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무주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방문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나라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68
  • 진짜 부정재는(외언내언)

    공직자 재산공개와 그에 따르는 파장을 보면서 자신의 「잘한 처신」에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정해볼수 있다.괜찮던 자리 「용감하게」박차고 사표를 던져버린 경우들이 그것이다.자신들처럼 용단을 못내린채 자리에 미련을 갖고 버티다가 지금 사회적인 눈총과 지탄을 받고있는 「잔류파」에 대해 은근히 「동정」까지 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사퇴공직자의 재산이야말로 반드시 눈여겨 실사해봐야할 대상들이다.개중에는 재산공개와는 관계없는 사퇴자도 있다고 하겠으나 상당수가 재산노출을 두려워한 경우들 아닌가 한다.재산이 알려져서 욕을 먹고 곤욕을 치르느니 차라리 자리를 떠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던 축들이다.그렇게 본다면 그들 가운데 「진짜불정재」는 더 많다고 할수도 있다.「떠나버리면 그만」으로 되어서는 물론 안된다.떠났다해도 가려볼건 가려보고 뒤져볼건 뒤져봐야 한다. 도둑질하면서 묻은 숯검정얼굴에 밀가루칠을 한다하여 금방 군자상으로 되는것은 아니다.지어놓은 허물은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것이던가.「노자」(73장)에 「천망회회 소이불실」이라고 했던 말의 뜻도 그것이다.딴에는 꾀를 써서 잘 빠져나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늘이 쳐놓은 그물은 하도 커서 얼핏 보아 엉성해도 거길 빠져나가지는 못하는것』이다.숯검정이 묻어있다면 본인의 진퇴에 관계없이 「하늘그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그래서 게워낼것이 있다면 게워내게 되어야 하고 응분의 처분도 뒤따라야 한다.사표가 면책특권으로 될수야 없는일 아니겠는가. 『어려운 일을 당해서는 그를 모면하려 들지말라』(임란무하면)는 말이 「예기」(예기:곡례상)에 보인다.당당히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대처함이 올바른 삶의 자세임을 가르치는 글귀이다.그들에게 그같은 자세를 기대한다는것이 애당초 잘못인지는 모르지만 슬며시 빠져나가려 했다면 부정재 모은것 못잖게 비굴한 일이다.그들이 무사해서는 안된다.
  • 일부선 투기·공직이용한축재“냄새”/1∼2차 공개내역비교와 의혹사례

    ◎본인 2억여원에 배우자 74억 “아리송”/국회의원들 철저준비 “1차때와 비슷”/시가기준 산출로 4∼5배 “증식” 되기도 땅,땅,땅…. 6일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되자마자 일부 인사에 대해 벌써 부정·투기의혹이 일고 있다.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 상당량의 토지·가옥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누가 보아도 투기의혹을 짙게 풍긴다.더구나 공직을 이용한 축재,투기혐의가 있는 케이스도 다수 눈에 띈다. 금융자산이나 현금을 은닉한 것같다는 의심을 살만한 대목도 다수 있다. ○무연고땅 상당수 ○…이번 재산공개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지난 4월 자진공개때와의 차이점.국회의원과 장차관들의 1·2차 재산공개내역이 틀릴 경우 심대한 도덕적 타격이 예상됐기 때문. 1차공개에서 곤욕을 치렀던 국회의원들은 그간 철저히 대비를 해왔음에도 상당수 의원들의 재산내역이 틀리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그러나 민자당의 김영광의원은 부인 명의의 제주도땅 7개소를 새로 공개,지난번의 공개가 부실했음을 드러냈다.이에 따라 김의원은 재산이 29억9천만원에서 84억3천만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김동권의원은 서울·대구등지의 부동산 상당량을 새로 신고했고 윤태균의원도 1차때 없던 재산내역이 포함됐다. 민자당의 김진재의원은 소유주식을 시가로 신고해 재산이 지난번 2백77억원에서 이번에는 6백62억원으로 늘어났다.조진형의원도 소유 부동산 공시지가상승을 이유로 1백24억원에서 4백84억원으로 증가한 재산을 신고했다.남평우의원도 1차 28억8천만원에서 2차 1백14억2천만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도덕성 타격 예상 의원들 가운데는 1차때 문제가 됐던 인사들의 부동산보유가 역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박박식의원은 본인 명의로 땅 30필지,주택 19채를 소유하고 있었고 부인도 임야등 5필지,점포등 10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장·차남등 자식 명의의 부동산도 상당해 투기의혹을 사고 있다. 민주당의 박태영의원도 본인 명의로 경기도 일대에 상당량의 토지를,부인과 모친명의로 제주도와 전남지역에 땅을 보유하고 있어 역시 구설수. 그밖에도 민자당의 양정규의원과 민주당의 신진욱·양문희의원,무소속의 양순직의원도 여러 명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의혹대상에 오르고 있다.민자당의 이학원의원은 광명시와 서울 동작구에 9건의 부동산을 보유,역시 투기혐의를 짙게 한다. ○1차부실 드러나 ○…장차관들 중에는 등록액수는 다소 차이가 있어도 내역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 큰 문제가 되는 케이스는 적을 듯. 하지만 새로 재산을 공개한 1급공직자나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중에는 의혹을 살만한 재산을 가진 인사가 상당수 발견된다. ○부인·부모 명의도 김태연경제기획원차관보의 경우 상속재산을 포함,4채의 주택과 함께 임야·밭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이강우 공정위상임위원은 지난 62년 서울 중부시장내 상가점포(1억7천만원 상당으로 신고)를 부친과 공동명의로 산 것으로 등록했는데 당시 이위원의 나이가 24세에 불과해 명의만 빌려준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 외무부 관리들은 오피스텔등 상가를 전반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어 역시 투기의혹을 사고 있다.김기수 전뉴욕총영사는 경기도 일대에 임야를 다량 소유,모두 35억원의 재산을 공개했으며 부인도 모두 8캐럿이상의 보석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했다.또 장손자·손녀 이름의 예금액이 2천4백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훈파키스탄대사도 강남에 부동산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는데 「부동산을 수없이 팔고 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은 서울 강남에 총43억1천만원 상당의 대지를 소유한 것으로 공개돼 직업외교관으로는 너무 재산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태수농림수산부차관은 본인과 부인명의로 경기도 평택군에 2억원 상당의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신구범기획관리실장등 다른 농수산부 관리들도 전답 혹은 과수원등을 갖고 있어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이판석농촌진흥청장은 세를 주고 있는 서울 신사동의 상가건물이 의혹을 사자 『83년에 주거용으로 산 건물』이라는 해명서를 내기도했다. ○장·차관 다소 양호 행정부서 최고 재산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김광득해운항만청차장은 본인 재산은 2억1천6백만원인데 비해 배우자 재산은 74억5천만원으로 신고해 주목을 받았으나 상속재산이라고 해명. 이연희경인지방국세청장은 도처에 땅을 갖고 있었으며 상속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투기의혹이 제기.이청장은 충북 청원·진천 일대 임야·전답·대지등 3만평을 상속받은 이외에도 서울 수유동·쌍문동 단독 주택과 장남 명의로 경기·충북 일대에 많은 땅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곧 해명서 제출도 유길선감사위원은 본인과 배우자명의의 임야 대지 전답 아파트 오피스텔 근린생활시설등을 다수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 감사업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유위원은 특히 부인명의로 11억3천9백만원의 부동산을 가진 것으로 신고했다. 박양배제주경찰청장도 부동산 알부자라는 소문에 걸맞는 보유현황을 보이고 있다.본인뿐 아니라 부인도 인천 북구 부평동에 27억원상당의 빌딩(2채)을 소유하고 있다. ○유산 상속 받기도 ○…처음 재산을 공개한 사법부는 투기의혹을 사고 있는 인사 몇몇이 미리 사퇴했음에도 불구,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27억8천여만원을 신고한 김덕주대법원장부터 투기의혹을 사고 있다.김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인 86년에서 88년 사이 본인과 장남명의로 경기도 용인군과 평택군,서울 원지동등에 임야·전답등 모두 7만여평이 넘는 땅을 집중 매입,부동산투기 흔적이 역연. 검찰에서는 최명부대구고검장이 경기도 일대에 10건의 부동산과 2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배우자도 경기도 양주군에 부동산을 갖고 있다. ○전답소유 “눈총” ○…공직유관단체 임원중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박양호감사가 경기도 이천,장호원의 과수원등 부인명의의 부동산 24억6천만원을 공개했다.한만청 서울대병원장도 본인과 부인 이름으로 경기도 용인·안성지역에 70년대말에서 80년대초까지 집중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해 투기의혹을 받고 있다.
  • 뉴욕 총영사 이현홍/밴쿠버 총영사 강종원

    ◎베를린 총영사 김재규/UN사무처 및 국제기구대사 박창일 외무부는 27일 주뉴욕 총영사에 이현홍 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사진)을 임명했다. 외무부는 또 주제네바 국제연합사무처및 국제기구 대표부대사에 박창일 의전심의관을,주밴쿠버 총영사에 강종원 광주시 국제관계자문대사를 각각 임명했다. 주베를린총영사에는 김재규 대전시 국제관계자문대사가 임명됐다.
  • 청와대 중대발표설/정재계 “술렁” 해프닝

