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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사라’와 비아그라/釋之鳴 청계사 주지(時論)

    며칠 전에 馬光洙씨가 연세대학 교수로 복직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92년에 소설 ‘즐거운 사라’를 펴냈는데 음란성이 과하다는 이유로 실형과 실직의 고통을 겪었었다.나는 그 소설을 읽지 못했지만,과거에 월간 잡지에 연재된 글들의 성향으로 보아서 나라 법이 왜 그 소설을 음란물로 간주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천사와 악마 인간의 양면성 馬교수는 자기 소설의 음란성을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설명한다.인간에게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해당하는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이 있다.낮에는 최고의 지식인이고 도덕군자(道德君子)인 사람이 밤에는 야수(野獸)가 된다는 것은 비유일 뿐이다.밤과 낮에 관계없이 인간은 육체를 초월하려는 고매한 이상과 육체의 즐거움에 탐닉하려는 동물적인 욕망을 동시에 갖고 있다.인간의 천사성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문제는 동물성이다.소설에 음란성(淫亂性)이 짙게 된 이유는 인간이 가진 저 동물성을 대리로 배설해서,사람들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요즘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에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미국에서는 최근에 전국적인 총판매액이 가장 많은 약이 되었고,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전 대통령 후보 부부가 그 효능에 대해서 기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우리나라의 공항 세관은 이 약의 지입(持入)을 막는데 바쁘고,경찰은 남대문 시장에서 이 약이 암거래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정력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태국 여행까지 서슴치 않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 약을 먹어 보고 싶어하건만,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안정성 및 유효성(有效性) 검사와 임상시험을 모두 마치고 약이 판매되는 시기는 내년말쯤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피임약이 여성을 임신 공포에서 해방시켜서 마음놓고 성을 누릴 수 있게 했던 것처럼,비아그라가 남성을 여성에 대한 무력감 또는 위축감(萎縮感)에서 해방시켜서 마음대로 성을 누릴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馬교수의 소설과 비아그라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소설의 음란성은 전통적으로 인정해 온성기와 그것의 발기에 의존하지 않고 성욕을 충족시키는 예를 보여 주려 한다.특정한 성기나 정력에 기대어서 성을 즐기려고 하면 힘만 들고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 줄 수도 없기 때문에,성도착(性倒錯)이나 변태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이에 비해서 비아그라는 직접적으로 성기에 힘을 불어넣고 그것에 의지해서 성욕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性 압박서 해방 시도 일치 馬교수 소설의 음란성과 비아그라가 사람들을 성의 압박에서 구하려고 시도하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그 방법은 정반대다.馬교수는 지금까지 고착적(固着的)으로 인정되어 온 성기에 구애받지 않고 온몸을 성기화하려고 한 데 비해서,비아그라는 성기 그 자체를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 불가에는 성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수행력이 높은 한 선사가 있었다.어느날 빨래 담당 수행자가 그 선사의 속옷속에서 몽정(夢精)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선사는 수행자에게 물었다.“옷이 더럽혀졌을 때 세탁하려는 사람의 진짜 주인은 마음인가 몸인가(몽정의 주체는 몸인가 마음인가)”하고 말이다.그 법문을 들은 수행자는 절을 하고 물러갔다. ○마음의 미혹·욕망 버려야 중생으로서의 모든 인간에게 성욕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 성욕을 달래기 위해서 馬교수나 비아그라가 크게 기여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이 두가지 방법이 인간의 성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전신(全身)의 성기화나 성기의 강화는 어디까지나 육체의 요구를 들어주는 임시 방편책일 뿐 근본적 치유책은 아니다.우리의 마음에 미혹(迷惑)과 욕망이 남아 있는 한 아무리 몸을 달래도 소용이 없다.저 고승의 몽정 이야기는 바로 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마음에 있음을 전하려고 한다. 몸만 아니라 산하대지(山河大地)와 그곳에 가득한 마음이 모두 성기가 아니던가.우주적인 성기를 깨닫고 그것을 음미할 수 있을 때만 성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
  • 지하철의 슬픈 풍경/최혜실 KAIST 교수·국문학(굄돌)

    고속버스터미널역,한 여인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탄다.전차 한가운데 짐을 놓고 가방에서 칫솔을 꺼내들고는 공장 부도로 1천원 한장에 드리겠다고 외친다.신사역,여인이 내린 후 기다렸다는 듯이 맹인 부부가 하모니카를 불며 지나간다.구슬픈 찬송가가 적당하게 늘어서 있는 인파 사이로 흐른다. 옥수역,터널 사이로 빠져나온 전차의 차창은 5월의 햇살로 가득차 있는데 그 빛을 등에 받고 한 남자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탄다.가느다란 은목걸이에 소매 밴드까지 포함하여 1천원 한장에 판다. 차는 강을 건너고 금호역에 딱맞게 일을 끝낸 남자가 내린다. 그뒤로 껌과 종이를 든 소년이 탄다.종이가 한장 한장 좌석에 앉은 승객의 무릎에 놓이고 소년은 껌을 내민다.괴로운 순간이다.불쌍한 소년에게 동전한닢 주려는 욕망과 이 소년을 돕는 것이 앵벌이의 배후를 키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단호함 사이에 갈등하다가 차라리 내리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게 되는…. 충무로역에서 탄 구두약 파는 여인은 숫제 엎드려서 승객들의 구두를 닦아보인다.효과가 제법괜찮은지 구두약을 사는 승객들이 몇몇 보인다.구슬픔과 활기참,어떤 형식으로든지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까지는 아름답다.을지로3가역,이 모든 인물들이 내리고 타는데 서로 한번도 마주치거나 겹치지 않은 것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면서 나는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차를 내린다. 신촌행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에서는 방송이 흐른다.차내에서의 판매·구걸·선교행위는 금지되어야 하므로 승객 여러분들이 도와주어서는 안돤다는….
  • PC와 포르노/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옛날에는 혼인 첫날 밤에 신방의 문장지를 찢고 방안을 엿보는 우리나라 특유의 혼인 풍속이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열쇠’는 남편이 비밀일기를 열어보도록 일부러 열쇠를 떨어뜨리고 묵시적으로 자신의 미묘한 욕구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내밀한 공모를 그리고 있다.둘다 ‘엿본다’는 의미는 같지만 신방 엿보기는 ‘장난기’에 그치는 데 비해 ‘열쇠’는 남편의 변태적 욕구에서 비롯된 인간의 삶과 성,죽음에 대한 냉철한 관조를 보여주는 것이 특색이다. 해외의 웹사이트를 모방한 한국형 음란사이트가 등장하는 등 ‘정보의 바다’인터넷에 강도 높은 음란물들이 범람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지금까지는 해외의 음란·도색성 웹사이트에 접속해왔으나 올해 초부터는 한글 음란사이트까지 개설되어 청소년들의 포르노 PC엿보기가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다.이른바 ‘엿본다’는 것은 호기심이자 관심이다.건전한 호기심은 ‘우주인력’같은 위대한 발견에 이르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호기심은 자칫 어리석음의 말로가 되기 십상이다.금지된 문을 열려고 하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은 하찮지만 사막을 넘고 대양을 건너 대륙의 위치를 찾으려는 청년의 호기심은 고귀하기만 하다. 포르노 PC 엿보기를 막기위해 부모가 컴퓨터의 작동원리를 배우거나 컴퓨터를 집안의 개방된 장소에 놓아두는 일도 중요하긴 하다.인터넷 음란물 추방 캠페인과 함께 음란정보를 규제할 근거 법규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그러나 청소년들에게 내일의 희망과 미래를 주어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제시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한나라의 건전상은 청소년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러스킨은 말한다.실의에 빠지거나 의지할 곳이 없을 때 그들은 남몰래 숨어서 혼자 하는 놀이에 탐닉하려든다.하지만 확신에찬 미래가 보이면 밤을 낮삼아 무수한 청사진을 쌓는 부푼 꿈에 들뜨게 된다.‘엿본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것을 남 몰래 훔쳐본다는 비겁함이다.소설 ‘열쇠’는 인간욕망의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의 지나친 집착은 결국 파멸의 길에 이르게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 평론가 김현자씨 등 共著 『한국여성시학』

