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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음, 이상원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 낡은 일상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영감의 원천은 ‘놀이’. 놀이를 통한 창조과정을 예술, 철학, 종교 등 다방면을 넘나들며 탐구했다.1만 2000원.●미친 별 아래 집(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미래인 펴냄) 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동물원장 부부가 레지스탕스 활동가와 유대인들을 숨겨준 실화를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역사 논픽션.1만 5000원.●빌더버그 클럽(다니엘 에스툴린 지음, 김수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서구사회를 움직이는 엘리트 100여명의 비밀모임 ‘빌더버그 클럽’의 실체를 엿보고, 그들이 어떻게 대중을 전체주의에 현혹되게 만드는 지 음모를 짚었다.1만 5000원.●버리는 기술(다쓰미 나기사 지음, 김대환 옮김, 이레 펴냄) 물건을 못 버리는 습벽이 있는 사람에게 유용할 책. 못 버리고 쌓아두는 심리에서부터 어떻게, 얼마나, 언제, 누가 버리면 좋은지 ‘버림의 테크닉’을 소개.1만 1000원.●네박자, 둥지 그리고 봉선화 연정(김동찬 지음, 진한M&B 펴냄) 수많은 히트곡을 띄운 작사가 김동찬이 한국대중가요계를 풍미한 트롯가요 500여곡의 가사를 정리, 의미를 돌아봤다.‘뽕짝’가사 뒤의 숨겨진 얘기도 흥미롭다.1만 4000원.●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안철수연구소 사람들 지음, 김영사 펴냄) 회사 내부 구성원들이 조직변화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과 긍지, 조직생활에서 얻은 교훈 등에 대해 쓴 글 모음. 글로벌 통합 보안 기업으로 성장한 안철수연구소의 실체를 엿본다.1만 3000원.●행복의 역사(대린 맥마흔 지음, 윤인숙 옮김, 살림 펴냄)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쾌락과 고통을 불러왔는지 고찰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행복의 상징도 다양했다.3만원.●독도 라이더가 간다(김영빈 지음, 샘터 펴냄) 독도사랑이 지극한 4명의 20대 젊은이들이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촌을 돌며 ‘독도는 한국땅’임을 ‘홍보’한 여정을 기록했다. 지은이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생.1만 2000원.●허허실실 조기유학(조재우 지음, 한울 펴냄) 영어광풍 시대에 조기유학의 장밋빛 미래만 상상하는 학부모들에게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다고 제언한다. 조기유학의 ‘허’와 ‘실’에 관한 모든 것.1만 4000원.●거꾸로 가는 물고기(진춰다오 지음, 허유영 옮김, 신원 펴냄) 남들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인터넷의 힘을 빌리되, 우뇌를 이용할 것. 유명인사들의 역발상 사례를 통해 성공 지름길을 귀띔.9500원.●인플루언서 마케팅(혼다 데쓰야 지음, 정선우 옮김, 경영정신 펴냄) ‘인플루언서(influencer)’란 웹2.0 시대에 온·오프라인에서 막강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일본에서 성공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사례들을 모았다.1만원.
  • [책꽂이]

    ●처세술 개론(최인호 지음, 푸르메 펴냄) 등단 이후 천재적 작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최인호의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 제17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타인의 방’‘처세술 개론’,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깊고 푸른 밤’ 등 모두 7편의 작품을 실었다. 다양한 문학적 모색을 통해 현대인들의 고통과 불안을 치유하는 ‘최인호표 글쓰기’를 실감할 수 있다.1만 500원.●벚꽃나무 아래(김향숙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예리한 작가의식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작가가 ‘서서 잠드는 아이들’ 이후 8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욕망과 부조리의 삶을 살아가며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또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작가는 갈등과 반목 속에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화해의 논리를 꾸준히 개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고 있다.9000원.●녹두장군(송기숙 지음, 시대의 창 펴냄) 부패한 봉건왕조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모아 갑오농민전쟁을 주도했던 혁명가 전봉준의 삶을 조명한 소설.14년에 걸친 집필 끝에 갑오농민전쟁 100주년을 맞은 1994년 전12권으로 완간한 뒤 절판됐던 것을 이번에 재출간했다. 첫 출간되던 해에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구수한 호남 사투리와 아름다운 호남의 산하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각권 1만 800원.●제국의 뒷길을 걷다(김인숙 지음, 문학동네 펴냄) ‘김인숙의 북경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가 김인숙씨의 첫 산문집.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베이징 곳곳을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작가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작가는 베이징 곳곳에 산재한 제국의 흔적 속에서 사라진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1만 2000원.
  • [깔깔깔]

    ●한국 직장인들의 경쟁력 한국의 직장인들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가장 뛰어나다는데…. 예리한 상황판단력-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상사 눈치 살피기로 발달된 주변 상황 판단력. 고도의 인내력-마감에 쫓기며 이틀이 멀다 하고 철야 또는 음주가무로 날밤을 새우고도, 다음날 어김없이 출근시간을 지키는 고도의 인내력과 강인한 체력. 잡초같은 생명력-어제도 오늘도 상사로부터 나가 죽어라, 사표 쓰라는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내일이면 좋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꿋꿋이 살아남는 생존 욕망.●해군과 공군 해군으로 근무한 영철이는 수영을 전혀 못하는 맥주병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놀렸다. “야, 넌 해군인데 수영도 못하냐?너 해군출신 맞냐?” 그러자 영철이가 정색을 하며 한마디 했다. “그럼 넌 공군출신인데 날 수 있냐?”
  • [내 책을 말한다] 미국의 욕망이 부른 불타는 지옥

    아시아에 천착하겠노라 밝힌 지 몇 년이 흘렀다.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친구가 있었다.“거기도 아시아야?” 거기도 아시아다. 유럽제국주의의 식민지 역사로 점철된 아시아는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이념적인 공간이었다. 극동은 왜 극동이고 남아시아가 동남아시아의 북쪽에 붙어 있는 사정을 이해하면 1차 대전 이후 뒤늦게 식민의 역사에 휩싸인 중동이 왜 아시아인가를 알 수 있다. 바로 그 중동의 팔레스타인 서안.4월의 요르단 계곡의 구릉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올리브나무의 가지와 잎새들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참이었고 보랏빛 꽃망울을 터뜨린 호르페시(엉컹퀴)와 샛노란 들국의 무리들이 들판을 수놓으며 싱그러운 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렸다. 평화로 충만한 그 땅이 인간들에게는 연옥도 아닌 말 그대로 불타는 지옥이었다. 지중해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텔아비브의 해변에는 패러글라이더가 갈매기와 함께 날고 있었지만 가자의 바다에서는 짭조름한 대신 피 냄새를 담은 바람이 불어왔다. 요르단과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는 60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난민 1세대들이 비탄의 한숨 속에 숨을 거두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로켓포의 섬광 아래 울부짖고 있었다. 이 책은 그 지옥, 미국의 중동 패권이라는 이름의 사막의 기름에 대한 비역한 욕망이 짓밟은 땅에 대한 70일간의 기록이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이제는 그저 국제뉴스의 일상으로 전락해 버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시작한 언저리에서 시작해, 인종감옥인 반투스탄으로 전락해 버린 서안을 거쳐 왕정독재의 요르단과 폭탄이 터지는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마지막으로 기록을 마칠 때까지 그 어디에서도 실낱의 희망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내게 남은 것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미래를 향한 낙관적 희망을 수시로 희미하게 만들며 눈앞에서 나를 조롱하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전쟁과 빈곤, 차별과 공포, 절망과 좌절 그 모든 것들이 일체의 희망을 경멸하고 미래를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옥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가 건너왔고, 건너고 있으며, 건너야 할 사막이었다. 책의 말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휘청거릴지언정, 팔레스타인에서 요르단에서 레바논에서 그리고 시리아와 이스라엘에서 아시아와 세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기록한 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였다. 창비 펴냄. 소설가 유재현
  •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감독은 그라운드 지휘자

