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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언극의 제왕 마르소 내한/19·20일 호암아트홀서 공연

    ◎「천지창조」·「법정」등 11편 선보여 『무언극의 마르소냐,마르소의 무언극이냐』할 정도로 확고한 명성을 쌓고있는 현대 무언극의 1인자 마르셀 마르소.이제 72세의 고령이 된 그가 17년만에 한국팬들과 다시 만난다(19·20일 하오 7시30분 호암아트홀). 지난 78년 첫 내한공연을 통해 특유의 창의적이고 해학 넘치는 작품세계를 보여준 그는 이번 공연에서는 기존의 레퍼토리를 크게 보강,현대마임의 모든 양식을 소개할 예정이어서 한층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의 마임은 보통 정통마임의 문법을 계승한 「스타일의 무언극」과 비프(BIP)라는 어릿광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프의 무언극」 두가지로 나뉜다.「스타일의 무언극」은 인간의 속성을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형식으로 형이상학적인 추상개념에서부터 동물,곤충,심지어 식물까지도 형상화한다.반면 「비프의 무언극」은 비프라는 피에로를 등장시켜 인간 삶의 애환을 침묵의 언어로 증언하는 양식으로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 특징이다.비프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필립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그가 창조해낸 인물로 실크모자끝에 빨간 꽃을 달고있으며 흰 얼굴에 새빨간 입술,그리고 세모꼴의 눈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준다. 1923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마르소는 20세기초 샤를르 뒤랭과 에티엔느 뒤크로가 완성한 현대무언극의 전통을 이어 받은 마임 1세대로 찰리 채플린 이후 가장 위대한 팬터마임이스트로 꼽히고 있다.특히 그의 「주제가 있는 마임」은 마임을 연극이나 무용의 부속물이 아닌 독립된 예술장르로 공인받게 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마임의 고전으로 통하는 「천지창조」「법정」「가면제작자」를 비롯,최신작인「새잡이」「손」「작은 카페」등 모두 11점을 선보인다.
  • 전국 시·도립무용단 무용제 내일 개막

    ◎18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서 개최/서울·부산·광주·경기 등 8개 단체 참가 전국 8개 시·도립 무용단이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견주는 전국 시·도립무용단 무용제가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 토·일요일 하오4시)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지난 89년 서울올림픽 개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극장이 마련,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이 무용제는 지역 예술단체의 저변확대와 지역문화교류 차원에서 호평을 받으며 자리잡아온 행사.특히 각 지역 무용인들의 특성을 살린 성과들을 한 무대에서 비교 평가하는 기회란 점에서 무용계의 큰 행사로 꼽히고 있다. 올해 무용제에는 전국 10개 시·도립무용단중 목포시립과 제주도립 무용단을 제외한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창원·경기등 8개 시·도립 단체가 각기 개성있는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첫날인 14일 부산·대전시립무용단의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15일 광주시립무용단,16일 서울시립무용단,17일 대구시립·경기도립무용단,18일 창원·인천시립무용단순으로 매일 공연이 이어진다. 이가운데 부산시립무용단은 개막공연으로 신라시대 처용설화에 바탕을 둔 창작무용극 「천상의 길」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처용설화의 단순한 재현을 벗어나 설화가 담고있는 우리겨레의 정신세계와 멋을 통해 우리춤의 맥락과 위상을 재확인하는 구성이다. 대전시립무용단은 창작무용 「머슴살이」를 보여주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진 머슴살이의 애환을 우리네 토속적인 몸짓을 통해 무용극으로 다듬어낸 작품이다. 두 단체의 창작무용과는 달리 광주시립무용단은 낭만주의 고전발레 「지젤」과 지난해 국내 초연된 모던발레 「레퀴엠」등 두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서울과 대구시립무용단은 모두 죽음과 영혼을 주제로한 작품을 소개하는데 서울시립무용단은 죽은자를 천도하기 위해 펼치는 전통굿의 하나인 「씻김굿」을 현대적인 제의형식으로 재해석한 「떠도는 혼」,대구시립무용단은 동서양의 생사관을 연작형태로 구성한 「죽음의 메타포」를 내놓는다. 경기도립무용단은 조선시대 수원성을 배경으로 효의 정신과 그 뿌리를 파헤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그린 「아 수원성」을 보여주며 창원시립무용단은 이땅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혼백들을 위로하는 내용의 「땅이여 창원땅이여」,인천시립무용단은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산속에서 탈을 제작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다룬 「탈의 눈물」을 무대에 올린다.
  • “잘해보려 했는데…” 정재석 전부총리 눈물어린 퇴임

    ◎“짧았지만 굵은 족적 남겼다” 직원들 눈시울 노익장 부총리의 못다한 「유종의 미」­. 건강문제로 재임 9개월 남짓 만에 물러난 정재석 전경제부총리는 지난 연말 친정인 경제기획원의 수장으로 복귀했을 때 『이 정도의 경제를 갖고 뭐가 그리 어려워』라며 약간은 돈키호테같은 파격적인 언행으로 세인의 화제에 올랐다.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64세에 걸맞지 않을 정도의 정력을 과시하며 과천 청사를 누비고 다녔다.그런 그가 돌연 병때문에 기획원과 작별한 5일의 이임식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정전부총리는 이날 상오 9시20분쯤 우의를 과시하듯 신임 홍재형 부총리와 함께 기획원청사에 도착,잠깐 집무실을 들렀다가 출입기자실을 찾았다.기자들과 『그동안 고마웠다』며 일일이 악수를 하는 그의 표정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뚫어보는 듯한 예리한 눈매는 달라지지 않았지만,종전보다 훨씬 수척해진 그는 『열심히 해보려 했는데 인연이 닿지 않는 것 같다』며 조용히 퇴임의 변을 밝혔다. 그는 평소에도 차관이나 차관보를 『이헌이』『태연이』라고 부르며 시원시원하게 얘기하는 호방한 성격이다.심할 경우에는 『야,이 거지야』『깡통아』등 시쳇말을 연발하며 애정을 표시하는 면모도 갖고 있다. 그는 세간의 관심이 돌연한 사임의 진짜배경에 있는 것을 의식한 듯 『현재 5일 째 링거를 맞고 있고,6일 수술에 들어간다』고 밝힌 뒤 『병과 싸우기보다는 화목하게 지내려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평소에도 기자들과 만나면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얘기해 공연히 구설수에 올랐던 솔직한 성격의 그는 암으로 추정되는 「건강이상」의 충격이 컸던 때문인지 그동안의 치료경과를 자세히 설명한 뒤 『병 치료를 한 뒤의 장래에 대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끝으로 이임식장으로 향했다. 이어 20분 남짓 열린 이임식엔 경제수석으로 옮긴 한리헌 전차관을 비롯해 3백여명의 기획원 직원들이 참석했다.아끼는 후배인 박운서 상공자원부 차관의 모습도 보였다.한순간 침묵이 이어지자 정전부총리는 『이임사를 하기 전에 잠깐 농담을 하겠다』며 『나는 말띠여서 팔자가 세고,오가는 것이 드라마틱하다』고 말문을 열었다.지난 80년 상공부장관을 지내다가 5공 출범 직전 그만두고 외대교수로 있던 작년 9월 교통부장관으로 재입각한 뒤 연말에 경제부총리로 발탁됐고,다시 예기치 못한 병 때문에 물러난 자신의 인생류전을 되새기는 기색이었다. 16절지 5쪽 짜리의 이임사를 숙연한 분위기 속에 읽고는 수술을 받기 위해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그를 배웅하고 난 한 관리는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굵은 족적을 남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제팀 교대하던 날… 이모저모/“경제부처 위기의식 갖고 단합”/홍 부총리/“개혁 강도높게 추진할것” 취임 일성/박 재무/“시어머니 모시게 됐다” 거북한 표정/한은 ○운용의 묘 강조 ○…신임 홍재형 부총리는 5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그간의 경제기획원 역할을 겨냥,『구름 위에서 보는 것보다 다리를 땅에다 굳건히 대고 보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며 의미있는 한 마디. 상업차관 도입과 관련해서는 『무조건 허용하라는 것은 탁상공론』이라며 골프를 예로 들며 설명.그는 『골프를 얘기해 안됐지만 드라이버로 치든,아이언으로 치든 방향이 중요하다』며 『상업차관이나 자본자유화는 변수를 생각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운용의 묘를 강조. 한리헌 수석과 박재윤 재무장관과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화기괄괄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점심이나 하자고 했다』며 웃음. ○위상 재정립 촉구 ○…이에 앞서 홍부총리는 취임식에서 『올들어 기대이상으로 경제가 회복되는 것은 사실이나 경제부처가 위기의식을 갖고 단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통제기능보다는 조정 쪽에 비중을 둘 것임을 시사. 기획원의 위상 및 체질개선과 관련,『기획원 직원들은 다른 부처보다 개성이 강해 쌀알처럼 흩어져 있다는 말을 듣는다』며 「쌀알론」을 제기한 뒤 『기획원처럼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도 필요하나 재무부처럼 끈끈하게 뭉치는 너그러움을 길러야 할 것』이라고 은근히 꼬집어 이채. ○재무부는 한가족 ○…박재윤 재무부 장관은 실무경험이 없다는 일부 여론을 의식한 듯 취임 일성부터 재무부와의 인연을 강조.박장관은 20년 전부터 정부의 재정정책에 자문해왔기 때문에 재무부는 한가족같은 느낌이라며 오히려 청와대에서 일할 때 재무부와의 인연이 끝나는 것 같아 서운했다고 소감을 피력. 그는 『재무부는 전통과 권위가 있는 자랑스런 엘리트 부처』라고 치켜 세운 뒤 『부족한 점이 많으니 역대 어느 장관 때보다 더 많은 참여정신과 창의력을 발휘해 달라』고 당부.또 자신은 「참모」에서 「야전사령관」으로 옮긴 만큼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하겠다고 강조. 재무부 직원들은 박장관이 청와대에 있을 때 허구헌 날 야전침대에서 밤을 지새운 사실을 들어 「참여」가 밤새워 일하라는 뜻이 아니겠냐며 긴장. ○박 장관 훈수 예상 ○…한국은행은 박재윤 경제수석의 재무부장관 임용에 대해 「시어머니를 모시게 됐다」며 몹시 거북살스러워 하는 모습. 외환전문가인 홍재형 전임장관은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한 반면 화폐금융 전문가인 박장관은 어떤 식으로든 「훈수」를 둘 것으로예상되기 때문.또 박장관은 한은독립 문제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난 89년 통화운영위원이면서도 한은독립을 반대한 「악연」이 있었다고.
  • 큰무대 주역 잇달아 맡는 신예/농아장애 극복한 강진희양

