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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원조 현장을 가다] (하) 전문 인력 양성

    [해외원조 현장을 가다] (하) 전문 인력 양성

    국내 중소기업들의 현지 사회공헌사업(CSR)에 대한 지원과 비정부기구(NGO)들에 대한 ‘민간단체 사업발굴 지원프로그램’(CSO)도 동남아와 한국을 잇는 공적개발원조(ODA)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진행 중인 두 사업을 통해 역할과 가능성을 살펴봤다. 소프트웨어 훈련 프로그램을 마치면 한국 기업에 취업할 생각입니다.”(셋삼보)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 가운데 여학생은 단 8명이에요. 여성도 정보기술(IT)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삭소니와) 캄보디아 프놈펜 토울콕 거리의 ‘코리아 소프트웨어 인력개발(HRD) 센터’. 한국을 배우려는 젊은이들로 활력이 넘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소프트웨어(SW) 전문가 인력양성센터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환원) 프로그램 지원사업으로 설립됐고, 2년동안 149만 달러의 지원을 기반으로 국내 금융 분야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웹케시가 프놈펜에서 별도 교육법인을 만들어 교육을 맡고 있다. 84명의 재학생들은 4년제 대학에서 이미 IT를 전공한 학생들로 전공학과 상위 3% 안에 드는 우등생들이다. “해마다 캄보디아에서 배출되는 IT 관련 대졸자 4000명 가운데 가장 우수한 80명”이란 소문이 자자하다.   이들은 자바, 웹, SQL 등 소프트웨어 전공지식과 영어 논술 능력 등을 통해 뽑혔다. 9개월 과정으로 하루에 8시간씩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꿈을 향해 전력투구 중이다. 학생들은 인터넷뱅킹 소프트웨어나 모바일 기반 소프트웨어들을 구축하는 등 실제적인 주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집이 어려워 무료 교육을 받는 한 학생은 “전문 소프트웨어 교육은 꿈도 못 꿨는데, 기회를 준 코이카와 한국에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첫 수료자인 43명은 100% 취업했고, 대상은 주로 캄보디아에 진출한 현지 한국기업들이다. 안랩, K4M 등 한국 SW 기업에 기술연수도 여럿이 와 있다. 우리가 키운 현지 학생들이 한국 기업의 일꾼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센터장인 김태경 박사는 “전체 인구 평균이 27세로 젊은 인구가 많은 성장형 국가여서 잠재력은 더 크다”며 “HRD센터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3~5년 안에 현지 IT 시장의 주요 인력으로 자리를 잡고, 한국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힘 줘 말했다.   정태성 코사인 법인장은 “한국의 10분의1 정도인 월 300~500달러의 인건비로 양질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고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등에도 HRD센터를 더 설립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인근 베트남과 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은 이곳보다 인건비가 3~4배 비싼 월 1500달러 수준이다. 백숙희 코이카 사무소장은 “캄보디아도 IT 산업을 활성화시켜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면서 “이 학생들이 캄보디아 IT 산업의 리더들이 될 것이고, 한국 SW 산업이 현지 진출해서 뿌리를 내리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장애인 직업기술훈련센터 ‘반티에이 쁘리업’. 크메르 루즈군의 감옥과 학살 현장, 군부대가 있었던 비극의 장소였지만 지금은 110명의 장애인들이 희망을 키우고 있다. 1991년부터 23년 동안 1500여명의 장애인들이 자립의 길을 찾고 있다. 캄보디아 예수회(JSC)가 장애인을 위해 이곳에 마을과 직업훈련학교를 시작했고,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설립한 천주교 NGO기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JSC와 사업을 맡고 있다.   시설 안에 들어오면 마을공동체란 느낌이 든다. 장애인 학생들은 이곳에서 1~2년 동안 교사들과 함께 먹고, 자고, 배우며 일하는 공동체인 까닭이다. 예수회의 오인돈 신부가 지난 17년 동안 센터를 관리해왔고, 성공적인 자활프로그램과 감동 어린 사연들을 쌓아가고 있는 이곳을 눈여겨본 코이카 측이 올해 2억 5300만 달러 상당에 이르는 직업교육과 기자재, 원재료 예산을 3년 동안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 학생들은 목공예, 농업, 기계, 전자, 재봉 등 5개 과목에서 직업기술훈련을 받고 있다. 글 사진 프놈펜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곽동연 이상형 김소현, 과거 이열음 가슴에 손이? ‘97년생의 도발’

    곽동연 이상형 김소현, 과거 이열음 가슴에 손이? ‘97년생의 도발’

    ’곽동연 이상형 김소현’ 아역배우 곽동연이 ‘명품 아역’ 김소현을 이상형으로 선택했다. 25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아역스타 곽동연 김유정 김동현 노태엽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규현은 “사전인터뷰에서 곽동연에게 ‘김유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여자로요?’라고 정색했다던데”라며 “김소현이 더 좋다고 말했다더라”고 폭로했다. 이에 곽동연은 당황하며 “김유정이 마음에 든다고 얘기하면 추가 질문이 올 것 같아서 김소현을 좋아한다고 한 거다”라고 해명했다. 곽동연의 옆에 앉아있던 김유정은 “남자들은 소현이를 더 좋아하더라. 소현이는 약간 청순한 스타일인데 나는좀 세게 나와서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곽동현 이상형 김소현 언급에 네티즌은 “곽동현 이상형 김소현..이열음과 저런 장면도 찍었네?”, “곽동현 이상형 김소현..역시 어른이네”, “곽동현 이상형 김소현..보는 눈 있네”, “곽동연 이상형 김소현, 내 이상형도 마찬가지”, “곽동연 이상형 김소현, 정말 예쁘지”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1997년생인 곽동연은 최근 ‘중학생 A양’에서는 강남의 중학교로 갓 전학 온 우등생으로 분해 천문학자를 꿈꾸는 순수한 소년의 모습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작품에서 당시 여주인공 이열음은 곽동연에게 “만져보고 싶어? 그러고 싶음 그렇게 해”라며 이해준의 손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가져다대는 도발적인 행동을 선보여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진 = 방송 캡처 (곽동연 이상형 김소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공공기관 경영평가 발표…2012년에 비해 크게 후퇴 ‘낙제점’ 2배 늘어

