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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일까 홍보관일까

    미술관일까 홍보관일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크고 작은 전시 공간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중소기업부터 요식업체, 작가 등 운영 주체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대개의 경우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지만 미술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도 있어 난립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 핸드백브랜드 루이까또즈와 ㈜태진인터내셔널이 설립한 태진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가 지난 12일 2년의 공사를 마치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문을 열었다. 첨단 소재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역동적인 실루엣이 특징인 건물은 건축사무소 조호(이정훈 소장)가 설계했다. 총 4개 층으로 2개의 갤러리와 라이브홀, 중정의 열린 공간, 렉처룸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하의 라이브홀은 8m 높이의 설치미술이 가능한 가변형 공간으로 설계됐다. 박만우 관장은 “아트센터는 현대미술 전시와 더불어 퍼포먼스, 영화 스크리닝과 사운드 아트, 라이브 아트 등 다양한 매체와 다원적 예술을 지향하는 모든 창작 작업을 소개하는 특별한 창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에서는 개관 기념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배영환과 중국 현대미술 작가 양푸동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설치 등 전 장르를 넘나들며 문명론적 성찰의 주제를 이루는 묵직한 화두를 다뤄 온 배영환은 ‘새들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구성원들 간의 진정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과 그 치유 가능성에 대해 탐구한다. 새를 현대인의 삶과 욕망을 투영하는 은유의 도구로 사용해 만든 4채널 비디오설치 ‘추상동사’, 설치작품 ‘말, 생각, 뜻’, 조형물 ‘사각 지구본’ 등의 신작을 선보인다. 중국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설치미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양푸동은 ‘천공지색’이라는 제목으로 상하이 모던 스타일을 소재로 한 신여성 시리즈를 선보인다. 개관 기념전은 8월 15일까지. (02)6929-4470. 서울 이태원로에 19일 문을 연 ‘스페이스 신선’은 신선설농탕과 시·화·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외식기업 ㈜쿠드가 운영하는 곳이다. 스페이스 신선은 보도자료를 통해 “미술 작품 전시 및 관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접목함으로써 기존의 문화와 차별화된 미술관 운영을 지향한다”며 “예술, 미학, 창의성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술관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학예사도 없다. 이곳에서는 개관 기념으로 두개의 기획전을 열고 있다. 지하에서는 신선설농탕의 ‘신선’(神仙)에서 착안된 기획전 ‘팔선의 신비로운 이야기전’을 마련했다. 창업주의 아들인 오청 이사장이 수집해 온 중국 청 시대의 도자기와 그림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사랑받아 온 8명의 신선을 소개한다. 2층에서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퓨전 레스토랑 ‘시·화·담’의 음식들을 시, 그림, 이야기와 접목하고 유명 도예가의 작품 그릇에 담아낸 ‘시와 그림, 이야기가 있는 한국 음식’전이 열린다. 전시 기획은 오 이사장의 부인인 박경원 관장이 직접 했다. 신선설농탕 건물과 나란히 위치한 스페이스 신선은 전시 공간을 지하와 2층에 두고 이태원로 보행자들의 눈에 잘 띄는 1층에는 카페와 아트숍을 뒀다. 미술관이라기보다 자사 브랜드 홍보관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공간이다. 정부는 문화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등록 사립박물관·미술관에 대해 설립 시 부동산 취득세 면세, 입장료에 대한 부가세 면세, 출연 재산에 대한 상속세 및 증여세 비과세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한국미술관협회 이명옥 관장은 “전시 공간들이 문을 열지만 미술관으로 등록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며 “소장품과 지향점에 걸맞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확립해 그에 따라 수준 있는 기획전을 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리고 미소를/폴 엘뤼아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리고 미소를/폴 엘뤼아르

    그리고 미소를/폴 엘뤼아르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 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며 욕망은 충족되고 배고픔은 채워진다.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신호등보다 페이스북에 눈이 번쩍…SNS에 중독된 당신, 괜찮아요?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신호등보다 페이스북에 눈이 번쩍…SNS에 중독된 당신, 괜찮아요?

    서울에 사는 40대 남성 김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SNS 중독자’로 불린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SNS로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이 올린 게시물을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시간도, 잠을 자는 시간도 구분하지 않는다. 회사일로 미팅을 할 때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스마트폰이 들려 있으며 스스로는 자신의 습관 수준을 ‘평균’이라고 주장한다. 주변에 본인만큼 SNS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온라인 시대를 넘어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SNS는 특히 모바일에 최적화한 서비스다. 다양한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으며 덕분에 사람들은 국적과 거리, 연령과 사회적 위치를 불문하고 ‘친구’가 됐다. 그런데 이 SNS, 심상치 않다.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연구결과와 실제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SNS 사용량 많으면 섭식장애 위험 높아 SNS 사용이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가운데 가장 최근 제기된 것은 외적 이미지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잘못된 심미적 기준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진은 2014년 미국의 19~32세 성인 중 SNS 사용자 17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SNS 사용 패턴과 식이장애 위험, 불안증, 식욕이상항진증(폭식을 하고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증세), 폭음이나 폭식 습관 등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 동안 SNS 사용량이 많은 군에 속하는 사람은 이보다 적게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섭식장애를 겪을 위험이 2.2배 더 높았다. 또 일주일 단위로 봤을 때 로그인 빈도수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같은 질병을 겪을 위험이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SNS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집착과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SNS에서 자주 접하는 마른 모델이나 유명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현상이 결국 거식증이나 식욕이상항진증 등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코카인 만큼 치명적인 페이스북 중독 그저 흥미 위주로 사용하는 SNS, 특히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페이스북에 중독되는 것은 마약인 코카인 중독과 유사한 생물학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구진이 대학원생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 중독자의 경우 페이스북 관련 이미지에 엄청난 속도로 반응했으며, 일부는 교통신호보다 페이스북 이미지에 더 빠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뇌 편도체와 줄무늬체가 활성화되었는데, 이 부위는 주로 특정 욕망에 대한 갈구 및 보상심리를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코카인 등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에게서도 이 부위가 활성화되는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SNS 플랫폼 중에서도 앞서 예시로 들었던 페이스북은 그 영향력만큼이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오는 각양각색의 게시물을 이용해 사회적 인식과 통념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힘’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미국 앨라배마에 사는 한 여성이 선천적으로 코가 없이 태어난 자신의 아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진을 삭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페이스북 측은 사진을 올린 맥글래러리라는 여성에게 어떤 통보도 하지 않았으며, 당시 이 여성은 “누구도 내가 아들의 사진을 온라인에 게재하지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페이스북에서 불쾌한 사진을 볼 수 있다면, 나 또한 우리 아들 사진을 올릴 이유가 타당하다”며 강하게 반발해 논란이 일었다. 2012년에는 미국 시카고의 한 여성이 페이스북에 올린 자신의 모유 수유 사진을 회사 측이 강제로 삭제했다며 분노를 터뜨린 바 있다. 당시 페이스북은 사진 강제 삭제의 이유를 “심한 노출”이라고 밝혔지만, 새 생명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것을 비이성적이고 선정적인 행위로 보는 페이스북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페이스북이 나름의 규정으로 게시물을 관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의식이 다른 사용자들의 반발을 감내하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페이스북의 특정한 규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사용자들의 의식과 인식 역시 페이스북의 규정에 동일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에서 날씬한 셀러브리티들의 사진을 지속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이 이를 이상적인 몸매로 여기게 돼 섭식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관계에 목마른 현대인, SNS 충성도 증가 각종 부작용 우려와 이미 현실화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SNS 사용자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하루 한 번 이상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국내 이용자만 11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SNS 사용자 및 충성도의 증가는 결국 현대인이 ‘관계’에 목말라 있음을 방증한다. 갈수록 거세지는 사회적 경쟁 속에서,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로 인식해야 하는 분위기 안에서 SNS는 일종의 쉼터이자 새로운 관계 맺기에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SNS의 순기능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는 비단 운영자만은 아니다.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다. 테러리스트를 모집하는 수단 혹은 강력범죄의 생중계에 이를 이용하는 일부 사용자들에게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사용자들이 주체적으로 순기능을 지향하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SNS 역시 사용자가 주체가 되어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huimin0217@seoul.co.kr
  • 추격 스릴러 ‘사냥’ 티저 예고편

