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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개인·역사의 퇴보 부르는 국가의 ‘과잉보호’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개인·역사의 퇴보 부르는 국가의 ‘과잉보호’

    국가 의무의 한계/허버트 스펜서 지음/이상률 옮김/이른비/174쪽/1만 3500원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터지면 국가의 역할을 묻는 논평이 줄을 잇는다. 큰 화재나 자연재해에 대한 처리가 미흡해도 국가는 도마에 오른다. 개중엔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맞는지 싶은 것도 제법 많다. 우리 사회는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합의 혹은 기준이 없는 듯하다. 19세기 영국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국가 의무의 한계’는 그가 말년에 남긴 방대한 저작 ‘윤리학 원리’에서 국가에 대해 논한 부분만 발췌했다. 스펜서는 합당한 국가 모델로 ‘제한된 국가’(limited state)를 제안한다. 오늘날 ‘작은 정부’와도 일맥상통하는 이 모델은 행정 전 문화를 통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을 우선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부 기관들은 무기력하거나 부주의하거나 느리고”, “관료주의 악습은 모든 종류의 공공 조직에 두루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산업혁명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신분 체계보다 계약 체계가, 강제성보다 자발성이, 협업보다 분업이, 그 결과로 정부 주도보다 비정부 주도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쯤에서 국방과 외교, 치안 등 질서 유지만 담당하는 이른바 ‘최소 국가’를 떠올릴 법하다. 그러나 저변에 있는 자유방임과는 결이 좀 다르다. 스펜서는 국가가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부의 적에게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집단 내부에서 강자가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자극하고 지도하는’ 활동, ‘적극적으로 규제하는’ 활동을 통해, 즉 전문성에 기반해 능동적인 통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펜서가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자고 한 배경에는 ‘개인’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국가가 아니라 ‘이익이나 생계를 위한 욕망에 의해 부추겨진 연합된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국가 혹은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면 개인은 자율성을 상실한다.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자립심이 없는 수동적 개인은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의 무력화는 역사의 퇴보를 가져온다. 국가의 역할을 묻는 동시에 인간 본성의 방향도 묻는 셈이다. 스펜서가 주장한 국가의 역할을 우리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다시 국가의 역할을 묻는다는 점, 관료주의의 악습을 일관되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다시 강준만의 ‘인물과사상’을 읽으며/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다시 강준만의 ‘인물과사상’을 읽으며/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16년 만에 복간된 강준만 교수의 계간 사회비평서 ‘The 인물과사상’을 통독했다. 강준만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전개된 논쟁문화와 비판적 글쓰기, 정치비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저술가이자 늘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문제 제기를 수행해 온 치열한 논쟁가다. 고백하건대 그의 문제의식과 글쓰기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과 자극을 받았다. 20여년 전 강준만이 토로한 발언을 기억한다. ‘정년 보장을 받은 국립대 교수인 내가 이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과연 이런 민감한 얘기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 늘 사회에서 혜택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소신껏 발언하려고 노력한다’는 취지의 고백이었다. 운 좋게 대학에 취직해 몇 년이 흐른 무렵 접한 강준만의 이 발언이 뇌리를 관통했다. 살아오면서 이런 태도를 늘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강준만의 인상적인 발언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항상 마음에 새겨 두고 있다. 비판, 논쟁, 발언에 대한 소명감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강준만은 실명 비판과 성역 없는 논쟁을 모토로 한 ‘인물과사상’을 복간했을 테다. 긴 세월이 흐른 만큼 비판과 논쟁에 임하는 강준만의 태도도 여러 면에서 변했다. 그는 이제 신랄한 비판과 투철한 논쟁적 태도보다는 ‘소통’, ‘역지사지’,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한다. “나라를 망가뜨리는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그의 절박한 주장은 이전과는 달라진 비판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는 이번에 발간된 ‘인물과사상’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어준 정치평론가를 포함한 열 명의 정치가와 논객에 대해 조목조목 평가하고 비판한다. 정치적 현안에 관한 그의 주장 중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든 대목도 꽤 존재한다. 이를테면 왜 지금 이 시점에 잡지가 복간돼 특정 진영 인사 중심의 비판이 수행되고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겠다. 이점이야말로 그의 정치적 무의식이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새겨들을 만한 의미 있는 비판과 조언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령 증오를 조직화하는 정치적 관행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것, 시민의 자연스러운 욕망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 이른바 ‘내로남불’을 벗어나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한다. 이러한 지적은 우리 정치문화가 경제적 발전에 부합되는 품격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항목이다. 이 땅의 지식사회에서 강준만의 주장과 메시지는 각자의 입장을 검증하는 리트머스시험지에 가깝다. 오랜 세월 동안 지역에서 활동하며 진영 논리에서 거리를 둔 ‘고독한 단독자’ 강준만의 입장은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기 힘든 독특한 포지션을 지녔다. 나 역시 강준만의 주장을 접하며 스스로 정치적·사회적 입장에 대해 다시 돌아볼 때가 있다. 이즈음 그가 꾸준히 천착하는 ‘감정과 욕망’, ‘비합리적 존재로서의 인간’, ‘진보의 자기 성찰’은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 성숙하기 위해서 꼭 통과해야 할 어젠다에 해당한다. ‘인물과사상’의 복간이 단지 강준만 개인의 기획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상호 존중에 기반한 토론의 활성화와 강고한 진영 논리의 균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런 과정이 나와 다른 생각과 감성을 지닌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증오하고 혐오하는 태도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리라. 이러한 취지가 구현되려면 앞으로 ‘인물과사상’에 의미 있는 반론의 보장, 필자의 다양화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강준만의 문제의식을 응시하고 극복하며 타 넘으면서 한 발자국 나아가야 한다. 의욕적인 새 출발을 한 ‘인물과사상’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논쟁적 대화를 기대해 본다.
  • [정형준의 희망의 의학] 보건의료정책 논의 구조 정상화해야/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정형준의 희망의 의학] 보건의료정책 논의 구조 정상화해야/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얼마 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보정심)가 공공의료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중기 공공보건의료계획을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논의해서 결정했다는 사실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 보정심을 공공의료를 제대로 논의할 수 있도록 구성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보정심은 모든 보건의료정책을 심의하는 기구이지만 실제 위원 면면을 보면 의료기기, 제약업체, 보건의료공급자와 이들의 대변인인 전문가들이 대다수다. 전체 위원 25명 가운데 가입자위원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은 4명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위원회에서 ‘공공’ 보건의료 정책까지 의결했다는 점이다. 제약업체, 의료기기업체 대표들이 공공 보건의료정책을 논의하는 선진국은 없다. 이들 업체가 영리기업이란 점을 생각하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제대로 된 공공의료정책이 나올 리가 없으니 한국의 공공의료가 보건산업의 부속물로 전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입자 몫으로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대표가 참석하는 것도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최근 들어 정부는 보건의료정책 결정에 구색을 맞추려 의료소비자를 대변하는 대표들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운동의 긍정적 취지와 달리 보건의료는 결코 소비자 중심이 될 수 없다. 의료서비스는 환자 개개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서비스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가 원한다고 각종 약물과 검사를 남발하는 게 좋은 의료도 아닐뿐더러, 다른 사회복지체계의 문제와 연관된 입원기간, 환자의 상태에 대한 소견 등은 사실 객관적이고 공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일반 상품시장처럼 소비자들의 권익을 중시한다고 결과가 좋지도 않고, 거꾸로 정보불균형으로 인해 왜곡까지 발생한다. 주요 선진국에서 보건의료정책 논의 구조에 환자 및 소비자대표를 넣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건의료정책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대표 사례인 영국 국가보건체계에선 보건의료를 공익을 위한 필수 사회서비스로 본다. 따라서 지역위원회에선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기구의 대표자 및 추천받은 이들이 위원 다수를 차지한다. 예를 들면 지역의 공립학교와 소방서, 노동조합 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소방서장이 응급환자와 관련된 논의를 대변하고, 학교 대표는 학생들의 공중보건 관련 논의를 한다. 공공노조 대표들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이를 연결한다. 제약업체 대표와 소비자운동으로 포장된 특정 환자군의 대변인이 이런 공공적이고 공익적인 논의에 참여한다고 하면 아마도 영국 보건의료서비스 당국은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거버넌스란 구색을 맞춰 여러 사람을 모은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보건의료 부문을 시장서비스로 만들어 공급자와 소비자 구조의 이분법으로 만든다고 해결될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범죄자 수사를 소방서에 맡기는 식의 요식행위를 이젠 중단할 때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필수 공익서비스다.
  •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권여름 ‘Y의 마지막 다이어트’ 선정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권여름 ‘Y의 마지막 다이어트’ 선정

