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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서민들의 희망 띄우기] 방황 끝 새출발 고광엽씨

    고생이라면 지겹게 해온 고광엽(23·자동차수리공)씨에게 지난해는 자신의 생활을 바꾼 터닝포인트였다.2003년 군제대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한 광엽씨는 마음이 급했다.어부인 외삼촌의 수입이 일정치 않아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외할머니를 돌봐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끝에 광엽씨는 지난해 12월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의 권유로 1년 동안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고 취업하는 ‘SK청소년행복날개프로그램’에 다니게 됐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기술을 익혔고 지난해 6월에는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따내 자동차정비소에 취업을 했다. 덕분에 30만원짜리 월세 방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집도 구했다. 당장은 고된 몸을 눕히고 나면 꽉 차는 집이지만 광엽씨에겐 남다른 꿈이 있다. 자동차정비소의 사장님이다. 돈을 많이 벌어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못다한 부분까지 할머니에게 잘해 드리기 위해서다. “새해에도 꾸준히,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월급이 올라 할머니에게 용돈이라도 자주 쥐어드릴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죠.”라며 수줍게 웃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0&30] 새해 좋아질 때 버려야할 ‘악마의 유혹’

    [20&30] 새해 좋아질 때 버려야할 ‘악마의 유혹’

    ‘새해엔 꼭 떨쳐 버려야 할 텐데….’버리고 싶었던 생각들을 툴툴 털어내기 딱 좋은 때가 요즘이다.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끊기 힘들었던 습관들을 12월의 달력과 함께 떼어내겠다고 결심해 본다. 그러나 한 해가 간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시간의 선을 넘어선다는 의미일 뿐, 해가 바뀌어도 참기 힘든 유혹은 계속되게 마련이다. 올해 2030세대들의 발목을 잡았던 ‘달콤 은밀한’ 유혹과 그것을 뿌리치기 힘든 속사정을 들어봤다. ●담배보다 끊기 힘든 게임…외로워서 IT세대답게 직장인이건 대학생이건 ‘끊고 싶은 것’으로 게임을 꼽는 예가 다반사다.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외로움 때문에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의 한 명문대 졸업반인 이영수(가명·25)씨는 친구들의 취업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려 게임을 했는데 이젠 게임이 세상과의 ‘벽’이 된 기분이다. “하나 둘씩 취업이 되어서 학교를 떠나고 혼자 있을 때 하기 쉬운 여가가 게임밖에 없었어요. 게임 시간이 늘수록 취업 준비도 어려워졌어요. 그래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될 땐 게임부터 생각나니 큰일이죠.” 이씨는 “내년엔 취업이 잘 풀려 동료도 얻고 게임 시간도 줄일 수 있었으면 한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출퇴근길 휴대용 게임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박찬욱(24·회사원)씨도 게임과 이별을 하고 싶다. 그는 “새 게임이 나올 때마다 다 사야 직성이 풀린다.”면서 “한달 170만원 봉급에서 15만원어치 게임을 사는 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고 털어놨다. “새해를 맞아 지금 있는 게임들을 다 깨기 전까진 게임기를 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보려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자꾸 손가는 습관성 쇼핑 하루아침에 용돈의 몇 배나 되는 월급을 거머쥔 초년병 직장인들에겐 쇼핑이 ‘쥐약’이다. 이정(가명·28·여)씨는 이달에도 50만원이 넘은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인터넷쇼핑몰을 ‘즐겨찾기’ 목록에서 지웠다. 그는 “새해엔 비상금 통장을 만들어 보는 게 목표”라면서도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격을 비교해서 같은 제품을 1000∼2000원 더 싸게 살 때의 쾌감은 아는 사람만 알아요. 그래도 택배회사 업체에서 아예 제 이름을 외워서 사무실에 물건을 배달해 놓을 때는 동료들에게 겸연쩍더군요.” 1년차 은행원 김보민(26)씨에겐 독특한 쇼핑 습관이 생겼다. 트레이닝복을 좋아한 지는 꽤 됐지만 직장인이 된 뒤 산 트레이닝복만 10개가 넘는다. “여자친구가 ‘벨벳 재킷에 청바지 입은 남자와 데이트하고 싶다.’고 핀잔을 줘도 저도 모르게 회색 트레이닝복에 눈길이 가요. 복장이 엄격한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무난한 색의 실용적인 옷만 찾게 된 것 같아요.” 그는 “내년엔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구입하고 싶은데 왠지 안 살 것 같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훔쳐보기 그만,‘쿨’하고 싶어요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를 밟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젊은이들의 습성일까. 신모(26·여·회사원)씨는 2년전 헤어진 남자친구 소식을 인터넷으로 추적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 “옛날엔 차라리 나았을 것 같아요. 한번 헤어지면 소식도 듣기 힘들었잖아요.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 무얼 하는지 다 알아낼 수 있는 게 문제예요.” 신씨는 “조금만 손품을 팔면 친구의 친구 홈페이지를 통해서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연결 고리를 통해 또 다른 정보를 얻게 되는 인터넷의 특성이 훔쳐보기의 중독을 부른다.”고 탓했다. 교사가 된 김모(27·여)씨도 “교회에서 만난 짝사랑 상대의 홈페이지에 버릇처럼 들어가게 된다.”면서 “새해엔 만일 그 사람 홈페이지에 한번 더 방문하면 제 홈페이지를 폐쇄하겠다.”면서 각오를 다졌다. ●여유도 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을 새해 목표로 꼽지만 ‘일에 집중하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사람도 있다.2년차 최미도(27·여)씨는 달력의 빨간 날만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핑계를 대고 휴가를 내는 요령이 생긴 뒤 업무 중에도 자꾸 달력을 보게 돼요. 일에 적응할수록 쉴 수 있는 방법이 보이는데 제 미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쉬면서 얻게 되는 재충전의 효과도 적지 않아요.”최씨는 일과 여유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정하지 못했지만 “여유를 버리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시생과 학원강사라는 타이틀 중 어느 한 쪽도 버리지 못하는 이한석(가명·32)씨의 고민은 더 심각하다.6년째 사법고시에 도전 중인 김씨는 여자친구 집안의 반대 때문에 ‘예비 법조인’이라는 이름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내년에는 당당하게 고시를 포기하고 취업하고 싶지만 여자친구 집안의 반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원강사나 과외 선생보다 ‘고시생’이라는 타이틀을 선호하는 만큼 이를 버리고 싶어도 포기하기 힘든 것임에는 틀림 없다.”고 덧붙였다. ●폐기처분하고 싶은 나만의 습관들 남들이 웰빙을 대세로 여길 때 웰빙에서 멀어지고 싶은 사람도 있다. 강정욱(28·대학원생)씨는 웰빙 열풍이 불기 시작한 재작년쯤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몸에 좋다는 건강 보조제도 이것저것 사모았다. 지금은 건강 보조제만 하루 8개 먹는다. 처음에는 몸이 가뿐해지는 것 같아 좋았지만 언젠가부터 주객이 전도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아침에 비타민 한 알 먹는 것을 깜빡 잊으면 하루종일 불안하고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라면서 “남들은 새해 금주, 금연한다는데 건강 보조제에 대한 집착부터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우진(25·여·회사원)씨는 출근하자마자 포털사이트에서 연예뉴스를 눌러보는 버릇을 고치고 싶어 한다. 그는 “내용을 보면 허탈하지만 자극적인 제목을 보면 자꾸 손이 간다.”면서 “하루 몇 분에 불과하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니 쉽게 끊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재희 이재훈기자 s123@seoul.co.kr
  • [딸자랑] 서라벌예술대학장 임동권(任東權)씨 맏딸 선혁(仙赫)양

    [딸자랑] 서라벌예술대학장 임동권(任東權)씨 맏딸 선혁(仙赫)양

    서라벌 예술대학장 임동권씨(44)의 2남2녀중 맏이인 선혁양(20)은 풋과일처럼 마냥 싱싱한 아가씨. 사과를 닮은 새빨간 두 볼과 웃을 적마다 깊게 파이는 볼우물이 여간 사랑스럽지가 않다. 이화(梨花)여대 2학년에 재학중. 전공은 시청각교육학으로 방송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선혁이는 집안 어른들과 떨어져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하던중 태어난 아이라서 가장 내 손길이 많이 간 아이죠. 엄마가 식사준비를 하면 으례 선혁이는 내차지였고 저녁뒤 산책이라도 할 때면 항상 선혁이를 안고 다녔읍니다』 원래부터 산책을 즐기던 아빠와 아기때부터 바깥에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꼬마 선혁양은 의기가 상통, 저녁이면 늘 동네 산책을 즐겼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딸아이와 함께 거리를 걸을 때가 있는데,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고 걸어요.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그런 「매너」가 생활화하지 않아 거북살스럽지만 참고 견디죠』, 가끔씩은 엉뚱한 아가씨와의 「데이트」인듯 오해를 받아 곤란하기도 하나 역시 아빠는 발랄하고 구김살 없는 맏따님과의 「데이트」가 즐거운 눈치이다. 『역시 딸 아이는 크면 친구같이 되는 것 같아요. 커다란 문제부터 잘디잔 일상적인 문제까지도 일단 우리 가정의 일은 딸아이와 의논을 합니다. 딸 아이가 찬성을 해주면 일단 안심이 되고 흐믓해집니다』 어머니 이정원(李貞遠·42)씨의 말이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선택할때 나는 문과(文科)계통을 권했어요. 여러 면에서 교양을 높인다는 의미로…. 그러나 자신은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시청각교육학과를 택하더군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사진「클럽」에를 들더니, 열심히 일요일이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더군요』 취미로 시작한 「카메라」는 「프로」급. 지난 3월에는 시청각 교육과 주최 사진전에 작품 2점을 출품하기도 했고, 그중의 1점은 사진잡지「포토그래픽」에 실리기도 했다는 아빠의 자랑이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감수성이 예민해요. 「센스」도 빠르고…. 항상 상냥하고 싹싹해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죠. 그러나 요즈음은 유난히 애교를 떨 때는 조심을 해야죠』 새 옷을 사달라고 할 때, 또는 용돈을 좀더 올려 달라고 요구할 때는 엄마 아빠에 대한 「서비스」가 놀랍다는 걸 뻔히 알고 있지만 귀여운 재롱에 그만 아차, 아빠는 속아넘어 간다는 것. 그러나 아빠는 도시 싫은 내색이 아니다. 『내 전공이 민속학이니까 「민속학 개론(民俗學 槪論)」이라는 책을 항상 가까이 놓고 지냈어요. 어려서도 한자라고는 모를 나이인데도 언제나 책을 찾는 눈치이면 얼른 「민속학 개론」을 갖다 주더군요. 4살짜리 꼬마가…』- 아버지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고는 신통하다는 듯 고개를 기웃거린다. 『선혁이는 여러가지 「서비스」를 기분내키는대로 하지만 항상 잊지않고 계속되는 것이 하나 있어요. 차 심부름입니다. 밤 늦도록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 일과인 만큼 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면 목이 컬컬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때면 언제나 「코피」를 끓여옵니다』 아무리 피로한 때라도 따님이 끓여주는 한잔의 「코피」를 마시고 나면 온갖 피로가 깨끗이 사라진다는 아빠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대기자 칼럼] 떨고있는 여성 박사들/신연숙 문화담당

