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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숫자놀음에 빠진 우리 교육/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숫자놀음에 빠진 우리 교육/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몇 차례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미국 교육이 배워야 한다고 언급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느닷없이 미국 대통령의 칭찬 대상이 된 한국 교육은 어리둥절했다. 저간의 사정은 이러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 호놀룰루시에 소재한 명문 사립 푸나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와이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한국계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청년 오바마는 자기보다 성적이 좋고 더 좋은 대학을 간 한국계 친구들을 사귀며 한국인 부모들의 교육열에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오바마의 한국 교육 칭찬은 미국의 교육제도 내에서 한국인의 교육열에 관한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은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할 만큼 커다란 교육자산이고 경쟁력이다. 문제는 그 좋은, 불타는 교육열은 후진적인 교육 제도와 문화의 틀에 갇혀서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처구니없는 교육 제도와 현실을 조금만 이야기해 주면 오바마 대통령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것이다. 의대를 지망하던 아들이 수학능력시험(수능) 수학과목에서 한두 문제 더 틀려 재수를 하게 됐다는, 친구가 전해주는 처절하다 못해 한심한 이야기다. “수능에서 수학 문제 만점을 맞아야 서울에 있는 의대에 가고, 한 개 틀리면 수도권 의대, 하나 더 틀리면 지방에 있는 의대, 또 하나 더 틀리면 서울공대에 가는 식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도박이고, 퀴즈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현실에서 신경쇠약, 우울증,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고 견뎌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미국 명문 대학들은 미국의 수능인 SAT 2400점 만점에 2200점 정도를 넘으면 수학능력이 있다고 보고 과외활동, 작문, 교사 추천서 등을 평가해 선발한다. 국내에서 SAT 만점을 맞고도 미국 대학 낙방이 뉴스가 되는 것은 우리의 교육 문화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적 이외에 고교 때 발휘된 리더십으로 명문 하버드 대학에, 그것도 다른 대학을 거쳐 편입을 통해 입학했다. 국내 대학들도 요즘 랭킹 숫자 놀음에 빠져 꼴이 말이 아니다. 교육 대신 취업률만 따지고 있고, 연구 대신 논문 숫자만 세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학들이 교수들의 논문 수 늘리기를 위한 이상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름이 있는 대학은 교수를 뽑을 때 영어 논문 수가 많은 이를 뽑는다. 기존 교수들의 떨어진 논문 생산력을 벌충하기 위해 사실상 신임교원이 쓴 논문 수를 사고 있는 것이다. ‘논문용병 교수’를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1년에 영어논문 3편을 써주는 대가로 연봉을 책정하고 더 쓰면 보너스를 받고 덜 쓰면 삭감당하는 식이다. 어떤 대학에서는 논문 숫자가 많이 나오는 분야로 알려진 학과의 신설을 추진해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학이 마치 논문공장이 되어가는 꼴이다. 양의 축적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변증법처럼 논문 수가 많으면 저절로 훌륭한 연구가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와 학문의 세계는 양과 질이 반드시 일치하는 곳이 아니다. 거칠게 얘기해서 현재 공장 체제에서 생산되는 논문의 95% 이상은 10년 뒤면 쓰레기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논문 편수가 많은 교수는 대우를 잘 받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좋은 연구로 존경받는 경우는 드물다. 요즘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서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논문을 찍어내기에 바쁜 것이다. 학문의 전당이 논문 공장으로 변해버린 풍경이다. 요즘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는 신문사의 대학랭킹 장사에서 비롯됐다. 신문은 알량한 대학광고를 더 따내기 위해 대학평가를 자처하면서 대학들을 포로로 만들었다. 평가기준의 문제점을 모두 알고 있지만 대학들은 어쩔 수 없이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대학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대학의 개혁과 국제적 경쟁력 제고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이런 체제는 아니다. 우리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 많은 언론에 묻지 말고 차라리 오바마 대통령에게 물어보자.
  • 난개발의 역습, 치사율 20~70% 신종 바이러스 몰려온다

    난개발의 역습, 치사율 20~70% 신종 바이러스 몰려온다

    전 세계 인구의 5분의1이 감염돼 5000만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1918년), 홍콩에서 시작돼 180만명을 사지로 몰고 간 아시아독감(1957·1968년), 희생자가 30만명까지 치솟아 21세기 첫 ‘팬데믹’(대유행 전염병)으로 규정된 신종플루(2009년). 인간과 동물을 매개로 진화해 온 바이러스는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때로는 세계사의 흐름까지도 바꿔 놓았다. 바이러스는 수십년 단위로 모양을 바꿔 가며 창궐해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인류사가 곧 ‘바이러스와의 전쟁사’인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지구촌이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중국 상하이 재래시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H7N9형 신종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는 베이징을 포함해 중국 대륙 남북으로 확산된 데 이어 타이완으로까지 퍼져 3일 현재 127명이 감염돼 27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이 20%가 넘는다. 아직 사람 간 감염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홍콩 AI(1997년)나 멕시코의 돼지인플루엔자(SI·2009년)처럼 언제 사람 간 감염을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와 유사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hCoV-EMC)가 퍼지고 있다. 사우디에서만 현재까지 5명이 숨지는 등 사우디와 요르단, 독일, 영국 등에서 23명이 감염돼 벌써 16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70%로 사스(11%)보다 6배나 높은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가별 사망자가 급증함에 따라 세계 각국에 적극적인 감시를 당부했다. ‘살인 진드기’로 불리며 일본과 중국에서 2000여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작은소참진드기는 인체에 치명적인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바이러스를 갖고 있어 ‘진드기 공포’를 불러오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전역에 분포하는 데다 사망자가 1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백신조차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모기도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옮긴다.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와 뎅기열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한 해 50만명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 물려 216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바이러스는 인간과 동물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변이를 거쳐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로 ‘진화’한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식용을 위한 가축의 집단 사육이 늘어나면서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됐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와 카메룬에서 처음 발견된 에볼라(1976년)나 에이즈(1981년) 바이러스는 박쥐와 침팬지를 거쳐 결국 인간에게 옮겨 왔다. 자연에 역행하는 인간의 무한한 욕심이 바이러스 재앙을 일으키고 자연은 다시 신종 바이러스로 인간에게 복수하는 ‘악순환’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주연 마이클 리·음악감독 정재일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주연 마이클 리·음악감독 정재일

