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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폭행이 교정행위라니… “여자 만든다” 집단 강간

    성폭행이 교정행위라니… “여자 만든다” 집단 강간

    황당한 이유로 성폭행을 저지른 남자들에게 중형이 내려졌다. 남아공 법원이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 2명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고 외신이 최근 보도했다. 사건은 요하네스버그에서 약 50km 떨어진 스프링스의 막다른 길에서 발생했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여성 므부렐니 파나 앞에 괴한 4명이 출현했다. 남자들은 파나를 막힌 길로 끌고 가 차례로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심한 구타를 당해 결국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식을 잃기 전 남자들이 내뱉은 말을 잊지 못한다. 성폭행범들은 “(우리의 성폭행) 행위를 당하고 나면 진정한 여자가 된다. 다시는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끔찍한 성폭행을 자행했다. 피해자가 당한 건 일명 ‘교정 강간’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교정 강간’은 성폭행으로 잘못된 성 정체성을 교정한다는 황당한 성범죄다.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가 ‘교정 강간’의 표적이 된다. 2000년대 남아공에서 레즈비언을 노린 성범죄가 발생하면서 처음으로 ‘교정 강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남아공 당국은 사건신고를 접수하고 바로 수사에 착수, 4명의 용의자 중 2명을 검거해 법정에 세웠다. 나머지 2명은 아직 경찰을 피해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남아공에선 지난 15년간 최소한 여성 15명이 ‘교정 강간’을 당하면서 피살됐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가십걸’ 모델 올리비아 팔레르모, 남친과 밀회 포착

    ‘가십걸’ 모델 올리비아 팔레르모, 남친과 밀회 포착

    미국 CWTV의 인기 드라마 ‘가십걸’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올리비아 팔레르모가 남자친구인 모델 요하네스 휴블과 프랑스 생바르텔레미스 섬에서 밀회를 즐기는 장면이 파파라치 망원렌즈에 포착됐다. 미국 연예매체 스플래쉬닷컴은 4일(한국시간) ‘뉴욕 사교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팔레르모가 일광욕을 즐기는 동안 휴블이 몸에 오일을 발라주가 하면 해변가에서 키스를 하는 등 농도짙은 스킨십을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지난 2008년 MTV ‘더 시티’를 통해 연예게에 데뷔한 팔레르모는 타고난 미모와 몸매는 물론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스타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그가 선보이는 길거리 패션 스타일들은 인터넷을 통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 최신 유행으로 자리잡는 등 패션 계통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독일계 모델인 휴블 역시 세계적인 모델로 두 사람은 5년간의 열애 끝에 최근 약혼을 발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잠들다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잠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인권 투쟁과 인류 평화를 위해 헌신한 삶을 뒤로하고 영면에 들었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만델라 장례식이 15일(현지시간)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이스턴케이프주 쿠누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임시로 설치된 타원형 돔 모양의 대형 천막에서 진행된 장례식은 남아공은 물론 전 세계에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만델라의 시신이 든 관은 국기로 덮인 채 군 포차에 실려 장례식장으로 운구됐으며 이를 군 의장대가 행진하며 선도했다.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만델라 관은 8명의 군인에 의해 장례식장에 입장한 뒤 연단과 객석 중간에 놓였다. 장례식에는 만델라의 두 번째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 세 번째 부인 그라사 마셸 등 만델라 가족들을 비롯해 조문객 4500여명이 참석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국 찰스 왕세자,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미국의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은코사자나 들라미니 주마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당초 초청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만델라의 오랜 친구이자 투쟁 동지인 데즈먼드 투투 주교 역시 참석해 동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장례식은 돈 다불라 주교의 기도를 시작으로 만델라의 손자 등 가족과 친구들이 추도사를 한 데 이어 AU 순회의장인 하이을러마리얌 더살런 에티오피아 총리,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순회의장인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 자카야 음리쇼 키퀘테 탄자니아 대통령이 차례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만델라가 복역한 로벤섬에서 그와 함께 26년간 복역했던 민주화 투쟁 동지 아흐메드 카스라다는 추도사를 통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달리고 남아공에 존엄함을 복원한 당신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며 작별을 고했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추도 연설에서 “오늘은 남아공의 자유 투사였으며 공복(公僕)이었던 만델라의 95년에 걸친 영광스러운 여정이 끝나는 날”이라며 “우리는 민주화된 남아공을 건국한 고인의 마지막 길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경의를 표했다. 장례식 후 만델라의 시신이 든 관은 인근 가족 묘원에 옮겨져 땅에 매장됐다. 다만 장례식 이후 진행된 매장식은 만델라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만델라의 가족 및 친구 450여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만델라 관이 매장되는 동안 남아공 군 헬리콥터들이 국기를 매단 채 상공을 날았으며 군용기들이 편대비행을 하면서 그에게 마지막 예의를 표했다. 지난 5일 만델라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뒤 선포된 1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에 진행된 국가적인 추모 행사는 모두 종료됐다. 앞서 10일 91개국 정상과 10만여명이 참석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도식을 치른 데 이어 11일부터 13일까지 프리토리아 정부 청사인 유니언빌딩에서 진행된 시신 공개에는 조문객 10만명이 찾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캐머런 총리 “오바마와 찍은 ‘셀카’ 경매로 팝시다”