    공공기관 경영평가 발표…2012년에 비해 크게 후퇴 ‘낙제점’ 2배 늘어

    ‘공공기관 경영평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발표됐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실적을 평가한 결과, 기관들의 전반적인 성적이 2012년보다 크게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제점’인 D, E 등급을 받은 기관이 1년 전보다 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우수한 성적인 S와 A 등급을 받은 기관은 크게 줄었다. 경영평가단은 이번 평가에서 국민안전을 해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만든 기관에 ‘철퇴’를 날렸다. 이 때문에 세월호 선박 검사를 소홀히 한 선박안전기술공단의 성적이 최하위 등급으로 추락하는 등, 국민 안전 관련 기관에는 된서리가 몰아쳤다. ●’낙제점’ D·E등급 2배 늘고 ‘우등생’ S등급 한곳도 없어 기획재정부가 18일 발표한 ‘2013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를 보면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은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다음 등급인 A등급(우수)도 2곳에 불과했다. 반면 꼴찌인 E등급(매우 미흡)은 2012년 7곳에서 지난해 11곳으로 늘었다. D등급(미흡)도 전년도 9곳에서 지난해 19곳으로 늘어났다. 전체 공공기관 117개 중 무려 25.6%인 30곳이 해임 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낙제점’인 D·E등급을 받은 것이다. 이는 지난해 낙제 기관 수(16곳)의 배에 가깝다. 이처럼 공공기관 성적이 추락한 데에는 세월호 사고 등을 계기로 국민 안전 관리 등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무 등에 대한 평가가 강화된 영향이 크다. 경영평가단은 선박안전기술공단과 울산항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대해 안전 관리가 미흡하다는 점 등을 들어 E등급을 부여했다. 예년보다 안전 관리 부분이 평가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강조되긴 했지만, 공공기관들의 경영성과 자체도 부진해진 것도 성적 추락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부채 과다 및 방만경영기관으로 꼽힌 30개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의 지난해 성적은 형편없다. 전년도보다 평가등급이 오른 곳은 한국장학재단 등 4곳밖에 없다. 6개 기관은 전년 수준 유지, 20개 기관은 전년보다 하락했다. ●안전소홀·파업·국민불편 초래 기업 된서리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민 안전에 위험 요인을 유발하거나 파업 등으로 국민 불편을 가져온 공공기관은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 평가에서 우수를 의미하는 A를 받은 선박안전기술공단은 세월호 부실 검사 등으로 낙제를 의미하는 최하위 등급인 E로 4계단 추락했다. 주요 사업의 실적 부진으로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세월호에 대한 선박검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지만 불법 증축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못한 점이 평가에 반영됐다. 경영평가단은 선박안전기술공단에 대해 안전 검사 주무 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엄중하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울산항만공사도 재무관리 시스템 체계화 필요, 경영성과급 차등 지급 실적 저조 외에 액체 위험물을 다량으로 취급하지만 항만운영상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E등급을 받았다. 인천항만공사 역시 항만 운용사업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이 미흡하고 안전 관리 역량을 높이는 노력이 부족해 지난해보다 2계단 낮은 C등급을 받았다. 한국철도공사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에 실패하면서 최장기 파업이 발생해 C등급(보통)에서 최하위 등급인 E로 떨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부품 납품 비리에 이은 원전 정지 사태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D등급에서 E등급으로 떨어졌다. 남부·남동·동서·서부·중부 등 5개 발전자회사는 순이익이 감소해 등급이 지난해보다 내려갔다. 거액의 연봉과 높은 복지 수준 때문에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거래소는 보수 및 성과관리, 노사관리 부문의 실적이 미흡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전산장애에 대한 사전 대비가 미흡해 지난해 D등급보다 한 단계 낮은 낙제점(E등급)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공기관 평가 결과…2012년에 비해 크게 후퇴 ‘낙제점’ 2배 늘어

    공공기관 평가 결과…2012년에 비해 크게 후퇴 ‘낙제점’ 2배 늘어

    ‘공공기관 평가 결과’ 공공기관 평가 결과 지난해 기관들의 경영실적이 2012년보다 크게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제점’인 D, E 등급을 받은 기관이 1년 전보다 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우수한 성적인 S와 A 등급을 받은 기관은 크게 줄었다. 경영평가단은 이번 평가에서 국민안전을 해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만든 기관에 ‘철퇴’를 날렸다. 이 때문에 세월호 선박 검사를 소홀히 한 선박안전기술공단의 성적이 최하위 등급으로 추락하는 등, 국민 안전 관련 기관에는 된서리가 몰아쳤다. ●’낙제점’ D·E등급 2배 늘고 ‘우등생’ S등급 한곳도 없어 기획재정부가 18일 발표한 ‘2013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를 보면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은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다음 등급인 A등급(우수)도 2곳에 불과했다. 반면 꼴찌인 E등급(매우 미흡)은 2012년 7곳에서 지난해 11곳으로 늘었다. D등급(미흡)도 전년도 9곳에서 지난해 19곳으로 늘어났다. 전체 공공기관 117개 중 무려 25.6%인 30곳이 해임 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낙제점’인 D·E등급을 받은 것이다. 이는 지난해 낙제 기관 수(16곳)의 배에 가깝다. 이처럼 공공기관 성적이 추락한 데에는 세월호 사고 등을 계기로 국민 안전 관리 등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무 등에 대한 평가가 강화된 영향이 크다. 경영평가단은 선박안전기술공단과 울산항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대해 안전 관리가 미흡하다는 점 등을 들어 E등급을 부여했다. 예년보다 안전 관리 부분이 평가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강조되긴 했지만, 공공기관들의 경영성과 자체도 부진해진 것도 성적 추락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부채 과다 및 방만경영기관으로 꼽힌 30개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의 지난해 성적은 형편없다. 전년도보다 평가등급이 오른 곳은 한국장학재단 등 4곳밖에 없다. 6개 기관은 전년 수준 유지, 20개 기관은 전년보다 하락했다. ●안전소홀·파업·국민불편 초래 기업 된서리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민 안전에 위험 요인을 유발하거나 파업 등으로 국민 불편을 가져온 공공기관은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 평가에서 우수를 의미하는 A를 받은 선박안전기술공단은 세월호 부실 검사 등으로 낙제를 의미하는 최하위 등급인 E로 4계단 추락했다. 주요 사업의 실적 부진으로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세월호에 대한 선박검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지만 불법 증축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못한 점이 평가에 반영됐다. 경영평가단은 선박안전기술공단에 대해 안전 검사 주무 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엄중하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울산항만공사도 재무관리 시스템 체계화 필요, 경영성과급 차등 지급 실적 저조 외에 액체 위험물을 다량으로 취급하지만 항만운영상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E등급을 받았다. 인천항만공사 역시 항만 운용사업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이 미흡하고 안전 관리 역량을 높이는 노력이 부족해 지난해보다 2계단 낮은 C등급을 받았다. 한국철도공사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에 실패하면서 최장기 파업이 발생해 C등급(보통)에서 최하위 등급인 E로 떨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부품 납품 비리에 이은 원전 정지 사태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D등급에서 E등급으로 떨어졌다. 남부·남동·동서·서부·중부 등 5개 발전자회사는 순이익이 감소해 등급이 지난해보다 내려갔다. 거액의 연봉과 높은 복지 수준 때문에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거래소는 보수 및 성과관리, 노사관리 부문의 실적이 미흡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전산장애에 대한 사전 대비가 미흡해 지난해 D등급보다 한 단계 낮은 낙제점(E등급)을 받았다. ●내년 인사조치 기관장 늘어날 수도 전반적인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해임 건의나 경고 조치 대상에 오른 기관장은 많지 않았다. 임명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기관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기관장이 경영 실적을 향상시키지 못하면 내년 평가에서 인사 조치 대상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평가 결과에서 E등급을 받거나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D등급을 받은 14개 기관의 기관장은 원칙적으로 해임 건의 대상이지만 이 중 12개 기관의 기관장은 임명 기간이 6개월 미만이어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E등급을 받은 울산항만공사의 박종록 사장과 2년 연속 D등급을 받은 산업기술시험원의 남궁민 원장 등 2명이 해임 건의 대상에 올랐다. 기관장 경고 조치 대상도 원칙적으로 16개 기관이지만 조인국 한국서부발전 사장 등 10명은 임명 기간이 6개월 미만이어서 제외됐다. 하지만 임명 기간이 6개월 이상이면서 D 등급을 받은 김선규 대한주택보증 사장 등 6명은 경고 조치를 받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사, 사장님, 아이돌 친구…교복 빌려 입은판타지 드라마

