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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위 놀이공원

    한가위 놀이공원

    ■ 롯데월드서 ‘옥토버 페스티벌’ 즐겨볼까 문영진(36·보다스튜디오대표)씨는 이번 추석 고향인 충남 당진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롯데월드에서 달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형님 강진(40·충북수산 대표)씨 내외, 조카들과 함께 한가위 기분도 내고 좋아하는 놀이기구도 타면서. 서울 송파구 형님댁 부근의 있는 롯데월드에서는 맥주를 무제한 먹을 수 있는 ‘옥토버 페스티벌’이 한창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테마파크에서 놀고 어른들은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공짜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이야기도 나누는 일석이조 추석즐기기. ●입장료는 이렇게 문씨 가족은 아이들은 우대쿠폰으로 1만9500원에 자유이용권을, 어른들은 자유이용권과 맥주 무제한 제공, 비어 기념컵이 포함된 3만원짜리 옥토버 패키지 티켓을 샀다. 다만 아내와 형수는 일단 무료입장 신용카드로 입장한 다음 9000원짜리 비어티켓(맥주 무제한 제공 및 컵)을 사서 이용하기로 했다. ●짜릿한 한가위 “서방님 아무리 급해도 설겆이는 끝내야죠.”“형수님 제가 갔다와서 할 테니 서두르세요. 좀 늦으면 사람이 많아 제대로 못 놀아요. 빨리 가세요.” 문씨는 부엌에 있는 형수와 아내를 채근해 롯데월드로 직행했다. “승업(성동초 5년)이가 제일 오빠니까 동생들 잘 챙겨. 알았지. 그리고 12시에 저기 보이는 시계탑 앞으로 오는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작은 아빠에게 전화해.”라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형수는 좀 불안해했지만,“다들 초등학생인데 괜찮아요.”라며 안심시키고 일단 자이로드롭으로 향했다. 꼭 한번 타보리라 마음 먹었던 놀이기구다. “애리아빠 난 못 타겠어.”하며 자이로드롭의 높이에 기가 눌린 아내가 말한다. 그래서 형과 함께 올랐다. ‘끼릭 끼릭’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간다. 손을 흔드는 형수와 아내가 콩알만해질 때쯤 아래로 떨어진다.‘우∼와’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렇게 오전에는 아트란티스, 자이로스윙 등 아이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데 시간을 보냈다. 12시에 아이들과 만나, 어드벤처 쥬라기 광장에서 하는 새끼꼬기와 송편만들기 대회에 참가했다.“아빠가 어렸을 때 많이 해봤거든. 응원 열심히 해.”라며 용감하게 새끼꼬기에 참가하는 형.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아빠 이겨라, 큰아빠 이겨라.”“큰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큰딸 애리(구지초 4년)의 지휘에 따라 합창한 우리 가족이 단연 돋보였다. 비록 순위에는 못 들었지만 열심히 소리를 지른 덕에 돌아온 것은 응원상. 곰돌이 인형은 막내인 예림(구지초1년)의 몫으로 돌아갔다.“새끼 꼬는 모습은 우리 아빠가 최고였어요.” 오후 2시 벌써 사람들이 월드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퍼레이드카와 무희들을 앞세워 등장하는 월드카니발 퍼레이드는 롯데월드의 자랑.50억원을 투자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마침내 옥토버텐트로 갔다. 입장할 때 나누어준 컵을 내밀자 가득 맥주를 따라준다.“다 드시면 또 오세요. 무제한 리필입니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펼쳐지는 손인형극에 빠져있다. 오후 5시 옥토버 페스트 퍼레이드,5시30분 저먼밴드쇼 등도 놓치면 후회한다. 아이들은 불꽃놀이와 레이저쇼를 보러 가고 어른들은 석촌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레이크뷰에서 ‘공짜’맥주를 즐겼다. 신나고 재미있는 한가위다.(02)411-2000,www.lotteworld.com ■ 에버랜드서 핼러윈축제 빠져볼까 우리나라 테마파크중에서 규모나 시설면에서 으뜸, 에버랜드는 동·식물원과 놀이기구, 각종 이벤트로 매일 잔치가 열린다. 이번 추석연휴가 너무 짧아 박찬규(37·청신학원원장)씨는 고향 전남 여수에 내려갈 엄두도 못 냈다. 그래서 부모님 모시고, 여동생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로 나들이를 갔다. ●입장료 다 내면 바보 박씨는 에버랜드 홈페이지에서 할인정보를 찾았다. 신용카드 중에서 50% 할인 되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봤다.‘나는 삼성, 아내는 비씨카드로 할인을 받으면 되겠군. 수민(7)이는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하면 1만 8000원….’ ●호박의 나라 가을 축제인 핼러윈파티가 한창인 에버랜드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설레게 하는 볼거리가 풍부하다.“아빠 저 호박 좀 봐.”하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2.5m의 호박. 정말 크다. 호박 입으로 사람이 지나다닌다. 카메라는 이럴 때 쓰는 것. 군데군데 쌓아놓은 앙증맞은 호박들이 무섭기보다는 너무 귀엽다. 호박마차, 생호박 50개로 만든 생호박화단…. 그야말로 에버랜드는 호박천지다. 낮 12시30분 에버랜드에서 야심차게 만들었다는 ‘해피핼러윈파티’퍼레이드가 시작한다. 신나는 노래를 시작으로 종이꽃가루를 하늘 높이 날리며 분위기를 돋운다.“아빠, 호박아저씨 좀 봐. 나에게 손을 흔들어.”라는 수민. 아직 제대로 말 못하는 조카 민서(2)까지 아이들이 홀딱 빠졌다. 마치 동화 속에 온 기분이다. 천천히 걸어 물개공연장 옆에서 오후 1시30분에 하는 ‘판타스틱 스윙’ 공연을 보러 갔다. 제목 그대로 판타스틱하다. 저기 산꼭대기에서 날아오는 호루조, 뿔닭 등이 신기하게 수 백미터를 날아 조련사 옆에 내려앉는다.“참 멋지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높다. 갑자기 바람이 부니 거의 뒤집어지듯 떨어지는 녀석, 머리부터 떨어지는 녀석. 뒤뚱뒤뚱거리며 빠르게 우리로 돌아가는 호루조를 보면서 공연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오후 2시의 매직퍼레이드를 본 뒤 숨가쁘게 걸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애니멀원더월드로 갔다. 오후 2시 30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연극이 있다. 어렵게 자리를 잡았다. 골프치는 침팬지, 노래하는 앵무새, 얼룩말, 사자까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동물공연이다. “나보다 골프실력이 낫네.”오랜만에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 같다. 수민이는 제기차기, 팽이치기, 투호, 윷놀이, 굴렁쇠 등 5개의 전통 민속놀이를 한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한가위 릴레이 민속놀이’가 펼쳐지는 곳에 관심이 있는 듯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각각의 종목을 끝낸 후 스탬프를 찍는 것도 잊지 말 것.5개 종목을 모두 마치면 ‘에버랜드 해피 핼러윈 머그컵’도 받을 수 있다. 무료로 가르쳐 주는 짚신 공예와 상모 돌리기도 한번 들러볼 만하다. 포시즌가든을 가득 메운 국화를 보러 가자.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쿠션맘’‘실버스탠드’ 등 28종 11만 송이가 보는 이의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어둠이 내린 에버랜드는 더욱 아름답다. 조명발에 더욱 아름다운 국화, 앙증맞은 호박조명, 노래와 함께 춤추는 분수 등 그야말로 볼거리로 가득하다. 밤에 꼭 봐야 할 것이 문라이트 퍼레이드와 올림푸스 팬터지. 저녁 8시30분. 수백만 개의 전구로 치장한 퍼레이드카와 벌 나비모양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그야말로 황홀함 그 자체이다. (031)320-5000,www.everland.com. ■ 곳곳에 축제가 휘영청 과천 서울랜드에서는 한가위 축제인 ‘우리가락 우리놀이’가 17∼19일 열린다. 정겨운 사물놀이 퍼레이드가 추석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가운데 18일 낮 12시에는 선착순 50가족이 참여하는 허수아비 만들기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또 매일 오후 1시부터 세계의 광장에서는 밤, 사과, 배 등 오곡백과와 농수산물 상품권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입장객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행사도 열린다.(02)504-0011,www.seoulland.co.kr 한국민속촌에는 민속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18일 추석 당일에는 초청공연으로 ‘한가위 맞이 큰 굿 한마당’이 펼쳐진다. 가을 추수로 인해 곳간 가득히 쌓여 있는 곡식들을 보며 조상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다. 길굿, 호방진굿 등 판굿과 상쇠놀음, 소고놀음, 장고놀음 등 개인기예공연이 조화를 이루는 신명나는 행사다. 한가위의 흥겨움을 만끽할 수 있다.(031)288-0000,www.koreanfolk.co.kr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대형 수족관에도 한가위 보름달이 떴다. 추석 연휴 기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다이버들의 특별 다이빙 쇼가 하루에 세 차례 펼쳐진다. 거북, 상어 등과 함께 물속에서도 한가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쇼다. 또한 19일까지 홈페이지에서 ‘달’과 닮은 ‘달 해파리’를 클릭하면 레고세트, 책 등 다양한 상품도 나눠준다.(02)6002-6200,www,coexaqua.co.kr 한강유람선 운영회사인 ㈜한리버랜드는 추석 당일인 18일 여의도선착장(20:40)과 양화선착장(20:10) 및 난지선착장(20:00)에서 출항하는 ‘퓨전국악 유람선’ 선상 공연을 한다. 우리악기와 양악기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가락을 들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을 수 있다. 잠실선착장(20:40)과 뚝섬선착장(20:30)에서는 ‘민속놀이 체험 유람선’도 출항한다.(02)3271-6900,www.hanriverland.co.kr. 강원도 홍천의 비발디파크는 추석 연휴 동안 스키장 메인센터 광장에서 윷놀이와 제기차기, 굴렁쇠 놀이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민속놀이 마당을 마련한다. 설악콘도는 작년에 큰 호응을 얻었던 제기차기 대회를 17,18일 이틀 동안 개최한다. 당일 현장 접수를 받은 참가자는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본관 앞 분수대에서 기량을 겨루며 우승자에게는 아쿠아월드 이용권 등 푸짐한 경품을 제공한다.(033)434-8311.
  • 韓·美 “北 경수로 불가” 재확인