    21살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25살 팀 라이스는 1969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인간으로서 예술의 고뇌와 예수를 사랑한 유다의 이야기를 다룬 ‘수퍼스타’ 싱글 음반 하나로 세계에 천재의 탄생을 알렸다. 이듬해 록 오페라 형식의 뮤지컬로 완성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수퍼스타)는 미국 브로드웨이에 올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유다의 ‘수퍼스타’를 비롯해 예수의 ‘겟세마네’, 마리아의 ‘어떻게 사랑하나’ 등 아름답고 난도 높은 음악을 쏟아내면서 지금까지 전 세계 42개국 1억 5000만명을 열광시켰다. 진기록, 스타캐스팅, 스타제조기 등 화제도 수두룩하다.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는 초연(1972) 후 무려 8년 동안 공연하면서 당시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초대 예수인 영국 록밴드 딥 퍼플의 이언 길런을 비롯해 에어 서플라이 멤버 러셀 히치콕과 그레이엄 러셀(1972 호주), 테드 닐리(1973 할리우드 영화), 헤비메탈그룹 스키드 로의 멤버 세바스찬 바하(2002 미국 투어), 록스타 엘리스 쿠퍼(2000 음반), 영화배우 잭 블랙(2006 할리우드 공연) 등 스타들이 활약했다. 2004년 정식 라이선스 공연 이후 2007년 공연에 이어 6년 만에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른 ‘수퍼스타’도 화젯거리가 다양하다. 박은태, 한지상, 정선아, 김태한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가 총출동했다. 아이돌그룹 2AM 멤버 조권이 헤롯왕으로 출연해 단 5분 등장으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들 가운데 마이클 리와 정재일을 ‘수퍼스타 중 수퍼스타’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400회 이상 예수와 유다로 출연한 마이클 리(왼쪽·39)는 한국말이 서툴지만 가사 전달이 완벽하다. 예수의 마지막 말 “다 이루었다”를 내뱉는 순간 객석에는 눈물이 봇물처럼 터진다. 한상원, 윤상, 유희열, 김동률 등 난다 긴다 하는 음악인이 입을 모아 ‘천재 뮤지션’이라고 칭찬하는 정재일(오른쪽·31)은 이번 작품에서 음악 수퍼바이저를 맡고 지휘에도 참여했다. 이전 작품보다 음악이 더 촘촘해졌다는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은 ‘수퍼스타’라는 말에 쑥스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마이클 리는 “한국 공연은 정말 멋지다”는 극찬으로 입을 열었다. 2006년 ‘미스 사이공’으로 한국 공연을 했지만 완전히 한국 작품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브로드웨이와 작업 과정,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긴장했는데 점점 편해지고 있다”는 그는 “특히 한국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매우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서 점점 정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명확한 가사 전달력을 두고 그는 “제작진과 스태프의 도움이 정말 컸다”고 했다. “언제나 배역을 이해하고 노래하려면 더 많이, 더 광범위하게 공부해야 해요. 이번에는 200% 더 열심히 했어요. 영어 가사는 익숙하지만 한국 가사로 바뀔 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다시 익혀야 하거든요.” 마이클 리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정재일은 “마이클 리는 손짓 하나, 표정 하나에 집중하며 모든 이야기를 강력하게 전달한다”고 힘을 보탰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오리지널 버전과 호주 버전, 최근 영국 아레나 투어 버전까지 거의 모든 ‘수퍼스타’를 다 봤지만 마이클 리의 예수는 가장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마이클 리가 부르는 ‘겟세마네’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신이 준 의무와 고통을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면모 사이에서 화내고 울부짖고 갈등하다가 결국 받아들이는 ‘인간’ 예수의 심경 변화가 제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정재일은 “음악이 주가 된 무대 퍼포먼스는 많이 했지만 정식으로 뮤지컬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데다 이 작품은 엄청난 고전이라 기가 눌리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잘해도 본전이지만 반대로 굉장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원작의 강력한 에너지를 더 증폭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바탕은 록이지만 계속 들어 볼수록 리듬앤드블루스, 현대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 부분들은 더 극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연기와 지휘, 무대 위에서 또는 아래에서, 다른 방식으로 공연에 참여하지만 두 사람의 의견은 한 곳으로 모아진다. 예수와 유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종교적 관점을 떠나 이 작품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는 예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성경과 많은 책에서 예수를 ‘신의 인간 버전’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도 결국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인간처럼 아프고, 울고, 질투하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눈길이 가는 인간이라는 것을요.” 글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6월 9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샤롯데씨어터. 5만~13만원. 1577-3363.
  • 공효진 “욕 실컷 했어요…순수하게, 앙칼지게”

    공효진 “욕 실컷 했어요…순수하게, 앙칼지게”

    드라마 ‘파스타’ ‘최고의 사랑’, 영화 ‘러브픽션’이 거푸 흥행 홈런을 날리면서 ‘공블리’(사랑스러운 공효진) ‘로코(로맨틱코미디)퀸’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천명관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가족’(작은 9일 개봉)에서 공효진(33)은 두번 결혼에 실패한 욕쟁이 이혼녀로 나온다. 제목이 암시하듯 나잇값 못 하는 콩가루 가족 얘기다. 첫째 아들 한모(윤제문)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엄마(윤여정)에게 기생한다. 집안의 유일한 대졸 학력자인 둘째 인모(박해일)는 영화를 말아먹고 빌붙으러 왔다.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한 뒤 여중생 딸(진지희)을 데리고 엄마 집으로 온 셋째 미연이 공효진이다. 공동 주연이지만 비중만 보면 두 아들에게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공효진의 위상을 생각하면 의외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공효진은 “비중이 적어 고민했다. 그런데 캐릭터에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순수하고 백치에 가까우면서도 어이없게 재미있는 역할이다. 앙칼지고 욕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선 그렇게 욕을 할 일이 있나”라며 웃었다. “윤여정 선생님이나 오빠들에게 묻어가는 느낌도 좋았다. 아이돌 그룹 같다고 해야 하나.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찍었다”고 설명했다. 극 중 미연에게 ‘새끼’라는 말은 약과다. 큰오빠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발로 내리찍질 않나, 술집에서 ‘아줌마’ 소리를 듣고 욱해서 옆 테이블 남자의 뒤통수를 날린다. “어릴 때 한 살 터울 남동생과 치고받고 싸웠다. 힘은 달리지만 악착같이 달라붙어 때리면 동생이 질겁을 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고령화가족’에서 공효진의 연기는 캐릭터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늘 그랬다. 모델 출신 배우에겐 숙명처럼 쫓아다니는 연기력 논란과는 무관했다. “제가 생각해도 데뷔 때부터 연기력 논란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워낙 잘하니까요. 하하하.” 능청스럽게 답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호주로 조기 유학을 떠났던 공효진은 외환 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진 탓에 1998년 유턴했다. 한국 학교에 편입하기 전 두세달 시간이 남아 모델을 시작했다가 ‘여고괴담2’로 덜컥 배우가 됐다. 그는 “그땐 영화 현장이 지긋지긋했다. 귀걸이도 못 하고 몇 달째 같은 옷만 입었다. 라면 먹고 쪽잠을 자다가 퉁퉁 부은 채 잔뜩 인상을 쓰고 찍었다. 그래서 자연스러웠나 보다. 너무 잘하려 해도 긴장하고 굳어지지 않나”라고 말했다. 평소 억양과 톤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딕션’(발성·발음)은 신인 연기자 공효진의 장점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나온 박진영이 “노래하는 목소리와 평상시 목소리가 똑같아야 한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 셈. 공효진은 “딕션은 타고나는 것 같다. 말을 잘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귀에 쏙쏙 들어오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나도 좀 그런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잘하는 것처럼 비쳤을 수 있다. 물론 해일이 오빠처럼 말재주 없이도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호호.” ‘여고괴담2’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던 날 결심했다. 배우가 되기로. “진짜 못생겼더라. 가관이었다. 그땐 촬영하면서 모니터링 같은 것도 몰랐다. 그런데 의외였다. 시사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진짜 학생을 캐스팅했나. 너무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생전 처음 더 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떠올렸다. 처음부터 주연이었다. 주위에선 늘 ‘잘한다’고 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 “(배우로서) 알아야 할 건 다 알았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자만했다. ‘가족의 탄생’(2006)을 찍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역할을 같은 배우가 하더라도 조금만 비틀고 돌리고 꼬기만 해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연기란 무궁무진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한 “원래는 한우물을 파고 끝장을 보는 성격이 아니다. 누굴 이겨보겠다거나 어느 위치까지 올라가겠다는 생각도 별로 안 한다. ‘적당히’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젠 승부욕이 생겼다. 진짜 잘해 보고 싶다.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열정적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탕진 장윤정 동생,미니홈피엔

    탕진 장윤정 동생,미니홈피엔

    도경완(31) KBS 아나운서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트로트 퀸’ 장윤정(33)이 어머니와 동생 장경영씨의 무리한 사업 투자 때문에 최근 10년간 번 돈을 모두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른바 ‘찌라시’라고 불리는 증권가 정보지에 “장윤정의 수입을 관리하던 어머니가 남동생의 무리한 사업에 돈을 모두 투자했다 탕진했다”는 내용이 나돌았다. 장윤정은 SBS ‘힐링캠프’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정은 제작진에게 “어느 날 우연히 통장을 찍어봤더니, 잔고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 10억원이 찍혀 있었다”면서 “때문에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윤정의 동생인 장경영(31)씨는 2005년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FC에 입단했다. 2010년에는 누나와 함께 한복 패션쇼에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장씨는 선수 생활을 접은 뒤 커피, 공연장 대관, 무역업 등 각종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하다 큰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의 사업 문제가 불거진 뒤 장윤정은 도 아나운서 가족과의 상견례 자리에도 어머니와 동생을 빼고 아버지, 소속사 대표와 참석했다. 장씨의 미니홈피에는 “세상을 알수록 욕심이 생긴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다” 등의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특히 지난 2월에는 “나의 꿈은 천진난만한 사업가”라는 글도 올렸다. 장윤정의 부모는 현재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정의 소속사는 “장윤정의 어머니가 장윤정이 번 돈을 탕진한 것은 맞지만 이 문제로 이혼 소송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미 관계가 좋지 않아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정확한 이유는 개인적인 부분이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챔프’ 누가

