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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환위기 뒤 심화된 불평등이 민주화 위협 사회·경제적 요인”

    “외환위기 뒤 심화된 불평등이 민주화 위협 사회·경제적 요인”

    불평등 문제만을 집중 연구하는 학회가 최근 탄생했다. 한국 학문사상 최초다. 이름부터 ‘불평등연구회’다. 한국 사회를 ‘불평등 사회’로 진단하고 학문적 전면 대응을 공표한 셈이다.‘선진사회’ ‘소득 2만달러 달성’ 같은 레토릭의 이면을 들추겠다는 ‘불편한’ 선언이다. 지난 7월 한국산업사회학회는 “신빈곤, 양극화, 소비자권리, 욕망의 구조 등 ‘반독재 스펙트럼’으로 포착되지 않는 의제들을 적극 끌어안자.”며 비판사회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비판사회학회는 이후 ‘비판의식의 재조직’을 위한 각종 소모임(사회운동 모임, 생태주의 모임, 생활세계와 문화모임, 전쟁과 평화모임, 현대복지국가 연구모임 등)을 준비해 왔고,24일 불평등연구회가 소모임 창립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경제·사회·복지·의료·교육 등 각 분야 연구자 20여명이 참여했다. 불평등연구회 회장은 신광영(53·비판사회학회 부회장)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맡았다. 연구회 발족을 주도한 그는 ‘학문적 유행을 타지 않고’ 국내 계급 및 불평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몇 안 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신 교수는 26일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불평등은 민주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말로 현 시기 불평등 문제의 핵심을 요약했다. ●“새로운 불평등 태동 기점은 구제금융사태” 연구회가 주목하는 ‘새로운 불평등’의 태동 기점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다. 연구회 창립 및 기념 심포지엄 개최일(11월24일)을 구제금융 공식요청(1997년 11월21일) 10주년이 되는 주간으로 정한 것도 이런 시각의 상징적 표현이다. 97년 이후 불평등은 산업사회에서 경험하던 불평등과 양상을 달리한다.‘선진국-후진국’ ‘부자-빈자’의 단순 이분법을 벗어난 지도 오래다.“국내 산업·인구구조, 기술, 노동시장, 가족관계 등 여러 차원의 변화들과 세계화라는 초국가적인 변화가 맞물리면서 불평등 심화 현상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신 교수는 설명한다. 그가 산발적인 개별연구를 넘어 좀더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불평등 연구를 도모하게 된 까닭이다. ●한국적 불평등 대안 체계화가 목표 연구회가 목표하는 것은 불평등의 ‘한국적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한국적 이론’의 체계화다. 신 교수는 “세계화가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추상적이고 이론적으로는 많이 논의했지만 우리 상황을 우리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는 부족했다.”면서 “불평등 연구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판단에 기초해야 하는 만큼 통계분석 등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 말했다. 24일 창립 심포지엄(‘민주화, 세계화와 불평등: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불평등에 접근하는 연구회의 문제의식를 잘 보여준다. 한국사회 불평등을 파헤치는 총 9편의 논문 발표방식은 세계화가 민주화(1주제: 민주화, 세계화와 불평등)와 한국사회의 구조변동(2주제: 불평등과 한국사회의 구조변동), 빈곤과 가족(3주제: 빈곤과 가족)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횡축으로 놓고, 교육과 계층이동(한준 연세대 교수 발표), 주택정책과 주거불평등(장세훈 동아대 교수), 여성노동과 소득불평등(김영미 중앙대 박사후 과정), 고용불안정과 복지악화(이성균 울산대 사회학과) 등을 종으로 배치하는 구도로 짜여 있다. 현 세계화가 민주화란 절대가치뿐 아니라 사회구조 틀거리에서부터 교육, 주거, 노동, 고용 등의 구체적 삶의 질까지 종횡으로 흔들며 불평등의 세부를 양산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신 교수는 “한국사회 불평등이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만큼, 불평등에 대응하는 연구 또한 전방위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사모님·사장님 불꽃 합주(合奏)

    사모님·사장님 불꽃 합주(合奏)

    3월 초순 어느날 부산 서부서 형사실에는 세련된 한 중년여인이 취조경찰관의 심문에 연방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군채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여인보다 한두살 나이가 적은듯한 중년의 남자가 모든것을 체념한양 자신들의 지난날을 되새기며 취조경찰관의 심문에 응하고 있었다. 이들의 머리위에 씌워진 죄의 굴레는 간통으로 누구나 손가락질하는 사건이었다. 40대의 허전함 메우려고 가게 차린게 불씨 될줄야 긴 인생에 한번쯤의 실수는 없으랴마는 이들의 실수에는 큰 사회적 책임이 따랐다. 자신의 죄를 짓씹으며 눈물짓는 강애련(姜愛戀·45·가명·서구 초장동)여인은 부산에서는 누구라하면 알 정도로 잘알려진 모 여학교 교장선생님의 사모님으로 남부러울것 없는 8남매의 어머니이자 아내. 이 여인과 같은 죄를 짓고 나란히 앉은 이진수(李鎭秀·43·가명·부산진구 당감동)씨는 탄탄한 회사의 상무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생의 원숙기에 접어들어 주위로 부터 믿을만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는 처지였다. 이들이 서로 만나기는 지난해 12월이었다. 이때 강여인은 중년여인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용돈도 벌겸 학교 맞은편에 조그만 문방구와 담배가게를 차려 놓고있었다. 매일매일 들어오는 잔돈푼의 수입과 담배사러 오는 남자들의 체취에서 야릇한 흥분을 느끼며 그전같지 않은 남편과의 잠자리의 쓸쓸함을 달래고 있었다. 남편과의 잠자리를 생각할때마다 강여인은 담배사러오는 손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며 긴 겨울밤을 원망했다. 그러든 어느날-이날은 몹시도 추운날이었다. 자주 담배를 사러오던 이웃 모「피아노」사의 상무인 이진수씨가「오버」깃을 세우며 담배를 사면서『몹시 춥군요』하고 말을 건네왔다. 강여인의 가슴은 어느날 보다 파르르 떨렸다. 날씨탓으로 돌리기에는 강여인의 갱년기 마지막 불꽃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강여인은 서슴없이 자기가 깔고앉아 있던 방석을 내밀며 두 사람이 마주앉으면 꽉 찰 점포안 좁은방으로 이씨를 끌어들였다. 조그만 화로를 사이에 둔 이들 40대 남녀는 스스럼없이 서로의 처지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야기도중 화로위에 얹은 손들이 서로 부딪칠때엔 이들은 서로가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가까와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8남매의 어머니 답잖게 새로운 세계에 정신잃어 이날 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강여인은 학교일에 매달려 매일처럼 출장을 가고 자기를 돌보지않는 남편을 원망했고 이씨는 경남도내 모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수업중에 고혈압으로 졸도, 지금은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있는 아내가 있어 가정생활은 극히 삭막한 처지라고 했다. 이들은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속에서 비슷한 처지임을 느꼈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이들의 숨결은 가빴지만 밝은 태양아래서는 그 이상 대담해질수 없었다. 그날 저녁 이씨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강여인의 욕망에 들뜬 끈덕진 눈동자를 의식하면서 추위를 달랜다는 핑계로 한잔 술을 걸쳤다. 술에 얼근히 취한 이씨는 용기를 북돋아 강여인의 담배가게문을 두드렸다. 가게를 막 치우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강여인은 반색을 하면서 이씨를 맞았다. 『밖이 추우니 안으로 들어와 좀 몸을 녹였다 가세요』 이심전심의 이들은 곧 어울렸다. 8남매의 어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팽팽한 강여인의 육체는 2년동안 공규를 지켜온 이씨를 사로잡기에 족했다. 서로 맡붙여 가게꾸미고 밤마다 아담과 이브처럼 물불을 가릴수 없게된 이들의 몸을 불태우기에는 담배가게 안방은 너무 작았다. 좀 더 넓은 방이 필요했다. 강여인은 남편인 교장선생님에게 떼를 썼다. 지금의 점포는 너무 적고 규모가 작아 수입이 적으니 아래쪽 새로 생긴 연쇄상가로 옮기겠다고 졸랐다. 강여인은 이곳에 잡화점을 차리고 점포안쪽에 새로운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밖에서는 여간해서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않을 정도로 어둠침침하게 꾸몄다. 남편과 아내를 속인 이들의 사련은 계속됐다. 하루 한번 안보면 잠이 안올 정도로 이들의 마음은 들떠 마치 사춘기를 새로 맞은 것 같이 불탔다. 이씨는 잡화점에 자주 들르는 것이 남의 눈에 띨 염려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점포도 강여인의 점포옆으로 아주 옮겨버리고 강여인의 방과 마주 붙도록 방을 꾸몄다. 간단한「노크」로 안보고도 서로의 의사가 통하도록 해놓았다. 이렇게 이들이 사련을 불태운지 2개월째 되던 어느날 강여인은 남편이 서울에 출장가고 없는 틈을 타 마음놓고 이씨와 정사를 벌였다. 거리낄 것 없는 이들은 발가벗은채 이들 정사가 점원에게 발견되고 있는줄도 까맣게 모르고 마음껏 서로를 즐겼다. 이 사실을 안 어린 점원은 여주인의 파렴치에 깜짝놀라 자기가 본 사실을 강여인의 남편에게 귀띔했다. 눈앞이 캄캄해진 남편은 은밀히 자기의 동생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의논했다. 형수의 부정을 전해들은 한교장의 동생은 기가 찼지만 뒷수습을 위해 나셨다. 한교장을 출장핑계로 서울로 보내고 자기는 형수인 강여인을 지켜봤다. 지난 3월1일 새벽 2시 강여인이 남편이 서울로 출장가고 없는 틈을 타 벌인 이씨와의 정사로 피곤한 몸을 쉬고 있을때 점포문이 벼락치듯 부숴져 나갔다. 시동생 한씨가 들이닥친것이다. 있을수는 있지만 없어야했던 교장사모님의 탈선은 이들 가족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남편인 교장은 얼굴이 뜨거워 사회적 활동을 그만 둘수 밖에 없었고, 학교에 다니던 8남매는 부정한 어머니를 둔 죄로 학교문을 들어설수 없게 된 것이다. [선데이서울 71년 3월 28일호 제4권 12호 통권 제 129호]
  • [27일 TV 하이라이트]