    ◎여성詩에 나타난 ‘정체성 갈구’/모성·육체·외출의 모티브 통해 남성적 질서로부터의 일탈 꿈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여성작가의 자리는 오랫동안 빈 칸으로처리돼 왔다.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는 자신들이 주변인 또는 타자로 인식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여성작가들은 자기 안에 내재한 욕망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인식의 주체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으려는 여성작가들의 노력은 여러 층위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의식은 여성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고유한 구성요소이면서도 늘 반란을 꿈꾸게 하는 ‘모성’과 ‘육체’ 그리고 자기만의 방 찾기라는 ‘외출’의 모티브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출간된 ‘한국여성시학’(김현자 등 지음,깊은샘)은 이 세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우리 여성문학 특히 여성시학의 현단계를 점검한 연구서로 관심을 모은다. 이 책에서는 먼저 여성의 생물학적 모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자칫 성차별적인 모성 담론의 근거가 될 수있음을 지적한다.그것은 여성의 불평등과 억압의 조건을 형성함으로써 주체적인 자아로 자기 세계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을 순치시키고,여성을 성적·정치적·사회문화적 주변인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양상을 이 책에서는 김승희의 ‘엄마의 발’이라는 시를 예로들어 살핀다.“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날지 못하는 구나/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착하신데/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구나” 이 시에서는 본능적인 모성성과 자아정체성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모성의 미덕이라고 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저편에는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한 여성의 비극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또한 여성의 ‘육체’를 ‘불화와 화해의 시학’이란 주제 아래 다룬다.여성시인들은 결핍되고 열등한 몸,허구화한 몸으로서의 자기 육체를 거부한다.그것은 성적 매력이 강조되거나 성적 폭력 아래 놓인 몸,도구나 사물로서의 몸,모성의 현현체(顯現體)로서의 몸 등 주체적인 몸이 아니라 거짓 욕망에 이끌린 몸이기 때문이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 시인들은 자해(自害)와 가사(假死)라는 신체분해의 극단어법과 통과의례적인 죽음이라는 상징적인 방법을 끌어안는다.“한밤중 흐릿한 불빛 속에/책상 위에 놓인 송곳이/내 두개골의 살의처럼 빛난다/고독한 이빨을 갈고 있는 살의/아니 그것은 사랑”(최승자 ‘사랑 혹은 살의랄까 자폭’) 시인 최승자는 자신의 몸을 종종 ‘사산(死産)의 자궁’에 비유하는 한편 일종의 의사(擬似)죽음 속으로 자기 몸을 몰아넣는다. 시인은 이처럼 허구화한 자신의 몸을 상징적으로 분해,남성적 질서의 삶으로부터 일탈을 꿈꾼다. ‘마녀되기’조차 감수하는 시인의 이러한 시도는 과감한 자기변형의 형태를 보여주는 미국의 현대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시세계를 연상케 한다.이런 여성 시들은 비록 비(非)리얼리즘적인 환상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새롭다.그 시적인 통렬함은 여성 억압의 깊이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지금’의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존재다.특히 문학에 나타난 여성의 역사는 ‘워킹(walking)의 역사’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 인형의 집을 나선 노라나 자기만의 방을 찾아 나선 울프의 주인공은 낯익은 예다. 하지만 그 외출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때로는 육체의 쓰라린 고통을 동반하는 시지프스의 끝없는 산행 혹은 밀랍 날개가 태양에 녹아 내려버리는 이카루스의 비상의 형태로도 나타난다.천양희 시인의 시 ‘새에 대한 생각’은 지금의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꿈과 몸짓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드러낸다. “새장의 새를 보면/집 속의 여자가 보인다/날개는 퇴화하고 부리만 뾰족하다/…참을 수 없이 가볍게 날고 싶지만/삶이 덜컥,새장을 열어 젖히는 것 같아/솔직히 겁이 난다” 시를 쓰는 행위는 곧 문화를 쓰고 읽는 행위다.그런 만큼 더 화해롭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여성의 의식이 성숙되고,그것을 시로 구체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럴 때 비로소 여성시는 단순히 여성들만의 삶을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 여성문화의 향방을 제시해 주는 담론으로 승화될 수 있다.
  • 희생양/르네 지라르 지음(화제의 책)

    ◎인간사회 질서체계에 내재한 폭력성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프랑스 인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 르네지라르(1923∼)가 제시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인류학’.이 책은 ‘폭력의 성스러움’과 함께 지라르의 문화인류학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저작으로 꼽힌다.지라르의 사유는 인간사회의 문화적 질서체계는 희생제의적인 폭력구조,즉 희생양 메커니즘에 의해 운용돼 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어느사회에서나 항상 개인과 개인 사이 혹은 계층과 계층간의 단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끔 ‘조작’하는 장치가 있어 왔다는 것이다.이같은 희생제의에 담겨 있는 폭력성을 발견한 지라르의 관점은 다수집단의 논리뿐만 아니라 소수인 희생자의 입장도 아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 점에서 신화나 설화는 가치중립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곧 박해자의 시각을 담고 있는 기록이다.지라르는 이러한 기록들을 ‘박해의 텍스트’라고 부른다.한편 지라르는 성서에도 희생양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어 주목된다.신약의공관복음서 해석에 몰두하는 그는 특히 예수 수난에 대한 해석에서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드러낸다.요컨대 예수는 하느님의 뜻에 따른 인간구원의 상징이 아니라 당시 유태인 사회 안에 내연하고 있던 갈등과 반목,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희생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지라르의 연구의 출발점은 원래 문학이었다.그는 첫 저서인 ‘낭만적 허위와 소설적 진실’(1961)에서 인간 본연의 욕망의 구조를 분석,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다리를 놓았다.그러나 그후 그의 학문적 관심영역은 모든 인간적 현실로 확대됐다.이는 최근들어 애초의 과녁을 잃은 채 갈피를 못잡고 있는 인문학의 지향점을 분명히 해주는 대목이다.민음사 1만5천원.
  • 高大 김화영 교수 ‘문학 상상력의 연구’ 재출간

    ◎시인으로 거듭 난 카뮈/문학 상상력으로 작품세계 고찰/‘이방인’ 분석통해 낭만성 재발견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문학 상상력이라는 방법론에 입각해 고찰한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문과)의 저서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가 (주)문학동네에서 나왔다.김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은 지난 82년 문학사상사에서 첫 선을 보인 뒤 한동안 절판됐다가 이번에 새롭게 고쳐 재출간된 것이다.‘카뮈를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문학 상상력 연구의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은 역작이다.이 책은 단순한 개별 작가론에 그치지 않는다.무엇보다 문학 상상력 이론과 미학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카뮈의 작품세계에 접근하는 김교수의 방법론은 색다른 데가 있다.그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을 원용한다.그 이론을 토대로 금세기의 대표적인 고전주의 작가로 인정받는 카뮈에게서 온갖 색깔의 상상력을 지닌 낭만적인 ‘시인(詩人) 카뮈’를 발견해낸다.카뮈는 실존주의 철학의 지주이자 장식없는 문체의 소유자였다.이 책은 그러한 카뮈에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적 세계가 숨겨져 있음을 그의 문제작 ‘이방인’에대한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문학 상상력이란 무엇인가.그것은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와 질베르 뒤랑에 의해 그 이론적 골격이 완성되고 롤랑 바르트와 장 피에르 리샤르가 미슐레·말라르메 등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가능성의 문을 연 문학연구의 한분야다.문학 상상력은 정적이거나 형태적인 상상력이 아니다.그것은 세계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이다.그 상상력은 작품이라는 총체적 세계를 매개로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마주쳐 울림으로써 깊이를 획득한다.문학 상상력 연구는 흔히 주제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상상력의 혼융에 의해 작품의 주제로 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카뮈의 모든 글을 하나의 닫혀진 총체로서 바라보며 그 중심적 주제를 찾아내는 데 몰두한다.그 작업의 중심동력이 되는 것은 이미지다.카뮈의작품을 분석해 추출된 주제는 동적 이미지로 확대된다.이렇게 확장된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모든 문단을 모으고 그것을 포갠 뒤 그 이미지의 의미상을 밝혀내는 게 김교수의 문학 상상력 연구론의 핵심이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김교수의 카뮈론과 관련,“카뮈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주제는 태양과 바다이다.태양과 바다를 원초적 질료로 확대해 빛과 물로 확산시킨 뒤,그것을 포함한 모든 문단을 포개본 결과,그 이전의 연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돌의 주제가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 돌이야말로 카뮈 상상력의 중심이다.요컨대 김교수는 물과 빛과 돌의 이미지를 분석,카뮈의 문학적 상상력을 설명함으로써 카뮈를 소설가의 자리에서 시인으로 다시금 태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제임스 녹스 폴크(美國의 대통령 문화:17)