    이 칼럼에서 한두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음악학자 어니스트 뉴먼은 ‘지휘자 없이도 관현악 연주는 가능한가.’란 질문을 던지면서 ‘물론 가능하지만, 그것이 과연 음악일까?’라고 되물었다. 사실 지휘자 없이도 관현악 연주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저 소리일 뿐, 수미일관한 해석과 철학과 미학이 관철된 음악이 될 수는 없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감독 없이도 축구는 가능하다. 때때로 감독이 경기 중간에 퇴장당하거나 출장정지 처분으로 벤치에 앉지 못했지만 더러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어 감독에게 승리를 안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수미일관한 전술이나 축구 철학이 담긴 것은 아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진행될 때, 감독은 고함을 지르거나 아니면 팔짱을 끼고 있을 수밖에 없다. 감독이 경기의 모든 요소에 세세히 개입할 수 있는 야구나 배구와 달리 축구는 감독의 비중이 한없이 작아만 보인다. 그런데 이 모든 말은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내린 유로2008이 증명했다. 지네딘 지단이나 루이스 피구 같은 거목들이 은퇴했지만 여전히 카를레스 푸욜(스페인)이나 미하엘 발라크(독일)가 건재했던 이번 대회에서 축구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은 대리자로 감독을 지목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는 스포츠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페인의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이 보여준 세밀한 지도 방침은 결국 기본전술이나 유기적인 움직임, 세트피스나 선수 교체 등에 감독이 개입함으로써 전체적인 틀이 완성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번 ‘4강신화’를 이룩한 러시아의 거스 히딩크 감독 역시 조별리그에서는 나사가 풀린 듯 느슨하고 맥빠진 팀을 단단하게 조련해 막강 화력의 네덜란드를 큰 점수 차로 물리쳤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감독들이 지대한 책임과 권한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일찌감치 라울 곤살레스를 탈락시켰다. 왜?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다. 젊은 선수들의 열정과 욕망을 마음껏 풀어헤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네덜란드의 마르코 반 바스텐이나 독일의 요하임 뢰브 감독은 수시로 노장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다. 왜? 권력 분점을 위해서? 아니다. 의사소통 없는 팀은 허수아비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얘기가 자주 들려온다. 아마도 3차예선 통과 과정이 감독이나 선수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런 때 한국축구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 위계가 흔들리면 선수들의 서열에 파열음이 난다. 오합지졸이 되는 것이다. 경기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경기장 바깥에선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 절대적 권한을 오직 팀 전체와 선수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한 위계는 필요하지만 의사소통 없는 상하관계는 쉽게 부러지기 쉬운 지휘봉이 된다. 유로2008을 지켜보고 돌아온 허정무 감독의 어깨가 그래서 더욱 무거워지는 것이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시장 지상주의 ‘맨큐 경제학’에 메스

    시장 지상주의 ‘맨큐 경제학’에 메스

    ‘맨큐의 경제학’은 대학생들로부터 경제학원론 교과서의 ‘절대지존’으로 추앙받는다. 쉽고 간결하게 쓰였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그레고리 맨큐는 어려운 경제이론을 현실 속 경제현상과 신문기사, 만화와 퀴즈까지 동원해 쉽게 풀어냄으로써 경제학원론 교과서 시장을 평정했다. 국내에서도 1999년 교보문고가 번역·출간한 이래 4판을 찍었다. 출판사 관계자에 따르면 번역서는 50%, 원서의 시장점유율은 90%에 이른다. 외고·특목고에서 채택한 경제학원론 원서는 거의 모두가 맨큐의 책이다. 한때 각광받던 조순, 정운찬, 이준구, 안국신 등 국내 경제학자들의 교과서는 ‘맨큐의 파고’에 떠밀려 변방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맨큐 제국주의’란 말까지 나온다.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 대변… 대학 교과서의 ‘지존´ 국내 경제학자들이 ‘맨큐의 경제학’을 해부대 위에 올린다. 한국사회경제학회(한사경)가 4일부터 이틀간 전북 무주군 무주리조트에서 개최하는 2008 여름학술대회를 통해서다.‘경제학원론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비판과 대안’이란 주제를 택했다. 학회의 메스가 향하는 지점은 맨큐의 책을 관통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시장과 국가를 적대적 관계로 파악한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중심적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신고전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신자유주의가 태동했고,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정치적으로 차용하면서 ‘작은 정부론’이 유행이다. ‘맨큐의 경제학’은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을 대변한다. 엄밀히 말해 맨큐는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신케인스주의 경제학파에 속하지만, 그의 시각은 신케인스주의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같은 학파의 일원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급격한 자본시장 개방을 비판해온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비교해도 차이가 있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맨큐는 부시 1기 내각에서 스티글리츠와 동일한 직책을 맡았으나 스티글리츠와는 달리 시장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책을 썼다.”고 지적한다. 비주류경제학을 전공한 한사경 연구자들이 신고전주의 주류경제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이유는 시장의 한계상황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학만으론 사회경제적인 불평등 심화, 공공성 와해와 같은 당면한 경제문제의 해법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10여명의 학자들이 모여 논의를 시작했고, 올초부터 대학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박종현(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한사경 연구위원장은 “‘맨큐의 경제학’이 구매·판매·생산·소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가를 이론의 현실정합성을 중심으로 평가했다.”면서 “학자들이 집단적으로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검토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학자 10여명 참여… 10대 원칙 등 꼼꼼히 해부 ‘맨큐의 경제학’ 분석은 홍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끌고 있다. 홍 교수는 ‘맨큐의 10가지 원칙:이해와 비판’이란 글에서 맨큐가 강조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10대 원칙을 꼼꼼히 해체한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수요 공급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결정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에 대해 홍 교수는 현실에서 개인의 선택은 사회구조에 지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반박한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대학이 결정되는 현상이 대표적 예다. 사적소유의 확대가 생태계 보존에 효과적이란 주장에도 홍 교수는 이의를 제기한다. 예컨대 맨큐는 사유재산인 소는 멸종과 무관한 반면 야생 상태의 코끼리는 늘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홍 교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인간 욕망이 사적소유란 방식을 통해 무한히 팽창함으로써 자연과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김영용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거래비용, 고용계약, 자본주의적 착취 신고전파 노동 경제학 비판’이란 글에서 신고전파 노동경제학을 인간행위의 합리성과 정보의 완전함이 완벽하게 전제될 때만 성립하는 이론으로 파악한다. 정보가 불완전하기 일쑤고 정부의 재산권 보호가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에서는 성립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사경의 궁극적 목표는 효율 지상주의가 아닌 ‘더불어 살기 위한 경제학’의 시각을 담아내는 대안 경제학원론을 편찬하는 것이다.‘맨큐의 경제학’ 분석은 그 시작이다.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맨큐를 분석한 책부터 출간한다는 방침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인간의 본질 파헤치는 문화여행