    추격 스릴러 ‘사냥’ 티저 예고편

    안성기, 조진웅 주연 추적 스릴러 영화 ‘사냥’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사냥’은 우연히 발견된 금을 독차지하고자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 사냥꾼 ‘기성’의 목숨을 건 16시간 동안의 추격을 그린 영화다. 이번에 공개된 예고편은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비밀을 간직한 산에서 시작된다. 이어 거대한 금맥을 발견하고 기쁨에 들뜬 정체불명의 엽사 무리 앞에, 그 땅이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노파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또 본인들이 저지른 짓을 감춰야 하는 엽사 무리의 우두머리 동근(조진웅)과 이를 목격한 사냥꾼 기성(안성기)이 맞닥뜨리며 긴장감을 높인다. 들켜서는 안 될 장면을 들킨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기성의 추격전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추격전에 휘말리게 된 ‘기성’ 역을 맡아 파격 연기 변신을 한 안성기와 욕망으로 가득 찬 ‘동근’ 역을 맡아 압도적 카리스마를 선보일 조진웅까지 충무로 대표 배우들의 합류는 작품에 신뢰를 더한다. 영화 ‘최종병기 활’, ‘끝까지 간다’ 제작진이 참여한 ‘사냥’은 안성기, 조진웅을 비롯해 충무로 유망주 한예리와 권율 그리고 스릴러 장르 흥행불패 신화 손현주까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함께했다. 연출은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2005년)의 이우철 감독이 맡았다. 미로 같은 산속에서 벌어지는 16시간의 추격 스릴러 ‘사냥’은 오는 6월 개봉 예정이다. 사진 영상=롯데엔터테인먼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굿바이 미스터 블랙 종영까지 심장 ‘쫄깃’ 이진욱 문채원 ‘미소유발 엔딩’

    굿바이 미스터 블랙 종영까지 심장 ‘쫄깃’ 이진욱 문채원 ‘미소유발 엔딩’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이진욱 문채원의 로맨스가 기적 같은 해피엔딩으로 종영했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지난 19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마지막 방송에서 블랙 차지원(이진욱 분)과 김스완(문채원 분)의 생사를 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를 펼쳤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살았고, 결혼에 골인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이날 시한부였던 차지원은 의식을 잃은 채 수술실로 옮겨졌다. 김스완은 차지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읽으며 눈물 흘렸다. 그리고 차지원을 이렇게 만든 백은도(전국환 분)를 찾아가 분노를 터뜨렸다. 백은도는 마지막까지 악랄한 모습으로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김스완을 제거하고자 총으로 쏜 것. 총을 맞은 김스완은 쓰러졌고,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다. 3개월 뒤, 차지원은 성공적인 수술 결과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김스완을 찾았지만, 김스완은 이미 죽고 없는 상황. 이에 차지원은 백은도에 대한 최종 복수에 박차를 가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백은도는 중국으로 도주 계획을 짜고 있던 중이었다. 배 위에서 대치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총을 쐈고, 차지원은 정당방위로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차지원은 김스완과 떠나기로 했던 섬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자, 가장 행복한 추억이 있는 장소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김스완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김스완은 백은도를 완벽히 단죄하고자, 죽음으로 상황을 조작했었다. 두 사람은 추억이 깃든 해변에서 아름다운 재회의 키스를 나눴다. 한국으로 돌아 온 차지원과 김스완은 결혼을 약속했다. 슬프고 아팠던 과거와는 달리,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두 사람의 모습은 감동의 여운을 남겼다. 차지원과 처절한 복수극을 펼쳤던 민선재(김강우 분)의 최후는 연민을 자아냈다. 민선재는 뒤늦게 차회장의 유서를 읽고, 그의 진심을 알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민선재의 곁에는 윤마리(유인영 분)가 남았다. 윤마리는 자신을 속인 민선재가 미웠지만, 그의 진실된 사랑을 믿고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20회 동안 강렬한 복수극과 애틋한 멜로를 동시에 풀어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쫄깃함을 자아냈고, 오랜 아픔 끝에 행복하게 웃는 블랙스완 커플의 모습은 해피엔딩 그 이상의 기쁨을 선사했다. 특히 슬프도록 아름다운 멜로를 완성시킨 이진욱, 문채원의 감성연기는 안방극장에 가슴 설레는 두근거림과 애틋한 눈물을 안겼다. 또 인간의 욕망과 그림자를 선 굵은 연기로 그려낸 김강우는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처연한 여인을 연기한 유인영, 이타적 사랑을 순수하게 표현한 송재림 등 극을 풍성하게 채운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는 반응이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 후속으로는 황정음, 류준열 주연의 ‘운빨로맨스’가 25일 첫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영혼의 사랑과 도착된 사랑

    에로스는 삶의 기쁨이자 그리스 문화의 원동력이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미의 추구와 함께 성적 매력, 그리고 다양한 욕망의 분출은 그리스 특유의 에로스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리스 신화와 전설은 신들 사이, 신과 인간 사이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플라톤(BC 427~347)의 작품 ‘향연’(symposion)은 에로스에 대한 아테네 최고 지식인들의 대담집이다. 사랑은 잃어버린 자기의 반쪽을 동경하게 되면서 생겨나는 애틋한 감성이라는 아리스토파네스(BC 445?~385)의 이야기도 여기에 실렸다. 에로스에 대한 최고의 담론은 소크라테스(BC 470~399)에게서 나왔다. 그는 에로스를 결여돼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한다. 무언가 결핍을 채우려는 것이 사랑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육체적 욕망의 탐닉보다 자기에게 결여돼 있는 것들을 인식하고 지혜를 사랑할 것을 권고한다. 정신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을 요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세계를 풍미했던 소년애(paiderastia) 관습의 건강한 양태도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향연’의 말미에서 알키비아데스(BC 450~404)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최고의 꽃미남인 자신의 육체적 구애를 단호히 뿌리쳤음을 폭로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육체로 유혹하는 그를 꾸짖었다. “자네가 나와 흥정을 해서 아름다움을 아름다움과 바꾸려 한다면 자네가 나보다 더 큰 이득을 보겠다는 심산일세. 자네는 가짜 아름다움을 주고 진짜 아름다움을 얻고자 하는데, 이는 ‘청동을 황금과 맞바꾸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를 육체적 사랑이 아닌 영혼의 사랑으로 이끌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스 소년애는 소년을 강인하고 탁월한 전사로 성장시키기 위한 공동체의 선임과 후임 사이의 교육적 결합의 성격이 더 컸다. 이를테면 멘토와 멘티의 관계였다. 성인 남성 간의 육체적 탐닉이 중심이 되는 현대의 동성애와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그리스인들은 소크라테스가 지향했듯 청소년들을 육체적 사랑으로 이끄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이들을 아름다운 영혼으로 가꾸기 위해 진력했다. 나아가 이를 사회적 책무로까지 인식했다. 오늘날 청소년들을 돈으로 타락시키는 정책들이 남발되고, 청소년을 도착된 사랑으로 이끄는 현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5·18 민주화운동 ‘최후의 대자보’ 36년 만에 최초 공개

