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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마음 속의 찌든 때까지 모두 버릴 수 있는 땅,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는 여행을 넘어섰다. 그러나 신들이 살고 있다는 거대한 산을 첩첩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좀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해 히말라야로 가는 국내여행객도 1만명을 넘어섰다. 자연을 경배하고, 욕심과 분노덩어리인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히말라야는 트레킹마니아들의 천국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과 얼음, 드넓은 초원과 에메랄드빛 빙하가 흘러내린 호수, 야생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셰르파족 등…. 히말라야에서 지낸 20여일은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글·사진 히말라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서,‘히마’는 빙설(氷雪),‘말라야’는 살고 있는 곳, 즉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쿰부 히말라야(KHUMBU HIMALAYA)는 히말라야산맥(약 2800km)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우뚝 솟은 지역 일대를 말한다.원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인이었던 측량국 관리의 이름을 본떠서 붙인 이름으로서 네팔어 정식 명칭은 사가르마타(SAGARMATHA)이다. ■ 마칼루·바룬 - 쿰부히말라야 26일간 대장정에 오르다 에베레스트의 이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권위가 담겨있다. 높이에 대한 감탄뿐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려운, 우러르는 마음을 갖지 않고선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경외감까지 포함돼 있다. 또한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8000m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꿈, 그리고 죽음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전문 산악인들만을 위한 산은 아니다. 이곳에도 초등학생부터 70세의 어르신들까지 히말라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히말라야의 또다른 미덕이다. 배타적이지 않은, 열려있는 산 히말라야가 오라고 손짓해서, 그래서 떠났다. ‘동네 뒷산처럼 쉽게 갈 수 있다’는 쿰부 히말라야코스, 산에 다녀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 등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 산악부원 12명, 해외원정 경험이 많은 단장, 대장, 지도위원 4명. 그리고 1년에 고작 한두번 뒷산에 오르는 나까지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2005 한국청소년오지탐험’ 마칼루팀은 7월23일, 서울을 떠났다. 우리팀은 히말라야 지역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을 계획했다. 히말라야에 머무는 날은 20일정도, 오가는 비행길까지 포함해서 26일간의 여정은 시작됐다. 옛날 광부들이 다니던 길로 5000m의 패스(고개)를 2개나 넘어야 하는 준전문가들용 코스인 마칼루와 바룬지역을 지나, 일반인들의 여행코스인 쿰부히말라야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여기에서 하이라이트는 전문가들이라야 갈 수 있다는 6461m의 메라피크 등반이었다. 산을 전문적으로 타는 산꾼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 초보의 심정, 막상 떠나려니 가슴이 무겁고 두려웠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는 3년된 등산화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히말라야를 향한 꿈을 접고 싶지는 않았다. 장비를 구입하고, 빌렸다. 사용법도 모른 채 장비를 카고(등산용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고 떠났다. ●아름답고 낯선 관문 루클라 히말라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날개 양쪽에 프로펠러가 있는 장난감 같은 20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루클라로 향한다.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 오른 비행기는 몇 번을 날라가다 뚝 떨어지고 옆으로 밀려가는 통에 자이로드롭을 탄 듯하다. 마음을 졸이며 50분을 날아 루클라 비행장에 도착했다. 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비행장으로 서울의 편도 4차선 크기의 달랑 하나뿐인 활주로가 눈에 띄었다. 경사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착륙을 돕는다. 반대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이륙한다. 활주로 끝은 천길 낭떠러지, 아찔했다. 이렇게 도착한 비행장은 내전 때문에 가 제법 삼엄하다. 아직도 포카라지역은 마오이스트들(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무리)이 제법 많아 정부군과 교전이 잦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총멘 군인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손에 잡힐 듯한 산들, 어디선가 쏟아지는 물소리, 파란 하늘과 구름들. 히말라야의 첫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후에 접어들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린다. 별을 보며 저녁산책을 하리라는 꿈을 접고 롯지(산장)에 앉아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비구경을 했다. 히말라야는 9월말까지 몬순기간이라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뚫고 산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 셰르파가 다가왔다. 이름은 왕추, 나이는 31살.5명의 셰르파와 60여명의 포터의 대장인 ‘사다´로 에베레스트를 무려 8번이나 올라갔단다. 내 걱정을 알겠다는 듯 그는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해줬다. 산사나이의 말을 믿고 습기로 축축한 침대에 올랐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잠을 깼다.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럴 수가. 간밤의 오던 비는 꿈이었던가. 파란 하늘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온다. 아침을 먹고 드디어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는다. ●오후만 되면 비내리는 몬순의 고산지대 우리는 쿰부히말라야 일반적인 트레킹코스와 반대로 간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으로 해서 쿰부히말쪽으로 돌아서 루클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은 한국사람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루클라부터는 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전화, 전기도 들어 오지않는다.(큰 롯지에만 자가발전기를 쓴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무용지물이다. 가진 자나 그러지 못한 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오직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걸었다. 여기서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포터나, 집을 고치기 위한 나무를 지고 가는 주민들처럼 우리도 히말라야를 한발 한발 내디디며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히말라야를 느껴간다. 루클라를 떠난 지 1시간이 지나자 스티마 쿠알라계곡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자연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채만한 바위 위를 파랗게 덮고 있는 이끼. 조그만 씨앗 하나가 몇백년동안 저렇게 바위에서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콸콸콸’하고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압도당한다. 그런데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스틱에 의지하며 건너간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찌릿찌릿’전기처럼 다가오는 차가움. 몇 발을 떼자 아예 통증이 된다. 루클라를 떠난 지 4시간30분만에 캠프사이트인 추탕가에 도착했다. 첫날인데 벌써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린다. 몬순기간에 고산지대는 오후가 되면 기온이 상승하며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고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가 날씨가 맑아진다. 히말라야에 머문 20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날씨였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비로 눅눅해진 텐트에 몸을 눕혔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 고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고소’, 즉 고산병이다. 고도를 갑자기 올리는 것이 원인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생긴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서 혈액순환이 저하돼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무기력증, 손발 저림, 실어증 같은 것을 동반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증세는 단 몇백m만 아래로 내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씻은 듯이 낫는단다. 그래서 일반적인 트레킹에서는 고소적응 기간을 두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우리는 짧은 일정탓에 바로 4000m이상 올라 갔다. 4610m의 체트라고개를 넘어 4300m의 틸리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3시간을 걷자 3910m까지 올라갔다. 앞에는 하얀 봉우리를 날카롭게 드러낸 커리륭이라는 7500m의 산과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바위들, 파란 초지,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4000m를 넘자 이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니 이 숨막히게 한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잠시 멈추면 바로 ‘헉헉’하고 몇 번 숨을 몰아 쉬고 걸어야 한다. 사진 한장 찍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다.1시간 전에 웃고 떠들던 대원들도 단한마디 말이 없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양사헌의 시조가 생각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그래 가자 가. 그렇게 5시간을 넘게 오르자 체트라정상에 섰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이름모를 산들. 마치 양탄자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체트라 정상 구석에서 덩치가 제일 큰 원준희(춘천대 3)대원이 하얗게 변한 얼굴로 구토를 한다.“괜찮아?”하고 묻자 손만 내저을 뿐, 말을 하지 못한다. 몇 명의 대원들이 고소로 정신을 못 차린다. 말로만 듣던 고소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년 이어져온 자연의 힘 너덜지대를 걷는다. 돌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지대로 평지보다 걷기가 힘들다. 돌을 밟고 미끄러져 한바퀴 구른다. 아예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떻게 4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돌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람에 날려 왔을 리도 만무하고…. “이게 자연의 힘이에요. 여름에 물기를 머금은 바위산이 겨울에 얼면서 갈라져 저렇게 커다란 바위가 생기고 또 바위가 여름에 물기를 머금고 겨울에 팽창을 하는 물 때문에 갈라져 이런 바위 너덜지대가 생겨요. 수 천년동안 이런 현상의 반복으로 바위가 없어지기도 해요.”라고 옆에 있던 서병란(43)지도위원이 대원들에게 설명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4시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오늘 무려 9시간을 걸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 좀 할 걸.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서울 가면 반드시 운동하리라, 지키지 못할 맹세도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도 어느덧 멈추고 그토록 괴롭히던 고소도 상당히 좋아졌다. 오늘은 3690m로 내려가 모솜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 변변한 길도 없이 하루종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린다.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있고 고목을 뒤덮고 있는 이끼들을 보니 정글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고도를 내리자 고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4356m의 탕낙을 지나 5045m의 카레캠프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젠 5000m를 넘어서자 기온이 달라진다. 날씨가 초겨울 날씨같다. 이젠 5400m의 메라베이스 캠프다. 가파른 오르막과 험준한 산을 넘는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확실히 산소가 희박해짐이 느껴진다. 호흡을 일정하게 가지고 가야 한다. 간혹 기침을 한번 하면 자리에서 서서 숨을 고르고 가야한다.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기조차 힘들다. 아니 0.1초라도 숨을 멈추고 있으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다. 모 등산화광고에서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숨을 몰아 쉬는 것을 보고 연기인 줄 알았는데,5000m를 넘어서자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3시간을 걸으니 이젠 거대한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메라라’ 라는 만년설로 덮힌 언덕. 보는 순간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안전을 위해 등산화를 벗고 이중화와 안전띠를 착용한다. 난생 처음 신어 보는 이중화. 스키부츠와 비슷하다. 겉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설산에서 며칠을 있어도 방수가 완벽해 동상을 막아주는 신발이다. 그러나 정말 무겁다. 거기에 아이젠을 끼웠다. 그리고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띠를 착용하고 자일을 잡고 메라라를 오른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숨은 가쁘지만 가슴이 뻥 뚫린다. 몸속에 있는 독소와 스트레스가 히말라야의 기운으로 바꿔 채워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날 것 같다. 수천만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얼음절벽 위에 서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메라픽 정상을 가는 길과 홍구를 거쳐 추쿵을 가는 갈림길이다. 어디를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메라 베이스캠프부터 홍구, 판치 포카리까지는 거의 평지이며 바위 너덜지대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인 5800m의 암푸랍체가 우리를 기다렸다. 더구나 눈까지 내려 생각보다 힘들었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말이 실감난다. 길이 좁고 눈이 계속 내렸기 때문에 미끄러운 암푸랍체의 하산길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편안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는 쿰부히말라야다. 히말라야 마을 중 가장 오지이며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4730m의 추쿵. 왼쪽으로 8500m의 로체, 정면에는 6160m의 아일랜드피크, 오른쪽에는 6812m의 아마다블람은 거칠고 황량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의 보석으로 불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하얀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산. 그 선이 매우 날카롭지만 웅장하고 고왔다. 역시 많은 산사나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손 꼽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일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추쿵은 셰르파족이 사는 마을이 아니다. 몇 개의 롯지가 모여 트레킹족의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이제 진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 여기 추쿵부터는 일반인들이 쉽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하이웨이 추쿵부터 루클라까지를 히말라야에선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란 뜻이다. 길이 잘 이어져 있고 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다. 일단 여기부터는 롯지가 계속 있고 마을에 가게도 있어 콜라며 맥주, 과자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일단 300루피(약 70루피가 1달러. 한화로 4000원)를 주고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우∼ 세상에 맥주가 이런 맛이었나. 이렇게 맛있다니’ 히말라야에서 먹는 맥주는 입에 쫙쫙 붙는다. 어제와 오늘은 단순한 하루 차이지만 나의 느낌은 지옥과 천당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걷기도 편하다. 집들이 이어지고 돌담이 쳐진 밭에서는 감자와 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정말 즐거운 트레킹이다. 이제 며칠동안 햇빛을 못 본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을 만큼 마음도 몸도 여유가 생긴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트레킹족들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히말라야를 다녀온 것인데, 나는 지옥훈련을 택한 셈이다. 2시간을 걷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딩보체가 닿는다. 마을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라마의 문구를 새겨 놓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인 스투파. 포터들은 발길을 멈추고 스투파에서 기도를 하고 지나간다. 셰르파족인 그들은 그렇게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간다. 우리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무 욕심없이 라마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있다. 머리에 40㎏의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다니는 락기리(17) 또한 아버지의 직업인 포터를 대물림하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고산지대에 사는 셰르파족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오는 락기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한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들의 인생은 우리의 잣대로 가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소년 락기리가 좀더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기를 빌었다. ●희망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 딩보체, 팡보체를 지나 탕보체 가는 길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산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험준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이 지역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고 짧은 다리를 만난다. 그런데 다리에 여러 색깔의 깃발이 걸려있다. 처음에는 ‘멋으로 했겠지.’하고 지나쳤지만 다리마다 걸려 있는 오색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곳 사람들은 다리를 신성시하여 카타와 룽다(기도 깃발)를 걸어놓는 것은 물론 지날 때마다 ‘부디 하는 일 잘 되고 가족 모두 아무 탈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가득 담은 오색깃발은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3860m의 탱보체는 라마사원으로 유명하지만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등 유명한 산들을 같은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전망대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도 후원을 한다는 티베트사원인 콤파를 만나게 된다. 탕보체의 콤파에는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콤부히말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화재로 사원이 전소되었다가 붉은색 벽돌로 다시 지었지만 중후한 분위기와 차분함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는 제1전망대에서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정상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남체 바자르로 향했다. 계곡의 물소리 정겨운 작고 아담한 마을, 우거진 숲.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쿰부히말라야의 명동 쿰부히말라야의 제일 번화가는 당연히 남체 바자르다. 해발 3440m에 위치한 쿰부 히말라야의 상업적 요충지이며 등반과 트레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곳이다. 또 이 마을은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열린다. 쿰부히말라야에 사는 모든 셰르파족들이 생필품을 여기서 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시장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빵집과 레스토랑, 클럽, 당구장 등이 밀집해 있어 깊은 히말라야의 산중이란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마을 뒷산 꼭대기에는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네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메라피크 정상에 서는 것이다. 메라피크는 해발 6461m로 히말라야 트레킹피크 중에서 제일 높다. 윤대장이 은근히 나를 떠본다.“베이스에서 쉬시지?”내가 등반대장이라 해도 걱정이 되겠다. 장비라고는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지, 자일을 타 보길 했나, 설산 경험이 있나. 하지만 나는 큰소리쳤다.“해발 6000m, 자신있습니다.” 큰소리 지만 긴장과 두려움으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5800m의 메라 하이캠프로 올라간다.3명의 대원은 고소가 심해 베이스에 남았다. 눈부신 설원을 밟으며 걷는 대원들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마치 파란 하늘을 향해 걷고 있는 천사들 같다. 하얀 천국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온통 하얀색뿐이라서 그런지 1시간을 걸었는데도 제자리인 것 같다.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오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일단 하이캠프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음날 새벽 2시.8명이 정상으로 향했다. 서로 몸을 자일로 묶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며 오르기 시작했다.8명중 4번째 내가 섰다. 앞뒤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걸을 수 있다. 내가 못가면 앞뒤 사람이 다 못간다. 처음 1시간은 잘 걸었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잠시 대기”라는 외침이 입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3∼4발자국을 걷기가 힘들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로 거대한 설산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자 이젠 마지막이야. 여기만 오르면 정상이야.”라는 외침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걸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간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울 때 “정상이야. 메라픽 정상이야.” 하는 외침이 들린다. 나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는 앉아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은 정상이다. 그런데 표지 하나 없다. 약간 허탈했다. 그때 셰르파가 다가 오더니 저기 보이는 산이 에베레스트라고 가르쳐 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신기루처럼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불가능 같았던 산이 거기에 있었다. 신기루처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마치 짝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만봐도 행복해지듯…. 눈앞에 드러낸 웅장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깐, 서둘러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햇볕에 눈이 녹으면 발이 빠져 걷기 힘들기 때문이다. ‘잘 있거라.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은 없지만 안녕!’ 13시간을 눈밭에서 구르다 베이스에 도착했다.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길고 힘든 하루였다. ■ 네팔 가려면 네팔은 우리나라의 3분의2 정도 크기의 면적에 인구는 약 2500만명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화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루피(Rupee).1달러가 69루피 정도. 신용카드가 되는 곳이 드물며 한화는 환전을 할 수 없으므로 출국하기 전에 달러로 바꿔야 한다. 환전은 공항이나 카트만두에 있는 타멜시장의 시설 환전소를 이용하면 된다. 네팔은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리 네팔 비자를 받고 싶으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명예 네팔영사관(02-555-9040)’에 전화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발급은 보통 이틀 걸린다. 비자수수료는 32달러.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낫다. 단 비자수수료는 한국보다 2달러 싼 30달러. 비행기는 직항노선이 없다. 홍콩, 방콕, 상하이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www.nepal.pe.kr,www.nepaltour.pe.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트레킹 하려면 혜초여행사(02-6263-3330,www.hyecho.com)는 네팔 트레킹의 선두주자. 한 해에 3500명 이상이 혜초여행사를 통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알려주며 네팔 현지 지사에서 셰르파나 포터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도 공급해준다. 셰르파의 고향 남체로 찾아가는 9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하이라이트 트레킹은 205만원,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완성인 17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60만원. 푼힐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는 9일 일정의 로얄 트레킹은 185만원,180도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는 13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20만원. 또 10월쯤이면 루클라에서 출발, 추탕가와 메라베이스, 암푸랍체를 거쳐 쿰부 하말라야인 추쿵, 남체를 거치는 20일 일정의 히말라야 일주 트레킹 상품도 나올 예정이다. 이밖에도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에 맞춘 다양한 트레킹 여행도 가능하다. 네팔 트레킹은 여행기간이 길고 오지로 떠나기 때문에 전문여행사를 통해서 가야 한다.
  • 儒林(42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