    비정규직법의 국회 통과로 2년이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의무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고용주들의 발등의 불이 되었다. 특히 대학과 연구소들은 그동안 싼값에 써왔던 비전임교원, 계약직 연구원 등의 계속 임용 여부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다고 한다. 석·박사급 고급인력을 1년 단위 계약제로 2∼3년씩 활용해 왔던 관행을 계속하면 정규직화 대상이 돼 엄청난 인건비 부담을 떠안게 되리라는 걱정 때문이다. # “연구 계속할 수 있는 여건 기대” 이런 소식에 접하면서 즉각 떠오른 것은 지난달 어느 토론회 청중석에서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열변을 토하던 한 여성 박사의 모습이었다.‘여성과학기술인력 현황의 실제적 문제점과 과제’를 주제로 한 이 토론회에서 그는 “아무리 현란한 육성·지원정책을 얘기해도 연구를 하고 싶은 여성 박사들이 연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는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라면서 비정규직 박사 문제의 실상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조목조목 제시하였다. 그의 요지는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연구를 할 수 있게 별도의 연구비 지원제도를 마련해 주고, 강사직이라도 좀더 안정적으로 신바람나게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정규직법 통과 이후 보도를 보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 같은 분위기다. 정규직화 요구를 피해 1년 단위이던 재계약 기간이 10개월로 줄었다거나 2년 이상 채용을 안 하겠다는 말도 들린다. 여성박사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대학부터 석·박사학위까지 10년 공부를 마친 고급인력들이 직장을 못 잡아 비정규직으로 떠돌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그토록 앞장서서 활발한 육성책을 펴고 있는 여성 과학기술인력이 과학기술분야 비정규직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 시간강사 30%가 여성 과학기술부의 ‘2005여성과학기술인력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공계 전체 대학교원 5만 6566명 중 여성은 1만 1261명으로 19.9%이다. 그러나 이를 직위별로 보면 정규직 교수의 여성비율은 10.2%인데 반해 연구교수 등 비정년직 교수는 18.2%, 시간 강사는 30%가 여성이다. 여성은 절대 숫자도 적지만 비정규직에 집중돼 있음을 볼 수 있다. 공공연구기관의 경우 비정규직 집중도가 더욱 심하다. 전체 정규직 중 10.7%가 여성인데 반하여 비정규직 중 43.1%가 여성이다. 여성 과학자들은 이같은 상황이 일어난 원인으로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있음에도 과학자 채용에 차별이 여전하며, 비정규직이라도 감수하여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여성 과학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분야별로 인력의 과잉공급이 초래된 데도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 분야별 인력 과잉공급이 근본원인 그러나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고급 과학기술인력은 더 많이 배출돼야 한다. 특히 어렵게 배출된 인력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남녀 간의 불균형 역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이런 측면에서 획일적 비정규직 정책에 고급과학기술 인력의 활용이 묻혀져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걱정이 되어 여성과학자에게 전화를 걸어 후일담을 들었다.‘유망여성과학자네트워크’라는 단체를 만들어 ‘부산지역 박사급 여성과학자 PR박람회’를 열었다고 했다. 여성 박사 30명이 자기 소개 포스터를 제작, 전시하여 부산지역의 CEO와 CTO들에게 ‘나를 사가세요’를 외쳤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대학 수준에서부터 장학금, 용돈까지 주어가며 과학자를 육성하고, 한쪽에서는 ‘인력시장’까지 서는 이 상황을 개선할 길은 없을까. 신연숙 문화담당 yshin@seoul.co.kr
  • “이혼 장애인 김씨는 민사망이 고맙습니다”

    부산 연제구에 사는 지체장애인 김모(43)씨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간사회 안전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김씨는 지난 89년 결혼, 어렵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그러나 5년여전 아내가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잦은 불화를 겪다 최근 아내와 이혼한 김씨는 고2(17), 중1(14)짜리 남매를 뒷바라지하며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해야만 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다 몸이 불편해 이마저 최근 그만뒀다. 김씨의 딱한 사연을 접한 민간사회안전망은 김씨에게 성금을 건네 주고 기초수급대상자로 등록시켜 매월 70여만원의 생계비와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받도록 조치했다.김씨는 “민간사회 안전망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고 그나마 생계를 꾸려 가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차상위계층을 돕는 연제구의 민간사회 안전망 활동이 세밑 화제가 되고 있다. 민간사회 안전망은 연제구 연산 8동 주민들이 주축이 돼 지난 2001년 발족됐다. 현재는 13개 동 전역으로 확대됐으며 15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입소문을 듣고 가입하는 회원도 크게 늘고 있어 내년에는 3000여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8500만원인 기금도 내년에는 1억 5000만원으로 크게 증가, 본격적인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회원 대부분은 재래시장 상인, 직장인, 자영인 등으로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매월 일정액의 기금을 내 자신보다 처지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곳곳을 누비며 복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을 찾아내 도움을 주고 있다. 그동안 100여명이 민간사회 안전망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연산8동 연천부녀경로당 할머니들이 자식들로부터 받은 용돈과 재활용품을 팔아 마련한 30만원을 흔쾌히 기탁했다. 자영업을 하는 김모(47·연산1동 )씨는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주민을 외면할 수 없어 회원으로가입해 활동을 하고 있다.”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생각에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민간사회 안전망은 앞으로 이웃돕기에 한정하지 않고 환경 등 지역공동체 운동의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활동을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이위준 구청장은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가정이 해체되거나 붕괴되면서 빈곤층으로 내몰리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며 “민간사회 안전망이 이들에게 도움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쥔있는 몸 털던 계(契)판의 사나이

