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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의 대미협상 속셈/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눈)

    미국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다.「전속력으로 몰고오는 자동차 앞에 누가 더 오래 버티고 서 있는가를 내기하는」­북한핵문제가 꼭 이런 형국이다.「담력이 약한 사람이 지는」,어찌보면 벼랑끝을 향해 갈수 있는데 까지 가보자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특히 북한이 지난 7월 미·북한간 2단계회담 이후 계속 돌출적인 요구를 보이고 있는 게 그런 느낌이다.13일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서한날조극까지 꾸몄다』며 협상을 거부하더니,14일에는 유엔대사를 통해 『미군문제가 결정되면 IAEA와의 분쟁은 해결될 것』이라고 엉뚱한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얼핏보면 이제 아무 것도 하지않을 듯한 기세이다. 철저한 북한의 2중성이다.교착상태에 빠진 미·북한간 고위급회담을 성사시키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고도의 술책인 것이다.북한 유엔대사의 발언도 결국 핵과 주한미군을 묘하게 연계시킴으로써 「핵문제는 미국과」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국제사회에 정당화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주한미군의 위협­체제유지를 위한 핵개발」이라는 종래의 주장을거듭한 것으로 새로운 게 아니다.지난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 때도 똑 같은 주장을 했었다.그동안 한 두 차례 IAEA의 임시사찰을 받아들이는등 전에 없던 태도를 보여 우리가 혹했을 뿐이지 전혀 달라진게 없음을 반증한다.애커먼아·태소위원장의 방북,지난 7일 미국무부 허바드 부차관보와 최우진핵통제위원장간의 뉴욕 비밀접촉등 미국과의 대화채널을 끊지않고 있는 것도 오직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염두에 둔 계산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영화의 「생명을 건 자동차 앞의 게임」은 무한정의 내기가 아니다.자동차가 몸에 닿기전 끝내야 한다.북한도 이 시한이 10월말까지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급기야 북한이 두개의 경로를 통해 「3단계회담이 정해지면 특사교환이 이뤄지도록 남북대화에 임하고 IAEA의 사찰을 받도록 하겠다」는 메세지를 미측에 전달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우선 미·북대화를 성사시키고 보자는 속셈이다.그렇지만 협상의 직접당사자가 아닌 우리로서는 난감한 제안이 아닐수 없다.받든,거부하든 간에 지난 7개월을 거치면서 이제 서로의 입장을 알만큼 안 상황이다. 또 다시 「북한의 수」에 말려드는 「무수」의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 최대쟁점 관제이양점 잠정합의/한·중 4차항공회담 성과와 전망

    ◎서울∼상해 전세기운항도 계속키로/이달말 한 외무 방중때 타결 가능성 한·중 양국이 지난 6일부터 일정을 늘려가며 항공협정 문제를 논의했으나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그러나 결렬로 보기는 아직 성급하다.최대 쟁점이었던 서울∼북경간 직항로 개설에 따른 관제이양점 문제에 대해 양국이 원칙적인 의견 접근을 보았기 때문이다.양국은 정치·군사적 색채가 짙은 이 문제를 명시화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실리·명분면에서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아예 묵살해 버리겠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관제이양점이란 비행정보구역 안에 있는 항공기에 대한 통제가 바뀌는 지점으로 우리는 동경 1백24도를,중국측은 1백25도를 주장했다.한·중간 국교가 없던 때는 국제민간항공기구(IACO)가 그어준 동경 1백24도가 적용되어 왔다.중국은 협상을 시작하면서 『이 선은 중국의 국제사회 참여가 미미했던 지난 63년 일방적으로 그어진 것으로 현실성이 없다』며 1도,즉 우리나라 쪽으로 1백11㎞를 밀어붙이려 했던 것이다.이러한 기도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한·중간의 항공회담이 다른 국가간 항공회담과 그 성격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상해노선도 엇비슷하게 결론이 났다.미타결상태로 놔두고 대신 현재처럼 항공사가 필요에 따라 전세기를 띄우기로 잠정 합의했다.따라서 직항로 개설은 되지않고 기존 일·중간에 설치된 「코리도」를 계속 이용키로 했다.코리도란 하늘에 이론상 설치된 일종의 항공터널이다.일본및 중국의 항공기는 이를 통해 운항하게 되어 있다.지난 83년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던 정부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IACO 아시아지역회의에서 우리의 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하는 코리도의 설치를 허용했다. 코리도의 일·중간 관제이양점은 동경 1백25도이다.중국측은 이번 협상에서 서울∼상해노선을 기존처럼 1백25도로 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대신 서울∼북경 노선은 1백24도로 양보할 수 있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로서는 비록 영공이 아닌 비행정보구역 안이지만 부분적으로 1백25도 관제이양점을 묵인하는 것이 된다.정부가 종래대로 전세기운항을 고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직항로에 비해 5분정도 밖에 더 소요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큰 가닥이 잡혔는데도 불구,최종합의에 실패한 것은 경제·상업적 문제들 때문이다.중국은 항공사가 6개,그리고 북경·상해·천진·심양등 다양한 항공지점을 갖고있다.반면 우리는 서울·부산·제주에다 2개 항공사만이 있을 뿐이다.실리면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며 상대적으로 우리측의 경제적 이득이 큰 만큼 더욱 양보를 해야한다는 것이 중국측의 주장이다. 이는 달리보면 양국간 항공회담이 이제 정치·군사적 의도에서 벗어나 회담 자체의 본질인 경제·상업적인 면으로 돌아왔음을 뜻한다.양국이 외교채널을 통해 계속 협의를 하기로 한 만큼 예상외로 빨리 이달 말쯤 한승주장관의 북경방문 때 타결될 가능성도 없지않다.
  • 핵실험 중국,패권으로 가는가(사설)

    세계적 핵군축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중국이 지하핵실험을 강행했다.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핵감축을 가속시켜 왔으며 지난7월엔 15개월간의 핵실험동결을 발표했다.영·불등도 동참을 선언한바 있다.95년말까지의 전면중단을 위한 회담도 개최될 예정이다.그런 핵군축 분위기의 타격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중국도 작년 9월25일 이후 지하핵실험을 중단해왔다.미국등의 자제노력 취지에 공감해 오기도 한 중국이다.핵실험은 중국이 원하던 올림픽유치에도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미국도 강력히 반대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실험 선재개국의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실험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동기는 올림픽유치 실패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특히 미국을 가장 중요한 표적으로 삼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감정적인 도전의 인상이 짙다.미국은 중국에 대한 인권공세를 강화해 왔으며 북경올림픽도 인권을 이유로 반대했다.중국은 올림픽유치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미국등의 방해공작 때문인 것으로 믿고있다. 중국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준비를 해왔고 다른 핵강국들에 비한 상대적 열세의 만회도 기해야할 입장이었다.올림픽좌절에 따른 국민적 사기진작과 지도층 무능에 대한 비판완화의 정치적 목적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중국에대한 최혜국대우와 관련한 미국의 인권공세 견제의 의도도 있었을지 모른다.그러한 복합적 배경이 올림픽좌절로 폭발했다고 볼수 있다. 어떤 배경과 동기에서건 우리는 그것이 미치게될 세계적 파장과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이미 클린턴미국대통령은 핵실험의 재개를 준비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보도됐고 독자노선을 강조하는 프랑스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중국과의 경쟁관계를 의식하고 있는 정치군사대국화 지향의 비핵대국 일본도 자극을 받고있을 것이 틀림없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의 우리로서는 그것이 북한핵문제에 미칠 영향을 경계하지 않을수 없다.북한은 이것을 핵개발정당화의 빌미로 삼으려들지 모른다.그것은 중국의 대북핵만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 틀림없다.미중관계의 냉각은 미국의 대북핵저지노력에 대한 중국의 비협조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이미 핵문제와 관련,미중관계의 냉각에 고무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있다. 우리는 중국이 냉전적 패권주의로 돌아가리라고는 생각않는다.핵개발자제의 국제적분위기 이탈과 대미관계 냉각의 이득이 무엇인지 냉정히 생각해보기 바란다.북한의 핵개발을 포함하는 세계적 핵확산을 부채질하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그것은 중국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 대마도 이즈하라 만송원(일본속의 한국문화:3)