    ●아름다운 시절(KBS1 오전 7시50분) 향숙은 마산댁이 맞선볼 남자를 데리고 나와 있자 당황하고, 마산댁은 둘만 남겨놓고 급히 나가버린다. 어이없는 향숙은 곧 일어나려 하지만 남자의 배려로 저녁까지 함께 먹는다. 경호의 오토바이를 얻어타는 재미에 빠진 미자는 또 경호와 오토바이로 외출하려다 춘삼에게 걸려 혼쭐이 난다.   ●다큐 10(EBS 오후 9시50분) 패션이란 단순히 몸에 걸치는 옷의 개념을 넘어 개인의 경제적 지위는 물론 문화적 기호, 때로는 정치적 성향까지도 드러내는 행위다. 중세 암흑기는 엄격한 규율과 혹독한 가난이 휩쓸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꺾이지 않아 의복과 헤어스타일 등에도 두루 반영되었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5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도 벌써 17년. 옛 동독 지역에 대한 집중 투자와 개발 노력으로 동서간 경제력과 생활수준의 차이는 상당히 좁혀졌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는 독일 여성들은 동독을 떠나 서독의 대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도 좋아(MBC 오전 7시50분) 효은은 돌아가는 석우의 얼굴에 난 상처에 직접 약을 발라준다. 석우는 효은을 향한 좋은 감정이 자꾸만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장면을 효은을 만나러온 태주가 멀리서 목격한다. 한편 효은의 디자인대로 구두를 만들고 있던 공장에서 큰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 온다.   ●그 여자가 무서워(SBS 오후 7시20분) 비서실에서 영림은 어떻게 미국에서의 일을 경표가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하고, 미행하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백회장과 경표, 그리고 정진이 같이 있는 회장실로 들어간 영림은 셋이 나누는 대화에 관심을 가진다. 경표는 은애에게 정진이 영림의 행적을 조사했다며 관련 서류를 넘겼다는 말도 전한다.   ●클래식 오디세이(KBS2 밤 12시45분) 고봉인은 7세에 첼로를 시작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했다. 이후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음악 페스티벌,RNCM 맨체스터 국제 첼로페스티벌 등에 참가한 그는 하버드대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 선비정신 재조명 소설 잇따라

    선비정신 재조명 소설 잇따라

    “지조는 선비의 것이다. 장사꾼과 창녀에게 지조를 바랄 수 없듯, 선비와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장사꾼과 창녀에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조지훈,‘지조론’중에서) 청빈과 지조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본격 재조명하는 소설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올들어 최인호의 ‘유림’(전6권, 열림원 펴냄)과 한승원의 ‘추사’(전2권, 열림원 펴냄)에 이어 정찬주의 장편 ‘하늘의 도’(전3권, 뿔 펴냄)가 최근 출간됐다. 천민자본주의 공세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선비정신이 새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머니(돈), 머니해도 머니’라는 천박한 세태어가 회자되는 요즘, 무엇이 아쉬워 ‘퇴물’ 취급을 받아온 선비정신이 다시 주목받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일신의 안락을 좇아 변절을 밥 먹듯 하면서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풍조, 부정부패가 판치는 시대상황 때문일 것이다. 조선 선비의 표상 조광조(‘하늘의 도’)와 세도정치에 당당히 맞선 김정희(‘추사’), 겸양과 군자의 미덕을 가르쳐준 거유(巨儒) 이황(‘유림’)을 중심에 세운 소설들은 바로 이런 시대를 향해 준엄하게 꾸짖는다. ●개혁 선봉 조광조의 삶 그려 장편 ‘하늘의 도’는 군자에 도달하기 위해 간단없이 학문에 정진한 옛 선비들의 모습과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곧은 절개를 생생히 담아낸다.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은 조광조. 서른네살에 관직의 길로 들어선 그가 중종의 총애를 받으며 개혁정치를 펴다 끝내 중종의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굵직한 삶을 극적으로 그린다. “순정한 마음으로 개혁의 씨를 뿌렸으니 뒷사람들이 반드시 열매를 거둘 것이오.”(조광조,3권 325쪽) 후세 사가들은 조광조를 당파 싸움 속에서 무리하게 개혁정치를 추구하다 실패한 정치가라든가, 조선 유교 사상을 주도한 선비의 정신적 지주가 된 사상가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연산군을 폐위시킨 훈구파들의 권력 농단에 맞서 개혁의 선봉에 선 조광조는 선비의 표상으로 삼을 만하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풍을 이어받은 김종직·김굉필·정여창·김식·김정·박상·기준·양팽손 등 청류사림(淸流士林)들을 재조명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교훈 삼아 가르침 깨달아야 소설 ‘추사’는 비운의 생을 산 추사 김정희의 거대한 족적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다. 말년의 삶을 중심으로 세도정치와 당당히 맞선 참 선비, 천재 예술가, 북학파의 선구자, 양반과 서얼 자식을 둔 고뇌하는 아버지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소설은 세도정치에 항거하다 유배길에 오른 추사가 모든 욕망을 버리고,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에만 매진. 신필(神筆)의 경지에 이르는 삶을 가감없이 다룬다. ‘유림’은 2500년 유교 역사를 소설로 그려낸 한편의 대하 서사극. 유교의 비조 공자부터 완성자인 조선 퇴계에 이르는 유교의 본류를 시공을 뛰어넘어 21세기로 이끌어낸다. 소설에 등장하는 선비 가운데 특히 주목할 인물은 조선 유학을 완성한 퇴계 이황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 불세출의 선비에게서 가르침을 얻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한 줄기 빛을 찾고 싶다.”는 작가 최인호의 말은 곧 우리의 심정을 대변한 말이 아닐까.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최태환칼럼] 창(昌)의 반격

    [최태환칼럼] 창(昌)의 반격

    대선 격랑이 매섭다.‘창(이회창)’의 반격이 처연하다. 고군분투다. 그는 스스로 죄인이라 불렀다. 집중포화를 받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대업 망령을 떨쳐냈다. 거칠 것이 없다는 태도다. 검푸른 파도를 뚫는 노장의 표정이 오히려 편안하다. 마지막 희망을 찾고 싶었던 걸까. 덧칠된 세상의 손가락질을 떨치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했던 걸까. 그는 절해고도의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빠삐용을 떠올린다. 영화 주제가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가 귓전을 맴돈다. 출전 3번째의 그다. 이제야 바람과 같은 자유를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창의 돌출’은 그럼에도 재앙이다. 여야 주자들은 과거로의 회귀라며 무차별 공격했다. 언론도 가세했다. 정당정치, 민주정치의 후퇴라고 공박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가 창을 불러냈나?기성 정치권이 공범이다. 기존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반감, 불안감이 그를 불렀다. 자업자득이다. 집중포화후에도 그의 지지율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나아가 부동층은 더욱 늘고 있다. 창의 공간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앞선 후보들은 부끄러운 빛이 없다. 한나라당이 그의 결행을 유도했다. 이명박 후보의 정치력 부재, 뺄셈정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후보의 오만의 귀결이다. 그럼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창의 반란’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는 우여곡절끝에 후보 자리에 올랐다. 범여권의 대표주자다. 하지만 지지율이 아니었다. 반등을 예상했지만 제자리였다. 이회창씨가 출마를 선언하자 곧바로 지지율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아직도 1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가 20%를 넘는 지지율을 보였어도 창이 나설 수 있었을까. 정동영 후보나 범여권은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이회창 비난에 앞서 자성하고 부끄러워 해야 할 대목이다. 창은 이번 전투의 승패를 초월했는지 모른다.20%에 가까운 지지만으로도 자유를 다시 찾았다. 방황하던 20%에게 꿈을 준 것만으로도 승자가 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 그의 지지자들은 지금 모처럼만에 포만감을 맛보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의 세력화는 그 다음 문제다. 통합에 목을 매고 있는 범여권이 안쓰럽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은 통합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 원칙, 명분을 벗어던진 지 오래다. 지분 다툼의 악취가 진동한다. 정동영 후보는 또다시 리더십 시험에 들었다. 그는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강아지 손이라도 빌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력을 소진한 것일까. 초라한 지지율이 안타까울 정도다. 이명박·박근혜 갈등의 파고를 넘긴 한나라당에는 BBK가 기다리고 있다. 김경준 수사만 지켜보는 신세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도덕성에 심각한 회의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선거일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하지만 의혹 부풀리기, 네거티브 전략, 정책실종의 선거운동은 여전하다. 어지럽다. 정당의 정체성 상실, 후보들의 난투극이 정당정치, 책임정치 실종을 불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의 말을 뱉지 않는다.‘불안한 후보’,‘검증 안된 후보’의 심리가 이회창을 다시 불러냈다. 정치권의 창을 향한 손가락질은 자신에 대한 손가락질이나 다름없다. 정글의 대선판이다. 대선 이후가 더 걱정이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김수영 시인이 장원이오~”

