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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골딩·옐리네크 화제작 나란히 출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두 작가의 화제작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파리대왕’으로 1983년 세계 문학 최고의 권위를 안은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1911∼1993)의 ‘첨탑’(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과 2004년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킨 오스트리아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60)의 ‘욕망’(정민영 옮김, 문학사상사). 특히 이 두 소설은 명성에 비해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의 대표작들이란 점에서 그들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첨탑’ ‘파리대왕’이후 국내 처음 소개되는 윌리엄 골딩의 작품이다.‘파리대왕’에서 무인도에 고립돼 야만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소년들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인간 내면의 다양한 모습들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독특한 구성과 문체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1963년 발표된 ‘첨탑’은 중세 시대 영국 솔즈베리 대성당의 주임신부 조슬린이 첨탑을 세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조슬린은 주위의 반대와 재정적, 기술적 난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첨탑의 건설을 지휘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첨탑의 건설 과정을 통해 작가는 이성과 비이성, 과학과 종교적 세계의 대립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지만 인물 캐릭터와 서술 구조 곳곳에 복잡한 상징체계가 숨어 있어 단번에 사실 관계와 의미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려면 재독, 삼독의 수고를 기울여야 하는 까다로운 작품이다.9000원.●‘욕망’ 2004년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은 이변이었다.‘좌파 포르노 작가’라는 비난과 ‘탁월한 언어유희’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영화 ‘피아노 치는 여자’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그녀가 1989년 발표한 ‘욕망’은 노골적인 성 묘사로 발간되자마자 외설시비에 휘말린 화제작이다. 소설은 오스트리아 알프스 계곡의 종이공장을 무대로 공장장 헤르만의 가정에서 6일간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에이즈에 대한 불안으로 창녀촌에 발길을 끊고 아내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헤르만, 그런 남편이 싫어 집을 떠나지만 호감을 품었던 금발의 미청년 미하엘에게 겁탈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게르티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일그러진 권력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병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일견 포르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난잡한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듯 보이나 사실은 반어적으로 ‘사랑과 성’에 대한 순수한 상태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는 작품”이라고 평했다.95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박범신, 히말라야 여행 에세이 ‘비우니 향기롭다’ 펴내

    박범신, 히말라야 여행 에세이 ‘비우니 향기롭다’ 펴내

    “고소증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추운 곳에서 새우잠 자는 힘든 여정인데도 집이 전혀 그립지 않은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가끔 꿈에 설산이 보일 정도니 거의 중독이라고 봐야죠.” 소설가 박범신(60)씨는 지금까지 히말라야를 여섯차례나 다녀왔다.1993년 절필을 선언하고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뒤 한해 걸러 한번꼴로 히말라야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해 봄에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혼자 한달반을 여행하고 잠깐 서울에 들어왔다가 일행 30여명과 함께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 한달을 더 머물렀다. ‘비우니 향기롭다’(랜덤하우스중앙 펴냄)는 히말라야 칼라파타르, 안나푸르나 여행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편지글 형식으로 쓴 산문집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도 메모하고 취재하는 과정이 귀찮아 한번도 여행 관련 책을 내지 않았던 그가 처음 쓴 여행 에세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펑펑 울음을 쏟는다고 한다. 한달 넘게 혼자 여행하던 그도 어느 순간 눈물을 흘렸다.‘사연 많고, 상처 많은 사람들’은 꽁꽁 숨겨놨던 속엣것을 대자연의 품에 부끄럼없이 풀어놓는다.‘이곳 사람들에게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품에 오체투지의 영혼으로 스며들어 나를 여는 신의 길입니다.’(20쪽) 생전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지만 산 타는 일만은 누구보다 자신있다는 그다. 지난 연말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 킬리만자로를 오를 때도 엄씨의 뒤를 바짝 쫓았다면서 “중학교 다닐 때 40리를 왕복하던 힘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히말라야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라는 그는 “한동안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가슴을 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히말라야행은 속된 마음을 비우고 참된 영혼을 채워넣는 구도의 여정이다. 초월적 세계에 대한 지향과 세속적 욕망사이의 단층은 히말라야에 다녀올 때마다 조금씩 무뎌진다.“히말라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우리 모두의 지금이라는 시간은 과연 어떤 ‘샹그릴라’를 품고 있을까 묻고 싶습니다.”(207쪽) 요즘 그의 마음이 가있는 곳은 티베트의 카일라스산이다. 산 주위를 한번 돌면 원죄가 사라진다는 속설이 떠도는 성스러운 산이다. 학교(명지대 문예창작과)연구실 벽에 대형 사진을 붙여놓고 매일 바라본다는 그는 “혼자는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해서 동행을 구해 올 여름쯤 가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대지의 노래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아트사이드. 현대 분청도자 분야에서 두각을 보여온 작가 변승훈의 개인전. 사각형의 편편한 접시에 한지를 덧대어 구워낸 ‘만다라’연작과, 분청을 구워 거대한 나무형상으로 조립한 ‘나무’ 연작,10여년 작업여정을 보여주는 드로잉 작품 등을 선보인다.(02)725-1020. ■ 꿈꾸는 도시 우리들의 실낙원 4월17일까지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한길북하우스. 도시 속에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불안정한 삶과 심리를 다양한 시점으로 포착해낸 이흥덕의 열세번째 개인전. 이번 전시에선 ‘도시’를 모티프로 한 전작 ‘서울 Cafe’,‘지하철 연작’을 비롯하여, 작가의 삶의 터전인 분당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신작들도 여러점 소개된다.(031)949-9305. ■ 이진경 초대전 23일부터 4월1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 무의식에 담겨 있는 삶의 편린들을 달을 매개체로 하여 화면에 담아내온 재불 추상화가 이진경이 ‘영혼의 노래’ 시리즈 등 최근작 30여점을 선보인다.(02)544-8481. ●뮤지컬■ 지하철1호선 7월30일까지 학전그린소극장.12년 장기 운행해온 극단 학전의 대표작. 독일 그립스극단의 원작을 김민기 연출가가 1990년대 한국 사회현실에 맞게 번안했다.3000회를 맞아 28∼30일 3일간 역대배우들이 출연하는 특별공연이 열린다. 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4시.1만 7000∼2만 8000원.(02)763-8233. ■ 벽을 뚫는 남자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8시, 일 3시·7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자유자재로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소심한 남자의 인생 역전기. 임도완 연출, 박상원 엄기준 등 출연.4만∼7만원.1588-7890. ■ 미스터 마우스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3시·6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뇌수술로 천재가 된 바보 인후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이현규 연출, 서범석 김태한 출연.3만원.(02)747-2070. ●어린이■ 하마가 난다 23일∼4월26일 화목금 2시·4시30분, 수 11시·3시, 토일 1시·3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라이트형제와 조선시대 정평구의 이야기.2만원.(02)382-5477. ■ 꾸러기 제동이와 엔젤머신 24일∼5월14일 화∼금 3시, 토 12시·2시, 일 1시. 심술궂은 제동이의 착한어린이 변신기. 청담동 시어터드림.2만∼2만 5000원.(02)3443-3073. ●클래식■ 체칠리아 바르톨리 독창회 3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인 메조 소프라노의 첫 내한 무대. 지휘자 정명훈 피아노 반주. ■ 캐나디언 브라스 내한공연 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금속이라는 차가운 이미지를 넘어 따스함과 유머를 전해주는 금관주자 5명의 환상적인 연주. ■ 오혜숙 첼로 독주회 23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쇼스타코비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등 연주. ●연극■ 주공행장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조선시대 금주령을 내린 왕에게 한잔 술을 권하는 소년 주공의 이야기. 극단 미추 20주년 기념작이다. 배삼식 작·손진책 연출, 윤문식 김종엽 출연. 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3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1만 5000∼3만원.(02)747-5161. ■ 상당한 가족 4월16일까지 화∼목 7시30분, 금·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 배우 인생 45주년을 맞은 전무송이 딸(현아), 아들(진우)과 함께 서는 무대. 사위 김진만이 연출을 맡았다.1만 5000∼3만원.(02)741-6779. ■ 선착장에서 4월2일까지 화∼금 7시30분, 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소극장 축제. 섬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광기를 그린 작품으로 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박근형 작·연출, 엄효섭 이규회 등 출연.1만 2000∼2만원.(02)741-3934.
  • [가슴속 그림한폭]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 마광수 연세대 교수

    [가슴속 그림한폭]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 마광수 연세대 교수

    그는 세 번을 이 그림과 만났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그 그림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중학생의 광마 ‘희망의 고흐’를 만나다 중학생의 광마(狂馬)가 을지로 1가 육문서림으로 달려간다. 그는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미친 말’이라고.“끼를 억누를 수 없어 교내 미술전에 발가벗은 여자와 성기가 드러난 남자가 안고 있는 ‘아담과 이브’를 출품했죠.” 그가 집은 책은 일본책을 번역한 고흐의 그림 모음집. 책상을 넘기던 순간 희망의 소용돌이 같은 별이 두 눈에 들어왔단다.‘별이 빛나는 밤’이었다.“세상이 신기하고 희망찼던 저에게 이 그림은 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상이고 발산하고픈 끼의 덩어리였습니다.” #불혹의 그 ‘어둠의 고흐’를 만나다 90년대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그는 자살을 생각했다. 우울증은 깊어갔고 몸에도 자주 이상이 왔다. 그때 생각난 것이 이 그림.“새로 보인 것은 밤이었어요. 고흐는 왜 밤을 택했을까. 알고 보니 이 그림은 괴기했죠. 밤에 삼나무가 춤을 추고 별은 기이하게 꼬여 있어요. 그는 미쳤을 때 이 그림을 그렸어요. 동생과의 편지에 씌어 있죠.” 밤의 터널을 지나던 불혹의 광마는 맘고생에 어쩌면 정말 미칠까 두려웠을 것이다. #50대의 그 ‘고흐의 열정’을 만나다 “최근 그림을 다시 봤어요. 그림 안에서 힘들어하는 고흐와, 그래서 가질 수 있는 열정이 보이더군요.” 힘든 후의 깨달음이야 흔히 있는 얘기지만 힘들어서 그 와중에 열정이 생긴다니. “고흐는 너무 힘들어서 마치 우리가 화장실에서 일을 보듯 작품들을 배설한 거예요. 안에 있는 끼를 배설할 뿐이니 평가엔 무관심하고, 평가에 무관심하니 그리고자 하는 것을 마구 그릴 수 있죠. 이것이 극한 고통이 주는 열정이에요. 내가 요즘에 느끼듯.” 그림 개인전이다 새 시집 발간이다 해서 바빠진 그. 한때 잊었던 열정을 되찾은 것일까? “밤의 긴 터널을 지나니 그 안에 갇혔던 배설욕구들이 느껴지더군요. 그림의 별들이 정열적인 빛을 내고 삼나무는 제 끼를 못이겨 춤추죠. 세상의 평가와 무관하게 난 그리고 쓰고 싶어요. 평가는 후대의 몫일 따름이죠.” 그의 방을 나서는데 그가 그린 그림 한 점이 눈에 띈다. 홀로 서 있는 기타가 자신의 몸을 뜯으며 노래를 한다.‘나는 슬플 때 노래를 한다.’란 구절이 씌어 있다. 그가 이젠 인생의 슬픔조차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독신의 탄생/엘리자베스 애보트 글

