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용서
    2026-03-31
    검색기록 지우기
  • 여신도
    2026-03-31
    검색기록 지우기
  • 조지아
    2026-03-31
    검색기록 지우기
  • 영입
    2026-03-31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3-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443
  • “한나라의 유시민” 포화맞은 원희룡

    “한나라의 유시민” 포화맞은 원희룡

    “어제 원희룡 최고위원이 당 대표가 ‘이념 병’에 걸렸다고 인신 공격을 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도를 넘어섰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원 최고위원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그가 ‘감정의 제방’을 무너뜨린 것은 원 최고위원이 지난 3일자 주간지 인터뷰에서 사학법투쟁을 국가정체성과 연계시킨 박 대표에 대해 “편협한 국가정체성 이념에 비춰 자기 틀에 안 맞으면 전부 빨갱이로 본다.”며 “‘병(病)’이라고 생각한다.”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이날 작심한 듯 “원 최고위원은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생각을 대변해 왔는데 한나라당과 당 대표는 그렇게 잘못했고 열린우리당은 다 잘했다는 얘기냐?”고 꼬집은 뒤 “당이 아무리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를 신호탄으로 당 중진들도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사학법무효화투쟁본부장인 이규택 최고위원은 “온 당원이 투쟁하는 운동에 대해 찬물을 끼얹고 등에 칼을 꽂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내가 나가든지 원 최고위원이 나가든지 선택해 달라.”며 맹비난했다. 이어 열린 비공개회의에서 김영선 최고위원, 최연희 사무총장 등 중진 의원들이 ‘날선 비판’에 합류했다. 당내 ‘원조보수’격인 김용갑 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원 의원이야말로 ‘습관성 해당행위 중증질환자’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한마디로 ‘한나라당의 유시민’이며 지능적 좌파로서 당 정체성에 동의할 수 없다면 당을 떠나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이에 원 최고위원은 “표현이 과격한 점은 사과하겠다.”면서도 “장외투쟁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 당론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소수 의견을 밝히는 것이 해당 행위인지 밝혀야 하고 만약 그렇다면 징계를 달게 받겠다.”고 맞섰다. 1시간여의 격론 끝에 중진 의원들의 중재로 원 최고위원은 회의 뒤 박 대표를 찾아가 ‘과격한 표현’에 대해 거듭 사과를 했고 박 대표가 “당의 이념과 노선을 향해 잘 해나가자.”고 응답하면서 ‘외형상’ 파문은 가라앉았다. 한편 손학규 경기지사는 이 소식을 접한 뒤 “격렬하게 정치투쟁을 하더라도 다른 입장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 정치 역량이고 정당의 능력”이라며 “원 최고위원의 발언이 도를 넘어선 것은 한나라당을 위해 도움이 안 되지만 그런 생기있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야당이고 미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청문회서 보자” 野와 협공태세

    “청문회서 보자” 野와 협공태세

    숱한 논란과 격렬한 반대, 심지어는 청와대를 향한 읍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의원이 끝내 보건복지부장관에 내정된 뒤 정치권 관심은 이제 ‘인사청문회’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대통령도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발휘했으니 ‘유시민 카드’에 부정적인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의 ‘고유 업무’인 인사청문회로 ‘한판 붙어보겠다.’는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유 내정자의 ‘친정’인 열린우리당은 물론이고, 한달 남짓 길거리 투쟁을 벌이는 한나라당 역시 ‘서면질의’를 해서라도 철저히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우리+민노=11명… 과반은 확보 유 내정자 인사청문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리게 된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10명)과 이미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민주노동당(1명)만으로도 복지위 전체 20명의 과반이 돼 청문회 개최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은 민주당의 동참도 적극 독려할 계획이다. 청문회에서는 유 내정자를 향한 여권 다수의 격정적인 반발이 고스란히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예로, 그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MBC PD수첩팀을 향해 “참여정부 들어서 언론 자유가 너무 만발해져 냄새가 날 정도”라고 공격한 적이 있다. 한 복지위원은 “복지부 업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부분인데 이렇게 경솔하게 말했던 전력이 있으니 이런 것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벼운 말만으로 장관 잘하기 어려워” 복지위의 열린우리당 이기우 간사는 “유 내정자는 그동안 현안이 생기면 가벼운 말 한마디로 처신해 왔는데, 수많은 직능단체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복지부장관직에 맞는지 모르겠다.”면서 “정치는 말로 하지만, 행정은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짚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양극화 해소와 저출산 극복처럼 올해 가장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를 유 내정자가 해낼 수 있는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유 내정자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정동영계는 용서할 수 없다.”며 퍼부었던 독설을 기억하는 의원들은 “진정한 개혁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검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여당 복지위원 가운데 문병호·김선미 의원은 4일 청와대의 ‘유시민 입각 발표’에 반발해 유례없는 성명서까지 발표한 초·재선 18명에 포함돼 있다. 한판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나라 “서면질의 통해 따질것” 한나라당은 장외투쟁 중이어서 청문회에 직접 참석은 않겠지만, ‘서면질의’를 통해서라도 따질 것은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박재완 간사는 “‘공격적인 스터디’를 통해 정책수행 능력은 물론이고, 도덕성 문제도 제기할 것”이라면서 “서면질의를 받아보고 자질이 없다고 판단되면 임명철회 성명서나 건의안을 한나라당 명의로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neoPSAT와 함께하는 실전강좌] 언어논리 영역

