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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정체성 상실과 집단적 광기

    만민중앙교회 MBC난입 사건은 우리사회 안에 얼마나 위험한 전근대적 요소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발생상황은 다를지 모르지만,이 사건은 얼마 전에 일어났던 서울대생 익사사건과 같은 맥락위에 놓여 있다.두 사건은 모두 우리사회가 언제라도 집단적인 광기에 휩쓸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정체성 상실’에 시달리고 있는 탈근대 사회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세계와 존재를 설명하는 준거틀의 상실,공동체 의식의 퇴조,무한히 열려서 터져 버린 주체의 해체,게다가 손만 뻗으면 이루어질 것처럼 선전되는 욕망의 폭발 등 현대인들의 상황은두려울 정도로 허공에 내던져져 있다. 이 허공 안에서 근대를 충분히 통과하지 못한 유약한 영혼들은 ‘내가 누군지 알게 해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탈근대 사회에서 종교와 전통을 빙자한 ‘집단적 정체성’의 이데올로기가 슬금슬금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사교라든지 집단적 입사의식의 광기 뒤에는 이처럼 ‘자아’를 확보하지 못하고 정체성 상실에 시달리는 대중의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 네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여기에 네가 들어와 편히 쉴 수 있는 존재의 큰집이 있느니라.여기에 들어오려거든 돈을 내든지,네 존재를 집단에 복속시켜야 하느니라.네오 파시즘이나 근본주의가 싹을 틔울 수 있는 바탕은 이처럼현대인의 정신적·영적 공황상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그러나 한꺼풀들어내고 보면,이 집단이데올로기 뒤에는 이를 조작하는 자들의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는 우리 사회 특유의 맥락을 타고 다른 사회어디에서보다 더욱 더 자주,그리고 대규모의 정신적·물질적 낭비를 동반하며 터져나오고 있다.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미성숙한 전근대적 개인들을 유사 탈근대 상황안에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세기말 분위기에 실려 근대성을 심화시키지 못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 몰각상태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언제 어디서 또‘집단적 정체성’이라는 마약주사를 맞은 유약한 개인들이 집단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려 들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성숙한 자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 거국적 교육플랜이 필요하다.그러나 그렇게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자아’의 문제에 관한 한,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조차 명확한자아의식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그들조차 혼자서 우주와 마주서지 못하고,일종의 ‘가족집단’처럼 함께 모여 있다.그리고는 그 집단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이의제기를 하면,합리적 이성의 수준이 아니라,정서적 수준에서 집단적으로 반응한다. 이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정도 이상으로 불거지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그것은 언론과 정치권력이 ‘돈’과 ‘표’만 보면 그것이 약인지 독인지 가리지도 않고 무턱대고 ‘꿀꺽’ 하고 본다는 사실이다.월간 ‘말’지가 꼼꼼하게 보도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이재록 목사의 ‘돈’과 ‘표’의 유혹에 언론과 정치인들이 무방비로 투항,그 바람에 종교의 이름을 빙자한 사건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던 것처럼 보인다.희생자들이 진상을 알리기 위해 발이 닳도록 쫓아다녔지만,신자들의 집단행동이 두려워 어느 언론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공영방송인 KBS가 아니라 민영방송인 MBC가 이 사건을 보도했다는 것이 씁쓸하고 쓸쓸하다.근래에 발생했던 여러 상황을 지켜보면,상업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민영방송이 시청료를 받는 공영방송보다 더 언론개혁과 공영성 제고에 적극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이어령의 새 천년읽기] 타임 캡슐과 埋香