    도서출판 넥서스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자 올해부터 신설한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으로 현직 국어 교사인 권여름(39·본명 권하얀) 작가의 ‘Y의 마지막 다이어트’를 선정했다. 우수상은 김성준 작가의 ‘비밀이라는 게 비밀’이 뽑혔다. 넥서스는 지난 1~3월 600여편의 응모작을 접수하고, 심사를 거쳐 작가상 수상작을 결정했다. 본심 심사는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박상률·조해진 작가가 맡았다. ‘Y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단식원에 들어가서 살을 빼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이야기로, 단식원 운영 주체와 입소생, 강사들을 둘러싼 욕망을 그렸다. 유 교수는 이에 대해 “공들인 현장 탐사와 인물들의 성격 구현이 구체적이며 다이어트 산업에 대한 비판과 인물들의 내면의 움직임이 찬찬한 문장에 실려 가독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현재 군산 진포중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권 작가는 소상 소감으로 “지금 여기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성실하게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겠다”면서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 수상자 상금은 3000만원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에 권여름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에 권여름

    도서출판 넥서스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자 올해부터 신설한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으로 현직 국어 교사인 권여름(39·본명 권하얀) 작가의 ‘Y의 마지막 다이어트’를 선정했다. 우수상은 김성준 작가의 ‘비밀이라는 게 비밀’이 뽑혔다. 넥서스는 지난 1~3월 600여편의 응모작을 접수하고, 심사를 거쳐 작가상 수상작을 결정했다. 본심 심사는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박상률·조해진 작가가 맡았다. ‘Y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단식원에 들어가서 살을 빼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이야기로, 단식원 운영 주체와 입소생, 강사들을 둘러싼 욕망을 그렸다. 유 교수는 이에 대해 “공들인 현장 탐사와 인물들의 성격 구현이 구체적이며 다이어트 산업에 대한 비판과 인물들의 내면의 움직임이 찬찬한 문장에 실려 가독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현재 군산 진포중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권 작가는 소상 소감으로 “지금 여기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성실하게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겠다”면서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 수상자 상금은 3000만원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더 입체적이고 더 섬세해서… 치명적인 드라큘라

    더 입체적이고 더 섬세해서… 치명적인 드라큘라

    2014년 이후 네 번째 ‘드라큘라’김준수·전동석·신성록 ‘3색 감동’4중 턴테이블 등 압도적인 무대 창작물 새 역사 ‘마마, 돈크라이’허규 등 스타배우 15명 총출동불멸의 삶을 사는 신비로운 존재, 뱀파이어는 언제 어디서 만나든 흥미를 준다. 올여름, 서로 확연히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뱀파이어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객석을 유혹한다. 브로드웨이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대형 라이선스 작품과 재치가 가득한 국내 창작 뮤지컬 작품으로 폭넓은 판타지 세계를 만날 수 있다.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드라큘라’는 무대부터 압도적이다. 2014년 초연 이후 네 번째를 맞은 이번 시즌에서는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비춰 영상을 투영하는 미디어 파사드 기법을 세트에 다각도로 사용했고, 4중 턴테이블 장치로 무대가 더욱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어두운 배경에 붉은색 위주의 강렬한 조명과 의상은 드라큘라의 존재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지킬앤하이드’로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의 드라마틱한 음악을 입고 한껏 세련된 멋을 뽐낸다. 수백년을 한 여인을 사랑한 드라큘라는 등장하는 매 순간 카리스마를 뿜는다. 네 시즌 모두 참여해 ‘드라큘라’의 상징이 된 ‘샤큘’(시아+드라큘라) 김준수와 힘 있는 목소리로 묵직한 감동을 전하는 전동석, 선 굵은 연기가 돋보이는 신성록이 드라큘라로 화려하게 무대에 오른다.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마마, 돈크라이’는 국내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다. 2010년 초연 이후 벌써 여섯 번째 시즌째 신드롬을 이어 온 공연으로 올해는 오리지널 멤버부터 새로운 얼굴까지 15명의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10주년 기념 공연이 세 차례나 미뤄지며 올해 ‘10+1주년’으로 의미를 더했다.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V가 타임머신을 타고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 뱀파이어가 되면서 펼쳐지는 스토리를 2인극으로 풀어낸다. 록 콘서트처럼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중독성 강한 노래와 재치 있는 연기는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데 그 내용은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섬세하게 이야기한다. 이처럼 다채로운 재료를 맛깔나게 버무리는 건 온전히 배우들의 에너지다. 첫해부터 모든 시즌에 참여한 배우 허규를 비롯해 송용진, 고영빈, 박영수, 이충주 등 ‘마돈크 장인’들과 조형균, 백형훈, 양지원, 최민우, 박좌헌, 김찬호, 고훈정, 장지후, 이승헌, 노윤 등 강한 팬덤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각자 통통 튀는 개성으로 무대와 객석을 휘어잡는다. 너무나 다른 매력의 두 무대에서 뱀파이어들은 한목소리로 영원한 삶 속에서 끝없는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이 아님을 깨닫는다. 서늘한 무대에서 끝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고 애틋하다는 것을 뜨겁게 역설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여기는 중국] “가재요리, 못 잊어” 6시간 음주 운전한 男 황당 이유

