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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죽는다 죽는다 하는 노인 죽는 것 봤느냐는 말이 있다. 불효자식 둔 위에 살기까지 고단한 노인은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하루에도 몇번씩. 그러면서도 「모진 목숨」을 이어 나간다. 그것이 생명에의 애착.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런 심경을 나타낸 일화가 「용제총화」(권2)에 실려 있다. 중추 민대생이란 노인 얘기. 90세를 넘긴 어느해 설날 조카들이 와서 세배를 드린다. 한 조카가 하는 덕담- 『원컨대 숙부께서는 백세까지 수를 누리소서』. 노인은 크게 노한다. 『이놈,내 나이 90여세인데 백살까지 살라면 앞으로 몇년만 더 살라는 말이 아니냐. 무슨 복 없는 말을 그리 하느냐. 썩 나가거라』. ◆경제기획원이 「한국인의 표준 생명표」를 발표했다. 그에 의할 때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89년 기준으로 남자 66.92세,여자 74.96세. 전체 평균 수명은 70.84세이다. 1906∼10년의 평균수명 23.5세는 옛 얘기라 하자. 1955∼60년의 52.6세와만 비겨도 대단한 신장세. 노령화사회를 실감케 하는 숫자다. 세계최고인 일본의 78.2세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평균수명 높아진 것을 좋아만 할 일일까. 앞서의 민대감이야 벼슬 높고 경로사상 두터웠던 때이니 백살을 넘겨도 살기는 즐거웠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핵가족화 하면서 효나 경로사상은 엷어져 가고 노령을 위한 정책의 뒷받침도 모자란다. 그래서 서러운 노령이 많아져간다. 그 노령들은 「장자」(천지편)에 나오는 수칙다욕(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다)을 생각한다. 평균수명의 향상이 「모진 목숨」의 양산으로 이어진다면 그게 어찌 자랑거리겠는가. ◆골골거리면서 병원 신세나 지는 장수 또한 의미가 없다. 『죽기가 설운 게 아니라 아픈 게 섧다』는 속담이 말하듯 건강한 장수라야 뜻이 있는 것. 마음과 몸이 아울러 건강할 수 있는 수칙다복의 사회를 자녀들이,정책이 만들어가야 한다. 어차피 사람은 모두 늙어가는 존재 아닌가.
  • 민자당 초대 당3역ㆍ대변인의 “포부”

    ◎박준병 사무총장/대화ㆍ타협으로 당내외 융화에 총력 『화학작용과 용광로 용해작용 등을 통해 다소간의 이질적 요소를 극복,신당이 국민정당ㆍ정책정당ㆍ민주정당ㆍ개혁정당ㆍ통일지향정당으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통합신당인 민주자유당의 초대 사무총장에 선임,민정당에서 두차례 총장을 역임했던 것을 감안할 때 「총장3선」이라는 여권내 보기드문 기록을 가지게된 박준병총장은 인화와 단결,대화와 타협을 거듭 강조했다. 박총장은 88년 4ㆍ26총선직후 여소야대상황에서 또 금년초 5공청산 후유증에서 비틀거리던 민정당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친화력」으로 다독거렸던 인물. 따라서 3당이 합쳐지면서 예상되는 불협화음 해소에도 적격이 아니냐는 판단이 이번 총장임명의 배경인 듯. 박총장은 『15인 통합추진위원으로 일하면서 3당대표들이 하나가 되고자하는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그런 마음만 지속된다면 어떤 어려움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총장은 『일부 국민이 거대여당의 독주 혹은 내부분열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그러나 정치의 본질이 대화ㆍ타협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않고 있으며 신당은 대내 이질요소 극복뿐 아니라 지역성 타파에도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총장은 또 『가능하면 지금이나 아니면 14대 총선전후해 진보적 정당이 출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혁구도 정립에 대한 기대를 비췄다. 육사 12기로 4성장군출신이면서도 성품이 온화해 「제복」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서울대 및 국민대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고 요즘도 책을 항상 가까이하는 학구파. 금년초 정계개편작업의 중핵인물로 등장하면서 박철언정무1장관과 업무상 호흡이 잘 맞고 있다. 민정계보에서 중부권 선두주자의 1인이나 『아직은 파벌형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계보형성은 자제. 부인 김혜정여사(53)와의 사이에 1남1녀 ▲충북 옥천출신ㆍ57세 ▲대전고 ▲육사12기 ▲서울대ㆍ국민대대학원 사학과 ▲국군보안사령관 ▲대장예편 ▲12ㆍ13대 국회의원 ▲국회보사위원장 ◎김용환 정책의장/소외계층ㆍ서민 위한 제도개혁 역점 『국민 모두의 바람과 뜻을 받들면서 시대정신에 뒤지지 않는 정책개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당구조의 말석정당정책위의장에서 거대여당의 정책위의장으로 「간택」된 김용환의장은 특히 소외계층과 서민들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전개를 강조,성장과 안정을 동시 추구해나갈 것임을 확인했다. 