    주장에 부합하는 사례의 유추 ●유형가이드 유추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원리에 있어 유사한 상황과 경우를 추론하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유추는 크게 일반화된 진술로,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추론하는 경우와 구체적인 진술로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일반화된 명제를 추론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예시유형 주장에 부합하는 사례의 유추란 상황의 유사성과 원리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주어진 정보와 유사한 사례를 추리하는 문제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문제에서는 상황이나 원리의 유사성 혹은 공통성을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해법 ·제시문의 내용을 통해 주어진 정보의 특징을 파악한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 담긴 세부적인 정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한다. ·정보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유사성 여부를 판단한다. ●문제 다음 A와 B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에 가장 부합하지 않는 사례는? A.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원한(르쌍티망·ressentiment) 자체가 창조적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 이 원한은 실제적인 반응과 행위에 의한 반응을 포기하고, 오로지 상상의 복수를 통해서만 스스로 해가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원한이다. 고귀한 모든 도덕이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다른 것’,‘자기가 아닌 것’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인 것이다. 노예 도덕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먼저 대립하는 어떤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필요하다.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일반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노예 도덕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반작용이다. B. 나는 아무것도 보지는 못하지만, 그 만큼 더 잘 듣습니다. 구석구석에서 조심스럽고 음험한 낮은 소곤거림과 귓속말이 들려옵니다. 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소리의 울림마다 사탕처럼 달콤한 부드러움이 있지요. 약한 것을 기만하여 공적(公敵)으로 바꾸려고 하지요.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은 ‘선’으로 바뀝니다. 불안한 천박함은 ‘겸허’로 바뀝니다.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순종’으로 바뀝니다. 약자의 비공격성, 약자가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비겁함 자체, 그가 문 앞에 서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것은 여기에서 ‘인내’라는 미명이 되고, 또한 미덕으로 불립니다. 복수할 수 없는 것이 복수하고자 하지 않는 것으로 불리고, 심지어 용서라고 불리기까지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우리만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1)‘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먼저 자신을 위해서 노력한 다음, 그 여유와 힘이 남아 있을 때 사람은 타인을 돕는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도덕적 본성을 거스르는 논리이다. (2)민중주의자들은 흔히 민중들은 힘없고 착한 사람들이며, 민중들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은 민중이 행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민중을 희생자로 만든 사회가 구속한 결과라고 역설한다. 나아가 민중이 주인 되는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선동한다. (3)길을 가던 여우는 포도 넝쿨을 발견한다. 머리 위를 쳐다보니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손을 들고 뛰어 봐도 포도를 딸 수 없게 된 여우는 ‘아마도 저 포도는 신포도 일 것이야.’라고 이야기한다. (4)(뉴욕타임스)는 ‘붉은 위협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슬람은 존재하고 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 아래 번뜩이며 노려보는 무슬림의 거대한 눈동자만이 그려진 포스터를 통해 냉전이 종결된 이후 미국 국민의 상상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적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5)(무정)에서 이 형식은 민족을 위한 대의를 위해 교육사업을 펼친다. 조실부모하여 천덕꾸러기로 자라난 그는 돈도 학식도 부족하지만 세상에 대하여 품었던 분노를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적 행동을 통해 정신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해설 지문은 원한, 즉 ‘르쌍티망’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르쌍티망의 특성을 일반화하면 강자에 대한 약자의 분노가 내부로 향해 울적해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즉, 노예의 도덕은 자신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고, 삶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의 열등감에 대한 보상으로써 자신의 무력감을 ‘선’으로, 천박함을 ‘겸허’로 바꾸는 가치의 전도에 기반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첫째 단락에서 말하고 있는 바처럼 상상의 복수를 위해 먼저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자기가 아닌 것’을 창조하는 이분법적 대립 체계에 기반해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1)은 첫째 단락에서 말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고귀한 모든 도덕의 원리’에 반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것으로 지문의 주장에 부합하는 내용이다.(2),(3),(5)는 현실적으로 약자의 처한 입장의 행위체들(민중주의자, 여우, 이형식)이 자신의 약함을 위장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선한 것으로 기만적으로 합리화하는 논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4)의 경우 대립의 구도가 미국과 이슬람이고, 이런 대립의 구도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현실적인 약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문에서 제시한 르쌍티망의 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 답 (4) 출제:김병구(숙명여대 교수·국문학 박사)
  • 도서 구입비는 ‘제로 수준’

    도서 구입비는 ‘제로 수준’

