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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통신 5개사 부가서비스 ‘유혹’

    ◎교통정보서 PC통신·인터넷 접속까지 다양/통신수단 영역넘어 종합생활정보 제공자로 디지털 셀룰러폰에 이어 개인휴대통신(PCS) 상용서비스가 시작된지 지 1년.이동전화 사업자간 시장 확보전이 갈수록 치열해진 가운데 기본적인 통화품질 경쟁에서 부가서비스 경쟁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가입자 유치를 위해 5개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가 앞다퉈 선보이고 있는 부가서비스 종류만도 수십가지.이제 휴대폰은 단순한 통신수단의 차원을 넘어 종합생활정보 제공자로 우리 생활 깊숙히 파고 들었다.각 업체들이 펼치고 있는 부가서비스와 대고객 서비스 전략을 알아본다. ●SK텔레콤(011) 가입자에게 국도·고속도로의 노선·구간별 소통정보를 ARS(자동응답장치)를 통해 음성으로 제공한다.또 이동 중 경마 경륜 증권 노래방 운세 버스노선 의료 등 다양한 700번 정보서비스를 일반 전화보다 27∼55% 싸게 이용할 수 있다.이동전화 단말기와 노트북 PC를 연결,인터넷 및 PC통신에 접속하고 E메일 송수신도 할 수 있다. ●한국통신프리텔(016) 이동전화의 위치추적 기능을 활용해 이동 중인 차량의 운행경로,화물적재 상태,교통상황 등 다양한 정보가 관제소로 자동전송되는 ‘모빌넷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최근에는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한꺼번에 여러 명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업형 단문메시지서비스’와 가입자 간음성사서함을 공유하며 공지사항을 전달해 주는 ‘PCS연락방’도 개설했다. ●신세기통신(017) 업계 최초로 인터넷 국제전화 서비스를 제공한데 이어 휴대폰을 이용해 다른 휴대폰,PC통신,인터넷,그리고 팩스로 한글이나 영문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파워메모서비스’를 제공한다.고객의 사용실적 점수에 따라 기념품이나 무료 통화권,단말기 무료교환권 등을 주는 ‘파워마일리지서비스’와 대한항공과 제휴해 각종 항공운항 정보를 휴대폰으로 알려주는 ‘파워스카이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한솔PCS(018)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월드뉴스 스포츠 등 가입자가 원하는 분야의 중요 뉴스가 발생할 때마다 PCS폰으로 자동으로 보내 주는 한글문자정보제공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증권 뉴스 스포츠 환율 날씨 운세바이오리듬은 음성정보로 제공된다.또 노트북PC나 핸드PC,회사 전산망(LAN) 등을 PCS폰과 연결해 PC통신,인터넷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원샷 데이터서비스’도 실시 중이다. ●LG텔레콤(019) PCS지역날씨 증권시황 스포츠실황 교통정보 경제뉴스 문화뉴스 등 10여개의 문자방송 채널을 운영,시시각각 변동하는 정보를 TV자막형태로 계속 받아 볼 수 있다.
  • ‘농구비리’ 대전지검의 한탕주의/李天烈 기자·전국팀(오늘의 눈)

    지난 여름부터 불거진 특기생들의 대입 비리가 아이스하키,축구에 이어 농구에서도 드러나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어려운 대입 관문을 뚫기 위해 수많은 수험생과 학부모가 밤잠을 설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돈을 받고 입학자격을 사고파는 행위는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특기생 비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관련자들을 엄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비리 단절이 아무리 절실한 과제라 하더라도 검찰권의 행사가 정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만의 하나라도 한탕주의나 부풀리기가 끼여들어서는 더욱더 안된다. 그런 면에서 지난 5일 대전지검 특수부가 발표한 농구감독 배임수재사건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검찰은 중앙대 金泰煥 감독이 지난 10월 서울 B고 선수 林모군의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입학 부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아 구속했다고 밝혔다. 언뜻 金감독이 돈을 받고 林군을 입학시켜준 듯하나 사실에는 차이가 있다. 부탁을 받고 입학을 추진한 것은 분명하지만 도중에 돈을 돌려줬고 林군은 특기생입학이 무산됐다. 범죄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학부모가 검찰에서 밝힌 진술도 이를 입증한다. 검찰은 또 金감독이 돈을 되돌려준 부분은 별로 언급하지 않은 채 대학 최강팀의 사령탑이며 농구계 유명인사인 金감독이 거액을 받았다는 사실만 부각시켰다. 언론을 의식한 부풀리기 인상이 강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형평성문제가 이 때문에 터져나오고 있다. 검찰은 대전 D고 감독 崔모씨가 농구협회 홍보이사 金科中씨(구속)와 함께 D고 농구선수인 李모군의 아버지에게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시켜 주는 대가로 2,000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500만원을 챙겼다 되돌려 줬으나 사법처리하지 않고 미뤄오다 뒤늦게 입건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지검 북부지청의 아이스하키,부산지검의 축구 등 대학 특기생선발 비리수사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최근 “특기생 비리수사가 인기품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우스갯소리를 현실화시켜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 친일의 군상:16/金羲善(정직한 역사 되찾기)

