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우리로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94
  • [조용섭의 산으路] 경북 문경 대야산

    [조용섭의 산으路] 경북 문경 대야산

    눈부신 흰 암반을 따라 흐르는 물길, 잠시 제 몸을 바위에 맡겨 떨어뜨린다. 물은 푸른 하늘도, 진록의 숲도 닮지 않은 옥빛 소(沼)를 이룬다. 물길은 산길옆 계곡을 따라 순하디순한 모습으로 편안하게 이어진다. 마음만 동하면 그대로 첨벙하고 들어가는 계곡이 경북 문경의 대야산이다. 한여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불볕더위에 몸을 달구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서는 길에 마치 담금질을 하듯 계곡에 몸을 담근다.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용추계곡에서의 호사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가르며 백두대간의 허리를 잇는 대야산은 산길 들머리가 유난히 아름답다. 산길은 계곡을 그림자인 양 따라가다 능선의 멋진 암봉들이 조화를 이룬다. 주위 조망 또한 빼어난 곳이다.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지만 등산로나 입장료 등과 관련하여 관리공단의 직접적인 통제는 받지 않는다. 산길은 벌바위 마을에서 시작하여 용추→월영대→피아골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밀재→월영대→벌바위로 되돌아 오는 코스로 잡았다. 대야산 주차장 상가 오른쪽의 나무계단을 넘어가면 용추계곡 들머리가 나온다. 민박집들을 지나 계곡을 낀 싱그러운 숲길을 15분여 진행하면 거대한 암반 위에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용추폭포가 나온다. 대하사극 ‘왕건’에서 왕건이 도선선사로부터 도선비기를 받는 곳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사실, 왕건의 라이벌 견훤의 고향이 대야산을 품고 있는 가은읍이란 게 흥미롭다. 거대하고 평평한 암반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월영대까지는 용추에서 20여분 소요된다. 여기에서 왼쪽 밀재 방향과 오른쪽의 피아골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어느 쪽이나 정상으로 이어지나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피아골길을 오름길로 택했다. 급경사 지대에는 고정로프를 깔아놓아 오르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몰릴 땐 교행이 힘들어 상당히 지체된다. 한가지, 등산로를 벗어나면 낙석의 위험이 크니 주의를 요한다. 식수는 미리 준비하는 게 좋으나, 계곡 상단부 왼쪽 가파른 바위지대에도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른다. 급사면을 올라 능선에 닿으면 이내 정상이다. 정상 주위의 암봉들은 하나같이 수려한 모습으로 범상치가 않다. 오른쪽(동쪽)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길과 왼쪽(진행방향) 밀재로 이어지는 산길이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동북쪽의 거대한 바위봉우리로 빛나는 산이 역시 백두대간상의 봉우리인 희양산이다. 정상 아래 내려서는 바위 구간은 운행에 다소 주의를 요하나 역시 크게 어려운 곳은 없다. 능선을 내려오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거대한 바위지대와 코끼리바위를 지나서 사거리인 밀재에 닿는다. 오른쪽은 괴산, 정면은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월영대는 왼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숲길이 이어지며 사기굴, 떡바위 이정표를 지나면 이내 월영대를 만나게 된다. 용추계곡을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물론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은 어느새 계곡에 들어갔다 나왔을 일이고…. 중부고속도→증평IC→36번,34번 국도→괴산→913번 지방도(쌍곡계곡)→불란치재→대야산, 중부내륙고속도→문경IC→3번국도→977지방도→가은→913번 지방도 동서울터미널→문경(30분 간격·2시간 소요). 문경에서 가은으로 이동한 뒤, 가은→벌바위 시내버스 이용(문경시내버스 054-553-2231) 벌바위 입구에 돌마당식당(054-571-6542) 등 민박집이 다수 있다. 인터넷(www.sanfestival.com)을 참고할 수 있다. 지리산 답사모임 ‘지리산 산길따라’ (cafe.daum.net/jiricom)대표 시솝
  • [씨줄날줄] 산업스파이/육철수 논설위원

    인류역사상 오래된 전문직업을 굳이 꼽자면 아마 매춘부가 1위, 스파이가 2위쯤 될 것이라고 한다. 초기의 인류에겐 남녀관계나 적정(敵情)을 살피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파이는 군사적 의미에 머물다가 19세기 산업화 이후 산업스파이로 본격 확대된다. 역사상 첫 공식적인 산업스파이 행위는 1500년 전 비단의 전래다.552년 중국에 갔던 수도사들은 뽕나무 씨와 누에를 지팡이에 숨겨가 동로마제국 황제에게 바쳤다.751년에는 아랍인들이 당나라의 명장 고선지와 싸워 이겨 중국 제지공들을 데려가 제지술을 서구에 전파했다.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붓뚜껍에 목화씨를 숨겨와 의류혁명을 일으킨 것도 일종의 산업스파이로 볼 수 있겠다.18세기 영국은 중국과의 차(茶)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차 재배법을 훔쳐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최초의 산업스파이는 1811년 영국의 방직기 기술을 훔친 캐벗 로웰로 기록돼 있다. 산업기술을 훔쳐내는 수법도 다양하다. 문서빼내기, 미인계로 핵심 기술자 꾀기, 납치 등은 고리타분한 수법에 불과하다. 지금은 경영컨설팅이나 기술자문, 합병전 경영실사 등 감쪽 같은 고난도 수법이 주로 활용된다. 정보를 빼돌리는 수단도 녹음기, 초소형 사진기, 컴퓨터 하드디스크, 인터넷 해킹 등 최첨단 기기와 기술이 총동원된다. 산업스파이가 제법 흔했던 19세기 유럽에서는 머리 좋은 산업스파이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문서를 통째로 외워 오게 했다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국내에서 또 6000억원대 반도체기술이 중국으로 새어나갈 뻔했다. 유출직전 막았기에 망정이지 이게 성공했더라면 12조원대의 손실이 난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는 최근 7∼8년간 60건 이상 산업스파이 사건이 발생해 60조원의 피해를 입었다. 세계적으로도 1000대 기업의 56%가 산업스파이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경제대국 미국은 1980년대 산업스파이 피해액이 공식집계로 1조 2000억달러에 이르고, 지금도 한해에 450억∼2500억달러나 된다고 한다. 기술은 개발도 힘들지만 지키기는 더 어려운 법이다. 특히 이웃 중국은 유럽과 미국에 산업스파이를 대거 심어놓았고, 일본은 이미 소문난 산업스파이국이다. 세계적 산업스파이국들로 둘러싸인 우리로서는 철저한 문단속만이 살 길인 것 같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데스크시각] 新유목민시대의 명암/김종면 주말매거진WE팀 차장

