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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달1일 개봉 핏빛 누아르액션 ‘달콤한 인생’

    “말해 봐요. 우리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죠?”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꼬인 인생이 또 있을까. 화려한 삶의 꼭대기에서 한순간 추락한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순간의 달콤한 상상이 부른 결과라고 보기엔 그 대가가 너무도 가혹하다. 영화 ‘달콤한 인생’(제작 영화사봄·새달 1일 개봉)의 주인공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단지 증오심에 차 복수를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그러진 삶의 이유를 찾아 세상 끝까지 나아간다.“여기가 끝이에요, 더이상 갈 데가 없어요.”라는 대사처럼. ‘달콤한 인생’은 줄거리를 좇는 영화가 아니다. 삶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실존적인 질문과 표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보스(김영철)의 신임을 받던 조직의 2인자 선우(이병헌)는 어느날 보스의 명령을 받는다. 보스의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를 감시하고 다른 남자가 있다면 처리하라는, 어쩌면 그에게 쉬울 수도 있는 임무였다. 미행 3일째 희수가 다른 남자와 있는 현장을 급습하지만 선우의 마음은 흔들린다. 그들을 놓아준 선우는 조직의 쓴맛을 맛보고, 자신을 밑바닥으로 처넣은 사람들을 찾아 복수를 감행한다. 더이상 치밀할 것도 꼬일 것도 없는 단순 명쾌한 줄거리다. 반전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 망에 촘촘히 새겨넣은 인물들의 표정과 상징적인 영상의 깊이는 쉽게 이해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잦은 클로즈업으로 비춰지는 인물들의 표정에는, 한순간 달콤했던 욕망의 그림자와 상실감이 교차하면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이 어우러진 화면은, 핏빛 폭력의 세계 안에서 빛과 그늘이 아이러니하게 스쳐간 삶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음습한 뒷골목을 배경으로 어두운 욕망이 낳는 파멸을 그리는 누아르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사건보다는 심리와 영상미학을 통해 그것을 살짝 비튼다. 하지만 인간을 탐구하려는 감독의 자의식이 두드러져, 홍콩 누아르처럼 대중적인 재미를 확보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남성적인 세계 속에 의리와 배신을 녹여 비장미를 절절히 전달하는 홍콩 누아르에 비하면 사뭇 건조한 느낌이다. 그래도 감성을 담은 액션연기를 폼나게 펼치는 이병헌의 모습은 관객들을 사로잡을 만하다. 피범벅이 되는 상황 속에서도 유머와 품위를 잃지 않는 조연들의 연기도 눈부시다.‘반칙왕’‘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 연출.18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영화 ‘달콤한 인생’ 이병헌

    영화 ‘달콤한 인생’ 이병헌

    그의 얼굴이 이렇게 커다랗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던가. 김지운 감독의 누아르 액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선 이병헌(35)의 얼굴이 자주, 아주 가깝게 클로즈업된다. 그래서 그의 표정과 눈빛에 스며든 빛과 그늘이 선명한 자국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그 안엔 더이상 부드럽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상실감에 떠는 불안한 존재가 웅크리고 있었다. 지난 21일 영화의 시사가 끝난 뒤 마주앉은 그에게선 여전히 영화속 선우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검은 양복을 입은 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누아르 영화속 비극적 주인공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그 강렬했던 표정과 지옥 같았던 촬영현장의 기억을 지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웃는다는 건 선우의 인생에선 사치다. ●고생한 만큼만 관객이 좋아해 줬으면 이병헌이 맡은 선우는 보스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다가 사소한 실수로 인해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역할이다. 보스의 애인에게 순간의 연정을 품으면서 일이 어그러졌다. 피가 범벅이 되도록 맞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땅에 묻히는 등 보기만 해도 섬뜩할 정도로 조직의 쓴 맛을 맛보는 선우. 당연히 배우로서 힘든 촬영이었을 듯싶다.“고생한 것만큼만 나온다면 이 영화처럼 재미있는 영화는 드물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엔 진심이 담겼다. 특히 청평에서 2주간 물에 흠뻑 젖어 촬영한 장면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땅에 생매장된 뒤 흙을 뚫고 빠져나오고 비에 젖은 채로 수많은 사람들과 액션신을 펼치는 그 장면에선 추위와 육체적 고통 때문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너무 괴로워서 감정이 안 살아났어요. 정말 ‘뒈지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죠. 그러다 보니 자꾸 다시 찍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죠.” 그 와중에 따뜻한 말 한마디 않고 오히려 시범을 보인다며 눈도 못 뜰 정도로 호수로 물을 뿌려대던 김지운 감독이 야속하기만 했다.“촬영이 다 끝난 다음에야 농담을 하시더라고요.‘피부가 너무 좋아졌어. 진흙 마사지를 해서 그런가.’라고요.” 총 쏘는 연기도 고역이었다. 처음엔 나름대로 사격장에 가서 연습도 했지만, 실제로 총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 눈을 감게 됐다. 하지만 너무 많이 쏘다 보니까 나중엔 눈을 똑바로 뜬 채 기관총까지 쏘게 될 정도에 이르렀단다. 덕분에 그의 총 쏘는 연기는 그 어떤 액션영화의 주인공보다 폼난다. ●눈빛 속에 수만가지 감정의 결이 액션 연기 못지않게 강렬한 건 그의 눈빛 연기다. 보스의 애인 희수(신민아)에게 선물을 건넨 뒤 힐끔힐끔 쳐다보고, 그녀가 연주를 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녀를 미행하며 뒤에서 지켜보는 그의 눈빛은 화면 가득히 울린다.“사랑이라기보다는 순간순간 다가오는 강렬한 느낌들을 표현했다.”는 게 그의 설명.“빅 클로즈업이어서 제가 표현한 감정보다 크게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저도 스크린을 보면서 ‘내가 그런 감정이었구나.’라고 느끼죠.” 보스(김영철)를 향한 애증이 담긴 눈빛도 잊을 수 없다. 이룰 수 없는 욕망과 사랑에 대한 보고서로 영화를 읽는다면, 아마도 선우가 사랑한 대상은 희수가 아니라 보스이지 않았을까.“자기만 편애하던 선생님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야단을 치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라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런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 느낌 이상이다. 절대적으로 사랑한 대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 느끼는 절절한 상실감의 눈빛. 그 눈빛 때문인지 그도 자신을 버린 보스를 처음 바라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영화 속 선우의 삶은 결코 달콤하지 않지만, 액션에 감성의 결을 채워넣은 그의 연기만큼은 달콤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내 느낌대로 내 소신대로 영화의 삭제신을 모아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했던 그에게 감독의 욕심은 없는지 물었다.“마케팅 회의 때 그냥 던져본 말이었는데 제 대답도 안 듣고 편집실을 예약해 버렸더라고요. 얼결에 그렇게 된거지 이걸 시작으로 연출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라 앞 뒤 재지 않고 출연을 결심했던 그는, 앞으로도 주관대로 작품을 고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팬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이미지에 따르기보다는 배우의 소신대로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당분간은 아니다.“1년 동안 3편의 영화를 촬영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감정의 저장창고가 모두 소모된 것 같은 느낌이 관객에게 전해지면 안 되잖아요. 쉬면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할 거예요.” 다음 작품에서는 더 충만한 감정으로 가득찬 배우 이병헌의 모습을 기대해 보자.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한국 대표작가 35인 ‘속얘기’ 책으로