    ◎상해 臨政에 ‘위장취업’/독립운동 진영에 타격/일본육사 졸업… 구한말군대 간부지내/독립운동 ‘길목’서 체포된뒤 변절/3·1운동후 임정가담… 1922년 재차 변절/1980년 국민장 서훈… 96년 재심서 취소 지난 96년 10월 黃昌平 당시 국가보훈처장은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徐椿 등 5명에 대해서 독립유공자 예우를 배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이들의 친일행적이 확인됐다는 것. 이에 앞서 재야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경력자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 수 차례 제기돼 왔었다. 그러나 당국이 이를 공식 확인하여 해당자들의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 박탈’이란 서훈취소는 물론 연금지급 중단 등 당국의 각종 보훈혜택을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예우 박탈대상자로 발표한 5명 속에는 金羲善(김희선)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을 거쳐 대한독립군 참의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과전투중 ‘사망했다’는 이유로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63년 내각사무처가 독립유공자를 심사,포상할 당시 그는 훈장급이 아닌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보훈처의 공적 재심사를 거쳐 80년 그는 국민장(3등급,현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국민장이라면 柳寬順 열사나 임정요인급이 받은 등급이니 그의 독립운동 공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서훈이 취소됐다면 친일경력이 문제됐다는 얘긴데 과연 진상은 무엇인가? 김희선(1875∼1950)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호는 옥봉(玉峯)이다. 일본 육사를 졸업(11기)하고 귀국하여 한말 구한국군 육군참령(현 소령)으로서 시위기병대장,시종무관을 지냈다. 1907년 일제의 군대해산에 격분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그는 1910년 도산 安昌浩가 주도한 청도회담(靑島會談)에 참석하였다가 중국본토로 가는 도중에 일본 관헌에 체포돼 강제로 귀국당하였다. 독립운동으로 나선 첫 길목에서 좌절당한 셈이다. ○사이토총독 3차례 면회 이무렵 일제는 광범위한 회유정책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일병합’ 직후 일제는 조선내에서 그들의 식민정책을 효과적으로 펴나가기 위해 직업적 친일분자를 정책적으로 육성하였는데 여기에 그가 걸려들고 말았다. 1913년 2월8일자 조선총독부 ‘관보(官報)’에 따르면 그는 동년 2월4일부로 조선총독부 군수(평안남도 개천군수,고등관 6등)에 임명되었다. 1915년 5월18일자 ‘관보’에는 동년 5월12일부로 평안남도 안주군수에 임명된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그는 임명만 된 것이 아니라 실지로 두 곳의 군수직에 취임했었다. 일제는 김희선과 같은 변절자들에게 경력을 참작하여 각기 능력에 걸맞는 대우와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에게는 군수자리와 거액의 하사금이 내려졌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그와 같이 변절한 申泰鉉은 간도(間島)방면에서 농장 경영권을 부여받았다. 그 대가로 독립운동가를 투항하도록 권유하는데 이용됐다. ‘사이토(齋藤實)문서’에 의하면 김희선은 1919년 8월부터 1921년말 사이에 사이토(齋藤實) 총독을 3차례 면회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 수치는 친일파 尹德榮·李夏榮·尹致昊·申錫麟 등이 사이토를 면회한 횟수와 동일하다. 안주 군수 재직중 1919년 3·1만세의거가 터지자 김희선은 총독부 군수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지원하다가 마침내 군수직을 버리고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였다. 그가 만세운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상하이로 탈출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3·1운동후 상하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서 군무부 차장 겸 육군무관학교 교장,군무총장 대리 등을 역임하였다. 또 1922년 1월에는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기도 했다.(‘독립유공자공훈록’,제5권,국가보훈처 발행) 그러나 그는 어떤 연유에선지 1922년경 두 번째로 다시 친일,변절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김희선은 아(我)정부에서 중(重)히 등용하여 우우(優遇,우대)하여 왔는데 은의(恩義)를 망각하고 변심하여 드디어 적에게 투귀(投歸,투항)하였다. 그 죄 사면(赦免)하기 어렵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관보격인 ‘임시공보’ 제2호(1922년 2월25일) 내용중 김희선 관련부분만 발췌한 내용이다. 그의 변절사실을 확인할만한 자료는 또 있다.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 기사를 보면 그의 변절은 인간적인 면에서도 파렴치한 배신이었던 모양이다. 기사내용중 일부를 옮겨보자. ○30여년간 독립유공자로 둔갑 “병학(兵學)배운(김희선이 일본육사를 졸업한 사실을 지칭한 것임) 애국자로 이름높은 김희선은 총독부의 군수노릇 내버리고 반정(反正)하매 그 전과(前過)를 용서하고 그 지기(志氣)를 가상히 여겨 동지들이 그를 채용하여 군무차장(軍務次長)시켰더니 목욕시킨 돼지가 감귤맛을 못 잊어서…제 계집년 도망할제 왜놈에게 재항(再降)하고 귀화장(歸化狀,항복문)을 써 바쳤다.…3년(1919년부터 1922년까지 그가 임정에 참여했던 기간을 지칭함),냄새나는 송장놈을 차장(次長)시킨 책임자의 잘못이다.그 놈 욕해 무엇하리. 이런 놈은 죽은 개니 육시처참(戮尸處斬)할까 말까”(‘독립신문’,1922년 5월6일,제124호) 결국 그가 1920년대 초반 잠시 임시정부에 참여한 것은 순수한 독립운동 차원이 아니라 일제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초창기 독립운동 진영에 참여하다가 도중에 변절한 사례는 더러 있다. 그러나 김희선처럼 두 번씩 변절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두번째 변절한 이후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자료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일제가 그를 다각적으로 회유하려고 노력한 사실이나 임시정부에서 그의 변절사실을 이례적으로 관보·기관지에 게재,공개한 것으로 봐 그의 변절은 민족진영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30년 ‘한일병합’ 20주년 기념으로 일본 천황이 조선내 친일파들에게 내린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을 그가 받은 사실로 봐도 그의 친일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이같은 친일행적이 보훈처가 간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에 모두 언급돼 있다는 사실이다. 독립유공자의 행적에 조그마한 의문점만 있어도 서훈을 보류해온 보훈처가 그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를 한 셈이다. 독립유공 공적으로 대통령표창(63년)에 이어 다시 80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은 그는 96년 보훈처가 서훈을 취소할 때까지 30여년간 독립유공자로 둔갑돼왔었다. 뒤늦었지만 보훈처의 ‘서훈취소’는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셈이다. 해방후 고향에 머물다가 월남한 김희선은 서울시 임시정부추진회 부회장,육군상이군인유가족회장 등을 지내다가 6·25 발발 후인 50년 9월29일 서울 근교 공릉(현 노원구 공릉동) 근처에서 사망했다. ◎사망일자에 얽힌 치졸한 사연/순국선열 유족 연금 지급/해방전 사망땐 손자까지 혜택/손자 金宗彦 연금수혜 노려 김희선 사망날짜 조작 김희선의 사망일자는 과연 언제인가? 김희선의 사망일자는 서류마다 제각각인데 모두 세가지 설이 있다. 63년 당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를 담당했던 내각사무처가 작성한 공적조서에는 ‘1925년 3월 대한독립단 참의부에서 활동중 집안현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전사’한 것으로 나와 있다. 80년도에 국민장(현 독립장)으로 훈격이 상향조정될 때 주무부서인 원호처가 작성한 공적조서에도 사망일은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89년 보훈처가 펴낸 ‘독립유공자공훈록’(제5권)에는 그의 사망일이 광복 직전인 45년 7월6일로 나와있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후손이 세운 묘비에 적힌 것으로 여기에는 ‘1950년 9월29일 卒’로 나와 있다. 실제 사망일은 그의 묘비에 후손이 새긴 날짜다. 1987년에 출간된 ‘강서군지(江西郡誌)’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김희선의 사망일자가 이처럼 여럿인 이유는 보훈당국의 자료조사 부실에다 그의 손자 金宗彦(70)의 ‘장난질’ 때문이다. 현행 국가유공자예우법에는 해방전에 사망한 순국선열은 손자까지,해방후에 사망한 순국선열은 자식까지만 연금수령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조부 김희선의 훈장에 대한 연금을 타기 위해 김희선의 사망일자를 조작한 셈이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두 번씩이나 친일로 변절한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고나 할까?
  • “내각제 개헌 대통령 임기말에”/虛舟 기자간담회서 밝혀

    한나라당 金潤煥 전 부총재는 3일 “李會昌 총재와는 더 이상 타협도,화해도 없다”며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金 전 부총재는 이날 낮 대구시내 음식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내각제 논의와 관련,“내각제는 현대통령의 임기말에 개헌을 통해 실현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대권후보로 만들어 준 李총재가 비록 대권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그를 위해 정치를 해왔지 않느냐”면서 “당을 위해 굳게 약속한 정치적 신의를 저버린 데 대해 용서할 수 없다”고 李총재를 비난했다.
  • 全斗煥 前 대통령 목포 보현정사 법회 안팎

    ◎영·호남신도 4,500명 ‘국난극복’ 합장/金 대통령 “불교계 동서화합 앞장 감사” 메시지/全 前 대통령 “효율적 환란수습” DJ치적 역설 29일 全斗煥 전 대통령의 목포 보현정사(普賢精寺) 국난극복 법회 참석은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 현 정부로서 상징적인 ‘정치·사회적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金大中 대통령의 고향인 목포 사람들은 ‘5·18내란’ 혐의를 씌워 金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전직대통령을 용서와 화해로써 맞았다.영·호남지역 신도들은 열린 마음으로 ‘국난극복’을 주제로 한자리에 모임으로써 동서화합(東西和合)의 물꼬를 텄다. ▲金대통령은 韓和甲 국민회의총무가 대독한 ‘민족대화합 기원메시지’에서 “속초에서 목포에 이르기까지 8차례에 걸친 대법회는 국민적 역량을 재결집하고 국민화합을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국민대화합을 이룸으로써 21세기를 향한 새 도약과 민족통일을 앞당길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불교계가 앞장서서 부처님의 원력으로 국가 과제인동서화합의 물꼬를 열어준 데 감사한다”고 불교계를 치켜세웠다. ▲全전대통령은 오후 1시 張世東 전 안기부장 등과 함께 보현정사에 도착했다. 全전대통령은 오찬을 전후해 동교동계인 韓和甲·金玉斗,민주계 徐錫宰 의원 등과 날씨,법회 등을 화제로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소감을 묻자 “반갑고 기분이 좋다. 국난극복 법회에 오니 더욱 의의가 있지 않느냐”고 대답. 全전대통령은 내년 망월동 방문 여부,5·18 사과문제를 묻자 “내년 일은 내년에 가봐야 알 것”이라면서 정치적 발언을 자제했다. ▲법회에서 全전대통령은 기원사를 낭독,“정부가 金大中 대통령의 지도 아래 능률적인 응급대책으로 환란을 수습했으며 이제 환율 등 여러 지표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金대통령의 ‘치적’을 거론했다. 全전대통령 일행이 차량편으로 목포공항과 법회장을 오가는 동안 대학생과 5·18유족으로 보이는 6∼7명으로부터 계란세례를 받았으나 맞지는 않았고 전체적으로는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법회에는 영남지역 신도 1,500여명과 호남지역 신도 3,000여명이 참석했다. 全전대통령측 인사로는 張世東·安賢泰·許三守·李元洪·高明昇·金振永·崔永喆·李亮雨씨 등 거의 모든 측근들이 참석. 여당 인사로는 국민회의 韓총무와 金玉斗·李榮一·權正達·徐錫宰·裵鍾茂,자민련 朴哲彦의원 등이 참석했다.
  • 형식에 얽매인 ‘새출발 대회’/白汶一(경제 프리즘)