    “난 독신주의자”라는 말은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독신에 대해 8년간 연구한 끝에 ‘독신의 탄생’(이희재 옮김, 해냄 펴냄)이라는 책을 펴낸 작가 엘리자베스 애보트에게도 독신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렇게 ‘독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 저자는 연구를 하면서 독신에 대한 선입견과 단순한 정의가 얼마나 협소한 것인지 절감했다고 고백한다. 유구한 역사 동안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독신은 인간생활의 핵심적 요소였으며, 문화와 종교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신이라는 현실을 이끌어간 집단과 개인을 끈질기게 추적, 독신이 종교적 필요에 의해 지속됐다는 지금까지의 통념을 산산조각 낸다. 세계 곳곳에 존재했던 남녀 독신자들을 탐구함으로써 종교적 관습은 물론, 성욕과 성역할, 보건의식의 변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시도한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3000년의 역사를 내려오는 동안 성적 절제를 의미하는 금욕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단의 불을 지켰던 로마의 처녀들은 독신의 서약을 어기면 산 채로 땅에 묻혀야 했다. 감옥에 갇힌 죄수나 궁전의 내시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독신으로 살아갔다. 또 오페라의 명가수가 되기 위해 거세한 카스트라토 소년이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금욕을 선택한 수녀들도 있었다. 강제로 음핵 절제수술을 받았던 아프리카 여성들, 사회운동을 위해 독신을 주장한 페미니스트들, 경기에서의 승리를 위해 정액을 아끼는 운동선수들까지 독신자의 삶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역사적 위인 중에도 독신의 길을 택한 사람이 적지 않다. 잔다르크, 엘리자베스 1세, 나이팅게일 등은 모두 독신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자신의 절제력을 실험하기 위해 처녀들과 알몸으로 한방에서 잤다. 또 독신과 금욕이 조금이라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과 맞닿은 인물들도 있다. 레프 톨스토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루이스 캐럴 등은 동성애와 배신, 사회제도의 극복 등을 위해 자발적으로 독신을 택했다. 이와 함께 중세 수녀들 중에는 속세와 달리 교육을 받고 여행도 다니며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생활에 끌려 수녀원에 들어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19세기 후반 영국사회에서도 중산층 젊은 여성들은 재산권에서 투표권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옥죄는 남성 중심의 사회 규범에 반감을 느끼고 대거 독신을 선택했다. 저자는 각자의 필요와 동기에 따라 독신과 금욕을 선호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스스로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득히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칠 성 정체성을 뒤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3만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1) 지식과 마음의 활용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1) 지식과 마음의 활용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 과학은 지식을 탐구하지만, 철학은 지혜를 일군다. 이것이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 차이일 것이다. 한국의 철학교육은 과학이 쳐다보지도 않는 어설픈 지식의 개진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철학은 지혜를 일구지만, 기존의 지혜가 어느 정도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가를 분석한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무엇일까? 지식은 나에게 결핍된 것을 후천적 학습으로 습득해서 얻는 일종의 소유이지만, 지혜는 이미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지식은 인간의 취약한 본능을 대신한 지능의 작품이다(1회 글). 동물의 본능처럼 자가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가발전할 본능의 능력이 미비하기에 인간은 본능을 대신하는 지능을 요청한다. 지능은 자기에게 필요한 생존의 기술을 밖에서 구한다. 이것이 지식의 인위적 탐색인 과학의 시작이다. 그 탐색은 본능의 선천적 능력과 달라서 거듭거듭 반복된 추리와 검증의 단계를 거쳐서 완성된다. 과학적 지식은 축적해 나가야 한다. 지식은 다양하나 기본적으로 인간이 세상을 지배해서 편리하게 살기 위한 도구로서 넓은 의미의 기술이다. 그래서 지식은 소유론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을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취득해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인간이 이미 자기 속에 깃들어 있는 능력을 현시하기만 하면 된다. 지혜는 취득되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의 필연성을 읽는 눈이다. 그래서 무식한 사람도 사려가 깊으면 지혜인이 될 수 있다. 그는 지식이 결코 좌지우지할 수 없는 세상의 필연성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혜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엮고 있는 필연성의 이해와 직결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지혜의 능력을 계발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그 능력이 무상(無償)으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지혜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 지혜계발의 길은 지식추구의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고 노자는 피력했다. 왜냐하면 지혜는 지식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마음을 버릴수록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도덕경’(48장)에 ‘학문을 하면 지식이 날로 늘어나지만, 도(道)를 닦으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날로 줄어든다.’고 하였다. 중국 송대의 노자 주석가인 이가모(李嘉謀)는 ‘학문을 하면 지식을 추구하므로 날로 그것이 늘고, 도를 닦으면 망상을 제거하므로 날로 줄어든다.’고 노자의 저 말을 주해했다. 왜 그럴까? 본능을 대신하는 지능이 발달할수록 지식은 증대하고, 그만큼 지식에 의하여 세상을 더 편리하게 장악하려는 소유욕은 더욱 강렬해진다. 모든 소유욕의 가장 깊은 안쪽에 다 이기심과 자의식이 감추어져 있다. 왜냐하면 지능이 비록 본능을 대신하였으나, 본능이 지닌 충동적인 이기적 자아생존의 욕망이 지능의 우회적인 전략을 통하여 보다 세련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이 생존전략의 기술로서 지능의 인위적 능력에 뿌리를 박고 있다면, 지혜는 본능과 달리 본성의 능력에 축을 박고 있다. 본능이 이기배타적인 소유론적 욕망을 나타낸다면, 본성은 자리이타적인 존재론적 욕망을 띤다. 욕망의 개념은 마음이 자기 아닌 다른 타자와의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성향을 말한다. 존재론적 욕망의 의미는 이기적 소유욕을 위하여 타인과 세상을 희생시키는 탐욕이 아니고, 타자와 세상이 존재하는 그대로 편안하게 존재하게끔 도와주는 원력(願力)을 말한다. 이것이 본능과 본성의 차이점이다. 인간은 본능상 자기중심적이면서, 동시에 본성상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슬픔을 위로해 주고 싶은 그런 상반된 성향을 묘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상반된 본능과 본성이 서로 가는 방향에서 다르지만 공통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 공통점은 둘 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자연적이고 자발적 욕망의 기호(嗜好)를 선천적으로 띠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에 본능과 본성의 구별이 없고, 오직 본능 하나에로 동물성이 귀착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묘하게도 그 둘이 엇비슷하나 다르다. 이런 관계를 구조주의에서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라 부른다.‘좌/우’,‘장/단’,‘선/악’처럼 서로 다르나 일방이 있기에 타방이 성립하는 상관성을 일컫는다. 본능과 본성은 차이 속에서 함께 동거하는 상관적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본능과 본성의 상관적 차이는 ‘이기심/자리심’,‘배타심/이타심’,‘소유론적 욕망(탐욕)/존재론적 욕망(원력)’의 이중관계와 같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인공적 지능이 자연적 본능을 대신함으로써 동물적 본능의 제한적이고 닫혀진 생존필요성의 추구가 무한히 가변적으로 열려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능은 생존유지의 직접적 차원을 넘어서 소유의 영역을 무한히 인공적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지능을 좋게 보면 그것은 무한한 지식의 축적이나, 나쁘게 보면 그것은 무한한 소유적 탐욕의 대명사가 된다. 그 동안 인류는 이 소유론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지식의 추구를 최대의 가치로 여겨 무한팽창을 장려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데 본능과 본성처럼 이 지능과 본성도 상관적 차이의 이중성을 구조적으로 띠고 있다. 이 지능의 소유욕이 우세하면, 본성의 존재론적 욕망(존재하는 세상을 기쁘고 편안하게 존재케 하려는 원력)은 인간의 마음에서 감추어진다. 이것은 마치 지능의 경쟁심이 본성의 이타심을 은폐시키는 것과 같다. 이 사실을 노자가 ‘도덕경’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겠다.‘도를 닦으면 날로 소유욕이 줄어든다.’는 것은 지식욕이든 물질적 탐욕이든 자아중심적인 지배욕이 줄어야 본성이 지혜의 길을 열어 놓는다는 것이다. 지식욕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세상을 편리하게 살게끔 세상을 장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지식은 다 도구적이다. 그런데 앞의 글에서 여러 번 지적되었듯이, 가치는 필연적으로 반(反)가치를 수반한다. 도구도 양날의 칼처럼 가치와 반가치를 동반한다. 가치가 큰 도구일수록, 반가치의 해독도 그만큼 크다. 컴퓨터의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겠다. 그러나 그 해독의 크기가 얼마나 엄청날지 아직 우리는 다 모른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그 해독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다 파괴하고 원시상태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주장은 방직기계를 없애고 물레를 돌리는 수공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낭만주의적 경제학의 발상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본성의 지혜는 지능의 지식축적과는 정반대로 이기적, 자아중심적, 인간중심적 사고를 버릴수록 더욱 찬연하게 마음 안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류사는 지식추구의 가치만을 숭상하고, 그 반가치의 해독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20세기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라고 그의 저서 ‘무엇이 사유라 불리워지는가?’에서 언명했다. 과학은 도구적 소유적 지배지식만을 생각하지, 인간이 모든 자연과 다 함께 존재하는 공존과 공명의 사유를 망각했다는 뜻이겠다. 하이데거의 말은 과거의 철학이 과학을 크게 키우는 데 그 역할을 다했으므로, 이제 그런 철학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사유의 도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지식의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과학이 존재의 지혜를 사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의 가치를 지혜스럽게 활용하는 것도 마음의 본성이 지능의 힘을 견제하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데 있겠다. 컴퓨터의 반가치적 해독을 줄이는 길은 흔히 말하는 실효성이 없는 사이버매체의 도덕이 아니라, 마음의 지혜를 여는 본성의 존재론적 발현일 것이다. 과학교육의 중요성만큼 지혜의 발현을 위한 존재론적 사유도 역시 중요하다. 지혜는 자의식 대신에 자의식을 비우는 공부를, 소유적 가치와 공격적 힘의 축적 대신에 자기와 세상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보는 평정심을, 이기적 탐욕 대신에 일체를 존재하는 그대로 다 아끼려는 원력을 각각 활용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로 본성의 활용이다. 1세기경(?) 인도 대승불교의 고승, 아슈바고샤(한자명 馬鳴)는 그의 저서인 ‘대승기신론’에서 유명한 삼대(三大)사상을 말했다. 그는 불법의 본질인 공성(空性)의 위대성을 비로자나불인 법신불에, 공의 바다로부터 파도처럼 솟는 만상 존재의 불가사의한 기(氣)의 힘을 노사나불인 보신불에, 그리고 마음의 지혜스런 활용의 보기를 석가모니불인 화신불에 각각 비유했다. 화신불인 석가모니가 어떻게 마음을 활용해야 세상이 구원되고, 모든 만물이 다 고통에서부터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그와 같이 오셨고(如來)’,‘그와 같이 가셨다(如去)’는 것을 아슈바고샤는 암시하려 했다. 법신불은 신구교 신학에서의 성부에, 보신불은 성령에, 그리고 화신불은 성자의 의미와 매우 유사하다. 우리는 종교의 벽을 넘어서 석가세존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인간의 본성을 활용하는 지혜를 가르치고 가셨다는 것을 유념해야겠다. 서양의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 one)을 찾기 위해 연금술사들이 눈을 밖으로 돌려 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현자의 돌만 찾으면, 납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그들은 꿈꿨다. 그러나 그 현자의 돌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이미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 왔다. 그 돌은 불교적으로 보면 여의주다. 여의주는 용이나 거북이 물고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이미 깃들어 있다. 우리도 그것을 늘 바깥에서 찾으려 했다. 지식교육과 함께 우리는 늦기 전에 마음을 지능에서 본성에로 옮기는 마음의 활용법인 지혜의 교육도 가르쳐야 한다. 지식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나이’처럼 근육의 힘을 주나, 반가사유상처럼 자기와 세상을 안심시키지 않는다(7회 글). 현자의 돌이나 여의주가 본성이다. 본성은 지능이 쉴 때에 깬다. 지혜는 본성의 발현이다. 지식은 자아의 꽃이나, 지혜는 무아의 열매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우치다 시게루 디자인전 2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우치다 시게루가 실생활에 활용 가능한 가구와 조명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설치 작품 등을 선보인다.(02)395-0331. ■ 로버트 인디애나 11일부터 4월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층. 미국의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이자 ‘LOVE’의 작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인디애나의 1960년대 이후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회고전. 작가의 대표 조각작품인 ‘LOVE’, 아트와 숫자 시리즈들로 이루어진 입체작품,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회화 및 판화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02)2124-8938. 뮤지컬 ■ 아이다 4월16일까지 LG아트센터 화려한 무대와 주옥같은 노래,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로 사랑받고 있는 디즈니뮤지컬. 제작비 130억원을 들여 지난해 8월부터 장기공연중인 초대형작으로 최근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옥주현 문혜영 이석준 출연. 화∼금 7시30분, 토·일 3시·7시30분.4만∼12만원.1588-7890. ■ 명성황후 30일까지 화∼금 7시30분, 수 3시·7시30분, 토 3시·7시, 일 2시·6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구한말을 배경으로 격동의 역사를 그린 국민뮤지컬. 윤호진 연출, 이태원 이상은 출연.3만∼12만원.(02)575-6606. ■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4월9일까지 화∼금 8시, 수 3시·8시, 토·일 3시·7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줄거리에 대중가요, 팝을 입힌 편집뮤지컬. 이원종 연출, 이휘재 춘자 안정훈 등 출연.3만∼12만원.1588-7890. 어린이 ■ 노노이야기 16일부터 무기한 화∼금 3시, 토·일 1시 상상나눔시어터. 춤과 노래로 배우는 어린이 교통안전교육. 서승만 작·연출.(02)762-0810. ■ 시계 멈춘 어느 날 19일까지 화∼목 3시·5시30분, 금 5시30분, 토·일 1시·5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전쟁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1만5000∼2만원.(02)382-5477. 클래식 ■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독주회 17일 오후 8시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25일 오후 5시 고양 어울림극장.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등 연주. ■ 이연희 가야금 독주회 21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연주. ■ 오혜숙 첼로 독주회 23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쇼스타코비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등 연주. 연극 ■ 날 보러와요 17일~4월 9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초연 10주년을 맞아 최용민, 권해효, 김내하, 류태호 등 원년 멤버들이 출연한다. 화성연쇄살인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는 4월2일이다. 김광림 작·연출. 화∼금 8시, 토 3시·7시, 일 3시.2만∼5만원.1544-5955. ■ 상당한 가족 17일∼4월16일 화∼목 7시30분, 금·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 배우 인생 45주년을 맞은 전무송이 딸(현아), 아들(진우)과 함께 서는 무대. 사위 김진만이 연출을 맡았다.1만5000∼3만원.(02)741-6779. ■ 주공행장 17∼26일 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3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금주령을 내린 왕에게 술을 권하는 소년 주공의 이야기. 배삼식 작·손진책 연출, 윤문식 김종엽 출연.1만5000∼3만원.(02)747-5161. ■ 선착장에서 4월2일까지 화∼금 7시30분, 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소극장 축제. 섬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광기를 그린 작품으로 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박근형 작·연출, 엄효섭 이규회 등 출연.1만2000∼2만원.(02)741-3934.
  • 위인들의 자기 PR법/아마노 유키치 지음

