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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44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7)

    儒林(44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7)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7) 금골희는 묵자의 제자이면서도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묵자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묵자를 따른 지 3년 만에 손발에 못이 박이고 얼굴이 새까맣게 되었다니, 묵자를 비롯하여 묵가의 사람들은 모두 직접 노동을 하던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묵가의 제자들은 이처럼 노동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묵자가 초왕에게 금골희를 비롯한 300명의 결사대원들이 직접 송나라의 성 위에서 용병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공언한 것처럼 묵자의 제자들은 묵자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묵자가 하늘로부터 깨달은 ‘평화’의 진리는 예수가 부르짖었던 ‘평화’의 진리와 일맥상통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예수는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유언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철저한 비폭력적 평화를 스스로 실천하였다. 그러나 묵자가 주장한 평화는 예수의 비폭력적 평화와는 달리 현실 참여적 평화였으므로 일종의 신앙으로 뭉쳐진 십자군이었다. 회남자에는 이러한 묵자의 종교집단을 설명하는 중요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묵자를 위하여 복역하는 사람이 180명이 있는데, 모두 불에 뛰어들고 칼날이라도 밟게 할 수 있었고, 죽는다고 해도 발길을 돌리지 아니하였는데, 이는 모두 교화(敎化)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 내용은 묵자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묵자의 명령이나 자신의 신조를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불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묵자는 학문을 하다 보면 전쟁에 나가 죽게되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전쟁은 침략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외국의 침입으로부터 자기 나라를 수호하는 방어적 전쟁이었다. 묵자의 이러한 주장은 노나라 사람 중에 묵자를 좇아 그의 아들을 공부시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결사대원으로 전쟁에 나아가 죽자 아버지가 묵자에게 따져 물었을 때 이에 대답한 묵자의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드러난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공부시키려 하였는데, 지금 그의 학업이 이루어지고 전쟁에 나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성을 내고 있으니 이는 마치 물건을 팔려는 사람이 물건이 팔려버리자 성을 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묵자의 이 대답은 ‘비공(非功)’의 이론에 따라 침략전쟁은 죽어서라도 철저히 막아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묵자의 종교적 집단에서는 영도자를 거자(鉅子)라고 불렀다. ‘여씨춘추’ 상덕(上德)편은 거자를 중심으로 한 묵자의 종교집단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묵가의 지도자였던 거자 맹승(孟勝)은 초나라의 양성군(陽城君)과 특히 친하였다. 맹성은 양성군으로부터 자신이 국외로 여행하는 도중에 자기 영토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양성군이 국외로 나아가 반란에 참가하게 되자 초나라는 양성군이 다스리던 나라를 점령해 버린다.…”
  •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뽀얀 피부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조곤조곤한 말투 등 아무리 뜯어 봐도 ‘승부사’의 기질을 찾아볼 수 없다. 식사때 선수들에게 눈웃음 치며 농담을 던지고 더 먹이려고 챙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고 선생님. 이런 이 남자가 코트에만 서면 전혀 딴 사람으로 돌변한다. 겨울리그 꼴찌 신한은행을 창단 1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9년 농구인생을 활짝 꽃피운 이영주(39) 감독이다. ●지긋지긋한 불운 군산중 2학년때 그의 키는 158㎝. 또래 선수들은 170㎝ 이상이었다. 키도 작은 데다 비쩍 마른 ‘땅꼬마 가드’는 강한 패스를 받으면 공과 함께 밀리기 일쑤였다. 선배들은 왜 그리 때리는지,1주일에 5일은 몽둥이찜질을 피해 도망다녔다.‘차라리 절에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던 그는 지리산으로 가출했다. 이틀을 버틴 뒤 돌아갔지만, 학교에선 퇴학이 얘기됐다. 학교로 쫓아와 눈물로 사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영주는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농구에 덤벼들었다. 고교 1학년때 결핵으로 한 해를 꼬박 쉰 뒤 키가 쑥쑥 자랐지만 몸은 여전히 약했다. 대학에 가서야 힘이 붙으면서 농구의 묘미도 알았다.89년 최강 현대에 입단해 박수교(현 전자랜드 단장)의 공백을 메우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영주는 이후 93년까지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프로 출범을 앞두고 원치 않는 은퇴로 또다시 인생이 소용돌이쳤다. 선배의 사업 제안에 솔깃해 신선우(현 LG 감독) 감독에게 무릎부상을 핑계로 은퇴의사를 밝힌 것. 뒤늦게 정신 차린 뒤 신 감독에게 ‘이실직고’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다. 구단에서 사실상 은퇴를 종용했고, 눈물을 뿌리며 코트를 떠났다. ●끔찍한 IMF 유랑생활 97년 은퇴와 함께 단대부고 코치로 간 이영주는 그 해 종별대회 준우승 등 성공적인 지도자 데뷔를 했다.10개월 뒤 용인대 감독 제의를 받고 덜컥 수락했다. 현대에서의 황당한 은퇴 뒤 두 번째 실수였다. 한달 만에 팀은 해체됐고, 외환위기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때 ‘백수’가 됐다. 수입이 끊겨 서울 상일동 아파트를 팔고, 남양주로 이사도 갔다.2000년 박수교 기아 감독의 권유로 뒤늦게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평균 6분에 1.5득점하는 후보였던 그는 박 감독한테 짐이 되는 것 같아 두 번째 은퇴를 했다. 2001년 현대 여자농구단 코치로 두 번째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며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불운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했다.2002여름리그에서 박종천 감독을 보필해 우승했지만 모기업이 경영난에 시달렸다. 곧 박 감독은 떠났고, 연봉 5000만원짜리 감독대행은 지갑을 털어가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설상가상으로 KCC-현대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자 KCC측은 2003년 말까지 숙소와 체육관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당시 남자팀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선수들을 버리고 혼자만 떠날 수는 없었다. 지난해 봄 현대는 짐을 택배회사의 컨테이너에 넣고 ‘유랑 서커스단’ 신세가 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행히 지난해 9월 신한은행이 팀을 인수하며 떠돌이 생활을 청산했다. 첫 출전한 겨울리그에서 꼴찌를 했지만, 어린 선수들이 가능성을 보여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편애는 감독의 죄악이며 기회를 골고루 준다. 단 때가 왔을 때 제몫을 못 찾아 먹는 선수는 쓰지 않는다.”는 이영주식 용병술이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마침내 올 여름리그에서 우승을 일궜다. ‘남탕(남자프로농구)으로 가고 싶진 않냐.’고 묻자 “아직 밑천이 없어요. 내 분수를 알아야죠.”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신한은행을 최고 명문으로 세운 다음이라면 모르죠.”라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신대 특수체육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키우고 있는 이 감독에게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배포와 자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이영주 감독은 ▲출생 1966년 5월19일 군산 ▲가족관계 부인 고선경(34)씨와 2남 ▲신체조건 183㎝ 75㎏ ▲종교 기독교 ▲연봉 1억원 ▲주량 기분 좋으면 소주 2병 ▲스트레스 해소법 묻지마 드라이브 ▲출신학교 군산 중앙초-군산중·고-홍익대-한신대 대학원(3학기 재학중) ▲경력 실업 현대(선수·89∼97년)-단대부고 코치(97년)-용인대 감독(98년)-프로 기아(선수·99∼01년)-현대여자팀 코치 및 감독대행(01년)-신한은행 감독(04년∼) ▲수상 대통령 체육포장(92년) 여자프로농구 최우수지도자상(05년)
  • [2005프로야구] 리오스 2년 연속 15승