    천사, 사장님, 아이돌 친구…교복 빌려 입은판타지 드라마

    아이스하키부에서 활동하는 민석(서인국)은 까칠하고 무뚝뚝한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행방불명된 형을 대신해 대기업의 본부장으로 일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싱가포르에서 투자 계약을 성사시킨 뒤 헬기를 타고 회사에 복귀하더니, 엘리베이터에서 급하게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달려간다. 지난 16일 처음 전파를 탄 tvN 드라마 ‘고교처세왕’의 첫 장면이다. 유제원 PD는 “10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리는 청소년드라마와는 다르다”면서도 “직장생활을 하는 주인공을 통해 10대들은 기성세대의 애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의 청소년 드라마는 더 이상 예전의 인기작품 ‘사춘기’와 ‘학교’ 같지 않다. 교복 입은 10대가 주인공이지만 그가 겪는 삶은 평범한 10대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또는 10대들의 일상에 추리와 미스터리 요소가 버무려지고 연예계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든 10대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판타지’는 필수요소로 굳어지고 있다. 이달 말 첫 방송하는 KBS ‘하이스쿨:러브온’은 ‘판타지 성장 로맨스’를 표방한다. 위기에 빠진 고교생을 구하려다 인간이 된 천사가 고교생과 함께 생활하면서 시작한다. 천사는 고교생의 집에 머물고 함께 학교를 다니며 평범한 고교 2학년의 사랑과 고민, 성장을 경험한다. 그룹 인피니트의 우현과 성열, 김새론이 주인공을 맡았다. 1990년대 청소년 드라마는 10대들의 일상과 문화를 건전하게 그렸다. MBC ‘사춘기’(1993)와 ‘나’(1996)가 대표적이다. ‘청소년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계몽성이 도드라져 “어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10대의 현실에 깊이 발을 디딘 드라마들이 사랑받았다. 1999년 시작된 KBS ‘학교’ 시리즈는 반장과 우등생, 반항아와 왕따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다뤘다. KBS ‘학교 2013’(2013)과 ‘정글피쉬2’(2010)는 학교폭력과 입시지옥, 교권추락 등의 문제들을 묵직하게 제기해 화제가 됐다. 한편으로는 KBS ‘반올림’(2003)이 평범한 여중생의 눈에 비친 세상을 섬세하게 그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의 드라마들은 10대들의 사랑과 우정, 성장이라는 메시지는 그대로지만 이를 풀어내는 설정은 평범한 10대가 경험하기 힘든 판타지 위에 서 있다. KBS ‘드림하이’(2011)는 연예예술고 학생들이라는 흔치 않은 인물들을 내세웠다. tvN ‘몬스타’(2013)는 음악동아리로 모인 고교생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지만 아이돌 스타가 같은 반 친구가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했다. ‘하이스쿨:러브온’의 이은미 PD는 “과거에는 리얼리즘에 기반한 청소년드라마가 사랑받았지만 이제는 10대들의 트렌드가 변했다고 판단해 판타지 장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중학생 정영서(14)양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을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면 다양한 상상도 해보고 많은 걸 얻을 수도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강예지(17)양도 “굳이 드라마에서까지 입시나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보며 현실과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건 10대들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리모컨을 쥔 어른들이 청소년 드라마를 더 이상 찾지 않자 방송사들이 택한 절충안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 평론가는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기존의 청소년 드라마보다는 상업적인 포인트가 강해지는 추세”라면서 “10대를 대변한다기보다 10대를 대상화하는 드라마가 늘었고 기성세대와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는 10대들 모두가 소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짚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감정을 감추도록 세뇌된 2025년 아이들

    [이 주일의 어린이 책] 감정을 감추도록 세뇌된 2025년 아이들

    감정조절기 하트/김보름 지음/김종석 그림/현북스 펴냄/108쪽/1만 1000원 2025년. 은찬이의 가슴에 달린 ‘하트’의 초록빛에 엄마의 입꼬리가 달싹 올라간다. 감정이 가장 적절한 상태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감정 통제력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 엄마는 하트 예찬론자이자 하트사랑학부모위원장이다. 아이들의 가슴에 제2의 심장처럼 달린 배지 ‘하트’. 별칭이 ‘내놓은 심장’인 하트는 감정에 따라 빨주노초파남보로 색을 달리한다. 잠시라도 하트를 뗄라치면 아이들은 불안에 떤다. 제 감정을 타인에게 들킬까, 감정이 불쑥 터질까 두려워서다.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도 위험한 감정으로 분류된다. 아이들은 입을 모은다. “감정이 터져 나오면 당연히 안 되는 거잖아요.” 아이들은 ‘감정 우등생’이 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개인 과외를 받는다. 트램펄린, 속칭 ‘퐁퐁’은 불법 놀이기구로 분류돼 사라진 지 오래다. 춤과 음악 등 신나는 것들도 딴 나라 얘기다. 어른들에게도 알코올도수 1도 이상인 술은 금지인 ‘통제의 세상’이다. 은찬이는 그동안 ‘이달의 감정 조절 어린이’를 독점하던 세린이를 밀어내고 감정 조절 점수 전교 1등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쁘긴커녕 자꾸만 악몽에 짓눌린다. 감정대로 살면 생활도 공부도 엉망이 된다고 세뇌된 아이들. 감정 통제의 고수가 되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비단 미래의 가상 이야기 속에만 있지 않다. 지금도 스스로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기 전에 미리 정해진 노선을 따라 질주하도록 교육받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나타내는 배지라는 기발한 설정과 ‘색칠된 감정’이 아니라 진짜 감정을 찾으려는 은찬이의 외로운 분투가 잘 맞물린 수작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언어야말로 우리가 진실로 신뢰할 수 있는 삶의 지표”라는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귓전에 울린다. 4학년부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고승덕 기자회견 “연락한 적 없다고?” 카카오톡 공개.. 딸의 글 전문 보니

    고승덕 기자회견 “연락한 적 없다고?” 카카오톡 공개.. 딸의 글 전문 보니

    ‘고승덕 기자회견’, ‘고승덕 딸 글, 고승덕 딸의 글’, ‘고승덕 카카오톡’ 고승덕 서울시 교욱감 후보가 딸의 페이스북 글 파문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승덕 후보의 친딸인 고희경 씨(27)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들게’라는 제목으로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친자녀 교육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서울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고승덕 후보는 1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딸의 글에 대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임을 인정하고 서울시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승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이혼과정에 대해 “어린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기에 내 딸과 아들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에 미국에 안 갔다. 딸과는 가끔 카카오톡과 전화를 했고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는 것에 대해 바로 잡고 싶다”며 딸 고희경 씨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고승덕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고승덕 후보는 “난 너희 둘 때문에 입양 포기하고 외롭게 산다. 그래도 내겐 너희 둘이 유일한 핏줄이야. 지금도 너희들 미국 갈 때처럼 내 모든 것 뺏긴 것 같이 느껴”라고 말했다. 이에 딸 고희경 씨는 “그래도 재혼했잖아요. 뺏긴 것처럼 느끼면서 살지 말고 자식에게 좀 잘 해봐요.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모른 척해요”라고 원망하는 듯한 답을 보냈다. 고승덕 후보의 카카오톡 메시지 공개는 고희경 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1년 휴대전화를 갖게 된 이후 한 번도 번호가 바뀐 적이 없다. 그가 제게 전혀 연락하려고 애쓰지 않았고 그가 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는 지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네티즌들은 “고승덕 딸의 글 기자회견, 가족사까지 공개돼서 모두에게 상처가 크겠다”, “고승덕 딸의 글 전문 보니 부녀 관계가 완전 틀어져 있구나”, “고승덕 기자회견, 친딸에게 상처 준 아빠가 교육감을 할 수 있을까”, “고승덕 딸의 글 전문 기자회견, 과연 교육감 당선 누가 될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 이하 고승덕 딸의 글 전문. 서울 시민들께 나는 서울시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급하게 서울의 교육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걱정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제 이름은 캔디 고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은 고희경이었죠. 나는 고승덕과 박유아의 두 자녀 중 첫째 입니다. 서울 교육감 후보인 그 고승덕의 딸이죠. 최근 고승덕이 후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양심에 비춰 그의 딸로서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대표하고 책임을 맡을지도 모를 사람의 진실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녀의 교육을 책임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1987년 우리 엄마와 고승덕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인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뉴저지에서 내 남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먹었을 때도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뉴욕의 학교에 보내려고 미국에 데려왔을 때 고승덕은 한국에 남았고 우리 모두와 접촉을 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에 적응했을 때 나는 고작 11살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때, 결국 내가 ‘모른다’고 대답해야 할 때마다 정말 싫었습니다.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으며, 생일날 전화를 하거나 선물을 주는 건 상상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금전적인 도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도와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대학을 나올 수 있었고, 반에서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내 관심인 공무원에 지원하기 위해 가을에 장학금을 받아 로스쿨에 갈 계획입니다. 나는 내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이 정도를 성취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홀로 자기 자식을 부양했습니다. 또 돌아가실 때까지 내 삶 전체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해 준 외할아버지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내가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승덕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지 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최선의 교육을 베풀 수 있는지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 그가 부모를 교육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분노했습니다. 정작 고승덕은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내팽개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겨우 10대였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업적과 학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걸 봤지만 침묵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미국인답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승덕이 서울의 교육감에 입후보한 것은 그 선을 넘어선 겁니다. 내가 계속 침묵하는 건 서울시민을 속이는 일일 겁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고승덕은 교육을 하기는커녕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나는 서울시민들에게 고승덕이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만일 교육감의 역할이 서울시의 교육정책과 교육시스템을 책임지는 일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혈육마저 가르치려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나는 고승덕의 딸인데도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전 서울시민으로서, 아직도 서울에 사는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서울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실 거라고 믿습니다. 교육감에 더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정말로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한 사람을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고승덕 기자회견, 고승덕 딸의 글 전문)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고승덕 후보 기자회견, 친딸 페이스북에 뭐라고 썼기에.. [전문]

