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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도 무지개 다리를 찾아서

    남도 무지개 다리를 찾아서

    봄이 가장 먼저 훈기를 풀어 놓는 곳, 남도.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도, 들너머 고향 논밭에도 봄기운이 찾아들고 있다. 유행가 노랫말처럼 말이다. 남도를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홍예교(虹霓橋), 즉 무지개다리와 만난다. 우아하고 세련된 자태로, 또 때론 앙증맞은 모습으로 반기는데 금방이라도 봄의 전령이 교각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다. 남도를 대표하는 무지개다리는 전남 순천시 조계산의 양쪽 끝자락에 있다. 각각 조계종과 태고종의 대가람인 송광사와 선암사 들머리에서 오는 봄을 맞고 있다. 남도에 가거들랑 한번쯤 무지개다리를 찾아 자분자분 걸어 오는 봄을 맞아 보시라. 상사호 옥빛 물결을 훔쳐보며 선암사 입구로 들어서면 승선교(昇仙橋)가 가장 먼저 이방인을 반긴다. 우리나라의 무지개다리 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다리다. 건축에 대단한 조예가 없더라도 교각의 우아한 휨새며 하늘로 날아갈 듯한 자태에 금방 눈을 빼앗겨 버린다. 위쪽의 누각 강선루와 어우러지는 장면은 산수화에 다름아니다. 이처럼 돌다리 하나와 누각 하나만으로 절경을 펼쳐 놓은 선인들의 혜안이 놀랍다. 선암사 입구의 무지개다리는 두 개다. 그 중 보물 400호로 지정된 큰 다리가 승선교다. 안내판에 따르면 건립연대는 17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길이 14m, 높이는 7m. 다리 가운데 용머리 조각이 이채롭다. 절집 관계자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라는데,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봄 선암사 가을 송광사라 했던가. 선암사는 봄꽃이 필 때면 절집 전체가 하나의 꽃으로 보일 만큼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 중심에 ‘선암매’라 불리는 600년 묵은 매화가 있다. 특별히 ‘볼 일’이 없더라도 해우소는 잊지 말고 들렀다 가자. 바닥이 무서울 정도로 크고 깊다. 긴 알 모양의 연못 삼인당과 편백나무 우거진 산책로는 시원한 풍경을 내준다. 선암사에서 500m쯤 올라가면 야생화 미로원 등 생태체험장이 조성돼 있다. 송광사까지는 산길로 6.5㎞ 정도 떨어져 있다. 두 절집을 잇는 종주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선암사가 시골 처녀처럼 담담하고 순박한 자태를 하고 있다면 송광사는 도시 처녀의 화려하고 세련된 자태를 연상케 한다. 선암사와 더불어 조계산의 양대 가람을 이루는 송광사에도 능허교라는 빼어난 무지개다리가 있다. 선암사 승선교에 견줘 크기는 작지만 우화각과 육감정, 침계루 등 주변 전각들과 어우러진 화려한 자태가 일품이다. 능허교 아래에도 용머리가 조각돼 있는데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에 엽전 세 냥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절집 관계자에게 설명을 구하니 조선시대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능허교 불사를 벌였는데 그때 쓰고 남은 돈이란다. 시줏돈을 허투루 쓰는 호용죄(互用罪)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을 비운 채 허공으로 향하는 능허교(虛橋) 위에 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우화각(羽化閣)을 날개 삼으니 가벼워진 몸이 봄기운에 실려 날아갈 듯하다. 원래 송광사로 길을 여는 것은 절집 초입의 청량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보수 공사 중이어서 완전히 해체돼 있다. 청량각을 이고 서있었던 무지개다리도 역시 공사 중이다. 대리석을 사용하는 바람에 세월이 더께로 쌓여 있던 예전 자태와는 사뭇 다르다. 송광사는 800년을 함께 살아온 두 그루의 곱향나무 ‘쌍향수’와 쌀 7가마로 지은 4000명 분량의 밥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다는 ‘비사리구시’, 어느 순서로든 포개지는 신기한 그릇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세 가지 보물로 유명하다. 이 중 쌍향수를 보려면 천자암까지 올라야 한다. 잰걸음으로 1시간30분쯤 걸린다. 국보 4점, 보물 11점 등 송광사 경내 수많은 보물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들이 많다. 가장 높고 긴 것으로는 여수 흥국사 홍교가 꼽힌다. 길이 11.8m, 높이 5.5m. 조선 인조 17년(1639년)에 계륵대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잘 다듬은 자대석을 각지게 짜올려 우아한 반원을 이루고 있다. 보성군 벌교읍 홍교는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원래는 뗏목다리가 있었던 곳. 벌교(筏橋)란 이름도 뗏목다리에서 비롯됐다. 썰물 때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는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 이 다리를 위해 주민들이 60년에 한 번씩 갑자년마다 회갑잔치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절반 가까이 보수공사를 벌인 탓에 옛멋을 많이 잃었다. 보물 제304호. 진도군 임회면 남도석성 앞의 쌍홍교와 단홍교는 질박한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편마암 판석을 겹쳐 세운 것으로 전국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다. 구례군 천은사 홍교는 콘크리트로 지어져 자체로는 볼품이 없지만, 다리 위 누각 수홍루와 어우러진 풍경이 빼어나다. 앞에 큰 저수지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유난히 심한 봄가뭄 탓에 바닥을 드러내곤 있지만 각종 드라마나 CF 등의 단골 촬영지로 이용된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선암사(754-5247)는 호남고속도로 승주나들목에서 우회전해 857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송광사(755-0108)는 주암나들목에서 좌회전해 벌교 방면 27번 국도를 타고 간다. ▲맛집: 조계산 굴목재 아래 보리밥집은 순천 지역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유명한 맛집. 장작불로 지은 보리밥에 산나물 듬뿍 넣고 멸치젓갈과 함께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다. 5000원.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을 방문했을 때 백성들이 대접했다는 팔진미는 낙안의 별미다. 읍성 주변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 1인분 1만원선. ▲잘 곳: 송광사 아래 민박집이 1개, 승주읍내에 모텔이 2개 있다. 깔끔한 숙박업소가 많은 순천시에서 묵는 것도 좋겠다. ▲주변 명소: 선암사와 송광사는 각각 상사호와 주암호를 품고 있다. 봄기운을 느끼며 드라이브하기 좋다. 금전산 자락의 자그마한 절집 금둔사는 해마다 가장 먼저 매화꽃 소식을 전하는 곳이다. 납월매(月梅)라고도 불리는 홍매화가 지난주 꽃을 틔우기 시작했다. 낙안읍성에서 선암사 방향으로 가다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순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경주 무장사터서 귀부조각 발견