    한국인들은 책을 사는 데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전국 가구의 서적·인쇄물 지출액은 가구당 월 평균 1만 397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월 평균 소비지출액인 204만 8902원의 0.5% 수준이다. 2·4분기의 가구당 월 평균 9880원보다는 조금 늘었지만 지난 2003년 1·4분기의 1만 2591원보다는 2000원가량 줄었다. ‘서적·인쇄물 지출액’에는 신문과 잡지, 그림·그림책, 교양서적 등이 포함된다. 학습용 교재와 참고서는 제외된다. 신문구독료가 보통 한달에 1만 2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인들의 책 구입비는 거의 ‘제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생산직 가구의 월 평균 서적·인쇄물 지출액은 5260원으로 사무직 가구 1만 9951의 4분의1 수준에 머물렀으며 무직 가구(7213원)보다도 적었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 나라 사람들의 독서 시간은 세계에서 거의 ‘꼴찌’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다국적 여론조사기관 NOP월드가 지난해 6월 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주간 독서시간을 조사한 결과 한국 사람은 주당 3.1시간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30개국 평균인 6.5시간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세계 최고의 책벌레인 인도인의 주 평균 10.7시간의 3분의1 수준에 그쳤다. 책 등을 사는 데 인색한 것 만큼이나 책을 읽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적은 셈이다. 또 취업경쟁이 워낙 심하다보니 책을 읽더라도 경영·경제, 처세술·자기계발, 재테크 등 실용서 위주로 읽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외모를 꾸미기 위한 이미용·장신구비는 같은 기간 월 평균 5만 9611원으로 서적·인쇄물의 5.7배에 달했다. 외식비는 월평균 24만 5807원으로 서적·인쇄물의 23.6배였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메가트렌드 2010/패트리셔 애버딘 지음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메가트렌드(Megatrend)가 분명 존재한다. 이런 메가트렌드를 제대로 읽어 낸다면 다가오는 미래사회를 조금이나마 내다볼 수 있지 않을까. 메가트렌드란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개인, 사회, 세계적 삶을 형성하는 크고 중요한 방향성을 의미한다. ‘메가트렌드 2010’(패트리셔 애버딘 지음, 윤여중 옮김, 청림펴냄)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메가트렌드를 끄집어 내고 있다. ●깨어있는 자본주의 저자인 미래학자 패트리셔 애버딘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기업을 중심으로 그 실상을 파헤쳐 미래에 다가가고 있다. 미국 기업체의 사원으로부터 조직에 이르기까지 영성(spirit)의 힘으로 운영되는 기업 활동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기업에 국한된 변화가 아니다. 기업이라는 변화의 큰 줄기를 통해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21세기 사회는 ‘깨어있는’ 자본주의로 전망한다. 현재와는 다른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사회·경제적 트렌드뿐만 아니라 영적인 트렌드 즉 내적인 트렌드가 자본주의를 새롭게 변신시킨다는 설명이다. ●영혼이 있는 기업의 승리 그는 현시대의 메가트렌드를 크게 7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종교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영성의 발견이다. 명상과 요가가 뜨고, 성스러운 존재가 비즈니스로 흘러 들어간다. 영적인 CEO들이 기업을 변화 시킨다. 또 새로운 자본주의의 탄생을 예고한다. 지금까지 자본이 단순히 이익에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자본은 주주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까지 배려하는 깨어있는 자본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벅스. 자신의 상표를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품질과 환경등을 상승시키는 커피 재배업자들을 우수 공업자로 인정한다. 이어 고액 연봉을 받는 카리스마적인 CEO들이 빠르게 사라지며 중간 계층이 부상한다. 지난 20세기는 중간관리자를 불필요한 존재로 보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중간관리자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한다. 특히 영혼이 있는 기업의 승리를 강조한다. 기업이 이윤만을 추구한 결과 도덕성을 상실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되면서 많은 이들이 영적 가치의 추구를 통해 기업에 희망을 불어 넣고 있다고 밝힌다. 각 기업들이 자체적인 영성 센터나 영적 리더들을 기업 내부에 기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소비자도 바뀐다. 단순히 편리함을 추구하던 이들이 이제는 사회, 환경, 나아가 세계를 고려하는 깨어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핵심세력이 된다는 설명이다. 요가, 명상, 용서프로젝트, 비전 퀘스트등 다양한 테크닉들도 메가트렌드의 한 흐름이다. 마지막으로 꼽은 메가트렌드는 바로 사회책임투자 시대의 도래다. 기업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치를 두고 있는 곳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1만 5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연말특수 소비 살아난다

    연말 소비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최근 3년간 일시적인 부양책으로 소비심리에 대한 ‘착시현상’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올 연말 소비는 자연스러운 심리 변화에 따른 회복 조짐이어서 유통업계를 뺀 다른 업종에서도 ‘연말 특수’란 말이 오르내린다. 특히 일부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의 ‘미소’는 중산층을 넘어 서민층의 소비심리도 회복되고 있다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1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30% 가량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마트 등 할인점도 10% 이상의 매출 증가세를 보여 예년과 다른 분위기다. 더욱 주목할 점은 경기 호황을 알리는 상품군들의 회복세다. 그동안 백화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던 신사복 매장이 지난달 중순 이후 매출 신장세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홈쇼핑업계도 이와 비슷하다.CJ홈쇼핑 매출 분석에 따르면 12월 주간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평균 25% 이상 늘었다. 첫주가 25.8%, 둘째주 25.0%, 셋째주는 29.6%씩 각각 증가했다. 실물경기 종사자들은 이같은 소비심리 회복에 대해 사회 전반의 심리적인 안정이 연말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에 비해 걱정 거리, 즉 불확실성이 없어지면서 중산층에서 지갑을 열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주식 대박’도 소비심리 지피기에 한몫을 했다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유통외에도 출판, 음식업종 등에서도 ‘연말 특수’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권 중·고급 한정식집들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2∼3배 급증하고 있으며, 재테크 등 실용서적을 내는 출판사도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연말 경기를 놓고 중산층의 소비심리 회복보다 부자들의 씀씀이가 더 커지면서 나타난 또다른 ‘착시현상’으로 보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달 매출은 16%, 구매객수는 2% 정도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부자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기홍 주현진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5년 빛낸 Made in KOREA] (5)통신