    ‘챔프’ 누가

    골프 국가대표는 현재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많은 한국인 스타들을 길러낸 ‘화수분’이다. 대표팀 출신들은 이른바 ‘성골’로 불린다. 어릴 적부터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US아마추어선수권을 비롯한 세계 수준의 주니어대회에서 경력을 쌓고 화려하게 프로로 데뷔하는 과정이 이들의 ‘정규 코스’다. 박세리(KDB 산은금융)가 그랬고, 신지애(미래에셋)가 그랬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 16명의 챔피언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국가대표를 거쳤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과 지난 3월 해외와 국내에서 막을 올린 각각 2차례의 2013시즌 투어 대회 우승자 4명 모두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김효주(롯데)는 국가대표의 ‘완성판’으로 이름을 올렸고, 3년 선배 김세영(미래에셋)도 시즌 국내 개막전인 롯데마트오픈에서 우승, 늦게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시즌 다섯 번째, 엄밀히 따지면 국내 세 번째 대회다. 3일부터 사흘 동안 경기 안성의 마에스트로 골프장(파72·6417야드)에서 열리는 KG·이데일리 레이디스오픈은 이들 국가대표 선·후배들이 본격적인 KLPGA 패권에 도전하는 대회다. 지난달 21일 끝난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공동 9위의 선전을 펼친 김효주(왼쪽)가 현대차이나대회에 이어 시즌 두 번째 우승을 벼른다. 국내 개막전 챔피언 김세영, 2주 전 넥센대회에서 우승한 1년 선배 양수진(정관장)도 나란히 시즌 2승째를 노려보고 있지만, 지난해 10월 메이저대회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데뷔 2년 만에 우승컵을 품은 장하나(오른쪽·KT)가 “이번엔 내 차례”라고 패권 다툼에 끼어들었다. 최근 3개 대회 연속 ‘톱 5’를 넘나들며 통산 2승째 기회만 노리고 있는 ‘잠룡’. 장하나는 “1992년생 국가대표의 자존심을 걸고 대회 정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무려 4명의 어린 자매 성폭행한 90대 노인

    무려 4명의 어린 자매 성폭행한 90대 노인

    문지방 넘기도 힘들 나이인 90대 노인이 무려 4명의 자매를 성폭행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지난 29일(현지시간) 호주 출신의 93세 노인 칼 조셉 클라우스가 재판을 받기위해 휠체어를 타고 태국 치앙마이 법정에 나타났다.    이번 재판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지금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90대 노인이 무려 4명의 어린 자매들을 성폭행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3년 전인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여 년 이상을 태국에 머물며 철도회사 직원으로 일한 클라우스는 지난 2008년 처음 이들 자매와 안면을 텄다. 2년 후인 2010년 영어를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어린 자매들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클라우스는 돈과 초콜릿을 주며 구슬려 짐승같은 ‘욕심’을 채웠다. 당시 자매들의 나이는 7~15세. 이같은 사실을 눈치 챈 부모의 신고로 결국 클라우스는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클라우스는 보석 석방 후 이웃 나라인 미얀마로 도망쳤다가 비자 문제로 추방 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태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올해 초 현지 검찰에 기소돼 재판 중인 클라우스는 그러나 변호인을 통해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더욱 논란을 지폈다. 클라우스의 변호인은 “피고가 현재 말기암 상태로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아 형이행이 불가능한 상태로 풀어줄 것을 요청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현지 검찰은 그러나 클라우스가 반복적으로 자매들을 성폭행 한 것과 컴퓨터에서 100여장이 넘는 아동 포르노가 발견된 점을 들어 유죄를 주장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어윤대도 “연임포기” ‘MB 4대천왕’ 퇴진

    어윤대도 “연임포기” ‘MB 4대천왕’ 퇴진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연임 포기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KB금융지주는 정부 주식이 한 주도 없다는 점도 언급, 새 정부의 ‘금융권 물갈이’에 대한 불만도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이로써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등 이명박 정권의 이른바 ‘4대천왕’은 모두 물러나게 됐다. 어 회장은 29일 서울 중구 명동 KB금융 본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조만간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가동될 텐데 사외이사들에게 부담을 드리기 싫었다”면서 “대학 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 (연임 포기를) 미리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어 회장의 임기는 오는 7월 12일까지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어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는 대신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임기를 새 정부로부터 보장받았다는 관측이 파다했다. 하지만 어 회장은 지난 15일 KB금융 취업박람회 행사장에서도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아 구구한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어 회장은 이제 와 돌연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연임한다, 안 한다를 밝혀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최근까지도 어 회장이 ‘연임 욕심’을 버리지 못했으나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어 회장은 “(후임 회장이) 내부에서 오느냐, 외부에서 오느냐, 정부가 지명하는 사람이 오느냐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면서 “민간 금융섹터를 대표할 만한 역량과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KB금융지주는 정부가 한 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은행”이라면서 “(차기 회장 선임은 회추위 멤버인) 사외이사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이체방크, 영란은행 등이 모두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한 것처럼 출신과 배경을 따지지 말고 능력 있는 경영자를 선임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금융 국제화가 더딘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어 회장은 ▲높은 조달금리 ▲글로벌 인재 양성 실패 ▲해외 영업망 부족 등을 금융 글로벌화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경재 이사회 의장은 “어 회장이 이사회에는 연임 포기 의사를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부친 시신 감추고 연금 타먹은 파렴치男

    돈 욕심에 아버지의 시신을 숨겨 보관한 남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탈리아 로마 인근에 살던 이 남자는 부친이 사망하자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시신을 방에 숨겼다. 장장 2년 동안 꼬박꼬박 아버지의 연금을 타먹었다. 경찰에 따르면 남자는 부친이 83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침실에 딸려 있는 작은 방에 시신을 숨기고 문을 자물쇠로 잠가버렸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냄새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문틈에는 실리콘을 발라 밀봉했다. 그러면서 매달 부친에게 지급되는 연금 1400유로(약 200만원)를 대신 탔다. 불효막심 남자는 우연히(?) 경찰에 체포됐다. 마약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집을 압수수색하다 밀봉된 방을 발견, 문을 열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신을 보게 됐다. 경찰은 “남자의 아버지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닐 수도 있다.”며 “남자가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주말 인사이드] 종이책은 죽지 않는다, 다만 숨 고를 뿐이다