    경주 무장사터서 귀부조각 발견

     추사 김정희는 1817년 경주 무장사터에서 비석 파편 2개를 찾아냈다.신라 제39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왕비인 계화부인이 돌아간 왕의 명복을 빌고자 아미타불상을 세우면서 그 과정을 기록한 비석이었다.앞서 추사는 비석이 파손되기 이전에 찍은 탁본을 입수하여 당시 청나라의 대학자인 옹방강에게 보냈고,옹방강은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가치있는 비문이라고 회신했다. 무장사터에는 또 이 비석의 머릿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수와 받침대 역할을 한 거북이 모양의 귀부가 남아있었는데,추사는 머릿돌에 발견 과정과 감회를 새겨놓았다.이후 1915년 비석 파편이 하나 더 나와 지금은 추사가 찾아낸 것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경북 경주시 암곡동에 있는 무장사터 아미타불조상 사적비는 머릿돌과 거북이 모양 받침대를 보수하면서 1963년 보물 제125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지난달 아미타불상 사적비의 비신을 복원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 행방을 알 수 없던 거북이 머리 조각 하나를 다시 찾아냈다.  문화재청 건축문화재과 임동훈씨는 “내년으로 예정된 비신의 복원을 앞두고 현지조사를 하다가 주변 정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내려간 계곡에서 가공 흔적이 있는 돌조각을 발견해 파보니 거북이 머리였다.”면서 “맞춰본 결과 왼쪽 귀부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무장사터 아미타불상 사적비는 쌍거북이 모양으로 귀부 양식이 거북머리에서 용머리로 변화해 가는 중간 단계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발견된 거북이 머리는 내년에 비신을 복원하면서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계획이다.무장사는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아버지인 김효양이 숙부를 추모해 창건한 사찰로 전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8)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8)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설악산 대청봉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 한계령, 망대암산을 넘으면 점봉산(1424m)에 이른다. 오색약수로 더욱 유명한 산으로 주릉 북쪽은 설악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산의 남쪽에는 태곳적 신비에 싸인 생태계로 유명한 진동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점봉산은 산역이 넓어 골짜기마다 수량이 풍부하다. 더욱이 그 물들은 어떤 오염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시사철 깨끗하다. 이 덕에 진동계곡을 비롯한 골짜기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정계곡으로 일컬어지며, 맑은 계곡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희귀 담수어류인 열목어가 떼 지어 살고 있다. ●박달령 일대 습지많아 다양한 꽃밭형성 점봉산 정상에서 백두대간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왼쪽에 오색약수터, 오른쪽에 진동마을을 놓고 단목령을 향해 내려간다. 단목령은 오색마을과 진동리를 잇는 백두대간 고갯마루로 박달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일대는 고도의 높낮이 변화가 거의 없는 평지에 습지가 형성되고 있어 생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발 800∼1000m에 이르는 이곳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습지가 발달해 있는데, 고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위도도 남한에서는 북쪽에 치우쳐 있는 지역이어서 생태적 의미가 크다. 경사가 완만한 남쪽으로 너르니골, 숨은골, 북암골 등의 완만한 골짜기들이 발달해 있다. 이들 골짜기 주변에 발달한 습지들에는 갈퀴현호색, 꿩의바람꽃, 도깨비부채, 동의나물, 속새,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등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봄철에 때를 맞추어 찾아가면 동의나물과 얼레지 꽃밭이 장관이다. 이맘때에는 구실바위취, 눈개승마, 애기앉은부채, 참조팝나무, 천마, 초롱꽃, 터리풀, 함박꽃나무 등이 피어난다. 이맘때 숲 속에서 꽃을 피우는 애기앉은부채는 눈 속에서 새싹을 피워 올리는 부지런한 식물이다. 동면에서 깨어난 반달가슴곰이 새싹을 먹는다고 하여 주민들은 ‘곰풀’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찍 돋아난 잎은 6월이 되면 시들어 없어지고, 대신 그때에 맞추어 꽃이 핀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상사화의 생태적 습성과 같다. 잎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낙엽 색깔과 비슷한 꽃이 땅바닥에서 피기 때문에 눈여겨 찾아야 한다. 일단 한 송이를 찾으면 주변에서 여러 송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진동계곡 어느 곳에나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장마 끝날 때부터 가을까지 형형색색 단목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동쪽으로 더 내려가면 북암령이라는 고개에 이른다. 이 일대는 여름이나 가을보다 봄철에 꽃이 좋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4월에 이곳을 찾으면 금강제비꽃, 꿩의바람꽃, 너도바람꽃, 노랑제비꽃, 노루귀, 복수초, 붉은참반디, 연령초, 올괴불나무, 왜미나리아재비, 처녀치마, 피나물, 한계령풀들이 형형색색의 꽃과 새 잎을 달고 봄의 향연을 펼친다. 점봉산에서 꽃이 많기로 유명한 또 한 곳은 곰배령이다. 진동마을에서 강선리계곡을 따라서 두 시간 남짓이면 올라설 수 있는 곳이다. 고갯마루에 초원이 드넓게 펼쳐지고 이곳에서 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핀다. 장마가 끝이 날 즈음 본격적으로 여름 꽃이 피어나기 시작해 가을까지 종류를 달리하며 꽃을 피운다. 식물학적으로 중요한 종은 그리 많지 않지만, 고려엉겅퀴, 까실쑥부쟁이, 둥근이질풀, 말나리, 참산부추, 참취, 터리풀이 대군락을 이루어 꽃을 피우고, 그 앞으로 점봉산 능선들과 골짜기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광도 멋지다. ●가장 긴 진동계곡 용머리 등 희귀종도 만나 곰배령에서 진동리 쪽으로 흐르는 강선리계곡은 점봉산 정상 부근에서 시작되는 골짜기 중에서 가장 긴 골짜기로서 진동계곡의 원류라 할 수 있다. 이곳에도 봄이면 나도제비난, 모데미풀, 속새, 한계령풀 등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노루오줌, 도깨비부채, 물양지꽃, 산꿩의다리, 속단, 숙은노루오줌, 요강나물, 초롱꽃, 터리풀 등이 피어난다. 점봉산 자락의 진동마을은 기린면 소재지인 현리에서 방태천, 진동계곡을 거슬러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10여년 전만 해도 비포장길을 1시간 이상 어렵게 올라가야 하는 오지마을이었다. 이런 곳이다 보니 마을을 찾아가는 길가나 계곡가에서도 많은 여름꽃이 피어난다. 개회나무, 꼬리조팝나무, 꿀풀, 노루오줌, 석잠풀, 쉬땅나무, 털중나리, 활량나물 등은 흔하게 볼 수 있고, 가끔은 용머리, 참좁쌀풀 같은 희귀한 여름꽃도 만날 수 있다. 점봉산 진동계곡은 이제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다.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양수댐이 건설되었고, 그 여파로 진동계곡 일대는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다. 아름다운 꽃들과 잘 어울리던 징검다리, 흙길, 저녁연기, 옛집, 습지, 시골인심 같은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진 것을 보면 개발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분명하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세계 세번째 긴 현수교… 한국관광 명소로

    세계 세번째 긴 현수교… 한국관광 명소로

    미국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있고, 한국엔 묘도∼광양 대교가 있다. 해상 교량 건설분야의 대가인 대림산업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현수교가 될 묘도∼광양간 현수교(조감도) 공사에 주간사로 참여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여수 세계박람회 개막(2012년 6월) 전에 공사를 마무리, 세계 각국의 손님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공사비 4592억원에 총연장은 2260m. 주탑과 주탑 사이의 중앙 경간(徑間) 길이는 1545m로 일본의 아카시대교(1991m),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1624m)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길다. 국내 다리 중 주 경간 길이가 가장 긴 것은 광안대교의 현수교 구간으로 500m에 불과하다. 현재 건설 중인 교량으로는 적금∼영남대교 현수교구간(800m)이 있지만 1937년에 준공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주 경간길이 1280m)에도 크게 못 미친다. ●여수박람회 개막 맞춰 준공 묘도∼광양간 현수교의 주 경간 길이가 1545m인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년인 1545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이 처음 해군제독으로 부임했던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장군 45m 동상 건립 대림산업은 광양측의 케이블 앵커리지(케이블 지지물)를 입에서 분수를 내뿜는 거북선 용머리 모양으로 하고, 묘도쪽 현수교량 끝부분엔 이순신 장군의 45년 생애를 상징하는 45m 동상을 세워 싱가포르의 머라이언(Merlion),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에 버금가는 관광 명소로 할 계획이다. 윤태섭 현장소장은 “세계 3대 현수교인 묘도∼광양간 현수교를 100% 순수 우리 기술로 시공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이 다리는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를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울산 태화강서 내년 세계 용선대회

    울산 태화강서 내년 세계 용선대회

    연어가 돌아오고 수달이 서식하는 ‘생명의 강’으로 복원된 울산 태화강이 세계 용선(龍船·Dragon Boat)대회를 통해 세계에 알려진다. 울산시는 2009년 제4회 세계 용선대회를 울산 태화강에 유치하는 데 성공해 내년 7월10∼12일 3일 동안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시는 국제카누연맹(ICF)이 지난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내년 드래곤보트 선수권대회를 대한민국 울산 태화강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최근 이를 알려왔다고 밝혔다. 드래건 보트는 앞 부분에 용머리 모양의 화려한 장식을 한 배로 10∼20명이 고수의 북소리에 맞춰 동시에 노를 저어 겨루는 수상 레저스포츠다. 아시아·유럽·미국 등에서 인기가 높고 국내에서도 최근 인기가 확산되고 있다. 울산시는 2006년부터 해마다 태화강에서 물축제를 개최하면서 카누·조정과 함께 국내 용선대회를 열고 있다. 세계 용선대회에는 유럽·중국 등 세계 20여개 나라가 참가한다.1회 대회는 타이완,2회는 프랑스에서 열렸고 올해 3회 대회는 폴란드에서 열린다. 울산시 관계자는 “세계 용선대회가 친환경 도시 울산과 태화강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Local] 유달산 앞바다 유람선 운항