    쥔있는 몸 털던 계(契)판의 사나이

    노름판에서 사귄 가정주부를 꾀어내 정을 통한 상습도박꾼이 남편에게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을러대며 100여만원을 뜯어쓰다 결국은 행패를 못이긴 여인의 고발로 쇠고랑을 찼다. 말다툼 판에 나타난 의리(義理)의 사나이 계를 하던 동네부인들과 집안에 모여 심심풀이 화투놀이를 하던 김귀자(金貴子·32·가명·서울 서대문구 합동)여인이 도박꾼의 검은 함정에 빠진 것은 지난해 5월초, 남편이 지방출장을 떠나 보름동안 집을 비운 사이였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동네부인들을 안방에 불러놓고 화투놀이를 하던 김여인 집에 하루는 안면이 전혀 없는 40대여인 한 사람이 찾아왔다. 「혁이엄마」라는 이 40대여인은 『이웃에 새로 이사왔는데 인사도 할겸 놀러왔다』고 했다. 이 여인은 그 뒤 매일같이 찾아와 김여인들과 어울려 화투놀이를 벌였다. 그러다가 1주일뒤 이 여인은 낯 모르는 30대청년 한 사람을 데려왔다. 「혁이엄마」의 동생이라고 자기 소개를 한 뒤 화투판에 끼어들려는 이 청년에게 김여인과 동네부인들은 『여자들끼리 심심풀이로 하는 놀이에 남자가 무슨 참견이냐』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고분 고분하게 물러나려 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등 시비조로 나오며 문밖으로 쫓아 내려는 김여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때 나타난 사나이가 김여인의 행복을 끝내 갈갈이 찢어놓은 박경술(朴京述·30·서울 영등포구 봉천동 94). 김여인이 뒤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것은 박이 꾸민 연극이었다. 말썽꾼 몰아낸 그사내가 화투놀이에 끼어 들더니 박은 김여인과 실랑이를 벌이던 30대청년의 멱살을 쥐고 「못된 놈」이라면서 호통을 친 뒤 주먹으로 서너대 후려갈겨 쫓아 보냈다. 혹시 경찰에 신고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김여인은 갑자기 나타나 말썽을 부리던 청년을 쫓아준 박이 고마왔다. 박은 『여자에게 행패하는 놈은 그냥 못두는 성질』이라면서 자기 소개를 한 뒤 사라졌다. 그 다음날 저녁 동네부인들이 김여인집에서 화투놀이를 벌일 때 박이 김여인을 찾아왔다. 김여인을 누님으로 삼겠다면서 능란한 말솜씨와 「유머」로 동네부인들과 어울려 화투판에 끼어들었다. 주로 돈 많은 동네부인들이 모인 김여인의 곗군들도 누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박을 마다하지 않고 호의를 베풀었다. 이웃 황모여인(36) 집에서 화투놀이를 벌이던 지난해 6월 초여름 어느 날 김여인이 대준 밑천으로 박은 얼마간의 돈을 딴 뒤 자기는 「꾼」이며 노름을 해서 잃어본 적이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김여인이 보기에도 박의 솜씨는 놀라왔다. 며칠뒤 박은 노름판에 간다면서 1만원을 꾸어달라고 졸랐다. 김여인이 대준 돈으로 10만원을 딴 박은 용돈으로 3천원만 가졌을 뿐 나머지는 『누님의 살림에 보태쓰라』면서 모두 김여인에게 주었다. 돈도 돈이려니와 박의 이러한 행동에 김여인은 『의리를 지킬줄 아는 동생』이라고 동네부인들에게 자랑까지 했다. 그뒤 박은 한남동 모처에서 큰 노름판을 벌인다면서 김여인에게 구경삼아 같이 가보자고 꾀었다. 박을 따라 비밀도박판에 간 김여인은 담배연기가 자욱한 좁은 방에서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화투장을 튕기며 충혈된 눈으로 열을 올리는 남녀도박꾼들이 모습에 시간 가는줄 몰랐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난 노름에서 박은 15만원을 땄다. 돈얻어가고 끝내는 덮쳐 “남편에게 알리겠다” 공갈 『축하 「파티」를 열자』는 박의 꾐에 끌려간 곳은 삼각지 「로터리」앞 모 음식점. 박이 따라준 축하술에 속이 달아오른 김여인은 도박판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박에게 손목을 잡혀 부근여관에 들어갔다. 술김에 박과 하룻밤을 지낸 김여인은 남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슴이 떨렸으나 남편 외의 남자와 동침하는 「드릴」도 싫지는 않았다. 그 뒤부터 박은 동침할 때마다 노름밑천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선뜻 박의 요구를 들어주던 김여인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함정으로 빠져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돈을 순순히 내주지 않으려는 눈치만 보이면 박은 은근히 협박을 해댔다. 『네 남편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것. 이 핑계 저 핑계로 남편에게 돈을 뜯어내는 동안 가계부는 적자 투성이가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느닷없이 찾아온 박을 본 남편에게 「먼 친척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해대고 항상 박을 위해 준비해둔 10여만원을 박에게 주며 『다시는 오지 말아 달라』고 눈물어린 호소를 했으나 박이 모처럼 잡힌 돈줄을 쉽게 놓을리 없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 김여인이 나오지 않을 때는 번번이 집으로 찾아와 큰 소리로 떠들며 행패를 부리고 돌아갔다. 김여인이 여러차례 박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4월6일 저녁 박은 칼을 품고 김여인 집을 찾아왔다. 마침 아이들은 건넌방에서 잠들었고 남편이 집에 오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있어야 했다. 안방에 제집처럼 나들며 칼을 꽂고 협박하기까지 마치 제집처럼 안방에 누워 김여인에게 소주 1병을 사오라고 해서 술을 마시며 박은 칼을 방바닥에 꽃아 놓고 협박을 시작했다. 『돈 20만원을 더 내놓든지 너의 행복을 포기하든지 둘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을러댔다. 김여인은 부탁을 들어줄테니 이제는 깨끗이 헤어져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박은 1주일 뒤에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4월14일 박이 찾아와 약속한 20만원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네 남편을 만나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면서 술에 취해 안방에 드러 누웠다. 이 이상 더 참을 수 없다고 느낀 김여인은 밖으로 뛰어나가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떨리는 손으로 112「다이얼」을 돌렸다. 잠시뒤 달려온 백차에 실려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연행된 박은 피해진술조서를 쓰는 김여인을 바라보며 『차마 경찰에 신고할 줄 몰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우홍제(禹弘濟) 기자>[선데이서울 70년 4월 26일호 제3권 17호 통권 제 82호]
  • 노인·주부 대상 ‘보이스 피싱’ 극성

    노인·주부 대상 ‘보이스 피싱’ 극성

    “○○은행입니다. 당신의 카드가 도용됐습니다. 빨리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불러주세요.”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사는 주부 서모(64)씨는 지난 13일 황당한 사기를 당했다.20대 여성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은행인데 카드로 350만원 쓴 적 있느냐. 도용된 것 같으니 신고해야 한다. 휴대전화 번호 알려주고, 빨리 가까운 은행 현금자동지급기(ATM)로 가서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깜짝 놀란 서씨는 곧바로 인근 은행으로 달려갔고 그 여성의 지시에 따라 한 은행 계좌로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02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곧 연락을 준다던 여성은 더 이상 전화가 없었다. 서씨는 그제서야 사기임을 눈치채고 광진경찰서에 신고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이없고 제 자신이 한심했어요.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을 사기당하고 나서 밤새 끙끙 앓았습니다.” ●은행원 사칭한 전화사기 급증 최근 들어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이 기승을 부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대부분 금융 지식이 없는 노인이나 주부 등이 범인들의 ‘낚시질’ 대상이 됐다. 주부 김모(50·강남구 신사동)씨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 지난달 말 중국동포 말투를 쓰는 20대 여성이 외국으로 보이는 발신번호로 휴대전화를 걸어와 “△△은행 고객센터인데 카드가 연체됐더라. 대신 신고해줄 테니 ATM 앞에 가서 부르는 대로 누르면 카드 바코드를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인근 은행으로 내달렸고 속절없이 1500만원을 날렸다. 서울 강남경찰서에도 유사한 사건이 접수됐다. 이 시민은 “카드사 직원인데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냉장고 300만원짜리를 사지 않았느냐.”는 전화를 받고 “없다.”고 말했더니 “당신 카드가 해킹돼 내일쯤 경찰청 특수부나 검찰청에서 연락이 갈 거다. 해결하려면 주민번호 뒷자리가 필요하니 가르쳐 달라.”는 답을 받았다. 이 시민은 결국 주민번호를 알려주진 않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에 상담을 의뢰했다. 이 때문에 강남서에서는 “카드사를 사칭하는 신종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으니 수사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자체 지시를 내렸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도 이 기업의 ‘홍콩법인’을 사칭하며 “25주년 이벤트에 당첨되어 현금을 보내줄 테니 주민번호, 주소 등을 가르쳐 달라.”는 내용으로 사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홈페이지에 주의를 당부했다. ●‘보이스 피싱’ 수사 착수 경찰은 전국적으로 공조 지시를 내리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데다 발신번호 추적도 쉽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전화 온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안 된다.”면서 “피해가 발생해도 나중에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먼저 카드사에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보이스 피싱 ‘피싱(voice phishing)’은 개인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를 합성한 조어. 신용카드 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알아내 범죄에 이용하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 여기에 ‘음성(voice)’을 붙이면 전화를 통한 피싱 사기를 일컫는 말이 된다.
  • 아내가 출장가기만 노리는 간큰 사내의 종말

    “원,세상에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이지? 아내가 없는 틈을 타 논다니와 놀아나고도 오히려 협박을 하다니!” 중국 대륙에 아내가 출장간 것을 빌미로 매소부(賣笑婦)와 동침하다 덜미를 잡히자 아내를 오히려 협박한 파렴치한 50대 사내가 공안(경찰)당국에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뻔뻔남’의 장본인은 올해 56살의 왕(王)모씨.중국 동부 산둥(山東)성 둥잉(東營)시에 살고 있는 그는 아내가 없는 틈을 노려 노류장화(路柳牆花)와 즐기다가 아내에게 들키자,오히려 아내를 협박하려 한 혐의로 공안당국에 붙잡혀 쇠고랑을 차게 됐다고 제노만보(齊魯晩報)가 최근 보도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 4일 새벽 4쯤 시민 양(楊)모씨라고 밝힌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아주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남편이 술집 여자와 함께 동침을 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자,남편과 그 여자가 합세해 자신을 다락방에다 구금을 하고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며 폭행을 했다고 하소연해왔다는 것이다. 아내 양씨가 밝힌 사건의 진상은 대략 이렇다.그녀는 지난달말 1주일 계획으로 지방 출장을 가게 됐다.그런데 출장간 일이 예상보다 잘 풀리는 바람에 예정보다 빠른 이날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그토록 믿었던 남편 왕씨가 이제 겨우 29살인 유녀(遊女) 장(張)모양과 함께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아내 양씨의 눈앞이 까무룩 쓰러졌다.다리가 후둘거리고 머리가 빙빙 도는 등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양씨가 눈앞이 아득해 정신을 제대로 못차리는 사이,이때를 놓칠세라 두 XX들은 합세해 그녀에게 달려들어 온갖 욕설을 다 퍼부으며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이들은 이어 “이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죽여버리겠다.”며 욱대기기까지 했다. 잠시 뒤 두 XX는 그녀를 다락방으로 몰아붙여 구금한 뒤 감시를 했다.한 두 시간동안 깜깜한 다락방에 갖혀 있던 양씨는 이들 두 XX가 한눈을 파는 사이 몰래 도망쳐 공안당국에 신고를 했다. 공안당국이 조사한 결과 이들 두 XX는 올해초 친구와 함께 호텔에 식사를 하러갔던 왕이 장를 만나 사귀게 되면서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들었다.이후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느끼면서 짬짜미하고 만나 뜨거운 사랑을 불태웠다. 이들이 만나 일이 끝나면 왕은 장에게 1000위안(약 12만원)씩의 용돈을 집어주면서 이들 관계는 부적절한관계에서 현지처 관계로 발전했다.이때 왕의 아내 양씨가 출장가자,이들은 얼씨구 좋다하고 왕의 집에서 즐겼다가 결국 차디찬 쇠고랑을 차게 됐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서적 수집 25년 외길 박대헌 영월책박물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서적 수집 25년 외길 박대헌 영월책박물관장