    “김수영 시인이 장원이오~”

    어언 100년을 넘긴 우리의 현대시사에서 시인들은 과연 어떤 시구를 뇌리 깊은 곳에 감추고 있을까. 숱하게 명멸해간 시작품들 중에서 독자, 그것도 시인의 뇌리에 박힐 시구를 남기는 일은 의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시인들이 간직하는 시구는 시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세계’는 겨울호에서 현역 시인 109명이 뽑은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가려 뽑은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강은교 김규동 신달자 등 원로에서 정일근 이원 등 중견 시인까지 전 연령대를 망라한 시인들이 가슴에 감춰온 ‘최고의 시구’를 조사해 꾸민 기획이다. ●서정주·정지용·이상·백석 순 조사 결과 시인들의 시세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은 단연 김수영이었다.‘최고의 시구’로 언급된 횟수를 기준으로 본 평가이다. 이어 서정주와 정지용 이상 백석 윤동주 김종삼 김소월 한용운 이성복 등이 차례대로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김수영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구를 들어 그가 우리 시문학에 미친 영향을 가늠케 했다. 강은교는 “그에게 참 많이 빚지고 있다.”며 ‘꽃잎2’의 이 대목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苦惱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時間을 위해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시구라고 밝혔다. 고영민은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는 ‘그 방을 생각하며’의 한 대목을 꺼내놓았다. 그의 ‘사랑의 변주곡’ 중 일부인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는 시구는 나희덕이 아끼는 대목. 시단에 드리운 서정주의 그늘도 드넓었다. 문정희는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발레리의 시구와 함께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는 시구를 기억했고, 고두현은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는 ‘자화상’의 한 구절을 꺼내 놓았다. 정지용과 이상 역시 ‘빛나는 시인들’이었다. 오탁번은 정지용의 ‘홍역’ 중 ‘눈보라는 꿀벌 떼처럼 닝닝거리고 설레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홍역紅疫이 척촉처럼 난만하다’를 꼽았고, 길상호는 이상의 ‘거울’ 중에서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를 명시구로 들었다. ●김소월 ‘가는 길´등 다양 김소월의 작품에 빗댄 김광규의 고백은 진솔했다. 그는 “아직도 이런 시구를 쓰지 못한 부끄러움을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며 ‘가는 길’의 바로 이 대목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번’을 내보였고, 김규동은 “센티멘털·로맨티시즘의 시 풍토에서 지성을 건져올린 시작품”이라며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중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를 꼽았다. 시인의 연대기에 낙인(烙印) 같은 흔적으로 남은 시가 어찌 여기에 머물까. 정일근은 자신의 교단 경험을 회고하듯 김명인의 ‘동두천2’에서 ‘캄캄한 교실에서 끝까지 남아 바라보던 별 하나’를 들고는 이 시구가 연작시를 쓰는 동기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안도현은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한 구절을 거론하며,“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덧 중견의 반열에 들어선 이원은 오규원의 ‘버스정거장’ 중에서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시라고 하면 안 되나’를 들고는 “이 시구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고 자신의 습작기를 돌이켰다. 문학평론가인 충북대 정효구 교수는 이에 대해 “이런 ‘최고의 시구’가 주는 전율이 시인들의 생을 바꾸는 감전체험의 절정으로 엄습한 것은 이 땅의 근대 및 현대시의 정신이 요구한 지성과 부정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조경란 장편소설 ‘혀’

    바람이었다. 빽빽한, 틈 없는, 짙은 안개 같은, 인간 내면을 가만가만한 언어로 헤집어온 글에선 늘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글이 지나가며 만들어낸 여백으로 바람은 불어들었고, 마음 흔들려 생긴 여백 안에 독자들은 ‘조·경·란’(38)이란 소설가를 새겨 기억했다. 다시 바람이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남자의 새 애인. 사랑과 미움, 그리고 복수. 진부한 구도다. 진부한 구도로 설계한 장편소설에서 또 바람이 끓는다. 제목이 ‘혀’(문학동네 펴냄)다.12일 책 출간기념 낭독회(서울 홍대입구 ‘이리카페’)에 모인 독자들 앞에서 조경란은 거듭 물었다.“‘혀’란 제목이 엽기적인가요?” 소설 ‘혀’가 엽기적이진 않다. 지나간 사랑으로 처절했던 이들에게, 소설은 애써 봉합한 생채기를 지독하게 후벼댈 뿐이다. 그 가만가만한 언어가 이번엔 무척 따갑다. 가슴 속 엉킨 실타래를 차분히 풀어내는 ‘조경란 표’ 글, 그 잠잠함을 기대한 독자들은 ‘혀’를 통해 ‘새로운 조경란’을 만나고, 충격 받고, 가슴 먹먹해하며,‘혀’ 이후의 ‘또 다른 조경란’을 기다리게 됐다.‘사랑 후’를 집요하게 포착한 ‘혀’에선 이전보다 더 메마른 바람이 분다. 사용한 도화지는 진부하지만, 조경란이 그려낸 풍경화는 생경하다.‘음식=식욕=성욕=사랑’이란 등식의 물감을 칠한 까닭이다. 먼저 음식. 소설 ‘혀’는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2001, 문학과지성사) 이후 6년 만의 장편이다. 단편집 ‘국자 이야기’(2004, 문학동네)가 나온 지도 3년이 지났다. 그는 “글이 써지지 않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다. 슬럼프를 극복하려 가장 쓰고 싶은 글감을 생각했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아우성들을 누르고 음식 이야기가 솟아났다. 주인공은 요리사 지원이다. 지원의 입에서 언급되는 음식과 식재료는 웬만한 요리전문가 아니면 듣도 보도 못한 이름들이다. 티라미수, 래디시, 카망베르, 살라미, 카프레세, 락사, 타르트, 브레첼…. 지원은 감정도 음식으로 표현(“고독은 눈을 침침하게 하고 정신을 흐리는 바질” “슬픔은 먼 데까지 향이 퍼지는 까슬까슬한 오이”)한다. 어쩌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음식일 듯싶다. 다음 식욕과 성욕.“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지원이 자신을 떠나는 남자 석주에게 한 말이다. 지원에게 사랑은 따뜻한 음식 한 끼 해먹이는 것과 같다.“위로받고 치유받고 쾌락을 얻기 위한 행위란 점에서 음식을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음식을 감각하는 기관인 혀는 연인의 몸을 감각하는 성기다. 혀는 두 개의 욕망을 잇는 통로다.“내 혀의 돌기들”은 곧 “수천 개의 미각유두들”이다. 작가는 소설 내내 식욕과 성욕의 이미지를 중첩시킨다.“그의 잘 말린 자두처럼 쭈글쭈글한 음낭” “포도주에 절인 복숭아같이 둥글고 붉은 빛이 도는 그녀 엉덩이”…. 석주와 그의 새 애인 세연의 섹스 장면은 마치 질긴 고기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 고단한 저녁식사 같다. 마지막으로 사랑.“한 사람은 변하고 한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비참하고 항구적이며 잔인해진다.”고 조경란은 썼다. 석주에게 만들어주는 지원의 마지막 요리는 ‘송로버섯 곁들인 혀 요리’다. 지원은 요리재료 ‘싱싱한 암홍색 혀 150그램’을 세연의 입안에서 구했다. 오래 앓는 사랑은 독이다. 조경란이 요리한 ‘글의 성찬’에선 이빨을 쪼개는 굵은 모래 알갱이가 씹힌다. 사랑이 끝나고 또 바람이다. 몹시 분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강유정의 영화 in] 처녀왕 엘리자베스의 로맨스가 궁금하다면…