    [주말 인사이드] 종이책은 죽지 않는다, 다만 숨 고를 뿐이다

    전자책이 정말 종이책을 없앨까.1998년 미국의 누보미디어가 처음으로 ‘로켓 e북’을 내놓자 출판계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 이래 15년째 반복되고 있는, 그래서 비명이라기엔 앙칼진 목소리가 무던해져버린 비명이다. 공상과학(SF)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 처음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 머릿 속에 그려진 그림은 이렇다. 모든 사람이 책을 쓴다. 전문가? 교수? 작가? 기자? 그런 계급장 따윈 필요없다. 분량에 상관없이 모든 주제, 모든 형식의 글을 쓸 수 있다. 그렇게 써서 올리면 소비자의 선택이, 그러니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알아서 정리해준다. 전자책 사업자는 일종의 유통 플랫폼 사업자로 중개수수료만 챙긴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책을 매만져왔던 노련한 편집자? 책의 전반적인 가치와 위치를 설정해주는 평론가? 그런 혹 따윈 떼버려도 된다. 좀 지나친 거 같다고? 그럴리 없다. 전자책으로 마침내 ‘글쓰기의 민주화’가 완벽하게 달성되는거니까. 민주화, 그 얼마나 신성한 단어이던가. 이런 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아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에 그쳤다. 그러나 한번씩 고개를 쳐든다. 처음 고개를 든 것은 2007년 아마존이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을 내놨을 때다. 뒤질세라 한국에서도 이런저런 단말기가 나왔다. 전자책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호들갑이 들끓었다. 결과는 실패. 단말기 생산이 은근슬쩍 중단되더니 차츰차츰 시장에서 사라졌다. 단말기를 산 사람들도 대개 20~30대 남성이었다. 20~30대 여성, 40~50대 남성처럼 책시장의 주력부대군이 아니었다. 책읽기 도구로 단말기를 샀다기보다, 단말기 그 자체의 성능을 시험해보려는 얼리 어답터, 그러니까 ‘IT 덕후’들의 놀잇감에 더 가까웠다는 뜻이다. 그뒤 사그라졌던 전자책 얘기가 다시 불거져나온 것은 순전히 스마트기기 덕이다. 휴대전화, 패드, 태블릿PC 등 값비싼 전자기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자, 그 훌륭한 기계로 고작 웹서핑이나 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고 결국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한 요소로 전자책이 다시 불려나온 것이다. 아니, 화려한 동영상 콘텐츠에 밀려 자꾸만 변방으로 내밀리니 뭐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어섰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한동안 사라졌던 전용단말기도 슬금슬금 다시 등장했다. 이전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파격적 행보도 곁들였다. 교보문고는 전용단말기와 함께 회원제 전자책 대여 서비스인 ‘샘’을 내놨다. 한 달 만에 1만 3000대를 팔았고 회원도 1만명 이상 확보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도 지난해 ‘크레마터치’를 내놓으면서 살림지식총서 100권을 붙인 버전, 박경리·조정래의 소설을 붙인 버전, 셜록 홈스 등 추리소설을 붙인 버전 등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 개별 출판사로는 대형출판사 ‘열린책들’이 지난 2월에 ‘세계문학’ 앱을 내놓고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출판계로부터 욕은 진탕 들어먹었지만 일단 이런 움직임들이 전자책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이용자들은 만족감을 드러낸다. 전자책에 특화된 ‘e-잉크’ 기능을 사용하는 전용단말기의 경우 요즘의 현란한 디지털기기에 비하자면 다소 답답한 부분이 있다. 화면전환도 느린 편이고 잔상도 남는다. 그럼에도 10만원 정도의 비교적 싼 단말기 가격에다 읽는 데만 특화돼 쓸 만하다는 평이다. 한국 소설을 즐겨 읽고 학생시절 때부터 모아온 책들이 상당한 회사원 강소연(여·37)씨는 “책을 쭉 꽂아놓고 소장하는 재미는 줄었지만, 그 대신 정말 소장하고픈 책을 빼고는 나머지는 전자책으로 바꿔나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고전을 즐기는 회사원 강신(남·30)씨는 순전히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앱 때문에 아이패드까지 사들인 경우다. 강씨는 “실물 책이 가득찬 책장이 주는 뿌듯함이 없고 오래 읽으면 눈이 좀 아프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만족”이라면서 “처음에는 종이가 주는 질감이나 맛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책갈피, 밑줄, 메모, 독서노트처럼 종이책과 다를 바 없는 여러 기능들을 쓰면서 아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 실제 판매 추이에서도 약간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 그동안 전자책이라면, 가벼운 자기계발서나 확실한 마니아계층이 형성되어 있는 장르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쉽게 말해 가벼운 내용의 책을 싸게 사들이는 곳이 전자책 시장이라는 얘기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의뢰해서 최근 3년간 베스트 50에 든 전자책들의 종류를 확인해보니 2011년 18권에 이르던 장르문학의 비중이 최근 6개월간에는 5권으로 줄었고, 문학 비중이 12권에서 18권으로 늘었다. 인문·사회분야가 5권에서 10권으로 늘었다. 예스24 측은 “장르문학의 비중이 차츰 낮아지고 있는 데다, 책 가격이 점점 다양화되고 있는 점을 확인해볼 수 있다”면서 “이는 고만고만한 책을 싸게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써본 사람들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고, 고전급 문학서적을 발판 삼아 전자책이 마침내 IT덕후들의 놀잇감에서 벗어나는 징후를 보이고 있으니, 이제 전자책의 공포가 마침내 현실화될 차례인가. 무슨무슨 연구소니 무슨무슨 증권사들이니 하는 곳에서 잠잠할 만하면 전자책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한껏 분위기도 띄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출판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지금 느껴지는 전자책 붐은 고전을 덤핑으로 팔아치운 데 따른 거품이라는 진단이다. 이런저런 시장 조사 결과를 보면, 같은 콘텐츠라면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으로 보겠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그나마 자본력을 갖춘 곳에서 저작권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고전을 이렇게 싼값에 폭탄세일하듯 팔아치워버리면, 나중에 새 콘텐츠를 제값 받고 팔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나온다. 최근 전자책 행보에 출판계가 끙끙 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전자책으로 제작되는 것은 저작권 시효가 끝난 고전, 그냥 쓱 읽고 마는 가벼운 에세이나 장르소설들, 토익이나 운전면허시험 같은 시험에 대비할 수 있는 가벼운 수험서, 대학 등에서 쓰이는 각종 두꺼운 교재 정도가 아니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실은 이마저도 잘 안되고 있다. 복제의 위험 때문이다. 대학교재를 많이 내는 A출판사 관계자는 “종이책을 변환한 것은 물론, 전자책 버전으로 다듬은 시험제작판도 나름대로 만들고는 있지만 회사에 차곡차곡 쌓아만 두고 있다”면서 “가장 큰 걱정은 시장에 내놓는 순간 저작권 침해행위가 만만치 않을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콘텐츠를 내놓을 출판사들이 모두 몸을 사리고 있으니 시장선점 욕심 때문에 몸이 바짝 달아오른 플랫폼 사업자가 그간 문화사업자로서 쌓아왔던 좋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을 감수해가며 가격을 후려치는 방식으로 일단 판을 벌린 경우”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보면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종이책을 즐겨보는 독자가 전자책도 사보고, 전자책을 보는 독자가 종이책도 사보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독자라는 사실”이라면서 “저가전략, 할인공세는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자책 시장이 안 뜬다고 초조해하는 이들은 독자들이나 출판사들이 아니라 오직 전자책 시장 관련 사업자들뿐”이라 꼬집었다. 그래서 여전히 전자책은 시험 중이다. 가령 민음사는 기존 콘텐츠를 디지털화해서 공개하는 대신 ‘디지털 싱글’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잡지 기사보다는 길고 단행본보다 짧은 분량의 글을 선보이는 것이다. 출퇴근시간, 찻집에 앉아 보내는 시간 등에 스마트기기를 통해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집중 개발, 보급한다는 전략이다. 이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실험이 많다. 장르, 분량, 형식면에서 기존 단행본의 전철을 밟지 않는 책이 나오면 알게 모르게 진행되는 실험일 가능성이 높다. B출판사 관계자는 “대기업 혹은 언론사를 끼고 최근래 몇년간 새롭게 생긴 각종 문학상, 혹은 보통 300쪽 안팎으로 구성되는 단행본 분량에 비해 더 짧거나, 아니면 아예 다 파괴하고 더 길게 쓰면서도 파격적으로 편집된 책 같은 경우 전자책 제작을 염두에 둔 일종의 실험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15년 동안 전자책 혁명을 떠들었으나, 전자책 혁명은 여전히 더 두들겨봐야 할 돌다리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홍수환 “이시영 승리 판정, 너무 창피한 일”

    홍수환 “이시영 승리 판정, 너무 창피한 일”

    여자복싱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배우 이시영(왼쪽·31·인천시청)에게 판정패한 김다솜(19) 측이 편파 판정을 주장하며 대한아마추어연맹에 정식 항의했다. 원로 복싱인 홍수환(가운데·63)씨도 거들고 나섰다. 김다솜이 소속된 경기 수원 태풍무에타이체육관의 최락환 관장은 25일 “오픈 블로(손바닥 부위로 가격하는 것) 경고를 받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대부분 정확히 펀치가 들어갔다. 유효타도 더 많았다”고 전날 판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다솜은 전날 충주체육관에서 열린 국가대표 최종선발전 여자 48㎏급 결승에서 이시영에게 20-22로 판정패했다.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 3라운드에서 오픈 블로 경고를 받아 2점을 감점당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최 관장은 “유명인인 탓에 판정이 쏠릴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해도 너무했다”고 분해했다.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경기 후 30분 안에 이의를 제기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김다솜 측이 복싱연맹에 항의를 하더라도 경기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이시영의 복싱 입문을 도운 전 세계챔피언 홍수환씨는 “어떻게 김다솜이 진 것으로 판정이 나올 수 있느냐”며 “연맹이 엉뚱한 방법으로 복싱 인기를 되살리려 한다. 그러나 이건 너무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변희재(오른쪽) 주간 미디어워치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이시영의 솜방망이를 22점으로 채점했다면 김다솜은 최소 50점을 줘야 하는, 어이없는 편파 판정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복싱연맹의 욕심이 김다솜과 이시영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질타했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이시영 상대’ 김다솜 “편파판정 항의 검토”…오픈 블로우 논란