    인류 미래의 대안을 노마드(유목민)에서 찾을 수 있을까.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노마드적 삶의 양식에 주목한다. 그가 말하는 노마드란 물론 광활한 초원에서 소나 양떼를 키우는 소박한 의미의 유목민이 아니다. 직업이나 주거, 가정을 수시로 바꾸는 불안정한 ‘도시 유목민’ 내지 첨단 정보기술로 무장하고 사이버 세계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노마드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현대에 들어 노마드 혹은 노마디즘의 의미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바꿔가는 창조적인 행위까지 그 범주에 든다. 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잡(job) 노마드의 등장 또한 그런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흐름 속에 기존의 정착생활 방식을 바꿔놓고 있는 이들은 사이버 제국의 시민이다. 사이버 공간의 분신인 복제이미지가 그들의 일상을 대신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마셜 맥루언의 지적대로 미래의 세계는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 지구 곳곳을 떠돌아다니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는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가득차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대판 노마드의 삶이 그 유연함만큼이나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X세대,N세대 등을 통해 이어져온 신(新)노마드족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중시한다. 때문에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 같은 것은 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사이버상에서 알게 된 아이와 연락을 갖는 ‘사이버아줌마’니 ‘임대아이’니 하는 말은 그런 정황을 잘 설명해 준다. 최근 새로운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오른 이른바 ‘리셋 증후군’도 노마드적 충동이란 관점에서 다룰 만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존의 일이나 인간관계를 일거에 뒤집어보려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유목민’의 부정적 양상이 아닐 수 없다. 기자는 이 지점에서 최근 몽골 여행을 통해 느낀 진정한 유목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신석기시대 이래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인들에게 유목은 운명과 같은 것이다.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그것은 견원지간인 중국인들과 벌이는 그들의 논쟁을 통해서도 어렵잖게 확인된다. 중국의 내몽골과 신장 지역 260개 현에는 4000만명의 몽골족 후손들이 대부분 정착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쪽의 농경민(중국인)들은 유목민들을 가축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집 하나 제대로 없는 괴상한 인간들이라고 비웃는다. 반면 몽골인들은 남쪽 농경민들을 땅바닥에 늘 엎드려 하늘이 얼마나 높고 신비한지도 모르는 잡초벌레라고 조롱한다. 몽골어로 ‘계속해서 한 곳에 거주하다.’라는 뜻을 지닌 ‘코르고다크’라는 동사는 몽골인들에게는 가장 경멸적인 표현에 속한다. 그러니 몽골 정부가 역사상 처음으로 추진하고 있는 토지사유화와 정주정책에 유목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유목민적 덕목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유목민 특유의 수평적 사고와 협동의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1만년 가까이 농경 정착민으로 살아온 우리로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목이기도 하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유훈이 새겨진 비문이 있다.“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이를 오늘의 현실에 대입하면 정착민의 닫힌 사회, 수직적 사고방식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몽골 사람들은 종종 “떼를 지은 까치는 혼자서 가는 호랑이보다 힘이 있다.”라는 속담을 들먹인다. 그 뜻 역시 곰곰 새겨볼 만하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사이버 유목전사들을 양산해 내는 요즘이기에 원시 노마드의 청신한 기풍은 더욱 요구된다. 몽골 초원에서 만난 유목민들은 결코 야만과 무지의 화신이 아니었다. 유목민에 대한 상(像)은 그동안 정착민적 사관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돼 왔다. 몽골 유목민은 기자에게 인류의 문명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 일종의 정면(正面)교사였다. 김종면 주말매거진WE팀 차장
  •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6자회담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이 1년 만에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지난 17일 북한이 7월중에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확인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 재가입까지 거론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을 침체 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이 진전될 기미로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마무리짓기 위해 다음달 초순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후 주석은 북한이 핵협상 복귀를 구체적으로 약속한다는 전제 아래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6자회담이란 6자회담은 남북,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6개국이 모여 북핵 문제 논의하는 다자회담을 말한다. 중국의 중재로 열린 북·미·중 3자회담(2003년 4월23∼25일, 베이징)의 후속 회담이다.2003년 8월2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1차 회담이 열렸고 2004년 6월 3차 회담이 개최된 뒤 1년 동안 회담이 중단됐다. ●6자회담의 배경 6자회담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 보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93년부터였다.1993년 3월1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하던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다음해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미국은 핵 개발을 중단하고 핵 사찰을 받는 대신 북한에 체제안전을 보장해 주고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며 중유를 공급해 주기로 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2003년 1월10일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전격 시인하면서 북핵 문제는 다시 강대국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플루토늄이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협박성 공개였다. 북한은 IAEA 사찰단원을 추방하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미국은 중유 공급을 전면 중단하고 완전 핵 포기를 요구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미국은 북한에 ‘선 핵포기, 후 대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북한은 ‘선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후 핵 문제 논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각국의 입장 ▲한국 반드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완전하며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추가 조치를 하지 않는 ‘현상동결’ 후 적절한 때 원상회복, 즉 제네바합의 이전 및 농축우라늄 계획 발표 이전 상태로 복귀할 것을 제시했다. 정치협상은 미국이 주도하고 경제적 보상책임은 한국에 전가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 회담을 통해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미국으로부터 불가침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대화의 상대를 미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서면보장이나 집단적 안전보장은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와 법적 구속력을 갖춘 불가침조약의 체결을 핵포기의 선결조건으로 내건다. ▲미국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면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한 양국간 현안들을 다룰 수 있다고 전제한다. 북한 핵 폐기의 진전에 따라 식량지원을 확대하고 에너지를 제공하며, 북한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하는 등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중국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 북한의 안보우려 해소, 체제보장을 제시했다. 미국과 북한의 직접협상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극복하려 한다. ▲러시아 한반도와의 안보적 연계성, 즉 러시아 동쪽 국경지역의 안정을 확보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과의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 북한에 대한 압력과 제재에는 반대한다. ▲일본 한국,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한 돌파구를 6자회담에서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도 감추지 않는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일 수교회담을 조속히 마무리지어 발언권을 확대하려 한다. ●6자회담의 경과 ▲1차 회담(2003년 8월27일∼29일)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북한의 미사일 문제, 재래식 군사력 등도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먼저 핵 포기를 요구하지 말고 원하는 조치를 동시에 취하자고 했다. 즉 대북지원, 미·북불가침조약 체결 등 미국이 취할 조치와 핵포기, 사찰허용 등을 동시에 하자는 것이다. 양측이 맞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차 회담(2004년 2월25일∼28일) 워킹그룹(실무회담) 설치,2·4분기내 3차회담 개최 등 7개항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북한이 ‘평화적 핵활동을 제외한 핵무기계획 폐기’ 주장을 제기했다. 요지는 군사적 목적의 핵활동을 폐기하되 평화적 핵활동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를 군사적 목적과 비 군사적 목적으로 세분화해 더 많은 보상을 따내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기존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로 맞섰다. ▲3차 회담(2004년 6월23일∼26일) 북측은 미국이 200만kw 에너지 지원 참여,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경제제재와 봉쇄 해제 등의 보상방안을 받아들이면 핵무기 관련 시설물과 재처리 결과물을 포함한 핵동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도 북이 모든 핵폐기 의사를 밝히고 핵동결에 착수하면 중유를 지원하고,3개월 후 폐기절차에 들어가면 ‘잠정적’ 대북 안보보장, 비핵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경제제재 해제 협의 등의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반도는 냉전시대에서 탈피했다고 하나 여전히 위기의 지역이다. 위기의 원인은 사회주의의 붕괴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생존전략과 미국의 패권주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면서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런 주변국들의 움직임은 한반도 평화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끄는 외교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해 나가야 한다. 여전히 위협적인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한편 주변국들의 지원과 도움을 이끌어내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남북 장관급회담] 南北 경협은 활짝… 北核은 제자리

    [남북 장관급회담] 南北 경협은 활짝… 北核은 제자리

    북한이 13개월 동안 닫아뒀던 남북교류를 전면 재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음이 23일 마무리된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확인됐다. 이는 남한을 탈출구로 삼아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안보 위협에서 벗어나는 한편, 식량과 경제지원을 얻으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남북 양측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분야는 이산가족·경제협력·역사·군사분야 등 거의 전방위적이다. 남북이 마주 앉아 머리를 맞대기로 합의한 일정이 무려 11개나 된다. 일정은 물론 내용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신뢰면에서 과거와 차별화를 기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북측이 ‘열어야 할’ 문을 완전히 다 열어젖힌 것은 아니다. 특히 체제안보와 관련된 분야에 있어 북측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버리지 못했다. 특히 우리측이 제의한 ‘서울∼평양간 직선항로 개설’에 대해 북측은 기술적인 문제점을 들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북측으로서는 영공을 개방하는 게 못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장성급회담 재개에 합의했으면서도 날짜를 못박지 못한 것도 군사분야의 민감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7월로 회담시기를 재촉했지만, 북측은 “군부가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게 우리로서는 가장 아쉬운 점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6·17면담’에서 7월 중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날짜를 받아내려 총력을 기울였지만 북측은 끝내 ‘선물’을 주지 않았다. 공동보도문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적 해결’ 등 원론적 문구만 실려야 했다. 북측으로서는 미국의 의사를 타진할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여부는 추후 다른 루트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와 함께 우리측이 6·17면담에서 제의했다는 ‘중대 제안’의 내용이 끝내 공개되지 않은 점도 궁금증을 가시지 않게 하는 대목이다. 일정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잡힌 이산가족과 경협 등의 분야도 완전 정상화로 낙관하긴 이른 상황이다. 과거에도 이런 일정들은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중단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양측이 16,17차 장관급회담의 일정은 잡았지만, 회담 정례화에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도 불안한 정상화를 대변하는 부분이다. 우리측이 북한에 지원할 식량 규모는 쌀 40만t 수준이 될 전망이다. 최근 3년간 우리측은 매년 쌀 40만t씩을 북한에 보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남측, 美입장 따라가 불쾌”

    “불쾌하다.” 지난 11일 새벽(한국시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북한의 일부 관리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북한 정부 인사들은 “(북핵과 한·미동맹 등의 문제에 있어) 남측이 갈수록 미국 입장을 따라가는 것 같아 불쾌하다.”면서 “이렇게 민감한 때에 두 정상이 나란히 앉아 공동선언문 같은 것을 밝히는 것을 우리로서는 좋게 봐줄 수 없다.”라고 평양에 주재하는 일부 외국 외교관들에게 밝혔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알려지기는 처음이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일부 실무급 관리가 정상회담 직후 짤막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힌 것일 뿐 북한 정부의 정리된 공식 입장은 아니다.”면서 “다만 북한은 북한의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쉽다는 것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공식 반응을 일체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고민이 크다는 증거”라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평화적·외교적 해결방안이 재확인됨에 따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결정적인 유인책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마냥 낙관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만일 7∼8월 중에 6자회담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상황이 아주 어렵게 되면서 교착상태가 올 연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상경 재판관’ 보도 형평성 논란

