘-길래’는 구어적이다. ‘에게’가 문어에서, ‘한테’가 구어에서 주로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사전을 따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사전이 현실을 반영해야 할 문제다.
  • [우리말 여행] 먹거리

    한동안 국어사전에는 ‘먹을거리의 잘못’이라는 풀이가 달려 있었다. 지금은 ‘잘못’이라는 설명이 지워졌지만 여전히 표준어의 영역에 ‘먹거리’를 넣지는 않았다. 그러나 ‘먹거리’는 항상 ‘먹을거리’로 대체되지 않는다. ‘먹거리 문화/장터’를 ‘먹을거리 문화/장터’로 바꾸면 어색해진다. 국가가 표준어 목록을 계속 작성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 [우리말 여행] 기우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어디로 피해야 하지.’ 옛날 중국 기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늘 이런 걱정을 하고 다녔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근심을 하고 다니는 그가 한심스러워 보였다. 쓸데없고 터무니없는 걱정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기우’ 즉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憂)’이란 말이 생겼고,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이란 의미로 쓰이게 됐다.
  • [우리말 여행] 굴지

    손가락을 이용해 날짜나 수를 셀 때가 있다. 그때는 손가락(指)을 구부리게(屈) 된다. 그래서 ‘굴지’는 무엇을 셀 때 손가락을 꼽는다는 뜻을 갖게 됐다. 여기서 뜻이 더 확장돼 ‘여럿 가운데 손가락으로 꼽아 셀 만큼 뛰어남’이라는 의미도 생겨났다. 이런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굴지의 기업’ ‘굴지의 대학’처럼 주로 ‘굴지의’ 꼴로 쓰인다.
  • [우리말 여행]부정회귀

    본래 ‘길쌈’은 ‘질쌈’, ‘깃(羽)’은 ‘짓’, ‘키(舵)’는 ‘치’였다. 그런데 마치 ‘길(路)’을 ‘질’로, ‘기름’을 ‘지름’으로 발음하는 것처럼 ‘질쌈’ ‘짓’ ‘치’ 등이 잘못된 형태라고 생각했다. 바른 어형이라고 본 ‘길쌈’ ‘깃’ ‘키’로 바꾸게 됐다. 바르게 돼 있는 어형을 잘못 바꾼 셈이다. 이처럼 바른 어형을 잘못 고치는 일이 있다. 부정회귀(不正回歸)라 한다.
  • [우리말 여행] 구개음화

    ‘해돋이’는 [해도지], ‘굳이’는 [구지]로 발음된다. 잇몸소리인 ‘ㄷ’이 입천장소리인 ‘ㅈ’으로 바뀌는 것이다. 혀 앞쪽에서 발음되는 전설모음 ‘ㅣ’의 영향 때문이다. 입천장소리가 한자어로 구개음이니 구개음화라고 부른다. ‘굳히다’도 [구치다]로 발음돼 구개음화 현상이 나타난다. ‘ㄷ’과 ‘ㅎ’이 결합한 ‘ㅌ’이 구개음인 ‘ㅊ’으로 바뀌었다.
  • [우리말 여행] 낭패

    ‘낭(狼)’과 ‘패(狽)’는 가상의 동물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상상했다. 낭은 뒷다리가 없거나 아주 짧고, 패는 앞다리가 없거나 짧다. 낭은 용맹하나 꾀가 없고, 패는 꾀가 많으나 겁쟁이다. 둘은 걸을 때도 사냥할 때도 서로 의지해야 한다. 둘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낭패’는 일이 기대에 어긋나 딱하게 됐다는 의미를 지니게 됐다.
  • [우리말 여행] 에게와 에

    어떤 움직임이나 작용이 미치는 대상이 유정물일 때는 ‘에게’, 무정물일 때는 ‘에’가 붙는다. 유정물은 사람이나 동물 등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가리킨다. ‘호랑이에게 물을 주다.’ 무정물은 나무나 돌처럼 감각이 없는 물질이다. ‘화초에 물을 주다.’ 일반적으로 단체나 집단 등도 무정물로 본다. ‘미국에/회사에 요구했다.’
  • [우리말 여행] 뒤처지다와 뒤쳐지다

    ‘성적이 남들보다 뒤처진다.’ ‘그는 10㎞ 지점부터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떤 수준이나 대열에 끼지 못하고 뒤로 처지거나 남게 될 때 ‘뒤처지다’를 쓴다. ‘화투짝이 뒤쳐졌다.’ ‘바람에 현수막이 뒤쳐졌다.’ 이처럼 물건이 뒤집혀서 젖혀졌을 때는 ‘뒤쳐지다’이다. ‘뒤처지다’는 ‘뒤로 떨어지다’에, ‘뒤쳐지다’는 ‘뒤집히다’에 의미의 초점이 있다.
  • [우리말 여행]관형사 ‘첫’