    5·18 민주화운동 ‘최후의 대자보’ 36년 만에 최초 공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이 담긴 대자보가 36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18일 전남일보가 1980년 5월 당시 전남매일신문 기자였던 김연두 전남과학대 교수로부터 입수해 최초 공개한 ‘80년 5월 최후의 대자보’는 ‘도지사가 발표한 담화문의 허구성’이라는 제목으로 8절 전지 형태로 이뤄졌다. 내용은 5월 26일 당시 장형태 전남도지사가 헬기에서 뿌린 ‘도민에게 드리는 담화문’을 반박하는 것이다. 도지사 담화문은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규정하는 등 시민군의 민주주의 수호 투쟁을 ‘비극적 사태’라고 규정했다. 이를 비판하는 이 대자보에는 “진정 도지사가 ‘친애하는 도민’이라는 정책적, 상투적인 언사를 함부로 내뱉을 수 있을 만큼 도민을 사랑했던 사람인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라면서 “진정 도민을 사랑한다면 감히 민주를 향한 도민의 몸부림을 이렇듯 함부로 매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지적했다. 이어 “도지사는 학생의 시위에 시민이 합세하는 것을 일대 비극적 사태라고 하여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였는데 학생과 시민의 민주를 향한 열정에 있어서 구별이 있을 수 있겠읍(습)니까? 민주주의라는 것은 국민이 주체가 되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학생만의 독점물도 아니요, 더구나 전두환 일개인의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고 강조했다. 이 내용은 5월 26일 오후 3시 도청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에서 낭독된 ‘도지사가 도민에게 드리는 글에 대한 반박문’을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YWCA 건물에서 활동하던 문화선전대원들이 궐기대회 반박문을 받아 와 요약하는 형태로 작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6일 오후 3시 이후, 미완성인 점으로 미뤄 오후 7시~12시 사이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자보는 5월 항쟁을 취재했던 김 교수가 5월 27일 오전 계엄군의 경비를 뚫고 전일빌딩 뒤편 YWCA 건물에 들어가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8절지 크기 2장의 대자보는 서로 다른 이의 필체로 작성됐으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완성되지 못해 미완성으로 남았다. 김 교수는 “계엄군이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전에 시민들은 무기 반납을 비롯해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했고, 이는 미완성된 대자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책]사그라들지 않는 인문학 열풍…카툰으로 만나는 인문학 입문서 출간

    [새 책]사그라들지 않는 인문학 열풍…카툰으로 만나는 인문학 입문서 출간

    인문학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인문학을 만화로 풀어낸 책 ‘카툰 인문학(지은이 전왕, 출판사 북랩)’이 출간됐다. 저자인 전왕 변호사(사시 32회)는 문학, 철학,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인류학 등 인문학 분야의 필독서를 망라해 알기 쉽고 전달하는 인문학 여행의 안내자 역할을 자처했다. 저자는 서두를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소홀히 해 온 결과 우리는 물신주의, 인간 소외, 생명 경시, 환경 파괴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인문학적 소양에 바탕을 둔 상상력, 아이디어에 의해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역설한다. ‘카툰 인문학’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현대문명 편에서는 속도, 정보화 사회, 위험사회, 웰빙, 진짜와 가짜가 전도되는 세계, 세계화, 인간 소외 등을 통해 현대문명의 다양한 속성을 묘사한다. 2장 욕망 편에서는 ‘쾌락’과 함께 욕망을 만들어 내는 기계장치로서의 자본주의를 논한다. 3장에서는 ‘사랑’의 모든 것을 고찰하며, 4장 정의 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제레미 벤담, J.S밀, 존 롤스, 찰스 디킨스 등 인류 최고의 사상가들을 소환해 정의에 관한 그들의 사유를 들려준다. 곧 이어 출간될 제2권에서는 문화, 예술, 노년, 죽음 등을 다룰 예정이다. 북랩 관계자는 “인문학은 학문적 깊이가 요구돼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전왕 변호사의 ‘카툰 인문학’의 가장 큰 미덕은 재치 있는 카툰과 명언 등을 활용해 인문학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SNS에 중독된 당신, 괜찮아요?

    [송혜민의 월드why] SNS에 중독된 당신, 괜찮아요?

    서울에 사는 40대 남성 김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SNS 중독자’로 불린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SNS로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이 올린 게시물을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시간도, 잠을 자는 시간도 구분하지 않는다. 회사일로 미팅을 할 때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스마트폰이 들려 있으며 스스로는 자신의 습관 수준을 ‘평균’이라고 주장한다. 주변에 본인 만큼 SNS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온라인 시대를 넘어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SNS는 특히 모바일에 최적화한 서비스다. 다양한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으며 덕분에 사람들은 국적과 거리, 연령과 사회적 위치를 불문하고 ‘친구’가 됐다. 그런데 이 SNS, 심상치 않다.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연구결과와 실제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학계가 우려하는 SNS의 부작용 SNS 사용이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가운데 가장 최근 제기된 것은 외적 이미지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잘못된 심미적 기준이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연구진은 2014년 미국의 19~32세 성인 1765명의 SNS사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실험참가자들의 SNS 사용패턴과 식이장애 위험, 불안증, 식욕이상 항진증(폭식을 하고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증세), 폭음이나 폭식 습관 등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동안 SNS 사용량이 많은 군에 속하는 사람은 이보다 적게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섭식장애를 겪을 위험이 2.2배 더 높았다. 또 일주일 단위로 봤을 때 로그인 빈도수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같은 질병을 겪을 위험이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SNS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집착과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SNS에서 자주 접하는 마른 모델이나 유명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현상이 결국 거식증이나 식용이상항진증 등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저 흥미 위주로 사용하는 SNS, 특히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페이스북에 중독되는 것은 마약인 코카인 중독과 유사한 생물학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연구진이 대학원생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 중독자의 경우 페이스북 관련 이미지에 엄청난 속도로 반응했으며, 일부는 교통신호보다 페이스북 이미지에 더 빠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뇌 편도체(amygdala)와 줄무늬체(striatum)가 활성화되었는데, 이 부위는 주로 특정 욕망에 대한 갈구 및 보상심리를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코카인 등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에게서도 이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공통점이 있다. ◆깊어지는 ‘페이스북’의 고민 다양한 SNS 플랫폼 중에서도 앞서 예시로 들었던 페이스북은 그 영향력만큼이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페이스북에 계정에 올라오는 각양각색의 게시물을 이용해 사회적 인식과 통념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힘’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미국 앨라배마에 사는 한 여성이 선천적으로 코가 없이 태어난 자신의 아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진을 삭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페이스북 측은 사진을 올린 맥글래러리라는 여성에게 어떤 통보도 하지 않았으며, 당시 이 여성은 “누구도 내가 아들의 사진을 온라인에 게재하지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페이스북에서 불쾌한 사진을 볼 수 있다면, 나 또한 우리 아들 사진을 올릴 이유가 타당하다”며 강하게 반발해 논란이 일었다. 2012년에는 미국 시카고의 한 여성은 페이스북에 올린 자신의 모유수유 사진을 회사 측이 강제로 삭제했다며 분노를 터뜨린 바 있다. 당시 페이스북은 사진 강제 삭제의 이유를 “심한 노출”이라고 밝혔지만, 새 생명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것을 비이성적이고 선정적인 행위로 보는 페이스북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페이스북이 나름의 규정으로 게시물을 관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의식이 다른 사용자들의 반발을 감내하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페이스북이 특정한 규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사용자들의 의식과 인식 역시 페이스북의 규정에 동일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에서 날씬한 셀러브리티들의 사진을 지속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이 이를 이상적인 몸매로 여기게 돼 섭식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SNS 사용자 증가가 의미하는 것 각종 부작용 우려와 이미 현실화 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SNS사용자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하루 한 번 이상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국내 이용자만 11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SNS 사용자 및 충성도의 증가는 결국 현대인이 ‘관계’에 목말라 있음을 방증한다. 갈수록 거세지는 사회적 경쟁 속에서,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로 인식해야 하는 분위기 안에서 SNS는 일종의 쉼터이자 새로운 관계 맺기에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SNS의 순기능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는 비단 운영자만은 아니다.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다. 테러리스트를 모집하는 수단 혹은 강력범죄의 생중계에 이를 이용하는 일부 사용자들에게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사용자들이 주체적으로 순기능을 지향하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SNS 역시 사용자가 주체가 되어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폭력적 문명에 대한 끈질긴 탐구… 문학의 힘으로 현실 투시