    [내 책을 말한다]인간의 본질 파헤치는 문화여행

    겨울이 끝나고 새 봄이 시작될 무렵 각종 매체에서 우리의 눈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다. 유럽과 남미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카니발이 그것이다. 그 요란하고 괴기적인 변장과 마스크에 푹 빠져있노라면 ‘왜?’라는 의구심이 든다. 왜 저런 변장을 하고 저런 춤을 출까? 그저 단순한 놀이일까. 아니면 무슨 심오한 상징적인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장치로 역사적 접근 만큼 유용한 것은 없다. 오늘날 카니발 하면 서구의 유희적이고 상업적인 문화를 떠올리지만 사실 거기엔 오랜 기원이 있다. 카니발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태초에 인간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겨울이 한없이 춥기만 했던 원시인들에게 따뜻한 봄이 얼마나 그리웠겠는가! 그들은 봄의 징후가 나타나면 봄의 도래와 계절의 변화를 기뻐하는 축제를 벌였다. 그리고 그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술도 개발하였는데 변장과 마스크,‘뒤집기 관행’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변하는 것처럼 카니발도 변했다. 농업적 관행이 가미되고 종교적 의미가 새겨지고 또 정치적 기능이 첨가되었다.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카니발은 관광 상품이 되었다. 나는 서구의 카니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책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원시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여행을 하였다. 그러나 그 긴 여행을 마칠 무렵 나는 우리 문화 속에도, 그리고 내 속에도 카니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니발은 자연의 변화와 흐름에 인간의 생활 리듬을 맞춘 문화이다. 거기에는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인간의 순수함과 겸손함이 있고, 자연인으로서 분출하는 인간의 욕망과 욕구가 있다. 카니발은 인간이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런 의미에서 카니발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벌어지는 서구의 특수한 축제가 아니라 모든 문화 속에 존재하는 보편적 축제라 할 만하다. 내가 카니발의 시끌벅적한 난장 속에 가장 ‘축제적인 것’이 들어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근대화의 세례를 듬뿍 받은 ‘점잖은 교양인’이었다. 그런 내게 축제로의 긴 시간여행은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축제를 향한 욕망을 일깨운 계기였다. 이제 어느 축제에 가든 난 개의치 않고 축제에 푹 빠져든다. 그것이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므로….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서구의 카니발 문화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축제를 향한 욕망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한길사 펴냄. 윤선자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 [열린세상] 청와대팀,설쳐서는 안 된다/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열린세상] 청와대팀,설쳐서는 안 된다/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청와대란 곳은 참 이상한 곳이다. 경무대시절부터 지금까지 건국 60년이 되도록 여러 대통령들이 그곳을 다녀나왔다. 그런데 누구 하나 온전하게 성공했다고 볼 만한 인물들이 있었던가. 그들이 그곳에 들어갈 때는 제법 당당하기도 하고 포부에 차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일까. 희한하게도 그곳을 나올 때나 나와서는 별의별 모습을 다 보였다. 쫓겨나오기도 하고, 죽어나오기도 하고, 나와서는 교도소 가기도 하고, 식솔·측근들을 줄줄이 감방에 보내기도 했다. 풍수지리가 나빠서일까, 흉가이기 때문일까. 그런 황당한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인간이 할 수 있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런 일이 생길까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무엇보다 청와대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는 것이다. 수차 이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계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우리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없다. 대통령제의 원조라는 미국의 대통령도 외교·국방 등 연방헌법에 특정된 권한 이외에 다른 권한이 없다. 그에 비해 이 나라 대통령은 ‘통반장’ 대통령이다. 입법, 사법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국정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다. 권한이 엄청 크므로 한번 해볼 만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너무 큰 권한은 약이 아니라 독(毒)일 뿐이다. 그래서 시스템개선을 위해 개헌문제가 나온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절충형 정부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부족하나마 현 제도하에서도 운영의 묘는 살릴 수 있다. 청와대와 내각이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 청와대는 지휘자, 내각은 연주자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다같은 음악가들이지만 지휘자와 연주자의 역할은 확연히 구별된다. 지휘자는 소리를 내는가? 아니다. 지휘자가 제아무리 출중하다 한들 그는 단 한마디의 소리도 내지 않는다. 공연에서 그는 뒤늦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등장하고 퇴장할 때도 박수를 받으며 먼저 퇴장한다. 모든 갈채를 혼자서 온몸에 받는 모습을 보이는데도 그는 찍소리 한마디 안 한다. 손짓, 몸짓으로 사인을 보낼 뿐이다. 소리내는 일은 연주자 몫이다. 내각이 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연주가 성공하려면 능력있는 연주자를 발탁하고 끊임없이 연습시켜야 한다. 이 일이 바로 청와대 몫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그 막강한 권한은 그곳 사람들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대통령이야 몸뚱아리 하나이므로 욕망이 많은들 무에 그리 많겠는가. 문제는 그 아래서 진을 치고 있는 ‘비서’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비서 나부랭이’라고 칭하나, 실제로 이들의 권한은 말 할 수 없이 크다. 우선 1개 수석비서관이 여러 부처를 관장하므로 소관업무가 장관보다 방대하다. 게다가 대통령 코밑에 앉아 있어 수시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 마치 귓속말도 할 수 있을 듯이 보인다. 그래서 장관들도 비서들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혹시 이상한 험담이라도 해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 또 이 비서자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대통령을 팔 수 있다. 그래서 나쁜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못된 짓도 할 수 있다. 할 일 없는 사람이 있으면 역대 청와대 요인들 중 교도소에 간 사람은 없는지 조사해 볼 일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언론도 온통 청와대만 주시한다. 끗발 있는 곳에 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체제에서라도 성공하려면 청와대팀이 설쳐서는 안 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찍소리도 안 내야 한다. 언론에서도 원칙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좋다. 대신 손짓, 몸짓으로 내각을 지휘해야 한다. 그래도 공연이 잘 끝나면 결국 박수갈채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듯한 영광을 누리지 않는가.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 [오디세이 서울] 세운상가(중)

    [오디세이 서울] 세운상가(중)