    캐머런 총리 “오바마와 찍은 ‘셀카’ 경매로 팝시다”

    미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덴마크 헬레 토르닝-슈미트 총리가 나란히 앉아 웃으며 찍은 ‘셀카’ 논란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덴마크 토르닝-슈미트 총리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에대한 뒷이야기를 털어놔 또다시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이 인터뷰에서 토르닝-슈미트 총리는 문제의 사진에 얽힌 정상(頂上)간의 비화(?)를 공개했다. 토르닝-슈미트 총리는 “이 사진이 논란이 돼 지우려고 했지만 영국 캐머런 총리가 경매에 내놔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자고 했다” 면서 “문제의 사진은 딱히 잘 나오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셀카 장면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FNB 경기장에서 열린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서 벌어졌다. 당시 연단 뒤에 나란히 앉아있던 세 정상은 스마트폰으로 웃으며 기념 셀카를 찍었고 이 장면은 한 통신사 사진기자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후 전세계 언론과 네티즌의 비난 여론이 일었고 각 정상들은 해명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토르닝-슈미트 총리는 “그날 행사는 추도식 자리이자 축제의 장이었다” 면서 “많은 사람들이 춤을 췄으며 서로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 인터뷰에 대해 영국 총리실은 확인을 거부했으며 문제의 그 사진이 아직도 토르닝-슈미트 총리의 스마트폰에 남아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AFP/GETTY IMAGE/멀티비츠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惡手된 악수

    惡手된 악수

    10일(현지시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추모식에서 이뤄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악수가 미국 내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쿠바는 1961년 국교를 단절했으며, 2006년 형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지금까지 미국 정상과 만난 적이 없다. 카스트로 정권을 강하게 비판해 온 쿠바 이민 가정 출신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카스트로 의장과 악수하려고 했다면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정신이 쿠바에서 부정되고 있는 이유를 물어봤어야 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둘의 악수를 2차대전 발발 직전 네빌 채임벌린 전 영국 총리와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리의 악수에 비유하면서 “라울에게 독재정권을 유지할 선전거리만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백악관 관계자는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추도식에서 집중한 것은 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뿐이었다”고 말했다.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 존 케리 국무장관도 공화당 의원들의 추궁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자를 선택한 게 아니지 않으냐. 대쿠바정책은 바뀐 게 없다”고 해명했다. 양국이 적대국가가 된 이래 미국 정상이 쿠바 정상과 악수한 게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유엔 회의장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악수한 바 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만델라 추모식 자리에서 ‘셀카’(자기 사진촬영)를 찍은 일로도 구설에 올랐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총리와 함께 자리에 나란히 앉아 활짝 웃으면서 셀카를 찍는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이 사진이 공개되자 과연 엄숙한 추모식에서 장난스럽게 셀카를 찍은 게 적절한 행동이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만델라 추모식서 ‘셀카’ 찍은 오바마 대통령 논란