    고서(古書)가 헌책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기록이요, 그 진실의 두께를 켜켜이 담아낸 정의로운 보물이다. 또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냈던 선조들의 온갖 지혜가 녹녹하게 발라져 있어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고서 속에는 만가지 봉록(俸祿)이 다 들어있다. 다만 그것은 아는 자만의 것이다.’라고. 이밖에도 금과옥조 같은 여러가지 표현으로 고서의 소중한 가치를 깊이 새기게 한다. 박대헌(54) 영월책박물관장.‘백수’로 지내던 20대의 젊은 나이 때부터 25년 가까이 고서적만을 옹골지게 수집해온 특별한 삶의 밭을 일구고 있다. 흙속의 진주 캐기라고나 할까. ●영월의 폐교에 책박물관 열다 1998년, 그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강원도 산골의 한 폐교에 ‘책박물관’을 떡 하니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사람, 자연, 책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런 ‘그림 같은 문화마을’에 대한 평소의 동경과 신념이 작용했다. 이와 함께 1983년부터 서울에서 운영해 오던 고서점 ‘호산방’ 또한 아예 두메산골로 옮겼다. 그는 여기에서 300∼400년 전의 조선시대 희귀본 등 수백권의 고서를 찾아내 빛을 보게 했고 박물관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문화적으로 여러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영월지역을 다녀온 이들은 한결같이 “정말, 대단한 분이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영월에 있던 ‘호산방’을 서울 도심 한복판인 태평로1가의 한국프레스센터 지하로 옮겼다. 고서점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다소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주 ‘호산방’에서 박 관장을 만났다. 입구에는 ‘호산방은 30년 후를 생각합니다.’는 글귀가 인상깊게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200년 전의 ‘의방활투’를 비롯,‘추사문집’ 초판본, 조선후기의 ‘우병치방법’ 등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희귀 고서 500여권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우병치방법’은 소가 병들었을 때 치료하는 요령이 상세히 담겨 있어 당시 우리 선조들이 소를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프레스센터 지하에 고서점 열어 특히 한쪽에 진열된 1960∼1970년대의 국민학교 교과서들은 당시의 추억 어린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아울러 월북 시인 임화의 ‘현해탄’, 박두진의 ‘해’, 그리고 소월의 스승 안서 김억의 육필원고 등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박씨가 10년 전 펴낸 필생의 역작 ‘서양인이 본 조선’도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17∼20세기에 걸쳐 조선에 다녀간 서양인들이 조선에 관해 쓴 책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 새롭게 정리했다. 이를 위해 그가 모은 원본만 모두 287권. 세계 각국의 고서점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닌 발품의 결과물이기에 학계에서도 소중한 사료가치로 인정한다. 그가 ‘서지(書誌)학자’로 불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시내 중심가에 둥지를 새롭게 마련한 지 두달 됐다는 그는 “영월에 있는 책박물관 운영이 어려워져 이곳에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하기야 산골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터. “영월의 책박물관도 살리고 또 수도 서울 한복판에 고서문화의 한 중심축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지금은 약간 어렵겠지만 내년에는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희망합니다.” ●고서,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 ‘30년 후를 생각합니다.’라는 글귀의 뜻을 물었더니 “고서를 통해 이전과 현세대, 그리고 미래 세대를 연결시키는 공간을 의미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30년 후를 생각해 보면 주위에 남을 만한 책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도 된다.”고 부연했다. 이어 “대형마트에서 팔지 않는 물건,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 그게 바로 고서의 가치”라고 거듭 강조한다. 웬만한 강원도 여행객치고 박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책사랑은 소문이 나 있다. 그가 서울에서 영월로 향했을 때만 해도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에 서점과 음악·연극 공연장, 문화 예술인의 작업실, 화랑, 카페가 있는 마을을 구상했다. 그래서 ‘영월 책축제’만 7회나 여는 등 나름대로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책과 문화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의 시각차이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박물관을 잠시 폐관했다가 얼마전 다시 재개관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긴 책마을은 영국의 ‘헤이 온 와이’입니다. 웨일스의 작은 마을이지요. 폐광 등으로 1960년 초만 해도 쇠락해가는 마을이었는데 어느날 리처드 부스라는 한 젊은이의 노력으로 지금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책마을로 변모했습니다.” 평소 박씨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영월책박물관은 옛 학교터(여촌분교)와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 학교는 1962년 개교해 1998년 문 닫기까지 36회에 걸쳐 400여명이 졸업했다. 현재 박물관에는 3만∼4만여점이 소장돼 있다. 박씨의 책사랑은 고교 때부터 시작됐다. 어느날 은사에게 옛 책의 소중함을 듣고 용돈을 아껴 시간날 때마다 청계천 등지에서 한두 권씩 책을 사모았다. 원래의 꿈은 도예가. 그래서 홍익공업고등전문학교에서 요업을 전공했다. 고교과정 3년과 대학 2년과정을 합친 5년제 학교였다. 군 제대후에는 도예학원을 운영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이룰 수가 없었다. 백수생활로 접어들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서울의 여러 고서점을 들르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많은 유물을 눈감고도 줄줄 꿸 정도였다. 덕분에 도자기뿐만 아니라 고미술 전반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다. 고서적도 마찬가지. 결국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서울 장안평 고미술상가에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열었다. 이때가 1983년 서른 살의 나이였다. 호산방이라고 한 것은 조선 말기 서화가 우봉 조희룡의 호 호산(壺山)에서 비롯됐다. 고서점을 연 후에는 주로 필사본과 간찰, 또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때의 역사와 문학 관련 양장본들에 관심을 쏟았다. ●수집에 미쳐 가족엔 ‘미안한 아빠´ 1992년 장안평 고서점을 광화문 인근으로 옮겼다. 이때 인사동의 한 고서점 주인은 “인사동에서도 안 되는 고서점이 광화문에서 되겠어? 1년도 못버틸 걸.” 하고 말렸다. 하지만 꽤 유명세를 탔고 번창해 나갔다. 그 사이 방송통신대학을 9년만에 졸업했고 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에서 출판잡지를 전공,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이때가 1998년 나이 마흔 여섯이었다. 박씨네 가족이 현재 거주하는 곳은 책박물관 한쪽에 있는 허름한 관사. 말이 관사이지 한겨울에 연탄난로를 두 개씩 피워도 거실의 물이 얼고 수도관이 터지기 일쑤. 그러다 보니 박씨는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했다.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이던 두 아들은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에서도 학원 한번 보내지 못하고 시골에 데려왔지만 큰아들은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4학년에 재학중이고, 둘째는 내년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누가 그러더군요.‘고서수집을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은 그동안 산골마을에서 외롭게 문화독립운동을 해온 박씨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그는 고서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고서는 열번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한번 잘못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내년 초 그동안의 고서수집 노하우와 에피소드를 담은 ‘서창야화-어느 고서점 주인의 잠꼬대(가제)’라는 책을 발간한다. km@seoul.co.kr
  • 고3 학부모 여전히 헉… 헉…

    고3 학부모 여전히 헉… 헉…

    “차라리 수능 전이 더 나았어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딸아이를 둔 학부모 김모(48)씨는 딸 희선(18)이의 용돈 때문에 주름이 부쩍 늘었다. 아이의 씀씀이가 수능 전보다 3배 이상 커졌기 때문이다. 수능 전 희선이에게 든 비용은 용돈 30만원과 학원비·과외비 60만원 등 월 90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수능 이후 한달 만에 희선이가 쓴 돈은 성형수술비 등을 포함해 290만원을 훌쩍 넘었다. 김씨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면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용돈에 보태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차라리 수능 전이 더 나았어요” 희선이에게 들어간 비용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쌍꺼풀 수술비 170만원이다. 상당수 여학생들이 대학 입학 전에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성형수술을 한다. 여기에 논술 시험을 준비할 경우 부모들의 부담은 더 늘어난다. 희선이도 5주 코스의 논술학원에 50만원을 냈다. 지방에서 올라올 경우 기숙 논술학원 비용은 100만원을 훨씬 웃돈다. 수능이 끝났다는 해방감 때문인지 아이들의 씀씀이도 평소보다 훨씬 커졌다. 희선이 역시 쇼핑이 주 1∼2회 정도로 잦아져 용돈 30만원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고 추가로 20만원을 더 쓴다. 주로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 등을 구입한다. 또 지금까지 친구들을 만나 ‘수능 뒤풀이’ 비용으로 쓴 돈만 해도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고3 아들을 둔 김모(48·여)씨는 수능을 치르느라 고생한 아들을 위해 컴퓨터를 바꿔 주는 데 120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는 컴퓨터 외에도 디지털 카메라와 PDA 같은 최신 기기를 사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씨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방과후 비용도 큰 부담 수능 이후 고3 학생을 위한 학교 프로그램도 거의 없다 보니 대부분 ‘졸업여행’으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졸업여행에는 10만∼15만원 정도 든다. 평소에는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 비용이지만 한꺼번에 비용이 몰리다 보니 이마저 버겁다. 인천에 사는 이모(46·여)씨의 경우 고3 아들이 가는 경주 2박3일 졸업여행에 11만원을 냈다. 이씨는 “학교가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고 부모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서 “학교 안에서 수능 이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는 김모(51·여)씨는 고3 아들이 수능시험 전 한달에 10만원 정도 쓰다가 수능 이후 지금까지 120여만원을 썼다. 옷을 여러 벌 구입했고, 원서 제출에도 40여만원이 들었다. 또 수업이 일찍 끝나다 보니 매일 용돈 타령이다. 영화관람과 외식 등 여가에만 벌써 20여만원을 썼다. 김씨는 “수능 때문에 고생했는데 용돈을 안 주기도 쉽지 않다.”면서 “수능시험 이후 아이들이 해방감을 소비로 만끽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전은자 사무처장은 “수능이 끝난 후 지출이 커지는 상황은 사회 양극화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아이들의 상대적 박탈감 혹은 패배의식이 더 커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과도한 소비는 자제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여성&남성] 크리스마스 ‘두얼굴’ “그리워” - “괴로워”

    [여성&남성] 크리스마스 ‘두얼굴’ “그리워” - “괴로워”