그는 신당의 정책방향의 초점에 관해 『꾸준한 개혁속에 민주적 제도와 관행을 체질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어려운 국면의 경제상황을 극복하고 성장잠재력을 북돋울 수 있는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의장은 『법과 제도의 개혁에 앞서 국민의 정치주인이라는 사고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당면 현안법안 등에 대한 제정ㆍ개정노력과 함께 국민들이 민주시민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책개발고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침체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을 되찾는 것이며 일단 안정을 회복시킨 뒤 수시로 나타나는 경제변화와 흐름에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등 정부의 경제개혁정책에 대한 당의 입장과 관련,『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 이미 결정된 제도는 계획대로 시행해 나갈 것이며 시행과정에서 역기능이나 문제점이 제기된 경우 그에 대한 보완ㆍ수정은 이후의 문제라고 본다. 당정간에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관리로 출발,지난 78년 4년여동안의 재무장관직을 끝으로 정부를 떠났던 김의장은 12년 만에 다시 집권여당의 정책파트 책임자를 맡아 관운만큼이나 정치운도 따른다는 평을 받고있다. 공화당정책위의장 시절 JP의중을 가장 잘 헤아려 5공청산추진 및 정계개편작업 등에서 「JP대리인」 역할을 해냈다. 작달막한 체구에 출중한 지모를 갖추고 있으나 차가운 성격으로 정치인다운 친화력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춘구여사(52)와의 사이에 2남 ▲충남 보령출신 58세 ▲서울대 법대졸 ▲고시행정과 합격 ▲재무부 이재국장 ▲대통령경제특보 ▲재무장관 ▲13대의원 ▲공화당정책위의장 ◎김동영 원내총무/여야 갈등없는 상호협조체제 유지 『민주자유당내에 유능한 인물이 많은데도 나를 총무로 지명한 것은 당과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원내점유율 73%에 달하는 거대여당의 원내총무로 2백16명의 매머드의원단을 지휘하는 원내사령탑을 맡게된 김동영의원은 『16일 의원총회의 인준을 남겨놓고 있는 만큼 아직은 내정자…』라면서도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좋은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총무지명을 고사했었다』고 밝힌 김의원은 자신의 카운터파트가 될 평민당 김영배총무에 대해 『참 좋은 사람』이라며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대야관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피력했다. 김의원은 『평민당은 옛날에 같은 동지였던 만큼 그들의 마음을 내가 잘알고 있고 그들 또한 내마음을 잘알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대야관계가 갈등이 아닌 상호협조차원에서 유지될 것이란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의원은 85년 4월19일 당시 1백2명의 의석을 가졌던 신민당원내총무에 임명됐었던때를 회상하며 『그당시 처음 총무를 맡았을 때는 총무가 뭔지,정치가 뭔지를 모르고 했는데 신의 가호로 욕을 먹지 않았다』고 말한 뒤 이번에는 야당이 아닌 여당의 총무가 된 데 대해 『아직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의원은 자신이 민자당 전체의석 2백16석의 정확히 4분의1에 불과한 구민주당측을 대표해 총무직에 지명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듯 『조그만 일이라도 법테두리안에서 일이 진행돼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최고위원 세분이 지명했지만 인준 전에는 총무가 아니다』며 계속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이번 총무지명이 김영삼최고위원의 강력한 지원에 의해 이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의원의 정치경력은 김최고위원과 분리시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졸업후 부산동성중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당시 야당의 원내부총무였던 김최고위원을 보좌하는 국회전문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며 「불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뚝심과 의리로 뭉쳐져 있다는 평. 12대 국회전반기에 신민당 원내총무로 유성환의원 구속에 책임지고총무직을 물러날 때까지 여당과의 개헌협상을 주도하며 「성가」를 높였다. 