    만델라 추모식서 ‘셀카’ 찍은 오바마 대통령 논란

    “우리 함께 치즈!” 미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덴마크 헬레 토르닝-슈미트 총리가 나란히 앉아 웃으며 ‘셀카’를 찍어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 촬영 장소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추모식장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요하네스버그 FNB 경기장에서 열린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 참석한 지구촌 주요 정상(頂上)들의 모습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지구촌 리더들만 수백여명으로 그중 단연 언론의 눈길을 끈 것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연단에 나서 “만델라는 전세계 불평등과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위대한 영혼으로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 할 것”이라면서 고인을 기렸다. 논란의 사건은 연단 뒤에 마련된 좌석에서 일어났다. 나란히 앉아있던 문제의 세 정상 중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총리(사진 가운데)가 스마트폰을 꺼내자 함께 포즈를 취하며 웃으면서 사진을 찍은 것. 특히 오바마 대통령 옆 영부인 미셸은 이들 정상의 행동에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시종 진지한 모습으로 연단을 바라봐 묘한 대비를 이뤘다. 이외에도 오마바 대통령은 행사 중간 중간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보여 구설에 올랐다. 해외언론들은 “이 시간이 셀피(selfie·셀카) 타임이냐?” , “2013년 올해의 셀피!” 라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으며 백악관 측은 이에대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사진=AFP/GETTY IMAGE/멀티비츠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굿바이 만델라”… 전세계가 그를 떠나보냈다

    “굿바이 만델라”… 전세계가 그를 떠나보냈다

    지난 5일(현지시간) 타계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추도식이 10일 100명에 가까운 각국 정상과 10만명에 이르는 인파가 참석한 가운데 요하네스버그 FNB경기장에서 열렸다. AP·AFP통신, CNN 등에 따르면 예정보다 1시간가량 지연된 이날 정오쯤 시작된 추도식에는 전 세계 91개국 정상과 전직 국가수반 10명 등이 남아공 국민 9만 5000여명과 함께 앉아 만델라 전 대통령의 떠나는 길을 추모했다. 남아공 정부는 성명에서 “만델라 타계를 애도하고 그의 삶을 기리는 자리에 참석한 모든 지도자와 유명 인사, 각국 대표들을 따뜻이 환영한다”고 밝혔다. 추도식에 참석한 정상들은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날 추도식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 등이 참석, 추도 연설을 했다. 만델라의 증손자 등 가족과 친구들이 추도사를 한 데 이어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의 기조 연설과 이반 아브라함스 주교의 설교 등으로 식이 마무리됐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오는 15일 그의 고향인 쿠누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지며 앞서 그의 시신은 11~13일 프리토리아 정부 청사에 안치,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몸은 떠나지만 정신은 영원하리…

    몸은 떠나지만 정신은 영원하리…

    “마디바(만델라의 애칭)의 몸은 떠나지만 그의 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10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FNB경기장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한 남아공 국민들은 만델라의 모습이 새겨진 깃발을 흔들며 ‘정신적 지주’였던 그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CNN과 AP·AFP통신에 따르면 추도식은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정오쯤 시작됐지만 이미 오전 6시부터 경기장에 입장하기 시작한 남아공 국민들은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한 시민은 “우리의 함성이 만델라에게 닿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이 열린 FNB경기장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이 열렸던 곳으로, 만델라는 공개 석상으로는 마지막으로 당시 폐막식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3년 전 이곳에서 만델라의 생전 모습을 직접 봤던 남아공 시민들은 같은 장소에서 만델라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의 삶을 추모하게 된 것이다. 9만 5000명을 수용하는 FNB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남아공 정부는 인근 다른 3개 경기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고 1만 2000여명이 이를 통해 추도식을 지켜봤다. 추도식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추도식에는 각국 정상 91명과 전직 수반 10명 등이 참석해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 당시 참석한 70개국 정상을 넘어 최대 규모가 됐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추도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연단에 오른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 연설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을 ‘역사의 거인’, ‘20세기의 마지막 위대한 해방자’라고 칭송한 뒤 국제사회에 불평등, 가난, 차별과 맞서 싸워 나갈 것을 촉구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는 과정에서 오랜 앙숙 관계인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악수를 해 눈길을 끌었다. 공개 석상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이 만난 것은 처음으로, 만델라가 떠나면서까지 화합을 이루게 한 셈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추도 연설에서 “남아공은 영웅을 잃었다. 세계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멘토를 잃었다”고 애도하는 한편 “그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그리고 정의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위대한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중국에서는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이 참석했다. 이들과 함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가수 보노, 피터 개브리엘, 영국 재벌 리처드 브랜슨 등도 추도식에 참석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헬레 토르닝 슈미트 총리, 오바마와 셀카 구설수…영부인 미셸 표정이