    ◎임란침략 선봉장 종의지 아들이 건립/20대 도주 의성,선친 명복 빌기위해 세워/마룻바닥 구석에 약탈한 조선제기 전시 『살아서 대마도에 가서 부산을 단 한치만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아침에 갔다 저녁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4년간 억류당한 유학자 강항의 비통한 한마디다.강항는 돌아와서 유명한 「간량록」을 지어 남겼다.「간양록」을 읽지 않고서는 일본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책이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에 가면 누구나 관광업소 제1호 만송원을 둘러보게 된다.본래 송음사라 이름지었다가 만송원으로 고쳤다고 하는데 만송은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침략앞잡이 종의지라는 19대 대마도주의 법호라고 한다.그 아들 종의성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 절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 이 만송원의 유래다.그런데 이 아들 의성 역시 임란후 국서(외교문서)를 위조하여 속임수로 한일국교를 정상화시킨 장본인이다.그러니 만송원으로 들어가는 한국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은 뒤 화재를 만나 몇번이나 다시 지었다는 법당에는 일본막부 덕천가의 위패를 유리창속에 안치해놓고 앞의 마룻바닥 한 구석에는 조선국왕이 바쳤다는 이 절의 보물 삼구족을 마치 노획물이나 되는 듯 전시해놓았다.도대체 놓여 있는 자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복궁서 훔쳐온 듯 일본막부 덕천일주을 신주처럼 모셔놓고 그 앞에 그것도 마룻바닥 한 구석에다 우리나라 왕실에서나 쓰던 성스러운 기물을 진열하였으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거기다 더한 것은 조선국왕이 이 보잘것없는 섬의 도주에게 왕실에서 쓰는 기물을 바쳤다(여기 말로 공헌하였다)는 말투다.아마도 이 말은 일제때 조선을 얕잡아보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 추측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 되지 않겠는가.조선국왕의 하사품이라든지,아니면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임진왜란 때 왜국의 선봉장으로 서울에 입성했을 때 경복궁에 들어가 훔쳐온 것이라든지 확실하게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 아닌가.왜냐하면 필자가 아는 한 우리측의 어느 기록에도 이런 성스러운물건을 대마도주에게 하사하였다는 글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는 상태에서 만송원 법당안을 둘러보고 나면 그 뒷산이 청수산이라는 이즈하라의 진산에 올라가게 되는데 30여대에 걸친 종가들 일족의 공동묘지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종가의 족보문제다.도대체 종가란 자들은 언제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임란 직후에 사상초유의 외침에 시달린 우리 조상들은 많은 임란일록을 지어 남겼다.그중에 화은 신경(신경,1614∼1653년)의 「재조번방지」란 책이 있다.이 책에 보면 대마도주 종가는 우리나라 송씨였다는 기록이 나온다.즉 신경은 대마도가 우리나라와 가장 친근한 섬이라 하면서 그 이유를 『대개 대마도땅은 모래와 돌로 되어 있어 전적으로 우리나라와 교역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이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도주 종성장(12대)은 우리나라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섬(대마도)으로 들어가서 도주가 되어 성을 종으로 간 사람이다』 신경의 「재조번방지」는 매우 신빙성이 있는 책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대마도주 종가의 뿌리가 조선인 송가였다는 이 기록을 근거없다고 하여 일소에 붙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조선인 송씨가 조상 본시 일본 사람들의 습속이란 『성을 가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겨온 우리네와는 달리 마음대로 갈고 고치는 사람들이므로 종가의 세계보를 그 어느 누구도 보증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만송원에 모셔져 있다는 종의지란 인물이 과연 어떤 인물이었나 하는 점이다.강항에 따르면 종의지는 『풍신수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는데 있어서 향도노릇을 한 모사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 임란 이전에는 우리나라 쌀을 받아먹다가 임란때 선봉장으로 공을 세워 수길에게 영지를 얻어 일본쌀을 먹게 되었다고 그 배신행위에 격분하고 있다. 그러나 강항이 4년간의 억류생활을 마치고 그리운 조국땅을 향해 대마도를 거쳐 오는데 이 이즈하라에서 의지의 참모역을 맡고 있던 심복부하 유천조신을 만나 이런 하소연을 들었다.대마도는 그때 임란 직후라 조선과의 교역이 끊겨 도민의 생계가 막막하던 때였다. 『이 섬은 한일 두나라 사이에 끼여 있어 수길(즉 일본)이 상국(즉 조선)을 침범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우리가 사전에 수길이 조선을 침략하리라는 정보를 귀뜀하여 주지 않았습니까.미리 침략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는데 우리로서는 그때 할일을 다했습니다.수길이 침략군을 동원하게 되자 약한 우리 대마도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에 장차 조선이 강해서 일본을 친다고 한다면 우리는 조선을 위해 일본을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또 대마도는 과거 2백년간 위관의 소굴이었다고 하나 호남을 범한 일은 있으나 영남을 범한 일은 없습니다.우리 대마도가 조선의 영남을 지켜준 셈입니다』 ○임란발발 미리 알려 조신의 이 말 가운데 왜구의 방파제가 되어 조선의 영남지방을 지켜주었다는 마지막 말은 과장되어 있으나 임란 직전에 왜군이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조선에 알려준 사실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종의지와 조신은 임란 직전인 1590년에 우리 사신 황윤길과 김성일을 수행하여 일본에 갔었는데 돌아와서 두 사신의 보고가 엇갈리는 바람에 조정에서는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했다.이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듬해(1591년) 5월 임란이 일어나기 꼭 1년전에 종의지가 홀로 배를 타고 부산 영도에 와서 『조선조정에 급히 아뢸 말씀이 있으니 나를 서울에 가도록 하여 주시오.일본이 곧 쳐들어옵니다.대비하여야 합니다』라고 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이때 서울의 조정에서는 어리석게도 현지 관리의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아무 회답도 보내지 않았다.종의지는 열흘동안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대마도로 돌아가고 말았다.이 사실로 미루어 그는 과연 조선인 종씨의 후손이 아니었든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 재산공개의 그늘/김재룡(굄돌)