    ‘이시영 상대’ 김다솜 “편파판정 항의 검토”…오픈 블로우 논란

    여자복싱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배우 이시영(31·인천시청)에게 패배한 김다솜의 소속 체육관이 25일 “편파 판정으로 태극마크를 빼앗겼다”면서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에 정식으로 항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김다솜은 전날 충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3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48㎏급 결승에서 이시영에게 20-22 판정으로 패배했다. 김다솜의 소속 수원태풍무에타이체육관 최락환 관장은 “김다솜은 오픈 블로우(주먹이 아닌 손바닥 부위로 치는 것) 경고를 받았는데 대부분 정확히 펀치가 들어갔다”면서 “유효타도 더 많이 때렸는데 판정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 관장은 “상대가 유명 배우기 때문에 판정이 한쪽으로 쏠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너무 치우쳤다”며 “편파 판정을 예상해 KO로 이기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 김다솜이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다솜은 2라운드까지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에서 밀려 20-22으로 패배했다. 3라운드에서 오픈 블로우 경고로 2점을 내준것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김다솜측이 항의를 해도 결과가 뒤집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아마추어 복싱은 경기 후 30분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최 관장은 경기 직후 항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나중에 추하게 보일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이시영은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편파 판정에 대한 논란도 동시에 일었다. 이시영이 복싱을 입문할 당시도움을 줬던 전 세계챔피언 홍수환(63)씨는 “복싱이 침체되다보니 연맹에서 엉뚱한 방법으로 인기를 되살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복싱인으로서 너무 창피하다”고 비판했다. 보수 논객으로 유명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도 트위터를 통해 “어이없는 편파 판정”이라면서 “복싱연맹이 욕심 때문에 김다솜과 이시영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복싱연맹은 유효타만을 점수로 인정하는 아마추어 복싱의 판정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선수의 공격적인 태도까지 감안하는 프로 복싱과는 판정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희국 복싱연맹 사무차장은 “아마추어 복싱은 파워보다 정확한 타격이 중요하다”면서 “5명의 부심이 공정하게 점수를 매겼고, 오픈 블로우 경고도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조종득(54) 대천체육관 관장 역시 “일반인이 보기에는 공격적인 경기를 펼친 김다솜이 이겼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공격성은 아마추어 복싱에서 점수와 상관없다”면서 “유효타는 오히려 이시영이 많았고 이시영이 맞은 펀치의 상당수는 오픈블로우였다”고 밝혔다. 특히 오픈 블로우 논란에 대해 “김다솜은 오픈 블로우가 많아 계속 주의를 줬다”면서 “원래 3번째 주의에서 경고를 줬어야 하는데 김다솜이 규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았고, (이시영이 유명 배우라는) 여론을 고려해 재량으로 경고를 주지 않다가 4번째에서야 경고를 줬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자연보약’ 사찰음식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자연보약’ 사찰음식