    ◎“하오 4∼5시 뉴스발표” 예고가 발단/“화폐교환·남북회담” 루머 증시 소동/확인전화 빗발… 공보실 온종일 곤욕 청와대의 단순 뉴스릴리스 예고가 과장,증폭돼 증시와 재계·정치권이 19일 하룻동안 「중대발표설」로 긴장하는 해프닝이 발생. 사건은 청와대 공보당국자가 이날 정례브리핑을 끝낸뒤 하오 4∼5시쯤에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데서 발단.이 당국자는 기자들이 내용을 거듭해 묻자 1면톱거리는 아니라는 뉘앙스를 전달하면서 『재미있고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예고. 이 소식은 거두절미한채 청와대에서 하오에 중대발표를 한다는 내용으로 과장돼 바로 증시로 흘러들었고 이때부터 소란이 시작.증시의 루머는 「화폐교환」또는 「남북정상회담발표」등으로 다시 각색,구체화되면서 정치권과 관가·재계로 흘러들었다. 이때문에 청와대는 이날 하루내내 전국민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청와대 모든 사무실은 내용을 확인하려는 전화가 빗발쳤다.외신들도 청와대 공보실에 내용을 문의하느라 법석을 떨었고 전언론사에 내용을 묻는 전화가 쇄도. 심지어 민자당의 주요 당직자들도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내용을 탐문하느라 부산.야당의 경우 박지원대변인이 『경제수석실에 전화했더니 화폐교환은 아니고 뭔가는 있다고 하더라』는 말까지 소개. 소란은 당국자가 하오 3시30분쯤 기자실에 들러 『아무것도 아닌데 왜 문제가 복잡해졌는지 모르겠다』며 『김대중씨 납치사건 규명에 대한 정부의 협조를 총리에게 지시한 것이 예고내용』이라고 소개함으로써 일단락.이날 사건은 화폐교환설이 증시에 난무하는 상황에서 터져나와 더욱 그럴 듯하게 각색이 됐던것.
  • 밤샘대기 장애자 서문 입장1호 기록(엑스포 이모저모)

    ◎각종 안내 팸플릿 30분만에 다나가/발끝 물집환자 많아 약국에 “밴드특수” ○3시간전부터 줄서 ○…대전엑스포의 개막과 함께 입장객 1호,구속자 1호,미아발생 1호등 각부문별 1호가 잇따르고 있다. 이날 조직위측은 입장객1호의 경우 1명을 따로 정하지 않고 동·서·남문등 3개 문별 첫입장객으로 별도 발표.이는 3개 문을 동시에 개장하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 없었기 때문. 동문 첫입장객은 경남 충무에서 외가집에 놀러온 이연희양(12·충무 진남국교5년)이 상오6시30분부터 1호 입장을 기다린 끝에 외할머니 김유의씨(59·대전시 중리동)와 함께 일등입장의 영예를 차지했다. 남문의 경우 제주도에서 온 고배준군(9·제주 동국교2년)이 차지.부모와 함께 어제 대전에 도착,여관에서 하루밤을 잔뒤 새벽같이 박람회장에 도착한 고군은 『꿈돌이와 이야기하고 싶어요.그리고 제일 먼저 한빛탑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서문 장애인 1호입장객으로는 이인구씨(58·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가 결정됐다.이씨는 아들·딸·손자등 14명의 대식구를 이끌고 6일 하오 대전에 도착해 서문주차장에 세워둔 차안에서 밤새워 기다렸다고. ○미·캐나다관 인기 ○…이날 입장객들의 대부분이 엑스포장에 대한 사전정보부족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많은 사람들이 종합안내표지판앞에 떼를 지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볼것인지를 의논하느라 시간을 보냈으며 또 일부는 안내팸플릿이나 꿈돌이안내센터에 마련된 PC안내판에 의존하느라 허둥댔다. 이때문에 입장이 시작된 이날 상오9시30분부터 30여분이 지날 즈음에는 각 안내소앞에 대량으로 비치된 각종 팸플릿과 엑스포신문등이 한때 동나기도 했다.동문의 경우 계획없이 입장한 입장객들은 『사람들이 많이 줄을 지어 있는 곳이 재미있다더라』며 롯데환타지월드관앞에 몰려들어 이곳은 개장되자마자 10m이상 줄을 늘어 서는 기현상이 빚어 지기도. ○미·캐나다관 인기 ○…국제전시구역내의 각국 전시관 가운데 캐나다관과 미국관이 인기를 모았다.캐나다관의 경우 무쏘를 인형화한 「무돌이」와 캐나다국립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전시관앞에 늘어서 관람객을환영하는등 사전에 치밀한 개장준비를 한 모습이 역력했다.그러나 캐나다·미국관과 나란히 위치한 일본관에는 손님이 별로 들지 않아 대조적이었으며 관계자들이 초조해 했다. 일본관은 부스내에 상품판매소를 만들어 선물용품을 팔았으며 내장객에게 볼펜을 선물하는등 「경제동물」이라는 별칭에 맞게 특유의 상술을 발휘했다. ○…엑스포장을 찾는 여자 관람객들이 약국에서 휴대용 밴드를 찾아 약국은 때아닌 밴드특수로 초만원.이는 대회장을 둘러보기 위해 5∼6시간씩을 걸은 여자 관람객의 발뒤꿈치가 벗겨지고 어린이들의 발끝에 물집이 생긴 탓. 서울에서 온 박경애씨(36)는 『아들에게 새 신발을 신겨 데려왔는데 4시간만에 발끝에 물집이 생겨 밴드를 사러왔다』면서 앞으로 엑스포장을 둘러보려면 휴대용 밴드가 가장 필수품일 것이라고 설명. ○즉석 팬터마임도 ○…관람객들이 전시관에서 1∼2시간씩 대기하자 선경 이매지네이션관은 13명의 남녀 피에로를 동원,관람객들의 지루함을 덜기위해 팬터마임을 펼쳐 눈길. ○장애인 등 입장곤욕 ○…장애인들이 엑스포장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7일 상오 9시30분쯤 장애인 전용 출입구를 통해 엑스포장에 들어가려던 장애인 친목단체 「푸른하늘 가족 모임」소속 1백30명이 일반인들에 밀려 부상을 당하고 30여분이 넘도록 입장을 못해 소동. 지체장애자인 이들은 상오 8시쯤 엑스포 서문에 도착,장애인 전용 출입구에 대기하고 있었으나 개장시간인 상오 9시30분이 되자 일반인들이 비교적 한산한 이곳으로 몰려 장애인들은 입장을 포기.
  • 백악관 서툰 해임 많다/미 대통령의 고위직 “옷벗기기” 스타일

    ◎세션스 전 FBI국장 질질끌어 구설수/클린턴/아담스 비서실장 “필요하다” 전격파면/아이젠하워/리건비서실장,해임에 반발 치부폭로/레이건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윌리엄 세션즈 연방수사국장(FBI)을 해임하는데는 6개월이란 시간이 소요됐다.대통령에겐 연방수사국장의 임기규정(10년)과는 상관없이 어느때든 마음대로 파면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당당히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지난 상반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의 선두를 다투는 GM과 IBM이 잇따라 최고경영자인 회장을 문자 그대로「전격」해임시켜버린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다.회장의 목을 치는 대기업 이사회의 기요틴이 매정하리만큼 신속하기 짝이 없는 반면 고래로 미대통령들은 고위 공직자의 옷을 벗기는데 매우「서툴다」.백악관의 기요틴이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바람에 되레 해임 당사자가 쓸데없는 욕을 본다는 비난이 일정도다.이왕 기요틴 신세를 면치 못할 바에는 반나절 전격 집행이 반년 대기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강제해임이 아닌 세션즈 국장 자신의 자진사퇴를 끌어내기 위해 이처럼 긴 세월이 걸렸는데 미대통령들은 해임의 기요틴대신 자진사임이란 꽃다발을 문제인물의 목에 걸어주면서 쫓아내는 방식을 좋아했다.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친구에 대한 정부공사 특혜 구설수에 오른 셔먼 아담스 비서실장을 『나에겐 그가 필요하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해임했었다.또 카터 대통령은 지난 날의 금융부정 전력이 드러난 버트 랜스 예산국장의 사임서를 받으면서 『자네가 자랑스러워』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공적인 자리에서 인종차별적인데다「추잡한」농담을 던진 얼 부츠 농무장관을 해임하면서 포드대통령이 한 말은 『점잖고 선량한 사람의 사임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였다. 이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조기진화를 목적으로 할데만과 에를리히만 등 두명의 보좌관을 물러나게 하면서『가장 뛰어난 공복들』이라고 이들을 추켜세웠다.닉슨은 워터게이트 파문이 한층 거세어지자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백악관의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고 전격 해임,「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치달았는데 콕스검사를 추천했고 직속상관으로 그의 해임을 법적으로 수행해야될 법무장관과 차관이 이에 반발,앞서 사임해버리는 미증유의 연쇄사임 사태를 야기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국전쟁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태평양군사령관인 맥아더원수를 해임할때 만큼 대통령의 절대적 임면권이 부각된 적은 없었다.대통령 자신을 능가하는 인기를 국민들로부터 얻고있는 맥아더원수를 본인의 뜻에 반해 해임하는데는 비난 여론을 뒷감당할 용기가 요구되었다.당시 국민정서에 거스르는 트루먼의 맥아더해임은 세월이 흐를수록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고 맥아더 자신도 대장군답게 해임을 받아들였다.그러나 해임당한 미국의 고위 공직자가 모두 신사적으로 해임에 응한 것만은 아니다. 레이건대통령때 비서실장직에서 해임당한 도널드 레건실장은 해임직후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가 사이비 점성술사를 초빙해 국가대사의 날짜를 결정하곤 했다』등 백악관의 치부를 여럿 폭로하며 복수심을 달래기도 했었다.
  • 삼성/경영혁신 바람 거세다/임원 주4일 공장 등 현장근무