    지난주 1급이상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접하고 배리감을 느낀 국민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마는 유난히 자조섞인 탄식을 내뱉는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평생 공사석을 막론하고 이들 가난한(?) 공직자들 술사주고 밥사주고 격려해 주면서 비록 권력은 없으되 그들보다 잘산다고 착각해 왔던 고소득 월급쟁이들이 그들이다. 같이 대학졸업하여 한사람은 순탄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한 사람은 대기업에 취직하여 25년 정도 열심히 일했으면 지금쯤 모두 1급이상의 공직자이거나 임원 정도는 되어있다.그런데 월급으로 따지면 공직자보다 두배는 받았을테고 현재는 매월 꼬박 꼬박 내는 세금만도 웬만한 공무원 월급해당액을 내고 있는 처지에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평소 커피한잔 얻어먹기도 미안하던 공직자 동창의 재산이 이사람들 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게 많으니 어찌 한탄이 나오지 않겠는가. 실제로 내주변의 대기업 임원들이나 국영기업,금융기관 간부들 중에서 공직자 평균재산액인 14억4천만원을 모은 사람이 드물다.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무능하고 낭비벽이있는 사람들도 아니다.단지 공통된 잘못(?)이 있다면 월급 받아서 고지식하게 살았고 복부인같이 똑똑한 마누라 두지 못했다는 것 정도이다. 어느 신문에서 공직생활 30년을 통하여 월급의 30%만 꾸준히 저축하고 강남땅에 아파트 한채정도 미리 장만했으면 10억 재산은 가능하다는 계산을 내어 놓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10억은 괜찮고 14억은 안된다는 식의 단순비교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합의나 통념이 송두리째 깨어지는 배리감 같은 것이다.아무리 공직자인들 청빈과 절의를 내세워 두어칸 누항에서 학처럼 살고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오늘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평생을 군에서 보냈고 장관 한번 한 사람이나 사무관부터 출발하여 장관 국회원으로 공직만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그 큰돈을 모았으며 법의 양심에 따라 이 사회 최후의 도덕적 보루가 되어야 할 법관들이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를 한단말인가.또한 이 나라의 대표적인 전문 경영인 출신 국회의원의 재산 규모도 우리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결국,공직이나 전문경영이나 자리와직책을 이용했거나 남용한 결과이다.그래서 돈이 많다는 사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과정이 정당했느냐를 묻는 소이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부는 생의 안락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축척 그 자체를 위해 있는 거은 아니다』 우리 같이 무능한 사람들의 자위의 변이기도 하다.
  • 서로 존중하는 관계/임대희(굄돌)

    멀고도 가까운 나라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노래가 있었다.우리에게는 중국이 미울수도 있으나,사이좋게 지내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가까이는 6·25전쟁에서 중국의 참전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중국의 침략이 있었다.어떤 사람은 중국에서의 침략이 한주이 쳐들어 온 것은 수양제나 당태종·당고종때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쳐들어 온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그 이민족이 다시 오늘의 중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여하튼 중국이 우리에게는 미울 수도 있지만,미워만 할 수도 없는 나라임에 틀림 없다. 중국은 우리에게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이다.해류를 잘 타면 예전에는 절강성 녕파에서 뗏목으로도 한반도에 닿았다고 한다.얼마전에 복건성에서 월남난민이라고 칭하는 노동자들이 배를 이용하여 대거 일본으로 몰려든 적이 있었다.그 당시 일부가 제주도 남단에 표류하였으나 해양경찰대에서 돌려보낸 적이 있다.경우에 따라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중국의 치안이 안정되기를 빌며 중국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주변국에까지 폐를 끼치게 되지 않기를 인국민으로서 바라마지 않는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정서가 그들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던 우리로서는 통하는 면이 많다.유가적인 분위기가 도가적인 분위기와 혼합된 지금의 중국의 문화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특이한 모습은 앞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필요를 말하여 준다. 중국에서 우리가 떳떳한 입장을 계속 유지하려면,우리 자신이 잘 살고 있어야 한다.우리가 중국에만 매달려 있게 되면 중국은 우리에게 배짱을 부릴 수 있게 된다.따라서 우리는 중국이 우리에게 가까운 나라로 남아있기를 바랄수록 오히려 중국을 둘러싼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의 다른 나라에 신경을 써야 한다.우리가 중국과 교류하려면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하는 그들의 논리를 이해하기는 해야겠지만,그들의 논리에 함몰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그대신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해 두는 것이야말로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 오랜 사귐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즉,중국을 둘러싼 다른 나라도 잘 살게 됨으로써 역설적이지만 우리와 중국과의 사귐이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게 되는 모습으로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12월15일 타결시한 UR 정부대책

    ◎기초식량 관세화 거부… 쌍무협상 추진/쌀외엔 융통성… “보리등 2%선 개방용의”/「개도국 우대조항」 적용위해 외교력 집중 오는 12월15일로 예정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시한을 앞두고 정부는 오는 10일 미국과의 협상을 시작으로 이달 중순 EC(유럽공동체)·호주·캐나다·뉴질랜드등과 농산물분야 양자협상을 벌이게돼 그 결과가 주목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농산물협상은 지난 86부터 시작된 UR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해왔을뿐만 아니라 우리에겐 쌀수입문제가 걸려있어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정부는 농림수산부 천중인농업협력통상관을 대표로 하는 협상대표단을 8일 스위스 제네바로 파견한다. 양자협상을 벌이게 되는 이해당사국중 미국은 쌀수입개방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고 호주와 뉴질랜드는 쇠고기와 낙농유제품을,캐나다는 보리수입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번 협상기간동안 가장 쟁점이 되는 사항은 무엇보다도 시장접근분야에 해당하는 관세화부문이다. 지난 91년 12월에 나온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에 대한 둔켈협정 초안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모든 품목에 대해 수입을 허용하되 대신 수입에따른 국내외 가격차를 관세(관세상당치)로 부과하도록 하고있다.이른바 예외없는 관세화 항목인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수입이 허용되지 않는 농산물가운데 쌀등 15개 기초식량은 관세화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이들 품목에 대해 국내외 가격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기본입장을 이번 양자협상을 갖는동안 관철시킬 계획이다. 우리측 협상대표단은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연내에 타결되어야 한다는 기본인식에 따라 쌀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둔켈초안 내용중에는 관세화조항 말고도 수입이 전혀 안되고 있거나 미미하게 수입되고 있는 품목에 대해 개방 첫해에는 국내소비량의 3%를,마지막해에는 5%를 수입토록 하는 최소시장접근(MMA)조항이 있는데 우리는 이 조항을 융통성있게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쌀을 제외하고 보리·돼지고기·감자(종자용 제외)·고추·양파·마늘·감귤·천연꿀·밤·잣·포도·사과·배·복숭아·생강등 나머지 14개 품목은 최소시장접근을 허용하되 수입물량은 개방 첫해이든 마지막해이든간에 구분없이 국내소비량의 2% 범위에서만 허용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우리의 협상전략이 이번 양자협상기간동안 어느정도 먹혀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양자협상 대상국중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EC국가들마저 쌀에 별 관심은 없으면서도 특정 품목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줘서는 안된다는 기본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쌀의 경우는 식량안보와 환경문제등의 이유를 들어 단순히 「경제적인 잣대」로 잴 수 없다는 논리아래 관세화대상은 물론 최소시장접근대상에서도 제외시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이웃 일본등과 협조해 밀어붙인다는 전략을 짜놓고 있다.현재 부분적인 예외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있는 나라는 일본이외에 캐나다와 멕시코·스위스등이다. 둔켈초안가운데 농산물협상에서 우리가 얻어내야 할 또다른 쟁점사항은 우리나라도 개발도상국에 적용되는 우대원칙(예외조항)을 따내는 일이다. 선진국의 경우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면 그해로부터 6년동안 수입농산물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36%까지 감축하도록 하고있는데 개도국인정을 받으면 선진국수준의 3분의2만 적용받기 때문에 관세율은 24%,이행기간도 10년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또 옥수수·콩·유채등에 적용되고있는 국내보조 조항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농산물 수출국들은 한국이 지난 86년부터 88년까지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농산물교역에 있어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우리로서는 힘든 협상이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 미·북 3단계회담/15일께 시작될듯