    한국 대표작가 35인 ‘속얘기’ 책으로

    열에 아홉, 내면을 글로 꿰는 책상물림의 작가들에게는 기벽(奇癖)이나 범상찮은 기억들이 훈장처럼 따라붙어 다니게 마련이다. 지난해 타계한 김춘수 시인은 벽에 못 하나를 박을 줄 몰랐으니 생활인으로서는 완전 젬병이었다. 어느덧 칠순이 된 신경림 시인은 저 유명한 시집 ‘농무’를 쓸 수밖에 없었겠다. 나이 서른에 시작한 낯선 서울살이, 전기도 수도도 번지수도 없는 문화촌 산동네에는 돈벌이를 찾아 고향을 등져온 농민들로 그득그득했었다. ●故김춘수시인 “김수영 의식하다 순수시 고집” ‘내 문학의 뿌리’(답게 펴냄)에서 한국문단을 이끌어온 대표작가 35인이 목청을 돋운다. 나는 어쩌다 작가로 살게 되었으며, 내 문학의 뿌릿발은 정녕 무엇으로 인하여 그토록 오래 성성할 수 있었는지! 책은 2001년 문을 연 ‘문학의 집·서울’(이사장 김후란)이 2년여 동안 마련한 원로문인 초청강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첫 장은 소설가 구혜영의 유년시절로부터 열린다. 강원도 평창·횡성 등 시골에서의 유년을 복기하는 문투는 마치 성장소설처럼 재미나다 싶은데, 어느새 작가적 소양을 배태하게 해준 은인 같은 존재가 기억의 중심에 선다.‘그’라고 의인화된 글 속의 대상은 결국 ‘쓰기 욕구’였던 것. 사내아이처럼 바깥을 떠돈 어린시절을 지탱해준 것도, 재수 끝에 대학시험에 붙게 해준 것도 모두 남다른 작가적 욕망이었다고 술회한다. 이렇듯 쓰기에의 극찬사로 시작된 책은, 시인 김춘수·김종길·김지하·신경림, 문학평론가 이어령·유종호, 소설가 박완서·송원희·이청준·이호철·한승원, 수필가 피천득·김태길 등 35명의 문학인들 사이를 종횡무진 활강한다. 시인 김춘수는 자신이 ‘무의미의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옹색한 배경을 솔직히 말했다.“평생동안 유일하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시인은 김수영”이라고 밝히고 “그와 다른 길을 모색하다 보니 의도적, 의식적으로 순수시를 고집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한달에 한 두편 시를 쓰는 게 일과의 전부”라거나 “은행에 가서 돈 찾고 넣고 할 줄도 모른다.”는 등 짧은 문장들 속에서 시로만 향했던 시인의 천착이 느껴진다. 작품론을 벗어나 작가들의 사변적인 사연을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가 박범신은 삶이 팍팍할 때면 훌훌 털고 용인으로 간다.“고요하면서 쓸쓸하고 쓸쓸하면서도 꽉 차 있는, 적멸보궁 같은 그곳 굴암산으로 홀로 걸어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고 생활의 한 방편을 귀띔한다. ●3년 쓰고 남을 원고지 싸들고 美유학하기도 혹독하고 치열했던 습작의 기억을 재구성한 글들은 문학론의 한 장이 될 만하다. 휴전 직후 학원 영어강사 시절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는 수필가 김태길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3년 동안 쓰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원고지를 싸갖고 떠난 일화를 소개했다. 최근 글쓰기 세태를 맵짜게 꼬집고 한편으론 후배 작가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주례사 수준의 평필(評筆)들이 옥석을 가려주지 못하고 수필의 양적 팽창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박완서 “가벼워지기 위해 소설을 썼다” 소설가 박완서의 말은 속 깊은 자기고백에 다름없다.“한겹 두겹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그는 맨 마지막줄에 “가벼워지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담담히 적었다. 이젠 고인이 된 이들의 육성도 더러 끼어 있다. 시인 조병화, 극작가 이근삼, 아동문학가 어효선 등의 글에 이르면 사뭇 숙연한 지상강의가 된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마포 상암동

    [우리동네 이야기] 마포 상암동

    서울시에서 풍력발전기를 통해 친환경적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하늘공원에 서면 자연의 복원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곳이 바로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온갖 쓰레기로 가득했던 ‘난지도’였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향기가 은은한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흐드러지게 핀 모습에서 이름 지어진 난지도(蘭芝島)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 풍수조건이 좋은 땅으로 소개돼 있다. 또 중국의 풍경 대신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겸재 정선의 그림 ‘금성평사(錦城平沙)’의 배경으로도 나타난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난지도는 땅콩과 수수를 재배하던 밭이 있던 낮은 평지였다. 홍수 때면 한강물이 넘치기도 했지만 갈대숲이 우거지고 철새가 날아들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때문에 학생들의 소풍장소나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었다. 애정영화의 촬영지로도 자주 이용됐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은은한 향기가 가득하다는 지명과는 걸맞지 않게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동안 온갖 악취를 내뿜는 쓰레기매립장으로 이용됐다는 점이다. 난지도는 행정구역상 마포구 상암동에 속한다. 현재의 이름인 ‘상암(上岩)’은 이 지역 자연부락이었던 수상리(水上里)의 ‘상’자와 휴암리(休岩里)의 ‘암’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법정동과 행정동의 이름이 같으며 8.38㎢로 마포구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1만 1365명이 살고 있다.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면서 한순간 서울의 최변방지대로 전락했던 이곳은 1993년 쓰레기 매립 중단뒤 생태공원으로 바뀌고 월드컵경기장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주거환경이 뛰어난 곳으로 손꼽히게 됐다. 여기에 서울시가 이곳에 세계 최고수준의 방송, 게임, 영화·애니메이션, 디지털교육 등의 디지털·문화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업을 유치해 상암DMC(디지털 미디어 시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이 지역에 또다시 개발바람이 불고 있다. 난지도에 다시 꽃이 피고 희귀동물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며 일상의 여유를 느낀다. 그러나 100층이 넘는 고층빌딩을 짓고 싶다는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욕망 등이 뒤섞여 있다. 상암동은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공간이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아, 우리가 즐겨써 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 조차도 큐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지난 10일. 일본 시마네현의회 총무위원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대통령과 한국 외무부가 아무리 ‘내 마누라론’을 주장하고, 침묵으로 묵살하고, 소극으로 일관해도 일은 끝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흥분할 것도 없다. 사태는 예정된 수순을 따랐을 뿐이므로. 주한 일본대사의 당당한 영유권 주장, 아사히신문 경비행기의 독도 진입작전, 게다가 한승조·지만원을 비롯한 국내 극우인사들의 맞불작전까지, 돌이켜 보면 우연은 하나도 없다. 영토분쟁을 표면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9세기 에도막부, 홋카이도 식민화 ‘다케시마’ 주장은 망언이 아니며, 망언은 실제로 없으니 망언이란 말을 써서도 안된다. 체계적이며, 장기지속적인 심대한 해양정책에서 비롯된 국가의지의 또다른 표현일 뿐 결코 돌출발언은 아니다. 일본의 노골적인 행태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 수준이되, 관·민 합동으로 질서정연하게 치고 빠지면서 주연·조연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화려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 정부가 만류했다고 하나 전혀 믿을 게 못된다. 양동작전일 뿐이다.‘식민지근대화론’의 미몽에 취해 선전·선동을 일삼던 지식인들을 비롯, 차제에 지난 수백년간 일본이 아시아 바다에 남긴 족적을 단계적으로 살펴 감고계금(鑑古戒今)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에도(江戶) 막부는 ‘숲속의 사람들’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북해도, 즉 홋카이도를 식민화한다. 일단의 식민경영 세력이 ‘숲의 섬’을 치고 들어갔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보호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아이누들은 박제화되어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2만여명의 혼혈아로 잔존할 따름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이어 사할린으로 손길을 뻗친다.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사실 러시아도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차르 시절, 코사크 기병대를 앞세워 동진을 거듭해 사하·축치·에벤키·캄챠달 등이 살던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들 아닌가. 일본은 이어 남쪽의 류쿠(우리측 사료에는 유구로 기록됨)를 병합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붙인 이름이고 본래는 류쿠국이었다. 독립 왕국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과도 문물교류를 활발히 하며 조공·중계무역에 힘써 문화가 크게 번성한 나라였다. 무역선 활동 범주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등 서남아시아까지 뻗친 해상국가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 6년째 되던 1609년 규슈 남부의 번주인 사쓰마한(薩摩藩)은 3000군사로 류쿠를 점령한다. 단, 정략적 입장을 취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사탕수수 같은 경제적 수탈은 감행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방관·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류쿠는 일면 일본에 수탈당하면서도 중국에 조공의 예를 갖추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사스마한의 점령 이전에도 류쿠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 왔으니, 류쿠와 일본의 악연은 해묵은 것이다. 그러던 일본은 1879년 드디어 ‘류쿠 처분’을 단행한다. 이로써 독립왕국 류쿠는 오키나와현으로 강등되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해양식민화 정책은 전략적 포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집요하게 기다리며 정확히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日정부, 남양군도 침략행위 전면 부정 1874년 청·일전쟁의 전후 보상으로 타이완을 챙긴 것은 교과서에 나온 상식.‘대륙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긴 셈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길 자격이 있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타이완에는 푸젠(福建) 등 남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많았지만 이른바 타이완 원주민인 토착 타이완족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타이완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운명 역시 아이누처럼 박제화되고 만다. 타이완총독부에서 갈고 닦은 식민경영의 노하우가 이후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전수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해양식민화가 홋카이도, 사할린, 류쿠, 타이완 같은 섬 정도에 그친 것은 아니다.1919년 파리강화회의 결과 일본은 사이판, 괌 등이 속한 이른바 남양군도를 자치령으로 분배받는다. 세계열강의 태평양 분할정책에서 그 지분을 챙긴 것. 남양군도는 서태평양 적도 이북의 작은 섬인 미크로네시아의 동쪽 끝 카리바시와 서쪽의 괌을 제외한 엄청나게 드넓은 바다.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지배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본의 남양제도 위임통치령이 되었고,1947∼1986년에는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미국의 태평양 신탁통치제도가 되었으니, 태평양은 태평과는 무관한 격동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로 들어가 설탕, 술, 수산가공품 같은 사업을 펼쳤으며 한때 사이판의 일본인이 10만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 후 최초로 오는 6월 극우인사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대동하고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남양군도에 대한 침략행위의 전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왕이 선 격이다. 당연히 대표적 극우언론인 산케이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에 ‘감격해 하며’ 이를 전면에 도배하는 충성을 과시했다.‘위령의 여행’으로 묘사하면서 ‘남양군도’를 지배하던 향수를 노골적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팔라우의 수도인 코로(Koror) 외곽으로 빠지다 보면 코발트빛 바다 위에 ‘아이고 브리지’가 떠있다. 머나먼 팔라우까지 징용왔던 한국인들이 기아와 고통 속에 ‘아이고’를 연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아이고다리’로 명명되었겠는가. 정신대로 끌려온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명씩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피를 토하고 죽어간 남양군도로 ‘신의 아들’이 ‘위령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한 즉,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격을 높여 다시 대양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른바 태평양전쟁이라 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세계대전의 본질은 해양패권의 각축이다. 일본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사이판과 괌은 물론 필리핀, 팔라우, 티니안, 얍, 뉴기니 같은 섬, 그리고 서진을 거듭하여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식탐을 과시했다. 우리의 인식은 대륙 지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해양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영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덮치기… 집요한 日 해양정책 일본은 세계열강의 해양 재편성에 기초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국제해양법 신질서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기왕에 문제가 되어온 조어도, 일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해양분쟁을 일으킨지 오래다. 미래의 해양자원을 염두에 넣는다면 일본이 조어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너무도 확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손톱만 한 바위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로 명명하고 자기 영토에 포함시켰다. 해양과학자들까지 동원해 섬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침대만 한 섬 하나에 290억엔을 퍼부었다. 이로써 자신의 영토(38만㎢)보다도 넓은 40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된 것. 나아가서 태평양 복판에 떠있는 미나미도리까지 영토로 선포했다. 이렇듯 일본은 해양 영토에 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독도가 어찌 그들의 눈독에서 빠질 수 있었으랴. 이런 만행이 대중국 포위전략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 없이 가능할까. 미국 역시 ‘해양제국’이다. 일제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는 단서가 마련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섬 국가인 필리핀과 반도국가인 한반도를 ‘빅딜’하는 국제적 공모에 가담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태평양의 섬은 거의 없다. 태평양은 공해가 분명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행세를 하고 있다.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는 남양군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일본이 만들어낸 ‘바다 땅따먹기’의 야심작이 아니겠는가. 근래 일본 정부는 해양권 확보에 노골적이다. 경제산업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등이 주동이 된 연락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린다. 숨길 게 없다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까지 인정받는다면 일본은 전체적으로 405만㎢의 배타적 경제수역, 즉 일본 영토의 10배를 뛰어넘는 방대한 해양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일본군이 옥쇄를 대비해 만든 거미줄처럼 얽힌 가마오름땅굴이 있다. 버려졌던 이 땅굴은 한 개인의 희생적 노력으로 현재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곳 이영근 관장은 “현재 공개된 굴은 극히 일부로, 모두 바다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땅굴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 일본군 알트르비행장을 벗어난 송악산 해변에도 미군기를 겨냥했던 동굴들이 줄지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구체적인 해안진지가 한반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평화’라도 韓·日 인식 달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을 감행했던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란(指宿) 바닷가에도 같은 이름의 ‘평화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년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모정을 빙자한 최루성 역사 회고만 존재할 뿐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평화’를 거론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는 상상을 초월한다.‘제국의 바다’를 잊지 못하는 일본의 추억만들기가 계속되는 한 ‘현해탄’의 파고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아, 우리가 즐겨 써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조차도 규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해방 60주년, 일본은 20세기형 제국의 바다를 21세기에 다시 ‘신장개업’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청와대와 외무부의 공식 입장 및 향후 일정부터 듣고 싶다. 또 ‘내 마누라타령’으로 일관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다 끝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마당까지 끌려가 내 영토를 약취당하고 말 것인가.
  • 종교를 넘어선 종교/최준식 지음