    [여기는 중국] “가재요리, 못 잊어” 6시간 음주 운전한 男 황당 이유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무려 6시간 동안 아찔한 음주 운전을 한 남성이 공안에 붙잡혔다. 중국 난징시 닝롄고속도로 요금 징수 중 음주운전 의심자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에 적발된 남성 류 모 씨의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무려 0.12%로 면허 취소 기준을 초과한 수치였다.  산둥성 지난시에 거주하는 류 씨는 사건이 있었던 지난 11일 저녁 8시, 지인들과의 저녁 식사 모임에 참석하던 중 문득 며칠 전 난징시에서 먹었던 마라룽샤(민물가재를 향신료 마라와 볶은 요리)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약 3시간 동안 술을 마신 상태였다.  늦은 밤 11시 시작된 류 씨의 음주 운전은 산둥성 지난시에서 출발, 이튿날 난징시 닝롄고속도로까지 총 6시간 동안 이어졌다. 류 씨의 음주 운전을 확인한 공안에게 그는 “난징에서 얼마 전 먹었던 마라룽샤가 너무 맛있었다”면서 “지난시에는 그런 맛의 마라룽샤가 없다. 결국 난징에서 먹었던 그 맛을 다시 한번 먹기 위해서 위험천만한 음주 상태의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류 씨 사건은 현장에 있었던 공안이 촬영한 영상이 온라인 상에 공개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관할 공안국은 음주 운전을 한 혐의의 류 씨에 대해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린 상태다. 또, 향후 5년 내에 운전 면허 시험 응시 제한 및 추가 형사 처벌 여부에 대해 심의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도로교통안전법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단 1회 적발될 경우에도 예외없이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리고 있다. 또, 5년 안에 면허 재발급 및 취득을 제한해오고 있다.  이와 함께, 소량의 음주 운전 경우에도 예외 없이 구속, 법정에 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관할 법원은 사건의 경중을 따져 음주운전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상하이 푸둥에서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6명의 사상자를 낸 황 모 씨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했을 정도다.  공안 관계자는 “단 한 끼에 대한 욕망을 참지 못해 광란의 질주를 했던 류 씨가 치뤄야 하는 형량은 생각보다 무거울 것”이라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이유로 불법을 행하는 것은 눈감아줄 수 없는 일이다. 류 씨는 자신이 행한 불법 행위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책꽂이]

    [책꽂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존 돈반·캐런 주커 지음, 강병철 옮김,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펴냄) 미국 언론인 출신인 두 저자가 지난 80년간 향상된 자폐증 어린이의 권리와 자폐아 가족들의 눈물겨운 희생의 역사를 조명했다. 자폐증은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최근에는 자폐 당사자가 자신을 대변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864쪽. 4만원.관계의 미술사(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앵글북스 펴냄) 미국 비평가의 시각으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가 8명과 이들 간 라이벌 관계를 탐구한다. 마네와 드가, 마티스와 피카소 등 거장들이 창작 활동을 하게 된 원동력은 이들이 각자의 라이벌에게 느끼는 우정, 경외, 질투, 욕망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440쪽. 2만 2000원.생명의 물리학(찰스 S 코겔 지음, 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펴냄) 영국 우주생물학자이자 에든버러대 교수인 저자가 물리 법칙이 생명 현상에 관여하고 생명의 진화 과정에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저자는 생물마다 세포의 크기가 왜 비슷한지, 모든 생명이 규소 대신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이유 등이 모두 물리 법칙과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488쪽. 2만 5000원.사파 구하기(와리스 디리 지음, 신혜빈 옮김, 열다북스 펴냄) 소말리아 출신 여성 인권 운동가 와리스 디리가 아프리카 지부티의 한 빈민가 출신 일곱 살 소녀 사파 누르를 구한 여정을 담았다. 저자는 강제로 성기 훼손을 당할 위기에 처한 사파를 통해 아프리카·중동에서 매일 8000명의 여아가 할례 관습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고발한다. 408쪽. 1만 7000원.북극 이야기, 얼음 빼고(김종덕·최준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북극전문가와 언론인 출신인 두 저자가 현지 조사와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 사는 곳’으로서 북극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러시아 사하공화국 이누이트 사람들의 삶과 지구 온난화 문제, 자원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 등을 살펴본다. 236쪽. 1만 5000원.붉은 마스크(설재인 지음, 아작 펴냄) 수학 교사 출신 설재인 작가의 SF 장편소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 급속도로 퍼진 전염병 때문에 텔레파시를 얻게 된 새로운 존재들이 출연한다. 세상은 붉은 마스크를 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멸망을 향한 전쟁을 치른다. 320쪽. 1만 4800원.
  • 文정부 진보정책·위기관리 실패가 ‘보수 쏠림현상’ 불렀다

    文정부 진보정책·위기관리 실패가 ‘보수 쏠림현상’ 불렀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에 형성된 ‘이준석 바람’은 태풍이 돼 한국 정치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특히 이준석 대표를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2030세대가 대거 국민의힘으로 쏠린 터라 더불어민주당에는 대선 패배라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민주당에 뼈아픈 점은 이 태풍이 민주당의 자체 모순에서 잉태됐다는 사실이다. 이준석 대표로 발현된 경쟁과 능력주의 등 보수적 가치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진보적 가치를 내세웠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내걸었던 가치와 정책들이 정권에 참여한 주요 진보인사들의 ‘내로남불’ 행태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시민들에게 이 대표의 능력주의는 사이다와 같은 쾌감을 주며 보수 가치에 눈을 돌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젊은층이 열광하는 ‘이준석표’ 보수 가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방향과 정반대를 향하고 있다. 이는 진보의 핵심 가치인 결과의 평등, 양성 평등,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가 다 무너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이 대표의 능력주의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의 박탈감이 투영됐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6일 “결과의 평등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만, 문재인 정권의 실책으로 젊은층은 결과의 평등은 고사하고 기회의 평등마저 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결과의 평등이 어렵다면 차라리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실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게 더욱 공정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젊은층의 이런 욕망을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분석이다. 진보 세력은 젠더 갈등 문제도 과소평가했다. 이 대표는 평소 여성할당제, 여성징병제 등에서 20대 남성을 적극 대변하며 젠더 이슈를 정치적 도마에 올렸다. 여성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 대표는 2030 남성들의 정치적 지지라는 실리를 택했다. 진보 세력의 비판은 고준담론에 머물렀지만 이 대표는 바닥에서 지지표를 훑은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페미니즘과 그에 대한 ‘이대남’의 백래시는 MZ세대엔 거대담론이 아니라 생존 경쟁의 문제였지만, 진보 세력은 입바른 훈수 두기에 그쳤다. 이 대표의 ‘이름값’을 키운 ‘이준석vs진중권’의 페미니즘 논쟁 당시 기성 정치권 대부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집회’를 통해 정치 참여를 배운 MZ세대들은 역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이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촛불을 든 대가가 조국 사태, 부동산 문제, 고용 참사, 박원순 사태라고 여긴다. 최근 국민의힘에 2030 당원 가입이 폭증하는 배경에는 정치에 직접 개입하고 싶다는 심리가 투영됐다.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직장인 장모(29)씨는 “이준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30대 청년에게 정치적 권한을 부여해 줬다는 것만으로도 국민의힘에 기회를 한번 줘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날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청년’을 21번이나 언급했지만, 청년들이 피부로 느끼는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이들의 마음을 돌려세울 길이 없어 보인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지금 대권주자들을 모두 포기하고 70년생 경제전문가인 새 인물을 세우겠다는 정도의 특단의 대책과 실천적 변화를 보여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하영·이근아 기자 hiyoung@seoul.co.kr
  •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면… 행복해질까요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면… 행복해질까요