부인 신길자여사(47)와의 사이에 1남2녀. ▲경남 거창출신ㆍ54세 ▲동국대 정치과졸 ▲9ㆍ10ㆍ12ㆍ13대의원 ▲신민당 원내총무 ▲민주당부총재ㆍ사무총장 ◎박희태 대변인/다양한 목소리 조율… 여의 참모습 국민에 전달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민의 원하는 밝고 희망찬 내일을 건설하기 위해 민주자유당이 믿음직한 목소리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3일 지역구(경남 남해ㆍ하동)활동도중 거대 여당으로 출범한 민자당의 초대 대변인으로 임명통보를 받은 박희태의원은 『과거 여소야대때 야당측을 공격하는 데 치중했던 구태에서 탈피,국정을 주도하는 여당의 참모습이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초년생답지않게 지난 1년2개월동안 중간평가ㆍ공안정국ㆍ5공청산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정국상황아래에서 민정당의 대변인을 맡아 때론 맞받아치고 때론 한발비켜서는 「히트 앤 런」작전을 적절히 구사,「명대변인」으로 평가받았던 박의원은 『앞으로 당내에 상존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적절히 조화시켜 한목소리로 발표하기까지 어휘선택에서도 상당히 고심해야 될 것 같다』며 대변인의 고충을 미리 예견했다. 그는 『이번 정계개편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모두 호의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일부의 오해나 편향된 시각을 인정하면서 『이같은 오해를 빠른 시일안에 불식시키고 민자당을 국민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도 대변인에게 주어진 중대한 책무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한 전달자이상의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을 뜻을 비췄다. 고시 13회의 선두그룹으로 부산고검장까지 지낸 박의원은 특유의 「판단력과 재치있는 화술」로 정치데뷔 2년 만에 민정당의 원내부총무와 대변인을 거치면서 정치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정당시절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유달리 부드러운 눈길을 받았던데다 고검장 출신의 경력으로 인해 「3선급」 중진예우를 받아왔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시절에 일어난 중국민항기 납치사건때는 중국대표단과의 협상에서 수완을 인정받았으며 원내진출후에는 율사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국정감사및 조사법ㆍ증언감정법 심의당시 야당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에 맞서 강공으로 치달을 때 「동행명령제」란 묘안을 찾아내 대치정국을 푸는 등 법안심의때마다 자문역으로 떠받들어지곤 한다. 박의원은 매주 한차례씩 지역구인 남해ㆍ하동에 내려갈만큼 조직관리에 열성적. 화전주부대학등 두개의 주부대학을 세워 지역구민들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있다. 김영삼최고위원과는 경남고 동창이어서 인선과정에 불리하게는 작용하지 않았을 거란 관측들.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서울시내에 모르는 술집이 없을 정도로 「폭탄도사」라는 별명을 듣는 애주가. 건국대교수인 김행자여사(49)와의 사이에 딸만 둘. ▲경남 남해출신ㆍ52세 ▲서울대 법대졸 ▲고시13회 ▲미버클리 법대수학(법학박사) ▲법무부출입국관리국장 ▲춘천ㆍ대전ㆍ부산 지검장 ▲부산고검장 ▲민정당대변인
  • 9년만에 간판내린 민정당의 「영과 욕」

    ◎「5공굴레」 벗으려 “발전적 해체”/“신 군부의 전위대” 달갑잖은 악역 마감/경제ㆍ외교적 발전은 괄목할 만한 성과/신당에서의 역할따라 역사적 평가 좌우될 듯 ○민주정의당이 1일 전당대회에서 민주·공화당과 합당을 결의, 9년 보름여에 걸친 영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민정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이면서도 5공과의 악연을 끊지 못해 집권중 해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과거 속으로 묻히고 있다. 당의 해체에 대해 민정당 관계자들은 「창당이념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발전적 해체」(최재욱의원)로 기록하고 싶어한다. 새로운 정치환경에 부응,안정ㆍ번영ㆍ통일의 창당이념을 영구적으로 구현키 위한 방법으로서 민주ㆍ공화당과의 합당을 설명하고 있다. 