    儒林(42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 맹자사상의 금강석인 ‘성선설’. 이에 대한 실마리는 고자(告子)와의 논쟁에서 이미 엿볼 수 있다. 고자는 “타고난 것을 성(生之謂性)”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인간이 타고난 생리적 욕망인 음식과 색을 좋아하는 것은 본성이므로 본성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사람의 본성은 선함도 불선함도 없으므로(性無善無不善也)’ 본성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은 마치 ‘고여서 맴돌고 있는 물과 같다. 이 말은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른다. 본성이 선과 불선함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없는 것은 이처럼 물이 동서로 나누어짐이 없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던 전국시대 최고의 쾌락주의자.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고자를 맹비난하고 있다. “물은 진실로 동서로 나누어짐이 없지만 어찌 상하로 나누어짐이 없다는 말인가. 인성이 선한 것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과 같으니 사람은 선으로 나아가지 않음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아니함이 없다. 물론 지금 물을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이마보다 높이 올라가게 할 수 있으며, 거꾸로 쳐서 역류하게 하면 산에 머물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다만 그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인 것이다.…” 맹자는 ‘다만 고여서 맴돌고 있는 정지된 호수의 물로 비유함으로써 물의 동서가 없음’을 강조한 고자의 궤변을 질타하고,‘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본성을 강조함으로써 ‘사람은 물처럼 아래로, 즉 선으로 내려가지 않음이 없다.’는 경쾌한 논리로 자신의 성선설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맹자는 고자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면 하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가.” 이에 고자는 대답한다. “그렇다.” 맹자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하얀 깃털의 흰 것이 하얀 눈(雪)의 흰 것과 같은 것이며, 하얀 눈의 흰 것이 하얀 옥(玉)의 흰 것과 같은 것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개의 성과 소의 성이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은 것인가.” 고자는 만물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니 존재의 본질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개의 본질이나 소의 본질이나 사람의 본질은 같다고 말한 것이고, 맹자는 개나 소의 본질과 사람의 본질은 다른 것이므로 그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마치 ‘말의 하얀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하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만 말이 늙은 것을 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람의 나이 많은 것을 나이 많은 것으로 공경하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질타함으로써 인간은 본질적으로 짐승과 다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천명을 지닌 존재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동물에겐 본능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는데, 본능은 자신의 의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생리현상이므로 인의예지의 천명을 가진 인간과는 감히 비교될 수 없으며, 그것을 억지로 비교하려는 것은 ‘사람과 금수의 구분(人禽之辨)’을 없애는 일이다. 금수에게는 없는 오직 사람만이 가진 내적 본질, 즉 인의(仁義)만이 진정한 사람의 본성이라고 맹자는 주장하였던 것이다.
  • [마광수의 섹스토리] (15) Foot Fetish