    자기애로 뭉친 살인범 고유정처럼완전무결한 행복을 꿈꾸는 주인공악인의 내면 파고든 전작들과 달리교차 시점으로 피해자들 처지 강조‘특별한 존재’ 주입하는 현 세태 질타소름 돋는 구성·영화 같은 묘사 압도2019년 5월 제주도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줬던 고유정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극도의 자기애성 성격장애(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고유정은 전남편이 먼저 이혼소송을 건 것을 자신에 대한 반항으로 여겨 살해했다는데, 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으로 인간 내면의 악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정유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은 이처럼 자기애로 뭉친 주인공이 타인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파멸하는 과정을 그렸다. 악을 소재로 한 전작들에서 악의 본질에 천착했던 작가는 이번에는 악인의 내면 대신 그가 타인에게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에 초점을 맞췄다. 소설은 버려진 시골집에서 오리 먹이를 만드는 여성 신유나와 그의 딸 지유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집을 찾은 유나의 전남편 서준영이 다음날 갑자기 사라진다. 유나는 ‘완전한 행복’을 꿈꾼다. 독점욕이 강한 그의 행복은 무결함에 기초하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라는 지금의 남편 차은호에게 유나는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112쪽)라고 반박한다. 불운과 결핍을 감추는 것이 행복이라 믿는 유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할수록 은호의 친아들 노아 등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소설은 은호, 유나의 언니 재인, 딸 지유의 시점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는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의 시각에서 쓴 전작 ‘종의 기원’과는 대조적으로, 피해자들의 처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쾌감을 느낄 정도로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유나가 만든 서늘한 공포, 인간 내면에 도사린 어두운 욕망, 행복의 수단으로 전락한 가족의 군상을 마주하게 된다. 유나는 자신의 행위를 ‘행복 추구’로 정당화하나 “인생의 목적이 겉으로 보이는 행복 추구에 있을까”라고 되묻게 된다. “고통, 불안, 결핍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라고. 작가는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상당수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너는 남보다 특별한 아이”라고 주입하는 현 세태를 질타하고, 행복에 대한 강박증과 자기애가 넘치는 사회가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진다.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하게 구성된 상황과 장소, 명료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은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작가는 러시아에서 처음 만난 유나와 은호의 소설 속 공간을 구체화하고자 직접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 바이칼호를 답사했다. 한 편의 영화와 같이 생생한 장면 묘사가 일품인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마치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다”고 일갈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러 여성 교도관 대상 미인대회 열려…“성적 대상화” 비난

    러 여성 교도관 대상 미인대회 열려…“성적 대상화” 비난

    러시아에서 여성 교도관을 대상으로 한 미인 대회가 열려 현지 여성인권 운동가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했다는 것이 이유다. 터키 일간 밀리예트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연방교정국이 여성 교도관을 대상으로 한 미인 대회를 개최해 각 지역의 참가자 86명 중 12명을 결선 진출자로 선정했다. 이들 교도관은 짧은 영상에서 춤 실력을 뽐내거나 교도관의 매력, 지역사회의 아름다움 등을 홍보했다.참가자들 중에는 법학 전공자나 3대째 교도관, 승마 선수, 모굴 스키 챔피언 또는 가수 등 이색적인 이력을 갖고 있거나 아카데미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도관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또 교도관 제복과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프로필 사진을 제출해 온라인 투표와 대부분이 남성인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받아 그중 1명이 우승자로 선정되는데 최종 결선은 오는 11일 밤 모스크바에서 열린다. 이에 대해 현지 여성인권 운동가인 나스탸 크라실니코바는 "여기서 성적 대상화가 나쁜 이유는 여성을 살아있는 개인이 아닌 물건으로 대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라면서 “감탄하며 바라보거나 욕망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외에는 흥미롭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대회를 비극이라고 낙인찍으면서도 “슬프고 씁쓸하다”고 덧붙였다.한편 러시아 연방교정국은 미인 대회를 통해 활동을 홍보한 이 나라 최초의 정부 기관은 아니다. 2019년에는 러시아 국가근위대가 자체 미인 대회를 개최했고 안나 흐람초바라는 이름의 여성 경찰관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여성 동료들이 질투한다고 말했다가 해고당한 사례가 있다. 사진=러시아 연방교정국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선도국 된 한국의 운명

    [홍석경의 문화읽기] 선도국 된 한국의 운명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성공이 상상하던 수준을 넘어선 지 꽤 됐다. BTS의 새 싱글곡 ‘버터’가 1년 안에 네 번째 빌보드 1위를 했다는 소식도 더는 뉴스거리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잘나가는 나라”가 된 것은 단지 대중문화뿐이 아니다. 그 방식에 대한 철학적 이견이 있음을 차치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팬데믹을 엄격한 방역으로 억제했고, 그 결과 예상치를 넘어서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하이테크 산업에서 앞서가는 대기업이 있을 뿐 아니라 중소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건재하며 디지털 문화에 능한 국민이 유권자를 구성하고 시장을 받쳐 주고 있어서 정책이든 상품이든 부글부글 끓듯 토론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시행과 성공, 실패 또한 빠르다. 이 정도까지만 한국에 대한 사실을 기술해도 ‘국뽕’이라는 자조와 경멸이 어우러진 지적이 진보와 보수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다. 한국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리스트가 이어지고, 분단국가의 역사적ㆍ지정학적 약점이 환기된다. 이렇게 한국 내의 문제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현미경 밖의 세계는, 특히 우리가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모델로 삼아 왔던 나라들은 우리보다 문제 없이 잘 살고 행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관찰의 거리로 인한 착시일 뿐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민초들의 현실 또한 수많은 문제로 점철돼 있다. 가까이에서 보는 우리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지지만, 서구 청년들의 좌절이 한국의 2030보다 가볍다는 어떤 근거도 없다.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사회복지 시스템이 보호막을 좀더 세련되게 깔아 놨을 뿐 가족 해체가 더 진행된 서구사회 청년이 느끼는 불안이 더 가볍고 그들의 장래가 더 밝은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인은 아직 얼마나 한국 중산층의 구매력이 높고 잘사는지, 한국의 일상이 안정된 시스템으로 보장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일상 속에 여유와 자선보다는 상실감과 이기심이 더 분출한다. 한국의 위상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자조적으로 바라봐 온 한국의 역사적·지정학적 약점에 좌절하지 않고,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속도와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민족을 무력으로 침략하거나 착취해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식민 착취와 탄압, 전쟁의 파괴, 가난과 군사독재의 폭력을 그 나름대로 극복하고 부유한 국가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이며,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희생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중국, 미국, 일본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 전략적인 공간에서.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성취한 부와 민주주의가 우리가 모델로 했던 선진국의 내용과 다른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두 마리 토끼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끝없는 소음과 다툼과 갈등, 하루가 멀다고 소셜네트워크를 달구는 논란들. 우리가 만드는 영화, 드라마, 웹튠과 케이팝에는 있는 힘을 다해 두 세대 만에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자인 민주국가 그룹에 도달한 한국인의 꿈과 희망, 좌절, 경쟁, 스트레스, 강박, 불안, 추구하려는 가치가 묻어 있다. 세계의 관객이 한국산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이러한 특별한 선도국 위상이 그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서구 시스템이 안정되고 세련됐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물적 토대에 대부분의 나라는 도달할 수 없으며, 선진국이라는 가면 밑에는 해결되지 않은 인종주의와 후기식민주의적 상황들이 얽혀 있다. 새마을운동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성공 모델이 되고, 광주시민항쟁과 촛불시위가 홍콩과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레퍼런스로 언급된다. 케이팝 팬덤 문화는 세계적 팬덤 문화의 참조가 되면서 음악산업의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일본인에게 한국 드라마는 더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 불가능한 고급 콘텐츠이고, 한국의 문화 수출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서구 지식인들은 자신의 태도를 수정하거나 정당화 논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이다. 선진이라는 형용사가 진부해진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내며 걸어가는 선도국의 위상은 힘들지만 한국이 맡게 된 세계사적 운명이기도 하다.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 ‘펜트하우스‘ 김순옥 작가 “욕 많이 먹어…높은 시청률 얼떨떨”