    ◎영혼의 울림으로 춤추는 발레리나/타고난 예술성·각고의 노력으로 역경극복/고난도 테크닉 훼테 소화… 모스크바 콩쿠르 결선 진출도 희미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절대정적의 세계에서 오로지 영혼의 울림으로 춤을 추는 농아 발레리나 강진희양(22·한양대 무용과 4년).태어날때부터 소리를 듣지못하는 장애속에서도 무용에의 소중한 꿈을 키워온 그가 최근 큰 무대의 주역을 잇따라 맡으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르고 있어 화제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야외공연을 통해 메마른 도심에 우아한 발레의 멋을 심어준데 이어 이번에는 잠실체육관에서 열리는 「무용선교 페스티벌」(5일 하오 2시·7시30분)에 프리마 발레리나로 출연,관객과 다시 만나게 된 것.『역경은 무슨 역경이에요.다른 사람들보다 인생의 출발지점이 좀 뒤처졌을 뿐이죠.연습하면 안될 일이 없어요』 고난청 장애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는 비결을 그는 오직 노력뿐이라고 강조한다. 의사집안의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무용가로서의 그의 눈물겨운 삶의 이력은 한편의 드라마틱발레보다 감동적이다.국민학교 시절부터 무용을 좋아 했는데 『청각장애인이 무용가가 되는것은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얘기는 그를 실의에 빠지게 했다.그러나 독실한 기독교도인 그는 기도를 통해 좌절을 극복했다.자신이 무용가가 된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게된 것은 부산 대연여중 무용반에 들어가면서부터.보청기를 단채 지도교사의 입모양만 보고 가르침을 알아채야 했던 것은 오히려 당연했으며 여고시절엔 남들보다 힘들었던 훈련에 매일같이 팔다리에 퍼런 멍이 가시지 않았다.하지만 타고난 예술성과 각고의 노력은 이 모든 장애의 벽을 넘어 오늘의 그를 만들어냈다. 『너무 성실해요.한번 했던 작품이라도 충분히 연습한 후가 아니면 절대로 무대에 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학때부터 그를 지도하고 있는 한양대 무용과 조승미교수의 귀띔이다. 지난 92년 전국대학무용 콩쿠르에서 「흑조」2인무로 금상을 받은 강양은 지난해엔 일본 북규슈 국제발레콩쿠르 준우승과 함께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결선에 진출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특히 고난도 테크닉인 훼테(fouette·한자리에서 회전하는 동작)의 경우,세계적인 발레리나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31회를 거뜬히 해낸다는 것.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작품은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내용의 성무「영광,영광」(안무 조승미)으로 지난 8월 광주 국제발레페스티벌에서도 시선을 모았던 창작발레다.『「영광…」은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그 속에는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온전하게 녹아있기 때문이죠.무대예술가로서의 저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는만큼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공연을 위해 옷가지를 챙겨들고 총총히 연습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만의 여유가 배어난다.
  • “김현양,양심 가책에 밤잠 설쳐”/지존파 수사 이모저모

    ◎이씨,“가스총구입 알선 사실아니다”/소씨 두딸,아버지 자필메모 읽다 실신 ○…이번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당초 경찰이 검거했다는 발표와는 달리 이날 경찰에 자진출두한 것으로 밝혀져 빈축. 경찰은 이날 4일동안 이씨의 주거지에서 잠복중 이씨를 붙잡았다고 취재진에게 발표했으나 이씨는 전남 영광군 집에서 아버지(62)와 함께 고속버스편으로 상경해 서초경찰서에 자진출두했다는 것. ○…스포츠형 머리에 흰색 점퍼와 자주색 체크바지를 입은 이씨는 1백75㎝가량의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기다리고 있던 취재기자들이 플래쉬를 터뜨리자 옷과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등 몹시 불안한 모습.이씨는 그동안 도망다니다 집으로 내려가 부모와 매형의 끈질긴 권유로 자수했다는 후문. ○…이날 아들을 데리고 경찰에 온 아버지는 아들이 무기를 거래하는 용의자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그럴 배짱도 능력도 없는 놈』이라고 강하게 부인하는등 이번 사건에 아들이 연관되지 않았음을 강조. 아버지는 또 『아들이 가스총을 구입해주고 3백만원을 받았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닌데다 「범인들로부터 5백만원을 입금받은 것은 사실이나 아직 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고 주장. 아버지는 특히 『아들을 3년전부터 동거해온 강모씨(24)와 이번 가을쯤 결혼시킬 예정이었으며 성격이 내성적인데다 돈도 많이 벌지못해 가끔 집에서 쌀등 농산물을 부쳐줬다』며 아들에 대한 잘못된 부분이 명쾌하게 밝혀지기를 바라면서도 아들의 장래에 대해 매우 불안해 하는 표정. ○…『이 세상 부자들을 모두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고 서슴없이 내뱉는등 검거직후 광기를 보였던 「지존파」일당들은 현장검증을 끝내고 23일 서초서에 입감되면서 비교적 고분고분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고. 서초서 유치장관계자들에 따르면 강동은과 강문섭,문상록과 백병옥이 한방을 쓰고 있고 김현양은 독방에,강의 애인 이경숙은 일반사범 1명과 함께 수감돼 있다는 것. 이들은 식사도 비교적 잘하고 수사관의 신문에도 고분고분 응하고 있으며 유난히 폭언이 심했던 김현양의 경우 양심의 가책때문인지 밤에 잠을 못이루고뒤척이기도 한다고 이 관계자는 전언. ○…「지존파」에게 희생당한 소윤오씨 부부의 두딸(중3·중2)은 이날 상오 아버지가 어머니 박미자씨(35)를 살리기 위해 범인들에게 자필로 작성해 건네준 애절하고 절박한 메모를 읽다 끝내 실신. 서울 중랑구 중화동 극동아파트에서 소씨의 두딸을 보호하고 있는 친척들은 『소씨의 메모가 마치 유언처럼 느껴져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며 『인간같지도 않은 「지존파」놈들을 공개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며 분노. ○…부두목 강동은은 수사경찰관에게 『이경숙이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살인등의 범행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며 줄곧 선처를 호소.수사관은 강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이가 애인 강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제보자인 이모여인이 납치된지 1주일만에 탈출하자 범인들은 이씨가 신고할 것에 대비,탈출직후부터 영광서주변을 3일간 교대로 감시한 것으로 밝혀져 자칫 이 사건이 해결되지 못할 뻔했다고.경찰관계자는 『이씨가 조급한 마음에 가까운 영광서로 달려갔더라면 도중에 범인들에게 붙잡혀 살해됐을 것』이라며 『이경우 범인들의 조속한 검거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언. 한편 경찰의 보호를 받아오다 혼자서 거처를 옮기며 은신해온 이여인은 최근 경찰수사가 또다른 공범이 있을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듯 다시 모처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은 전날에 이어 24일에도 「지존파」일당이 범행대상으로 삼기 위해 이 백화점의 「고객명단」을 확보하고 있었던데 대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이틀째 업무가 중단상태. 특히 신용판매부와 전산부직원들은 1백여통의 항의전화가 걸려온데다 ○…지존파일당에게 살해된 소윤오씨 부부는 92년부터 대한생명등 3개사 5개 보험상품에 가입돼 있어 유족들이 1억7천4백40만원의 보험금을 받을 예정.소씨부부는 대한생명의 참사랑연금보험·건강생활보험에 각각 가입,9천만원의 사망보험을 유족들에게 남겼으며 흥국생명에 가입한 직장인저축보험은 2천4백만원이라는 것. ○…지존파의 납치살해사건을 경찰에 제보한 이모여인의 친구 이모씨(여)가 24일 0시쯤 눈물을 흘리며 서초서에 찾아와 『지존파 아지트를 탈출,경찰에 신고하기 전까지 친구를 보호하며 경찰서까지 동행한 이후 매일밤 서울에 사는 김기환의 친구라는 사람들로부터 협박전화를 받고 있다』고 호소. 이씨는 『경찰이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마음놓고 신고를 하겠느냐』며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거세게 항의하다 경찰의 보호약속을 받고 귀가. ◎“「고객명단」 천모여인에게 입수”/“무기대금 선불로 5백만원 받았다”/자수한 이주현 일문일답 ­백화점 고객명단을 입수하게된 경위는. ▲일수놀이를 하면서 알게된 20대로부터 받게 됐고 얼굴과 이름은 알고 있지만 밝힐 수는 없다. ­백화점 고객명단은 누구의 부탁으로 입수했나. ▲김현양이 건설회사에 근무한다며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양과의 관계는. ▲중학교 1년선배다. ­백화점 명단과 가스총등을 같이 넘겨주었나. ▲그렇다.그러나 칼은 김등이 을지로에서 별도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온라인으로 5백만원을 받게된 경위는. ▲김이 추석때 내려오라고 전화를 걸어 돈이 없다고 말하자 무기를 구입해달라며 선불로 돈을 부쳤다. ­어떤 종류의 무기를 요구했나. ▲잠결에 들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관총등은 없었고 권총은 부탁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범인들의 무기리스트에 적힌 저소음총·기관총·적외선망원경등도 구해주려고 했나. ▲청계천에서 구할 수 있다고 들은적이 있어 전해주었더니 「구해달라」고 했으나 난 정확한 가격은 물론 구입처도 몰랐다. ­백화점 고객명단과 가스총을 넘겨준 장소는. ▲8월중순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김현양등 3명에게 넘겨줬다. ­무기를 실제로 구입하려 시도했었나. ▲아니다.김으로부터 무기를 구해달라는 말을 듣고 무서웠다.김은 어려서부터 자주 이상한 말을 했다. ­구입처도 모르고 능력도 없으면서 왜 총을 구해주겠다고 했나. ▲언론에서 과장보도를 하는 바람에 억울해서 자수했다.나를 브로커라고 하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부탁을 받고 무기구입을 중개해 준 일이 또 있는가. ▲김현양이 처음이다. ­구입해준 무기종류는. ▲가스총·전자봉·전자충격기 각 1개씩과 무전기2대등 2백만원어치다. ­무기를 구입한 곳은. ▲세운상가에서 을지로방향으로 3백m 지점이다. ­무기구입처 주인을 잘 아는가. ▲이름은 모르고 얼굴만 아는데 나이는 30대가량이다. ­지존파 일당중 김현양 말고도 더 아는 사람은 없는가. ▲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 ­그동안 어디 있었나. ▲지난 20일부터 고향집에 있었다.신문을 보고 부모님께 브로커로 지목된 사람이 나라고 털어놓았다. ­자수동기는. ▲신문들이 마치 내가 무기전문 브로커인양 보도해 무섭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여 아버지와 매형을 통해 자수의사를 밝혔다.
  • “갈망하던 평화가…” 축제 분위기/IRA휴전발표 이모저모