    [강유정의 영화 in] 처녀왕 엘리자베스의 로맨스가 궁금하다면…

    ‘골든 에이지’를 보기 전에 우선 한 가지 정보에 먼저 주목하자.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영국의 제작사 ‘워킹타이틀’사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워킹타이틀 사는 어떤 회사인가? ‘오만과 편견’‘노팅힐’‘윔블던’‘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21세기 로맨스의 원산지이자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워킹타이틀사이다. 워킹타이틀이라는 이름은 남녀 간의 연애에서 발생하는 심리를 품격있고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제작사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골든 에이지’ 역시 마찬가지다.700년 전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화려한 복색으로 치장한 로맨스 사극이다. 때는 158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즉위한 이후, 유럽의 정세가 구교와 신교 사이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던 시기이다. 당시 세계의 권력은 무적함대를 내세운 스페인 필리페 2세의 손에 넘어가 있는 듯 보이고 신교를 믿고 있는 영국은 가톨릭교를 믿는 스페인의 은밀한 적으로 인식된다. 언제라도 ‘성전’을 치르기 위해 엘리자베스를 노려보는 필리페 왕, 영국 내 잔존하고 있는 구교와 신교의 충돌 등의 문제가 이 젊은 여왕을 고뇌로 이끈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이 충돌 가운데 놓인 엘리자베스라기보다 자신의 여성성과 왕이라는 지위가 갖는 남성성을 두고 고민하는 인간 엘리자베스라는 사실이다. 밤새 쌓인 초겨울 첫눈처럼 달콤하고 순결한 엘리자베스, 그녀는 모든 남성들이 욕망하는 에로스의 대상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있어 여성성은 거래의 대상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환심’을 사려 하지만 ‘진심’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환심을 향한 공작은 여왕의 처녀성에도 예외가 아니다. 주변국과 왕실의 각료들은 여왕의 처녀성을 활용해 정치적 게임에서 이익을 얻어내고자 한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거래이자 외교의 수단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왕좌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침실의 그녀가 자주 대조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왕좌에 앉은 그녀는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하고 사람들을 호령하고 있지만 치장을 벗고 드러낸 맨몸은 짧은 머리에 가냘픈 체중을 드러낸다. 왕좌와 왕위라는 복색이 그녀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처녀왕이었던 엘리자베스의 로맨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도 아마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욕망, 그것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슴 속 싶은 곳에 놓인 생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여왕은 짜증내고 변덕부리다가 상상하고 기대한다. 케이트 블란쳇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히스테리컬한 처녀왕 엘리자베스는 역사적 위인이라기보다 흥미로운 캐릭터로 기억될 듯 싶다. 대규모 전투신을 주목하라고들 말하지만 시선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라일리 경의 키스 장면에 머문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것, 엘리자베스의 속깊은 사생활,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누릴 수 있을 오만한 사치가 아닐까? 영화평론가
  • 진짜같은 영상·인간같은 영웅 ‘베오울프’

    진짜같은 영상·인간같은 영웅 ‘베오울프’

    배우는 눈으로 말한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실사 애니메이션이라 해도 눈동자의 세심한 표정만은 살려낼 재간이 없다.‘베오울프’는 이 한계에 도전한다.6세기 덴마크 영웅의 대서사시를 스크린에 얹은 결과는 뭘까. 화두는 두 가지다.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몸매의 안젤리나 졸리는 실제일까 가짜일까. 괴물은 죽여도 제 마음 속 욕망은 못 죽이는 이는 영웅일까 인간일까. ●실제와 가짜 사이 늘 새로운 매체의 혁신을 갈구하는 할리우드.‘베오울프(Beowulf)’는 이 욕망을 충실하게 채운다.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로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선보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이번에는 눈과 눈꺼풀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잡아챘다. 안구의 움직임까지 구현하는 EOG(Electrooculogram·안구 움직임으로 유발된 생체전위의 변화)기술을 도입한 것. 이 새로운 시도가 3D 영상과 결합되면서 오감을 뒤흔드는 시각적 효과를 낸다. 괴물 그란델의 걸쭉한 침은 금세 얼굴에 달라붙을 기세고 찢기고 베인 몸에서 토해져 나오는 피는 옷에 철퍼덕 튀어 오른다. 경비행기를 탄 듯 기암절벽과 설산의 계곡을 굽어보는 기분은 말 그대로 ‘실감’이다. 무엇보다 ‘기적’은 물의 마녀, 안젤리나 졸리의 현현이다. 금빛 물감으로 칠한 나체로 깊은 바다 속에서 떠오르는 그는 도마뱀의 몸피를 땄다. 날렵한 꼬리가 해수면 위를 스르륵 오를 때마다 기대가 차오른다. 그러나 2년 전만 해도 그는 센서 200여개를 몸에 달고 360도로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허우적거렸다. 졸리 자신도 영화를 보고 “이렇게 실제처럼 보일 줄 몰랐다.”며 낯을 붉힐 정도로 실제와 가짜 사이는 절묘했다. 단신에 금발도 아닌 베오울프 역의 레이 윈스턴도 영상의 힘을 빌려 2m 장신의 금발 영웅이 됐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기적’은 늘 그렇듯 완벽하지만은 않다. 왕비 웰소가 슬픔으로 지그시 깨무는 입술이나 물의 마녀가 상대를 유혹하는 눈 깜박임은 중세그림처럼 종종 얼뜬다. ●영웅과 인간 사이 ‘베오울프’는 또 하나의 영웅을 세상에 내놨다. 괴물들이 득세하는 6세기 고대 덴마크. 흐로스가 왕(앤서니 홉킨스)의 연회장에는 밤마다 시체가 널린다. 베오울프는 살육의 주인공, 괴물 그란델을 처치하고 그의 어미 물의 마녀까지 해치워 왕위에 오른다. 부와 명예, 사랑까지 얻었지만 왕도 왕비도 미소보다 한숨에 그늘졌다. 이유는 이 물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수십년 전 왜 베오울프는 물의 마녀의 머리를 베어오지 않았을까. 여기서 완벽한 영웅과 나약한 인간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괴물을 척척 베어내는 것처럼 순간의 유혹과 영원의 욕망만은 베어내지 못한 영웅은 어느새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현란한 영상에서 반걸음 떼보면 이러한 ‘인간적인 영웅’은 최근 ‘인크레더블’이나 ‘스파이더맨’ 등에서처럼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왕비는 이제 그만 영웅의 짐은 벗으라지만 어쩌랴. 우리 현실 속에 없는 한 관객은 영화 속에서라도 슈퍼 히어로의 등장을 원하니.“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고 그의 노래는 영원히 불리리라.”는 마지막 대사처럼 영웅을 향한 찬가는 여전히 반복된다.113분.15세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하재봉의 영화읽기] 만덜레이