    플레이오프 직행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두산이 ‘이적 용병’ 다니엘 리오스를 앞세워 SK에 단 1게임차로 바짝 다가섰다. 두산은 20일 잠실에서 벌어진 프로야구에서 리오스의 쾌투와 장단 11안타를 효과적으로 터뜨려 3연승을 달리던 현대를 10-0으로 완파, 최소 3위를 확정지었다. 이로써 3위 두산은 2위 SK에 1게임차로 턱밑까지 추격,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둘러싼 ‘2위 전쟁’을 가열시켰다. 리오스는 8이닝 동안 삼진 5개를 낚으며 단 2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이로써 리오스는 지난해 17승으로 공동 다승왕에 오른 데 이어 2년 연속 15승 고지에 우뚝 섰다. 올시즌 부진으로 지난 7월 두산으로 전격 트레이드된 리오스는 이적후 9승2패, 방어율 1.42의 눈부신 피칭으로 두산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리오스는 시즌 탈삼진 146개를 마크, 이날 6개를 추가한 배영수(삼성)와 공동 선두자리를 나눠 가졌다. LG는 대구에서 왈론드의 역투와 클리어·권용관·정의윤의 홈런 3방으로 삼성을 9-2로 잡고 3연패에서 벗어났다. 선두 삼성은 SK가 패하는 바람에 정규리그 1위를 향한 매직넘버를 ‘3’으로 낮췄다. 삼성의 에이스 배영수는 5와 3분의1이닝 동안 홈런 2방 등 7안타를 얻어맞고 5실점,3연패의 부진에 빠졌다. 삼성 양준혁은 9회 안타를 뽑아 13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의 첫 주인공이 됐다. 한화는 대전에서 송진우의 역투와 홈런 3방으로 롯데를 6-4로 꺾었다. 현역 최고참인 송진우(39)는 6이닝 동안 2실점(1자책)으로 버텨 최근 4연승해 시즌 11승째를 챙겼다. 기아는 광주에서 연장 10회 이종범의 통렬한 끝내기 홈런으로 갈길 바쁜 SK의 발목을 4-3으로 잡았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스포츠 포커스] K-리그 드래프트제 누구를 위한 부활인가

    프로축구 K-리그가 또다시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프로축구연맹 이사회가 지난 2일 내년 신인 선발부터 2001년 폐지했던 드래프트제를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한 것. 연맹과 구단측은 드래프트제 복귀의 이유를 경영악화 개선을 위한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팬과 전문가들은 드래프트제가 축구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역행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게다가 실업 대학 중·고연맹마저 프로연맹의 일방적인 드래프트제 도입 결정에 반발하고 나서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선수 몸값이 구단 운영비의 70%” 연맹과 구단은 악화 일로의 구단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칼을 댈 곳이 바로 선수들의 인건비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원동 프로연맹 사무총장은 “보통 연 100억원 정도 들어가는 구단 운영비 가운데 인건비가 적어도 70%이상 차지하는 현 상태로는 구단이 정상 운영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드래프트제가 폐지되고 자유계약제도가 도입된 지 4년 만에 많게는 4배 가까이 뛴 선수들의 몸값을 다시 낮추기 위해선 구단의 자금력이 아니라 성적 역순으로 선수를 뽑는 드래프트제의 부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안종복 인천 단장은 “일본 J-리그도 치솟는 선수 몸값에 허덕이다 결국 1999년 선수 몸값 조정을 비롯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흑자경영을 이뤄냈다.”면서 “드래프트 3년 뒤 자유계약으로 풀어 주고, 클럽 시스템을 지켜온 팀에는 드래프트 우선권을 주는 등으로 제도를 보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무분별한 용병 수입부터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구단의 재정 악화는 분명 문제이지만, 드래프트제가 최선책은 아니라고 맞선다. 구단 재정 악화의 주된 요인은 국내 선수의 계약 문제보다 연간 인원제한없이 무작위로 선발가능한 외국인선수 등록제도의 폐해가 더 크다는 것. 때문에 선수 인건비의 40%에 육박하는 외국인 선수 영입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형욱 KBS해설위원은 “외국인 선수 수입 비용에 따른 제도적 보완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드래프트제만 부활시키면 국내 우수선수들은 외국시장부터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없는 무리한 제도 도입도 문제 연맹과 구단의 독단적인 태도 또한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대목. 드래프트제 부활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에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얘기다. 지난 14일 실업 대학 중·고연맹이 직업 선택의 자유 등 선수들이 받게 될 불이익과 선수 소속팀에 대한 보상 등이 빠진 연맹측의 드래프트제 복귀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것도 충분한 대화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신문선 SBS해설위원은 “민감한 이해당사자들이 버티고 있는데도 공청회와 같은 최소한의 여론 수렴 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이번 제도 도입 과정은 구단들의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없게 됐다.”고 말했다. ●지명 거부권 등 보완책이 마련돼야 무엇보다 선수들의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축구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거스른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축구 선진국에서는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만큼 전세계 어디서나 뛰고 싶은 구단을 선택하는 자유를 누리는 데다 구단은 클럽 시스템을 운영하며 키워낸 축구스타들의 이적료를 챙기며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드래프트제는 그런 선수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 따라서 드래프트제가 도입되더라도 선수들의 지명 거부권이나 조기 자유계약선수 제도 등 충분한 보완책을 강구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구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박지성과 이영표 같은 선수들을 키워내 해외시장에 내보내겠다는 장기적인 안목은 접어두고 선수들의 권익만 침해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M&A시장의 ‘큰 손’들] (4) 빅딜현장의 새바람 ‘대한전선’

    [M&A시장의 ‘큰 손’들] (4) 빅딜현장의 새바람 ‘대한전선’