    ◎美 영토 2배로 확장해낸 ‘전쟁 영웅’/멕시코와 3년전쟁서 텍사스州 등 7개州 점령/중앙銀 개설­관세인하 등 국가재정 안정 주력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인내의 술잔은 이제 비었습니다.멕시코는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고 미국인의 피를 미국 땅 위에 흐르게 했습니다.” 1846년 5월12일,텍사스병합을 위해 멕시코의 선공을 기다리고 있던 11대 미국대통령(1845­1849) 제임스 녹스 폴크는 선전포고를 위해 의회에 보낸 교서의 앞부분에서 이같이 단호한 결의를 나타냈다. 미역사상 유일하게 하원의장 출신인 그는 미국의 기존 영토를 두배로 확장,서부 경계를 미시시피강에서 대서양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동시에 미국을 대륙국가로 만든 용감하고 뚝심있는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 기억되고 있다.폴크는 7대 대통령으로 대중의 시대를 개막시키고 영토확장의 불을 당겼던 앤드루 잭슨의 열렬한 추종자로 ‘영 히커리’(Young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잭슨의 강인함을 히커리나무에 비유해 붙여졌던 ‘올드 히커리’에서 따온 것이었다.○40세때 연방하원의장 피선 1795년 노스 캐롤라이나주 멕킨버그 카운티에서 스코틀랜드인 후손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폴크는 10살때 아버지를 따라 테네시주 콜럼비아로 옮겨살게 됐으며 그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다시 테네시로 돌아와 당시 하원의원이던 필릭스 그룬디의 지도로 법학을 공부,24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여 콜럼비아에서 개업했다. 폴크는 스승이 앤드루 잭슨의 친한 친구였던 것을 계기로 잭슨과 교류를 갖게 됐으며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그는 주하원의원을 거쳐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후 1835년에는 하원의장에 선출됐다.나이 40세때 였다.168㎝로 미국인으로서는 작은 키에 체격이 다부져 ‘땅딸보 나폴레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던 그는 7선의원으로 두차례 하원의장을 역임한뒤 39년에는 테네시주지사에 당선됐다.그는 자연스레 반 뷰렌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목됐으나 지명도가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 전국전당대회는 그의 후보지명을 거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연거푸 주지사 선출에서 고배를 마시게되자 마치 그의 정치생명은 끝난듯이 보였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44년 볼티모어 민주당 전국전당대회가 그에게 행운을 안겨주었다.당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반 뷰랜과 루이스 캐스가 끝내 승자를 가리지 못하자 9차 투표에서 당의 화합을 이룰 인물로 폴크가 극적으로 부상,후보로 지명됐던 것이다. 정치생명이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던 폴크의 지명에 대해 헨리 클레이를 후보로 지명했던 상대편인 휘그당은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라며 냉소를 보였다. 그들은 ”제임스 녹스 폴크가 누구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폴크가 대통령에 부적격자라는 점을 집중 강조했다.반면에 폴크는 당시 미국민들의 영토확장 욕구를 간파,“텍사스와 오레곤의 병합”을 구호로 내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단임으로 그 약속을 이룰 것임을 공약했다. 선거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폴크의 승리로 끝났다.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사에서 ‘한 당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임을 강조,소신있는 통치를 위해 당의 영향력에 분명한 선을 긋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취임 이듬해부터 3년간 계속된 멕시코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텍사스에 이어 뉴멕시코,아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 유타주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은 물론 멕시코시티까지 함락했다. ○스페인령 쿠바도 구입 시도 폴크는 멕시코 전체를 미국령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까지도 있었으나 48년2월 강화조약으로 전쟁은 끝났으며 멕시코정부는 1천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오늘날 미국땅의 7분의1에 달하는 1천300만㎢의 땅을 미국에 양도해야 했다. 폴크는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구입,멕시코만을 내해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사단계에 이르렀으나 의회의 반대로 쿠바 구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사가들이 당시 폴크의 선견지명을 따랐다면 오늘날처럼 미국이 쿠바로 인해 골치를 썩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간선거 이후에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휘그당이 다수당이 되는 바람에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에 많은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관세 인하를 위한 새 관세법과 워싱턴에 중앙은행,주요도시에 국유은행을 설치하는 독립은행법을 통과시키는등 국가의 재정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일벌레 폴크’라고 불릴 정도로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의 폴크는 1849년 대통령 퇴임후 콜럼비아의 사저로 돌아와 3개월만에 과로와 콜레라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세기 상류층 생활용품 집대성”/임기중 최초 우표발매­첫 야구경기 개최도/존 스탠위치 폴크 박물관 큐레이터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테네시주 주도(州都) 내슈빌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인구 3만의 콜럼비아시는 11대 대통령 제임스 폴크의 체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웨스트 스트리트 7가에 위치한 폴크 대통령의 사저는 폴크 생전의 유품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었으며 큐레이터 존 스탠위치씨는 폴크 관련 22개소의 위치와 사연을 기록한 ‘폴크 따라 걷기’라는 소책자를 주며 한차례 돌아볼 것을 권했다. ­먼저 이 소책자에 관해 설명해달라. ▲시내에 산재한 폴크가(家)와 관련된 유적들을 걸어다니면서 체계적으로 볼수 있게 만든 것이다.폴크가의 집들과 부친 새뮤얼 폴크가 딸인 나오미의 결혼기념으로 선사한 집.폴크의 변호사 사무실,당시 법원,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폴크의 환영대회가 열렸던 스테이트 뱅크 앞 광장,그들이 출석하던 교회,학교 등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사저의 소장품은 어떤것들이 있나. ▲이 집은 1816년 폴크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공부하러 가있을때 지은 집으로 폴크가 대통령 퇴임후 돌아와 숨질때까지 살았다.퇴임후 백악관에서 가져온 집기들과 19세기 테네시 상류층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잘 보관돼 있다.그 가운데 특히 폴크가 부인에게 선사한 취임기념 부채,폴크의 선거포스터 등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부인 사라 폴크는 어떤 유형의 퍼스트 레이디 인가. ▲사실상 폴크의 보좌관으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폴크 못지 않게 부인도 일을 좋아했다.그들이 백악관에 들어온후 백악관 내에서 술과 파티와 카드가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오락은 일에만 탐닉했다. ­소개할만한 폴크의 또다른 업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업적이 많다.스미소니안 박물관 개관,최초의 우표 발매,미국내 최초의 야구시합 개최 등도 그의 임기중 일이다.
  • 페미니즘 연극 ‘마요네즈’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문화예술을 추구해온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지난해 ‘97 여자만의 방’에 이어 또 하나의 페미니즘 연극 ‘마요네즈’를 1일부터 서울 신촌 소극장 마녀 무대에 올렸다.지난해 문학동네에서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자인 전혜성이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주제는 모성(母性) 탐구.기존의 어머니상에 대한 뒤집기다.모성애란 무엇인가.혹시 여성에게 맹목적인 희생과 굴종을 강요하기 위해 남성의 시각에서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는 아닌가 하는 물음에서 이 극은 출발한다. 작품에는 한 쌍의 모녀가 나온다.엄마는 과거의 낭만적 환상과 욕망에 사로잡힌채 딸에게 기대기만 하는 영락한 존재이고 딸은 그런 엄마가 가슴속의 납덩이처럼 거북살스럽기만 하다.딸은 현재 자신의 엄마와는 아주 딴판인 성공한 ‘보험여왕’의 자서전을 대필중이다.엄마가 머리에 바른 마요네즈는 딸의 모성혐오를 상징한다.‘마요네즈’는 이처럼 엇갈리는 모녀간의 갈등과 애증의 관계를 통해 헌신과 희생으로 요약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파괴하고 전혀 새로운 어머니상을 추구한다. ‘여자만의 방’‘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많은 페미니즘 연극에서 조연출에 머물렀던 문성희의 연출 데뷔작.암과 싸우며 생의 마지막 열정을 무대에 쏟고 있는 이주실이 어머니역을 맡고 김수기·김진희가 딸역으로 교체출연한다.화∼목 하오 7시30분,금 3시·7시30분,토·일 4시·7시30분.324­6008.
  • 보드리야르의 문화읽기/장 보드리야르 지음(화제의 책)

    ◎포스트모던 이론가의 도발적 문화관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도발적인 포스트모던 이론가인 보드리야르(1929∼)의 문화·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수록.그의 철저한 비판적 지성은 ‘현대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제공한다.그는 초기 저작인 ‘사물들의 체계’와 ‘소비사회’에서 광고·패션·성·육체·욕망 등에 관해 분석,이른바 ‘현대성’을 이론화한다.반면 1970년대 이후 그의 저작들은 포스트모던 문화이론과 미디어,예술,그리고 사회에 관한 논의에 집중된다.한 예로보드리야르는 73년에 출간된 ‘생산의 거울’에서 ‘서구의 모든 형이상학’을 반영해온 생산의 거울을 깨뜨리고 마르크스주의의 논리를 제한적인 정치경제학의 맥락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보드리야르의 논의에 있어서 늘 등장하는 핵심단어는 ‘유혹’이다. 이 말은 그의 여러 책에서 형이상학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다.76년작‘상징적 교환과 죽음’에서부터 ‘유혹에 대하여’‘숙명적 전략’을 거쳐 최근저서인 ‘이타성의 형태’‘완전범죄’‘차가운 기억들3’에 이르기까지 이단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보드리야르는 “유혹은 도전과 ‘한술 더 뜨기(surenchere)’,그리고 죽음으로 이뤄진 순환적이고 가역적인 과정”이라고 정의한다.이 책에서는 보드리야르의 영화에 관한 생각도 한 자락 살펴볼 수 있다.프랑스 영화의 국수주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는 프랑스 영화는 너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너무 비슷해 사람들은 그것의 아주 작은 이면까지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한다.그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웬더스의 ‘미국인 친구’.또 코폴라의‘지옥의 묵시록’와 큐브릭의 ‘배리 린던’을 신화적 차원이 느껴지는 위대한 영화로 꼽는다.“나는 미국에서 영화의 ‘모체’를 발견한다”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백의 1만원.
  • 인도 카주라호 사원(세계 문화유산 순례:65)