    여의도가 그렇듯 세운상가는 ‘박정희-김현옥-김수근 체제’가 낳은 대표적 조형유산이다. 박정희대통령에 의해 40세의 나이로 서울시장에 임명된 예비역 육군준장 김현옥은 프랑스 제2제정기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발탁돼 현대 파리의 도시경관을 주조해 낸 조르주 외젠 오스망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그는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까지 4년의 재임기간 동안 서울의 공간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곳곳에 육교와 고가도로를 세우고 지하도를 팠으며, 슬럼을 쓸어낸 자리에 10층이 넘는 빌딩들을 ‘찍어’냈다. 여의도·강남개발 등 대규모 ‘백지 프로젝트’가 구상된 것도 그 시절이었다. 변방의 보나파르트 박정희에게 김현옥은 인간 불도저, 서울의 오스망이었다. 김현옥은 부임 일주일도 안 된 1966년 6월 종묘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슬럼을 답사한 뒤 박정희를 만나 이곳에 민간자본으로 초현대식 건물을 짓는다는 구상을 승인받는다. 폭 50m 길이 850m의 공터가 생겨난 것은 불과 2개월 뒤였다. 당시 집권층이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는 1년 뒤 준공식에 박정희가 참석한 데서도 드러난다.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경제성장이라는 가시적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박정희에게 대규모 건축물은 근대화와 성장이라는 집권의 명분과 치적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였던 까닭이다. 이런 연유로 세운상가는 누군가의 위엄과 업적을 상기시키려는 음험한 욕망을 자신의 기념비적 외형을 통해 끊임없이 드러낸다. 이 기념비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공간이 종로변이다. 종로변에서 바라본 세운상가는 말 그대로 평지돌출이다. 여기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갖는 중량감이 더해져 그 위압감은 배가된다. 세운상가의 위압적 이미지는 마주선 종묘의 수평공간과 대비될 때 더욱 선명해진다. 태양의 궤적이 지표면에 근접하는 겨울철, 오후의 세운상가는 종로의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종묘의 외대문 앞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건축물에 담긴 수직적 조형의지가 왕조의 공간을 압도하는 거인의 이미지로 번안되는 순간이다. 부서지는 역광을 뚫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육중한 몸체는 한 변방국가의 성장기적을 과시하는 기념비이자, 현대성의 궁극적 승리를 고지하는 정치적 오브제다. 종로·을지로·퇴계로 등 간선도로와 접해 있는 전면부를 타워형으로 고층화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재현(再現)적 관심이 건축물의 기능적 효율성을 압도하는 규제적 조형이념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탈북 청소년들 어떻게 살고 있나

    탈북 청소년들 어떻게 살고 있나

    사선을 넘을 때 머릿속을 채운 것은 오직 하나였다. 이제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그러니까 지레 짐작하듯 거창한 ‘정치적 망명’이 아니었다. 특히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를 따라 탈북을 감행한 1.5세대들은 주위의 시선과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할 때가 많다. 케이블·위성TV Q채널은 6·25전쟁 58주년을 맞아 새터민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2부작 특집 기획 다큐멘터리 ‘탈북 1.5’를 25·26일 밤 12시에 방송한다. 영화 ‘크로싱’이 북한의 참상과 탈북 과정을 처절하게 그렸다면,‘탈북 1.5’는 그 과정을 거친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부 ‘우리는 누구인가’(25일 방송)는 이제 막 남한으로 온 아이들부터 남한에서 이미 7,8년의 세월을 보낸 아이들까지 그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화면에 담았다. 지난 2001년 베이징 주재 유엔 공관을 통해 탈출한 장길수(24)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 냉혹하다는 사실을 느낀다.”며 “우리는 스스로를 난민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적이 있다는 점 외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자조한다. 이밖에도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다니며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펼치는 유은주(22·2002년 탈북)씨와 남한에서 살려면 힘도 세야 한다고 말하는 김헌주(17·2007년 탈북)군의 사연 등도 들어본다. 26일 방송되는 2부 ‘‘우리집’에서 생긴 일’편은 새터민 청소년 시설 가운데 유일하게 가정의 형태로 운영되는 ‘우리집’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새터민 아이들의 고민은 무엇이며,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들여다본다. 박영호군은 “친구들이 북한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아직도 내가 새터민임을 고백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좋은 염하룡(15)군은 “새터민이라서 전교 회장직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고 속상해 한다. 새터민 청소년들은 통일이 될 경우, 남북한의 가교 역할을 할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남한 생활은 험난한 탈북과정만큼이나 녹록지가 않다. 이은희 Q채널 본부장은 “북한을 다룬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은 어두운 면을 강조해 또 다른 편견과 부정적 시선을 낳은 면이 있다.”면서 “단순한 엿보기와 선정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새터민의 고민과 생활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유해발굴감식단장 박신한 대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유해발굴감식단장 박신한 대령