    ■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그날 슬슬 캐럴이 거리에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에 맺어진 사랑에 관한 영화들도 제철을 맞았다. 화려한 거리나 TV 영상의 한가운데 사랑스러운 젊은 남녀 커플이 서있다면 딱 어울릴 법하다. 그러나 ‘나도 그 주인공’이 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은이들이 있다. ‘돈 때문에…일에 밀려…기대보다 늘 실망해서’로맨스의 절정일 것 같은 크리스마스를 오히려 피하고만 싶은 젊은 남녀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크리스마스=공연’ 허리 휩니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공연’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 같아요. 여자친구 몰래 고액의 공연비를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어집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와 함께 1인당 15만원짜리 발레 공연을 본 대학원생 구모(30)씨는 올해도 주머니 사정부터 떠올린다. 여자친구에게 초라해 보이기 싫어서 근사한 공연을 예약했지만, 빠듯한 용돈에서 공연비 할부금을 메우느라 3개월을 고생했다. 구씨는 “평범해 보이는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정작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부담스럽다.”면서 “꼭 이래야 하나 싶다가도 실망하는 눈빛을 보기 싫어서 ‘중간’은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가 연말인 게 한스러워 직장인 임모(28)씨는 크리스마스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줄줄 난다. 대학생 때부터 늘 크리스마스 때 심한 몸살로 방안에만 누워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크리스마스가 기말시험 치고 동아리 종강 행사 하느라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막 느슨해지는 때였죠. 그래서 꼭 고열로 앓아 눕게 되었는데, 직장인이 되니 연말 업무에 송년회 러시로 똑같은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는 침상에서 TV 리모컨이나 만지며 느꼈던 외로움보다 여자 친구의 원성이 더 두렵다고 한다.“크리스마스 때 잘못 보이면 그 후유증이 일년은 가죠. 크리스마스가 꼭 일 많은 연말에 있는 게 원망스러워요.” ●크리스마스 소개팅, 말리고 싶어요 싱글 남성의 크리스마스는 더욱 씁쓸하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혼자 맞이하는 직장인 정모(31)씨는 “아무리 외로워도 분위기에 휩쓸려 크리스마스 때 소개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크리스마스에 소개팅을 하면 ‘연애를 부추기는 듯한’ 주변의 들뜬 분위기 때문에라도 잘 될 것 같았어요.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를 걸으면 데이트가 더 잘 된다는 얘기도 들었죠.” 현실은 반대였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아서 상대방의 얘기를 듣기도 힘든 데다 자리를 옮기려면 한 시간씩 기다리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견뎌야 했다. 정씨는 “돈은 돈대로 깨졌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만 남아 있다. 몇 년째 크리스마스 때마다 혼자이지만 집에서 맥주 한잔 하는 게 낫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감동받은 척 연기하는 것도 힘들어요 직장인 황모(27·여)씨는 올 크리스마스에도 남자친구와 콘서트를 볼 계획이지만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그동안 클래식, 대중가요, 뮤지컬 등 숱한 크리스마스 공연을 봤지만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다.“남자친구가 바뀌어도 꼭 그날엔 ‘크리스마스 주제’의 공연을 보게 되는데, 실망스러워도 티를 낼 수 없더라고요. 기대보다는 ‘기뻐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큰 것 같아요.” 선물도 마찬가지다. 황씨는 “주머니 사정은 알지만 선물을 아예 주고받지 않을 수도 없고, 해마다 카드마저 비슷하니 꼭 챙겨야 하나 싶으면서도 실망할까봐 생략하자고 할 수도 없다.”면서 “아무 부담없는 가족들과 보내고 싶어 할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져요 “슬픈 솔로 징크스만 남았죠.”회사원 박모(27·여)씨는 이상하게 크리스마스만 되면 혼자가 된다. 잘 지내다가도 무슨 ‘마’가 끼었는지 연말만 다가오면 꼭 남자 친구와 다투게 되었다. 회식 횟수가 늘어나 자주 못 보기도 하지만, 다른 커플들과 비교해 서로 상대방이 자신한테 소홀히 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드는 게 더 문제였다. “왜 드라마에선 항상 커플들이 그날을 화려하게 보내잖아요. 주위에서도 으레 그럴 거라 예상하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니,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죠.” ●모두가 오매불망 크리스마스 기다리진 않죠 대학원생 전모(25·여)씨는 연말이면 들뜨는 분위기 자체가 달갑지 않다.“나는 학기말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남자 친구는 ‘너는 여자인데도 왜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냐.’며 핀잔을 줘요. 모든 여자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경쟁 사회에서 여성에게도 일과 공부가 우선인데 이를 무시하는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그런 이유로 남자 친구와 싸운 적이 많아서 ‘메리’ 크리스마스보다 ‘매운’ 크리스마스 기억만 많다.”고 말했다. 서재희 강아연기자 s123@seoul.co.kr ■ 특별한 로맨스 꿈꾸는 그날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사랑을 얻었다는 ‘성공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특히 화려한 파티, 값비싼 선물 없이도 크리스마스 로맨스를 만든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들만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사랑 쟁취법을 들어봤다. ●삼겹살 크리스마스로 결혼에 골인 “삼겹살도 죽만 맞으면 최고의 크리스마스 만찬이죠.” 직장인 김용(가명·29)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날 여자친구와 기다란 장사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서로 지친 눈빛을 확인한 김씨 커플은 건너편 삼겹살 집을 쳐다봤다. 둘 다 자취생이어서 늘 고기에 목말라 있었기에 김씨는 용기를 냈다. “시간 버리는 것보다 격식 차리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 먹으면서 노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차라리 삼겹살 집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좋아하더군요.”그는 “형식을 갖추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취향과 욕구를 읽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양말에 담아준 귀여운 선물 잊지 못해 1년차 주부 이지영(32)씨는 결혼 전 남편이 크리스마스때 준 선물을 잊지 못한다.“어려서 아빠가 양말에 담아 줬던 사탕과 연필 세트를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했던 그의 말을 귀담아 들었던 남편은 어린이 양말을 구해 사탕과 반지를 담아 줬다. 이씨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기억을 잊지 않고 재연하는 센스가 돋보였다. 나를 그만큼 배려해 준다는 느낌을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확인한 셈이다.”며 웃음 지었다. ●크리스마스 야근이 안겨준 행운 “당직 피하고만 볼 일은 아니에요.” 유난히 야근이 많은 직장에 다니는 민규성(가명·30)씨는 크리스마스에 또 근무를 서게 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솔로인 것도 서러운데 근무까지 해야 하다니 지지리 복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같이 야근을 하게 된 동료와 눈이 맞게 된 것이다.“내가 크리스마스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다니 꿈만 같았죠. 때가 때이니만큼 사무실 안에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말 한마디가 마음에 팍팍 와 닿더군요. 불행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한 것 같아요.” ●콘서트장에서 반쪽을 만나다 대학생 곽진석(26)씨는 지난해 10월 큰맘 먹고 크리스마스 당일 콘서트표를 두 장 끊었다.‘그때까지 꼭 여자친구를 만들어 오붓하게 함께 보겠다.’는 당찬 계획과 함께.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도록 옆구리는 시리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공연장을 찾은 곽씨.“그렇게 보고 싶었던 콘서트였건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죠. 그때 옆사람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쓸쓸한 표정이 나와 비슷한 처지구나 싶었죠.”아무말 없이 앉아 있는 그녀에게 그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고, 이후 한두 번 연락하던 것이 인연으로 맺어졌다.“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잖아요. 가장 절망스러웠던 순간이 가장 특별하게 변해서 행복해요.” 강아연 서재희기자 arete@seoul.co.kr
  • ‘분산 가족’ 20%… 소득 높을수록↑

    ‘분산 가족’ 20%… 소득 높을수록↑

    통계청이 4일 발표한 ‘사회통계조사결과(가족, 보건, 사회참여, 노동 부문)’를 보면 딸과 사는 부모가 점차 늘고 청소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을 과신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44%에 이르는 등 일하는 아내들이 늘고 있으며 고소득층의 7%는 배우자나 자녀를 외국에 보낸 ‘기러기’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딸과 사는 부모 늘어 부모 중 1명 이상이 생존한 가구 가운데 부모만 따로 살고 있는 비율은 56.3%이다. 자식이 부모를 모신 비율은 42.4%다. 이 가운데 장남과 함께 사는 부모는 21.8%로 가장 많다. 하지만 2002년과 비교해서는 2.8%포인트 줄었다. 반면 딸과 함께 사는 부모는 5.7%, 장남이 아닌 다른 아들과 사는 부모는 14.9%였다.2002년 조사때보다 각각 2.1%포인트,0.4%포인트 늘어났다. 이에 따라 부모의 생활비 가운데 딸이나 사위가 제공하는 비율도 1.7%에서 2.3%로 높아졌다. 장남이 제공하는 생활비의 비율은 22.7%에서 15.1%로 낮아졌다. ●청소년 “공무원이 꿈” 청소년(15∼24세)이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는 국가기관(33.5%)으로 나타났다. 공기업도 11.0%로 나타나 청소년의 절반 가까이가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어 대기업 17.1%와 법률회사 등 전문직 기업 15.4% 순이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중·고생인 15∼18세가 대학생과 직장인이 대부분인 19∼24세보다 국가기관에 취업하고 싶은 비율이 4.8%포인트나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 같은 통계치를 반영하듯 청소년의 29.6%가 첫번째 고민으로 ‘직업’을 꼽았다.2002년 6.9%보다 무려 4.3배나 증가했다. 공부라고 답한 비율은 35%, 가정환경 6%, 용돈부족 4.6% 등이다. 직업 선택의 1순위로는 15세 이상 인구의 64.3%가 ‘수입’과 ‘안정성’을 꼽았다. 특히 2002년 당시 21.5%에 불과했던 ‘수입’은 31.7%로 10.2%포인트나 증가했다. 반면 적성이나 흥미라고 답한 사람은 12.0%, 보람·자아성취 등은 6.6%에 그쳤다.2002년보다 4.4%포인트와 1.6%포인트씩 줄었다. ●음주·흡연자,“건강 낙관” 20세 이상 음주 인구 가운데 자신의 건강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46.4%로 비음주자의 31.7%보다 높았다. 성인 흡연자 중에서도 자신의 건강이 ‘좋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45.2%인 반면 비흡연자는 41.4%가 좋다고 대답했다. ●고소득층 100가구 중 7가구 ‘기러기’ 생활 배우자나 미혼 자녀가 다른 지역에 사는 ‘분산가족’은 전체의 21.2%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는 8.3%였다. 따로 떨어져 사는 이유로는 ‘직장’이 55.9%로 가장 많았고, 해외 유학 등 ‘학업’이 32.2%였다. 월평균 소득이 600만원을 넘는 가구의 26.9%가 분산가족이며 이 가운데 25.6%가 외국에 가족을 두고 있다. 즉 6.9%가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로 살고 있는 이유는 ‘학업’이 56.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강학중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착실하던 아들 대학 들어가며 돌변 술타령에 학사경고… 가출 위협까지