    최근 가장 관심을 끌었던 보도 중 두 가지가 이상경 전 헌법재판관의 탈세 의혹과 태영의 킨텍스 관련 의혹 보도였다. 이 전 재판관 사건은 때때로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이뤄졌던 우리 언론의 고위공직자의 재산형성 의혹 보도 태도와의 비교관점에서, 태영 보도는 SBS의 모기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우선 이 전 재판관 사건은 그 의미가 제법 깊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았다. 사실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항상 대법원에 밀린다는 인상을 줘왔다. 무슨 국가행사든지 대법원장은 대통령·국회의장과 함께 ‘3부 수뇌부’로 일컬어졌지만 헌재소장은 낄 자리가 모호해서 의전 실무자들이 속앓이를 하곤 했다. 그러던 게 지난해 대통령 탄핵사건과 행정수도 이전 사건을 다루면서 헌재는 숨겨져 왔던 폭발적인 힘을 과시했다. 이런 조직의 고위 관계자가 탈세 연루 의혹을 받고, 그것도 헌재 출범 이래 첫 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5일 KBS가 처음 보도한 이 사건은 그 다음날부터 다른 언론에도 잇달아 보도됐다. 하지만 보도 태도는 달랐다. 조선·중앙·동아 등 일부 일간지들은 사실 전달 수준에서 간략하게 기사를 내보냈다. 의혹이 제기된 지난달 26일자 보도와 이 전 재판관이 용퇴했다는 3일자 기사만 보인다. 반면 한겨레·경향신문은 1면과 사회면 머리기사로 이 문제를 크게 전달했다. 태영 관련 보도는 일산에 지어진 전시장 킨텍스와 관련이 있다. 태영은 킨텍스 관련 공사를 맡으면서 공사에 들인 흙을 가공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남겼다는 의혹 때문에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보도가 지난 1일 SBS에서 전파를 타면서 태영 관련 부분은 제외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SBS는 2일에는 속보 형식으로 태영 관련 소식까지 전했다. 반면 KBS와 MBC,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비중 있게 처리해 관심을 끌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방송 관련 사업에 관심 있는 대기업들이 이 사건 보도를 유심히 지켜 보고 있다는 점. 한 관계자는 “사기업이 방송을 소유하니 제대로 보도를 못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게 되면 방송 사업에 관심 있는 우리로서는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전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투기자본 차단 취지는 좋지만

    정부가 한국 자본시장이 외국계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투기자본이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 세법에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 외국과 맺은 조세조약도 실질소득이 발생한 한국이 부과할 수 있도록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과세영역 확대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부분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온 뉴브리지캐피털이나 론스타 등이 금융기관이나 대형 빌딩 매매를 통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차익을 챙기고도 한푼의 세금을 물지 않은 데 따른 반(反) 외자정서를 감안한 조치로 이해된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투기자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실에 맞게 세법이나 조약을 개정키로 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약 개정은 상대국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만큼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성사되지 않는다. 더구나 조약 개정으로 입게 될 상대국의 손실도 보전해 주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투기자본 대책이 ‘국내용’이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투기자본과 투자자본의 구분도 쉽지 않다. 동북아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해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정교한 전략 수립이 절실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주요 선진국들이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 횡포 차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약 협상 상대국에 효과적인 압력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외 자본간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외국계 투기자본도 국내 자본 입찰 배제라는 특혜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퇴계의 고백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의정부의 사인(舍人)이 되어 노래하는 기생이 눈앞에 가득하였을 때 문득 한 가닥 환희심이 일어나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기미(機微)는 살고 죽는 갈림길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이 말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의미심장하다. 퇴계는 ‘화려하고 시끄럽게 쾌락에 빠지는 것’과 ‘그것에 초연할 수 있는 평상심’을 ‘살고 죽는 생사의 갈림길(機則生死路頭也)’로 보고 있음인 것이다. 특히 퇴계는 술을 경계하고 있었다. 일찍이 15살 되던 해 송재공을 따라 안동에 갔을 때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진 실수를 한 이래로 술에 대해 평생 근신하였다. 퇴계는 병약했으나 술은 즐기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는 퇴계가 만년에 도산서당에서 지은 시 중에 술에 관한 시가 서너 수 나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퇴계는 직접 집 뒤의 산속에 술 빚는 창고를 두어 서당에 손님이 찾아오면 산봉우리로 불러 술을 마셨다고 한다.‘달밤에 이 문량이 도산으로 찾아오다(月夜大成來訪陶山)’란 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밤 함께 즐겁네/좋은 손님들 찾아오니, 산봉우리 넘어 불러/탁주잔 기울여 마시네. 관란헌에 셋이서 솥발처럼 앉아/그윽한 마음 열고, 다시 난초 배에 올라/달 놀이 하다 돌아왔네(良夜同欣好客來 隔岑呼取濁 盃 臨軒鼎坐開幽款 更上蘭舟弄月回).” 이밖에도 절우사(節友社) 화단의 매화가 늦봄에 피어나자 읊은 퇴계의 시는 아취(雅趣)를 느끼게 한다. 그 시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찌 필요하리오/난초향기 같은 말. 하늘가에 옛 친구들/볼 수가 없어, 그대 더불어 날로 아무 일 없이/술잔 기울여 마시네(今者何須蘭臭言 天涯故人不可見 與爾日飮無何尊).” 이처럼 술을 좋아하던 퇴계였으나 평생 술을 절제하여 취하지는 않았다. 술에 대한 경각심을 퇴계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벼슬에 올라 서울에 있을 때에 늘 사람에 이끌려 날마다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러나 얼마 뒤 한가한 날에는 문득 심심한 마음이 들어서 돌이켜 생각해 보고는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다.” “또 내가 일찍이 금문원(琴聞遠:제자))의 집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산길이 몹시 험하였다. 갈 때는 말고삐를 잔뜩 잡고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길 험한 것을 아주 잊어버리고 마치 탄탄한 큰 길을 걷듯 하였으니, 마음을 잡고 놓음이 이처럼 심히 두려운 것이다.” 퇴계의 두 번째 고백 역시 학문의 길은 몹시 험한 산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항상 말고삐를 잡고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하며, 마치 탄탄한 큰길처럼 함부로 가면 낭패를 본다는 내용으로 제자들에게 내리는 경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젊은 날의 퇴계는 마음을 다잡고 거경(居敬)의 마음으로 한결같이 학문에 열중하였던 것이다.
  • [사설] 나랏빚 증가 속도 너무 가파르다

    나라의 빚이 너무 빠른 속도로 불어나 큰 걱정이다. 정부가 밝힌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현재 203조원에 이른다.1997년 65조원에서 불과 7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6%로 잡았을 때 2008년쯤이면 300조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어느 정도의 빚은 불가피하지만 이런 속도로 늘면 이자지급액도 만만치 않아 재정의 경직화와 국민 부담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6.1%로 미국(63.5%)·일본(163.5%)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6.8%)보다는 훨씬 낮지만 앞으로 돈 들어갈 데가 많은 우리로서는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복지수준이 이미 정착단계여서 지급금이 많아 채무비율이 높을 뿐이다. 우리는 복지지출이 GDP의 10%로,OECD 회원국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당정(黨政)은 당장 내년부터 저출산·고령화 등을 고려해 복지예산을 연평균 9.3% 이상, 자주국방을 앞당기기 위해 국방비도 9.0% 이상 올리려고 한다. 그뿐인가. 국가 균형발전에다 통일비용까지 재정수요는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국가채무 급증의 주요인은 공적자금의 국채전환(15조원)과 환율방어(17조 8000억원)였다. 후자의 경우 외환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화 절상을 막지 못했는데, 이는 재정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빚이란 본래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나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정 목표상 성장 잠재력의 확충보다는 복지 확대에 비중을 두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165조원이나 쓸어 부은 공적자금의 회수율(43%·71조원)에 더욱 신경쓰고, 정치성 예산의 남발을 자제하는 등 재정관리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송두율칼럼] 느림의 미학

