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代 팬덤현상’ 과도한 애정인가 스타 소유욕인가
한때의 과도한 열정인가,아니면 기성세대의 폭력(?)에 맞서는 정당방위인가.
지난주 한 방송국이 H.O.T 4집앨범 ‘아이야’수록곡의 일부에 표절의혹을제기하자 이 방송사 인터넷 사이트에는 10대 여학생들이 중심이 돼 사이버공격을 집중했다.
이들은 표절의혹은 제쳐두고 ‘우리가 이 삭막한 세상에서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왜 가로막느냐’고 반발했다.
여기에 젝스키스와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까지 가세,통신망은 곧 진흙탕으로 바뀌었다.욕설이 난무하는 것은 물론,“죽여버리겠다”는 식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또 한 방송사가,H.O.T 멤버들을 소재로 한 팬픽(스타를 소재로 한 소설)에서동성애를 다룬 사실을 문제삼으려 한다는 입소문이 팬클럽 안에서 나돌자 곧“방송국을 폭파하겠다”“방송이 나가면 아이들의 희생이 잇따를 수 있는데 첫번째 희생자는 내가 될 것”이라는 등의 협박이 올랐다.
이들이 가장 애용하는 무기는 집단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유는 소수의 힘으로는 기성세대나 언론,보수주의자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따라서 대상을 정하면 시기를 맞춰 융단폭격을 가한다.이메일이 유용한연락수단이 된다.
두번째 방법은 공격해야 할 대상이 생기면 최대한 자극적인 언사를 동원해격퇴하는 것이다.이 바람에 한두번 싸움을 걸어본 30대는 물론 양자를 화해시키려는 20대도 곧 ‘퇴장’해 버린다.
공연이 시작되기 몇시간 전에 공연장에 나가 플래카드를 준비하고 격문을 붙이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 넘어지고 울고불고 하는 것은 차라리 아름다운‘맹신’으로 치부할 만하다.
2년여전 신문들은 이러한 대중의 문화수용 양태를 ‘팬덤’(Fandom)으로 규정하고 일말의 기대를 드러낸 바 있다.원래 팬덤이란 말은 열광적으로 추종한다는 뜻의 fanatic과 집단적 증후군의 dom이 결합된 것이었다. 이 개념은스타가 대중에 의해 맹목적인 추앙을 받는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팬들의 문화권력 확장으로 오히려 스타를 ‘관리’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기대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일부 10대들은 스타를 아예 ‘소유하고 지배’하려 든다.
H.O.T멤버와 사귄다고 알려진 가수 간미연 협박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만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회원이 많다는 H.O.T팬클럽은 정식회원만 3만5,000명을 넘어섰다.S.M기획은 이들을 관리하느라 스타월드라는 회사를 따로 두고 있다.
팬덤현상은 공격을 당할수록 상대를 적대시,자신들만의 아성을 더욱 공고히한다는 점에서 ‘패닉’(집단 광기)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많다.
이들의 집단적 흥분과 맹신을 이용,음반시장의 커다란 권력으로 떠오른 10대를 겨냥한 매니지먼트로 주머니를 채우겠다는 뮤지션과 기획사들이 있는 한팬덤현상은 당분간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할 것 같다.
임병선기자 bsnim@ *문화집단운동‘팬덤공’스타산업의 박수 부대 거부 요즘의 팬덤은 병적이고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그렇지 않다.기존 문화판을짓누르던 엄숙주의에서 탈피,장르간 벽을 허물고 스스로 창작과 평론을 하는문화집단 운동으로 팬덤이 발전해 간 사례도 있다.
독립예술제를 기획 연출해 얼굴이 알려진 김종휘와 그룹 ‘허벅지밴드’의안이영노가 참여하고 있는 잡지 ‘팬덤공’이 대표적이다.‘팬덤공’은 지난97년 6월 예닐곱명이 모여 ‘팬진공’(‘팬 매거진 공’의 약칭)으로 출발했다. 막 개념이 소개되던 팬덤을 실질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스타산업의 박수부대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들을 모이게 한 동기였다.진앙지는 라이브클럽이 들어서던 신촌과 홍익대 근처.
같은해 10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이름을 ‘공아리’(동아리+공)로 붙였다.고교 1년생부터 어엿한 직장인,백수까지 문을 두드렸고 이들은 만화를 그리다 밴드에서 연주하고,낮에는 영화하고 밤에는 밴드하는 식으로 문화평론과 창작작업을 시작했다.공아리는 지금의 스타 팬클럽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결속력도 없고 공동체 의식도 없었다.그냥 속이 텅 비었으며 무엇이든 관통하고 어디에든 척 달라붙는 존재였다고 멤버들은 술회한다.
그러나 이들은 98년 여름까지 5권의 동아리 잡지를 발행한 뒤 현재는 최소한의 상업성 확보까지 겨냥하며 ‘팬덤공’이라는 이름으로 잡지를 재창간,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재창간 2호의 목차를 보면 비디오잡지 라는 새로운평론형식을 실험하는 ‘자유독립’을 소개하는 기사부터 음반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 라이브클럽 합법화를 둘러싼 시비, 인디 영역에서 새로움을 개척하는 ‘스컹크 레이블’등 문화산업과 시장의 논리를 파헤치고 있다.
이외에도 체계적이고 합목적적인 활동으로 주목받는 팬클럽 등 팬덤들은 많다.영국 비틀스협회를 능가하는 자료와 분석력을 갖춘 한국비틀스협회,하이텔·천리안 등 각 통신업체의 음악동호회 등에 참여를 권하는 것도 광적인스타사랑에 빠진 청소년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임병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