    고승덕 후보 기자회견, 친딸 페이스북에 뭐라고 썼기에.. [전문]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친딸인 고희경 씨(27)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들게’라는 제목으로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친자녀 교육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서울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고승덕 후보는 1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딸 글에 대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임을 인정하고 서울시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승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어린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기에 내 딸과 아들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에 미국에 안 갔다. 딸과는 가끔 카카오톡과 전화를 했고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는 것에 대해 바로 잡고 싶다”며 자신이 부녀 관계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근거로 고희경 씨와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 이하 고승덕 친딸의 글 전문. 서울 시민들께 나는 서울시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급하게 서울의 교육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걱정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제 이름은 캔디 고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은 고희경이었죠. 나는 고승덕과 박유아의 두 자녀 중 첫째 입니다. 서울 교육감 후보인 그 고승덕의 딸이죠. 최근 고승덕이 후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양심에 비춰 그의 딸로서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대표하고 책임을 맡을지도 모를 사람의 진실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녀의 교육을 책임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1987년 우리 엄마와 고승덕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인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뉴저지에서 내 남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먹었을 때도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뉴욕의 학교에 보내려고 미국에 데려왔을 때 고승덕은 한국에 남았고 우리 모두와 접촉을 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에 적응했을 때 나는 고작 11살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때, 결국 내가 ‘모른다’고 대답해야 할 때마다 정말 싫었습니다.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으며, 생일날 전화를 하거나 선물을 주는 건 상상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금전적인 도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도와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대학을 나올 수 있었고, 반에서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내 관심인 공무원에 지원하기 위해 가을에 장학금을 받아 로스쿨에 갈 계획입니다. 나는 내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이 정도를 성취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홀로 자기 자식을 부양했습니다. 또 돌아가실 때까지 내 삶 전체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해 준 외할아버지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내가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승덕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지 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최선의 교육을 베풀 수 있는지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 그가 부모를 교육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분노했습니다. 정작 고승덕은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내팽개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겨우 10대였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업적과 학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걸 봤지만 침묵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미국인답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승덕이 서울의 교육감에 입후보한 것은 그 선을 넘어선 겁니다. 내가 계속 침묵하는 건 서울시민을 속이는 일일 겁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고승덕은 교육을 하기는커녕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나는 서울시민들에게 고승덕이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만일 교육감의 역할이 서울시의 교육정책과 교육시스템을 책임지는 일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혈육마저 가르치려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나는 고승덕의 딸인데도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전 서울시민으로서, 아직도 서울에 사는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서울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실 거라고 믿습니다. 교육감에 더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정말로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한 사람을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고승덕 변호사 딸, 페이스북에 아빠 디스 글 올려.. 내용 보니 [전문]

    고승덕 변호사 딸, 페이스북에 아빠 디스 글 올려.. 내용 보니 [전문]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1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문을 일으킨 친딸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임을 인정하고 서울시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승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어린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기에 내 딸과 아들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에 미국에 안 갔다. 딸과는 가끔 카카오톡과 전화를 했고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는 것에 대해 바로 잡고 싶다”며 자신이 부녀 관계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근거로 고희경 씨와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고승덕 변호사 딸인 고희경 씨(27)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들께’라는 제목으로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친자녀 교육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서울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 이하 고승덕 변호사 딸의 전문. 서울 시민들께 나는 서울시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급하게 서울의 교육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걱정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제 이름은 캔디 고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은 고희경이었죠. 나는 고승덕과 박유아의 두 자녀 중 첫째 입니다. 서울 교육감 후보인 그 고승덕의 딸이죠. 최근 고승덕이 후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양심에 비춰 그의 딸로서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대표하고 책임을 맡을지도 모를 사람의 진실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녀의 교육을 책임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1987년 우리 엄마와 고승덕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인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뉴저지에서 내 남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먹었을 때도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뉴욕의 학교에 보내려고 미국에 데려왔을 때 고승덕은 한국에 남았고 우리 모두와 접촉을 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에 적응했을 때 나는 고작 11살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때, 결국 내가 ‘모른다’고 대답해야 할 때마다 정말 싫었습니다.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으며, 생일날 전화를 하거나 선물을 주는 건 상상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금전적인 도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도와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대학을 나올 수 있었고, 반에서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내 관심인 공무원에 지원하기 위해 가을에 장학금을 받아 로스쿨에 갈 계획입니다. 나는 내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이 정도를 성취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홀로 자기 자식을 부양했습니다. 또 돌아가실 때까지 내 삶 전체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해 준 외할아버지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내가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승덕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지 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최선의 교육을 베풀 수 있는지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 그가 부모를 교육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분노했습니다. 정작 고승덕은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내팽개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겨우 10대였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업적과 학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걸 봤지만 침묵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미국인답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승덕이 서울의 교육감에 입후보한 것은 그 선을 넘어선 겁니다. 내가 계속 침묵하는 건 서울시민을 속이는 일일 겁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고승덕은 교육을 하기는커녕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나는 서울시민들에게 고승덕이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만일 교육감의 역할이 서울시의 교육정책과 교육시스템을 책임지는 일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혈육마저 가르치려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나는 고승덕의 딸인데도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전 서울시민으로서, 아직도 서울에 사는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서울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실 거라고 믿습니다. 교육감에 더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정말로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한 사람을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고승덕, 친딸 방치? “연락 노력했다” 카카오톡 공개

