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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중중학」은 「섬둑중학」으로/박갑천(칼럼)

    여러해전 한국 땅이름학회에서 「한국·일본의 □갈래 땅이름」이란 주제로 발표회를 가진바 있다.그후 이를 정리하여 외우 함동선교수의 화갑기념논총에 실었다.이에 대한 문의·격려의 말을 몇군데서 듣고 있다.그 글의 부제 「일본의 가마쿠라(겸창)는 한국의 가마굴이다」가 말해주듯이 우리의 땅이름이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가지 형태로 새끼쳤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 내용으로 되고 있다. 비단 「□갈래」뿐 아니라 일본의 땅이름에는 우리말이나 우리 땅 이름의 그림자가 많이 어린다.가령 그들이 신산으로 받드는 「후지산」(부사산)도 그렇게 생각해 볼수 있다.이산의 이름에 대해서는 아이누어 어원설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뚜렷한 정설은 없다.「만요슈」(만엽집)에 「불진·포사」라고 표기되기도 한 이 이름은 우리의 「붓­부스」갈래 땅 이름이라 볼수 있을 듯하다.옛문헌에 「부소·부소·부사·비사·비서…」등으로 표기되는 땅 이름으로서 민세 안재홍이 「신역·신주·신도」의 뜻을 갖는다고 한바 있다(조선상고사감하).부여의 부소산도 그 갈래이고 지금도 다음과 같은 한자로 표기되는 전국의 땅 이름들이 바로 「붓­부스」갈래라 하겠다.­필·부사·부사·부사·부사·부서·부수·부수·부수·부소·부소…. 이 땅이름 문화가 일제침탈기를 거치면서 반전된다.그 그림자는 오늘에도 어른거린다.이에 대해서는 일본 요코하마시에 근무하는 고토(오도령)씨가 그들의 92년 도시계획학 연구지에서 지적한 내용이 국내신문에 보도된바도 있다.그가 지적한 「무교정→무교동」,「다옥정→다동」은 우리 옛 땅이름과 연관되니 논외로 치더라도 「삼각정→삼각동」은 일제가 지은 이름임에 틀림이 없다. 광복후 반세기에 이르는데도 어문생활에서 일제의 찌꺼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다.그런데 청산은커녕 새로 불러들이는 사례가 늘어나니 한심스러워진다.고수부지·윤중제따위 말들이 그것이다.더구나 이 「윤중제」에서 출발된 「윤중」은 「윤중국민학교」「윤중중학교」하는 식으로 학교이름에까지 쓰이기에 이르렀으니 더욱 한심스러워진다.일부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나와있기도 하지만 일본말 「와쥬테이」에서 온 「윤중제」를 쓰자는 건 수치스런 일이다.강섬의 둘레를 둘러쳐서 쌓은 둑을 이르는 말이므로 「섬둑」이라고 하면 된다. 교육의 터전에 비교육적인 요소가 끼어든건 잘못된 일이다.교육부당국은 한말글연구회의 바로잡자는 건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섬둑국민학교,섬둑중학교 하고 부르면 오죽 좋은가.
  • 오키나와 테러비상/과격파 테러·방화로

    【도쿄 연합】 아키히토(명인)일본왕의 오키나와(충승) 방문을 앞두고 과격단체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 5일 상오 3시30분께 도쿄도 시부야(섭곡)구 「오크힐」맨션 아파트 담벼락에서 폭발물이 터져,높이 2m의 블록담 일부가 무너지고 건물 유리창 6장이 파손됐다. 이 아파트 1층에는 궁내청의 의식담당관이 살고 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전선과 건전지·염화비닐 파편등을 발견,궁내청 간부의 집을 노린 시한폭탄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이날 새벽 5시께 요코하마(횡빈)시 자연공원내에 있는 나루히토(덕인)왕자약혼 기념관(2층건물)에서 불이나 1,2층 회의실등 3백㎡를 태웠다. 경찰은 귀빈실에서 방화에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전선줄을 찾아내고 이를 단서로 범인을 찾고 있다. 경찰은 오는 23일 아키히토왕의 오키나와 방문에 앞서 과격단체의 반대시위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 사증위조,일본에 부녀자 취업알선/국악협 문예위장 영장

    ◎32명 송출… 억대 챙겨 서울강서경찰서는 31일 사단법인 국악협회 문예분과 위원회 위원장 허기현씨(49·종로구 삼청동 35의 13)등 2명을 사문서위조와 직업안정법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원명숙씨(33·여·성동구 금호동 4가 423)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또 여권위조 전문범 김종철씨(59·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주공아파트 901동 109호)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허씨는 지난해 11월16일부터 종로구 낙원동 낙원오피스텔 701호에 문예분과 위원장 사무실을 차려놓고 원씨등을 통해 일본의 유흥업소에 취업하려는 김모씨(20)등 69명을 모집한뒤 여권위조법 김씨가 위조한 취업사증을 이용,이가운데 32명을 일본 요코하마의 「은하」「센스」등 한국인 클럽에 소개해주고 업주로부터 소개비명목으로 한사람에 일화 50만∼75만엔씩 모두 2천2백여만엔(한화 1억5천만원)을 받아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김씨는 허씨로부터 5천1백70만원을 받고 지난해 12월 20일까지 4차례에 걸쳐 69명의 90일 짜리 취업사증을 위조해주었다는것이다.
  • 일 가네마루 전격 구속/전 자민 부총재