    헬레 토르닝 슈미트 총리, 오바마와 셀카 구설수…영부인 미셸 표정이

    헤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추모석에서 ‘셀카’를 찍어 구설수에 올랐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요하네스버그 FNB 경기장에서 추모식 도중 나란히 앉은 데이비트 캐머런 영국 총리, 헤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세 사람은 헤레 토르닝 슈미트 총리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 장면에 대해 언론과 네티즌들은 세기의 위인을 보내는 엄숙한 추모식장에서 장난스럽게 셀카를 촬영한 세 나라 지도자들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벌였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왼쪽에 앉아 있던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이 세 사람과 달리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세 정상은 해당 보도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만델라 생전 ‘마지막 모습’ 공개…증손자와 함께

    만델라 생전 ‘마지막 모습’ 공개…증손자와 함께

    지난 5일 밤(이하 현지시간)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간 가운데 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됐다. 지난 7일 영국매체 데일리메일이 단독 보도한 이 사진은 만델라의 손자 엔다바(30)가 지난 5월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속에서 고인은 평소 자신이 가장 애용했던 의자에 앉아 엷은 미소를 띄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그 옆에는 고인의 증손자인 올해 3살 르와니카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잡고 웃고있다. 손자 엔다바는 “할아버지가 일요일 오후 TV를 시청하며 한가로이 쉬고 계신 모습을 촬영했다” 면서 “우리가 함께 사진을 찍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만델라는 이 사진을 촬영한 지 한달도 안돼 병원에 입원했으며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엔다바는 “고인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셨지만 아들 르와니카에게는 그저 인자한 할아버지였을 뿐” 이라면서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꼭 안아주던 순간이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끝마친 고인의 영결식은 오는 10일 요하네스버그 FMB 경기장에서 열린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억압을 용서로, 차별을 화합으로… 350년 인종분규 끝낸 ‘투사’

    억압을 용서로, 차별을 화합으로… 350년 인종분규 끝낸 ‘투사’

    1918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트란스케이 움타타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넬슨 만델라는 권투와 달리기를 좋아하던 해맑은 소년이었다. 이 소년이 350여년 역사의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투사’로 변모한 것은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발을 담그면서부터다. 1940년 포트헤어대에서 법학을 전공하다 시위를 주도한 대가로 퇴학당한 그는 ANC 청년연맹을 창립했다. 투쟁의 대상은 남아공의 악명 높은 인종격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였다. 백인과 흑인은 강제로 거주 지역이 분리됐고 결혼을 할 수도 없었다. 만델라는 1952년 대학 동창 올리버 탐보와 요하네스버그에 처음으로 흑인 법률회사를 차린 뒤 빈곤층을 도우며 다수 흑인들을 압제하는 소수 백인사회에 정면으로 맞서 나가기 시작했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창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롤모델로 삼았던 만델라를 180도 바꿔 놓은 것은 1960년 3월 발생한 샤프필학살사건. 요하네스버그 인근 샤프필에서 반아파르트헤이트 시위에 나섰던 흑인 69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평화시위운동의 엄혹한 한계를 체감한 만델라는 비폭력시위에서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급선회했다.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마오쩌둥 등의 저서를 섭렵하며 전략을 모색한 그는 비밀군대 ‘움콘토 웨이즈웨’(민족의 창) 최고사령관으로 활동하다 경찰의 지명수배에 쫓기게 됐다. 1961년 남아공이 영연방에서 탈퇴하면서 국제사회는 본격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1956년에 이어 1962년 다시 체포된 만델라는 46세이던 1964년 내란음모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막노동에 치이고 6개월간 방문객이 단 한 명만 허용되는 지독한 옥살이였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서도 투사를 길러내는 등 투쟁을 계속해 나가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수감자’가 됐다. 당시의 혹독한 경험에 대해 그는 “나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패배와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자유인으로 아프리카 땅을 두 발로 걸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이 같은 공로로 1979년 옥중에서 자와할렐네루상, 1981년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3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 국제상을 잇달아 받은 만델라는 어느덧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결단을 내린 건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이었다. 1990년 옥살이 27년 6개월 만에 결국 만델라는 72세 노인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1991년 ANC 의장으로 선출된 만델라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 데클레르크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여 350여년간의 인종분규 종식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러한 공로로 두 사람은 19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994년 남아공 총선은 흑인들이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한 선거이자 만델라를 첫 흑인 대통령으로 만든 역사적인 선거였다. 1999년까지 재임하며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한 만델라는 세계 각국에서 ‘용서와 화합의 위대한 지도자’로 환영받았다. 그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조용히 지난 인생을 반추하고 싶다”며 2004년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세 차례 결혼한 그는 6명의 자녀와 20명의 손자를 뒀다. 저서로는 자유를 위한 투쟁 의지를 밝힌 ‘투쟁은 나의 인생’(1961)과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1995) 등이 있다. 한편 만델라가 남긴 재산은 ‘남아공 최고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이름 값에 힘입어 1000만 파운드(약 172억 8000만원) 규모에 이른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이날 전했다. 생전에 그가 남긴 자서전 인세와 보유한 펀드 27개, 가족들의 만델라 브랜드 업체 운영 등에 따른 것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굿바이 마디바”… 노래하고 춤추며 이별 고해