    변화하는 시대,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다.변해야만이 세계화 지구화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으며 나라의 운명도 여기에 좌우된다.본지가 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문명비평가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李御寧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미래를 내다보는 ‘이어령의 새천년읽기’를 연재하는 것도 이같은 여망을 담아내기 위해서다.이교수의 에세이는 미래를 향해 깊이와 재미를 함께하는 연재가 될 것이다. 타임 캡슐을 묻는다.지방자치단체에서도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도 땅을 파고 타임 캡슐을 묻자고들 한다.타임 캡슐은 이제 새 천년 맞이 행사의 감초가 되어 버렸다.하지만 천년전의 우리 조상들처럼 후세를 위해 향목(香木)을 묻고 매향비(埋香碑)를 세우자는 사람은 드물다.대체 타임캡슐은 무엇이며매향비는 또 무엇인가.바로 이것이 어쩌면 새 천년의 의미를 탐색하는 우리의 중요한 화두가 될는지 모른다. 타임 캡슐을 맨 처음 땅에 묻은 것은 미국이었다.1939년 뉴욕 박람회 때 웨스팅하우스사는 어뢰모양으로 디자인된 길이 7.5피트 직경 8인치 가량의 캡슐 하나를 땅속에 묻었다. 그 안에는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칫솔 카멜담배 인형과 같은 35종의 일용품,음악,예술을 비롯한 2만3천 페이지 분의 문화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필름이 들어 있었다.그리고 그 한구석에는 미래의 인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도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도 우리에게 천년이란 상징적 의미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먼 미래의 시간이다.하지만 미국인들이 생각해 낸 타임 캡술은 천년이 아니라 5000년 뒤에 개봉하여 실제로 사용 가능하도록 설계된 문화용품이며 그 기록이었던 것이다.타임 캡슐을 묻은지하실은 내열성 유리인 파이렉스로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불활성 질소를 채워 내용물들이 변질되지 않도록 과학적 처리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타임캡슐을 묻은 사실이나 그 자리를 후세사람이 알아 낼 수 있도록 ‘타임 캡슐에 관한 기록'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세계 곳곳의 도서관과박물관에 뿌리기도 했다. 그들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타임 캡슐을 땅에 묻었는가.대체 그들이생각한 5천년 뒤의 세계는어떤 것이었는가.뜻밖에도 그 해답은 우리를 매우 당혹하게 하는 것이다.타임 캡슐의 착상은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H.G웰즈의 미래소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류의 문명이 언젠가는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전제 밑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욕 박람회의 과학 감독이었던 제럴드 웬즈는 “5천년 뒤 지구 문명이 붕괴된다 할지라도 텍스트로서의 캡슐에 의해 그것을 새롭게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며 실제로 그 타임 캡슐 안에는 미개인과 다름없는 시람들을 위해서 각종 도구나 기계를 만드는 자세한 설명서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폼페이의 유적에서 보듯이 아무리 화려했던 문명이라 할지라도 5천년이라는 긴 세월은 그것을 흔적 없는 폐허로 만든다.위대한 이집트도 로마제국도 모두 그렇게 사라졌다.전쟁이든 지진이든 화산폭발이나 혹은 화성인의 침입이든 위대한 아메리칸 드림과 문명 역시 언젠가는 그 앞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그리고 그 가위눌린 악몽 속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아메리칸 드림의 한 파편을 땅속에 묻어두려 한 것이 바로 그 웨스팅하우스의 타임 캡슐이라 할 수있다. ‘20세기를 만든 일용품'의 저자는 그것을 이렇게 적고 있다.“세계가 붕괴하더라도 타임 캡슐을 꺼내기만 하면 인간의 문명 문화는 언제든 부활될 수가있을 것이다.그 문명 문화는 미국 것이 되고 미국의 문명 문화는 세계를 뒤덮게 될 것이다.즉 타임캡슐은 미국 문명 문화의 유전자로서 땅속에 묻혀진것이다.” 5천년 뒤의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땅에 묻은 타임 캡슐이 고작 오늘의 물질 문명,더 좁게는 미국 문화와 문명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한 패권 경쟁의한 산물이었다면 요즘 아이들의 말대로 얼마나 ‘썰렁한' 이야기인가.그리고지금 미국을 비롯하여 새 천년맞이를 준비하고 있는 유럽 여러나라의 행사내용이 60년 전 뉴욕 세계 박람회 때의 타임 캡슐의 발상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면 인류의 미래는 얼마나 어둡고 쓸쓸할 것인가.단지 ‘화성인 내습'이라는 가상 현실이 핵이나 환경호르몬과 같은 지구 붕괴의 이야기로 각색되고 그폭이 넓어졌을 뿐 여전히 서구 근대 문명이인류의 유일 절대의 보편적 문명이라는 신앙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쿨 브리태니카 (멋진 영국) 미국의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미래”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중국”-지금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밀레니엄 축제들의 구호를 보면 모두가 자신들의 문화 문명의 자랑스러운 DNA를 시간과 함께 냉동시켜 캡슐속에 밀폐하고 봉인을 찍어두는 타임캡슐의 경쟁을 방불케 한다. 이른바 월드 시스템이 된 오늘의 서구 근대의 백인 문명이 천년을 단위로인류의 문명을 생각할 때 과연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 하는 물음보다는 오늘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구 근대문명을 어떻게 천년 뒤까지 유지 지속시켜가는가 하는 것이 지금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밀레니엄 축제요 그 준비라고 할 것이다. 참으로 인류가 천년 5천년의 앞날을 생각하며 묻어야 할 것은 오늘의 서구문명을 역사의 종결로 생각하는 프란시스 후쿠야마같은 타임 캡슐의 욕망이다. 인류의 멸망과 지구의 붕괴를 가져올지 모를 서구 근대문명의 물질적 기능적 속세주의적 욕망일 것이다.더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아메리칸 드림으로 요약되는 오늘 날의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산업주의적 기계관들을 땅에 묻고새 천년을 위한 문화문명의 창조를 향한 비전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냉전상황이 끝나고 세계시장이 이루어지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세계화라는 유행어가 2000년을 맞이하여 뉴 밀레니엄이라는 말로 바뀌어가고있는 것은 세계화 자체의 반성이며 글로벌리즘의 한 손 원리로만 가지고는결코 인류의 앞날은 없다는 새로운 의식의 출발점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글로벌리즘이 지구의 국경을 없애가는 공간의 확충이라고 한다면 밀레니어미즘은 그것과는 대응되는 시간축의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2000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세계화라는 공간 의식속에 천년화라는 새로운 시간의식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국경을 뛰어 넘는 시간 죽이기의 세계화가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단절시키고 민족문화의 DNA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 번영과 그 문명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미래의 희망이라는 IT(정보기술)에 뒤지면 우리는세계화에서 고립된다고말한다.경제든 정치든 모든 것이 세계와 링크(연결)되어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상황에서 우리는 절대로 고립해서는 안된다.그러나 개방의 논리속에서 민족의 시간축인 전통과 역사가 두절되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것인가. 근대화를 100년동안 해서 서구화한 터키가 지금 어떠한가.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하여 근대화대열의 모범국이 되었던 일본이 지금 새천년을 맞이하는 문턱에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94년만 해도 국가 경쟁지수가 3위이던일본이 13위로 급락하는 의미는 무엇인가.그것은 세계화의 개방을 게을리한것만큼 천년화라는 시간의 단절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한국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타임캡슐을 묻는 것이 어메리칸 드림이었다면 그것에 맞먹는 코리언 드림은 무엇인가를 밝혀야 할 것이다.천년전 한국인의 꿈은 땅속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埋香儀式)으로 상징된다.고통과 가난속에서 천년 전 고려인들이 꿈꿔온 것은 천년 만년뒤 보살이 미래불로 성불하여 인류를구제하고모두가 행복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미륵신앙이었다.불교라는 종교 의식이라기보다 민중들의 생활속에서 우러나온 토착신앙과도 같은 의식이었던 것이다. 어디엔가 고난의 땅 - 이승과 저승이 마주치는 것처럼 갯물과 바닷물이 와닿는 해변가 그리고 왜구들이 끝없이 침범한 은밀한 섬에 매향을 하면 그 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무쇠처럼 단단해지고 그 향내는 이 지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윽한 침향이 된다는 믿음이다.이렇게 한국인들은 현세의 지속이 아니라 천년 뒤에 올 새로운 생명의 가치와 그 부활의 문화를 위해서 매향비를세웠던 것이다.지금도 국토의 여러곳에서 매향비가 발굴되고 있는 까닭이 바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우리 조상들은 천년뒤에 올 후손들을 위해서 향기로운 생명의 향기를 창조해 내는 향나무를 묻었다.과학적인 장치가 아니라 바닷물과 지열과 흙의 자연적인 힘이 천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속에서 형성해 내는 나무의 변화였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을 밀봉하여 정지된 천년 뒤에 개봉하는 문화가 아니다.붕괴한 뒤에 복고하기 위한 문화,이미 있는 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한번도맛보지 못한 이 세상의 그것과는 다른 정토의 맑고 깨끗한 세상이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공간 확충에 천년화(millenniumization)의 시간적 지속이 있을 때 우리의 사회는 완벽한 평화를 이룬다. 새 천년의 새로운 한국은 세계화의 한 손 원리만 가지고는 안된다.거기에 한국의 전통과 민족의창조력을 잇는 천년화의 또 한 손이 요구된다.타임 캡슐만 묻는 새 천년 맞이의 발상에 향목을 묻는 매향비의 새로운 의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새천년의 꿈을 두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된다.
  • 삶의 무게 실린 6인의 합동작품집 ‘먼 그대의 손’