    [송두율칼럼] 느림의 미학

    최근 눈에 띄게 부쩍 는 중국 관광객들을 위해서 어느 여행사가 특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속도제한이 없는 독일고속도로 위를 독일제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질주해 보는 일정도 들어 있다.‘현대화’의 구호 밑에서 계속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중국의 신흥 갑부들이 드디어 속도가 주는 짜릿한 쾌감을 독일 땅에서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1989년 이래 줄곧 서독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추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게 된 옛 동독사람들은 가끔 ‘동독에 대한 향수(Ostalgie)’에 젖어, 그동안 서독의 소비제품에 밀려 상점 진열대에서 사라졌던 상품을 다시 찾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사회가 안고 있는 속도의 변화는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정도의 만족감이나 성취감도 주지만 불안감이나 불만감도 심어준다. 현대사회에서 속도가 지니고 있는 특성에 대한 고찰을 하나의 학문적 영역으로까지 발전시킨 프랑스의 폴 비릴리오(P Virilio)는 무엇보다도 전쟁이 속도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활-총-대포-미사일-레이저로 발전해온 무기체제가 바로 속도가 지니는 공격성과 파괴력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또 전자통신 혁명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든지 또 어떤 곳에서든지 일어나는 일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들고 있으나 이로 인해 우리의 지각능력은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기계의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동성을 높이는 자동차가 자주 교통체증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다. 어떤 때는 걸어가는 편이 더 빠를 수도 있다. 목적지에 한시라도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 개발된 기술수단이 이제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정체시키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설을 문학적으로 다룬 독일작가 스텐 나돌니(S Nadolny)의 ‘느림의 발견’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의 실제인물 존 프랭클린(1786∼1847)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과 동작이 극도로 느려 주위로부터 항상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이점이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보다 더 사물을 치밀하게 관찰하게 만들었으며, 그 때문에 그는 유명한 북극 탐험가가 될 수 있었다. 느림이 곧 삶의 리듬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이 성장소설이며 해양모험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느림’이라는 소설 속에서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델라(M Kundela)도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 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라고 묻는다. 느림의 내면에 담겨 있는 인간성을 두 소설은 강조하고 있다. 사실 강박적인 속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오늘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패스트푸드’ 대신에 ‘슬로푸드’를 위한 운동,‘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모임’ 등도 있다. 심지어는 ‘바쁘면 천천히 가라’라는 제목의 책은 게으름의 필요성까지도 역설한다.‘빨리 빨리’ 움직여도 먹고 살기 힘든 판국인데 그렇게 ‘천천히’ 움직인다면 어떻게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당연히 생길 수 있다. 우리에게도 ‘바쁘면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지난 40년간의 압축성장은 300년 넘은 오랜 산업화의 역사를 가진 서구 산업사회에서보다 시간이 곧 사회관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재원(財源)이라는 생각을 더 굳혀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앞만 보고 ‘빨리 빨리’ 달려 왔던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도 ‘천천히’ 걸어야만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의 비밀은 우리 모두가 그 속에 살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의 의미에 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데 있다고 미하엘 엔데(M Ende)의 소설 ‘모모’는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질주보다는 느림이 이제는 우리의 삶의 질을 위해서 절실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느림의 미학을 강조해 본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한류열풍에 가려진 열악한 기초예술현장

    한류열풍에 가려진 열악한 기초예술현장

    대학로 흥행연극 ‘관객모독’에 출연중인 배우 전수환(40)씨. 그는 요즘 무대에 설 때마다 뿌듯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3년여의 외도 끝에 돌아온 연극무대가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엔 가족을 속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고교를 졸업하고, 극단 76단에 입단해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며 무대밥을 먹은 지 20여년. 무작정 좋아서 뛰어든 일이라 수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밥벌이는 포장마차 등 아르바이트로 대신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해 2∼3개 작품에 출연해서 받는 돈은 고작 600만∼700만원. 여기저기 빌린 생활비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를 악물고 무대를 떠났다.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난생 처음 월급이란 걸 받았다. 그렇게 3년을 일해 빚을 거의 다 갚을 때쯤 딴 마음이 생겼다. 지난 연말 극단에서 연락이 오자 그는 망설임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아내에게는 ‘잘렸다.’고 거짓말했다. 아내는 지금도 그가 새 직장을 잡을 때까지만 연극무대에 서는 줄 알고 있다. 언제 들통날지 모를 상황에서도 그는 “무대에 서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미소지었다. 전씨의 사례는 2005년 대한민국 연극인들의 실상이자, 한류열풍의 그늘에 가려진 국내 기초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한류를 이끈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들이 ‘문화산업’의 주역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소설가, 시인, 화가, 공연예술인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 우리 문화계의 양면적인 현실이다. ●4대보험 ‘사각’… 고용·산재가입 10% 미만 지난 6일 한나라당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연극배우의 현실과 발전방향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벼랑 끝에 몰린 연극인들의 육성이 거침없이 터져나왔다.‘에쿠우스’ 등 수많은 연극과 TV드라마, 영화에 출연해온 중견 배우 강태기(54)씨. 그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노동판이나 아르바이트 현장을 전전하는 배우들이 허다하다.”면서 “부를 누리거나 융숭한 대접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문제에 신경쓰지 않은 채 창작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우 김지숙(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씨는 “연극계가 어렵다는 얘기는 수십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젠 정말 절벽앞에 선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연극협회가 지난해 9월 전국 연극인 6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는 이같은 현실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준다. 조사 당시 연극인들의 월평균 소득은 23만 2000원. 일반 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56만 7000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작품당 평균 수입은 55만 7100원. 응답자의 41%가 임시직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극배우협회가 지난 연말 배우 300명을 전화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더 열악하다. 월 평균수입이 10만원도 안된다는 응답이 65%를 넘었다. ●“생존권 보장을” 지난 한달 파업도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회안전망 제도인 4대 보험(고용, 산재, 의료, 국민연금)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 연극협회 조사에서 93%는 산재보험에,92%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연금 미납률과 의료보험 미가입률도 각각 67%와 40%에 달했다.‘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연극인들의 비참한 현주소다. 배우협회가 ‘관객을 볼모로 삼는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지난 4월 한달간 ‘파업’을 감행한 것은 이런 절박한 현실인식에 따른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는 배우들의 집단행동은 그 순간마저도 어쩔 수 없이 생계를 택해야 하는 배우들의 대거 이탈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허현호 배우협회장은 “‘춥고 배고픈’이라는 수식어를 멍에처럼 짊어지고 사는 연극인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위안삼았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은 물론 연극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문학, 미술, 전통예술, 무용 등 기초예술 장르 전반에 걸친 공통된 문제다. 국악인 김덕수씨는 “전국 20여개 한국음악과에서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졸업생들이 배출되지만 취업은 가뭄에 콩나듯 하는 실정”이라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분야로 전업하거나 시간당 2만원 내외의 중·고교 특기적성교육 강사로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권기금 지원 받아 ‘가뭄에 단비’ 현장 예술인들의 절박한 비명에 정부와 정치권도 서서히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로또복권 등으로 조성된 복권기금 446억원이 문화예술진흥사업에 투입된 것은 아쉬운 대로 타는 가뭄 끝에 만난 단비였다. 한나라당에 이어 열린우리당도 지난 6일 문화예술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정치권의 관심도 달아오르고 있다. 허현호 배우협회장은 이날 오전엔 한나라당 토론회에, 오후엔 열린우리당 문화특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하느라 바빴다. 정략적인 접근이라는 비아냥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전시성 행정 대신 기초예술인들에게 실질적인 지원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그나마 실낱 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2003년, 세계 대표적 공연예술축제인 프랑스 아비뇽축제가 공연예술인들의 파업으로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년에 507시간 이상을 일하면 일년치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던 것을 열달반 동안 같은 시간 일해야 8개월치 실업수당을 받도록 법을 개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연차 서울에 체류중인 영국 연출가 글렌 월포드는 “영국에선 배우, 연출가, 스태프가 참여하는 조합이 정당한 임금 지급과 시간당 보수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로선 갈 길이 먼 셈이다. 문화관광부 김영산 기초예술과장은 “오는 7월 문예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면 좀더 실효성 있는 지원이 마련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예술교육에 힘을 기울여 문화예술향수층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튼튼한 뿌리 없이는 아름다운 꽃과 탐스러운 과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한 자연의 이치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수입 1% ‘아름다운 기부’ 기초예술의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연극인 스스로가 발벗고 나섰다. 연극인들의 복지를 위한 재단이 20일 오후 6시 문예진흥원 대극장에서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연극인복지재단은 기초예술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열악한 제작 여건으로 빈사 상태에 빠진 연극인들을 지원하고자 만든 모임. 지난해 11월 재단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배우 박정자씨를 대표로 뽑았다. 추진위원으로는 김미혜 한국연극학회장,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이종훈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 윤석화 월간 객석 대표 등 15명의 연극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단의 대표적인 사업은 연극인 1%기부 운동. 연극배우들은 출연료, 극단이나 기획사는 매표 수입의 1%를 자발적으로 재단에 기부하는 운동이다. 출범을 앞두고 박대표 개인 후원 모임인 꽃봉지회와 극단 자유 이병복 대표, 그리고 배우 윤석화씨가 각각 1000만원을 기부해 총 3000만원의 기금이 모인 상태다. 재단은 이 기금을 토대로 연극인 기금을 위한 공제회 설립, 연극인 생계지원, 연극인 자녀 학비지원, 의료 지원 등의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박 대표는 “재단의 설립은 연극인 모두를 위한 희망의 첫걸음이자 연극인 스스로 현실 개혁의 주체가 되는 중요한 터전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20일 열리는 출범식에는 연극인뿐만 아니라 정·재계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기초예술 살아야 문화산업도 성장” “그동안 ‘순수예술’로 불러왔던 핵심 장르를 ‘기초예술’의 개념으로 재정립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켰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심재찬(연극 연출가)기초예술살리기범문화예술인연대 공동상임집행위원장은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갈수록 황폐해져 가는 문화적 토양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면서도 막상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무기력했던 예술인들이 마침내 머리를 맞대고 분야별 실태조사와 대안 마련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큰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 지난해 4월 출범한 기초예술연대에는 장르와 이념적 성향 등을 뛰어넘어 60여개 문화예술단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는 “문화산업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산업적이지 않은 분야들은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오도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기초예술연대의 출범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안”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예술현장의 실태가 심도있고 현실감있게 파악된 적이 없고, 그로 인해 문화정책 또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졌다는 데 대한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기초예술연대는 지난 한해 연속포럼을 통해 내부적으로 장르별 현황과 정책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국회와 문화관광부, 문예진흥원 등을 상대로 새로운 예술정책 설정을 촉구하는 등 외부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심 위원장은 “초반엔 기초예술은 물론이고, 예술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정치인들을 보면서 ‘아,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면서 “지속적인 설득 끝에 로또기금을 문화예술계로 끌어들인 건 대단한 성과였다.”고 돌아봤다. 향후 기초예술연대의 과제는 조만간 전문민간인으로 새롭게 구성될 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현장 중심의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것. 그는 “창작의 질을 높이는 방안과 예술교육의 정착이 궁극적인 해결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국유재산 찾아내기’ 독보적 인물 산림청 국유림경영과 노병완씨