    북한·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협상이 재개된데 이어 조만간 남북대화가 시작될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미·북한간 3단계 접촉이 이달 15일을 전후로 개시될 전망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일 『북한이 「임의급」특사교환을 제의함에 따라 우리로서도 무조건 거부하긴 힘들다』고 말하고 『조만간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현재 진행중인 북한과 IAEA간의 핵협상이 어떤 형태로든 의견접근을 이룰 경우 미·북한간 3차회담이 오는 15일을 전후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보다 구체적인 것은 오는 9일 방한하는 갈루치 미국무부 정치군사담당차관보가 도착,우리측과 협의를 거치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화시대의 민족의식/김동성 중앙대교수·정치학(경제문화 포럼)

    ◎정체성 확립없인 변화에 적응 못해/총독부청사 철거 결정 자긍심 높여 최근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정부의 대응과 사회 각 부문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활발히 개진되고 있다.특히 미래 세계는 과학기술과 정보능력이 결정력을 지닐 것이며 국제경제협력관계가 주가 되는 「국경없는」지구촌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들을 하고있다. 그러나 국제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각론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 할 일이 있다.「국제화」라는 세계체제의 변화와 관련하여 우리의 국가와 민족은 어떠한 존재적 발전적 의의를 정립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함이다. 국제화의 의미를 경제적 측면에다 중점을 둘 경우 국제경제의 상호의존성의 증대와 정보통신의 유통 및 접근성의 고도화에 관련된 대책이 전부인양 오해될 수 있다.그러다보면 개별적인 국가와 민족의 존재나 가치에 대한 존중보다 「세계적인 것」을 상위에다 놓는 주장을 낳게 된다. 국제화의 추세는 우리와 같은 비서구 발전도상국들에는 또하나의 함정일 수도 있다.왜냐하면비서구지역의 많은 나라의 망국경험은 국제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아서라기보다 세계적 환경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그 다음으로 세계적인 국제화 과정을 자기 발전을 위한 수단과 환경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따라서 국제화에 대한 대응책을 논하려면 우선 자기민족과 국가의 개체성에 대한 자긍심과 주체적인 통합의식이 먼저 확립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확고한 자기의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화의 급류에 휘말려 갈 때 그 결과는 엄청나다.조그마한 경제적 수혜와 단기적 성장을 얻게 될지는 모르나 그 대신 정치와 문화 그리고 의식에 있어서 선진국가의 신식민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세계 근대사에서 「국제화」의 주역이면서 최대의 수혜자인 서구 선진산업국가들은 이미 오래전에 「민족주의의 정책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그리고 「국제화」가 문화와 역사 그리고 발전정도가 다른 세계의 모든 국가와민족들을 평등과 공동번영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리라는 소망적 사고에 빠져서도 안될 것이다. 국제화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로서는 국가의식과 민족의식의 확립과 강화의 과제를 그 어느때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우리의 경우 단일민족의 공동체적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민족의식의 강화는 국가의식의 강화로 직결될 수 있다.국제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진정한 토대로서 민족의식의 강화가 역설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식의 강화를 위한 현실적 방법은 역시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그 교육은 이성적 차원과 정서적 차원을 동시에 포괄하는 것이어야 하고 「민주의 상징」운용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민족역사교육의 획기적인 질적 발전을 통한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인종적 우수성에 대한 재인식과 자기발견은 이성적 민족의식을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그리고 우리 근대사에서의 다양한 민족운동을 우리의 뜨거운 피속에 내면화시키고 폐허 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낸 국민적 열정을 계속 불지펴 나가도록 하는 것은 정서적 교육의 일환일 수 있다. 민족의식 앙양을 위해 정부는 민족사의 긍정적 유산을 생산적 방향으로 「기념」하고 부정적 유산은 말끔히 청산하는 「상징」운용정책을 효율적으로 펴나가야만 한다.최근 일제시대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키로 결정한 것이나 임시정부 요인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봉환한 것등은 훌륭한 「상징」운용정책이라 할수 있다. 결국 「국제화시대」가 가속화될수록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의 민족의식의 확립과 앙양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우리 자신의 주체적 자기의식 확립을 바탕으로 하여 범세계적인 국제화 과정을 우리민족의 발전을 위한 수단적 환경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 김 대통령 결단의 6개월… 그 고뇌와 희열