    |베이징 김상연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우리나라와 미국은 북한의 경수로 보유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모은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날 휴회 37일 만에 재개된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경수로 제공 요구를 끝내 굽히지 않을 경우 대립이 심화하면서 심각한 난항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북·미 양측은 14일 오후 첫 양자회담을 갖고 현안 절충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져, 회담의 성패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주목된다.2단계 회담 첫날인 이날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에게 “회담 합의문에 ‘경수로’라는 문구를 넣는 일은 결코 안 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면서 “우리로서도 신포 경수로 공사 재개나 새로운 경수로 건설 등의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 주장에 대해서도 “우선 모든 핵무기 및 핵 관련 프로그램을 말끔히 포기한 다음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하는 등의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참가국 대표들은 이날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2단계 회담 첫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 1단계 회담에서 중국이 제시한 ‘4차 초안’을 가급적 최소한으로 수정해서 최종 (합의)문서를 채택하자.”는 데 공감대를 표시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과 미국은 4차초안 1조 2항의 ‘북핵 폐기 범위 및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는 평화적 핵 활동은 북한의 정당한 권리로서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는 모든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고 맞섰다.특히 힐 대표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그런 전제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전체회의에 앞서 한·중, 미·중, 일·중간 양자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렸으나, 북·미간 양자회담은 열리지 않았다.carlos@seoul.co.kr▶관련기사 4면
  • [열린세상] 한·중 미래, 진지한 성찰 있어야/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주중대사

    최근 들어 중국과 관련된 기사들이 부쩍 많아졌다. 우선 사상 최초의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기동훈련이 그렇다. 양국의 육·해·공군 1만여명의 병력이 참가한 이 훈련은 지난 17일 극동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연합기동군이 25일에 중국의 산둥반도에 상륙함으로써 상황이 종료됐다. 양국의 해군 함정들이 한반도의 동쪽을 지나 제주도 남쪽을 우회하여 서해까지 갔다. 마치 한반도를 포위해서 공략하는 훈련이라는 인상마저 준다.‘2005 평화사명’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가운데 끼어있는 우리로서는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또한 중국국영석유회사가 약 42억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해서 카자흐스탄 북서지역의 유전 개발권을 사들인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캘리포니아 최대의 석유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중국해양석유회사가 185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제시했던 것이 불과 한달 전의 일이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서부의 카스피해 국경지대에 이미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80억달러를 투자해서 유전을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중국이 에너지자원 확보에 국운을 걸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간의 에너지 경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그만큼 중국 관련 기사들은 우리의 지면을 계속 채울 것이고 중국문제는 우리의 화두에서 계속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지난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한 지 13년이 된 날이었다. 이날 한국 언론들은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흔한 특집기사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정부도 별 말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 입장이 고민이 되어 그랬을까? 광복 60주년의 8·15행사와 같은 큼직한 뉴스들에 밀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수교 기념일이라 해서 더이상 호들갑을 떨지 않을 만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성숙해졌기 때문일까? 정말이지 우리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중국에 대한 태도가 세련되지 못했다. 변덕스러웠다. 우리에게 2만달러 소득의 꿈을 달성시켜 줄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 했다가는 금방 우리 제조업의 공동화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로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미국보다 더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반자라 했다가는 얼마 후에는 통일을 방해하고 나아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갖고 이를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추악하고 위험한 이웃으로 매도하기도 했었다. 이제 이런 일은 고쳐져야 한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한 한·중관계는 진전하기 어렵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주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 중국이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얘기는 이제 진부한 주장이 되고 말았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중국이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금년에 양국간의 교역이 10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측 통계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 교역량이 524억달러가 넘었다. 양국을 오가는 사람들도 하루에 만명이 넘는다. 한해에 300만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양적 차원을 넘어 중국이 과연 미래의 한국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되기를 우리가 바라는지에 대한 보다 균형잡힌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양자관계는 물론 다자적·다원적 그리고 미래지향적 맥락에서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에서 안보, 정치, 경제, 사회적 협력공동체를 모색한다는 큰 구도 속에 양자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그리고 중국이 해야 할 일들을 논의해야 한다. 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주중대사
  • [일본을 다시본다] (18) 일본인이 그리는 일본의 미래