    대한전선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이색적인 ‘큰 손’으로 주목받고 있다.50년을 한결같이 제조업에만 몰두하다 지난해부터 ‘빅딜’ 현장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진로 인수전(戰)에선 M&A의 강자로 떠올랐다. 금융자본과 달리 매수한 기업을 계열사로 편입시켜 제 2의 수익모델로 삼기 때문에 관련 업계가 긴장한다. ●진로 인수 실패해도 3500억원 돈벌이 지난 6월 본계약이 치러진 진로 인수전에서 대한전선은 하이트맥주에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았다.40여개 국내외 금융자본과 기업들이 달려든 입찰에서 대한전선은 하이트맥주와 함께 사실상의 결선 무대에 섰다. 하지만 하이트맥주가 기습적으로 예상가보다 1조원이나 높은 3조 4288억원을 제시하는 바람에 차점자의 고배를 마셨다. 대한전선은 진로 인수에는 실패했으나 두달 뒤 보유중인 진로 채권을 회수해 3563억원의 순이익이 생겼다고 공시했다.2003년 6월 대한전선은 한 외국계 금융자본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진로 채권을 몰래 매집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액면가의 10∼20%에 불과한 채권을 쓸어모았다. 결국 채권 투자액 3537억원이 불과 2년여만에 두배인 7100억원이 되어 돌아왔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진로산업에 대한 인수전에서 대한전선은 숙명의 라이벌 LG전선과 맞붙었다. 이때도 인수에는 실패했으나 보유중인 진로산업 채권 340억원어치를 모두 행사해 200억원의 투자수익을 올렸다. 대한전선은 2조 2320억원 규모의 하이닉스 인수전에도 뛰어들 태세다. ●빈틈 보이면 M&A 대상 대한전선은 올해로 창업 50주년을 맞았다.60년대에 케이블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50년동안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중견기업이다. 돈 되는 곳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그렇지 못하면 미련없이 손을 뗐기에 가능했다. 잘 나가던 가전부문을 대우전자에 넘겼고, 남들이 탐내는 보험사(한덕생명)를 외환위기 때 털고 현금을 확보했다. 대한전선은 수도권 각지에 4700억원이나 되는 부동산을 소유해 재계에서도 ‘땅 부자’로 통한다.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2002년 무주리조트를 인수했다. 그때만 해도 재계에선 레저산업에 대한 관심쯤으로 여겼다. 지난해 대한전선이 내의업체 쌍방울마저 인수하자 재계는 긴장했다. 빈틈을 보이면 누구든 공격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계열사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15개로 늘었다. 지난 7월 대한전선은 전북 무주의 레저도시개발 단독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2015년까지 1조 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런 중에도 주식투자를 통해 데이콤(0.30%), 한국기술투자(0.67%),YTN미디어(7.40%) 등 15개 기업의 지분을 조금씩 사들였다. 대한전선의 주가는 지난 8월 평균 1만 3805원으로 1년 전(6926원) 보다 두배 가까이 급등했다. ●한 우물만 파면 망한다 대한전선의 M&A 전략은 순전히 전문경영인 출신 임종욱(57) 사장으로부터 나온다.2003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임 사장은 외부 정보와 두터운 개인 인맥을 활용, 진로 채권 매입 등을 지시했다. 매물 정보가 입수되면 몇개월이 걸리든 치밀한 숙고(熟考)에 들어간다고 한다. 회사 안에 M&A 등과 관련된 특별팀도 없다. 마음이 결정이 되면 외부 전술팀을 용병으로 앞세워 과감한 인수작전에 착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로 채권처럼 ‘인수 실패시 안전판’도 확보해 둔다. 대한전선은 가끔 “제조업체의 계열사 확장과 출자가 과거 재벌에 뒤를 잇는 문어발 확장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대해 임 사장은 창립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은 기업 환경이 바뀌면서 더 이상 정답이 아니다.”면서 “전선 사업을 근간으로 유지하되 수익성이 있고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M&A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프로야구 2005] 송진우, 11시즌 두자리 승

    ‘송골매’ 송진우(39·한화)가 통산 최다 시즌 ‘두자리 승수’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이적 용병’ 다니엘 리오스는 화려한 완투승으로 두산의 플레이오프 직행에 불씨를 지폈다. 송진우는 14일 대전에서 열린 프로야구 기아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5와 3분의2이닝 동안 6안타 4볼넷 2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따냈다. 1989년 데뷔한 현역 최고참 송진우는 이로써 올시즌 10승(7패) 고지에 우뚝 서며 자신의 11번째 두자리 승수(10승 이상)를 일궈냈다. 지난 8일 문학 SK전에서 최고령 완봉승의 주인공이 됐던 송진우는 이 부문 공동 선두를 달리던 이강철(기아)을 제치고 단독 선두에도 나선 것. 데뷔 이듬해 11승으로 첫 두자리승수를 챙겼던 송진우는 92년 19승,96년 15승,2002년 18승 등으로 통산 192승째를 올렸다. 한화는 3-2로 힘겹게 앞선 6회 집중 5안타로 대거 6점을 뽑는 특유의 집중력으로 9-2로 승리했다. 두산은 잠실에서 리오스의 눈부신 완투와 타선의 집중력으로 3연승을 달리던 SK의 발목을 4-1로 잡고 3연승했다. 이로써 3위 두산은 66승50패3무를 기록,2위 SK(66승47패6무)에 불과 1.5게임차로 바짝 다가서며 플레이오프 직행의 꿈을 부풀렸다. 두산과 SK는 나란히 8경기를 남겨 시즌 종료때까지 물러설 수 없는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올시즌 기아에서 이적한 리오스는 9이닝 동안 삼진을 8개나 솎아내며 7안타 3볼넷 1실점으로 버텨 14승째를 올렸다. 또 시즌 탈삼진 141개를 기록, 배영수(삼성·140개)를 따돌리고 이 부문 단독 선두에 나섰다. 현대는 대구에서 미키 캘러웨이의 호투와 래리 서튼의 33호 2점포 등으로 삼성을 4-3으로 눌렀다. 선두 삼성은 이날 졌지만 SK의 패배로 정규리그 1위 매직넘버를 5로 줄였다. 롯데는 사직에서 8회말 집중력을 보이며 LG에 3-1로 역전승,2연패를 끊었다.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아드보카트, 오나 못오나

    ‘아드보카트, 오나 못 오나.’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제1협상 상대인 것으로 드러난 딕 아드보카트(58·네덜란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대표팀 감독의 한국행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일 네덜란드의 한 방송이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 코치가 한국대표팀의 새 코칭스태프를 맡게 됐다.”고 보도하면서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소문의 신빙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아드보카트가 서울행 비행기를 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축구계에서는 네덜란드 언론의 보도대로 아드보카트 감독과는 한국행에 합의했지만 UAE축구협회측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아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관건은 ‘돈’이다. 가삼현 국제협력국장이 출국한 뒤 대한축구협회는 “그저 얼굴만 보려고 간 것이 아니다.”고 전해 사전 의견조율이 있었음을 암시했지만 풀어야 할 ‘돈보따리’는 생각보다 커질 것이라는 게 보편적인 전망. 연봉은 접어 놓고라도 ‘부임 6개월 이내에 사임할 경우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UAE축구협회측과의 계약 조항이 사실이라면 대한축구협회는 고스란히 그를 대신해 이를 대납해야 한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축구협회로선 아드보카트 감독이 네덜란드를 맡고 있던 지난해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 체코전에서 최악의 용병술과 전술부재로 역전패를 당한 전례가 있는 등 ‘자질’이 정확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국내 팬들의 비난을 잠재우기도 쉽지 않다. 결국 ‘전권대사’로 나선 가 국장으로선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경우 또 다른 감독과 셈을 맞춰본 뒤 그의 손을 잡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설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선수진·전주원 “챔프전 보여요”

    신한은행이 창단 이후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신한은행은 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05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플레이오프(3전2선승제) 1차전에서 포워드 선수진(12점 13리바운드)의 ‘깜짝 활약’과 돌아온 천재가드 전주원(12점 7어시스트)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힘입어 국민은행에 58-51로 승리했다. 지난 2004년 현대건설을 인수해 여자프로농구에 뛰어든 신한은행은 첫 시즌인 2005겨울리그에서 꼴찌에 머문 불명예를 만회할 교두보를 구축한 셈. 올 정규리그에선 2승2패로 팽팽히 맞선 두 팀이지만, 단기전의 속성상 리바운드 1위 애드리안 윌리엄스와 ‘연봉퀸’ 정선민, 신정자가 골밑 철옹성을 구축한 국민은행의 우위가 점쳐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상황은 전혀 달랐다. 신한은행은 약속된 협력플레이로 번번이 공격리바운드를 낚아냈고,3점슛을 자제하고 정확한 미들슛으로 외곽을 공략하면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정규리그 지도자상을 받은 이영주 신한은행 감독의 작전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반면 이문규 국민은행 감독의 용병술은 의도와 다르게 조금씩 삐걱거렸다.. 이 감독은 1쿼터부터 포인트가드의 열세를 메우기 위해 센터 정선민(14점)을 ‘야전사령관’으로 내세우는 변칙작전으로 맞섰다. 하지만 정선민은 빠른 발과 현란한 드리블로 내외곽을 헤짚고 다니는 전주원을 쫓아다니느라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덩달아 득점력도 눈에 띄게 하락했다. 신한은행은 1쿼터 시작과 함께 터진 강지숙(10점)과 진미정(12점)의 중거리슛으로 6-0으로 달아나며 기선을 제압했다.1쿼터 막판 정선민과 윌리엄스에게 골밑 득점을 허용하며 14-15로 역전을 당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신한은행은 2쿼터에서 국민은행의 득점을 단 4점으로 묶으며 30-19로 달아나 승리를 예고했다. 차전은 10일 안산와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영옥 “내가 코트의 여왕”