    Q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착실하던 아들이 대학교 들어가더니 골칫덩어리입니다. 공부는 안하고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용돈 타령에 학사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어제는 남편이 야단을 치다가 뺨을 한대 때렸더니 아빠도 사업한다고 매일 밤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느냐며 바락바락 대듭니다. 급기야 집을 나가겠다고 시위 중입니다. 저런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남편은 펄펄 뛰는데 아들이 진짜 집을 나갈까봐 걱정입니다. 도대체 중간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혜수(가명,51세) A아들 편을 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편과 합세해서 아들을 나무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봐 두렵기도 하니 얼마나 애가 타시는지요. 대학교에 입학만 시키고 나면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막상 자녀들을 대학교에 보내 놓으면 또다른 문제의 시작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노선을 통일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의견이 꼭 같을 수는 없겠지만 큰 방향에서만큼은 의견이 일치해야 아이들의 혼란과 부부간의 다툼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남편께서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아드님의 뺨을 때린 것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집을 나가겠다며 부모님에게 대드는 아드님의 행동도 잘못입니다.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한 말이라 짐작은 되지만 끝까지 집을 나가겠다고 우기면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행동을 요구하셔야 합니다. 입시 공부로 얽매여 있다가 대학 생활의 자유로움에 젖어 학업을 다소 게을리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학사 경고를 받을 정도라면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 밤 늦게까지 술 먹고 들어오면서 아버지의 생활과 맞비교하는 태도는 옳은 행동이 아니고요. 타당한 이유도 없이 멀쩡한 집을 놔두고 끝까지 나가서 살겠다면 일체의 경제적인 지원을 해 줄 수가 없다고 선을 그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지만 나가서 살 방을 얻어 주고 생활비까지 보태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는 아니니까요.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누가 갖는 것이 옳은지 남편과 상의해 보십시오. 집을 나가겠다고 위협하는 아드님의 시위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거니까요. 때로는 성인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부모님의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며 투정을 부리는 것은 모순된 행동입니다. 남편이나 아드님 모두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도록 중간 역할을 지혜롭게 하시고 부모와 자식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시는 것 또한 잊지 마십시오.‘너의 미성숙한 태도나 철없는 행동을 나무라는 것이지 너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아드님에게 명확하게 심어 주시기 바랍니다. 학교 문제 역시 학사 경고를 받을 정도의 성적이라면 계속해서 학비를 대주는 것도 재고하겠다고 경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귀가 시간에 대한 원칙은 합의를 통해 만드시고 그 약속을 어겼을 때의 대가나 예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아드님이 내린 결정이나 선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를 길러 주시고 부모님께서도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시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 주는 인내심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 “맞벌이 대신 집보러 다닐걸”

    “맞벌이 대신 집보러 다닐걸”

    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가진 사람을 원망하고 정부를 비난해 보기도 하지만 그게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를 둘러싼 여건은 갈수록 내집 장만과 멀어지고 있다. 집값 급등이 이어지면서 소박한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자며 힘겨운 만원버스 출퇴근을 반복해 온 서민들의 어깨가 한없이 처진다. 사무실과 거리에는 그들의 푸념과 분노가 가득차 있다. “금리와 집값 사이에 커다란 베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상담창구에서 만난 회사원 최석선(37)씨는 도무지 감이 안 오는 표정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볼까 하는데 답이 안 나오는 탓이다. 그는 올 초 2억원대의 서울 외곽 27평형 아파트를 사버릴까 하다 은행이자가 부담돼 포기했다. 하지만 불과 10개월새 집값이 1억원 이상 뛰었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5억원이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싶어 은행을 찾았지만 선뜻 대출약정서에 사인을 할 수가 없다.“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 같다.”는 은행직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경기 광명시 철산동에 34평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는 조모(43)씨는 최근 집을 팔려던 계획을 거둬들였다.1년 전까지만 해도 2억원대 후반이던 아파트 가격이 4억원대 중반까지 훌쩍 뛰었다. “집값 오르는데 싫다고 할 사람 어디 있겠어요. 솔직히 더 뛰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조씨라고 맘이 편한 게 아니다.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학군이 좋다는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 왔지만 최근 전셋값도 수천만원씩 뛴다. 결국 조씨는 광명 전셋값을 3000만원 정도 올리기로 했다. 세 들어 사는 신혼부부에게 못된 짓 하는 것 같지만 그도 어쩔 수 없다. “애들 집에다 떼어놓고 돈 벌러 다닌 사람은 바보 되고 맞벌이 안 하고 집 보러 다닌 사람들은 잘되는 나라가 정상인가요.” 하말숙(35·경기도 의왕시)씨는 결혼생활을 서울에 있는 23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맞벌이 생활 8년차인 그는 개미같이 모아 1억원을 만들었지만 집 사는 꿈을 거의 접은 상태다. 대출 받고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하면 2억원 안팎의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에 두고 있던 아파트의 현재가는 7억원이 넘는다.“이런 상황에서 폭동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해요. 주변에서 ‘너도 하루라도 빨리 대출 받아서 사라.’고 하지만 나중에 집값 떨어질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죠. 정말이지 외국 나가 살고 싶어요.” 송파구에 사는 새내기 주부 이지영(27·가명)씨는 부동산을 잡겠다고 내놓은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 소식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전세금 8000만원에 은행대출, 부모님 도움 등을 합쳐 집 장만을 해 보려 했는데 이마저 어렵게 생겼다. 은행에서는 “상황이 수시로 바뀌고 있어서 대출 한도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결혼 당시 봐뒀던 가락동의 19평형 아파트 값이 2억원대 초반이었지만 엊그제 알아보니 불과 5개월 동안 7000만원이나 올랐다. 집값이 오른 것만 봐도 눈 뜨고 손해 본 기분인데, 은행 대출조차 까다로워진다고 하니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서민들의 형편을 조금이라도 감안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민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신뢰성이 이런 상황을 낳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회사원 전모(38·경기도 수원)씨는 “지난여름부터 집을 사려던 실수요자이지만 정부 말만 믿고 기다렸다가 당초 사려던 집이 1년 저축액보다 많은 3000만원이 올랐다. 지금은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이 됐다.”면서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윤모(35·서울 성동구)씨는 “10억,20억원을 애들 용돈식으로 얘기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정부에서 아무리 독한 처방을 내놓아도 오히려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나길회 김준석 서재희기자 kkirina@seoul.co.kr
  • 귀하신몸에 잘도 속더라