    “굿바이 마디바(만델라의 애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대한 영웅이자 민주화 역사의 살아 있는 신화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에 전 국민은 뜨거운 눈물로 이별을 고했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남아공 국민들은 특유의 추도 풍습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마치고 눈감은 만델라를 추모했다. 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 요하네스버그 하우튼 지역에 있는 고인의 자택 밖에는 전날 밤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짙은 어둠을 뚫고 달려온 수백명의 추모객과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그간 폐감염증을 앓으며 입·퇴원을 반복한 만델라를 지켜보면서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 온 국민들은 그가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된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추모객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만델라 만세”, “평화롭게 잠드소서 마디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그가 앞장섰던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의 노래도 불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응원 도구로 전 세계에 알려진 부부젤라를 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요하네스버그 신흥 도심 샌톤에 있는 ‘넬슨 만델라 광장’에서는 만델라가 추구한 다문화·다인종 국가인 ‘무지개 공화국’을 상징하듯 흑인, 백인, 인도계 등의 사람들이 만델라 동상 아래에 서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들 가운데 백인인 소냐 포콕(46)은 “만델라가 석방된 이후 지난 23년간 나는 그의 길을 따랐다”면서 “그는 나의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만델라가 한때 거주한 소웨토 지역에서는 그가 이끌었던 현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깃발과 국기를 몸에 두른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노래와 춤으로 곡절 많은 만델라의 삶을 위로하는 동시에 국부(國父)를 잃은 슬픔을 달랬다. 한 추모객은 “우리는 만델라를 애도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모든 업적을 기념하고, 칭송하고,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그의 안식을 기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굿바이 만델라 1918~2013… 자유 향한 여정 마치고 ‘세기의 거인’ 잠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 밤(현지시간)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을 마치고 영원히 잠들었다. 만델라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가 그의 삶을 추모하며 안타까워했다. AFP·AP통신 등에 따르면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긴급 성명을 통해 “우리 민주국가의 기틀을 세운 대통령인 존경하는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가 떠났다”며 지병을 앓아온 만델라가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발표했다.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가 이날 저녁 8시 50분쯤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면서, “만델라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으니 작별인사도 함께 보내자”고 애도했다. 주마 대통령은 이어 6일 TV 연설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지는 만델라의 장례식이 오는 15일 그의 고향 쿠누에서 열리며, 15일까지 10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해 조기를 게양한다고 밝혔다. 또 오는 10일 요하네스버그 FNB경기장에서 영결식이 치러지며, 11~13일 그의 시신이 프리토리아 정부 청사에 안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델라는 고령으로 몸 상태가 쇠약해져 2011년 이후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해왔다. 특히 지난 6월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 고비를 맞았다가 3개월 후인 9월 퇴원했으나 자택에서 치료를 계속 받아왔다.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는 용서와 화합 정신을 실현한 지도자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이날 만델라의 타계 소식에 각국 정상들은 일제히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애도 성명을 통해 “만델라 전 대통령의 위대한 뜻이 세계 평화의 기틀이 되고 전 세계인의 가슴에 오래 기억될 것”이라며 “저와 한국 국민들도 그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속보]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95세 일기로 타계