    [일본을 다시본다] (18) 일본인이 그리는 일본의 미래

    |도쿄 특별취재팀|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일본인들이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이대로 가다간 일본은 안된다.”고 하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래에의 비관은 엘리트층일수록 더 심하다. 미국의 케네디스쿨에서 유학 중인 아키(42·전 중소기업 이사)는 “미국에서 보면 영락없이 일본은 미국의 여자친구다. 남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한다. 이렇게 해도 정말 괜찮은지 걱정이 든다.”고 꼬집는다. 그의 지적은 일본의 종속적인 대미관계를 비판한 것이지만, 외교를 비롯해 일본의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2류국가로의 추락은 시간문제라는 사고를 갖고 있는 일본인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을 맞는 올 가을쯤 싱크탱크를 출범시킨다. 웬만한 대기업, 은행에 하나쯤 있는 게 싱크탱크인데 뭐 대단하냐고 하지만 관료집단에 정책을 의존해 온 일본 정치 풍토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시도이다. 경쟁이라도 하듯 제1야당 민주당도 비슷한 시기에 싱크탱크를 띄운다. 입법이나 정치활동에 자기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것이 정당 본래의 임무인데도, 패전후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 정치는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의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관료의존이 심각했다는 진단은 일본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다. 관료의 정보와 정책에 목을 매는 한심한 처지를 호소하는 일본 정치인의 자조인 셈이다. 스즈키 다카히로는 “가스미가세키(霞が關·중앙관청가)가 최대의 적”이라고 말한다. 스즈키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의 특명을 받고 지난해부터 싱크탱크 출범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오사카대학 교수 출신의 그는 도쿄재단을 만든 수완을 인정받은 일본의 싱크탱크 1인자이기도 하다. “정치가 행정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는 그는 정당과 싱크탱크, 행정이 합체화되어 있는 미국이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행정과 민간,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 수 없는 일본 시스템을 이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그의 소망이다. 차기내각의 재무상으로 꼽히는 시오자키 야스히사 의원도 자민당 싱크탱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일본을 이렇게 진단한다.“자본주의라고 하면서도 관료통제의 사회주의 경제를 해왔다.” 미국 유학파(하버드대학)인 그가 싱크탱크에 거는 기대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10∼20년 뒤의 동아시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큰 그림이 없다면 곤란하다.”면서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라든가, 일본 내 미군기지의 재편 같은 문제들은 미래의 밑그림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핵무장에는 동의하진 않지만, 헌법 개정에는 찬성한다.70년대와 같은 고도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돈·물건이 어떤 장애없이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믿는다. 또한 유엔에 내는 분담금이 가맹국 중 2위인 일본이 국제정치에서의 영향력은 30위라는 불균형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일본의 추락을 걱정하기는 40대의 소장파인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 의원(자민당)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선진국 중 가장 하위로 떨어지고, 중국이나 인도에도 추월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그는 강한 경제의 재구축이라는 기대를 미래 일본에 걸고 있다. 민주당에서 브레인으로 꼽히는 마쓰다 고지 의원(참의원)의 진단은 보다 가혹하다. 그는 “일본이란 나라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재정악화, 소자화(少子化)·고령화, 교육, 역사의 순으로 ‘위기의 일본’이 타개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일본이 떠안고 있는 780조엔의 국채 및 지방채는 경기악화가 지속될 경우, 하이퍼 인플레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외교방식과 역사인식에도 통렬한 일침을 놓는다.“미국에는 3분의2 정도를, 나머지는 한국이나 아세안과 손잡아야 하는데, 고이즈미는 양다리를 모두 미국에만 걸치고 있어 너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고이즈미는 역사인식 문제만 나오면 이상한 발언을 하는데, 개인적인 신조와 일국의 총리된 입장은 달라야 한다.”고 꼬집는다.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돼 지난 8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함에 따라 9월11일 치러질 총선은 패전 60년 이후 일본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가늠자이다. 색깔이 비슷한 자민·민주당의 정권교체의 가능성보다는 전쟁을 모르는 전후 세대, 특히 30∼40대의 주류화 여부는 큰 관심거리다. 청년시절 80년대 거품경제의 단맛과 90년대 장기불황의 쓴맛을 두루 경험한 그들이 일본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는다면 그들 선배가 이룩한 ‘재팬 넘버1’의 신화를 어떻게 재창조하려 들지가 최대 관전포인트이다. ■외무성 출신 하라다 다케오 |도쿄 특별취재팀| 지난 3월 외무성에서 잘 나가던 젊은 관료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1971년생, 도쿄대 법대 출신. 고시출신인 그는 출세가 보장되는 코스인 북한반장을 끝으로 관직을 접는다. 대북 외교의 최일선을 떠나 민간인이 된 그는 ‘북한 외교의 진실’이란 책을 펴내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책의 저자 하라다 다케오는 “동아시아가 ‘세련된 제국주의’의 격전장이 되고 있으나 일본은 그런 데 전혀 눈치조차 못채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련된 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정의는 이렇다.100년 전에는 군대를 보내 상대를 제압해 이익을 취했다면, 지금의 제국주의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세련된 방법으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북핵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냉전구조가 무너진 뒤 동아시아, 북동아시아가 같은 큰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겉으로는 북핵문제를 떠들고 있으나 미국은 부(富)가 어디에 있는지 눈을 돌려 군사·외교·문화 정책을 전개하고 있으나 일본만 뒤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세련된 제국주의를 인식하고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다른 나라의 기업에 빼앗겨서 일본은 점차 하락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따라서 일본은 새롭게 부(富)를 챙기기 위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논리는 그의 책에서 북한의 희소광물에 주목해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는 “북한은 어디까지나 ‘사례연구’일 뿐”이라고 하지만 ‘세련된 제국주의’에 입각한 일본의 한반도 경제침략론으로 읽히는 그의 논리전개는 당돌하고, 우리로선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고도경제성장의 단물을 누린 70년대생인 그는 일본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옛 세대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좋았다. 단독주택에 살고 아이 낳고, 그런 꿈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수한 사람은 해외로 나가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가 안 좋아지고 정치의 수준도 떨어진다.‘내일 뭘 하지.’라는 그런 논의밖에 하지 않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그런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 같은 70년대생들이 일본을 바꿀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다.‘70년대생의 힘’, 그 실체는 있는가.“절대적으로 사람 숫자가 많다. 노동자도 많고, 시장에서 볼 때 소비자도 많다.”일본의 전후를 일궜던 베이붐세대(단카이세대)에 이은 제2의 베이붐 세대가 일본의 재약진을 이루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일본의 향후 10년은 어떤 모습일지를 묻자 그는 또 ‘세련된 제국주의’를 꺼낸다.“뺏을까 뺏길까 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는 뺏는 주체였으나,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발상의 전환, 대담한 정책 즉 외교, 교육문제에 눈을 돌려야 하며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지금 방향전환, 그 분기점에 와 있다.” marry04@seoul.co.kr ■취재 후기 2020년의 세계정세를 전망한 ‘지구의 미래를 그린다’는 지난 1월의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 중국의 국민총생산(GNP)이 일본을 웃돌고 “21세기는 중국·인도가 이끄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중국의 위협을 경고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노화하는 대국’으로 정의,“중국에 대항하느냐, 영합하느냐의 선택에 몰릴 것”이라며 일본의 분발을 우회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3개월 뒤, 일본 정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는 2030년의 미래상을 담은 ‘일본 21세기 비전’을 발표한다. 소자(少子)·고령화가 진행되어도 구조개혁에 힘쓰면 몇살이 되더라도 일이나 사회에 참가하는 ‘건강수명 80세 시대’의 실현할 수 있다는 낙관적 목표를 설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대조류의 변화에 둔감한 채 있으면 되돌릴 수 없는 사태에 이른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미지근한 물이 덥혀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러 비극을 맞게 된다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20년쯤 뒤 일본의 자화상이다. 일본에서 만난 차세대 정치인, 교수, 언론인들, 그들의 상당수는 지금의 일본에 답답해 하는 듯 보였다. 패전 이후 일궈온 제2의 경제대국, 그러나 세계에서 존경받지 못하고 배척받는 나라.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은 이미 사죄했으니 더 거론하지 말라는 신경질적인 반응. 공룡이 되어가는 중국의 압박과 유일한 동맹국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그들은 패전 직후 전쟁 포기를 명문화한 헌법을 개정하는데서 질식할 듯한 일본의 상황을 돌파하는 열쇠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헌법을 지키겠다는 좌파세력이 몰락한 토양에서 이윽고 시동이 걸린 개헌론. 개헌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일본호의 향후 10년간은 우리가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엄중한 압력이 아닐 수 없다. marry04@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marry04@seoul.co.kr
  • [사설] 치솟는 기름값 비상대책 어디 갔나

    국제유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배럴당 65달러, 중동산 두바이유는 56달러를 넘었다. 우리나라가 들여오는 원유의 80%는 중동산이어서 도입가에 다소 여유가 있다지만 이마저도 연초보다는 가격이 40%나 더 올랐다. 이 정도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경제 전반에 치명적이다. 그런데도 기업들만 허리띠를 졸라맬 뿐 정부의 대책은 실종 상태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대형 건물이나 일반 소비자들의 불감증도 심각하다. 물론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는 유가에 우리가 대응할 수단은 제한적이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선 소비절약이나 가격정책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안이해 보인다. 승용차 제한운행, 냉난방·조명 제한 등 강제적 에너지 절약대책이 국민의 불편과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적극 시행되지 않는 점은 지금의 고유가 상황을 너무 가볍게 판단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유류세의 인하 문제도 조세수입 감소와 석유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이어서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세금을 낮춤으로써 유가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적극 알리고 자발적 소비억제를 유도하는 적극성이 아쉽다. 백화점과 은행 등 에너지 다소비 업체들도 말로는 실내 냉방온도를 높여 에너지 10% 절약을 외치면서 제대로 실천하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고유가에도 유류소비가 오히려 늘고 있는 현상은 국민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집집마다 안 쓰는 전기 플러그만 뽑아도 연간 원전 1기를 세우는 셈이라고 한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수동적으로 따를 게 아니라, 범 국민적 에너지 절약 동참과 작은 실천이 모여야 고유가 파고를 넘을 수 있다.
  • [씨줄날줄] 대통령의 휴가/이목희 논설위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크로포드목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기간은 무려 33일. 우리로서는 상상 못할 일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해마다 이집트,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쾌적한 휴식을 즐긴다. 작년에는 바베이도스에 위치한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호화별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모리셔스, 마요르카섬 등 유명휴양지를 찾곤 한다. 국가지도자가 휴가를 가도 국정이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야 선진국이다. 우리도 대통령이 한달간 청와대를 비운다고 국정이 파탄날 일은 없다고 본다. 민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휴식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 뿐이다. 노태우 정권 이전에는 대통령이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있었다. 안가(安家)에서 비밀스러운 술잔치가 가능했다. 눈치 안 보고 골프를 쳐도 됐다. 청와대를 수도원(修道院)처럼 만든 이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안가를 부수고, 공직자 골프금지령을 내렸다. 당시 김광일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수도자적 생활이 오히려 합리적 판단을 저해한다는 점을 느꼈다. 별장을 빌려 여흥자리를 시도했으나 YS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뒤를 이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모범생의 전형이다. 휴가지에서도 두문불출, 독서와 정국구상에 전념했다.YS·DJ시절, 언론에 빠지지 않았던 제목이 ‘청남대 휴가구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젊음에도 불구, 전임자가 만든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휴가보내기’를 해봤다. 창덕궁산책, 인형극 관람 등이다. 올해는 강원도에서 사흘을 보낸 뒤 지난 2일 밤 청와대로 돌아왔다. 공식휴가는 주말까지다. 청와대 관저에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참모들을 불러 국정을 논의하거나 밤늦게까지 인터넷 서핑을 하는 수밖에 없다. 본인에게 휴식이 아니며, 비서실과 내각이 마음편히 휴가를 보내기 어렵다. 국민정서가 따라주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정치스캔들이 연발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마음껏 쉬어라.”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형 대통령 휴식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테니스, 수영 등 운동이나 도박성 없는 게임이 좋을 듯싶다. 관저 앞에 텃밭을 가꾸면서 땀을 흘리는 방안도 괜찮아 보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경북 문경 대야산