    김준성 이청준 김주영 한승원 김원일 이문열.현대 한국 소설문학의 중추를이루는 작가들이다.글쓰기에 관한한 나름의 해탈과 관조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기회란 그리 흔치않다.문이당에서 펴낸 이들의 중·단편집 ‘먼 그대의 손’은 그렇기에 더욱 눈길이 가는 책이다.수록작품은 ‘먼 그대의 손’(김준성),‘내가 네 사촌이냐’(이청준),‘금의환향’(김주영),‘검은댕기두루미’(한승원),‘세월의 너울’(김원일),‘달아난 악령’(이문열) 등 6편.비록 몇편 안되는 작품이지만 이 소설들의 행간에선 면면히 흐르는 한국문학의 굵은 물줄기를 느낄 수 있다.이들 소설의 푯대는 무엇일까. 올해 80세인 김준성.은행가였던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이 시를 마치 소중하게 보관해야할 재화처럼 생각했듯이,중앙은행 총재 출신의 작가 김준성 역시 문학을 우리의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영적 자산으로 여긴다.그는경제전문가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문학의 자양분으로 삼는다.98년작 ‘욕망의 방’에서와 마찬가지로 표제작‘먼 그대의 손’에서도 그는 경제적 위기가 소시민 가정을 어떻게 유린하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청준의 ‘내가 네 사촌이냐’는 동양의 가치관과 정신이 녹녹히 배어 있는 작품이다.토속적인 한이 소설을 감싸고 있지만 이 작품의 보다 근본적인주제는 나환자 세계로 상징되는 ‘닫힌 사회’와 ‘바깥 세상’간의 소통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역설적인 제목의 소설 ‘금의환향’은 댐건설로 인해 수몰지구로 지정된 낙동강 유역 구룡동을 배경으로 사라져가는 마을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이야기를 다룬 중편이다.수몰지구로 표상되는 70년대 농촌사회의 구조조정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미질·구룡·토계·부포 등 청송 일대 농민들의삶과 욕망이 손금처럼 정확히 묘사돼 있다. 한승원은 남도의 한과 정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온 작가.‘검은댕기두루미’는 한승원 특유의 토속적 향기가 짙은 작품으로,가족 간의 신뢰와 애정이 사라져버린 암울한 풍경을 그린다.그러나 삶의 비극적 본질을 통찰한 뒤포용의 철학을 깨닫는 주인공을 앞세워 삶에 관한 의미 있는 잠언들을 들려준다. 김원일의 중편 ‘세월의 너울’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관습과 가치관의 문제를 담담한 어조로 다룬 작품.이문열의 ‘달아난 악령’은 80년대 운동권의 주요 전략이었던 ‘의식화’의 문제를 건드린 작품으로 진보주의자들 사이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이 소설에서 악령은 운동권 교사를가리키지만,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80년대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의 은유적상징으로도 읽힌다. 김종면기자
  • 로댕 ‘지옥의 문’ 상설 전시된다

    인간의 탐욕과 고통,절망을 역동적으로 담은 대서사시로 평가받는 조각 ‘지옥의 문’.‘현대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댕의 예술세계를 집대성했다는 이 걸작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가 마련된다.12일 서울 태평로 삼성플라자 1층에 문을 연 ‘로댕갤러리’가 개관 기념전으로 프랑스 로댕미술관과공동 기획해 여는 ‘로댕과 지옥의 문’전이 그것. 높이 6m가 넘는 대작 ‘지옥의 문’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관능,공포,절망 등을 상징하는 200여개의 조각상을 새긴 것이다. 이들중 ‘생각하는 사람’‘세망령’‘순교자’‘입맞춤’ 등 인물상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걸작품으로 평가된다.1880년부터 30년간 로댕이 수정을거듭해 완성한 ‘지옥의 문’은 로댕 생전에는 석고 작품으로만 보관돼 오다가 그의 사후인 1929년 처음 청동으로 주조됐다.이번 전시되는 지옥의 문은 이 석고작품의 7번째 오리지널 에디션이다.프랑스는 오리지널 에디션 작품을 8∼12개 까지만 제작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삼성생명이 수십억원을들여 로댕미술관으로부터 구입했다. 이번 전시는 지옥의 문을 구성하는 작품들을 ‘인간 세계와 욕망’‘에덴동산’‘지옥과 저주’‘작가의 아틀리에’ 등의 주제로 나누어 지옥의 문이완성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 시작돼 절망적 사랑을 나타내는 ‘영원한 봄’,천상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상징하는 ‘명상’‘입맞춤’,지옥의 저주를 나타내는 ‘우골리노’‘순교자’ 등을 만난다.그리고 로댕의 작업실을 재현한 아틀리에를 거쳐,고통을 겪을 인간을 창조했다는 죄의식에 괴로워하는 ‘이브’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번 기념전에는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오리지널 석고작품 15점,청동및 대리석,세라믹,드로잉 작품 등 파리 로댕미술관이 제공하는 62점과,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동 작품 11점,기록사진 3점,오리지널 포스터 10점 등 총 86점이 선보인다. 로댕갤러리는 삼성이 1995년 미국의 건축가 그룹‘KPF’에 설계를 의뢰해 3년만에 완공한 로댕을 위한 전시공간.로댕의 작품 ‘성당’에서 모티브를 얻어 설계된 ‘글래스 파빌리온(상설전시실)’에는지옥의 문과 로댕의 또 하나의 걸작 ‘깔레의 시민’이 상설 전시되며 일반전시실은 기념전이 끝나면 외부에 대관된다.전시기간은 14일부터 9월12일까지.(02)2259-7781,2.
  • 배평모씨 실크로드등 답사 소설‘하늘로 ‘펴내

    중견 소설가 배평모씨가 고구려 유민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의 발자취를더듬은 소설 ‘하늘로 떠나는 배’(전2권·아선미디어)를 펴냈다.현대인의일탈심리,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여로소설의 형식을 빌려 그렸다.작가는 실제로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양쯔강,허시우(河西)회랑,타클라마칸 사막,쿤룬산맥 등 1만5,000㎞가 넘는 실크로드 지역을 직접 답사했다. 이 작품의 독특한 구성은 실화소설이란 착각이 들게 한다.작가와 직업과 이름이 같은 ‘배평모’라는 인물이 카메오로 출연,주인공 병익과 중앙아시아초원에서 만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주인공은 서역을 방황하던중 ‘움직이는 호수’라는 전설로 유명한 로프노르호수를 찾아간다.그 여정에서 문득 사막이 바로 ‘길’임을 깨닫는다.막힘과 걸림이 없는 땅 사막,그러나 사막의 길엔 우회로가 없다.사막은 왜곡이나 위선을 용납하지 않는다. 환상적인 분위기의 소설 끝대목은 소설의 주제의식을 한층 보강해준다.“화염이 사그라진 잉걸불처럼 붉게 이글거리던 태양이 마침내 서역의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그것은 욕망의 죽음이다.
  • [대한광장]윗분 섬기기, 아랫사람 챙기기