    ◎찬델라왕조 100년 걸처 지은 힌두신의 ‘성전’/950년부터 85개 사원 건립… 현재 22개만 온존/사원 벽면에 조각한 미투나상 ‘관능미의 극치’ 힌두교 신들의 속성은 종종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그러한 힌두 신들은 의인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반인반수적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한 예로 힌두교의 신 시바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개구리’에 나오는 주신 디오니소스처럼 욕망과 결점을 지닌 과장된 거인이자 주술사로 등장한다.‘문화적 갑옷’이라곤 전혀 걸치지 않은 순수한 원초적 감정의 결정체로서의 힌두 신.그 신들의 은밀한 속살까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인도의 카주라호 사원이다. 카주라호는 인도 북부 마디야프라데시 주의 북단에 위치한 궁벽한 시골마을이다.인구 7천명이 조금 넘는 이 마을은 해가 지면 근처의 정글에서 원숭이 울음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외진 곳이다.그러나 오늘날 카주라호는 인도의 대표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그곳에 찬란한 ‘성의 신전’ 카주라호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카주라호 사원은 지난 8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인도­아리안양식 석조물 카주라호 사원은 ‘달의 신’ 찬드라의 자손이 세웠다는 인도의 찬델라 왕조가 서기 950년부터 1050년 사이에 건립한 인도­아리안 양식의 석조사원이다.전성기에는 85개의 사원이 있었지만 14세기 이슬람 교도의 지배아래 들면서 파괴돼 현재는 22개만 남아있다.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시가지를 중심으로 서군과 동군,그리고 남군으로 나뉜다.이 가운데 특히 이목을 끄는 곳은 서군으로 가장 많은 사원이 보존돼 있다.카주라호 사원중 제일 큰 높이 31m의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을 비롯해 공포의 여신 칼리에게 바쳐진 차운사나트 요기니 사원,시바와 파르바티 부부상이 새겨진 데비 자가담바 사원,시바신이 타고 다닌다는 황소 난디가 새겨진 비슈바나트 사원,태양신 수르야를 모신 치트라굽타 사원 등 특징적인 사원들은 모두 이곳에 몰려 있다. 카주라호의 사원은 화강암으로 된차운사나트 요기니 사원을 빼고는 모두 사암으로 만들어졌다.이곳에서 20여㎞ 떨어진 켄강에서 캐낸 것이라는 이 사암은 분홍색,황갈색 등 색깔도 가지각색이다.그러나 카주라호 사원 외벽은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듯 군데군데 거무스름하게 빛이 바래 안타까움을 안겨줬다.그런 곳엔 으레 찌든 때를 벗겨내는 ‘사원지기’들이 있었다.그들의 눈동자엔 하나같이 신심이 가득했다.하루종일 야자나무 솔에 암모니아수를 묻혀 검댕을 닦아내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다. 카주라호 사원을 카주라호 사원이게 하는 것은 바로 사원 외벽에 장식된 미투나상,곧 남녀교합상이다.‘에로틱 조각의 신천지’라는 말에 걸맞게 카주라호 사원의 수많은 나신들은 데칸고원의 대지 만큼이나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카주라호 사원 가운데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꼽히는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원은 말끔하게 정돈된 잔디밭과 나직한 울타리가 어우러져 유적공원 같았다. 이름모를 새소리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빨간 부겐빌리아 꽃 내음이 진동하는 사원은 마치 열락의 땅인양 평온했다.사원 바깥 벽에는 900개가 넘는 온갖 형상의 조각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 중의 압권은 단연 관능미의 극치를 이룬 미투나상이었다.차오르는 만월처럼 풍염한 여인의 젖가슴과 봉곳하게 솟아오른 도발적인 히프,목 뒤에 입술을 살짝 갖다대면 발목까지 그대로 흘러내릴듯한 매끄러운 몸 선….미투나 상이 뿜어내는 관능은 더 이상의 비유를 허락치 않았다.오죽하면 마하트마 간디는 사랑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들을 모두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을까. 인도인들은 도대체 어떤 심경으로 신성한 사원에 이처럼 보기 민망한 상들을 새겨 놓았을까 궁금했다.순간 기자의 머리속에는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의 말이 떠올랐다.“섹스는 환생해야 할 아홉가지 이유 중의 하나다…나머지 여덟가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밀러의 생각일 뿐.미투나상의 성결합 자세는 차라리 음양 에너지의 상징이자 정신적 생명력의 승화된 표현으로 다가왔다. ○신성한 사원에 나상 즐비 힌두들은금욕적이고 내세적이며 염세적이어서 현실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그것은 일면적인 고찰에 불과하다.그들은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는 않지만 그것을 죄악시하지도 않는다.미투나 상은 기본적인 도덕률만 지키면 얼마든지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는 그들의 독특한 성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가면 올드 카주라호 마을에 이른다.이 마을을 조금 지나면 동쪽 그룹 사원들을 볼 수 있다.이곳엔 파르스바나트·산티나트·아디나트 사원 등 3개의 자이나교 사원들이 한 데 모여 있다.이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 곳은 파르스바나트 사원이었다.이 사원 안에 있는 몽골리안 얼굴의 여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남겼다.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1㎞쯤 가면 카주라호 사원들 중 마지막으로 조성된 두라데오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전성기를 지나 쇠락한 기미는 있지만 이곳의 압사라 천녀상 만큼은 남부 그룹 사원의 백미로 일컬어질 만했다. 카주라호 사원의 관능적인 조각상들을 완상하기에 하루일정은 빠듯했다.어느덧 해는 기울고 사원 어깨 너머로 붉은 저녁노을이 물감처럼 번졌다.욕정의 파도가 물결치는 카주라호의 나상에도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어둠에 스러져가는 사원은 이제 원숭이들의 독천장.휘늘어진 고목 위를 무리지어 오르내리는 원숭이들은 사원의 터주대감이자 ‘하누만’신 바로 그것이었다. ◎여행가이드/델리∼바라나시 항공편/3월 전통무용 축제 볼만 카주라호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여행자들이 방문하기 쉽도록 교통편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비행기를 탈 경우 카주라호까지는 아그라나 바라나시에서 40분,델리에서 1시간 40분 가량 걸린다.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5㎞ 떨어져 있으며 택시밖에 다니지 않는다. 캘커타나 바라나시 방면에서 온다면 사트나에서 하차해 하루 4번씩 운행하는 버스편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 카주라호를 방문하는 데는 몬순 우기가 끝나는 9월부터 혹서기에 들기 전인 3월까지가 무난하다.특히 3월은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인도의 전통 민속무용을 선보이는 카주라호댄스 축제가 열리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 2000년의 환상/장 클로드 바로(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21세기로 현명하게 진입하는 길/과기 발전=현대화 등식은 착각/비판정신과 공민의식으로 무장/진정한 신문명 장출위해 노력을 앞으로 2000년이 7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온 세계가 호들갑이다.마치 2000년 이후 새로운 세기에는 원하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런던의 빅 밴,파리 에펠탑 등 세계 각지의 명소에서 2000년을 향하는 시계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지도 제법됐다. 너나할 것없이 2000년 맞이 각종 기념행사 준비에 분주하다. 언뜻 보면 2000년의 빛깔은 정말 장미빛이다.그러나 구체적으로 새로운 세기로의 돌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는 막연할 따름이다.모두가 장미빛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개인이나 국가가 세운 나름대로의 장기계획도 궁극적으로는 여기서 출발한다. 이것이 환상일까.‘2000년의 환상’이라는 이 책에서 저자 장 클로드 바로는 이같은 ‘2000년 기념 신드롬’에 메스를 가하고 있다.“당신의 허리띠를 졸라매라.많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무수한 영화,CD롬과 서적들은 2000년의 전망에 대한 환희를 확신하지 않았다.이는 어떠한 아픔없이 준비된 대차대조표에 불과하다.우리가 기대하는 많은 날들은 에펠탑위의 전등으로 쓰여지고 있을 따름이다”. 즉 새로운 세기에 대한 이같은 현상은 준비없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그러면 앞으로의 세기에 대한 준비는 무엇일까.저자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이 시점에 준비해야 될 부분을 상식선에서 쉽게 풀어나가고자 시도하고 있다.르몽드도 이책에 대해 “읽기가 쉽고 이해가 매우 빨라 ‘지구는 둥글고 하늘은 푸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책”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저자는 이책에서 2000년에 대한 환상을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2000년은 21세기가 아니다’라는 사실에서부터 비판해나간다.“2000년은 무엇을 정확히 기념하는 것일까.우선 날짜 자체부터 거짓이다.새로운 1천년의 시작은 2001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따라서 서기력으로 정확하게 따진다면 2000년은 20세기를 마무리 짓는 시점인 셈이다.그러면 어느누구도 2000년을 기념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이 모든 이들에게 ‘기념할 만큼’새롭게 다가서는 이유를 저자는 ‘새로운 현대화’에서 찾고있다.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2000년대의 진입이 새로운 현대화의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그러나 현대화를 보다 색다르게 정의하고 있다.이 대목이 저자가 주장하는 2000년의 환상과 가장 관련이 깊은 부분이다. 저자는 현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영원한 의식을 가져다 주는 현대화는 3개의 축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3개의 축은 기술·과학 등 물질적인 진전과 비판정신,그리고 개인의 의식이다.고대의 화려했던 문명이 일과성으로 그친 채 사라지고만 것도 바로 이 축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그리스는 기술·과학의 진전을 무시했고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적 변화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게 됐다는 분석이다.실제 중국과 그리스는 그들의 많은 발명과 발견을 기술개발을 위해 사용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확인된다는 것. 비판정신의 경우 중국과 그리스는 물론이고 로마시대와 중세를 비롯한 기독교문명,이슬람문명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개인의 의식은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에서 생겨났으나 거의 전파되지가 않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잉카제국을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러면 이러한 세가지 조건들이 공존한 적은 없었는가.저자는 1453년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그리스가 이탈리아를 공격하면서 이 세 조건은 결합하게 됐다고 말한다.이같은 교류로 3개의 축이 만나게 되고 이것이 르네상스를 잉태했다는 것이다.그래서 저자는 르네상스를 현대화의 시작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현대화를 위한 3개의 축은 단지 교육을 위해서만 이어지고 있을 뿐 오늘날에도 집착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세계가 바라는 ‘2000년의 기념,즉 새로운 현대화의 진입’은 환상일 수 밖에 없는 셈이다.국가와 사회는 물론이고 심지어 욕망을 억제할 줄 아는 성직자들도 기술의 발전만을 부르짖고 있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2000년에 대한 환상의 본질은 현대화가 인간을 바꾸었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현대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그것은 현대사회에 문명의 가치,즉 윤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바라는 현대화,즉 지구의 미래가 어둠 속으로 가는 것을 막는 축으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이뤄온 현대화도 스스로 와해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기술적 현대화를 부양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인류가 가장 현명하게 21세기로 진입하는 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새로운 문명,한마디로 공민정신을 창출하자는 주장이다. 원제 L’illusion De L’an 2000,프랑스 그라세 출판사,180쪽,115프랑.
  • 시적 영감 풍기는 설치작품/홍수자씨 개인전