    현대는 이미지 사회. 성공한 사람들에겐 나름의 자기 PR법이 있다. 고도로 계산된 자기 홍보를 통해 그들은 성공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프는 자식들에게 “중요한 건 네가 누구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라며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고 한다.‘위인들의 자기 PR법’(아마노 유키치 지음, 박현석 옮김, 아라크네 펴냄)은 이러한 인간의 자기 PR 욕망을 역사 속 위인들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안토니우스를 연회에 초청한 뒤 진주 귀고리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 미모와 지성에 부까지 갖춘 여자의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까. 이는 클레오파트라가 철저하게 계산하고 행한 쇼였다. 그런가 하면 나폴레옹은 초상화를 그릴 때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도록 해 키가 작다는 단점을 감추려 했다. 히틀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자기 PR광.8대2로 가른 머리, 연기를 하듯 칼을 찌르는 동작, 적의 머리 위를 발로 짓밟는 듯한 몸짓 등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지금 보면 우스꽝스럽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그것은 크게 어필하는 이미지였다. 히틀러는 이같은 이미지를 발판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처녀 여왕이라는 고결하고 숭고한 이미지를 위해 피부에 좋지 않은 붕산과 명반, 밀가루 반죽을 얼굴에 칠하고 다녔다. 또 마음 속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음에도 권력을 위해 늘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말했다. 일본 불교의 고승들을 ‘극락왕생이라는 상품의 제조자’로 규정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광고비평’지 편집장을 지낸 저자는 일본 불교의 위대한 고승들은 모두 광고의 천재였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춤 염불’을 포교 수단으로 삼은 잇펜(一遍) 스님,‘렌뇨의 편지’로 잘 알려진 렌뇨(蓮如) 스님 등의 일화가 소개된다. 인간의 역사는 곧 자기 PR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8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일본 전후 정치사(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일본의 비판적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는 천황제를 넘어서지 못한 일본의 민주주의는 ‘불구’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국가가 “정신적 권위와 정치적 권력을 일원적으로 점유”하고, 개개인이 천황을 자신과 일체화했던 것이 일본 파시즘의 심리였다면 전후 민주주의의 건설은 천황제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시작해야 했다.1만 5000원.●속마음을 들킨 위대한 예술가들(서지형 지음, 시공사 펴냄) 앤디 워홀은 히스테리 환자들이 빈번하게 강박적인 자위행위에 빠지듯 타인의 성기를 카메라에 담곤 했다. 그런가 하면 에곤 실레는 여성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부인, 여성의 음순은 언젠가는 자랄 남근 혹은 거세당한 흔적으로 여겼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성적 비밀과 환상은 우리를 종종 당혹스럽게 만든다.13인의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그들의 숨겨진 욕망을 읽는다.1만 3000원.●차이나 코드(프랑크 지렌 지음, 송재우 옮김, 미토 펴냄) 황제의 후궁들은 엄격한 서열 속에 산다. 가장 능력 있거나 총애를 받는 후궁은 특별 대접을 받는다. 후궁들은 황제, 하다못해 황태후의 총애라도 얻기 위해 경쟁한다. 총애받는 사람은 비록 서열이 바뀌지 않더라도 대우가 달라진다. 하지만 황제의 총애가 사라지면 후궁은 단지 시녀에 불과하다. 독일 주간지 중국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중국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서구 국가와 기업들을 과거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경쟁한 후궁에 비유하며 중국경제를 ‘후궁경제’라 부른다.1만 5000원.●처음 읽는 일리아스(데이비드 보일 등 지음, 김성은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그리스 비극시인 아이스킬로스는 “내가 지은 시는 한낱 ‘호메로스의 잔치마당에 떨어진 부스러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파리스의 비극’이 빚어낸 트로야와 그리스의 10년전쟁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전쟁을 다룬, 총 24권 1만 5000행의 방대한 서사시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 의해 죽기 직전과 직후 50일간의 전쟁상황을 그렸다.‘일리아스’는 트로야의 옛 이름인 일리온, 즉 ‘일리온의 이야기’란 뜻.‘일리아스’를 현대인을 위해 새롭게 풀어썼다.1만 3000원.●마음의 진보(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펴냄) 영국 작가 E M 포스터의 소설 ‘인도로 가는 길’을 보면 무어 부인이 마라바르 동굴에서 메아리 소리를 들으면서 “나불거리기만 하는 딱하고 가소로운 기독교”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7년간 수녀 생활을 한 저자는 자신의 심정이 꼭 그랬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이내 신을 다시 찾게 된다. 이 자서전엔 그 지난한 깨달음의 흔적이 담겨 있다. 저자는 모든 종교의 윗자리에는 ‘아픔’이 있으며, 이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 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라고 역설한다.2만원.●다시 쓰는 동학농민혁명사(김기전 지음, 광명 펴냄) 동학혁명의 시발이 된 사발통문을 토대로 우리나라 최대의 민중항쟁인 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밝혔다. 항일가문 후손인 저자는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을 구출하기 위해 명분상 전봉준을 내세웠고, 대접주인 김개남이 동학교도들을 대거 끌어들여 혁명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한다.1만 4000원.
  • [새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새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기자 시사회장에서 여주인공 문소리는 “이민 갈 각오하고 찍었다.”며 운을 뗐다.“개성있는 영화, 개성있는 캐릭터란 생각에 덤벼들었다.”고 ‘해명’도 했다. 16일 개봉하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제작 엔젤언더그라운드·MK픽처스)은 그런 영화이다. 낯뜨겁게 솔직하면서도, 민망할 정도의 내밀한 기억을 오지랖 넓게 풀어놓는 장르불명의 드라마. 코미디와 섹스드라마, 멜로를 오가며 욕심많게 장르를 아우르고 변주하는 독특한 형질의 ‘성인 코미디’쯤으로 말해 놓자. 단편 ‘용산탕’‘1호선’으로 두각을 드러낸 이하 감독(한국영화아카데미 18기)이 시나리오를 직접 쓴 장편 데뷔작.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의 대상 수상작이다. 지방대학 염색과 교수 은숙(문소리)은 첫눈에도 ‘문제적’ 여자로 보인다. 과감한 노출과 상식을 밑도는 엉터리 교수의 언행에 스크린 밖 관객들은 실소를 터뜨리지만 영화 속의 남자들 사정은 다르다. 은숙이 가담하고 있는 지역 환경운동 모임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성적 매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맨먼저 흥미 포인트로 도드라지는 영화이다. 어떻게 대학교수가 됐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지적 수준에도 남자들을 무차별 매혹시키는 은숙 역의 문소리는 동선과 대사를 하나하나 쫓아보게 만드는 별난 즐거움을 안긴다. 지역 방송국 김PD(박원상) 등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애정공세를 무료하게 늘어놓던 영화는, 잘 생긴 젊은 남자 석규(지진희)를 만화과 새 강사로 합류시킴으로써 탄력을 찾는다. 영화는 욕망에 휘둘리는 얕은 인간들의 속물근성을 시종 한담(閑談) 내지 잡담처럼 대책없이 쏟아놓기만 한다. 은숙과 김PD의 열렬하되 대책없이 엉성한 애정행각, 그 한편으로 잘 생긴 석규에게 질투를 느낀 사내들이 빚는 한심한 코믹 해프닝 등에서 관객이 스스로 긴장을 얻을 동기란 거의 전무하다. 영화의 평가는 어쩌면 이 지점에서 엇갈릴 듯하다. 말할 수 없이 일상적이며, 대중성을 확보하기엔 지나치게 사유화한 소재에서 흥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관객에겐 무료하고 건조한 작품으로 주저앉을 만하다. 하지만 일상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곱씹게 하는 홍상수 감독류의 스크린에 관심있어 왔다면 꼼짝없이 매료당하고 말, 대단히 독특한 화술의 영화임에 틀림없다. 젠체하지 않는 단선적인 대사와 동선의 캐릭터들이, 실재하는 장면을 문틈 사이로 넘어다보는 듯 현실적이어서 공감을 더한다. 사소한 질투에서 발아한 욕망이 생활의 에너지로 형질변경하기도 하는 유기적 삶의 질서가 짓궂은 농담을 통해 성찰되는 영화가 됐다. 감독은 “(인간의)지긋지긋한 이중성에 대한 농담”이라고 영화를 정의했다. 은밀하면서도 유쾌하고, 뜨거우면서도 질척거리지 않는 이 영화를 과연 관객들도 감독의 표현처럼 ‘아트 코미디’라 불러줄 수 있을까.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0) 긍정적 사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0) 긍정적 사고