    ‘국유재산 찾아내기’ 독보적 인물 산림청 국유림경영과 노병완씨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능으로 통하는 정보기술 시대에도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풀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더욱이 그같은 능력은 소수만이 가지고 있어 빛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산림청 국유림경영과에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노병완(73)씨도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될 ‘빛’과 같은 존재다. 그는 국유재산을 식별해 분류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춘, 독보적 인물이다. 그런 만큼 국내 토지제도의 역사도 꿰뚫고 있다. 산림청 안팎에서 국보급(?) 공무원으로 불리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1964년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한 후 1976년 6급으로 공직을 사퇴했으나 1989년 산림청의 구애를 받고 재차 공직에 발을 들여 놓았다. 국유재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션이 부여됐지만 그 업무를 수행할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산림청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아니 “못 놓아준다.”는 표현이 정확할 법하다. 숨겨진 국유재산을 찾아내기 위해 ‘장인의 손’을 더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공직 퇴임후 계약직 채용된 ‘국보급 공무원’ 그의 책상에는 모든 공무원의 필수품인 컴퓨터가 없다. 잘 깎인 연필과 일제시대 법령집 편람, 그리고 임야도와 호적등본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류뭉치만 수두룩하다. 국유림경영과에서 그가 맡고 있는 공식 업무는 국유림 보호·관리 및 국유재산 관련 소송 자문이다. 변호사의 공직 진출이 활발하고 해박한 지식을 갖춘 공무원들이 즐비한 공직에서 굳이 고희를 넘긴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산림청이 국유재산 소송과 관련해 법정에서 펼치는 공수(攻守) 논리 및 근거는 그에게서 나온다. 개인이나 법인 등의 명의로 바꿔치기한 국가재산을 찾아내 회수하는 작업뿐 아니라 교묘히 조작된 옛날 서류를 들고 자기 재산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도 그의 몫이다.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뒤 만15년간 그가 찾아내 국고로 환수한 임야만 1만 2700㏊(3800만평)에 달한다. 이는 남산(340㏊)의 37.3배, 여의도(840㏊)의 15.1배나 되는 엄청난 면적이다. 1992년에는 망실재산으로 남아 있던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옛 동경제국대학 연습림 7000㏊를 찾아내 정식 등재하는 성과를 올렸다. 금강산과 맞닿은 최전방으로 접근이 어려울 뿐 아니라 지적공부조차 불타 관심이 없었던 지역이었지만 그가 1913년 제작된 기록을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내면서 가능해졌다. 소송으로 환수한 임야는 관청과 개인을 대상으로 한 682㏊로 공시지가만 23억원에 달한다. 노씨는 “국유재산 환수소송은 연 평균 200여건(지난해 377건)에 이르고 있다.”면서 “돈과 직결돼 있다 보니 소송기간도 길고 공방도 치열해 한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뛰는 범죄에, 나는 저격수” 노씨는 “임야 등 토지와 관련한 소송이 남발되고 대처가 어려운 것은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지대장과 지적도, 임야대장과 임야도를 통칭하는 지적공부는 일제시대에 제작됐다. 일제가 세금을 걷고 국토관리계획을 세우기 위해 만든 것이다. 구한말에 제작된 ‘결수연명부’란 토지대장이 있으나 지번이나 도면이 없어 쓸모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제작된 지적공부 중 상당수는 6·25때 소실됐다. 특히 강원도와 경기도 등 격전지역은 더욱 심한 편이다.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관보가 유일한 자료이나 색인(목록) 역할에 불과하고 6·25 이후 복구돼 지번 등이 달라진 것도 많다. 노씨는 “1960년 민법이 공포되면서 귀속재산 등기가 이루어졌지만 혼란한 틈을 타 국유재산은 물론 남의 재산까지 ‘주워먹는’ 일이 허다했다.”면서 “당시 위·변조가 남발한 것도 이런 연유에 기인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국유재산을 가로챈 사람들의 수법은 혀를 찰 만큼 놀랍다. 이들은 이를 싼값에 제3자에게 매각하거나 금융권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노씨가 적발, 환수한 임야를 놓고 당사자간 손해배상소송이 벌어지는 등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최근 개발 붐이 일고 있는 경기도 파주에서는 일제때 작성된 매도, 매매계약서는 물론 호적(제적)까지도 위·변조해 자기 땅임을 주장하는 악질범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현미경 같은 노씨의 눈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한번은 빠져나갈지 모르지만 반드시 노씨에게 들통나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노씨는 공무 수행을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와 토지 관련 옛 법령을 마스터했다. 당시 사용한 글씨체나 문서양식 등이 그의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일본인도 모르는 글씨를 읽는다.”는 평가가 농담이 아닌 듯하다. ●“임금 등 욕심 생기면 공무수행 제대로 못해” 그는 딱히 내놓을 만한 학력이나 특별한 자격증도 없다. 직장에서는 계약직이다 보니 직급 및 직위가 없어 승진, 호봉과도 무관하다. 70을 한참 넘긴 나이지만 매일 7시간을 투자해 서울에서 대전청사 산림청으로 출퇴근할 만큼 타고난 강골이다. 서울 근무를 요청할 수도, 보다 나은 대우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일절 입을 떼지 않는다고 한다. 사사로운 욕심이 생기면 제대로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법원에서 패소한 상대로부터 민망한 욕을 듣고 폭행도 당해 봤지만 초지일관 흐트러짐이 없다. 노씨는 현재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하나하나 전수하고 있다. 우선 삼림법과 조선부동산등기령 등 옛 임업분야 법령 규정을 해석한 ‘국유재산관련송무자료집’을 만들었다. 한자와 일본어를 한글로 해석하고 설명을 단 역작이랄 수 있다. 관련 지식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결정적인 실수를 할 수 있다는 행정의 기본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노씨는 “특별히 빛나는 일이 아니다.”라고 겸손해했다. 산림청도 지난해 송무계를 신설하고 지적업무에 대한 전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의 빈자리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산림청 직원들은 “우리로서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계셔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노씨의 건강을 기원했다. 평생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장인’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할머니 바다사자 짱이에요”

    “할머니 바다사자 짱이에요”