    우리 주위에 있는 종교의 모습을 보면 본질적인 부분이 부수적인 것들에 너무나 많이 가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꼭 교회를 나가야 구원을 받는다든지, 불상을 경건하게 대해야 독실한 불교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종교의 관습이나 의례 전통은 종교의 핵심가치가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다채롭게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종교 간의 이러한 차이를 두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 양 서로 대립한다.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인 최준식 교수가 쓴 ‘종교를 넘어선 종교’(사계절 펴냄)는 이같은 관점에서, 즉 비본질적인 것들을 넘어서 종교의 본래 가치를 이해하자는 의도를 담은 종교 입문서다. 그는 우선 종교란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개념임을 전제하고, 세계의 수많은 종교들이 담고 있는 공통분모적인 특질들을 뽑아내 종교를 설명한다. 초자연적·궁극적 실재에 대한 믿음, 성과 속의 구분, 숭배 대상과 관련된 의례나 행위, 계율이나 도덕 규범, 절대적 의존감정, 세계관 제시, 새로운 시대 도래나 내세 약속, 선교 등의 특질을 대체로 갖추면 종교의 범주로 인정한다. 지은이는 종교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문화적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의 종교를 아우를 수 있는 세 가지 핵심 주제를 다룬다. 먼저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를 물은 뒤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고통을 벗기 위한 것이라는 답을 내린다. 기독교는 구원을 통한 영생을, 불교는 해탈에 이르러 욕망에서 비롯된 고통에서 벗어남이 그것이다. 두번째 종교를 통해 인간이 다다르고자 하는 경지를 제시한다. 동북아에선 천(天)과 도(道)가 그것이고, 힌두교는 브라만, 불교는 공(空), 중근동에선 야훼, 혹은 알라가 여기 해당한다. 그리고 세번째로 이같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명상과 수행, 헌신, 신 숭배 등 종교마다 다른 방식으로 절대적 실재에 다가간다는 것이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30대 남자 둘 일탈을 꿈꾸다

    전업작가를 꿈꾸는 유부남 문호(정찬)는 기혼자임을 숨긴 채 채팅으로 만난 윤정(윤지혜)과 하룻밤을 보낸다. 다리가 불편한 노총각 연구원 종규(김유석)는 아무 여자에게나 집적거리면서도 이미 결혼한 첫사랑 수현(신소미)을 잊지 못해 주위를 맴돈다. 늦깎이 신인 감독 민병국(42)의 ‘가능한 변화들’(18일 개봉, 제작 무비넷)은 이처럼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30대 중반 두 남자의 일상과 환상을 다루고 있다. 겉으론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영화속에서 꿈꾸는 ‘변화’의 외양은 어찌 보면 대단히 통속적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변화의 욕구를 성적인 욕망으로 손쉽게 치환해 버린다. 유부남 상사와 불륜 관계인 윤정은 약혼자와 미국행을 앞두고 일탈의 통로로 문호를 이용하고, 검사 남편을 둔 대학강사 수현 역시 무의미한 일상의 탈출구로 종규를 받아들인다. 이들에게선 공통적으로 변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느껴질 뿐 무엇을 위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드러나지 않는다.“오랜 삶의 법칙에서 인간이 뛰어넘을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검은 옷의 남자’의 등장은 이 영화를 더욱 요령부득으로 만든다. 하지만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은 기대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예술성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 1년간 모스크바, 로카르노, 비엔나, 베를린아시아퍼시픽 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했다. 스태프들이 개런티나 장비료 일부를 영화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아껴가며 완성한 ‘가능한 변화들’은 재정난으로 개봉을 미뤄오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마케팅 지원기금으로 뒤늦게 개봉하게 됐다.18세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안동환기자의 현장+] 국회의원 수행비서 체험