    숲은 늦은 동백이 툭툭 몸을 던지고 자고새 울음이 연두색처럼 번졌다. 햇 차를 따기 시작하는 곡우(穀雨). 그 차를 곱게 봉헌하는 다례제가 열리던 전남 강진 백련사 기와지붕은 촉촉이 젖고 있었다. 고마운 비다. 여연 스님의 우전차(雨前茶)를 마시며 강진만을 내려다본다. 그 만(灣) 줄기와 닿는 곡우 풍경들이 산바람처럼 스친다. 이즈막 남쪽에서 올라간 곡우사리 조기떼가 충청도 바다 어디쯤엔가 머물러 있을 것이고, 농부들은 논에 물을 대며 못자리 볍씨를 담글 것이다. 차밭을 에두른 만덕산 나무들은 물이 올랐다. 산나물 잎이 단단해져 간다. 절집 행자들 맘은 덩달아 바쁘다. 나물을 데쳐 말리거나 장아찌로 저장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례제의 부산함이 지나고, 이틀 후 다시 절집을 찾았다. 공양간 장독대는 볕이 넘쳤다. 산에서 꺾어 온 고사리며 버섯 등 나물들이 정갈하게 말려지고 공양주 보살은 금방 따왔다는 엄나무 순을 다듬고 있었다. 점심 공양시간. 발우에 나물을 담아놓고는 툇마루에 펼쳐진 절집 풍경이 하도 자오록하여 밥 식는 줄 모르고 생각에 잠긴다. 그렇다. 들춰 보니 봄날의 절밥이 그렇게 맛있는 줄은 나이 들어서야 알았다. 나물비빔밥이 그렇게 맛있는 줄은 마흔 들어서야 알았다. 참나물, 두릅, 고사리, 어수리, 씀바귀, 세발나물, 취나물, 방풍나물…. 손으로 우둑우둑 뜯어 연두색 산을 올리는 이 절집 밥상을 건너뛰고 어찌 봄 밥상을 얘기할 수 있을까.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생명의 에너지다. 나물 한 젓가락에, 쓱쓱 비빈 나물 비빔밥에 봄의 우주가 담겨 있으니까. 기름지거나 인공조미료 범벅인 속세 음식과는 달리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금세 꺼진다. 그래서 단순하게 제철 재료의 순한 맛을 공양하는 절밥을 자연보약으로 여기는 것 아닐까. 몸을 단아하게 하고 이 순한 밥을 먹는 일상의 의식은 순리를 존중하는 치유의 시간이며, 불가에서 음식을 ‘약’이라 여기는 포괄적 이유다. 음식에 심성이 담기기 때문이다. ‘약이 되는’ 사찰음식 얘기를 듣고 싶었다. 몇 번의 전화 끝에 백련사에서 사찰음식 템플스테이를 준비하고 있는 홍승 스님과 연결됐다. 스님은 근래 책 ‘마음을 담은 사찰음식’을 내고, 부산에서 ‘홍승 스님의 사찰음식연구회’를 통해 사찰요리 섭생법을 전하고 있다. 부산으로 달려갔다. 안채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푸성귀가 넘쳐난다. 부엌에는 전날 담근 보리고추장이 펼쳐져 있고, 스님은 ‘스님이 될 아이’라는 돌쟁이를 한 손에 안고 커다란 주걱으로 고추장을 젓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고추장을 쿡 찔러 간을 보는 스님 모습에서 텃밭을 드나들며 조물조물 생명의 밥상을 차려내던 ‘우리들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스님은 식재료를 만지는 틈틈이 불가에서 얘기하는 수양으로서의 음식과 현대인들이 왜 사찰음식의 정신을 엿보아야 하는지 들려주었다. 스님은 무엇보다 여성들이 ‘어미’로서 ‘먹이’를 챙기는 의무를 포기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엄마가 부지런히 움직여서 아이들 음식을 직접 해 먹여야 해요. 채소를 안 먹으면 살짝 눈속임을 하세요. 취나물을 넣은 잡채나 튀겨서 달콤하게 강정으로 만든 두릅을 상에 올려 봐요. 아주 잘 먹어요.” 뚝딱, 양념에 버무려 낸 두릅강정이 접시에 담겼다. 기름기 먹은 두릅은 촉촉하고 고추장의 단맛이 돌아 자꾸만 젓가락이 갔다. 진달래 터지듯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면 잦은 외식과 불규칙한 식사를 하는 현대인들이 이런 음식을 접하며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없을지 여쭤 보았다. “스님들이 꼬장꼬장 오래 사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운동과 명상, 정갈한 삶도 있지만 ‘시간밥’을 먹기 때문입니다. 아침은 부드럽게, 점심은 단단한 음식으로, 저녁은 간단히 꼭 제시간에 먹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인들은 아침은 굶고 점심을 대충 때워요. 그러니 저녁을 폭식하게 되고 또 야식을 즐기잖아요. 정성껏 차린 음식에 대한 감사의 묵상 시간도 없어요. 스님들은 발우공양을 하면서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하는 오관게를 외웁니다. 한 끼 때우는 밥이 아니고 일상 수행으로서 음식에 대한 고마움이지요. 당장 아침밥부터 바꿔보세요. 심심하게 된장을 푼 취나물 국을 끓여 밥 한 수저 놔서 가볍게 먹고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귀찮고 손이 많이 가지만 제철음식을 먹으면 면역력이 높아지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넘치지 말아야 해요. 봄나물이 몸에 좋아도 원추리나 방풍나물 등 지나치게 먹으면 해롭습니다. 음식은 독성과 약성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에요. 탐욕을 버리고 중도를 지키는 것이 불가의 음식수행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사찰음식이 꼭 보수적인 것만은 아니다. 스님들 점심 공양은 오히려 화려하다. 강판에 간 연근과 밀가루를 섞어 전(도우)을 빚어서 토마토소스와 버섯 등 채소를 얹은 피자는 자칫 무료하기 쉬운 절집 밥상을 즐겁게 해준다. 두부스테이크도 굽는다. 고소한 깨강정은 입맛 돋우는 별식이다. 일반 가정에서 모두 응용 가능한 밥상이다. 남쪽은 꽃이 지고 푸른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봄기운을 먹을 수 있는 나물밥상은 길지 않다. 근래에는 시설재배를 통해 계절 개념이 불투명해지기는 했으나 몸집만 키운 무취의 재배나물과 할머니들이 산과 들에서 뜯어온 야생 나물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니 강원도 정선이나 경기도 양평 오일장을 일부러라도 어슬렁거려볼 일이다. “한국인은 참기름만 주면 모든 풀을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으며, 나물을 먹는다는 것은 한국인의 생활철학과 그 우주를 먹는 것”이라고 정의한 국어학자 이어령 박사의 말이 귓가에 들려오는 봄날이다. 글 사진 강진·부산 손현주 음식평론가 marrian@naver.com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십이령을 넘나드는 원상들 중에는 정한조가 행수 노릇하고 있는 소금장수 행수 상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곽전(藿田)에서 매수한 미역이나 건어물을 지고 십이령을 넘는 건어물 상단이 있었는데, 15~16명을 헤아리는 그 상단의 행수는 울진 토박이로 조기출(趙基出)이란 사람이었다. 그 역시 사십대 중반의 나이로 정한조와 같은 접소의 공원이었다. 울진 봉화 보부상 관할 지역은 대개 삼척부 울진현의 흥부장과 매야장, 안동부 내성현(奈城縣)의 내성장과 현동장, 장동장을 손꼽았다. 조기출을 행수로 하는 건어물 상대는 이들 장시에서 고포 미역과 김 그리고 건어물로 거래를 트고 있었다. 조기출은 원래 명색이 책상물림으로 궁반 출신이었다. 그는 임오년에 있었던 군란 이후에 반명을 하는 선비들도 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후부터 과감히 투필하고 늦깎이로 원상의 신표를 받았다. 수하에 거느린 행중들 역시 가근방 출신들이 많았다. 선비 출신답게 길미를 노리는 수완이 출중하고 시세를 읽는 안목도 탁월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허우대는 책상물림답게 금방 씻은 배추같이 멀쑥하게 생겼으나, 괴이하게도 목소리는 왕방울로 퉁노구를 가시는 듯 요란스럽고 시끄러워 듣기에 거북했다. 원래는 언사가 순박하고 조근조근했으나 장시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대접받는다는 어떤 쓸개 빠진 구실아치의 조언을 듣고 그를 좇은 까닭이었다. 글줄깨나 읽은 이력이 있어 원상들이 관아에서 쟁송이라도 생기면 앞장서길 인색하지 않았으나, 장시의 우락부락한 무뢰배들과 대치라도 할라치면 일찌감치 가위가 질려 대차게 헤집고 나가는 담대함이 모자랐다. 아직 큰 풍상을 겪지 못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술도 배움술이라 많이 먹어야 두 잔이었다. 그도 임방에선 공원의 직책을 얻어 행세하지만 곧잘 도감인 정한조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성품도 무던해서 행중 식구들로부터 걸핏하면 양반 행티 너무 마시라는 핀잔을 들었지만,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좀먹은 탕건에 책상다리하고 뼈빠지게 글을 읽어도 오직 허황될 뿐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던 궁반 시절과 견주어 보면, 만리 행역 눈보라에 부대껴 육신은 더없이 고단하지만, 마음은 편해서 일찌감치 신표를 얻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임오년 난리 이듬해인 계미년(1883년)부터 조정에서는 경상, 전라, 강원, 함경도 연안의 조업권을 일본에 허가해 버렸다. 그런 연유로 연안 어업이 위축되고부터 덩달아 건어물의 수확도 줄어들었다. 생업을 걸었던 상대들도 하나둘 내륙의 상대로 이탈하고 말았다. 야거리배만으로는 종선까지 몰고 다니는 일본 선단의 위세당당한 조업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해촌의 어부들은 끽해야 팔을 뻗으면 손이 육지에 닿을 것 같은 연안을 맴돌면서 생선 몇 뭇* 낚아 말리거나, 곽전에서 수심곽*과 오들곽*을 걷어 내는 일에 생계를 의존했다. 고포리 해안선을 따라 10여 리에 형성된 바위 밭의 돌곽 미역은 얕은 수심에서 햇볕을 보고 자라 검푸른 색을 띠고 잡벌레가 없을뿐더러 국을 끓이면 그 향기가 온 방안에 퍼졌다. 동짓달에 시작해서 이듬해 4월 사이에 채취한 미역은 크기도 일반 미역이 따르지 못해 고려시대부터 진상품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정어리나 청어, 오징어, 임연수어 같은 어종들이 잡혀 그나마 내륙으로 가져가면 길미가 쏠쏠하였다. 꼭두새벽에 말래 도방에서 발행한 소금 행상들이 샛재에 당도한 것은 산기슭에 서 있는 마른 자작나무 가지들이 우수수 설레는 그날 해거름 무렵이었다. 말래부터 바릿재를 넘어 샛재까지 노정에는 벼룻길과 잔도와 치받이길이 계속되었다. 때문에 발새 익은 길이라지만 욕심껏 걸어도 노정 줄이기가 수월치 않았다. 당도하고 보니 미역 짐과 건어물 짐을 진 조기출 행중들이 먼저 당도해서 맞은편 숫막의 봉노를 지키고 있었다. 숫막이 세 군데나 있어 20여 명의 행중이 한꺼번에 들이닥쳐도 봉노가 비좁은 경우는 없었다. 비좁다 하더라도 서로 빗장거리하듯 어슥버슥 누우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서로 막역한 사이인 두 떨거지들이 왁자하게 떠들어 대는 와중에, 정주간에서 뒤트레방석을 깔고 앉아 군불을 지피던 월천댁이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 상단 행중이 당도한 것을 얼른 알아채고 봉당 쪽마루에 널린 도깨그릇들을 서둘러 치우고 나서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뭇: 열 마리가 한 뭇. *수심곽: 잠녀들이 깊은 물에 들어가서 채취한 미역. *오들곽: 얕은 물에서 낫대로 건진 미역.
  • ‘기계전사 109’의 김준범, 힐링 만화로 돌아오다