    목포 유달산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이 10일부터 운항을 시작한다. 전남 목포시는 2일 “시대해운 소속 196t급 스타마리너호(정원 203명)가 식당과 공연장, 선상 분수대, 노래방 등을 갖추고 밤에 운항된다.”고 밝혔다. 주말엔 선상에서 노래와 공연 등 행사가 열린다. 이 유람선은 갓바위공원 앞 평화광장 선착장에서 출발, 문화예술회관∼삼학도∼여객선터미널∼목포수협∼신안비치호텔∼목포해양대∼고하도∼학섬∼대불항∼영산호를 거쳐 선착장으로 1시간 만에 되돌아온다. 목포시는 81억원으로 평화광장 앞 바닷가와 유달산, 고하도 용머리에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해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내고 있다. 또 하당광장 앞바다에는 음악분수대를 만들고 있다. 야간 운항시간은 7시30분,9시 등 두 차례이다. 낮에는 유람선이 시간마다 출발하며 50t급이 운항한다. 뱃삯은 어른 1만 2000원, 어린이와 장애인은 6000원이다.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2)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2)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경기도 여주에서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고려시대에 위세를 떨쳤던 대찰(大刹)의 옛터가 줄줄이 나타납니다. 절집은 흔적도 찾을 수 없는 폐사지들이지만, 하나같이 국보며 보물급 석조문화재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남아있어 영화롭던 옛 시절을 짐작케 하지요. 신륵사가 있는 여주의 고달사터, 강원도 원주의 법천사터와 거둔사터, 충북 충주의 청룡사터가 그렇습니다. 고달사터만 해도 고달사터 부도는 국보로, 원종대사 혜진탑과 이 탑비의 귀부 및 이수, 쌍사자석등, 석불대좌는 각각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족들이 굶어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데 혼을 바쳤다는 석공의 이름이 고달이었다지요. ●남한강 수운따라 고려 대찰 세워져 횡성과 평창의 경계를 이루는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섬강 주변에는 흥법사터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금 밭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삼층석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지요. 하지만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국보 제14호 전(傳)흥법사 염거화상탑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흥법사에 세워졌던 부도로 알려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염거화상(?∼844)은 우리나라 선불교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도의선사의 제자이니 흥법사는 불교사상사의 측면에서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절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이 절들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한참이나 들어가야 하는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지요. 요즘 감각으로는 궁벽한 시골로 비칠 수밖에 없는 곳에 어떻게 이렇듯 거대한 절들이 세워질 수 있었을까요. 해답은 남한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절들은 대부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지만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요. 당시 수도인 개경에서 육로를 이용한다면 끝없이 산을 넘고 물건너는 고행길이었겠지만, 예성강과 한강을 잇는 뱃길이었다면 빠르고 편하게 닿았을 것입니다. ●가장 화려한 부도, 지광국사현묘탑 실제로 법천사터가 있는 원주 부론면 흥호리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친 대표적인 조세창의 하나인 흥원창이 있었다고 하지요. 흥호리는 한강과 섬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니 강원도와 충청도의 내륙에서 거둬들인 세곡(稅穀)을 개경이나 한양으로 실어나르는 중간경유지로 더없이 좋은 입지입니다. 법천사(法泉寺)는 화엄종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의 사찰로 크게 번성했다고 하지요. 지광국사 해린(984∼1070)이 이곳으로 은퇴하면서 더욱 융성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법천사를 대표하는 유물은 단연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과 탑비입니다. 탑비는 지금도 법천사터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지만, 탑은 국립고궁박물관 옆 경복궁 마당에 서 있습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6·25전쟁의 와중에 잇따라 수난을 겪었습니다.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15년 돌아온 뒤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앞에 세워놓았는데, 전쟁통에 그만 유탄을 맞아 탑신의 지붕돌 위쪽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탑은 1957년 보수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하지요. 지광국사현묘탑은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백미로, 우리나라 부도를 통틀어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승탑이 대부분 팔각형으로 된 집 모양이라면 이 탑은 사리를 운반하는 데 썼던 일종의 가마(寶輿·보여)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요. 실제로 기단의 맨 아래에는 용머리 모양의 장식이 사방으로 뻗어있는데, 바로 가마를 들쳐메는 막대자루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남한강은 당시 교통로이자 문화 소통로 이 탑에는 골곡진 아치형 창문을 비롯하여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고려사’에는 11세기 거란으로부터 왕과 왕세자가 타는 가마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탑은 바로 이 화려한 ‘수입 가마’를 재해석한 결과라는 것이지요. 이렇듯 개경에서도 찾을 수 없는 최첨단 양식의 승탑이 법천사에 세워졌다는 것은 남한강의 수운이 두 곳을 거의 실시간으로 이어주는 문화적 소통로 구실을 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교통로로서 남한강의 역할은 중앙선이 청량리에서 원주까지 이어진 1940년 이후 급격히 쇠퇴하지요. 팔당댐과 충주댐을 막아 남한강의 뱃길을 끊어놓은 한강수계의 물관리 정책은 여기에 결정타를 먹인 꼴입니다. dcsuh@seoul.co.kr
  • [Let’s Go]4월의 가볼만한 곳

    [Let’s Go]4월의 가볼만한 곳

    한국관광공사는 4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꿈결보다 아름다운 길에서 쉼표를 찍다!(전남 신안)´ ‘제주 바다를 따라 걸으며 봄 향기를 마시다(제주)´‘마음을 다스리는 반나절 걷기 예찬(인천 강화)´ ‘사람과 사람 속으로 내딛는 발걸음, 강축해안도로(경북 영덕)´ 등 4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테마는 ‘아름다운 해안선 걷기 여행´. 1 꿈결보다 아름다운 길에서 쉼표를 찍다 흑산도는 가는 곳마다 비경이 펼쳐진다. 그 비경 한편으로 소담스러운 섬마을이 있고 그곳에서 질펀하게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향기도 물씬 풍긴다. 목포항에서 93㎞ 뱃길을 달려 흑산도 예리항에 닿는 순간 두 번 놀란다. 거대한 섬의 덩치에 한번 놀라고, 예리항의 분주함에 또 한 번 놀란다. 흑산도 여행은 크게 육로와 해상으로 나뉘는데, 백미는 육로인 해안 일주도로를 따라 여행하는 것. 흑산도 일주도로를 제대로 즐기려면 걷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일주도로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그림 같은 포구들과 만날 수 있다. 마리를 지나면 상라봉 전망대 입구에 닿는데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표지석이 있다. 상라봉에 서면 흑산도 전경과 함께 예리항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돌아서면 탁 트인 다도해를 배경으로 대장도와 소장도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총 24㎞에서 11개의 섬마을을 만나는 흑산도 일주는 완연한 봄날의 풍취를 온전하게 보여 준다. 도해를 수놓는 아름다운 섬들은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놓을 여행지다. 신안군청 자치관광과 (061)240-8355, 신안군청 관광안내소 240-8531. 2 제주바다를 따라 봄향기를 마시다 천 년 전 섬이 된 비양도는 자동차가 없어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걷기´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2001년 완공된 약 3.5㎞의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바다와 함께 천천히 걸어 보자. 해안일주도로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코끼리바위, 애기 업은 돌 등 기암을 만날 수 있는 북쪽 해안이다. 동남쪽 해안에는 염습지인 펄랑못이 있다. 습지 안의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나무다리산책로가 놓여 있는 것이 특징. 산책로 끝부분에는 비양도 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할망당이 있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형제섬, 송악산 등이 길을 따라 이어지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해안도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제주의 해안도로다. 제주특별자치도 관광협회 (064)742-8861∼4, 한림항도선장 796-7522, 비양도 관리사무소 796-2730. 3 마음을 다스리는 반나절 걷기 예찬 등 뒤로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4월, 포근한 햇살을 맛보고 싶은 이는 강화도로 떠나기를. 강화대교와 강화초지대교를 사이에 둔 2차선 강화 해안도로를 거닐며 따스한 봄볕과 함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맛볼 수 있다. 강화 해안도로는 차로는 15분 남짓한 짧은 코스이지만 풍광을 맛보며 쉬엄쉬엄 걸으면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해안도로를 산책하던 중 바다가 다소 물린다면,53곳의 크고 작은 돈대에 올라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다. 해안도로 산책 후에는 더리미마을에 들러 밴댕이회를 맛보자. 물컹거리는 보통 회와 달리 미세한 가시가 주는 고소함이 일품이다.1600년 불교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전등사가 주는 평화로운 휴식도 마음껏 누리자. 강화도의 마스코트 마니산은 해발 468m의 완만한 산세로 2∼3시간이면 오르내릴 수 있어 등산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032)930-3624∼5, 전등사 937-0225. 4 사람과 사람 속으로 내딛는 발걸음 따스한 봄볕을 즐기며 해안도로를 걷는 기분,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길을 따라 무작정 걷고 싶다면 대게의 고장 경북 영덕으로 떠나 보자. 최고의 해안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진 강축해안도로는 사실 뚜벅이 여행객들에게 더없이 좋은 걷기 코스다.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힘이 들면 사람 없는 자그마한 해변을 찾아 지친 발을 잠시 쉬어 보는 것도 괜찮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살랑살랑 발끝에 와 닿는 파도가 무척이나 시원하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망중한을 즐기다 보면 겨우내 쌓였던 피로가 저만치 물러선 듯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강구항에서 축산항을 거쳐 대진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강축해안도로는 그런 길이다. 무작정 걷다가 잠시 쉬고 그렇게 쉬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면 그만인 길.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0-6396, 삼사해상공원 733-0300, 영덕풍력발전단지 734-5870.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제주, 한라산 세계지질공원 지정 추진