합당의 목적이 집권당내의 정권교체를 담보하기 위한 장치마련에 있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이런 해석도 민정당 해체의 한 단면을 설명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자력으로 정권을 재창출한 자부심과 10년 집권의 기득권을 조건없이 포기하고 당기를 내린 것은 당의 해체를 과거청산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다. 민정당은 12ㆍ12와 5ㆍ17에 의해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정치전위대로 탄생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정치적 자살」을 강요당한 셈이다. 「신군부」가 정권장악 과정에서 저질렀던 비도덕적 행위들은 민정당의 원죄로 치부되고 있다. 비록 5공ㆍ6공의 두 공화국을 탄생시킨 모태로 권력의 핵심들과 영욕을 함께 했지만 그 원죄로 인해 자신의 주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질시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민정당의 극복할 수 없는 한계였다 할 것이다. 전임총재였던 전두환전대통령을 국회증언대에 세우고 정호용의원을 사퇴시킨 것은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민정당의 자구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희생양의 제공에도 국민적 인식은 민정당의 거듭나기를 부인함으로써 그 자신을 끝내는 청산해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정당의 해체가 집권세력내 파워게임에 의해 촉진되었다고 보는 접근방법도 음미할 만하다. 노태우대통령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벌어진기존중간보스들과 박철언정무1장관과의 파워게임에서 조기당해체론자인 박장관의 승리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5공과 6공을 탄생시킨 민정당이 새 정당에 통합됨으로써 민정당 창당세력ㆍ5공세력ㆍ6공출범 주역들의 무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를 바꿔 말하면 새 집권당 내부에 무대를 가진 유일한 민정세력은 통합신당창당의 주역인 박장관밖에는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민정당의 조건없는 해체를 집권세력내 파워게임과 무관치 않게 보는 이유가 여기서 찾아지고 있다. 민정당의 짧지 않은 역사에 대해 공과를 평가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할 수 있다. 다만 민정당집권 9년 보름은 정치ㆍ사회적으로 는 「암」의 시대로,경제ㆍ외교적으로는 「명」의 시대로 구분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민정당의 집권기간 동안 정치ㆍ사회는 「어두웠던 기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록 6ㆍ29 이후 민주개혁이 잇따랐지만 이는 민정당의 자발적인 개혁이라기보다는 국민의 힘에 의한 강요된 개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5공화국 기간은 유신보다 더한 정치적 암흑기로 기록되고 있고 민정당은 「정치 실종기」의 주연도 아닌 조연으로 일관했다. 정치의 중심은 당이 아닌 청와대와 국가안전기획부에 있었으며 이 점은 민정당이 끝내 국민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단명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출범 당시 개혁주도세력의 핵심들이 모두 청와대나 군에 포진하고 당은 비핵심들에 의해 위탁관리되고 있었던 데서 이 점은 분명해진다. 스스로 정권을 재창출한 6공화국은 민정당에게 그나마 「영」의 세월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고단한 자기와의 싸움으로 일관했을 뿐 민정당 자신의 시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민정당정권은 경제와 외교면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외채왕국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위상을 바꾸었고 물가를 잡는 데 성공했다. 경제에 관한한 공화당정권에 뒤지지 않는 공을 남겼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민정당정권이 올림픽을 유치하고 이를 세계적인 잔치로 꾸민 것은 한국을 「세계속의 한국」으로 끌어올린 하나의 상징적사건이었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토대로 외교적 노력이 결합해 만들어낸 올림픽을 통해 한국은 동양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사의 한 주역으로 자리를 바꿀 수 있었다. 민정당이 정권을 재창출했다는 점은 비록 창출된 정권의 집권도구로 출발했다는 탄생의 부자연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당사에 기록되어야 할 새로운 경험임에 틀림없다. 