    [2005년 빛낸 Made in KOREA] (5)통신

    통신업계의 2005년은 의미가 큰 한해였다.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의 국제표준 채택과 국내 기술진이 개발한 휴대용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의 세계 최초 상용서비스 시작을 들 수 있다. 이들 서비스는 우리가 원천기술을 가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제 통신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기술 주도권을 가진 몇 안 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기술 종속국에서 탈피할 수 있는 서광을 비춘 것이다. 조만간 세계 각국이 이들 기술과 서비스를 앞다퉈 도입할 것으로 보여 ‘로열티 대박’도 기대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의 제조와 서비스 분야에서 강국이다. 하지만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국내 제조업체들은 CDMA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퀄컴에 엄청난 특허료를 내고 있다. 내수용은 판매가격의 5.25%, 수출은 5.75%다. 특허료 계약이 판매제품 1개당 매기는 방식이어서 많이 팔릴수록, 매출이 증가할수록 특허료가 많이 나간다. 이렇게 해서 지난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동안 2조 5000억원의 로열티를 지급했다. 올해를 포함하면 3조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해외에서도 상용화되는 와이브로 이달 초 와이브로가 국제표준으로 승인받은 직후 낭보가 찾아왔다. 삼성전자가 베네수엘라 케이블TV 회사인 옴니비전과 와이브로 상용화를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 이에 따라 내년 4월 국내에서의 와이브로 상용화 몇 달후엔 해외에서도 와이브로가 상용 서비스된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 휴대전화는 CDMA 방식이 아니어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내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시연을 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 10개국 이상에 추가 진출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와이브로는 정보통신부 주도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연구원과 기업이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직교주파수분할다중(OFDM) 기술을 현실에 적용시킨 기술이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열어갈 차세대 서비스인 와이브로의 전송속도는 최대 하향 20Mbps, 상향 6Mbps로 36면짜리 신문 1부를 0.7초,MP3 10곡은 24초에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와이브로의 상당수 기술은 우리 기업에 있다. 삼성전자·LG전자·KT·포스데이타·SK텔레콤 등 국내 IT 대기업 대부분이 관련 특허권을 갖고 있다.ETRI는 와이브로가 내년에 5억달러에서 2010년 42억달러로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에 처음 선보이는 기술이어서 각국의 도입 여부에 따라 시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형 DMB 세계로… 올해 위성과 지상파 DMB가 세계 최초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의 DMB 기술의 유럽 수출이 한층 활기를 띠게 됐다. 독일·프랑스·멕시코 등에 이어 영국도 지난 지상파 DMB 실험방송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화 물살을 탔다. 특히 독일은 내년 6월 월드컵에서 한국형 DMB 기술로 시험중계 서비스하기로 했다.1월부터 실험방송에 들어간다. 지상파 DMB는 기존 TV 주파수의 여유 대역을 활용해 이동 중에도 휴대전화 등으로 TV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이동방송기술로,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됐다. 유럽의 디지털오디오방송(DAB) 표준을 기초로 해서 대용량 멀티미디어 동영상을 방송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표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난 5월 유럽정보통신표준기구인 ETSI에서 유럽표준으로 채택돼 활성화의 신호탄이 올랐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성탄주말 국내외 빅매치 “코트의 산타는 나”

    화해와 용서, 사랑과 축복이 온누리를 밝히는 크리스마스에도 승부의 세계에 쉼표는 없다. 특히 이번 성탄 주말 국내·외 프로배구·프로농구 코트에는 혹한의 날씨를 잠시나마 잊게 해줄 라이벌 빅매치들이 잇따른다. ■ NBA…샤킬-코비 리턴매치 미국프로농구(NBA)에선 동료에서 원수로 변한 샤킬 오닐(마이애미 히트)과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가 2년 연속 크리스마스(한국시간 26일 새벽 5시) 혈투를 벌인다. 지난해 성탄 첫 대결은 98년 이후 NBA 최고 시청률(8.0%)을 기록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당시 브라이언트가 42점을 쏟아부으며 맹활약했지만,24점 11리바운드로 튼실하게 백보드를 장악한 오닐의 마이애미가 104-102로 승리. 이들은 8시즌 동안 레이커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3차례의 우승을 일궜지만, 내내 불협화음을 빚은 끝에 오닐이 지난 시즌 마이애미로 둥지를 옮기면서 불편한 동거를 마감했다. 이후 성폭행 혐의로 법정을 들락거리던 브라이언트가 “오닐도 여자 문제가 복잡하다.”며 입방정을 떤 탓에 둘은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7차전 명승부를 펼쳤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도 또한번 자웅을 겨룬다. ■ 프로배구 V-리그…삼성-현대 10년앙숙프로배구 V-리그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가 25일 오후 2시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리턴매치를 벌인다. 지난 21일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무려 8개의 서브에이스를 꽂아 넣으며 한경기 최다 기록을 갈아치운 용병 숀 루니(현대)와 부상을 털고 일어난 공격성공률 선두 이형두(삼성)의 ‘레프트 대결’이 관건. 지난 11일 시즌 첫 맞대결에서 1-3으로 패한 현대는 이번 홈경기만큼은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정상 정복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1차전에선 높이로 네트를 장악하는 이선규와 신경수가 빠져 뼈아픈 패배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베스트멤버를 총동원, 승리를 낚는다는 계산이다. 용병 농사에 실패했지만 삼성의 저력은 여전하다. 최태웅의 정교한 토스워크가 믿음직하고 끈질긴 수비도 지난해 못지않다. 네트 좌우의 이형두와 장병철의 부담을 덜어줄 신진식, 김세진의 투입 시기가 변수다. ■ 여자프로농구…전주원-정선민 지존경쟁25일 열리는 안산에서 열리는 ‘천재가드’ 전주원(신한은행)과 ‘연봉퀸’ 정선민(국민은행)의 여자프로농구 시즌 첫 대결도 흥미롭다. 대표팀 주전 포인트가드와 센터로 10년 가까이 한국 여자농구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이들은 지난 여름리그 때는 2승2패로 팽팽히 맞섰지만, 플레이오프에선 2승1패로 전주원이 웃었다. 남자 프로농구의 성탄 선물은 단독선두 동부가 준비했다. 우선 0.5게임차의 살얼음판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2위 모비스와 24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맞붙는다. 지난 시즌 4승2패로 앞섰지만 올들어 2연패를 당해 자존심을 구긴 동부는 “시즌 첫 승”, 모비스는 “3연승”을 외친다. 25일 원주 동부-KCC전도 농구팬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한 ‘빅카드’. 두 팀은 지난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나 한 차례 씩 우승을 나눠 가진 숙적이다. 최병규 임일영기자 cbk91065@seoul.co.kr
  • 황우석교수 교수직 사퇴