    ◎신 페인당수 “역사적인날” 자찬/신교도들 “차리리 죽음을” 울상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휴전선언에 대한 반응은 환영과 불신,반신반의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IRA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당의 게리 애담스당수의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나 로저 스코트 영국노동당대변인의 『하나의 큰 진전』이라는 논평은 이날의 휴전선언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을 보여주고 있다.또 아일랜드교회를 이끄는 로빈 이엄스박사의 『폭력의 종식 및 삶에 대한 위협의 종식은 당연히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왜냐하면 이들은 애초부터 매우 부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평도 휴전에 대한 부푼 기대를 보여준다. 그러나 IRA의 테러에 가족을 잃은 희생자들은 IRA의 휴전선언을 시큰둥하게 보고 있다.경관이었던 아들을 IRA의 테러로 잃은 마거릿 굿맨여인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해도 IRA의 살인행위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그이외에 그들은 달리 할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한편 북아일랜드동맹당지도자 존 올더다이스는 『말이아니라 행동으로 IRA가 평가될 것이다.모든 사람은 앞으로의 사태진전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IRA(아일랜드공화군)가 휴전을 발표한 31일 벨파스트에선 기쁨의 환호를 터뜨리는 카톨릭교도들과 믿을 수 없다는 시큰둥한 표정의 신교도들 간의 반응에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날 휴전이 발표되자 신 페인을 상징하는 녹색·백색 2색기와 아이랜드국기를 탄 긴 자동차행렬이 벨파스트시내를 행진하며 경적을 울려대는가 하면 기쁨에 찬 카톨릭교도들이 신 페인 본부앞에 몰려들어 서로 인사하고 박수치며 축제분위기를 빚었다. 한 할머니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을 하고서도 춤추고 박수치면서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오랫동안 평화를 갈망해 왔는데 이제 평화를 기대해도 좋게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사람은 『이제 공은 신교도들에게 넘어갔다』며 신교도측이 폭력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교도들 사이에는 이날의 휴전발표를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한 남자는 『눈으로 보아야만 IRA의 휴전을 믿을 수 있다』고 말했으며 또다른 한사람은 『이번에는 IRA가 거짓말을 안했기를 바란다』고 IRA에 대한 불신감을 표시. 한편 신교도들의 무장조직인 얼스터자유전사(UFF)측은 『모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 죽음이 내리기를… 우리는 통일된 아일랜드에 살기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얼스터지원병(UVF)도 『전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벨파스트내 카톨릭교도들과 신교도간의 상반된 반응은 평화정착이 결코 쉽지 않음을 예고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IRA의 성명에 고무됐다』고 밝혔으나 『우리는 이 성명이 진정으로 폭력의 포기를 의미하는 지 알고 싶다』고 단서를 달았다.영국정부도 일단 IRA의 성명을 환영하면서 IRA의 성명에 대한 답변에 앞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일랜드정부는 『이런 중대한 결정은 아일랜드 국민이 오랜 시간동안 바라던 평화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환영하면서 『국내외 동포가한뜻으로 이번 성명을 환영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IRA(아일랜드공화군)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의 지도자 게리 애덤스는 31일 영국에 대해 이날 발표된 IRA의 휴전선언에 따라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수감자들을 석방하고 ▲북아일랜드로부터 영국군을 철수시킬 것을 촉구했다. ◎IRA는 어떤 단체인가/영국군 치안담당에 항의… 69년 결정/「피의 일요일」 계기로 본격 무장투쟁 북아일랜드의 종교·민족분쟁의 뿌리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가지만 북아일랜드 가톨릭계의 저항이 본격화된 1969년에 IRA는 탄생했다. 북아일랜드의 다수를 차지했던 브리티시계 신교도들이 지방정부의 요직과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자 이들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은 토착 아이리시계 가톨릭교도들은 69년7월부터 10월까지 거세게 저항운동을 벌였다. 가톨릭교도들은 17세기 영국 「제임스」2세의 가톨릭군을 패배시킨 신교도의 기념일 전후를 기해 유혈폭동을 일으켰으며 영국군의 북아일랜드 치안담당에 항의해 무장단체를 결성했는데 이 조직이 바로IRA다. IRA는 71년 여름과 가을의 무력충돌을 신호탄으로 본격적인 테러를 감행한다.72년 1월30일에는 런던데리에서 가톨릭계 시민 13명이 영국군에 의해 사살된 「피의 일요일」이라 부르는 참사가 벌어져 이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게 됐으며 같은해 7월 폭탄테러를 일으키자 영국정부는 2만명 이상의 군대를 집결하고 지방정부의 의회기능을 중지시켰다. 75년 2월에 IRA와 영정부사이에 무기한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5월에는 제헌의회의 총선거가 실시됐으나 양파에 의한 권력배분에 신교도측 강경파가 반대,76년 3월 의회는 해산되고 그후 영국정부의 직접통치가 계속되고 있다.79년 8월에는 영국의 국민적 영웅인 마운트배튼 백작이 암살되고 영군부대의 병력 15명이 매복공격으로 사망했다. 이어 81년 5월에는 IRA대원 보비 샌스와 프란시스 휴스가 수감중인 IRA소속 게릴라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며 옥중단식투쟁 끝에 잇따라 사망하자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등지에서 구교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IRA는 영국정부나 신교도들에 대한 공격말고도 실제로 영경찰이 해왔던 북아일랜드 지역의 치안을 떠맡았다.그러나 이들의 처벌형식이 무릎이나 팔꿈치등 신체일부에 총을 쏘는 등 너무나 잔인해 가톨릭계들로부터도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중반이후 영·아일랜드 정부간에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놓고 협상이 조심스레 전개됐다.85년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개릿 피츠제럴드 아일랜드총리가 북아일랜드사태에 관해 아일랜드의 발언권을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정례적 회담을 시작했다.그러나 이는 북아일랜드내 신교계들이 협정을 반대하고 나서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91,92년 아일랜드정부와 북아일랜드정당이 런던에서 신 페인당을 배제한 채 다자간회담을 개최했으나 92년 11월 협정을 내지 못하고 무산됐다가 93년 영국과 아일랜드간의 논의가 다시 활발해져 영·IRA간 비밀접촉이 진행됐다.존 메이저 영국총리와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총리는 평화협정의 개요를 정하고 IRA의 영구휴전 대가로 신 페인당에 평화회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의「다우닝가선언」에 서명했다.협상은 올들어 더욱 활발해져 아일랜드와 영국이 지난 20년에 제정된 아일랜드 독립당시 북아일랜드를 제외시켰던 「아일랜드 정부법」의 개정을 시사했으며 영국도 이 법이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가운데 IRA의 정치조직 신페인당이 휴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IRA휴전 발표문 요지 ▲현상황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민주적 평화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IRA는 8월31일 자정부터 휴전을 선포한다.이번 휴전은 군사작전을 완전히 중지하는 것으로 IRA의 모든 부대는 군사작전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의 투쟁에 힘입어 민주적 입지를 위해 노력한 민족주의자들은 그동안 많은 업적과 진전을 이루어 왔다.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으며 또한 영국정부의 발표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해결책으로 제시되지도 않았음을 주지하고 있다. ▲해결방안은 단지 총괄적인 협상결과로서 찾을 수 있다.여타 당사자들 특히 영국정부는 그들의 책임을 인정할 의무를 갖고있다. ▲이같은 풍토조성에 크게 일조코저 하는 우리의 염원에 따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이번의 새로운 상황에 결의와 인내로 접근하기를 촉구한다.
  • 국외입양/지건길 국립경주박물관(굄돌)

    간혹 신문 사회면의 한 귀퉁이에 까까머리나 단발머리를 한 어린애의 자그마한 사진과 함께 실린 내용의 기사를 대하게 되면 누구든 잠시나마 측은한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대개는 어렸을 적에 부모와 떨어져 먼 나라로 입양을 떠났다가 어른이 되어 돌아와 그들의 생부모와 혈육을 찾는다는 내용이다.더러 기적같은 상봉의 기사가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으로 고아가 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오갈 데 없이 방황하던 시절,양자회와 같은 사회사업단체의 주선에 의해 혼혈아를 비롯한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외국으로 입양되어 나갔다.당장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나라 형편에 이들을 부양할만한 능력이 모자라 취해진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을 것이다.이러한 국외입양은 우리사회가 얼마간 안정되어가던 시기까지도 계속되었고 지금도 많은 수는 아니지만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국외입양이 어떤 부득이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이유 때문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입양아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좋은 양부모를 만나 호의호식하고 지내는 경우라도 이역만리에서의 반가운 마음보다 서글픔이 앞서게 될 것이다. 80년대초의 유학시절,지도교수의 소개로 대서양에 면한 프랑스의 한 해변도시에 초청되어 간 일이 있다.교수의 아는 한 분이 한국에서 입양해온 어린 양자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 작은 도시에는 그 밖에도 대여섯명의 한국입양아가 더 있어 그들의 양부모가 한국사람도 만나볼 겸 우리 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뭣 모르고 가족과 함께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그 집에 닿아 막상 입양아를 대했을 때의 너무도 애처러웠던 기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철없는 아내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아내지 못했고 태연스러웠던 양부모 앞에서 내가 얼마나 민망스러웠던지,지금도 신문에서 입양아 관계기사를 대할 때면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잠시 숙연해지곤 한다.
  • 조수미로 해서 행복했는데…(송정숙칼럼)

    「새야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윗논에는 차나락 심고 아랫논에 메나락 심어/울오라비 장가갈 때 찰떡 치고 메떡 칠 걸/왜 다 까먹느냐 네가 왜 다 까먹느냐…」 웬일인지 그때 문득 조수미의 「새야새야」가 입안을 감돌았다.한숨쉬듯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슴을 하비는 고통을 달래야 했다. 이 노래는 최근에 조수미가 귀국독창으로 부른 것이다.노래가 너무 좋아서 「저렇게 좋은 노래가 정말 우리 노래였나」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던 그 노래를 한숨처럼 떠올리게 한 고통이란,고3의 딸을 둔 한 어머니가 청와대로 보냈다는 편지에 관한 기사를 주간지에서 읽고서였다.예능계 입시에 합격하려면 여전히 수억대의 돈을 해당 교수에게 미리 써야 한다는 사실을 딸로 인해서 알게 된 어머니가,그 유혹과 싸우면서 그들의 가정이 겪은 실망과 조국에 대한 비애를 담아보낸 편지다.이 일로 오랜 외국생활 끝에 돌아와 자리를 잡은 그 가정은 「다시」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나가 살 결심을 하게 됐다는 내용도 있다.서술이 구체적이고 확실해서 과장이거나 거짓이라고 할 수없어 보인다.특히 당사자인 딸이 부모에게 했다는 말이 가슴을 하빈다.『회초리를 들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게 하던 아빠 엄마의 맹목적인 조국에의 환상이 나를 이렇게 만든거야.이제 외국에 가면 한국엔 절대 오지 않을래.한국말도 쓰지 않을거야.』하고 울부짖었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조수미의 노래가 떠오른 것은 그 아름다운 노래 자체가 위로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조수미의 우리노래는 정말로 좋았다.우리누구나가 지닌 정서를 전율하듯 자극하여 그 깊은 곳에 있는 현을 떨게 하고 희열을 만나게 하는 우리노래.우리에게 유전되어오는 효성과 우애를 공감하지 않고는 나오지 못할 맛.우리가 낳았지만 믿기지않을 만큼 아름답게 노래부르는 세계정상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수미는 그런 노래를 불렀다. 특히 『울오라비 장가갈때 찰떡치고 메떡 칠걸…』하는 대목의 똑떨어진 모국어 발음은 일품이다.음악계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순국산』이라고 말한다.왜냐하면 그는 초중등은 물론 서울음대까지 노래부르기의 기초를 국내에서 다진 가수이기 때문이다.또한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에게도 모국어는 솔제니친이나 로스트로포비치에게처럼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조수미의 노래는 일깨워준다.우리노래도 클래식가수가 부르면 외국어처럼 못알아듣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조수미는 안 그랬다.그것은 뛰어난 재능 탓이기도 하겠지만 「국산」기초덕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우리가곡 「고향」을 부르고 났을 때의 장면은 정말로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정지용의 시를 가사로 한 마지막 연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를 끝내고 났을 때다.열광적인 박수가 이어져 몇초가 족히 지났는데도 그는 눈을 감고 숙인 고개를 들지않고 서있었다.실제로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염없이」서 있는 것같았던 그 모습에서는 북받치는 눈물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속으로 뜨겁게 흐르는 기쁘고도 서러운 그 통곡의 소리를 청중은 함께 할 수 있었다. 연전에 나는 북구의 한나라에 들렀다가 오래전 그곳에 가 그대로 주저앉은 한 동포를 만난 일이 있다.수십년을 그곳에서 산 그가 분위기가 무르익자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일많아…』 이제는 고국에서도 별로 부르지 않는 이 노래를 그는 고향에 가고싶은 때나 서러워서 어쩔수 없을 때면 그렇게 목청껏 부른다고 했다.그와 더불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사안…」을 불러보며 우리 일행은 그 노래가 그토록 뜨겁게 고국애의 맛을 지닌 노래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었다.솟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먼산을 향해 부르던 그 타향인의 기억이 조수미의 「고향」노래 끝에서 불현듯 살아난 것은,우리노래가 「신이 점지한 목소리」를 가진 조수미의 서러운 객지살이를 얼마나 위로했는지를 알것같아서였을 것이다.그런 고통들을 이기고 마침내 우리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드는 경지를 그는 이뤄낸 것이다. 고국의 팬들에게 우리가곡을 들려주고 그 실연을 녹음하여 음반으로 내는 것이 조수미의 이번 귀국독창회의 목적이었다.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앞에서 우리 가곡을 부르면 자꾸 눈물이 나와서』실연을그대로 녹음하는 일이 불안했으므로 그는 할 수 없이 스튜디오 녹음을 겸행했다고 한다.동포 앞에서 고국의 가곡을 부르면 눈물이 나와 녹음을 실수할 수도 있는 세계정상의 오페라 가수.고국의 노래는 그렇게 자양분이 되어 객지삶을 지탱해주었을 것이다.그는 TV에 나와 이렇게도 말했다.자기가 듣고싶은 한마디 말은 『영원한 한국인 조수미』라고.그토록 자랑스럽게 성장한 한국인에게서 이런 찬미를 받는 일이 대한민국에는 얼마나 큰 기쁨인가.그런데 우리의 예능계 입시현실은 이런 제2의 조수미 탄생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생각하면 안타깝고 속상하는 일이다.「예술교수」들중에 있을 이 망국의 화신들을 아주 쓸어내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 60년 북송 재일동포 오페라가수 김영길씨도 북수용소에