    [마광수의 섹스토리] (15) Foot Fetish

    벽을 보도록. 발 노예야, 내 발을 숭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때까지 구석에 가서 서 있어라!” ‘발 페티시(Foot Fetish)’ 클럽의 여주인 ‘지나’는 빨간 코트를 벗으면서 남자에게 명령한다. 지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남자는 여인이 걸친 무거운 비단 천, 숨겨진 긴 발톱, 하이힐의 은근한 힘을 연상한다. 다시 지나가 그에게 말한다. “너는 내 발을 숭배할 자격이 없다. 안 그런가? 나의 불쌍한 노예야.” 남자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이한 마조히즘의 쾌감에 잠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저의 여왕님. 저는 여왕님의 발을 숭배할 자격이 없습니다.” 남자는 벌써 널찍한 방 구석에서 몸을 움츠리며 즐거운 공포에 젖어있다. “야, 발의 노예야. 너는 이제부터 착하게 굴어야 한다. 내 친구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도록 해라.” 남자는 그저 그렇게 생긴 보통 사람이다. 보통 키에 보통 체중, 고급 미용실에서 만진 듯한 산뜻한 헤어스타일, 투명색 매니큐어를 칠해 말끔하게 다듬어진 손톱, 나이는 마흔 서너살쯤…. 남자는 사타구니에 꽉 끼는 검은 가죽 팬티를 입은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다. 코트를 벗어젖힌 지나는 아름다운 살결의 여성이다. 검은 색 니트 캣슈트(손목에서 발목까지 가리는, 몸에 꽉 끼는 여성용 운동복)가 탄력있는 몸매를 매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나는 허벅지까지 오는 윤기 나는 비닐 부츠를 신고 있고, 귀에는 무거운 은제(銀製) 귀고리를 달고 있다. 코트를 의자 위에 던져놓은 지나는 핸드백에서 스웨이드 채찍을 하나 꺼낸다. 그리고 채찍으로 노예의 뭉툭한 고환 부근을 때리면서 계속 욕설을 퍼붓는다. “발 노예야, 이번 주일엔 어땠지? 내가 시킨 걸 다 했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예는 아주 공손한 음색으로 겸손히 묻는다. “내가 너에게 선물로 준 나의 하이힐에 너의 페니스를 비비면서 매일마다 마스터베이션을 했냐 이 말이야.” “예, 그렇게 했습니다. 여왕마마께서 시키신 일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너는 내 말을 잘 듣는 노예냐?” 이렇게 말하면서 지나는 남자의 어깨를 채찍으로 내려친다. 남자는 아픔으로 몸을 떤다. “자,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할 테냐?” 이렇게 말하면서 지나는 남자의 등을 세게 채찍질한다. 그러고서 다시 덧붙인다. “발 노예, 네가 얼마나 착하게 굴었는지에 대해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 “예, 여왕님,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럴만한 가치조차 없지요.” 지나는 남자한테서 몇발자국 떨어져나와 발을 벌리고 선다. 그리고 양손을 허리에 얹는다. 실내는 조용하다. 차량들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을 닫아둔 상태이다. 공기를 가르는 채찍소리와 지나의 목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강력하면서도 교양이 있고, 그리고 명령하는 투의 지나의 목소리 이외에는……. 지나는 다시 웅크리고 있는 남자에게 명령한다. “돌아서서 나한테로 기어와라.” 말씨이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지나를 향해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와 그녀의 발 바로 앞에서 멈춘다. 바로 눈 앞에 부츠를 신은 지나의 오른쪽 발이 있지만, 남자는 수줍어 어쩔 줄을 모른다. 지나의 발 끝이 남자의 뺨에 닿는다. 남자의 페니스가 발기한다. “핥아라.” 지나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남자에게 말한다. 남자는 지나의 반짝거리는 비닐 부츠에 혀를 댄다. 그리고 혀로 신발을 광택나게 닦기라도 하듯이 길고 넓게 부츠를 핥는다. ‘발 페티시스트(Foot Fetishist)’의 유형에는 세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발 숭배하기이다. 그들은 여자가 신발을 신은 채든 벗은 채든 발을 핥고 발에 키스하는 데서 오르가슴을 느낀다. 그 다음은 짓밟기.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남자의 몸뚱어리 위를 걸어다니거나 짓밟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거녀(巨女) 콤플렉스’ 실연하기. 거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남성은 숫자가 좀 적다. 그들은 상대방 여성이 거인(巨人)이고 자신을 난쟁이라고 생각하며 상대가 자기를 밟아죽이는 상황을 연기하고 싶어한다. 남자는 지나의 부츠를 오랜 시간동안 핥고 빨다가 드디어 자기의 몸뚱어리를 짓밟아 달라고 애원한다. 지나는 엎드린 남자의 등 위에 서서 사정없이 뾰족한 굽으로 짓밟는다. 그때 남자의 페니스에서 정액이 분수처럼 솟구쳐 나온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지나는 부츠를 벗고서 맨발을 드러낸다. 그런 다음 남자에게 명령한다. “이제 내 발의 냄새를 맡아라!” 그리고 이어서 덧붙인다. “발에 코를 대고서 진짜로 냄새를 맡는 거다.” 남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지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 남자는 지나의 발에 입술을 갖다댄다. 지나의 발냄새를 깊숙이, 그리고 허겁지겁 들이마시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이젠 발을 문질러라.” 지나가 말한다. 지나의 발은 갸름하고 발가락이 길다. 다소 짧은 새끼발가락을 빼고 나머지 발가락들은 엄지발가락만큼 길며 발톱들에는 빨간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지나의 발을 문지르는 동안 남자는 가끔씩 신음소리를 낸다. 얼굴에는 성적 흥분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지나는 남자에게 문지르는 것은 이젠 됐다고 말하면서, 엄지발가락 하나를 부드럽게 남자의 입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남자는 숨죽여 흐느낀다. 남자는 계속해서 열심히 여자의 발가락을 빤다. 남자는 헐떡거리면서 숨을 몰아 쉬며 신음한다. “난 잠깐 쉬고 싶다.” 지나는 남자의 입에서 발을 빼며 말한다. 남자의 얼굴에서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드러난다. 그리고 뜨거운 갈망의 표정도 드러난다. 시간이 잠시 흐른 뒤, 지나는 남자의 음낭 주변을 그물스타킹으로 묶는다. 그리고 남자가 지나의 부츠를 공손하게 신기고 있는 동안 그의 귓전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남자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다. 지나는 빨간색 코트를 입는다. 남자가 지나에게 두툼한 돈을 지갑에서 꺼내어 준다. 정중한 자세로……. 남자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남자의 아내는 남편이 발 페티시스트라는 것을 모른다. 오랫동안 정상체위의 섹스만 해왔기 때문이다. 남자는 식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든다. 물론 아까 음낭에 매고 온 스타킹을 풀어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한 뒤의 일이다. 남자는 아내와 인터코스를 하면서 아까 가졌던 지나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페니스가 차츰 발기되어 온다. 남자의 아내는 펠라티오조차 하기를 거부하는 ‘숙녀’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삽입성교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지나의 긴 뾰족 부츠와 발 냄새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그러자 점점 더 또렷하게 그녀의 발 모양과 냄새가 머릿속에 떠올라온다. 그의 페니스가 드디어 아내의 질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아까 지나가 자신을 엎드려놓고 발로 밟아줬던 기억을 쥐어짜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기억은 잠시뿐, 그의 페니스는 서서히 오그라들고 만다. 그의 아내가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자는 삽입성교를 포기하고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기댄다. 그러고는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문다. 아내가 남편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한다. “여보, 우리 큰 병원의 섹스클리닉에라도 가봐요. 당신의 성기능이 아무래도 이상해요.” 남자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그러면서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까 봤던 지나의 긴 비닐 부츠와 송곳 같은 굽이 오르락거린다. “내일은 돈을 더 줘 봐야지…. 그러면 더 오랫동안 나를 밟아줄지도 몰라….” 그는 이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긴 한숨을 몰아쉰다. 아내는 남편의 심정을 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녀도 답답한지 담배를 한 대 피워문다.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임해리의 色色남녀] 향락과 보신을 위해

    많은 사고와 재난 속에서 인간의 욕망만큼 찜통 같았던 더위도 물러가고 가을이 돌아오고 있다.예전에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향락(享樂)과 보신(補身)의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유난히 정력에 대한 집단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보신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래서 아직도 야생동물의 악몽은 계속되고 있으며 정력제 판매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그런데 타자의 생명을 빼앗아 입으로 넣는 보신책보다 더 중요한 건강법이 오래 전부터 전해오고 있다. 방중술(房中術)은 도교의 종교적 실제 수행법의 하나로 규방에서 남녀가 성(性)을 영위하는 방법으로 음양(陰陽)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양생과 장수에 그 목적이 있었다.즉 음양의 기(氣)를 교류하여 크게 정기를 보하고 건강과 장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방중술서인 ‘양생방’에 나오는 내용 중 기(氣)에는 7가지 손실과 8가지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기를 해치는 7가지 행위는 ①행하는 데 아픔이 있다 ②행하는 데 땀이 나온다③행하여 끝이 없다 ④욕망은 있어도 되지 않는다 ⑤행하는데 숨이 차고 몸 안이 흐트러진다 ⑥욕망이 없는데 무리하게 한다 ⑦행하는 데 몹시 빠르다.이것들을 피해야 기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도 유용한 지침이 되는 것 같다.특히 자신의 신체적 컨디션은 무시한 채 성적 욕망을 배설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흥분제와 정력 보조기구에 의존하는 남성들에게는 보약 같은 금언(金言)이라 여겨진다. 한편 기를 보하는 8가지 행위는 ①치기(治氣):아침에 일어나면 등뼈를 곧추 세워 항문을 벌리고 기를 30회쯤 들여 마신다 ②치말(致沫):규칙적인 식사시간에 등뼈를 바로 세워 기를 충분히 들여 마시고 기를 도통(導通)시킨다 ③지시(智時):성행위 시 남녀가 같이 즐기는데 여성이 능동적으로 하도록 유도한다 ④화말(和沫): 행하되 서두르지 않으며 수없이 출입하면서 기를 진정시키고 정돈한다 ⑤축기(畜氣):행동으로 옮기면 등뼈를 움직여서 기를 충분히 받아들이면서 삼킨다.⑥절기(竊氣):체위를 서로 바꾼다.⑦사라:거의 끝나 가는 무렵에 사정을 하되 등뼈는 움직이지 않으며,기를 삼켜서 몸을 안정시키고 따듯하게 한다.⑦정경(定頃):끝나면 씻는다.또한 이 8가지 이익을 실천하지 않고 7가지 손실을 피하지 않으면 40세에 기가 반으로 떨어지고 50세에 일상의 행동이 쇠약해진다고 하였다. 성행위는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고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 기초이며 생명 에너지를 보존하는 인간의 생존권과도 같은 것이다.그런데 성에 대한 금기가 오랫동안 지배했던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성인들은 성에 대한 기본 지식과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한 세대였다.그러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섹스산업이 해일처럼 밀려오게 되었다.그중 남성위주의 성적환상을 자극하기 위한 포르노는 성의 상품화와 함께 여성을 성적 도구로 만들면서 성을 소비적이고 부패한 것으로 만들어 더러운 시궁창으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고대인들의 방중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성의 진정성과 건강성의 회복에 있다고 보여진다. 성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출판계가 만들어 가는 사회코드