    ◎직원,인사고과·근무성적 자기손으로/잇단 해외회의… “목숨까지 바쳐라” 「혁명적 변화」­최근 삼성그룹의 움직움에 대해 여타그룹들이 일컫는 말이다.삼성그룹(회장 이건희)은 과거에도 남보다 앞서가는 기업이었다.그러나 요즘의 상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물산의 해외파트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인사고과를 자신들이 직접 자율적으로 한다.세일즈담당자는 자신에게 부과된 목표액과 달성한 실적을 점수로 환산,실적과 함께 고과평점을 제출한다.관리직직원은 경비절감과 생산성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잣대로 근무성적표를 작성한다.상사들은 이 성적표의 사실여부만 확인할 뿐 별도로 평점을 매기지 않는다. ○이건희회장의 의욕 삼성의 최고지도부가 요즘 임직원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것이다.대신 회사는 가족들의 일생을 전적으로 책임지려 한다. 삼성전자가 도입하려는 「명예의 전당」 제도는 이같은 취지로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안이다.회사에 크게 기여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모범을보인 직원을 뽑아 그 공적을 영구히 보존하는 이 제도는 삼성의 사풍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1백일휴가제나 부부동반해외연수 등도 무관치 않다. 이건희회장이 지난달 프랑크푸르트회의와 런던회의에서 줄곧 강조한 질위주경영도 따지고 보면 최고경영자에서 말단직원에 이르는 전임직원이 자사제품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에 다름아니다. ○“가족은 책임진다” 삼성계열사 임원들은 요즘 월요일과 수요일 이틀만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 4일은 공장·협력업체·거래선 등을 방문,현장경영을 실천하고 있다.또 오는 8월에는 각 계열사의 전임원이 동시에 한달간 해외출장에 나서 회사업무를 모두 잊고 선진국의 경영실태를 견학할 예정이다. 세계최고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양에 구애받지 말 것을 지시한 이회장은 최근 각 계열사에 질위주경영의 1∼2년차 실천계획을 수립,이달내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또 사별로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믿아내 발견된 문제점을 48시간이내에 해결할 것도 당부했다.지금까지의 과오나 비리는 모두 덮어두겠으나 앞으로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원부서 대폭 감축 회의결과보고도 새롭게 바뀌어 서류 대신 녹음기를 이용하며,쓸데없이 메모하지 말라는 지침도 아울러 내렸다.생산지원부서의 인력을 현재의 절반으로 축소,남는 인력을 영업 및 생산부서에 배치하되 6개월단위로 순환시킬 것도 지시했다. 지금 삼성내에선 이회장의 「말」이 24시간이내 전직원에게 전달되고 있으며,이같은 분위기는 향후 5년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이회장의 방침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며,변화의 속도 또한 예측불가능해 YS보다 더 세다는 농(?)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재계,효과에 큰 관심 삼성의 이런 변화는 과거와 같은 관행으로는 2000년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회장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물론 일본기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점도 무시할 수 없다.이회장이 지난 2월과 3월 도쿄와 LA에서 현지회의를 가진 것이나,지난달 유럽회의와 13일로 예정된 오사카회의를 여는 것도 일본식기법이다. 이회장의 특명에 의해 실시되는 일련의 실험적 개혁조치가 우리여건에서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 검찰의 반성과 자정(사설)

    검찰이 슬롯머신 사건과 관련된 검찰 내부인사의 비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신뢰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 태어날 것을 다짐했다.검찰은 또 국법질서 수호와 사회기강 확립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을 국민앞에 약속했다.국가사정의 중추기관인 검찰이 자성과 함께 새 검찰상을 보여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데 대해 우선 신뢰를 보낸다. 검찰은 그동안 슬롯머신 사건과 관련해 검찰사상 유례없는 아픔과 시련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비리에 연루된 고검장급이 사법처리되고 사표를 내는등 부끄럽고 욕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망과 우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컸던 것도 사실이다.국가기강과 공권력의 보루인 검찰의 도덕성이 겨우 이런 수준인가 하는데 대한 비애와 함께 분노심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이 오늘과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그 첫째 이유는 과거정권아래서 권력의 억압아래 검찰의 독립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권력의 시녀라는비판까지 받아야 했던 것이다.이런 가운데 출세,보신주의가 검찰 조직내부에까지 스며들게 되었고 그로인해 검찰 자체의 청렴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물론 검찰이 전부 그랬던 것은 아니다.부당한 외압을 거부하다가 옷을 벗은 경우도 있고 청렴결백한 처신으로 존경을 받아온 인사도 많다.지금도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들이 더 많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검찰 고위간부의 비리 관련 사건은 검찰 모두에게 치욕적인 상처를 남겨준 셈이 된 것이다. 이제는 과거정권 아래에서와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사정의 상징인 고위검찰까지 권력형 비이에 연루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 안된다.이제 검찰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아무리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크다해도 걸림돌은 모두 없애야 한다.그것이 검찰이 사는 길이다.김영삼 대통령이 사정의 사정과 성역없는 수사를 누누이 강조해온 것도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검찰이 앞장서야 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성과 각오를 새롭게 했다고 검찰의 임무가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새로운 검찰,정의로운 검찰로 다시 태어나려면 검찰의 끊임없는 자정노력과 함께 잘못된 제도와 관행도 차제에 뜯어 고쳐야 한다.아울러 검찰은 개혁의 선봉으로서 우리 사회구조가 모두 깨끗해질 때 까지 비리척결에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검찰이 다시 성숙한 모습으로 일어설 때 신한국의 건설이 앞당겨 지리라 믿는다.검찰은 이번의 아픔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권위와 신뢰를 되찾아주기 바란다.
  • 호화분묘와 유택난과(사설)

    조상을 위하는 위선사는 우리겨레가 예로부터 으뜸으로 쳐오는 덕행이다.조상이 묻힌 묘소를 잘 가꾸는것도 그 위선사이다.그러나 거기에는 은연중 공리성이 깔린다는것이 사실이다.화려한 단장으로 현시욕을 충족시키는 한편으로 명당발복도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복후 어려운 시기를 거친끝에 살기가 나아지면서 위선사하는 풍조가 번져났다.묘역을 단장하고 석물을 해세우고 하는일이다.그런데 도가 지나쳐 사회적지탄을 받을정도로 호화롭게 조성해 오는 점은 문제다.마치 가세경쟁이라도 벌이는듯이 묘역을 넓히고 봉분을 왕릉화하면서 석물건립에 거금을 아끼지 않는다.더러는 주차장까지 마련해 놓은 곳도 있다한다.그것은 도리어 조상을 욕되게 하는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 호화묘역일수록 가봉분도 들어서고 있다고 들린다.돌아간 조상만 위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눈감았을때 묻힐 유택도 미리 호화롭게 마련해 놓자는 뜻이다.죽어서까지 상류층이 되겠다는 일부부유층의 이같은 생각따라 이름난 지관은 불려다니느라 영일이 없었고 전국의 음택후보지에는 투기바람이 불었던 사실도 우리는 기억한다.그들은 위선사라는 미명아래 위화감조성등 우리사회 악폐조장에 앞장서온 셈이다. 이런 사람들이 3평 누울자리 하나 못구해 쩔쩔 매는「보통시민」일수는 없다.다 내로라 하는 명사들이다.재벌총수에 전직장관에 국회의원·종교지도자·교육자등등 우리사회 지도층인사들이다.19일 보사부가 발표한 호화분묘묘주 1백9명의 명단을 봐도 역시 그렇다.상류지도층들이다.문제는 이런 명단공개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그런데도 어째서 없어지지 않는것인지 그대목이 궁금한 것이다. 현재 전국의 무덤은 약2천만기로서 국토의 약1%가 무덤이라고 한다.그위에 묘지는 해마다 서울의 여의도만큼씩 늘어나는 추세속에 있다.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전국토의 무덤화라는 말도 나오게 돼있는 상황이다.그래서 화장이 권장되면서 묘지면적을 줄여나가고 있고 시한부묘지제론도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다.화장이 일반화할수만 있다면 어려움은 없어진다 하겠으나 죽으면 땅에 묻혀야 한다는 전통적 사회통념이 쉬이 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급박해진 현실을 무시한채 묘역넓은 호화분묘를 조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서에 위배되는 독선적이며 이기적인 처사이다.더구나 사회적신분을 악용하여 토지형질을 변경하고 자연녹지를 훼손하면서 조성한 경우라면 민생사정의 차원에서도 엄격하게 다스려야 할것이다.내년에는 호화분묘조성자 명단공개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어질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로드니 킹」사건 관련자들 “돈방석”

    ◎거액받고 방송출연… 자서전도 “불티”/킹,곤봉 1대당 1백만불 소송 준비 지난 91년 4월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났던 폭동사태는 아마도 20세기 후반 최대 「인종폭동」의 하나로 기록될게 분명하다.그러나 사태의 심각성과는 달리 최근 「사건 관련자」들이 뜻밖에 「돈방석」에 올라앉기 시작해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이들은 『남들이 모르는 새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신문·방송사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큰 대가를 받아내고 있다.자서전의 출간이 러시를 이루는가 하면 영화업자들은 일련의 사태전개과정을 필름에 담아 돈을 번다. 돈을 버는 사람은 사건 당사자인 로드니 킹과 그의 변호사 뿐만은 아니다.목격자,배심원,경찰관계자에서부터 로드니 킹 구타혐의를 받고 있는 백인 경찰관들도 이「작은 경제권」에 포함되기는 마찬가지. 아마추어 카메라맨인 조지 할러데이는 단돈 5백달러를 받고 한 지방TV방송국에 문제의 비디오테이프를 넘겨주었다.그러나 2년뒤 두번의 재판과정과 한번의 소요를 거치자 관련 증언과 물증들의 「가격」은 폭등했다. 하찮은 일에 까지 경쟁을 일삼는 지역신문,높은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물리지 않는 대중들의 기호 때문이었다. 지난주 배심원들의 평결 직후 스테이시 쿤 경사는 「시사토론」과 독점인터뷰를 하는 조건으로 1만달러를 받았다.그것도 평결 수시간만에. 이번 재판에서 무죄평결을 받은 시오도르 브리세노는 동료경관들로부터 욕을 먹으면서까지 비디오테이프를 들이대며 신문에 응했고 「도나휴 쇼」에 출연,2만5천달러를 거머쥐었다. 배심장은 「시사토론」프로에 얘깃거리를 팔려했으나 거절당하자 라이벌 프로그램인 「인사이드 에디션」에 밝혀지지 않은 액수를 받고 공개했다. 당사자인 로드니 킹은 로스앤젤레스시를 상대로 5천6백만달러­곤봉 한대당 1백만달러­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탐 오웬이라는 전직LA경찰관은 킹의 보디가드로 돈을 벌고 있다.지난번 평결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쿤 경사의 자서전은 이미 2만5천부나 팔렸고 이번 주들어 5천권의 주문을 더 받고 있는 상태. 데릴 게이츠 전LA경찰국장도 회고록을 쓰고 있다.벌써부터 갱집단들은 게이츠가 폭동으로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공동체에 이익금을 내놓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영화를 준비중인 하워드회사의 부사장 덴 백씨는 『자본주의의 한 현상이며 그것이 바로 미국』이라면서 『돈벌이가 되는데 자신들의 이야기를 팔아먹는 것은 당연하다』고 「변호」했다.
  • 짐승의 보은(외언내언)