    김영옥(31·우리은행)이 ‘여름코트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총알낭자’ 김영옥은 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05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시상식에서 기자단 총 54표 가운데 30표를 얻어 겨울리그에 이어 생애 두번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정은순과 정선민, 변연하에 이은 4번째 2회 연속 MVP. 여름리그 전경기(20게임)에 출장한 김영옥은 평균 13득점,4.2어시스트(5위)로 활약했고, 특히 3점야투 부문에선 40.6%의 성공률 1위로 독보적이었다. 지난 겨울리그에서 슈팅가드에서 포인트가드로 전환했지만 특급용병 켈리 밀러와 번갈아 기용된 탓에 ‘포인트가드 김영옥’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하지만 여름리그에서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해내면서도 코트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겨울리그 꼴찌 신한은행을 3위로 이끈 이영주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을 일군 박명수 우리은행 감독을 제치고 생애 첫 지도자상을 차지했다.‘베스트5’에는 전주원(신한은행) 김영옥(이상 가드) 박정은(삼성생명) 정선민(이상 포워드·국민은행) 아이시스 틸리스(센터·삼성생명)가 뽑혔다. 정선민은 역대 최다인 9번째 베스트5.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8)한국의 토산 명차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8)한국의 토산 명차들

    대롱꽃나무에 붉은고추잠자리가 서성이는 것을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일지암 초당앞 차밭엔 어느새 차꽃이 피었다. 하얀 소화(小花)다.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하얀 소화꽃을 보고 태맥산맥의 조정래 선생은 그 여주인공 이름을 소화라고 했다. 차꽃이 열리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향기가 벙그러진 꽃들사이로 작설의 기운을 차곡 차곡 안으로 안으로 안아낼 것이다. 삶과 영혼의 기쁨이 깃든 한잔의 따뜻한 차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조선시대 시대를 반역하며 산중에 은거한 거인(巨人)이었던 설잠 김시습의 살림살이가 떠오른다. 경주 용장사에 은거해 작은 초당을 짓고 차나무를 가꾸고 차를 달여 마시던 설잠은 형편따라 살림을 사는 안분지족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무를 푹 삶고 또 오이를 구워서/형편 따라 먹는 산중의 공양 차도 달이네/배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아 한가로이 누웠으니/이제사 알겠네, 뜬 뗏목 같은 신세인 줄을!” 설잠은 ‘삶은 부평초 같은 것이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삶은 또한 뿌리깊은 나무같은 것이다. 머뭇거리는 구름도, 석양의 햇살을 몰고가는 바람도 그 흔적이 없지만 삶은 손님을 보내버린 주인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우리차의 흔적도 마찬가지다. 마치 허공에 갈아 놓은 밭처럼 끊임없이 흩어졌다 모여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그 황금의 차향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명차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의 ‘뇌원차’다.(고려사 열전)에는 ‘최승로가 죽으니 문정이라 휘하였는데, 나이는 63세였다. 왕이 슬퍼하며 하교하여 그 훈덕을 보상하여 태사로 중하고, 베 천필, 면 삼백석, 경미 오백석, 유향 200량, 뇌원차 200각, 대차 10근을 부의하였다.´고 적고 있다. 왕이 국가에 큰 공덕을 세운 신하에게 ‘차’를 상으로 내리는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 그 당시 차를 살펴보면 중국의 명차였던 ‘용병봉단’등 대부분 중국차 이름이 등장한다. 그 당시에도 우리 차는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야 신라의 문헌들은 그같은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다.(삼국유사)에는 문무왕때 가야의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음식으로 밥 떡 과일과 함께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보여진다. 또한 보천 효명태자의 헌공다례에 대한 기록, 쌍계사 진감국사비에 새겨져 있는 ‘음다유복’, 고구려무덤에서 발견된 전차(錢茶)등의 기록을 보면 가야 삼국시대에도 우리 토산차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건 민심 달래려 백성들에 차 하사 그러나 불행하게도 왕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은 문화적 선진국이었던 중국 차를 매우 선호했던 것 같다. 차를 하사한 여러 가지 문헌에 우리차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려사 열전)에 기록된 ‘뇌원차’에 대한 것은 우리명차와 관련해 귀중한 기록 중 하나인 것이다.‘뇌원차’는 덩이차였던 각차였다. 헤아렸던 단위는 각이며 주로 국가 최대의 행사였던 팔관회 공덕제등 국가행사, 국빈급 외교관의 방문에 답하는 예물이었던 ‘어용단차’(御用團茶)였던 것으로 보여진다.‘어용단차’였던 ‘뇌원차’는 그런 점에서 우리토산차의 역사를 신라를 비롯한 삼국시대까지 끌어올리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고려가 후백제와 신라를 병합하기 전 차를 생산했던 전라 경상도에 영토가 없었다는 것이다. 신라의 경순왕이 그의 권좌를 넘겨준 것은 935년이다.‘뇌원차’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최고품질의 토산차였다는 것이다. 뇌원차, 즉 단차의 제조는 조선시대 말엽까지 이어져왔다. 찻잎을 찌거나 데쳐낸 다음 절구에 찧은 후 모양을 찍어 말렸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음다법은 우리가 보리차를 끓이듯 차를 물에 끓여서 마셨다. 그런 점에서 뇌원차는 차를 물에 넣고 오랫동안 끓여도 쓰거나 떫지 않은 발효차였을 것이다. 이 시기 또 다른 토산차에 대한 기록은 ‘대차’(大茶)에 대한 것이다. 대차가 사용된 시기는 뇌원차가 사용된 시기와 비슷하다. 그시대 토산차 중 하나였던 ‘대차’는 외교사절이나 국가행사때 하사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일반대중들이 마시는, 등급 낮은 대중토산차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 또 다른 기록이 있다.‘태조 14년(931년) 8월 계축일에 보윤과 선규등을 보내어 신라의 왕에게 안마 능라 채금을 전하고 아울러 백관들에게 채면을, 국민들에게는 차와 복두, 승려들에게는 차와 향을 각각 하사하였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국민과 승려들에게 차를 하사했다는 대목이다. 차는 당시 매우 귀한 물품이었다. 그것은 곧 차의 국내생산이 매우 적었다는 것을 뜻한다. 역설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민중들이 차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새롭게 국가를 건설한 태조왕건이 국내의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위해 하사한 선물이라면 많은 민중들의 애장품이었던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우리차의 대명사랄수 있는 ‘작설차’다.‘작설’은 고려시대의 연고차를 거쳐 조선중기에 우리가 현재 마시는 잎차로 정착했다.(동국여지승람)(동의보감)에 등재되어 있는 ‘차’ 또는 ‘작설’의 명칭이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은 바로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이제현의 시에서다. 이제현은 차를 매우 잘 제다했던 송광스님에게 차를 받고 다음과 같은 답시를 보낸다. “가을 감 먼저 따서 나에게 보내주고/봄날 불쬐어 말린 작설도 여러번 나누어 주었네/맑은 향기 한식전에 딴 것인가/고운 빛깔 숲속의 이슬을 머금었는 듯/돌솥에 물 끓으니 솔바람소리/자기 잔에 따르니 빙빙돌며 젖빛 꽃이 피어난다.” 