    귀하신몸에 잘도 속더라

    「세상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려고」 검사시보 행세를 하던 한 청년이 가짜 행각 9개월만에 쇠고랑을 차게 되었다. 중학 2년 중퇴의 학력으로 사법대학원생을 사칭, 「배지」와 학생증을 사들인 이 가짜 검사시보는 서울시내 변호사들과 다방 「마담」경찰관들이 모두 『내 사기극에 잘도 속더라』면서 대견(?)해 했다. 3월 2일 서울 용산경찰서 남영동파출소에는 검은 「싱글」에 굵다란 「로이드」테 안경을 낀 20대 청년 한명이 파출소 하문수(河文洙)소장을 점잖게 찾았다. 이 청년이 河소장에게 내놓은 명함에는 「검사시보 손지열(孫智烈)」로 되어 있었다. 이 검사시보는 자신을 河소장에게 소개하고는 『창피한 일이지만 고향에 내려갈 차비 좀 부탁한다』고 귀띔했다. 河소장이 이를 거절하자 이 가짜 검사시보는 대뜸 『당신 비위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면서 공갈하더라는 것. 이때 관내 파출소순시를 위해 파출소에 나왔던 용산서 형사과 김장생(金長生)경위는 孫의 태도나 언동이 어딘가 서투른데 의심을 품고 일단 불심검문을 해봈다. 김경위는 첫마디에 이 검사시보가 가짜 임을 알아냈다. 孫의 본명은 박선균(朴先均)(24)·(서대문구 현저동 46). 그러나 김경위도 처음엔 朴의 공갈에 움찔했단다. 본명 이외에도 3가지의 이름을 사용해 온 朴은 불심검문하는 김경위에게 오히려 호통을 쳤다. 朴은 용산서로 연행된 뒤에도 형사과장을 데려오라고 책상을 주먹으로 치면서 큰소리 칠 정도로 대담했다. 朴이 사기행각을 하기 시작한것은 지난 해 영화 『소문난 잔치』를 보고나서부터. 그 영화의 주인공이 자기 처지와 비슷한데서 이 세상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려고 한것이 가짜 검사시보였다는 것. 朴은 경찰관이나 변호사들이 검사시보라면 곧 검사가 될 사람이라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을 알고 가짜 검사시보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 朴의 가짜 검사시보 행각을 위한 준비는 치밀했다. 사법대학원생 「배지」를 사들인 朴은 어느 술집에서 누가 술 값으로 맡겨 놓은 사법대학원생의 학생증을 술값 1천원을 갚고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변조. 그 다음엔 헌 책방에 가서 민사소송법 한권, 「고시계」(69년 2월호)한권, 대법원 판례속보등을 샀다. 朴은 틈틈이 이 책들을 읽어 법률상식을 익히는 한편 사기행각의 「액세서리」로 들고 다니기도 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는 날 朴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속일 기회를 찾았다. 朴이 나타난 곳은 D극장 전무실. 처음엔 표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극장사무실에 들어간 朴은 사기극 연출을 무난히 할수 있었다. 『저는 이번 고시에 합격한 최연소자입니다』「텔레비전」에도 나갔다고 그럴 듯하게 늘어놨다. 집표주임 박종대(朴鐘大)씨(46)는 朴의 수작에 완전히 넘어갔다. 어린 나이에 참 칭찬할만한 일이라고 했다. 이 뒤로 이 장래가 촉망되는(?) 朴에게 D극장은 무상출입처가 됐다. 모다방 마담에게는 68년도 사법고시합격자중 최연소자라고 자칭, 정부가 자기에게 「코로나」 한대를 기증했는데 자기에게는 이 「코로나」가 필요없으니 45만원에 사라고 흥정, 계약금조로 25만원을 긁어냈다. 朴은 또 서울시내 유명한 변호사들까지 등쳐 먹을 정도로 지능적이었다. 朴의 사기술에 걸려든 변호사들도 박에게 용돈이나 하라고 2~3천원씩 대주었다는 것. 『사법대학원생이라면 사람들이 모두들 쩔쩔 매더군요』朴은 멀쩡한 눈을 고시파 학생으로 속이기 위해 싸구려 안경으로 변장했다. 朴은 관공서에 들어가선 사무원을 상대도 안했단다. 주로 과장이나 국장만을 골라 법률책만 끼고 그럴듯한 말만 하면 모두 속아 넘어가더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2월 모극장 전무는 朴이 금년도에 사법대학원을 졸업, 검사로 발령받게 된다는 말에 졸업식장으로 달려가는 「쇼」도 벌였단다. 朴은 경찰심문에도 『내가 어찌 말단 형사에게 조서를 받겠느냐』면서 서울시내 판검사들은 거의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곧 나오게 된다고 문초형사를 을러댔다. 朴은 학력을 모대학 법과를 나와 68연도에 고시 예비고사에 합격, 사법고시 1차까지 합격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사기및 관명사칭혐의로 구속된 朴은 식모살이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겨우 중학 2년밖에 못다닌 불우한 청년임이 밝혀졌다. 경찰조사에서 나타난 朴의 행각은 주로 극장등 유흥가와 관공서, 일선 파출소만을 골라 한두차례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눈 다음 어느 정도 얼굴이 익혀지면 부정을 눈감아 준다는 등 공갈을 하면서 2~3천원씩 뜯었다는 것이다. 朴이 잡히던 날도 이 재미로 또다시 나타났다가 쇠고랑을 차게된 것이다. 경찰이 朴을 유치장에 넣으려 하자 朴은 또 기세 좋게도 판사의 구속영장을 보여 주기전엔 유치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버티었다. 김계장이 영장을 보여주자 그때서야 누그러진 朴은 유치장으로 끌려 들어가면서-『사기한 나도 잘못이지만 내 엉터리 사기극에 쩔쩔매던 관리들도 형편없는 친구더라』고 내뱉었다. [선데이서울 70년 3월 15일호 제3권 11호 통권 제 76호]
  • “세계최대 은행 CEO가 꿈이에요”

    특목고 학생이 금융권 종사자들도 따기 힘들다는 증권투자상담사 시험에 전국 최연소로 합격해 화제다. 대구외고 영어과 2년 차승훈(17)군이 최근 발표한 제65회 증권투자상담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 자격증은 증권사에서 투자상담사로 활동하려면 반드시 소지해야만 하는 필수 자격증. 은행·증권 등 금융계 직원이나 취업준비생이 도전하는 시험으로, 특목고 학생이 응시한 것부터 이례적이다. 시험이 도입된 1977년 이후 그동안 고등학생 취득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차군은 중학교 때부터 경제학에 매력을 가져 경제학 서적이나 경제신문을 즐겨 읽었다. 대구외고에 진학한 뒤에는 아예 용돈 7만원으로 주식투자를 했다. 처음 투자한 주식투자에서 원금의 절반밖에 건지지 못하는 등 쓴 맛을 보았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뒤 모의증권 투자에 푹 빠졌다.“1등을 하면 100만원을 준다기에 종자돈도 마련할 겸 도전했는데 역시 어렵더군요.” 증권투자상담사는 1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님이 도전해 보라고 권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증권사의 주식동향 이메일이나 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등 경제자료를 접하고 금융 흐름에 대한 안목을 키우면서 시험을 준비했다. 학교 공부와 증권투자상담사 시험준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지난 2학기 중간고사가 증권투자상담사 시험과 겹치면서 학교 성적도 크게 떨어졌다. 차군은 대학은 경제나 경영학과를 지원하겠다는 생각이다. 졸업후 자신의 꿈인 세계 최대 은행의 CEO가 되기 위해서란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심수봉 “박정희 만찬 세차례 참석”

    심수봉 “박정희 만찬 세차례 참석”

    |도쿄 이춘규특파원|가수 심수봉(51)이 “박정희 전 대통령 주최 만찬에 모두 세 차례 참석했다.”는 10·26 비화를 일본 아사히신문에 밝혔다. 심수봉의 이번 인터뷰는 ‘무궁화의 여인, 가수 심수봉의 반생(半生)’이라는 제목으로 아사히신문에 지난달 25일부터 5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일본 노래 부르자 “일본애냐”며 좋아해 인터뷰에서 심씨는 일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익혔다 고교 졸업후 한 레스토랑의 특별한 파티에서 불렀는데 그 자리에 있던 박종규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의 마음에 들었고, 이를 계기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 자리에 불려갔다고 밝혔다. 심수봉은 아울러 10·26까지 박 대통령의 만찬에 세 차례 참석했다고 말했다.“대통령은 내가 ‘눈물젖은 두만강’ ‘황성옛터’를 부르자 눈물을 흘렸다. 미소라 히바리의 ‘슬픈 술’(가나시이사케)을 부를 때는 눈을 크게 뜨면서 ‘어, 누가 일본 아이를 데려왔어. 너 일본 사람이냐.’며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는 일본 노래, 특히 ‘엔카’를 좋아한다.”고 했고 일본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에는 의문을 느낀다는 말도 했다. 또 “식민지시대는 비참했다. 약한 사람들이 자기의 생활을 위해 타협한 일도 많았겠지. 친구가 죽고 가족이 죽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타협하는 일이) 이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TV에 YS 나오자 “정치인도 아닌 놈이…” 심씨는 ‘10·26사건’ 당일 궁정동 만찬장에서 박 대통령이 저녁 7시 TV 뉴스를 보다가 의원직에서 제명당한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얼굴이 나오자 “정치인도 아닌 놈이…”라며 투덜댔다는 일화를 공개했다.10·26 직후 정보기관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을 때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나타나 “당신 대단하다. 남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용기를 내서 현장에 남아 있었다.”고 하며 영양제라도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었다는 비화도 함께 전했다. 또 방송 출연이 금지됐을 때 박태준 전 총리가 쌀을 보내주고 모임에 불러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고 털어놓았다. taein@seoul.co.kr
  • [교육]학생들의 성격 유형별 공부 지도요령