    폭력적 문명에 대한 끈질긴 탐구… 문학의 힘으로 현실 투시

    1994년 단편 ‘붉은 닻’(서울신문 신춘문예)으로 등단한 이래 한강의 소설은 비극적인 세계 속에서 고투하면서 살아가는 개별 인간들의 운명을 주시해왔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에서 장편 ‘소년이 온다’(2014)에 이르기까지 한강 소설의 중요한 바탕이 되는 것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문명세계에 대한 끈질긴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소설들에서 이러한 탐구는 주로 관계불능에 빠진 고립된 존재들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등단작에서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적인 비유와 묘사의 문체, 강렬한 색채 이미지는 한강 소설이 호소하는 인물들의 절망과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고유한 역할을 하고 있다. ‘채식주의자’(2007)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세계문학의 영역에서 현재의 독자들에게 와 닿는 것도 삶의 비극성에 맞서는 뜨겁고 강렬한 개인의 욕망을 감각적인 상징들로 구체화한 데 힘입고 있다. 지금까지 한강의 소설은 삶과 죽음, 동물과 식물, 어둠과 빛, 문명과 자연, 고통과 구원이라는 대조적인 테마를 극화시켜 그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뚫고 나아가려는 인간의 내면적인 분투를 집중적으로 부각해왔다. 특히 여성으로 자각하는 가부장적 폭력의 현실은 한강 소설의 개인들이 부조리한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단편집인 ‘내 여자의 열매’는 여성 자아가 감지하는 일상의 균열과 폭력을 예민하게 묘파함으로써 ‘채식주의자’로 연결되는 한강 소설의 심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인물들이 힘겹게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탈주의 상상력은 ‘식물 되기’의 변신 모티프를 통해서 한강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상징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삶에 뿌리 박고 있는 존재들의 고투를 보여주는 이 절실한 상징은 문명세계에 대한 치열한 비판적 사유라는 점에서도 폭넓은 공감대를 가져온다. 무엇보다도 광주항쟁의 역사적 기억을 증언하는 장편 ‘소년이 온다’와 단편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은 최근 한강 소설의 중요한 변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노랑무늬 영원’과 ‘희랍어시간’부터 전면화하기 시작한 아포리즘과 고백의 화법은 ‘소년이 온다’에서 역사적 기억과 접합되면서 인물 개개의 내면을 생생하게 끌어올리는 절실한 목소리로 확장된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역시 공동체의 기억과 개인이 결부되는 지점에서 구원과 평화의 테마를 섬세하게 탐색함으로써 앞으로 한강 소설이 어떠한 변모와 확장을 더해나갈지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폭력과 야만의 세계를 투시하는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학의 언어로서 세계의 많은 독자들과 만나게 된 ‘채식주의자’는 이렇듯 20여년 이상 꾸준히 심화되고 확장되어온 한강 소설의 전체적인 지평 속에서 더욱 새롭고 의미 있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 박완서 막장 소설·김영하 무협지…첫사랑을 품고 사는 한 남자

    박완서 막장 소설·김영하 무협지…첫사랑을 품고 사는 한 남자

    “묻혀있던 옛 책들마다 스토리 담겨… 박인환의 유고시집은 꼭 찾고 싶다” 헌책과 단단히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그동안 모은 책이 3만여권을 훌쩍 넘는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10년째 복합문화공간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심야책방’,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등을 쓴 작가 윤성근(41)씨 얘기다. 그가 신작 ‘탐서(探書)의 즐거움’(모요사) 을 펴냈다. 감칠맛이 묻어나는 이 책은 작가들이 꼭꼭 숨기고 싶은 비밀을 짓궂게 드러낸다. 윤 대표의 말대로 유명한 작가들의 ‘망작’(망한 작품)이나 ‘괴작’(괴이한 작품), 절필한 작가의 이색적인 책부터 갖가지 사연이 얽힌 책들이 그의 서가이자 헌책방에 꽂혀 있다. “소설가 박완서가 생애 마지막 전집에서도 빼게 한 소설이 있어요. 1979년에 초판본이 나온 ‘욕망의 응달’이라는 소설이죠. 주인공인 미혼모가 딸과 함께 어머니가 각각 다른 형제 9명이 사는 저택에 들어가 살게 된 후 벌어지는 살인 및 방화 사건 속에서 욕망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요즘으로 치면 초대형 막장 드라마죠. 소설가 김영하는 어떻고요. 공식 작품 목록에선 빠져 있지만 그의 첫 데뷔 소설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무협지로 그려 낸 1992년 초판본 ‘무협학생운동’이에요.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책이죠.” 윤 대표는 초판본의 매력에 대해 “사람으로 따지면 첫사랑 같다”며 “작품에 얽힌 작가들의 사연뿐 아니라 헌책을 찾아다니는 독자들의 사연들도 초판본에 묻어 나온다”고 말한다. 윤 대표에게 1960년대는 ‘천재들의 전성시대’다. 김승옥, 황석영, 최인호, 박상륭, 김현 등 한국 문학사에 혜성처럼 떠오른 스타 작가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윤 대표가 특히 아끼는 책은 ‘무진기행’의 김승옥이 절필 전 남긴 유일한 수필집인 1977년 초판본 ‘뜬 세상에 살기에’이다. 김승옥은 1981년 갑자기 신의 음성을 들었다며 펜을 꺾는다. 이 책에는 평론가 김현과 함께 만든 잡지 ‘산문시대’에 얽힌 후일담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작 해설도 들어 있다. ‘산문시대’ 창간호는 300부 한정본으로 찍혀 헌책방 분야에서는 귀한 책으로 꼽힌다. 2013년 타계한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20개 나라를 여행한 후 1975년에 펴낸 ‘맨발의 세계일주’ 초판본도 눈에 띄는 컬렉션이다. 윤 대표가 가장 애독하는 책은 어린 시절 세계를 동경하게 만들었던 김찬삼의 ‘세계일주 무전여행기’ 1962년 초판본. 김찬삼이 처음 세계여행에 나선 때가 1958년이니 놀랍지 않은가. 윤 대표에게도 꼭 찾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최고의 낭만시인으로 꼽히는 박인환의 첫 시집이다. 수집가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희소가치가 높은 책이다. 박인환의 첫 시집이자 유고집인 ‘박인환 선시집’은 출고를 눈앞에 두고 인쇄소 화재로 모두 불타 버린다. 책 수집가들은 화재가 나기 전 출판사가 박인환에게 샘플로 보낸 오리지널 양장본 5권에 주목한다. 세상에 몇 권 남지 않은 박인환의 유일한 자취이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가끔 나 자신이 탐정 같다. 한 사람을 찾으려면 그 사람의 행적을 조사하듯이 세상에 묻혀진 옛 책들도 모두 행적과 스토리를 조사하게 되면 비로소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2011년 10월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을 책방으로 디자인했던 당사자로도 유명세를 탔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도 윤 대표의 책방을 이따금 찾아와 책을 사 가거나 머물다 간다. 윤 대표의 탐서법은 무엇일까. “책을 읽어서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책을 읽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그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글 사진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헌책과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듣는 ‘탐서의 즐거움’

    헌책과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듣는 ‘탐서의 즐거움’