    [조용섭의 산으路] 경북 문경 대야산

    눈부신 흰 암반을 따라 흐르는 물길, 잠시 제 몸을 바위에 맡겨 떨어뜨린다. 물은 푸른 하늘도, 진록의 숲도 닮지 않은 옥빛 소(沼)를 이룬다. 물길은 산길옆 계곡을 따라 순하디순한 모습으로 편안하게 이어진다. 마음만 동하면 그대로 첨벙하고 들어가는 계곡이 경북 문경의 대야산이다. 한여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불볕더위에 몸을 달구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서는 길에 마치 담금질을 하듯 계곡에 몸을 담근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용추계곡에서의 호사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가르며 백두대간의 허리를 잇는 대야산은 산길 들머리가 유난히 아름답다. 산길은 계곡을 그림자인 양 따라가다 능선의 멋진 암봉들이 조화를 이룬다. 주위 조망 또한 빼어난 곳이다.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지만 등산로나 입장료 등과 관련하여 관리공단의 직접적인 통제는 받지 않는다. 산길은 벌바위 마을에서 시작하여 용추→월영대→피아골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밀재→월영대→벌바위로 되돌아 오는 코스로 잡았다. 대야산 주차장 상가 오른쪽의 나무계단을 넘어가면 용추계곡 들머리가 나온다. 민박집들을 지나 계곡을 낀 싱그러운 숲길을 15분여 진행하면 거대한 암반 위에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용추폭포가 나온다. 대하사극 ‘왕건’에서 왕건이 도선선사로부터 도선비기를 받는 곳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사실, 왕건의 라이벌 견훤의 고향이 대야산을 품고 있는 가은읍이란 게 흥미롭다. 거대하고 평평한 암반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월영대까지는 용추에서 20여분 소요된다. 여기에서 왼쪽 밀재 방향과 오른쪽의 피아골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어느 쪽이나 정상으로 이어지나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피아골길을 오름길로 택했다. 급경사 지대에는 고정로프를 깔아놓아 오르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몰릴 땐 교행이 힘들어 상당히 지체된다. 한가지, 등산로를 벗어나면 낙석의 위험이 크니 주의를 요한다. 식수는 미리 준비하는 게 좋으나, 계곡 상단부 왼쪽 가파른 바위지대에도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른다. 급사면을 올라 능선에 닿으면 이내 정상이다. 정상 주위의 암봉들은 하나같이 수려한 모습으로 범상치가 않다. 오른쪽(동쪽)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길과 왼쪽(진행방향) 밀재로 이어지는 산길이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동북쪽의 거대한 바위봉우리로 빛나는 산이 역시 백두대간상의 봉우리인 희양산이다. 정상 아래 내려서는 바위 구간은 운행에 다소 주의를 요하나 역시 크게 어려운 곳은 없다. 능선을 내려오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거대한 바위지대와 코끼리바위를 지나서 사거리인 밀재에 닿는다. 오른쪽은 괴산, 정면은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월영대는 왼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숲길이 이어지며 사기굴, 떡바위 이정표를 지나면 이내 월영대를 만나게 된다. 용추계곡을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물론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은 어느새 계곡에 들어갔다 나왔을 일이고…. 중부고속도→증평IC→36번,34번 국도→괴산→913번 지방도(쌍곡계곡)→불란치재→대야산, 중부내륙고속도→문경IC→3번국도→977지방도→가은→913번 지방도 동서울터미널→문경(30분 간격·2시간 소요). 문경에서 가은으로 이동한 뒤, 가은→벌바위 시내버스 이용(문경시내버스 054-553-2231) 벌바위 입구에 돌마당식당(054-571-6542) 등 민박집이 다수 있다. 인터넷(www.sanfestival.com)을 참고할 수 있다. 지리산 답사모임 ‘지리산 산길따라’ (cafe.daum.net/jiricom)대표 시솝
  • [씨줄날줄] 산업스파이/육철수 논설위원

    인류역사상 오래된 전문직업을 굳이 꼽자면 아마 매춘부가 1위, 스파이가 2위쯤 될 것이라고 한다. 초기의 인류에겐 남녀관계나 적정(敵情)을 살피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파이는 군사적 의미에 머물다가 19세기 산업화 이후 산업스파이로 본격 확대된다. 역사상 첫 공식적인 산업스파이 행위는 1500년 전 비단의 전래다.552년 중국에 갔던 수도사들은 뽕나무 씨와 누에를 지팡이에 숨겨가 동로마제국 황제에게 바쳤다.751년에는 아랍인들이 당나라의 명장 고선지와 싸워 이겨 중국 제지공들을 데려가 제지술을 서구에 전파했다.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붓뚜껍에 목화씨를 숨겨와 의류혁명을 일으킨 것도 일종의 산업스파이로 볼 수 있겠다.18세기 영국은 중국과의 차(茶)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차 재배법을 훔쳐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최초의 산업스파이는 1811년 영국의 방직기 기술을 훔친 캐벗 로웰로 기록돼 있다. 산업기술을 훔쳐내는 수법도 다양하다. 문서빼내기, 미인계로 핵심 기술자 꾀기, 납치 등은 고리타분한 수법에 불과하다. 지금은 경영컨설팅이나 기술자문, 합병전 경영실사 등 감쪽 같은 고난도 수법이 주로 활용된다. 정보를 빼돌리는 수단도 녹음기, 초소형 사진기, 컴퓨터 하드디스크, 인터넷 해킹 등 최첨단 기기와 기술이 총동원된다. 산업스파이가 제법 흔했던 19세기 유럽에서는 머리 좋은 산업스파이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문서를 통째로 외워 오게 했다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국내에서 또 6000억원대 반도체기술이 중국으로 새어나갈 뻔했다. 유출직전 막았기에 망정이지 이게 성공했더라면 12조원대의 손실이 난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는 최근 7∼8년간 60건 이상 산업스파이 사건이 발생해 60조원의 피해를 입었다. 세계적으로도 1000대 기업의 56%가 산업스파이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경제대국 미국은 1980년대 산업스파이 피해액이 공식집계로 1조 2000억달러에 이르고, 지금도 한해에 450억∼2500억달러나 된다고 한다. 기술은 개발도 힘들지만 지키기는 더 어려운 법이다. 특히 이웃 중국은 유럽과 미국에 산업스파이를 대거 심어놓았고, 일본은 이미 소문난 산업스파이국이다. 세계적 산업스파이국들로 둘러싸인 우리로서는 철저한 문단속만이 살 길인 것 같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데스크시각] 新유목민시대의 명암/김종면 주말매거진WE팀 차장