    ‘펜트하우스‘ 김순옥 작가 “욕 많이 먹어…높은 시청률 얼떨떨”

    “시즌3 주제는 ‘파멸’…각종 신조어 감사”등장인물 ‘부활’에 게임회사 광고 제의도“‘순옥적 허용’은 개연성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말이지 않나 싶어요. 인정합니다. 많은 사건이 터지고 급작스럽게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다 보니, 캐릭터의 감정이 제대로 짚어지지 않고, 또 죽었던 사람이 좀비처럼 하나둘 살아나면서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지난 5일 첫 방송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3의 김순옥 작가는 7일 SBS를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의 반응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첫 방송 이후 화제성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섰던 드라마에 대해 김 작가는 “‘부활절 특집’이냐는 말도 들었다”며 “저도 드라마를 보면서 반성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고쳐야지! 절대 살리지 말아야지!’ 결심 하다가도 저도 모르게 새로운 사건을 터트리거나 슬슬 살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펜트하우스’는 시즌1과 2에서 시청률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시즌3 역시 첫 방송부터 19.5%(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했다. 김 작가는 “전작 ‘언니는 살아있다’ 최종회 시청률이 24% 나왔을 때 앞으로 내 드라마에서 이 시청률을 뛰어넘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했었는데 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시작할 때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드라마를 끝까지 완주할 수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얼떨떨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그러나 화제성 만큼 논란도 있었다. 폭력적인 묘사와 개연성 부족으로 드라마를 중단시켜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마라맛 스토리’, ‘저세상 속도 전개’, ‘순옥적 허용’ 등 신조어도 생겼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게임회사에서 광고 제의도 왔었다”고 전했다. “절대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나는 설정이 게임 캐릭터로 딱 맞아서”라고 추측한 김 작가는 “부족한 드라마를 변호해 주기 위해 시청자들이 만들어주신 신조어들이 너무 감사하고 부끄러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폭력과 부동산 투기 등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나 또한 살벌한 교육 현장에서 두 아이의 입시를 치렀고, 부동산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했다”고 했다. 아파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집값을 움직이거나, 몇 해 사이 옆 아파트값이 두 배가 되면서 괜한 상실감에 우울하기도 했다는 그는 “다소 불편하지만 가정폭력, 불공정한 교육, 부동산 문제의 폐해를 조금이나마 건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시즌1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 시즌2는 죄에 대한 인과응보가 핵심이었다고 설명한 김 작가는 시즌3의 주제를 ‘파멸’이라고 밝혔다. “인간이 죄를 짓고 온 세상이 다 무너져버리는, 그러나 끔찍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리고 무너진 돌 틈 사이에서 새싹이 태어날 것”이라는 게 마지막 시즌 주제다. “‘우리가 지금 사는 집이 가장 행복하구나’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머리 아파서 펜트하우스에서 하루도 못 살 거 같거든요.” 그가 드라마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분당 택시기사 살해사건 원래 범행 목표는 채팅 여성…“분풀이로”

    분당 택시기사 살해사건 원래 범행 목표는 채팅 여성…“분풀이로”

    인천에서 성남 분당으로 가던 중 택시기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20대가 구속기소됐다. 그는 당초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알게 된 여성을 만나 살해하려고 했으나 만남에 실패하자 분풀이로 택시기사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7일 운행 중인 택시에서 운전기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로 승객 A(22)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대학 휴학 중인 A씨는 지난달 14일 오후 9시 45분쯤 성남시 분당구 미금역 인근 도로를 달리던 택시의 뒷좌석에서 운전 중이던 기사 B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딸이 지난달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분당 택시기사 흉기살해 범인에 대한 신상공개 및 엄벌(사형)을 간곡히 청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알려지기도 했다.A씨는 앞서 당일 저녁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여성을 만나 살해한 뒤 성적 욕망을 채우려고 마음 먹고 흉기를 구입해 B씨의 택시를 탄 것으로 조사됐다. 약속장소로 가던 중 A씨는 상대 여성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생각에 당초 계획했던 범행을 단념한 뒤 분풀이로 택시기사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에서 성남까지 이동한 A씨는 범행으로 인해 택시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서자 문을 열고 도망가려다 견인차 기사가 막아서면서 도주에 실패했고, 시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A씨는 2015년부터 정신질환으로 통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청원을 올린 딸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이 23세의 범인이 정신병력을 프리패스처럼 소유하며 다시는 이 도시를 자유로이 활보하지 못하도록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검찰에서는 사형을 구형, 재판부에서는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덧붙였다. 오는 23일 마감 예정인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4시 30분 현재 5만여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불고기, 이 맛이 어디서 왔냐면!

    [그 책속 이미지] 불고기, 이 맛이 어디서 왔냐면!