     헌책과 단단히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그동안 모은 책이 3만여권을 훌쩍 넘는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10년째 복합문화공간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심야책방’,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등을 쓴 작가 윤성근(41)씨 얘기다 그가 신작 ‘탐서(探書)의 즐거움’(모요사) 을 펴냈다. 감칠맛이 묻어나는 이 책은 작가들이 꼭꼭 숨기고 싶은 비밀을 짓궂게 드러낸다. 그의 말대로 유명한 작가들의 ‘망작’(망한 작품)이나 ‘괴작’(괴이한 작품), 절필한 작가의 이색적인 책부터 갖가지 사연이 얽힌 책들이 그의 서가이자 헌책방에 꽂혀 있다.  “소설가 박완서가 생애 마지막 전집에서도 빼게 한 소설이 있어요. 1979년에 초판본이 나온 ‘욕망의 응달’이라는 소설이죠. 주인공인 미혼모가 딸과 함께 어머니가 각각 다른 형제 9명이 사는 저택에 들어가 살게 된 후 벌어지는 살인 및 방화 사건 속에서 욕망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요즘으로 치면 초대형 막장 드라마죠. 소설가 김영하는 어떻고요. 공식 작품 목록에선 빠져 있지만 그의 첫 데뷔 소설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무협지로 그려 낸 1992년 초판본 ‘무협학생운동’이에요.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책이죠.”  윤 대표는 초판본의 매력에 대해 “사람으로 따지면 첫사랑 같다”며 “작품에 얽힌 작가들의 사연뿐 아니라 헌책을 찾아다니는 독자들의 사연들도 초판본에 묻어 나온다”고 말한다. 윤 대표에게 1960년대는 ‘천재들의 전성시대’다. 김승옥, 황석영, 최인호, 박상륭, 김현 등 한국 문학사에 혜성처럼 떠오른 스타 작가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윤 대표가 특히 아끼는 책은 ‘무진기행’의 김승옥이 절필 전 남긴 유일한 수필집인 1977년 초판본 ‘뜬 세상에 살기에’이다. 김승옥은 1981년 갑자기 신의 음성을 들었다며 펜을 꺾는다. 이 책에는 평론가 김현과 함께 만든 잡지 ‘산문시대’에 얽힌 후일담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작 해설도 들어 있다. ‘산문시대’ 창간호는 300부 한정본으로 찍혀 헌책방 분야에서는 귀한 책으로 꼽힌다.  2013년 타계한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20개 나라를 여행한 후 1975년에 펴낸 ‘맨발의 세계일주’ 초판본도 눈에 띄는 컬렉션이다. 윤 대표가 가장 애독하는 책은 어린 시절 세계를 동경하게 만들었던 김찬삼의 ‘세계일주 무전여행기’ 1962년 초판본. 김찬삼이 처음 세계여행에 나선 때가 1958년이니 놀랍지 않은가.  윤 대표에게도 꼭 찾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최고의 낭만시인으로 꼽히는 박인환의 첫 시집이다. 수집가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희소가치가 높은 책이다. 박인환의 첫 시집이자 유고집인 ‘박인환 선시집’은 출고를 눈앞에 두고 인쇄소 화재로 모두 불타 버린다. 책 수집가들은 화재가 나기 전 출판사가 박인환에게 샘플로 보낸 오리지널 양장본 5권에 주목한다. 세상에 몇 권 남지 않은 박인환의 유일한 자취이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가끔 나 자신이 탐정 같다. 한 사람을 찾으려면 그 사람의 행적을 조사하듯이 세상에 묻혀진 옛 책들도 모두 행적과 스토리를 조사하게 되면 비로소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2011년 10월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을 책방으로 디자인했던 당사자로도 유명세를 탔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도 윤 대표의 책방을 이따금 찾아와 책을 사 가거나 머물다 간다.  윤 대표의 탐서법은 무엇일까. “책을 읽어서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책을 읽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그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글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박찬욱 감독, “‘아가씨’는 모호한 구석 없는 상업·오락 영화… 수상 기대감 없다”

    박찬욱 감독, “‘아가씨’는 모호한 구석 없는 상업·오락 영화… 수상 기대감 없다”

      ‘아가씨’로 7년 만에 칸국제영화제를 다시 찾은 박찬욱 감독은 15일(현지시간) 오전 한국 기자단과 미니 간담회를 열고 전날 밤 있었던 월드 프리미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까지 상영된 경쟁 부문 후보작 중 별점이 중하위권인데.  -늘 겪는 일이다. 내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칸에서 전에 상을 받을 때도 그랬다.  반응이 양극인데.  -그래도 이번엔 권선징악의 명쾌한 에피소드라 모두가 좋아할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여성 영화가 많아지는 것 같은데.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는 그런 경향이 있다. ‘박쥐’도 여성적인 면이 강한 영화고 나머지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어쩌다 보니 여자 주인공이 두명인 영화까지 오게 됐다.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에 대한 생각은 없나.  - ‘스토커’ 다음에는 남성적이고 와일드한 남자 주인공 영화를 하고 싶어서 미국 쪽과 서부 영화를 하기로 이야기됐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내가 고친 각본을 투자자가 좋아하지 않았다. 남성 영화 하나를 한 다음에 이 작품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스토커’ 이후 또 여성 주인공인 영화를 한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는데 그래도 남성 영화에 대한 각본을 쓰고 나니 약간 해소된 기분이 들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영화로 만든 까닭은.  -여성주의 영화를 만드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원작을 읽는 데 드라마 연속극을 보는 시청자 입장이 되더라. 그래서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각본을 쓰게 됐다.  두 여성의 베드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몸이 어떻게 겹쳐지느냐, 움직이느냐 보다 손을 맞잡을 때 느낌이 좋았다. 그냥 성관계가 아니라 진짜 친밀하고 서로를 위해주고 하나가 되는 정서적인 기분을 담고 싶었다. 두 여자 주인공이 손을 맞잡는 장면이 세 번 정도 나오는 데 이 영화의 핵심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들의 정사 장면을 찍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감독 이름을 비워 남자가 찍었는지 여자가 찍었는지 모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마당에 비판을 피해갈 생각은 없었다. 욕망과 충동에서 거칠고 과격하게 달려가는 그런 것보다 친밀하고 부드럽고 대화에 가까운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비교되는데.  -그 작품은 오르내리는 연인들의 감정 같은 작품인데 ‘아가씨’는 스릴러의 외형을 갖고 있다. 음모와 범죄가 개입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음모를 위해 본마음을 감추고 거짓말을 한다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자기 본심과 자기가 해야 하는 임무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자기 임무에 자기 감정이 방해가 되고, 임무에 충실하려면 감정을 배반해야 하니까 미안해지고?그런 죄책감이 핵심이다.  수상을 기대해도 좋을지.  -내가 한국에서 ‘너무 상업적인 오락 영화라서 솔직히 경쟁 부문에 부를 지 몰랐다’고 했는데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관련 보도를 봤는지, 내게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묻더라. 월드 프리미어 상영이 끝나고 박수를 받으며 나올 때도 집행위원장이 그랬다. 이런 반응을 보고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영화제용 영화로 분류하려면 모호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아가씨’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다.  칸(프랑스)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배드 걸 굿 걸(수전 더글러스 지음, 이은경 옮김, 글항아리 펴냄) 대중문화 속에 진화된 성차별주의를 해부하며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강박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펼쳐낸다. 580쪽. 2만 3000원. 미친 교수의 헬수업(박성태 지음, 가디언 펴냄) 학생들로부터 2000여통이 넘는 손편지를 받은 화제의 강의를 담은 내용으로 학생들 스스로 특별함을 찾는 법칙들을 소개한다. 248쪽. 1만 3000원. 백년의 마라톤(마이클 필스버리 지음, 한정은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세계 유일의 패권국을 꿈꾸는 중국의 욕망에 대응해 미국이 중국의 실체를 보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을 담았다. 384쪽. 1만 7000원. 자본주의 길들이기: 자본과 자본 아닌 것의 역사(장문석 지음, 창비 펴냄) 이탈리아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요소들이 활용된 사례를 제시하면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아닌 것의 공존을 전한다. 356쪽. 1만 8000원. 감정 테러리스트(레오 마르틴 지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펴냄) 전직 독일 비밀첩보 요원인 저자는 ‘감정 테러리스트’를 다혈질형, 자만심 과다형, 불평불만분자형 등으로 나누고 방어책을 설명한다. 292쪽. 1만 4000원. 병에서 나온 형(에밀리 샤즈랑 지음, 오렐리 귀으리 그림, 박선주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 슈퍼에서 산 ‘형이 나오는 병’에서 갈망하던 형을 얻은 이폴리트. 하지만 형이 생기자 말썽도 함께 생긴다. 외동인 아이, 형제가 있는 아이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그림책. 48쪽. 1만 2000원.
  •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굴곡진 佛道 끝에 만나는 자비