조선시대 작설차에 대한 기록은 매월당 김시습의 ‘작설’이란 시에 잘나타나 있다.“남쪽나라의 봄 바람이 일렁이는데/차 나무 숲 잎들은 뾰족한 부리 내미네/어린싹을 가려내니 신령스러움과 통하고/그 맛은 이미 육홍점의 다경에 기록되었네/기창 사이에서 자주빛 싹을 가려내어/용병봉단의 모습만 헛되이 흉내 내었네/산집에 밤 고요하여 객들은 둘러 앉았는데/한번 마신 운유차에 두 눈이 밝아진다/당시 집에서 잔일이나 하던 저 사람이/어찌 알겠나 눈으로 다린 차가 이처럼 맑다는 것을” ●참새 혀 형상 작설차 우리명차 대명사로 고려후기부터 조선까지 이어져 우리차의 대명사가 된 ‘작설차’는 아주 이른시기인 경칩을 전후해 어린 잎으로 만들어진 차라는 것이 여러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중국의 다서인 (선화북원공다록)에는 찻잎의 품격을 논할 때 가장 으뜸가는 찻잎을 작은 싹 즉 소아(小芽)라고 하면서 그 모양은 참새 혀(雀舌)와 발톱 같다고 했다. 다음은 이규보가 거론한 유차(孺茶)와 향차에 대한 것이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차 벗인 노규선사가 보내준 ‘조아차’(早芽茶)를 스스로 ‘유차’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규보는 ‘운봉에 사는 노규선사가 조아차를 내놓기에 내가 유차라 이름 짓고 스님이 시를 청하기에 읊노라’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스님은 어디서 차를 얻었을까. 받자마자 코에 밀어닥치는 향기에 먼저 놀라네. 벽돌화로에 활활 타는 불로 차를 시험삼아 달여, 꽃무늬 오지사발에 차를 일구니 그 빛깔과 맛을 자랑하네. 진한 차 입에 들어가니 연하고도 부드러운데, 어린아이의 젖내와 같은 향기가 있구나. 부귀한 가문에서도 이런 차를 볼 수 없는데, 우리 스님이 이 차를 얻은 것이 이상도 하네.” ‘유차’라는 명칭은 소동파의 (주인에게 유차를 붙이며)라는 시에서 맨 처음 등장한다. 이규보는 아주 작은 조아차를 보고 ‘유차’라고 명명한 것이다. 여기서 조아차는 당시 중국의 명차였던 몽정차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최고의 명품차였던 몽정차와 유차를 비교한 것은 유차 역시 뛰어난 명품차였다는 또다른 반증이기도 하다. 유차는 당시 화계에서 생산되었다. 이규보가 손한장에게 화계의 유차에 대해 적어보내고 있다.“우연히 유차의 시를 지었는데, 그대에게 전해질 줄 생각지도 못했네. 시를 보자 화계에서 놀던 일 문득 생각나 눈물이 나네. 운봉의 차를 맛보니 남녘에서 마시던 일이 완연하구나.”고 말하고 있다. 이규보는 또 “화계에서 차 따던 일 생각해보세. 관에서는 감독하여 아이 늙은이 모두 불러내어 험준산 산속에서 겨우 차를 따모아 머나먼 서울까지 등짐지어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끓는 피와 땀이니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서울로 오게 되었네.”라며 당시 차 공납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초의스님 ‘떡차´ 반야병다로 재현 고려시대 뇌원차에 비견할 만한 ‘향차’도 과거 우리 명품차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음선정요)와 (고려사)에서는 “흰 차 한자루, 용뇌조각 석돈, 백약전 반돈, 사향 두돈을 가늘게 갈아서 멥쌀로 쑨 죽과 섞어서 떡 모양으로 틀에 박아서 만든다. 충렬왕 임진 18년(1292)10월 을사일에 홍군상이 돌아갈 때 장군인 홍선을 보내어 홍군상과 함께 원나라에 가서 향차와 목과 등을 바치게 하였다.”며 향차가 뇌원차 만큼 귀한 차였음을 알게 한다. 신라 고려시대 등 우리나라 차인들은 중국명품차의 성분을 분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맛과 향을 모방해내 창조적인 차들을 많이 생산했을 것이다. 과거의 기록에서 사찰이나 귀족들이 고급차를 직접 제다해 서로 ‘투다’(鬪茶)를 한 것을 보면 많은 차들이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토산차로는 초의스님의 ‘떡차’를 들 수 있다. 초의스님의 제자인 범해 각안스님은 ‘초의차’란 시에서 “곡우절 맑은날 /노오란 싹은 아직 잎이 피지 않았는데/솥에서 데쳐내어 밀실에서 말리네/모나거나 둥근 차 찍어내고/죽순껍질로 안을 말아서 싸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현재에 와서 초의스님의 떡차는 일지암에서 ‘반야병다’라는 이름을 재현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과거 우리명차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허전하고 빈약하다. 그런 어려움 속에도 근현대 차인들은 우리차의 명맥을 살려내고 있다.‘잭살영감’ 조병권옹, 김복순 조태연씨, 그리고 1939년 전남 강진에서 ‘백운옥판차’를 생산한 이한영씨 등이 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의재 허백련 선생의 춘설차, 효당 최범술 스님의 반야로, 화개제다의 홍소술사장, 광주 서양원사장, 보성 대한다업의 장영섭씨 등이 그뒤를 잇고 있다. 일지암 암주 ■ 차 몇통과 바꾼 1년 양식 우리차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화개골의 전설이 되어버린 ‘잭살영감’ 청파 조병곤옹의 이야기다. 그의 정확한 이력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은 없다. 그는 중국에서 머물다 해방후 죽을 때 까지 쌍계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에 대한 일화 몇가지를 소개해보자. 해방후 한국차는 그 명맥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당시 몇몇 스님들과 선비들을 제외하고 민중들의 머리엔 ‘차’라는 이름이 거의 사라졌을 때였다. 중국에서 귀국한 잭살영감은 아마도 중국에서 차에 대한 깊은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는 먼저 쌍계사 대밭숲에 자생하던 어린 차나무들을 파내어 차밭을 조성했다. 그때 조옹은 화개골 사람들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세상’이 열릴 것이라며 차밭 조성을 종용하는 예언을 했다. 그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도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봄이 되면 조옹은 손수 가꾼 차밭에서 차를 따고 덖어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던 경무대를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차 몇통을 전달한 뒤 그가 먹을 1년치 양식값을 가져왔다고 한다. 가장 서구적인 대통령으로만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은 차를 아는 차인이었던 셈이다. 조옹은 또 가장 현대적인 차 상품을 직접 만든 차인이었다. 당시 매우 귀했던 깡통을 차통으로 디자인해 수백통의 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차를 모르던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낙심한 그는 그 귀한 차들을 해우소에 쏟아버렸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차가 외면당하자 조옹은 그만 몸져 눕고 말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차를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근현대사 차이야기 중 하나다. 기록되지 않는 화개차의 전설로 우리곁에 머물고 있는 ‘잭살영감’이 만든 차는 ‘작설차’와 ‘발효차’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찔레꽃같은 향편차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평가해보면 ‘잭살영감’은 대단히 선각적인 차인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화개에는 또다른 전설들도 있다. 김복순 할머니와 조태연씨가 1960년 중후반 ‘죽로차’와 ‘작설차’라는 이름을 가진 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판매했다. 조선시대를 지나 한일합병으로 우리들에게 잊혔던 우리차가 이름없는 이들에 의해 그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은 바로 차의 향기와 문화의 위대함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 [프로축구 2005] 김도훈 해트트릭 최다득점 신기원 113호