    ‘기계전사 109’의 김준범, 힐링 만화로 돌아오다

    늘 옛 작품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현재진행형인 작가에게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20여년 전 장편 데뷔작을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작품이 한국 만화사의 한 페이지를 아로새긴 까닭이다. 1989년 12월 청소년 만화 잡지 ‘아이큐점프’를 통해 처음 선보인 한 편의 SF 만화에 국내 만화 팬들은 열광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전쟁을 다룬 디스토피아적인 작품이었다. 할리우드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으나 민주화 물결과 계급 투쟁 등 당시 국내 사회상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한국형 사이버펑크로 각광 받았다. ‘드래곤볼’을 시작으로 일본 만화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던 그 시기. ‘망가 쓰나미’에 맞서 한국 만화의 자존심을 살렸던 작품으로도 기억된다. 바로 ‘기계전사 109’다. ‘기계전사 109’의 김준범(46) 작가가 힐링 만화로 돌아왔다. 최근 ‘네모가 동산으로 간 까닭은?’(북극곰 펴냄)이라는 명상 만화를 출간했다. 법륜 스님의 정토회 홈페이지와 정목 스님의 유나방송 홈페이지에서 ‘코스모스 로드’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연재했던 것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동글선사와 그의 제자인 네모, 동글이와 그 친구들, 외계인과 견공들이 주고 받는 문답을 그렸다. 1990년대 국내 출판계에 명상 에세이 바람을 일으켰던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힐링 만화다. “우리 나라가 어느 정도 경제적 부유함을 갖추긴 했어도 강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적으로 척박하기 때문이에요. 요즘 세상을 보면 아이들에게 마음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경제적인 동물로 만드는 데 관심이 있죠. 쉬엄 쉬엄 마음 편하게 살아도 나쁠 게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결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예수, 부처, 노자, 장자가 했던 이야기들을 21세기 현재 우리 식으로 바꿔 만화로 옮긴 것 뿐이죠.” ’기계전사 109’를 생각하면 언뜻 연결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힐링 만화를 그리게 되기까지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 2000년 대 들어 별자리와 인연을 맺은 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 그는 2002년 천문 해석 공부를 시작한 뒤 만화 보다는 천문 해설 활동에 매진했다. 천문선원이라는 작은 오프라인 공간과 코스모스로드(www.cosmosroad.com)라는 온라인 공간을 근거지 삼아 별자리 강좌와 상담을 갖고 별자리 입문서 ‘별이 전하는 말’을 집필하기도 했다. “10년 정도 천문 공부를 했어요. 어스트랄로지(astrology)하면 대개 점성술이겠거니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 데 그것만은 아니에요. 마음 공부의 하나죠. 물리학, 생물학, 인류학부터 성경, 불경까지 공부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죠. 그래서 힐링을 키워드로 만화를 그리게 됐죠.” 그가 새로 단행본을 낸 것은 거의 10여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만화로는 소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중의 뇌리에서 김준범이라는 이름 석 자가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한국 만화의 미래를 짊어질 천재 작가로 손꼽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무대였던 만화 잡지 시장에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이 찾아왔어요. 만화 대여점이 생기며 더욱 부채질했죠. 서른 즈음에는 2년가량 투병 생활을 하며 펜을 놓기도 했습니다. 창작 환경이 원고 작업에서 컴퓨터 작업으로 옮겨갔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까닭도 있어요.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그림체가 바뀌고 스토리가 달라졌습니다. 인기를 쫓는 쪽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게 대중에게는 활동을 안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그렇게 대중과 점점 멀어진 것 같아요.” 마냥 세상의 변화를 탓하며 방황만 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흐름 속에서 1인 만화 웹진이나 선주문 출판 등을 통해 기존 만화 유통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실험적인 시도를 거듭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섰다는 평가만 남았을 뿐 큰 성과는 얻지 못했다. 지금은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발 비껴 선 처지. 시대의 파고를 넘어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는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을 지켜보면 부럽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몇몇 작가라도 살아남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윤태호 작가 등 가진 실력에 견줘 조명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상태는 너무 기쁘죠. 저도 언젠가 살아날 수 있는데, 그 무대를 지켜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김 작가는 2013년을 만화 복귀 원년으로 삼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비상업 만화를 그렸다면, 앞으로는 상업 만화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한다는 것이다. 우선은 작화 보다는 스토리 작가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스마트폰을 통해 선보일 계획이다. 별자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랑에 대한 청춘들의 고민을 다루는 아이돌판 ‘섹스 앤 더 시티’ 느낌의 작품이라고 김 작가는 귀띔했다. 원소스멀티유즈(OSMU)를 꿈꾸며 2500년 전 인도를 배경으로 한 부처 제자의 삶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도 했다. “오랫 동안 천문 공부, 마음 공부를 하며 수 천 년 내려온 좋은 말씀들을 만화로 옮기다보니 언젠가부터 스토리 창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어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올해엔 만화와 관련한 여러가지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우리 만화 팬이라면 ‘기계전사 109’ 같은 작품을 기대할 게 분명할 터. 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다른 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만화 팬들이 20년 전 ‘기계전사 109’ 같은 그림만 떠올리는 게 아쉬워요. 그 같은 작품을 소설이라고 한다면 언젠가부터 한 편의 시 같은 그림체로 옮겨갔지요. 소설 같은 그림체는 저보다 훨씬 잘 그리는 후배들이 많아 굳이 직접 그릴 필요가 있겠나 싶어요. 그래서 서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는 후배에게 그림을 맡기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는 직접 그려 보려 합니다. 다만 우리나라 고승들의 삶을 그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설 같은 그림체로 한 번 쯤은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준범 작가는 원래 만화가가 아니라 화가를 꿈꿨다. 그런데 화가는 미대를 나와야 할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을 만큼 고지식 했다. 공부에 자신이 없었다. 미술 외에 국영수까지 잘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그는 1985년 허영만 화실의 문들 두드리며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2시간 10분’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 등의 스토리를 써 이름을 날리던 노진수 작가와 의기투합해 내놓은 첫 장편이 바로 ‘기계전사 109’다. 이후 ‘따로 따로 형제’(1991) ‘ ‘부전자전’ ‘필승아 놀자’(이상 1998) 등을 가족과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글·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KLPGA 넥센·세인트나인] 축포는 없었다

    [KLPGA 넥센·세인트나인] 축포는 없었다

    프로 ‘3년차’ 홍진의(22·롯데마트)는 순천 청암고를 다니면서 학교 수업과 골프를 함께한 색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부친 홍우상(53)씨는 딸에게 골프채를 잡게 했지만 “운동만 하지는 마라”고 당부했다. 그는 “골프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골프 외에 다른 경험이 많은 게 저의 장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프로 입문 뒤 사정은 달랐다. 현실은 냉엄했다. 2009년 프로에 뛰어들어 2년 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멤버가 됐지만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온몸을 짓누르는 상위권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해 말부터 ‘멘털’에 집중했다. 예전에 없던 ‘루틴’(샷 이전의 준비 동작)도 만들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되도록 많이 하는 것이 멘털 훈련의 핵심이다. 그러나 챔피언조의 선두가 주는 중압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21일 경남 김해 가야골프장(파72·6664야드)에서 끝난 KLPGA 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최종 3라운드. 전날 비바람 속에 유일한 언더파를 쳐 생애 첫 승을 바라보던 홍진의는 버디는 1개에 그치고 보기 3개를 범한 끝에 2오버파 74타를 쳐 최종합계 3언더파 216타로 양수진(22·정관장·6언더파 213타)에 3타차 역전패했다. 선두로 발돋움한 2라운드 내내 허투루 웃는 법 없이 표정을 지켜 더 강인한 인상을 남겼지만, 홍진의는 이날 눈앞에 다가왔던 우승컵을 양수진에게 넘겨준 뒤 그제야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겉으론 냉정했지만 속으론 우승 욕심이 많았다. 아직 도가 덜 닦인 탓인가 보다”고 자책했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공약이행, 재정자립도와 무관… ‘부자’ 강남벨트도 상위권 못들어