    치열한 실험정신을 잃지 않고 영화미학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가는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미국 3부작을 기획한 의도는, Pax Americana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정치 문화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역사를 영화적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계기는 911 테러였다.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미국의 오만함도 커지고 적대적인 시선도 늘어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오늘날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해부해 보고 싶어했다. 매우 정치적인 의도로 미국 3부작이 기획된 셈이다. 그 첫번째 시도가 <도그빌>이다. 그레이스라는 여자가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도망치듯 들어와 겪는 폭력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충격적인 영화 언어와 날카로운 실험정신으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들어냈다. 연극적 무대 양식과 영화적 실험기법이 충돌하면서 절묘한 하모니를 빚어내는 이 작품은, 이른바 구동독작가인 브레히트류의 서사극에서 영향을 받았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을 무너뜨리고 감정이입에 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동화효과가 아니라, 무대 위의 사건과 인물에 의문점을 갖고 관객들로 하여금 비판적 이성으로 분석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이화효과를 창안한 브레히트의 극작술과 연출방법은 현대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했었다. 가까스로 도그빌을 벗어난 그레이스가 도착한 곳이 미국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만덜레이>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미국 정치의 심장부를 소재로 한 <워싱턴>이다. 개들의 마을을 뜻하는 도그빌이나, 흑인 노예 농장을 소재로 한 만덜레이 등의 제목이나 소재에서도 드러나듯이,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역사가 일천한 미국의 천박한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청교도 정신으로 건설한 나라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잔혹한 폭력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라스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실제 공간이 아니라 마치 연극 작품처럼 무대 위의 셋트에서 촬영된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그것도 사실주의 양식의 무대가 아니라, 표현주의 스타일의 상징적이며 압축적 이미지를 담은 무대다. 따라서 한 마을이나 농장은 무대 위에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벽이나 울타리 등은 의미적으로는 설정되어 있지만 시각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문을 열고 닫는 행위를 마임으로 연기하면, 음향으로 가상의 벽이나 문이 존재하는 것을 알려준다.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는 바닥에 글자로 쓰여 있다. 카메라는 가끔 버즈 아이샷으로 공중 높이 올라가면서 마치 건축 설계도의 평면도처럼 관객들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도그빌을 떠나 남부 알래바마주의 한 오지 마을 만덜레이에 도착한 그레이스(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와 갱단 두목인 그녀의 아버지(윌리엄 데포우 분)는 폐지된지 70년이 넘은 노예제도가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농장주인 백인 마님은, 농장의 흑인 노예들에 관한 모든 비밀이 적힌 자신의 침대 밑 노트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에게 하고 숨진다. 그레이스는 흑인들에게 그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농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머무르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레이스를 비웃으며 갱단의 부하 몇 명에게 그레이스를 경호하도록 하고 떠난다. 흑인 노예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당황해 한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모르고 무질서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죽은 백인 마님 대신 농장에 질서가 집힐 때까지 그레이스에게 마님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그레이스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겨진 비밀노트를 본다. 그 속에는 모든 흑인 노예들이 7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자존심 강한 1등급부터, 아첨 잘하고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꾸며 생존해 나가는 카멜레온같은 7등급까지 상세하게 분류된 그 노트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레이스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일하고 목화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노력한다.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노예제도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오늘날의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강제적으로 끌고 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성장 불가능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그 속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 문제와 노예제도가 일차적 소재라면,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자유에 대한 것이다. 억압이 사라졌다고 저절로 자유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인가? 그들 중에는 오랫동안 몸에 익은 속박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강요된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로 선택한 속박에 길들여진 그들 곁에서 그레이스는 혼란을 느낀다. 또 그녀는 흑인 노예들의 벌거벗은 강인한 몸을 보면서 욕망을 느낀다. 흑백의 섹스는 미국 영화에서 오랫동안 금기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의 섹스는 문제될 것이 없다. 백인이 우월자이고 지배자였으니까. 그러나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섹스는 미국 영화 속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만약 그 부분이 내러티브 전개상 꼭 필요하다고 해도, 침대로 갔다가 다음 날 해가 뜨는 식으로 간단하게 묘사하는 게 전부였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흑인 인텔리로 등장해서 나스타샤 킨스키와 섹스를 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원 나잇 스탠드>는 그런 점에서 충격을 준 영화다. <만덜레이>에도 그레이스와 흑인 노예 티모시(이삭 드 번콜 분)의 사실적인 섹스씬이 등장한다. 흑인 남자들의 벗은 몸을 보고 자위를 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이어, 후반부에는 음부까지 드러낸 그레이스와 검은 성기까지 노출한 티모시의 격렬한 섹스씬이 삽입되어 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흑백의 터부를 라스폰 트리에 감독은 깨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섹스가 아니다. 자유와 속박의 문제다. 농장 노예들을 분석한 비밀노트도 사실은 농장 집사인 흑인 윌햄(대니 글로버 분)이 작성한 것이었고, 흑인들이 농장을 떠나지 않는 것도 속박에 의해사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자유의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까 봐 의도적으로 노예제도의 틀을 유지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그레이스는 만덜레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또 자존심 강한 1등급 먼시족 남자로 생각하고 이끌렸던 티모시는 사실은 기회주의적인 7등급 만시족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더구나 티모시는 목화로 수확한 마을의 공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해 버린다. 분노한 그레이스가 티모시를 결박해 놓고 채찍으로 후려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기회적이고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스뿐만이 아니다. 농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레이스를 마님 대용으로 이용한 흑인들의 대부 윌햄도 그렇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다른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속박의 경계, 인간의 본성에 대해 대담한 방식으로 접근한 라스폰 트리에의 용기와 실험정신은 <만덜레이>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영화 양식의 무대적 차용이라는 독특한 외형적 방식뿐만 아니라, 내적인 주제적 측면에서도 저울추의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위장된 휴머니즘을 신랄하게 파고 들어가는 감독의 예리한 연출력이 <만덜레이>를 보는 동안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니콜 키드만에 이어 그레이스 역을 맡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든 <빌리지>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신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론 하워드 감독으로서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 등을 만든 명장이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아버지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노력으로 주목받는 연기자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유로파>로 데뷔한 후, 병원을 소재로 한 장편 시리즈 <킹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 가수 비욕이 참여했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 등을 만들었던 문제 감독이다. 그는 인위적인 시선을 배제하고 자연광 등으로 순수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그마 선언을 주도했고, 이에 동조하는 젊은 영화감독들과 함께 새로운 영화운동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들고 찍기를 자주 사용하고 카메라와 편집 테크닉에도 능란한 그는, 깊이 있는 주제의식으로 항상 문제 영화를 만들어왔다. <만덜레이>는, 미학적으로는 브레히트의 서사적 방법론을 영화언어에 접목함으로써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는 힘을 높이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관객들의 비판정신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양조위의 진정한 ‘색계’(色界)는 배우 유가령

    양조위의 진정한 ‘색계’(色界)는 배우 유가령

    최근 한국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색,계’(色, 戒)의 주연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의 진정한 ‘색계’는 누구일까? 최근 중국에서는 량차오웨이의 연인으로 유명한 배우 류자링(劉嘉玲·42)의 사진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다. 40대 나이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날씬한 몸매와 섹시한 가슴라인으로 주목을 받은 것. 량차오웨이와 류자링은 ‘색,계’의 의미처럼 ‘욕망과 절제’로 80년대 후반부터10여 년의 연인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90년에 류자링이 괴한들에게 납치당해 강제로 알몸사진이 찍히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량차오웨이가 제작자들을 찾아다니며 재기를 도왔던 일은 중국 연예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결혼보다는 연인관계를 선호하는 류자링의 뜻에 따라 오랜 시간동안 연인으로만 지내왔던 두 사람은 영화 ‘색, 계’ 촬영이 한창일때 ‘만남이 너무 뜸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며 결별설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류자링이 지난 6월 한 시상식장에서 커플링을 끼고 참석해 “량차오웨이와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이같은 소문을 일축했다. 류자링은 ‘무간도2’(無間道2·2003) 및 량차오웨이와 함께 영화 ‘2046’(2004)’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163.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장님 안마사와 여관방의 유혹