    ◎87·89년 소득세 수억엔 탈세혐의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정계의 막후실력자였던 가네마루 신(김환신·78)전자민당부총재가 6일 저녁 소득세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어 일본정계에 큰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가네마루 전자민당부총재는 이날 그의 전비서 하이바라(생원)씨와 함께 소득세법위반 혐의로 일본검찰에 체포되었으며 도쿄지검특수부는 국세청과 함께 도쿄에 있는 가네마루씨의 자택및 사무실과 요코하마에 있는 하이바라씨 자택등 10여개소에 대해 가택수색을 실시했다. 가네마루 전자민당부총재는 그의 비서였던 하이바라씨와 공모,지난 87년과 89년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수억엔의 소득세를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의 비서도 87년부터 91년까지 5년간 수억엔의 소득세를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를 비롯한 자민당지도자들은 가네마루씨 체포에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으며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는 「도쿄 사가와 규빈(동경좌천급편)정치자금스캔들」과 그를 둘러싼 정치자금의혹이 다시 큰 논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반면 야당들은 국회에서 사가와 규빈사건 규명에 탄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가네마루씨는 지난해 8월 도쿄 사가와 규빈의 와타나베 전사장으로부터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공식인정하고 자민당부총재직을 사임했다.
  • 여권서류·비자용직인 위조/전 외무부직원 등 둘 검거

    ◎1명 구속·1명 영장 【부산=이기철기자】 부산경찰청은 16일 비자발급용 가짜 직인 1백여개를 만든 서울 종로구 수성동 삼일사 주인 신한철씨(31·인천시 북구 효성1동 268)를 인장업단속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가짜서류를 만들어 일본의 유흥업소에 취업을 원하는 부녀자들에게 비자를 발급받게 해준 전 외무부 여권과 고용직 박재영씨(33·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156)에 대해 관광진흥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씨는 지난 90년 12월부터 91년 6월까지 여권브로커 신영대씨(45·구속중)에게 부산시내 구청장,경남도내 읍면장,일본 요코하마시장 직인등 가짜직인 1백여개를 새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박씨는 지난해 6월초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789의6 희구빌딩 5층에 흥주기획이라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본에 취업을 원하는 박모씨(23·여·부산시 남구 망미동)로부터 1백60만원을 받고 가짜서류를 만들어 일본입국 비자를 받게 해주는등 지금까지 8차례에 걸쳐 1천40만원을 받고 여권발급서류를 위조해준 혐의를 받고있다.
  • 일 강진… 1백명이상 부상/북해도·관동·중부/진도 최고 7.5

    ◎구시로시선 건물붕괴·정전 아수라장/통신­교통 두절… 사상자 늘어날듯 【도쿄 연합】 15일 저녁 8시 6분께 일본 홋카이도(북해도)와 관동·중부 지방 일대에서 일본 지진계로 최고 진도 6을 기록한 강진이 잇따라 일어나 일부 지역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통신과 교통이 두절됐다고 일본기상청과 경찰이 전했다. 홋카이도 구시로(천로)시와 아오모리(청삼)현 하치노헤(팔호)시에서는 최고 강도가 7인 일본 지진계로 진도 6(열진)을,홋카이도의 오비히로(대광)시와 우라카와(포하)정에서는 진도 5를 각각 기록해 1백여명이 다치고 많은 재산 피해가 난 것으로 이날 밤 11시 현재 전해졌다.외신은 이번 지진이 눈금이 9까지인 리히터 지진계로 강도 7·5를 기록한 초강성이었다고 보도했다. 구시로시에서는 74명이 다치고 10층 건물 등에서 모두 8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또 다리 붕괴,수도관 파열,도시가스 누출 및 정전 등으로 시일대가 한동안 아수라장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정전으로 동북 신간선 등의 운행이 한때 정지되는 바람에 상하행 열차가 잇따라 연착됐으며 동북을 잇는 간선 도로도 두절됐다. 또한 도쿄(동경)와 요코하마(횡빈)등지도 일본 지진계로 진도 3을 기록한 지진이 엄습해 건물이 심하게 흔들려 일부 시민이 놀라 집을 뛰쳐나오기도 했다. 일기상청은 지진의 진앙지가 구시로시 앞 태평양(북위 42.8도,동경 144.4도)해저로 진원의 깊이는 약 1백20㎞로 탐지됐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일지진계로 진도 6을 기록한 강진이 발생하기는 지난 82년 3월 홋카이도 우라카와시를 강타한 지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10일과 11일 이틀간 이쓰(이두)반도 동쪽 앞바다를 진앙지로 하는 진도 1∼2(일지진계 기준)의 군발 지진이 무려 1천6백여회나 이어져 기상 당국을 긴장시킨 바 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3)