    사회생활의 이력이 오래라고는 할 수없지만,늘 어려워 쩔쩔매는 것이 인간관계이다.인간관계는 그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 가장 좋다는 주위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누군가가 이 사람과는 50㎝ 정도,저 사람과는 1m 가량 거리를 유지하라고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언젠가 읽은 글 중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는 귀절이 있었다.이분법에 대한 탁월한 조소(嘲笑)인 셈이다.그럼에도 나 역시 이분법적 사고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가 보다.주위를 둘러보면 대개 두 부류의 사람이 보이니 말이다.하나는 윗분을 극진히 섬기는 사람들이요,다른 하나는 아랫사람을 열심히 챙기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을 유형화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는 줄 알지만,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하기에는 유형화만큼 좋은 무기도 없는 것 같기에 위험을 무릅써 보련다.윗분을 극진히 모시는 사람은 대개 아랫사람들에게 가혹하다.‘내가 윗분 모시는 것 잘 보고 너희들도 나를 이렇게 모셔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사람일수록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히 여기며,위·아래 서열의식이 확실하다.때로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불안감을 과잉충성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윗분의 마음은 그렇게 잘 헤아리면서 아랫사람의 마음은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은 종종 조직에서 ‘왕따’가 된다.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들은자신이 ‘왕따’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윗분 역시 눈 앞의 진상에만눈이 어두워,자신을 극진히 섬기는 부하 직원이 ‘왕따’인 것을 눈치채지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반면 부하직원 열심히 챙기는 사람은 대개 윗사람에게 불손하다.겉으로는정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권위를 혐오하는 것 같으나,실은 자신이 윗사람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분노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자신은 영원한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항상 불평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은 종종 ‘스스로 왕따’가 된 채 이유를 알 수 없는 피해의식에서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충족되지 않은 욕망 덕분에 상대적 박탈감도 유달리 크게 느낀다.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윗사람에 대해 불성실로 저항하기도 한다.겉으로는 겸손함과 평등의식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권력욕과 오만함을 숨기고 있는 이들은 때로 소(小)영웅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옛말에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지나치게 윗분을 잘 모시는 사람은 윗분의 입장에서도 경계할 일이다.아랫사람 무시하면서 윗분 섬기는 사람치고 자신의 욕심을 챙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지나치게 부하직원 돌보는 사람 역시 아랫사람의 입장에서도 조심할 일이다. 윗분에게는 불손하면서 아랫사람 돌보는 사람치고 자신의 욕망을 던져버린사람은 없다.지나친 사람 앞에서는 늘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학생들이 내게 와서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교수님들이 총애하는 학생하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있는 학생이 달라요”같은 제자들이 졸업 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상사들이 총애하는 사람치고 부하 직원들이 존경하는 사람 없어요”생각할수록 두려운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깊어만 가는 느낌이다.마음같아서야 윗분도 잘 모시고 아랫사람들도 잘 챙길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이겠으나,실상은그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니,하나라도 확실히 할 수 있으면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성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특별기고]천 냥 빚과 말 한마디

    “말,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말,그것으로 인하여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고 거인을 철저하게 두드려 없앨 수도 있다”이것은 하이네가 한 말이다. 어느 날 가위와 톱과 혀가 서로 입싸움을 벌이고 있었다.먼저 가위가 입을열었다.“나는 어떤 천이라도 날카로운 내 이빨로 끊어낼 수 있다.조금도 흠을 남기지 않고서 말이다”그러자 톱이 말했다.“내 이빨은 장작을 썰어낼수 있고,나무토막도 거뜬히 베어낼 수 있다” 그러자 혀가 소리쳤다 “너희가 아무리 으시대 봤자 소용없다.내가 가진 위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나는 남의 명예나 평판을 단번에 반쪽으로 쪼갤수 있다.친구 사이에 끼어들어 의리를 갈라 놓을 수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사와 가정일에 파고들어 짓이겨 놓을 수도 있다.나는 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짓씹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그러자 가위와 톱은 입을다물고 말았다는 옛날 얘기 한 토막. 우리 사회는 언어폭력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하다.신은 인간을창조하실 때 금수가 가질 수 없는 두 가지 기능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신의 품성을 닮은 이미지와 언어이다.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신을 경배하는 신앙수단이었다.그리고 훨씬 뒤 인간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언어를 손으로 표기하는 문자를 발명했고 그것은 현재 정보통신의 시발점이 되었다.그러니까 언어나 문자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자는 데 그 뜻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어와 문자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인간 살상무기로 오용되는가 하면 남용되고 있다.최근 사이버 공간에서의 언어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가 하면 사이버 스토킹까지 등장하고 있는데도 제도적 장치는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언어폭력은 독버섯처럼 뻗어나는가 하면 독가스처럼 계층도 없이 스며들고있다.부부가 주고받는 일상대화,감정이 치솟았을 때 주고받는 대화의 수위는 어떤가.그리고 그 틈새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받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언어순화는 가정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정치권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국회의원들의 상대당 깎아내리기와 상대당 지도자 흠집내기에 동원되는 언어폭력을 지켜보노라면 그 양식이 의심스럽다.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아이들이 뉴스를 볼까 겁난다. 언어폭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영상과 전파,그리고 인쇄를 포함한 모든 매체의 책임은 더 중하고 크다.대문짝만한 활자와 지면으로 개인이나 공동체를 파멸시키다가 그것이 오보로 밝혀졌을 때 정정이나 사과보도는 하단석줄로 얼버무리는 인쇄 매체들,한 사람의 인격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하드라마로 엮어 짓밟은 후 정정보도는 토막소식으로 다루는 영상 매체들. 그뿐인가,건전문화 창달과 국민계도의 첨병임을 자처하는 대중매체들이 소비와 향락문화를 부추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위험수위를 넘어선 폭력이 아닐수없다. 1930년대 미국이 경제공황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미국국민들은 루스벨트대통령의 라디오연설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이유는 국민들에게 위로와 비전을 제시하는 대국민 연설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만이 자신의 욕망과 행동,그리고 언어와 사상을 조절할 수있는 힘을가지고 있다.절제되지 않는 언어는 살상무기이며,조절되지 않는 행동은 활화산과 같아서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 모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네 조상들의 금언은 전원을 가로질러 풍겨오는 꽃내음처럼 소박하고 싱그럽다.언어폭력일랑 몰아내고 우리동네를 꽃마을로 만들자.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
  • ‘두들림’ 연주자 최소리 16~18일 첫 단독공연

    세상 만물을 두드려 그 울림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빚어내는 타악기 연주자최소리(33).97년부터 ‘두들림Ⅰ·Ⅱ’ ‘5월의 꽃’ 등 3장의 앨범과 각종연주활동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알려온 그가 오는 16∼18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첫 단독공연을 갖는다. 최소리가 연주하는 악기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북이나 장구와 같은 기존의 타악기는 물론이고 쇠붙이,돌,나무토막 등 온갖 사물도 그의 손과 발만 닿으면 어느새 악기로 변한다.심지어 물과 종이도 고운 선율을 낸다.지난 92년 이리저리 모은 1천여개의 도구를 끌고 입산,외부와 단절한 채 5년간 소리의 세계에 파묻힌 결과이다.어릴 적부터 유난히 타악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중학생 때 드럼 연주를 시작했고,90년대초 록그룹 ‘백두산’의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소리는 자신의 음악을 ‘두들림’이라고 표현한다.모든 사물을 두드려서나오는 소리를 뜻하는 이 말은 그의 연주방식이자 하나의 음악장르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어법상 두드림이 맞지만 그는 두들림을 고수한다.이번 공연은그의 타악 연주뿐만 아니라 사물놀이,피아노·색소폰 등 서양악기,춤,노래등이 한데 어우러진 혼합 퍼포먼스로 진행된다.4개의 장고와 최소리의 북이협연하는 동안 한켠에서 상모춤이 펼쳐지고,그의 독특한 연주기법인 발을 이용한 북연주와 전자기타가 신명나게 어우러진다.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게 아닙니다.청각 시각 등 오감이 모두 열리고,마음까지 움직여야 제대로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번민’‘히로시마의 기억’‘비단길’ 등 7곡을 선보인다.‘번민’은 양손에 쥔 8개의 채로 가죽,나무,줄을 두드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욕망과 공허함을 표현한 곡.‘히로시마의 기억’은 드럼의 한 종류인 라지탐의 가죽을 발로 눌러 폭격소리와 전투기소리를 재현하는작품이다.색소폰주자 서정근,재즈피아니스트 박민선,발레리나 지혜명,사물놀이패 몰개 등 10여명이 함께 무대에 선다.오는 8월7일 일본 시마네겐 하마다시의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에도 나선다.(02)548-4480李順女 coral@
  • 서방언론·심리학자들 분석…밀로셰비치는 ‘다중 인격자’