    사람으로서 사람 같지 못한 언행을 할 때 사람들은 곧잘 개에 빗대어 욕을 한다.개만도 못하다고 하는가 하면 그 새끼라면서 저주도 한다.가축중에서도 사람과 가장 가깝고 친숙한 관계가 개임으로 해서 빗대기 쉬워 그랬던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개를 키워 보면서 사람들은 걸핏하면 다투기로 들고 배신하고 하는 사람보다는 충직으로 일관하는 개쪽이 오히려 낫구나 하는 측면을 느끼기도 한다.아침에 뾰로통해진 아내는 남편이 퇴근하여 벨을 눌러도 꼼짝 않는다.한데 아침에 한방 맞은 개는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주인의 귀가를 알고 반긴다.이런 개이건만 사람들은 한번 더 고약한 일에 빗댄다.무엇무엇(누구누구)의 주구 운운하면서. 하지만 「플랜더스의 개」같은 감동을 안기는 얘기는 우리에게도 많다.전북 임실의 오수리라는 땅이름에도 그런 전설은 얽힌다.「고려때의 김개인」과 그가 키우던 개에 관한 얘기.주인은 술에 취해 들에 쓰러져 자는데 들불이 났을 때 냇물에 제몸 적셔 불을 끄고 저는 타죽었다는 것이다(전설일뿐 국어학적인 해석은 달라짐).엊그제 전주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나 화제를 모은다.한밤중 불이 나자 2년생 애완견 치와와가 주인을 깨워 살린 다음 못빠져 나오고 타죽었다지 않은가. 같은 전주에서는 얼마전 「보은의 까치」얘기도 심심찮은 화제로 된 일이 있다.지난해 12월의 폭설 때 치료를 해주고 먹이를 주었던 가정에 날마다 찾아와 놀다간다는 것이었다(지금은 어쩐지 확인은 못했으나).개나 까치뿐이 아니다.사납기 그지없는 야생매도 은혜는 알았다.충북 음성의 박찬수씨가 날개에 총상 입은 매를 간호하며 치료하여 날려 보냈더니 그리워서였던지 이튿날 되돌아왔다지 않던가. 짐승도 은혜를 안다.이런 유형의 짐승들 얘기는 이성을 잃고 제 이끗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임상의학에 「신토불이 음악요법」 각광/국악으로 정신질환 치료한다

    ◎판소리 들려주면 우울증해소 특효/불면증엔 가야금·거문고산조 효능/스트레스성 두통·심인성위장장애에도 효과 「제나라 제땅 음식이 몸에 좋듯이 제나라 제땅 음악이 치료효과가 있다」.임상의학분야에 「신토불이바람」이 일고 있다. 정신과요법 가운데 하나인 음악치료에서 서양음악 보다 판소리등 국악프로그램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신병원과 노인병원을 중심으로 「신토불이음악요법」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음악이 뇌의 알파파장(뇌파가 8∼13Hz)을 유도,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감정과 정서를 불러 일으키며 생리적·정신적 반응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음악치료란 이러한 음악을 도구로 이용,비정상적인 정서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정신요법.지난 4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임상에 적용한 이래 최근 국내에서도 정신질환자 및 정신지체자,알코올·약물중독자,자폐증환자,발달장애자의 치료수단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신토불이음악요법」이란 한마디로「서양음악위주로 짜여진 기존의 음악치료프로그램으로는 한국인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국내 처음으로 판소리를 음악치료에 응용한 영남대부속병원 이중훈박사(신경정신과)는 『판소리·민요등 전통음악에는 희·노·애·락·애·오·욕 등 인간 칠정이 음률속에 담겨있어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다스리는 힘이 있다』고 설명한다.판소리는 무속과 민속악을 포함하며 다른 기악곡과 달리 가사와 사설이 있기 때문에 전달력과 치유력이 뛰어나다는 것. 이교수에 따르면 판소리요법을 쓸때는 맨 첫머리에 비슷한 분위기의 서양음악을 들려준다.그뒤 양산도·도라지타령·경복궁타령등 민요나 친숙한 단가를 들려주고 판소리를 듣도록 한다.춘향가·흥보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의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당한 대목을 골라 편집해서 들려준다.예를 들면 우울증환자를 치료하는 1시간짜리 프로그램은 주페의 「시인과 농부」서곡→민요 양산도↓단가 호남가→춘향가중 「자진사랑가」→춘향가중 「농부가」→수궁가중 「꽃타령」→춘향가중 「신관사또부임」순서로 짜여진다. 서울 순천향병원과 베드로병원에서 20년동안 음악치료사로 일해온 김명희씨는 『서양음악만 사용하는 것 보다 30대70의 비율로 국악에 비중을 둔 프로그램이 정신질환의 치료효과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판소리요법이 가장 효과를 보이는 대상은 우울증환자.우울증치료에는 궁중몰이 잦은몰이 엇몰이등 흥겨운 장단에 희망적인 국면으로 전환점이 되는 대목을 선택한다. 예를 들면 형형색색의 산천경계가 아름답게 묘사되면서 곧 토끼를 만날 듯한 희망을 주는 수궁가의 「고고천변」이나 심청가의 「꽃타령」,춘향가의 「어사출도」 「신관사또 부임」 「자진사랑가」등이 해당된다. 판소리는 또 심인성위장장애를 치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이때는 주로 시적분위기가 넘치면서 평화롭고 웅장한 대목인 판소리의 진양조를 들려준다. 판소리요법은 이밖에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및 두통을 완화시키는데 유용하게 이용된다.여기에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클라이맥스를 이루는유명한 대목들이 모두 동원된다.수궁가중 토끼가 위기를 벗어나는 「토끼능변」이나 흥보가중 박속에서 보화가 쏟아져 나오는 「돈타령 박타령」,심청가의 「황후상봉」및 춘향가의 「이도령 장원급제」등이 꼽힌다. 한편 불면증및 통증치료에는 거문고산조및 가야금산조를 들으면 큰 도움이 되고 정신적고통및 신경통해소엔 민요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베드로 신경정신과의원 김상태원장은 『판소리는 인간사를 모두 담고 있는 종합예술로서 정신과질환 치료수단인 사이코드라마와 비슷하다』고 전제,『판소리요법을 우울증환자나 장기입원환자,정신박약노인을 위한 주된 치료법으로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무용가 이매방씨(이세기의 인물탐구:22)