    고승덕, 친딸 방치? “연락 노력했다” 카카오톡 공개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1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문을 일으킨 친딸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임을 인정하고 서울시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승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어린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기에 내 딸과 아들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에 미국에 안 갔다. 딸과는 가끔 카카오톡과 전화를 했고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는 것에 대해 바로 잡고 싶다”며 자신이 부녀 관계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근거로 고희경 씨와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고승덕 변호사 딸인 고희경 씨(27)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들께’라는 제목으로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친자녀 교육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서울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 이하 고승덕 변호사 딸의 전문. 서울 시민들께 나는 서울시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급하게 서울의 교육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걱정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제 이름은 캔디 고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은 고희경이었죠. 나는 고승덕과 박유아의 두 자녀 중 첫째 입니다. 서울 교육감 후보인 그 고승덕의 딸이죠. 최근 고승덕이 후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양심에 비춰 그의 딸로서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대표하고 책임을 맡을지도 모를 사람의 진실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녀의 교육을 책임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1987년 우리 엄마와 고승덕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인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뉴저지에서 내 남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먹었을 때도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뉴욕의 학교에 보내려고 미국에 데려왔을 때 고승덕은 한국에 남았고 우리 모두와 접촉을 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에 적응했을 때 나는 고작 11살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때, 결국 내가 ‘모른다’고 대답해야 할 때마다 정말 싫었습니다.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으며, 생일날 전화를 하거나 선물을 주는 건 상상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금전적인 도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도와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대학을 나올 수 있었고, 반에서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내 관심인 공무원에 지원하기 위해 가을에 장학금을 받아 로스쿨에 갈 계획입니다. 나는 내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이 정도를 성취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홀로 자기 자식을 부양했습니다. 또 돌아가실 때까지 내 삶 전체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해 준 외할아버지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내가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승덕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지 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최선의 교육을 베풀 수 있는지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 그가 부모를 교육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분노했습니다. 정작 고승덕은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내팽개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겨우 10대였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업적과 학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걸 봤지만 침묵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미국인답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승덕이 서울의 교육감에 입후보한 것은 그 선을 넘어선 겁니다. 내가 계속 침묵하는 건 서울시민을 속이는 일일 겁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고승덕은 교육을 하기는커녕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나는 서울시민들에게 고승덕이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만일 교육감의 역할이 서울시의 교육정책과 교육시스템을 책임지는 일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혈육마저 가르치려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나는 고승덕의 딸인데도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전 서울시민으로서, 아직도 서울에 사는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서울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실 거라고 믿습니다. 교육감에 더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정말로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한 사람을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서울시 교육감 후보 고승덕, 친딸이 “자격 없다” 디스

    서울시 교육감 후보 고승덕, 친딸이 “자격 없다” 디스

    고승덕 변호사 딸, 페이스북에 아빠 디스 글 올려.. 내용 보니 [전문]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1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문을 일으킨 친딸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임을 인정하고 서울시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승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어린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기에 내 딸과 아들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에 미국에 안 갔다. 딸과는 가끔 카카오톡과 전화를 했고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는 것에 대해 바로 잡고 싶다”며 자신이 부녀 관계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근거로 고희경 씨와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고승덕 변호사 딸인 고희경 씨(27)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들께’라는 제목으로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친자녀 교육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서울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 이하 고승덕 변호사 딸의 전문. 서울 시민들께 나는 서울시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급하게 서울의 교육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걱정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제 이름은 캔디 고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은 고희경이었죠. 나는 고승덕과 박유아의 두 자녀 중 첫째 입니다. 서울 교육감 후보인 그 고승덕의 딸이죠. 최근 고승덕이 후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양심에 비춰 그의 딸로서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대표하고 책임을 맡을지도 모를 사람의 진실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습니다. 고승덕은 자녀의 교육을 책임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1987년 우리 엄마와 고승덕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인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뉴저지에서 내 남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먹었을 때도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뉴욕의 학교에 보내려고 미국에 데려왔을 때 고승덕은 한국에 남았고 우리 모두와 접촉을 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에 적응했을 때 나는 고작 11살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때, 결국 내가 ‘모른다’고 대답해야 할 때마다 정말 싫었습니다. 고승덕은 나와 내 동생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으며, 생일날 전화를 하거나 선물을 주는 건 상상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금전적인 도움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도와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대학을 나올 수 있었고, 반에서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내 관심인 공무원에 지원하기 위해 가을에 장학금을 받아 로스쿨에 갈 계획입니다. 나는 내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이 정도를 성취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마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홀로 자기 자식을 부양했습니다. 또 돌아가실 때까지 내 삶 전체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해 준 외할아버지 없이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내가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한국 미디어를 통해서 고승덕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지 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최선의 교육을 베풀 수 있는지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 그가 부모를 교육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분노했습니다. 정작 고승덕은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내팽개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겨우 10대였고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업적과 학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걸 봤지만 침묵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미국인답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승덕이 서울의 교육감에 입후보한 것은 그 선을 넘어선 겁니다. 내가 계속 침묵하는 건 서울시민을 속이는 일일 겁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고승덕은 교육을 하기는커녕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나는 서울시민들에게 고승덕이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만일 교육감의 역할이 서울시의 교육정책과 교육시스템을 책임지는 일이라면 고승덕은 이 일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혈육마저 가르치려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나는 고승덕의 딸인데도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전 서울시민으로서, 아직도 서울에 사는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서울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실 거라고 믿습니다. 교육감에 더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정말로 서울의 교육시스템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한 사람을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열공’하면 사망…희귀병 걸린 우등생女 사연

    ‘열공’하면 사망…희귀병 걸린 우등생女 사연

    명문대 입학이 거의 보장된 우등생이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희귀질환인 에디슨 병을 앓고 있는 17세 영국 소녀 제니퍼 로이드의 안타까운 사연을 28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영국 맨체스터 프레스트위치에 살고 있는 제니퍼는 재학생 대부분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는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펜들톤 칼리지’(Pendleton Sixth Form College)에서 심리학, 지리학, 경영학 과목을 심화 학습하고 있는 우등생이다. AS 레벨 테스트 준비를 병행하며 명문대 입학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제니퍼에게는 그러나 남모를 아픔이 숨겨져 있다. 1만 5000명 중 1명 꼴로 발병하는 ‘에디슨 병’을 앓고 있는 것. 에디슨 병은 영국 의사 T. 에디슨이 최초 발견한 질환으로, 체내 내분비기관에서 나오는 부신피질 호르몬(소염작용, 면역억제 기능이 있는 당질 코르티코이드)이 부족해져 발생한다. 특히 공부 부담이 많은 수험생에게 위험한 질환인데 과도한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아드레날린이 악영향을 미쳐 구토나 기절증상이 일어나기 쉽고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10년 전, 처음 에디슨 병 질환을 진단받은 제니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공부 해왔다. 하지만 작년 여름, 그녀는 영국 중등 교육 자격 검정 시험(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을 준비하다 결국 왼쪽 가슴에 심한 충격을 느끼며 생명이 위독했던 아찔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는 항상 약을 복용해야하고 시험 준비를 할 때면 스트레스를 억제하기 위해 평소보다 2배가 넘는 양을 먹어줘야 한다. 최근 그녀는 영재 학생 프로그램에 선정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 입학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병이 병원과 집을 떠나 대학교 학업을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최종 무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퍼의 학업의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다른 학생과 달리 하루 종일 공부 부담을 질 수가 없다. 따라서 일정 시간 동안 최대한 집중해 공부하고 반드시 2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먼 곳에서 공부할 만큼 건강이 허락되지는 않지만 ‘아동 심리학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공부 열심히 하면 죽는 ‘희귀병 소녀’의 사연

    공부 열심히 하면 죽는 ‘희귀병 소녀’의 사연

    명문대 입학이 거의 보장된 우등생이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희귀질환인 에디슨 병을 앓고 있는 17세 영국 소녀 제니퍼 로이드의 안타까운 사연을 28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영국 맨체스터 프레스트위치에 살고 있는 제니퍼는 재학생 대부분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는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펜들톤 칼리지’(Pendleton Sixth Form College)에서 심리학, 지리학, 경영학 과목을 심화 학습하고 있는 우등생이다. AS 레벨 테스트 준비를 병행하며 명문대 입학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제니퍼에게는 그러나 남모를 아픔이 숨겨져 있다. 1만 5000명 중 1명 꼴로 발병하는 ‘에디슨 병’을 앓고 있는 것. 에디슨 병은 영국 의사 T. 에디슨이 최초 발견한 질환으로, 체내 내분비기관에서 나오는 부신피질 호르몬(소염작용, 면역억제 기능이 있는 당질 코르티코이드)이 부족해져 발생한다. 특히 공부 부담이 많은 수험생에게 위험한 질환인데 과도한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아드레날린이 악영향을 미쳐 구토나 기절증상이 일어나기 쉽고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10년 전, 처음 에디슨 병 질환을 진단받은 제니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공부 해왔다. 하지만 작년 여름, 그녀는 영국 중등 교육 자격 검정 시험(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을 준비하다 결국 왼쪽 가슴에 심한 충격을 느끼며 생명이 위독했던 아찔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는 항상 약을 복용해야하고 시험 준비를 할 때면 스트레스를 억제하기 위해 평소보다 2배가 넘는 양을 먹어줘야 한다. 최근 그녀는 영재 학생 프로그램에 선정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 입학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병이 병원과 집을 떠나 대학교 학업을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최종 무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퍼의 학업의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다른 학생과 달리 하루 종일 공부 부담을 질 수가 없다. 따라서 일정 시간 동안 최대한 집중해 공부하고 반드시 2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먼 곳에서 공부할 만큼 건강이 허락되지는 않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공부 열심히 하면 죽는 17세 ‘희귀병 소녀’의 사연