    ‘111호,112호,113호…. 그가 내딛는 한 걸음이 프로축구의 새로운 역사다.’ ‘토종 골잡이’ 김도훈(35)이 자신의 통산 여섯 번째 해트트릭을 몰아치며 프로축구 23년 통산 최다골의 새 역사를 썼다. 성남 김도훈은 31일 성남제2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인천과의 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11분 헤딩슛으로 골망 왼쪽을 흔들며 김현석(통산 110골·전 울산)을 밀어내고 프로축구 통산 최다인 111호 골을 터뜨렸다. 김도훈은 내친김에 후반 23분 자신이 직접 얻어낸 페널티킥까지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112호골로 한 걸음 더 나아갔고,3분 뒤 또다시 골을 추가했다. 전후기 통산 8호골. 성남은 경기 종료 직전 모따의 마지막골까지 어시스트한 김도훈의 ‘역사적인 활약’에 힘입어 4연승을 달리던 인천을 4-2로 꺾었다. 김도훈은 최근 2경기에서 5골 4도움으로 절정의 감각을 과시했다. 현재 통산최다골 부문에선 은퇴한 김현석을 제외하면 우성용(32·성남)이 81골로 멀찌감치 있어 향후 몇 년 동안 김도훈의 대기록은 쉬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김도훈은 대기록을 의식한 듯 전반 10분 오프사이드를 범하는 등 부진했다. 전반 39분 중거리슛이 동료 남기일의 엉덩이를 맞고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순간 전광판에 ‘김도훈 골’ 기록이 뜨며 일제히 환호성이 쏟아졌지만 부심의 오프사이드 깃발이 이미 올라간 상태. 하지만 후반 들어 마음을 비운 듯 김도훈의 눈빛은 편안해졌다. 비우면 곧 채워지는 법. 김도훈은 후반 11분 브라질 용병 듀오 두두, 모따의 도움으로 손쉽게 통산 최다골 신기록 축포를 성남 밤하늘에 쏘아올렸다. 두두가 왼쪽으로 파고들며 크로스해준 공을 모따가 헤딩으로 김도훈에게 떨궈줬고, 김도훈은 이를 헤딩으로 연결지은 것. 대기록을 달성한 김도훈은 이때부터 펄펄 날았다. 후반 30분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더니, 후반 33분 또다시 모따가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크로스한 공을 넘어지면서 슬라이딩 헤딩 슛, 해트트릭을 완성지었다. 한편 수원은 전남을 2-0으로 눌렀다. 대전과 포항은 부산과 FC서울을 각각 2-1로 꺾었다. 또한 대구는 광주를, 부천은 울산을 각각 1-0으로 이겼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스포츠 포커스] 남녀배구 프로시대 과제

    프로배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프로원년을 선언하고 한 시즌을 치른 남자 배구에 이어 여자 배구도 05∼06시즌부터 프로로 바뀐다. 본격적인 ‘프로배구시대’를 열게 된 것. 하지만 프로로 전환했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 배구계의 처지다. 농구와 함께 겨울 스포츠를 양분하며 구름 같은 ‘오빠 부대’를 몰고다녔던 인기 종목이었지만 일찌감치 프로로 전환하며 마케팅 시장과 관중 동원 등에서 안정적 운용시스템을 구축한 야구, 축구, 농구에 서서히 밀리더니 이제 존립마저 위태롭게 됐다. 배구 프로화는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프렌차이즈 확정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핵심 중 하나는 지역 연고의 유무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열고 남녀 각각 삼성-KT&G(대전), 현대-흥국생명(천안),LG-한국도로공사(구미), 대한항공-GS칼텍스(인천), 상무·한전-현대건설(수원) 등으로 묶어서 공동 연고 지역을 확정지었다. 오는 12월3일부터 4개월동안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7라운드(남 105경기, 여 70경기)를 갖게 된다. 지역 마케팅의 성공 여부가 프로배구 중흥의 성공을 결정짓는다는 얘기다. 더불어 월급을 받던 ‘회사원 선수’가 샐러리캡(남 11억 3500만원, 여 6억원) 아래에서 연봉 체제로 바뀌고, 선수 수급제도 역시 단순한 신인 스카우트가 아니라 프로답게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한다. 외국 용병도 팀별로 1명씩 보유할 수 있다.●응원단 대신‘서포터스’를 그러나 작위적인 연고지 결정 때문에 체육관에는 해당 기업에서 동원한 ‘응원단’이 아닌 ‘진짜 서포터스’는 거의 없다. 메이저 종목들이 선점하고 있는 대도시를 피해 중소도시를 선택하다 보니 시장이 더욱 작다. 지난 시즌 평균관중은 1800여명에 불과했다. 어떤 경기는 300∼400여명의 관중만이 있기도 일쑤였다. 프로 개념이 부족한 구단의 팬마케팅 의식 부재의 결과였다. 4개 구단 중 가장 낫다는 현대캐피탈 ‘자일즈’에도 연고지인 천안 출신은 별로 없다. 안남수 현대캐피탈 사무국장은 “올시즌 팬마케팅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다.”면서 “KOVO나 다른 구단과 협조해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구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배구계에선 단순히 기념품 나눠주는 식의 이벤트가 아니라 스타와 팬의 만남을 정례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자체와 함께 배구 인프라를 늘리고 연고지 유소년팀과 연계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전력 평준화로 활로 모색 지난시즌까지 삼성화재가 실업리그 포함,9연패의 독주를 이어갔다. 현대캐피탈이 제동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연승을 끊는 데 그쳤을 뿐이다. 흥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당연지사.LG화재와 대한항공 등 다른 팀들의 약진이 없는 한 썰렁한 코트를 달구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현재 한국전력과 상무가 아마추어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4개팀에 불과한 프로구단의 숫자도 늘어날 필요가 있다.●‘배구의 박주영’은 어디에 김세진, 신진식(이상 삼성화재), 이경수(LG화재), 후인정(현대캐피탈) 등은 최고 스타로 꼽히지만 이미 식상한 느낌을 준다. 배구 중흥을 위해서는 ‘축구천재’ 박주영(20)에 버금가는 스타가 출현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다. 팬들을 흡인할 수 있는 스타마케팅도 기술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올시즌 ‘신인 최대어’로 꼽히는 강동진(22·한양대)과 ‘초고교급 레프트’ 김연경(17·한일전산여고)이 중흥의 전도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우물안’서 탈출해야 수십억원 몸값을 호가하며 메이저리그와 유럽빅리그로 진출해 있는 야구, 축구, 그리고 NBA 진출을 끊임없이 노크하는 농구와 달리 배구는 여전히 ‘우물안’에 갇혀 있다. 유소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면서 두꺼운 선수층 인프라를 구축할 뿐 아니라 당장 프로배구의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배구 수준의 국제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쉬어가기˙˙˙

    프로농구 전자랜드가 ‘문제 용병(?)’을 영입해 화제. 주인공은 지난시즌 중국프로농구(CBA) 득점왕 출신인 리 벤슨(32)으로,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고교를 졸업한 직후인 1993년 마약거래와 불법무기 소지죄로 7년간 ‘콩밥’을 먹었던 악동.04∼05시즌 SK구단에 합류차 용인의 체육관을 찾았던 벤슨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 숙소를 보니 내가 복역했던 감옥을 연상시켜 도저히 있을 수 없다.”며 하루 만에 미국으로 줄행랑을 쳤었다.
  • [2005프로야구] OK! 경완포