    경외에 찬 ‘그 독백’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참으로 건드렸다. 톨스토이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다. 격전의 전장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의식을 가까스로 되찾았을 때 푸른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 하늘이었다. 청년은 중얼거린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렇고 말고!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이 하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푸른 하늘은 ‘영원’한데 지상의 ‘영광과 욕망’은 사소하고 부질없음을 처음 깨닫게 되는 장면으로 ‘전쟁과 평화’의 명문구로 꼽힌다. 이 말이 새삼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6·25전쟁 발발 58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 주,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사무실에 들어섰다. 오전 10시가 채 안된 이른 시간인데도 6·25때 전사한 유해를 찾아달라는 유가족들의 애끓는 전화가 쇄도했다. 경남 마산에 거주하는 전이길(69)씨.“우리 큰형님이 6·25때 입대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어요. 전사통보도 못 받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계시는지 시신만이라도 꼭 확인하고 싶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렇게 전화를 합니다.” 대구광역시에 사는 김두남(62)씨.“어머니께서 위독해 돌아가시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6·25때 전사한 아버지(김봉곤)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해 드리고 싶어요.” 이처럼 아버님과 형님을 찾는 전화가 많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지난 6일 현충일때 채혈행사를 가진 이후 이런 문의전화는 최근들어 더욱 많아졌다. 유가족의 채혈을 통해 유해를 보다 빨리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방법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 실제로 지난 3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고(故) 강태수 일병의 경우 생존해 있는 아들(62)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우연히 국군수도통합병원에 들러 채혈을 했다가 극적으로 아버지 유해를 찾은 케이스. 신혼초에 신랑은 귀여운 아들을 하나 낳고 전장으로 떠났고 82세된 신부는 58년 만에야 신랑의 유해와 만나는 눈물겨운 광경을 연출했다.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3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유해발굴 사업은 올해로 8년째. 처음에는 증언과 유품 등을 통한 신원확인에 의존했으나 2003년부터는 유해와 유가족의 DNA검사를 추가해 정밀도를 높였다. 특히 지난해 1월 관련법 제정에 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면서 조사와 발굴, 감식 등 전 분야에 걸쳐 독자적인 수행능력을 확보했다. 또한 올해 12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내에 3층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완공되면 감식실과 유해보존실을 갖추는 것은 물론 유전자 은행 설치 등으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게 된다. 지금까지 유가족 혈액의 경우 4973건을 채취했으며 발굴된 유해 1892구 중 72구가 신원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42구가 유가족 품에 안겼다. 국방부 기록에 의하면 6·25때 국군 전사자는 약 13만 7000명, 실종자는 2만여명이다. 국립현충원에 2만 7000여기가 안장돼 있으니 현재 13만명가량이 어디엔가 쓸쓸히 묻혀 있다는 것이다.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박신한(51) 대령을 만났다. 집무실에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반세기 만의 귀향’ 등의 문구와 발굴현장 모습의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6·25전쟁이 몇년도에 일어났는지 모르는 젊은 대학생들이 3분의1이나 된다는 조사내용을 언급하면서 결코 잊혀진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호국의 달이자 장마철입니다. 발굴사업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겠지요. “이달에만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안동(27일까지)과 강원도의 진부(7월11일까지), 인제(27일까지) 등에서 진행되고 있지요. 한 지역당 100곳정도 굴토하면서 유품이나 유골 등의 흔적이 나오면 전문요원 8명이 투입돼 정밀 감식을 하게 됩니다.1년중 동·하절기를 제외한 8개월 동안 계속 진행되지요.” ▶감식단 요원들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됐습니까. “군인과 군무원, 그리고 형질인류학과 법의학을 전공한 민간 감식전문요원 등 모두 134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89명의 발굴병인 경우 대학의 고고학이나 인류학과 출신의 지원자들로 모집·충원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비록 6·25의 3세대에 해당되지만 58년 동안 차가운 땅속에 묻힌 호국의 얼을 거둔다는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인골탐지기도 없이 산간 고지대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고생도 많지만 평생에 남을 보람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하고 있지요.” ▶발굴사업에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인가요. “유해는 전투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마을 주변에 널부러져 있다가 마을 주민들이 수습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58년이 지났고, 지역개발도 많이 했고, 전사자 유해에 대한 자료조차 없습니다. 어디쯤에서 전사했다는 막연한 제보와 현장에서 당시 전술적 상황분석을 통해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지요.” ▶제보가 들어오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제보내용과 현장상황 등을 여러가지를 종합 판단해 주요 포인트를 정하게 됩니다. 대개 70∼80%는 참호나 교통호,20∼30%는 논이나 밭 등이 대상입니다. 그 다음 전문요원들이 문화재 발굴처럼 기록과 수습을 하면서 진행되는데 소중한 유해인 관계로 중장비 없이 호미 등으로 조심스럽게 굴토합니다. 그러다가 유해가 발굴되면 먼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구분하지요. 유품과 기록 등으로 피아를 구분한 뒤 아군인 경우 시료를 채취하고 또 유가족으로부터 채혈을 통해 얻은 DNA 등을 대조합니다. 신원이 확인되면 현충원 정식묘역에 안장되고 미확인되면 일단 무명용사탑에 있다가 나중에 확인되면 다시 모셔집니다.” ▶적군의 유해는 어떻게 하는지요. “지금까지 북한군 384구, 중공군 177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이 가운데 북한군 352구, 중공군 84구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인도적 차원에서 매장해 놓고 있지요. 저희는 매년 군사정전위를 통해 송환의사를 타진하지만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측에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발굴사업이 좀 늦었지요. “원래 이 사업은 2000년 6·25 50주년기념사업으로 처음에는 한시적으로 3년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유해가 발굴됐고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국가영구사업으로 전환시켰지요. 국가가 국방의무만 부과시켜 놓고 책임에는 소홀했다는 점에서 발굴사업이 다소 늦었다고 봅니다. 전후복구와 경제개발 등 국가가 먹고 사는데 전력하다 보니 국가적 여유가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 8년 동안 말 그대로 ‘무에서 유’의 발굴사업을 진행해 오면서 벌에 쏘이는 등 단 한 건의 사고가 없었다는 그는 “아마 땅에 묻힌 영령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고 했다. 또 “6·25세대들이 하루에 1만명정도 돌아가시고, 또 국토는 계속 개발되고 있어 유해발굴사업은 향후 5년이 매우 중요한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아직도 이 땅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13만여의 호국용사들이 이름모를 산야에 묻혀 있습니다. 이들의 유해는 단순한 뼛조각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버팀목입니다.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 부모형제,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일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영원한 책무입니다.” ■ 그가 걸어온 길 ▲1957년 목포 출생. ▲75년 광성고 졸업. ▲80년 성균관대 졸업, 학군 18기 임관. ▲92∼95년 31사단 96연대 1대대장. ▲98∼2000년 동국대 행정대학원. ▲99∼2002년 육본 인사운영실 대령보직장교. ▲02∼03년 9공수여단 참모장. ▲03∼04년 36사단 107연대장. ▲05∼06년 육본 인사참모부 전사자 유해발굴과장. ▲07∼현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유해발굴 주요 실적(2008년 6월 현재 누계) 아군 1892구, 북한군 384구, 중공군 177구. 유품 32종 5만 7995점(실탄, 장구류, 개인소품 등).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일요영화] 할로우맨

    [일요영화] 할로우맨

    ●할로우맨(SBS 영화특급 밤 1시10분) 미국 정부는 내로라하는 최고 실력의 과학자들을 모은다.‘할로우맨 실험(투명인간 실험)’이라 명명된 일급 비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카인(케빈 베이컨)은 마침내 실험용 고릴라를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에 도취한 카인은 순간 자신 또한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그는 미 국방부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에게 투명인간 실험을 강행한다. 카인은 살과 뼈가 타들어가고 이내 동료들이 지켜보는데 실험대 위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뒤늦게 위험을 자각한 카인의 상관이자 애인인 린다(엘리자베스 슈)는 실험의 효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투명인간이 된 카인은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들이 한꺼번에 분출하면서 괴물 같은 존재로 변한다. 마침내 동료인 매튜(조시 브롤린)를 죽이고 린다를 강간하기까지 한다. 어느새 할로우맨은 공공의 적이 되고, 동료들은 그를 몰살할 계획을 세우는데…. 폴 버호벤 감독의 ‘할로우맨’(2000)은 기존의 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와는 달리 투명인간이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는 SF영화. 섹스와 폭력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버호벤 감독의 영상미학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인체의 혈관, 내장, 근육, 신경 등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되살아나는 식의 특수효과는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 특히 수증기와 소화기 분말에서 희뿌연 형체를 드러내는 모습 등 투명인간에 대한 묘사는 놀랄만한 기술 수준을 보여준다. 하지만 구미를 당기는 소재와 탁월한 화면 구성에 비해 이야기의 흡인력은 떨어진다는 평.(홍성진 글 참조) 초반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을 연상시키는 관음증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에서 볼 수 있는 과학의 오만함에 대한 신랄한 풍자나 ‘흡혈귀’에서 접할 수 있는 극단적 인간성에 대한 통찰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에서 투명인간은 분명 매력적인 소재다. 한번쯤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면 재난영화와 공포영화의 중간쯤 되는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상상의 여행을 떠나도 좋을 듯하다. 원제 ‘Hollow Man’.114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서울광장] 그래도 희망은 있다/오풍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래도 희망은 있다/오풍연 논설위원