    1962년 특허출원한 불고기 석쇠 도안이 지금 봐도 낯설지 않다. 둥그런 돔 형태에 군데군데 구멍을 내 열이 잘 올라온다. 밑판을 회전식으로 만들어 불구멍도 여닫을 수 있다. 고기를 태우지 않고 맛있게 구워 먹고 싶은 욕망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인 셈이다.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구이 음식 불고기의 어원과 역사를 정리했다. 고구려 음식 ‘맥적’부터 일제강점기 매일신보에 실린 최남선의 글, 불고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재된 1950년 큰사전 등을 추적했다. 육수와 함께 굽는 ‘서울식 불고기’가 언제, 어떻게 등장했는지도 소개한다. 고기 구이 문화 속 한국 사회도 엿볼 수 있다. 인터넷에 불거졌던 불고기의 어원에 대한 논쟁을 종결할 만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평상심 배우기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평상심 배우기

    많이 인용되는 ‘논어’ 구절 하나.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역시 군자답지 않은가.” 통상 이 구절을 군자다움의 덕목을 요약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렇게 삐딱하게 읽을 수도 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에 사람들은 목을 맨다. 그런 욕망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리고 군자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들이 돈과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체가 주는 쾌락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소유할 때 남들로부터 받게 되는 부러움의 시선에서 얻는 쾌락이 더 크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그렇게 힘이 세다. 돈, 물질,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 지식인이나 문화예술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과 이름이 인정받기를 욕망한다. 상징권력의 욕망이 내면에서 꿈틀댄다. 2019년 발간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연감에 따르면 국내 주요 문학상의 개수는 238개란다. 이렇게 많은 문학상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그렇게 많은 상을 주고받을 만큼 매년 한국문학공간에서 탁월한 작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일까? 지난해와 올해 한국 영화계에는 잇달아 경사스러운 소식이 들렸다. 어쨌든 국제적으로 저명한 상을 받는 건 반가운 일이다. 나는 이런 수상은 그 개인에게 수여되는 것이지 ‘국가대표’에게 주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만 어쨌든 영화계에는 큰 격려다. 그러나 내게 특히 인상 깊게 다가온 건 수상 자체가 아니라 그 상을 대하는 봉준호 감독과 윤여정 배우의 태도였다. 봉 감독 인터뷰 한 구절. “이 직업도 20년 넘다 보니 그런 두려움과 고민은 솔직히 별로 없어요. 그냥 제 일을 계속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기생충’을 좋아하니 지금은 낯 뜨겁지만 이것 역시 지나가는 현상이라 생각하고 즐기려고 애쓸 뿐이에요. 소동, 그 단어가 많은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편리한 단어 같아요.” 봉 감독이 ‘기생충’을 만들 때 칸 황금종려상이나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받겠다는 욕심을 가졌다면 아마 그런 작품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에서 사심이 앞서면 작품이 망가진다. 그는 평상심을 유지하며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수상도 곧 지나갈 “지나가는 현상”, 즐거운 소동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평상심을 회복하고 영화를 만든다. 트로피는 서랍에 넣어두고. 윤여정 배우도 비슷한 말을 한다. “저는 경쟁을 싫어해요.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를 이기겠어요. 저는 그녀의 연기를 수없이 많이 봐 왔습니다. 그리고 5명의 후보들, 우리는 각자 다른 영화 속에서 승자입니다. 우린 각자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우리는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늘밤 제가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는 건 제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죠.” 수상은 결국 운의 문제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윤 배우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영화에 주저하지 않고 출연해 왔다. 뒤늦게 본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그 예다. 윤 배우의 이름값에 비한다면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배역은 작다. 그래도 성심을 다해 연기한다. 봉 감독과 마찬가지로 윤 배우도 무슨 상을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한 게 아닐 것이다. 그냥 해야 할 일을 능력껏 한 것이다. 설령 봉 감독의 연출과 윤 배우의 연기가 큰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그들이 한 작업이 의미가 없어지지 않는다. 상을 받으면 당사자에게 격려의 의미가 분명히 있지만 평상심을 유지하는 예술가에게는 상은 받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대상일 뿐이다. 얼마 전 중세 이슬람 시인 루미의 산문시집을 인상 깊게 읽었다. “당신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취해 있는 것을 볼 때 오만해져 통제력을 잃는다. 세상의 칭찬과 위선은 맛있는 음식과도 같다. 적당히 먹어야 한다. 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알고도 어떻게 그 음식을 먹겠는가? 말하지 말라. 당신은 칭찬을 열망하고, 아마 그것을 먹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인정 욕망에만 사로잡히면, 작품을 만들 때 상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한다면, 그 작품은 그렇게도 바라던 인정과 수상에서 오히려 멀어지게 된다. 윤 배우와 봉 감독을 두고 부러워해야 할 것은 수상이 아니라 남들이 뭐라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꿋꿋하고 묵묵히 하는 평상심의 태도라고 믿는다.
  • 사전 편찬 장인이 펴낸 어감사전…사전에 담지 못했던 말뜻 속뜻