    인류 미래의 대안을 노마드(유목민)에서 찾을 수 있을까.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노마드적 삶의 양식에 주목한다. 그가 말하는 노마드란 물론 광활한 초원에서 소나 양떼를 키우는 소박한 의미의 유목민이 아니다. 직업이나 주거, 가정을 수시로 바꾸는 불안정한 ‘도시 유목민’ 내지 첨단 정보기술로 무장하고 사이버 세계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노마드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현대에 들어 노마드 혹은 노마디즘의 의미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바꿔가는 창조적인 행위까지 그 범주에 든다. 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잡(job) 노마드의 등장 또한 그런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흐름 속에 기존의 정착생활 방식을 바꿔놓고 있는 이들은 사이버 제국의 시민이다. 사이버 공간의 분신인 복제이미지가 그들의 일상을 대신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마셜 맥루언의 지적대로 미래의 세계는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 지구 곳곳을 떠돌아다니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는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가득차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대판 노마드의 삶이 그 유연함만큼이나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X세대,N세대 등을 통해 이어져온 신(新)노마드족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중시한다. 때문에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 같은 것은 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사이버상에서 알게 된 아이와 연락을 갖는 ‘사이버아줌마’니 ‘임대아이’니 하는 말은 그런 정황을 잘 설명해 준다. 최근 새로운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오른 이른바 ‘리셋 증후군’도 노마드적 충동이란 관점에서 다룰 만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존의 일이나 인간관계를 일거에 뒤집어보려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유목민’의 부정적 양상이 아닐 수 없다. 기자는 이 지점에서 최근 몽골 여행을 통해 느낀 진정한 유목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신석기시대 이래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인들에게 유목은 운명과 같은 것이다.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그것은 견원지간인 중국인들과 벌이는 그들의 논쟁을 통해서도 어렵잖게 확인된다. 중국의 내몽골과 신장 지역 260개 현에는 4000만명의 몽골족 후손들이 대부분 정착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쪽의 농경민(중국인)들은 유목민들을 가축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집 하나 제대로 없는 괴상한 인간들이라고 비웃는다. 반면 몽골인들은 남쪽 농경민들을 땅바닥에 늘 엎드려 하늘이 얼마나 높고 신비한지도 모르는 잡초벌레라고 조롱한다. 몽골어로 ‘계속해서 한 곳에 거주하다.’라는 뜻을 지닌 ‘코르고다크’라는 동사는 몽골인들에게는 가장 경멸적인 표현에 속한다. 그러니 몽골 정부가 역사상 처음으로 추진하고 있는 토지사유화와 정주정책에 유목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유목민적 덕목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유목민 특유의 수평적 사고와 협동의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1만년 가까이 농경 정착민으로 살아온 우리로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목이기도 하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유훈이 새겨진 비문이 있다.“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이를 오늘의 현실에 대입하면 정착민의 닫힌 사회, 수직적 사고방식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몽골 사람들은 종종 “떼를 지은 까치는 혼자서 가는 호랑이보다 힘이 있다.”라는 속담을 들먹인다. 그 뜻 역시 곰곰 새겨볼 만하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사이버 유목전사들을 양산해 내는 요즘이기에 원시 노마드의 청신한 기풍은 더욱 요구된다. 몽골 초원에서 만난 유목민들은 결코 야만과 무지의 화신이 아니었다. 유목민에 대한 상(像)은 그동안 정착민적 사관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돼 왔다. 몽골 유목민은 기자에게 인류의 문명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 일종의 정면(正面)교사였다. 김종면 주말매거진WE팀 차장
  •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6자회담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이 1년 만에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지난 17일 북한이 7월중에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확인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 재가입까지 거론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을 침체 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이 진전될 기미로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마무리짓기 위해 다음달 초순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후 주석은 북한이 핵협상 복귀를 구체적으로 약속한다는 전제 아래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6자회담이란 6자회담은 남북,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6개국이 모여 북핵 문제 논의하는 다자회담을 말한다. 중국의 중재로 열린 북·미·중 3자회담(2003년 4월23∼25일, 베이징)의 후속 회담이다.2003년 8월2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1차 회담이 열렸고 2004년 6월 3차 회담이 개최된 뒤 1년 동안 회담이 중단됐다. ●6자회담의 배경 6자회담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 보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93년부터였다.1993년 3월1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하던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다음해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미국은 핵 개발을 중단하고 핵 사찰을 받는 대신 북한에 체제안전을 보장해 주고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며 중유를 공급해 주기로 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2003년 1월10일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전격 시인하면서 북핵 문제는 다시 강대국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플루토늄이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협박성 공개였다. 북한은 IAEA 사찰단원을 추방하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미국은 중유 공급을 전면 중단하고 완전 핵 포기를 요구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미국은 북한에 ‘선 핵포기, 후 대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북한은 ‘선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후 핵 문제 논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각국의 입장 ▲한국 반드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완전하며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추가 조치를 하지 않는 ‘현상동결’ 후 적절한 때 원상회복, 즉 제네바합의 이전 및 농축우라늄 계획 발표 이전 상태로 복귀할 것을 제시했다. 정치협상은 미국이 주도하고 경제적 보상책임은 한국에 전가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 회담을 통해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미국으로부터 불가침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대화의 상대를 미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서면보장이나 집단적 안전보장은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와 법적 구속력을 갖춘 불가침조약의 체결을 핵포기의 선결조건으로 내건다. ▲미국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면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한 양국간 현안들을 다룰 수 있다고 전제한다. 북한 핵 폐기의 진전에 따라 식량지원을 확대하고 에너지를 제공하며, 북한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하는 등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중국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 북한의 안보우려 해소, 체제보장을 제시했다. 미국과 북한의 직접협상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극복하려 한다. ▲러시아 한반도와의 안보적 연계성, 즉 러시아 동쪽 국경지역의 안정을 확보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과의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 북한에 대한 압력과 제재에는 반대한다. ▲일본 한국,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한 돌파구를 6자회담에서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도 감추지 않는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일 수교회담을 조속히 마무리지어 발언권을 확대하려 한다. ●6자회담의 경과 ▲1차 회담(2003년 8월27일∼29일)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북한의 미사일 문제, 재래식 군사력 등도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먼저 핵 포기를 요구하지 말고 원하는 조치를 동시에 취하자고 했다. 즉 대북지원, 미·북불가침조약 체결 등 미국이 취할 조치와 핵포기, 사찰허용 등을 동시에 하자는 것이다. 양측이 맞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차 회담(2004년 2월25일∼28일) 워킹그룹(실무회담) 설치,2·4분기내 3차회담 개최 등 7개항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북한이 ‘평화적 핵활동을 제외한 핵무기계획 폐기’ 주장을 제기했다. 요지는 군사적 목적의 핵활동을 폐기하되 평화적 핵활동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를 군사적 목적과 비 군사적 목적으로 세분화해 더 많은 보상을 따내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기존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로 맞섰다. ▲3차 회담(2004년 6월23일∼26일) 북측은 미국이 200만kw 에너지 지원 참여,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경제제재와 봉쇄 해제 등의 보상방안을 받아들이면 핵무기 관련 시설물과 재처리 결과물을 포함한 핵동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도 북이 모든 핵폐기 의사를 밝히고 핵동결에 착수하면 중유를 지원하고,3개월 후 폐기절차에 들어가면 ‘잠정적’ 대북 안보보장, 비핵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경제제재 해제 협의 등의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반도는 냉전시대에서 탈피했다고 하나 여전히 위기의 지역이다. 위기의 원인은 사회주의의 붕괴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생존전략과 미국의 패권주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면서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런 주변국들의 움직임은 한반도 평화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끄는 외교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해 나가야 한다. 여전히 위협적인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한편 주변국들의 지원과 도움을 이끌어내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남북 장관급회담] 南北 경협은 활짝… 北核은 제자리

    [남북 장관급회담] 南北 경협은 활짝… 北核은 제자리

    북한이 13개월 동안 닫아뒀던 남북교류를 전면 재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음이 23일 마무리된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확인됐다. 이는 남한을 탈출구로 삼아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안보 위협에서 벗어나는 한편, 식량과 경제지원을 얻으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남북 양측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분야는 이산가족·경제협력·역사·군사분야 등 거의 전방위적이다. 남북이 마주 앉아 머리를 맞대기로 합의한 일정이 무려 11개나 된다. 일정은 물론 내용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신뢰면에서 과거와 차별화를 기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북측이 ‘열어야 할’ 문을 완전히 다 열어젖힌 것은 아니다. 특히 체제안보와 관련된 분야에 있어 북측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버리지 못했다. 특히 우리측이 제의한 ‘서울∼평양간 직선항로 개설’에 대해 북측은 기술적인 문제점을 들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북측으로서는 영공을 개방하는 게 못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장성급회담 재개에 합의했으면서도 날짜를 못박지 못한 것도 군사분야의 민감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7월로 회담시기를 재촉했지만, 북측은 “군부가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게 우리로서는 가장 아쉬운 점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6·17면담’에서 7월 중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날짜를 받아내려 총력을 기울였지만 북측은 끝내 ‘선물’을 주지 않았다. 공동보도문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적 해결’ 등 원론적 문구만 실려야 했다. 북측으로서는 미국의 의사를 타진할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여부는 추후 다른 루트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와 함께 우리측이 6·17면담에서 제의했다는 ‘중대 제안’의 내용이 끝내 공개되지 않은 점도 궁금증을 가시지 않게 하는 대목이다. 일정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잡힌 이산가족과 경협 등의 분야도 완전 정상화로 낙관하긴 이른 상황이다. 과거에도 이런 일정들은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중단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양측이 16,17차 장관급회담의 일정은 잡았지만, 회담 정례화에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도 불안한 정상화를 대변하는 부분이다. 우리측이 북한에 지원할 식량 규모는 쌀 40만t 수준이 될 전망이다. 최근 3년간 우리측은 매년 쌀 40만t씩을 북한에 보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남측, 美입장 따라가 불쾌”

    “불쾌하다.” 지난 11일 새벽(한국시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북한의 일부 관리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북한 정부 인사들은 “(북핵과 한·미동맹 등의 문제에 있어) 남측이 갈수록 미국 입장을 따라가는 것 같아 불쾌하다.”면서 “이렇게 민감한 때에 두 정상이 나란히 앉아 공동선언문 같은 것을 밝히는 것을 우리로서는 좋게 봐줄 수 없다.”라고 평양에 주재하는 일부 외국 외교관들에게 밝혔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알려지기는 처음이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일부 실무급 관리가 정상회담 직후 짤막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힌 것일 뿐 북한 정부의 정리된 공식 입장은 아니다.”면서 “다만 북한은 북한의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쉽다는 것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공식 반응을 일체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고민이 크다는 증거”라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평화적·외교적 해결방안이 재확인됨에 따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결정적인 유인책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마냥 낙관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만일 7∼8월 중에 6자회담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상황이 아주 어렵게 되면서 교착상태가 올 연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상경 재판관’ 보도 형평성 논란

    최근 가장 관심을 끌었던 보도 중 두 가지가 이상경 전 헌법재판관의 탈세 의혹과 태영의 킨텍스 관련 의혹 보도였다. 이 전 재판관 사건은 때때로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이뤄졌던 우리 언론의 고위공직자의 재산형성 의혹 보도 태도와의 비교관점에서, 태영 보도는 SBS의 모기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우선 이 전 재판관 사건은 그 의미가 제법 깊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았다. 사실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항상 대법원에 밀린다는 인상을 줘왔다. 무슨 국가행사든지 대법원장은 대통령·국회의장과 함께 ‘3부 수뇌부’로 일컬어졌지만 헌재소장은 낄 자리가 모호해서 의전 실무자들이 속앓이를 하곤 했다. 그러던 게 지난해 대통령 탄핵사건과 행정수도 이전 사건을 다루면서 헌재는 숨겨져 왔던 폭발적인 힘을 과시했다. 이런 조직의 고위 관계자가 탈세 연루 의혹을 받고, 그것도 헌재 출범 이래 첫 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5일 KBS가 처음 보도한 이 사건은 그 다음날부터 다른 언론에도 잇달아 보도됐다. 하지만 보도 태도는 달랐다. 조선·중앙·동아 등 일부 일간지들은 사실 전달 수준에서 간략하게 기사를 내보냈다. 의혹이 제기된 지난달 26일자 보도와 이 전 재판관이 용퇴했다는 3일자 기사만 보인다. 반면 한겨레·경향신문은 1면과 사회면 머리기사로 이 문제를 크게 전달했다. 태영 관련 보도는 일산에 지어진 전시장 킨텍스와 관련이 있다. 태영은 킨텍스 관련 공사를 맡으면서 공사에 들인 흙을 가공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남겼다는 의혹 때문에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보도가 지난 1일 SBS에서 전파를 타면서 태영 관련 부분은 제외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SBS는 2일에는 속보 형식으로 태영 관련 소식까지 전했다. 반면 KBS와 MBC,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비중 있게 처리해 관심을 끌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방송 관련 사업에 관심 있는 대기업들이 이 사건 보도를 유심히 지켜 보고 있다는 점. 한 관계자는 “사기업이 방송을 소유하니 제대로 보도를 못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게 되면 방송 사업에 관심 있는 우리로서는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전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투기자본 차단 취지는 좋지만