    우리는 대개 긍정적 사고를 권력과 돈에 아부하는 사고처럼 생각하는 무의식적 관습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지식인은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하는데, 긍정적 사고는 지식인의 비판적 사고와 한 자리에 동거할 수 없는 현실 맹종적 사고로 여기기 다반사다. 그런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까닭은 우리의 역사적 업이 그렇게 형성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부터 나라가 백성을 제대로 두루두루 아껴 보살핀 적이 거의 없이 경제적·안보적 위기에서 버림받았다는 기억이 그런 무의식적 업을 낳게 하였던 것 같다.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악착같이 무슨 수를 강구하려는 우리의 행태도 나라정치와 지도층의 인격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집단무의식과 깊은 연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긍정적 사고는 아첨하는 사고와 다르다. 긍정적 사고는 모든 창조적 사고와 사기진작의 원동력이다. 쉽게 말하면 긍정적 사고는 자기의 운명 팔자를 수용하는 사고다. 예컨대 자기의 타고난 운명팔자가 나쁘다고 부모나 타인을 탓하고 비난한다고 자기의 운명이 개선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일생을 불운 속에서 헤매다가 임종을 맞을 뿐이다. 나쁜 운명의 여건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사람은 그 운명을 사실로서 수용하고 거기서부터 인생의 설계를 세워 운명의 장애를 극복한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은 다르다. 수용성과 수동성의 미묘한 차이를 철학적으로 잘 해명한 이가 20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가톨릭 실존철학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이다. 그는 수용성을 수동성과는 달리 자기 내부정리를 통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준비가 된 열린 마음의 자세에 비유했다. 열린 마음은 불운에 임해 마음이 내성적으로 안으로만 접히지 않고, 불운의 사실을 새로운 가능성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불운이 자기의 마음을 접히게 하느냐, 아니면 새롭게 열게 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마음의 활용에 달렸다. 열린 마음은 불운이 자기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불운에서 ‘너는 좋아지리라.’라고 자기의 마음에 희망의 빛을 예견한다. 그런 예견은 불운을 기회로 활용하는 마음의 자세와 직결된다. 받아들임은 이미 주어진 제약의 굴레를 자유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적극적 사고를 도입하는 자세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말한 운명애(運命愛=amor fati)가 초인적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여긴 것은 창조가 자신의 어려웠던 처지를 오히려 지혜로 되돌리는 마음의 활용과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유신론자 마르셀이나 무신론자 니체가 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진술한 것이겠다. 이처럼 창조적 사고는 긍정적 사고에서 잉태된다. 불운한 운명의 시련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한 시공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운명과 연관될 때에, 그 시공의 정신문화적 주제로서 등록된다. 대체로 정신문화의 필요성은 공동운명의 시련이 생기하였을 때에 일어난다. 그 공동운명의 시련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가난과 질병에 의한 고통이나 전쟁에 의한 죽음이나, 소외나 무상감이나 억압의 부자유나 박탈의 절망감과 같은 것이 실존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경우, 또는 기존의 사상이나 지식으로 새 미래를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무지의 자각현상이 강렬한 경우에 생긴다. 고통의 느낌이나 무지의 자각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문제가 아니고, 동일한 문제의 두 측면이다. 왜냐하면 공동운명으로서의 고통의 느낌은 우리 문화가 과거에 스스로 지은 말과 생각과 행동의 습관이 현재완료진행형으로 쌓여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자승자박의 굴레를 말하고, 무지의 자각은 그 현재완료진행형 상태에 있는 습기(習氣)의 구속을 풀 수 있는 해방의 새 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마음이 욕망이라고 앞 글에서 늘 말해왔다. 이번에는 그 마음이 습관이라고 말한다. 욕망과 습관은 같은 뜻을 달리 표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의 기호가 반복되면 습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신문화는 사회생활을 하는 마음의 욕망이 어떤 습기를 이룩한 결과다. 정신문화는 공동운명이고, 이것은 또 공동습기를 뜻한다. 공동습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정신문화의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긍정적 사고를 말하면서 왜 고통과 무지를 말하나? 바로 이 고통과 무지가 우리의 것이기에 그것을 공동운명으로서 감수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운명애는 우리 것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감정적 편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감정적 편애는 자기 자식이므로 무조건 감싸는 지각 없는 부모의 편애와 다르지 않다. 운명애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가 된 우리의 업장(業障)을 사실로서 인정함이다. 공동사실로서의 공동업장을 수용하면서 그 업장의 방해가 동시에 지혜의 원동력으로 변용될 수 없겠는가 하고 깊이 사유한다.12세기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의 시작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땅으로 넘어진 자는 그 땅을 밟고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운명애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공동운명의 업장이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였다면, 우리가 일어서기 위한 지혜가 다른 곳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현재완료진행형으로 흘러오고 있는 바로 그 공동운명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 긍정적 사고의 의미다. 그런 긍정적 사고에서 우리를 고통과 무지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창조적 사고가 움튼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봐도 자기를 저주하고 학대하는 이에게 우리는 그의 운명팔자가 개선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공동운명의 역사를 분노에 차서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는 일도 현명한 지혜의 눈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 것을 무조건 최상의 것으로 치켜세우는 자존망대의 국수주의적 행각도 우스꽝스럽다. 뱀의 독 속에 그 독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약이 있다고 한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게 이중적이다. 이것이 사실의 존재론적 법칙이다. 공동운명의 업장 속에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해독제가 있다는 것이 긍정적 사고의 의미다. 나는 16세기 율곡의 성리학에서 이통기국(理通氣局=理가 비록 보편적이나 특수적인 氣의 상황을 떠나서 실존하는 것이 아님)이란 철학적 언표를 아주 좋아한다. 저 언표 속에서 율곡은 주자학의 보편적 이치라도 조선의 역사적·사회적·자연적 상황을 떠나서 추상적으로 실존할 수 없다는 창조적 사고의 원리를 제창했다고 여긴다. 말하자면 주자학의 조선화를 겨냥한 사유가 거기에 배어있다고 생각된다. 주희도 이 이치를 깨치지 못한 데가 있다고 율곡은 그의 친구 성혼에게 호젓이 고백했다. 나는 율곡의 저 언표가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사상과 매우 닮았다고 여긴다. 이 세상의 어떤 진리도 구체적 살(肉)을 떠난 추상적 본질이 성립하지 않으며, 구체적 날짜와 장소를 여읜 무시공(無時空)의 철학적 사유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메를로-퐁티가 ‘의미와 무의미’에서 남긴 말이다. 그런데 율곡이 저 유명한 ‘이통기국’의 언표를 남기고 그에 알맞은 형이상학과 심성론의 원리를 말하고 정책의 면에서 그 시대의 아픔을 혁파할 수 있는 정책방도를 개진했으나, 불행히도 공동운명의 질곡을 희망으로 치환시키는 길을 언명하지 안았다. 우리가 고통과 무지에서 구체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탐색하기 위하여, 율곡의 저 명제가 한 번도 진지하게 심층적으로 자기화되는 길을 가져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해 보지 못한 이유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운명의 업보가 현재완료진행형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거의 예외없이 우리 고통과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학문을 창조하지 못한 채 다만 서양의 인문사회과학은 서양의 이론을 소화하지 않고 소개하고, 동양학 내지 한국학은 옛 고전의 생각을 역시 소개하는 정도로 마감해온 것이 아닌가 자성한다. 이 땅의 인문사회과학은 우리의 풍토병과 아픔을 치유하려는 진단처방보다 ‘…에 관한 연구’로서 ‘호모 스펙탄스’(homo spectans=관람자)나 ‘호모 인트로두첸스’(homo introducens=소개자)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지? 그래서 대학의 학문과 현실이 따로따로 헛도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자성한다. 나는 자기 것으로 숙성된 학문에 의해 세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아류의 신세를 면할 수 있는지 모른다. 율곡이 말한 ‘이통기국’은 결국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같겠다. 실사구시는 긍정적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진선진미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의 구체적 인간들은 다 잡석(雜石)이다.8회의 글에서 왕양명의 말을 인용했다. 예컨대 거리의 사람들이 5%,20%,75%의 금을 지닌 잡석과 같은 성인이라는 것이다. 순금의 금괴는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존재일 뿐, 자연적으로는 실존하지 않는다. 옥석혼효(玉石混淆)라 하지 않던가? 모든 인간은 다 자기의 장기를 타고났다. 이것이 자연의 존재양식이 아닌가? 각자의 특장(特長)을 잘 살려서 신바람나게 공동운명을 좋게 바꿔놓게끔 힘을 실어주어야지, 보석을 보지 않고 잡석만 자꾸 캐내려 하면 누가 그 인민재판 앞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역설적으로 옛 중국의 전국시대 제나라 정승인 맹상군의 삼천식객(三千食客)과 계명구도(鷄鳴狗盜)를 예사롭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계명구도하는 식객이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출해 냈다. 사법재판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만인이 만인에게 사법재판 하듯이 옥석을 가린다고 따진다면, 옥석이 다 타버리는 옥석구분(玉石俱焚)의 손실을 우리가 아니고 누가 입을 것인가? 서로 나쁜 점을 헐뜯는 사회보다 서로 좋은 점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더 좋은 양질의 사회생활을 일구고, 우리를 더 행복스럽게 만들리라. 비밀의 열쇠가 우리 안에 있듯이,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동운명 안에 깃들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묵시의 장 ‘심흔’,‘적’,‘일탈-예감’ 등의 작품을 통해 단순함과 복잡함, 긴장과 이완, 운동과 정지 등의 대비를 특징으로 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온 정현도의 11번째 개인전. 동판과 나무를 재료로 시적 압축미를 보여주는 조각 작품들을 선보인다.8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관훈동 모란갤러리.(02)737-0057. ■ 가겟집 2002년 중고버스에 ‘노란버스 화실’을 마련한 이후 전국 곳곳을 돌며 그림그리기와 여행을 이어오고 있는 한생곤의 개인전. 연탄재, 기와, 소주병, 조개껍질 등 길에서 주운 재료들을 빻아 이를 질료화하여 주택가 골목길의 가겟집과 노점상들의 정겨운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20일까지 서울관훈동 갤러리 쌈지.(02)736-0088. ■ 가나아트갤러리 신진작가 수상전 지난해 가나아트갤러리의 신진작가 공모전에서 수상한 안세권, 정직성, 이지은의 작품전. 서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안세권의 사진작품, 도시 곳곳의 이미지를 모아 화면에 재구성한 정직성의 회화작품, 화려한 색채의 E.V.A를 이용해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시도한 조형작품 등을 선보인다.13일까지.(02)736-1020. 뮤지컬 ■ 명성황후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구한말을 배경으로 격동의 역사를 그린 국민뮤지컬. 윤호진 연출, 이태원 이상은 출연. 화∼금 7시30분, 수 3시·7시30분, 토 3시·7시, 일 2시·6시.3만∼12만원.(02)575-6606. ■ 행진!와이키키 브라더스 4월2일까지 화∼금 8시, 수 3시·8시, 토·일 3시·7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줄거리에 대중가요, 팝을 입힌 편집뮤지컬. 이원종 연출, 이휘재 춘자 안정훈 등 출연.3만∼12만원.1588-7890. ■ 벽을 뚫는 남자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8시, 일 3시·7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자유자재로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소심한 남자의 인생 역전기. 임도완 연출, 박상원 엄기준 등 출연.4만∼7만원.1588-7890. 어린이 ■ 시계 멈춘 어느 날 9∼19일 화∼목 3시·5시30분, 금 5시30분, 토·일 1시·5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전쟁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1만 5000∼2만원.(02)382-5477. ■ 재크와 요술저금통 5월28일까지 명동 펑키하우스. 꿈나무가 자라는 요술 저금통을 보며 저축의 소중함을 깨닫는 재크의 이야기.1588-1089. ■ 현악4중주단 콰르텟 연주회 14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화이트데이와 네 가지 비밀상자’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색 콘서트. ■ 박현숙의 가야금 병창 14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 판소리 중 심청가, 단가 중 녹음방초, 서공철류 가야금 짧은 산조 등 공연. 연극 ■ 선착장에서 섬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광기를 그린 작품으로 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박근형 작·연출, 엄효섭 이규회 등 출연. 화∼금 7시30분, 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1만2000∼2만원.(02)741-3934. ■ 올드보이 10일∼4월30일 화∼금 8시, 토 5시·8시, 일 3시·6시 대학로 우리극장. 가둔 자와 갇힌 자의 쫓고 쫓기는 복수극. 김관 연출, 김정균 추상록 등 출연.3만∼3만 5000원.(02)745-0308. ■ 강풀의 순정만화 5월28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신연아트홀. 인터넷 히트 만화를 무대화. 정세혁 연출, 오상헌 이지연 출연.1만 5000∼3만원.(02)3142-0538. ■ 타이피스트 4월30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3시. 인켈아트홀2관. 하루의 일상에 40년의 인생을 담아내는 기발한 2인극. 임도완 연출, 정은영 김재구 등 출연.(02)744-0300.
  • [문화마당] 우리 안의 미국화/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타이완에는 ‘클럽51’이라는 상류층 엘리트 사교모임이 있다.1994년에 결성된 이 클럽은 타이완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타이완을 미국의 한 주로 만들면 구차하게 이민을 가지 않아도 되고 소수민족으로 멸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여기가 바로 아메리카”라는 ‘클럽51’ 슬로건은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에서 벗어나 타이완의 분리 독립을 꿈꾸는 기득권 세력들의 극단적인 상상력을 대변한다. 타이완에서 미국화는 냉전의 산물이 아니라 동시대 국가적 생존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다. 본토 중국에 대한 공포가 클수록 미국에 대한 내면화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화는 비단 타이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국화는 어디까지 왔을까? 미국시민권을 얻기 위한 원정출산 바람, 영어발음을 원어민처럼 하기 위해 아이의 혀를 늘리는 수술붐, 청년들의 모자와 티셔츠에 새겨진 미국 명문대학 로고, 정·관·학계를 주름잡는 미국유학파들…. 한국의 미국화는 제도에서 일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신체 안에 각인되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커피체인점 스타벅스의 초대형매장들은 모두 한국에 있다. 캘리포니아 ‘피트니스클럽’은 캘리포니아에만 있지 않고 바로 압구정동과 명동에도 원형 그대로 있다. 미국의 외식 업체인 ‘아웃백스테이크’의 한국 지점들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장사가 가장 잘된다. 이쯤 되면 한국의 미국화는 타이완이나 일본보다 더 강렬해 보인다. 한국의 미국화는 욕구라기보다는 욕망에 가깝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영어를 배우는 욕구보다는 영어를 통해 미국다움을 느끼고 싶어하는 욕망, 하버드대학에 가고 싶은 욕구보다는 하버드라는 상징기호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 이것이 신체 안에 각인된 내면화된 미국화이다. 한국전쟁 당시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미군 군용차를 따라다녔던 아이들의 추억,‘미8군부대’에서 미국의 컨트리송을 부르고, 미국 번안곡들이 최고 인기를 얻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미국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령 1960∼70년대 미국 번안곡은 미국의 노래를 있는 그대로 차용하지만, 그 문화정서에는 한국적인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가수들이 부르고 있는 힙합이나 알앤비 음악은 거의 자작곡이지만, 문화적 정서는 미국지향적이다. 번악곡의 시대는 미국적인 형식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만 자작곡의 시대에는 의도적으로 미국적인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동시대 힙합과 알앤비 음악의 정서에서 미국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구분은 사실상 모호하게 된다. 미국적인 리듬과 멜로디는 이미 우리의 신체 안에 내면화된 것이다. 일본의 문화연구자 요시미 순야는 일본이 미국화된 절정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1984년 도쿄디즈니랜드 개장으로 분석한다. 도쿄디즈니랜드는 일상 속에서 미국적인 것과 미국적이지 않은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월26일 한·미무역투자협정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한국 내 미국화가 가속화되고 그 경계가 마침내 사라지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스크린쿼터의 폐지는 바로 우리 안의 미국화가 임계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될 것이다. 몇 년 전 프랑스의 한 영화관계자가 미국의 할리우드 관계자에게 지금 세계영화시장의 70%가 미국영화인데 어느 정도면 성이 차겠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물론 100%죠.”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만일 스크린쿼터가 미국의 주장대로 축소되거나 이후 완전 폐지되어 한국영화의 배급망이 붕괴된다면, 미국화는 영화소비를 통해서 가시화될 것이다. ‘쌀과 영화’, 즉 ‘신체와 감성’을 미국의 요구대로 내주었을 때, 이보다 더 강력한 미국화가 있을 수 있을까? 한국에도 타이완의 ‘클럽51’과 같은 완전한 미국화를 주장하는 그룹들의 출현이 멀지 않아 보인다. 아니 정부 스스로가 ‘클럽51’인지도 모르겠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9) 가치와 사실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9) 가치와 사실