    황우석교수 교수직 사퇴

    황우석 교수는 23일 논문 조작에 책임을 지고 서울대에 교수직 사퇴서를 냈다. 그러나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 기술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고수했다. 학교측은 조사위원회 활동이 끝날 때까지 사표를 수리하지 않기로 했다. 황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대 수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더할 수 없는 충격과 실망을 안겨드린 데 대해 만분의 일이라도 사죄하는 심정으로 지금 이 시간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대한민국의 기술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국민 여러분들이 반드시 이를 확인할 것이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날 황 교수는 오전 모처에서 측근들과 회의를 연 뒤 서울대 수의대에 들러 연구원 및 수의대 관계자들을 만난 뒤 침통한 목소리로 기자들 앞에 섰다. 일부 수의대생들은 황 교수가 발언을 하는 동안 울먹였고, 흥분한 학생들은 방송카메라를 밀치는 등 취재진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서울대 교수협의회 장호완 회장은 23일 논문조작 관련자들에 대한 파면을 촉구했다. 장 회장은 “이번 사건은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약자를 대상으로 한 학문적 조작과 사기란 점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면서 “서울대는 황 교수와 조작에 관여한 자들까지 파면하고 학계에서 영구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수의대 교수들도 이날 ‘존경하는 교수님들과 구성원 여러분들게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 성명을 내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대학교수가 연구윤리를 어기고 연구결과마저 조작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신입생 거부 철회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서울지역 201개 사립학교 교사들은 22일 “사학재단은 신입생 모집 거부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교사들이 앞장서 학교를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교사들은 사학재단의 폐교와 신입생 모집 중지 방침에 결코 동의할 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면서 “교육청은 신입생 배정거부·폐교를 선언한 학교·이사장·교장의 명단을 공개하고 임원승인을 취소하며, 사립중고교교장회와 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를 업무방해죄로 형사 고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신입생 배정 거부와 폐교를 강행한다면 이사장과 학교장에 대한 법정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학법에 대한 갈등을 생산적인 논의로 해결해야 한다.”며 사립학교의 자율성·투명성을 평가하는 기구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개정 사학법은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규제한 부분이 포함돼 있고 반면 반드시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누락돼 있어 ‘절반의 개정’”이라고 평가하면서 “특히 학교장 임기 제한과 이사장 직계의 학교장 취임 금지는 사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지나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진보 종교단체 ‘사학법 지지’ 확산 사립교장회 ‘신입생 거부’ 재확인

    새 사립학교법에 종교계 전반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진보적인 종교·교사 관련 단체들이 잇따라 사학법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같은 법에 대해 사학법인연합회 등은 오는 28일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실천불교 전국승가회 등 천주교와 불교, 원불교, 기독교 소속 11개 종교단체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학법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사학법 개정 지지 및 사학 폐교 반대 범종교단체 대표자선언’을 통해 “사학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학교가 민주화되기를 바라는 학생과 학부모, 온 국민의 바람과 함께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와 교육의 의무”라며 “개정 내용은 상식적인 수준으로, 종교인이 먼저 나서서 도입하자고 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친인척 이사 수를 줄이고 이사회 예·결산, 신임 교사 채용을 공개하자는 것이 종교의 자유와 건학 이념을 해친다는 일부 종교 사학재단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학생 교육권을 볼모로 한 학교 폐교와 신입생 모집중지 발언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14개 기독교 교사단체로 구성된 사단법인 좋은교사운동도 이날 오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방형 이사의 도입으로 건학 이념이 훼손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바람직한 학교 경영을 통해 건학 이념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사학에 대해서는 “학교교회는 사학법 개정의 빌미가 됐던 일부 기독교 사학의 비리를 기독교 전체의 허물로 받아들여 잘못을 빌어야 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일부 기독교 학교의 허물로 고통을 받았던 많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최소한의 결정으로 새 사학법을 수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대학사립중고교장회 등은 오는 28일 대학과 전문대, 중·고교, 종교계 학교를 대표하는 사립학교 이사장 4명을 청구인으로 사학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 청구인측 대리인인 이석연 변호사는 “개방형 이사제와 학교법인의 임원 취임승인을 취소하도록 한 조항 등에 위헌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영식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은 이날 오전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조용기 회장을 만나 개정 사학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자제를 당부할 계획이었으나 조 회장측이 ‘약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이도운특파원 워싱턴 저널] 조작지시 가능한 상명하복 과학계

    ‘흥분한 아버지, 억울한 아내, 울먹이는 아이들… 체념한듯 담담한 김선종 연구원’ 16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 피츠버그대 북쪽 대학가인 센터애비뉴의 오래된 아파트로 한국 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아파트 7층에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함께 줄기세포를 연구하다가 지난 8월 피츠버그 의대의 제럴드 섀튼 박사 연구실로 파견된 김선종 연구원이 살고 있다. 워싱턴과 서울에서 날아온 기자들을 맞는 김 연구원의 얼굴 표정에는 복잡한 심정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김 연구원뿐만 아니라 아버지 김주철씨, 부인, 두 자녀도 긴장과 피로감에 뒤범벅된 분위기였다. 방이 2개인 아파트의 거실 겸 식당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방송 카메라 3대와 기자 7,8명 정도가 자리를 잡고 앉기에도 좁았다. 김 연구원이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했던 지난 11월 간병을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아버지 김씨는 회견 중간중간에 늦게 도착한 기자들이 들어오자 “사흘째 잠도 못잔 사람을 또 괴롭히려 하느냐.”며 잠시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김 연구원이 황 교수에게 불리한 답변을 하다가 머뭇거리면 그의 부인은 “있는 대로 다 말하라.”며 억울한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줄기세포 2개의 사진을 11개로 조작한 것을 인정하며 “지시를 받았어도 거부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아버지 김씨는 “아들이 연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탄식했다. 김 연구원의 부인은 “남편은 새벽부터 밤까지 연구밖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며 왜 이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엄밀한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과학자로서 김 연구원이 저지른 잘못은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두 시간 넘게 김 연구원의 답변을 들으면서 서른 네 살의 젊은 과학자를 ‘의도적 조작’으로 내몬 한국 과학계의 풍토가 어떤 것인가를 짐작하게 만드는 대목은 여러 군데서 등장했다. 군대와 같은 상명하복 문화,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전혀 없는 폐쇄적 연구 체제,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분위기…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제2의 김선종’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불법행위로 생긴 빚 면책안돼