    ‘포도대장’ 박경완(33·SK)이 포수 최다홈런 타이인 통산 252호째 홈런을 뿜어냈다. 박경완은 17일 문학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와의 경기에서 1-2로 뒤진 3회말 무사 1·3루에서 주형광의 4구째 슬라이더를 통타, 좌월 3점포를 터뜨렸다.1991년 프로에 뛰어든 박경완은 이로써 14년,1472경기만에 포수 최다 타이인 252호(시즌 11호) 홈런을 작성,‘헐크’ 이만수(47·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역대 통산 홈런에서도 장종훈(340개·한화코치)-이승엽(324개·일본 롯데)-양준혁(295개)-심정수(284개 이상 삼성)에 이은 공동 5위. 지난 94년 이후 1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박경완은 한국프로야구 유일의 4연타석 홈런(2000년 5월19일 한화전)을 비롯, 포수로는 전무후무한 ‘20(홈런)-20(도루)클럽’에 가입하는 등 독보적인 길을 걸어왔다. SK는 전주고 시절부터 배터리를 이룬 박경완과 선발투수 김원형의 합작으로 롯데에 6-3으로 역전승했다. 김원형은 7이닝 동안 산발 7안타 3실점으로 12승째. 롯데는 4연패에 빠지며 4위 한화와 8.5경기차로 벌어져 가을잔치 희망에서 더욱 멀어졌다. 대구에선 선두 삼성이 3방의 홈런을 몰아치며 두산을 8-4로 물리치고 5연승, 독주 채비를 갖췄다. 삼성은 3회 양준혁의 홈런으로 12경기 476타석 만에 ‘홈런 가뭄’에서 탈출했다. 잠실구장에선 래리 서튼과 송지만의 랑데부포를 터뜨린 현대가 LG를 7-4로 꺾고 4연패에서 벗어났다. 서튼은 시즌 28호 홈런으로 98년 타이론 우즈(전 두산) 이후 7년 만의 용병 홈런왕 기대를 부풀렸다. 현대 김재박 감독은 프로 감독 가운데 6번째로 대망의 700승 고지를 밟았다. 기아-한화의 대전경기는 비로 순연됐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MK 용병술 빛날까

    세대 교체 신호탄인가, 회오리식 용병술인가. 현대·기아차 그룹이 최근 경영진 인사를 단행했다. 여느 때처럼 전혀 예고에 없던 인사다. 재계는 정몽구(MK·67)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ES·35) 기아차 사장 체제 구축을 위한 세대 교체 인사라고 해석한다. 물론 그룹측은 ‘한번 내보냈다가도 다시 부르는’ MK 특유의 인사 스타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룹은 11일 전략조정실장 겸 마케팅 총괄본부장에 ‘쉬고 있던’ 이재완(52) 부사장을 임명했다. 이 직함을 맡아 ‘잘 나가던’ 최한영(53) 사장은 상용차 사업 담당 사장으로 이동했다. 일단은 이 부사장이 6개월만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베이징 올림픽 공식 스폰서 탈락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이 부사장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와 75년 현대차에 입사, 상품기획실장 등 마케팅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 부사장이 마케팅본부장에서 물러났을 때, 후임자도 없이 그 업무를 겸직했던 최 사장의 전보 발령도 여러가지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최 사장은 잘 알려진 대로 MK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내는 측근으로 꼽혀왔다. 그룹측은 “중국 내 상용차 공장 설립 등 상용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독자 사업부문으로 독립시켜 최 사장에게 책임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룹의 ‘두뇌’격인 전략조정실장 자리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해석을 낳는다. 최 사장은 경기고와 한양대를 나와 MK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왔다.99년 이사 대우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 지난해 전략조정실장 사장으로 승진했다.2000년 전후, 그룹이 요동칠 때 핵심참모로 활약했던 MK사단의 마지막 세대로 꼽힌다.‘ES체제를 위한 물갈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격에서 계열사(현대모비스) 부회장으로 옮겨간 이상기(54)씨가 얼마전 사퇴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내쳤는가 싶으면 반드시 다시 불러들이는’ MK의 인사 스타일과, 특유의 순발력과 성실함으로 ‘오너’에 대한 로열티가 강한 최 사장의 품성상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는 지적이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조영증의 킥오프] 감독교체 명분 약하다

    2005동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여자는 한국, 남자는 중국이 우승을 차지하고 막을 내렸다. 한국여자 축구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였다. 북한과 중국을 15년 만에 꺾었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무승부로 값진 우승을 일궈냈다. 한국 여자팀의 우승 비결은 최우수 골키퍼상을 받은 김정미의 탁월한 활약과 팀 최고 언니이면서 리더인 유영실과 홍경숙으로 이어지는 안정된 수비라인이었다. 이들은 세 경기를 무실점으로 이끌었으며 지난해 두 차례 중국을 꺾고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신예들과 조화를 이뤄 탄탄한 전력을 갖추는 데 한 몫을 했다. 물론 안종관 감독의 용병술도 빼놓을 수 없다.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인 것을 감안, 무리한 공격보다는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세밀한 패스로 상대를 공략했고, 내용에서도 앞섰다. 특히 세 경기 모두 박은선을 교체 투입해 흐름을 일시에 뒤집었고, 북한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은 박은정을 적절히 교체투입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남자 대표팀은 부진한 경기로 많은 실망을 안겨주며 최하위에 그쳤다. 전략과 전술 부재, 골결정력 부족 등 총체적인 문제였으며 당초 목표였던 신인 발굴에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부 전문가와 팬들은 본프레레 감독에게 독일 월드컵을 맡길 수 없다며 감독 교체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의 부진을 이유로 감독을 경질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본프레레 감독은 코엘류 감독 퇴진 이후 팀을 재정비,17일 사우디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큰 업적을 달성한 공적이 있다. 이회택 기술위원장 역시 여전히 감독에 대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본프레레 감독으로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기술위원 youngj-cho@hanmail.net
  • 이승엽, 2타점 3루타 활약

    이승엽(29·롯데 마린스)이 시즌 두번째 3루타를 뿜어냈다. 이승엽은 9일 지바 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홈경기에 7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1-0으로 앞선 6회 2사 1,2루에서 구원투수 하시모토 요시타카의 공을 끌어당겨 가운데 담장을 직접 두들기는 통렬한 3루타를 터뜨렸다.2타점을 추가해 시즌 59타점째를 기록, 용병 베니 아그바야니(69타점)에 이어 후쿠우라와 함께 팀내 공동2위에 올랐다.
  • [위기의 한국축구](중) 본프레레만 문제인가