민정당 집권의 공과에 대해 과가 공보다 강조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누적된 과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당을 해체했을 만큼 민정당 스스로도 과가 공보다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민정당에 대한 현재의 부정적 평가 대신 공이 강조되는 상황이 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던 민정당의 해체로 집권세력은 과거로부터 한결 자유로와지게 됐다. 또한 민정당의 해체를 통해 집권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 채무를 없던 일로 치부할 수 있게 됐다. 전두환전대통령등 5공세력에 대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민정당의 9년여가 과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뚜렷한 역사의 한 장으로 남을 것인지는 「민주자유당」이 어떤 기능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김영만기자〉 ◎전당대회 이모저모/지도부의 설득 주효… 상정 7분만에 만장일치 ○…민주ㆍ공화당과의 합당결의를 위해 1일 하오 2시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 민정당의 마지막 전당대회인 6차 임시전당대회는 합당결의에 대한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가운데 당초 예상보다 5분이 빠른 65분만에 종료. 전체 대의원 9천72명중 8천76명이 참석한 이날 전당대회는 민정당이 창당 9년 보름만에 사실상 해체된다는 측면에서 다소 비감한 분위기가 감돌 것으로 예상됐으나 「민정당의 발전적 해체」라는 당지도부의 잇따른 설득이 주효한 탓인지 수시로 박수가 터지는 가운데 만장일치로 통합결의를 가결. ○…이날 하오 2시3분 박태준대표를 비롯한 고문ㆍ당직자들의 대회장 입장에 이어 박대표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된 전당대회는 윤길중고문을 전당대회 의장으로 선출하는등 일사천리로 진행. 당무보고에 나선 박준병사무총장은 민정당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합당결의의 배경과 필연성을 설명한 뒤 『노태우총재의 결단은 시대적 요청과 국민적 여망에 따른 것』이라며 이해와 협조를 요청. 이어 이날 전당대회의 유일한 안건인 「합당에 관한 건」이 하오 2시25분 상정되자 남재희중앙위의장은 제안설명을 통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을 통한 새 정당 창당 ▲합당의 절차ㆍ시기ㆍ방법 등의 중집위 위임 등 2개항을 설명하면서 자세한 배경에 대해서는 『협조해달라』 말로 대신. 그러자 윤의장은 15인 민정당창당준비위원의 일인으로 느끼는 소감을 피력하면서 남의장의 제안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해줄 것을 요청,『이의 없습니다』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가운데 안건상정 7분만에 만장일치로 가결. ○…합당결의가 가결된 뒤 당총재인 노대통령은 박대표가 대독한 치사를 통해 3당합당의 불가피성과 합당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개혁하는 세력만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며 자세의 전환을 촉구.〈우득정기자〉
  • 「제2의 김대두」 살인마 심영구 주변과 범행 수법

    ◎사소한 시비에도 칼부림 예사로/8개월간 7명 살해… 10차례 강도/중1 중퇴… 구두닦이ㆍ막노동 “밑바닥 생활” 8개월동안 10여차례나 살인강도행각을 벌이며 무고한 시민 7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희대의 살인마가 경찰에 붙잡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22일 경기도 성남경찰서에 구속된 심영구씨(30ㆍ성남시 수정구 신흥1동 6324ㆍ전과1범)(30일자 서울신문 사회면보도). 범인 심씨는 단순강도 살인미수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보강수사중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서울ㆍ성남 등 10군데서 7명을 흉기로 무참하게 찔러 숨지게 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살인강도 및 살인미수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심씨는 지난해 5월21일 상오1시20분쯤 성남시 태평3동 368의2 이경희씨(23ㆍ여)가 운영하는 미장원에 침입,등산용 칼로 이씨의 목을 4차례 찔러 중상을 입히고 현금 7천원을 빼앗은 것을 비롯,6월16일 상오2시30분쯤에는 서울 관악구 남현동 1058 앞길에서 귀가하던 김애화씨(42ㆍ주부)의 등과 가슴을 찔러 살해한뒤현금 10만원을 강탈하는 등의 수법으로 광적인 살인강도행각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심씨의 살인강도행각을 범행 날짜별로 보면 지난해 5월과 6월 이ㆍ김씨에 강도ㆍ살인행위를 한 것을 비롯,6월11일 성남시 신흥3동 골목길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신순희씨(42ㆍ여ㆍ술집경영)가 욕을 한것에 격분,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으며 8월4일에는 김선자씨(43ㆍ가정주부)를 성남 단대1동 골목길에서 살해했다. 