    제주도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이어 세계지질공원 지정에 본격 나선다. 도는 화산섬 제주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해 지질자원의 보전과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31일 밝혔다. 이를 위해 도는 올해 대한지질학회와 1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제주도 전 지역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용역을 실시한다. 세계지질공원 지정 대상지역은 한라산,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등 세계자연유산지구를 포함해 서귀포 해안가 대포·갯깍 주상절리대, 용머리 해안, 수월봉 등 화산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난 지역이 우선 검토되고 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Seoul In] 저소득 청소년 2박3일 제주 방문

    양천구(구청장 추재엽) 저소득 청소년과 지역 내 우수동아리 회원 40명을 대상으로 23일부터 25일까지 2박3일간 제주도 문화체험 행사를 갖는다. 한라수목원, 밀감따기, 절물휴양림, 용머리해안, 승마체험 등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체험하며 자연사 박문관, 제주특산물 견학 등 문화와 역사를 탐방한다. 여성복지과 2620-3395.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사람은 영혼과 육신을 뜻하는 혼백(魂魄)으로 되어 있어,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저승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염라대왕의 명으로 달려온 저승사자는 쇠몽둥이로 등을 치고, 쇠사슬로 얽어매어 사람의 넋을 저승으로 떼어 간다는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이렇게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저승길의 난관을 헤쳐가면서 망자와 동행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가장 먼저 ‘사잣밥’을 차려서 저승사자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지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시신을 운구할 때 썼던 충남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마을의 ‘남은들상여’(중요민속자료 제31호)에서도 용머리판 마룻대 중간에 동자 차림으로 팔장을 끼고 있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상여 꼭대기에 버티고 서서 잡귀들에게 앞길을 막아서지 말고 썩 물러나라고 호령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상여에는 저승사자뿐 아니라, 갖가지 색깔로 치장된 다양한 목조각이 베풀어졌습니다. 가마는 임금이나 고관대작이 타는 것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는 신분의 제약이 없었지요. 혼례식 하루 만큼은 신분이 낮은 신랑신부라도 사모관대와 족두리, 원삼 등 궁중예복을 허용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가마’라고 할 수 있는 상여의 목조각은 오히려 신분이 낮은 사람 것이 훨씬 화려해지기도 했습니다. 남연군 것을 비롯하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실종친의 상여가 단층인 데 비하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살던 만석꾼 최필주의 장사(1856) 때 사용한 ‘산청 전주 최씨 고령댁 상여’(중요민속자료 제23호)’는 4층의 누각식 건물 형태지요. 조각 장식은 살아 생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주고, 저승사자처럼 망자에게 길동무도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성리학이 국교인 조선시대에 장례절차는 당연히 유교관습을 따랐지만, 내심으로는 영혼불멸의 내세관을 그대로 갖고 있었음을 상여 장식은 보여줍니다. 이렇듯 나무로 만든 인형을 목인(木人)이나 목우(木偶), 목용(木俑)이라고 불렀습니다.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에 원색의 화려함과 해학이 더해진 목인은 최근 수집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지요. 특히 상여에 장식된 목인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입니다. 말이나 해태, 호랑이를 타고 있는 선인, 선비, 광대는 악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합니다. 이 망자의 보호자는 일제강점기에는 칼을 든 순사, 해방 이후에는 철모를 쓴 국군의 모습으로 나타나 시대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봉황을 타고 있는 동자를 조각한 목인은 망자가 하늘로 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상여 장식에 광대와 재인, 악공이 보이는 것은 귀인의 행차를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사흘동안 서울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세악수(細樂手)가 연주하는 가운데 광대가 춤추며 익살을 부렸고, 재인은 줄타기나 곤두박질로 흥을 돋우었다고 하지요.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동안 느낄 지루함이나 무서움을 덜어주었을 것입니다. 신랑신부도 등장합니다. 저승에 가서도 좋은 인연을 만나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신랑신부의 모습만 혼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적을 들고 있는 여인도 결혼을 상징합니다.‘호적을 판다.’는 말은 여자가 호적을 남자에게 옮긴다는 뜻이지요. 상여 장식에서는 이승에서 호적을 파서 저승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 인사동 골목에는 목인박물관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집한 3000점 남짓한 목인을 소장하고 있지요. 자칫 잊혀질 뻔했던 목인이 최근에는 민속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민중예술의 한 장르로 미술사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선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경북 상주 남장 곶감마을

    경북 상주 남장 곶감마을

    익어가는 가을을 맛으로 느끼기에 감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샛노랗게 물들 때면 시골마을 집집마다 감을 수확해 곶감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떫은 감을 따고 깎아 가을바람에 말리는 등 열 번의 손길을 거치면, 시린 겨울 우는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할 맛깔스러운 곶감으로 탄생한다. 장대 끝에 걸린 감을 바라보는 농민의 얼굴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다듬는 동네 아낙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환하게 가을 햇살이 맺혀졌다. 국내 최고(最古), 최대의 곶감마을 경북 상주의 남장마을을 돌아 보았다. #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 주무대 상주는 곶감과 누에고치, 그리고 쌀 등의 특산물 덕에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일컬어졌다. 특히 곶감의 맛은 아주 유명해서, 달디 단 곶감에 ‘감동먹은’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남장마을은 주황색 옷을 입은 강렬한 자태로 이방인을 맞았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농가 감타래에 매달린 수만개의 감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당연지사.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탄성 또한 늘어갔다. 맑은 공기 속에서 가을 햇볕과 차단된 채 말랑말랑하게 익어가는 수십만개의 곶감이 전율스럽기까지 하다. 감은 사실 사과나 복숭아처럼 쉽게 생산되는 과일이 아니다.10년된 나무에서도 몇 개 안 열리는 경우가 흔하다. 남장마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경제성이 떨어지는 작물을 심게 되었을까. 김창근(42) 청년회장은 “60∼70년 된 나무가 대부분이니, 아버지의 아버지대에서 감나무를 심었던 거지요. 주변이 온통 야산인 데다, 예전부터 풍양 조씨 땅과 절집 땅을 빼면 농작물을 키울 변변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감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생각돼요.”라고 설명했다.30년 전쯤 남장마을 곶감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이 마을 58가구 중 45가구에서 곶감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100동(1동은 1만개) 이상 생산하는 농가도 5∼6가구에 이른다. 여느 농촌의 경우 60대가 ‘청년’ 소리를 들을 만큼 고령화가 문제지만 이곳만은 예외다. 남장마을 2구에만 40대 이하가 30명이고, 귀농청년도 서너명 된다. # 절집 뒷산에서도 곶감은 익어가고 현재 마을 대부분의 나무에서 감이 수확된 상태. 하지만 ‘까치밥’만은 넉넉하게 남겨 두었다. 곶감 만드는 작업은 10월 중순∼11월 하순까지 이어진다. 떫은 맛이 있을 때 수확을 해서 두 달 정도 건조를 하면 곶감이 된다. 요즘엔 반건시(곶감이 되기 전 말랑말랑하게 만든 것)를 많이 찾아 25일 정도 건조한 다음, 출하하는 경우도 많다. 남장마을 대부분의 농가에서 곶감을 파는데, 올해 말린 반건시 외에는 작년 것이다. 올해 말린 곶감은 대부분 성탄절 즈음에 출하된다. 수십만개의 곶감이 익어가는 대규모 건조장을 둘러본 다음, 붉게 타들어 가는 감나무 사이를 산책하는 것도 별미. 남장마을 초입의 자전거박물관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좋겠다. 마을 위편으로 오르면 노악산(725m)의 품에 안겨 있는 상주 최고(最古)의 고찰, 남장사(南長寺)와 만난다.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 한국 최초의 범패(불교음악) 보급지이며,‘보광전 목각탱’‘철불좌상’ 등 불가의 보물들이 보존된 곳이다. 남장사 진입로엔 지금 늦가을 정취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단풍과 낙엽에 취해 걷다 보면 이내 용머리 기둥, 까치발 다리 모습의 일주문에 이른다. 남장마을 수호신으로 떠받들여지는 석장승(민속자료 제33호)을 만나는 것도 이 부근. 키 186㎝로 기골이 장대한 데다,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은 심술궂게 치켜 올라가 있고, 입 양쪽으로 송곳니가 삐져 나와 있어 여간 험악한 몰골이 아니다. 애써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친근감이 들고 살포시 웃음도 배어 나온다.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530-6062, 산림과 곶감담당 530-6325, 상주곶감발전연합회 536-0907. # 하늘이 스스로 내려온 경천대 상주의 또다른 자랑거리 중 하나가 경천대(警天臺)다. 깎아지른 절벽과 우거진 송림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에 하늘도 감탄했다는 곳이다. 소박, 담백하면서도 유장한 아름다움이 그려진 ‘동양화’와 마주하면,‘하늘이 스스로 내려왔다’해서 붙여진 자천대 (自天臺)라는 또 다른 이름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경천대로 오르는 길은 어린이 차지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기구들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주말이면 상주는 물론, 경북 인근지역에서 찾아온 가족 나들이객들로 만원을 이룬다.3단계 낙차의 인공폭포도 인기 만점. 경천대 주변과 푸른 비단처럼 흘러가는 낙동강을 보려면 전망대까지는 올라야 한다. 쭉쭉 뻗은 소나무숲길을 따라 아이들과 손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근의 무우정에서 바라보는 경천대도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경천대관리사무소 (054)536-7040.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상주 나들목→25번 국도 보은 방면→상주시내→남장마을. # 맛집 상주시청 맞은편, 상주여자중학교 후문 쪽 ‘참 별난 버섯집´은 이름처럼 별난 숫총각버섯탕으로 유명하다. 한우 고기로 낸 육수가 시원하다. 황금버섯 등 특이한 버섯도 맛볼 수 있다.5000원.(054)536-7745.2일,7일 장이 서는 중앙시장 중간쯤의 ‘햇살해장국’에서는 해장국과 비빔밥을 2000원, 칼국수를 2500원에 팔고 있다. 장이 서지 않는 날도 영업한다.536-6861. # 인근 관광명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성주봉자연휴양림(seongjubong.sangju.go.kr)은 상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삼림욕장.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541-6512. 남장마을 초입의 상주자전거박물관은 목마에 바퀴를 단 독일 19세기 초기 자전거 ‘드라이지네´부터 첨단 자동변속 자전거까지 자전거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자전거 모양의 건물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자녀와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534-4973. 상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귀포에 ‘디 워 테마파크’ 추진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 촬영지인 제주 서귀포에 ‘디 워 테마파크’ 조성 계획이 추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 ‘디 워’ 협력사인 ㈜제나픽처스(대표 양훈모)는 22일 서귀포시 제주월드컵경기장 일대에 사업비 800억원을 들여 ‘디 워’ 등 심 감독의 영화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양 대표는 “제주월드컵경기장 육성위원회의 요청으로 최근 경기장을 둘러봤으며 경기장 내부에 소규모로 시설할 것인지, 주변에 부지를 확보해 별도의 시설을 만들 것인지는 심 감독과 협의해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디 워’가 미국에서 개봉되는 다음달 14일쯤 공식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 워’에는 조선시대 여의주를 갖고 태어난 여자 아이가 이무기에 쫓겨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과 이무기가 바다를 누비는 장면 등에서 외돌개, 정방폭포, 섭지코지, 안덕계곡, 용머리해안, 약천사 등 서귀포시 관광지 6곳이 10여분간 나온다. 제나픽처스는 제주의 촬영지 등을 세트로 꾸민 뒤 ‘디 워’에 나오는 200m짜리 이무기 2마리와 315m짜리 용을 비롯해 심 감독 영화에 나오는 각종 캐릭터와 소품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7) 경북 풍기읍 용두 당간머리장식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7) 경북 풍기읍 용두 당간머리장식