    [속보]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95세 일기로 타계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 제목처럼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을 마치고 한 세기에 관통하는 질곡의 삶을 마친 것이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가 평화 속에 잠들었다”면서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고 만델라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넬슨 만델라는 지난 6월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병원해 입원했다가 약 3개월 후인 9월 퇴원했으나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의료진의 진료를 계속 받아왔다. 그는 고령으로 몸 상태가 쇠약해져 지난 2011년 이래 지금까지 수차례 입·퇴원을 반복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에도 폐렴으로 입원치료를 받다 퇴원한 바 있으며 최근 증상이 재발해 재입원, 집중 치료를 받아왔다.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는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실현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아왔다. 그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가 마지막이었다.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는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현 집권당)’를 이끌며 투쟁하다 투옥돼 무려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국내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더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남아공 백인정권은 1990년 만델라를 출소시키고 ANC도 합법조직으로 인정했다. 만델라는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F. W.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지난 19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듬해인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첫 흑인 대통령이 됐고,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청문회에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하는 등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이른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퇴임 이후에도 남아공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묘하게 비슷하네!” 레고로 만든 현대판 ‘모나리자’

    “묘하게 비슷하네!” 레고로 만든 현대판 ‘모나리자’

    지난 1932년, 덴마크의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Kristiansen)은 목공소에서 어떤 나무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2년 후 그는 여기에 ‘레고(Lego)’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덴마크어 ‘레그 고트(leg godt)’ 즉 ‘재밌게 논다(play well)’는 뜻으로 부모님들 지갑을 휘청거리게 만든 장난감 계의 신화 ‘레고’의 창세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레고를 단순한 장난감으로 보면 곤란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봤다면 ‘헉’ 했을 놀라운 예술품이 레고로 구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이탈리아 아티스트 마르코 소다노(Marco Sodano)가 레고로 재현한 ‘모나리자’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5일 공개했다. 이는 레고의 새로운 슬로건 “모든 아이들은 레고와 함께 예술가가 될 수 있다(All children are artists with LEGO)”에 발맞춘 캠페인의 일부분이다. 장난감 블록이 단순 놀이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아이들의 예술 감수성 개발 측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의 부호(富豪)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라 조콘다(La Gioconda)라고도 불린다.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수세기 동안 관심의 대상이었고 각종 음모론의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대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일명 ‘네덜란드 모나리자’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작품 명성과 별개로 그림 속 소녀가 누구인지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를 소재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사진=위키피디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거인’ 넬슨 만델라 영면…남아공 현지 분위기는

    ‘거인’ 넬슨 만델라 영면…남아공 현지 분위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5일 밤(현지시간) 이 나라 역사과 국민을 ‘통합’의 키워드로 묶어낸 한 영웅의 운명에 울었다. 이날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마치고서 9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은 남아공 전역을 일순 깊은 슬픔과 추모의 열기로 몰아넣었다. 당장 요하네스버그 하우튼 지역에 있는 고인의 자택 밖에는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애도객과 취재진 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애도했다. 일부 추모객의 손에 들린 촛불이 검은 밤을 뚫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 매튜 라마카차 라는 이름의 시민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뉴스를 보고 달려왔다.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했다. 만델라가 한때 거주한 소웨토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노래와 춤으로 그의 죽음을 추도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요하네스버그 신흥 도심 샌톤에 있는 ‘넬슨 만델라 광장’에도 흑인, 백인, 인도계 등 많은 이들이 만델라 동상 밑에 서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생전에 만델라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남아공의 주요 인사와 단체들은 언론을 통 해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아파르트헤이트(흑인분리정책) 기간 마지막 백인 대통령이자 1993년 만델라와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F.W. 데 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CNN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위대한 통합자”라며 “그의 가장 큰 유산은 화해를 강조한 것”이라고 칭송했다.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스먼드 투투 주교는 “마디바(만델라의 경칭)는 우리에게 함께 살고 서로 신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며 그의 타계를 애도했다. 제이콥 주마 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아버지를 잃었다”며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깊은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만델라가 이끌었던 현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남아공과 세계가 ‘거인’을 잃었다”며 “그의 삶은 우리에게 가난과 배고픔을 끝내고 발전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넬슨 만델라 재단, 넬슨 만델라 어린이 재단, 만델라 로즈 재단 등 만델라와 관련 있는 재단도 “어떤 말로도 (그의 타계로) 남아공과 세계가 받은 거대한 상실감을 적절하게 나타낼 수 없다”며 슬퍼했다. 인터넷 공간도 추모의 글로 가득했다. 남아공 영문 일간지 ‘더스타’와 주간지 메일앤드가디언 등의 인터넷 부고기사에는 몇 시간 만에 수백건의 댓글이 달렸다. “거인의 타계를 애도한다”, “만델라의 명복을 빈다”, “그가 그리울 것”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주마 대통령이 만델라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글도 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보]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95세 일기로 타계(종합)