    ◎조총련문제전문가 장명수씨 「명단」 보고 확인/부인·세 딸과 함께 북송선 타/2∼3년뒤 숙청 소식 전해져/사위는 부모가 헌금보내자 수용소 풀려나 【도쿄=이창순특파원】 1960년1월29일 하오 일본 니가타(신석)항.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부두에서 재일동포 오페라가수인 김영길씨가 『조국에 바친다』며 「오 솔레미오」를 열창하고 있었다.그러나 눈발에 휩쓸려 바다위로 흘러가버린 그의 「조국에 바친 노래」는 훗날 자신과 북송교포및 일본인가족들의 슬픔과 비극의 서곡이 돼버렸다. 당시 나가타 겐지로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유명한 오페라가수이던 김영길씨는 그날 제6차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그리고 그는 평양에서 화려한 영접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땅에선 비극적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화려한 영접을 받은 지 불과 2∼3년 뒤 숙청당했고 영영 소식도 끊겼다. 30여년전 이렇게 사라진 김씨가 아직 생존해 있음이 30일 국제사면위원회가 공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명단을 통해 확인됐다.「승호정치범수용소」 수감자명단속의김영길(Kim Yong Kil)이란 이름이 북송됐다 행방불명된 오페라가수 김영길씨일 것이라고 일본의 조총련문제전문가 장명수씨는 말한다. 장씨는 34년전 김영길씨가 눈내리는 니가타항에서 북한으로 떠나기 직전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살아 있어 다행이지만 지옥같은 수용소에 갇혀 있다니…』하고 안타까워했다. 북송당시 40대초반이던 김영길씨는 해방전 일본에서 유명한 「후지하라가극단」의 테너가수로 데뷔했다.해방후 그는 북한출신 재일동포들로 구성된 「중앙문선대」의 일원이 됐다.55년 조총련이 결성된 후 「제1조선중앙예술단」이 창단되며 단장을 맡았다.그후 그는 북한에 오페라극장이 만들어졌으니 와서 북한오페라를 이끌어달라는 초청을 받고 이를 수락했다.북한으로 가기 직전인 60년1월21일 도쿄에서는 그를 위한 환송리사이틀까지 열렸다. 운명의 날인 1월29일.그는 일본인 처,3명의 딸과 함께 북송선을 탔다.1월31일 청진에 도착,안기옥·최승희 등 인민배우들의 화려한 영접을 받았다. 김영길은 북한에도착한 후 「조국」으로부터 문화주택과 훌륭한 피아노를 받고는 부인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으며 당시 북송사업책임자인 김주영은 선전용으로 그의 편지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3월25일엔 공훈배우칭호까지 받았다.그는 수여식 답사에서 『조국의 품에 안겨 당과 혁명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당과 조국의 번영을 위해 나의 예술을 더욱 높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답사는 순수예술가로서의 마지막을 알리는 조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북송 2∼3년후 숙청당해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김일성에게 일본인인 처를 일본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한 일,그리고 자살한 북송동포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는 당국에 강력히 항의한 사건등으로 숙청됐다는 소문이 있다고 장명수씨는 말한다. 그후 그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고 그의 딸이 도쿄에 살다 북송선을 타고 귀국한 청년과 북한에서 결혼했으나 강제이혼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다.또 김영길의 일본인 처는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일본의 부모들이 헌금한 후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김영길씨는 아직도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이다.화려하던 동포 오페라가수의 비극은 생명과 인권을 유린당한 북송교포 모두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 “상문이가 살아 있었구나…”/북 수용소 수감확인 고상문씨 가족표정

    ◎노부모·가족 밤새 눈물/부인 조복희씨 “한서린 망부가” 15년/당시 젖먹이 외딸 이젠 어엿한 고1/인간이하 수용소생활 견뎌내 꼭 살아서 만났으면 『상문이와 만날날이 꼭 오리라고 확신합니다』 30일 국제사면위원회가 공개한 북한의 정치범명단에 79년 납북된 고상문씨(46·당시 수도여고 지리교사)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15년을 하루같이 기다려온 형 상구씨(48·출판업·송파구 신천동)등 가족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올 것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상구씨는 『생사소식만이라도 확인하는게 소망이었는데 살아있다니 꿈만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들은 상문씨가 네덜란드 유학중 부인 조복희씨(42)에게 『사랑하는 당신의 자상한 편지를 반복해 읽을때마다 힘이 솟곤 합니다』는 내용의 편지등을 수십통 보낸 것으로 볼때 처음부터 북측주장처럼 자진 월북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결혼한지 1년 4개월만에 네덜란드 유학길에 올랐다가 79년 4월 귀국 1개월을 앞두고 부활절 휴가도중 노르웨이에서 북한에 납치된후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상구씨는 『지난 84년 무렵 상문이가 간첩으로 몰려 정치범 집단 수용소에서 강제노역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노심초사해 왔다』고 말했다. 상구씨는 『이번 확인으로 동생이 자진월북했다는 북측의 주장이 거짓임이 명백해졌다』며 북측도 진정 남북대화를 원한다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보내 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구씨는 『평소 동생은 활달한 성격인데다 해외연수를 마친뒤 귀국해 새로운 교육풍토를 이루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해 왔다』며 북에서는 도저히 적응하지 못할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부인 조씨는 남편이 납치된 직후부터 친정집에서 살다 요즘은 갈현동에서 의상실을 경영하며 남편소식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속에 딸 현미(16·예일여고 1년)를 키우데 정성을 쏟고 있다. 조씨는 그동안 시어른과 주위친지들의 격려 덕분에 자신은 마음고생을 달랠수 있었지만 아버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딸아이가 『아빠는 어디 계시냐』며 보챌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해왔다고 상구씨는 전했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흘러 오히려 현미가 엄마를 위로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상구씨집에는 고씨의 생존소식을 듣고 친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로 뜬밤을 보냈고 노부모인 고흥득(80)·한연희씨(75) 부부는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한적이 없었으며 잠들기전에는 꼭 아들 모습을 그려보고 건강을 기원해왔다』며 『죽기전에 아들을 만나보는게 소망』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 TK중진들,「토라진 TK」 달래기

    ◎수성갑보선 민자당연설회 김윤환의원 등 대거 출동/“과거짐착 버리고 새출발”… 분위기 반전 기대 민자당이 28일 세곳의 보궐선거 가운데 가장 고전하고 있는 대구 수성갑지역에서 정당연설회를 열었다. 이 지역의 선거쟁점은 이른바 토라진 「TK정서」라는 것.이점을 의식한듯 이날 연설회에는 김윤환·김용태·정호용·김한규·유성환의원,이치호당무위원등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대거 출동했다.이날 하오6시부터 대구여고에서 열린 연설회에서 연사들은 신민당 현경자후보에 대해 동정적인 분위기를 이성적으로 설득,민자당 정창화후보 지지로 반전시키려고 애를 썼다. 첫번째로 연단에 오른 정호용의원은 지난 90년 정후보가 정의원의 사퇴에 반대하는 서명파의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었음을 상기시켰다.그리고는 『정후보야말로 의리의 사나이』라고 치켜세우고 『대구의 의리를 지키자』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어 등단한 김용태의원은 『안방에서 살림할 사람과 국회의원 할 재목을 가려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좀더 적극적으로현후보를 겨냥했다. 김윤환의원은 또한 『김영삼대통령은 가끔 만날 때마다 지난 대선때 대구·경북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시켜준 점을 고마워하더라』고 전하며서 『김대통령이 개혁정치를 완성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할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등단한 유성환의원,이치호당무위원은 박철언전의원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운뒤 『민자당이 싫다면 차라리 민주당을 찍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대구시지부장인 김한규의원은 『대구가 지난 30년동안 이 나라의 중추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이제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면서 『새로운 차원에서 여론을 통합,대구발전에 앞장서자』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올라선 정창화후보는 차분하게 연설을 풀어나갔다. 정후보는 『대구시민이 느끼는 김대통령에 대한 섭섭함,민자당에 대한 마땅치 않은 생각들을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반드시 김대통령에게 전하겠다』고 다짐했다.정후보는 신민당의 현후보와 박전의원에 대한 비판도 비켜가지 않았다.『동정과 국정은 구별돼야 한다』 『이멜다의 눈물과 아키노의 눈물은 다같은 눈물이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정후보는 현후보를 아키노가 아니라 이멜다에 비유했다. 민자당 의원 가운데 대구에서 비교적 인기가 좋은 강재섭의원은 이날 행사에 참석했지만 연설은 하지 않았다.김영삼총재의 비서실장인 그가 내려와 연설을 하게되면 중앙당이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정후보측은 이날 연설회가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된 만큼 선거분위기가 유리하게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 김정일 첫공석에… 후계 굳힌듯/김일성사망 나흘째… 평양 이모저모