    누구나 인생을 가치있게 보내려 한다. 그 가치가 무엇인가? 가치는 경제적 가격과 대단히 유사해 보인다. 쉽게 말해 시장에서 인기가 있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사람도 만인의 인기에 의하여 그 가격이 결정된다. 가격이 비싼 사람은 그만큼 가치도 많아 보인다. 현대의 정치와 문화가 모두 상업화되어 가는 마당에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모두 총력을 기울인다. 가치가 꼭 가격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 가치는 슬픔의 상처를 안고 밀려난다. 역사에 이런 슬픈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격과 가치가 불일치한 경우다. 좌우간 가치나 가격은 세상사가 다 상호주관적(intersubjective)이기에 생긴다. 이 말은 사회생활에서 상대방의 인정과 승인을 얻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소유욕을 말한다. 소유욕은 단적으로 인간사이에 먹으려는 욕망이 원초적이라는 것과 통한다. 불교에서는 이 먹고 싶은 욕망을 사식론(四食論)이라 부른다. 음식을 쓸어 요리해서 맛있게 먹고싶은 단식(段食), 남녀간에 피부로 접촉해서 먹고싶은 촉식(觸食), 상호간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을 설득 동화시키고 싶은 의사식(意思食), 자기의 지식으로 대상을 정복해서 자기 것으로 삼고 싶은 식식(識食) 등을 사식이라 한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잘 통찰한 바와 같이, 사회생활에서 타자로부터 인정과 승인을 얻고 싶은 욕망은 불교적으로 보면 다 타자를 먹고 싶은 소유욕과 같다. 음식 먹기도 문화여서 타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맛있고 우아하게 먹으려 하고, 성욕도 사회적인 승인을 통해 배출하려 한다. 원초적으로 인간의 사회생활은 먹고 먹히며 서로 인정받고 승인받기 위한 투쟁과 갈등의 연속이다. 가격과 가치가 그런 상호주관적인 욕망관계에서 생긴다. 그런데 가치는 가격보다 훨씬 복잡하다. 가격은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도태되면 그것으로 수명이 끝이지만, 가치는 인간의 마음이 개입된 복잡한 욕망의 주장이다. 가격경쟁에서 실패했지만, 마음이 겨냥한 가치가 무의미하게 사라졌다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상호주관적 욕망이다. 비록 시장에서 탈락되었으나, 언젠가 나의 가치를 인정승인할 날이 올 것이라고 앙앙불락 기대한다. 그것이 신념일 수 있고, 나쁘게 보면 고집일 수 있다. 인류사의 가치론을 볼 때 한때 가격에서 탈락되었으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엄청난 경쟁력을 새롭게 지니게 된 가치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가격과 가치가 불가분이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면 그 가치가 무엇인가?‘내가 가치있게 살고 싶다.’할 때의 그 가치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정치적, 도덕적, 예술적, 학술적 생각을 사회적으로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다른 것이 아니다. 앞의 사식(四食) 가운데 의사식(意思識)이나 식식(識食)이 주로 여기에 해당하겠다. 가치는 상호주관적 사회생활에서 소유론적 욕망과 직결된다. 사회생활이 없다면 가치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가치는 ‘내가 생각하는 것(cogito)’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의사식이나 식식에서 타인을 설득시키고 지식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논리를 정리하고 이념을 창출한다. 이것이 시장에서의 광고처럼 이념에서의 선전이다. 이념의 선전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cogitamus)’으로 만들기 위한 소유욕의 책략이다. 특히 소유욕의 책략에서 정치적 가치가 예술적 가치보다 훨씬 강하다. 왜냐하면 정치적 가치는 세속적 지배를 원하는 종교적 가치처럼 지배의지를 진리의지와 동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20세기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구조주의 철학자 라캉이 그의 저서인 ‘기록’에서 한 말이다.“내가 존재하는 곳에 나는 생각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곳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뜻 무슨 말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상호주관적 사회생활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소유하기 위함이지, 내가 존재하는 사실을 언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고, 생각이 일어나서 분별하는 경우는 모두 소유를 위한 동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일어나는 경우는 모두 호오와 시비와 선악을 내가 취사선택한 한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가치는 나의 생각의 산물이고, 이것은 또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의사식과 식식의 경우에만 ‘나는 생각한다.’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단식과 촉식의 경우에도 내가 먹는 음식이나 나의 몸매가 만인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표적이 되게끔 만인을 홀리려 한다. 라캉의 생각처럼 사회생활에서 모든 것이 소유와 피소유의 관계로 환원된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사회생활이 그래왔었기 때문이다. 라캉은 프로이트 계통의 학자인데, 결국 성욕이 인류사회의 가장 원초적 언어활동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겠다. 성욕과 소유는 같은 말이다. 그래서 우리도 무의식중에 가치있는 인생을 향유하기를 기원해 왔다. 가치없는 인생은 타자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가치는 결국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만인에 의하여 평가받고 싶은 소유욕에 다름 아니다. 가치는 나의 기호를 만인의 기호로 변경시키려는 확장욕에 불과하다. 이 확장욕은 우리가 앞 글(1·2·3·6·7·8회)에서 여러 번 지적한 본능의 소유욕에 해당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어떤 충격을 받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가치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 알았는데, 여기서 가치가 결국 무의식적 본능의 소유욕을 의식의 명분으로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가치는 각자의 심층적 소유욕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 가치가 정치적 사회적 이념과 각별하게 연관된 것일수록 더 사회지향적 선전이 심하다. 그런 가치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그것이 우리의 가치가 되도록 각색한다. 대개의 역사는 정치적 사회적 이념을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세계사를 통하여 널리 확산되어 왔었다. 그래서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초기 실존주의에서 후기 사회혁명주의로 기운 철학자 사르트르와의 역사논쟁에서 사르트르적인 공산주의 지향의 역사의식을 비판하면서, 역사는 늘 어떤 이념적 경향성을 잠복시킨 내용적 편파성과 외연적 부분성을 띠고 있으므로 역사를 과학으로 인정하기를 그의 저서인 ‘야생적 사유’에서 거부했다. 그는 이념적 가치의 편향성에 의한 사실왜곡이 거의 없는 인류학과 민족학을 역사에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 이 말은 많은 경우에 정치적 사회적 이념의 가치는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을 언명함이다. 왜냐하면 그 가치는 세상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세가지의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그것이 가장 자기에게 좋은 것만을 선택했다는 한계고, 다른 하나는 자기선택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한다는 한계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가치의 선동선전에 미쳐서 모든 가치가 필연적으로 반가치(4회 참조)를 품고 있는 측면을 전혀 도외시한다는 한계다. 그러면 모든 가치는 다 문제적인가? 세상을 소유하고 지배하겠다는 경향성이 희소한 순수 종교적, 예술 미학적 가치가 가장 사실성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지? 그러면 무엇이 진짜로 사실인가? 객관적으로 증명가능한 것만을 사실성으로 인정하는 실증주의적 시각이 옳은가? 실증주의는 사실성을 밝히는 데 너무 좁고 미흡하다.10여년 전 뒷길 교통신호대도 없는 네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내가 냈는지 당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에 그 사고의 원인은 길 건너 앞차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의 진로를 알려주지 않아서 내가 거기에 신경이 빼앗겼기에 다른 차와 접촉하는 사고가 생겼다. 이것은 나의 심증이지 물증이 없다. 이처럼 실증주의는 사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너무 좁다. 소유론적 무의식을 지닌 가치가 다 편파적이고 부분적인 사실의 왜곡에 기인한다면, 지공(至公)한 사실의 인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앞으로 21세기적 모든 학문의 의미는 가치론보다 사실론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모든 가치는 결국 자아중심적 소산이다. 자아가 어떤 색깔로 물들어 있어서 그 색깔로만 세상을 바라보므로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는 자는 두가지 부류겠다. 하나는 이념적 가치를 위하여 일부러 사실을 거짓말로 속이는 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가 어떤 특정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모르고 그 색깔로 세상을 늘 보는 자이다. 무의식의 소유욕이 그런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전자는 진짜로 언급할 만한 거리도 못되는 정신적 사이비다. 그러나 후자는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무의식의 업장에 갇힌 자이고,20세기 프랑스의 현상학적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용어로는 잠재적인 ‘암묵적 전(前)의식’의 집단무의식에 갇혀 사는 자이다. 다 같은 생각을 개진한 것이겠다. 업이나 집단적 무의식에 걸리면, 그 업과 무의식이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생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이 모른다. 이것이 문제다. 우리는 미래의 교육에서 가치관 형성에 열을 올리지 말고, 인간이 자아를 가진 한에서 얼마나 편견과 아집의 노예가 되기 쉬우며, 가치의 이름으로 세상을 헛보게 만드는가를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가치가 반가치를 필연적으로 띤다는 것(4회), 가치는 자기 기호의 선택이므로 전체를 보는 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아를 무아로 점진적으로 바꾸는 교육이 실제로 자아의 가치관교육보다 더 미래의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말해주어야겠다. 역사와 세상과 자연의 전체 사실을 여여하게 보는 눈을 키우는 공부가 미래의 철학교육이리라. 미래의 철학은 어떤 특정가치를 세상에 뒤집어 씌워 편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아의 탐욕이 없는 마음에 비쳐지는, 존재하는 필연성을 아는 데 있겠다. 신경병도 과거 억눌렸던 상처를 알아차리는 데서 치유된다. 가치의 주입이 아니라 무명(無明)의 알아차림이 더 중요하다. 눈 뜬 장님들이 세상의 사실을 왜곡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儒林(55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0)