    며칠 전 퇴근 무렵 회사 동료를 만났다. 시인 등 몇몇 지인들과 저녁을 함께하러 간다고 했다. 왠지 흥미가 발동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동료에게 나온 얘기를 정리해 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튿날 메일이 왔다. 내용을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폐부를 찌를 듯한 대목도 눈에 띄었다. 자연 주제는 촛불시위였다. “쇠고기 촛불집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겁니다. 도대체 왜 저런 시위를 하는지. 벼락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훨씬 비중이 약한 광우병을 선전선동해서 촛불의 바다를 만든 좌파들이 결국은 죄를 짓는 겁니다. 재협상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이성적인 요구입니까? 물론 대통령은 결과 지상주의자로, 과정을 중시할 리 없는 지도자인 걸 알지만…. 촛불의 바다를 이룬 세력들이 문제입니다. 대통령을 뽑은 지 겨우 100일 지났는데 좀 지켜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명박 대통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성공을 이룬, 어찌보면 성장해서 파이를 키우는 데는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요.” C시인의 말이다. H시인이 말을 이어 받았다.“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거 아닌가요. 성장과 분배 사이에 절충점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적절한 절충점을 찾는 게 위정자의 몫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런 철학도 없는거 같아요. 쇠고기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과 만나 차를 운전한 당일 쇠고기 협상 타결 자막이 오버랩됐죠. 방송에 나오는데 국민들이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한 겁니다. 국민을 설득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된 거잖아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서 부를 키운다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만….” C는 불끈했다.“성장과 분배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도 마찬가지로 함께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평등의 모델은 유감스럽게도 북한이고, 성장은 미국입니다.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북한으로 갈거냐, 미국으로 갈거냐.”이에 K씨가 “현상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사회를 어떻게 양자택일로 두부모 자르듯이 단정할 수 있습니까? 미국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북유럽국가가 우리나라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성장도 이루고 복지도 세계 최고 수준인 북유럽이 훨씬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끼어들었다. K씨는 더 보탰다.“나는 이번 촛불시위를 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정말 다이내믹(역동적)하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작가들이 소재의 빈곤 때문에 고민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작가들은 예외입니다. 왜냐면 그만큼 우리사회가 역동적이기 때문에 할 얘기도 많은 거 아닙니까? 우리 국민들의 역동성을 국가발전의 리더십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대통령은 능력이 안 됩니다. 그런 리더십이 없습니다. 차라리 내가 낫지요.” 모두 정치 평론가 뺨친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건전하고, 아직 희망이 있다는 점을 거듭 느꼈다. 이 정도의 국민의식 수준이라면 비전을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이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진정 원한다면,19일 특별회견처럼 민심의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제 모든 것은 이 대통령에게 달렸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기억은 변하거나 왜곡 혹은 조작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영역에선 하나의 성역으로 군림해왔다. 프로이트에게서 유래한 억압, 트라우마, 기억 회복 등의 개념으로 무장한 심리치료사들은 환자들이 현재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선 억압된 기억을 끄집어내 똑바로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인간의 기억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억은 “서랍 속에 잘 정리해둔 서류철”이 아니라 “분필과 지우개로 끊임없이 썼다 지웠다 하는 변화무쌍한 칠판”이라는 것이다.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 캐서린 케첨과 함께 쓴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정준형 옮김, 도솔 펴냄)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도 기억은 변하거나 왜곡 혹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확고부동한 것으로 여겨져온 ‘기억’이 사실은 상상, 욕망 등을 반영해 유동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며, 실제론 일어난 적이 없는 ‘거짓기억’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로프터스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례를 분석, 이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심리치료사의 암시나 최면, 기억 회복 등을 주제로 한 TV프로그램 등에 의해 거짓으로 잉태되고 키워졌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책은 ‘쇼핑몰 실험’을 그 한 예로 제시한다. 여덟 살 아이에게 다섯 살 때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는 거짓기억을 심어주자, 아이는 있지도 않은 구체적인 상황까지 기억해 냈다. 이 실험은 아이뿐 아니라, 성인 남성의 경우도 똑같이 거짓기억을 주입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로프터스가 심리치료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아동에 대한 성추행, 근친상간, 폭력의 실상이나 참상에 관해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관해 논하려는 것임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한다.1만 8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유교사회 조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유교사회 조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윤리사회를 지향했던 조선, 그 이면에는 윤리로 전혀 통제되지 않는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18세기 초 양반사회에는 춘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18세기 후반에 ‘금병매’를 읽지 않은 양반은 ‘수치’로 여겨졌다. 이처럼 강렬했던 조선사회의 성적 욕망을 성리학은 어떻게 억압했을까. 성은 가부장제와 어떻게 긴밀하게 엮여 들었을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조선시대 문학을 통해 그 해답을 찾는다. ●윤리로도 통제 안된 성적 욕망 한국한문학회(회장 박성규 고려대 교수)가 21일 단국대에서 ‘한국한문학과 성담론’을 주제로 하계학술대회를 연다. “고운 눈길은 칼날이라 하고 굽은 눈썹은 도끼라 하며, 통통한 뺨은 독약이며, 매끄러운 피부는 숨어 있는 좀이라고 하는 것을.…이것이 어찌 가장 치명적인 해가 아니랴.”고려의 이규보는 ‘색유’에서 성의 강한 쾌락을 독에 비유했다. 성이 권력과 국가의 몰락을 낳은 원인이라는 것. 이 생각은 조선의 가부장제가 만들어지는 바탕이 된다. 강 교수는 이이, 이덕무, 이익 등 성리학자들이 일제히 “성욕을 억제하라.”고 주장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이덕무는 “색을 밝히는 사람은 결국 색욕에 굶주려 죽는 귀신이 된다.”고,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람만은 남자와 여자가 어울려 싸다니며 밤이야 낮이야를 가리지 않으니 금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확고했던 18·19세기 조선에서는 성에 대한 표현이 들끓었다. 특히, 민요와 사설시조·평시조, 가요 등의 구비문학에서는 노골적인 성적 욕망이 드러난다. 실제로 채록된 구비 서사 텍스트에는 성적 기교와 자위, 동성애, 동물애, 구강성교 등 현대의 모든 성적 행위가 나타난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남성 성욕 관철… 여성 성욕 금기 “사람이라면 누군들 정욕이 없겠는가. 내 딸이 남자에게 혹하는 것이 다만 너무 심할 뿐이다.”라는 어우동의 어머니 정씨의 말은 억압된 유교사회에서도 성적 욕망이 여전히 발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 교수는 “성적 절제를 주장한 성리학의 의도는 가부장적 가족친족제를 실현하려는 것”이었으며 거기에는 ‘남성 성욕의 일방적 관철과 여성 성욕의 일방적 금기’라는 목표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학계나 국문학계에서 성담론은 연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강 교수는 “성담론 연구는 권력 관계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것이지만 한국 사학계나 국문학계에서는 성 연구가 정치나 경제 같은 근엄한 주제 아래 묻혀 있었다.”고 연구 배경을 밝혔다. 이밖에도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의 ‘조선조 후기 문예공간에서의 성담론의 빛과 그늘’, 윤채근 단국대 교수의 ‘조선 후기의 섹슈얼리티:정념에서 이익으로’,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의 ‘19세기 성담론과 소설 속의 섹슈얼리티 재현 양상’ 등 4개의 발표가 이뤄진다. 학회 연구이사인 정민 한양대 한국한문학과 교수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성을 활발하게 학술 담론으로 논의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풍속도나 문화사적 연구가 전무하다.”고 대회 취지를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오디세이 서울] (1) 세운상가