    “이빨은 닳고 눈도 어둡지만 아직도 ‘한 묘기’ 하지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사육사가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자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2마리가 지느러미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이 바다사자들은 스물한살 된 암컷 미순이와 향순이. 바다사자 평균수명이 25년이니 사람으로 치면 고희(古稀)를 넘긴 할머니들이지만 ‘왕년의 대스타’답게 악수하기, 박수치기 등으로 어린이들을 즐겁게 했다. 어린이날인 5일에는 더욱 많은 관람객들 앞에서 더욱 신나게 묘기를 펼쳐보일 것이다. 물개, 바다사자, 침팬지 등 공연장을 주름잡던 동물스타들이 나이 들어서도 어린이들의 친구 역할을 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전시용 우리로 옮기거나 다른 동물원으로 가서 가벼운 공연을 계속하는 등 노익장이란 말이 꼭 어울린다. ●활기찬 ‘노년’…영원한 팬서비스 멕시코에서 태어난 미순이와 향순이는 한살 때인 1985년부터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공연을 하다 2003년 불곰 4마리와 맞트레이드되어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적했다. 전성기 때 1000만원을 웃돌던 몸값은 나이 들면서 400만원까지 떨어졌다. 노안(老眼)으로 눈이 가물가물해진 데다 이빨도 닳아서 ‘숫자판 찾기’,‘링 통과’,‘뽀뽀 점프’ 등 고난도의 묘기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하루 두 차례씩 건강검진을 받고 꼬박꼬박 비타민제도 먹는다. 하지만 이들이 능청스럽게 사육사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공연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바다사자답게 우렁차게 울부짖을 때면 어린 손님들의 박수갈채가 터져나온다. 사육사 박은화(23·여)씨는 “어린이들이 동물과 친해지고 습성을 잘 이해하도록 가벼운 ‘맛보기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나이들어 어린이대공원에 요양온 셈이지만 간단한 공연 등은 이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에서 15년 동안 공연을 해온 물개 영구(17·♂)와 영구의 짝 연순(11·♀)이는 지난해 은퇴해 공연장 옆에 마련된 물개용 풀장으로 옮겼다. 건강상태는 괜찮은 편이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실버타운’에 입주한 것. 하지만 사육사 없이도 ‘점프하기’나 ‘죽은 척하기’ 등 왕년의 솜씨를 뽐내며 ‘팬서비스’를 계속해 이들을 본 관람객들은 좀처럼 우리 앞을 떠나지 못한다. ●무리에 적응 못해 슬픈 최후 맞기도 하지만 공연동물들의 노후가 이들처럼 모두 행복하지만은 않다. 에버랜드 침팬지쇼에서 활약하던 갑식이는 은퇴한 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무리들 품으로 돌아갔지만 인간에 길들여진 탓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왕따’를 당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지난해 6월 17살로 생을 마감했다.2002년 에버랜드에서 청주동물원으로 간 물개 몰리도 1년 만에 죽음을 맞았다. 물개로서는 한창 때인 8살이었지만, 부검을 해보니 위장에서 조약돌, 나사 같은 이물질이 나왔다. 동물원 관계자는 “물개 같은 기각류(지느러미 다리를 가진 포유류)는 뭐든 넙죽넙죽 받아먹는 특성이 있다.”면서 “관람객들이 장난으로 던진 이물질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고 안타까워했다. 몰리를 마지막으로 청주동물원에서는 더 이상 물개를 들이지 않고 있다. 어린이대공원 동물관리팀 이재용 사육과장은 “정말 동물을 사랑한다면 함부로 먹이를 던져주지 않는 최소한의 에티켓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 파동과 한승조·지만원·조갑제 같은 인사들의 극우 발언 퍼레이드 등 뒤에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착취·수탈당했다는 것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외려 그 기간 동안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이론이다. 우리로서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론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기본적으로 ‘근대’에 경도된 물량주의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이 비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량주의와 수치화·계량화는 기본적으로 ‘과학’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과학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수치화·계량화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했지만 온전한 반박이라 하기에는 이르다. 근대화란 단순히 경제개발뿐 아니라 법·제도·문화 등 상부구조적 요소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유의, 서구 미시사의 영향을 받아 최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1930년대 식민지조선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화가 먹물처럼 한반도를 물들여나가고 있었음을 찬찬히 보여준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만만치 않은 것은 또 하나의 버팀목이 있어서다. 바로 ‘자본주의체제 이행논쟁’이다. 이 주제는 1930년대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의 역사적 대논쟁에서 보듯 좌파 경제학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알려졌다시피 모리스 돕은 ‘경영형 부농의 등장’을, 폴 스위지는 ‘시장관계로의 편입’을 중세봉건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체제 이행의 원인으로 꼽았다. 흔히 전자는 내부동력을 원인으로 본다는 점에서 내인론, 후자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외인론으로 불린다. 아주 단순화하자면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 근대화=모리스 돕 논리’로,‘한국·중국 근대화=폴 스위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론적 배경이 이렇기에 한국 식민지근대화론자의 대부로 꼽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원래 학문적 출발점은 종속이론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친일파의 논리’로만 치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내용 립서비스’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 학자들이 해외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부딪히는 벽도 여기에 있다. 한국식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펼치면 외국학자들은 ‘학술논리’로 받아들이기보다 ‘제3세계 정치운동’쯤으로 이해하면서 “아직도 저런 철 지난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서양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국제학술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그런 의미에서 찬반을 떠나 식민지근대화론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때마침 적합한 책이 나왔다. 일본의 경제사학자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가 쓰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가 번역한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혜안 펴냄)이다. 안병직 명예교수가 식민지근대화론자로 변신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사토루 명예교수라는 점도 또 하나의 주목거리다. 일단 1992년에서 2000년 사이 발표한 논문을 모아놓은 이 책의 기획은 야심차다.‘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사’에 맞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사’를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출발점은 경영형 부농이 서양에서 가장 뚜렷했고 일본이 그 다음이었고 그 외 동아시아지역이 뒤를 잇는다는 데 있다. 이 차이점이 향후 동아시아 근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일본은 서구의 충격과 내부의 동력이 동시에 작용한, 이를테면 외인론(폴 스위지)에 내인론(모리스 돕)을 더한 복선적 발전모델을 걷는 반면, 그외 동아시아 국가는 서구의 충격이라는 외인론적 모델에 더 가깝다. 전체적인 그림이 이렇게 그려지면 일본제국주의가 무조건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외려 급격한 봉건잔재 청산으로 근대화가 더 빨리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고 본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본원적 축적’에 가깝다. 이제 민족의 문제로 파악했던 식민통치의 폭력성은 자본주의 근대화의 일반적 폭력성으로 대치된다. 본원적 축적이라는 점에서 ‘개발독재시대’ 역시 도덕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설정된다. 식민시대와 박정희시대에 대한 한국과 일본 우익의 시각이 비슷한 까닭이다.‘그 때는 먹고 사는 게 급했다.’,‘그래도 그 덕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됐다.’는 화법을 떠올리면 된다. 사토루 명예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일본 경제성장을 연구했을 때 경영형 부농층에 이어 형성된 100인 미만의 중소규모 기업이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도 마찬가지였다. 또 서양 자본주의 발달사에도 일부 이런 대목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예 중소규모기업보다 대규모 공장제 생산을 강조했던 서양경제사의 통설을 실증적으로 재검토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역공’이 시작된 셈이다. 사토루 명예교수의 논의는 경제발전과 근대화에 관한 일반이론이지만 일본에는 근대화의 내재적인 싹이 있었다는 일본 중심적인 관점이 전제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려대 아세아硏 정안기교수 “우리는 미시적인 경제사회학 연구를 얼마나 축적했나.” 나카무라 사토루 명예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는 사토루 교수의 논의를 ‘친일 대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정 교수는 “사토루가 기본적으로 일본 중심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좁은 틀로만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원래 남미와 아프리카는 동아시아보다 높은 수준의 발전단계를 보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면서 “그렇다면 후발 주자들의 성공적인 근대화에 기여한, 뛰어난 흡수능력은 무엇이냐라는 게 바로 사토루의 주된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사토루의 연구는 “세계사적 전망 속에서 동아시아의 성장을 서구의 경제발전론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경제발전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라는 평가다.‘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제시대 경제성장은 신기루라고 주장한 충남대 허수열 교수의 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정 교수는 “경제사적 연구에서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개입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이해는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전망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주장이 학술적으로 얼마나 유효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안병직·이영훈 교수로 대표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평가는 한다.”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고 말했다. 전부가 아닌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경제사학계만의 논점을 제공하기보다 기존 역사학계와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경제사에 대한 기본 연구성과도 없이 한 연구자가 조선후기·식민지·근대 모두 연구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학문적 결론에 대한 찬반 논쟁 자체보다, 제대로 된 논쟁에 이를 만한 경제사적 연구 기반조차 없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환율 900원대 나쁘기만 한가] 유가등 수입비용↓ 소비자 구매력↑ ‘득’될수도