    [안동환기자의 현장+] 국회의원 수행비서 체험

    국회의원 수행비서는 ‘정치 1번지’ 여의도의 영업사원이다. 의원의 ‘이미지’를 팔고 ‘업그레이드’하는 세일즈의 첨병이다. 이들이 종종 ‘가방모찌’라고 불리는 것도 의원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가방에 챙겨넣고 하루종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정책을 개발하는 보좌관이 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조직의 기획팀에 해당한다면 수행비서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외근사원. 기자는 이틀 동안 지역구 의원의 수행비서를 체험했다. 지난달 23일 오전 5시50분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의 자택 앞. 기자는 이병택(43·5급) 수행비서와 함께 ‘의원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새벽 1시에야 귀가한 이 비서는 자판기 커피 한잔으로 졸음을 몰아낸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바삐 달려온 ‘견습 수행비서’의 눈꺼풀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비서는 매일 자정 넘어 퇴근하고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이 벌써 1년째다. 정각 6시 신 의원은 차에 오르자마자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되지?”하고 묻는다. 견습은 전날 오후 미리 메모해 둔 일정을 보고했다. 이 비서는 초선인 신 의원과 마찬가지로 신참이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난해 1월 신 의원의 캠프에 합류했다. 인천 토박이로 ‘사장님’ 소리도 들었지만 사업이 쉽지는 않았다. 정치지망생이었던 그는 해병대 선배인 신 의원의 제의가 반가웠다. 운전기사를 겸하는 수행비서라는 ‘악조건’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비서는 “늦깎이 수행비서지만 실패를 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잊고 지냈던 정치의 꿈까지 되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선의원이 63%에 이르는 17대 국회에는 수행비서도 새얼굴이 많다. 상당수는 이 비서처럼 정치지망생의 꿈을 쫓아 지난해 총선에서 선거 운동을 돕다가 여의도 땅을 밟았다. 오전 6시30분, 여의도 의원회관에 도착하자 견습은 이 비서와 함께 오후와 다음날 열리는 상임위원회 안건을 숙지했다. 평소에는 운동을 할 시간이라지만 회기중에는 여유가 없다. 상임위 안건을 제대로 파악해야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의원의 물음에도 핵심을 비껴가지 않는 대답을 할 수 있다. 수행비서는 가방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 수집력을 갖추고 조언도 하는 ‘브레인’이어야 한다. 오전 7시30분 당내 연구회의 조찬모임이 열리는 동안 비서들은 별도의 ‘회동’을 가졌다. 정보수집을 하는 시간이다. 당내 분위기부터 정부 인사, 산하 기관장의 동태, 인물평까지 온갖 정보가 오간다. 때로는 이 자리에서 의원보다 개각 내용을 먼저 알기도 한다. 따라서 수행비서의 실력은 수행비서 사이에서 먼저 검증받는다. 내놓을 정보가 없으면, 얻을 정보도 없기 때문이다. 유용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첩보수준의 한담에서도 정치판의 분위기를 판독할 수 있어야 유능한 비서다. 의원이 장·차관이나 기관장을 만나는 동안에도 수행비서는 바쁘다. 그들의 비서와 안면을 트고 정보를 교환한다. 발품을 팔아 수집한 정보는 의원에게 보고하고, 다른 수행비서와 정보를 ‘교환’할 재료가 된다. 이 비서가 암기하고 있는 전화번호는 80여개. 그는 틈날 때마다 명함집을 펼친 채 번호를 암기하는게 취미 아닌 취미였다. 수행비서는 지역구 관리와 민원 해결사, 의원의 사진사 노릇까지 1인 다역을 맡고 있다. 요즘 이 비서에게 집중되는 민원은 취업청탁이다. 하지만 ‘승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조찬모임에서 시작된 신 의원의 일정은 9시 원내대표단 회의,10시 정무위원회,11시30분 지역구 정월대보름 행사, 오후 7시 기획예산처 만찬까지 1시간∼1시간30분 간격으로 10여개가 빽빽하게 이어졌다. 밤 10시부터는 지역구 상가를 돌았다. 하지만 초청장을 보내오는 행사는 훨씬 많다. 참석할 행사와 건너 뛰어도 될 행사를 판단하는 것도 이 비서의 몫이다. 이날 지역구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정월대보름 척사대회’.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안 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얼굴이라도 안 내밀면 ‘건방지다.’는 입소문이 단번에 퍼진다. 의원에게는 치명타다. 상가는 특히 ‘그림자 경호’가 필요한 곳이다. 취객들의 주정이 때때로 한풀이나 멱살잡이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행사는 많고 갈길은 바쁘니 이 비서의 운전은 곡예에 가깝다. 이날 오후 인천 작전동에서 여의도까지 주파한 시간은 불과 25분. 하루 2∼3차례 여의도와 지역구를 오가다 보니 한달 평균 주행거리만 4500㎞. 속도위반 벌금도 매달 30만∼40만원이다. 승용차 안이야말로 ‘진짜 정치’를 하는 곳이다. 한국의 정치는 여의도가 아니라 배기량 3000㏄의 승용차 안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신 의원 역시 전화통화로 분주했다. 가장 은밀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 차 안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내보이는 의원들의 능숙한 액션은 재료는 알 수 없어도 맛은 있어 보이는 잡탕찌개와 같다. 기자가 신 의원을 ‘모시는’ 동안 조수석에 앉아 신 의원의 ‘전화 생방송’에 귀를 곧추세우기도 했지만 곧 포기하고 마냥 졸았을 만큼 수행비서는 피곤한 직업이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시집살이에다 눈치 3년을 보태야 한다는 수행비서. 그들의 보수·진보 구분법은 요즘 의사당 밖과 사뭇 달랐다. 보수는 ‘보스티’를 팍팍 내며 의전만 챙기는 의원들이란다. 욕망의 바다 여의도는 지금 사람도 정치도 ‘실무형’으로 바뀌고 있다. ■ 수행비서의 모든 것 ‘수행비서’라는 공식적인 직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국회의원과 일과를 함께하는 비서를 일컫는다. 국회의원은 6명의 공식 보좌진을 둘 수 있다.4급 2명과 5,6,7,9급 비서가 1명씩이다. 수행비서는 어떤 직급으로도 기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수행비서는 7급이 많다. 의원에 따라 4급과 5급 수행비서도 있다. 과거에는 재선급도 운전기사와 수행비서를 따로 썼다. 하지만 정치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17대 국회에 들어서면서 두 역할은 통합되는 추세다. 수행비서는 연령도 다양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26세부터 의원보다 나이가 많은 58세까지 있다. 전체의 70%는 30대 초반이다. 의원 보좌진의 보수는 4급이 한달에 490만원,5급이 400만원,6급이 280만원,7급이 240만원,9급이 180만원 수준이다. 요즘 수행비서는 ‘파리 목숨’에 비유된다. 단기간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쫓겨나기 십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가 끝난 뒤 ‘한 건’을 하지 못한 비서들은 대거 유랑길에 나섰다. 하지만 수행비서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에서 정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정치지망생이 몰려드는 것도 고달프지만 정치판으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sunstory@seoul.co.kr
  • [그 영화 어때?]너의 떨림에 나는 잠든다 ‘바이브레이터’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비집고 들어오는 수많은 목소리들. 그녀를 환청처럼 괴롭히는 이 소리들은 결국 그녀의 머릿속에서 우왕좌왕하며 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수만가지 단상들이다.‘바이브레이터’(Vibrator·4일 개봉)는 이처럼 인간을 괴롭히는 공허한 말과 생각의 자리에, 욕망과 감성을 채워넣으며 잃어버린 육체의 미세한 떨림을 찾아가는 영화다. 눈 내리는 밤에 편의점으로 술을 사러 온 프리랜서 르포 라이터인 레이(데라지마 시노부). 머릿속 환청들에 둘러싸여 있을 즈음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본능적으로 ‘먹고싶다.’고 반응하는 목소리를 따라 레이는 그를 따라나선다. 그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인 다카토시(오모리 나오). 레이는 트럭에 올라 다카토시와 함께 술을 마시고 짧은 사랑을 나눈 뒤, 무작정 도쿄에서 니가타로의 긴 여행길에 동참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두 낯선 남녀의 사랑은 결코 외설적이지 않다. 오히려 지독한 외로움과 상실감에 지쳐보이던 둘은 온기를 불어넣듯 서로를 어루만진다. 남자의 알몸에 기대 울음을 터뜨리는 레이의 모습 속엔 더없이 진솔한 슬픔과 위안이 공존한다. 뒷걸음치며 살갗을 스치는 풍경과 함께하는 이 둘의 여행길은, 결국 서로의 고통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이다. 소통이 그리운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산소 같은 여운을 남기는 로드 무비. 하지만 감성에만 기대고 있어 보통의 상업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좁은 트럭 안을 비추기 위해선 디지털 촬영이 제격이었겠지만,‘때깔’이 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원작은 아카사카 마리의 동명 소설. 일본 저예산 에로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연출했다. 도쿄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18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공연리뷰] 佛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원작의 맛은 확실히 깊고 그윽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뮤지컬에서 상업적으로 윤색돼 ‘노틀담의 꼽추’로 격하됐던 원작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품격을 되찾았다. 지난 25일 프랑스 오리지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첫 막을 올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15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벌어진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속으로 완벽히 빠져드는 데 단 1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음유시인 그랭그와르가 부르는 서곡 ‘대성당의 시대’는 강한 마력으로 관객의 호흡까지 붙들었다. 대사 없이 54곡의 노래만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형식. 혹시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집시 여인의 삶을 노래한 에스메랄다의 ‘보헤미안’, 그녀에 대한 애끓는 욕망을 표현한 콰지모도, 페뷔스, 프롤로 세 남자가 부르는 ‘아름다워’, 에스메랄다의 연적 플뢰르드리스의 ‘말 탄 기사’에서부터 죽은 에스메랄다를 향한 콰지모도의 절규를 담은 ‘춤을 추오, 나의 에스메랄다’까지.1시간40분 동안 쉴새 없이 쏟아지는 노래들은 폐부까지 자극하고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짙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에 눈 먼 인간들이 벌이는 욕망, 질투, 음모, 희생을 제대로 그리고 있기에 두고두고 곱씹게 한다. 특히 그간 많은 작품에서 전형적이고 단선적인 악인으로만 그려졌던 신부 프롤로는 끓어오르는 욕정을 주체 못해 번민하고 스스로 파멸해 가는 복잡한 인물로 살아났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들은 열창과 열연으로 무대에 빛을 더했다. 첫 공연이라 사소한 실수와 고음에서 약간 불안한 대목이 있기는 해도 크게 흠잡을 것은 못됐다. 단순하고 현대적인 세트와 의상은 고전적인 이야기를 담기에 손색없이 잘 어울린다. 무대 전면에 설치된 노트르담 성벽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장면에 따라 성당, 집시들의 아지트, 파리 뒷골목 등으로 변화를 거듭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첨단 조명 기술은 무대를 더욱 풍성하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연기를 하는 배우와 무용수가 따로 분리돼 있는 것이 작품의 또다른 특징. 헤드 스핀까지 구사하는 16명의 무용수는 발레, 애크러배틱, 브레이크댄스, 현대 무용이 혼합된 역동적이고 육감적인 춤사위로 시종일관 시선을 자극했다.3월20일까지.(02)501-137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논술이 술술]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논술이 술술]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1932년에 발표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미래 사회에 대한 가상적 제시를 통해 인간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이끌고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1914년 미국의 헨리 포드는 미시간주 디어본에 위치한 자신의 공장에 자동화된 자동차 조립라인을 만들었는데,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이 조립라인은 생산되는 제품을 표준화할 뿐만 아니라 일하는 과정도 표준화하는 것이었다. 포드가 도입한 이러한 일관작업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표준화된 동질적인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량 생산된 상품은 그에 걸맞은 대량 소비를 필요로 했는데,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과거에 비해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 이를 해결하였다. 노동자들이 대량 생산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대규모 유효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드는 대량 생산과 대중적인 소비 문화의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대중사회 출현의 길을 열었으며, 이러한 생산 방식을 ‘포드주의(Fordism)’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곧 포드주의는 자동화된 기계를 이용해 인간의 노동을 합리화하고 통제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며, 현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를 낳은 사회구조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헉슬리는 독특한 연도 표기와 작품 곳곳에 드러나는 포드의 신격화에 대한 묘사를 통해 ‘포드주의 비판’이라는 의도를 직접 나타낸다. 또 그가 그리고 있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은 포드주의의 특징들과 직접 결합돼 있다. 이처럼 헉슬리가 나타내고 있는 ‘멋진 신세계’의 섬뜩한 사회 현실은 가상의 미래가 아니라, 당대의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던 ‘포드주의’의 변동 안에 내포되어 있는 부정적 가능성의 묘사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생산의 효율성에만 감탄하고 있을 때, 헉슬리는 그 안에 담긴 위험을 날카롭게 찾아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발표된 지 7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현실이 과연 헉슬리의 경고에 비추어 어떠한지를 평가하고 반성해 보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점점 더 작품 속의 ‘존’이 절망에 빠졌던 ‘멋진 신세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그의 ‘경고’는 끔찍하게도 ‘예측’으로 실현되고 있다. ‘유전자’로 상징되는 최근의 과학 발달은 인간에 대한 도구적 기계적 인식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정보화’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서의 불안정성을 키우며 사회의 계층적 양극화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세계화’라는 말로 특징이 표현되는 사회의 변동은 ‘소비주의’에 기초한 하나의 생활 양식으로 전 지구의 인간들을 더욱더 표준화하고 있으며, 문화적 다양성을 급속히 파괴하고 있다. 게다가 범람하는 대중 문화와 매체들은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며 새로운 ‘쾌락’을 상품으로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형태와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어느덧 ‘멋진 신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자화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이왈종 ‘꿈과 일상의 중도’ 새달 3일부터 갤러리 현대