    그리 너른 숲은 아닙니다. 작정하고 찾을 만큼 빼어나지도 않습니다. 외려 볼품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경북 의성의 법계도림 이야기입니다. 신라시대의 고승 의상이 남긴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미로 숲입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미로가 말하려는 건 세상을 사는 이치입니다. 늘 되뇌면서도 번번이 실천하지 못했던 그런 이치들 말입니다. 미로 숲 위는 고운사입니다. 시대와 반목했던 ‘비운의 천재’ 최치원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는 절집입니다. 와가들이 밀집한 사촌마을도 예서 멀지 않지요. 의성엔 이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기웃댈 만한 풍경들이 꽤 많습니다. 법계도림은 의상(625~702)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일승법계도(華巖一乘法界圖, 이하 법계도)를 토대로 만든 숲이다. 화엄사상의 요체를 210개의 글자를 이용해 간결한 시로 축약한 뒤 이를 54개 굽이(角)의 사각형 미로로 만들었다. 쉽게 말해 국내 화엄종의 개조(開祖)로 추앙받는 의상의 화엄세계를 현실 속에 구현한 숲이 바로 법계도림이다. ●의상이 설계한 법계도… 여래의 一音 나타내 법계도는 ‘법’(法) 자에서 시작해 ‘불’(佛) 자에서 끝난다. 한데 의상은 왜 이 같은 미로 형태의 그림시를 그렸을까. 그는 자신이 남긴 몇 가지 책을 통해 자문자답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글이 하나의 길을 이룬 건 여래의 일음(一音)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굴곡진 까닭은 가르침을 받을 중생의 능력과 욕망이 같지 않기 때문이고, 시작과 끝이 있는 건 수행에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면사각의 형태를 띤 것은 자비를 발현하고 불도(佛道)에 드는 방법을 사섭사무량(四攝四無量)으로 표현한 것이다. 법계도림을 설계한 이는 고운사 주지인 호성 스님이다. 그는 법계도림을 활용해 살아 있는 목탑을 만들려 했다. 법계도림의 중심부에 큰 은행나무를 하나 세우고 주변에 키 작은 단풍나무들을 심어 놓으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레 탑 형태의 숲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법계도림에 들어서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일이 잦다. 단풍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펼쳐 놓았기 때문이다. 찾는 이 드문 탓에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는 일도 흔하다. 이처럼 걷기에 불편하다 보니 개선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무는 죄다 뽑고 내년쯤 다른 나무를 심을 예정이란다. 향나무처럼 위로 곧추 자라 길을 쉽게 낼 수 있는 수종이 대체재로 꼽힌다. 한데 불현듯 딴생각이 든다. 이처럼 좁고 불편한 길은 절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잘 정돈된 미로는 놀이공원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길이 다소 불편한들 무엇이 문제일까. 이를 하심(下心)을 종용하는 심모원려라 볼 수는 없을까. 작은 티끌 안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좁고 불편한 길을 성찰의 자세로 돌아보는 게 외려 법계도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계획대로라면 붉고 푸른 단풍나무가 노란 민들레꽃과 어우러진 소박한 길은 내년 이후엔 볼 수 없다. ●신라 문장가 최치원의 흔적 남은 ‘고운사’ 법계도림 위는 고운사다. 신라의 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의 호를 딴 절집이다. 60여 말사를 거느린 큰 절집이지만 여느 곳과 달리 주차료나 입장료 한 푼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진입로가 인상적이다. 금강송과 굴참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길이 1㎞쯤 이어진다. 이를 ‘천년숲길’이라 부른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족할 길은 그러나 심연으로 들어가는 소로처럼 깊다. 늙은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엔 천년간 봉인된 고운의 체취가 서린 듯하다. 천년숲길을 나와 일주문, 사천왕문 등을 거푸 지나면 가운루(駕雲樓)에 닿는다. 최치원이 건축에 힘을 보탰다는 건축물로, 고운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화재 중 하나다. 최치원이 원래 지었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다. 멍에를 쓰듯, 평생 불성(虛)을 짊어지고(駕) 가라는 뜻이란다. 이를 현재의 현판으로 바꿔 쓴 이는 고려 공민왕이다. 사랑하던 노국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진 공민왕이 전국을 유람하다 고운사에 들러 어필을 남겼다고 한다. 고운사에는 유교와 도교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다. 우화루 뒤편의 ‘만세문’은 솟을대문 모양이다. 절집 건물치고는 독특한 형태다. 만세문 뒤는 연수전이다. 조선 왕실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던 건물이다. 안내판은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떠받들던 시대에 사찰 안에 이렇듯 왕실과 관련되는 건물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이채롭다’고 적고 있다. 식당 건물엔 호랑이 벽화가 보관돼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호랑이 눈과 마주하게 된다는 벽화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가르침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팔승일경’… 빙계계곡의 웅숭깊은 풍경 고운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이 있다. 1390년께 기와집들이 숲을 이루던 사촌마을 주변에 조성된 비보림(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기가 약한 곳에 조성한 숲)이다. 현지 주민들은 흔히 ‘가리쑤’라 부른다. 바람을 가리는 ‘쑤’(숲)란 뜻이다. 한실천 제방을 따라 800m 정도 이어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밀집돼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가로숲 안쪽의 사촌마을에선 1582년 지은 만취당(보물 1825호) 등의 고택과 만날 수 있다. 의성 남쪽의 빙계계곡은 오래전부터 의성에서 가장 빼어난 경승지로 꼽혔던 곳이다. 계곡에 들면 ‘경북팔승일경’(慶北八勝一景)이라는 표지판을 흔히 본다. 경북의 여덟 가지 빼어난 경치 가운데 첫째가는 곳이란 뜻이다. 자신감과 도도함이 글자 곳곳에서 느껴진다.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이런 도저한 표현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거무튀튀한 절벽이 2㎞가량 돌아가며 만든 풍경만큼은 제법 웅숭깊다. 빙계계곡의 자랑거리는 대략 세 가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온다는 얼음 구멍 빙혈(氷穴, 천연기념물 제527호)과 풍혈(風穴), 그리고 빙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이다. 셋 모두 계곡 왼쪽 마을에 몰려 있다. 얼음동굴에 들면 서늘한 기운이 뒷목을 스친다. 실제로 한여름에도 고드름이 열린다고 한다. 빙혈 바로 위의 풍혈에서도 에어컨 같은 바람이 나온다.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 따뜻한 김이 솟는다’더니, 그리 과장 섞인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는데, 빙계계곡 등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자태가 한결 돋보인다. 인근의 금성산 고분군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조문국(召文國)의 경덕왕릉 등 고분 몇 기가 남아 있다. 조문국은 신라보다 앞선 기원전 1세기 무렵, 지금의 금성면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고대 부족국가다. 왕릉 주변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 고분군 끝자락의 조문국 박물관에서 조문국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초여름의 명물로 꼽히는 금성산 고분군 앞 작약꽃밭은 5월 말~6월께 만개한다. 글 사진 의성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고운사는 안동과 경계인 의성 동북쪽에 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의성 방면 5번 국도로 갈아탄 뒤 망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점곡 방면 7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8㎞쯤 가면 된다. 사촌마을과 사촌가로숲, 의성 소계당 등 볼만한 풍경들이 지척에 널렸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길 권한다. 빙계계곡은 의성의 동남쪽 끝에 있다. 조문국의 흔적이 남은 금성산 고분군, 조문국 박물관, 산수유 마을 등을 묶어 돌아보는 게 좋다. 여느 여행지와 달리 고운사, 조문국 박물관 등 관광지들이 죄다 무료다. 입장료 걱정 없이 다녀도 좋겠다. →맛집:의성 하면 마늘 먹인 소가 대표 먹거리다. 군청 인근 의성마늘목장(830-6283)과 안계면의 마늘목장한우타운(862-8592) 등이 이름났다. 탑산약수온천이 있는 봉양면에도 의성마늘소먹거리타운이 조성돼 있다. 의성마늘이야기(834-8843)는 마늘로 맛을 낸 백반, 묵은지찜 등을 내는 집이다. 의성읍내에 있다. →잘 곳:군청에서 운영하는 금봉산 자연휴양림(833-0123)이 깨끗하다. 금성면 산운마을의 운초당, 의성소우당, 점곡면 사촌마을의 초해고택, 후산정사, 안동김씨 종택 등에서 한옥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군청 문화관광과 830-6549.
  • 재개봉作 ‘피아니스트’ 메인 예고편