    정부가 한국 자본시장이 외국계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투기자본이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 세법에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 외국과 맺은 조세조약도 실질소득이 발생한 한국이 부과할 수 있도록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과세영역 확대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부분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온 뉴브리지캐피털이나 론스타 등이 금융기관이나 대형 빌딩 매매를 통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차익을 챙기고도 한푼의 세금을 물지 않은 데 따른 반(反) 외자정서를 감안한 조치로 이해된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투기자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실에 맞게 세법이나 조약을 개정키로 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약 개정은 상대국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만큼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성사되지 않는다. 더구나 조약 개정으로 입게 될 상대국의 손실도 보전해 주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투기자본 대책이 ‘국내용’이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투기자본과 투자자본의 구분도 쉽지 않다. 동북아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해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정교한 전략 수립이 절실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주요 선진국들이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 횡포 차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약 협상 상대국에 효과적인 압력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외 자본간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외국계 투기자본도 국내 자본 입찰 배제라는 특혜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퇴계의 고백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의정부의 사인(舍人)이 되어 노래하는 기생이 눈앞에 가득하였을 때 문득 한 가닥 환희심이 일어나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기미(機微)는 살고 죽는 갈림길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이 말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의미심장하다. 퇴계는 ‘화려하고 시끄럽게 쾌락에 빠지는 것’과 ‘그것에 초연할 수 있는 평상심’을 ‘살고 죽는 생사의 갈림길(機則生死路頭也)’로 보고 있음인 것이다. 특히 퇴계는 술을 경계하고 있었다. 일찍이 15살 되던 해 송재공을 따라 안동에 갔을 때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진 실수를 한 이래로 술에 대해 평생 근신하였다. 퇴계는 병약했으나 술은 즐기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는 퇴계가 만년에 도산서당에서 지은 시 중에 술에 관한 시가 서너 수 나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퇴계는 직접 집 뒤의 산속에 술 빚는 창고를 두어 서당에 손님이 찾아오면 산봉우리로 불러 술을 마셨다고 한다.‘달밤에 이 문량이 도산으로 찾아오다(月夜大成來訪陶山)’란 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밤 함께 즐겁네/좋은 손님들 찾아오니, 산봉우리 넘어 불러/탁주잔 기울여 마시네. 관란헌에 셋이서 솥발처럼 앉아/그윽한 마음 열고, 다시 난초 배에 올라/달 놀이 하다 돌아왔네(良夜同欣好客來 隔岑呼取濁 盃 臨軒鼎坐開幽款 更上蘭舟弄月回).” 이밖에도 절우사(節友社) 화단의 매화가 늦봄에 피어나자 읊은 퇴계의 시는 아취(雅趣)를 느끼게 한다. 그 시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찌 필요하리오/난초향기 같은 말. 하늘가에 옛 친구들/볼 수가 없어, 그대 더불어 날로 아무 일 없이/술잔 기울여 마시네(今者何須蘭臭言 天涯故人不可見 與爾日飮無何尊).” 이처럼 술을 좋아하던 퇴계였으나 평생 술을 절제하여 취하지는 않았다. 술에 대한 경각심을 퇴계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벼슬에 올라 서울에 있을 때에 늘 사람에 이끌려 날마다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러나 얼마 뒤 한가한 날에는 문득 심심한 마음이 들어서 돌이켜 생각해 보고는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다.” “또 내가 일찍이 금문원(琴聞遠:제자))의 집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산길이 몹시 험하였다. 갈 때는 말고삐를 잔뜩 잡고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길 험한 것을 아주 잊어버리고 마치 탄탄한 큰 길을 걷듯 하였으니, 마음을 잡고 놓음이 이처럼 심히 두려운 것이다.” 퇴계의 두 번째 고백 역시 학문의 길은 몹시 험한 산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항상 말고삐를 잡고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하며, 마치 탄탄한 큰길처럼 함부로 가면 낭패를 본다는 내용으로 제자들에게 내리는 경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젊은 날의 퇴계는 마음을 다잡고 거경(居敬)의 마음으로 한결같이 학문에 열중하였던 것이다.
  • [사설] 나랏빚 증가 속도 너무 가파르다

    나라의 빚이 너무 빠른 속도로 불어나 큰 걱정이다. 정부가 밝힌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현재 203조원에 이른다.1997년 65조원에서 불과 7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6%로 잡았을 때 2008년쯤이면 300조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어느 정도의 빚은 불가피하지만 이런 속도로 늘면 이자지급액도 만만치 않아 재정의 경직화와 국민 부담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6.1%로 미국(63.5%)·일본(163.5%)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6.8%)보다는 훨씬 낮지만 앞으로 돈 들어갈 데가 많은 우리로서는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복지수준이 이미 정착단계여서 지급금이 많아 채무비율이 높을 뿐이다. 우리는 복지지출이 GDP의 10%로,OECD 회원국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당정(黨政)은 당장 내년부터 저출산·고령화 등을 고려해 복지예산을 연평균 9.3% 이상, 자주국방을 앞당기기 위해 국방비도 9.0% 이상 올리려고 한다. 그뿐인가. 국가 균형발전에다 통일비용까지 재정수요는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국가채무 급증의 주요인은 공적자금의 국채전환(15조원)과 환율방어(17조 8000억원)였다. 후자의 경우 외환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화 절상을 막지 못했는데, 이는 재정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빚이란 본래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나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정 목표상 성장 잠재력의 확충보다는 복지 확대에 비중을 두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165조원이나 쓸어 부은 공적자금의 회수율(43%·71조원)에 더욱 신경쓰고, 정치성 예산의 남발을 자제하는 등 재정관리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송두율칼럼] 느림의 미학

    [송두율칼럼] 느림의 미학

    최근 눈에 띄게 부쩍 는 중국 관광객들을 위해서 어느 여행사가 특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속도제한이 없는 독일고속도로 위를 독일제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질주해 보는 일정도 들어 있다.‘현대화’의 구호 밑에서 계속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중국의 신흥 갑부들이 드디어 속도가 주는 짜릿한 쾌감을 독일 땅에서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1989년 이래 줄곧 서독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추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게 된 옛 동독사람들은 가끔 ‘동독에 대한 향수(Ostalgie)’에 젖어, 그동안 서독의 소비제품에 밀려 상점 진열대에서 사라졌던 상품을 다시 찾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사회가 안고 있는 속도의 변화는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정도의 만족감이나 성취감도 주지만 불안감이나 불만감도 심어준다. 현대사회에서 속도가 지니고 있는 특성에 대한 고찰을 하나의 학문적 영역으로까지 발전시킨 프랑스의 폴 비릴리오(P Virilio)는 무엇보다도 전쟁이 속도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활-총-대포-미사일-레이저로 발전해온 무기체제가 바로 속도가 지니는 공격성과 파괴력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또 전자통신 혁명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든지 또 어떤 곳에서든지 일어나는 일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들고 있으나 이로 인해 우리의 지각능력은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기계의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동성을 높이는 자동차가 자주 교통체증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다. 어떤 때는 걸어가는 편이 더 빠를 수도 있다. 목적지에 한시라도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 개발된 기술수단이 이제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정체시키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설을 문학적으로 다룬 독일작가 스텐 나돌니(S Nadolny)의 ‘느림의 발견’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의 실제인물 존 프랭클린(1786∼1847)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과 동작이 극도로 느려 주위로부터 항상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이점이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보다 더 사물을 치밀하게 관찰하게 만들었으며, 그 때문에 그는 유명한 북극 탐험가가 될 수 있었다. 느림이 곧 삶의 리듬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이 성장소설이며 해양모험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느림’이라는 소설 속에서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델라(M Kundela)도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 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라고 묻는다. 느림의 내면에 담겨 있는 인간성을 두 소설은 강조하고 있다. 사실 강박적인 속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오늘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패스트푸드’ 대신에 ‘슬로푸드’를 위한 운동,‘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모임’ 등도 있다. 심지어는 ‘바쁘면 천천히 가라’라는 제목의 책은 게으름의 필요성까지도 역설한다.‘빨리 빨리’ 움직여도 먹고 살기 힘든 판국인데 그렇게 ‘천천히’ 움직인다면 어떻게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당연히 생길 수 있다. 우리에게도 ‘바쁘면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지난 40년간의 압축성장은 300년 넘은 오랜 산업화의 역사를 가진 서구 산업사회에서보다 시간이 곧 사회관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재원(財源)이라는 생각을 더 굳혀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앞만 보고 ‘빨리 빨리’ 달려 왔던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도 ‘천천히’ 걸어야만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의 비밀은 우리 모두가 그 속에 살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의 의미에 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데 있다고 미하엘 엔데(M Ende)의 소설 ‘모모’는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질주보다는 느림이 이제는 우리의 삶의 질을 위해서 절실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느림의 미학을 강조해 본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한류열풍에 가려진 열악한 기초예술현장