    지난 2일 하오 2시. 춘천(春川)시 우두동 맹아학교 운동장에 100여명의 군중들이 몰려 들었다. 추운 날씨에도 한결같이 철잃은 「선·글라스」차림. 『축첩풍조 일소하고 알맞게 낳아 행복하게 기르자』는 별스런 구호를 채택한 이 모임은 사상 최초의 맹인 신풍운동 궐기대회였는데, 향락만을 위해 살았다는 그들의 생활습관을 살펴보면-. 10년전 집단 정착한 이후 자포자기로 방탕한 생활 ①구걸행각을 함으로써 우리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말자 ②우리도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참정권을 올바르게 행사하자 ③모든 힘을 밝은 사회발전에 기여,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자. 지난 2일 하오 2시 춘천시 우두동 맹아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맹인대회」의 신풍운동 행동강령이다. 이날 모인 장님들은 우두동에 집단정착한 맹인 40여가구와 시내 교동 산5의11 가구 가장들과 가족들. 서울에서 격려차 행차한 맹인VIP(귀빈)의 축사도 있었다. 이들은 10년전 춘천시당국의 배려로 이곳에 집단 정착한 이후 시에서 내주는 생활보호자 구호양곡을 타먹으며 지내오던 장님들. 이 가운데 10여명은 안마사 점장이로 만만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으나 낭비벽이 심해 깨진독에 물붓기식, 날이새면 언제나처럼 빈털터리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흙벽돌에 「루핑」을 얹은 연립식주택에 1가구가 방 한개씩을 차지하고 도덕율이고 윤리관이고는 모두 내팽개친채 본능에 의한 생존만을 만끽해오던 장님들. 『눈먼 병신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는 자포자기가 이들을 더욱 방탕한 생활로 이끌었다. 비바람 가려줄 움막에 헐벗지 않고 하루 밥 세끼만 먹으면 족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활신조. 게다가 또 일생을 밤에만 사니까(?) 느느니 자식들뿐. 재산은 모아 무엇하며 본능을 억제해가며 살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살아왔지만 정착한 이후 현재까지 자녀들의 장래가 큰 문젯거리로 「클로스·업」됐다. 『떠돌아 다닐때는 아이들을 낳아 끌고다니다 젖떨어지면 제각기 흩어지게 마련이었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정도 없이 우라질 씨나 많이 뿌리자는 생각으로 많이 낳았는데 이제부터는 가족계획을 꼭 실천해야겠어요』 현재 아들 셋, 딸 둘의 자녀들과 한방에서 살고있다는 김경조씨(49·가명)의 말이다. 눈뜬 소실 2,3명씩 두고 돈벌면 그자리서 써버려 또 지금까지는 식구가 늘어난다고 그만큼 생활이 쪼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수 대로 구호양곡이 나오니까 결국 누구나 제 먹을 복은 제가 타고 나오기 마련이라는 운명론적 생활관으로 되기 꼭 좋았다. 밤이면 춘천시내 여관 문전마다 장님안마사들의 피리소리가 처량하게 울려퍼진다. 그러다가 안마를 요구하는 손님방에 들어가 안마를 한다. 이들이 받는 보수는 5백원, 후한 사람은 2천원도 준다. 재수좋은 날은 하룻저녁 벌이가 2~3천원씩 된다. 물론 공치는 날도 많지만 이들은 이 돈을 집에 가져가는 날이 드물다. 시내에는 눈뜬 소실들이 2~3명씩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모아봐야 눈뜬 사람들 좋은일 시키는 것. 따라서 벌면 그자리에서 쓰게되고 쓸 곳은 여자밖에 더 있었겠냐는 것. 이들이 필요한 것은 안마하러 나들이할때 입을 옷만 반드르르하면 그만. 가구나 살림도구 같은것도 필요없다. 방안에는 몇년을 묵었는지 이불이 때와 어린이들의 오줌으로 빨갛게 찌든채 항상 방바닥을 덮고있다. 이 가운데 여자안마사가 4명. 이들이 겪는 시련은 남자들보다 몇배 크다. 남자손님들은 처음에는 여우처럼 달래다가 늑대로 변하고 사자가 되어 결국 요구를 안 들어주면 호통쳐 내쫓기 일쑤. 이럴때면 돈은 고사하고 엉겹결에 쫓겨나와 앞못보는 제설움에 한없이 울어버린다고. 그러나 남자들에게는 뜻밖의 「찬스」도 많다는 것. 『여자손님 방에 들어가면 은근히 유혹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때는 어쩔수없지 않겠어요』 이들 대부분이 지체높은 집 과부거나 바람기 많은 유부녀들이 후환없는 장님들을 찾아 안마를 핑계로 욕망을 채운다고 이모(51) 안마사는 귀띔. 이들의 집단마을에는 아직 어린 소경이 하나도 없다. 자식들은 모두가 눈을 뜬 똘똘한 어린이. 이 아이들 때문에 취할때가 되면 해마다 장님들과 동회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나이찬 어린이들을 취학시키려고 보면 입적안된 어린이들이 대부분. 동회직원이 추궁하면 『눈먼 놈이 모두 남의 손을 빌어야 하는데 귀찮게 무슨 호적이냐』고 오히려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세상의 불신임도 높지만 단결하여 공동축사 마련 『맘껏 향락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고 또 그것이 우리의 생할철학』이라는 정모장님(37)은 『우리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지만 어차피 투표를 해도 대리투표인데 대리인이 엉뚱한데 찍고 시키는대로 했다면 그만이지 별수있느냐』며 지금까지 속아만 살아왔기때문에 불신풍조가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고 개탄. 동회에서구호양곡지급에 필요한 도장을 맡겨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두 내외가 지팡이에 의지한채 저녁때면 안마손님을 찾아 여관행차를 하는 강명구(康明求·46)·이순자(李順子·26)부부는 앞으로 동료들을 설득, 공동축사를 만들어 닭, 돼지도 기르고 어린이들도 중학에 보내겠다고 부푼 꿈을 키우면서도 『옛날에도 눈감으면 코베간다고 했는데 요즘같은 세상에 감은 눈쯤 빼가기 예사아니겠느냐』면서 체념이 앞선다고. 그러나 『우리의 단결력은 대단합니다. 앞못보는 병신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지 뿔뿔이 헤어지면 더욱 멸시를 받지않겠어요』라고 말한다. 이들은 협회서 전화를 달기위해 전화청약을 했다. 이 전화가 개통되면 안마도 주문에 의해 나가게되고 좀더 생활도 규칙적일 것이라고 벌써부터 기대에 차있다. <춘천=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3월 21일호 제4권 11호 통권 제 128호]
  • 정권연장 욕망도 전염되나?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신흥개발도상국 정상들 간에 3선 연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브라질, 남아공 등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천연자원을 지렛대로 최근 수년간 이룩한 높은 경제성장과 대중적 인기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는 11일(현지시간) 이 같은 현상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막고 있다고 우려했다. 신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경우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자신이 장악한 의회를 활용해 집권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제한하는 헌법을 개정해 종신 대통령을 향한 힘찬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개헌안은 의회를 이미 통과했고 다음달 초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차베스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감안할 때 부결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10.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차베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달 초 59%로 나왔다. 콜롬비아의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도 3선 연임에 도전할 뜻을 내비쳤다. 집권당이 유력한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결속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8%였으며 우리베 대통령의 지지도는 현재 66%를 기록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3선 추진설이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국가 위상을 높이고 경제를 살려낸 공로로 룰라 대통령의 지지율은 절반을 웃돌고 경쟁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집권 노동자당(PT)내부에서는 ‘대안 부재론’을 들어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김원호 교수는 “3선 연임 시도는 새로운 경향은 아니다. 과거 페루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메넘 전 대통령이 3선 연임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면서 “세계 경제환경이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에 유리한 국면이 되면서 집권자들이 권력욕망을 지속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강유정의 영화in] 파라노이드 파크

    [강유정의 영화in] 파라노이드 파크

    오는 22일 관객과 만나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신작 ‘파라노이드 파크’는 ‘말라노체’,‘엘리펀트’에 이은 청소년 3부작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엘리펀트’를 가득 채웠던 노란색 은행 잎의 시각적 이미지가 스케이트 보드의 마찰음으로 바뀌었을 뿐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내면에 귀기울이는 소년이 등장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여기 바라는 것은 다만 스케이트 보드를 잘 타는 것뿐인 소년이 있다. 별거 중인 부모 밑의 알렉스에게 꿈도 미래도 모두 스케이트 보드에 달려 있다. 스케이트 보드를 잘 타, 아니 남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을 만큼 멋지게 타서 ‘파라노이드 파크’를 휘어잡는 것, 그것이 바로 알렉스의 꿈이다. 그런 그에게 다른 소망 혹은 욕망은 없다. 그의 하루 하루는 스케이트 보드에서 시작해 거기서 맺음된다. 문제는 스케이트 보드밖에 없는 이 소년에게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스케이트 보드 공원인 파라노이드 파크 주변을 맴돌던 알렉스는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제안한다.“기차를 타보고 싶지 않으냐고, 그것도 몰래.” 알렉스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대신 기차를 타기 위해 간다. 순간의 선택으로 알렉스의 삶은 달라진다. 그런데 사건이 점점 심각해진다. 기차를 탄다는 것이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는 것처럼 보편적 경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던 알렉스는 너무도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우발적으로 사고에 연루됐다는 편이 옳다. 기차를 타는 그를 저지하던 경비원을 밀친다는 것이 허리가 잘려 나가는 끔찍한 사고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번뿐인 인생은 우발적 사고에 관대하지 않다. 영화는 다시 찍을 수 있고 기억은 조작될 수 있지만 사고는 사고 그대로 남게 된다. 그것이 타인들에게는 묻혀질지언정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그 사실이 달라질 수는 없다. 영화는 내내 이 소년이 우연하지만 심각한 사고를 자신의 삶에 편입시키는 과정을 보여 준다.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소년은 이 전회적 사건을 두고 고민한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알렉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고백함으로써 그 우연한 사건의 폭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고백이 어른이나 성직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고백이었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자신이 썼던 기록을 불태우는 장면은 감독이 생각하는 성장의 의미를 짐작케 한다. 이렇게 알렉스는 자신의 삶에 침범한 우연성을 통제하며 그 우연에 인과관계를 주는 데 성공한다. 슬로 모션으로 재현된 알렉스의 샤워 장면은 감각으로 내면을 뒤집는 향연을 절감케 한다. 귓바퀴로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과 음악, 그리고 소년의 몸과 함께 고통은 감각이 되어 넘쳐난다. 구스 반 산트의 체온이 영화 깊숙이 배어들어 알렉스의 시선과 일치하는 순간이다.8㎜의 역동과 32㎜의 섬세함을 혼용해 찍어낸 크리스토퍼 도일의 유려한 화면들은 이런 심리를 극대화해 준다. 성장은 그렇게 멀미나는 이동이다. 영화평론가
  • [내 책을 말한다] 미적분 누가 먼저 발명했나