    儒林(55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0)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0) 퇴계가 율곡에게 가르쳤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것이 바로 이(理)’란 말 중의 이는 서양철학에서는 이성(理性:reason)이라고 불린다. 이성이란 인간의 논증적 사고능력을 가리키며, 직관적 능력을 가리킨다. 또한 ‘사물을 판단하는 힘’을 의미하며 참과 거짓,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과 진리를 가늠케 하는 이성은 욕망과 감정으로부터 해방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과 구별짓게 하는 순수한 정신능력인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라는 인간에 대한 고전적인 명제가 성립된다. 특히 이퇴계보다 약 100년 후에 태어난 데카르트(1596∼1650)는 처음에는 수학과 과학을 연구하여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한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으나 점점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모든 사물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이런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으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ergo sum)’라는 근본원리를 확립한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대사상가였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만인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게 갖고 있는 이성능력을 ‘양식(良識)’ 또는 ‘자연의 빛’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이성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정의해 왔다. 이성으로 우주의 여러 사상(事象)을 어떤 비례적, 조화적 관계로 바라볼 때 어두운 혼돈(카오스) 속에서 일정한 법칙에 놓여 있는 조화로운 우주가 나타난다. 따라서 본래 그리스어인 로고스(logos:이성), 또는 라틴어인 라티오(ratio:이성)에는 조화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밝은 빛으로서의 이성에 대비해서 말하면 감정적 욕망이나 정념(情念)은 어둡고 맹목적인 힘이다. 기쁨, 슬픔, 노여움, 욕망, 불만들의 감정은 어둡고 비합리적인 힘으로 내부에서 폭발한다. 이것을 이성적인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면 정신의 자율성은 유지될 수 없다. 우리 마음 속에는 자율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결정하는 이성적 능력이 있는데, 그것에 의해서 도덕적 행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서양철학의 ‘이성론(理性論)’은 퇴계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다르지 않음이니, 퇴계가 12살 때 황홀하게 깨달았던 ‘모든 사물에서 마땅히 그래야할 시(是)가 바로 이’라는 명제는 바로 데카르트가 주장하였던 이성론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퇴계는 서양철학에 있어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보다 100여 년 앞서 ‘이기론(理氣論)’을 주장한 동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퇴계의 위대한 점이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원효를 불교에 있어 우리민족이 낳은 대사상가라면 퇴계는 유교에 있어 우리민족이 낳은 대사상가이며, 해동공자(海東孔子)로 불리는 유가의 완성자이자 공자의 현신인 것이다.
  • [클릭 지구촌 이곳!] 코펜하겐 ‘호텔폭스’