또 11월16일 새벽2시쯤에는 성남시 수진동에서 철야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는 강민석씨(53)가 들고가는 성경책을 돈가방으로 알고 등뒤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했으며 2시간뒤인 4시쯤에는 성남시 신흥1동 5562 목영순씨(45)의 르망승용차를 훔쳐 달아나는 등 닥치는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같은날 26일에는 노점상 이성립씨(57)를 경기도 구리시에서,27일에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사소한 시비끝에 김종팔씨(29)를 칼로 찔러 각각 살해했다. 범인 심씨가 경찰에 검거된 것은 지난해 12월25일 상오4시쯤 집부근 슈퍼마켓에 침입,10번째 범행을 하다 주인 조영연씨(37)가 거세게 반항하자 달아나다 신고있던 슬리퍼 한짝을 남긴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성남경찰서는 이 사건을 인근 불량배들의 소행으로 보고 슈퍼마켓을 중심,반경 1㎞이내의 불량배 8백여명을 대상으로 사진대조 수사끝에 심씨를 포함한 3명을 용의자로 압축,추적수사를 펼쳤었다. 경찰은 지난19일 하오7시쯤 서울 강서구 등촌2동 520 애인 진모양(23) 집에 숨어 있던 심씨를 검거,장물과 함께 슈퍼마켓범행을 자백받고 범행수법이 동일한 그간의 강도살인사건에 대한 여죄를 추궁끝에 범행일체를 자백받은 것이다. 범인 심씨는 8살때 부모가 이혼한뒤 계모와 4명의 의붓동생들 사이에서 살아왔고 중학1년을 중퇴한후 신문팔이ㆍ구두닦이ㆍ막노동 등을 하며 지내왔으며 지난88년 6월에는 강도상해죄로 3년6월의 실형을 살고 출소,인형공장에 다니는 생모와 함께 어렵게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 부녀자 감금ㆍ폭행 피의자 2심서 무죄를 선고/서울고법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진성규부장판사)는 12일 강간ㆍ미성년자유인ㆍ감금ㆍ폭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7년을 선고받았던 김병연피고인(39)에게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87년 4월초 충남 논산군 논산읍 관촉동 앞길에서 당시 14살이던 박모양을 여관으로 끌고가 욕을 보이는 등 5차례에 걸쳐 강간ㆍ폭행한 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술집에 팔아넘겼으며 그뒤에도 가끔 불러내 폭행하고 다시 딴곳에 팔아넘긴 혐의로 88년12월 구속기소됐었다.
  • 전두환씨의 시계/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신은 사람보다 생각이 깊다』 1989년 12월31일 밤,증언대에 서 있던 전두환씨는 셔츠소매를 들치며 몇번 시계를 보았다. 훤소와 매도,능멸이 빗발치는 한 가운데서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문채 시계를 보는 모습은 흡사 초침을 밀어올려 자정을 끌어당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자정. 그것은 그가 개입되면서 출발된 연대인 80년대의 말미를 뜻한다. 스스로 자기연대를 끝내기위해 초침을 밀어올리며 시각을 지켜보는 그를 보며 신은 역시 사람보다 생각이 깊다고 탄복한 전기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웰링턴에 의해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하고 프랑스의회에 의해 「백일천하」의 황위에서도 퇴위당한 나폴레옹이 해외탈출을 하기 위해 바닷가에 섰을 때,다시한번 찾아온 반역의 기회를 포기하는 국면을 전기작가는 그렇게 서술했던 것이다. 절망의 바다위에서 해적처럼 쇠사슬에 묶여져 웰링턴장군에게 끌려 런던으로 연행되는 악몽에 쫓기던 그였지만 그래도 그는 적국의 기사도를 신뢰하는 쪽을 선택한다. 영국 순양함 베렐로폰호에 올라 섭정관의 선처나 고대하며 선상생활하기 열흘,배는 이윽고 영국 플리머드항에 도착한다. 7월의 맑은 아침,『나폴레온 오다!』의 소식에 우리에 갇힌 사자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보트들이 삽시간에 순양함을 에워쌌다. 선실에 틀어박혔던 사슬없는 포로 나폴레옹은 멋도 모르고 멈춘 배가 궁금해서 후갑판으로 머리를 내밀고 나왔다. 나왔다가 그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배위에서,배언저리 보트 위에서,와글와글 소요를 피워대던 영국인들이 일제히 모자를 벗는다. 