    ◎“국민 뜻 따라” 혼신의 문민개혁 대통령은 고독하다고 한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상은 늘 혼자있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취임 6개월동안 국민지지율이 80%아래로 내려가 본적이 없는 김영삼대통령도 그런가.『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모든 것을 고려해야한다.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야하고 그결과에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책임은 결국 나혼자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그생각이 나를 고독하다고 느끼게 한다』 최근 수석비서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대통령이 밝힌 이런 감정은 왕성한 지지율도 대통령의 홀로 선 기분을 어쩌지 못함을 설명한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대통령과 접촉이 가장 많은 사람이 김기수수행실장이다.그는 새벽 4시50분에서 5시사이에 관저로 올라가 함께 조깅코스로 내려온뒤 하오 7시 다시 관저로 돌아갈때까지 13시간을 대통령과 함께 있다.『큰 일은 내색을 안하시는 분이라 뭘 생각하시는지 알길이 없다.3당 합당때 대통령의 그런 결단을 눈치 챈 사람이 없었을 정도다.실명제도 우리로서는 전혀 평소와 다른 기분이나 표정을 느낄 수 없었다』 가장 근접한 측근이 실명제 같은 나라의 성쇠,가까이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사안의 결정을 알 수 없을 만큼 대통령은 혼자서 일하고 결단할 수 밖에 없는 자리다. 취임 6개월간 대통령은 자신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진실로 중요한」결단의 연속에 살았다.정치권 사정,군부의 숙정,율곡비리감사,금융실명제에 이르기까지 그결단들은 하나하나가 「친위쿠데타」에 버금가는 파괴력과 그만큼의 위험성을 가진 것들이다.국민의 지지가 있다지만 결국은 청와대 담장밖 관중석의 성원.그래서 김대통령의 취임 6개월은 고독한 검투사의 생활과 다른 것일 수 없었던 것 같다. 김대통령은 취임이후 두번 쯤 긴장을 풀고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군인을 향한 숙정의 칼이 후유증 없이 정확하게 표적을 맞췄을 때 대통령은 안도와 함께 옳은 것은 이긴다는 확신을 재확인했다.고뇌속에 이뤄진 금융실명제가 발표된 다음날 대통령은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87%에 이르는 정책지지를 확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정권을 걸고 한 승부가 다음날잘된 것으로 확인됐을 때 대통령은 스스럼 없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1일 토요일 아침.조깅코스에 내려온 김대통령은 새마을 기관사의 이야기를 올리면서 무척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산사태가 난 철로 50m 앞에서 열차를 세워 대형참사를 막은 기관사 태인수씨의 이야기다.『이런 친구들이 많으면 나라가 잘 안될 수 있나』 김대통령은 참지못하고 일요일인 22일 관저에서 태씨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격려했다. 이런 일들이 대통령을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었다. 김대통령은 종업원에게 주식을 모두 나눠주고 회초리를 들고 다니면서 종업원들을 단속하는 광림기계에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지난 20일 구로공단내에 있는 대륭정밀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김대통령은 『하,이렇게 잘할 수도 있구나』를 연발했다.위성수신안테나로 미국시장의 35%,유럽시장의 25%를 점유하고 있다는 회사의 설명앞에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자신만이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잘되게 하기위해 고생하고 능력있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고마워하는 듯 했다. 금융실명제의 조기정착 가능성을 느끼는 취임 6개월.김대통령은 그러나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냉해와 병충해가 대통령을 어둡게 한다. 『조깅장에 내려온 대통령의 첫 일은 하늘을 살펴 보는 일이다.새벽 별이 있나 없나를 보고 그날의 기분이 결정된다.별이 있으면 「오늘은 맑을 모양이다」라며 좋아하신다.날씨가 좋지 않으면 대통령의 기분이 그런 만큼 모두 힘들어한다』 한 조깅식구의 말이 요즘 대통령의 관심과 기분이 어떤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가족들은 모처럼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는 참이다.가장이 하오 7시에 퇴근해 집으로 오는 일은 80년대 연금시대를 빼 놓고는 처음 있는 일이다.부인 손명순여사로서는 함께 8시·9시 TV뉴스를 함께 보는 행운을 누리고도 있다.그것은 대통령의 가족들 경우다. 김대통령은 얼마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등산을 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참,한번 가고 싶은데…』라며 말을 끝내지 못했다.청와대 식구들에 따르면 등산에 대한 대통령의 욕구는 조깅시간에 인왕산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고 한다. 김대통령의 체중은 67∼68㎏이다.대통령 취임전과 똑 같다.김대통령은 국정수행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그러한 노력이 그의 체중을 취임전과 여일하게 해주고 있다. 경호문제에 막혀 대통령의 발길은 많은 부분에서 거부당하고 있다.집권초기 대통령 승용차가 몇차례 청와대 앞에서 멈춰선 적이 있었다.대통령은 시민들과 악수하고 환담하기를 희망한다.그런 대통령의 강렬한 욕구는 더이상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경호에 관한한 대통령의 요구는 자주 거부당한다.김대통령이 중부전선 철책선을 방문하는 일도 경호실장에대한 오랜 설득 뒤에야 가능했던 일이다.일요일,청와대에 혼자 남은 시간 대통령은 외부로 전화를 한다. 대통령은 힘들고 외로운 자리,국민과 함께 살대기를 좋아하고 명분을 가장 우선시하는 김대통령에게 몇배 더 고통스런 자리인것 같다. 김대통령은 23일 민자당 원외지구당위원장과의 오찬에서 『지난 6개월이 고통스럽고,결단의 순간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 매미의 항변(외언내언)

    맴맴맴맴….사람님네여,우리는 매미올시다.사람님네가 술집접대부등을 이르면서 매미라고 하는 것부터 우리로서는 불쾌했던 터입니다.그런데 더 불쾌한 일이 생겼기에 항의합니다.우리의 이 항의에 대해 혹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라면서 타박할지 모릅니다.하지만 타박당하는게 문젭니까.우리 매미주이 사람님네에 의해 「부당」하게「사냥」을 당해서 목숨을 잃었으니 「매미권」을 주장하지 않을수 없습니다.왜우리가 죽느냐 그말입니다. 수학능력시험이라는 거야 사람님네들 일이지요.그 「듣기평가」라는것 원만하게 치르기 위해 그 시간대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중지시키고 차량들의 저속운행을 유도하며 행상들의 스피커광고도 전면금지하게 한것 등등에 대해서는 우리로서 용훼할바 아닙니다.다만 사람님네들 일을 위해 우리겨레를 사냥한 「엉뚱성」을 탄핵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진놈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다』고 하는말이 있더군요.「모진놈」이 누구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우리겨레가 엉뚱하게 벼락맞은 것만은 사실입니다.천성이 워낙 한량기가있어서 노래를 좋아합니다만 그게 화근이 될줄은 미처 몰랐습니다.더구나 요즘의 우리는 여명을 알기 때문에 짝짓기에 열을 올린 나머지 노랫소리가 한결 「정열적」으로 될밖에 없었습니다.그게 거슬렸던 모양이군요. 옛날 송나라의 환사마가 지녔더라는 구슬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어느때던가,그가 죄를 짓고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왕은 그가 가진 구슬이 탐났습니다.그래서 알아봤더니 그는 구슬을 연못에 던져버리고 갔다는 것입니다.왕은 구슬을 찾고자 연못의 물을 다 퍼냈습니다.그런데 연못에 던졌다는 말은 헛소문이었던 모양입니다.결국 구슬은 찾지 못하고 죄없는 물고기만 말라죽어버렸습니다.「여씨춘추」(효행람)에 실려있는 지어지앙의 고사입니다.당산중학교 나무위에서 노래하던 우리겨레 신세가 이 연못의 고기신세였습니다. 우리겨레의 엉뚱한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는 웁니다.맴맴맴맴….
  • 실명제와 미술관/김성옥 시인·서림화랑 대표(굄돌)

    금융실명제 실시로 인해 온 나라가 선잠을 깬 사람처럼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그러나 분명 새벽공기가 맑고 신선하기 때문에 곧 기쁘게 아침을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우리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제도이니만큼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개개인의 가치관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실명제실시와 함께 일본 어느 화랑에서의 일이 생각난다.그림을 사가지고 가던 고객이 화랑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뛸듯이 기뻐하던 일이다.이렇게 좋은 그림을 자기에게까지 오게해 주어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판매하는 쪽에서 인사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로서는 이상하고 부러운 일이었다.그러나 미술관이 많은 일본에서는 노대가들의 귀한 그림들은 역사적으로 보존될 미술관에 소장되기 마련이어서 웬만한 개인은 가질 엄두를 낼 수가 없다.가격도 가격이려니와 1천여군데나 되는 국립·현립·시립박물관,각 기업미술관,사설미술관,개인기념관등을 비롯한 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모든 국민이 함께 공유하고 감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 사회에서 개인이 귀한 그림을 소유하는 것은 특별한 행운으로 생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보다는 나라나 기업이 잘 사는 선진 외국의 경우에는 세금이나 기업의 이윤으로 모인 큰 돈으로 공유문화시설을 하는 것을 국민생활에 가장 필요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국민 개인의 문화수준은 물론 예술품에 대한 높은 안목과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들과 기업체의 대표가 있기 때문이다.국가는 기업의 미술관에 각종 혜택을 주어 권장하며 미술관은 화랑을 통해 미술품을 구입한다.화랑은 그 이익을 젊은 작가의 지원과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하는데 쓴다.이러한 맥락으로보아 우리 미술 시장의 영세성과 검은돈의 투기꾼 개입 가능성은 미술관의 절대부족에 그 원인이 있음을 쉽게 알수 있다. 미술품 역시 다른 무엇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 관광품이다.한번 지나쳐 보고 갈 뿐 영원히 소유하지는 못한다.다만 후세에 남길 수 있을 뿐이다.실명제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와 많은 미술관 건립을 기대해본다.
  • 한·일관계 대전환 지금이 적기다/한승주 외무부장관(특별기고)