    재개봉作 ‘피아니스트’ 메인 예고편

    15년 만에 재개봉하는 세계적인 거장 미카엘 하네케 감독 대표작 ‘피아니스트’의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피아니스트’는 우아하고 지적인 피아니스트 에리카가 어느 날 자신에게 첫눈에 반한 한 젊은 청년을 만나면서 차츰 드러나는 비뚤어진 사랑과 욕망을 그린 작품이다.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가 원작이다. 공개된 예고편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파격적인 연출과 그의 뮤즈, 이자벨 위페르의 우아하고도 품격 있는 연기가 시선을 모은다. 또 그녀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월터’로 분한 브누와 마지멜의 눈빛 연기가 강렬한 시너지를 뿜어낸다. 한편 “너의 연주가 나를 자극한다”라는 카피와 “교수님은 사랑이 뭔지 알아요?”, “네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걸 적어줄게”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들은 사랑과 욕망에 관한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피아니스트’는 제5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까지 3개 부문을 석권하며 영화계에서 찬사와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오는 6월 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30분. 사진 영상=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아가씨 6월 1일 개봉 확정, 하정우-김민희-조진웅-김태리 ‘긴장감 폭발’

    아가씨 6월 1일 개봉 확정, 하정우-김민희-조진웅-김태리 ‘긴장감 폭발’

    제 69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6월 1일 개봉을 확정 지었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6월 1일 개봉을 확정한 ‘아가씨’는 서로 다른 속내와 욕망을 지닌 인물들의 뒤얽힌 관계와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고스란히 담아낸 2종 메인 포스터를 11일 공개했다. 첫 번째 메인 포스터는 순수함과 비밀스러운 매력을 넘나드는 아가씨, 그녀의 뒤에서 서로를 향해 뻗은 손길로 욕망을 드러낸 백작과 하녀, 후견인의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아가씨의 손을 잡은 하녀, 하녀의 뒷덜미를 강하게 쥔 채 아가씨의 어깨에 손을 올린 백작, 그리고 이들의 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아가씨의 머리에 손을 뻗고 있는 후견인까지 서로를 향하는 이들의 손길은 깊숙한 곳에 감춰 두었던 인물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어 흥미를 더한다. 특히 ‘가짜한테 마음을 빼앗겼다’는 카피와 어우러지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표정은 팽팽한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두 번째 메인 포스터는 귀족 아가씨를 중심으로 사기꾼 백작과 하녀, 후견인까지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밀착해 있는 이들의 관능적인 모습으로 긴장감을 선사한다. 뒤엉켜 있지만 각기 다른 곳에 시선을 둔 네 인물의 모습은 속내를 감춘 채 서로 속고 속이는 이들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차가운 무표정의 아가씨 김민희와 그녀를 바라보는 백작 하정우, 눈을 감고 있는 하녀 김태리, 백작을 쳐다보는 후견인 조진웅. 서로를 향해 교차하는 이들의 시선은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관능과 매혹을 넘나드는 이미지들이다. ‘아가씨’는 7분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 아메리칸 필름 마켓과 유로피안 필름 마켓, 홍콩 필름 마켓에서 120개국에 선판매됐으며, 제69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돼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입증한 바 있다. ‘아가씨’는 오는 14일 칸국제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리는 프레스 스크리닝과 공식상영을 통해 세계에 최초 공개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유럽은 마녀 내세워 문명 키웠다”

    “유럽은 마녀 내세워 문명 키웠다”

    여성을 악의 대명사 격으로 묘사 지배층의 반여성적 시각 드러내 마녀/주경철 지음/생각의 힘/336쪽/1만 6000원 흔히들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의 광기로 생각된다. 그러나 마녀사냥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쳐 계몽주의의 환한 빛이 세상을 비추는 근대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중세 이후 근대까지 공포에 떨게 했던 마녀사냥은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1805년 최후의 재판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그동안 근대 세계의 형성에 관심을 두고 저작 활동을 해온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신작이다. 그의 전작 ‘문화로 읽는 세계사’와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등에서 단편적으로 다뤄진 마녀사냥을 서구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의 필연성과 마녀사냥의 문화적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미시사회학적으로 조명한 역작이다. 저자가 근대 초에 마녀사냥이 정점을 이뤘다는 점에 주목하며 풀어낸 원인은 이렇다. 문명의 이면에 ‘야만의 심연’을 정치적 기제로 숨겨 놓았다는 지적이다. 서구 근대성은 진리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했고, 마녀사냥은 이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근대성의 산물이었다. 중세부터 유럽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종교 문화로 떠올랐지만 실상은 귀신이나 요정, 각종 영과 고대 이교 신들의 흔적이 강력하게 잔존해 있었다. 초자연적인 힘들에 대한 믿음은 민중들에게 마술적 세계관이 되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교회와 국가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하고 신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동원한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점을 치거나 병을 치료해주던 민간 신앙 전파자들이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렸으며 국가와 교회, 마을공동체의 복합적 관계 속에 16~17세기 마녀사냥이 유럽을 휩쓸었다. 1400년부터 1775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마녀 재판으로 처형된 사람은 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점에서 마녀사냥의 첫 번째 성격은 민중을 억압하는 근대성의 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마녀사냥을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한때 일탈했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자라온 현상으로 규정한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다. 근대 유럽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과 마성 등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확고했고, 이런 의미에서 신성의 반대되는 개념인 마녀는 억지로라도 발명됐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마녀사냥이 ‘반(反)여성성’을 띤 억압이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성 희생자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1350년 이전 악마적인 사악한 행위의 재판 대상자 중 70%가 남성이었고 30%가 여성이었지만 14세기 후반에는 남성 대 여성 비율이 42% 대 58%로, 15세기에는 여성 비율이 60~70%로 늘게 되고, 16~17세기로 가면 80%에 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지배계층인 남성들의 인식에서 여성은 욕망에 약하며, 모든 악덕은 그들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반여성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같은 생각은 악의 대변인인 마녀가 대개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고착화된다. 프랑스의 영웅이자 신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잔 다르크는 이 점에서 마녀라는 강한 의심을 받았다. 잔 다르크를 생포한 영국 역시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의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녀가 마녀 혹은 이단이라는 증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잔 다르크는 자신을 우상화하고, 악령의 도움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주 교수는 결론에서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행위는 중·근대 유럽뿐 아니라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나치 치하에선 유대인이, 파시스트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편을 악으로 모는 마녀사냥은 문명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야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마녀보감 장희진, 스틸컷 보니 ‘단아한 기품+불안한 눈빛’ 흑주술 동참