    1977년 어느날,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차편으로 가마니에 싼 무거운 수하물 하나가 배달되었습니다. 풀어보니 황금빛이 찬란한 용의 머리로, 당간(幢竿)의 꼭대기를 장식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금동용머리는 경북 영주군 풍기읍에서 하수도 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었지요.9세기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높이가 65㎝에 이르러 당당한 모습입니다. 당간이란 ‘절 앞에 세워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벽사적인 목적으로 당(幢)이란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라고 작고한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 선생은 정의했습니다. 풍기의 금동용머리에는 턱밑의 공간에 도르레를 만들어 놓았지요. 깃발을 달기 위한 장치이니 당간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당간은 대부분 사라져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절의 들머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요. 두 개의 석재를 위로 올라갈수록 갸름하게 깎아 마주세워 놓은 당간지주는 보통 쇠로 만든 당간을 튼튼하게 고정시키는 구실을 합니다. 풍기에서 가까운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들어선 숙수사터에도 훌륭한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풍기읍내에서 찾아낸 용머리 장식을 부석사나 숙수사와 연결지어 상상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당간과 당간지주에 깃발까지 갖춘 건조물 전체를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로 법당(法幢)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단순히 절의 존재를 알리는 표시에 그치지 않는 신앙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적절해 보이는 이름입니다. 충남 공주 갑사와 충북 청주 용두사터에는 당간이 상당 부분 남아있어 풍기의 용머리 장식과 연결지으면 완전한 법당의 위엄있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두 당간은 모두 철제 원통을 연결하여 만들었습니다. 용두사 것은 64㎝ 높이의 원통 20개가 남아있는데, 당간에 새겨진 ‘용두사철당기(龍頭寺鐵幢記)’에 따르면 당초엔 30개였다고 하지요. 원통 높이만 19.2m에 이르니 기단에 용머리 같은 장식이 더해지면 20m를 넘었을 것입니다. 법당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도 만들어졌지만, 중국에서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은 둔황 막고굴(莫高窟) 제331굴의 것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당간만 23기에 이르고 고려·조선시대 것을 모두 합치면 수백기가 당간지주로 흔적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절에 불상과 석탑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절의 입구에는 법당이 당연히 서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이렇듯 한국이 ‘법당의 나라’가 된 것을 두고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전통적인 천신(天神) 숭배와 연관지어 해석합니다. 요즘도 강원도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당간을 짐대라고도 부르는데, 짐대란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세우는 솟대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신 교수는 통일신라시대에 현재와 같은 법당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솟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의 목재 당간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전통적인 천신은 불교가 수용되고 나서도 존엄을 잃지 않았는데, 솟대가 마을 어귀에서 내부를 성역화하듯 당간에도 절이 차지하고 있는 사역(寺域)을 성역화하는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사라지는 우리말 식물이름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사라지는 우리말 식물이름

    어떤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을 부르거나 구분할 때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에도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서 서로를 구분한다. 식물의 이름은 사람의 경우처럼 같은 종(種)에 속하는 개체마다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종이 달라질 때만 다른 이름을 붙이므로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름과 식물이름에는 다른 면이 또 있다. 사람이름에는 동명이인이 있지만 식물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식물은 없다. 이름이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므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런 인식번호가 없는 식물은 이름이 같을 경우에 서로를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식물의 이름인 학명은 매우 까다로운 규칙에 의해서 붙여진다. 학자들이 합의를 통해 만든 이 규칙에서 학명의 표기는 라틴어를 쓰도록 하고 있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언어인 라틴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 변화에 의한 혼란을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라틴어 학명은 우리가 쓰는 언어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말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데는 학명처럼 까다로운 규칙이 정해진 바도 없다. 일반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우리말 이름이지만 학술적으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런 규칙을 정하는 데 관심을 가진 학자가 없었다. 이러다 보니 우리말로 식물의 이름을 부를 때에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난다. 학명의 경우에는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해 두 식물이 같은 것으로 판명되어 하나로 합쳐지더라도 둘 중 하나의 라틴어 학명을 바른 이름으로 쓰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말 이름은 두 식물이 하나로 합쳐진 경우에 혼란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칼잎용담과 큰용담이 같은 종으로 밝혀졌을 때, 학명으로는 먼저 발표된 학명 하나를 선택하여 사용하면 되므로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말 이름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스럽다. 학명처럼 먼저 발표된 학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선취권의 원칙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친숙하게 불러온 이름을 선취권 때문에 버려야 할 때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등 여러 종류의 참나무속(屬) 식물이 있지만 정작 참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는 게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괭이눈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가지괭이눈, 산괭이눈, 애기괭이눈, 선괭이눈 등 여러 종류의 괭이눈속 식물이 있지만 괭이눈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다. 괭이눈이라고 부르던 식물이 있었지만, 그때의 학명을 가진 식물이 한반도에 분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괭이눈이라는 우리말 이름은 아예 없어지게 된 것이다. 고깔제비꽃 괭이눈 구슬붕이 귀룽나무 금낭화 깽깽이풀 꽃다지 꽃마리 나비나물 멀구슬나무 물봉선 바위솔 방울꽃 범꼬리 별꽃 병아리꽃나무 병아리풀 산새콩 솔나리 송이풀 수정난풀 애기괭이밥 얼레지 용머리 은방울꽃 제비고깔 족도리풀 종덩굴 쥐손이풀 타래난초 토끼고사리 패랭이꽃 풍선난초 하늘지기 함박꽃나무 함박이 향기풀 히어리…. 이들 가운데는 식물 자신의 습성이나 모습에서 유래한 이름이 있고, 동물과 연관된 이름도 있으며, 사물의 이름과 관련된 것도 있다. 이름이 붙은 유래나 이름이 뜻하는 의미를 새겨보면 우리말 이름은 더 정감이 간다. 이처럼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우리말 식물이름들이 오랫동안 보전되려면 우리말 이름을 붙이는 절차와 방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식물연구소
  • [OUR STORY] 유채와 쪽빛 만났을때

