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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수석조물 송곳니 “수난시대”/전국곳곳서 파손 잇따라

    지역사회보호 또는 불을 막는 상징으로 전국 곳곳에 세워진 호랑이·사자 등의 석조조형물 송곳니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잘라져 없어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이들 석조상은 풍수지리설 또는 전래의 민속신앙에서 유래된 지역사회 보호의 상징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맹수의 송곳니가 불치병치료 또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무참히 뽑혀지고 있다. 이때문에 많은 맹수석조상들은 원래의 송곳니 대신 틀니를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을 잇는 한남대교의 양쪽 끝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4마리의 호랑이및 사자상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입을 벌리고 앉아있다. 지난 69년 당시 「제3한강교」의 이름으로 다리를 준공할 때 서울시가 석상조각가인 홍익대 전뢰진교수(64·조소과)에게 특별히 부탁해 한강과 대교의 수호상으로 만든 것이다. 강남쪽에는 암수사자 2마리가,강북쪽에는 호랑이 2마리가 각각 한강을 등진 상태에서 서로 마주보며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 길이 2m,높이 1m 정도의 실제크기로 1·5m 높이의 기단위에 받쳐져 있다. 이가운데 북쪽의 오른쪽 호랑이는 아랫송곳니 2개,왼쪽 호랑이는 윗송곳니 1개를 틀니로 갈아끼웠다. 또 남쪽의 오른쪽 암사자도 아랫송곳니 1개를 새것으로 바꿨다. 모두가 10㎝쯤 되는 송곳니의 절반이상이 부서져 수호상으로서의 위용에 상처를 입었다. 자식없는 부부나 대입수험생을 둔 학부모,몹쓸병에 걸린 환자들이 근거없는 민간신앙에 빠져 한밤에 몰래 사다리까지 동원해 망치등으로 이빨을 부순뒤 부적으로 지니고 다니거나 갈아서 물에 타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석불의 코를 갈아 마시면 부처의 힘을 빌려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술신앙」이나 명망있는 문인의 비문을 갖고 과거를 보면 장원급제한다는 민간의 「기복신앙」에 기인한다. 즉 힘이나 기적을 상징하는 물건을 몸안에 지니면 똑같은 효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유감주술의 영향이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험을 느꼈다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같은 신앙때문에 이빠진 제왕들이 「틀니」일망정 뒤늦게 제모습을갖춘것은 지난 9월말. 차를 타고 우연히 한남대교를 지나던 이종구 전국방부장관이 이를 보고 이상배서울시장에게 시민의 입장에서 『사소한 것일수록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며 보치를 귀뜸해준 것. 이시장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장안의 유명한 석수장이 김세중씨(38)에게 틀니 제작을 의뢰했다. 김씨는 훼손된 부분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어 강력접착제를 쓰기위해 쌓인 때를 염산으로 3일동안이나 씻었다고 했다. 또 며칠만에 가까스로 찾은 똑같은 석재에 강력접착제를 바른뒤 부서진 이빨주위에 시멘트로 보강했다. 처음 석상을 만든 홍익대 전교수는 『비록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지만 이빨이 부서져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말못하는 석상이라 해도 허황된 믿음때문에 시민의 재산인 수호상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계도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사이비 믿음때문에 전국의 오래되고 유명한 석불이나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코가 거의 남아나지 않았으며 치악산 용머리상의 뿔과 소요산 사자상의 이빨도모두 뽑혀져 있다.
  • 이순신의 거북선/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19)

    ◎속도·화력서 왜선 압도,돌격선으로 명성/학계연구 바탕 복원… 내부구조는 미상 거북선은 임진왜란때 조선수군이 왜군과의 해전에서 조선의 승리를 가져오게 한 전선의 일종이다.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배이면서도 그 실체가 아직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배이다.전쟁기간중에 거북선 건조의 필요성을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거북선의 제도는 승첩에 더욱 요긴한 것입니다.적이 꺼리는 바가 이 거북선에 있고 강사준의 보고도 그러합니다.거북선이 부족하면 밤낮으로 더 만들어 대포·불랑기·화전 등을 많이 싣고 바닷길을 막아 끊는 계책을 하는 것이 곧 위급함을 구제하는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또한 거북선이 해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거북선 제도는 배위에 판목을 깔아 마치 거북등처럼 하였는데 위에 십자모양의 가느다란 길이 있어 사람들이 통행하게 하고 그밖에는 모두 칼끝·송곳같은 것을 벌려 꽂았다.앞은 용머리같이 하고 입은 총구멍으로 썼다.뒤에는 거북꼬리를 만들었다.꼬리밑에는 총구멍이 있고 좌우에도 각각 여섯개의 총구멍이 있으며,싸우는 군사나 뱃사공은 모두 그 속에 숨어 있어 사면에서 총을 쏠 수 있고 앞뒤나 옆으로 나는 것같이 빨리 나들었다.싸울 때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서 송곳·칼끝이 보이지 않게 하여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에 찔리게 되고 화포를 한꺼번에 쏘면서 적선속을 횡행하면 아군은 피해가 없고 적들은 거북선이 지나간 곳마다 헤쳐지고 쓰러졌다』 거북선이 남해 해상에서 적진을 헤집고 다니면서 왜선을 격침시킬 수 있었던 것은 왜선보다 빠르고 화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해전의 승리를 호국정신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여러 곳에서 거북선 복원을 시도한 바 있다.학계의 연구업적을 기초로 하여 복원한 거북선들은 모두 실제 전투상황에 나타난 기록과 비교할 때 속력과 화력구사면에서 기록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또한 겉모양은 실제의 거북선에 가까울지 몰라도 선내의 구조에 대해서는 추측의 범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해군에서는 거북선을 비롯한 임란유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하여 해전유물 발굴단을 발족시켜 해저탐사를 해온지 여러해가 되었다.문헌연구와 병행하여 실증적인 탐사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빠른 시일내에 좋은 결과가 있어 4백년전 용맹하게 적선단으로 돌진하여 무수한 왜선을 격파시켰던 거북선의 신비가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대하여 본다.그리고 한글과 한자의 복합어인 거북선도 이제부터는 순수한 한글인 거북배로 통칭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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