    [클릭 지구촌 이곳!] 코펜하겐 ‘호텔폭스’

    안데르센의 고향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는 그의 동화만큼 상상력이 넘치는 ‘호텔 폭스’가 있다.13개국에서 40명의 예술가가 살아 있는 미술관으로 재단장한 호텔 폭스(www.hotelfox.dk)의 61개 방은 각기 개성이 넘치는 독특한 내부 디자인으로 전세계 여행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텔 폭스가 탄생한 것은 유럽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의 아이디어와 이를 전폭적으로 동의한 가족 호텔 주인 덕분이다. 폴크스바겐은 2004년 11월 코펜하겐에 있던 많은 호텔들에 ‘괴상한’ 제안을 했다. 대부분의 호텔 주인들은 호텔을 당장 비우고,40명의 예술가들이 동화 속의 이미지와 상상력으로 다시 채우겠다는 폴크스바겐의 제의를 미심쩍어했다. 하지만 코펜하겐에 있는 오래된 가족 호텔이었던 파크 호텔의 주인 한스 브로슈너(70)는 망설임이 없었다. 당시 신차 ‘폭스’를 준비중이던 폴크스바겐은 2005년 봄 신차 출시 행사에 전세계 800여명의 언론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상태였다. 신차 폭스의 주소비층에 걸맞게 젊고, 역동적이며, 독특한 숙박장소가 필요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자 새 호텔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브로슈너의 과감한 결정 덕에 ‘파크 호텔의 모든 집기가 공짜’라는 광고가 2004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신문에 실렸다.1500여명의 덴마크인들이 몰려와 침대, 싱크대, 의자, 전등을 차에 싣고 가는 바람에 몇시간 만에 호텔은 텅텅비게 됐다. 이어 다양한 국적의 젊은 남녀예술가들은 3층짜리 호텔을 꿈과 비밀스러운 욕망, 우스꽝스러운 유머, 초현실적인 환상으로 채웠다. 낡은 파크 호텔은 없어지고 호텔 폭스로 재탄생한 것이다. 호텔을 찾는 손님들은 가방을 방에 내려놓자마자 나무와 숲에 사는 꼬마 요정 엘프, 건방진 게이샤들의 환대를 받게 된다. 모두 예술가들의 상상력만으로 호텔 벽 위에서 새로 태어난 이미지들이다. 어떤 방에서는 왕이 잠자는 손님을 굽어보기도 하고, 긴팔의 괴물이 악몽으로부터 손님을 보호해 준다.61개의 방들은 벽화, 타일, 가구 등으로 꾸며진 각각의 이야기를 갖게 된 것이다. “호텔 폭스의 손님들은 단지 침대와 아침만을 예약하는 것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고 호텔 폭스 재단장 작업을 주관한 킴 포크센은 설명했다. 하루 숙박비는 방의 크기에 따라 945∼1620크로네(약 14만∼25만원)다. 부티크 호텔을 표방하는 중소 규모의 호텔이 예술가들에게 의뢰해 호텔 내부를 독특하게 재단장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타임지는 최근 샌프란시스코 유니온 스퀘어 근처의 ‘호텔 데 아트’도 지역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려 새롭게 꾸며졌다고 소개했다. 폴크스바겐은 호텔 폭스의 혁신적인 이미지가 블로그를 통해 전세계로 퍼지면서 신차 폭스를 알리고, 덩달아 기업 이미지도 어지는 효과를 얻었다. 사람들은 폭스를 신선하고 대담한 브랜드로 여기게 됐다. 호텔 폭스 재단장에 참여했던 스페인 예술가 사비는 “폴크스바겐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믿어주고, 우리의 작업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호텔 폭스는 기업과 예술이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호텔 폭스에서 일하는 린 라센은 “아직 한국 손님이 묵은 적은 없지만, 한국 블로그에서도 우리 호텔 이미지가 인기라고 하니 곧 한국 손님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사람이 중요한 이유/길자연 목사·왕성교회 당회장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는 사람이란 사람이 따르는 사람을 말하고, 사람이 없는 사람이란 사람이 배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중시하면서도 사람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고와 생활방식이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과 손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망이나 물질은 중시하면서도 사람을 경시하는 오늘의 풍조는 확실히 문제가 됩니다. 얼마 안 되는 물질과 이권 때문에 사람을 배신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성적 욕구 때문에 귀중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의 소리를 묵살하면서 나아가 사람들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아니고 또 삶의 지혜도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 얼룩진 부분들은 모두가 다 사람과의 관계를 무시한 사람들로 인해서 되어진 것들입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자신의 뜻은 이루었으나 사람을 잃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질보다 사람을 중시하고, 인류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뜻마저 꺾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겠습니다.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다윗은 성공자였고 사울은 실패자였습니다. 에머슨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행복을 더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부담감과 두려움을 주고 고통과 아픔을 주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행복과 기쁨을 더해주는 사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가족은 물론 환난을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꾸역꾸역 그에게 모여들어 그를 장관으로 삼았는데 그 수가 무려 60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에게는 신분과 처지, 성별과 입장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잘 살고 행복한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치고 실패하고 불행하고 낙오한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힘을 얻고 소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에게는 이렇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급기야 이런 다윗의 인간적 매력은 그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신분과 처지를 초월하여 이스라엘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본다면 사람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고 사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우주 삼라만상을 다스리며 지키도록 위임받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심은 천심입니다. 그러므로 흐르는 민심에 귀 기울일 줄 모르는 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역보다 민심을 포용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이 지도자의 덕목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은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사람을 포용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은 어디서 생길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입니다. 다윗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 넓은 마음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얻으면 행복을 얻고 사람을 잃으면 행복을 잃습니다. 행복은 물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당회장
  • 강바람속 봄의 기지개 화폭에 한가득