    ◎날듯한 보법·절묘한 선… “타고난 춤꾼”/안으론 한·밖으론 허공 다스려 관객심혼 울려/「살풀이 춤」은 “미학의 극치·최고무작” 평가받아/옳지않은 일 못참고 욕설잘하는 자유분방한 성품 천명이고 만명이고 관중들의 오장을 속속들이 뒤흔들어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매방,타고난 춤꾼 신들린 춤꾼인 그의 괴팍한 성격은 무용계에서는 알아주는 막무가나다.비위가 틀리면 어른이고 제자고 눈에 보이는것이 없다.주춤거리거나 남의 눈치를 본적도 없다.한번 입을 떼기 시작하면 몇시간이건 쉬지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세상의 욕이란 욕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것이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제멋대로 살아온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가 춤추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삼라만상을 보여주고 산천초목을 움직인다.미끌어질듯 날듯말듯 비스듬히 포개고 떼는 보법이며 무겁게 들어올렸다가 날카롭게 뿌리치는 광대한 능선,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에는 냉혹한 귀기마저 감돌아 관객은 어느순간 전률에 몸을 떤다.아름답고 눈부신 보석같은 춤만으로도 그래서 그의 허물들은 눈녹듯이 용서된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않으면 신병에 걸리듯 천수북을 앞에놓고 변죽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몸을 젖혀 엎어치고 휘돌아야만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그중에서도 그의 보념승무는 염불장단과 굿거리 사이사이에 현란하게 두들겨대는 북춤이 일품이다.인간의 고통스러운 열정과 비애를 북가락에 실어 남도특유의 흥과 멋을 종횡무진으로 엇가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는 아현동에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한쪽 귀퉁이에 휘장을 치고 연탄불에다 냄비밥을 끓여먹었다. 결백증이 심해 돈이 오가는 풍조를 체질적으로 경멸하는데다가 재능이 없어보이면 처음부터 제자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이곳저곳 떠도는 방랑벽,훌쩍 떠나고 소리없이 머물면서 긴 정착을 꺼리는 성격탓에 마뜩한 거처하나 마련하지 못했었다.그의 부대끼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누이가 2년전 타계하면서 유산으로 남겨준 연구소옆 허름한 아파트가 60평생에 처음가져보는 제집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마루한가운데 왜정시대때나 볼수있었던 낡은 싱거미싱한대가 놓여있다. ○무용복 손수지어 입어 그는 옛날부터 꼼꼼한 바느질솜씨로도 유명하다.무용발표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춤이 훼손될것을 걱정하여 복색일체를 손수 지어입는다.화장과 도련 소매부리를 재단하고 재봉틀에 누비는 귀신같은 솜씨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룰 정도다. 정종 3병의 술실력,4,5년전까지 만해도 주정·주사가 극심하여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욕설을 퍼붇거나 남의 멱살을 잡기가 일쑤였다. 60년대중반 발레하는 이인범씨와 국도극장 악극단 쇼에 나간것이 말썽이 되어 무용협회가 이들을 제명처분하려던 사건은 무용계의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징계사실을 사전에 안 그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으로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는 등 광란의 주란을 부린 적이 있다. 「먹고 살자는 일인데 너희들이 내게 돈을 줬느냐 쌀을 줬느냐」 게다가 누군가가 그의 춤을 ‘기방춤’으로 격하시키려하자 「궁중무를 빼고 기방춤이 아닌것이 뭐가 있느냐? 너희춤은 양춤이냐발레춤이냐? 뿌리도없는 형식춤을 어디다대고 비교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막상 그의 신랄한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한말이래 변질되지않고 원형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그의 춤』을 정명호씨(중대교수)등 여러사람이 감싸주었다. 77년 서울 YMCA강당에서 열린 그의 춤을 보고 원로언론인인 홍종인씨는 이례적으로 「속절없는 슬픔과 기쁨을 아로새겨 나가는가 하면 기쁨도 슬픔도 초월한 파탈의 경지로 솟구쳐오른 황홀」이라는 찬양의 글을 써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또 여성적 미학의 극치로 칭해지는 그의 「살풀이춤」은 극도의 긴장과 절제,어둠과 밝음,괴로움과 갈등을 교차하면서 정속에 폭발을 감춘 최고의 무작으로 평가되었다. 안으로는 한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하공을 다스리는 춤.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어 슬피 끝난 일들을 차곡차곡 망각하려는 애절함을 눈물의 춤으로 승화시키자 객석에서는 조용한 흐느낌마저 파동쳤다. 「덩닥궁 덩다꿍,어깨들고 착착쿵…」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때 보면 숨쉴틈도두지 않는다.지시하고 지적한대로 선을 만들지 못하면 냅다 달려나가 욕설을 퍼붓고 북가락을 내던진다. 변덕스럽고 삐치기도 잘해서 사근사근 사람을 홀딱 반하게 하다가도 못마땅한 구석을 발견하면 살차게 뿌리치고 미련없이 돌아 앉는다.끝없는 줄담배,쪽쪽 뻗은 검지와 장지에 꼬나문 담배하며 낮으막하나 재빠른 말씨,아래로 착 내려깐 날카로운 눈매와 여성적인 걸음걸이 등등 그의 이야기는 글로 써서는 충분치 못하다.진한 사투리의 육두문자와 구성진 입타령 일본춤 스페인춤 흉내,바느질과 다림질 솜씨,무엇보다 사람의 애간장을 뒤흔들어 놓는 살풀이춤을 보고나서야만 그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된다. 지난해 어느 사석에선가 명창 김소희씨가 매방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자기예술에 혼신바쳐 『이매방동생은 남못하는 예술을 가진 사람으로써 젊어서는 정말 「개판」이었지요.누구라도 한번 걸렸다하면 밤샘 술을 마셔야하고 휘젓고 돌아다니고 욕설 잘하고,그러나 그 춤만은 현재로선 제가 아는한 전무후무한 명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그 춤만은 가히 당대의 명인이지요』 이른바 재주가 승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선 한자리에서도 몇십번씩 무태를 보이는 성의를 잊지 않는다. 한때는 그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그의 춤을 저승으로 가져가려나 보다」고 무용계가 빈정거린 적도 있으나 그는 몇몇제자를 모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엄하게 그의 춤을 보존하고 전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매방은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이경율씨는 목포 양동에서 싸전과 장작장사를 하는 집안으로 그는 3남2녀중 막내,부모와 형제들의 귀여움을 두루 받았으면서 어릴 때부터 여성취향이 짙어 경대앞에 앉아 춤을 추거나 화장하는 흉내를 즐겼다.『나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세살때나 또는 일곱살때,어쨌든 그 이전에 운명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집에 세들어 있던 목포 권번 기생에게 춤을 배우고 권번에서 춤을 가르치던 집안의 할아버지벌인 이대조선생,화순의 박영구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승무검무 법고를 배웠다. ○매란방처럼 살고자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4년간은 큰형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 만주 대연과 북경에서 살면서 중국 경극의 대가인 매란방을 만났고 평생 매란방처럼 살고 싶어 본명인 「규태」를 버리고 그때부터 매방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가졌다. 군산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간간히 서울에 올라와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역마살이 뻗친듯 광주 대구 강릉 속초 부산 동래를 전전,형제들의 간곡한 권유로 69년,42세때 부산에서 무용활동을 하는 김명자씨와 뒤늦게 결혼하여 딸(현주·20)하나를 두고 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있다. 부산에 머물고 있을때 그의 춤을 귀히 여기던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와 거문고 인간문화재 한갑득씨의 권유로 77년부터 서울정착을 결심하게 되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들끓는 듯한 지난날,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천 관중을 사로잡는 그의 춤에 매료되어 54년,서울 첫 정착때는 신익희선생의 따님인 정균씨가 동대문밖 창신동에 무용연구소를 차려준 적이 있었고 삼성의 이병철회장은 특히 그의 「살풀이춤」을 사랑하여 자주 별장에 불러 춤을 추게 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매일 하오4시부터 4시간씩 연습,이렇게 연습을 해두기 때문에 공연을 앞둔 총 리허설은 해본적이 없다. 해마다 명무전 명인전 전통무용의 밤과 수많은 해외고연에 참가하고 프랑스 렌느 페스티벌에 다녀와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럽공연은 「질색」이라고 거절한다.평생을 통해 그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체면상 해본 일은 없을 것이다.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던,욕쟁이로 소문이 나고 성질이 괴팍하던 말던,방약무인하고 오만불손하다 하더라도 김소희씨의 말대로 「당대의 전무후무한 명인」,절묘한 선으로 이어지는 천의무봉한 춤솜씨 하나만으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매방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연보 ▲1927년 5월5일 전남 목포출생(본명(이규태) ▲1935∼39년 만주 대연에 거주.전남 무안출신 이대조선생 「승무」「북춤」사사,전남 화순출신 박영구선생 「승무」「법고」사사,전남 목포출신 이창조선생 「검무」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87년 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예능보유자(90년 지정) ▲1948년 명창 임방울선생 명인명창대회 「승무」(3고)첫 출연 ▲1953년 전북 군산 국악원주최 명인명창대회 「승무」(9고) ▲1953년 이매방 개인무용발표회(광주) ▲1954년 삼성여성국극단 창극출연 「승무」(7고) ▲1955년 개인무용발표회(문하생 발표 포함·광주) ▲1956년 개인무용발표회(부산) ▲1957년 개인무용발표회 「살풀이춤」(부산) ▲1959년 서울 을지로 원각사에서 개인무용발표회 ▲1962년 광복절 경축예술제 「살풀이춤」(국립극장)(도쿄∼오사카) ▲1968년 일본 대민단본부주최 광복절기념공연 ▲1970년 부산·시모노세키 자매결연기념공연(시모노세키·부산) ▲1975년 부산예총주최 「무용합동공연」(부산) ▲1977년 이매방 「보념승무」발표회(서울YWCA강당) ▲1979년 대한항공 민항 10주년기념공연(미 6개도시 교포위문) ▲1981년부터 제1회 대한민국 전통무용예술제참가(해마다) ▲1982년부터 국악대제전 한국 명무전 출연 ▲1984년 무용인생 50년 특별기념공연 「북소리Ⅰ」(세종문화회관) ▲1986년 미 한미문화센터주최 워싱턴 공연 「살풀이춤」 ▲1986년 아시안게임 축전공연 출연 ▲1987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Ⅱ」(문예극장 대극장) ▲1987년부터 해마다 중요무형문화재공연 출연 ▲1990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Ⅲ」(호암아트홀) ▲1988년 88서울올림픽문화예술축전 참가 ▲1989년 조선일보주최 국악대공연 출연 ▲1990년 중국·북경·연변 교민 순회공연 ▲1991년 한국·일본 무형문화재 합동공연(도쿄) ▲1992년 국악대제전 명무전 출연 예술문화대상·눌원 향토예술대상·목관문화훈장서훈 (승무) 송수남·김진홍·임이조·채향순·국수호·채상묵 (살풀이) 정명숙·유숙희·김정녀·이진주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7)