    ◎당정간부 1백명 거느리며 조문/사망충격 벗고 점차 평온 되찾아 ○…북한주석 김일성의 시신이 사망 4일만인 11일 하오9시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북한 중앙방송이 이날 TV화면을 통해 공개한 김일성의 시신은 꽃으로 덮인채 유리관에 안치돼 있었다. 특히 이날 김일성의 시신공개 자리에는 김일성사망이후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정일이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일이 김일성시신에 조의를 표하는 동안 오진우인민무력부장등 북한의 당·정·군 수뇌부 1백여명이 김정일을 계속 수행,김정일 후계체제로의 구축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과시했다. 김일성의 시신은 이날 특수유리관에 안치된 상태로 공개됨으로써 김의 유해는 과거 공산권지도자들처럼 미라형태로 영구보존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깊은 슬픔 잠긴 표정” 【북경 로이터 연합】 사망한 김일성 북한주석의 아들인 김정일이 11일 김일성 빈소를 찾은 평양주재 외국대사들을 개인적으로 만났다고 한 외교관이 전화를 통해 밝혔다. 이 외교관은 대사들이 밖에서 4시간동안 기다린 끝에 김일성의 유해가 안치된 주석궁을 문상했으며 이어 「가장 중요한 지도자들과」 악수를 나눴다면서 김정일이 「제1의 인물」로 빈소에 있었다고 전했다.김정일은 『매우 심각하고 깊은 슬픔에 싸여 있었으며 시종일관 침묵했다』고 이 외교관은 전했다.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은 지난9일 김일성의 사망이 발표된 이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왔다. 평양과 교외의 상황은 김일성주석사망의 첫발표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36m 높이의 김주석동상이 있는 만수대로 몰려가 꽃을 놓거나 지도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평양시민들의 행렬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그러나 김주석사망이 발표된 9일 애도인파가 무질서했던 것과는 달리 동상을 찾는 시민들의 추도행렬은 이제 훨씬 질서정연해졌으며 평복차림의 정부요원들이 전날보다 더 많이 배치,군중들의 동향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부분적 정규 방송 【내외】 북한방송들이 김일성사망발표 하루가 지난 10일밤부터 사망과 무관한 일반적인 내용의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하는등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카터 전미대통령이 김일성의 장례식에 초청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은 10일 클린턴 미대통령과 카터전대통령이 김일성의 사망에 조의를 표명한 사실을 상세히 보도,눈길을 끌었다. 북한방송들은 이날 저녁 보도를 통해 클린턴대통령이 지난 9일 김일성의 사망과 관련,미국국민의 이름으로 북한주민에 진심으로 조의를 표시했으며 미·북간 회담재개를 위한 김일성의 영도력을 높이 평가하고 회담이 적절하게 계속되기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등소평도 조화보내 ○…중국의 최고지도자인 등소평이 김일성사망과 관련하여 11일 북경주재 북한대사관에 조화를 보냈다고 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등소평이 보낸 조화에는 리본이 달려 있고 거기에는 『가장 슬프게 김일성주석을 추모함,등소평』이라는 글이 씌어져 있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또한 북한대사관 조의식장에는 강택민 이붕 진운 교석 이서환 팽진 주용기 유화청 호금도 전기침 양양곤만리 요의림 송평 박일파 송임궁 장징등 중국 전·현직 고위간부들이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 울부짖는 평양… “주체 공황”/김일성사망발표 사흘째 이모저모

    ◎3일새 평양주민 80% 추모행사에/북 당정 고위간부들 “김정일에 충성” 김일성 사망이 공식발표된지 하루가 지난 10일에도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김일성동상 앞에 몰려들어 애도를 표하고 있으나 하루전의 충격에 비하면 다소 평온을 되찾은 듯한 분위기며 평양시내의 시민들 왕래도 9일보다 자유롭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북한은 또 이날부터 당정간부들을 동원해 김정일에 대한 지지와 충성을 다짐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최상의 미사여구로 김일성을 찬양하는 방송을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외신들은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김일성동상에 몰려와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평양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은 AFP 북경지사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시내 곳곳에서 떼를 지어 모여든 수천,수만의 시민들이 헌화·애도하는 광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2∼3일 새에 80% 이상의 평양시민이 동상애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 평양주재 외교관은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울고 있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사망발표의 첫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언.이 외교관에 따르면 평양거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애도음악이 이어지고 있으나 교통·상점등 생활의 기본서비스는 예전과 변동없이 베풀어지고 있다. 평양시내는 평온하고 시민들의 왕래도 자유로워 보안이 강화되는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북한주민들은 10일 이른 아침부터 인근에 있는 김일성동상을 찾아가 그의 사망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중앙방송은 이날 아침방송에서 『전당 전민 전군이 끝없이 경모의 마음을 안고 김일성동지의 서거에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면서 『전체 주민들이 이 시각에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특히 김일성의 대형동상이 세워져 있는 평양 만수대 언덕에는 『어버이를 잃은 평양시민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동상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 중앙방송은 또 김일성동상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눈물은 비통한 슬픔만이 아니었다면서그들의 눈물은 『수령께서 개척하시고 이끌어오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완성할 맹세의 눈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 ○…북한방송들은 10일부터 북한청소년 사회단체조직인 사로청위원장 최용해와의 인터뷰를 내보낸데 이어 정무원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국가계획위원장 홍석형 등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들을 연이어 보도. 북한의 사로청 위원장 최용해는 이날 고위간부로는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우리는 오늘 이 비통한 마음과 크나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충성으로 높이 받들어 나감으로써 김일성동지가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해는 또 소년단을 포함해 모두 8백만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을 『김정일동지를 최선봉에서 결사 옹호하는 총폭탄으로 준비시키겠다』고 다짐. 북한정무원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과 노동당 정치후보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 홍석형은 『김정일동지가 있는한 주체의 혁명위업은 빛나게 계승,완성될것이며 승리는 확고히 담보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 당·정 고위간부들은 김정일을 『우리의 운명이고 미래의 탁월한 수령』이라고 높이 찬양하면서 김정일을 위해 일생을 충신으로 살 것임을 강조. ○…북한방송들은 김일성 사망발표 하루가 지난 10일 밤부터 사망과 무관한 일반적인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는 등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 평양방송은 이날 밤 10시 종합보도를 통해 최근 광주에서 열린 한총련 2기 출범식 관련 소식을 전함으로써 김일성사망이후 최초로 사망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을 보도.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은 또 9일 정오뉴스이후 매 시간 정각에 사망 부고를 재방송 해왔으나 10일 정오뉴스부터는 일체의 부고 보도를 하지않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김일성사망소식을 처음 보도한 9일 정오뉴스이후 부고,추모음악,국내외 반응,각국 축전만을 소개하던 보도태도에서 벗어나 북한이 의외로 신속하게 김일성사망으로 인한 충격을 수습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 북한 군부·핵심세력 움직임에 촉각/김일성 사망 각국 반응