    2004년 여름 출판사에서 미적분학을 처음 도입한 수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좀 망설이며 승낙했다. 미적분학이 나오기까지의 수학사와 당대의 많은 뛰어난 수학자들을 과연 내가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설득에 넘어간 나는 책을 내는 데 필요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탐색을 해도 뉴턴과 라이프니츠 둘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럴 수가! 미적분학을 도입한 두 거인을 함께 다룬 책이 하나도 없다니! 놀라움과 아쉬움은 이내 용기로 바뀌었고, 드디어 그들의 이야기를 ‘수학자들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뉴턴과 라이프니츠 사이의 지적재산권 다툼을 다룬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 스스로가 둘 사이의 공정한 심판관이 되기 위해 둘 중 일방적으로 어느 한 편을 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둘 다 인류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위대한 업적을 쌓은 천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라이프니츠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철학·법률·외교 분야에서도 거인의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수학자로서 역사에 남은 두 사람의 업적 중 단연 우뚝한 것은 미적분의 발명이다. 훌륭한 이론과 사상이 탄생하기까지는 숱한 사연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미적분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미적분의 발명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영국을 대표하는 뉴턴과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라이프니츠는 우선권 논쟁을 벌였다. 우정과 존경으로 상대를 인정했던 두 천재는 점차 누가 먼저 미적분을 발명했는가를 두고 결투에 가까운 논쟁을 벌인다. 뉴턴의 겸손하기 그지없는 말처럼 이들 역시 “거인의 어깨에 서서” 자신들의 탁월한 이론을 세웠지만 정작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는 문제에 닥쳐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과 분노, 공명심을 어쩌지 못했다. 역사상 유례 없는 저작권 다툼이기도 한 이 싸움은 두 천재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뇌를 낳았을 뿐 아니라, 영국 수학계와 유럽 대륙 수학계의 결정적인 단절을 낳고 말았다. 호이겐스, 파티오, 베르누이 형제, 핼리 등 당대의 최고 수학자들이 총동원된 미적분을 둘러싼 우선권 논쟁은 소설처럼 극적으로 전개되었으며, 학문 연구와 업적 수립에 관해 많은 교훈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미적분학의 우선권 싸움에서 최종 승자는 누구였고,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 패자가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천재인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의 저작권을 둘러싼 유치한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서로 도우며 연구했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한국축구, 강력한 리더십의 감독 원한다

    마침내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이름이 거론됐다. 주제 무리뉴 첼시 전 감독에서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감독까지 외국인을 비롯해 박성화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나 김학범, 조광래 같은 국내파도 거론됐다. 축구협회는 이르면 다음 주중으로 최종 선택을 할 예정인데, 그동안 거론됐던 이들 외에도 제라르 울리에 전 리옹 감독과 마이클 매카시 울버햄프턴 감독, 밀란 마찰라 바레인 감독 등도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유럽 한복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감독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 보이는 이 시점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마지막 분수령이다. 신임 감독은 한국의 축구 문화가 아직 미성년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중도 하차한 코엘류 감독은 선수들이 ‘포백 수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본프레레 감독은 축구협회가 여론에 쉽게 휘둘리는 상황을 버티지 못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핌 베어벡 감독은 한국 축구의 고독한 산책자가 되고 말았다. 신임 감독은 자신이 ‘감독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으로 취업을 하게 된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는 다 자라지 않은 미성숙한 조건에서 온갖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그 때문에라도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가 선임될 필요가 있다. 독불장군을 뜻하는 게 아니다. 리더십은 다양하게 존재하거니와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대표팀이 운영되도록 강력한 지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감독이어야 한다. 원만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선수단 시스템과 전술에 있어서는 바윗장 같은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체질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실천해야 한다. 한국 선수들은 비체계적인 성장 과정 탓에 경기를 풀어 나가는 안목과 공간 파악 능력이 약하다. 하지만 뛰어난 승부 근성과 학습 능력을 갖고 있다. 새로운 축구에 대한 욕망도 강하다. 신임 감독에게는 완성된 선수들을 조율하는 것보다 원석을 다듬어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드는 창조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다시 꿈을 꾸자.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은 가시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성취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신임 감독은 합리적인 시스템 속에서 야심차게 자신의 철학을 관철한다. 가능성이 풍부한 젊은 선수들은 새로운 지평에 눈을 뜨게 되고 그 성과들이 자연스럽게 K리그의 자산으로 남는다. 바로 이러한 꿈을 위해 우리는 신임 감독을 박수로 환영할 일이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가축을 홀리는 핑크·무드 신종(新種)직업

    가축을 홀리는 핑크·무드 신종(新種)직업

    가축인공수정사 자격시험이라는 별스런 시험이 있다. 서울시가 4월3일에 치를 예정인 실기시험이 벌써 10회째. 가축들을 「섹스·무드」로 속여 잔뜩 기분을 돋구게 해놓고 정충을 도둑질(?)하는 계면쩍은 시험. 태초에 창조주 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축복해 줬는데 이젠 가축들로부터 그 축복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빼앗고 또 그걸 자격시험이라하여 「콘테스트」한다니 -. 자연출산보다 더 경제적…인공수정사 적극 양성케 5년전만 해도 가축의 인공수정이라면 점잖은 신사들이나 숙녀들이 입에 올리기 꺼려하는 해괴한 것으로 통했다. 사람이 가축의 국부를 「마사지」하거나 전기충격을 가하여 가축으로 하여금 성교상태로 빠뜨린 뒤 정충을 채집해서 수정하는 것이 바로 인공수정. 그 생소하던 분야가 이젠 「가축 번식학」이니 「가축 인공수정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하게 「학(學)」자를 달고 행세하게 됐다. 뿐만아니라 아주 축산법으로 인공수정사를 양성하고, 일정한 자격시험을 거쳐 자격을 얻게 하는등 적극적으로 「가축인공수정사」의 배출을 정부가 권장하게 됐다. 물론 가축에 대한 인공수정이 여러 측면에서 「자연출산」보다는 춸씬 경제적이고 우생학적으로 보아 압도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 이번 제10회 가축인공수정사 자격시험은 서울시가 관장하는 것으로, 필기시험은 4월2일, 실기시험은 4월3일에 실시한다. 시험과목은 ①축산 수의법규 ②가축 번식학 ③가축 위생학 ④가축인공수정학 및 실기시험. 응시 자격자는 1개월 이상의 가축인공수정학 강습을 수료한 사람으로 강습회수료증이나 교육필증을 제시해야 된다. 「실기시험」이란 것이 특히 자격시험의 관건을 쥐고 있다고 서울시 산업국 농정과에서는 귀띔. 말은 전기충격법에 의해 닭은 마사지로 정액채취 실기시험은 모두 모의물(模疑物)로 실시하게 된다. 냉동되어 있는 가축의 정충을 응시자에게 주어 그것을 희석화(稀釋化)하고 냉동하고 조작하는 실습. 물론 이쯤되면 응시자가 어느정도 인공수정의 실습을 해왔으며 능력이 있나를 알 수 있다고. 가축에 대한 인공수정은 대체로 소 말 닭 돼지등에 실시한다. 경제적인 가치가 있어야만 인공수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소는 종자가 좋은 수소앞에 암소를 끌어다 놓고 「핑크·무드」를 조성해준 뒤, 수소가 발정하여 올라타게 되면 「인공수정사」는 수놈이 암놈의 질속으로 삽입하기 직전, 그것을 질외로 오도(誤導)하여 손가락으로 성기 끝부분을 꼭 쥐어 준다. 워낙 소는 조루증이 있어 토끼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사정, 약 3백「그램」의 정액을 포함한 물을 발사한다. 암소가 없을 때는 「의빈대」(擬牝臺=허재비암놈)라는 모의 성기를 쓴다. 말하자면 허수아비암놈이다. 의빈대의 뒷부분에 암소가죽을 뒤집어 씌우는데 수소는 암소의 진짜 털로 착각하고 기분을 돋군다는 것. 의빈대 밑에는 암놈의 질과 비슷한, 길이 53.5㎝의 인공질이 있다. 수소는 그부분이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성교로 생각하고 정액을 발사한다. 말의 경우는 좀 난처하다. 말은 인간이상으로 정력이 좋아 적어도 30분 이상 한시간을 끌기 때문에 전기충격을 가하여 단시간내에 뽑아낸다. 닭은 전적으로 「마사지」법. 종자좋은 수탉을 골라 하복부 성기근처를 「마사지」해주면 1분도 못가 정액을 사정하는데 1회분이 병아리 30마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분량. 암탉에 엎드려 매일 달걀 1개씩 만들어 내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우량 품종으로 개량할 수 있다. 돼지는 소와 마찬가지로 의빈대를 사용하여 사정시킨다. 발정기가 된 종돈을 골라 암퇘지 모양의 의빈대를 넣어둔 교미돈사에 넣으면 말랑말랑한 가짜 질에 삽입하고 「꽥 꽥」소리까지 쳐가며 사정. 인공사정에 숙달(?)이 된 돼지는 의빈대만 보고도 전혀 주저하는 기미없이 자기신부로 알고 기분을 낸다고. 양은 질내 채취법을 쓴다. 자연 교미한 뒤 암놈의 질내에 주사기를 꽂아 그걸 빼내는 좀 잔인스런 방법이다. 개의 경우는 자연 교미가 주로 되지만 불가피하게 인공사정을 시키는 수가 있는데 「전기충격법」을 사용한다. 개도 말에 못지않게 장시간을 필요로하는 동물이어서 전기충격이 아니고선 인간이 지쳐 나가 자빠지기 때문. 냉동 저장된 정액으로 억지 임신시켜 이렇게 동물에 따라 갖가지 방법을 써 인공으로 정액을 채취하면 분비물에서 정액을 분리한다. 사출된 분비물이 전부 정액만으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 정액을 보호하기 위한 분비물이 사출되는데 이것을 분류하여 냉동 저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채취한 정액은 소의 경우 질 개구기(開口器)나 유리통 같은 것으로 질부분을 열고 1~2㏄정도의 정액을 넣는다. 동물에 따라서 손으로 외음부를 젖히고 넣는 수도있고, 대부분 유리통으로 넣어 「억지임신」을 시킨다. 현재 이러한 훈련과 실습, 자격시험을 거쳐 인공수정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서울시에서만 3백여명. 주로 가축병원 수의사가 취득하는 경우가 많고, 오로지 인공수정 자격만을 취득한 사람은 국가기관에 취직하거나 인공수정만을 전문으로 맡아 개업하기도 한다. 자격시험은 물론 서울시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전국 시·도 농정과에서 실시한다. 이렇게 인공수정 자격시험을 거쳐 수정사가 된 사람이 전국적으로 7백여명쯤 될거라는 서울시의 얘기. 『가축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인간의 동물이죠. 인간의 경제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정서적인 동물이라 생각하면 그 짓을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좀 안된 생각도 들기는 해요. 수놈들이야 가짜건 진짜건 기분을 누릴 수는 있는데 암놈은 먹고 자고 낳고하는 것밖에 못하잖아요?』서울시의 한 인공수정 담당자의 동정섞인 친동물적 발언.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3월 14일호 제4권 10호 통권 제 127호]
  • 정조의 개혁의지와 권력욕 재조명