    ◎지옥의 생지옥:마/굶주림·질병에 인간품성마저 상실/위아래 없어… 남녀노소가 욕설·폭력/몇달째 안씻어 흉측한 몰골에 악취 수용소 생활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당연히 육체가 황폐해 진다.그러나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은 사람들의 정신까지도 망가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얼마만큼 이성과 감성이 피폐해지고 추악해지며 또한 비굴해 질 수 있는가를 입증하는 곳이 바로 정치범수용소이다. 수용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깨끗하고 더러운 것,선하고 착한 것,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인식이 마비되어 있다. 이는 물론 자포자기에서 비롯된 것이다.삶에 대한 가치와 희망이 상실되었을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에대해서도 아무런 관심과 의미를 찾게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수용소는 그런 이야기를 극명하게 실감 할 수 있는 곳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처럼 인간성이 무너지는데는 학식있는 인텔리층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남녀노소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처음 수용소에 들어오는 사람은 한 열흘동안은세수도하고 양치질도하고 머리를 감는등 밖에서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러나 한 달만 지나면 그같은 습관은 어느새 사라진다.물론 목욕탕등 위생시설이 없는 탓도 있지만 생에대한 애착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품성도 함께 소멸되기 때문이다. 약 3개월쯤 지나면 사람들의 몰골이 흉측스럽게 변한다.전혀 세수를 않고 머리를 감지 않아 누가 누군지를 얼른 알아 볼 수 없게된다.손발을 안씻는것도 물론이다.여름철에는 더위때문에 하는 수 없이 개울에서 멱을 감는 일이 많아 덜한 편이나 가을부터 이듬해 4월정도까지의 6개월동안은 한 번도 세수나 머리를 감지 않는다. 수용소 안에서는 위아래도 없다.밖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었거나 나이가 많아도 서로 『야』 『이 간나야』 『이 새끼야』로 부른다.힘이 좋은 20대에게 50·60대 사람들이 얻어 맞는 일은 다반사이다.물론 수용소 안에서의 폭력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나 보위원들의 눈을 피해 예사로 구타행위나 집단폭행이 일어난다.한 60대 남자는 혼자서 몰래 갖고 들어왔던 담배를 피우다 이를 뺏으려는 20대 3명과 시비가 일어 무차별 몽둥이질을 당했다.팔뼈가 부서지고 이빨이 3개나 부러졌다.그런데도 이 60대 남자는 『작업도중 다쳤다』고 보위부원들에게 신고했다.보복이 두려워 일러바치지 못한 것이다. 수용소 여자들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20대의 팔팔한 탁구선수출신인 나는 수용소 안에서 싸움을 잘했다.완력을 과시하지 않으면 얕잡아보기 때문에 일부러 왈가닥 행세를 자주해 나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싸운 사실이 들통나 보위원 사무실에 끌려갔을 때의 일이다.의자에 앉아 나를 취조하는 보위원 곁에 20대 처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온 몸을 「안마」하고 있었다.그 처녀는 온갖 아양을 떨며 보위원의 비위를 맞추려고 땀을 뻘뻘 흘렸다.부동자세로 서 있는 나는 염두에도 없었다. 보위원은 연방 나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막대로 때리면서 처녀의 온 몸을 더듬고 희롱했다.민망해서 못볼 짓도 했다. 수용소의 젊은 여자들은 어떤 짓을 해서라도 보위원들과 친분을 트려고 경쟁적으로 안달한다. 자기들의 몸을 담보로 몇조각의빵이나 몇 알의 사탕을 얻어먹고 강제노역에서 빠지기 위해 눈을 반짝인다.남자수용인들은 물론 온갖 욕지거리를 하며 손가락질을 하고 심지어 침까지 뱉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단한 「빽」이 있다고 자랑한다.한 처녀는 어쩌다 임신까지 했었으나 보위부원들은 모두 시치미를 떼고 오히려 수용소 남자들과 금지된 「부화」(성관계)를 했다며 운동장에 세워두고 옷을 벗기며 막대기로 복부를 때리며 인민재판을 했다.그러한 광경을 보고도 사람들은 동정은 커녕 뒤돌아서며 그 처녀에게 욕을 했다.임신 7개월쯤 되었던 그 처녀는 수용소에서 어디론가 끌려 나간뒤 돌아오지 않았다.
  • 명분을 최고의 가치로(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9)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원한국인의 실천덕목 선비정신/실생활에서는 검약·절제·청렴을 미덕으로/역사의식에서는 춘추철학과 지조를 신봉 지난 대선은 여러모로 한국현대사의 이정표를 제시하였다.우선 「신한국인」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고 우리사회가 아무리 자본주의화했다지만 돈만으로는 안되는 심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신한국인」이라는 구호는 우리 모두 구태의연한 남루를 벗어 던지고 새롭게 태어나야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이 결코 자랑스럽지도 떳떳하지도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돈아닌 가치관 보여줘 과연 우리민족이 살아온 지난 세월의 자취가 그렇게 초라하고 부끄러워 타기해버려야만 하는 대상일까? 그렇다면 강대국사이에서 민족고유문화를 지키고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저력과 문화국가로서의 자부심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현재의 한국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지나친 자기반성이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일말의 걱정이 앞서는 것은 노파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역사상 미증유의 이민족 통치인 일제식민지시대에 잃어버린 민족적 자부심이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난 몇년사이 매스컴을 통해서 전개된 한국인의 자기반성을 짚어 보는 여러 기획들이 일제치하에서 이광수가 부르짖은 민족개조론의 변형이 되지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에 「신한국인」논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대재벌의 총수가 막강한 재력과 조직력을 앞세우고 돌풍을 일으키는듯 하더니 막상 선거결과는 예상득표수에 훨씬 못 미치는 15%에 불과하였다.『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외에 무슨 기준이 있느냐』는 말이 교수사회에까지 공공연하게 통하는 현 시점에서 돈으로 승부하려던 재벌총수의 참담한 패배는 현한국인에게 잠재해 있는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의 실마리를 확인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한국인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한국인상의 객관적인 이해·분석이 필요하고 현한국인의 원형이라할 역사속의 원한국인상을 재조명할 필요가 제기된다.흔히 전통을 단절시켰다고 진단되는 일제시대 전시기,다시 말하면 조선후기의 인간형이야말로 원한국인이며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재조명하고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밝히는 노력이야말로 한국정신의 원류에 접근하는 첩경이라 생각된다. 조선후기사회는 유교사회였다.유교는 시대에 따라 발전·변화하였는데 송나라 때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우주론인 이기론을 성립시켜 성이학의 문호를 개창하였다.조선시대는 바로 이 성리학을 국학으로 수용하고 그 이념을 시대정신화한 시대였다.성리학을 공부하여 체질화시킨 학자들이 선비(사)이며 선비의 복수개념이 사림이다.이들은 수기치인을 기본으로 하여 수기의 단계에서 치열한 학문연마와 인격을 닦고나서 남을 다스리는 치인의 단계로 가는 사대부의 삶을 사는 것이 정석이었다.전자가 사의 단계라면 후자는 대부의 단계이므로 학자관료들이니 조선시대는 바로 학자관료들이 지배층이 된 시대였다.그들이 추구한 정신이 선비정신이라면 그 사회는 그것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선비정신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하는 정신이다.어떻게 인간으로서의 떳떳한 도리인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없이 지켜내는 광조를 일이관지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인간이 짐승의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인성론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조선전기의 인심도심설이나 후기의 인물성동이론은 인간학에 대한 이론적 심화과정이며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인식체계였다. ○조선 지식인들의 상식 인간의 본능과 물질을 최고가치로 인정하는 현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조선시대이다.제2차 세계대전후 전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체제와 소련을 주도국으로 하는 공산주의체제로 양분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물질·물적 기초를 우선가치로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물주의의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다.특히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른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성장하여 왔던 것이다. 바로 이 물적 기초를 추구하고 그러한 체제의 유지논리인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에서 도출한 실리주의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삶의 기준이라면 조선후기사회는 명분을 최우 선으로 하는 명분주의 사회였다.어떤 일을 처리할 때 그것이 나나 내가족,내가 속해있는 집단이나 조직에 이득이 되느냐 해로우냐가 현대적 판단기준의 우선척도가 된 것이다.이러한 이해관계기준은 인간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메마른 인간관계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조선시대 사람들의 판단기준은 그 일이 명분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그리고 명분을 얻느냐 잃느냐는 그 지식인의 사활이 달린 지식인사회의 상식이었다. ○실리사회 탁류 휩쓸려 그러나 현대적 실리주의 가치관은 조선시대의 가치덕목들을 하나같이 평가절하하였다.명분은 핑계로,의리는 깡패용어로,선비의 기개를 뜻하던 사기는 군대용어로 전락해 버렸다.소비가 미덕이 되고 청빈은 낡아빠진 구시대의 덕목으로 조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동기나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결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 시대 지식인의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대변되는 선비정신은 실제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청렴과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았다.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의식에 있어서는 시시비비의 춘추정신을 신봉하였다.그들은 「청」자를 선호하여 청의,청백이,청요(현)직,청명등의 용어를 즐겨 썼다.이러한 가치관은 지식인사회에만 유효하였던 것이 아니고 사회저변에 확산되어 일반백성들도 「염치없는 놈」이란 말이 최악의 욕으로 인식하였고 예의와 염치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덕목이 되었던 것이다.또한 상부상조의 평화공존의 성리학적 이념은 개인생활이나 농촌공동체 뿐만 아니라 국가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러한 논리로 편제되어 있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무력으로 흔들어 놓은 일본이나 여진족의 청을 「오랑캐」라 폄하하였던 것이다.또한 이미 망한 명나라가 임진왜란때 파병한 사실을 「재조지은」이라하여 국가간의 의리도 지켜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세계관이었다.그것은 문화가치,특히 유교적 문화질서인 중화문화질서를 지키려는 의지로 표현되었고 조선이 명을 계승하여 그 문화의 정수를 답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자존심 찾을때 19세기 서세동점의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인정하고 거기에 적극 편입하려는 개화운동이 서양제국주의와 그에 편승한 일본세력을 인정하여 결국 친일파의 양산으로 종결되었다면,중화문화 보존논리인 위정척사운동은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일관된 자긍성을 견지하였던 것이다. 조선이 미개하다는 암시를 깔고 있는 개화사상은 일제시대에 확고한 우위성을 확보하였고 광복후에는 서양에의 일방적 경도로 인한 근대화이론과 맞물려 대표적인 근대사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제 세계가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시급한 일은 손상된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토대로 민족문화를 선양하는 것이다. □약력 정옥자 서울대교수·국사학 ▲1942년 강원도 춘천출생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졸업 ▲동 대학원졸업(문학박사)▲현 서울대 교수 ▲저서 「조선후기문화운동사」 「조선후기문학사상사」 「조선후기지성사」 등 다수.
  • 호지명과 김일성/안필준 전 보사부장관(굄돌)

    베트남참전 20년만에 필자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솔직히 말해 하노이에는 관광거리가 별로 없는데 그나마 있다면 베트남사람들이 자랑하는 호지명성전과 전쟁기념관정도다. 전쟁기념관은 중학교 건물하나를 고쳐 만든 것으로 호지명의 일생과 전쟁지도에 관한 이야기,충성스러운 호지명군대의 이야기(디엔비엠푸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던 이야기),호지명의 작전지시에 의해 그가 죽은 후 사이공을 탈환했던 이야기들이 음악과 더불어 절정을 이루는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호지명성전은 호지명의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뉘어놓고 모든 국민들이 참배하도록 해놓은 곳과 호지명이 2차대전이후 30년간 집무했던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청와대 같은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이 건축물은 2층 목조였는데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수 있게 한장의 유리로 막혀 있을 뿐,1층에는 칸막이도 없는 30평 남짓한 한개의 방만 있었다.그방엔 긴 책상과 의자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는데 이 방이 바로 국무회의실을 겸한 통치자의 집무실이었다.방 입구에는 비서실장이 사용했다는 조그마한 책상과 의자가 1개씩 놓여 있었다.2층방으로 올라가려면 바깥으로 나와 나무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침실과 서재가 있을 뿐이었다. 필자가 호지명의 가족관계를 묻자 그곳의 안내원은 『그분은 월남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을 뿐,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사신 분』이라고 대꾸하였다.필자가 또 호지명의 별장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성인을 욕되게 하는 외람된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고,동상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자 『많은 다리와 건물이 있지만 어느 한곳에도 그분의 서명이 없으며 동상을 세우는 것은 오히려 그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만 호지명이 유언으로 『시신을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하노이,하나는 나의 고향,하나는 사이공에 각각 묻어달라』고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이곳 하노이에 묻었노라고 했다.그러면서 안내원은 왜 그분이 공산주의를 민족의 이념으로 택했는지 그것이 의문일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안내원의 얘기를 듣고 자주로선이라는 점만가지고툭하면 김일성과 호지명이 동격화되었던 생각이 떠올라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 연극배우 최종원씨(이세기의 인물탐구:20)