    [오디세이 서울] (1) 세운상가

    서울은 ‘관리된 자연’과 ‘방치된 인공’이 공존하는 곳이다. 낡은 것과 새것, 성스런 것과 속된 것이 뒤섞여 소통한다. 전근대와 탈근대, 버려진 것과 선택된 것, 공인된 것과 금지된 것이 병존하는 ‘콜라주’도시다. 왕도의 오랜 역사와 20세기의 돌진적 근대화가 만들어낸 시공간의 불협화음적 하모니가 ‘뉴타운’과 ‘도심재생’으로 상징되는 신개발주의의 토건 프로젝트에 휘말려 언제든지 파괴되고 균질화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이 도시를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이 비록 볼품없이 쌓아올린 콘크리트 덩어리, 비루하고 지지한 도심의 후미진 뒷골목일지라도. 도시경관기록 보존운동을 펼치는 사단법인 ‘문화우리’와 함께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개발시대 서울의 거리와 건축물을 재조명한다. 1967년 서울이라는 슬럼의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낸 세운상가에는 발전과 도약을 갈망하던 동시대인의 소망이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끈적한 욕망의 자취를 남겨놓고 있다. 세운상가라는 이름의 ‘콘크리트 유적’은 서울 종묘 앞에서 청계천로, 을지로를 거쳐 퇴계로로 이어지는 1㎞의 남북축을 따라 네 덩어리의 상자형 건물로 도열해 있다. 쇠진과 몰락의 기운만이 느껴지는 남루한 건축물이지만 녹록잖은 건축사적 무게 덕분에 최근엔 건축학도와 문화운동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실 ‘주상복합건축물의 효시’이자 ‘집합건축(mega) 프로젝트의 원조’라는 평가는 세운상가를 논할 때면 설계자 김수근의 이름과 함께 세트로 따라붙는 단골 구문이다. 대지 1만 6308㎡ 연면적 20만 5898㎡,2000개가 넘는 점포와 호텔객실 177개, 주거용 아파트 851채. 이같은 거대규모의 복합 건물군이 1인당 국민소득이 144달러에 불과하던 시절,‘종삼’이라 불린 최대의 유곽지대를 쓸어내고 들어섰다는 것은 왕조시대의 대역사(大役事)에 견줄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형태·구조에서 발견되는 파격성 또한 오늘날의 하이테크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다. 김수근은 이곳에 인공대지, 공중가로, 옥상정원 같은 1950∼60년대 서구건축의 첨단 어휘들을 과감히 도입했다. 이런 까닭에 아직도 이곳엔 건축물이 ‘삶을 위한 기계’라는 기능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유토피아적 기획에도 봉사해야 한다는, 전후(戰後)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주의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여의도개발계획이 도시적 차원에서 모더니즘의 이상을 축조하려는 것이었다면, 세운상가는 건축적 맥락에서 그 미망(未忘)을 구현하려는 전위적 공간 프로젝트였다. 지역명이나 건설업체 이름과도 무관한 ‘세운’이란 명칭을 갖는 과정 역시 주목할 만하다. 원로 도시학자 손정목에 따르면 연원은 1966년 9월8일 세운상가 A지구 기공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행사장을 찾은 서울시장 김현옥이 붓으로 세운상가라는 휘호를 써 증정했던 것인데,‘세계(世)의 기운(運)이 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비루한 주변부적 현실로부터 탈출을 욕망하던 당대의 ‘집단 무의식’이 군인 출신 행정가의 직설화법을 통해 민자 건축물의 이름에까지 투영된 것이다. 신경증적인 성장강박의 시대가 무르익고 있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데스크시각] ‘시크릿’ & ‘여비서의 정사’/김규환 문화부 부장급

    [데스크시각] ‘시크릿’ & ‘여비서의 정사’/김규환 문화부 부장급

    자기 계발서 바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2005년 ‘마시멜로 이야기’로 시작된 자기 계발서 열풍은 요즘에도 ‘시크릿’과 ‘마시멜로 두번째 이야기’를 베스트셀러 순위 1·2위에 올려 놓을 정도로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특히 ‘시크릿’은 지난해 6월 출간된 이후 1년간 베스트셀러 1위를 독식하며 판매 부수가 130만부를 넘어섰다.‘크리스찬을 위한 시크릿’‘3분 시크릿’‘부의 비밀’ 등 16종의 아류까지 쏟아져 나와 온통 서점가를 뒤덮고 있다. 자기 계발서 바람이 지속되는 이유는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보다 나은 미래와 경제적 풍요를 이루기 위한 욕망 때문이 아닐까. 미국·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공황·버블붕괴 시기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자기 계발서의 판매가 늘어난 것처럼, 우리 사회도 외환위기 이후 자기계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훈과 성공담을 담은 자기 계발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만큼 효과적이냐 하는 데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이 점에서는 ‘시크릿’이 오히려 중국의 성애소설 ‘여비서의 정사’보다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책의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실천의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효과는 그다지 큰 것 같지 않다. 물론 ‘시크릿’과 ‘여비서의 정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이다. 기자가 베이징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지인 중 한 외국인은 중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데다, 중국 연수 한번 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베이징 근무 명령을 받았다. 업무가 현지 신문이나 연구보고서 등을 신속하게 읽고 분석해 본국에 보고해야 하는 까닭에 높은 수준의 중국어 실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역사·경제·경영 등 딱딱한 내용의 전문 서적을 읽으려고 밤새 씨름했다. 하지만 금방 흥미를 잃어 번번이 몇쪽밖에 읽지 못하고 그만두는 바람에 결국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읽게 된 책이 ‘여비서의 정사’다. 속어 등 관용어가 많고 300쪽의 만만찮은 분량이어서 중국어 초보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지만, 내용이 워낙 자극적이다 보니 흠뻑 빠져 ‘완독’을 경험하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자신감이 붙은 그는 이후 역사·경제·경영서적 등 폭넓게 읽게 돼 중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조선시대 문신 백곡 김득신은 유명한 독서광이었다. 부친이 감사를 역임한 명문가 집안이었지만 머리가 나빠 열살이 돼서야 글을 배운 그는 좋은 작품들을 반복해 읽고 또 읽었다. 한유의 ‘사설’ 등은 1만 3000번 읽었고 ‘노자전’과 ‘중용’의 서문도 각각 2만번 읽었다. 즐겨 읽은 사기의 ‘백이전’은 무려 11만번을 읽었다. 간단없이 노력한 결과 비록 머리는 아둔했지만,59살에 과거에 급제하고 한시의 대가로 조선 중기 대표 시인이라는 문명(文名)을 떨쳤다. 자기계발은 결코 자기 계발서 책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읽은 내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새벽형 인간이 되어라’‘기쁘게 일하라’‘인간관계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어라’ 등은 모두 옳은 말이지만, 말로만 하지 말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뿐이다”(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갈명’(墓碣銘)에서)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피서를 떠나 쌓인 피로를 푸는 것도 괜찮을 테고 양서(良書)를 골라 읽는 것도 좋은 일이다. 진정코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저 책 읽는 데 연연할 게 아니라, 양서를 한권 읽고 교훈적인 한 구절만이라도 아금받게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떨까. 김규환 문화부 부장급 khkim@seoul.co.kr
  • 정미경 단편집 ‘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단편집 ‘내 아들의 연인’