    ‘인간 심리’와 ‘옛것’, 그리고 ‘숫자’. 요즘 출판계가 선호하는 키워드 세 가지다. 극심한 출판 불황 속에서도 제법 팔리는 책들을 보면 이 세 가지 키워드중 하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심리’가 유행하는 것은 결국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란 속담이 요즘처럼 가깝게 다가오는 때가 있을까? 일자리를 얻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반항하는 자녀의 속내를 알기 위해 변덕스러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심리’를 파헤치는 것은 중요해졌다. ‘평생성적, 초등학교 4학년에 결정된다’처럼 책 제목에 숫자를 끼워넣는 것도 이같은 불안 심리의 연장이다. 도덕 선생님 같은 두루뭉수리한 훈계는 싫다. 족집게 강사처럼 하나라도 실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원한다. 신년 하례때 일부 정치인들이나 휘갈려 쓰며 한껏 폼을 잡던 ‘고전’의 문구가 일반에 되살아난 것도 주목할 만한 일.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조성모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각광 받았듯, 수천 년, 수백 년 전 선조들이 현대의 각색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한다. 옛것도 리메이크하면 새것. 현대인들은 옛것을 통해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내다본다. 베스트셀러는 이같은 사회코드를 들여다보는 프리즘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1) 심리를 공략하라 심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애인이, 상사가, 동료·후배가,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다 보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심리 읽기에 열중한다. 이같은 ‘심리 읽기 욕망’을 겨냥한 책들이 바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류 책들이다. 남녀가 서로를 유혹하는 데 키포인트는 뭘까?능력도, 자상함도, 잘생김도 아니다. 인간의 유혹은 단지 감각의 산물이다. 약물을 써 동공을 확대시킨 여자들에게 남자들은 한결같이 열광한다. 나이트클럽의 고막이 터질 듯한 음악은 뇌의 호르몬 작용에 관여해 ‘작업’의 성사를 쉽게 한다. 이 모두 추측이 아니라 실험이 증명한 사실임을 파트릭 르무안의 ‘유혹의 심리학’(북폴리오)은 말해 준다. 1964년 미국 뉴욕의 한 동네. 새벽에 20대 여성이 집 앞에서 피살됐다. 그녀는 ‘도와 달라.’고 고함쳤고,38명의 이웃이 창문으로 현장을 보았지만 누구도 도와주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로렌 슬레이터가 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 서재)에선 이 사례에서 책임의식에 대한 현대인의 심리를 본다. 개인의 책임의식은 그들이 소속한 집단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것. 실험에 따르면 오히려 목격자가 한 명밖에 없었다면 피해자가 도움받을 확률이 85%였다. 기업 경영자나 간부들이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가야 할지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소비를 지배하는 것도 심리다. 불황인데도 명품이 잘 팔리는 현상엔 ‘실패확률이 낮다.’란 소비자의 안전심리가 깔려 있다. 쇼핑몰에 ‘마지막 한정품’이란 푯말이 자주 붙는 것도 ‘지금 아니면 살 수 없다.’란 불안감을 부추기기 위한 것. 시식코너에 6가지의 햄을 늘어 놓은 날이 24종류의 햄을 늘어 놓은 날보다 매출이 높았다는 실험은 선택의 홍수시대에 지나친 선택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 심리를 잘 보여준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들이 펴낸 ‘마음을 유혹하는 경제의 심리학’(밀리언하우스)은 이처럼 수많은 경제이론 속에 숨겨져 있는 경제의 참모습을 ‘심리’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다. (2) 숫자는 확실하다 지난 연말 출판되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책이 있다. 번역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편저, 위즈덤하우스). 무한경쟁의 시대에 작은 실천으로 큰 행복감을 얻는 행위들을 소개한 책이다. 내용과 함께 궁금한 것 한 가지. 왜 49가지일까?. 이에 대해 출판사측은 ‘나이 쉰이 되기 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아 그래, 힘 떨어지기 전에, 쉰이 넘기 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심리를 겨냥한 것. 불교에서 ‘사십구재’ 등 죽음의 의미가 있는 것도 작용했다. 원서엔 99가지로 되어 있던 것을 출판사에서 49가지만 추려냈다. 한데 이 책만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평생 성적, 초등학교 4학년에 결정된다’(예담)‘상위 1%로 가는 10분 공부법’(파라북스)‘2010 대한민국 트렌드’(한국경제신문)‘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영진.COM) 등등. 왜 사람들은 이렇게 ‘숫자’를 좋아하는 걸까? ‘평생성적∼’를 펴낸 예담의 김태영 사장은 “궁금증과 위기의식을 유발하고, 구체적 정보를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밝혔다.‘그럼 5학년 때부터는 이미 늦어 공부 다했다는 얘기냐?’는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처음엔 그냥 ‘평생성적, 초등학교때 결정된다’로 했다가 너무 두루뭉수리하고, 힘이 없어 보여 ‘4학년’이란 숫자를 도입했단다. 어쨌든 ‘봐라 4학년이 중요하지 않느냐.’라고 위기감을 준 것이 마케팅에서 주효해 35만부나 팔려 나갔다.‘일곱살부터 하버드를 준비하라’(북센스),‘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랜덤하우스 중앙) 등도 이같은 의도가 깔려 있다. 이같은 숫자 마케팅은 특히 미래담론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2010 대한민국 트렌드’‘10년후 한국’‘10년후 세계’‘2020 미래한국’ 등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높아만 간다. 이런 책들은 구체적 시간, 구체적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잡은 책들이다. (3) 옛것은 ‘오래된 미래’ 홀대받아온 고전, 고리타분하다고 배척받아온 옛 사람들이 부흥기를 맞았다. 서점에 가면 동양고전이 세련된 장정으로 옷을 갈아 입고 유혹의 눈짓을 보낸다. 잊고 지냈던 옛 선조들이 수백년을 뛰어넘어 나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호통을 친다. 요즘 독자들의 시선을 받는 고전은 ‘옛날이란 시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생생히 살아있다. 아니 현실을 넘어 미래를 이야기한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동양 고전을 재해석해 풀어낸 책 ‘강의’(돌베개)는 5만부나 팔렸다. 고전책으론 엄청난 기록. 한국의 대표적 진보 학자인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패권 질서로 위기에 처한 세계문명의 대안을 동양고전에서 찾는다. 내 나라, 내 가족, 나 자신의 이익만이 판치는 현대에서 이웃과 공생하는 관계론의 시각으로 공자와 맹자, 노자, 장자를 해석한다. ‘옛 공부의 즐거움’(웅진지식하우스)을 쓴 이상국은 고전과 옛 사람들을 ‘놀이의 장’에 끌어 들인다. 노자의 ‘도덕경’을 놓고 김춘수와 유치환, 박경리를 불러내 작품 이야기를 펼친다. 글과 실용의 일치를 주장하고 실천했던 연암 박지원과 다산 박지원을 불러내 공리공론만 일삼고 있는 선학들을 꾸짖기도 한다.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이덕무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나오는 18세기 조선의 학자들은 현대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거울로 삼아야 할 선학들이다. 이덕무씨는 “다산과 연암 등 열린 지식인층이 주류로 편입되지 못하면서 조선 지식인 사회는 성리학 중심이라는 폐쇄회로에 갇혔다.”고 분석한다. 또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 사회도 상아탑의 폐쇄적 권위와 전문분야 지식에 대한 독점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권형진·이종훈 엮음