    잔학한 ‘인종청소’작업을 수년째 계속하고 있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57).무엇이 그를 인류문명사를 후퇴시킨 ‘살육자’로 만들었을까. 보스니아 전쟁의 피가 채마르기 전에 재연된 ‘인종 청소’로 충격받은 서방언론과 심리학자,역사학자들은 밀로셰비치의 성장과정과 심리상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다중인격’‘자아도취’‘정신분열증’.참혹한 가족사가 그를 권력을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슬로보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자유’.그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5살때 밀로셰비치와 부인을 버리고 가출했다가 밀로셰비치가 21살되던 해 총으로 자살했다.또 밀로셰비치가 아버지 대신 따르던 삼촌(군인)도 역시 총으로 자살했다.음울한 성격의 공산주의자인 어머니와 살던 밀로셰비치는 10년 뒤 그어머니마저 거실 전등에 목을 매 자살하는 참극을 겪어야했다. 극도의 정신적 충격과 혼란속에 성장기를 보낸 밀로셰비치는 자연스레 비사교적이고 차가운 성격으로 변했고 권력과 타인에 대한 지배욕망은 본능처럼밀로셰비치를 지배했다. 밀로셰비치는 항상 흰색셔츠와 검은색 양복 차림을 고집하는 일종의 ‘결벽증’도 갖고 있다.스포츠와 외출을 극도로 기피한다.고교시절 만난 마르크스 이론교수인 부인 미랴나 마르코를 빼면 개인적인 친구는 아무도 없다.‘침실 정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밀로셰비치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는 부인 미랴나의 어머니도 2차대전중 목숨을 잃은 공산주의자였다. 밀로셰비치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이제까지 한번도 세르비아 병사들의 막사나 병원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부상한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로 던지지 않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권력이 그의 손에서 떠나려 하는 순간,그는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할 것이다”세르비아의 한 전직관리는 밀로셰비치 독재의 막이 내리는 순간을 이렇게 내다봤다. 金秀貞
  • 이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실체 찾기

    이정우씨 '인간의 얼굴'서 구체적 방법 제시70·80년대는 모든 것이 분명했다.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대체로 눈에 보이던 시대였다.삶은 고단했지만 우리 뇌에는 끊임없는 문제의식이 꿈틀댔고,그것은 역사적 보편성을 토대로한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90년대는 그 이전과 많이 달랐다.고도의 소비문화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대중의 관심은 스포츠 연예에 쏠렸다.성 문제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했고 사이버 만능 풍조가 사회를 덮었다.‘인간복제’란 말까지 자연스럽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그러면서 한때 뜨거웠던 열정과 희망은 초라해졌고 진실을 찾고자 하던 꿈도 실종되어 갔다.그것은 시대적 단절이었다.그리고 그 단절과함께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사람들의 정체성은 해체되어 갔다. 이정우의 ‘인간의 얼굴’(민음사 1만5,000원)은 바로 ‘정체성 상실의 시대’에 새로운 정체성,새로운 주체를 찾기 위한 탐색작업이다.정체성 상실의 원인을 역사학적으로 진단하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그리고 그 작업을 해 나가야 할,즉 이 시대에 요청되는 지식인의 실체를 밝힌다. 저자에게 우리시대는 뿌리 없는 해체와 복고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시대다.즉 전통적 가치를 송두리 째 폐기하고 뒤늦게 그것을 다시 그리워하며 동요하는,얽히고 설킨 시대다.그는 이 원인을 우리의 현대가 과거로부터 연속선 위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급격한 카타스트로피에 의해 단절됐기 때문이라고 본다.즉 조선중기 이후 자생적인 근대화 과정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일본과 서구를 통해 들이닥쳐 형성된 타생적 근대성만이 최고의 선으로 대접받아 왔다는 것이다.그런데 서구적 근대성의 한계가 드러난 지금 우리는 바로 ‘탈주’와 ‘회귀’의 혼돈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생적 근대성의 가능성을 보였던 다산 정약용의 근대사상이 단절된 것을 아쉬워한다.다산은 소작농 유민의 증가,서얼(庶孼)과 중인들의 권리 주장,지방유림과 관료의 정부와의 대립 등을 사상적으로 포착했으며 개념화했다.그리고 전통사회의 완전한 폐지나 서구적 근대성을 주창하기보다는 전통적 사유에 기반해 기존사회의 개혁을 꾀했다.다산은 이렇게 전통적 가치와 연계해 근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유 패러다임을 위해 중요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저자는 다산이 했던 것처럼 우리시대의 사유가 현재,즉 90년대의 수많은 변화된 풍경들을 개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이 작업은 80년대의 시대적 고뇌와 근대 이후의 세계사적 흐름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바로 우리 시대,그리고 다가올 시대를 사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야할 우리의 지식인 상황은 좋지 못하다.적어도 저자의눈에는 그렇게 비친다.그들은 지금 무조건적인 탈주를 외치며 우리를 무정부주의적인 혼란으로 몰아가거나,단순한 복고만을 강조하여 시대착오적인 고풍취미로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 저자가 말하는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지식인은 어떤 사람들인가.그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개인적 욕망을 자제하고 어떤 보편적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해주는난로이며,어두운 동물의 세계를 면하게 해주는 등불과 같은 사람이다.이러한 지식인은 우리 대학에 있는 ‘전문가’가 아니다.그는 말하는 지식인이란한 개인의 내면적 속성이 아닌,사회적 행위를 이루는 특정한 양태를 말한다. 환경미화원이나 파출부도 사회를 가로지르는 특정의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지식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자기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사람들이란 새로운 개념의 ‘신지식인’은 ‘새로운 정체성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한 단계 격을 높여야 할 것 같다. 임창용 기자
  • KBS·MBC 신춘 일일극 대전