    ◎“급사에 충격”… 김정일 권력승계 관측/미국/한·미·중과 긴밀연락 정보수집 부산/일본/외교부 비상소집령… 등소평등 조전/중국/옐친 “남·북한 관계개선 이루어질것”/러시아 김일성 북한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세계각국은 「큰 충격」을 표시하면서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 등 김주석의 사망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다.또한 북한의 핵개발 사태 해결및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게 될 것인지 등과 관련,김주석의 사망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워싱턴◁ CNN 텔레비전은 뉴스속보를 통해 공산세계지도자 가운데 가장 오래 집권한 김일성주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하고 장례준비위원장을 김정일이 맡음으로써 일단 김정일의 권력승계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앞서 CNN방송을 비롯한 주요 미국의 방송들은 8일 밤 11시께부터(미국시간) 긴급뉴스로 김일성이 병사했다는 소식을 보도할 때는 사망원인에 대한 의문을 조심스레 보였으며 후계문제등에 관해서도 막연한 추측들만 했었다. 최근 평양을 갔다 온 CNN의 조던 부사장은 김일성이 82세의 나이에 비해 매우 정정해 보였는데 돌연한 사망은 『충격적』이라는 말을 거듭하면서 누가 후계자가 되든 김일성처럼 국민들의 존경을 확보할지 의심스럽다는 견해. CNN방송에 나온 한 한국문제 전문가는 김일성이 자연사했다면 아들 김정일이 승계할 가능성이 있으나 미확인소식처럼 쿠데타가 일어났다면 북한의 장래 상황은 전망할 수 없다고 진단. 그 사망 시기가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다 미국·북한 3단계회담 진행중이라 한·미 양측이 서로 상대방에 사망 보도의 정확성 여부를 묻는 상황을 보이기도 했다. 주미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더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기 위해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미국 정부도 아직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CNN이 8일밤(현지시간) 선진7개국(G­7) 정상회담 참석차 나폴리에 가 있는 클린턴 미대통령이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보도하면서 클린턴대통령의 공식적인 언급은 아직 없다고 밝히고 미정부는 한국정부를 비롯한 각국의 외교채널을 통해 김주석이 사망했다는 방송보도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또 평양의 소식통들과 전화접촉한 결과 평양시민들이 김주석의 사망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중앙역 부근에는 경계가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CNN은 이어 김영삼대통령의 긴급 안보대책회의 소집및 한국군의 경계강화 소식과 함께 서울 시민의 표정을 속보로 전했다. ▷도쿄◁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은 일본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일본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협의 했으며 김주석의 사망원인 및 북한 내부 움직임에 대한 정보수집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의 NHK등 TV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특별방송을 보내는가 하면 신문들은 모두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등 매스컴과 일반 시민들도 충격속에 큰 관심을 표명. 특히 조총련은『믿을 수 없다』며 심한 충격속에 잠겨있는 모습. 일본정부는 김의 사망으로 북한내부와 한반도에 심각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특히 군부의 움직임과 김정일서기로의 권력계승이 잘 이루어질지 중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정부는 전반적인 북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0일 정보분석회의를 개최할 예정. 일본은 또 25일부터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도 당분간 열릴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군부및 권력 핵심세력의 움직임등에 관한 정보수집을 위해 한국·미국·중국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고노 요헤이(하로양평) 외상등이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을 위해 나폴리에 있기 때문에 나폴리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모습.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 관방장관은 9일 정부성명을 발표,김주석죽음에 애도를 표시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노 외상도 이날 나폴리에서 같은 내용의 코멘트를 발표. 일본의 최대관심은 군부의 움직임과 권력계승문제.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단 김정일에로의권력계승은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시즈오카현립대의 이즈미 하지메 부교수는 권력계승발표가 빠른시일내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며 조심스런 전망. 도쿄대의 이시이 아키라 교수는 김정일서기는 후계자로서 김주석의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그는 『김서기는 한미와의 관계개선과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등 김주석이 추진해온 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김서기는 후계자로서 김주석의 노선을 바꿀 수 없다』고 전망. 게이오대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도 『북한은 대외정책을 크게 바꾸지않고 미·북한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NHK방송은 현단계에서는 김서기로의 권력계승 가능성이 높지만 그는 북한의 카리스마적 존재로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김주석만큼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같으며 어느 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보도.이방송은 김서기가 장례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그의 후계자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조문객을 받지않겠다고밝힌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전언. 조총련은 긴급회의를 갖고 앞으로의 대응책등을 논의.조총련본부에 모인 간부들은 모두 눈물를 흘리며 김주석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이날 반기를 게양. 재일동포단체인 민단의 한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는 등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었으나 김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투명하게 됐다』고 말했다.▷북경◁ 중국 지도부는 9일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북한 제일의 우방국가답게 전에없이 신속하게 북한측에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시·은퇴한 최고지도자 등소평은 이 조전에서 『김의 일생은 조선민족의 해방과 조선인민의 행복을 위해 공헌안 일생이며,중·조친선을 맺고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한 일생이었다』고 치켜세운뒤 『김의 서거는 조선인민에겐 위대한 수령을 잃은 것이며 나에게는 친밀한 전우와 동지를 잃은 것이다』며 애도를 표했다.이어 강택민당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이붕총리,교석 전인대(의회)상무위원장 등이 각각 비슷한 내용의 조전을 보냈다고 신화통신과 중앙TV방송 등이 일제히 보도. 중앙TV는 이날 하오7시 전국에 중계된 30분간의 종합뉴스에서 머리기사로 약 4분동안 김의 사망소식과 함께 중국지도자들이 조전을 보낸 사실을 자세히 보도한데 이어 뉴스보도 중간에 또다시 약5분간에 걸쳐 북한 노동당 정무원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김의 사망에 관한 부고내용과 장의행사 내용을 자세히 보도. 이날 중국에서는 마침 격주로 실시되는 휴무일이어서 외교부직원들도 출근을 않고 있었으나 이날 점심때 비상소집령이 하달돼 남북한을 담당하는 조선처직원들을 비롯,몇몇 관련부처 담당자들이 부랴부랴 사무실에 나와 조전칠 준비를 비롯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갖가지 준비로 부산을 피웠다. 한 조선처 직원은 점심식사중 갑자기 불려나왔다면서 우선은 상황파악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사실이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상황을 묻기도 했다. 주중한국대사관은 김의 사망발표가 있은 지 1시간만에 비상소집령을 내려 전직원이사무실에 나와 CNN방송과 중국의 CCTV등 TV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사태의 정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일부 직원들은 얼마전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김주석이 갑작스레 사망한 데 대한 원인을 궁금해하면서 북한측 발표대로 사인이 심장마비라면 그동안 핵문제를 둘러싸고 남북정상회담과 미·북한 고위급회담등을 너무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피로가 누적된게 아닌가고 나름대로 추정해보는가 하면 몇몇 직원들은 김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연변등 동북 3성지역 조선족 동포들로부터 사실확인을 위해 빗발치듯 걸려오는 전화문의에 답변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모스크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9일 하오3시(모스크바 시간)G7정상회담에 참석키 위해 출국직전 모스크바의 브누코보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북한의 불안정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피력.그는 이어 『김주석의 죽음이 남북한을 보다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나는 김일성과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으며 그의 사망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옐친 대통령은 『나는 남북한이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이는 결국 아·태지역 전체의 평화로 이어질것』이라고 강조. 이에앞서 옐친대통령은 김주석의 사망에 대해 공식성명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남북한간의 관계증진을 위한 적절한 노력이 곧 있기를 희망한다』고 발표. 북한대사관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조기를 게양했으며 월요일인 11일부터 공식 조문객을 받기로 결정. 모스크바시내 모스필름가 72에 위치한 북한대사관은 이날 상오 외부와의 연락을 두절한 채 정적에 싸여 있었고 상오8시쯤 기자의 전화를 받은 북한대사관의 당직근무자는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대해 『소식을 들은 바 없다』면서 신경질적인 반응. 북한대사관 정문쪽에는 미 ABC TV를 비롯한 10여명의 외국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어 취재를 하고 있으나 대사관내부로의 출입이 금지돼 있고 대사관을 출입하는 북한인들 대부분이 이들의 물음에 대꾸를 하지 않아 애를먹는 모습들. 상오10시쯤부터 시내에 사는 북한인들이 대사관으로 들어가고 있으나 이들은 하나 같이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 그러나 대사관을 빠져나오는 북한인들은 대부분이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어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손성필 주러 북한대사는 낮12시 현재 외출을 하지 않은 채 외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한편 모스크바 언론들은 서울의 언론보도와 외신등을 인용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신속히 보도.그러나 러시아 외무부측은 토요일 휴무인 관계로 일체의 공식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주러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김일성의 사망원인에 대한 추가정보등을 얻기 위해 러시아 외무부측과 연락을 취하려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이 주말을 쉬기 위해 다차(교외별장)등으로 떠난 상태여서 전화접촉도 안된다고 하소연. ◎세계 주요통신 “긴급뉴스” 일제 타전/일 교도통신,12시3분 북방송 인용 첫 보도/AFP·로이터 1∼2분 간격으로 속보경쟁/“김주석 사망” 숨가쁜 외신 김일성북한주석의사망소식이 전해진 9일 세계주요통신들은 김주석의 사망사실을 일제히 긴급뉴스로 타전했다.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일본의 교도(공동)통신.교도통신은 이날 낮 12시 3분 외국통신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북한관영 중앙방송을 인용,『북한 김일성주석이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는 짤막한 제1신을 긴급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또 40분쯤 지나 김주석의 사망이 자연사로 보기 힘들며 내부항쟁에 의한 사망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속보를 미국의 정보소식통의 말을 인용,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서방의 통신으로는 AP통신이 1분쯤뒤인 낮 12시 4분 『북한의 관영방송이 이날 상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짤막하게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AP통신은 이어 35분쯤뒤 북한의 권력형성 과정과 함께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이것이 앞으로의 한반도 상황과 북­미 고위급회담등에 미칠 영향등에 대해 신속하게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AP통신은 또 정확하게 1시간 13분뒤인 하오 1시 17분 김주석이 심근경색에의한 급거가 확실하다고 전하고 장례절차등 북한방송의 발표내용을 서울발로 보도했다. AP통신에 뒤이어 낮 12시 10분을 전후해 AFP와 로이터통신이 거의 동시에 최긴급뉴스로 김주석 사망사실을 보도한뒤 1∼2분 간격으로 평양라디오방송을 비롯한 북한의 매체를 이용,속보를 계속 내보냈다. 세계 주요 역사적인 사건현장의 「단골손님」인 CNN은 이날 전미국시민들의 관심사인 미식축구영웅 O.J.심슨 살인사건을 연일 톱으로 내보내다 AP타전 직후 긴급뉴스를 통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보도했다. CNN방송은 이어 이날 평양에 주재중인 키프긴 인도대사,아쉬루 나이지리아대사와의 전화접촉을 통해 평양시민들이 김일성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직장일을 그만둔 채 집으로 돌아가 추모하고 있다는 내용의 평양거리표정을 처음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CNN은 이 보도에서 길거리에서 울고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으며 주민들대부분이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오열과는 달리 전체적으로는 평온한 상태에 있다는 이들 대사의 말을 인용해 속보로 처리했다. 로이터통신은 하오 2시 15분쯤 외국특파원으로는 유일하게 평양특파원을 겸하고 있는 폴란드의 PAP통신 북경주재 특파원 크르지스토프 다레비츠의 전화취재 내용을 인용,북한주민들이 김주석의 사망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 미친듯이 오열하고 있으며 김주석의 유해가 만수대 극장에 안치돼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 UPI통신은 위의 3개 통신보다는 약간 늦은 낮 12시 19분쯤 도쿄에서 수신된 평양방송을 인용,김주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도쿄발로 보도했다. 중국의 반응은 서방매체들보다는 훨씬 늦게 나왔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낮 12시 35분이 약간 지나 북한관영 매체의 발표를 인용해 평양발로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논평없이 보도했다.
  • 신체조건이 기준돼선 안된다(사설)

    고졸 여사원모집 과정에서 용모·키·체중 등 신체적조건을 채용기준으로 제시한 업체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돼 시정이 촉구되고 있다.서울의 여성·사회단체들은 여사원 추천의뢰과정에서 은행·기업체등 44개 업체 대표들이 여성의 신체적조건을 제한함으로써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고 25일 사직당국에 고발한 것이다. 89년 4월1일 시행된 남녀고용평등법 6조에는 『근로자의 모집 및 채용에 있어서 사업주는 여성에게 남성과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번 고발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금융기관이나 대기업들이 아직도 여사원에 대해 전근대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다양하고 전문화된 산업사회에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능력을 발휘할수 있으며 그 능력이나 실력이 채용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유독 여사원에게만 체격과 체중에서 기준을 제시한 것은 고용에 있어서의 분명한 성차별이라고 보여진다.기업들이 늘씬한 체격의 여사원만을 채용하겠다는 것은 결국 여성을「직장의 꽃」이나 「사무실의 장식품」쯤으로 여기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여성 취업인구는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진출분야 또한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지난해 6월 통계에 의하면 15세이상 여성경제활동인구는 1천6백70만명이며 이중 38.6%인 6백46만명이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사회적 변화에도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사원선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폐습임이 분명하다.그것은 또 능력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의 통념이나 국민정서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는 기업의 여사원 채용방식은 학교교육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여학생의 신장과 체중,용모를 선발기준으로 삼는 현실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이루어질수 있겠느냐고 교사들은 반문하고 있다.졸업후 취업을 위해 입학한 여상의 경우,학생들은 공부보다는 쌍꺼풀수술에 더 열을 올리고 있으며 체중을 줄이기 위해 무리한 살빼기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취업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인 셈이다.이같은 환경에서 학교교육의 실종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또한 처음부터 신체적 조건에 맞지 않는 다수의 학생들은 열등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신장과 체중,용모때문에 선발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는 것은 형평과 기회균등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일이다.어린 학생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이번에 고발된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법적인 조치이전에 불합리하고 비교육적인 채용방식을 폐지하고 새로운 개선방안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 과천주공아파트 환경사랑실천모임/우리집에선:6(녹색환경가꾸자:34)

    ◎특수기구 개발… 재활용품 분리수거 경기도 과천시에는 열성스러운 작은 환경운동으로 잘 알려진 주부들의 모임이 있다. 주공아파트 8단지내 810동 주부를 중심으로한 「환경사랑 실천모임」(회장 권귀원·36)은 철저한 쓰레기 기초분리와 재활용에 각별히 힘을 쏟고 있는 모임이다.이들은 가정에서 발생한 각종 쓰레기를 재활용·음식찌꺼기·일반쓰레기등 세가지로 분리한다.재활용품의 수거를 위해 한층에 위치한 8가구가 일주일에 한번씩 810동 1백20전가구가 배출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당번제를 운영하고 있다.이들 당번 가정에는 재생휴지 5개씩이 제공된다. 주부들은 처음 4개의 플라스틱통을 복도에 늘어놓고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기 시작했다.그러나 15층까지 오르내리며 힘겹게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불편이 커 이를 덜기위해 재활용품을 분리보관,운반하기 편한 「재분이」라는 특별한 기구를 고안해냈다.「재분이」는 어깨에 멜수있는 끈이 달린 박스형 분리함과 이를 담은 1m정도 높이에 바퀴를 부착,밀고 다닐 수 있는 간이선반이다.이를 각 층마다 2개씩 설치,손쉽게 재활용품을 운반하도록 했다.과천시에서 정한 쓰레기 수거일인 매주 목요일이면 이를 팔아 월 7만∼8만원의 수익을 올린다. 권회장은 『처음에는 베니어판을 사다 몇 차례에 걸쳐 만들고 부수는 시행착오가 거듭돼 어려움이 컸으나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제작업자의 도움으로 「재분이」를 탄생시키게 됐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이 모임이 결성된 것은 지난해 6월.권씨등 몇몇 주부들은 애써 분리한 쓰레기가 막상 환경미화원의 손을 거치면서 마구잡이로 다시 뒤섞이는 안타까움에서 모임을 시작했다.이들은 입주자대표모임과 반상회등을 통해 분리수거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나 공허한 외침에 그치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우선 실시하기로 하고 모임을 만들어 이같은 작업을 벌인 것이다. 황은주부회장(38)은 당시 복도에 늘어선 쓰레기통을 보고 일부 주민들로부터 『주부들의 힘으로는 벅찰 뿐만아니라 1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에 쓰레기더미까지 곳곳에 드러나 아파트값이 떨어진다』는 반발도 컸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주부들은 810동의 분리와 재활용품 수거가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자 인근 동과 과천시전체로 운동을 확산시키기로 하고 과천시청을 찾아 도움도 요청해보고 건의도 수차례 했다. 황씨는 『관계공무원으로부터 「쓰레기 소각장이 곧 완공될 예정이기때문에 여러분이 쓰레기 분리를 할 필요가 없다며 그냥 돌아가라고 했을 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같은 노력으로 아파트 인근 관문국교에서는 「재분이」를 각 교실마다 설치,학생들에게 재활용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성과를 올렸다. 이들은 현재 수거의 골치거리인 음식찌꺼기의 재활용등 처리방법을 모색중이다.회원중 4가구에서 이미 음식물 찌꺼기를 채로 걸러 물기를 뺀 뒤 바싹 말린 상태로 수거하는 방법을 시도했었으나 악취가 나 아파트에서는 부적당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권회장은 『현재 부산진구에서는 음식물 찌꺼기를 퇴비로 활용하기위해 퇴비화공장을 설립한 것으로 안다』면서 『앞으로는 가정쓰레기의 30%정도를 차지하는 음식찌꺼기의 재활용을 위한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 대통령 취임1돌 회견문 요지