    나치즘 운동에 목숨을 바친 호르스트 베셀. 마오쩌둥 시대의 ‘붉은 전사’ 레이펑. 스탈린 시대의 스타하노프.‘영원한 천리마’ 길확실.‘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이승복…. 눈밝은 이들은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파시즘 체제에 각광받은 ‘영웅’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김일성, 박정희처럼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역사영웅’이 아니라, 대중적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영웅, 즉 ‘대중영웅’이었다. 노동영웅, 천리마영웅, 소년영웅, 반공영웅 등등. 이들 다양한 대중영웅들은 언제 왜 등장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권형진·이종훈 엮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파시즘 체제에서 ‘영웅’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꼼꼼히 파헤친 책이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가 기획했다. 책에 따르면 대중이 본격적으로 영웅숭배의 대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다. 가족을 떠나 참호에서 몇 년 동안 최악의 순간들을 경험해야 하는 병사들을 묶어두고, 남자없는 후방에서 여성들이 무기공장에서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민족심과 애국심이 무한대로 강조되었고, 권력은 이들의 희생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을 주어야 했다. 저자는 대중영웅에서 권력의 필요 못지않게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대중의 욕망을 읽어낸다. 스탈린 시대 공산주의 이념의 순교자로 만들어진 소년영웅 파블릭 모로조프 기념관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서방 언론 취재에 응하면서 한 발언이 시사적이다. ‘그는 영웅이 아닌 단지 자그마한 어린애였을지 모르죠. 그러나 그 시대 우리는 영웅이 필요했어요.’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서하진 지음, 창해 펴냄)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는 중산층 주부 연수는 어느날 남편의 애인에게서 ‘떠나달라’는 경고성 전화를 받고, 익명의 남자가 보낸 꽃다발을 배달받는다. 두가지 사건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찌든 연수에게 새로운 삶의 욕망을 불어넣는다. 청계천 복원 기념사업의 하나인 ‘맑은내 소설선’의 두번째 작품으로, 오간수교를 소재삼았다.8000원.●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이재웅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난 이미 늙은 소년이었다.’는 황량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열두살 소년의 성장기.‘나’는 몸을 파는 누나의 곁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날 수 없는 지독한 가난을 대면하며 자본주의가 빚어낸 비인간적인 현실을 고발한다.2001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저자의 첫번째 장편소설.9000원.●새의 노래(시배스천 폭스 지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사랑에 실패한 뒤 프랑스 전장으로 뛰어든 한 영국인 청년의 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한다. 전쟁과 로맨스가 조합된 탁월한 서사시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시배스천 폭스의 대표작.1만 2000원.●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데라야마 슈지 지음, 김성기 옮김, 이마고 펴냄)1960∼70년대 문학, 연극,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위적인 활동을 펼쳤던 일본 예술가 데라야마 수지의 수필집. 도발적인 상상력과 역설로 가득한 내용은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인기가 식지 않는 까닭을 엿보게 한다.1만 2000원.●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이홍섭 지음, 세계사 펴냄)1990년 ‘현대시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세번째 시집.‘강릉, 프라하, 함흥’‘숨결’등 전작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서정성과 불교적 색채가 짙은 시어들로 맑고 투명한 삶의 풍경과 무욕의 세계를 그려낸다.6000원.●빛나 보이는 것, 그것은(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아쿠타가와 상,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등 일본 문단의 권위있는 문학상을 휩쓴 작가의 가족소설.16세 소년 에도 미도리가 별난 가족들과 살아가면서 겪는 성장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9500원.
  • 儒林(42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9)

    儒林(42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9)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9) 이 장면을 보면 맹자 자신도 ‘말을 좋아하는 호변가(好辯家)’로 불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맹자는 다만 ‘비뚤어진 사설을 없애고(息邪說)’, 또한 ‘방자한 말을 몰아내기 위해서(放淫辭)’ 어쩔 수 없이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양주·묵적의 사상과의 치열한 논쟁은 뒤에 상세히 다루어질 것이니와 부동심을 얻기 위해서는 ‘호연지기(養氣)’와 동시에 ‘말을 알아야 한다.(知言)’는 스승의 대답을 듣자 공손추는 마침내 맹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언이라 합니까.”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비뚤어진 말에서 그 가려진 바를 알며, 지나친 말에서 그 빠져 있는 바를 알며, 사악한 말에서 그 떨어져 있는 바를 알며, 회피하는 말에서 그 곤궁한 말을 아는 것이니, 그 마음에서 생겨나 정치에 해를 끼치며, 그 정치에서 비롯되어 그 일에 해를 끼친다.…” 맹자는 자신이 호변가(好辯家)가 아니라 지언가(知言家)임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 맹자는 말의 병폐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즉, 비뚤어진 말의 ‘피사(辭)’와 지나친 말의 ‘음사(淫辭)’, 사악한 말의 ‘사사(邪辭)’, 회피하는 말의 ‘둔사(遁辭)’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말이 비뚤어지게 나오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며, 말이 지나치게 격해지는 것은 자신의 세속적인 명예나 욕망이 손상을 입을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말이 사악해지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며, 말이 회피되는 것은 책임을 면하기 위한 것이나 진실을 속이려는 거짓말의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대부분 이 말의 해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가 ‘너희는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은 바로 대부분의 말이 마음속의 악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인 것이다. 맹자는 자신은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말의 해독에서 벗어나 있음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인께서 다시 일어나더라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를 것이다.(聖人復起 必從吾言矣)” 그리하여 BC312년, 맹자는 홀연히 제나라를 떠난다. 이때 맹자의 나이는 60세. 38세 무렵에 시작된 맹자의 주유천하는 이미 20년 이상 계속되었고, 노경에 접어들었으나 제나라를 떠나는 맹자의 뒷모습은 대장부다운 당당한 기상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호연지기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맹자의 모습은 ‘머물러야 할 때는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나야 할 때는 빨리 떠나는 것은 공자이시다. 나는 그런 것을 행할 수 없지만 원하는 것은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단호하고 꿋꿋한 태도였던 것이다.
  • 축구대표 감독 선임 임박

    2일 열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위원장 이회택)를 앞두고 조 본프레레 감독의 뒤를 이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도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독이 든 성배’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은 대략 30명선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해외 유명 감독들의 ‘러브콜’이 잇따르는 기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새 감독은 늦어도 추석연휴(17∼19일) 즈음에는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감독 선임 작업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강신우 기술위 부위원장은 “10월12일 이란과 평가전에 앞서 9월 말까지는 국내에 입국, 훈련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군 중 외국인과 내국인 비율은 6대4 정도로 알려졌으며, 이들은 크게 세 집단으로 분류된다. 베르티 포크츠(58) 전 독일 감독과 필리페 트루시에(50) 전 일본 감독, 바비 롭슨(72) 전 잉글랜드 감독 등 해외 지도자 한 묶음과 차범근(52) 수원 감독·김호곤(54) 전 올림픽대표 감독·조광래(51) 전 LG감독·김호(61) 전 월드컵 감독 등 국내 지도자, 그리고 K­리그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출신 이안 포터필드(59) 부산 감독 등이 거론된다. 이들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감독직을 희망하는 것은 내년 6월 독일월드컵 본선무대를 직접 밟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서 비롯됐다. 동시에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면서도 여전히 ‘미완’인 한국 축구에 대한 가능성을 높게 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94년부터 98년까지 독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포크츠 감독은 “2006독일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감독직을 수행한다는 조건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유럽팀과 상대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 빨리 많은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프 마이어 코치 등 2명을 대동하겠다.”고 구체적 운영 프로그램까지 밝힐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의 촉박함과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도 등의 이유로 K-리그 3년째인 포터필드 감독에게 무게가 쏠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축구협회는 일단 대외협력국 차원에서 받은 감독 후보들의 데이터를 기술위에 상정해서 기술위원들 스스로 최종 후보를 결정토록 할 방침이다.이후 기술위는 우선협상대상자 순위를 결정한 뒤 9월 초부터 영입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SBS 드라마 ‘서동요’ 선화공주역 이보영

    SBS 드라마 ‘서동요’ 선화공주역 이보영

    “선화공주님은/남몰래 정을 통해놓고/서동을/밤에 몰래 안고 간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가장 오래된 향가로 등장하는, 능청맞기 이를 데 없는 사연을 가진 노래 서동요(薯童謠). 마음에 드는 신라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해 백제의 꾀돌이 소년이 지어 퍼트렸다는 노래다. 물론 이 꼬마는 나중에 백제왕이 된다. 이 드라마 같은 얘기가 1600여년의 세월을 넘어 진짜 드라마로 부활했다.SBS가 창사15주년기념 특집으로 마련한 50부작 대하드라마 서동요가 5일 선보인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는 탤런트 이보영(26)이 ‘선화공주’역을 맡았다. 참한 새색시 같은 이미지로 언제나 구슬프게 울었던 이보영이 이번에는 화사한 공주로 되돌아 온 것. 굽이쳐 흐르며 충북 부여를 관통하는 백마강 옆 야외세트장에서 이보영과 만났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는 이보영은 말 그대로 공주의 자태였다.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입 댈 정도다. 고급스럽게 화사한 밝은 톤에다 화려한 수가 놓여져 있다. 그런데 그나마도 공주의 평상복이라 한다. 좀 더워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호강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이보영도 그런 듯했다. 전작 ‘어여쁜 당신’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극적 긴장이 정점에 다다르는 바람에 너무 울었기 때문.“사실 처음에는 조금 쉬고 싶었어요. 최근 7달 정도를 울고 또 울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역은 발랄하고 활달한 역이어서 마음에 들어요. 장난기도 많고 명랑하고 쾌활해요.”그래서인지 첫 사극이라 긴장될 법도 한데 외려 재미가 쏠쏠하다 한다.“사극이다 보니 대사의 톤이나 발성같은 게 어색하기도 하고 의상도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처음이니까 재미가 더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캐스팅된 이유를 묻자 아무래도 밝은 면인 것 때문이라고 한다.“이병훈PD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캐스팅한 이유가 ‘어여쁜 당신’을 초반부만 봤는데, 그 때 연애하고 그런 밝아보이는 모습이 좋아서라고요.”실제 성격을 묻자 “평소 성격도 그래요. 장난기도 있고 명랑하고. 물론 어느 정도 과하지는 않게요.”이보영 본인 욕심도 적지 않다.“좋은 감독님과 스태프 때문에 욕심이 너무 나더라고요.”‘어여쁜 당신’과 촬영 스케줄이 겹치는데도 출연을 강행했던 것도 이 때문. 서동요에서는 선화공주의 예쁜 연애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PD는 ‘대장금’에서 의학과 요리를 선보였듯, 서동요에서는 ‘과학’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러브스토리를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대장금에서 이영애와 지진희의 러브스토리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뭐라 그래도 왕의 여자였기에 드러나지 않아야 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양쪽이 왕자, 공주니까 자유롭게 한번 표현해볼 생각입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NG까지 탐나요” 어여쁜 공주가 있으면 그 공주를 차지하려는 선 굵은 사내들이 있어야 또 제 맛이다. 어쩌면 그 인물들간 얽히고 설킨 선택이 드라마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선화공주 주변에는 두 남자, 서동과 사택기루가 있다. 서동을 맡은 조현재. 이 PD의 평가처럼 “왕족다운 준수함과 적당한 음영”이 얼굴에 짙게 깔려 있었다.“제 얼굴이 너무 진지해보인대요. 그런데 그게 이 역할과 잘 어울린다고 하시더라고요.”워낙 대작을 연출해온 이PD의 작품이라 부담은 되지 않을까.“아직 나이가 어리거든요.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사택기루역의 류진은 “또 여자고 뭐고 다 뺏기는 역할”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배우라면 사택기루역이 더 탐날만도 하다. 진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화공주를 사랑할 수 없는 인물, 그러기에 왕족이 되기 위해 최고의 비밀임무를 받아들여야 했던 인물, 그럼에도 선화공주의 행복을 위해 서동의 권력 장악을 도와야만 했던 인물, 그게 바로 사택기루다. 애정, 욕망, 음모 등 온갖 감정이 다 뒤엉킨 캐릭터인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둘 다 사극은 처음이다. 이 PD와의 작업도 처음이다. 그런만큼 긴장이 많이 된다.“이 PD님이 수십번 NG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적응해나갈지 고민이 많지만 어렵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논술 가이드라인] “예이츠詩 욕망과 연관 분석하라”