    스타 기근의 한국 화단에서 남다른 인기를 누리는 작가가 있다면 단연 이왈종(61)이다. 지난 90년 서울의 대학교수 자리를 그만두고 10여년 동안 제주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그는 여전히 “그림 한 점만 팔아도 살아갈 수 있는” 전업 작가다. 항산(恒産)이 있으니 항심(恒心)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왈종은 “제주의 동백과 매화, 수선화가 나를 먹여 살린다.”고 짐짓 여유를 보인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동백을 보러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별천지와도 같이 포근한 느낌을 주는 작가의 화폭이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한 가닥 위안이라도 주는 걸까. 그의 인기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이다. 3월3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이왈종-꿈과 일상의 중도’전은 자연과 혼연일체를 이룬 한국적 서정의 진수를 보여준다. 출품작은 회화와 종이부조, 부조판화, 목조와 도조 입체작품 등 60여점. 주제는 역시 중도다. 중도란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걷어낸 자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 주체도 객체도 없고 크고 작은 분별도 없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만물평등의 세계다. 그런 세상을 향한 작가의 꿈은 상하좌우나 대소, 원근의 관계까지 지우고 화면에 모든 물상을 동등하게 배치하도록 만든다. 작품 소재 또한 전통 동양화에서 표현하는 이상화된 풍경과는 거리가 있다. 텔레비전이나 골프채, 배, 자동차 등이 꽃과 새, 물고기, 사슴 등과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것은 곧 일상과 환상, 생활과 꿈의 교향악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50돈짜리 순금판에 양각한 춘화들도 선보여 눈길을 끈다. 이 색깔 있는 작품들은 갤러리 현대 뒤편의 별관격인 두가헌 갤러리에서 피카소의 에로틱 판화와 함께 전시된다. 갤러리측은 춘화 전시는 18세 이상만 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02)734-6111.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유아·아동|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제니퍼 달랭플 지음, 최윤정 옮김, 바람의아이들 펴냄) 양치기 드루와 염소 그로. 학교에 들어간 드루가 기쁨에 넘쳐서 그로에게 책읽기의 매력을 들려준다.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고개 끄덕이게 만드는 그림동화.4세 이상.9000원. ●정글 드럼(그레임 베이스 지음, 임현종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정글에서 제일 작고 볼품없는 주인공 멧돼지가 드럼을 손에 넣은 뒤 벌어지는 신기한 이야기.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4세 이상.1만원. |초등·청소년| ●보름달의 전설(미하엘 엔데 지음, 김경연 옮김, 보림 펴냄) 세상을 등지고 성스러운 삶을 사는 은자와 그저 방탕하게 살아온 도둑. 두 극단적 인물을 통해 욕망의 실체와 진정한 진리에 대해 고민해보게 될 듯.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철학동화다. 초등 고학년 이상.1만 2000원. ●까마귀를 타고 날아간 할머니(벌리 무텐 각색, 이승희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지혜 넘치는 할머니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8편의 이야기 묶음. 세네갈 일본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에 전해오는 민담들이 서사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느끼게 해준다. 초등 저학년까지.1만 2800원. |경제·실용| ●10년후, 일본(다카하시 스스무 지음, 김은하 옮김, 해냄 펴냄) 일본 종합연구소가 발표한 10년후 일본 경제 예측서. 산업, 금융, 정치 등 주요 분야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배경을 살펴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과제와 해법을 모색한다.1만원.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박기찬·이윤철·이동현 지음, 더난출판 펴냄) 지난 한세기 경영의 패러다임 전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명저 30권을 엄선해 현대적 시각으로 재구성했다.3만 5000원.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크리스토퍼 보글러 지음, 함춘성 옮김, 무우수 펴냄) 알프레드 히치콕, 조지 루카스 등 명감독들이 영화에서 사용한 신화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효과적인 플롯과 캐릭터 구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1만 4500원.
  • 소설가 김별아 ‘화랑세기’속 요부 ‘미실’ 출간