    23일 서울 능동 리틀앤젤스회관에서는 모처럼 ‘범금융인 대회’가 열렸다.은행 증권 보험 투신 등 8개 금융기관 대표 1,100명이 모여 ‘금융산업 건전성 회복과 새출발 선언식’을 가졌다.“대출청탁을 배격하고 고객을 위하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한편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60조원 이상 받은 금융기관은 당연히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다.정부의 짜여진 각본에 따라 금융인이 동원되고 획일적인 내용의 결의문이 낭독된다고 잘못된 금융관행이 바로잡힐 수 있을까. 이번 행사는 재정경제부가 금융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서 ‘금융기관이 국민앞에 거듭날 것을 다짐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한다. 문제는 관제행사의 ‘비효율적 속성’이다.금융기관들은 이런 행사에 잘 길들여져 있다.시나리오에 따라 박수치고 손들고 큰 소리로 한번 외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자율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내용보다 형식에 얽매인다. 정부는 일과에 한참 바쁜 오후3∼5시에 점포장과 직원들을 동원해 꼭두각시 노름을 시키기 보다 그 시간에 금융관행 개선안 연구를 시키는게 더 효율적이 아닌지 검토했어야 한다.금융관행 개선은 금융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면죄부’를 산다고 죄가 용서되는 게 아닌 것처럼 ‘일회성’ 행사로 오랜 금융관행을 바꿀 수는 없다. 정부 측은 금융기관의 자발적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나 1시간 뒤에 열린 리셉션에는 李揆成 재경부 장관,李憲宰 금감위원장,全哲煥 한은 총재 등 금융관련 기관장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 공동 기자회견/韓·美 정상회담­클린턴 대통령 모두발언

    ◎北 지하核의혹 韓·美 공동 대처할것/한국 경제위기 극복위해 지원 계속 金대통령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며 용서할 수 있는 능력과 신념, 용기,선견지명을 가졌다는 데 대해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첫째,미국은 확고한 안보동맹관계를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이는 공동의 희생과 역사,일치된 목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金대통령과 나는 대북문제는 현재의 방법이 최선의 접근방법이라고 합의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점진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4자회담은 견고한 협정을 위한 최선의 길이며 제네바합의는 북한 핵무기 개발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입니다.북한은 미사일 발사,지하 핵시설 의혹 등을 드러내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우리는 평양에 이같은 우려를 만족스럽게 해소해야 하며 그 이상의 개발은 우리가 이룩한 진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통보했습니다. 金대통령과 나는 경제상황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습니다.먼저 나는 한국의 지금 고통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金대통령 행정부가 금융위기를 다루고 경제성장의 길로 가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투자가들에게 투자를 권장해왔습니다. 우리 수출입은행은 전례없는 40억달러를 지원했고 앞으로 2년간 80억달러의 수출대부를 더 지원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일본과 함께 아시아 회복계획을 세우고 기업 및 금융분야의 구조조정 가속화를 돕도록 했습니다. 나는 한국이 아시아 경제난관에도 불구,시장경제를 확대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습니다.우리는 한국이 보호주의 유혹을 저지하기를 원합니다.나는 金대통령에게 불공정 무역 관행이나 철강 반도체 분야에서 불공정 무역을 방지하는 데 깊은 주의를 기울여줄 것을 부탁했습니다.金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웅변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주장한 부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金대통령께서 인권 민주주의를 강력히 옹호하는 데 감사합니다.이는 오늘의 도전이자 내일의 꿈이 될 것입니다.두 정상은 우리의 동맹 안보관계를 더욱 튼튼히 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계속 추구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 의문사 규명 특별법 제정 절실/任昌龍 기자·특집기획팀(오늘의눈)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은 끝내 어둠의 역사 속에 묻히고 말 것인가. 새정부 들어 의문사 관련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등이 그토록 기대했던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무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金鍾泌 총리는 13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에서 의문사 문제는 시효가 지나 재수사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열린 국민회의 확대간부회의에서도 ‘민주화 관련자 명예회복 및 예우에 관한 법’ 제정은 추진하되,의문사 진상규명 문제는 내년에 설치될 국가인권위원회에 넘기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인권위는 그 지위나 수사권 확보 등을 놓고 법무부,국민회의,시민단체들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때문에 수사권이 보장될지 의문인 인권위에 의문사 문제를 넘겨서는 안되며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안기관 전·현직 관계자 조사가 불가피한 작업을 수사권 없이 한다는 것은 ‘진상규명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의문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적지않은 사람들의 죽음이 권력에 의해 은폐·조작되며 사회문제화되어 왔다. 지난 70년 이후 유가족들과 인권단체 등이 공식 제기한 의문사만 해도 40건이 넘는다. 그러나 진상이 규명된 것은 거의 없다. 유가족들은 군사독재하에서 숨죽여 살며 여기까지 왔는데 새정부마저 시효가 끝나 조사할 수 없다면 의문의 죽음은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허탈해하고 있다. 남아공은 수사권을 가진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권력에 의해 자행된 고문·살해범죄의 진상을 낱낱이 밝혔다. 그리고 화해차원에서 범죄자들을 사면해주었다. 이는 진정한 화해는 진실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우리에게도 특별법이든,인권위든 의문사 진상규명에는 수사권이 꼭 필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유가족들은 지난 4일부터 국회앞에 천막을 쳐놓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추위에 떨며 ‘진실의 햇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범죄자들을 진정용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첫 출항 르포

    ◎금강산에 瑞雪… 민족화합 소망 싣고/수백개 오색풍선 띄워/한·사연 안은채 승선/제수용품 들고 가기도 18일 오후 5시44분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 부둣가에 정박해 있던 현대금강호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부웅’하는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나오자 수백개의 오색풍선이 날아오르고 수십발의 폭죽이 터지며 동해항의 하늘을 밝혔다. 부둣가에 나와 있던 3,000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금강호의 불 켜진 창마다,갑판 층층마다에서 탑승자들은 손을 흔들며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어 황혼의 어스름을 뚫고 2만8,000여t의 육중한 선체는 미끄러지듯 동해항을 빠져나갔다. 시민들은 금강호가 바다 저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금강호는 그렇게 떠나갔다. 배 안에는 승객만 탄 것이 아니었다. 금강호의 첫 출항으로 민족 화합의 다리가 놓이길 바라는 이산가족의 꿈과 온 국민의 소망이 실려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날 하루는 너무도 길었다. 부둣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서성대는 노인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이들은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날밤 금강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서설(瑞雪)이 아니겠느냐”며 좋아했다. 설레임이 가득한 눈들. 하지만 모두들 나름대로의 한(恨)과 사연을 담고 있었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金昇龍할아버지(70)는 “금강산에 올라 고향을 향해 절을 하겠다. 그리고 못난 불효자를 용서해달라고 부모님께 사죄하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이어 “5남매의 장남으로 홀로 월남한 뒤 50년을 하루같이 남몰래 눈물을 흘려왔다”면서 “이 한을 품고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고향을 그리다 숨진 남편과 함께 갈 수 있었더라면…”. 평북 희천에서 남편과 함께 월남한 金華洽할머니(71)는 “외아들과 함께 고향땅을 밟게 돼 기쁘다”면서도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權萬希씨(70)는 과일과 술을 마련하고 제수용품을 준비했다. 지방도 정성스레 써놓았다. 생가가 강원도 고성군 해금강리에 있어 고향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인 魚善龍씨(65)는“남편이 관광 신청을 한 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 같았다”고 전했다. 금강호가 떠난 뒤에도 삼삼오오 터미널안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방송사 헬기가 보내오는 금강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유휴설비 北 이전 적극 검토/金 총리 국회 답변