    [교육]학생들의 성격 유형별 공부 지도요령

    부모들에게 최대 고민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1위는 단연 자녀 공부다. 성적도 변변치 않아 걱정인데 공부하는 모양새를 보면 잔소리부터 나온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들락날락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기도 한다. 하루종일 앉아 있는 것 같은데 성적은 제자리 걸음이다. 제대로 공부 좀 하라고 소리도 쳐 보지만 도무지 아이 속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녀의 학습성격 유형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성격에 따른 행동특성과 이에 맞는 공부 지도 요령을 소개한다. 학습성격 유형은 아이의 성격에 따른 행동 특성과 학습 양식에 따라 1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연우심리연구소에서 표준화된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기본 유형은 행동형, 규범형, 탐구형, 이상형 등 4가지다. 나머지 10가지 세분화된 유형은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에 소개한다. ●예측불허, 럭비공같은 행동형 ‘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과 운동하고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쉽게 지루해하고 힘들어한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용돈을 받으면 금세 써버린다. 시험문제를 대충 읽어 아는 문제도 틀린다.’ 학부모의 실제 상담 내용으로 행동형의 대표적인 사례다. ☞ 10가지 세분화된 유형 바로가기 행동형은 몸으로 직접 부딪치면서 배우는 체험을 필요로 한다. 모험을 좋아하는 반면 매일 반복되는 틀에 얽매이기를 매우 싫어한다. 학교에서 책상을 두드리거나 짝꿍을 귀찮게 하고 산만하며, 교실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종이와 연필로 하는 공부를 지루해한다. 숙제하기를 매우 싫어하지만 음악이나 미술, 공예 등 활동적인 과목은 좋아한다. 특성이 이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성적이 낮다. 혹시 머리가 나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행동형은 공부할 때 짧은 시간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표를 짜 규칙적으로 실천하라고 해봤자 소용 없다. 대신 프로젝트 중심으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1시간 동안 공부하기’보다는 ‘1∼10쪽까지 풀기’처럼 계획을 세운다. 활동적이고 모험심이 강하기 때문에 꿈과 희망을 크게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들과 관계의 폭을 넓혀주고 학급 간부 등 리더를 경험하게 하면 도움이 된다. 흔히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야단치기 쉽다. 그러나 행동형의 가장 큰 자산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을 잃게 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철두철미한 꼼꼼이 규범형 ‘난 고2 여학생이다.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공부하고 공책 필기도 꼼꼼히 하는 편이라 성적은 상위권이다. 지각한 적도 없다. 큰 딸이라 부모 저녁식사도 챙겨드리기도 하고 내 방 정리도 잘 한다. 시험 때면 계획표를 짜 공부한다. 그런데 진로 결정이 막막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 학생의 경우 규범형의 전형이다. 규범형은 부모나 교사 등 권위적인 인물의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몰라도 부모나 교사가 하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부를 할 충분한 조건이 된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학급에서 더 잘 적응하며, 체계적인 것을 좋아한다. 즉 명확하게 지시를 받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 때 최선을 다한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규칙을 준수하는데 매우 뛰어나다. 질책이나 비난도 잘 수용한다. 대체로 학교를 좋아하며, 교사를 신뢰할 수 있다면 학교생활이 순조롭다. 성적은 대부분 상위권을 유지한다. 성적이 높지 않다면 공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는 공부방법 등을 다룬 책 등을 참고해 과목별 공부 요령을 알려주면 도움이 된다. 규범형에게는 좌절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 등에서 실패했을 경우에는 아이와 함께 실패를 분석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호기심 투성이 탐구형 ‘중학교 2학년 남학생.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 고민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운동을 하면 좋겠는데 책에만 관심 있다.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하고 싫어하는 과목은 아예 관심도 없다. 그래서 성적이 들쭉날쭉이다. 공부에 재능은 있는 것 같은데 성적은 높게 나오지 않아 걱정이다.’ 탐구형은 능력에 대한 갈망이 있는 아이들이다. 무엇이든 이해하고 설명하기를 원한다. 규칙과 원리를 많이 알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규명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 나가기를 즐긴다. 늘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남학생이라면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다. 독자적으로 공부하는 경향이 있고, 머리도 좋다. 탐구형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유형은 무조건적 칭찬에 만족하지만 탐구형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져 평가받는 것을 좋아한다. 공부도 자기만의 요령으로만 한다. 때문에 공부 시간을 양적으로만 강요하기보다 질적으로 승부하도록 하고, 자신의 성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된다. 문제는 대인관계. 관심사가 또래 아이들과 많이 다르고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학급에서는 외톨이일 가능성이 높고, 집단따돌림을 당하기도 쉽다.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또래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자신의 전공을 찾는 순간 능력도 잘 발휘하고 대인관계도 형성해 간다. ●상상력이 풍부한 이상형 ‘초등학교 3학년 딸. 마음이 너무 따뜻하지만 너무 연약해 보인다. 주변의 여러가지에 관심을 갖고 보살핀다. 키우는 강아지가 아프면 자신이 아픈 것처럼 안타까워한다. 상처를 많이 받는다. 야단을 맞아도 잘못했다고 하면 그만인데 아빠의 화난 표정이나 굳은 표정을 보면 어쩔 줄 몰라한다. 어른이 돼서도 약한 모습을 보일까 걱정이다.’ 이상형은 자아실현을 갈망한다. 인격적인 관계 형성을 원하며, 적개심이나 다투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 이상형은 자신의 감정적인 자세를 인정받을 때 잘 성장한다. 교사가 자기 이름을 알고, 알아주고, 인정해 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적인 학급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민감하다.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또래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함께 나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상형이 좋아하는 수업 방식은 상호 이해받는 분위기다. 아무리 어려운 과목이라도 교사가 마음에 들면 그 과목에서 1등을 할 수 있다. 과목의 난이도보다는 그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결국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 마음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형에게 야단이나 비난은 피해야 한다. 인정받고 칭찬받을 때 능력을 잘 발휘하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이상형이라면 종종 심하게 부끄러움을 타므로 용기를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도움말:연우심리연구소(www.iyonwoo.com) ■ 김만권 연우심리연구소 소장 “자녀의 특성 무시한 채 부모 생각만 강요 안돼” “부모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연우심리연구소 김만권 소장은 “상담받으러온 부모의 대부분이 아이만 달라지기를 바라고 정작 부모 자신은 바뀌지 않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부모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무조건 아이를 부모에게 맞추려고만 한다는 지적이었다.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본만 하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기본이라는 것이 아이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김 소장은 “성적 올리는 방법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유형에 따라 고등학교에 가서 성적이 오르는 아이도 있게 마련”이라면서 “아이의 특성은 무시한 채 부모의 생각만을 아이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학습성격 유형에 대해서도 맹신하지 말 것도 강조했다.“학습 유형검사의 장점은 아이의 행동특성이나 공부방식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에 맞는 지도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반면 검사 결과에 따라 아이에 대해 단정짓고 규정하면 편협한 시각에서 아이를 볼 수 있어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는 “검사 결과에 대해 부모가 자기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만 아이를 이끌려고 하지만 실제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이 아이와 전혀 맞지 않을 수 있다.”면서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 ‘홍루몽’이 뭐길래…” 퇴학 불사하는 그녀

    “ ‘홍루몽’이 뭐길래…” 퇴학 불사하는 그녀

    “‘홍루몽(紅樓夢)’이 음란서적이라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정말 위대한 천재가 쓴 장편소설이지요.한번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이 있답니다.” 중국 대륙에 청(淸)나라 최고의 장편소설 ‘홍루몽’에 빠져 자신의 전공 수업을 거른채 연구에,연구를 거듭하는 것을 물론 연구를 위해 학업포기도 고려하는 ‘엽기적인’ 여대생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의 모대학 일어과 2학년에 재학중인 쑤쑤(蘇蘇·가명·여)씨.그녀는 ‘홍루몽’을 처음 접한 뒤 그 문장 한줄한줄에 매료돼 전공 수업도 마다하고 도서관에 처박혀 ‘홍루몽’ 관련책만 파고드는 ‘홍루몽 마니아’라고 광주일보(廣州日報)가 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쑤쑤양은 지난 3월 ‘홍루몽’에 처음 정식 입문한 뒤 최근 2개월동안 수업을 거른채 ‘홍루몽 연구’에 온몸을 던진 엽기적인 여대생이다.심지어 요즘은 ‘홍루몽’ 연구를 위해 학업을 불사한다는 각오다. 그녀가 지금까지 ‘홍루몽’을 읽은 것은 아주 세심하게 읽은 정독(精讀)이 2회,설렁설렁 읽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쑤쑤양은 “지난 3월 ‘홍루몽’을 세심하게 정독했을 때 문장 한줄한줄이 모두 뛰어나 온몸이 짜릿한 전율감을 느껴 이 소설에 빠져들었다.”며 “지금까지 정독은 2회에 그쳤지만,설렁설렁 읽은 횟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홍루몽’을 읽고 쓴 독후감만도 책 6권 분량이나 된다.”고 털어놨다. 그녀의 하루 일정을 보면 쑤쑤양이 ‘홍루몽’ 연구에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홍루몽’으로 시작해서 ‘홍루몽’으로 끝난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기숙사 친구들이 쇼핑을 하거나,수다를 떨고 컴퓨터 게임을 하며 휴식을 취할 때도 그녀는 오로지 도서관에서 ‘홍루몽’ 관련 논문이나 잡지 등을 뒤지고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쑤쑤양은 매일 아침 6시 일어나 학교 운동장을 산책하면서 ‘홍루몽’의 세계로 빠져든다.한편으로 운동을 하면서,또 한편으로는 ‘홍루몽’의 세계를 사색하는 것이다. 이어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서관에서 ‘홍루몽’ 관련서적과 씨름을 한다.그녀의 용돈 300위안(약 3만 6000원)을 모두 ‘홍루몽’ 관련서적 구입에 투자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온통 ‘홍루몽’만 생각하는 쑤쑤양은 2개월전 담당 교수에게 “홍루몽 연구를 위해 수업을 들어가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전공 수업을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일반인들이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홍루몽’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며 “흔히 일반인들이 생각하듯이 ‘홍루몽’은 결코 음란서적이 아니며 단지 위대한 천재가 쓴 한편의 소설”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쑤쑤양이 ‘홍루몽’ 연구가의 길을 걷는 데는 걸림돌이 있다.우선 학교 친구 등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친구는 “바보 같은 짓 그만하고 전공 수업을 듣고 학교나 제대로 졸업해라.”고 충고했다.또 어떤 교수는 “홍루몽에 너무 빠지면 신세를 망친다.”며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공부에 전념하라.”고 심각하게 꾸짖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도 홍루몽 마니아의 길을 가는데 장애물로 작용한다.쑤쑤양의 집안은 부모님과 오빠 한명 등 4식구.그런데 전 가족이 벌어들이는 한달 수입은 겨우 1500위안(약 18만원)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녀의 부모님은 쑤쑤양이 대학을 졸업한 뒤 맞춤한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고 있다.이런 부모님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는 그녀로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홍루몽’ 연구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쑤쑤양의 신념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있다.그녀는 “나는 이미 ‘홍루몽’을 연구하는데 온 몸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며 “아무리 어려운 처지가 돼도 겁내지 않고 홍루몽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홍루몽이란 중국 청나라 때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장편소설.무대는 주로 금릉(金陵·현 南京)에 있는 가씨(賈氏)의 저택 안이고 등장인물은 500명이 넘을 정도로 방대하다.주인공은 페미니스트 가보옥(賈寶玉)과 총명하지만 병약한 그의 사촌 누이동생 임대옥(林黛玉),가정적이며 건강한 설보채(薛寶釵)이다. 사치가 심해 가세가 기울어가는 가씨 집안에서 보옥은 대옥과의 결혼을 원하지만,집안의 실권을 쥔 할머니 사태군(史太君)은 대옥이 허약하다는 것을 빌미로 보채와의 결혼을 강요한다.할머니가 계략을 꾸며 보옥과 보채가 결혼하던 날,대옥은 쓸쓸히 숨을 거둔다.인생무상을 느낀 보옥은 과거장에서 그대로 실종되고….뒷날 아버지 가정(賈政)과 비릉(毘陵)의 나루터에서 만나지만,보옥은 목례만 보내고 승려와 도사 사이에 끼여 눈길 속으로 사라진다. 이 작품은 1792년에 초간(初刊)된 이후 100종 이상의 간본(刊本)과 30종 이상의 속작이 나왔다.게다 작자와 모델에 관한 평론도 속출하여 ‘홍학(紅學)’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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