    석남미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올해 석남미술상 수상작가인 홍수자씨 작품전이 17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544­7393)에서 열린다. 홍씨는 현실속에서 겪는 결핍과 좌절,또는 억압에서 비롯되는 욕망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부각시키는 실험적인 작업에 치중하고 있는 작가.동물들의 절단되거나 오그라진 다리나 가공된 피부 등 죽음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상처받은 욕망의 반증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다.즉 나약한 존재들의 꺾인 욕망을 통해 확고한 기존의 형식이나 관념·개념들에 대한 저항을 암시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전시는 종전 작업해왔던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사진과 평면,그리고 조각품까지 집약해 보여주는 자리.특히 구체적인 모티브를 택해 산문적으로 작품들을 보여줘 시적 상상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나온다.
  • 초심을 갑옷으로 삼고/석지명 청계사 주지(시론)

    ○합당 약속 준수에 쏠리는 눈 여럿이 동업할때 각기 만족하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일이 잘되면 그 모든 성과를 나혼자 차지하지 못하는 것을 원통해하고 잘못되면 동업자에게 그 책임을 돌리기 때문이다.한 사람이 가진 갖가지 형태의 자본이 다른 자본·기술·인력 등과 합해서 동업할 경우 우세한 한 쪽이 동업자인 것을 모두 흡수해서 안정을 찾거나 아니면 분열돼서 서로 원망하며 헤어지는 수가 많다.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두 여당이 동업해서 생기는 갖가지 난제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눈여겨보고 있다.한나라당은 과거의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동업으로 탄생했고 새 정권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동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선 수적으로 우세한 과거 신한국당 계열이 힘으로 밀어붙여서 당권을 장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보도다.당지도부가 힘을 받기 위해서 경선을 하되 총재는 합당때의 약속을 생각해서 단일후보 형식으로 추대하고 부총재직에만 경합을 벌인다는 것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에도 아직은 큰문제가 없다.인사청문회를 비롯한 여러 사안에 대해서 이견과 갈등이 있겠지만 동업이 위협받을 정도의 불화는 아닌 듯하다.국민들은 아무래도 집권할 여당들의 화합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동업을 시작할때 우리는 아주 좋은 초심을 갖는다.상대도 좋고 나도 좋고 아울러 나라와 세상이 다 좋은 결합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다.의견이 다를때 어느 한쪽이 자기 주장에만 집착하거나 어떤 힘을 일방적으로 과시해서 쪽박을 깨려 하지 말고 끝까지 참을성있고 성실하게 대화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말이다. 두 여당도 바람직한 초심으로 만났다.큰 제목은 정권교체와 권력분산으로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 땅에서 실현하자는 것이었다.한쪽은 보다 진보적이고 다른 한쪽은 보다 보수적인 두 색깔의 정당이 합심해서 나라 일을 처리하면 양극단으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오랜 야당생활 기간에 신세졌거나 같이 고생한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그들을 낙하산식으로 정부 또는 산하기관의 요직에 앉히거나 속칭 가신 또는 그에준하는 이들을 임명직에 중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요정책은 투명한 공론화과정을 거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깜짝쇼나 독선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이것이 여당이 말해온 초심의 주요부분이다. ○지키기 쉽지않은 첫 마음 초심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화장실 갈때와 올 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어쩌랴.개구리에게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나무라지만 개구리에게는 다른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쩌랴.그래서 국민들은 저 초심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계속지켜보게 될 것이다. 한데 말이다.저 지키기 어려운 초심을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불교에서는 가사 법복을 입고 있으면 신장이 옹호한다고 한다.총알이나 칼날이 뚫지 못할 만큼 옷감이 두꺼워서 잡것이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그 법복을 입고 있으면 동작,말,생각을 조심해야 하기때문에 실수가 없고,따라서 재앙이 달려들지 못한다는 것이다.앞으로 집권할 여당의 지도자들도,저 초심을 항상 생각하고 지킨다면,손에 쥐어진 권력을 시원하게 휘두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부담스러운 초심이 오히려 정권을 튼튼하게 지키는 갑옷이 되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촉발제가 될것이다. 나라가 망해 갈때,국민들은 금을 장롱속에 감춘다.그러나 우리는 지금 반대로 은행에 내놓고 있다.거국적 금모으기 운동에 아직 대량의 금괴는 나오지 않았지만,적어도 우리는 국민 각자가 개인만을 생각지 않고 전체가 힘을 모아서 나라를 일으키려고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치지도자들에 거는 기대 빈자와 부자가 있을때,어느 한쪽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기가 쉬울까.양쪽 다 어렵다.한 쪽은 돈이 없고 다른쪽은 앞으로 부자로 남아 있을 수 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 부자들도 큰 돈을 경제 살리기에 내놓고 있다.한 대기업 회장과 출판사를 경영하는 야당 의원이 먼저 나섰다.다른 이들도 뒤따를 것이다. 나라를 이끌 어른들이 초심을 지킬때,돌반지를 내오는 가난한 이나 큰 돈을 내놓는 기업가가 다같이 믿고 따르리라.그러나 두 여당이 인사청문회같은 기초적인 일에서부터 실랑이 벌이는 모습을 노출시킨다면 우리는 불안할 수밖에없다.
  • 서양화가 서양순(이세기의 인물탐구:159)