    [환율 900원대 나쁘기만 한가] 유가등 수입비용↓ 소비자 구매력↑ ‘득’될수도

    환율이 세 자릿수로 떨어진 게 그렇게 나쁜가. 언론들은 일제히 ‘충격’과 ‘우려’라는 표현 속에 경제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요란스럽게 떠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된다. 수출대금 1달러를 받았을 때 환율 2000원과 1000원의 차이는 확연하다. 그러나 모두가 피해자는 아니다. ●수출에 미치는 실제 영향은 작다 사실 대기업들은 올해의 평균치 환율을 이미 900원대로 보고 경영전략을 짰다. 환율 1000원선이 붕괴됨에 따라 수출시 ‘초과 이익’은 줄겠지만 당장 손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시장에서 ‘가격 선도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환차손만큼 가격을 올려 손해를 만회할 수도 있다. 현오석 무역연구소장은 “5대 그룹의 수출비중은 우리나라 전체의 32%이고 이들이 만드는 자동차, 휴대전화, 반도체, 컴퓨터, 선박 등 5대 폼목의 비중은 44%에 이른다.”며 “환율인하가 수출 총액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출금액이 100만달러 미만인 3만 5000여 중소업체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들은 ‘가격 선도자’도 아니고 환율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여유도 없다. 하지만 금액면에서는 전체 수출의 2%에 불과하다. 따라서 환율 1000원선이 붕괴됐다고 우리나라 수출 전체에 타격을 주고 경제성장이 후퇴한다는 식의 ‘평면적 분석’은 이제 맞지가 않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실업문제가 야기될 수 있으나 이는 정책적 선택으로 대처할 문제다. 우리나라의 기술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진보했다면 환율은 떨어질 수도 있다. 중소기업도 환율이 아닌 경쟁력으로 승부할 기회다. ●소비자에겐 득이 될 수 있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연간 300억달러 이상 흑자를 내는 상황에서 환율인하는 당연한 결과다. 달러가 넘쳐나면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는 올라가고 원·달러 환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으려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300억달러어치 이상의 원화를 찍어내면 단기적으로 환율을 유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중에 불필요하게 공급된 통화이기에 한국은행은 다시 통화안정채권을 발행, 시중자금을 거둬들여야 한다. 그러나 채권물량이 늘면 시중금리는 오르게 된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정책기획관은 “환율을 막다 보면 금리가 올라가는 등 다른 쪽에서 구멍이 생기게 된다.”며 “결국 기업과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만 늘어 투자와 소비의 감소로 경기후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가 좋을 때 환율 고수를 위한 일시적인 시장 개입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인 최선책은 아니라는 것. 소비자 입장에서도 환율 인하가 불편한 것은 아니다. 해외여행을 하거나 외국에 돈을 부치는 사람은 부담이 줄어서 반길 일이다. 수입 가격이 떨어져 내수업체들은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고 소비자들도 싼 제품을 접할 기회가 늘게 된다. ●내국인의 해외투자 길 넓혀야 환율안정을 위해 국내에 넘치는 달러화를 줄여야 한다. 수출을 막을 수는 없기에 가급적 자본수지 흑자를 균형쪽으로 맞춰야 한다. 외환보유고가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도 버려야 한다. 대신 내국인이 해외자산을 보유하거나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정경제부 등이 해외 자녀를 위한 주택구입 허용 등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中위안화 절상 대비·내수침체 우려 원·달러 환율이 이틀 연속 세 자릿수를 유지했으나 외환당국이 과거처럼 공격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아 외환정책에 변화가 있는지 주목된다. 외환당국은 26일 시장에 개입, 환율 급락을 막기는 했다. 그러나 추가적인 환율 하락을 점치는 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큼의 적극성보다는 다소 유연성을 보였다. 재경부 관계자는 “시장이 당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달러화 선물 매도가 지나친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러면서도 환율의 세 자릿수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환율 1000선 붕괴가 ‘위기’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흑자로 인한 환율 하락 요인 이외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는 뜻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기술 진보가 미국이나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앞섰다면 환율 하락은 정상적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국제수지가 균형을 이룬 지난 1993년을 적정환율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재고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93년을 전후해 국제수지가 적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물가를 감안한 ‘실효환율’은 과대평가됐을 수 있으며 지금의 환율 하락세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 외환당국이 보는 원·달러 실효환율은 1015∼1050원이다. 정부의 이런 진단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설’과도 맞물린 것으로 봤다. 시장이 오는 5월초 위안화 평가절상을 대세로 받아들이면서 달러화 매도가 이어져 원·달러 환율 하락의 주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 1000원 붕괴를 놔둔 것은 다음달로 예상되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 여부 결정에 대비한 것이라고 본다. 중국이 평가절상을 하지 않으면 환율은 다시 네 자릿수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며, 평가절상을 하더라도 달러화의 약세 속도가 떨어져 외환시장은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환율 방어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면에는 현재의 경기동향도 무관치 않다. 달러화의 선물매도에 발권력을 동원하면서 개입할 경우,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통안증권 발행으로 이어져 정부의 이자부담 증가는 물론, 시중금리를 높이기 때문에 내수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꺼내들기 위험한 ‘카드’라는 지적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금융시장 “한·중·일 달러 파나” 촉각 원·달러 환율의 하락 여파로 원·엔 환율에도 비상이 걸렸다. 원·엔 환율은 구조적으로 종속변수다. 원·달러 환율의 하락폭이 엔·달러 하락폭보다 크면 원·엔 환율은 떨어진다. 엔·달러 하락폭이 크면 반대다. 현재 환율로 보면 원·엔 환율 하락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원·엔 환율 하락은 긍정·부정적인 측면을 다 갖고 있어 대응하기에 따라 다르다. 수출기업에는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다. 국내 수출 품목의 70% 이상은 미국 등 제3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해야 한다. 따라서 수출상품 가격이 일본 상품가격보다 높아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면 일본으로부터 자본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들은 유리한 편이다. 휴대전화나 반도체업종의 경우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구입해 수출하는 경우에는 가격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연간 20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얘기다. 내수위주의 기업들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부품을 값싸게 들여와 국내에서 팔 경우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원·엔 환율도 하락 지속될듯 미국의 달러가 약세기조를 지속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등 동북아 4국의 외환보유액 규모에 국제 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각국이 보유한 달러를 대거 매물로 쏟아낼 경우 국제금융시장이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일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국제금융시장이 미국 주도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달러의 대량 매도나 통화별 구성 변경 등은 일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외환보유액이 워낙 커 폭발력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일본이 8377억 달러로 가장 많다. 다음은 중국(6591억 달러), 타이완(2511억 달러), 한국(2054억 달러) 순이다. 이들 4개국의 외환보유액이 모두 달러표시 자산은 아니지만 달러로 환산할 때 1조 9533억 달러어치나 돼 전 세계에 유통되는 달러(2004년말 현재 3조 8951억달러)의 절반에 이른다. 이 돈의 절반 이상을 미국 국채(발행규모 2조 달러)를 사들이는 데 쓰고 있다. 한은은 한·중·일의 외환보유액의 통화별 구성은 각 나라의 수입결제 통화 비중으로 추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근거로 할 때 일본은 달러화 69.5%, 엔화 23.8%, 유로화 4.6%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대외지급준비금에서 달러 비중을 점차 줄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로 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자산 비중도 2003년 83%에서 2004년 76%로 7%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달러 자산 비중을 60%대 초반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달러약세로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미 국채나 달러표시 채권을 많이 가진 국가들은 달러 보유에 대한 평가손실을 우려해 보유 비중을 줄이려 할 수밖에 없다.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동북아시아의 ‘큰손’들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율하락으로 달러보유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더라도 이를 기타통화로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의 돌발적인 움직임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달러 보유가 절대 필요하다.”며 “최근 미국이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위해 무역관세 보복 조치 등의 카드를 흘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열린세상] 선거와 철새/정해구 성공회대 한국정치 교수

    계절의 변화에 따른 철새들의 이동을 보노라면 매우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환경 변화에 따른 생존의 도모를 지역 이동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마도 수천년, 수만년 대대로 내려오는 경험의 누적을 통해 그러한 생존 전략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장거리 비행을 버티어내는 한편 그 먼 여정에서도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경이스러움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철새 현상은 인간사에도 존재한다. 선거 때마다 철새 정치인이나 철새 정당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새의 이동이 경이스럽고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인간사의 철새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짜증스럽게 한다. 그런데 현재 4·30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도 어김없이 그 철새 현상은 다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그 현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은 충청 지역이다.‘중부권 신당’을 만든다며 심대평 충남지사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이 자민련을 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염홍철 대전시장 역시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명수 전 충남부지사가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섰다가 자민련의 당적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도중하차한 것은 안타깝기보다는 오히려 한심스러워 보인다. 중부권 신당이 과연 철새 정당 이상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중부권 신당이 등장한다 할지라도 철새 정당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래로부터의 국민 요구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으로서의 대의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 이해’가 거론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역 이해가 꼭 지역정당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지역 이해의 명분도 사실은 몇몇 정치인들의-그것도 그 정치생명이 다해가는 몇몇 지역정치인들의-사적 이해를 감추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사태의 성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중부권 신당의 등장을 막아보겠다고 무리를 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모습은 말이 아니다.4·30 선거를 앞두고 국회 과반 의석 복귀라든지, 중부권 신당 등장 저지 등의 이유를 들어 이 체면 저 체면 안 가리는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큰 정치’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열린우리당의 무능은 신행정수도 문제로 인해 충청 지역에서 그 지지도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 엘리트를 발굴하고 양성해 내지 못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결과가 선거에 직면, 열린우리당이 집권여당이자 제1의 정당으로서의 체면까지 구기면서 무원칙하게 철새 정치인들을 끌어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정치에서 많은 이합집산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당이 쉽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지역주의 정치가 등장했지만 이제 그것은 급속히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있다. 그래도 충청 지역의 자민련이 근 20년을 버틴 것은 지역주의 정치의 부상에 편승한 탓이다. 그러나 지역주의 정치의 내리막길에서 자민련이 붕괴하고 있는 마당에 중부권 신당이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의 정치발전 수준을 모독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것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왜? 정당의 운명과 성공보다, 자신들의 사적 이해와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그것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선진정치가 운위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철새 정치인들의 퇴행적인 시도에 왜 호응해주어야 하는가? 그들의 주장은 철 지난 유행가일 뿐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한국정치 교수
  • 서커스 코끼리 ‘위험한 외출’