벗고서 포로나 진배없는 그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이것이 무슨 뜻이었을까. 전기작가의 말처럼 『증오와 경멸에 차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시민도 황제의 존엄과 고뇌에 찬 모습을 보고는 자기자신의 마음까지 깨끗이 씻어버리고 말았음에 틀림없는 것』이었을까. 적어도 20년 동안은 영국인을 괴롭혀온 적장이 비굴하고 하잘 것 없는 필부였다면 그편이 훨씬 영국인을 불행하게 했을 것이다. 선상에 나타난 나폴레옹을 향해서 일제히 보낸 시민의 「경의」는 영국인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전두환씨가 자기시대의 종식을 위해 자기손목위의 시계초침을 밀어올리며 종언의 순간을 지켜보게 한 것이 신의 어떤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거대한 구획을 그으며 물러가는 세월의 경계선 위에 서서 타기와 질책의 물리적 위하를 직접 견디면서도 높낮이가 일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증언」을 읽어가던 「전대통령」에게서 나는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그가 아직도 너무 당당하고 「잘못한게 없다」는 투로 말하는 태도에 사람들은 반성을 모르는 증좌라고 분노했다. 그로 인해 빚어졌던 하고많은 비극과 고달픔때문에 분하고 억울하여 치를 떠는 사람들에게는 그 분노는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1989년 12월31일 자정을 향해 서있던 전두환씨의 모습이 당당하고 꿋꿋하기까지 했던 일은,그렇지 못했던 것보다 다행한 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에 그가 비굴하고 용렬하게 구겨져서 머리를 조아리며 잔명을 빌었다면,그편이 훨씬 우리를 불행하게 했을 것이다. 지나간 10년동안,우리의 운명을 쥐고 통치했던 사람이 겨우 그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다면,대체 우리는 무엇이었던가 하는 부끄러움에서 헤어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커다란 실패였을 뿐인 세월이었더라도,그것이 통치자가 지녔던 신념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그쪽이 우리의 자존심을 덜 상처내는 일이다. 80년대의 마지막 시각에 서있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태도는,모자라는 반성과 불성실의 혐의로 분노를 충천시키게는 했을 지언정 우리를 참담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약사발」이든 「감옥」이든 국민이 내리는 벌이면 기꺼이 받을 것이라는 말을 꾹꾹 눌러가며 다지듯이 말했다. 유배당한 겨울 산사에 아내를 남겨두고,으르렁거리는 정적에 둘러싸여,편들어 보호해줄 아무런 힘도 지원받지 못하는 그가 「감옥」과 「약사발」을 걸고 맹세를하는 것은 결코 수사일수만은 없다. 차라리 죽을망정 욕된 몰골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결의를,그는 눈깊은 산속에서 다지고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허세도 뜻이 없고,영광이나 영화의 꿈을 꿀만한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비실비실 무너지지 않고,들고나온 문서를 막힘없이 좔좔 읽어나가며,그일을 제지 당할때마다 꾸욱 다문 입에 힘을주며 가끔씩 초침을 밀어올리며 자기 시대를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 버티어준 기력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천하의 사람이 무어라 하더라도,혹은 그것이 비록 허황된 환상의 착각이었을지라도 그딴에는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아끼는 일이라고 믿고서 행한 일이었음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겪은 시대가 실패와 불행이 예정된 피치못할 운명이었다면 비열하고 못난 통치자를 마지막 날에 보아야 하는 불행을 격게 되지 않은 일만이라도 다행스런 일이다. 증언을 위해 떠나는 전날밤,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하기를 조언했겠는가. 세상의 쓸데없는 입줄에 오르지 않기 위해 거기 깊은 산중에 떨궈져 있는 아내를 향해 그가 보여주기로 했던 약속된 모습을 아마도 그는 해냈을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해 며느리를 위해 사위를 위해,아직도 어린 막내가 이후에 두고두고 기억해도 부끄럽지 않을 모습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을지도 모를,그것을 그는 지켰을 것이다. 그의 시대는 그것으로 끝났다. 셔츠소매를 걷어 올리고 들여다보던 시계를 통해 그렇게 끝났다. 그가 선택한 막내림의 모습이 이만큼이라도 우리를 불행하지 않게 한 일에 마지막 묵례를 보내도 좋을 것같다.