    한류열풍에 가려진 열악한 기초예술현장

    대학로 흥행연극 ‘관객모독’에 출연중인 배우 전수환(40)씨. 그는 요즘 무대에 설 때마다 뿌듯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3년여의 외도 끝에 돌아온 연극무대가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엔 가족을 속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고교를 졸업하고, 극단 76단에 입단해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며 무대밥을 먹은 지 20여년. 무작정 좋아서 뛰어든 일이라 수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밥벌이는 포장마차 등 아르바이트로 대신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해 2∼3개 작품에 출연해서 받는 돈은 고작 600만∼700만원. 여기저기 빌린 생활비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를 악물고 무대를 떠났다.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난생 처음 월급이란 걸 받았다. 그렇게 3년을 일해 빚을 거의 다 갚을 때쯤 딴 마음이 생겼다. 지난 연말 극단에서 연락이 오자 그는 망설임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아내에게는 ‘잘렸다.’고 거짓말했다. 아내는 지금도 그가 새 직장을 잡을 때까지만 연극무대에 서는 줄 알고 있다. 언제 들통날지 모를 상황에서도 그는 “무대에 서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미소지었다. 전씨의 사례는 2005년 대한민국 연극인들의 실상이자, 한류열풍의 그늘에 가려진 국내 기초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한류를 이끈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들이 ‘문화산업’의 주역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소설가, 시인, 화가, 공연예술인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 우리 문화계의 양면적인 현실이다. ●4대보험 ‘사각’… 고용·산재가입 10% 미만 지난 6일 한나라당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연극배우의 현실과 발전방향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벼랑 끝에 몰린 연극인들의 육성이 거침없이 터져나왔다.‘에쿠우스’ 등 수많은 연극과 TV드라마, 영화에 출연해온 중견 배우 강태기(54)씨. 그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노동판이나 아르바이트 현장을 전전하는 배우들이 허다하다.”면서 “부를 누리거나 융숭한 대접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문제에 신경쓰지 않은 채 창작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우 김지숙(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씨는 “연극계가 어렵다는 얘기는 수십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젠 정말 절벽앞에 선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연극협회가 지난해 9월 전국 연극인 6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는 이같은 현실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준다. 조사 당시 연극인들의 월평균 소득은 23만 2000원. 일반 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56만 7000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작품당 평균 수입은 55만 7100원. 응답자의 41%가 임시직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극배우협회가 지난 연말 배우 300명을 전화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더 열악하다. 월 평균수입이 10만원도 안된다는 응답이 65%를 넘었다. ●“생존권 보장을” 지난 한달 파업도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회안전망 제도인 4대 보험(고용, 산재, 의료, 국민연금)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 연극협회 조사에서 93%는 산재보험에,92%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연금 미납률과 의료보험 미가입률도 각각 67%와 40%에 달했다.‘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연극인들의 비참한 현주소다. 배우협회가 ‘관객을 볼모로 삼는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지난 4월 한달간 ‘파업’을 감행한 것은 이런 절박한 현실인식에 따른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는 배우들의 집단행동은 그 순간마저도 어쩔 수 없이 생계를 택해야 하는 배우들의 대거 이탈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허현호 배우협회장은 “‘춥고 배고픈’이라는 수식어를 멍에처럼 짊어지고 사는 연극인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위안삼았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은 물론 연극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문학, 미술, 전통예술, 무용 등 기초예술 장르 전반에 걸친 공통된 문제다. 국악인 김덕수씨는 “전국 20여개 한국음악과에서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졸업생들이 배출되지만 취업은 가뭄에 콩나듯 하는 실정”이라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분야로 전업하거나 시간당 2만원 내외의 중·고교 특기적성교육 강사로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권기금 지원 받아 ‘가뭄에 단비’ 현장 예술인들의 절박한 비명에 정부와 정치권도 서서히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로또복권 등으로 조성된 복권기금 446억원이 문화예술진흥사업에 투입된 것은 아쉬운 대로 타는 가뭄 끝에 만난 단비였다. 한나라당에 이어 열린우리당도 지난 6일 문화예술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정치권의 관심도 달아오르고 있다. 허현호 배우협회장은 이날 오전엔 한나라당 토론회에, 오후엔 열린우리당 문화특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하느라 바빴다. 정략적인 접근이라는 비아냥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전시성 행정 대신 기초예술인들에게 실질적인 지원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그나마 실낱 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2003년, 세계 대표적 공연예술축제인 프랑스 아비뇽축제가 공연예술인들의 파업으로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년에 507시간 이상을 일하면 일년치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던 것을 열달반 동안 같은 시간 일해야 8개월치 실업수당을 받도록 법을 개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연차 서울에 체류중인 영국 연출가 글렌 월포드는 “영국에선 배우, 연출가, 스태프가 참여하는 조합이 정당한 임금 지급과 시간당 보수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로선 갈 길이 먼 셈이다. 문화관광부 김영산 기초예술과장은 “오는 7월 문예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면 좀더 실효성 있는 지원이 마련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예술교육에 힘을 기울여 문화예술향수층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튼튼한 뿌리 없이는 아름다운 꽃과 탐스러운 과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한 자연의 이치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수입 1% ‘아름다운 기부’ 기초예술의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연극인 스스로가 발벗고 나섰다. 연극인들의 복지를 위한 재단이 20일 오후 6시 문예진흥원 대극장에서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연극인복지재단은 기초예술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열악한 제작 여건으로 빈사 상태에 빠진 연극인들을 지원하고자 만든 모임. 지난해 11월 재단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배우 박정자씨를 대표로 뽑았다. 추진위원으로는 김미혜 한국연극학회장,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이종훈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 윤석화 월간 객석 대표 등 15명의 연극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단의 대표적인 사업은 연극인 1%기부 운동. 연극배우들은 출연료, 극단이나 기획사는 매표 수입의 1%를 자발적으로 재단에 기부하는 운동이다. 출범을 앞두고 박대표 개인 후원 모임인 꽃봉지회와 극단 자유 이병복 대표, 그리고 배우 윤석화씨가 각각 1000만원을 기부해 총 3000만원의 기금이 모인 상태다. 재단은 이 기금을 토대로 연극인 기금을 위한 공제회 설립, 연극인 생계지원, 연극인 자녀 학비지원, 의료 지원 등의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박 대표는 “재단의 설립은 연극인 모두를 위한 희망의 첫걸음이자 연극인 스스로 현실 개혁의 주체가 되는 중요한 터전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20일 열리는 출범식에는 연극인뿐만 아니라 정·재계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기초예술 살아야 문화산업도 성장” “그동안 ‘순수예술’로 불러왔던 핵심 장르를 ‘기초예술’의 개념으로 재정립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켰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심재찬(연극 연출가)기초예술살리기범문화예술인연대 공동상임집행위원장은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갈수록 황폐해져 가는 문화적 토양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면서도 막상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무기력했던 예술인들이 마침내 머리를 맞대고 분야별 실태조사와 대안 마련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큰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 지난해 4월 출범한 기초예술연대에는 장르와 이념적 성향 등을 뛰어넘어 60여개 문화예술단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는 “문화산업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산업적이지 않은 분야들은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오도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기초예술연대의 출범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안”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예술현장의 실태가 심도있고 현실감있게 파악된 적이 없고, 그로 인해 문화정책 또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졌다는 데 대한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기초예술연대는 지난 한해 연속포럼을 통해 내부적으로 장르별 현황과 정책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국회와 문화관광부, 문예진흥원 등을 상대로 새로운 예술정책 설정을 촉구하는 등 외부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심 위원장은 “초반엔 기초예술은 물론이고, 예술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정치인들을 보면서 ‘아,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면서 “지속적인 설득 끝에 로또기금을 문화예술계로 끌어들인 건 대단한 성과였다.”고 돌아봤다. 향후 기초예술연대의 과제는 조만간 전문민간인으로 새롭게 구성될 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현장 중심의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것. 그는 “창작의 질을 높이는 방안과 예술교육의 정착이 궁극적인 해결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국유재산 찾아내기’ 독보적 인물 산림청 국유림경영과 노병완씨