    ◎화폭마다 혼담긴 ‘꽃과 여인’의 화가/초창기 ‘발레리나’ 시리즈로 국전 3회 입선/한국여류화가회장으로 작품활동도 활발 서양순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여인’의 이미지를 과시하면서 밀턴의 ‘꽃피는 시트론의 숲’을 향유하는 시기다. 최근의 그의 회화세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랑의 필치’로 포비즘의 요소를 포함시키는 새로운 조형방법에 접근하고 있다. 이른바 색채의 의장을 중시하는 큐비즘과 구상을 지우는 특유의 기법으로 ‘꽃이 여인이며 여인이 꽃’인 팬태스틱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파스텔조의 꽃의 향연은 캔버스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벌판에 마음껏 펼쳐진채 바람에 흩날리듯 꽃향기 퍼트릴 듯 송이송이마다가 싱싱하게 살아숨쉰다. 그래서 일찍이 그의 스승인 박득순은 ‘서양순의 그림은 삶에 대한 힘찬 도약과 환희의 축제’라고 표현했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모르면 아름다움을 그릴수 없듯이’ 그의 눈부신 인물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한눈에 알게 된다’는 것이다. ○‘환희의 축제’로 표현 그의 꽃들도 동양적 정서와는 거리가 먼 목련과 장미, 국화와 해바라기,튤립과 서양란같은 화판이 확실하고 탐스러운 꽃중의 꽃들로 화면을 채운다. 언제나 꽃과 여인이 공존하는 가운데 여인의 눈동자는 신비와 미지의 소망이 반짝이고 목걸이와 팔찌 등 서구적 연출은 때때로 베르사유의 앙트와네트, 정열의 카르멘, 르누아르의 청신한 이렌느와 어느때는 마농레스코같은 퇴폐적인 쓸쓸함과 메마른 사색을 풍겨낸다. 이른바 밀집한 꽃의 형상과 풍부한 무희들이 제시하는 회화세계는 그것이 ‘미술’이기 때문에 철두철미 ‘아름답다’는 것을 지키면서도 해맑은 아름다움의 이면속에 엄격한 결벽증이 도사리는 것이 이채롭다. 서양순은 그의 그림이 설명하는 것처럼 내면으로부터의 열망과 열정이 끓어넘치는 화가다. 타고날 때부터 솔직하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무슨 일에든지 쉽게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단지 가파르지 않은 후덕한 인간성을 지녔으나 남에게 폐끼치기를 싫어하고 만사에 빈틈없는 완벽주의로 대인관계에서의 신의를 중시한다. 그러한 성격형성은 그가 성장한 철없던 어린시절과 다양한 예술적 체험들이 정신적 성장을 준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때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의사’가 될것을 꿈꾸었으나 화가가 된 지금 심신장애자를 위한 국제 시비탄클럽의 멤버가 되어 그들을 돕고 있다. 전북 정읍에서 과수전지를 지도하던 서갑준씨와 이말예 여사의 3남3녀중 막내, 넉넉한 집안의 막내답게 부족함없는 환경에서 그림도 잘그리고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정읍여고시절 전라북도 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정물화로 도지사상을 수상하자 당시의 교장과 담임이 권유하여 의대가 아닌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심신장애자 돕기도 대학졸업후 박득순 스승의 명동 화실에 나가 학생지도를 보조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드가의 ‘발레리나’시리즈에 심취해 있었고 발레리나의 율동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속도감에 매혹되어 한 시기에는 오로지 발레리나만을 그린 적도 있다. 이른바 ‘한줄기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 그 빛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것’이라는 르누아르의 말대로 공간이동을 시키듯이 대상을 생명감 자체로 화면에 옮기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의 ‘무희’나 꽃들은 마치 토슈를 신고 필루에트를 추는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알레그로 콘브리오의 리듬감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낸다.박득순외에도 변종하 최덕휴 김창락 김원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사사.그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변종하씨는 서양순을 향해 ‘장래를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화가’로 손꼽았고 그때부터 자신감을 갖고 ‘인물에서의 최고봉’이 되기 위한 야망을 불태웠다. 65년부터 국전에 ‘발레리나’를 출품해서 3회 연속입선, 특선을 향한 집념을 불태우던 무렵에 박득순 화실에서 만난 서양화가 강길원씨(공주대 교수)와 결혼, 77년 부군이 제주대에 근무하던 제주시절에는 섬만의 독특한 풍광과 제주여인을 그리면서 초기의 화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중간톤을 창출할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언제부턴가 남청 담청 군청과 감청속에서 선록)과 선홍이 흘러나오고 전에는 점하나를 찍는데도 구도를 계산했으나 그림에서의 형상과 색깔은 오랜 관념과 관습에 불과할뿐 ‘어떤 위대한 예술도 죽음이나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삶의 욕망 화폭에 점화 지난 91년 일곱번째로 가진 개인전에서도 ‘선명한 터치와 화면마다 생동하는 생명감’으로 다시 한번 화단의 호평을 모았고 그의 그림을 아끼는 사람들은 최근의 ‘꽃과 여인’을 향해 ‘검은 비로드에 싸인 한아름의 금강석’, ‘허화가 없는 사치의 극치’로 찬사하기도 한다. 그는 항상 아름다움만을 추구할뿐 ‘문학성’과 ‘작품성’이 의식된 어질러진 도시의 뒷골목이나 초라한 낭인의 모습은 체질에 맞아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의 화제는 화려한 ‘꽃’들과 눈이 크고 서구적인 ‘여인’이 될것이다.지난해엔 한국여류화가회 회장에 선임, 결코 쉽지않은 승부였으나 평소의 스케일과 덕량이 주변을 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혀 연고지가 아닌 강남구 신사동에 정착한지 20년. 화단의 중진인 부군과의 사이에 딸(보나양)하나가 있다.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과정을 지나 그는정미를 끌어내기 위해 생의 욕망을 화폭에 점화하려는 시기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선보이려는 100종의 꽃과 100인의 미인은 지나온 족적을 되돌아보는 화가 자신의 심상의 그림자에 틀림없다. 긴 휴식과 사색을 끝내고 그의 여인은 탐색직전의, 비상직전의 긴장속에서 간결·절제의 수직구도로 만개의 향기를 미래를 향해 내뿜고 있다. □연보 ▲1940년 전북 정읍출생 ▲1961년 세종대 미술과졸업 ▲1965­67년 국전 서양화입선 ▲1966년 제1회 개인전(정읍) ▲1969­72년 신기회회원전 출품 ▲1972­현재 한국미술협회회원전 ▲1973년 한국여류화가회 창립전 ▲1978년 개인전(제주 한라미술관) 1981년 프랑스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수학, 스페인국제미술제 특별상수상 ▲1982년 서울 개인전, 도쿄 아시아현대미술전및 한·불여류작가전(파리) ▲1983년 뉴욕및 상파울루 개인전 ▲1986년 현대작가 100인전 ▲1990­현재 한국구상작가 회화제 ▲1991년 제7회 개인전(현대미술관) ▲1992년 동북아 여성문화교류전 ▲1995년 북방8개국 우수작가초대전, 한국현대미술 뉴욕초대전, BESETO미술제 서울전, 광주비엔날레기념 한국여류화가회 광주전, 인도풍물 스케치전,목우회전 ▲1997년 썬화랑개관 20주년기념전, 한·중수교5주년기념전 ▲1998년 관훈미술클럽창립전, 한국여류화가회전(2월10일부터 서울갤러리) ◇현재:한국여류화가회회장, 군자회자문위원, 회화제운영위원
  • 고야/홋타 요시에 지음(화제의 책)

    ◎‘근대회화의 시작’ 고야의 인생역정 이탈리아의 미술사가 아돌포 벤투리는 “고대의 시가호메로스에서 출발하듯이 근대 회화는 고야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에스파냐 아라곤 지방 출신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그는 벤투리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근대 유럽을 뒤흔든 거대한 변혁의 물결을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있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화가다. 이 책은 고야의 극적인 인생역정과 그가 겪은 시대의 참혹상을 그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을 매개로 그려낸 일종의 전기소설이다. 고야는 나폴레옹 군대에 짓밟힌 조국의 참상을 목격하고 자신을 덮친 병마와 싸우면서도 인간의 욕망과 악마성을 냉철하게 관찰함으로써 미술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하지만 붓 하나를 무기로 입신출세의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간 그는 결국 조국을 떠나 망명지인 프랑스 보르도에서 82세의 나이로 객사한다. 일본 최고의 아쿠타가와상(개천상)과 오사라기지로상(대불차랑상)을 수상한 홋타 요시에(굴전선위)는 고야에 관한 이러한 전기적 사실을 활달한 필력으로 형상화한다. 출세지향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였던 고야는 47세에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수은에 중독돼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귀머거리가 됐다.그러나 죽음의 심연을 겪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계로 들어갔을 때부터 고야는 비로소 미래의 장막,현대회화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선구가 될 수 있었다. 지은이는 이러한 점을 특히 동시대인인 베토벤의 청력상실과 비교하는 데많은 지면을 내준다. 또한 고야에게 평생 따라다녔던 에스파냐의 참혹한 현실 곧 음모와 전쟁,혁명과 반혁명 등이 그를 깨어있는 시대의 증언자로 몰고갔음을 강조한다. 김석희 옮김 한길사 전4권 각권 1만4천500
  • 청년시절 박정희의 모습은?/정영진씨 실록소설 전 3권 펴내

    한국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최고권력자로서 강렬한 빛과 짙은 그림자를 던졌던 박정희.그의 극적인 삶과 당대의 시대상을 그린 실록소설 ‘청년 박정희’(전3권,리브로)가 나왔다.지은이는 대구 10·1사건을 규명한 소설 ‘폭풍의 10월’의 저자로 잘 알려진 정영진씨.‘청년 박정희’는 집권이후보다는 청년기부터 집권전까지를 주로 다뤘다. 최근 정치·경제 여건이 급변하면서 일고 있는 ‘박정희 회고붐’과 관련,작가는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것 못지않게 터무니 없이 미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것 역시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라고 강조한다.“밝고 어두운 면을 가리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일관되게 박정희와 그의 시대,나아가 오늘의 시대를 재조명했다”는 게 작가가 밝히는 집필방향. ‘입지’‘야망’‘권모’ 등 3부작으로 된 이 소설은 가난과 열등감,식민지 청년의 비애와 좌절속에서 키워낸 권력에의 욕망과 그 성취 과정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청년시절의 박정희는 “특출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이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평가한다. 평균치 이상의 두뇌와 남다른 과묵,또래들보다 두툼한 력,나름대로의 뚝심 등이 그의 청년시절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대구사범시절 박정희는 일본인 교사와 조선인 교사로부터 동시에 감화를 받았지만 민족적 각성을 주도면밀하게 끌고나갈 만한 지적 성숙은 보여주지 못했다.하지만 일본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정신의 본원지인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에 입학,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사무라이적 사생관에 투철한 일본군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새로 모색하게 된 그는 좌익사상에 감염되지만 숙군 회오리 속에서 조직을 배신함으로써 살아남는다.휴전이후 그는 쿠데타로 권력의 정상에 오르겠다는 줄기찬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선후배 동료들를 부추기며 끊임없이 모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의지를 달성시켜 나갔다고 작가는 적고 있다.이 소설은 철저한 고증과 객관적자료,최초의 공개사진 등을 통해 인간 박정희를 복원해낸다.박정희의 전생애 혹은 그의 청년시절 전부가 신화화 내지 미화되는 감이 없지 않은 현 상황에서 이 책은 진정한 박정희 평가의 출발점이 될만하다.
  • 일 공직자 접대만 받아도 구속

    ◎검찰,도로공단 이사 등에 이례적 중형/정경유착 근절 초강수… 사정태풍 예고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검찰이 정경유착의 부정에 초강수를 띄웠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8일 노무라증권에 편리를 봐준 대가로 2년반 동안 2백50만엔(3천여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아온 일본도로공단의 이사카 다케히코(정판무언) 이사를 전격 구속했다. 대장성 조폐국장 출신으로 대장성과의 관계를 잘 처리해달라는 의미에서 94년 ‘낙하산’을 타고 도로공단에 영입된 이사카 이사는 일본도로공단의 외화채권 발행 주간사 업무를 노무라측에 맡기도록 하고 2년반 동안 십수차례의 골프 및 요정 접대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그는 이밖에도 증권회사 은행 등으로부터 모두 7백만엔 가량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검찰은 이것이 증수회죄에 해당된다고 보고 노무라증권의 무라스미 나오다카(촌주직효) 전 부사장 등 2명도 구속했다. 노무라증권측은 접대가 뇌물성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또 일본의 금융계 관료계에서는 그 정도의 접대는 ‘상식’에 속한다. 일본 검찰의 전격적인 구속 조치는 이런 상식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현금,주식 등 돈 뿐만이 아니라 소소하다고 생각돼 온 접대도 뇌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금전,물품 뿐만 아니라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체’가 뇌물로 될 수 있다는 판례가 성립돼 있으나 수사실무상 접대 행위가 뇌물수수,공여로 입건된 예는 극히 드물다. 일본 검찰은 노무라증권이 연간 1천만엔을 넘는 교제비를 사용해온 점에 비추어 접대를 받아온 것이 도로공단 뿐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어 살벌한 수사손길이 확대돼 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수사는 특히 검찰이 금융·증권업계는 물론 일반 재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장성 전·현직 간부가 관련된 구조적 유착관계의 규명이 초점이 되고 있다. 한편 이미 총회꾼에 대한 부정이익 공여 혐의로 전현직 간부가 구속되고 업무정지의 가혹한 처분을 받은 바 있던 노무라증권은 또 다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게 됨으로써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됐다. 검찰의 조치에 대해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형편을 감안한다면 경제계에 지나친 타격을 가하는 것이라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지만,일본에서는 ‘상식’이나 국제기준으로는 통용되지 않는 관행을 척결해야만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 터키 이스탄불 역사지구(세계 문화유산 순례:58)