    공부 열심히 하면 죽는 17세 ‘희귀병 소녀’의 사연

    명문대 입학이 거의 보장된 우등생이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희귀질환인 에디슨 병을 앓고 있는 17세 영국 소녀 제니퍼 로이드의 안타까운 사연을 28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영국 맨체스터 프레스트위치에 살고 있는 제니퍼는 재학생 대부분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는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펜들톤 칼리지’(Pendleton Sixth Form College)에서 심리학, 지리학, 경영학 과목을 심화 학습하고 있는 우등생이다. AS 레벨 테스트 준비를 병행하며 명문대 입학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제니퍼에게는 그러나 남모를 아픔이 숨겨져 있다. 1만 5000명 중 1명 꼴로 발병하는 ‘에디슨 병’을 앓고 있는 것. 에디슨 병은 영국 의사 T. 에디슨이 최초 발견한 질환으로, 체내 내분비기관에서 나오는 부신피질 호르몬(소염작용, 면역억제 기능이 있는 당질 코르티코이드)이 부족해져 발생한다. 특히 공부 부담이 많은 수험생에게 위험한 질환인데 과도한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아드레날린이 악영향을 미쳐 구토나 기절증상이 일어나기 쉽고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10년 전, 처음 에디슨 병 질환을 진단받은 제니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공부 해왔다. 하지만 작년 여름, 그녀는 영국 중등 교육 자격 검정 시험(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을 준비하다 결국 왼쪽 가슴에 심한 충격을 느끼며 생명이 위독했던 아찔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는 항상 약을 복용해야하고 시험 준비를 할 때면 스트레스를 억제하기 위해 평소보다 2배가 넘는 양을 먹어줘야 한다. 최근 그녀는 영재 학생 프로그램에 선정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 입학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병이 병원과 집을 떠나 대학교 학업을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최종 무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퍼의 학업의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다른 학생과 달리 하루 종일 공부 부담을 질 수가 없다. 따라서 일정 시간 동안 최대한 집중해 공부하고 반드시 2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먼 곳에서 공부할 만큼 건강이 허락되지는 않지만 ‘아동 심리학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제주도지사] 원희룡 vs 신구범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제주도지사] 원희룡 vs 신구범

    ■ 원희룡 후보, ‘島心’ 택한 중앙통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는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2007년 대선과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이 아닌 고향 제주에 출마하자 대권을 향한 우회로를 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원 후보는 “중앙 정치에서 쌓은 정치적 자산을 제주를 먼저 변화시키는 데 활용한 뒤 나중에 국가 발전에 매진해 달라는 도민들의 염원에 따른 것”이라는 논리로 응수했다. 원 후보는 1964년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쌀밥 구경을 하기 힘들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그의 부모는 고무신 장사, 잡화상, 농약방, 서점 등을 운영하다 망하기를 반복하며 빚 독촉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원 후보는 어릴 적 리어카 바퀴에 오른쪽 발가락이 끼어 거의 잘릴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때 발가락 2개가 뒤틀리는 장애를 얻어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원 후보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 ‘공부’라고 믿었다. 변변찮은 책상 하나 없어 사과 상자를 책상 삼아 공부했다. 여건은 열악했지만 그의 학업 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1982년 제주제일고를 졸업한 원 후보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화제가 됐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가하면서 6개월간 유기정학을 당하는 등 잠시 학업에 소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스타일의 원 후보는 1992년 사법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원 후보의 학창 시절 공부 실력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시험 성적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원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우스개가 따라붙을 정도다. 원 후보는 거대한 사회악과 싸워 보겠다는 각오로 법원이 아닌 검찰행을 택했다고 한다. 1995년부터 4년간 서울지검·수원지검·부산지검 검사로, 이후 2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 시점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동시에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선택을 놓고 고민하던 그에게 운동권 출신으로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던 김부겸 전 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넘치는 민주당에 한 방울 더 보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한나라당행을 권유했고 원 후보도 “보수 정당을 개혁하는 게 한국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더 크겠다”는 판단 아래 제의에 응했다고 한다. ‘우등생 중의 우등생’ 출신이었던 원 의원은 초선 때부터 정치권의 기대를 모으면서 ‘잘나가는’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이회창 당시 총재로부터 “당의 개혁을 주도해 달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 재선 의원이었던 2004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시 3선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40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최고위원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이어 당 사무총장 등의 주요 요직을 거쳤으며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당시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11년 6월 전당대회에서는 2012년 19대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고 4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다. 그러나 그해 10월 재·보선 때 일어난 디도스(DDoS)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승민, 남경필 의원과 함께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원 후보가 고향인 제주로 ‘정치적 회귀’를 감행한 것은 ‘첫 제주도 출신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결단이라는 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해석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신구범 후보, ‘安心’ 품은 제주통 “신구범은 제주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선한 싸움꾼입니다.”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제주지사 후보는 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 후보는 1942년 제주 북제주군(현 제주시) 조천읍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서울 용산역에서 손님을 끄는 호객꾼(삐끼) 노릇을 하기도 했다. 제주 오현고를 나와 육사에 진학했으나 4학년 때 결혼하기 위해 중퇴했다. 육사 생도는 재학 중에 결혼을 할 수 없다. 신 후보는 낙향해 농사를 짓다가 1967년 독학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제주도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제주도 기획관, 지역계획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중문관광단지 개발 계획,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등의 지역 숙원 사업들을 해결했다. 1974년에는 6년간 제주도청 근무를 끝내고 중앙 부처인 농림부로 전근한다. 축산국장, 농업정책국장 등의 요직을 거쳐 기획관리실장에까지 올랐지만 공직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친·인척 가운데 일본 조총련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있던 탓에 공직 생활 초기에는 ‘신원 특이자’로 분류돼 승진에서 계속 누락되는 쓴맛을 봤다. 그는 이 같은 연좌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학을 통해 역량을 강화한 그는 이후 주이탈리아 대사관 농무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탈리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있어 농무관 겸 FAO 한국 측 교체수석대표로 활동하는 기회를 잡는다. 이는 농림부 축산국장에 오른 배경이 됐다. 축산국장 때인 1989년 말 한·미 소고기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은 그는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다. 당시 미국은 자국산 소고기 수입을 밀어붙였지만 그는 끈질긴 협상력을 발휘해 저지시켰고 축산농가와 축산업자들의 열렬한 환영과 지지를 받았다. 이 덕분에 그는 뒷날 축협중앙회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1993년 그는 관선 제주도지사로 금의환향했다. 1995년 첫 지방선거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임기 3년이던 첫 민선 제주도지사에도 올랐다. 그는 관선과 민선 도지사 4년 3개월간 제주도지사로 재임하면서 제주삼다수, 관광 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 교역, 제주세계섬문화축제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9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이던 국민회의(새정치연합의 전신) 경선에서 패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에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축협중앙회장 때인 1999년 농·축협 강제 통합 입법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할복하기도 했다. 친환경 농축산물 매장 ㈜삼무(三無)를 설립하기도 했으나 ‘30억원 뇌물 수수’ 혐의로 그가 2년여를 감옥에서 보내는 사이 도산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 전 제주도 내에 퍼져 있는 ‘제주도지사 세대교체론’의 퇴진 대상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도지사선거를 겨냥한 신종 공작 음모”라며 출마를 단행했다. 국민회의를 탈당했던 전력과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이력들이 야권 후보로서의 대표성에 흠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신 후보는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 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 측 인사로 분류되는 그는 “낡은 정치판에 뛰어들어 원칙과 정의의 싸움을 불사하고, 밟히고 상처받으며 패배의 길을 감내한 정치적 경험을 가질 때 비로소 새 정치는 가능하다”는 논리로 호소하고 있다. 신 후보는 외교, 국방, 사법을 제외한 국가의 모든 권한을 제주지사가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는 완전 분권과 읍·면·동장은 주민자치의회를 구성해 자치의회에서 선출하는 완전 자치 시대를 열어 특별자치도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서울시장] 정몽준 vs 박원순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서울시장] 정몽준 vs 박원순