    사전 편찬 장인이 펴낸 어감사전…사전에 담지 못했던 말뜻 속뜻

    지은이 안상순은 늘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문장 속에서 각각의 낱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어떤 의미를 얻고 확장해 가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우리말 연구자였다. 국어사전을 그럴듯하게 만들 줄 아는 기술을 가진 이였다. 어떠한 국어사전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아는 사전 편찬자였다. 그는 평소 어감, 뉘앙스, 뜻이 미묘하게 다른 낱말의 의미를 좀더 섬세하게 밝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소박한 욕망이라고 했다. 30년 넘게 국어사전을 만들면서 미처 건드리지 못한 부분이었다. 동의어가 아니라 유의어였다. 유의어는 뜻은 비슷하지만 어감이나 뉘앙스가 다른 말이다. 그렇다 보니 쓰임새에서 차이가 났다. 무의식중에 구별은 하지만 차이가 미묘해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기존 국어사전들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유의어를 동의어로 처리하기도 했다. “공원에 벚꽃이 만개했다”와 “공원에 벚꽃이 만발했다”에서 ‘만개’와 ‘만발’은 꽃이 활짝 폈다는 말이다. 바꿔 써도 차이가 없는 동의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뜻빛깔이 다른 유의어다. ‘만개’라고 했을 때는 벚꽃의 개화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말이 되고, ‘만발’이라고 했을 때는 공원이 수많은 벚꽃으로 뒤덮였다는 뜻이 된다. 적절한 예문과 함께 자신이 탐구해 낸 지식을 설득력 있고 선명하게 전한다. ‘감사하다’와 ‘고맙다’를 설명할 때는 한자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힌다. 한자어의 유입이 우리말을 위축시키기보다 풍부하게 했다고 보는 게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말한다. ‘감사’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한자어라는 사실도 덧붙인다. 일본어에서 왔다는 통설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러 준다. 그러면서 ‘감사하다’와 ‘고맙다’가 용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걸 실례를 들어 보여 준다. 이런 내용이다. ‘감사하다’는 동사와 형용사로 쓰이지만, ‘고맙다’는 형용사로만 사용된다. “나한테 감사해라/고마워라”에서 ‘고마워라’가 어색한 건 형용사여서다. 동사로 쓰인 ‘감사하다’를 형용사 ‘고맙다’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고맙다’를 동사로 바꾸면 가능해진다. ‘-어하다’를 붙이면 동사 ‘고마워하다’가 된다. ‘나한테 고마워해라’는 자연스럽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에선 ‘감사하다’가 형용사로 쓰여서 ‘고맙다’도 어색하지 않다. 품사가 같다고 항상 자연스러운 건 아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라/고마워하라”에선 ‘고마워하다’ 대신 대부분 ‘감사하다’가 선택된다. 대상이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일 때는 주로 ‘감사하다’가 쓰인다. 이런 설명은 국어사전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안상순은 국어사전이 순환 정의에 빠져 있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것이다. ‘모습’의 정의는 “사람의 생긴 모양”으로, ‘모양’의 정의는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모습” 식으로 풀이돼 있다. 모습은 모양으로, 모양은 모습으로 뜻풀이가 쳇바퀴처럼 순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의미를 변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앞선 연구물들을 폭넓게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주관이나 직관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도 했다. 그러기 위해 말뭉치 같은 자료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했다. 말뭉치란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모아 놓은 언어 자료’를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웹을 통해 검색할 수 있는 언어 자료를 통틀어 말하기도 한다. 그는 이 책이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이들에게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에게는 유의어라는 벽을 쉽게 뚫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바랐다. 일상에서 많이 쓰거나 접하지만 알쏭달쏭한 말, 그러나 국어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해결되지 않는 말, 인터넷 검색으론 갈피를 잡기 어려운 말들을 논리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밝게 짚어 냈다. 30여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노하우, 언어에 대한 민감성으로,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언어의 세계를 현실감 있는 우리말로 풀어냈다. 평생 국어사전 만들기를 해온 그의 슬기가 묻어난다. 안타깝게도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이경우 전문기자 wlee@seoul.co.kr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케이트 윈즐릿은 왜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갔을까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케이트 윈즐릿은 왜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갔을까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거대한 작품의 설치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이 작품은 20세기 중반 최고 인기를 누렸던 배우 매릴린 먼로가 1955년에 출연한 영화 ‘7년 만의 외출’에 등장한 장면을 7m가 훌쩍 넘는 조각으로 묘사한 것으로, 팜스프링스미술관 앞 도로변에 설치될 예정이다. 여주인공이 치마를 입고 지하철 환기구 위에 서 있다가 올라오는 바람에 치마가 들리는 이 모습은 매릴린 먼로의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세대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20세기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이미지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장면을 묘사한 매릴린 먼로의 동상은 이게 처음은 아니다. 시카고를 비롯해 다른 장소에도 이미 존재하는 이 동상이 이번에 논란이 된 이유는 “지금은 2021년이기 때문”이다. 성폭력적 행동, 여성 비하적 묘사, 인종차별적 표현 등 과거에는 당연시되던 많은 것이 더는 용인되지 않는 거대한 문화적 변동의 한가운데 있는데, 그 밑을 지나는 관객들이 여성의 치마 속을 훔쳐보는 소위 ‘업스커트’를 유발하도록 고안된 동상을 2021년에 더 만들어야 하느냐는 것이 이 동상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 동상 때문에 ‘매릴린도 피해자’라는 ‘#MeTooMarilyn’(미투 매릴린)이라는 해시태그도 생겨났다.●영화계, 여배우에 대한 차별·폭력 여전 매릴린 먼로의 동상 논란은 단순히 한 작품의 적절성 문제를 넘어 영화사에서 여배우들이 겪어 온 성적 대상화와 주체성과 자기 결정권을 상실한 객체화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영화란 게 원래 관객의 성적 욕망에 의존하는 산업 아니냐”거나, “여자 배우들이 그걸 모르고 영화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 논리는 20세기 중반 이후 여성들이 가정주부라는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직업을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왔다. 심지어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넉넉한 집안의 “정숙한 여성”은 직업을 갖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 취직한 여성들은 남성들의 ‘가벼운’ 성추행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요즘 남자 직원이 직장의 동료를 성추행한 후에 “여자들이 그걸 모르고 회사에 다니겠냐”고 반문한다면 어떻게 들리겠는가. 그런데 똑같은 말을 여배우들에게는 해도 될까. 영화계에서 일하는 여배우를 보는 사회의 시선이 이런 식이기 때문에 여배우들이 받는 차별과 폭력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은 수상 소감에서 자신을 영화계에 입문시켜 준 고(故)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윤여정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과 ‘열심히 싸웠던’ 일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영화) ‘충녀’ 때 저만 빼고 감독님과 모든 스태프가 미리 계획을 짰더군요. 처음엔 그냥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이라고만 했어요. 그런데 조금 뒤 시트 밖으로 옷이 비치니 벗고 누우라는 거예요. 그 뒤에 느닷없이 쥐떼가 떨어진 거죠. 몸에 쥐가 달라붙는데 벗고 있다는 게 생각이 났겠어요? 정신을 놓고 난리가 났죠. 감독님이 귀여운 데가 있으세요. 집에 그 필름을 들고 오셔서 미스 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아 또 싸웠죠(웃음).” 옷 벗기를 원치 않는 어린 여배우의 노출 장면을 찍고자 50대 남자 감독과 남성 스태프들이 짜고 거짓말을 했고, 여배우에게는 알리지 않은 쥐를 떨어뜨려서 나체를 찍었다는 얘기다. 김 감독은 일단 그렇게 여배우의 몸을 도둑 촬영한 후에 “미스 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단다. 많은 돈이 투자된 영화의 성공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 어린 여배우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말은 한마디로 영화를 위해 네가 희생하라는 압력임을 모르는 사람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감독과 스태프가 짜고 여배우 속이기도 하지만 이건 1970년대 한국 영화계의 상황만이 아니다. 1992년에 나온 할리우드 영화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은 여주인공 샤론 스톤의 성기가 드러나는 충격적인 노출신으로 큰 화제가 됐다. 영화를 감독한 파울 페르후번은 주인공이 그 장면에서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설정에 맞게 찍어야 하는데 샤론 스톤이 입은 속옷이 흰옷 밖으로 비치기 때문에 그냥 벗고 찍는 게 좋겠다는 (김기영 감독과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샤론 스톤은 카메라에는 민감한 부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감독의 말만 듣고 촬영에 임했는데, 편집이 끝난 뒤 시사회를 보다가 자신의 성기가 정면으로 화면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노한 샤론 스톤은 페르후번에게 항의했지만 결국 그 장면을 영화에 포함시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여배우를 속여서 원하지 않는 장면을 촬영한 후 윽박과 설득으로 뒷수습을 하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당연시됐던 거다. 샤론 스톤은 회고록에서 가슴 성형을 했을 때 이야기도 했다. 마취에서 깨어 보니 자신이 원했던 크기보다 더 크게 됐길래 의사에게 따졌다. 그랬더니 “내 생각에는 좀더 큰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배우는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도 없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역시 충격적인 노출신과 성행위 묘사로 유명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김 감독이 윤여정을 속여 노출신을 찍은 ‘충녀’와 같은 해인 1972년에 나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마리아 슈나이더는 당시 19세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남주인공 말런 브랜도가 슈나이더를 힘으로 제압하고 강제로 성행위를 하는 장면에서 30대의 남자 감독과 40대의 남자 배우는 대본에 없던 버터를 이용해 배우가 놀라는 표정을 찍기로 몰래 계획을 세웠다. 어린 여성이 정말로 수치심을 느끼고 우는 장면을 건지자는 것이었다. 김 감독이 윤여정 모르게 스태프들과 짜고 쥐를 준비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여배우는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노출 장면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하는 경우에만, 그리고 원하는 수준까지만 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영화 문화에서 여배우들은 대개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상태로 노출신 촬영에 들어간다. 경험 많은 남자 감독과 스태프들이 공모해 현장에서 대본에 없는 요구를 하는 식으로 압력을 넣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면 대부분의 여배우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여배우가 너밖에 없는 줄 아느냐”는 말은 페르후번 감독만 사용한 말이 아니다. ●케이트 윈즐릿, 18세 데뷔 때 똑같은 경험 미투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할리우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촬영장에 여배우를 위한 성행위 코치를 두기 시작했다. 어린 여성이 직접 항의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영화판을 잘 아는 (대개는 나이가 더 많은) 여성이 민감한 촬영을 할 때 배우 곁을 떠나지 않고, 감독이 요구하는 내용이 대본과 다르면 배우 대신 거부하고, 촬영 중간중간에 배우가 보이지 않는 압력과 불편함을 겪지 않는지 살펴 주는 ‘힘 있는 큰 언니’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영화 스튜디오가 그런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 배우 케이트 윈즐릿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같은 영화에 출연한 18세의 여배우가 한밤중에 차 안에서 성행위 장면을 촬영하게 되자 자신의 촬영이 끝났음에도 어린 여배우 옆에 남기로 했다는 거다. 촬영기사와 감독 모두 훌륭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메라에 잡히지 않고 여배우 옆에 머물기 위해 차의 트렁크에 들어가서 촬영하는 내내 “혹시 불편하지 않으냐”는 말을 계속 건네며 ‘너의 편이 여기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윈즐릿은 왜 그렇게 자주 말을 건넸을까. 이 상황은 힘 있는 남성들이 많은 환경에서 여성이 겪는 아주 전형적인 상황이다. 미투운동에 불만을 가진 남자들이 흔히 “왜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여성이 겪는 사회적 압력은 너무나 미묘해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먼저 “나는 이거 싫다”고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누가 옆에서 “너 혹시 이거 싫지 않아?”라고 물어봐 주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윈즐릿이 이렇게 나서서 어린 여배우들을 보호하는 이유는 자기도 18세에 영화에 처음 출연하면서 똑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 감독과 스태프들 사이에서 압력을 받으면서 누군가 도와줬으면 했던 경험이 지금의 ‘힘 있는 큰 언니’ 역할을 자임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윤여정이 김 감독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1972년에 윤여정이 겪은 일은 미화돼서도, 반복돼서도 안 된다. 영화판이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여성이 무언의 압력 때문에 ‘노’를 하지 못했다고 항의할 자격을 의심받아서도 안 된다. 여성이 자신의 장래를 쥐고 있는 남성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줘야 하고, 그러고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불평등한 구도는 우리가 끝내야 한다. 코드미디어 디렉터
  • 30년 만에 다시 경험하는 ‘죽어도 좋은 경험’