    [속보]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95세 일기로 타계(종합)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 제목처럼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을 마치고 한 세기에 관통하는 질곡의 삶을 마친 것이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긴급 성명을 통해 “그가 평화 속에 잠들었다”며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고 만델라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가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숨졌다고 밝혔다. 남아공의 뉴스 TV 채널 eNCA는 주마 대통령의 성명 발표 장면을 생중계하는 등 현지 언론매체는 일제히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을 긴급 기사로 보도했다. 만델라는 지난 6월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약 3개월 후인 9월 퇴원했으나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의료진의 치료를 계속 받아왔다. 그는 고령으로 몸 상태가 쇠약해져 지난 2011년 이래 지금까지 수차례 입·퇴원을 반복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에도 폐렴으로 입원치료를 받다 퇴원한 바 있으며 최근 증상이 재발해 재입원, 집중 치료를 받아왔다.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는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실현한 정치인으로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가 마지막이었다.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는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현 집권당)를 이끌며 투쟁하다 투옥돼 무려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국내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더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남아공 백인정권은 1990년 만델라를 석방하고 ANC도 합법조직으로 인정했다. 만델라는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F. W.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지난 19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듬해인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첫 흑인 대통령이 됐고,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청문회에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하는 등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이른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퇴임 이후에도 남아공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묘하게 비슷하네!” 레고로 만든 현대판 ‘모나리자’

    “묘하게 비슷하네!” 레고로 만든 현대판 ‘모나리자’

    지난 1932년, 덴마크의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Kristiansen)은 목공소에서 어떤 나무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2년 후 그는 여기에 ‘레고(Lego)’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덴마크어 ‘레그 고트(leg godt)’ 즉 ‘재밌게 논다(play well)’는 뜻으로 부모님들 지갑을 휘청거리게 만든 장난감 계의 신화 ‘레고’의 창세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레고를 단순한 장난감으로 보면 곤란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봤다면 ‘헉’ 했을 놀라운 예술품이 레고로 구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이탈리아 아티스트 마르코 소다노(Marco Sodano)가 레고로 재현한 ‘모나리자’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5일 공개했다. 이는 레고의 새로운 슬로건 “모든 아이들은 레고와 함께 예술가가 될 수 있다(All children are artists with LEGO)”에 발맞춘 캠페인의 일부분이다. 장난감 블록이 단순 놀이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아이들의 예술 감수성 개발 측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의 부호(富豪)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라 조콘다(La Gioconda)라고도 불린다.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수세기 동안 관심의 대상이었고 각종 음모론의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대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일명 ‘네덜란드 모나리자’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작품 명성과 별개로 그림 속 소녀가 누구인지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를 소재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사진=위키피디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아우디 “내년 한국서 10% 더 팔겠다”

    아우디 “내년 한국서 10% 더 팔겠다”