    ■7선의 ‘새 꿈’ 의정 생활 26년 대부분 비주류… “공직은 봉사하는 자리”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몽준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중 최다선인 7선으로 26년 정치 인생 대부분을 비주류로 보냈다. 정 의원은 1951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8남 1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식사 시간에 늦으면 먹을 게 금방 없어질 정도로 식구가 많은 집안에서 단체 생활을 하듯 컸다고 정 의원은 회고한다. 그는 학창 시절 조용하고 튀지 않는 우등생이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재벌가 아들인지도 모를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열정적 기질을 지닌 소년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ROTC 13기로 병역을 마친 정 의원은 미국 컬럼비아대를 거쳐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80년 현대중공업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훗날 각각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이 된 이홍구·한승주 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딴 이후 국제적 안목을 키우게 된다.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본산인 울산 동구에서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무소속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자진해서 선택한 비주류의 길에 대해 그는 ‘정치 노무자’란 단어로 대신 설명한다. “공직이란 말 그대로 공적인 서비스로, 여러 사람에게 봉사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당구도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비주류로서의 정치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정 의원과 축구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1993년 1월 대한축구협회 제47대 회장에 취임했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기 시작했을 때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일본에 승산이 없어 보나 마나 안 된다”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듬해 5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선거에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되면서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정 의원은 1년 중 3분의1 이상을 외국을 돌며 월드컵 유치 강행군을 펼친다. 1996년 5월 31일 일본에 절대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 결정을 따낼 때까지 정 의원이 다닌 거리는 150만km, 지구를 37바퀴 도는 거리였다고 한다.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치솟은 대중적 인기를 발판 삼아 정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대선 막바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선거 하루 전날 ‘노무현 지지 철회’를 선언한 후 한동안 정치적 침체기를 겪었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그해 대선 때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으로서 1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이어 2009년 9월 한나라당 대표에 선출돼 정치적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2012년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박근혜 대세론’에 밀려 일찌감치 하차했다. 정 의원은 자신을 소개할 때 “(7선 의원이 아닌) 서울 재선 정몽준”이라며 ‘서울시민’임을 강조한다. 국회에선 주로 한·미, 남북 관계 등 외교 문제에서 목소리를 내 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시장의 ‘큰 꿈’ 1세대 시민운동가·인권 변호사 명성… 재선 뒤 새 도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박원순 현 시장은 인권변호사를 거쳐 ‘1세대 시민운동가’로 명성을 떨친 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박 시장은 이번 6·4 지방선거에선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시장직 재선에 도전하며 더 큰 꿈을 그리고 있다. 박 시장은 1956년 3월 경남 창녕에서 평범한 농부의 2남 5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박 시장은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3개월이나 두문불출하며 공부할 만큼 어릴 적부터 노력가형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경기고를 졸업한 뒤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진학했지만 유신 체제에 저항해 학생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4개월 복역하고 제적당한다. 이듬해인 1976년 박 시장은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고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된다. 하지만 검사 생활은 그의 적성과 거리가 멀었다. 결국 검사 생활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인권 변호사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다 박 시장은 일생일대의 멘토인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들의 모임인 ‘정법회’를 결성했고, 이 모임은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으로 확대 개편됐다. 박 시장은 민변의 창립 멤버로도 활동했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와 함께 ‘권인숙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구로동맹파업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시국사건을 주도하며 명성을 떨쳤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가 1990년 별세한 뒤, “해외에서 넓은 문물을 접하라”던 조 변호사의 권유로 1991년부터 이듬해까지 영국 런던 정경대 국제법 대학원 1년 과정을 마쳤다. 런던 정경대 유학 시절과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1년여 시절 동안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현재 샘솟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고 한다. 한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모델을 고민하던 박 시장은 1994년 귀국,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며 시민운동가로 변신한다. 박 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인 2000년 16대 국회를 앞두고 ‘국회의원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했고,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1인 시위’ 등 다양한 시민운동을 창안했다. 2000년에는 ‘1% 나눔운동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 등을 설립했다. 2009년에는 제3세계의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아름다운 커피’를 연이어 설립하는 등 각종 시민운동 경험이 서울시장 준비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박 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확정되면서 후보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초 5% 내외의 미미한 지지율이었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의 단일화 등으로 지지율이 50%대로 뛰었고 결국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박 시장은 2년 반의 재임 동안 ‘서울의 살림살이’를 개선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임 기간 서울시의 채무를 3조 2500억원 감축했고, 지하철 9호선을 재구조화하면서 3조 2000억원의 낭비를 막았다”고 주장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리버풀 A+, 맨유 F’ 英 언론 2013/14시즌 성적표 공개

    ‘리버풀 A+, 맨유 F’ 英 언론 2013/14시즌 성적표 공개

    2013/14 EPL이 종료되면서 각종 매체에서 시즌 결산에 관한 기사를 게재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 매체 ‘더선’에서 각 팀의 성적표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마치 대학생에게 성적표를 주는 것 같은 이미지와 촌철살인의 코멘트가 흥미롭다. 더선이 발표한 이번 시즌 최고의 성적을 거둔 ‘우등생’은 리그 우승팀 맨시티가 아니라 아쉽게 우승을 놓친 리버풀이다. 시즌 초부터 우승후보로 거론된 맨시티에 비교할 때 리버풀은 그 기대치에 비해 훨씬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그런 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더선은 리버풀에 대해 “맨시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EPL 타이틀을 가시권에 두었던 것이 시즌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평가하면서 가장 뛰어난 ‘학생’으로는 “이번 시즌 태도가 눈에 띄게 좋아진 수아레즈”를 선정했다. 맨시티에 대해서는 A학점을 매기며 “EPL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페예그리니 감독이 선수들을 끝까지 싸우도록 잘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최우수선수로는 야야 투레를 선정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맨유에 대한 성적표다. 더선은 맨유의 성적을 ‘F’로 평가하면서 맨유의 이번 시즌 하이라이트에 대해 “없다”고 단정지었다. “모예스 감독 아래서 그동안의 뛰어난 업적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다. 취우수선수로는 데 헤아를 선정했는데 “늘어난 업무량을 처리했다”고 코멘트했다. 더선은 이 밖에 첼시와 아스널에는 B+, 토트넘에는 B학점을 줬으며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인 에버튼과 크리스탈팰리스에 A- 학점을 부여했다. 사진=영국 매체 더선이 공개한 2013/14 시즌 리버풀, 맨시티, 맨유의 성적표(위에서부터) 이성모 객원기자 London_2015@naver.com 트위터 https://twitter.com/inlondon2015
  • 틴틴월드캠프, 필리핀 영어의 신 캠프…여름방학 집중적 멘토링 ‘눈길’

    틴틴월드캠프, 필리핀 영어의 신 캠프…여름방학 집중적 멘토링 ‘눈길’