    카드빚이 3000만원 정도 있습니다. 연체하지 않으려고 회사 자금 3000만원으로 빚을 갚았는데, 곧바로 발각돼 쫓겨났습니다. 그동안 성실하게 근무했다고 회사는 3000만원에 대한 지급각서만 받고 형사고발을 일시 유예해 줬습니다. 이후 직장이 없어 다른 빚도 늘어났고 갚을 길이 없습니다.-안태영(41) 아쉽습니다. 안태영씨는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을 했습니다. 회사 자금을 직원이 함부로 가지고 가면 직위에 따라 횡령죄 또는 절도죄에 해당해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민사상으로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파산법은 고의로 저지른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의무는 면책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합니다. 피해자 의사에 따라 빌려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채권자가 채무자의 변제의사와 능력을 심사할 기회가 없었으니 파산제도에 포함시키기 곤란합니다. 만일 이런 경우에도 면책을 허용한다면 고의의 불법행위를 장려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의식하지 못하고 실수로 저지른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횡령이나 절도는 상대방에게 피해가 생기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고의로 인한 불법행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안태영씨가 회사에 진 3000만원의 빚은 파산절차를 밟는다고 면책되지 않습니다. 다른 채무에 대해서는 파산절차를 진행해 면책받을 수 있지만, 결정의 효력이 회사에서 훔친 돈에까지 미치지 않습니다. 원래 생활고로 인한 신용카드 채무는 회사에 성실하게 다니면서 개인회생 절차에 의해 전부 또는 일부를 순차로 갚아가면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파산제도를 통해 면책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미한 채무를 갚기 위해 파산절차에서 면책되지도 않는 채무를 새롭게 부담한 것이니 최악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금융채무 때문에 어렵더라도 공금 등에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안태영씨가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사측의 배려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는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의 시효가 걸립니다. 이때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제기되지 않으면 채무는 소멸합니다. 그렇지만 시효에는 여러 예외가 있습니다. 둘째, 가족의 지원을 받거나 저축으로 모은 돈을 갖고 손해금에 못미치더라도 회사와 합의를 시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불법행위가 있더라도 나머지 빚에 대해서는 파산을 통한 면책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유용한 돈을 변제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 [골프소식]