    ◎규제 5,320건 올해안 철폐할것 金鍾泌 국무총리는 17일 “유휴설비의 대북 이전사업은 매우 의미 있는 사업으로 남북한 민간 협력사업의 추이를 봐가며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金총리는 이날 경제2분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같이 답변하고 “유휴설비 대부분은 낙후돼 있어 북한에 이전되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북한측 수용 여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와 관련,金총리는 “규제철폐 대상목표의 절반 수준인 5,320여건을 올해 안에 철폐할 것”이라면서 “규제관련 결정권자를 명확하게 기록에 남기도록 하겠다”고 ‘규제실명제’도입방침을 밝혔다. 金총리는 72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3만여명 인력감축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철저히 점검해나가고 내년 초 추진 실적을 평가해 인사책임 등 상응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기 위해 도로·철도·항공 등을 연계한 1단계 종합물류정보시스템에 대한 상용서비스를 올해 말 실시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주행세 도입에 대해金총리는 “지나치게 복잡한 조세체계를 간소화하기 위해 특별회계 정비와 연계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시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기준 8%는 외국은행들과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으로 다시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 친일의 군상/前 이화여대 총장 金活蘭(정직한 역사 되찾기)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 때 어찌 여성인들 잠잣코 구경만 할 수가 잇겟습니까.이 날을 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벌서부터 되여 잇섯습니다.내지(일본)학도들과 함께 전문대학 법문계(문과) 반도(조선)학도들은 우렁찬 진군을 이르키어 특별지원병으로서 오는 1월20일에는 영예의 입영을 하게 되엿습니다.이번 반도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거러가야될 길이지만 오직 여성이라는 한가지 리유 때문에 참렬을 못하는 것입니다.…아프로는 결전하의 국가목적에 쪼차 한사람이라도 더만히 우수한 지도원을 양성하기에 전력을 다할 각오가 잇슬 뿐입니다.” 金活蘭(1899∼1970)이 1943년 12월25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新報)’에 기고한 ‘男子에게 지지안케­皇國女性으로서의 使命을 完遂’라는 제목의 기고문 중 한 대목이다. ◎이대 키운 공 크지만 ‘여성계 상징’으론 논란 여지/3·1운동 당시 한때 지하 독립운동 조직과 연계/1936년 이화학당 부교장 시절부터 변절 첫 걸음/동포청년 전쟁에 내몰고도 사과 한마디 없어/“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 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일제하 지식인이 신문에 쓴 친일성향의 글 한 두편을 통해 그의 삶 전체를 평가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거대한 감옥’또는 ‘노예선’으로 불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쓴 글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우선 생명에 위협이 있었느냐,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했느냐 하는 점 등이다. 모든 지식인들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몇몇 의사·열사가 이에 속할 뿐이다.그러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그러나 거의 모든 친일 지식인들은 자신의 친일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친일 지식인들이 더 비난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때문이다. 일제시대 여성 지식인이었으며 최근 그의 이름을 딴 상(賞)제정 문제로논란이 되고 있는 김활란은 역사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답은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이유는 그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그의 이름을 딴 상 제정은 지식인 사회에서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김활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 가운데 하나는 ‘여성박사 제1호’다.그는 학사·석사·박사를 따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5년간 미국유학을 했다.귀국해서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절러(당시 이화여전 교장)의 뒤를 이어 1939년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했다.굳이 나눈다면 그는 친미(親美)인사로 분류되는 사람이다.그런 그가 ‘대동아전쟁’이 터지자 친일,반미(反美)인사로 돌변하였다. ○전쟁 터지자 반미로 돌변 “저 흑노(黑奴)해방의 싸움을 성전(聖戰)이라 했고 십자군의 싸움도 성전이라고 했다.…제일선 장병과 보조를 같이 하여 도의를 무시한 물질제일주의의 서양문명을 박차버리고 동아(東亞)의 천지로부터 미영(美英)을 격퇴하여 버리자”.김활란은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결성식(1941.12.27,부민관 대강당)에서 ‘여성의 무장’이란 주제로 미영 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일제하 대부분의 친미·기독교계 인사들(白樂濬·申興雨 등)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다시 친미인사로 변신했다.그는 미군정 시절 초대 이화여대 총장에 취임했고 이승만정권 하에서 한미(韓美)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3·1만세의거 당시 김활란은 이화학당 대학과를 마치고 모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그 무렵 지하독립운동 조직과 연결돼 활동하고 있었다.‘7인의 전도대(傳道隊)’를 만들어 기독교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단순한 전도활동 수준을 넘는,일종의 민족운동이었다.20년대 후반 좌우 민족진영의 통합으로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뒤이어 27년 4월 여성계 민족단체로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었다.그는 근우회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이듬해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31년말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농촌교육 관련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귀국후 문맹퇴치·봉건잔재 타파 등을 내걸고농촌운동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미국유학을 한 인텔리 여성의 소박한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일제 침략전쟁 미화·선전 그의 친일행보는 36년 이화학당 부교장으로 있던 시절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해 말 총독부 사회교육과 주최 ‘가정의 개선과 부인교화운동의 촉진’을 위한 사회교화간담회에 참석하였다.37년 1월 그는 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선부인문제연구회’를 결성하였고 7월 들어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애국금채회(愛國金釵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이 단체는 한일병합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의 부인들이 주동이 돼 전쟁물자로 바칠 금비녀·가락지를 모으기 위해 결성한 친일 여성단체였다.이후 여러 친일단체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방송선전협의회,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조선교화단체연합회,조선임전보국단,조선언론보국회 등등. 그의 활동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 활동이다.38년 6월 조선YWCA의 회장으로 있던 그는 “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자기(自期)하는 의미에서…”(매일신보,38년 6월9일)라며 일본YWCA에 가맹을 발표하였다.당시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학교가 폐교를 당하고 구속자·순교자가 잇따르던 때였다. 39년 4월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한 이후 그의 친일행각은 본격화되었다.물론 그 배경에는 학교를 지키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았다.그러나 김해 김씨인 그의 문중이 본관을 따라 ‘김해(金海)’로 창씨를 한 것과는 달리 그는 독자적으로 ‘천성활란(天城活蘭·아마기 가쓰란)’으로 창씨개명하였다.‘어차피 창씨를 해야한다면 정말 (일본식으로)창씨를 해서 자신의 독립된 일가를 세울 생각’이었다.(金貞玉의 저서 ‘이모님 金活蘭’중에서)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살아 ‘대동아전쟁’ 개전(41.12.8) 이후부터는 강연·방송은 물론 가두로 나서서 일제의 침략정책을 미화,선전하였다.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머니나 딸·동생으로서’ 징병·징용·학병 등 인력동원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촉구했다. 43년8월1일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황국신민의 무쌍(無雙)한 영광인 징병제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실시되었다.…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공하옵신 성지(聖旨)에 다시금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위하여 불덩이 같이 끓는 피와 몸을 통털어 바쳐 성은(聖恩)에 보답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으며 반도 남아의 의기를 뵈일 기회는 드디어 왔다.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수 천년 역사 이래 모처럼 보는 거룩한 감격…”(‘매일신보’1943년 8월7일)이라고 썼다. 그는 해방직전 심한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자신을 문병차 찾아온 조카(金貞玉 전 이대교수)에게 “남의 소중한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연설을 하고다닌 죄값”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김정옥의 앞의 책 중에서) 당시 여기자 崔銀喜는 그를 두고 ‘모질고 악착한 역경을 맛보지 않고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산 행운아’라고 평했다.식민지 시대와 격동기를 산 지식인의 일생이 대체로 고뇌와 아픔으로 점철됐겠지만 그는 상류층의 한 층을 이루는 생애로 일관하였다. 그가 60년 가까이 이화인(梨花人)으로 살면서 일제하와 건국기에 학교를 지키고 가꾼 공로는 인정할만 하다.그러나 그를 여성교육계,나아가 한국여성계의 상징으로 내세우기에는 그의 일생 가운데 ‘흠결’은 큰 편이다.이대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그의 친일활동이 적극적이었다.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추진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보다는 그의 떳떳하지 못한 삶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김활란 연보 1899년 인천 출생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졸업 1918년 이화여전 교수·부교장 1928년 ‘근우회’ 발기인으로 참여 1931년 미국 컴럼비아대 철학박사(‘여성박사 1호’) 1937년∼45년 애국금차회·임전대책협의회·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 1939년∼70년 이화여전 교장·이화여대 총장·이화학당 이사장 1948년∼65년 한국대표로 유엔총회 6회 참석 1950년 공보처장 1952년 ‘코리아타임스’ 사장 1954년∼61년 국제기독교선교위원회 부위 원장 1955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1959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1963년 대한민국장·막사이사이상·다락방상 수상 1965년 대한민국 순회대사 1970년 별세,망우리 금란동산에 묻힘.대한민국 1등수교훈 장추서 1996년 추모문집 발간,그의 친일 논쟁을 계기로 ‘인터넷 반민특위’이 등장 1998년 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계획 발표로 찬반논란
  • 서울신문 영욕의 53년 나래 접으며