  • 「민족분규」 확산… 소 개혁정책 “시련”

    ◎고르바초프 「현장방문」 속사정/발트해 3국 독립요구… 「연방존속」에 위기감/주민설득 실패땐 페레스트로이카 큰 곤욕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민족문제와 경제사정등 국내 사태의 악화로 시행 5년만에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민족문제에 있어 소련당국은 발트해 3개 공화국에 대해 지난 한햇동안 고유국기ㆍ고유언어의 사용허용과 함께 재정독립권을 부여하는등 제한적이나마 자치와 관련된 많은 조치들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들 공화국은 이러한 제한적인 양보조치에 만족치 않고 일관되게 대소독립을 요구하며 1940년 소련과의 합병자체를 무효화시킬 것을 주장해왔다. 지난 12월 리투아니아공화국 공산당이 중앙당과의 분리를 결의함으로써 이러한 독립요구는 마침내 소련당국의 「허용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흔히 써온 스타일대로 자신이 직접 리투아니아공의 수도 빌나를 방문,주민들에게 직접 분리결정의 철회와 독립요구의 자제를 호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의욕적」인 개혁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개선의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는 경제사정 때문에 소련국내에서 그의 권위와 인기는 현저히 떨어져 있어 이러한 호소가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현재 동유럽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속도와 폭은 어느의미에서는 고르바초프가 당초 의도했던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구상은 정치적으로 공산당 주도하의 제한된 복수주의와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 중심의 역시 제한적인 시장제도 도입으로 지금의 사회주의체제를 재생시키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유럽 각국의 개혁은 이런 정도를 훨씬 넘어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붕괴선까지 발전해 가고 있고 이런 분위기가 결국은 소련의 개혁을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새 의회(인민대표최고회의)가 구성되고 정책토의과정이 상당부분 언론에 의해 공개되는등 글라스노스트(개방) 면에서 이루어진 성과는 많으나 실질적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소련국민들의 불만이다. 가장 큰 요인은 경제면에서 나아진 게 없다는 점이다.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제도의 도입으로 일반국민들 사이에 생필품 부족현상은 더 심화되었고 가격인상까지 겹치고 있다. 5년이 지나도록 개혁의 실질적인 결실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관료조직의 「태업」 행위와 일반국민들의 실망감,그리고 그로인해 사회전반에 무력증세가 확산돼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요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도력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세력은 아직 없는게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개혁을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당지도부가 앞장서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유럽의 거센 개혁바람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당분간은 지금까지 취해온 개혁의 페이스를 유지해 나갈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임박한 문제는 역시 발트해 3국을 포함한 각 민족의 독립요구들인데 이는 소련연방 자체의 존속문제와 관련,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소련당국의 입장이다. 1백개가 넘는 다민족국가로서 각 연방공화국의 독립요구를 들어줄 경우 엄청난 혼란을 초래해 소연방의 존립자체를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고르바초프의 방문에 앞서리투아니아를 방문한 메드 베데프서기는 이달말께 모스크바에서 개최될 공산당전체회의에서 지방공화국 공산당의 조직자유확대가 대폭 제기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인 블라디미르 사비츠키는 9일 리투아니아에서 대규모 항의시위가 있을 경우 고르바초프의 방문시기가 연기될 수도 있다는 시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리투아니아공산당의 연방공산당으로부터의 완전분리노력은 기필코 저지시키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련은 그러나 지난 몰타 미소정상회담 때 약속한 대로 민족문제 해결에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과연 어떤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만약 이번 리투아니아주민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설득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그의 개혁정책 자체는 큰 시련기를 맞을 것같다.
  • 주뉴욕 총영사 채의석씨/아가나 총영사 최용씨

    정부는 5일 주뉴욕총영사에 채의석 주유엔차석대사(사진)를 주아가나총영사에 최용외무부본부대사를 각각 임명,발령했다. 정부는 또 초대 주소영사처장으로 내정된 공로명 주뉴욕총영사를 외무부 본부에 근무토록 했다. ◇채총영사 약력(56ㆍ전북 옥구) ▲서울대 행정학과졸 ▲주불참사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 ▲주카메룬대사 ▲주튀니지대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주유엔차석대사 ○강총리,민주총재 방문 강영훈국무총리는 4일 김대중 평민,김종필 공화당총재를 예방한데 이어 5일 민주당 김영삼총재를 중앙당사로 방문,당면 경제난국 극복에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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