    ◎혼신다해 역동적 연기하는 “진짜 배우”/주어진 역할에 정열바쳐 특유의 개성표출/「리어왕」서 고뇌하는 내면연기로 주목받아/갖가지 삶의 모습 소화해내며 끝없는 연기변신 시도 거칠고 투박하다.솔직하고 꾸밈이 없다.불같고 칼같은 그의 성격상 중용과 중도를 지키는 모호한 태도는 맞지않는다.기백과 의리,정의감과 정열로 뭉쳐진 연극배우가 최종원이다. 아직은 들판에 풀어논듯한 포효와 폭만이 도사려보인다.그러나 탁탁 부러지기보다 불에 달군 쇠처럼 강인함이 돋보인다.부러지는듯 휘어지고 휘어졌다가도 제자리에 돌아와 설줄아는 투지,꿋꿋한 자존심이 그의 대명사다.만사에 주저함이 없다.한다면 한다.연기를 할때도 몸을 사리지않고 전신을 던진다. TV출연 때문에 연극연습에 소홀한 선배나 후배를 보면 연극만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연극을 그만두어 줄것을 당당히 요구한다.TV인기,연기보충처럼 연극에 참여하는건 연극모독이자 관객모독,처럼부터 연극할 자격도 없다고 못박는다. 또 연출자나 제작자에겐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끌어낼수 있을만큼 완벽하고도 만족한 여건을 갖춰달라고 말한다.그는 언제 어디서나 연극배우의 입장에서 배우의 권한을 옹호하고 주장한다. 한때는 연기자그룹을 발족하고 초대회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배우들의 출연료 계약문제를 연극계에 제기한적도 있었다. 91년 연극의 해를 위한 모임에서는 그동안 창작극 활성화와 극단 지원 결과 과연 그 성과가 어땠는가를 따져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그때도 그자리에서 막연하게 단체를 지원하여 지원금의 효력을 희석시키기보다 한사람의 연기자를 집중적으로 지원해보는 방법을 고려해보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식으로 열성적으로 연극무대를 지켜왔다.20년간 1백여편,아마도 그처럼 많은 연극에 출연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최종원이 끼지 않으면 연극이 안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주어진 무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밀착하여 그는 이미 「최종원 특유의 색깔과 체취가 물씬 풍기는 살아있는 연기」를 구사한지 오래다. 최종원의 출생과 성장기는 마치 일부러 설정해놓은 무대와 인물구성처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있다.그것은 어쩌면 소설이나 연극보다 더 가파른 삶의 진실이라 할수 있다. ○탄광촌서 유년기 보내 강원도 태백,광부의 8남매중 막내.태백공고 졸업후 그는 그의 부친이나 형들처럼 함태 탄광에서 탄분석기사로 일한적이 있다. 이 일을 하기위해 3개월동안 갱(갱)속에서 생활하는 연수기간을 거쳐야했다.그리고 3개월 연수를 끝내고 갱속에서 나오던날,동료중의 하나가 지하로 떨어져 죽는 슬픔을 눈앞에서 겪었다.그는 동료의 시체를 찾아내겠다고 울부짖었다.그러나 수직 6백m 지하로 떨어지면서 비좁은 갱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을 시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낼수 없었다. 동네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이 죽어나갔다.곡소리가 그칠날이 없었다.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은 부인네들의 통곡소리,이런 생활에 지쳐 걸핏하면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치는 가족들,남자들은 대낮부터 술상에 둘러앉아 탄가루에 찌든 목을 술로씻어 내렸다.슬픔은 차라리 사치임을 그는 어린시절에 진작 터득하고 있었나보다.어머니에게 손목을 잡혀초상집에가면 어른들은 술마시고 어린애들은 떡이나 국수를 얻어먹는다.청소년기에는 남의 상가에 가서 상여메는 일을 도맡다시피했다.상여를 멨던 광목한필을 얻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도 나무도 심지어는 빨래줄에 널린 빨래까지도 온통 검은색 뿐인 묵화같은 탄광촌,그는 둘째형이 메탄가스로 질식사하는 사고를 겪은후 더이상 참지못하고 고향을 탈출했다.술집외상,싸움질,비통,울분,가난과 무기력이 집합된듯한 극지의 땅을 떠나지않는한 타고 태어난 운명적 비극을 모면할수 없을것 같았다. 그는 집을 떠나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던 손위 누이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다.농무가 눈앞에 쌓인것처럼 막막할뿐,대책도 목적도 없었다.평소 연극을 좋아하던 누이가 갑자기 「연극을 해보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연극이라면 고등학교때 박종화원작의 「금삼의 피」를 해본적이 있었다.그때 맡았던 「연산군」이 미련처럼 내면에서 꿈틀거렸다.그러나 배고픈 그에겐 연극은 너무나 한가한 소리였다.몇달을 빈둥거리다가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전)에 입학원서를 냈다. 면접하는 날 동랑 유치진선생이 『자네는 왜 연극을 하려는가』고 물었다.그는 대뜸 「연극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연극을 위해서 왠지 자기자신이 필요한 존재일 것 같았다.남다른 경험을 요구하는 연극무대에서 그는 끝내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70년,전국대학생극협의회가 주최하는 연극 「콜렉터」로 정식 데뷔,그때 협의회 자문으로 있던 유현목 하길종감독이 그의 연기의 가능성을 인정해주었다.그는 차츰 연극무대에 침몰되어갔다.의사 형사 주정뱅이 농부 공사판 감독에서 백만장자 워벅스,무기력한 세일즈맨,에쿠우스와 햄릿,방화범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연기변신을 시도해나갔다.연극평자들로부터 「좋은 재목」「탄탄한 연기자」「능란하고 현란한 연기구사」로 평가되기도 했다. ○70년 「콜렉터」로 데뷔 그러나 모든 역할이 그때마다 절실하게 밀착되는건 아니었다.전혀 엉뚱하고 생소하여 접근이 불가능한 역할은 얼마든지 있었다.83년 안민수연출의 「리어왕」이 그랬다.오랜만에 동랑의 연극에서 타이틀 롤을 맡게됐으나한달반의 연습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연기 이미지가 포착되지 않았다.하나의 역할을 끝내고 또다른 새로운 성격을 몸속에 채워야한다.그러나 리어의 모습은 아득한데서 맴돌뿐 이에 탐닉되지 않았다.그는 이 역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최종원의 잠재된 수많은 가능성을 간파하고있던 연출자는 오히려 그에게 1주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리어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한 가정에 가장이 있고 회사에는 사장이 있듯이 그는 한나라의 왕이다.너무 부담갖지 말라』고 위로했다.리어왕의 고뇌와 갈등이 전광처럼 뇌리를 스쳤다.결국 「리어왕」은 최종원의 내면연기를 끌어낸 화제작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무슨일에든 망설이는 법이 없다고 했으니 시시때때로 연극이냐 생활이냐,연극에 대한 회의에 시달렸다.연극의 열성만큼이나 다른 일을 했다면 그도 남들처럼 풍요롭게 살수 있었을 것이다.아무리 온몸을 던져 무대를 지켜도 느는건 눈덩이처럼 커지는 빚뿐이었다.연극을 할수록 가난의 공동은 깊이 패어갔다. 연극초기때부터 줄곧 살고있는 명륜동3가 언덕바지에서 부부(부인 정영애씨)와 딸 둘(고1,중3)네식구가 전셋집을 전전하면서 그는 10원을 아끼기 위해 연탄을 직접 날라다 쓴적도 있다.생활때문에 어쩌다 1년에 한두편 TV베스트셀러극장이며 「마유미」등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그의 연극보다 TV나 영화출연을 더 좋아하는 것에 그는 위기감을 느꼈다. 『당신은 연극배우의 아내다.나는 처음부터 연극배우였다.이를 전제하고 결혼했었다』고 단호하게 못박았다. 가족들이 불편해 하더라도 그는 연극을 포기할 순 없었다.다른 동료들처럼 TV나 영화로 돌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다.연극은 천직이고 다른일은 생계수단에 지나지 않았다.85년이후 TV출연을 일체 끊어버렸다. 연극무대를 지키는 배우는 드물다.자신의 직업에 자랑스러움과 긍지를 갖게된 그로서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관객들이 두시간전부터 극장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일본 연극계가 부러웠다.그는 뜻맞는 동료를 만나면 배우들의 의식개혁을 부르짖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삶을 다양하게 비쳐보는 연극의 매력,어떤 예술과도 견줄수 없다.인간이 전신으로 할수 있는 총체예술은 연극의 수단을 능가할 수 없다고. ○작년 「극발전연」 발족 지난해 그는 연극계의 선배이자 존경해온 연기자인 전무송과 의기투합,순수연극을 지향하는 극발전연구회를 발족하여 첫무대로 이강백작 김광림연출의 「북어대가리」를 동숭동 성좌소극장에 올렸다. 자신의 주어진 삶을 한치의 오차없이 지키려는 창고지기 전무송과 갇혀진 창고속의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출을 꾀하려는 최종원의 거칠고 절박한 모습에는 그 옛날 탄광촌을 벗어날 때의 몸부림이 실려있어 보는이의 가슴에 전율같은 감동을 흐르게 한다. 더구나 23년간 기다려온 대선배 전무송과의 연기대결은 「연염의 조화」에 비유될만큼 그의 성숙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제 어떤 역할에든 책임져야 하는 위치. 심장의 고동소리까지도 생생하게 객석에 전달하고 싶어하는 그의 정열은 모든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이긴 투지의 결정에 틀림없다.머리카락 한올 까지도 혼신을 다해 역동적으로 연기해내는 배우가 우리에게도 있음을 연극계는 물론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 모두는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연보 ▲1949년10월 강원도 태백 출생 최석담씨(84)와 김옥녀여사(85)의 4남4녀중 막내 ▲67년 태백공업고 광산과 졸업 ▲68년 함태탄광 탄분석기사 ▲69년 상경,서울 연극학교 (현 서울 예전)연극영화과 입학 ▲70년 서울연극학교 학생회초대회장 ▲〃 전국 대학생 극 협의회 주최 연극 「콜렉터」로 데뷔 ▲〃 수재민 돕기 지방공연 「점을칩니다」 1팬,「교행」 「춘향전」 ▲71년 재경 강원도 학우회주최 연극 「형제」로 강원도 일원 공연 ▲77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공연(이진순연출 「북벌」) ▲83년 연기자그룹창립(초대·2대·8대 회장역임) 85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연극영화과 졸업 87년 극단 부활과 이재한작·연출 「배비장전」 미국지역 45일간 순회공연 89년 영화 「마유미」 촬영차 도미 ▲90년 서울연극제 「아버지바다」 개인연기상 수상기념 뉴욕 연수 ▲91년 「연극의해」 기획위원▲〃 배우협회 창립(창립기념공연 윤대성작·정일성연출 「출세기」) ▲92년 일본동경 다이니아이리스 페스티벌 참가(김상열작 「길」) ▲현재 한국연극협회이사·극예술발전연구회 창립멤버(전무송과 발족) 「거룩한 직업」「어린왕자」「달집」「우회」「베니스의상인」「방화광」「노부인의 방문」「날개」「동물원이야기」「그리고 리어든양은 마시기 시작했다」「탱고」「검찰측증인」「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리어왕」「내·물·빛」「에쿠우스」「햄릿」「밤의묵시록」「신화1900」「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꽃을 사절합니다」「지금은 부재중」「티타임의 정사」「세일즈맨의 죽음」「환타스틱」「심판」「출구없는방」「애니」「만리장성」「아가씨와 건달들」「매춘Ⅱ」「헬로 미스터후라이데이」「하나를 위한 이중주」「기막힌 사내들」「아버지바다」「토선생전」「살로메」「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랴」「락스트리트」「그리운 앙트완느」「마네킹의축제」「변신」「격정만리」「길((욕)」「아침부터 자정까지」등 앙코르공연외 초총공연만 100여편이상,현재 「북어대가리」공연중.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마유미」「꿈」「나의아내를 슬프게 하는것들」등…. 영화연극상·서울연극제개인연기상·동아연극상대상·서울극평가그룹상
  • 김심 기대기 언제까지/유민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1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당내에서는 여전히 「김심논쟁」이 끊기지 않고 있다. 김심논쟁은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주당이 개혁의지를 갖춘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했던 많은 유권자를 실망시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책정당화와 당의 현대화·과학화를 부르짖던 모습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고 다시 김권과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선거과정만이 남게됐다. 사실 민주당의 이번 전당대회는 대표및 최고위원의 직선제,선거공영제의 도입,원내총무의 직선등 과거 여야를 통틀어 가히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대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김심은 내편』이라며 출발했던 김심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지도부 선거운동의 단골메뉴로 등장했고 나아가 김심을 역이용하는 전법까지 구사하는데 이르렀다. 대표경선에 출마한 한 진영에서는 후보등록이후 줄곧 『김심은 내편이다』를 강조해왔고 김대중전대표의 한 측근인사는 아예 대의원앞에서 공공연히 이 발언을 앞세웠다. 또 다른 진영에선 당초 『김심은 내편』에서 출발,『김심은 무심』이라는데 까지 갔다 최근에는 『김심은 상대편』이라며 지역마다 전술을 바꾸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김심은 상대편』이라고 전술을 바꾼 까닭은『김전대표가 상대적으로 재등장이 쉬운 쪽을 택하기 위한 것』이라며 영남쪽 대의원의 반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가운데 29일 최모의원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베를린에서 학술세미나에 참석중인 김전대표를 만나고 돌아와『김심은 변함이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왔다』고 밝혔다. 최의원은 『베를린에서 이민족에 대한 테러가 성행하고 있길래 선생을 모시던 한사람이 가서 선생을 모셔야 한다고 해 갔다 온 것』이라며 자발적임을 강조했다.최의원은 김전대표를 만나 『대선기간중이나 관훈클럽에서 말씀하신 것에 변함없으시죠』라고 물었고 김전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 최의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김심논쟁」으로 인한 선거결과는 이미 나타났다. 지난 1주일동안 전초전 성격의 시·도지부장선거에서「김심」을 이용하거나 또는 역이용했던 두 진영이 패배하거나 승리다운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최의원의 발언으로 앞으로 전당대회때까지 김심논쟁은 가열될 조짐이다.그러나 민주당은 『김심을 전당대회에 이용하는 것은 김심없이 민주당이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국민들앞에 김대중선생 뿐만 아니라 민주당까지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제3진영의 지적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 황인성 새 총리·이회창 새 감사원장(사설)