    한·일 양국은 다른 어느 두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그것은 갈등의 역사와 함께 숙명적으로 협력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관계를 흔히 프랑스­독일 관계나 폴란드­러시아 관계와 비교하기도 한다.그러나 우리 민족과 역사가 입은 상처와 피해가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한·일 관계의 특수성이 있다.비록 역사가 그러하지만 이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를 지향할 때가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다.미래 지향적 자세가 결코 과거사를 잊는다는 것이 아니다.반대로 일본이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평가할 때 비로소 과거사가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며,그 기초 위에 양국관계가 미래 지향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올바른 인식과 평가라는 문제가 한두 가지 사건의 해결이나 정책의 선언으로 매듭지어질 사안은 아니다.그러나 일본측이 이를 위해서 기울이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 이를 평가하고 고무해야 할 것이다.최근 정신대의 강제성 인정이라든가 호소카와 신임 총리의 침략전쟁 자인같은 것이 그것이다.우리는 일본의 노력이 지속되어 일본 국민이 역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과 평가를 할 것을 기대한다. 과거사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나 이것이 한·일 관계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한·일 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며,경제면에서 또 국제 정치면에서 숙명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고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갖고 있다.실제로 양국간에는 경제통상,한반도,지역문제,국제무대 등 제분야에서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협력 관계가 구축되어 가고 있다.우리 자신의 국익을 위하여도 한·일 관계를 합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있다.여기에 한·일 관계가 과거사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양국간의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점이다.한국과 일본이 바뀌고 있고 또 주변상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30여년 만에 마침내 문민시대가 도래하여 내정과 외교에 일대 혁신을 기하고 있다.일본도 40년에 가까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끝나고 전후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새로운 정치인들이 나서서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그뿐 아니라 한·일 양국의 주변질서도 본질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화해와 협력의 국제 조류와 함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국가간 상호 의존성이 증대되고 있다. 변화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우리가 모색하여야 할 바람직한 한·일 관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유럽국가들의 관계처럼 상호 대응하고,지역 및 국제문제에 있어서 협력해 나가는 관계로 되는 것이다.물론 일본의 경제력이 우리보다 몇배나 크고 또 풀기 어려운 무역역조 문제가 있기는 하다.그러나 우리도 GNP 세계 15위,아·태지역의 중견국가로 성장했다.우리는 이제 사회 응집력 강화와 국내 경제력 배양을 통하여 당당한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 한·일 양자관계를 넘어 그밖의 세계로 눈을 돌려 볼때 국제공조 차원에서 양국간에는 서로 돕고,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관계가 설정되고 있다.현재 한반도문제나 북한 핵문제 뿐만 아니라 UN,G­7,UR,APEC 등 지역적,국제적 차원에서 양국간의 협력은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한·일 양국간의 국제 공조체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상정해 볼때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증대가 문제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그러나 우리는 막연히 걱정하는 차원을 넘어 현실속에서 대처해야 한다. 일본이 강력한 경제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한 우리의 선호에 상관없이 앞으로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그러나 이는 동시에 일본이 국제질서에 깊이 연루되어 국제질서로 부터 그만큼 크게 제어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우리로서는 증대될 일본의 정치외교적 역할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수세적인 자세만을 취할 것이 아니라 이를 우리에게 이롭게 하겠다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한·일 양국이 바뀌고 세계가 변화함으로써 한·일 관계는 피해를 주고 받는 영합(zero­sum)의 관계라기 보다 호혜적인 협력의 관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의 힘이 커질 것이나 우리의 힘도 또한 커질 것이다.우리로서는 호혜적인 국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한·일 양국은 모두 한세대에 해당하는 기간동안 지속되었던 정치체제가 전환되는 역사적 시점에 도달해 있다.두나라 사회는 모두 빠른 속도로 국제화되고 있다.양국에 모두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양국관계도 바뀌어 가고 있다.한·일 양국민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우리가 일본을 동등한 상대로 생각하고 또 일본도 우리를 동등한 상대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대만,중국과 평화협정 추진/정부 대륙위­해기회

    ◎“조건 성숙되면 협상 용의” 【대북 연합】 대만은 객관적 조건과 시기가 성숙되면 중국과 평화협정을 협의하고 서명할 것이라고 행정원(정부) 대륙위원회의 황곤휘 주임(장관)과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의 구진익 부이사장이 밝혔다고 대만의 양대 권위지인 연합보와 중국시보가 17일 보도했다. 연합보는 이날 『양안이 평화협정 서명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당국은 중국과 접촉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평화협정 협상과 서명은 시기와 객관적 조건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시보도 이와 관련,『해기회가 권한을 위임받아 중국과 평화협정을 서명하는 것은 이루어질 것으로 낙관한다』고 구진익 해기회부이사장이 말했다고 보도했다.그는 『양안이 평화협정 또는 상호불가침협정 서명을 위해 협의를 진행하면 우리로서는 국제활동의 공간을 확보하는 셈이어서 큰 이익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주임도 대만정부가 해기회에 중국과 평화협정을 협의토록 권한을 줄 것이냐는 질문에 『상황을 보아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해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5년만에 열리고 있는 국민당 전당대회에 참석중인 무화이 등 국민당의 해외대표들도 정부가 해기회에 중국과 평화협정 또는 상호불가침협정을 협의,서명하는 권한을 주라고 강력히 촉구했다고 중국시보는 전했다.
  • “중기일부 자금난속 자재확보 애로”/기획원,실명제이후 동향 분석