    작가 김별아(36)가 1500년 전의 여인을 불러냈다. 새 작품 ‘미실’(문이당)은 신라시대의 요부(妖婦) 미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얽은 장편소설이다. 지난해 말 국내 문학상 사상 최고상금인 1억원의 세계문학상을 따내 문단의 시샘이 쏠렸던 작품이다. 왜 ‘미실’이었을까. 소설집 ‘꿈의 부족’(2002년) 이후 3년 만에 내민 장편의 여주인공이 하필이면 왜 우리 역사 최고의 팜 파탈이었을까. 역사의 먼지를 헤집어 소환해낸 주인공에게 작가의 애정은 유별나다.“미실은 어머니로서, 한 여자로서도 어느 한쪽 꿇리지 않고 당당한 인물이었어요. 요녀와 성녀의 이미지를 한 몸에 끌어안고 살았던.‘모성’과 ‘욕망’이 충돌하지 않고 한 인물 속에서 용해된 여성 캐릭터를 구현해 보고 싶었죠.” “남성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여주인공이 늘 모성과 욕망의 어느 한쪽 이미지로만 치우치는데, 그 극단적 묘사법은 옳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자기운명에 굴하지 않은 주체적 여성 미실(549∼606)은 김대문의 ‘화랑세기’에서 “백 가지 꽃의 영겁이 뭉쳐 있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수식될 만큼 미색이 빼어났던 여인. 진흥·진지·진평 등 3대 신라왕을 섬긴 데다 사다함·세종·설화랑·미생랑 등 네 명의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 태자 동륜(진흥왕의 아들)과도 염문을 뿌리며 왕실을 주물렀던 역사 속 인물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뛰어난 미모로 본능에 충실했으면서도 운명에 굴하지 않는 ‘현대적’ 여성상”은 소설에 제대로 녹아났다. 왕실에 색(色)을 바치는 전문여성집단 ‘대원신통’에서 태어난 미실은 어려서부터 온갖 기예와 미태술을 익힌다. 지소태후의 아들 세종의 눈에 들어 입궁한 뒤 곧 권력다툼에 휩쓸려 밖으로 내쳐진다. 화랑 사다함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지만, 왕실의 부름으로 다시 입궁한다. 이후 미실은 스스로 권력을 움켜쥐려는 욕망을 실현해 간다. 작가의 설명처럼 “권력을 키워 가는 과정에서도 아이를 8명이나 낳으며 모도(母道)를 충실히 걸었던 독특한 여성상”을 묘파하는 데 소설은 전력투구한다. ●용어 하나하나 史實에 맞춰 사용 작가는 이 소설에 3년여를 공들였다.“중국 후한의 장수 삭매의 사랑과 운명을 무협소설풍으로 그린 단편 ‘삭매와 자미’(소설집 ‘꿈의 부족’)를 쓸 무렵 역사 소재 소설을 구상했다.”며 “그러나 역사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쓰겠다는 원칙을 세웠었다.”고 말했다. 그 원칙은 철저히 지켜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꽃 이름, 고사성어 하나까지 시대적으로 들어맞는 것인지 따졌을 정도다. 신라시대에 나올 수 없는 용어들은 추려냈다. 때로는 고어투의 문체가 적당히 끼어들어 소설에서는 고졸한 맛이 난다. 최근 여성 작가들이 황진이·나혜석 등 역사인물들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경향이 아이디어 빈곤 때문이 아닌지 짐짓 물었다. 대답은 솔직했다.“인정할 부분”이라더니 힘센 변명 한마디를 덧붙인다.“요즘처럼 빨리 돌아가는 현실에선 소설의 ‘영원성’을 포착해 내기가 힘드니까.” 받아 놓은 큰 상금은 대체 어디에 쓸 거냐는 질문에 “열살짜리 아들과 9월쯤 캐나다로 날아가 한 2년 지내다 오겠다.”며 엉뚱한 소리다.“죽을 때까지 쓰는 게 삶의 목표”라니 작가의 좌표에서 발을 빼려는 계산은 아닐 테고. “역사소설을 좀더 써보겠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 기념으로 서울시에서 주문한 조선시대 배경의 소설을 준비하느라 요즘은 조선왕조실록에 푹 빠져 지낸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韓流 韓도 日도 아닌 잡종문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싱겁게도 ‘한류(韓流)’에 ‘한(韓)’은 없다. 그래서인지 호들갑스러운 외국의 반응에 우리 스스로가 당혹스럽다. 어쩌면 당혹스러워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한류 뒤에 숨어 있는 무차별적인 자본의 욕망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한국문화의 자부심 운운하는 한류 ‘생산자’들의 합창과는 상관없이. 최근 몇 년간 아시아권을 휩쓸었다는 한류의 의미를 짚어 보는 학술대회가 열린다.24일 예정된 광주 ‘아시아문화심포지엄’의 ‘글로컬시대 아시아문화연구의 쟁점’이 그것. 여기서는 한류를 포함한 아시아의 문화교류에 대해 비판적 의견들이 쏟아질 전망이다. ●“아시아 국가간 친근감은 소수의 것” 아시아 영화 발전을 분석한 필리핀 국립대 롤랜드 톨렌티노 교수는 아예 “아시아영화 발전이 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했다.50년대 필리핀 영화의 황금기,60년대 일본의 뉴웨이브,75년 필리핀의 뉴시네마,80년대 초 홍콩의 뉴시네마,90년대 후반 한국의 뉴시네마 그리고 2000년대 태국의 뉴시네마로 이어지는 아시아영화의 긴 흐름은 사실 미국의 일본 재건, 대공산 우방으로서 필리핀의 특권화, 홍콩·타이완의 금융중심지 부상,IMF위기 뒤 한국과 태국의 부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영화에서 관철되고 있는 할리우드 규범성이 그 증거다. 규범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다큐멘터리 영화집단’ 같은 독립집단이다. 일본 와세다대 이와부치 고이치 교수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끼리 느끼는 친근함은 공간적으로 가깝다는 것뿐 아니라 “유사한 부의 수준, 세계화된 소비문화와 생활양식을 공유한다는 동시대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류니 뭐니 해도 아시아에서 대중문화의 교류는 다국적 기업의 자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절대적 군사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적 틀을 넘는 것 같지만 혜택은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제공된다.” ●일본에게 한류는 ‘세련된 향수’ 성공회대 백원담 교수는 한류를 비롯한 아시아 문화교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백 교수는 한류가 일본에서는 ‘세련된 향수’, 동남아 등 개도국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선험”이기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로서는 긍정적이지만 “중화민족주의나 대동아공영권 같은 아시아블록화로 재영토화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일 미디어 합작품으로 끝날 수도 한류가 아시아의 진정한 소통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서 22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아시아 대중문화연구 국제 세미나’에서도 제기됐다. 성공회대 신현준 교수는 한국가요 ‘K-pop’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문화연구자 모리 요시타카의 ‘일식 한류’ 개념을 빌려 왔다. 일본문화도, 한국문화도 아니고 한·일 공동문화도 아닌 성립과 기원부터 잡종적 문화가 한류다. 문제는 뿌리가 없기에 아시아의 소통을 겉돌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신 교수는 “일식 한류는 역사에 대한 기억을 소거하는 양국 국영 미디어의 합작품으로 끝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비록 “진부하고 지루한 미학적 품질이 수치스럽더라도” 아시아의 역사를 다시 기억토록 한다면 한류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지난 19일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는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을 기획테마로 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신문이 후원하고 한국일본학회가 주최한 제70회 학술대회의 역사문화 파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동안 어학·문학 위주의 연구를 진행해오던 한국일본학회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일본학회는 1600명을 넘는 규모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일본학 연구자 모임이다. 그러나 그동안 제대로 된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일감정 탓에 일본을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일부 작용했다. 이번 역사문화 토론회의 좌장이자 새 학회장에 선출된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일본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봐야 한다.”면서 “한·일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겠다.”고 밝혔다. 2001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쇼샤(扶桑社)교과서 파문은 여러 결과를 낳았다. 일본 우익에 대한 비판은 물론, 우리의 근현대사 연구성과와 역사교과서에 대한 자성론까지 낳았다. 그러나 올해 3∼4월로 예정된 일본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검정 때 이런 파문은 또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일본학회가 마련한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 토론회가 19일 오후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앞선 주제 발표에서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0.039%의 채택률에 그친 후쇼샤 교과서 대신 50%이상의 채택률을 기록한 도쿄교과서를 분석, 도쿄교과서도 후쇼사 못지않다는 결론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미조구치 유조의 ‘인식의 공유’에 빗댄 ‘문맥의 공유’를 내세워 한국적인 대응을 비판, 참가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종대 오성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이외에도 고려대 최덕수 교수, 경복고 현명철 교사, 경기대 남상호 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김종식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순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신철 연구원이 참가했다. 김기봉 역사교과서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운동’으로서가 아니라 ‘학술’로 접근해야 한다. 정재정 냉전 이후 유일하게 동아시아에서만 내셔널리즘이 강고하다. 더구나 관련 나라가 모두 연동되어 있어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교과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단, 문제를 볼 때는 일본 교과서 시장의 경쟁관계라는 자본의 논리와 납치·수교·미국의 압박으로 얽힌 대북관계문제 같은 정치적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남상호 후쇼샤 교과서 처음에 나오는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이라는 글이 문제다. 역사상대주의를 천명하고 있는데 굉장히 기술(테크닉)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편의적으로 적용한다는 데 있다. 오성 개인적으로 보편주의를 내세워 일본을 비판했더니 일본학자들이 굉장히 냉소적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역사에서 보편적 인식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김기봉 사실과 해석을 나눠 생각해야 한다. 사실은 연구해서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해석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후쇼샤 서문은 랑케의 역사주의 입장과도 비슷한데 아주 훌륭한 문장이다. 우리 역사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역사책은 객관성을 전제로 두는, 신(神)의 사관을 내세우고 있다. 주입식 역사교육은 비판받아야 한다. 김종식 기본적으로 일본역사 해석은 문부성 편수관들이 맡고 있다. 신의 관점을 비판했는데 행정관료인 편수관이 일본에서는 신이다. 좋은 지적이지만 일본 역사교과서 역시 편수관이 짜준 틀 내에서만 움직인다는 게 문제다. 정영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필리핀에는 후쇼샤 내용이 그대로 실린 교과서를 쓴다. 인도네시아 학자들은 아예 ‘역사학 자체가 해석학’이라면서 ‘우리는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일본연구자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지 않나 하는 고민이 앞선다. 이신철 운동과 학술의 병행을 얘기했는데 물론 학문적 접근도 중요하다. 그러나 홀로 서있는 학문은 없다. 강제동원의 경우 피해자는 해마다 죽어가고 일본은 자료를 숨긴 채 죽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뛰어넘어 인식을 공유하자는 것인가? 보편주의도 마찬가지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보편주의는 다르다. 이라크전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 대신 ‘평화공존’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 일본측과 접촉해보면 머리 좋은 청년들은 우익단체에 다 가고 진보단체에는 노인들밖에 없다. 진보진영이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다. 반면 피스보트 같은 평화단체에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이들은 동남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와중에 일제시대 피해자들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한다. 우리도 이런 걸 제시하지 못한 채 반일만 내세우다가는 자멸할 수 있다. 김기봉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민족주의는 포기해야 한다. 일본도 여러 측면이 있다. 일본 우익이면서도 욘사마에 열광하는, 그런 복합적인 존재다. 이런 사람들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해야 한다. 오성 예전에 후쇼샤 서문을 보고 개인적으로 역사학 훈련이 덜 됐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니 당혹스럽다. 최덕수 내세우는 명분·이론과 드러나는 사실·역사상을 구분해야 한다.2001년 후쇼샤 교과서를 보고 일본 우익이 굉장히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받아 안심한 적이 있는데 계속 그렇게 간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정재정 학자들이 흔히 접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사회의 비주류이고 별종이며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없다. 그걸 알아야 한다. 보통의 일본인은 내셔널리즘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여기에다 천황제 얘기까지 나오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 몸담고 있는데 이 모임의 일본 학자들은 그래도 중도쪽을 택한 ‘국제파’들인데도 대화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역지사지는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국제사회의 여건도 좋지 않다. 김종식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일본은 지역운동이 굉장히 발전해 있다.2001년도 지역운동과의 연계가 상당히 힘을 발휘했다. 이들과 밀착해야 한다. 이신철 두 개의 칼을 떠올렸다. 시민·지역단체와는 ‘평화공존’으로 연대를 이끌어내야겠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달려들어야 한다. 어떤 장기적인 방향성으로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자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지만 현실 운동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근대화 이론가 후쿠자와 유키치 ‘동아시아와의 연대’ 사상가 아니다” 한국일본학회 비판 일찍이 근대를 향한 욕망에 경도된 춘원 이광수가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셔서 이러한 위인을 내리셨다.”고 평가했던 일본 근대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메이지시대 사상가임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일본의 미래를 제시했던 계몽사상가이자,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교육가로서 이름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 후쿠자와는 ‘탈아론(脫亞論)’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후쿠자와에 대한 이런 평가를 달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후쿠자와의 제국주의적 측면은 비판하되 그의 사상사에서 ‘동아시아와의 연대’ 부분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찬미했던 후쿠자와의 메이지의 중·후기 글들이 후쿠자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일본 우익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도 한몫했다. 이런 관점은 아시아주의 혹은 아시아연대 문제를 고민하는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때’에 불과했더라도 후쿠자와는 정말 일본과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했을까. 고려대 일본학 연구센터 박삼헌 연구원은 ‘근대 일본의 대외관과 위기론의 구조’라는 글을 통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후쿠자와 사상사에 대한 기존 연구가 아시아와의 ‘연대-개혁-탈출’로 변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정리한 뒤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힘 앞에 노출된 상황에서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순차적으로 변해갈 수는 없다.”면서 “후쿠자와의 연대는 진정한 연대라기보다 불쌍하다는 연민과 우리도 저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후쿠자와 논의의 출발점은 강대한 서양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하지만 내용은 중국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고, 동아시아의 개혁 대상은 조선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의 조선개혁이 실패하자 터진 청·일전쟁을 후쿠자와가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규정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의 탈아론은 서구문명을 따라잡자는 것만이 아니라 아시아 침략을 당위로 삼는 논리인 셈이다. 박 연구원은 특히 “이미 메이지 초기 문헌에서 이런 논리가 등장했다.”고 말해 후쿠자와 저작의 진위논란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서울대 최장근 교수 역시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은 홋카이도와 유구(오키나와)를 통합했고 이것이 제국주의 팽창으로 이어졌다.”면서 “후쿠자와의 논리는 팽창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개항 직후 일본은 교린하는 아시아의 소국이냐, 아니면 대국지향이냐 하는 국가 진로를 두고 심각히 고심했다.”면서 “결국 일본은 대국지향을 선택했는데 이런 근대국가설계 논란과 함께 묶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영화 ‘피와 뼈’ 최양일 감독