    KBS와 MBC가 4월 5일 동시에 새 일일극을 시작한다.저녁 8시 30분에 방송할 KBS‘사람의 집’(박진숙극본,김현준·표민수연출)과 MBC‘하나뿐인 당신’(박정란극본,정운현연출)이다. 일일극 두 편의 양대 방송사 동시 발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일일극 인기=9시 뉴스 시청률’의 공식이 정설처럼 굳어져 8시30분 일일극 경쟁은9시 간판뉴스 시청자 선점을 위한 방송사의 대리 전쟁이 된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메인뉴스인 9시 뉴스의 시청률이 바로 앞 프로인 일일극의 인기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최근 3년간 확실히 증명돼 왔다.그래서 두 드라마의 경쟁은 양 방송사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다. 출발은 MBC가 유리해 보인다.현재 방송중인 ‘보고 또 보고’의 시청률은 55.9%로 KBS의 경쟁프로 ‘내사랑 내곁에’(12.7%)를 큰 폭으로 앞서고 있다. (이하 시청률은 3월25일 미디어서비스코리아 조사 기준).‘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역시 24.9%로 ‘KBS 9시 뉴스’(20.3%)를 앞지른다.그러나 큰 인기를 누린 프로의 후속은 ‘죽을 쑨다’는 징크스가있는데다쫓기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 KBS는 다시 일일극 우위를 빼앗아야 ‘뉴스도 산다’는 부담감을 의식하지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양 방송사가 빼든 카드는 특별하다.MBC 독주에 제동을 걸었던 95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KBS는 최수종과 채시라를 앞장세웠다.‘사람의 집’은 특별할 것없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사는’이야기를 그릴 예정.남능미와 고두심에게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상처깊은 인연을 만들어 줘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마당깊은 집’등을 썼던 질박한 삶의 작가 박진숙씨를 믿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연출자 김현준PD는 짐짓 경쟁의 부담을 내려 놓는다. 한편 MBC도 3년3개월만에 TV에 돌아오는 김희애를 앞장세웠다.‘하나뿐인당신’은 서울 변두리에서 지물포를 경영하는 가족의 희로애락과 사랑을 그릴 인생드라마.연기의 리얼리티에 있어 아무도 그녀를 따를 수 없다는 김희애 외에 유오성,변우민,김인태,정혜선,백일섭 등 굵직한 연기자들을 캐스팅했다. MBC는 작가 박정란씨의 안정감과 정운현PD의 역량에기대 ‘비난받지 않는’건강한 삶으로 인기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새 드라마의 재미 만큼이나 치열한 경쟁도 볼거리라 8시30분 시간대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 TV오락프로 ‘가학성’ 위험수위

    TV의 ‘가학성’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3방송사의 대표적인 가족시간대 오락프로인 ‘왕따’와 ‘몰래카메라’ 등이 가학적 흥미를 주는 데 급급해,문화환경이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실련 방송모니터회는 24일 ‘위험수위에 이른 TV의 가학적 문화현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이 보고서는 지난 2월 한달동안 인기있는 5개의 가족대상 오락프로를 모니터한 결과를 평가한 것이다. 그 결과 ▒타인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신체적·심리적 폭력양상이 두드러졌고 ▒집단따돌림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가 하면 ▒몰래카메라가 갈수록 가혹해지고 있다고 밝혔다.또 이들 프로는 사회적인 문제를 웃음거리로 교묘하게 ‘왜곡’시키거나 개인의 사생활을 걸핏하면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KBS2‘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서바이벌 미팅’은 한사람씩 탈락시키는 방법을 통해 남의 불행을 즐기게할 뿐아니라 머리로 박을 깨뜨리게 하거나,주걱으로 뺨을 때리는 벌칙 등 신체적 학대를 통한 웃음유발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SBS의 ‘기쁜 우리 토요일­내가 원하는 참사랑’도 친구 사이를 사랑이냐우정이냐는 이분법적 대결구도로 몰아넣고서는 그들이 받는 신체적·심리적인 괴로움을 즐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MBC‘김국진 김용만의 21세기 위원회’는 한 사람을 매주 ‘왕따’시켰고,SBS‘기분좋은 밤­랭크 실험실’은 연인이나 친구,심지어 부모와 자식간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해놓고 웃지못할 해프닝을 카메라에담았다.또 같은 프로의 ‘악마의 속삭임’역시 훔쳐보기란 욕망을 지나치게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됐다. 최근 몰래 카메라가 여자화장실과 탈의실에 설치되고,‘몰카식 에로 비디오’ 등의 관음적 저질문화가 만연하는 가운데 공중파가 이같은 ‘가학적 프로’를 방송하는 것은 단순한 재미로만 돌려버릴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경실련은 비판했다.
  • [새영화]’욕망의 모호한 대상’

    3월의 마지막 주말인 27일 ‘영화계의 전설’인 루이 브니엘 감독의 작품이 국내에 두번째로 공개된다.‘욕망의 모호한 대상’.루이 브니엘은 영화계의 다른 거장 알프레드 히치코크가 “진정한 거장”이라며 존경한 감독이다. 이 영화는 지난 83년 83세로 숨진 루이 브니엘이 77년 만든 걸작이다.70대노인이 만들었으나 젊은 감독의 작품보다 더욱 ‘젊고 싱싱한’ 감성을 담고 있다.또 20여년 전 작품이지만 스토리의 예측불가성이나 출연배우의 매력등은 웬만한 요즘 영화보다 낫다.이 영화는 남자와 여자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화면으로 자유롭게 이끌어낸다. 돈밖에 없는 중년남자 마티유와 몸매를 이용해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젊은여자 콘치타가 영화를 이끌어나간다.남자는 돈으로 ‘사랑’을 얻으려 하지만 여자는 갖가지 기막힌 아이디어로 남자를 애태운다.어느덧 남자는 여자의 가학성을 즐기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만….남녀의 밀고 당기는 욕망의 줄다리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특히 마티유는 2인1역이어서 흥미를더한다.나중에 ‘007 유어 아이즈 온리’에 본드걸로 나온 케롤 부케와 안젤라 몰리나가 함께 연기했다.루이 브니엘 감독은 이같은 파격적인 요소를 도입,단순한 줄거리에 변화를 준다.어떻게 보면 남자의 눈에는 한 여자가 때때로 전혀 다른 두사람으로 보이는 상황을 상징한 듯하다.루이 브니엘 작품은국내에서 지난 60년대 ‘세브린느’가 처음 공개됐었다. 한편 루이 브니엘 작품의 개봉을 맞아 27∼31일 ‘영화와 사진,그리고 음악이 함께 하는 슬라이드 쇼’가 서울 동숭시네마테크 2관에서 개최된다.(02)3672-0181
  • 세계 정상급 네덜란드 무용팀(NDT) 온다

    11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무용을 볼 수 있다.세계무용계를 주도하는 유럽 2대안무가중 하나인 지리 킬리언의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Netherlands Dance Theater)’가 한국 팬을 찾아온 것이다. NDT는 지난 59년 ‘기존의 발레 틀에 도전한다’는 주장을 내걸고 18명의젊은이가 세운 ‘네덜란드 발레단’이 모태.60년 이후 유럽에서 명망을 얻다가 75년 체코 출신 안무가 지리 킬리언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질적 비약을 통해 세계적 무용단으로 자리잡았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행방불명’‘시작,그리고 끝’‘이카루스의 날개’ 등이다.모두 NDT가 90년대에 공연한 것이어서 우리 관객은 최정상급 무용단이 펼치는 최신 조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킬리언은 자신이 직접 안무를 맡은 ‘행방불명’에 대해 “의식과 무의식,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분명하지 않은 메시지를 읽어내려고 노력함으로써 존재하는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카루스의 날개’.날고 싶은 욕망으로 밀랍 날개를 달고 날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는 바람에 땅에 떨어져 죽은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 주인공 이카루스가 모티프다.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을 찾아 비상해 온 킬리언의 무용세계를 옮긴 듯한 이 작품은 “매혹적이고 극적인 이미지”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NDT에는 NDTⅠ,Ⅱ,Ⅲ 등 3팀이 있는데 NDTⅡ팀이 지난 92년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다.이번에 오는 팀은 이중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NDTⅠ팀으로 한국무대는 처음이다.고전 발레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어떤 테크닉도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숱한 평론가들이 ‘마법’에 비유하는 킬리언의 무용 세계를 만남으로써 한국 무용계와 팬의 눈높이도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이번 공연을 바라보는무용계의 시각이다. 무용평론가 장광열씨는 “이번 무대는 예술적 감동을 주는데 안무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자리”라며 “간단하면서도 치밀한 무대장치와 뛰어난 조명·음악·의상을 보여줌으로써 규모에만 신경쓰는 우리 무용계에 자극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14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목·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6시 일 오후 3시.(02)580-1300李鍾壽
  • 고은 소설 ‘수미산’…수미行者의 비장한 구도정신