    ◎전반적으론 부도등 극한상황과 거리 금융실명제로 담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태에 빠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많은 영세 중소기업은 아직도 실명제의 내용과 파급효과등을 잘 모르고 있다. ○대부분 내용 잘몰라 일부 보도처럼 자금 조달길이 막막해 전체 중소기업이 당장 부도위기에 몰리는 극한상황은 아니다.따라서 중소기업들이 정확한 실명제 내용을 이해하고 당국의 지원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6일 경제기획원이 분석한 금융실명제 이후의 시장동향에 따르면 사채를 통한 급전 및 운전자금 조달이 끊기는 바람에 담보력이 부족한 일부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물품 거래시에도 외상매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생겨 자재조달에도 애로를 겪고 있다. 그러나 사채시장의 마비에도 불구하고 실명제 첫날인 13일중 서울지역의 중소기업 부도업체 수는 3개로 7월 및 8월 들어 12일까지의 하루 평균 10개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실명제 2일째인 14일에도 8대 은행 40개 점포를 대상으로 표본조사한 결과 부도업체는 없었다.다만 무자료 거래가 성행했던 업종의 경우 거래의 양성화가 불가피해짐으로써 거래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은 크다. ○1주일내 조치 필요 그러나 많은 영세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실명제가 무엇인지,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기획원 한성택자금계획과장은 『영세 중소기업들은 앞으로 1∼2주 이후에나 파급효과를 실감할 것 같다』며 『따라서 1주일 이내에 정부의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우려섞인 지적도 많다.한 중소기업인은 『언론에는 실명제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는 것처럼 부작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아직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우리로서는 잘 알 수 없다』며 『언론이 구체적인 사례 위주로 실명제의 내용을 정확히 알려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기획원 관계자는 전했다.
  • 한일경제 새 수평협력 관계로(사설)

    정부가 대일경제정책에서 일대 전환을 시도한 것은 모험에 가까운 대담한 발상으로 평가된다.무역불균형으로 압축되는 대일경제관계는 우리통상문제의 최대 현안이면서 결코 풀릴수 없는 매듭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전체무역적자를 훨씬 초과하는 대일적자를 해결하지 않고는 양국경제관계가 정상적일리 없다.그동안 양국은 불균형의 책임을 서로 전가하기에 바빴고 접근방식 또한 경제논리 아닌 비경제논리를 좇다보니 불신만 남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제 그 얽힌 매듭을 스스로 푸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 대일경제정책의 전환이다.대일정책의 전환이 주는 메시지는 강하다.과거사를 뛰어넘어 새로운 수평협력관계를 열자는 바탕에서 논리의 전환뿐 아니라 대일적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함축하고 있다.지금까지 우리경제를 압박해온 대일적자를 두려운 존재로서만 인식할 게 아니라 이를 적극 활용함으로써만이 해결될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가 기저에 깔려있다. 우리로서는 무역역조에만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이를 심화시킨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고 볼수 있다.지난 87년부터 의욕적으로 실시됐던 대일역조시정5개년계획의 실패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88년 39억달러였던 적자폭이 지난해에는 78억달러로 확대되었다.또 수차례의 정상급외교의 주요의제가 역조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억제한다는 것은 일찍이 한계가 드러나 버렸다.대일수입장벽을 완화하는 대신에 대일수출을 적극화하고 역조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일본의 대한투자를 확대,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역조시정을 위한 정공법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일본은 세계최고수준의 기술보유국이다.그 일본이 투자선을 한국에서 동남아로 돌리면서 동남아국가들이 우리의 새로운 경쟁국으로 돌변하는 상황에 있다. 일본의 기술이전기피성향만 탓할일이 아니다.과도한 임금상승에 따른 투자환경의 악화라든가 값싸고 손쉬운 기술도입에만 급급했던 수용자세를 냉정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일본과는 우루과이라운드등 다자간협상에서 공동보조를 취해야할 것들이 많다.쌍무간 현안에 매달린 결과 아무런 협력조차 갖지못했다. 이번 우리의 획기적인 정책전환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의 협력을 증대시켜 상호 발전적이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그러기위해서는 일본도 보다 과감한 대한투자와 함께 기술이전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한다.이번 우리의 정책전환은 지금껏 일본이 주장해온 논리의 대부분을 수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측도 대한경제인식의 일대 전환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 북한핵,결국 남북이 풀어야한다(사설)

    북한핵 문제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문제에서 세계의 골칫거리 현안이 된지는 이미 오래다.그런데 이제 그것이 다시 남북한당사자 해결원칙문제로 되돌아온 단계에 이른것 같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복귀의사를 비친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임시사찰단의 입북을 받아들인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일단 핵대화재개를 제의한 것도 이같은 기본인식에 따른 것이다.다시말해 우리로서는 미북한 3단계 핵협상을 측면지원하고 핵문제를 민족적 차원에서 풀어보려는 지속적인 의지를 보인 것이라 할수 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최대의 인내를 갖고 기다릴만큼 기다린 우리측이었다.따라서 이번 우리측이 제의한 핵통제공동위원회 개최에 북한측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해결 아니면 제재와 응징」의 행동으로 갈 수밖에 없다.사실 현재로서 미·일·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유관국은 물론 전세계가 인식하는 그대로 북한핵문제의 해결없이 남북한대화와 한반도문제접근은 불가능하다.또 그럴수록 북한의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난관은더욱 심화될 것이다. 현재 북한에 머물고있는 IAEA 사찰팀의 업무한계는 북한측의 설명으로 알수 있다.즉 그들이 IAEA에 이미 신고한 기존 핵관계시설에 대한 통상적인 임시사찰수준에 밑도는 「광의적 의미」의 사찰일 뿐이라는 것이다.따라서 이 단계에서 북한의 「핵포기」투명성은 결국 문제의 녕변지역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떠나서는 검증될수 없는 것이다.그 특별사찰의 근거는 바로 남북한의 책임있는 당사자간에 타결,채택,서명된바 있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위험을 제거한다』는 대전제 아래 핵무기를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하지 않으며 아울러 핵에너지를 오로지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키로 하고 있다.또한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해 핵통제공동위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고 명문화돼 있다.한반도 비핵화의 정신과 목적은 물론 그 방법과 절차와 과정까지 합의 서명된 것이다.요컨대 그대로만 하면 되게 돼있다.북한핵문제 해결의 명증성과 한반도비핵화 실현은 이 비핵화공동선언과 그에 따른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활동 이행만으로 충족될수 있다.북한은 그것을 일방적으로 외면하고 거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은 더이상 터무니없는 주장과 핵보유 속셈아래 문제해결을 지연시켜서는 안된다.특히 그들이 기대하는 미국과의 3단계회담을 열기 위해서도 먼저 남북대화라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사실인식에서도 이번 제의에 호응해야 할것이다.
  • 한국 실질소득증가 세계 6위/세은,65∼90년 동아시아개발 보고