    [OUR STORY] 유채와 쪽빛 만났을때

    ‘영변에 약산 진달래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제주의 유채꽃은? 와락 품에 안겨 절대 보내지 못한다고 해볼거나. 맞다. 노란 유채꽃 색깔은 사람의 마음을 꽉 붙잡는다. 연인의 품, 그립고도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님의 품이라고 하면 어디 덧나지는 않을 터. 노랑색과 더불어 명시성을 가장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검정색이다. 그래서 노오란 유채꽃과 검은 돌담길이 어우러진 이맘때의 제주는 도도한 자태로 이방인의 시선을 송두리째 차지한다. 언제 가도 좋은 제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스쿠터 여행. 서울에서 일어난 클래식 스쿠터 열풍이 지난해 여름 제주에 상륙해 이젠 어엿한 관광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오른 제주의 봄내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데다, 렌터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이 장점. 조작방법 또한 간단해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면 누구나 금방 익숙해 질 수 있다. 스쿠터 하나 빌려타고 노란 유채꽃에 파묻힌 제주의 봄을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 마침 주말께면 벚꽃도 만개한다 하니 금상첨화 아닌가. 길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만의 길을 달려보자.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배기량 50㏄ 스쿠터를 빌려 타고 해안도로 드라이브에 나섰다. 포근하고 촉촉한 봄바람이 온몸을 애무하듯 훑고 지나간다. 코끝을 스치는 봄내음 연둣빛 신록으로 빛나는 들녘, 노오란 유채꽃이 감싸안은 검은 돌담길.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이 줄을 잇는다. # 바다를 벗하며 달리다 차로는 들어갈 수 없는 조그만 마을길을 돌고 돌아 애월읍 신엄리에 스쿠터를 세웠다.‘남쪽에 있는 뜨락’이라는 뜻에서 ‘남뜨리’라고도 불리는 곳. 새로 조성한 유채꽃 단지에 노오란 유채꽃들이 가득 차 있다.2차선 도로 사이로 이웃한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모습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비릿한 바다냄새를 음미하며 천천히 스쿠터를 몰았다. 도로 곳곳이 시속 50㎞ 제한구역. 과속단속 카메라에 찍힐 일도 없지만, 구태여 빨리 달릴 이유도 없다. 애월읍 한담동 아침하늘 휴게소에서 바라본 지중해풍의 바다는 너무도 이국적이어서 비췻빛이라는 순우리말보다는 에메랄드빛 바다라고 해야 제격일 듯하다. 풍경화에 필요한 구도의 3요소가 변화와 통일, 그리고 균형이라던가.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 빛 바다, 손바닥만한 이름없는 모래사장과 검은 수중여 등이 어우러지며 진경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언덕 바로 아래는 ‘4·3 사건’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 처절한 핏빛 아픔이 쪽빛 바다와 노란색 유채꽃 물결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것이리라. 한담동에서 곽지리를 잇는 해변 산책로는 화가들과 사진 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협재와 금능해수욕장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제주에서 가장 바다빛이 곱다는 곳. 걸음 한번 내디디면 닿을 듯한 비양도가 호박빛을 띤 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차귀도를 지나 물질을 끝내고 돌아오는 해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방산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거름. 뉘엿뉘엿 해가 질 때 다시한번 유채꽃을 유심히 들여다 보시라. 화사했던 한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절반쯤 남은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 사이에 선 유채꽃들의 요염함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 # 반드시 둘러봐야 할 여행코스 제대로 일주를 하자면 3박4일은 족히 걸린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 제주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짧은 일정이라도 반드시 둘러봐야 하는 구간이 있다. ●하귀∼애월간 해안도로 제주공항을 나와 가장 먼저 마주하는 해안도로다. 전체길이는 약 10㎞. 독특하고 아름다운 카페 등이 밀집해 있어 다른 해안도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천혜의 자연미가 다소 훼손돼 있다는 느낌도 받지만, 화려하고 들뜬 분위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코스다. ●귀덕∼협재간 해안도로 제주에서 물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협재해수욕장과 금능해수욕장 등을 만날 수 있다.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만끽하기에 가장 좋은 코스. 비양도가 지척으로 보이는 하얀색 해변을 따라 승마체험도 해볼 수 있다. ●고산∼일과간 해안도로 한치 건조대 위로 떨어지는 차귀도의 낙조와 고산리 드넓은 보리밭 등을 보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코스. 총길이는 10㎞가량 된다. 고산리에서 신도리를 거쳐 일과리에 이르는 구간은 소박한 어촌풍경 일색이다.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 드라이브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고산리에서 신도리로 향하다 보면 제주 서부지역 최고의 천연전망대라는 수월봉과 만난다.‘노꼬물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수월봉은 정상까지 포장돼 있어 이름만큼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해발 77m의 조그만 오름이지만, 바닷가 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탁월한 전망을 제공한다. ●신산∼세화간 해안도로 가장 다채로운 풍광을 자랑하는 코스다. 신산리에서 하도리, 성산, 종달리를 거쳐 구좌읍 세화리까지 연결돼 있다. 영화촬영지였던 섭지코지와 큰 소가 엎드린 형상의 우도, 성산일출봉,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세웠다는 별방성지, 제주의 민속신앙을 엿볼 수 있는 종달리 신당 등을 품고 있다. 특히 우도는 자전거와 스쿠터의 천국. 유채꽃 만발한 13㎞의 해안도로를 도는데 스쿠터로 1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산포 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성인 5500원. 스쿠터는 3300원(왕복 기준, 해상공원 입장료 포함). 우도에서 마지막 배가 오후 5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시간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064)782-5671. # 여행일정 짜기 대부분의 대여업체들이 민박 등 숙박업소와 제휴체제를 갖추고 있다. 가급적 숙소를 중심으로 여행계획을 짜는 것이 유리하다. 또 해안도로를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볼거리도 많고 안전하다. ●1박2일 첫째날은 차귀도와 산방산을 거쳐 중문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좋다. 협재·금능 해수욕장 등 그림같은 해안도로와 마주할 수 있다. 일몰 포인트는 산방산 일대를 추천할 만 하다. 유채꽃밭 위로 붉은 기운을 쏟아내는 일몰이 장관. 이튿날은 선택관광이다. 서귀포와 성산 등 해안도로를 따라 달릴 수도 있고,95번 국도를 타고 새별오름 등 내륙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2박3일 중문과 성산에서 각 1박씩 하는 것이 좋다. 중문과 서귀포 지역에 유명관광지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아예 중문에서 2박을 하는 것도 괜찮다. 이 경우 첫째날은 차귀도 낙조와 모슬포 용머리해안, 둘째날은 산방산과 천제연폭포, 주상절리대, 마지막날은 서귀포시 쇠소깍, 남원읍의 큰엉해안 등으로 계획을 짜면 된다.1만원 정도 수수료를 내면 중문에서 스쿠터를 반납할 수도 있다. #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을 가보자 ●제주 워터월드(www.jejuwaterworld.co.kr) 서귀포시 월드컵 경기장 내에 마련된 물놀이 시설로 바데풀과 스파 등은 물론, 닥터피시탕과 국내 최장을 자랑하는 길이 200m 실내 유수풀 등을 갖추고 있다.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25일 재개장했다. 이곳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감귤이벤트탕. 서귀포시 법환동 마을과 일사일촌 협약을 맺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감귤을 이용한 각종 체험 상품들을 준비했다. 무료로 양껏 감귤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감귤즙으로 전신 마사지를 할 수도 있다. 어른 2만 5000원, 어린이 2만원.(064)739-1930∼3. ●건강과 성 박물관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미성년자 입장금지 박물관’으로 유명해졌다. 여태껏 숨겨오기만 ‘성(性)’을 낮뜨겁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펼쳐놓았다. 한 성 건강교육 자료, 가격이 천만원에 달하는 리얼 돌(real doll) 등 성 관련 기구와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성교육전시관 3개관, 세계 성문화전시관 2개관, 섹스판타지관, 북카페 등으로 구성됐다. 입장은 만 18세 이상. 보호자를 동반할 경우 청소년과 어린이 입장도 가능하다. 입장료는 어른 9000원. 남제주군 안덕면 감산리.(064)792-5700. ■ 출발전 점검 이렇게 하세요 여행동화(064-713-4779), 스쿠터하이킹(742-5006), 제주 바이커스(711-4979), 한라 하이킹(712-2678∼9) 등의 업체가 영업중이다. 50㏄는 2만원,125㏄는 3만원을 받는다(24시간 기준, 헬멧 포함). 카드를 받지 않는 업체가 대부분이어서, 미리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안전 스쿠터는 자동차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여행자 보험에서도 가입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안전운전이 최선. 스쿠터는 엔진출력이 낮기 때문에 고속화도로나 산간도로를 달리는 데 무리가 따른다. 사고위험이 큰 고속화도로(1100.516.99.11.1117번 도로, 산록도로)들은 피하는 것이 상책. 자전거와 스쿠터를 위한 길이 잘 마련된 해안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준비 1. 스쿠터를 몰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동차운전면허증이나 원동기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2. 봄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아침·저녁으로는 차다. 겉옷 속에 덧입을 얇은 방풍재킷 하나쯤 가져가야 한다. 장갑은 필수. 가방은 메고 탈 수 있는 배낭형이 좋다. 여성의 경우 짧은 치마나 하이힐은 금물. 3. 연료통이 작기 때문에 따로 연료게이지가 달려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40∼50㎞정도 주행한 다음 연료를 채워넣는 것이 좋다. 또 1시간 정도 주행한 다음 10분정도는 쉬어야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 ‘원조 거북선’ 복원 길 열렸다