    고은 시인(67)이 ‘소설 화엄경’에 이어 또 하나의 구도소설을 냈다.물무늬 같은 선적(禪的) 감수성이 빚어낸 장편 ‘수미산’(전2권,대원정사).‘소설 화엄경’이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을 그저 평면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면 ‘수미산’은 천상과 지옥,축생과 아귀 등을 종횡으로 오가며 존재의 의미를캔 매우 입체적인 소설이다. 환속을 했다고 하지만 고씨는 마음 한 자락을 여전히 산문(山門)에 걸쳐 두고 있다.선의 정신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작품들을 통해 그는 특유의 ‘화엄적 변증법’의 세계를 일궈왔다.‘수미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이 작품은 보통 소설들과는 달리 구도가 미리 짜여져 있지 않다.등장인물이 그때 그때 스토리를 이끌고가는 형식으로 꾸며졌다.따라서 주인공이 따로없다.각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업보와 발원을 안고 세상을 편력하는 식이다.구태여 주인공을 들라면 우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수미산이라고 할 수 있다.수미산은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의 산이 아니다.그것은 인도의히말라야산을 본뜬 허구의 산이요상상의 산이다.그러나 이 마음속의 산인수미산은 작가에게는 눈에 보이는 히말라야보다 더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다. 소설에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밑으로는 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세계가 펼쳐지며 그 위로 층층이 솟아 있는 하늘에는 신들의 세계가 무진장으로전개된다. 소설의 공간적 출발점은 서해안의 무인도인 무욕도(無慾島).서산 간월암(看月庵)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바다의 도량’은 이름 그대로 세속의 번뇌와욕망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수행인의 발원이 담긴 섬이다.이 무욕도의 수행자들은 일정한 경지에 든 뒤에는 자비행에 나선다.소설은 지장보살처럼 지옥마저 구도의 장으로 삼고 신음하는 중생을 구하려는 수미행자의 비장한 삶에서 절정을 이룬다. 불교에서는 본래 윤회를 부정적인 눈으로 본다.윤회의 사슬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작가는 윤회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윤회를 무한한 수행과정으로 인식하는 그의 시각은 그래서 독특하다.그는 “누가 해탈을 윤회의 반대라고 하는가.윤회야말로 우주의 힘이고 세계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법칙이다”라고 사자후를 토한다.윤회가 해탈이라는 이 언어도단의 이치.그것은 작가로 하여금 미물조차도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받아들에게 한다.그는 이제 이 세상에 작은 짐승이나 심지어 아메바로 태어나도 좋다.고은 시집 ‘속삭임’에 나오는 시 ‘내생’을 보면 그의 윤회·해탈관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겠다/결코!//이 다음에 나는 짐승이면 된다/큰짐승이 아니라/잔 진승이면 된다/또는/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아메바이면 된다…” 이렇듯 그는 끝없이 태어나고 죽는 윤회의 과정을 무한한 수행의 과정이요,깨달음이 동터오는 삶의 장으로 껴안는다.생사를 들고 나는데 작가 고은은그토록 자유롭다.억겁의 세월이 지나 그 세월마저 무너져내릴 때까지….
  • [굄돌]새내기를 위하여/홍희표 목원대교수·시인

    새봄을 알리는 3월에 들어서면 초등학교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새내기들의 입학식이 시작된다.누구에게나 새출발을 의미하는 입학식은 소중하다. 모든 새내기들에게 그 첫 발디딤이 싱싱하고 건강하고 탄력있기를 바래본다. 새내기란 이름은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가.부럽게 새내기들을 보면서 내가 다시 새내기가 되면 어떻게 대학생활을 시작할까 상상해본다.진정 시간위에 서있는 존재의 가벼운 흔들림을 헤아리며,다시 대학생활이 주어진다면최선을 다하고 싶은 명제가 떠오른다. 첫째로 책읽기,인간의 만남 중에서 위대한 책과의 만남처럼 깊은 인연은 없다.좋은 책은 가장 큰 기쁨이고,인간의 보배 중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한 인간의 성취는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있다.아무리 영상의 시대라고 하지만 오로지 열심히 책을 읽을 것이다.우리 새내기들은 활자 중심의 이성의 시대를 올곧게 지켜야 하지 않을까. 둘째로 여행하기.떠날 수 있는 1%의 기회만 있다면 나는 무장정 훌훌 낯선곳으로 떠날 것이다.떠나고 싶다고 늘상 말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어렵고 막막한 날들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살아가고 싶었던 순수욕망을 충복시키자면 떠나야 한다.구름에 달가듯이 떠나는 용기 속에서 사랑과 자유와 깨달음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사람사귀기.“인간존재란 결국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생텍쥐베리는 말했다.대학생활의 목적으로서 손꼽아야 할 것은 전체로서의 인격의 형성인 것이다.좋은 친구와 연인,동행자 그리고 선배나 스승과 깊이 사귀는 것은 개인적인 인격형성을 위해 도움이 되고 그 자체가 매우 값진 것이다. 입학식에서 새내기를 보면서 나도 헌내기에서 저절로 새내기가 된다.나에게도 이 봄은 새로운 출발인 것이다.향그런 새봄의 출발은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해진다.언제나 그런 새내기의 기분으로 살고 싶다.
  • [굄돌] 백수로서의 예술가

    졸업과 입학이 교차하는 시간이다.수많은 미술학도들이 사회로 나올 것이다.매년 미술 관련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이 6,000∼7,000명이 된다고 한다.미술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강사 입장에서 이 사실은 적잖이 당혹스럽기도하다.왜냐하면 순수미술을 전공한 이들은 대개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갖지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그러나 예술가들도 사회의 일반인들과 같은 삶의 욕망과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인간들이다.또한 먹고 살아야 창작도 하는 것이다.예술한다는 이들은 삶과 이상,그 둘 사이에 경계를 현기증나게 오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예술가들은 적당한 타협을 하거나 세속적인 욕망을 예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과 삶의 욕망을 누르고 스스로 택한 예술가로서의 빈한한 길을 묵묵히 가는 부류로 나뉜다.원래 예술이란 백일몽이고 자유의 추구가 아닌가?예술가란 태생적으로 백수들이다. 예술을 추구하고 실현하고 여기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예술가는 일반인들이 바라는 세속적 삶과는 다르다.그 차별성 때문에 사람들은 예술과예술인들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한다. 예술인들은 한 사회의 자유와 꿈을 실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그러나 오늘날 그같은 예술가들을 보기란 어렵다.더욱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본과 경제력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예술 역시 한결같이 돈과상품이 되는 쪽으로만 몰려가고 있는 상황이다.그래서인지 영상과 문화관련사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폭되는 것 같다. 최근 대학마다 캐릭터 에니메이션과,멀티미디어과,도시환경디자인과,영상만화과,컴퓨터그래픽과 등등이 우후죽순처럼 신설되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몰리고 있다.좋은 일이긴 하다.그러나 대학의 장사속,문화인프라에 대한 과장된 수사들,미술이나 문화를 오로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편협하게 생각하려는 경향 등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의 기능과 예술가들의 삶이 보다 진지하게 이해되는 문화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생각이다./박영택 미술평론가
  • 한자-한글 병용 표기 반대