    올해 판매 목표를 조기에 달성한 ‘아우디코리아’가 내년에 영업과 사후 서비스(AS) 부문을 더 강화해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겠다고 밝혔다.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코리아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년에 3개의 전시장과 신규 AS센터 7곳의 문을 열어 서비스 품질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서비스센터의 워크베이(작업대)도 기존보다 50% 증가한 350개를 운영하고 현재 282명의 기술전문가(테크니션)를 41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우디코리아는 올해 1~10월 1만 6514대를 판매했다. 목표인 1만 6000대는 이미 넘어섰고, 이달까지 모두 2만대를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보다 32% 늘어난 수치다. 타머 대표는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내년에 수입차 시장이 10%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면서 “이를 반영해 내년 판매 목표를 올해보다 10% 늘어난 2만 2000대로 잡았다”고 밝혔다. 아우디코리아는 내년 1월 4도어 소형 세단 A3를 시작으로 최상위 모델인 RS7, 전 세계 500대 한정모델 TTS 컴페티션 등 모두 3종의 신차를 출시해 운전자 선택의 폭을 늘릴 예정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21세 이하 선수중 ‘발롱도르’를 뽑는다면?

    21세 이하 선수중 ‘발롱도르’를 뽑는다면?

    “올해도 메시가 받을 것이다” vs “올해야말로 호날두다” vs “리베리가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축구 선수에게 최고의 영예인 ‘발롱도르’ 최종후보자가 발표된 가운데, 유럽 전역에 있는 언론에서 각기 다른 예상을 내놓으며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감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한편, 영국의 스포츠 통계 전문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21세 이하 선수 중 발롱도르를 뽑는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2013년 15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들의 통계를 바탕으로 가장 높은 평균평점을 받은 23명의 선수를 선정해 흥미를 끌고 있다. 이 리스트에 포함된 선수들 역시 대부분 축구팬들이 이미 알고 있는, 미래에 발롱도르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유망주들이다. 1위에 오른 선수는 분데스리가 샬케에서 뛰고 있는 율리안 드락슬러다. 드락슬러는 총 29경기에 나서 평점 7.58을 기록해 2위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차세대 에이스로 불리며 유럽 최고 구단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유를 기록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2위는 유벤투스에서 기량이 만개한 폴 포그바가 차지했다. 26경기 출전, 평점 7.35. 맨유를 버리고 유벤투스로 건너간 포그바는 단순히 소속클럽에서만 좋은 활약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장완장을 차고 출전했던 FIFA U-20 월드컵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세계 최정상급 미드필더로 인정받고 있다. 3위는 첼시에서 에버튼으로 임대중인 스트라이커 로멜루 루카쿠가 차지했다. 2013년 첼시에서는 한 경기도 뛴 적이 없는 루카쿠이지만 그는 임대된 2클럽(웨스트브롬, 에버튼)에서 모두 놀라운 골 결정력을 선보이며 차세대 최고의 공격수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외 23위까지 명단을 보면 유럽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유망주들이 모두 포함되었는데 특이점은 프랑스 선수들이 7명으로 가장 많이 선정됐으며, 그 중 5명이 수비수 자원이라는 점이었다. <후스코어드닷컴 선정 ‘21세 이하 발롱도르’ 후보 23인 명단> 1. 율리안 드락슬러(샬케, 독일) 2. 폴 포그바(유벤투스, 프랑스) 3. 로멜루 루카쿠(웨스트브롬, 에버튼, 벨기에) 4. 서지 오리에(툴루즈, 코드디부아르) 5. 니콜라 무루(칼리아리, 이탈리아) 6. 아이메릭 라포르테(빌바오, 프랑스) 7. 커티스 조우마(생테티엔, 프랑스) 8. 마테오 코바시치(인터밀란, 크로아티아) 9. 마르키뇨스(로마, PSG, 브라질) 10. 벤 데이비스(스완지, 웨일스) 11. 요하네스 가이스(마인츠, 독일) 12. 마르코 베라티(PSG, 이탈리아) 13. 사무엘 움티티(리옹, 프랑스) 14. 루카스 디그네(릴, PSG, 프랑스) 15. 압둘 라만 바바(퓌르트, 가나) 16. 라파엘 바란(레알 마드리드, 프랑스) 17. 오게니 오나지(라치오, 나이지리아) 18. 루크 쇼(사우스햄튼, 잉글랜드) 19. 마티야 나스타시치(맨시티, 세르비아) 20. 안토니오 루디게르(슈투트가르트, 독일) 21. 마우로 이카르디(삼프도리아, 인터밀란, 아르헨티나) 22. 마티아스 긴터(프라이부르크, 독일) 23. 제프리 콘도그비아(세비야, AS모나코, 프랑스) 이성모 스포츠 통신원 London_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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