    소설가 정미경(48)이 단편집 ‘내 아들의 연인’(문학동네)을 펴냈다.‘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이후 2년만이다. 표제작 ‘내 아들의 연인’과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 ‘들소’ ‘바람결에’ ‘매미’ ‘시그널 레드’ ‘너를 사랑해’ 등 7편이 실렸다.“남들은 절대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작가 스스로 밝혔듯, 소설은 이 땅의 비루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내 아들의 연인’은 젊은 시절 재수생과의 풋풋했던 추억을 뒤로 하고 ‘교활한 계산법’으로 남편을 선택해 강남의 ‘유한 가정주부´가 된 주인공이 가난한 여자친구를 사귀다가 헤어지는 아들을 지켜보며 회한에 젖는다는 이야기.‘밤이여, 나뉘어라’는 한 천재 의사가 기억과 욕망에 관한 신약을 개발하려다 파멸해가는 모습을,‘바람결에’는 인공수정을 통해 형식적인 부부관계의 탈출구를 마련하려다 좌절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뤘다. 작가는 “이 책에 담을 첫 소설을 구상할 무렵에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려 했다.”면서 “그러나 모아놓고 보니,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조잔한 존재들의 슬픔만이 자욱하다.”고 털어놨다.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인간 탐욕이 만든 ‘프리온 질병’

    18세기 중엽, 이탈리아 베네치아 귀족 출신의 의사가 며칠 동안 몹시 땀이 흐르고 동공이 바늘구멍 만하게 축소되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다 사망했다.‘치명적 가족성 불면증’의 시작이었다. 비슷한 시기,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양들이 돌이나 나무 등에 털을 긁어대거나 발작적으로 주저앉기를 반복하다 죽어갔다.‘스크래피(scrapie)’의 창궐이 었다.1980년대 후반, 양순한 젖소들이 사람을 걷어차더니 몸을 떨고 비틀거리다 쓰러지기 시작했다.‘광우병’의 공포가 영국을 휩쓰는 순간이었다. 원인은 모두 ‘프리온’이란 단백질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프리온은 정상 단백질이지만 어떤 이유로 변형되면 ‘살인단백질’로 돌변한다. 변형 프리온이 세포를 죽일 경우 세포가 사멸한 자리는 텅 빈 공간으로 남고 환자의 뇌 조직은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로 바뀐다. ‘살인단백질 이야기’(대니얼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 김영사 펴냄)는 변형 프리온이 인류를 위협해온 역사와 그 원인을 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촉발된 광우병 공포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시기에 맞춰 번역 출간됐다. 프리온 변형은 단백질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광우병은 프리온이 종의 경계마저 뛰어넘는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하지만 책의 핵심 메시지는 좀더 근본적인 데 있다. 책은 프리온의 자기변신을 강제한 것은 인간의 욕망이란 뼈아픈 진실을 드러낸다. 스크래피는 최대한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양의 몸뚱이를 구상하며 동종교배(우수 형질을 가진 어미와 그로부터 난 새끼를 재교배하는 육종기법)를 시도한 천재적 축산업자로부터 출발했고, 광우병도 고기와 우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이면서 등장했다. 계몽주의가 맬서스의 ‘인구론’이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결합하면서, 생산력 향상과 동일시된 당대의 진보는 평범한 단백질을 통제 불가능한 독성물질로 탈바꿈시켰다. 성장과 발전만을 지향하는 직선적인 진보는 때론 자멸을 초래한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 또한 단백질 변형으로 생긴 알 수 없는 질병으로 투병 중이다. 저자는 자신의 병이 아이들에게 유전됐을 가능성을 우려하며 프리온 질병의 완치가능성에 대한 절박한 희망으로 책을 썼다.1만 6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촛불집회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하지만 그 본질은 위대하면서도 끔찍”

    “촛불집회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하지만 그 본질은 위대하면서도 끔찍”

    “이번 촛불시위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입니다. 하지만 촛불 시위의 본질은 위대하면서도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초한지’(전10권, 민음사) 완간에 맞춰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이문열(60)씨가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다수의 국민들이 촛불 시위에 대해 침묵하고 동조하고 있는 만큼 ‘민의’의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먹는 문제는 하나의 빌미가 됐을 뿐” 이씨는 ‘위대하고 끔찍하다.’는 부분에 대해 “아주 어려운 일을 해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고,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이번 촛불 시위는) 먹는 것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문제라고 본다.”며 “먹는 것이 하나의 빌미가 됐을 뿐, 또 다른 하나의 빌미는 감정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씨는 “‘초한지’의 코드가 낡고 반복된 것이라는 인상이 있어 간담회를 갖는 게 좀 멋쩍다.”며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데 조잡하게 된 부분이 있고, 정사(正史)에 보다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새로 ‘초한지’를 쓰게 됐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正史에 보다 충실하게 ‘초한지´ 새로 써 “우리나라에 ‘초한지’라고 나오는 책들은 대개 명나라 때 종산거사가 쓴 ‘서한연의’를 원전으로 한 것입니다. 가장 긴 것이라고 해야 분량이 5권 정도밖에 안 되는 데다 종산거사는 너무 많은 부분을 상상력에만 의지해 역사와 동떨어진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초한지’는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말한초(秦末漢初)시대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겨룬 한고조 유방과 항우, 두 영웅을 중심으로 쓴 역사소설.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반고의 ‘한서’를 보조자료로 삼아 기존의 ‘초한지’를 완전히 새로 썼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에 유방은 많이 미화됐고 항우는 폄하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방은 뛰어난 순발력과 임기응변의 사나이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시정잡배처럼 그려졌죠.” “원래 ‘초한지’를 쓰기 전에는 항우가 더 소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두 사람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면서 유방 쪽으로 기울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예컨대 항우에게 쫓겨 달아나던 유방이 수레가 무거워져 적에게 붙잡힐까봐 수레에 타고 있던 자식들을 밖으로 던지는 대목이 유방의 비정함 내지 파렴치한 욕망으로만 해석됐다.”며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 죽은 많은 장병들을 생각했기 때문이지, 결코 자신의 목숨 때문에 자식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한국 역사물 쓸 계획” “당초 7월에 한국에 들어오려고 했지만 완간에 맞춰 앞당겨 들어왔다.”는 그는 10월쯤 미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향후 작품 계획과 관련,“중국 역사물은 이만하면 됐다 싶어 이제 쓰지 않겠다.”며 “앞으로는 한국 역사물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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