    광복 뒤 우리나라 국민의 글자살이는 큰 진전을 보여왔다.한자투성이의 글자살이에서 거의 완전한 한글전용의 글자살이로 바뀌었다.이것은 한글이 글자로서의 기능이 절대 우수한데다 광복 뒤 우리 겨레가 민족 자주정신과 민주정치를 쟁취하려는 욕망에 차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아울러 이는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이기도 한데,한글은 이러한 정신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서 자양분을 받으면서 자라왔다. 한편 1948년 국회는 ‘한글전용법’을 제정하면서 공용문서는 한글로 적도록 하되,다만 당분간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이러한 단서가 붙은 것은 당시로서는 한글로만 쓰기에 아직 익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뒤 우리 민중의 한글전용 글자살이는 많이 진전되어 1970년 정부는 공용문서를 한글만으로 ‘가로쓰기’하되 표준말을 바르게 쓰도록 ‘대통령령’으로 규정하였다.이것은 역사의 진전에 발을 맞춘 매우 적절한 처사였다.이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그 글자살이를 한글전용으로 굳혀온 것이다.이것은 일본이나 중국이 흉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에서는 이러한 한글전용의 글자살이를 뒤로 돌려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하니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은 역사의 나아가는 방향을 모르고서 그 진전의 도도한 흐름을 뒤에서 끌어당기려는 반역사적인 처사라고볼 수밖에 없다.너무나 심한 맹목적 글자정책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해괴망측한 일로는 도로표지판에조차 한자를 ‘병기’한다는 것이다.일본이나 중국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서란다.매우 어리석은 발상이다.관광객을 모셔오려면 관광상품을 잘 개발해야 하는 것이지 도로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니 정말 유치한 발상이다.우리는 이미 도로표지판에 로마자를 병기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그런데 무엇이 모자라서다시 한자를 아울러 쓰겠다는 것인가? 도대체 어찌하자는 것인가? 또 그 돈은? 동양 세 나라가 한자를 쓰기 때문이라고 자랑삼아 떠들어댄다.그러나 이 세 나라의 한자 읽는 방법이 다르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한자로 적어놓으면 중국이나 일본사람은 우리말 소리로 읽지를 않는다.그러나 지금과 같이 로마자로 적어놓으면 우리말 소리를 바로 낼 수가 있다. 21세기를 향하여 뛰겠다던 정부의 발상이 기껏 이 정도라는데 정말 실망을금할 수 없다.한자는 정보화시대의 크나큰 걸림돌임을 왜 모르는가?
  • 굄돌-가격파괴 전시

    가끔 외신을 통해 거액의 미술품 도난사건을 접한다.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천문학적 액수로 그림이 팔려나갔음을 듣기도 한다.그만큼 미술품은고가의 진귀한 물건으로 인식된다. 최근 개봉된 영화 ‘제너럴’에는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도둑 마틴 카힐이미술관에 잠입,가격 순으로 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그것은 미술품의 가치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미술품은 태생부터 ‘귀족적’이었다.원래 그림·조각은 지배계급만이 독점했었는데 미술관의 등장으로 일반인들도 보고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업화랑의 등장에 따라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미술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미술품을 선뜻 구입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며칠전 모 미술대학의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 선배 화가들이 기증한 약 2호 크기의작품 200여점이 전시되는 행사가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열렸다. 모든 작품이 40만원 균일가에 판매되었으며 선착순에 따라 작품을 고르면주인이 되는 이 ‘게임’은 무척 흥미진진했다.화랑문이 열리자 마자 달려들어 유명작가 순으로 싹쓸이를 해 한시간만에 거의 모든 작품들에 팔렸다는표시의 빨간 스티커가 붙었다. 좋은 기획의도와 ‘가격파괴 전시’가 어우러진 이번 전시회는 그림을 좋아하지만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림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미술애호가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 차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불황에 빠진 화랑가로 미술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호당가격제,지명도에 의존해 유지되는 현재의 미술품 가격형성 구조를 화랑 스스로 탈피해 나가고자 하는 의욕도 주목된다. 그러나 미술품이 백화점의 반짝세일 마냥 팔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객들의 선호 작품이란 것이 자신의 미적 취향 보다 지명도와 투자가치에 의존한 면도 아쉽다.하지만 화랑들이 미술품을 사고 싶다는 본능적 욕망들을채워주지 못했던 그간의 사정을 새삼 돌이켜 보게 만든 전시행사였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 [책과 세상]박영숙 지음 ‘나는 늘 새엄마이고 싶다’

    버려진 아이들의 엄마 ‘나눔의 삶' 생생히 버려진 아이들을 ‘사랑의 열차’에 태우고 달리는 여인.그녀는 늘 그들의 따뜻한 새엄마이고 싶어한다.자신의 아들 이외에 남의 아이 8명을 키워 온 박영숙씨(44).그녀의 사랑과 교육철학이 담긴 책 ‘나는 늘 새엄마이고 싶다 ’가 출판사 책섬에서 나왔다. 그녀는 한국여성으로는 흔치 않게 영국대사관 공보관이란 직업을 갖고 있다 .남의 아이를 잘 키우는 소설가로도 소문났다.공보관으로,소설가로,영어번역 가로,잡지 편집위원으로 늘 바쁘게 살아간다.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교육방법을 강조한다.그러나 그녀가 생각하 는 훌륭한 사람은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 람을 말한다. 그녀는 남보사연(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들의 연대)과 수양부모협회를 만 들어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처음에는 ‘가진’ 사람들의 참여를 기대했다고 한다.그러나 곧 절망했다.그들의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 남을 돕 는 따뜻한 마음은 없었다.오랜 외국생활과 미국인과의 결혼에서 ‘나눔’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한국의 ‘가진자’들의 인색함은 낯설게 느껴졌다 . “가진자의 이기주의는 잘못된 교육의책임도 큽니다.모두가 내 아이는 ‘왕 자와 공주’가 되기 바라죠.‘이기는 아이 교육’만을 강조합니다.그러나 모 두가 이길 수는 없습니다.지는 자는 좌절에 빠지고 소외됩니다.소외된 아이 는 문제아가 되죠.이기적 욕망 때문에 사회는 병들고 메말라집니다.내 자식 을 아무리 잘 키워도 병든 사회에서 문제아들과 어울려 살지 않을 수 없게됩 니다.결국 내 아이도 불행해지죠.왕자와 공주사이에서 심부름도 하고 질 줄 도 아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녀의 교육철학은 치열한 경쟁의 교육현실에서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들릴 지 모른다.그러나 더불어 사는 따뜻한 마음의 사회를 만들려면 교육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교육은 세상을 바꾼다.그녀의 교육방법은 메마르고 험 한 세상에 사랑의 레일을 까는 일이다.사랑의 열차가 그 위를 힘차게 달릴수 있는 날 더불어 잘사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李昌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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