    ◎동서문명 함께 숨쉬는 ‘옥외박물관’/육상 실크로드의 끝이자 뱃길의 시작/동서양 종교­사상­문명 융화의 용광로/소피아­술탄사원 토프카프 유물 유명 역사학자 토인비는 터키의 역사도시 이스탄불을 일컬어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 했다.이스탄불 역사지구의 베야지트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1㎞내에 인류가 이룩한 5천년 역사의 문화유산들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히타이트,앗시리아같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문화,초기 기독교 문화,비잔틴 문화,그리고 이슬람 문화의 진수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또는 한 거점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 ○1㎞ 다리 아시아­유럽 연결 콘스탄티노플이란 옛 이름을 가진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옛 것과 새것이 절묘하게 조화한 환상적인 미항이다.유럽과 아시아가 1㎞의 다리 하나로 연결되었다.유럽쪽 도시가 이스탄불이고,맞은편 아시아 쪽이 민요에 나오는 유명한 마을 위스크다르이다.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육상 실크로드의 끝이고 해상 실크로드의 시작이었다.북아프리카나 로마에서 실려온 물건들이 이곳에서 동방상인들 손으로 건너갔다.그리고 환락과 사치가 있는 이스탄불로 전세계의 미녀들이 몰려들어 흥청거렸다.피부색이 서로 다른 민족들과,수많은 종교와 사상,신화가 이스탄불이라는 용광로속에서 하나로 융화되었다.이스탄불은 서양의 품안에 요염하게 안기기는 했어도 동양의 자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스의 지도자 비자스는 기원전 7세기 델피신전의 신탁에 따라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인 보스포러스 맞은편 언덕에 새 식민도시를 건설했다.비자스의 이름을 딴 비잔티움이란 도시였다.그리스 신화를 머금은 풍요로운 도시 비잔티움은 그 뒤 서기 196년 로마제국에 함락되었다.그러다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 도시를 로마의 새 수도로 정하면서 화려한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태어났다.1천년간 종교와 사상의 중심지로서 세계 부의 상징이었던 인구 100만의 콘스탄티노플.이 도시의 문화유산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눈부신 업적이었다. 그러나 1453년 5월 29일,유럽의 정신적 요람 콘스탄티노플은 동방의 새로운 강자 오스만제국의 손에 함락되었다.정복자 술탄 마호메트 2세는 그리스정교의 심장부인 성 소피아 성당에서 이슬람식 예배를 올렸다.그리고 오스만 군대의 오랜 전통에 따라 3일간 군사들에게 정복자의 특권인 약탈을 허용했다.무질서한 혼란 속에서 서양과 동양은 서로 뼈 아프게 섞이고 만났다.3일후 도시는 새로운 평정을 되찾았으나,이미 콘스탄티노플은 화려한 도시가 아니었다.이슬람의 도시 이스탄불로 바뀌면서,동서양이 조화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갔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만나 어떻게 어룰려 공존햇는지를 교훈으로 남긴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다.이스탄불 역사지구의 음미하는 발길은 성 소피아성당에서 시작된다.1500년의 역사를 증언하는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자 비잔틴 건축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중앙 돔에 수많은 보조돔을 사용한 소피아 성당의 비잔틴 양식은 뒷날 모스크를 비롯한 이슬람 건축술에 지대한 영향을 기쳤다.이 성당은 오스만제국의 이교도 치하에서 500년간이나 이슬람 사원으로 빼앗기는 비운을 격었다.그리고 나서 지금은 박물관으로 선포되어 정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역사 현장이 되었다.아라베스크의 어지러운 코란장식을 하기위해 입혔던 회칠을 벗겨내어 장엄한 기독교 성화들이 다시 찬연한 금빛을 발산하고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의 바로 맞은 편 히포드롬에는 이슬람 건축의 대표격인 술탄 마호메트 사원이 천년의 시차를 두고 우뚝했다.세계 유일의 아름다운 첨탑 6개에서 울려퍼지는 코란낭송을 듣노라면 이스탄불의 주인이 터키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슬람 문화의 알맹이들은 히포드롬의 이슬람문명 박물관에 잘 전시되었다.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위용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토프카프 왕국박물관을 찾지 않을 수 없다.특히 세계 최대의 에머랄드와 84캐럿짜리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보석관과 귀중한 학습장인 복식관,이슬람의 성물을 전시한 종교관,주방과 화실 등이 당시 궁정의 실제 사용 장소에 따라 배치되었다.금남의 구역이었던 왕실 안뜰의 하렘에서는 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과 사치를 훔쳐볼 수 있다.또세계 3대 컬렉션의 하나로 1만1천점의 각종 도자기를 소장한 도자기관은 우리 문화와 관련해서 흥미를 끄는 전시관이다.왜냐하면 중국이나 일본자기로 분류한 백자와 청자,청화백자들속에 한반도에서 실려온 고려와 조선의 자기들이 섞여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007영화 배경의 지하궁전 로마시대의 히포드롬에는 원형 경기장의 흔적은 사라졌다.그 대신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실어온 오벨리스크와 델피신전에 서 있던 뱀기둥,유스티아누스 대제의 기념비만이 가진 자의 힘을 과시라도 하듯 광장을 메우고 있다.광장을 벗어난 성 소피아 성단의 맞은 편에는 007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지하 저수 궁전이 자리했다.336개의 다양한 석주가 버티고 있는 지하 저수지에는 배가 떠다닐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이스탄불 1천만 인구에게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는 실크로드의 대시장인 카팔르 차르시 시장에는 볼거리가 많다.5천여개의 상점들이 거대한 실내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에게해 수편선에 석양이 걸리는 시각,이슬람사원에서 은은한 코란 소리가대성당의 종소리에 섞여 유럽과 아시아로 울려 퍼진다.하루를 마치는 의식이리라.이처럼 이스탄불의 역사지구는 유럽과 아시아,과거와 현재,낮과 방이이어져 하나가 되는 인류문화의 살아있는 희망으로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서울∼이스탄불 주 4회 직항/물가싸고 가죽·카펫 등 유명 이스탄불은 세계 사람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어하는 도시의 하나다.우리나라에서도 작년에 개설한 터키항공과 아시아나에서 직항편이 주4회 운항하고 있다.터키항공은 최근 경제위기로 취항을 일시 중단했다.호텔,도로,철도 등을 잘 정비한 터키는 우선 물가가 싸다.볼것은 물론 터키석,가죽,카펫,대리석,동판세공 등도 유명하다.한국계 윤투리즘(212∼257∼1361)이나 원더풀 투어(212∼257∼2288)같은 관광사로부터 다양한 패키지 문화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
  •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교육/3당 대선후보 초청강연회:Ⅲ