    초∙중등학생의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해외캠프 업체들은 여름방학 집중 영어몰입 해외캠프를 마련해 학부모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 중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참가할 수 있는 ‘틴틴월드캠프-필리핀 영어의 신 캠프’는 중앙일보 공부의 신 프로젝트의 멘토들로부터 멘토링을 받을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캠프는 8주(6/26~8/20), 5주(7/17~8/20)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으며, 필리핀 따가이따이 캠퍼스에서 진행된다. 따가이따이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연평균 기온이 22-24℃ 정도로 필리핀의 다른 지역과 달리 여름에도 기온이 많이 올라가지 않고, 시원한 날씨를 보인다. 이에 학업을 진행하기에도 적절한 곳이라고 알려졌다. 틴틴월드캠프-필리핀은 보안과 안전을 우선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현지 기숙사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경비업체가 맡고 있으며, 리조트에는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 출입이 가능하다. 리조트는 기본 적으로 캠프 직원과 학생들만 이용하고 외부 사람은 출입이 일체 금지된다. 학생들이 기숙사에 머물 때는 학생 4명 당 1명의 사감 선생이 학생들과 함께 숙식을 하며 안전을 책임진다. 무엇보다 이 캠프에서는 캠프기간 내내 대학생 멘토들과 함께 지내면서 공부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습 동기를 탐색할 수 있는 캠프로 전해졌다. 이 때 멘토는 성적 및 진로 관련 상담까지 맡아 학생을 밀착 관리하고, 심층 개별 상담을 통해 개인별 문제점과 개선점을 짚어준다. 따라서 방학캠프 기간 동안만의 반짝 학습이 아닌 캠프 이후에도 학생의 자기주도학습 지속이 가능하다. 여기에 영어 학습 프로그램은 영어의 4가지 영역(Speaking, Writing, Listening, Reading)을 고루 강화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영어만 사용하는 English Only Zone을 통해서 영어를 피부로 느끼며, 사용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저널, 독서 감상문, 일기 등의 첨삭지도를 통해 올바른 쓰기 습관을 체득할 수 있도록 운영된다. 캠프 기간에는 J Golf에서 제공하는 미국 PGA 골프 입문 프로그램인 S.N.A.G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심신을 단련시키는 시간도 갖게 된다. 캠프 마지막 주에는 수료증이 수여되는 데일 카네기 리더십 프로그램이 진행돼 리더쉽과 글로벌 마인드도 고취시킬 계획이다. 틴틴월드캠프 관계자는 “틴틴월드캠프-필리핀은 주요 내신 과목 관리, 다양한 액티비티로 구성돼 영어 실력 향상과 학습 동기부여, 우등생이 되기 위한 올바른 공부 습관 형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 학부모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틴틴월드캠프는 학부모들에게 캠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오는 30일(수), 다음달 8일(목), 10일(토) 오전 11시 반포1동 주민센터 2층(문의 02-2031-1552)에서 설명회를 개최한다. 또한 틴틴월드캠프에서는 등록 이벤트를 마련해 등록 시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설명회 당일 등록 시 혹은 다음달 15일까지 등록 시 할인을 받게 된다. 기존 참가자, 동반등록, 지인 소개 시에도 할인이 적용된다. 미국 유학에 관심 있는 학부모들에겐 중고등 사립학교 및 미국대학 무료 컨설팅도 실시해준다. 이외 엄마와 함께하는 Kids English 가 필리핀에서 유치부와 초저학년 대상으로 진행된다. 신청자 전원에겐 화상영어 1개월 수강권 및 비자 수수료 할인 서비스도 제공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teenteenworld.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살아있는 ‘신’…인도 ‘샴쌍둥이 형제’ 사연

    살아있는 ‘신’…인도 ‘샴쌍둥이 형제’ 사연

    상반신은 분리되어 있지만 같은 하반신을 공유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인도 샴쌍둥이 형제의 모습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신체적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쉬바나스, 쉬브람 사후 형제(12)의 사연을 10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인도 차티스가르주(州) 라이푸르 지역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 형제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일상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하반신이 붙어있기에 어디를 가든 다른 한 명이 반드시 따라 붙어야만 했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기에 많은 갈등이 일어날 것 같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 형제는 12년 간 살아오며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던 것이다. 머리, 팔, 심장, 폐는 독립되어 있지만 복부 부분부터는 붙어있기에 형제의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 이들은 서로의 몸을 씻겨주고 머리를 빗겨주며 옷을 입을 때도 서로 도와주기에 보통 사람들과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이들은 맞춤형으로 제작된 휠체어를 교대로 운전하며 학교에 등교하고 또래 친구들과 단체 운동을 즐기며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숙제를 할 때도 둘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기에 공부에서도 남다른 경쟁력을 발휘한다. 이들은 다니는 학교에서 우등생 그룹에 속해 있다. 무엇보다 형제의 얼굴이 밝은 이유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신체적 기형에 대한 차별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은 물론 마을 주민들까지 열심히 삶을 살아나가는 형제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어른은 형제의 몸 형태가 힌두교 신앙에 나오는 ‘신’의 모습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형제의 아버지인 라즈 쿠마르(45)는 “비가 올 때는 이동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대체로 불편함 없이 살고 있다”며 “누군가는 분리 수술을 권유하기도 하는데 아들들은 서로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신께서 만들어주신 모습 그대로 사는 것에 불만이 없다. 만일 수술에 필요한 돈이 있다고 해도 애써 수술을 권유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아들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 뿐이고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들 형제는 분리 수술이 필요 없고 같이 생활하는 지금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들 형제가 분리 수술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델리 인근 포티스 메모리얼 리서치 인스티튜트 병원(Fortis Memorial Research Institute in Gurgaon) 소아과 전문의 크리샨 구흐 박사는 형제의 모습을 본 뒤 “분리 수술은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형제 둘 중 한명은 두 다리를 갖고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다른 한 명은 평생 재활을 받아야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에 따른 비용도 상당히 비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당장 이들에게 수술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아직 이들은 12세이고 성장할수록 생각이 변할 수 있다. 만일 이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싶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올지 알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은 형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뭔지 잘 파악하고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바크로프트 미디어(Barcroft TV)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중학생 A양 이열음 19금 연기 “만져보고 싶어? 그러고 싶으면…”

    중학생 A양 이열음 19금 연기 “만져보고 싶어? 그러고 싶으면…”

    중학생 A양 이열음 19금 연기 “만져보고 싶어? 그러고 싶으면…” 이열음이 드라마 ‘중학생 A양’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화제다. 6일 방송된 KBS2 드라마스페셜 ‘중학생A양’에서는 우등생 조은서(이열음 분)와 전학생 이해준(곽동연 분)의 성적을 둘러싼 갈등이 그려졌다. 극 중 전교 1등 자리를 놓치지 않던 조은서는 전학생 이해준이 오자마자 전교 1등을 빼앗겼다. 이에 조은서는 해준을 흔들기 위한 계략을 짰다. 이해준과 양호실에 단 둘이 있게 되자 조은서는 해준을 성적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은서는 해준의 손을 자기 이마에 가져간 뒤 “열이 있는 것 같냐”고 물었고 당황하는 해준을 보고 수위를 높였다. 은서는 “만져보고 싶어?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며 해준의 손을 자신의 가슴 부위로 천천히 가져가기 시작했다. 해준은 어린 마음에 놀라 급하게 손을 떼고 공부를 해야한다며 양호실 밖으로 나왔다. 은서는 흔들린 해준을 보며 뒤에서 묘한 웃음을 지었다. 중학생 A양 이열음 연기에 대해 네티즌들은 “중학생 A양 이열음, 성인 연기 수준”, “중학생 A양 이열음, 드라마 내용도 좋고 연기도 굿”, “중학생 A양 이열음, 지켜 봐야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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