    ◎한·일 등 8개국 고성장국으로/민관 효율협조,경제성공 요인/「네마리용」은 「네마리호랑이」로 분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8개국은 지난 25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독특한 경제발전 모델을 제시했다.3일 재무부가 입수한 세계은행의 「동아시아 개발보고서」의 내용이다. 세계은행은 기존의 개발도상국 개념과 달리 한국·홍콩·싱가포르·대만 등 4개국을 네마리 호랑이로,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등 3개국을 동남아시아 3대 신흥공업국(NIES)으로 분류하고,여기에 일본을 포함한 8개 국을 「아시아 고성장국(HPAES)」으로 명명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65∼90년 사이 이들 국가의 정부와 민간부문 간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서 성공적인 경제성장의 동인으로 민·관의 효율적인 협조관계를 꼽고 있다.신경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우리로선 새삼 되새겨 볼 대목이다. HPAES는 지난 25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5.5%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동아시아의 다른 15개 국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소속 선진국보다 2배 이상이고 남미·남부아시아보다 3배,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보다 5배정도 높다. 60년과 비교한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보츠와나가 85년에 4.3배로 증가,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했고 우리나라는 3.2배가 늘어 세계 6위를 기록했다.대만은 2위,인니 3위,홍콩 4위,싱가포르가 5위였으며 마련 17위,태국이 20위였다. 분배의 공평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일본·네마리 호랑이·동남아 3개국의 순으로 낮아 부의 분배가 비교적 형평성을 띤 것으로 나타났다.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20% 이내의 계층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45.3%로 홍콩의 47%,싱가포르 48.9%,인니 49.4%,말레이시아 56.1%에 비해 낮았으나 일본의 41%,대만의 35%보다는 높았다. 또 주요 사회지표의 하나인 평균수명은 저소득국가가 60년 36세에서 90년 62세로,중소득국가는 49세에서 66세로 늘어난 반면 HPAES는 50세에서 71세로 길어졌다. 이처럼 성공적인 경제발전의 요인은 크게 ▲인적·물적자원의 축적 ▲합리적인 자원배분 ▲생산요소의 증대등으로 분석됐다. 인적·물적자원의 축적은,높은 초·중등 교육열에 따른 인적자본의 급속한 증대와 유럽의 25%,기타 국가의 14%보다 높은 연평균 27%의 저축률,20%를 웃도는 투자율,인구증가율의 둔화 때문에 가능했다. 합리적인 자원배분은 이들 정부의 효율적이고 점진적인 개발정책에 힘입었다.정부가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조절하고 물가·재정적자 감소등의 거시경제 안정에 주력하며 특정 산업에 대한 자금지원,금리제한등을 함으로써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 및 대만은 교육에 대한 투자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진,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했다.그러나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지난 70년대 초 정부가 중화학공업 건설을 추진하면서 물가와 국제수지등 거시경제의 안정이 위협받게 된 점을 지적,지나친 정부의 개입은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 “자민정책 틀 유지”… 대체로 낙관/일 「정변」보는 우리정부 시각

    ◎북핵 등 급격한 궤도수정은 없을듯/일부선 “새 면모 구실 변화 시도” 우려 일본의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정부는 향후 대일관계를 어떻게 이끌 것이냐를 놓고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체로 낙관적이다.연립정부수립을 선언한 7개 야당중 사회당과 사민연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책에 있어 자민당과 공통점이 많다.특히 대외문제에 있어서는 7개당이 함께 자민당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다.북한핵문제에 있어서도 보조가 일치한다. 반자민 7당이 집권하더라도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이 변치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근저에는 연립정부가 「잠정내각」에 그치리라는 예측도 깔려있다. 오랫동안 같은 정권을 유지하기에는 신당계열과 사회당계열의 시각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결국 대외정책에 있어서 한목소리로 기존과 다른 방향을 추구할수 없고,그러는 사이 조만간 재선거가 실시돼 본격적 정계개편이 다시 이뤄지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도 심상치않아 정부는 내심 긴장을 풀지 못한다.반자민7당은 정책대강에서 한반도문제에 대해 「한일기본조약을 인정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협력한다」고 밝혔다.얼핏 우리에게 고무적 내용같지만 외교전문가들은 해석을 달리한다. 자민당 집권시에는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수사」였다.원론을 반복한 것은 변화여지를 시사하며 사회당 입김이 반영된 것같다고 정부관계자는 분석했다. 또 일반의 전망과 달리 7당연합이 나름대로 보조를 맞춰가며 2년이상 정권을 이끌어간다면 대한반도정책의 상당한 수정이 이뤄질수도 있다. 신당세력들이 일본의 국제발언권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부정,긍정 양면으로 투영된다.무역수지의 과감한 개선노력,과거사에 대한 솔직한 정리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된다.과거사와 관련,국회결의형식이 추진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일본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은 그들에게 피침을 당했던 우리로서는 껄끄럽지 않을수 없다. 정부는 8월초 중의원 특별회의 표결에서 자민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을 배제하지않고 있다. 그러나 야7당의 정권획득여부를 떠나 일본정계가 2∼3년내에 양대보수정당으로나아가는 것이 필연적이라 보고 과거 자민당중심의 외교를 다변화할 방침이다. 신생당을 주도하고 있는 하타,오자와는 한국에 우호적인 다케시타파출신으로 선린관계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오자와는 우리 일부 기업인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다. 공명당,민사당은 한일의원연맹에 가입되어있어 그런대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수립할 토대는 마련되어 있다.사회당의 경우 김영삼대통령이 야당총재시절 쌓아놓은 개인적 친분이 도움을 주리라 기대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력신장으로 일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대전엑스포 도약의 디딤돌로(사설)

    1주일후에 개막되는 대전엑스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우리의 과학기술수준을 몇단계 앞당기고 선진국진입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확신때문이다.선진국들이 엑스포를 계기로 경제발전을 가속화시켰다는 선례에 비추어 대전엑스포는 우리에게 재도약의 디딤돌이 돼야할 것이다. 그러나 성급한 기대에 앞서 재음미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불과 5년전에 열린 88서울올림픽이 그것이다.서울올림픽은 당시 온세계의 극찬속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그 규모나 화려한 행사의 진행이 그렇고 특히 우리로서는 세계4위라는 스포츠강국으로 부상한 것을 두고 내려진 평가다. 그보다 더 큰소득은 우리의 국민적역량과 이미지를 인상깊게 세계에 알린것이었다.그러나 올림픽이후 세계의 찬사는 급속히 냉각됐고 지금 우리는 심각한 경제침체의 늪에 빠져있다.올림픽의 외형적성공을 내실로 연결시키지 못한 값비싼 대가로 봐야할 것이다. 때마침 무역진흥공사가 64년 일본도쿄올림픽과 서울올림픽을 비교한 흥미있는 분석자료를 내놓았다.일본은 올림픽개최이후 수출신장을 거듭한 결과 선진국대열에 올라 섰으나 우리는 88올림픽의 호재를 활용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일본은 올림픽이후 5년동안 세계평균의 2배가 넘는 수출증가를 기록한 반면 우리는 88년이후 5년간 사상 최저의 수출신장을 경험했다. 세계경제환경이 달랐다는 이유도 있다.그러나 정밀하게 본다면 우리자신에게 더큰 요인이 있었음을 본다.무분별한 욕구의 분출,심각한 노사분규,경제심리와 근면성의 현저한 이완등이 국제경쟁력을 상실시킨 가장 큰 원인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서울올림픽을 재음미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실패의 원인이 경제상황속에 온존해 있고 특히 대전엑스포라는 또하나의 기회가 실패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엑스포는 과학기술에대한 국민의식을 한껏 높여주고 과학기술발전에 따른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해주는 데 참뜻이 있다.1천5백만명의 내외국인이 참관할 대전엑스포는 올림픽이상의 비용이 투자됐다.생산·소득유발효과만도 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엑스포가 88올림픽처럼 국력의과시현장으로 그치거나 오히려 지나친 환상만을 주는 차원에서 그치면 안된다.기회는 찾아왔을 때 잡아야한다고 했다. 대전엑스포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또하나의 도약의 기회로 승화돼야한다.대전엑스포를 계기로 국민의식의 선진화는 물론이고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되겠다는 자세의 일대전환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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