    정조의 개혁의지와 권력욕 재조명

    ‘왕과 나’,‘태왕사신기’ 등 사극이 뒤덮은 안방극장에 케이블TV가 가세했다. 영화전문 케이블 채널 CGV는 17일부터 자체 제작한 퓨전사극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을 방송한다. 오세영의 소설 ‘원행’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정조가 자신의 개혁 의지를 알리려고 떠난 8일 동안의 화성원행(왕이 궁궐 밖으로 길을 떠나는 것)기간에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정조 역엔 중견탤런트 김상중, 정약용으로 박정철, 혜경궁 홍씨로 정애리가 출연하며,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박종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5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김상중은 “이 작품은 정조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8일 동안 일어나는 사건으로 정조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다.”면서 “왕권강화와 군제개편 등 군왕의 모습은 물론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혜경궁 홍씨와의 갈등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정조의 모습을 밀도 있게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정애리는 “그동안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 등에서 어질고 참한 여인으로 그려졌는데, 또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하는 박정철은 “이 작품을 준비하며 정약용에 대해 살펴 보니 정조와는 불가분의 존재일 뿐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을 포함해 여러가지 면에서 완벽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꼈고, 여기에 역점을 두어 연기했다.”고 말했다.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영원한 제국´을 연출하기도 했던 박종원 감독은 “이번에는 왕가의 비극 속에 복수심과 한을 갖고 있는 정조의 감춰진 욕망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아무래도 케이블 TV가 지상파보다 표현이 자유로운 만큼 인물들이 갖고 있는 이중성을 이끌어 내고자 애썼다.”고 설명했다. 최근 MBC 수목드라마 ‘이산’,KBS 퓨전사극 ‘한성별곡-정’을 비롯해 소설, 뮤지컬 등 정조의 리더십과 인간적인 면모를 다룬 작품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 드라마가 얼마나 차별화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길섶에서] 色 그리고 空/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조각가 박헌열은 난해하다. 그로테스크하다.‘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화두로 가진 최근 조각전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의식의 관념을 뒤틀어 표현했다. 작가는 육신을 가둔 미망의 영혼을 그려내려 애썼다. 욕정이나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고뇌하는 육신의 형상으로 표현했다.2,3명의 나신이 붙어있고, 머리도 여럿이다. 구상속의 비구상이다. 매끈한 브론즈가 불편함을 더한다. 섹스는 증오와 사랑, 분노의 표출이라고 했다. 얼마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색, 계(色,戒)’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타이완출신의 미국 영화감독 이안의 얘기다. 한국을 찾았다. 그는 “극도로 억눌린 감정은 마지막에 육체로 표출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엔 증폭된 심연의 갈등과 고뇌가 뒤엉켜 있다. 어느 탤런트 부부의 간통 공방이 화제였다. 부인은 11년 결혼 생활에 섹스는 10여차례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정상의 남성이라고 반박한다. 민망하다. 고뇌하는 영혼을 그린 박헌열 조각을 이들에게 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영혜.“남편이 고르고 고른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 영혜는 밤마다 꿈을 꿨고, 한 얼굴을 봤다. 피투성이일 때도 있었고, 썩어 문드러진 시체 같기도 했다. 물컹한 날고기를 씹는 이빨 감촉이 생생했다. 아버지가 죽인 개 흰둥이의 희번덕이는 눈이 선명했다. 영혜는 고기 먹기를 거부했다.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고기냄새가 난다며 남편의 몸을 멀리했다. 빠르게 살이 빠졌고, 아프게 말을 잃었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아버지에게 저항하며, 영혜는 손목을 긋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영혜는 동물 아닌 식물로 살고 싶었다. 햇빛과 물로만 견디고 싶었다. 영혜는 나무가 되려 했다. 그렁그렁 눈물 맺힌 언어로 말하는 소설가, 한강(38)은 10년 전 나무가 되고 싶어 결국 나무로 화분에 심긴 여자 이야기(‘내 여자의 열매’)를 썼다. 그 여자가 마음에 맺혀 7년 뒤 연작소설로 되살려냈다. 한강은 여자에 관한 세 편의 중편(‘채식주의자’ 2004,‘몽고반점’ 2004,‘나무불꽃’ 2005)을 발표했고, 최근 소설을 묶어 늦은 책 ‘채식주의자’(창비)를 펴냈다. ●‘기름진 폭력’에 대항하는 담백한 생명뿌리 여자 영혜는 식물 같은 마음을 지녔다.‘식육’(食肉)의 잔인함은 영혜의 여린 줄기에 생채기를 냈다. 줄기는 딱딱한 등걸로 마르지 못했고, 생채기는 옹이로 굳지 못해 늘 아팠다.‘고기를 먹어야 정상인 세계’는 먹힌 목숨들이 영혜의 명치에 끈질기게 달라붙게 했다. 한강은 ‘왜 정상(正常)은 동물성이어야 하는가.’를 물으려 영혜의 ‘식물적 비정상’을 극한으로 몰아갔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초상화이자, 영혜와 함께 우는 작가의 속울음이며, 영혜가 견디지 못한 세상 밑바닥에 대한 폭로다. 연작 두 편째 중편제목이자 영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그 푸릇푸릇한 ‘식물성 낙인’은 작가가 파악하는 세상의 시원이며 근원이다.‘기름진 폭력’에 반대되는 ‘담백한 생명의 뿌리’다.‘고기=육식=동물성=남성성=폭력=파괴’에 대비되는 ‘채소=채식=식물성=여성성=비폭력=구원’의 정점이다. 육식은 욕망이고, 욕망은 폭력의 원천이며, 폭력은 ‘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의 에너지원이다. 한강은 영혜를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그래서 욕망과 폭력의 대상이 되고, 영혼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렸다. 한강은 나무의 식물성을 지극한 여성성에 겹쳐 투사한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아 속박 받지 않는 영혜의 가슴은 작가가 소설에 설치한 또 하나의 몽고반점이다. 영혜는 말한다.“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나는 괜찮아(‘채식주의자’ 중에서).” 영혜의 바람과 달리 영혜는 괜찮지 않았고, 영혜의 젖가슴은 자꾸만 여위어 찌르듯 날카로워졌다. 자신을 온전히 보전할 수 없는 식물성이 처한 현실이다. ●동물적 잔인함에 맞서는 ‘퇴행적 진화’ 정신병원 복도 끝에서 영혜가 물구나무 서는 행위도 상징적이다. 땅을 짚은 손에서 뿌리가 돋아 흙을 파고들거라 영혜는 믿는다.‘동물 영혜’가 감행하는 식물로의 ‘퇴행적 진화’는 현 세계에서 ‘보편’을 획득한 ‘고기=동물성=남성성’과 싸우는 한강의 작가의식이다. ‘나무’가 된 영혜가 피우는 꽃은 ‘불꽃’이다. 불꽃은 아름답지만 자기파괴적이다.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영혜는 자해를 통해 자신의 식물됨을 지키려 한다. 현실에 뿌리박고 하루를 살아내는 식물은 내상이 깊다. 영혜가 다시 말한다.“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나무불꽃’ 중에서).” 세상을 떠받치는 건 동물성의 잔인함이 아니다, 생명을 지탱하는 건 식물성의 싱그러움이다, 물구나무선 영혜가 새빨갛게 피 몰린 얼굴로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젊어서 죽은 가수 김광석은 “한결같이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나무’)를 노래했다.‘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 영혜는 정신병원에서 비를 맞았다. 땅속으로 녹아들어가 다시 거꾸로 돋아나려고,‘나무 영혜’는 비를 맞으며 오늘도 그렇게 서 있다. 아프고 강렬하게.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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