    오늘로 제가 이 나라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꼭 1년이 됩니다.저는 그동안 대통령으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이 나라의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달라지고 있습니다.부와 명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청와대가 국민과 보다 가까워졌습니다.경제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국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사회 저변으로부터 맑고 건강한 기운이 솟아나고 있습니다.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룩해야 할 목표에 비하면 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그에 못미치고 있습니다.30년 넘게 쌓인 적폐가 하루아침에 씻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에게 맡겨진 역사의 짐을 지고 변화와 개혁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우리가 금년의 국정목표로 설정한 국가경쟁력이야말로 대외적으로는 개방과 경쟁을 통해서,대내적으로는 변화와 개혁을 통해서만 강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의 국정방향에 대해서는 이미 연두기자회견에서 말씀드린 바 있기 때문에 오늘은 몇가지 사안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아직도 국제화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합의가 충분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저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문이 열리는 것을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문을 열고 저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문민정부 수립과 개혁을 통해서 세계 속에서 더욱 당당해지고 있습니다.아무도 우리민족의 진운을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공직사회의 혁신을 이룩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일부 공직자 중에는 복지불동으로 무사안일과 기회주의에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공직사회의 변화와 활력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방만한 기구와 기능은 과감하게 줄여야 합니다.행정에서도 「적은 비용,높은 효율」이라는 경영개념을 도입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정부는 경제활성화로 국제경쟁력 강화를 보다 강하게 추진하겠습니다.그러나 이것이 경제정의와 균형발전을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우루과이라운드 협상타결을 계기로 농어촌에 애정과 정력을 쏟는 것도 정부의 이와 같은 의지의 표현입니다. 저는 경제도약을 위해 다시 한 번 노사화합을 호소합니다.사용자는 노동현장을 신바람나는 일터로 만드는 데 성의와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근로자는 생산성과 기술수준을 높이는데 노동운동의 목표를 두어야 하겠습니다.임금인상만이 노동운동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국가경쟁력과 양립하는 노동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로,불법적인 투쟁이 정당시 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국민이 스스로 선택한 문민정부 아래서는 불법과 폭력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폭력과 무질서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1차적인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과거와 같은 갈등과 대결의 여야관계 대신에 야당이 진정한 개혁의 파트너가 되기를 저와 우리 정부는 소망하고 있습니다.진실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참다운 개혁의 파트너요,개혁에 대한 충정 어린 충고입니다.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분야의 개혁입니다.그것을 위한 제도개혁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국민과 더불어 기대합니다. 저는 북한 핵문제에대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정부로서는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면서도 동시에 극한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갈등어린 고뇌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남북간의 진실한 대화의 길을 선택한다면 저는 남북 공존공영의 차원에서 우리의 기술과 자본을 토대로 제조업과 농업·건설·에너지 분야에서 남북 경제공동개발을 서두를 용의가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해두는 바입니다. 위대한 역사는 위대한 국민의 땀과 눈물과 열정으로만 이루어집니다.저는 오로지 조국의 영광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하며 신한국을 향해,그리고 세계를 향해 땀흘려 일하겠습니다.
  •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이세기의 인물탐구:37)

    ◎민속춤 발굴을 평생의 업으로/30년동안 전국 돌며 잊혀져 가는 농악·굿 채록/진도 씻김굿 등 재현… 24개춤 문화재 선정 기여/양반춤 어깻짓도 일품… 요즘 「최승희무용」 재평가작업 몰두 상모달린 전립과 전복을 입고 세마치장단인 왼삼채와 덩더궁이로 농악패가 동네를 휘돌기 시작하면 온몸에 뜨거운 피가 솟구치면서 두둥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무용평론가 정병호씨는 어릴 때부터 농악대 리더인 열두발 채상돌리기 상쇠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천하지대본의 기를 앞세우고 쇠꾼이 추는 부들상모놀이며 장고잡이들의 설장고춤,북을 멘 북잡이들의 설북놀이와 상모쓴 버꾸잡이들의 채상놀이,징과 꽹과리소리에 맞춰 정신없이 빠지다보면 자신도 농악의 한 패거리가 되어 지치도록 신명을 낸 기분이다.실제로 그는 부모 몰래 옷자락 펄럭이며 추는 무동의 꽃사비춤을 출만큼 농악과 굿에 홀려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전국의 굿판이나 농악판에는 그가 나타나지 않는 자리가 없다. 전남 영광의 풍년굿인 칠월꽃대림굿·농사굿·메굿과 여수에서 한참 들어가는 여천 백초리 가장농악,진도 소포리 마을농악,부여에서만 볼 수 있는 은산별신제며 충북 옥천 마티(마치)마을 부락제,경기도 도당굿,통영 오구새남굿,진도 도깨비굿,강릉·양주·횡성·예천·남원등등 굽이굽이 누비고 다닌다. 민속춤을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현장조사를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지난 30년동안 최남단 도서지방에서 각도 산간벽지에 이르기까지 춤이 있는 곳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예인 기질 타고나 현장에 가서 하나의 굿을 보고 유래를 더듬거나 채록하려면 춤꾼들에게 술을 대접하거나 사례비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춤으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너름새가 크고 어깻짓이 일품인 그의 양반춤·한량춤은 그곳 토박이 춤꾼들을 한눈에 매혹하여 춤과 춤이 어우러져 흥청거리는 한밤을 지샌다. 평소에 점잖고 근엄하기만한 대학교수로서 그의 일면에 그런 한량기질·예인기질은 어쩌면 타고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서민층에서만 추어지던 병신춤이며 곱사춤 발탈과 휘겡이춤도 냉대받고 천대받던 것을 그가 발굴해서 정립해놓은 춤이다. 농악이나 굿은 마을전체가 축제분위기로 어울리는 협동춤이라면 병신춤이나 곱사춤은 신분이 다른 계층에 대한 익살과 풍자,서민의 애환과 해학을 담아 지난날의 시대상과 지역의 풍습을 꾸밈없이 반영하고 있다. 병신춤만해도 처음은 허튼춤으로 시작하여 턱붙인 곱사춤,엉덩이 빠진 곱사춤,안팎 곱사춤,문둥이 곱사춤,절룸발이 곱사춤으로 이어지고 곰배팔이와 오리발 흉내등 명연기가 곁들여져 인간의 진한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 병신춤으로 유명한 공옥진도 바로 그가 발굴해낸 인기 연희자다. 78년4월 전라도 정읍에서 남의 집 잔치에 불려다니던 공옥진을 서울에 데려다가 처음엔 그녀가 묵고 있던 종로 청진여관 옥상에서 몇사람에게 병신춤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자그마한 공옥진은 손과 발을 오그려뜨린 괴상한 춤사위를 다양하게 선보였고 이 연희는 그가 회장으로 있던 전통무용연구회 주최로 공간사랑에서 한달간 공연되어 민속예술분야로서는 최장기록을 세울만큼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그다음은 울진·강릉·주문진·삼척등 주로 해안지역을 따라 오귀굿·용굿으로 대를 잇고 있는 김석출을 소개,이는 70여명의 무인을 배출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세습무가로 지금도 30여명의 무인을 이끌고 풍어제를 위한 미포별신굿을 보존케 하고 있다. 그외에도 목포출신으로 전국각지로 돌아다니며 정착치 못하고 있던 호남승무·살풀이춤의 이매방의 YMCA강당 공연을 주선,무형문화재 지정에 앞장섰고 밀양 백중놀이와 덧배기춤의 하보경옹,진도 씻김굿의 박병천,필봉농악 양승룡,이동안옹의 태평무와 발탈도 그가 발굴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케이스다. 조금도 늦추지 않고 민속춤에 대한 연구와 발굴에 정열을 쏟는 한편 마을춤의 복원과 대중화를 실천해나가면서 최근에는 몽골등 동북아 무용의 비교로 한국춤 원류찾기,친일파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혀 40여년간 어둠속에 묻혀버린 최승희의 삶과 예술에 손대고 있다. ○나주 부농의 종손 전남 나주 산정동 대지 3천평이 넘는 「산정밑에」로 유명한 대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는 집에서 피아노와 첼로·아코디언을 배울만큼 부족함이 없는 밝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피아노보다는 집안 머슴들과 이뤄진 농악팀에 합류하기를 즐겨 엄격한 부친에게 걸핏하면 매맞고 갇히기 일쑤,집안에서 쫓겨나기가 다반사였다. 부친 정홍봉씨는 호남지방에서 알아주는 토호의 종손에다 시대에 앞장서는 인텔리로 일찍이 서울에 유학하여 휘문고와 서울대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시인 이상과는 서울공대 동기동창생이다. 전남 제일의 방직회사인 종방 대표이사로 있다가 6·25후 광주공업고와 여수고 교장을 지낸 교육자. 그러고보니 4남2녀중 집안을 이어갈 장남이 춤과 꽹과리장단에 미친 모습은 가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어쩌다 저런 것이 우리 집안에 태어났나』 『엉뚱하게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느냐』는 노발대발이 그치지 않았고 어머니 김수순여사는 이런 아들을 부군에게 감추고 빌기 위해 한숨과 눈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부친에게 반발하는 기분으로 농악이며 굿판에 끈질기게 따라다녔고 43년 광주극장에서 공연된 최승희의 무용발표회를 본 것이 춤에서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계기가 돼버렸다. 그때도 집에서 돈을 주지 않아 아끼던 아코디언을 전당포에 잡혀 무용발표회 입장권을 샀다. 『이세상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예인이 있었던가』 온통 넋을 빼앗긴 채 천하의 개인을 한번쯤은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고교를 졸업하자 서울에 뛰쳐올라왔고 지금 명동 YWCA자리에 있던 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당시 현대무용의 선두주자이던 한귀봉씨에게 현재 극작가로 활약하는 차범석,「춤」지 발행인 조동화와 함께 춤을 배우면서 최승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서울음대에 입학 한편으로는 서울대음대에 적을 두고 전봉초씨에게 첼로를 배우다가 6·25후 고향에 내려가 다시 조선대를 졸업.춤추기보다 무용평론과 이론으로 돌게 된다. 그는 반짝이는 다재다능으로 악보 없이 쇼팽의 마주르카 원무곡을 칠 수 있는 피아노 솜씨를 지녔으나 고향의 머슴방에 드나들며 두들기던 꽹과리소리를 잊지 못했고 가슴을 후비듯 스치는 마을의 신들린 축제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문예진흥원이 사라져가는 민속무용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는 그가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그때부터 전국을 누비며 징과 꽹과리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순간 움츠렸던 영혼이 잠을 깬듯 온몸에 활기와 생기가 솟구쳤다.어디선가 굿판이 벌어진다는 정보에 따라 좇아가기도 하지만 현장에 가서 소문을 듣고 즉흥적으로 탐사를 떠나기도 한다. 민속학자 임동권씨는 『아마 그가 하지 않았다면 농촌의 현대화 물결에 밀려 우리만의 독특한 민속·무속춤이 그대로 소멸될 뻔했다』고 할 정도다. ○청정한 성품 지녀 특히나 「멀고 아득한 땅」이란 인식 때문에 조선조 유배지로 유명한 진도 씻김굿과 동네번영을 위한 도깨비굿,사람의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승화시키는 다시래기는 이 지방 특유의 것으로 50∼60년전부터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그가 채록하여 보충해서 재현시킨 「작품」이다. 지난해 30년동안 몸담았던 중앙대를 정년퇴직하면서 그는 그가 10대때 흠모해 마지않던 세계적 무희 최승희무용의 재평가작업에 본격적으로 집착하여 일제시대 최승희의 라이벌이었던 영화배우 이향란(지금은 야마구치 도시코로 개명),최승희평전을 쓴 가바시오 사부로(고도웅삼낭)등 인터뷰된 사람만도 90여명.최근에 집필에 들어갔다.가족은 부인 서정구여사(61)와 아들형제.근면성실하고 예술에 대한 청정한 일념이 성품이다. 그처럼이나 춤을 만류하던 부친의 뜻대로 그는 무대에서 춤추는 대신 부친처럼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춤의 아름다움은 은은하고 고요한 가운데 맺고 어르면서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무동작의 여백일뿐,무수한 선들과 숨막히는 정지가 바로 그의 몸부림에 끊임없이 명멸하고 있음을 그만은 알고 있다. □연보 ▲1927년 전남 나주출생 ▲1946년 광주농업고졸업 ▲1946년 서울대음대입학(첼로전공) ▲1947년 조선교육무용연구소(현대무용가 한귀봉사사) ▲1955년 조선대 문이대 체육과(무용전공)졸업 ▲1961년 서라벌예대 무용과강사,고대출강 ▲1962년 서울대 대학원입학,서울대 사대강사,단국대체육과조교수 ▲1963년 중앙대무용과교수 ▲1964년부터 민속무,무속무 발굴 위한 현장답사 ▲1974년 중앙대 대학원졸업 ▲1976년 문화예술진흥원 무용교원 심사위원 ▲1977∼85년 전통무용연구회회장 ▲1978∼현재 민속학회 상임이사 ▲ 〃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 상임위원 ▲1981년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 ▲1989년 홍콩화교대학서 명예문학박사 ▲1992년 중앙대 정년퇴임 중앙대 명예교수 이대 숙대 세종대 한양대학원출강 문체부 문화재위원 시문화재위원 국립극장운영위원·무용분과 레퍼토리위원 진도씻김굿 밀양백중놀이 필봉농락 호남승무 이동안 태평무와발탈 진도다시래기 평택,강릉,이리농락 통영검무 영산재 통영사도놀음 송파답교놀이 김숙자살풀이춤 이매방살풀이춤등 24개 문화재지정을 위한 발굴조사 보고서 외 논문 250편,평론 1백여편 발표 「창작무용」(교육무용협회 69년)「세계의 민속무용」(교육도서 71년)「민속춤」(청림사 74년)「춤사위」(문예진흥원 81년)「한국춤」(열화당 85년)「농락」(열화당 86년)「한국민속춤」(삼성출판사 91년)「민속기행」(눈빛사 92년)일본어판 「한국□민속무용」(동경백제사 93년)등 16권 전라남도 문화상,한국무용협회 학술분야 문화대상,한국출판협회「올해의 책」(「한국춤」「농악」)선정
  • 정권의원 “무선유죄” 강력 반발/민자 징계대상자 확정 뒷얘기