    ‘원조 거북선’ 복원 길 열렸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무찌르며 혁혁한 전과를 올린 원래의 거북선(귀선) 모습이 곧 복원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역사서적이나 교과서에 게재된 거북선 모양이나 정부기관에 전시된 거북선 등은 1795년(정조 19년)에 발간된 ‘이충무공 전서’의 ‘귀선지제(龜船之制)’를 근거로 복원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고대선박 연구가이자 전통 한선(韓船) 기능 전승자인 이원식(73·경기도 용인시) ‘원인고대 선박연구소’ 소장은 21일 한국해양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에서 ‘1592년 귀선의 주요치수 추정에 관한 연구’ 내용을 발표해 주목을 끈다. ‘1592년식 귀선’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공식적인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높이 평가된다. 이에 따르면 ‘1592년식’은 1795년식에 비해 크기나 규모 면에서 30%가량 작지만 용머리에서 대포를 쏘는 등 해상기동력과 전투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새롭게 연구됐다. 두 거북선에서는 포혈이 각각 6개와 10개로 달랐고, 용머리의 각도는 30∼40도와 90도로 차이가 났다. 또한 1592년식에는 거북 잔등에 날카로운 창을 꽂아 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했지만,1795년식은 거북그림을 그려 넣었고 소구경 대포혈을 만들어 놓은 부분이 다르다는 차이도 이번에 새로 밝혀졌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415년 전에 제작된 거북선(귀선·龜船)에서의 화룡점정은 무엇일까. 십중팔구는 용머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북머리가 아닌 용머리를 달았을까.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1592년 6월14일)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의 변란을 염려하여 전선과는 다른 거북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물에는 용의 머리를 달고, 그 아구리로는 대포를 쏘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거북이가 천년을 살면 용, 즉 ‘신귀’가 된다는 이야기(龜變化神龜)가 있다. 아울러 조자용씨가 소장한 ‘귀선도’에 보면 “신귀는 사신(四神)과 사령(四靈)에서 한자리를 차지해 벽사와 길상의 상징이 되어 용왕의 사자로서도 큰 임무를 맡았다.”라고 돼 있다. 따라서 거북선에 용머리를 단 것은 신귀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통 한선(韓船)기능 전승자로 국내 유일한 고대선박 연구가 이원식(73)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소장. 백제 사신선, 통일신라 교관선, 고려 완도선 등 지난 42년동안 36건의 고대선박을 연구·복원제작해 이 방면에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거북선박사 1호’라는 공식명함을 하나 더 추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영역을 쌓았다. 지난 달 실시된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심사에서 그가 제출한 논문 ‘1592년 귀선의 주요 치수 추정에 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 학위수여식은 오는 2월21일.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발표한 연구논문의 내용이다.2006년말 현재 역사 서적이나 교과서 등에 게재돼 있는 귀선도(龜船圖)나 정부 기관에 전시된 모형선은 ‘1795년식 거북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1592년 이순신 수군절도사가 창제한 거북선이 아니라 203년이 지난 1795년(정조19년) 규장각에서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의 ‘귀선지제’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1592년에 일본군의 침략전쟁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1592년식 거북선’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아 연구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소장이 연구한 대목이 바로 이 ‘1592년식 거북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연구의욕으로 400여년 전의 베일을 어느정도 벗겨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찾았다. 강아지 세마리가 먼저 나와 꼬리치며 낯선 방문자를 맞이한다. 현관 입구에는 ‘한선 기능 전승자’‘원인고대선박연구소’라는 문패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때마침 그는 1592년식 거북선의 복원작업을 위한 설계도, 즉 선체 선도(線圖)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선 1592년식 거북선이 1795년식 거북선과 다른 점을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첫번째는 크기나 규모면에서 1795년식에 비해 전체적으로 30%정도 작은 것이 특징. 따라서 선체 전장의 길이가 1795년식(34.05m)보다 7m가량 작은 26.27m이고, 선체 선폭은 1795년식(9.15m)보다 1.9m 좁은 7.06m라는 것. 배 밑창에서 갑판까지의 깊이 또한 1795년식의 2.34m보다 다소 낮은 1.92m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대포의 포혈.1592년식의 경우 좌우측 각각 6개씩의 포혈이 있는 반면 1795식은 이보다 더 많은 10개씩이다. 또한 1592년식에는 없는 소구경포혈이 1795년식 거북잔등 부분에 설치돼 있다. 특히 용머리의 경우 1592년식은 대포를 발사했으나 1795년식은 유황염초를 피웠다고 했다. 아울러 1795년의 용머리 배치가 90도로 꺾인 반면 1592년식은 이보다 완만한 30∼40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밖에 1592년식에는 거북잔등에 창을 꽂아 적이 오르지 못하도록 했으나 1795년식은 거북그림을 그려넣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이 소장은 밝혔다. 이같은 연구결과의 근거에 대해서는 “1592년 당시 이순신 수군절도사의 일기와 장계,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 관련 전적(典籍)에 기록된 거북선의 주요수치와 기타 선박 관련자료 등을 참고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그동안 대한조선학회지 등에 발표한 거북선 관련 선행 연구논문을 활용했다. 특히 전통한선의 제1번 기본치수가 되는 ‘1592년식 거북선의 저판치수자료’ 7건을 발굴했으며 이것이 1592년 거북선 주요치수 연구의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1592년식 거북선은 언제 복원될까. 이 소장은 현재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에서 ‘한국 전통선박 복원 조사연구’ 프로젝트(책임연구원 민계식 부회장)의 사외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다. 이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전통 고대선박 복원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1795년식 거북선과 조선통신사선 등 정밀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소장이 현재 1592년식 거북선의 선도 및 공작설계도 작업을 마무리 중이서 이르면 올 봄 실험용 모형정도는 언론에 공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거북선연구에 대한 논의는 1958년 숭실대 최영희 교수의 ‘귀선고(龜船考)에서 처음 대두되었으며 1964년을 전후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소장 역시 이 무렵 한강유역과 서해안 및 남해안의 전통 한선의 조선기법을 채록하면서 고대선박 연구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공고 4학년때 6·25가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공군사관학교 조종간부후보1기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에 기계담당 공무직으로 1963년 입사했지만 고대선박 연구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1965년에 ‘국방사학회’에 가입한 뒤 그해 첫 논문인 ‘귀선의 과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내친 김에 ‘원인(元仁)고대선박연구소’라는 민간연구소를 설립했다. 1969년에는 은사로 모시는 김재근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작고)와 함께 아산 현충사에서 최초의 거북선 복원작업에 들어갔다.1971년에는 인천대림조선소에서 처음으로 원형의 2분의1 1795년식 거북선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북선은 극영화 ‘이순신’(김진규 감독)에 등장했다. 이후 거북선 복원에만 10여차례, 신라시대 전선(戰船), 장보고 무역선, 백제 사신선, 완도 고려선, 조선통신사선 등 30여 척의 고대선박을 복원, 박물관 등에 전시했다. 아울러 ‘한국의 배’‘고대선박 발달사’ 등 4권의 저서를 냈고 논문은 수십편을 발표했다. 그는 뒤늦게나마 정식 학위를 취득하려고 검정고시와 독학사 과정을 거친 뒤 2002년 해양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집념을 보였다.2004년 석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자 곧바로 박사과정을 밟았고 일주일에 2∼3일씩 부산과 용인을 오가며 노력한 끝에 이번에 그 결실을 보았다. “앞으로는 기존의 1795년식 거북선은 1592년식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하고 이에 따른 후속 작업은 매우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잘못 알려진 우리의 전통 한선에 대한 수정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자손녀들을 만날 때마다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4년 서울 출생 ▲50년 경기공고 4년 재학때 학도병 입대 ▲65년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설립 ▲69년 문화공보부 현충사 귀선 고증위원 ▲85년 한국과학사학회 정회원 ▲92∼96년 해군사관학교 해저유물발굴단 자문연구위원 ▲98년 대한조선학회 정회원 ▲2001년 독학사 검정고시 합격, 한국해양대학 장보고연구소 연구원 ▲04년 해양대 공학석사 ▲06년 공학박사 # 주요 상훈 전통한선기능 전승자(노동부장관 지정), 대통령 표창(01년, 한선기능전승 유공) 등 # 주요 작품실적 현충사 거북선(69년), 중앙정보부·해군사관학교 거북선(71년), 미국EXPO 거북선(84년) 등 수십여 작품. 그외 장보고 전선, 조선통신사선, 완도 고려선, 신라 교역선, 백제사신선, 통나무쪽배 등 30여 작품제작
  • 미술사 용어 쉬운 말로 바뀐다