    ‘국유재산 찾아내기’ 독보적 인물 산림청 국유림경영과 노병완씨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능으로 통하는 정보기술 시대에도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풀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더욱이 그같은 능력은 소수만이 가지고 있어 빛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산림청 국유림경영과에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노병완(73)씨도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될 ‘빛’과 같은 존재다. 그는 국유재산을 식별해 분류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춘, 독보적 인물이다. 그런 만큼 국내 토지제도의 역사도 꿰뚫고 있다. 산림청 안팎에서 국보급(?) 공무원으로 불리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1964년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한 후 1976년 6급으로 공직을 사퇴했으나 1989년 산림청의 구애를 받고 재차 공직에 발을 들여 놓았다. 국유재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션이 부여됐지만 그 업무를 수행할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산림청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아니 “못 놓아준다.”는 표현이 정확할 법하다. 숨겨진 국유재산을 찾아내기 위해 ‘장인의 손’을 더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공직 퇴임후 계약직 채용된 ‘국보급 공무원’ 그의 책상에는 모든 공무원의 필수품인 컴퓨터가 없다. 잘 깎인 연필과 일제시대 법령집 편람, 그리고 임야도와 호적등본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류뭉치만 수두룩하다. 국유림경영과에서 그가 맡고 있는 공식 업무는 국유림 보호·관리 및 국유재산 관련 소송 자문이다. 변호사의 공직 진출이 활발하고 해박한 지식을 갖춘 공무원들이 즐비한 공직에서 굳이 고희를 넘긴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산림청이 국유재산 소송과 관련해 법정에서 펼치는 공수(攻守) 논리 및 근거는 그에게서 나온다. 개인이나 법인 등의 명의로 바꿔치기한 국가재산을 찾아내 회수하는 작업뿐 아니라 교묘히 조작된 옛날 서류를 들고 자기 재산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도 그의 몫이다.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뒤 만15년간 그가 찾아내 국고로 환수한 임야만 1만 2700㏊(3800만평)에 달한다. 이는 남산(340㏊)의 37.3배, 여의도(840㏊)의 15.1배나 되는 엄청난 면적이다. 1992년에는 망실재산으로 남아 있던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옛 동경제국대학 연습림 7000㏊를 찾아내 정식 등재하는 성과를 올렸다. 금강산과 맞닿은 최전방으로 접근이 어려울 뿐 아니라 지적공부조차 불타 관심이 없었던 지역이었지만 그가 1913년 제작된 기록을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내면서 가능해졌다. 소송으로 환수한 임야는 관청과 개인을 대상으로 한 682㏊로 공시지가만 23억원에 달한다. 노씨는 “국유재산 환수소송은 연 평균 200여건(지난해 377건)에 이르고 있다.”면서 “돈과 직결돼 있다 보니 소송기간도 길고 공방도 치열해 한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뛰는 범죄에, 나는 저격수” 노씨는 “임야 등 토지와 관련한 소송이 남발되고 대처가 어려운 것은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지대장과 지적도, 임야대장과 임야도를 통칭하는 지적공부는 일제시대에 제작됐다. 일제가 세금을 걷고 국토관리계획을 세우기 위해 만든 것이다. 구한말에 제작된 ‘결수연명부’란 토지대장이 있으나 지번이나 도면이 없어 쓸모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제작된 지적공부 중 상당수는 6·25때 소실됐다. 특히 강원도와 경기도 등 격전지역은 더욱 심한 편이다.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관보가 유일한 자료이나 색인(목록) 역할에 불과하고 6·25 이후 복구돼 지번 등이 달라진 것도 많다. 노씨는 “1960년 민법이 공포되면서 귀속재산 등기가 이루어졌지만 혼란한 틈을 타 국유재산은 물론 남의 재산까지 ‘주워먹는’ 일이 허다했다.”면서 “당시 위·변조가 남발한 것도 이런 연유에 기인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국유재산을 가로챈 사람들의 수법은 혀를 찰 만큼 놀랍다. 이들은 이를 싼값에 제3자에게 매각하거나 금융권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노씨가 적발, 환수한 임야를 놓고 당사자간 손해배상소송이 벌어지는 등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최근 개발 붐이 일고 있는 경기도 파주에서는 일제때 작성된 매도, 매매계약서는 물론 호적(제적)까지도 위·변조해 자기 땅임을 주장하는 악질범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현미경 같은 노씨의 눈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한번은 빠져나갈지 모르지만 반드시 노씨에게 들통나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노씨는 공무 수행을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와 토지 관련 옛 법령을 마스터했다. 당시 사용한 글씨체나 문서양식 등이 그의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일본인도 모르는 글씨를 읽는다.”는 평가가 농담이 아닌 듯하다. ●“임금 등 욕심 생기면 공무수행 제대로 못해” 그는 딱히 내놓을 만한 학력이나 특별한 자격증도 없다. 직장에서는 계약직이다 보니 직급 및 직위가 없어 승진, 호봉과도 무관하다. 70을 한참 넘긴 나이지만 매일 7시간을 투자해 서울에서 대전청사 산림청으로 출퇴근할 만큼 타고난 강골이다. 서울 근무를 요청할 수도, 보다 나은 대우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일절 입을 떼지 않는다고 한다. 사사로운 욕심이 생기면 제대로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법원에서 패소한 상대로부터 민망한 욕을 듣고 폭행도 당해 봤지만 초지일관 흐트러짐이 없다. 노씨는 현재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하나하나 전수하고 있다. 우선 삼림법과 조선부동산등기령 등 옛 임업분야 법령 규정을 해석한 ‘국유재산관련송무자료집’을 만들었다. 한자와 일본어를 한글로 해석하고 설명을 단 역작이랄 수 있다. 관련 지식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결정적인 실수를 할 수 있다는 행정의 기본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노씨는 “특별히 빛나는 일이 아니다.”라고 겸손해했다. 산림청도 지난해 송무계를 신설하고 지적업무에 대한 전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의 빈자리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산림청 직원들은 “우리로서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계셔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노씨의 건강을 기원했다. 평생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장인’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할머니 바다사자 짱이에요”

    “할머니 바다사자 짱이에요”

    “이빨은 닳고 눈도 어둡지만 아직도 ‘한 묘기’ 하지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사육사가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자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2마리가 지느러미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이 바다사자들은 스물한살 된 암컷 미순이와 향순이. 바다사자 평균수명이 25년이니 사람으로 치면 고희(古稀)를 넘긴 할머니들이지만 ‘왕년의 대스타’답게 악수하기, 박수치기 등으로 어린이들을 즐겁게 했다. 어린이날인 5일에는 더욱 많은 관람객들 앞에서 더욱 신나게 묘기를 펼쳐보일 것이다. 물개, 바다사자, 침팬지 등 공연장을 주름잡던 동물스타들이 나이 들어서도 어린이들의 친구 역할을 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전시용 우리로 옮기거나 다른 동물원으로 가서 가벼운 공연을 계속하는 등 노익장이란 말이 꼭 어울린다. ●활기찬 ‘노년’…영원한 팬서비스 멕시코에서 태어난 미순이와 향순이는 한살 때인 1985년부터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공연을 하다 2003년 불곰 4마리와 맞트레이드되어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적했다. 전성기 때 1000만원을 웃돌던 몸값은 나이 들면서 400만원까지 떨어졌다. 노안(老眼)으로 눈이 가물가물해진 데다 이빨도 닳아서 ‘숫자판 찾기’,‘링 통과’,‘뽀뽀 점프’ 등 고난도의 묘기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하루 두 차례씩 건강검진을 받고 꼬박꼬박 비타민제도 먹는다. 하지만 이들이 능청스럽게 사육사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공연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바다사자답게 우렁차게 울부짖을 때면 어린 손님들의 박수갈채가 터져나온다. 사육사 박은화(23·여)씨는 “어린이들이 동물과 친해지고 습성을 잘 이해하도록 가벼운 ‘맛보기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나이들어 어린이대공원에 요양온 셈이지만 간단한 공연 등은 이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에서 15년 동안 공연을 해온 물개 영구(17·♂)와 영구의 짝 연순(11·♀)이는 지난해 은퇴해 공연장 옆에 마련된 물개용 풀장으로 옮겼다. 건강상태는 괜찮은 편이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실버타운’에 입주한 것. 하지만 사육사 없이도 ‘점프하기’나 ‘죽은 척하기’ 등 왕년의 솜씨를 뽐내며 ‘팬서비스’를 계속해 이들을 본 관람객들은 좀처럼 우리 앞을 떠나지 못한다. ●무리에 적응 못해 슬픈 최후 맞기도 하지만 공연동물들의 노후가 이들처럼 모두 행복하지만은 않다. 에버랜드 침팬지쇼에서 활약하던 갑식이는 은퇴한 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무리들 품으로 돌아갔지만 인간에 길들여진 탓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왕따’를 당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지난해 6월 17살로 생을 마감했다.2002년 에버랜드에서 청주동물원으로 간 물개 몰리도 1년 만에 죽음을 맞았다. 물개로서는 한창 때인 8살이었지만, 부검을 해보니 위장에서 조약돌, 나사 같은 이물질이 나왔다. 동물원 관계자는 “물개 같은 기각류(지느러미 다리를 가진 포유류)는 뭐든 넙죽넙죽 받아먹는 특성이 있다.”면서 “관람객들이 장난으로 던진 이물질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고 안타까워했다. 몰리를 마지막으로 청주동물원에서는 더 이상 물개를 들이지 않고 있다. 어린이대공원 동물관리팀 이재용 사육과장은 “정말 동물을 사랑한다면 함부로 먹이를 던져주지 않는 최소한의 에티켓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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