    ◎아들을 당사에 보내 구명작전… 끝내 실패/거명조차 안되던 의원 갑작스런 경고도 민자당은 16일 재산공개로 물의를 빚은 소속의원 8명의 징계방안을 최종 확정함으로써 당차원의 조치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징계대상자들의 반발이 심각하고 일련의 당 조치에 상당수 의원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어 당분간 후유증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재섭대변인은 이날 『김종필대표가 김영삼대통령과 주례회동시 당이 확정한 징계안을 보고,재가를 받았다』고 발표. 강대변인은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에 모범을 보인다는 각오에서 이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설명. 비공개 경고대상자의 명단은 공식발표하지 않았지만 정호용(대구서갑)·김영광(송탄­평택시)·남평우(수원권선을)·윤태균·이현솔의원(전국구)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가운데 이의원은 그동안 징계물망에 오르지 않았던 뉴페이스. 그러나 그동안 징계대상에 올랐던 이명박·김진재·조진형·유흥수의원 등은 최종검토 단계에서 제외. ○…징계 대상자를 확정짓는 과정에서 민자당은 기준과 원칙이 없이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여 지난 1차 재산공개 파동 당시와는 사뭇 다른 양상. 당은 당초 제명외에 김동권·조진형·정호용의원중 2∼3명에 대해 당원권정지의 중징계를 내리고 경고도 공개로 할 것을 검토했으나 정의원을 비롯한 징계대상 의원들이 강력히 반발한데다 15일 열린 당무회의에서 곽정출·이치호위원등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자 발표를 하루 늦춰가며 재조정 작업에 골몰. 이번 징계작업의 「사천왕」격인 황명수총장과 권해옥·조부영부총장,백남치기조실장등은 15일 시내 모처에서 회동,박박식·이학원 두의원을 출당하되 아예 당원권정지 케이스를 없애고 당원권정지 대상이었던 김동권·정호용의원은 공개경고하고 4명은 비공개경고키로 결정. 황사무총장은 16일 상오 8시쯤까지만 해도 『당원권정지를 없애고 그대신 일부 공개경고,일부 비공개경고키로 했다』고 밝혔던 것. 그러나 이같은 방침은 1시간도 채못돼 다시 김의원 당권정지,정의원등 나머지 비공개경고로 급선회.이같은 선회 배경에는 정의원등을 공개경고할 경우 반발이 극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후문. ○…징계를 받게된 의원들은 『당명이니 수용할수 밖에 없다』는 쪽보다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류. 이미 출당조치가 통보된 이의원은 이날 아침 보좌관인 자신의 아들을 백실장 집과 당사로 보내 해명서를 전달하는 등 여전히 불복자세. 당초에는 출당에서 시작해 당원권정지를 거쳐 경고까지 내려왔다 결국 다시 당원권정지 징계를 받게 돼 원내부총무직도 쫓겨나게 된 김동권의원은 전날에 이어 16일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다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무선유죄 유선무죄」(당내에 유력한 줄이없어 징계를 받았다)라고 즉각 반발. 일부에서는 김의원의 평소 행태가 지도부에 밉보였고 지난 87년 대선당시 노태우후보에 자금을 지원한 반면 92년 대선때 김영삼후보에게는 거의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이현솔의원이 갑자기 경고대상자가 된 것도 비슷하게 해석. 이의원의 경우 윤길중전국회부의장의 사위로 가족명의로 투기지역에 과다한 부동산을 소유한 게 문제가 됐다고 당직자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의원이 노전대통령과 연희동 Y헬스클럽의 같은 회원으로 가까웠다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 ○…징계작업이 길어지면서 심사위원과 대상자 사이에 거친 말들이 오가거나 대상자들이 동료의원들을 상대로 물귀신작전을 펴는 등 「인간적 갈등」도 증폭. 이모·유모의원등은 자신이 공직에 있으면서 직위를 이용해 축재했다는 지적이 일자 동료의원들을 거명하면서 『왜 나만 당해야 하느냐,똑같이 공직생활을 했지만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멀쩡한데 왜 내가…』라는 항변을 제기. 이에 대해 심사에 참여했던 조부총장은 의원들이 「읍장지효」(때리는 노부모의 매에 실린 힘이 약한 것을 오히려 슬퍼해 자식이 눈물을 흘림)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일침.
  • 김대중 전 대표 찾아 정치자문 구할생각/이기택 민주당대표 일문일답

    ◎모범적 정치생활 실천땐 대권주자 가능 민주당 이기택대표는 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에서 2시간여에 걸쳐 당과 자신의 진로,정치적 입지등에 관해 답변했다.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민주당의 평가는. ▲국민과 언론이 정부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역대 정권 출범 초기에 늘 있는 현상이다.야당도 처음부터 비판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대표와의 관계는.또 홀로서기가 가능하리라고 보는가. ▲만일 거절하지 않는다면 찾아가 자문을 구하겠다.그러나 이는 홀로서기와는 별개의 문제다.나는 이미 홀로 서있으며 과거 양금시대에도 홀로 서서 정치를 했었다. ­5년후 야권의 대권주자로 나설 생각이 있는가.15대에도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을 생각인가. ▲정치인의 궁극 목표는 대권을 장악해 정치철학과 포부를 펴는 것이다.타의 모범이 되는 정치와 생활을 실천하면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14대 총선때는 눈물을 머금고 지역구를 포기했는데 많은 오해가 있어 서운했다.15대 지역구 출마 역시 당의 뜻에 따르겠다.김영삼대통령 이후 부산에 강력한 정치기반이 확산되리라 본다. ­직선제와 내각제 가운데 어느쪽을 지지하는가.전국구 폐지 용의는 없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중심제를 지지한다.전국구제도가 야당에 재정적인 도움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폐지가 타당하다면 고집하지는 않겠다. ­민자·민주 양당 개혁세력간의 제휴가능성은. ▲민주당내 진보및 소장세력은 발언권과 기반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다.따라서 특별한 불만은 없다고 본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관한 구상은. ▲당론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의 입장은 한마디로 즉각 실시하라는 것이다. ­정가에 이대표가 경제적인 정치인이라는 혹평이 있는데. ▲4·19를 탄압했던 신도환씨와의 친분,그리고 3당합당때 청와대 오찬 참석등을 두고 변신을 잘 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나는 양금이 큰 힘을 갖고 있을 때도 특정인의 우산속에 들어가지 않고 홀로 서왔다.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지도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생각한다.민주정당으로 발전하려면 지도자 또한 민주적이어야 한다. ­돈에 인색하다는 말이 있다.깨끗한 정치를 지향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능력과 적극성이 없기 때문인가. ▲정치가 재산증식에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정치자금을 구할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구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고한 철학이 없다. ­북한핵문제를 보는 시각은. ▲북한의 핵보유는 결코 안된다.다만 비핵화공동선언으로 평화적 이용의 길까지 막힌 것은 유감이다. ­4대 헌정유린사건 관련자 처벌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의향은. ▲앞으로 검토해 당의 입장을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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