    ●올 겨울 혹한기에도 동래베네스트와 리베라CC 등 전국 35개 골프장이 휴장없이 문을 연다. 휴장이 확정된 곳은 휘닉스파크와 강촌CC를 포함해 39곳.그러나 폭설이 내리고 있는 충청과 호남권들의 대다수 골프장들이 아직 휴장 여부를 확정하지 못해 휴장 골프장은 이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골프장의 동계 휴장 현황은 한국골프자경영자협회 홈페이지(www.kgba.co.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도서출판 ‘황매’가 고 고우영 화백의 유작 ‘고우영의 맛있는 골프’를 출간했다. 국내 최초의 맛집 소개를 곁들인 골프관련 실용서. 전국 골프장 가는 길목에 위치한 185개 맛집의 상세 정보와 131개 골프장 정보는 물론 할인쿠폰도 실었다. 고 화백의 촌철살인의 골프 에세이에 풍자와 해학, 유머 만점의 골프만화까지 곁들였다.1만800원.●나이키골프코리아가 신제품 ‘SQ+ 드라이버(460cc)’를 출시한다. 최경주와 스튜어트 싱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사용 중인 SQ 드라이버의 아시안 스펙. 최후방 무게중심 등의 최신 기술을 적용해 비거리와 정확성을 크게 향상시켰다.66만원.(02)2006-5867.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24)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24)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men,both one year away from retirement,are working on an assembly line.One says to the other,“Last night I made love to my wife three times.” “Three times!” says his friend.“How did you do it?” “It was easy,” says the first man.“I made love to my wife,and then I rolled over and took a nap for ten minutes.I woke up,I made love to my wife again,then rolled over and took another nap for ten minutes.I woke up,I made love to my wife again,and then I went to sleep.I woke up feeling like a bull!” His friend says,“Well,that is fantastic! I’m going to have to give that a try.” So he goes home that night and goes to bed.He makes love to his wife,then rolls over and takes a nap for ten minutes.He wakes up,makes love to his wife again,then rolls over and takes another nap for ten minutes.He wakes up,makes love to his wife again for a third time,then rolls over,and falls asleep. He wakes up in the morning and he´s twenty minutes late for work.He throws on his clothes and runs down to the factory.When he gets to his station,the boss is standing there waiting for him.The man says,“Boss,I´ve been working for you twenty years,and I‘ve never been late before.You’ve got to forgive me these twenty minutes this one time!” The boss says,“What twenty minutes? Where were you Tuesday,where were you Wednesday …?” (Words and Phrases) one year away from retirement:정년을 1년 앞둔 assembly line:조립 라인 make love to∼:∼와 잠자리를 하다 roll over:(몸을)돌려 눕다 take a nap:선잠을 자다 wake up:깨다 go to sleep:잠자리에 들다 feel like a bull:황소처럼 불끈 솟는 기분을 느끼다 give that a try:그것을 시험해보다 for a third time:세 번째로 fall asleep:곯아떨어지다 throw on∼:∼을 급히 걸치다 (해석) 정년을 일년 앞둔 두 남자가 조립 라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말하길,“어젯밤 마누라랑 세 번 했어.” “세 번이나!”라고 친구가 말했습니다.“어떻게 그렇게 해?” “그야 쉽지”라고 먼저 사람이 말했습니다.“마누라랑 한 탕 하고 돌아누워 선잠을 십 분을 자. 일어나 마누라랑 다시 한 번 하곤 돌아누워 십 분을 또 자. 깨어나서 마누라랑 다시 한 번 더 하고 잠들지. 깨어나면 황소처럼 불끈 솟거든!”친구가 말했습니다.“아, 그거 환상적이네! 한 번 시도해 봐야겠는걸.” 그래서 그 남자는 그 날 밤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내와 한 탕 하고 돌아누워 십 분간 선잠을 잤습니다. 깨어나 다시 아내와 한 탕 더 하고 돌아누워 선잠을 다시 십 분간 잤습니다. 깨어나 아내와 세 번째로 한 번 더 하고 돌아누워 곯아떨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직장에 20분이 늦었습니다. 옷을 걸치고 공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역에 도착했을 때, 보스가 그곳에서 서서 그 남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사장님, 사장님을 위해 20년을 일했는데 이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 번 한 번만 20분 늦은 걸 용서해주십시오.”사장이 말했습니다,“무슨 20분을 말하는 거예요? 화요일에 어디 있었어요, 수요일에는…?” (해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습니다. 못된 친구와 어울리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한 남자가 부인과 세 차례나 연거푸 했다는 친구 말을 좇아 자기 부인과 세 번이나 한 것은 좋았는데, 그만 직장에 20분 늦었습니다. 사실은 20분이 늦은 것이 아니고, 처음 한 날과 두 번째 한 날은 아예 결근을 했습니다. 이에 사장이 무슨 일이 생겼는가 걱정이 돼서 이 남자의 집 근처에 와 본 것입니다. 나이를 잊고 정력을 발산하다가는 10분 선잠이 하룻밤이 되어버립니다. ■ Life Essay for Writing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 초등 영어 시장의 개척, 파닉스 교재의 도입, 아이들을 깨우는 전화 관리 등으로 분주하던 어느 날, 함께 근무하던 교육연구실의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교재를 만들고 회사를 창업했는데, 김 회장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의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과 치밀함을 아는 그는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는 많은 돈을 계약금으로 내밀었다. 당시 김 회장은 업계에 이미 이름 석자를 충분히 알렸지만 광주에서 자리잡기 위해 버는 돈은 모조리 사업에 재투자하던 시기라 아직 임대주택의 설움을 겪고 있던 중이었다(President Kim was still living in the second floor of a two-story rental house because he reinvested all the money he earned to settle himself in business in Kwangju,although he made a series of successes and thus became well-known in the business world at that time). 김 회장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동료가 고마웠다. 그는 계약을 체결하러 전주에 위치한 약속 장소로 나갔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으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동행한 아내가 도장을 가지고 광주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이, 남자의 앞길을 막아도, 이렇게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How dare she stand in her husband´s way?)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회장은 생각했다. 이혼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 절대문법17 자리매김학습 동사의 기본적인 역할 중에 한국인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보어다. 한국어에는 보어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동사에는 주어가 따르고 시제가 있다는 특성이 있다. 동사는 또한 목적어와 수식어, 그리고 보어와 함께 쓰일 수도 있다. 동사 turn 뒤의 white는 앞에 나온 주어의 상태나 모습을 설명한다. 나의 손이 변하는데, 어떤 상태로 변하는 가를 보충 설명해 주기 위해 사용된 보어다. 이처럼 동사는 보어를 가질 수 있다. 동사의 자리와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제시된 표의 빈칸을 채우시오. 정답:1.became (1)My son (2)과거 (4)a sheriff 2.looks (1)The thief (2)현재 (4)exhausted 3.ate (1)Fox (2)과거 (5)in the cave
  • [씨줄날줄] 백호주의/육철수 논설위원

    남태평양의 거대한 섬대륙 호주는 영국 식민지 시절 죄수들의 유형지였다. 그러나 1850년대 금광이 발견된 후, 죄수가 아닌 백인과 중국인 등이 대거 들어가 살면서 유명한 백호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백인우월적 의식 수준이던 백호주의는 1901년 연방이 결성되면서 ‘통일이민제한법’으로 성문화된다. 이 법은 1978년 폐지되기까지 유색인종의 이민을 막고 백인을 보호한 인종차별 정책이었다. 호주는 노동력의 부족으로 백호주의를 철회한 후에도 이민수용 9원칙과 점수제에 의한 이민심사방식을 채택해 유색인종의 이민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당시 유색인종이 이 나라에 가서 살려면 영어시험을 쳐야 했다. 백인들은 무시험 통과였다. 유색인종이 영어를 잘하면, 알지도 못하고 쓸데도 마땅찮은 그리스어 시험을 치르게 하는 등 행태가 이만저만 얄미운 게 아니었다. 지금 시드니에서는 백인과 레바논계가 사흘째 피가 터지도록 싸움을 벌이고 있다. 레바논계 갱단이 해안경비대원을 구타한 게 발단이었다고 한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연락을 받고 몰려든 수천명의 백인들이 인종주의 구호를 외치며 날뛰는 통에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스킨헤드 등 극우 인종차별주의자까지 끼어들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고 한다. 하워드 총리가 “인종이나 외모를 보고 공격하는 것은 야만적 행위”라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지만 말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수그러들던 백호주의가 재현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달 프랑스에서 인종 소요사태를 겪은 터라, 지구촌 곳곳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문명의 시대라지만 인종 충돌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니 세상은 살얼음판이다. 더구나 인종간 다툼은 어린애 장난처럼 시작됐다가 종종 대규모 감정싸움, 나아가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도 보통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00년동안 인종갈등 때문에 벌어진 분쟁과 학살로 1억 7500만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같은 기간동안 전쟁터에서 숨진 4000만명보다 몇배나 더 많다. 이렇게 많은 생명을 잃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만델라 같은 ‘용서의 정치인´이 수백명 있다한들 무슨 소용있겠나. 생김새와 문화가 다른 사람끼리 함께 사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정말이지 어딜가나 인간이 문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삼성 ‘와이브로’ 국제표준 채택