    재일교포 감독이 재일 한국인의 삶을 소재로 만든 영화라고 해서, 차별과 편견으로 얼룩진 시대상을 용기있게 담은 영화일 거라고 속단하진 말자. 영화 ‘피와 뼈(Blood&Bones·25일 개봉)’는 그보다는 시대에 등을 돌린 채 동물적 욕망만으로 살아간 한 사내의 꿈틀거림을 담아낸 영화다. 그 사내가 거쳐온 시대적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원인으로서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최양일(56) 감독은 “특별히 사회적 의미를 넣진 않았다.”면서 “영화 ‘대부’가 이탈리아 이민사를 중심에 두지 않았듯, 내 영화도 시대상보다는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강함과 약함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1923년.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배에 오른 청년 김준평. 영화는 이내 그의 청년시절을 건너뛰고, 이미 폭력만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괴물’이 돼버린 중년의 그에게 초점을 맞춘다. 최 감독이 기타노 다케시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을 정도로, 김준평을 연기하는 기타노 다케시는 완벽하게 비열한 욕망의 화신으로 부활했다.“원작소설의 주인공보다 체구가 작지만, 주인공의 어두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게 그를 캐스팅한 이유다. “괴물과 같은 삶을 산 남자를 그리는 건 오랜 희망이었다.”는 최 감독은 이 작품을 위해 6년을 투자했다. 재일 한국인 소설가 양석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1998년 쓴 동명소설이 원작. 최 감독은 “원작에 드러난 방대한 스케일을 영상으로 그려내기 위해 1000여명의 스태프가 참여했다.”고 말했다. 제목은 피와 뼈로 연결된 가족관계를 의미한단다. 자신의 욕망에 갇혀 스스로 불행해져 버린 김준평과,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아들과 딸과 부인의 처절한 몸짓을 정지된 프레임 속에 가두어 슬프게 관조하는 느낌의 영화. 일본에서는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닛칸스포츠 영화대상, 키네마 준보 영화상 등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최 감독은 거장 오시마 나기사의 조감독 출신으로,‘달은 어디 떠 있는가’‘개, 달리다’ 등 스무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지난해부터는 일본 영화감독협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환경스페셜-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기(KBS1 오후 10시)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욕망과 소비의 도시에서 묵묵히 생태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질적 가난에도 아랑곳없이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이 시대의 친환경 고수들. 이들의 생활을 통해 도시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세계적인 밀라노의 패션쇼 무대에 선 ‘비’의 모습과 MAA에서 한국 최고 가수상을 수상한 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공개한다. 눈으로 뒤덮인 남극, 그곳에서 두 남자의 불꽃 튀는 결투가 벌어졌다. 한국 최고의 배우 송강호와 유지태,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 정보 강국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부작용도 심각해 불법 유해 사이트가 범람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인터넷이 중요한 생활도구가 되면서 유해성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문제가 심각하다. 불법 유해사이트 범람의 부작용과 대책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생방송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부모의 도움없이 스스로 잠들며, 밤에도 깨지 않고 긴 시간을 잘 수 있는 아이. 이런 아이로 키우는 것이 소원인 초보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잘못 길들여진 아이의 수면 습관 때문에 고통받는 엄마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진단하고 이런 습관을 고치는 방법을 알아본다. ●와!e-멋진 세상(MBC 오후 7시20분) 번개를 맞고 인생이 바뀐 뒤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뜨거운 미국인 헤럴드 딜을 만나본다. 영하의 날씨에 즐기는 노천 온천은 어떤 느낌일까? 영하 30도에 노천온천을 즐기는 알래스카를 찾아간다. 알래스카의 특별한 신년 행사와 무스사냥까지 이색 겨울풍경을 볼 수 있다. ●용서(KBS2 오전 9시) 순복은 승주를 찾아와 수형이에 대해 말하라며 다그치고, 승주는 수형이는 형우의 아들이 아니고 단지 옛 여자의 아이여서 형우가 도와 준 것뿐이라고 말한다. 수민은 형우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수형을 두고 먼저 집으로 들어 가 버리고, 형우는 수형이와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영화속 수능잡기] 아마데우스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기보다는 배가 먼저 아픈 것이 평범한 사람의 심리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가 별로 노력도 안 하고 큰 성공을 거둘 때 우리의 시기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가령 나는 밤새 공부해도 성적이 거기서 거기인데 어떤 친구는 한두 시간 공부하면서도 성적이 최상위권이라면,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우리는 곧잘 신을 타박한다. 신이시여, 대체 왜 이렇게 불공평하십니까? 롤프 하우블의 저서 ‘시기심’에서는 인간이 시기심을 느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네 가지 양태를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먼저 낙담이다. 저건 내가 도저히 가질 수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말자.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는 방식이다. 과히 나쁜 방식은 아니지만 자칫 패배자의 생존 방식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둘째, 야심이다.‘저 친구가 해냈다면 나도 해낼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경쟁심을 키우는 방식이다. 금메달을 꿈꾸며 땀 흘리는 운동선수들이 취하는 방식으로 권해볼 만하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함부로 도전하면 코가 깨진다. 셋째, 분노다. 분노는 상대가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유물을 가졌다고 믿을 때 발동한다. 저 친구는 아버지가 잘 살아서 수백만원짜리 과외를 하기에 공부를 잘 하는 거야, 나도 저 정도의 가정에 태어났다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을 거야.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쌓아가는 것이다. 넷째, 공격성 즉 타인을 해치려는 마음이다.‘왜 나는 저 친구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일까. 부모와 세상을 잘 못 만나서 그래. 이 더러운 세상을 확 불질러 버리고 싶어.’하는 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감옥에는 이런 방식으로 시기심을 표출한 사람들로 북적댄다. 경계해야 할 방식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궁정음악단장 살리에리, 그는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 명성이 잊혀져 버린 불운의 음악가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살리에리는 어려서부터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무식한 그의 부친은 그의 꿈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음악적 재능을 활짝 꽃피운다.‘신은 왜 모차르트에게는 재능을 주셨고, 나에게는 그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귀를 주셨을까.’살리에리의 시기심은 불같이 타오른다. 세상에는 음악가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 있고, 화가나 만화가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 있고, 사업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을 수 있다. 욕망이 다양한 사회는 다양한 문화를 꽃피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돈과 물질에 대한 집착과 시기심만이 지나치게 강한 사회는 아닐까. 왜 저 나라는 깨끗한 물과 산과 공기를 갖고 있는데 왜 우리는 갖지 못한 것일까. 왜 우리는 유럽의 어떤 도시처럼 훌륭한 건축문화를 갖지 못한 것일까. 이런 시기심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좀더 밝아지지 않을까. 밀로스포먼 감독, 톰헐스,F 머레이애이브러험 출연,1984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성의 미학/미와 교코·진중권 지음