    ◎솔직한 참회 재탄생 초석으로 정론 벗어났던 일 냉혹히 자성/날카로운 시선·질책 겸허히 수용 서울신문이 지령 16851호,1998년 11월10일자를 마지막으로 영욕 53년의 나래를 접습니다. 11일자로 우리의 뿌리,자랑스런 항일 민족정론지 대한매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수십만 독자와 함께 해온 서울신문 반세기를 마감하며 지난날의 정도(正道)를 벗어났던 일들에 대해 냉혹한 자기반성을 하고자 합니다. 시대에 따라 국민과 독자의 애증(愛憎)이 교차되는 시선 속에 우리 서울신문 가족들은 땀과 눈물로 서울신문을 가꾸고 키워왔습니다. 53년의 연륜을 지닌 서울신문 제호를 새시대 역사의 흐름 속으로 띄워보내며 회한(悔恨)이 서리지 않을리 없습니다. 서울신문은 6·25전란(戰亂) 가운데서도 진중신문을 발행하여 국민들에게 전황을 알려주는 사명감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시키고 약자를 부축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에도 힘썼습니다. 환경지키기에 앞장서고 농촌경제 발전을 지원했습니다. 한글 전용신문 발행과학자·문필가·예술가 지원 등 민족문화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강한 사회면,격조높은 문화면으로 언론계의 선두에 서기도 했습니다. 자본에 휘둘리거나 상업적 사익(社益)에 얽매이지 않고 국익을 우선하는 논조,센세이셔널리즘에 흐르지 않는 품위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결코 스스로에게 관대(寬大)하려 하지 않습니다. 서울신문 구성원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었다거나 소유구조상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등의 변명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설령 열을 잘했다고 해도 하나의 잘못이 그대로 용서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성의 아픔이 클수록 재탄생하는 대한매일의 정론(正論)을 향하는 발걸음이 곧고 굳건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유당 정권의 나팔수로 검은 것을 희다고,흰 것을 검다고 한 부분에 대한 응징으로 4·19 민주혁명 당시 사옥이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며 언론의 본분을 벗어난 세월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며 참회하고자 합니다. 한 세기 한국언론사에 이토록 진솔하게 과거의 잘못을 고해(告解)한 언론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극적 식민지 역사 속에,그리고 권력의 부침(浮沈)속에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생존술과 상술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해오며 민주언론의 선봉을 자처하는 사례가 없지 않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한 참회를 재탄생하는 대한매일 앞날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합니다. 언론의 본분을 지키는 데 피와 땀을 흘림으로써 과거의 잘못들을 속죄코자 합니다. 서울신문은 이미 공익정론지 대한매일로서의 변신을 시작했습니다. 재경부 포항제철 한국방송공사가 대주주인 소유구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작과 경영에 일절 간여치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편집권 독립에 관한 노사(勞使)합의라는 공정보도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우리의 이같은 처절한 자성과 제도적 장치를 바탕으로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익(公益)정론지 대한매일로 재탄생할 것임을 국민과 독자앞에 다짐합니다. 날카로운 시선과 애정의 질책으로 대한매일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대한매일 노사 공동선언문 노조와 회사는 편집권을 존중한다. 회사는 편집권의 독립성을 침해 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 기자는 언론의 정도(正道)나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反)한 기사를 쓰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기자는 공정보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사는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점에 합의한다. 1.편집권은 회사의 사시(社是)와 독자의 알 권리에 반하는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다. 2.노조와 회사는 외부로부터의 지면제작 개입을 배제한다. 3.회사는 객관성과 타당성이 없는 편파적인 취재와 보도를 지시할 수 없다. 4.취재기자는 자신이 취재해 보도한 내용이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 됐을 때에는 데스크,편집자,국장단에 시청을 요구할 수 있다. 5.언론 자유를 위협사는 사태가 생기면 노사는 합심해서 이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한다. 6.회사는 기자에 대해 회사의 영업 및 수익활동 등 본연의 업무와는 직접관련없는 일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 영업 및 수익활동 등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7.노사는 이상의 내용을 성실하고도 적극적으로 지킨다. 1988년 10월19일 ◎남긴 功/재벌 비판·신문말 다듬기 성과/국가 성장기에 국민총의 결집/문화예술 활동 전폭 지원 서울신문이 진취적으로 남보다 앞서 계획하고 이루어낸 업적은 적지 않다. 특히 한글 전용과 신문말 다듬기를 연구하고 실천한 것은 한국 신문사상 선구적인 것이다. 1956년부터 60년까지 ‘한글판 서울신문’을 부분적으로 냈던 서울신문은 23돌 창간기념일인 68년 11월22일부터는 모든 기사와 제목을 한글로 썼다. 70년 2월14일 ‘신문말다듬기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신설했다. 위원회에는 국어학자와 문인 등 7명의 심의위원을 두어 신문말을 다듬거나 새로 만들었다. 심의위원은 정인승 허웅 한갑수 李應百 朴木月 柳周鉉 정재도씨였다. 신문 제작 방침이 수정돼 74년 1월4일 종전 체제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귀중한 성과를 남겼다. 위원회가 정리한 낱말은 1,600여개에이르며 71년 6월28일까지 33회에 걸쳐 지면에 연재됐다. 이때 만든 새 말 가운데 ‘사재기’처럼 널리 쓰이게 된 것이 많다. 요즘 신문들의 한글 전용 편집에도 긴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가 낸 ‘韓國新聞協會二十年’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서울신문이 힘쓴 이 말다듬기의 성과는 모든 신문의 신문제작현장 종사자들에게 많은 준용과 새로운 대응어를 발굴,사용해 나가게 하는 기폭제 구실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신문은 상업주의와 선정주의(煽情主義)에 휩쓸리지 않고 공익의 편에 서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재벌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를 비판하는 데 과감했다. 재벌에 약한 여느 신문과는 달랐다. 지난 10월9일과 10일 부산 동아대에서 열린 언론정보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박용원씨(동아대 신방과 석사과정)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신문은 재벌을 가장 많이 비판한 신문이다. 상업주의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서울신문은 과장,억지윤색,냄비열정의 폐풍을 벗어나 침착하게 보도하는 전통을 세웠다. 서울신문을 매개로해 수행된 공익사업은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 서울 세종로 한복판의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서울신문이 애국선열조상건립워원회를 조직하여 성금을 모아 세웠다. 서울신문사 주도로 1966년부터 72년까지 세운 애국선열의 동상은 15기에 이른다. 서울신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신각종도 서울신문의 노력으로 새해를 여는 울림을 계속하게 되었다. 금이 간 원래의 종을 대신할 새 종을 서울신문이 주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보도와 행사 개최를 통해 어느 신문보다도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열성적이었으며 농어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서울신문이 국가 성장기에 국민총의를 결집하고 국력을 집중하도록 하는 데에 큰 힘을 보탰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서울신문 53년의 공이 전적으로 무시될 수는 없다. ◎끼친 過/절대권력 정당화·비호로 점철/10월 유신 지지·군부정권 미화 급급/4·19혁명때 태평로 사옥 불타기도 대한매일로 새롭게 태어나는 서울신문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뼈아픈 족적을 남겼다. 1960년 4월19일 오후 2시. 성난 데모대는 태평로 사옥 앞으로 물밀듯이 몰려왔다. 먼저 취재차량에 불을 질렀고 이어 윤전실로 들이닥쳐 다시 불을 질렀다.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에 번졌다. 곧바로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데모대원들이 물탱크차를 빼앗아 다른 곳으로 몰고 사라져 버렸다. 자유당 李承晩 독재권력을 비호한 관제언론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최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선정한 한국언론의 대표적인 왜곡보도사례 50건 가운데는 서울신문의 보도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자유당 4捨5入 개헌 정당화(56년),10월 유신 지지(72년),全斗煥 권력 장악 정당화와 미화(81년),4·13 호헌(護憲)조치 옹호(87년) 등이다. 절대권력의 정당화에 앞장서고 민주화를 외면하거나 소극적이었던 언론의 선두로 꼽혀왔다. 일반 국민들에게 각인된 서울신문의 이미지는 항상 권력의 편에서 당시의 권력자를 옹호하는 전위대였다. 10월 유신때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와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해바라기 지식인’을 동원,유신대통령의 선출을 정당화하는 글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10·26사태후 80년 ‘서울의 봄’에 이르는 이른바 안개정국 시절엔 신군부 등장의 역사적 필연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5공의 全斗煥정권이 등장하자 “동천의 붉은 해가 불끈 솟았다.‥‥‥”며 그를 찬미하는 연재물을 게재했다.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도 “북괴방송,광주사태 집중적 선동” “광주시위 선동 남파간첩 검거” “공포의 유혈 무법천지” 등으로 ‘대공(對共)’문제와 ‘파괴성’을 권력의 편에 서서 부각시켰다. 해방후 53년에 걸쳐 점철되어온 서울신문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일관된 허물은 ‘권력의 대변지’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나온 시대는 역대 독재권력이 한국전쟁 이후 가열된 냉전시대의 안보논리를 그들의 체제유지논리로 위장한 시대이기도 했다.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시대를 같이 한 한국 제도권 언론의 곡필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울신문이 적어도 이같은 독재권력을 지지하는 선두에 섰다는 사실이다. 서울신문이 언론의 본분을 벗어났던 대목은 이밖에도 숱하게 많을 것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정치문제에서 집권여당의 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우고 상대적으로 야당의 입장을 폄하하는 지면을 제작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비판도 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정부의 정책적 입장을 심도있게 보도한다는 취지를 왜곡하여 절대권력자의 일방적인 논리를 전파하는 데만 급급했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제 대한매일은 서울신문의 지나온 역사를 깊이 자성하면서 철저한 자기비판을 토대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다.
  • 銃風·稅風 어물쩍 안된다(사설)