    ◎교육개방과 한국의 대학­박영식 광운대 총장·전 교육부 장관/대학이 국가경쟁력 좌우/양보다 질위주교육 필요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드는 경쟁의 시대에서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민주화에만 매달려 오랫동안 경쟁없이 무풍지대를 거쳐온 우리 대학들은 오늘날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대학사회에서 국내대학 출신 박사들은 외국출신에 밀려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우수한 인재들이 외국대학으로만 나가려 할뿐 국내 대학은 철저히 외면해 최종 학위 생산을 중단할 위기마저 우려되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특징되는 오늘날 국가 경쟁력은 대학에서 나온다.현재 흔들리고 있는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도 대학의 역할이 한차원 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로 ‘양의 교육’에서 ‘질의 교육’으로 대전환이 필요하다.해방 전후 10여개였던 우리의 대학은 3백20여개로,대학별 학생수도 2천∼3천명에서 2만∼3만명 수준으로 거대하게 변모했다.재단의 재정지원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재정규모를 늘리자니 양적 팽창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던 탓이다.자연히 학문의 우수성이나 교육 내실화는 부차적 일로 치부될 수 밖에 없었다. ○양적 팽창 중지해야 미국 대학들은 학생수를 늘리면 재단의 부담이 늘어나고 교육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학생수를 거의 늘리지 않는다.이제 우리 대학들도 양적 팽창을 중지해야 한다. 둘째,경쟁관계에 있는 대학을 10개 가량 만들어야 한다.경쟁이 있는 곳에서만 경쟁력이 나온다.미국의 대학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것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좋은 교수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총장 중심의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S대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대학이 상위 1%의 우수학생을 모두 휩쓸어간다.많은 지방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데서도 나타나듯 대학입시와 과외의 과열도 결코 대학의 문이 좁아서가 아니라S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또 입시 과열을 막고 과외수업 부담으로 휘어진 서민들의 허리를 펴기 위해서도 서로 경쟁할 수 있는 대학을 10개 가량으로 늘려야 한다. ○과감한 재정 지원을 세번째는 국가의 과감한 교육투자와 적극적 재정지원이다.국가가 모든 교육을 맡는다고 생각해야 한다.선진국은 대부분이 공립인데 비해 우리는 교육을 사학에 맡겨왔다.이런 잘못된 구조를 하루속히 바꿔야 하지만 당장은 사립대학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교수 1인당 학생수가 미국의 2배,일본의 1.5배에 이르고 서울대 학생 1인당 도서수가 미국 하버드대의 13분의 1,일본 도쿄대의 6분의 1에 불과한 현실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개방되는 교육시장에서 난파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한 제도개선과 획기적인 투자를 통한 대변혁이 있어야 한다. ◎한국대학의 역할과 과제­윤형원 충남대 총장·전 교총회장/사회변화 중심역할 강화/첨단학문 대책 서둘러야 한국 대학은 정말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해답은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관점이 있을수 있다. 대학은 연구와 사회봉사,이상적 민주공동체 창조 등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그렇다면 한국 대학발전의 조건과 과제는 무엇인가. ○교육행정 전문화 숙제 첫째 고등교육행정의 전문화와 책무성의 강화이다.교육부는 대학 정원을 책정할 때 국가발전에 필요한 요청을 예견해야 한다.그 구조 속에서 대학 전공과 교육내용을 접합시키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도로 정밀한 인력의 수요를 전망·기획하는 새 행정기법이 요구된다.사회발전의 요구와 대학의 교육내용 간의 편차를 조정,교육의 질을 높힐 수 있는 다양한 행정 전략도 필요하다.특히 계량적 대학 평가는 질적 평가로 전환돼야 한다. 둘째 대학 조직의 합법성에 대한 제도적 장치이다.한국 대학도 통치조직과 행정실무간의 기능 분화를 명시하는 대학설치법(유럽형)이나 대학헌장(영미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교육부는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지원과 행정서비스를 주도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사학에는 법정 수익용 재산을 확보토록 촉진하는 기폭제로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국립대의 경우 국립대 설치법을,사립대는 사립대 설치법을 따로 만들어 통치기구와 행정조직의 권한 관계를포괄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째 대학 구성원의 자기혁신을 위한 노력 강화다.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한과에 수백명씩 되는 학생을 해마다 뽑는다.학부에서는 학문 계통상으로 분류할 필요 조차 없는 유사학과를 세분화했다.이제 대학은 건학이념이나 설치목적,존재 이유에 대한 자성론을 내놓아야 한다.또 대학 문화를 창조하고 자율적으로 첨단 학문에 접근할 수 있는 대책도 만들어야 한다. ○대학자율성 보장돼야 넷째 사회변화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사회변화와 요구조건을 수용하는데 혼신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교육 내용에서는 원리적 소양을 응축시켜 첨단의 지식문화 가치로 재창조해야 한다.교수방법에서는 첨단멀티미디어를 다양하게 활용,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혀야 한다. 다섯째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맹목적 교육열을 해소해야 한다.교육은 국가의 것이지 정당이나 집권 행정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정부는 대학교육의 질과 사회발전에 필요한 인력 사이의 관련성을 심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대학 스스로도사는 지혜를 깨우치는 인격도야의 장으로 만들고,교육을 민족정신의 우생학적 유전인자를 창출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학의 통치체제는 새롭게 다듬어져야 하고 대학 구성원은 자기 혁신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이같은 바탕위에 우리의 대학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좌표를 튼튼하게 설정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회조직으로 각광받게 될 것이다. ◎한국교육과 지도자 역할­홍일식 고려대 총장/21세기는 문화대국 시대/전통바탕 비전 제시 시급 정보화 시대는 많은 정보와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진 집단이 지도계층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역사 단계라고 할 수 있다.인간의 정신노동 능력과 지적 창조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은 아직도 산업사회의 후발주자로서 가졌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교육 또한 경쟁과 대결을 위주로 한 구시대의 궤도를 달리고 있다. ○물질보다 정신역량 중요 유엔은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규정했다.문화의 세기란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역량이 중요한 시대이며,정신능력중에서도 종래에 강조돼 온 IQ(지능)보다는 EQ(감성적 능력)이 중요한 시대다.나아가 21세기는 분명 MQ(도덕지수)시대를 지향하고 있다. 사물과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함께 살아가야 할 유기적 질서의 일부분으로 이해하고,인간 존재를 욕망의 대상 또는 경쟁자로 인식하기보다는 공감의 동반자로 볼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이같은 자세와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그 누구도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갈 지도적 계층으로 떠오를 수 없으며,그 국가 또한 미래 세계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문화란 숭고한 인간정신의 표현이다.따라서 민족문화란 바로 민족정신의 구체적 실체인 것이다.한 민족의 존재 가치는 그 독특한 문화로써 확인받고 인정받는 법이다.따라서 민족문화의 상실은 곧 민족 자체의 소멸을 의미한다.이는 나라를 잃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21세기 국가경영과 교육의 과제는 문화대국의 건설이다.과학 기술 경제 군사 등 모든 부문의 발전도 결국은 문화대국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요 수단이다. ○물신주의 극복 절실 오늘의 시대상황을 볼 때 고도 산업사회가 빚어내는 물신주의를 극복하고 인간 회복,인간 부활의 새로운 사회적 조화를 찾아야 할 필요가 참으로 절실하다.그리고 이것은 서구문명에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현대사회의 경험으로 증명됐다.따라서 우리가 지녀온 민족문화 전통의 바탕으로부터 찾지 않으면 안된다.서구사회는 근대의 물질 기술문명에 힘입어 오늘의 풍요를 얻는데 성공했지만 인간 사회 자연,그리고 우주를 연결하는 조화로운 유대를 상실하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 이런 혼미를 극복하고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도 민족문화 유산과 전통에 대한 탐구는 거듭 강조돼야 마땅하다.민족문화의 유구한 전통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이를 구심점으로 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할 때 우리는 오늘의 서구문명이 봉착한 난관을 넘어서는 동시에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열어가는 과업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이를 위한 일대 각성과 전환이 오늘날우리 교육에 주어진 과제인 동시에 21세기를 설계하는 지도자의 역할이다.
  • 개한테 큰절이라도 올릴까 보다(박갑천 칼럼)

    뉴욕시의 가게들은 개 비위맞출 궁리들을 하고있다 한다.가게운명이 개한테 달렸다면서.물건사는 시민들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데 개가 이끄는대로 따라간다는것.개는 저한테 잘 해주는 곳을 좋아하여 여리꾼이라도 된듯 그가게로 주인을 이끈다.그래서 개한테 상냥하라는게 종업원 첫째수칙으로.나중엔 개한테 큰절이라도 해야할 흐름같다. 실제로 우리 옛우스개에는 개한테 절한 얘기가 있다.작자불명의 [진담록]에 쓰인 내용은 이렇다.어떤 소금장수가 함경도 산골마을을 지났을때다.털가죽모자에 털가죽옷을 걸친 걸레부정이 다가와 발칙하게 대지른다.“넌 어디서 온놈인데 양반을 보고도 인사를 않느냐.”아무리 빌어도 놔주지 않고 다그치는 판에 한마리 개가 뛰어온다.소금장수는 납작엎드려 절을 한다.그는 왜 개한테 절은 하느냐며 다좆친다.소금장수 가로되 “이게 개가죽을 썼기에 혹시나 양반댁 도련님이 아닌가 하고요.” 이건 양반무서워 개한테 올린 절이었지만 뉴욕의 가게들이 개한테 아양떠는건 ‘고객―돈’때문.돈이 될일이면 무슨일인들 못하겠는가.그옛날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이야말로 매욱한 인간이라도 으뜸자리로 끌어 올려주는 유일한 존재”([미성년]제1부)라며 추켜올린 돈이 아닌가.설사 지지리 못난 낯짝이라도 로스차일드(유대계 금융자본가)만큼 부자라면 누가 감히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하겠느냐고 덧붙여놓고도 있다. 그렇긴해도 저한테 ‘아첨’하는 사람님네를 보면서 개는 무얼 느낄지 궁금해진다.개는 본디 영리한 동물 아니던가.가령 미국현대작가 D R 쿤츠의 [워처즈]에 나오는 개 아인슈타인만 해도 글자를 알고서 그주인 트라비스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G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세마리 개는 얼마나 당차고 똘똘한가.“쥐가 과연 우리동지냐 아니냐”의 투표에서 모든동물이 찬표를던진 가운데 오직 부표를 던진게 그들이었다.도둑질하는 쥐를 제편에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그런 개이기에 우리 개화기 동물우화소설 [만국대회의록](송완식지음)속의 개는 사람들의 시식잖은 욕망을 준열하게 나무라기도 한다.영어 DOG(개)을 거꾸로 읽으면 GOD(신)이 된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듯 싶다. “개 따라가면 측간간다”는 우리 속담 무색해질 날이 오는것 아닐지.“개따라가면 가게로 가는” 유행이 안건너온다고 누가 장담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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