    30년 만에 다시 경험하는 ‘죽어도 좋은 경험’

    윤여정 주연 맡은 故김기영 감독 유작 4K 리마스터링 복원 거쳐 새달 공개김 감독, 당시 마음에 안든다며 미개봉배우 윤여정(74)씨가 주연을 맡은 김기영(1919~1998) 감독의 미개봉 유작 ‘죽어도 좋은 경험: 천사여 악녀가 되라’가 제작된 지 30여년 만에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배급사 블루필름웍스는 김 감독의 1990년작 ‘죽어도 좋은 경험: 천사여 악녀가 되라’를 오는 7월 개봉한다고 31일 밝혔다.‘죽어도 좋은 경험’은 남편의 실수로 아들을 잃은 여정(윤여정 분)과 남편의 외도로 억울하게 이혼당한 명자(이탐미 분)가 서로의 남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무자비한 복수를 벌이는 내용의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다. 두 여성의 서늘한 욕망과 광기를 다뤄 극한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김 감독은 ‘죽어도 좋은 경험’을 완성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된 것을 제외하고 극장에서 선보인 적은 없다. 영화는 4K 리마스터링 복원 작업을 거쳐 공개한다. 윤씨가 ‘화녀’(1971)와 ‘충녀’(1972) 이후 세 번째로 주연을 맡은 김 감독의 작품이다. 윤씨는 지난 4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자신을 영화 주연으로 발탁한 김 감독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냉혹한 현실에 좌절했다고 인생이 아웃된 건 아니잖아

    냉혹한 현실에 좌절했다고 인생이 아웃된 건 아니잖아

    야구 용어 가운데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이란 말이 있다.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세 번 모두 헛스윙하면 아웃이지만, 포수가 공을 받지 못해 기사회생하는 경우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처럼 극적인 순간이 한 번쯤은 찾아오지 않을까. 3일 개봉하는 영화 ‘낫아웃’도 냉혹한 현실 속 꿈이 꺾인 야구 유망주가 아직 인생의 ‘아웃’이 오지 않았다며 전력 질주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열아홉 살 고교 야구선수 광호(정재광 분)는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기적적인 결승타를 치며 팀의 에이스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자신했던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한다. 좌절 끝에 대학 야구부라도 가겠다고 나섰지만, 먼저 대입을 준비해 온 동기 성태(김우겸 분)가 대학에 가도록 내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감독, 성태와 마찰을 빚는다. 대학에 가려면 거액의 돈이 필요하지만, 허름한 식당을 운영하는 아빠는 더는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없다. 인생 전부인 야구를 포기할 수 없는 광호는 친구에게 불법 휘발유 파는 일을 소개받아 악착같이 돈을 마련하려 애쓰고 더 큰 위험도 무릅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등 3관왕을 차지한 이 영화는 불평등한 세상 속 꿈을 이루고 싶은 ‘흙수저’ 청소년의 방황과 성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광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때때로 이기적이다. 특별한 줄 알았던 자신이 평범하고 결핍된 존재였음을 깨닫고 좌절하는 전형적 10대다. 이런 광호가 하염없이 늪으로 빠져드는 듯한 잘못된 선택을 거듭할수록 관객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도 ‘나라면 달랐을까?’라는 자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불법 휘발유를 만들어 파는 데 미성년자를 이용하고, 미성숙한 이들을 보호해 줄 진짜 어른이 없는 현실은 광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실력보다 감독의 ‘입맛’에 맞는 선수가 돼야 하는 모습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한편으론 그저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 무모하게 돌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광호는 ‘그래도 꿈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불만에 가득한 삐죽 나온 입과 이글거리는 눈빛, 주눅 든 표정까지 제대로 소화해 낸 정재광 배우의 열연은 청춘의 절박함과 분출하는 에너지를 살렸다.이정곤 감독은 “살아가는 것은 늘 우리 선택대로 되지 않는다”면서도 “끝난 것 같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사람 냄새 나는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힘들어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15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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