    [논술 가이드라인] “예이츠詩 욕망과 연관 분석하라”

    교육부의 논술 기준을 따를 때 어떤 문제가 해당되고 안되는지 궁금해진다. 입시전문학원인 종로학원은 29일 교육부 기준에 따라 주요 대학들의 최근 기출 논술 문제를 분석, 공개했다. 이 학원에 따르면 논술에 해당하는 유형으로는 주요 대학의 정시모집 논술 문제가, 논술에 해당하지 않은 유형으로는 수시모집 논술 문제가 많았다. 논술에 해당하지 않은 유형 가운데 ‘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묻는 문제’로는 고려대와 숙명여대의 2006학년도 수시1학기 논술고사를 예로 들었다. 숙명여대는 소설가 복거일씨의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라는 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파스퇴르의 생물속생설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발견 과정과 과학사적 중요성에 대해 서술할 것을 요구했다. 고려대는 정수와 유리수의 관계를 간단히 소개한 뒤 복소수의 필요성과 실수와 구별되는 복소수의 성질 세 가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다. ‘수학·과학과 관련한 풀이의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 유형으로는 고려대와 이화여대의 2006학년도 수시1학기 수리논술을 예로 들었다. 고려대는 염색공장의 생산량과 염색업자와 양식업자의 이윤을 표시한 표를 주고 서로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설명하라는 문제를, 이화여대는 아파트에서 남산타워의 높이를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다. 교육부의 기준에 맞는 출제 가능한 문제로는 고려대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의 2005학년도 정시 논술문제와 서강대의 2004학년도 정시 논술문제를 제시했다. 서울대는 두 개의 우리말 제시문을 주고 별도로 제시한 특정 문장을 인용해 자신의 견해를 담아 논제를 해결하는 문제를 냈다. 고려대는 4개의 우리말 제시문을 주고 공통 주제와 제시문간 관계, 자신의 생각을 물었다. 연세대는 영국 시인인 예이츠의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이라는 시를 번역 제시하고,‘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쓰라고 요구했다. 이화여대는 3개의 우리말 제시문을 바탕으로 네번째 제시문에 대해 찬반 입장을 정해 현대사회 안에서 비일상성이나 비현실성이 지니는 기능을 논하라는 문제를 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미술, 음식과 만나다

    맛있는 초콜릿, 나뭇잎, 구슬로 만든 푸딩, 고춧가루로 만든 립스틱, 쫄깃쫄깃한 젤리로 만든 변기…. 음식이 더 이상 식탁의 재료가 되길 거부(?)한 채 전시장 나들이를 나섰다. 관람객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한 전시회 ‘미식가’에서 작가 15명은 모두 일류 요리사를 자청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젤리빈으로 변기를 제작한 데비한은 식욕과 배설이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예쁜 모델의 입술에 바른 립스틱은 다름 아닌 고춧가루. 고추의 매운 ‘핫’(hot)과 섹시한 ‘핫’(hot)의 이중적 의미를 동시에 담아냈다. 황성준은 유학시절 벼룩시장에서 보던 식사도구 포크, 나이프, 스푼을 캔버스위에 배열한 뒤 다시 캔버스천으로 팽팽하게 덮은 뒤 캔버스 뒤 포크 등의 실루엣을 목탄으로 재현했다.“생존을 위한 밥먹는 도구를 욕망을 퍼내는 도구로 표현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 이미경은 초록빛 나뭇잎에 섭씨 50도에서 녹인 쵸콜릿을 붓으로 발라 ‘나뭇잎 초콜릿’풍경화를 그려냈다.강용면은 깜깜한 실내에 높이 50m의 놋쇠 밥그릇에 나무를 깎아 만든 밥을 소복이 담아내 우리 전통 식문화를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 눈, 코, 입, 귀를 꽃모양으로 형상화해 낸 이중근의 ‘오감화’(五感花)는 맛을 오감으로 느끼는 식탁으로 변했다. 채민진 큐레이터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미식가와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예술가는 그 의미가 상통한다.”고 말했다. 새달 16일까지 청담동 카이스갤러리.(02)511-0668.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양상현 지음

    덕수궁길에 가보면 일단 사람들 걸음걸이에서 여유로움을 본다. 대한문에서 경향신문사에 이르는 이 길은 도심 내에서 수목과 더불어 거닐 수 있는 녹도의 개념을 도입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다. 곡선형으로 설계된 차로, 일반적 과속방지턱보다 10㎝나 더 높은 과속방지턱, 미니 로터리, 그림이 있는 바닥타일 등등. 어느 모로 보나 차량 소통보다는 보행권을 우선 배려했다. 여기에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과 정겨운 덕수궁 담장까지 있으니, 발걸음이 절로 느려질 수밖에. 하지만 우리나라 도심에서 이런 곳은 극히 드물다. 건축물은 편의점 매장의 과자봉지들처럼 이웃과 무관하게 그저 크기와 형태에 따라 빽빽이 진열되어 있을 따름이다. 사이좋은 공존보다 어떻게든 튀어 구매자의 눈길을 끌려는 자본의 욕망이 우선한다.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양상현 지음, 동녘 펴냄)은 이처럼 본격적인 건축 해설이나 비평이 아닌, 건축의 뒤편, 혹은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에 주목한다. 일상의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저자는 현재 우리 도심에선 상당한 피로가 느껴진다고 꼬집는다. 볼 것 없는 거리는 점점 더 삭막해지고, 오직 속도에만 복무해 간다고 지적한다. 상품과 노동자를 원활하게 이동시켜 신속히 결합시키려는 자본의 의지는 도심의 가로를 직선으로만 재편해 간다. 망초가 하늘거리고 미루나무 그늘 사이로 바람이 싱그럽던 학교까지의 십릿길, 보행이 즐겁된 그 옛길의 맛은 더 이상 찾아 보기 힘든 호사가 되어 버렸다. 책은 오늘날 물신화된 세계에서 건축은 거대한 상품으로 변모했으며, 상품화된 건축은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로만 평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도시공간 재편에서 무엇보다 수익성이 우위에 서고, 인본주의적 가치는 뒷전이라는 것. 제대로된 쉼터도 갖추지 않고 지루한 줄서기와 소비만 강요하는 각종 ‘랜드’와 ‘파크’ 등 놀이공원. 소비욕구만 자극할 뿐 인간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지하도시’ 코엑스몰. 자연 수계 복원이 배제된 청계천 복원의 반생태적 발상. 숫자와 기호로 공간을 이송시키는 지하철의 디지털 문화. 궁전과 성채를 닮아가는 예식장과 러브호텔 등등. 저자는 이제라도 우리 건축에서 조급한 패러다임 대신 인간과 사회적 공공성이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계량화된 건설의 양적 지표 대신 환경과 인간이 우선하는 인본적 가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공의 미덕이 건축행위의 목적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건축이 건축가와 건축주뿐만 아니라 건축의 잠재적 사용자인 거리의 보행자와 시민에게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구현될 때 비로소 ‘선(善)한 건축’이 된다고 강조한다.1만 3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논술이 술술] 도덕경/노자

    도가 사상은 유가와 함께 중국 사상의 커다란 두 흐름으로 동아시아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이 책을 지은 ‘노자’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노자에 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 있다. 이름은 이이. 주나라의 장서실에서 관리로 일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은퇴를 결심, 서쪽의 관문을 지날 때 관문의 경비 책임자인 윤희라는 사람의 간절한 요청으로 5000자로 된 도덕에 관한 책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노자에 대해 초나라 사람 노래자나 주나라 역사학자 담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고 있으며, 나이도 160세나 200세라는 소문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대체로 ‘도덕경’을 어느 한 개인의 저작이 아니라, 기원전 350년에서 200년경 사이에 여러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본다. 81개 장으로 구성된 각 장은 대부분 짤막한 운문체 문장으로 돼 있다. 제1장부터 37장까지를 상편,38장부터 81장까지를 하편으로 나눈다.“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상편을 ‘도경’이라고 하며,“최상의 덕은 스스로 덕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 때문에 덕이 있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하편을 ‘덕경’이라고도 한다. 상편은 도론, 곧 도와 관련된 형이상학적 문제를, 하편은 덕론, 곧 인간 사회의 윤리에 관한 문제를 주로 다룬다. 문장은 시처럼 운율이 있으면서도 내용이 깊어,‘문약의풍’ 곧 “문장이 간결하고 뜻은 깊다.”는 평을 받아왔다. 때문에 도가는 물론 유가와 불교 사상가들도 ‘도덕경’을 탐독하고 연구해 왔으며,1788년 라틴어로 된 번역본이 나온 뒤 영어 번역본만 해도 44종에 이를 정도로 서양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도’와 ‘무위자연’으로 표현된다. 노자의 도는 공자의 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자가 말하는 ‘도’는 인간 생활에서의 도리와 도덕이다. 하지만 노자의 ‘도’는 만물을 생성, 변화, 발전, 소멸시키는 궁극적 형이상학적 실체를 말한다. 그것은 만물의 배후에서 만물을 낳고 기르고 보살펴 주며, 인간의 감각 기능을 초월해 있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만물을 기르면서 군림하지 않고 대립 속에서 대립을 초월한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흔히 쓰는 ‘자연’과는 다른 뜻이다.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근본 원리인 ‘도’의 상태와 성질을 나타낸다. 곧 ‘저절로 그러하다.’,‘본래 그러하다.’의 뜻이다. 따라서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일도 작위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을 스스로 다 해내는 ‘도’의 섭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위적 분별에서 비롯된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가치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마치 산에서 갓 베어 낸 통나무처럼 순박한 인간 본연의 상태를 회복하고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다. 또한 노자는 ‘무’의 효용을 강조한다. 그릇이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내부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의 용도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의 구실 때문이다. 이것은 유는 무에 의지하여 무를 기다려서 비로소 유일 수 있다는 말이다. ‘도덕경’의 내용은 현대 과학문명의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해졌지만 자기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은 채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낳고 있다. 경쟁 속에서 인간 관계는 더욱 적대적으로 바뀌어 가고, 자연과의 대립은 인간 자체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을 낳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인간의 문명과 지혜를 상대화시켜 비판하며 인간 본연의 순박함의 회복을 강조하는 노자의 사상은 현대 문명을 좀더 근원적인 시각에서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또한 인간이 문명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www.unidream.co.kr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3 -관련 교과:도덕, 국사, 윤리와 사상, 전통 윤리 -함께 읽어볼 고전 및 원전:논어(공자), 장자(장주), 맹자(맹자), 동양철학에세이(김교빈 외), 동양철학은 물질문명의 대안인가(〃) -기출 논제:서울대 2005학년도 논술 예시문제 ■ 생각해보기 -노자가 말하는 ‘도(道)’의 뜻을 정리하고, 유가 사상과 비교해보자. -다음의 말에 대한 생각을 써보자.“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홈쇼핑 장애인 상담원 박미용·구현정씨