    金大中 대통령은 3일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사건과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고,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사건’으로 규정하고,국가기강과 안보를 위해 두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낼 것을 검찰에 강력히 요구했다. 우리는 두 사건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왔던 바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를 느낀다.대통령이 두 사건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고해서가 아니다.국세청 불법모금사건 관련 혐의로 법원의 영장이 발부된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이 검찰 소환을 거부한채 국정감사를 하고 있고,검찰이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음에도 야당이 고문의혹을 내세워 ‘조작설’을 들고 나와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을 동원해서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한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은 단순한 선거자금법 위반사건이 아니다.국가의 징세권을 악용해서 정권을 잡으려 한 파렴치하고도 반국가적인 국가기강문란 범죄다.지난 대선 당시 그 범죄에 가담했던 林采柱 전 국세청장이 구속돼 있는데도,이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이 미국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에 기대어 徐相穆 의원과 한나라당은 그 사건과 무관하다고 버티고 있다.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설혹 대선 당시에는 국세청 불법모금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그 자금이 대선에 사용된 사실이 밝혀진 이상 이제라도 국민에게 깊이 사과해야 옳다.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은 더더욱 그렇다.선거에 이기기 위해 판문점에서 남쪽을 향해 총격을 해달라고 적에게 요청한 행위는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한 중대한 반국가행위다.만에 하나,북쪽이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겠는가.생각만 해도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총격을 요청한 3인방은 대선 당시 李會昌 후보 캠프와 연락이 빈번했던 사람들이다.이들 3인방은 안기부에서 배후에 대해 자백을 하고는 검찰에 넘어와서는 그 진술을 부인했다.검찰은 기업체 책임자가 총격요청에 관해 그들과 협의한 사실을 시인했는데도,3인방이 그 자백을 부인한다며 배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물론 고문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바람에 검찰의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총풍(銃風)’수사는 그 죄질의 엄중함에 비춰 어정쩡하게 끝나서는 안된다.배후를 포함한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세풍’이나 ‘총풍’같은 범죄행위가 다시는 이땅에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그러나 검찰의 수사와 재판과정을 조용히 지켜볼 일이다.
  • 稅風·銃風 재수사/金 대통령의 속뜻

    ◎“國基 문란” 정치적 물타기에 쐐기/稅政혼란­안보 선거이용 ‘명맥한 범법’ 인식/野책임론 거론… 도덕 재무장 구태탈피 촉구 金大中 대통령이 ‘국세청 대선자금 불법모금비리’(稅風)와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銃風)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야당의 정치·도의적 책임을 강조한 것은 사건의 본질이 더이상 왜곡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국세청을 통한 대선자금 비리는 명백한 ‘세정 혼란’이고 총풍은 ‘안보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한 국기문란 행위’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이 전국 검사장 오찬에서 세풍을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정한 사건”으로,총풍을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로 규정한 것도 이같은 인식의 바탕에서 나온 언급인 셈이다. 金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다소 불만스런 시각을 드러낸 것도 이러한 판단의 연장으로 분석된다. “어떻게 4,5급 세사람이 할 수 있겠는가”“세사람이 조석으로 출입을 하고 여기저기 함께 방문도 했다”고 배후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즉 명백한 범법행위임이 분명한데,“검찰에서 부인했다는 이유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며 검찰의 철저하고 전면적인 수사를 촉구한 것이다. 金대통령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거론,야당 수뇌부를 직접 겨냥했다. 고문과 불법감청이라는 정치적 맞불작전으로 적당히 얼버무릴 사안이 아니라는 일종의 정치적 경고다. 그러면서도 金대통령은 검찰의 독립적인 수사권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검찰의 수사가 멈칫거리고,중간수사결과 또한 미흡한 만큼 증거보강 등 철저하고 전면적인 수사를 하라는 선에서 그쳤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검찰의 범법행위에 대한 수사관행의 잘못을 고치라는 통상적인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야당이 관계되어 있다고 해서 국정현안을 대통령이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번 지시로 金대통령의 정국인식의 단초를 읽을 수 있다. ‘도덕적 재무장’이 정치파트너로서 선결과제라는 주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야당의 도덕성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감으로써 새로운 정치구도와 관행을 만들어 내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 진정한 영·호남 화합을 위해/崔弘運 논설의원(대한포럼)