    마녀보감 장희진, 스틸컷 보니 ‘단아한 기품+불안한 눈빛’ 흑주술 동참

    배우 장희진이 ‘마녀보감’에서 슬픈 운명의 왕비로 분해 절제되고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욱씨남정기’ 후속으로 방송되는 JTBC 새 금토드라마 ‘마녀보감’ (연출 조현탁, 극본 양혁문, 제작 아폴로픽쳐스·드라마하우스·미디어앤아트) 측은 6일 극중 중전 심씨 역을 맡은 장희진의 촬영 스틸컷을 전격 공개했다. 공개된 ‘마녀보감’ 스틸 속 장희진은 단아한 매력과 왕비의 우아한 기품을 과시하고 있다. 절제된 표정 속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맺힌 촉촉한 눈망울은 아련하고 슬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녀보감’에서 장희진이 연기하는 중전 심씨는 대비 윤씨(김영애 분)의 수렴첨정으로 허수아비 신세인 명종의 비다. 14세에 왕비로 책봉된 뒤 수 년 간 아이 소식이 없어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다 흑주술을 통해 세자를 낳으려는 대비 윤씨와 홍주(염정아 분)의 위험한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슬픈 운명에 휩싸이는 중전 심씨는 훗날 죽은 세자에게 집착하는 모성애로 서리의 운명을 위협하게 된다. 중전 심씨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자태로 본래 얼굴을 감추고 있지만 그 속내를 쉽게 짐작하기 힘든 복잡한 내면의 인물이다. 서리에게 덧씌워진 저주와 슬픈 운명의 시작점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장희진은 중전 심씨가 가진 복잡한 욕망과 감정들을 드러내기보다 내면으로 삭히며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을 표현해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아련하고 애자한 눈빛은 중전 심씨의 슬픈 운명을 예고하는 듯하다. 특히 소복을 입은 여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장희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장희진은 무덤덤한 듯 아슬아슬한 얼굴로 이 여인을 바라보며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두 여인이 얽힐 수밖에 없는 사연과 이들의 만남이 서리와 허준(윤시윤 분)의 운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점 심씨는 표현보다 절제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캐릭터. 쉽지 않은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장희진은 극도로 몰입하며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흑주술에 동참한 장본인이자 그로 인해 위험한 운명에 빠져드는 중전 심씨를 연기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대본을 손에서 떼지 않는 다는 후문. 섬세한 계산을 통해 탄생한 티저 영상 속 오열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마녀보감’ 제작진은 “중전 심씨는 온화한 외면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다. 흑주술을 통해 세자를 가지려는 욕망, 세자를 향한 집착과 모성애 등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인물. 장희진은 섬세하고도 깊이 있는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중전 심씨라는 인물은 장희진의 연기 덕분에 더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인물로 탄생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조선 청춘 설화 ‘마녀보감’은 저주로 얼어붙은 심장을 가진 마녀가 된 비운의 공주 서리와 마음 속 성난 불꽃을 감춘 열혈 청춘 허준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조선의 마녀’라는 독특한 소재에 지금까지의 드라마에서 선보인 적 없는 피 끓는 ‘청춘’ 허준 캐릭터를 재탄생 시키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윤시윤 김새론 이성재 염정아 곽시양 김영애 전미선 문가영 조달환 장희진 최성원 이이경 이지훈 등 최강 라인업과 ‘하녀들’ 조현탁 PD의 합류로 JTBC 명품 사극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마녀보감’은 ‘욱씨남정기’ 후속으로 오는 5월 13일 JTBC에서 첫 방송된다. 사진= ‘마녀보감’ 스틸컷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해피투게더’ 이제훈, 잔망 캐릭터 ‘끼부림계 뉴페이스’ 예능 욕망 폭발

    ‘해피투게더’ 이제훈, 잔망 캐릭터 ‘끼부림계 뉴페이스’ 예능 욕망 폭발

    이제훈이 끼부림계의 뉴페이스에 등극했다. 지난 5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이하 ‘해투’)는 ‘올킬 남녀 특집’으로 배우 이제훈-김성균-문희경, 에이핑크 정은지-김남주가 출연해 목요일 밤 안방극장을 웃음으로 올킬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영화배우 이제훈은 순수한 얼굴 뒤 치명적인 잔망매력을 드러내며 ‘해투’를 ‘이제훈 입덕방송’으로 만들었다. 이날 이제훈은 시작과 함께 끼를 부려(?)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MC 전현무의 무릎에 앉기를 시도한 것. 4년 전 ‘해투’에 출연해 험난한 예능 신고식을 치렀던 이제훈의 작정한 예능 욕망이 드러난 대목이었다. 끼부리기와 함께 폭발한 이제훈의 예능감은 갈수록 활활 타올랐다. 이제훈은 함께 영화를 찍은 김성균이 “이제훈은 현실에서 노잼”이라고 폭로하자 “저는 핵노잼인 것 같다”며 셀프 디스를 감행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제훈은 ‘미담 제조기’ 유재석의 자리를 위협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제훈은 “촬영 중 스태프가 배탈이 난 것을 알았다. 모두들 신경을 안 쓰는데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 그래서 홍콩에서 사온 만병 통치약을 건넸다”며 훈훈한 미담을 털어놨다. 이에 전현무가 “몰래 한 일이 왜 이렇게 알려졌나?”고 의문을 제기하자, 이제훈은 능청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러게요?”라고 답해 폭소를 유발했다. 그런가 하면 이제훈은 에이핑크 정은지-김남주, 박명수, 문희경을 들었다 놨다 하며 쫄깃한 재미를 선사했다. 이제훈은 “에이핑크를 아냐?”는 질문에 “두 분을 안다. 정은지 씨랑, 그 누구더라”라며 뜸을 들이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김남주씨?”라고 답하며 밀당을 펼쳤다. 또한 이제훈은 “요즘 EDM 음악을 자주 듣는다”면서 ‘EDM 공장장’ 박명수를 급 방긋하게 만들자마자 “그런데 시끄러운 것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해 박명수에게 굴욕을 안긴데 이어 “박명수의 노래는 너무 좋아한다. 그치만 쥐팍 음악은 못 듣겠더라”며 박명수를 쥐락펴락해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나아가 이제훈은 문희경의 악녀연기 상황극에서는 ‘따귀’를 피하기 위해 포옹과 애교로 무마하는 농익은 스킬을 선보여 여심을 뒤흔들었다. 한편 이제훈은 입담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한 능력까지 드러내며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녹였다. 그는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달달하게 소화한 데 이어 “힙합 댄스 동아리 출신”이라고 밝히며 숨겨왔던 수준급 댄스 실력까지 뽐냈다. 그러나 곧 김남주-엄현경과의 커플댄스에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몸치 댄서로 돌변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핵노잼을 핵꿀잼으로 바꾼 이제훈의 전천후 활약에 네티즌의 반응 역시 폭발했다. SNS 등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제훈 잔망미 폭발! 덕통사고 제대로 당했음”, “이제훈에게 이런 매력이 있는 줄 몰랐음! 누가 핵노잼이래요 이렇게 재밌는데”, “이제훈씨 예능 자주 나와주세요!”, “오늘 내 마음 저격 제대로 당했네! 아 심장 아파”, “이제훈 별로.. 내 맘 속의 별로” 등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KBS 2TV ‘해피투게더3’는 매주 목요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KBS 2TV ‘해피투게더3’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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