    홈쇼핑 장애인 상담원 박미용·구현정씨

    “CJ홈쇼핑에 뼈를 묻을 거예요.” 재택 상담원으로 얼마나 오래 일할 계획이냐고 묻자 박미용(38·지체장애 2급)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덟살 아들과 여섯살 딸이 결혼한 뒤에도 일하고 싶다고도 했다. 소아마비를 앓아 양쪽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 직장은 희망이고 꿈이기 때문이다. ●주부끼리 통하는 ‘감성 응대´ 호평 “결혼하기 전, 어린이집에서 2년간 일하며 정말 행복했어요. 사람을 만나 어울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나 이후엔 새 직장을 얻기가 힘들더군요. 일하고 싶다는 욕망에 늘 목말랐습니다.” 박씨는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믿었다. 그래서 컴퓨터 교육 등을 틈틈이 받으며 준비했다. 지난 5월 CJ홈쇼핑이 장애인 재택 상담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계약직이지만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일한다는 조건도 ‘꿈의 직장’이기에 충분했다. 전화 상담원 경험은 없었지만 수년간 단련된 ‘아줌마의 힘’에 승부수를 걸었다. “새로 산 물건을 놓고 동네 아줌마와 수다를 떨 듯, 상품을 소개하고 맞장구치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홈쇼핑 소비자가 대부분 주부라 박씨의 ‘감성 대응’은 호응을 얻었다. 기계적인 설명보다 어눌하지만, 다정한 상담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정규직 전환·승진 부푼 꿈 남편과 아이들도 박씨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남의 회사에 폐나 끼치지 말라.’며 핀잔을 주던 남편도 경제적 짐을 나누려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들, 딸도 ‘부자 엄마가 맛난 것을 사주는 게 더 좋다.’고 했단다. 기특하게도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전화를 받을 때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금방 깨우쳤다. 집안도 훨씬 깔끔해졌단다. 하루 8시간씩 일하니 빨래도, 청소도 미루지 않고 후다닥 해치우게 됐다. “나이가 많다고, 장애인이라고, 전업주부라고 모두가 외면할 때 기회를 준 거잖아요. 회사 로고만 봐도 가슴이 벅찰 만큼 고마워요. 열심히 달려서 정규직 사원도 되고, 승진도 할래요. ”첫 장애물을 넘은 박씨는 자신감에 넘쳤다. ●월급여 130만~160만원 안팎 CJ홈쇼핑 콜센터를 운영하는 CJ텔레닉스는 지난 5월 박씨와 같은 장애인을 50명 뽑았다. 전체 직원 1450명 중 3.65%가 장애인이 된 것이다. 장애인 의무고용비율(2%)을 훨씬 웃돈 수치다. 상담원의 연령(22∼44세), 장애 정도(지체장애 1∼6급)가 다양하다.35세 이상이 22명이고, 중중 장애인이 35명에 달한다. 언어·시각장애가 없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 실력에 따라 선발했기 때문이다. 월급은 130만∼160만원. 게다가 2년간의 계약직 근무가 끝나면 평가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출퇴근이 불편한 장애인의 생활을 고려, 재택 근무를 권장한 것도 지원자에겐 큰 매력이었다. 은행, 홈쇼핑, 카드사 등에서 7년간 전화상담원으로 일한 구현정(33·지체장애 2급)씨는 CJ홈쇼핑으로 옮긴 이유를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마다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끝도 없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 사람과 부딪치고 밀치는 것이 너무 힘겨웠다고 했다. 그래서 오전 9시 출근이더라도 새벽 5시 30분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곤 했단다. 구씨는 “오후 1∼4시,6∼9시에 일해 다소 불편하지만, 출퇴근 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득”이라면서 “하루를 꼼꼼히 계획하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보다 배려심 깊어” 재택 근무인데다 대부분 상담원 경험이 없기에 회사측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선 지난 6월 한달동안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에서 합숙훈련을 했다. 또 인터넷 메신저, 게시판, 유선 통화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품 정보와 이벤트 소식을 전달한다. 업무시간 10분 전에는 사이버 회의를 진행, 중요 정보를 나눈다. 재택상담원은 입과 귀로 소비자와 대화를 하면서 눈과 손으론 회사와 정보를 주고받는 셈이다. CJ텔레닉스 김혜정 재택센터장은 “일반 상담원보다 장애인들이 소비자의 불편을 더 안타까워하고, 빨리 도와주려 노력한다.”면서 “힘든 삶의 경험이 배려하는 마음을 깊게 만든 듯하다.”고 평했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방혜자전-9월7일까지 갤러리 현대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빛’. 재불화가 방씨는 육안으로 보는 빛에 머물지 않고 깊숙한 내면, 마음으로 보는 빛이 하나가 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고뇌가 담겨있다.(02)734-6111. ■ 육심원전 예쁜 척하는 여자, 새침떼는 여자 등 한결같이 귀엽고 깜찍한 여자만 그리는 육심원의 4번째 개인전. 만화같이 예쁜 그림들이어서 하나쯤 방에 걸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다음달 3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에이엠. (02)733-4455. ■ 유미수전 일상 공간을 소재로 일상성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또 시간에 대한 작가의 고민도 담고 있다.30일까지 관훈동 갤러리수. (02)733-5454. ■ 美식가전 인간의 욕구중 하나인 식욕. 강용면 고낙범 김종학 김준 등 15명의 작가가 나서 잃어버린 예술적 미각을 북돋우고 있다. 다음달 16일까지 청담동 카이스갤러리 (02)511-0668. ■ 윤영주전 동양의 산수가 추상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재탄생. 한지에 물감을 스며들게 하여 캔버스에 얹히게 하는 작업을 반복, 은은한 동양의 관념산수의 느낌을 준다.30일까지 인사동 노암갤러리.(02)720-2235. 어린이 ■ 꼬방꼬방 28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전래동화로 엮은 극단 사다리의 놀이음악극.(02)382-5477. ■ 뽀롱뽀롱 뽀로로 9월11일까지 롯데월드예술극장. 호기심많은 꼬마 펭귄 뽀로로와 친구들의 신나는 모험기.(02)543-6706. ■ 가루야 가루야 28일까지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밀가루를 활용한 놀이체험극.(02)569-0696. 클래식■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창단 10주년 기념음악회 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미술관 음악회로 유명한 실내악간, 화음을 모태로 한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지난 10년 돌아보는 의미에서 갖는 기념 음악회다. 관객들에게 사랑 받았던 작품 위주로 연주된다.(02)780-5054. ■ 박수진 피아노독주회 25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 (02)3436-5929. ■ 권수미 유지수 듀오 연주회 27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02)3436-5929. ■ 오페라 갈라 콘서트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518-7343. ■ 신정아 귀국 피아노독주회 28일 금호아트홀. (02)581-5404. 뮤지컬아이다-27일부터 LG아트센터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파라오의 딸 암네리스, 그리고 매력적인 장군 라다메스의 운명적인 삼각사랑을 그린 디즈니 뮤지컬. 팝의 황제 엘튼 존의 감칠맛나는 음악이 인상적이다. 옥주현 문혜영 배해선 출연.1588-7890. ■ 돈키호테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삽입곡 ‘더 임파서블 드림’으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김성기 류정한 강효성 출연.(02)501-7888. ■ 뱃보이 무기한 신시뮤지컬극장. 박쥐소년의 인간세상 적응기를 그린 컬트뮤지컬. 샘 비브리토 연출, 김수용 슈 출연.1544-1555. ■ 풋루스 10월16일까지 연강홀. 반항과 억압, 사랑과 고통 등 분출하는 젊음의 열정을 춤과 노래로 풀어낸다. 서지영 이한 출연.(02)766-8551. 연극블랙 햄릿-27~9월16일 충무아트홀 소극장 59년 역사의 극단 신협이 새롭게 각색한 햄릿. 철저하게 조작된 게임속에서 음모와 복수의 먹이사슬이 펼쳐진다. 전세권 연출, 이명호 이혜진 출연.(02)2253-7537. ■ 오스카와 장미할머니 9월11일까지 김동수플레이하우스. 백혈병을 앓는 소년 오스카와 장밋빛 가운을 입은 할머니의 감동적인 우정.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작·김동수 연출, 백수련 왕지연 출연.(02)764-6979. ■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9월25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작품. 임영웅 연출, 박정자 정세라 출연.(02)334-5915.
  • [여의도in] 이상수前의원 28일 정치 재개?