    [위기의 한국축구](중) 본프레레만 문제인가

    우리는 종종 한국축구대표팀의 조 본프레레(59) 감독 이 한국축구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내세운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우리의 고집만으로 벽안의 외국인감독을 몰아세우는 것은 아닐까.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본다. ●본프레레에 히딩크시절 요구는 무리 작금의 한국축구 위기는 비단 감독의 전술·용병술 부재 문제만은 아니다.2002한·일월드컵에서 온 국민의 가슴을 들끓게 만들었던 ‘기적의 4강 신화’는 냉정하게 말하면 ‘오버페이스’였다.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펼쳐지는 지구촌 축제에서마저 소외될 수 없다는 온 국민적 염원이 더욱 컸다. 지금과 달리 당시 K-리그 구단들은 국제축구연맹 대표차출 의무기간을 훨씬 넘는 축구협회의 차출에 순순히 따라 염원에 부응했고, 결국 큰 힘이 됐다. 히딩크 감독이 재임하던 18개월동안 대표팀 차출 기간은 모두 274일(월평균 15.22일)로 현재 14개월째 재임 중인 본프레레 감독의 146일(10.42일)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때문에 본프레레 감독에게 히딩크 시절과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서형욱 MBC해설위원은 “히딩크보다 본프레레 감독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하지만 히딩크는 당시 코치, 트레이너, 개인 비서도 데려온 데다 원정에 합숙까지 하며 팀을 이끌었다.”면서 “당시 협회와 전 국민적인 지원이 4강 신화의 밑거름이었기 때문에 히딩크 시절과 본프레레 체제를 절대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자만심에 빠진 선수들 ‘초심´으로 선수들의 정신 자세도 4강 신화가 남긴 그늘 가운데 하나다. 현재 K-리그 수준은 세계 축구에서도 변방에 불과하다. 자국리그 수준이 떨어지는 국가가 한 대회에서 깜짝 성과를 올린 뒤 쉽게 몰락한 예는 적지 않다. 이전 월드컵 통산전적 6무11패를 기록하다 94미국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했던 불가리아는 다음 월드컵에서 1무2패로 예선탈락했다. 처음 참가한 98프랑스월드컵에서 3위라는 놀라운 업적을 일군 크로아티아 역시 다음 한·일월드컵에서 1승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유로2004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그리스도 2005컨페드레이션스컵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1무2패로 맥없이 무너졌다. 신문선 SBS해설위원은 “당시 이들 팀은 해당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다보르 수케르(크로아티아) 등 일부 스타 플레이어들에 의존했다.”면서 “높은 수준의 자국리그를 가지지 못한 나라가 세계 수준의 대회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한국 대표선수들은 4강 신화의 도취 상태에서 깨어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프로야구 2005] 손민한 ‘등판불패’

    ‘절대 에이스’ 손민한(30)이 방어율 1위에 복귀하며 소속팀 롯데의 ‘가을 잔치’ 불씨를 되살렸다. 손민한은 9일 사직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기아와의 홈경기에서 불꽃같은 호투를 앞세워 팀을 4연패에서 구해냈다.7이닝 동안 24타자를 상대로 삼진 3개를 솎아내며 3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손민한은 8월 들어 첫 승을 올리며 시즌 16승(4패1세)을 달성, 다승왕과 꿈의 20승 고지를 향한 힘찬 진군을 계속했다. 특히 손민한은 이날 무실점 호투로 방어율도 2.59에서 2.46으로 끌어내려 배영수(삼성·2.54)를 제치고 1위에 복귀, 다승과 방어율 등 투수 부문 2관왕의 기대를 부풀렸다. 롯데는 손민한의 호투와 올시즌 17번째 선발 전원안타를 기록한 타선의 집중력을 앞세워 꼴찌 기아를 7-0으로 제압, 홈 3연전을 기분좋게 출발했다. 또한 이날 두산에 패한 현대를 한 계단 끌어내리고 5위를 탈환했다. 두산은 잠실에서 ‘특급 용병’ 다니엘 리오스의 8이닝 무실점 호투에 힘입어 4강 진입을 노크하던 현대를 2-0으로 완파하고 5연승을 달리며,LG를 제친 SK와 함께 공동2위를 굳게 지켰다. 리오스는 이날 1승을 보태 시즌 10승(11패)을 점령, 외국인투수로는 처음으로 4년연속 두자리 승수를 거뒀다. SK는 무명에서 에이스로 화려하게 변신한 선발 신승현의 생애 첫 ‘10승투’를 앞세워 LG를 7-3으로 제치고 파죽의 8연승, 팀 최다연승 기록을 이어나갔다. 올시즌 최장시간(5시간1분) 혈투를 벌인 대전구장에선 삼성이 연장 11회초 김재걸의 2타점 적시타에 힘입어 한화를 7-4로 따돌렸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위기의 한국축구](상) ‘경질론’ 휩싸인 본프레레

    [위기의 한국축구](상) ‘경질론’ 휩싸인 본프레레

    한국 축구가 위기에 휩싸여 있다. 북한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4개국 대항전인 동아시아연맹축구선수권 3경기에서 단 1골만을 넣은 채 2무1패의 ‘꼴찌’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내년 6월 초 개막하는 독일월드컵을 불과 10개월 남겨 놓은 중요한 시기에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단일대회 최하위라는 성적에 축구계는 당혹해 있고, 팬들의 분노는 폭발하고 있다. 월드컵 4강의 쾌거를 달성한 지 3년 만에 밑바닥까지 추락한 한국축구의 위기는 누가 불러온 것인가. 조 본프레레 감독인가, 선수들인가. 위기를 돌파할 카드는 없는가. 본프레레호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골맛을 보여달라 본프레레 감독은 일본과의 최종전을 0-1로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에 만족한다.”면서 “젊은 국내파들을 시험하기 위한 무대였다.”고 책임을 피해 갔다. 그러나 그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동국(26·포항)의 말처럼 팬들은 좋은 경기 내용보다는 이기는 축구를 원한다. 그는 결국 경질론에 직면해 있다. 본프레레호에 쏟아진 비난 가운데 가장 큰 건 ‘뻥축구’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 3경기에서 모두 51개의 슈팅을 날려 단 1골만을 뽑아냈다. 그것도 최후방 수비수 김진규가 프리킥으로 뽑아낸 것이었다. 성공률이 겨우 1.96%에 그치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진이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세트 플레이’의 실종은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측면 돌파 요원들의 부정확한 크로스뿐 아니라 최전방에서 보이는 침투패스의 부재는 골결정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특히 측면 날개의 임무를 맡은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저조한 돌파능력은 득점루트를 더욱 단조롭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감독의 전술과 전략의 부재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취임 14개월 ‘테스트´ 일관 북한의 김명성 감독은 한국과의 경기를 0-0 무승부로 끝낸 뒤 한국을 얼마나 연구했느냐는 질문에 “부임한 지 이제 한 달인 데다 지난 우즈베크전을 녹화로 본 것밖에는 없다.”면서 “선수 파악을 위해 전반전 수시로 선수 교체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본프레레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지난해 6월24일 정식으로 사령탑에 앉았다. 달 수로는 현재 14개월째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고백처럼 ‘테스트’로 일관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시험’은 계속됐다. 그 결과 매 경기마다 선발 출전 선수를 놓고 교체와 복귀를 거듭하는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내며 실패한 ‘용병술’로 낙인찍혔다. 문제는 가장 우수한 공·수의 조합을 찾아내는 노력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시간이다. 이제 독일에서 벌어질 ‘축구 대전’은 꼭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하루빨리 실력차가 크지 않은 선수 25명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자신의 말은 아직도 선수 파악을 끝내지 못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감독·선수 문제점 처방이 먼저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경질론이 물 끓듯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대안부재론. 독일월드컵 개막을 불과 10개월 남기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찾을 대안이 없는 데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게 요지다. 대한축구협회도 8일 “팬들의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겠지만 감독 경질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교체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원칙론이 제기된다. 김주성 MBC 해설위원은 “감독 경질에 대한 선행 과제는 대표팀의 전술적·기술적 부분에 대한 다각도의 점검”이라면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서 팀 경기력이나 감독의 능력에 대해 냉철히 평가한 뒤 대표팀의 문제점에 대해 처방을 내리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말했다. 김호 전 프로축구 수원 감독은 “히딩크 감독 시절 이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때의 ‘4강쇼’에서 깨어나지 못한 협회에도 책임이 있다.”면서 대한축구협회의 자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한 감독의 역량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체질개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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