    우리 시대의 화두(話頭)는 단연 개혁과 민족화합이다.오늘의 국난(國難)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분명히 이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는 바로 우리 민족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각 분야에서 더디지만 개혁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화합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이 가운데서도 민족화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과제가 아닐 수 없다.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통한(痛恨)의 반세기를 보낸 것만 해도 억울한데 동·서로 일컬어지는 영남과 호남이 대립하고 충청지방까지 지역색을 드러내고 있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지배계층 권력 다툼의 산물 지역갈등의 뿌리를 찾자면 그 옛날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신라가 백제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쳤음에도 백제의 옛 땅인 한강지역을 차지했고 심지어 당(唐)나라와 연합,백제를 점령해 준식민지 정책을 펴면서 오늘의 영·호남 갈등은 시작된다.고려시대에도 호남지역에 대한 지배자들의 압박이 극심했다. 조선시대 역시 영남사림(嶺南士林)들은 권력집단에 속해 있었으나 호남은 유배지로 이용됐다.그러나 이런 불균형과 편견은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권력다툼이었을 뿐 피지배층인 평민들에게는 전혀 지역감정이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식민통치수단의 하나로 조선시대 양반들이 유포한 일방적인 편견과 감정을 일반화하고 더욱 조장하며 심화시켰다.이 편견과 감정이 지역패권주의로 발전하고 이토록 풀리지 않는 적대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60년대 이후다.朴正熙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에 의한 집권이라는 콤플렉스를 딛고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가경영을 꾀하기 시작했다.이는 곧바로 편중인사로 나타났다.1공화국때는 장·차관 244명 가운데 서울과 경기,경상도,전라도 출신이 각각 25.6%,18.8%,6.6%였으나 3·4공화국때는 각각 14%,30.3%,13.2%로 바뀐 사실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고 집권한 5공화국때의 편중인사는 더욱 심화돼 18%와 43.6%,9.6%가 되고 6공화국 들어서는 20%,41%,12.7%가 된다.문민정부가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죄·용서하는 마음 가져야 건국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이번에는 반대로 호남편중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이번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나라당 李海鳳 의원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해 국민회의측의 반박이 이어졌고 이에 앞서 야당 총재권한대행을 지낸 李基澤씨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두 지역의 골이 이렇게 깊게 팬 이유는 바로 정치권력의 야욕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의 다툼과는 달리 최근 두 지역의 자치단체나 민간인,학생 등의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것은 다행이며 반갑다.그러나 그 많은 행사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사죄하고 용서하는 자세가 앞서야 한다.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할 때 화해는 시작된다.미래는 그렇게 함께 손잡고 나아가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다.
  • 한통 음성다이얼 서비스/내달 2일부터 시범 실시

    한국통신은 30일 말로 전화를 거는 음성다이얼 서비스를 다음달 2일부터 시범실시한다고 밝혔다. 수신대상은 서울지역의 언론기관 정부부처 각구청 은행 주요병원 등 341개 단체및 법인이다.한국통신은 내년 상반기에 서울지역 상용서비스를 실시하고 99년말에는 전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용방법은 식별번호 ‘1577’을 누른 뒤 음성안내에 따라 원하는 단체및 법인명을 말하면 된다.
  • 美 역사학자 400명 “클린턴 탄핵 반대”

    ◎“하원 탄핵심의 결정 대통령직 권위 실추”/중간선거 막판 유세 민주당에 도움 될듯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미국의 저명 역사학자들이 클린턴 옹호에 나섰다. 션 윌렌츠 프린스턴 대학 교수등 미 전역의 역사학자 400여명은 28일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심의 결정은 “영원히 대통령직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위축시킬 것”이라며 탄핵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윌렌츠 교수와 존 F.케네디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근무한 역사학자 아서슐레진저 박사등은 “우리가 클린턴 대통령의 사적인 행동과 일련의 기만노력을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대통령에 가해진 혐의는(헌법)기초자들이 탄핵사유로 간주했던 것과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날 성명 발표는 윌렌츠 교수와 슐레진저 박사가 뜻을 같이 하는 역사학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이들의 동참을 얻어냄으로써 성사됐다.며칠 남지 않은 중간 선거유세에서 이들의 성명발표는 클린턴과 민주당에 원군이 될 전망이다.
  • 작은 책이 아름답다/판형·페이지수 많지않아 읽기 편해

    ◎‘사설이란’‘신혼여행의 사회학’ 등 주제 쉽게 이해하도록 정리 작은 책들이 눈에 띈다. 신혼여행의 사회학(문학과 지성사),사설이란(LG상남언론재단),여성미학의 사회사(사계절)… 이 책들은 변형 4·6배판으로 크기가 작으면서 200쪽이 채 안된다.지면이 한정된만큼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주제를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다뤄 독자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그만큼 가격도 헐하다. ‘신혼여행의 사회학’은 신혼여행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저자 권귀숙씨는,신혼부부는 모두에게 완전히 공개되는 결혼식을 통해 ‘전면’에 나서지만 신혼여행을 통해 신비스런 사적 공간인 ‘후면’으로 빠져 들어간다고 말한다.신혼여행은 성(性)과 성(聖)의 세계이다.즉 육체적 결합을 통해 부부라는 사회적 승인을 받고 나아가 신랑·신부는 왕·왕비와 같은 일종의 성(聖)의 세계로 들어간다.그러나 시부모 선물을 준비하는 등 돌아갈 채비를 하면서 성(聖)의 세계는 속(俗)으로 돌아간다. 김호준 전 서울신문 논설주간은 ‘사설이란’에서 매사에 첫 단추를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듯이 관심을 끄는 주제와 핵심을 찌르는 서두로 독자의 눈을 붙잡아야 좋은 사설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아울러 독자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논리적 수사적 긴박감을 늦추지 말아야 하며,영화팬들이 명화의 멋진 장면을 기억하듯이 독자들도 사설의 마지막 부분을 기억하기 때문에 사설의 끝 단락은 고갱이처럼 알차야 한다고 강조한다.저자는 이어 ▲사설을 쓰기전 기승전결의 멋진 설계도를 작성하고 ▲문장은 간명하고 쉬우며 ▲주장은 분명해야 한다고 덧붙인다.LG상남언론재단은 컴퓨터활용 보도론(추광영 지음),신문기사 제목달기(임종업 지음),오프 더 레코드(윤석홍 지음)등 언론관련 실용서적도 함께 냈다. 미술평론가 강성원씨는 ‘한국여성미학의 사회사’에서 개화기 이후 100여년간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어온 한국여성의 이미지를 사진·그림을 통해 문화사적으로 분석했다.사계절 기획팀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제에 간략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금오신화(솔), 인간과 기술(서광사),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열림원)도 이런 류데 속한다.
  • 지자체 중하위공직비리 뿌리뽑기 어떻게 하나