    강바람속 봄의 기지개 화폭에 한가득

    겨울의 끝자락. 물기 머금은 봄바람이 귀밑머리를 날릴 때면, 우리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따라 이어진 경기도 양수리 강변길은 가장 쉽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아담하고 예쁜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강을 타고 온 봄내음과 함께 문화의 향기를 피워내는 갤러리들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대부분 찻집을 겸하고 있어 차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다. 혼자여도 좋고, 친한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갤러리 여행. 도심에서 1시간이면 족히 닿을 수 있다. 글 사진 양평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호갤러리 ‘미술과 음악의 어우러짐’. 서호갤러리(관장 홍정주)의 가장 큰 특징이다. 매달 셋째주 토요일(2월과 8월은 제외) 오후 5시에는 새로운 전시회의 오프닝 행사로 ‘미술이 있는 가족음악회’가 열린다. 전시될 작품의 주제나 이미지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은 작곡가가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 연주하는 ‘즉흥 음악회’다. 미술관을 단지 전시만 하는 공간에서 음악 등 여러가지 장르의 예술과 어우러지는 퓨전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독특한 시도다. 작년 12월에 작곡가 김성기씨가 화가 남궁환씨의 작품을 보면서 즉석에서 작곡한 ‘피아노 4중주를 위한 transmigration(윤회)’은 참석자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서호갤러리는 종합촬영소에서 3㎞ 떨어진 북한강변에 마치 유럽의 오래된 성곽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1층의 전시실은 격자무늬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채광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본전시실과 목공예품 도자기류 등이 전시된 소전시실로 구분돼 있다. 특히 천장 높이가 5m에 이르는 본 전시실은 미술전시회는 물론 소규모의 음악회가 가능할 만큼 넓은 공간을 자랑한다. 홍정주(62)관장이 직접 꾸민 앤티크 스타일의 2층 레스토랑은 이탈리아 음식이 주종을 이룬다. 길 양편에 늘어선 매운탕집들 사이에서 정통 이탈리안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음식재료로 인스턴트 식품을 전혀 쓰지 않는 것도 이 레스토랑의 자랑이다.1만 5000원∼1만 8000원 정도의 해산물 스파게티가 인기 메뉴. 매일 오전 10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료는 무료.(031)592-1864, www.seohoart.com ■ ■ 갤러리 리즈 서울종합촬영소를 지나 청평방향으로 7∼8㎞쯤 올라가다 보면, 북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강변에 갤러리 리즈(대표 김숙경)가 단아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카페와 아트숍을 함께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전시실의 문을 열자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제음악인 ‘라라의 테마’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의 벌판이 연상되는 곡이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전시실의 분위기와 묘하게 잘어울린다. 꿈이라도 꾼 듯, 전시중인 김품창 화백의 ‘제주-어울림의 이상세계’에서 깨어나 밖을 보니 갤러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테라스의 나무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햇살좋은 날 테라스에 앉아 북한강과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의 수려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갤러리 리즈의 가장 큰 자랑. 지역사회와의 호흡도 활발한 편이다. 오는 5월 한달 동안은 인근지역 4개 초등학교 학생들의 미술작품과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할 예정이다. 지역사회의 예술가들과 주민들을 한데 어우르는 문화공동체를 지향하겠다는 것. 전시실 옆으로는 카페와 아트숍이 자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2층건물이 있다. 강변 쪽으로 통유리가 나있어 차를 마시며 주변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꼬박 2박3일을 달인 후, 삼베천에 육즙만을 걸러낸 대추차의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8000원. 중국의 10대명차들로 알려진 운남의 보이차 등 중국차들과 갤러리 주변에서 재배한 허브차도 추천할 만하다.7000∼9000원 선. 매주 월요일은 휴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요금은 무료.(031)592-8450,8460 www.galleryliz.com ■ ■ 갤러리 서종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끼고 도는 363번 지방도로를 타고 8㎞ 정도 북쪽으로 가다 보면, 서종면 문호리에 건축물 자체가 예술작품처럼 느껴지는 갤러리 서종(대표 박연주)이 있다. 문호리 시내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어 아늑하고 조용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깔끔하고 정갈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너른 공간이 인상적인 1층 전시실이 이방인을 반겼다. 그리고 높다란 천장이 주는 넉넉함까지. 벽난로에 불이 지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따스한 느낌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아마도 대형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 때문인 듯했다.“인공 조명 대신 건물 곳곳에 설치한 유리창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만으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진 자연 친화적인 화랑”이라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1층 전시실은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기획전이나 초대전 등이 주로 열린다. 현재 한 방송국의 아침 드라마 촬영장소로 사용되고 있어서 작품들을 볼 수 없지만,2월말 부터는 미술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안방처럼 앉아서 차를 마시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2층에서는 ‘아름다운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성백주, 정건모 화백 등의 회화와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진한 대추차를 마시며 창밖을 둘러보았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문호천 너머로 시골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쳐 있다. 안팎이 모두 예술작품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1998년 개관한 갤러리 서종은 1층 50평,2층 20평의 전시공간과 80평 정도의 휴식공간을 갖추고 있다. 입장료는 찻값을 대신해 6000원을 받는다. 남해에서 올라온 유자로 만든다는 유자차를 비롯해 모과차와 대추차 등의 전통차가 준비돼 있다. 휴관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문을 연다.(031)774-5530,5583. ■ ■ 갤러리 뻬르 갤러리 서종에서 신청평대교 방향으로 3㎞ 정도 위쪽에 위치한 갤러리 뻬르. 깔끔한 하얀색 외벽이 인상적이다. 방문객의 뒤를 따라 실내까지 들어온 햇빛이 단정하게 디자인된 전시실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뻬르’는 영어 ‘for’의 이탈리아식 발음.“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도시인들을 ‘위해’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는 김정숙(47) 대표의 세심함이 가슴에 와닿는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나부(裸婦)의 누드화. 현재 열리고 있는 주운항 화백의 ‘누드인물 초대전’의 한 작품이었다. 문화의 변방에만 머물러 있던 방문객에게 김 대표는 “누드화에는 대중들이 즐기고 욕망하는 현실속의 감정들이 직접적으로 투영되죠. 그래서 에로티시즘은 현실의 재확인이라고 할수 있어요.”라며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김대표 또한 ‘화려한 외출’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연 중견작가이기도 하다. 북한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아늑한 2층의 휴식공간에서는 갤러리 뻬르만의 자랑인 야생꽃차를 맛볼 수 있다. 꽃차 전문가 민정진(50)씨가 직접 재배했거나, 전국의 산에서 채취한 꽃들이 주재료. 진달래와 머위꽃 등의 봄꽃부터 동백꽃 등 겨울꽃까지 4계절의 꽃향기를 모두 모았다. 꽃잎의 독성과 자극성을 없애기 위해 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린다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법제과정을 거친 꽃잎이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해져 있는 도시인의 미각에 화사한 충격을 줄 듯하다. 가격은 7000원. 매주 월요일은 휴관.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031)771-6191. ■
  • 소극장용으로 연출된 오페라 ‘돈 조반니’

    소극장용으로 연출된 오페라 ‘돈 조반니’

    서울오페라앙상블이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돈 조반니’를 무대에 올린다.23∼24일(오후 3시30분,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소극장.‘돈 조반니’는 ‘코지 판 투테’‘피가로의 결혼’‘마술피리’와 함께 모차르트 4대 오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걸작. 호색가 돈 조반니의 여성편력과 순례자로서의 고독을 통해 인간 심성의 근원을 파헤친 작품이다. 주인공 돈 조반니는 귀족의 권위를 거부하고 위선적인 윤리에 냉소를 보내는 낭만적 인물로 당시 만연된 자유주의 사상을 상징한다. 모차르트의 어두운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돈 조반니’의 마지막 대목은 오페라 사상 가장 기괴한 장면으로 꼽힌다. 돈 조반니가 지옥불에 떨어지는 장면은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서곡을 비롯, ‘카탈로그의 노래’‘당신의 손을’‘샴페인의 노래’ 등의 선율은 우리 귀에 익숙하다. “우리가 오페라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최고의 욕망”(괴테),“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뛰어넘는 최고의 음악적 전율”(차이코프스키),“불가해한 요소들로 가득찬 ‘돈 조반니’를 분석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수수께끼 같은 오페라”(아인슈타인)등 숱한 찬사가 따르는 작품. 이번에 공연되는 ‘돈 조반니’는 소극장 오페라에 걸맞게 새로운 연출을 시도한 점이 특징이다. 오리지널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레치타티보(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르는 서창) 부분을 연극적 대사로 처리, 관객과의 밀도감을 높였다. 연출 장수동, 지휘 정성수, 무대미술 박영민. 주인공 돈 조반니 역은 바리톤 장철, 돈나안나 역은 소프라노 김은경·박상영이 맡았다.3만∼5만원.(02)741-7389.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현존 한국최고 극영화 ‘미몽’ 中서 발굴 새달 일반에 공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극영화 ‘미몽(迷夢)’(양주남 감독·1936년 개봉)이 일반에게 공개된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효인)은 20일 중국에서 발굴한 ‘미몽’과 ‘반도의 봄’(半島之春)(이병일 감독·1941년 개봉),‘조선해협’(朝鮮海峽)(박기채 감독·1943년 개봉) 등 3편을 다음달 2일부터 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고전영화관에서 상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문서상으로만 존재했던 ‘미몽’은 ‘죽음의 자장가’로도 불리며, 바람 나서 가정을 버린 여인의 일화를 담고 있는 47분 가량의 영화. 자료원측은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정도가 20년 뒤의 영화 ‘자유부인’을 능가한다.”고 평가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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