    “정치는 실천인데, 그 실천을 가능케 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고 합니다.” 최근 사면된 열린우리당 이상수 전 의원이 주변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강한 재기 의욕을 내비쳤다.그는 “정치 발전을 위해 누군가 마셔야 할 독배라면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뼈를 깎는 고통 속에 반성의 나날을 보냈다.”는 말로 수형 소감을 피력했다. 이 전 의원은 오는 10월 재선거가 예상되는 경기 부천원미갑 출마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그의 공식적 재기는 오는 28일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리는 열린우리당 전·현직 지도부 만찬 회동이 될 전망이다.정동영 통일·천정배 법무·김근태 복지장관, 신기남·임채정 의원, 이부영 전 의원이 참석한다. 함께 사면된 정대철 전 대표도 나올 예정이다.이지운기자 jj@seoul.co.kr
  • [건강 칼럼] 그와 그녀의 갱년기

    여성은 50세를 전후해 난소의 기능이 퇴화, 여성호르몬이 갑자기 줄면서 갱년기 증상을 겪는다. 술 마신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안면홍조, 주책없이 흐르는 땀과 뱃살, 소변이 새는 요실금에다 골다공증까지 생긴다. 또 성장호르몬도 주는데, 성장호르몬은 청소년들이 자라는 데 중요할 뿐 아니라 성인에게는 노화방지의 원천이다. 즉,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면, 피부의 노화와 함께 탈모, 근육량 감소, 성적 욕망의 감소, 골다공증과 뱃살이 는다. 이는 남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이 35세를 넘어서면 성장호르몬이 매년 8∼10%가량 꾸준히 줄기 때문이다. 남성의 상징이랄 수 있는 남성호르몬은 여성처럼 갑자기 줄지는 않지만 스트레스, 흡연, 음주의 영향으로 빨리 줄 경우에는 여성 갱년기처럼 발기부전, 정력 감퇴·피로감 등을 느끼게 된다. 재밌는 것은 이런 과정을 잘 모르는 남성들이 “아, 내 정력도 예전같지 않구나!”하는 생각에 강장제다, 정력제다 하면서 이상한 식품에 집착하게 된다. 여성도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 호르몬이 줄면서 맛을 느끼는 감각이 둔화되고, 침샘의 기능까지 떨어져 침 분비량이 줄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식을 만들 때 자신도 모르게 짜고 맵게 조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네랄인 아연 부족과도 관계가 있다. 아연이 부족하면 남녀 모두에게서 성욕과 정력 감퇴를 초래하는데, 이 때 좋은 식품은 굴, 전복, 미역, 파래 등이다. 한꺼번에 먹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먹어야 한다. 그래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수은 중독일 수 있으므로 검사를 해봐야 한다. 여성호르몬이 부족한 갱년기에는 이소플라본 성분이 풍부한 콩이나 콩으로 만든 식품이 좋다. 석류도 좋은데 석류는 씨에 관련 성분이 훨씬 많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다면 수육, 삶은 계란, 토마토, 바나나, 등 푸른 생선, 견과류와 운동이 필수적이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몇 달간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을 사용해 치료할 수도 있다.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원장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섹스없는 결혼생활 증명할 방법 없나

    중매로 만난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고 동거를 시작했지만, 아직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신혼 첫날밤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묵고, 다음날부터 4박5일 동안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첫날밤은 “피곤하니 그냥 자자.”고 하는 남편을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냥 잤습니다. 남편에게 애교를 부리며 성관계를 요구해도 남편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우리 방식대로 살아가자.”면서 “세상에 할 말이 얼마나 많은데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잠자리 이야기밖에 없느냐.”며 거부했습니다.1년이 지난 지금 사실혼 부당파기를 원인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는데, 남편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성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요. -이갑순(28·가명)-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소송 중에 이를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부부간이라면 일정한 주기로 부부관계 내지 성관계를 맺는 것이 보통입니다. 성욕은 식욕·수면욕·소유욕 등 인간의 여러가지 욕망 중 가장 강한 욕망의 범위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당한 이유 없이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피한다면 이혼사유 또는 손해배상 사유가 됩니다. 대법원은 지난 1966년 6개월간의 신혼생활 동안 한차례도 성관계를 갖지 못한 부부에게 이혼 판결을 내렸습니다.<대법원 65므65> 1994년에도 대법원은 13년동안 성생활을 하지 못한 부부에 대해 이혼을 하도록 했습니다.<대법원 93므1020> 이 소송의 당사자들은 어떻게 결혼생활 동안 성관계가 없었다는 점을 증명했을까요. 먼저 이혼소장을 통한 방법이 있습니다. 남편이 성생활을 무시하고 부부관계를 거부했다는 내용을 소장에 풀어야겠지요. 원고 소장에 기재된 내용을 가정법원은 일단 사실로 인정합니다. 피고측인 남편이 답변서를 통해 부부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남편 역시 그 주장을 증명할 책임을 지게 됩니다. 부부간 성관계가 있었는지 입증하는 방법은 이밖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증인을 신청할 수도 있겠지요. 부모나 형제·자매, 또는 친구를 증인으로 내세워 평소 원고가 “부부관계로 고민해왔다. 결혼한지 1년이 지났는데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등의 사실을 증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갑순씨가 써온 일기장이 있다면 그것도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장이 사건을 가사조사관의 조사에 회부한다는 조사명령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명령에 따라 조사관이 조사기일을 정하여 당사자를 소환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관은 원고와 피고를 확인해 이를 소상하게 기록해 재판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조사보고서는 공문서의 일종이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됩니다. 의학적인 입증방법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산부인과 병원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 ‘처녀막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소견서를 받아 증거로 제출하거나, 마지막 수단으로 남자의 불능을 감정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재판장은 전문 의료기관에 남성의 성불구여부에 대한 감정을 명할 수 있습니다. 감정보고서는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의 불구로 인해 성관계를 할 수 없는 심인성 발기부전증 등으로 진단돼 감정보고서에 반영된다면 이 역시 증거로 쓰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맡은 사건 하나를 소개하며 상담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신혼여행 때부터 결혼하고 1년 동안 남편이 아내에게 성관계는 커녕 키스·애무 등 기타 일체의 애정표현도 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소송을 통해 부인은 중앙대학교 부속 남성과학회에 감정신청을 해 감정을 받아 남자의 성불능을 증명할 수 있었고, 위자료 2000만원을 받았습니다.
  • [열린세상] 상업주의에서 살아남기/이경자 소설가

    새로운 휴대전화가 나왔다. 날씬한 여성의 엉덩이가 보이도록 파인 야회복에서 휴대전화가 꺼내진다. 잘생긴 남자배우는 조개 같은 의자에서 튀어나온다. 그의 분장과 머리모양과 색안경과 표정은 ‘죽인다’. 그걸 보는 순간 휴대전화가 너무나 사고 싶다. 당장 사야 한다고 결심한다. 아주 성공한 광고다. 광고는 이런 것이다. 지구적인 문제를 일으킬 산업쓰레기에 대해서, 소비중독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물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신제품이 히트를 쳐서 이익만 많이 내면 된다. 광고는 기업의 근원적인 속성과 욕구의 첨병일 뿐이다. 그 첨병이 나는 무섭다. 광고가 상업주의의 꽃이라고 했던가? 그 꽃을 보고 있자면 나 같은 촌년은 불안하고 불길해서 돌아버릴 것 같다. 병이나 건강과 관련된 광고는 내가 환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환자가 될까봐 불안하게 한다. 광고가 말하는 보조식품이며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다이어트에 관한 건 더 무섭다. 살이 찌는 건 죄악이다. 오동통한 여성을 복스럽다고 칭찬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복스러움이 치욕이 되었다. 깨끗한 것에 대한 강박증을 만드는 모든 비누종류의 광고는 마침내 너무 씻어서 생기는 피부병을 만들었고 향수의 생활화는 사람냄새를 역겨움으로 바꿔서 알게 모르게 사람에 대한 혐오감을 키운다. 은근히 병원을 선전하는 의학기사. 임상적으로 검증이 안 된 약품에 대한 광고. 그런 것은 어쩌면 간접살인에 가까울지 모른다. 광고에 중독된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광고는 주기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상품 이름은 바뀐다. 조명과 의상과 화장술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거의 신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어디가 허약하고 허술한지, 그 허약하고 허술한 데를 공략한다. 나는 소비충동을 실현할 때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소비욕구 해소는 거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지경이다. 내 머리카락은 머리영양제 없이는 윤기를 찾지 못하고 내 몸은 다이어트기구에 의존한다. 위장은 소화제 없이는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늙음도 발달한 성형의술이 차단시켰다. 폐경도 늦추는 약이 있다. 여성의 폐경은 출산에 대한 몸의 고단함으로부터 마침내 휴식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그러나 작은 우주라는 몸의 자연스러운 이치도 성적 욕망에 경멸된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팽팽한 근육과 날씬한 몸매와 성욕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로 규정되었다.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아름답다고 말하면 미개인이다.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던 야만시대나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야유를 받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낱낱으로 분리되었다. 나처럼 분리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분리된 조각들을 가지고 장사하는 데가 나의 주인이다. 나는 생각도 할 수 없고 반항도 할 수 없고 개성도 가질 수 없다. 개성은 잡다한 유행에 맡겨진 지 오래다. 몸이 유기적 생명체여서 머리카락이 대장이나 폐를 말하고 눈이 간, 심장은 혀를 통해 상태를 표현한다는 건 무시된다.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분리되었고 해체되었다. 나를 이어주는 것은 상업주의의 구조다. 화가 임옥상이 칼럼을 썼다.“문화란 무엇인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세계화이고 국제화인가. 문화는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문화다. 나를 내보이는 것, 즉 세계 속에 자신의 행동양식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나의 존재를 알리면서 상대의 존재를 알리고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방식을 찾고 배우는 것이 문화다. 상대를 부정하거나 나를 부정하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정신질환이다. 콤플렉스다.” 문화는 사람과 사회와 민족의 정신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정신을 잃으면 나를 잃는 것이다. 나는 내 몸 바깥에 있지 않다. 일부 상업 광고는 그런 나를 나 바깥에서 찾으라고 끝없이 충동질한다. 우리가 내 얼굴, 내 몸매, 내 마음을 하찮게 생각한 뒤에 정작 무엇이 될 것인가, 의심할 수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래도, 정신질환까지는 아닐 것이다. 이경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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