    ◎열심히 하려다 저지른 잘못 용서한다/모범공무원 찾아 포상·인사 우대한다/부산­내년초까지 6명씩 한조로 집중 감찰/광주­주민 감사청구제 법제화로 공개 감사/대전­시민 31명 옴부즈맨 투입 등 총력사정 지방정부가 한바탕 ‘부패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지방의 16개 광역 자치단체는 중하위직 공직비리를 뿌리뽑기 위해 자체적인 감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탓에 중하위 공무원들은 바싹 긴장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감사는 감사원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의 활동과는 별개이다. 옛날같으면 자체감사에서 비리공직자를 먼저 찾아내 보호하려는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발본색원의 의지가 강하게 읽혀진다. 사정 양상도 지자체별로 다르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마구잡이식의 감찰활동이 공무원사회의 반발과 복지부동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보고 창의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다 저지른 잘못은 과감히 용서해 준다는 방침이다. 또 모범공무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포상 및 인사 우대를 하는 등의 양면전술을 편다는 방침이다. ▷부산◁연말을 포함해 내년 초반까지 3단계로 나눠 공직비리를 근절하겠다는 계획이다. 1단계는 이달말까지,2단계는 11월16일부터 11월말까지,3단계는 12월17일부터 내년 1월5일까지이다. 6명씩의 요원이 한 조를 이뤄 감찰반을 각급 기관의 취약부서에 투입해 인허가 법규위반 및 특혜성 비리를 중심으로 집중감찰활동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광주◁ 비리공직자는 소속 부서에서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자체 감찰계획을 세워 감찰활동을 벌이도록 하고 있다. 비리의 온상이 될 만한 부서에 대해서는 특별관리를 하기로 했다. 주민감사청구제를 법제화하고 공개감사제를 도입하는 한편 인허가 관련 민원인을 대상으로 주민반응 측정제를 활용하기로 했다. 감찰결과 비리에 연루된 공무원은 반드시 고발해 일벌백계하기로 했다. ▷대전◁ 대전시는 시민들의 신고기능과 병행한다. 31명의 시민 옴부즈맨이 투입되며 신문고(전화번호 254­3336)등을 통해 공직비리 고발을 받는다. 특히 팩스(250­2049),인터넷,PC통신(천리안:GO TJ FORUM,나우누리:GO TJCITY)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비리를 접수받는다. 비리공무원에 대한 문책기준도 강화해 금품수수는 중징계 또는 검찰에 고발하고, 훈계 정도에 그쳤던 음주운전은 경징계 이상,중·경징계를 받았던 도박사범은 중징계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금품수수의 비위사실이 2회 적발된 공무원은 파면·해임조치된다. ▷울산◁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암행감찰과 업소주변의 불만을 수집하는 등의 두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공무원 월급에 걸맞지 않게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공무원을 찾고 있다. 고급 술집을 드나들거나 상습 도박을 하는 공무원일수록 비리와 연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공무원들의 사생활을 집중 파악하고 있다. 최근들어 인허가를 받은 업소의 주인을 대상으로 공무원들이 금품요구를 했거나 불이익을 강요당한 사례가 있는 지에 대해서도 탐문하고 있다. ▷경기◁ 연말까지 2단계로 나눠 산하기관,사업소,시·군,소방서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감찰활동을 벌인다.1단계는 다음달 말까지 건축 교통 부동산 보건 환경 공사 소방 세무 납품 인사 등의 9개 분야의 구조적인 비리를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12월 들어서는 연말연시 분위기에 편승한 복무기강 해이,불법·무질서 방치행위,민원불편 사항 등을 중점 단속할 예정이다. ▷강원◁ PC통신에 ‘도지사에게 바란다’는 공무원 부조리 신고방(하이텔 33­2­11­5­11)을 설치했다. 직무와 관련된 금품 수수나 향응,직권남용행위 등을 접수받고 있다. 1개 반에 7명의 요원으로 구성된 기동감찰반을 구성해 공무원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감찰을 펴고 있다. 이와 함께 한 자리에 2년 이상 근무한 공직자의 순환 근무를 제도화하기로 했다. ▷충북◁ 다음달 9일부터 21일까지 청주시를 시작으로 행정감사에 들어가고 이어 충주시,청원군 등의 순으로 공직 비리를 캐낸다. 위생 환경 등의 6대 분야에 대해서는 감사관들이 1건 이상씩 비리척결을 위한 제도개선 및 규제완화 대상업무를 발굴해 내도록 했다. 인허가 민원인들을 대상으로 친절 공정 신속 등의 16개 항목으로 된 설문 조사를 실시해 불친절 공무원을 찾아내 인사조치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한 곳에 오래된 공무원들이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시·군간 인사 교류를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충남◁ 공직비리 근절책으로 ‘중하위 공직비리 척결을 위한 공직사회 청정대책’을 만들었으며 3명씩 2개반의 기동감사반을 구성,무기한 활동에 들어갔다. 관할 16개 시·군과 사업소 및 출장소 등이 감찰대상이다. 민원처리제의 시행과 공공근로사업 추진실태 등도 점검 대상이다.‘주민위주의 친절봉사 자세를 갖춘다’‘복지부동 등의 4대악을 일소하고 열심히 일한다’‘금품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는 등의 5대 실천자세를 담은 서약서를 제작해 공무원들의 서약을 받았다. ▷전북◁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무원 부조리 신고방’을 설치해 공무원들의 금품수수행위와 향응제공,직권남용 등에 대해 제보를 받으면서 비리척결에 들어갔다. 인허가 관련 민원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비리 등이 발견되면 직무고발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전남◁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許京萬 지사는 각 실국별로 비리유형과 근절대책을 수립해 제출하도록 했다. 이렇게 만든 ‘부패보고서’를 바탕으로 각 업무별 특별감시활동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시군별로는 기관별로 책임사정 원칙에 따라 기관장 책임아래 모든 비리를 자율적으로 없애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위생 환경 소방 등의 대민 취약분야를 10개로 확대해 중점관리한다는 것이다. ▷경북◁ 최근 검찰수사에서 김천시 예산담당 일부 공무원이 읍면사무소에 예산을 허위로 배정한뒤 이를 회수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횡령한 것으로 밝혀진 경북은 다음달부터 특별감찰반 가동에 들어간다. 감찰반에는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을 보강해 읍면 사무소의 예산사용 내역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경남◁ 창원·김해·양산시 등 개발사업이 한창 진행중인 지역의 공무원을 대상으로는 맨투맨 식의 감찰활동을 벌인다. 공무원들의 평소 씀씀이에 대한 조사도 병행한다. 법령에 근거하지 않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법에 정해진 규제도 민원인 중심으로 완화하는 등의 제도개선으로 공직비리를 사전에 막는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감찰활동과는 별도로 부서별로 규제완화작업이 한창이다. 특히 금품수수나 부실공사를 방치했을 때에는 경중을 따져 징계범위를 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상급자에 대한 연대책임을 묻도록 한다는 것이다.
  • ‘목포의 눈물’ 연극으로 본다/22일부터 호암아트홀서

    ◎용서·희생·끈끈한 인간애/죽음 앞둔 한 여인의 엉킨 삶/진한 호남사투리 감동 더해 “사공의 뱃노래∼”로 시작되는 ‘목포의 눈물’은 온국민의 애창곡중의 하나. 한없이 갑갑하고 힘들던 시절 그 가락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됐던 노래다. 젊은 작가 장우재와 연출가 기국서가 우리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배어있는 이 노래의 이미지와 무게를 실은 연극 ‘목포의 눈물’을 제작한다. 22일∼11월14일(월∼목 오후 7시30분,금∼일 오후 3시·7시)서울 호암아트홀. 가요의 이미지를 극화한 연극 ‘목포의 눈물’은 죽음을 앞둔 한 여인이 얼키고 설킨 자신의 한평생을 회상하면서 참회와 용서로 편안함을 찾는다는 다소 신파조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 안에 녹아있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에서 진정한 인간의지를 엿보고 삶의 깊은 곳에서 묻어나는 참된 사랑을 감지할 수 있는 무대다. 목포사람들이 실제로 이야기에 자주 올리는 미친 기생 옥단 등 친근한 등 장인물의 설정과 다큐멘터리식 회고방식의 접목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일대기 형식의 극에탄탄한 짜임새와 함께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또 올해 73세인 원로배우 백성희와 연기파 김성옥 등 쟁쟁한 배우들의 노련함과 이들이 구사하는 진한 호남사투리가 극적 재미를 더해주면서 정통연극의 참맛을 안겨준다. 여기에 무대를 뜨겁게 태울 것같은 가뭄과 억수같은 비 등 장중하고 사실적인 무대효과를 가미,시각적 볼거리도 제공한다.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용서와 희생,그리고 그 속에서 묻어나는 끈끈한 인간애가 바로 우리의 답답하고 막힌 마음을 시원하게 뚫고 나아가 희망의 메시지를 품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작가) “거창한 교훈이나 외형적 효과보다는 삶의 깊숙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랑을 말하고 싶다”(연출가) 실험극으로 낯익은 기국서의 재기에,신인 극작가 장우재의 감칠맛나는 대사,그리고 선굵은 배우 백성희 김성옥의 원숙한 연기가 한데 버무려져 토속적이고 질박한 무대를 만들어낼것으로 한껏 기대를 모은다. 극단 76.(02)751­9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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