    ‘첫 월급을 탔다.’ ‘첫 삽을 떴다.’ ‘첫’은 관형사다. 이처럼 관형사는 명사를 꾸민다. 뒤에 동사가 오면 어색하다. ‘그는 첫 갔다.(?)’ 마찬가지로 ‘첫 실시된 시험’, ‘첫 방문하는 그곳에서’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명사를 꾸며야 할 관형사가 동사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첫’ 대신 ‘처음’이 와야 자연스러워진다. ‘처음’은 부사적 성격을 지녔다.
  • [열린세상] ‘봉 상스’ 없는 미움은 이제 그만/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열린세상] ‘봉 상스’ 없는 미움은 이제 그만/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지난해 봄이었다. 나를 포함한 열명 남짓한 교수들이 세미나 건으로 아키바레쌀로 유명한 일본의 아키타현을 찾았다. 대절해 놓은 전세버스의 기사는 노인의 나라답게 일흔이 넘은 노인. 노기사는 버스가 설 때마다 날렵한 동작으로 먼저 내려 나무로 된 발 받침대를 출입문 앞에 살짝 놓았다. 지면과 출입문간의 높이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체류기간 동안 비가 올 경우 우산을 챙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말끝마다 ‘아리가토’하며 고개를 숙인다. 친절한 ‘일본인’ 노 기사에게 부담을 느끼는 쪽은 ‘한국인’ 우리들이었다. 사흘간 잘 달리던 버스는 막판에 고장이 났다. 우리들이 모찌가게에 들러 떠드는 동안 노기사는 공구를 들고 고장난 버스와 씨름하고 있었다. 반시간 정도 지났을까, 버스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고, 일행은 다시 차에 올랐다. 그러나 잠시 뒤 어떻게 알았는지 또 다른 버스가 뛰따라 왔고, 수리한 버스가 행여 다시 고장날지 모른다며 바꿔탈 것을 요구했다. 더욱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새 버스 출발 직전, 고장났던 버스의 기사가 차에 올랐다. 백발의 노인은 괘념치 말라는 우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구십도로 숙이며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빌기를 마친 그는 이어 자신의 지갑에서 꺼낸 1만엔짜리 지폐를 공손하게 전해주고 떠났다. 1만엔권 지폐가 남겨진 버스 안에는 일순간 숨막히는 정적이 감돌았다. 한국사람이 그렇듯이 일본사람들도 예를 든 노인기사처럼 존경할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또는 그럴 필요조차 없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지난 몇 주간 우리는 일본에 대해 따갑게 들었다. ‘봉중근 의사’란 말을 유행시킨 WBC 야구도 그렇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안도 미키가 맞붙은 세계 피겨선수권대회도 그렇다. ‘WBC 한(恨), 연아가 풀어야’ ‘일본선수 연습방해’라는 자극적인 신문 제목부터, TV를 볼 때마다 미운 감정을 드러내는 진행자의 중계에다 일본선수의 실수까지 즐거워하는 상황에서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이처럼 우리는 한·일간 경기가 열릴 때마다 대부분의 일본선수들을 지나치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해야만 이분법적 구도가 명확해지고 시청자들은 더욱 쾌감을 느끼며 카타르시스에 몰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 일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본을 우리의 잠재적인 적쯤으로 인식하는 민족주의적 감정만이 증폭되고 있지나 않을까 두렵다. 비록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스포츠 게임이긴 하지만 보다 객관적이고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는 없을까. 선입견만을 되풀이하거나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자 한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을 지나치게 과거의 잣대로만 평가하려고 한다. 도쿄의 롯폰기에서, 파리·뉴욕에서 한국학생들끼리 나누는 우리말을 듣게 되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에게 한가지 특징이 있는 듯하다. 그것은 무례하게 보일 정도로 당당하다는 것이다. WBC 허구연 해설자가 그랬다. “요즈음 젊은 선수들, 기성세대와 달리 일본에 대해 감정이나 콤플렉스 없습니다. 만나 보면 일본이 별거냐, 이길 수 있다.”라고 너무나 쉽게 얘기하더라고. ‘봉 상스(Bon sens)’가 없는 일본인들의 행태와 일본의 과거에 대한 분노는 지극히 정당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증오가 파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과거에 대해 부인하는 것은 그들의 불행이다. 어차피 그들이 우리의 자존심과 분노를 풀어줄 수 없을진대, 우리가 이제는 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행복해진다. 벌거벗은 감정의 알몸에는 옷을 입혀 가려주는 것이 좋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 맞춰 흐르는 김연아의 눈물쯤에서 기성세대의 일본 콤플렉스는 이제 끝내면 어떨까. 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 [우리말 여행] 질과 짓

    ‘가위질, 걸레질, 망치질’은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행위다. 단 한 번에 끝나는 동작들이 아니다. 이에 비해 ‘손짓, 발짓, 눈짓’은 한 번 만에 끝날 수 있다. ‘머리 손질’이라고 하지 ‘머리 손짓’이라고 하지 않는다. 머리는 여러 번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느질’도 마찬가지다. ‘질’은 반복성을, ‘짓’은 일회성을 나타낸다는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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