    성은 생명을 잉태시키고, 죽음은 성을 통해 탄생한 생명을 자연의 품으로 되돌린다. 성을 매개로 삶과 죽음은 대자연 속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영원히 순환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의 관념은 역사적, 시대적, 종교적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면서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돼 억압과 금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죽음을 부르는 죄’, 혹은 ‘생명의 맹아를 잉태하는 적극적인 힘’ 등 극과 극을 달리는 개념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성의 미학’(진중권·미와 교코 지음, 세종서적 펴냄)은 서양미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성관념의 변화를 파헤친 책이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인 진중권씨와 부인 미와 교코가 함께 저술한 이 책은 욕망과 금기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변신을 거듭해온 성 관념이 서구의 미술사에서 어떻게 표출됐는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남성이 기득권을 쥔 사회에서 그들에게 성적 희열을 주는 여성의 신체를 그린 그림들, 그 이면에 감춰진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심이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성서나 고전의 응용회화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야 했던 에로티시즘, 훔쳐보기의 본능, 기존사회의 가치관으로 용납할 없었던 근친상간과 동성애, 양성구유 등 다양한 성을 파헤쳤다. 그림을 읽어내는 데 필수적인 도상학 개념들을 제시하면서 한 장의 그림을 두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장으로 써 내려감으로써 독자들이 쉽게 그림속으로 파고들 수 있게 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미와 교코가 일어로 써서 보내면 진씨가 이를 번역해 미술전문지 ‘미술세계’에 연재한 글들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1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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