    내일 모레 정식으로 출범할 새정부 내각의 얼굴이라고도 할 국무총리에 민자당 정책위의장 황인성씨가,또 새 감사원장에 대법관 이회창씨가 내정 발표됐다.지난번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 이은 이번 인사로 김영삼차기 대통령의 국정방향과 정책목표는 역시 개혁과 변화이되 그것은 안정기조위에서 추진되고 성취돼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그가 대통령선거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지지한 「안정속의 개혁」이 바로 그것이다. 집권당으로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민자당 정책위의장이 국무총리로 내정된것은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보다도 침체된 경제로부터의 탈출과 회복에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또 이것이 바로 개혁과 변화에의 기반이며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새 정부의 정책선택 의지를 분명히 해주는 것이다.김영삼차기대통령과 새 정부가 당면 과제로 삼은 개혁작업은 기존의 법과 제도에 대한 혁파에 앞서 기왕에 이 사회에 만연돼 있는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 척결로부터비롯될것임을일러주고있다. 특히 감사원장 내정자의 강직한 성품과 원리원칙에 철저한 성격이 그것을 뒷받침한다.이대법관은 과거 중앙선관위원장으로서 모든 위법 비리사항에 대한 경고를 서슴지않는 강한 소신과 추진력을 보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다.항간의 얘기대로 그같은 강직성이 오히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수가 있다는 우려도 없지않으나 반대로 부정부패척결에 관한한 이른바 「성역」이 없을 것이라는 김차기대통령의 실천의지를 드러내준다고 할것이다. 특정 지역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지역주의 아니겠느냐는 일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호남지역의 지역구출신의원을 총리로 내정한 데서는 국민적 대화합의 측면은 물론 대중적 지역기반이라는 일반적인 국민정서도 대폭 수용한 한 차원 높은 인사경륜을 읽게된다. 새 정부 내각에서의 국무총리의 위상과 채무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막중하다.김차기대통령이 개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나가면 총리는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나 개혁추진 과정에서 있게될 동요나 부작용을 소리나지 않게 수습해야 한다.더욱이 일대 개혁적인 광정이나 부정부패 척결은 현실적인 것에 대한 과감한 수술에서 비롯될 것이며 그에따른 부작용은 대개 경제분야에서 유발될 것임을 감안할때 경제전문가로서의 총리역할은 그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귀찮고 번거롭고 때로는 욕을 얻게도 될것이지만 누군가 하지 않을수 없는 일을 맡는게 총리의 몫이라고 볼때 사이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황인성 새 총리의 막중한 사명이 개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국정은 계속되는 것이다.경제의 복원,행정의 효율성,모든 민원업무의 혁신적 개선 그리고 더 나아가 통일 안보 외교정책의 계속성위에서 국정능률을 제고해야 한다.여기서 가장 유념해야 할 일이 채임이다.하늘아래 만사에 책임이 따름은 정한 이치이다.특히 통치의 경우 잘못된 국정운용과 행정업무에 대해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임은 즉시로 철회되고 말것이다.아직은 내정자이지만 그 소명의 엄숙함을 알아 인사가 만사이며 만사에는 채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두분 내정자는 잘 알리라 믿는다.
  • 부모·자녀 갈등 「사랑의 대화」로 해소

    ◎걸스카우트연맹,사랑회복 프로그램집 발간/대화·역할극 통해 “불신의 벽” 허물어 부모와의 대화를 잃어가는 청소년들이 늘고있다.「자녀의 마음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녀와 「부모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모 사이의 단절의 벽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부모와 자녀간의 단절은 서로에 대한 객관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기보다는 악순환적인 대화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따라서 부모와 자녀간의 원만한 대화만 진척되면 서로간의 불신과 갈등은 어렵지 않게 허물수 있다는 것이다.최근 한국걸스카우트연맹에서 펴낸 부모와 함께하는 준거집단 프로그램집「사랑의 열쇠」는 이에대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이책에 소개된 부모자녀 사랑회복프로그램 중에서 주요 부분을 간추려본다. ◇역할극=부모와 자녀가 짝지어서 「신생아기와 엄마」에서부터 「장년의 자녀와 연로하신 어머니」까지 10단계의 단계별 역할극을 구성하여 발표한다.아기부터 노인까지 인간의 전생애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상호인간존중의식을 되새길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대화프로그램=숙연한 분위기에서 마주앉은 부모와 자녀가 「어머니(딸이)가 가장 좋았을때와 싫었을때」「내가 딸(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등의 주제로 편지를 쓰고 교환해 본다.이어 초에 불을 켠후 종이비둘기에 엄마와 딸이 함께 다짐의 문구를 써넣는 촛불의식을 거행한다.부모와 자녀가 평소에 품고있던 생각들을 편지로 표현하여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알게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할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만일 엄마(아빠)라면=「6살난 자녀가 욕을 한다면?」「17살난 자녀가 성병에 관해 묻는다면?」등의 질문에 대해 청소년들이 당신이 부모라면 어떻게 할것인가를 정하고 「왜 이상황이 부모에게 걱정을 주었는가?」「이 상황을 취급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등을 기준으로 토의한다.청소년들이 부모의 입장에서 문제상황을 바라볼수 있고 건설적인 문제해결법을 찾을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상황극=부모와 자녀가 「중학교 3년생인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음을 어머니 아버지가 알게되었을때」등의 갈등상황을 역할에 따라 5분동안 연극한다.역할을 바꿔 같은 상황을 다시 연극화 하고 이에대해 토의한다.상황에 따른 부·모·자녀의 입장이 다르고 역할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해될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 프로그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