    대낮 서울 도심에서 때아닌 ‘코끼리 소동’이 빚어졌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코끼리 무리가 가정집과 음식점에 들어가 난동을 피우다 5시간여 만에 다시 우리에 갇혔으나 이 와중에 행인 1명은 중상을 입었다. 20일 오후 3시3분쯤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코끼리월드 서커스단 소속 태국산 코끼리 9마리 가운데 6마리가 철책을 밀어 넘어뜨리고 우리 밖으로 빠져 나갔다. 목격자 박경수(26)씨는 “음식 배달을 가는데 대공원 능동문에서 코끼리 1마리가 갑자기 뛰쳐나오더니 그 뒤로 5마리가 줄줄이 따라나와 인도로 뛰어갔다.”면서 “등에 조련사를 태운 채 뛰어나온 코끼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코끼리 3마리는 건국대 후문 뒤쪽 주택가를 돌며 활보하다 오후 4시쯤 조련사들에게 붙잡혀 대공원으로 돌아가다 갑자기 흥분, 방향을 틀어 다시 달아났다. 이 코끼리들은 6차선 도로를 건넌 뒤 근처 음식점의 대형 유리문을 깨고 들어갔다. 종업원 최모(48·여)씨는 “갑자기 코끼리 3마리가 잇달아 들어와 너무 무서워 장롱 안에 숨었는데, 코끼리들이 난동을 피우는 사이 가게 밖으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불안한 듯 30여평 규모의 가게 이곳저곳에 몸을 부딪혀 탁자와 에어컨 등을 부수고 소란을 피우던 코끼리들은 조련사들이 바나나 등 간식을 주며 달래자 안정을 되찾았다. 오후 7시27분쯤 경찰과 소방관이 줄을 코끼리의 목에 묶은 뒤 끌어당겨 등나무와 철제로 된 대형 우리로 집어넣은 뒤 대공원으로 돌려보냈다. 다른 3마리 가운데 1마리는 아차산역 쪽으로 도주했다. 근처를 지나던 노모(52·여)씨는 코끼리의 코에 들이받힌 뒤 철문에 머리를 부딪혀 뒷머리가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응급실로 이송됐다가 오후 늦게 혜민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 코끼리는 근처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대문 등을 마구 부수고 낮은 담을 넘나드는 등 소동을 벌이다 광진구 구의2동 서수원(67)씨 집의 정원에 들어갔다가 붙잡혔다. 서씨의 아들 동환(35)씨는 코끼리가 정원에서 난동을 벌이는 동안 이 집 2층에 갇혀 있었으며, 소방서 직원들과 조련사들은 코끼리의 다리를 쇠사슬로 나무에 묶은 뒤 오후 7시쯤 우리에 가뒀다. 나머지 2마리 가운데 천호대로를 배회하던 1마리 역시 주택가에 있다가 오후 5시쯤 조련사들이 먹이로 유인하자 탈출 코끼리 가운데 가장 먼저 소동을 끝내고 제발로 걸어서 대공원으로 돌아갔다. 오후 8시쯤 사고 직후 붙잡혀 동부경찰서에 유치됐던 코끼리가 대형 우리에 갇히면서 코끼리 6마리의 ‘위험한 외출’은 5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사고가 난 공연장은 어린이대공원 정문 옆 제2수영장 터 1600평에 950석 규모로 조성된 곳으로, 지난 16일부터 매일 5차례씩 코끼리 9마리, 라오스 민속무용단 10명, 조련사 15명으로 구성된 공연팀이 공연을 해왔다. 이들 코끼리를 관리해 온 코끼리월드는 수년전 인천 송도유원지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는데,“넓은 곳에 있다 환경이 바뀌자 코끼리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 있다.”고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전했다. 유지혜 이효용기자 wisepen@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이 일본과 다르려면/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1959년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83달러였다. 이 수치 하나만으로 당시의 궁핍이 어느 지경이었는지 알고도 남는다.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그것이 해소될 전망이 도무지 없어 보였다는 사실이다.6·25 이후의 베이비붐으로 어린아이가 늘어 살림살이 전망은 앞이 캄캄할 따름이었다. 장면 정부 시절에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자 했지만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국자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북한의 존재였다.5개년 계획이 끝나는 시점의 경제지표를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높여 잡아도 북한이 1959년에 이미 달성한 바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가 허다했다.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북한은 가난해서 거지가 득실거린다.”는 대민 선전이 뿌리째 흔들릴 판이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우리나라는 몸에 밴 오랜 궁기(窮氣)를 떨어내고, 세계 자본주의사에 남을 만한 기적을 이루었다. 무엇이 우리 경제에 기적을 안겼는가? 그 이유로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베트남 특수이다.1965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가 벌어들인 총 수입은 10억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바람에 1인당 GNP는 1964년에 105달러였으나 1973년에는 373달러로 300%이상 증가했다. 베트남 특수로 우리 산업기반 자체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미국의 신뢰를 얻어 외자도입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렸고, 그로 인해 정유·화학·시멘트·철강 등의 전략적 기간산업의 설비 구축에 성공할 수 있었다.6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 우리 기술로 냉장고와 텔레비전 수상기를 만들어냈을 때 국민은 그런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했다. 그런 기쁨은 만약 베트남 특수가 없었다면 아마 최소한 몇년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베트남 특수의 성과는 외형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쌓은 우리 토목 건설의 경험은 1970년대 이후 중동 등 각지에서의 해외건설 붐을 가능하게 했다. 더구나 우리 기술자들이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진출하면서 경제활동의 범위가 그야말로 지구적으로 확장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소득이다. 우리가 60년대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데에 베트남 특수가 기여한 바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로 하여금 느닷없이 베트남 특수를 생각하게 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 역시 이웃나라의 전쟁 덕을 톡톡히 본 나라다.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경제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한국전쟁 특수로 단숨에 2차대전 이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켜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고 나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덕으로 다시 일어섰으면서도, 일본은 우리 가슴에 끊임없이 못을 박는다. 총리라는 분은 잊을 만하면 신사를 참배하고, 정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망언을 내뱉는다. 일본에도 한류가 통하고, 그래서 이른바 ‘욘사마 붐’이 일고, 그 여파로 요즘도 남이섬이 통째로 일본 관광객 차지가 되어 있는 사실에서 일본 국민의 정서가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지만,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 우파 지식인들은 그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기 일쑤다. 그들은 2세에게 일본인으로서 긍지를 갖게 하는 데 우리나라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속좁은 일본에 대해 우리가 모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우리가 베트남을 위해 무엇을 도울까를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 盧대통령 “독일 과거사 청산방식 존경한다”

    盧대통령 “독일 과거사 청산방식 존경한다”

    독일을 국빈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2일(한국시간 13일 새벽) 독일 하원의 주요 인사 20여명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독일의 과거사 청산방식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독일은)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지하게 반성할 줄 아는 양심과 용기,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실천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했다.”고 독일의 과거사 청산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자 배상을 계속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또한 이웃나라들과 협의를 거쳐 편찬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와 대비한 뒤 “독일의 이런 노력이 주변국들과 화해를 이뤄내고 오늘의 유럽연합(EU) 통합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할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일본을 비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당수와 만나 “우리 국민은 통일 이전이라도 북한의 경제개혁과 개방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비용이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 11일 볼프강 티어제 하원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장래에 대해 “궁극적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정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변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특구라든지 개성공단이라든지 경제지원 협력을 통해 북한이 산업화되고 시장경제를 경험해서 개방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13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회담을 갖고 북한 핵문제, 중소기업과 산업기술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두 정상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동북아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디 벨트 등 독일의 3대 일간지는 한·중·일 3국간 외교분쟁과 관련해 일본의 민족주의 발호를 비판하는 논평을 일제히 실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