    삼성전자의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 기술을 근간으로 삼는 모바일 와이맥스가 국제표준으로 공식 승인됐다. 이로써 와이브로는 세계 통신시장의 특허경쟁에서 우리가 내세울 통신무기가 됐으며, 차세대 이동통신의 핵심 기술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국제전기전자학회(IEEE)가 모바일 와이맥스(802.16e)를 국제표준으로 최종 승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내년을 ‘와이브로 세계화 원년’으로 선언해 와이브로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내년 4월 세계 최초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는 KT에 와이브로 장비와 단말기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올해 미국·영국·일본·이탈리아와 남미 등에 와이브로 시험장비를 공급키로 하면서 해외진출의 물꼬를 텄다. 또 내년에는 10개국 이상에 와이브로가 추가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국내 차세대 정보기술(IT)인 와이브로의 수출이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다.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은 “제2의 인터넷 혁명으로 불리는 와이브로의 세계화를 통해 한국의 IT 성공신화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문화 캘린더]

    ●서울 서초구 ‘서초문화센터’에서 제90기(2006년 1월 6일∼4월 5일) 수강생을 모집한다. 자격증 대비·어학·문화·생활·기능강좌, 직장인 야간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18세 이상 서초구민이면 누구나 수강신청을 할 수 있다.30일(금)까지 홈페이지(www.seocho.go.kr/culcenter)를 통해 선착순으로 모집한다.(02)576-4182. ●인천시립무용단 9일(금)∼10일(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제56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미륵의 꽃’을 무대에 올린다. 거대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미륵을 기다리며 ‘희망’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공연시간은 9일 오후 7시 30분,10일 오후 5시. 관람료는 R석 1만원,S석 5000원.(032)420-2788.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11일(일)까지 창작극 ‘하문도에는 자기가 없다’를 선보인다. 창단 45주년을 맞은 극단 실험극장이 우연히 발견한 ‘고려자기’를 둘러싼 촌극을 연기한다. 입장료는 일반 2만원, 대학생 1만 5000원, 청소년 1만원이다.(02)766-2124. ●서울 충무아트홀 내년 1월 15일(일)까지 뮤지컬 ‘피핀’을 올린다. 프랑스 왕국 찰스 대제의 아들 ‘피핀’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코미디극이다.R석 7만원,S석 5만원,A석 3만 5000원.16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다.(02)501-7888. ●경기도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21일(수)∼25일(일) 세계적인 탭댄스 그룹 ‘탭덕스’ 초청공연을 연다. 입장료 2만∼5만원.(031)481-3846. ●서울열린극장 창동 10일(토)까지 뮤지컬 ‘Bad Boys’를 공연한다.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한 힙합 뮤지컬이다. 입장료는 전석 1만 5000원.(02)994-1469. ●인천시립극단 18일(일)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제41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레티스의 이상한 술’을 무대에 올린다. 성격이 다른 두 여주인공을 통해 갈등과 이해, 용서와 화합을 그렸다.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은 오후 4시. 관람료는 일반 1만원, 학생은 5천원.(032)420-2790.
  • 승자의 심리학/ 추친닝 지음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을 가져라.” 중국의 이론가이던 이종오는 인생의 승자가 되기 위해 ‘낯 두껍고 검은’(厚黑)사람이 되라고 주장했다. 동양적 윤리와 가치를 잣대로 본다면 너무나 황당한 처세술. 하지만 그 뜻을 제대로 알고 나면 ‘후흑학’의 실용적인 이론에 끌려 들어 간다. 남으로부터 자신의 의지를 숨기는 것이 ‘두꺼운´ 얼굴이고, 남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때가 ‘검은´ 마음이다. ‘승자의 심리학’(추친닝 지음, 함규진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은 이종오의 사상을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가 일상 생활과 비즈니스 세계에 적용한 실용서이다. ●후흑은 세상과 나와 싸우는 창과 방패 아무리 치열한 경쟁사회라고 하더라도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 이기적이고 냉혹하고, 비도덕적인 ‘후흑’을 연상하면 그런 반감을 갖게 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내적 상태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두꺼운 얼굴은 ‘방패’다. 남들의 비난과 악평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얼굴 두꺼운 사람은 자격지심을 떨쳐 버릴 줄 안다. 검은 마음은 ‘창’이다. 남들과 자신과 싸우기 위한 힘이다. 검은 마음은 냉혹하지만 사악하지는 않다. 값싼 동정심을 초월, 목표에 집중하며 거기에 드는 비용을 무시한다. ●승자의 심리구조는 모든 것을 갖추고도 인생의 패자가 된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으며 성격이 유별나도 승자로 인생을 살다간 인물들이 있다. 저자는 위대한 승자들의 심리구조를 내면의 힘,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으로 파악하고 있다. 어떤 분야이건 성공한 이들은 주변의 온갖 비난과 조롱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사사로운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전진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 유비의 눈물, 말 실수 많았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대책없는 자신감, 아버지의 장례식조차 가지 않은 링컨의 냉정함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승자의 심리에서 보면 이들의 역설과 모호함은 세상과 인생의 승자로 이끈 창과 방패였던 것이다. 이 책이 단순한 실용서에 머물지 않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통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다.‘인간 본연의 모습을 알고, 거기에 대응하는 전략’을 찾아 내도록 하고 있어 매사에 성공 확률을 높여주는 것이다. 성공은 가장 적극적인 사람도, 가장 소극적인 사람도 거둘 수 있는 만큼 ‘생긴 대로’열심히 노력할 것을 저자는 권한다. 또 높이 도약하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몸을 낮추는 것처럼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도 좋다고 말한다. 약점도 자산으로 바꿀 수 있고, 부정적인 경험도 우리가 운명의 길을 걷는 데 필수적이라고 격려해준다.1만 2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