    미술사 용어 쉬운 말로 바뀐다

    박물관에서 ‘청자투각용두식필가(靑磁透刻龍頭飾筆架)’같은 안내카드를 읽으며 당혹감을 느꼈던 관람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쉽게 이해하라고 적어넣었겠지만,‘청자용머리 장식 붓꽂이’라는 뜻을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용어 개선 작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용산 박물관 시대를 앞두고 2004년부터 추진한 미술사 분야의 용어 개선 작업이 지난해 말 마무리됐다. 개선안을 담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용어-미술사’도 8일 발간됐다. 용어 개선작업은 ▲중학생 수준의 관람객도 이해할 수 있는, 한글 위주 전시 용어의 정립과 ▲혼동되어 사용되던 전시 용어의 정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병용되거나 혼용되던 명칭은 고문헌을 검토하고 최근까지의 연구 성과를 고려하여 하나로 정리했다. 윤두서의 ‘진단타려도’나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나귀에서 떨어지는 진단 선생’과 ‘끝없이 펼쳐진 강산’으로 풀어쓰고 한자를 뒤에 써넣었다. 반면 ‘몽유도원도’처럼 처음부터 제목이 붙여졌거나 고유명사처럼 친숙해진 것은 한자이름을 앞세우고 ‘꿈 속에 여행한 복사꽃 마을’처럼 한글로 풀어쓴 제목을 뒤에 붙여넣었다. ‘영산회상도’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는 ‘나무위에 앉은 한 쌍의 까치’,‘모견도’는 ‘어미개와 강아지’,‘진두대주(津頭待舟)’는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는 광경’이다. 청화백자를 일컬을 때 혼용되던 ‘靑畵·靑花·靑華´는 조선시대 국내산 청화백자를 가리키던 ‘靑畵’로,‘鐘´과 ‘鍾´이 혼용되던 범종은 성덕대왕 신종의 명문 등의 사료에 근거해 ‘鍾’으로 통일했다. 붉은색으로 장식된 백자를 가리키는 진사는 진사(辰砂)라는 안료가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화(銅畵)로 정리했다. 탱화(幀畵)라는 이름을 쓰지 않도록 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탱(幀)은 18세기 이후 불화의 화기에 제목과 함께 쓰고 있으나, 발음이 ‘탱’인지, 명확한 근거가 없어 당분간 탱 대신 도(圖)를 붙이도록 했다. 신중탱은 신중도, 감로탱은 감로도, 산신탱은 산신도, 시왕탱(十王幀)은 시왕도 등이다. 한편 금석문을 먹물로 찍어내어 판독을 쉽게 하는 탁본(拓本)은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일반화된 용어이다. 하지만 탁본은 조선 후기에 주로 쓰이고 탑본(本)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표기하고 있는 만큼 탑본을 활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이 만든 용어개선안을 바탕으로 8차례 열린 자문회의에는 정양모·안휘준 전 현직 문화재위원장을 비롯해 김리나·한정희 홍익대 교수,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조선미 성균관대·이태호 명지대·정우택 동국대·박영규 용인대·이주형 서울대·최공호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등이 참여했다. 작업을 주도한 중앙박물관 김영원 미술부장은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검토하고 고민하고 토론했지만, 학자들이 선호하는 용어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가 너무나 달라 간격을 좁히는 일은 힘겨운 일이었다.”면서 “용어 개선 작업으로 더욱 선명해진 것은 이번에 정리한 것보다 몇 배로 검토, 정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라고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데스크시각] 고구려를 추억함/심재억 문화부차장

    최근 문화재연구소가 펴낸 ‘고구려 벽화고분 보존실태 조사보고서’의 도록을 넘기다가 ‘안악 3호분의 벽화’를 찍은 기록사진에 눈길이 멎었습니다.‘5000년으로 소급하는 우리의 핍진한 역사, 그 허리쯤에 마치 살진 시궁쥐라도 꿀꺼덕 삼킨 배암처럼 커다란 결절을 만들고 있는 고구려의 기억은 지금 우리의 삶과 정신에 있어 과연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귓전에서 문득 대륙을 말 달리던 고구려 사내들의 우렁우렁한 외침이 들립니다. 그러나 오로지 갈망의 부산물인 이런 환청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고구려는 하나의 추상입니다.‘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가당찮은 의식의 빈곤은 우리 삶에서 고구려를 통째로 거세했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가 가진 고구려적인 것이라야 불가시(不可視)한 피(血)의 섞임 같은 것뿐이니 도무지 실체를 잡아낼 수 없는 추상일 수밖에요. 그런 추상의 고구려가 안악묘 벽화의 기록사진 속에서 오롯이 되살아납니다. 푸줏간의 아궁이에서는 활활 불길이 일고, 가마솥에서는 돝고기가 맛있게 삶기고 있습니다. 숨소리 거칠게 드넓은 요동벌을 말달리던 사내들의 허기를 채울 요깃거리겠지요. 갓 삶아낸 돝고기에 독한 술 몇잔 걸친 그 사내들, 문득 ‘사추리 뻐근하게’ 뻗치는 억센 힘을 감당하지 못해 벌건 대낮부터 ‘안해’를 껴안고 나뒹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치미와 용머리기와를 얹은 푸줏간의 정경은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의 퇴행적 신분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조선시대라면 천민 중에서도 맨 앞줄에 섰을 백정이 어찌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저다지 말끔한 옷을 입고 비린 고기를 다뤘겠습니까. 관청에 잡혀가 태질이라도 당할 죄였을 터인데, 그 벽화속 어디에도 조선 백정의 그런 주눅든 표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집도 그렇습니다. 측벽의 반듯한 인(人)자 대공과 추녀끝 낙수 자리에 깎은 듯 만들어 놓은 단은 이 건물이 막 지은 집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푸줏간에 내걸린 살집 푸짐한 멧돼지와 꿩, 그리고 노루가 보기에도 넉넉합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편해 보입니다. 삶은 고기를 건지거나 그릇을 쌓아 안은 여인의 표정이 강퍅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 풍경에서 고구려의 자유로움을 읽습니다. 불길이 활활 이는 아궁이와 한 세트인 온돌은 고구려가 낳은 우리 민족 창의력의 결정체입니다. 어떻게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구들을 덥힐 생각을 했을까요. 세계 역사에 유일한 이 빛나는 창의의 근본은 바로 자유분방함일 것입니다. 자유는 속박받지 않는 상태이고, 속박 없음은 모든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합니다. 그러니 조선시대처럼 한 줌도 안 되는 양반층이 모든 권력과 부, 사회적 절차와 결과까지도 독점했던 그런 막힌 의식으로는 도저히 고구려라는 역사적 실체를 이해할 수 없겠지요. 고구려는 강건한 나라였습니다. 중국에 맞서 한뼘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던 그 억센 강단은 우리 민족이 가진 역동성의 실체였고, 고리타분한 신분의 굴레를 씌워 인민을 속박하지 않았던 자유분방함은 굴종을 거부하는 자존감의 원천이자 발랄한 창의력의 모태였습니다. 새해 벽두에 그 고구려를 추억합니다. 지리멸렬한 현실이 그렇게 제 생각을 이끌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두가 지쳤다고들 말하고, 모두가 가망 없다고들 외고 다닙니다. 그러나 힘이 다해 허리가 휘면 다리 힘으로 버티고, 다리가 꺾이면 사지로 땅을 짚고 서야 합니다. 지난 한해, 참 힘든 여정을 헤쳐 왔습니다. 그러나 힘겨움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너른 대륙을 짓치며, 산과 들을 아우르던 그 고구려 사내들의 기상으로 이 한해 끝까지 줄달음질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서 고구려 사내들의 ‘발정 같은’ 힘을 얻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심재억 문화부차장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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