    공약이행, 재정자립도와 무관… ‘부자’ 강남벨트도 상위권 못들어

    2010년 7월 취임한 민선 5기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지난해 말 기준 공약 이행률은 43.1%(4763개)다. 지난해 평가 때인 24.7%와 단순비교하면 18.4% 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민선 5기 임기가 절반 이상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약이행이 순조롭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통상 임기 3년차에서 공약 성과가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부자 지자체’로 분류되는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소위 ‘강남벨트’는 연도별 목표달성도, 공약이행 완료율 모두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이번 평가에서 무투표 당선지역 8곳과 지난해 재·보선 지역 8곳, 현재 공석인 4곳 등 20곳은 제외됐다. 부진한 공약 이행 실적은 공약 남발과 만성적인 지자체 재정 압박이 주 요인으로 파악됐다. 전체 1만 1035개 공약 중 789개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역 협력 미흡, 재정·외부 여건 변화 등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거 당시 예측이 부족했거나 시·군·구청장 권한 한계를 벗어난 공약 320개는 보류,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목표 미달성, 보류·폐기 등 실제로 추진 불가능한 공약은 지역시설 유치·조성·건립 같은 공약이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풀뿌리 지방자치제도가 성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지자체장들이 가시적인 사업에 욕심을 부리다 결국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보류·폐기된 공약들을 살펴보면, 구 시가지 재정비촉진(뉴타운) 사업(서울 성동구), 광역 철도망 구축(경남 김해시), 하수처리시스템 설치(경기 성남시), 국제 비즈니스 파크 조성(충남 천안시) 등 광역단체·중앙부처 차원에서 협의가 필요하거나 천문학적 재정이 소요되는 사안들이 많았다. 이 사무총장은 “전국적으로 재정자립도 차이, 재선과 초선, 시·군·구 조건 등에 따른 차이는 크게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비슷한 조건의 지자체라도 단체장의 공약 실천 의지, 이를 뒷받침하는 소속 공직자의 열의 등에 따른 차이가 더 크다는 게 평가단 의견이다”고 말했다. 민선 5기 체제 들어서 지방세수의 지속적인 감소, 매칭 펀드 방식의 국비지원, 경제위기에 따른 지방재정 어려움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됐다. 공약이행 완료도를 지역별로 보면 구 지역이 53.2%로 가장 높았다. 시 지역은 41.4%, 군 지역이 38.4%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시·군·구 간 행정권한 범위, 지역 내 인적 자원 차이 등으로 인한 격차가 갈수록 격화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각 기초단체들의 5가지 분야 점수를 바탕으로 광역단체별 평균을 낸 결과 광주, 대전, 부산 지역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 지역은 평균 83.8점으로 제주를 제외한 15개 광역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전(83점), 부산(79.4점)이 뒤를 이었고 서울은 77.1점으로 4위에 올랐다. 반면 강원(52.6점) 지역은 꼴찌를 기록했다. 충남(55.6점)과 울산(56점) 지역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충남지역은 전 항목에 걸쳐 모두 최하위권에 속했다. 지역별로 연도별 공약이행목표 달성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대전(97.7%)-부산(97.6%)-충북(94.7%) 순이었다. 반면 경남(87.4%)-충남(89.1%)-강원(89.7%) 지역은 목표달성도가 낮았다. 공약이행 완료율은 대전(70.5%)-서울(55.2%)-경기(55.1%) 순으로 높았으나 충남(30.3%), 전북(32.8%), 경북(33.2%)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공약 평가 과정에서 사법배심원제 같은 주민의 자발적 참여, 투명한 결과 공개 등 소통평가 점수는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낙제점 수준인 64.2점에 불과했다. 특히 전남(53점), 강원(53.4점), 충남(56.5점) 지역은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민선 5기 체제에서 주민들의 공약 평가 참여 등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만 웹소통 분야는 지난해 평가보다 17.7점 상승한 80.1점으로 대폭 올랐다. 지역주민에게 공약이행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불통 지자체’는 한 곳도 없었다. 모든 지자체가 공약이행 정보를 홈페이지에 상시 공개한 점은 지난해 대비 성과로 평가됐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프로축구] 골, 골, 골… 대세가 대세라오

    [프로축구] 골, 골, 골… 대세가 대세라오

    ‘인민루니’ 정대세(수원)가 시즌 1호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 선두 데얀(서울) 추격에 나섰다. 정대세는 지난 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의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8라운드에서 세 골을 잇따라 터트려 4-1 역전승을 혼자 이끌었다. 그 덕에 수원은 최근 2경기 무승(1무1패)의 부진을 털어냈다. 정대세는 시즌 4골로 단숨에 득점 순위 2위로 뛰어올랐다. 데얀과는 1골 차이. 시즌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어 일부에서는 거품이란 지적도 나왔다. 정대세는 지난달 30일 전북과의 정규리그 4라운드 후반 12분 서정진의 결승골을 도우면서 감각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6일 대구와의 정규리그 5라운드에서 마침내 리그 데뷔골을 꽂은 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의욕이 넘쳐서일까, 지난 14일 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는 전반에 경고 2장을 받고 퇴장당하며 팀의 서울 상대 무승 기록을 9경기(2무7패)로 늘리는 데 앞장(?) 섰다. 한 경기를 쉬면서 칼을 벼린 정대세는 마침내 이날 해트트릭으로 골 가뭄을 풀어냈다. 모두 영리한 위치선정과 뛰어난 감각이 빛을 발했다. 홍철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골대 정면에서 발끝으로 방향만 살짝 바꿔 동점골을 만든 데 이어 조지훈의 슈팅에 가까운 강한 크로스를 문전에서 번쩍 뛰어올라 발바닥으로 공을 찍어 바운드시켜 역전 결승골로 연결했다. 정대세는 스테보의 쐐기골이 터져 3-1로 앞선 상황에서 마지막 집중력을 발휘, 살짝 몸을 틀어 골키퍼 김선규와 골문 사이를 파고드는 슛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최근 4경기에서 4골 2도움을 작성했다. 그는 “스트라이커로서 골을 넣어야만 나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며 “많은 골을 넣고 싶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성남은 21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조커 김성준의 벼락 같은 중거리포로 울산을 1-0으로 제쳤다. 전북, FC서울에 이어 울산까지 사냥한 성남은 3연승 상승세를 타며 명가의 부활을 예고했다. 부산은 광양전용구장에서 후반 추가시간 터진 임상협의 극적인 동점골로 2-2 무승부를 이뤄 소중한 승점 1을 땄다. 경남은 창원축구센터에서 골대를 맞히는 불운 속에 강원과 페널티킥으로 1골씩 주고받아 1-1로 비겼다. 경남은 시즌 7경기 연속 무패(1승6무)를 이어갔지만 5경기 연속 무승부를 거두며 팀의 통산 100승 달성을 다음으로 미뤘다. 반면 시즌 첫 승리에 실패한 강원은 8경기 연속 무승(4무4패)에 빠졌지만 승점 1을 보태 대구(승점 3)를 최하위로 끌어내리고 꼴찌에서 벗어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美 보스턴 테러] 9·11-보스턴테러 다 겪은 한인

    [美 보스턴 테러] 9·11-보스턴테러 다 겪은 한인

    미국 테러 역사상 가장 큰 충격을 준 2001년 9·11테러와 지난 15일 보스턴 테러. 두 사건을 모두 겪은 ‘비범한 운명’의 주인공이 있다. 뉴욕에 사는 교민 데이비드 강(53) 푸른여행사 상무다. 그는 12년 전 9월 11일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인솔해 뉴욕 맨해튼에 들어갔다가 테러를 목도했고 이번엔 마라톤 현장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다가 테러를 목격했다. 강 상무는 16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9·11테러 때는 멍하고 어이가 없었다면, 이번 보스턴 테러를 보고는 화가 났다”고 말했다. →9·11테러 때 어디 있었나. -한국에서 온 지방 공무원들을 차에 태우고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 빌딩 78층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차 가는 길이었다. 강변도로에 들어섰는데 WTC에서 연기가 치솟는 게 보였다. WTC 근처에 다다랐을 때 벼락 치는 듯한 굉음이 나면서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빌딩 잔해가 덮쳤다. 황급히 차를 돌려 피신했다. 원래 그날 WTC 행사는 테러가 일어나기 이전에 열릴 예정이었는데, 막판에 2시간 뒤로 연기됐다. 연기되지 않았다면 운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보스턴 테러 때는 어디 있었나. -결승선을 지나 메달 나눠 주는 곳에서 마라톤을 마친 한국 관광객을 맞기 위해 서 있었는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치솟았다. 만약 주자들의 골인 장면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에 결승선 근처에 서 있었다면 변을 당했을 것이다. →9·11테러와 보스턴테러의 느낌이 다른가. -9·11테러 때는 상실감 같은 게 있었다면 이번엔 화가 났다. 마라톤은 이념과는 무관한 순수한 인간의 축제인데 어떻게 테러를 저지를 수 있나. →두 차례 큰 사건을 겪고 나서 달라진 게 있나. -9·11테러를 겪어서 그런지 이번 테러 현장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침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일을 연거푸 겪다 보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긴장이 된다. 오늘도 관광객들을 인솔해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더라. 하지만 정신적으로 크게 두려운 것은 아니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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