    ◎매신의 인걸들/선각자들 결집… 「국권회복」 구심체로/영국인… 일제탄압에 울타리역할/배설/총무 맡아 항일논조 사실상 주도/양기탁/박은식·신채호는 주필로 민족자부심·독립정신 고취 대한매일신보가 민족의 대변지로서 국권회복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 신문에 관련 또는 종사했던 사람들의 면면인데 국적과 신분을 뛰어넘어 매우 다채로운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 신문을 이끈 주역은 영국인 사장 배설과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 논객이자 사학자이며 항일투사였던 국내 인사들로 돼있다.배설(Ernest T Bethell)은 1872년 11월3일 영국 브리스톨시 북부 애쉴리에서 태어났다.극동상대의 무역상이던 토머스 헨콕과 전도사의 딸인 마서 제인 홀름의 다섯 남매중 장남으로 브리스톨의 머천트 벤처러스스쿨을 나왔다. 이 학교를 졸업한뒤 열다섯살 때인 1888년 일본에 건너와 1904년초까지 16년동안 고베(신호)에 살면서 무역업에 종사했다.1899년에는 동생들과 함께 「베델 브러더스」라는 무역상을설립했다.이 회사는 지금도 런던에 있다.어떻든 배설은 한때 돈을 많이 벌어 러그(rug·깔개)공장을 차리기까지 한것을 보면 사업수완이 대단했던 인물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일인들의 방해로 실패,재산을 모두 날렸다.졸지에 삶의 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대로 늘 활달한 쾌남아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수영 크리켓등 스포츠를 좋아했으며 특히 음악에는 타고난 감수성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체계적인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청중들 앞에서 곧잘 노래를 부를만큼 빼어난 가창력도 지녔다. ○늘 활달한 쾌남아 서양장기를 잘 두었으며 술과 담배 또한 즐기는 편이었다.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문장력도 여간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학력은 비록 고졸에 그쳤으나 이처럼 다채로운 그의 재능과 기질은 언론인으로서 훌륭한 잠재력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이윤추구가 최대의 목표인 무역업보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 창의성을 발휘,정치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칠수 있는 사업인 신문발행이그에게는 적격이었던 셈인지도 모른다. 그가 언론과 인연을 맺은 것은 러그사업에 실패한 직후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이 되어 한국에 온 것이 계기가 됐다.그리고 그는 불과 4개월 1주일만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할 수 있었다.배설의 언론입문은 그의 자질이나 성격과 결코 무관치 않다.당시 한국의 실정 역시 배설과 같은 언론인을 절실히 필요로 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가 양기탁을 만나 대한매일신보의 견본판 「양자신문」을 만들기는 1904년 6월29일이었으며 실제로 신문을 창간하기는 20일 뒤인 7월18일이었다.그로부터 1909년 이 땅에 뼈를 묻히기까지 줄곧 한국인의 편에서 일제에 맞선 항일언론의 선봉장으로 또 신보를 이끌고 지킨 울타리 역할을 다 해냈다. 배설이 신보를 지킨 울타리였다면 양기탁은 신보를 떠받친 기둥이요 대들보로 비유해도 좋다.그는 신보사의 전무와 주필 그리고 편집국장을 겸한 위치인 총무로서 제작 및 운영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항일논조를 사실상 주도한 신보의 분신이었다. 양기탁은 호가우강으로 1871년 4월2일 평양태생이다.배설보다는 1년7개월 먼저 태어난 셈이다.부친은 한학자로 그 지방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졌던 양시영이었다.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는데 사람됨이 매우 총명하여 보기드문 소년 문장가로 꼽힐 정도였다. 그가 서울에 오기는 배설이 일본에 갔던 같은 나이인 15살 때였다.상경직후 동학및 유림의 명망가이자 우국지사인 나현태를 알게 됐다.이후부터 여러 우국지사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애국사상에 감화를 받게 되었고 동학당과도 관계하면서 견문과 사상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외국과의 교섭이 점차 확대되던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은 그는 한성외국어학교에 들어가 반년동안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따라서 그의 지식과 사상은 어려서 배운 한학의 토대위에 양학문과 기독교 정신이 접목된 것이 아닌가 한다.또 동학과도 관계함으로써 민족주의 사상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일제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를 들이대는 듯 했던 신보의 반일논설 필봉은 그의 이런 사상과 학식에 바탕한 것이다. 그는 한때 부친과 함께 캐나다의 선교사 게일(James S Gale)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편찬하는 일에도 참여했다.이 한영사전은 1897년 6월에 출판됐는데 인쇄소는 요코하마에 있는 복음인쇄합자회사였고 발행소는 서울야소교서회로 되어 있다. 그는 신보를 이끈 항일지사형 언론인의 전형적 인물이다.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그 총감독으로 활동한 바도 있으며 나라를 빼앗긴뒤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일제에 대항케한 열혈투사이기도 했다.여러차례의 옥고끝에 만주로 도피한 그는 상해에서 광복운동에 종사하던중 1933년 김구에 의해 법무담당 국무위원에 임명,1년4개월간 재임했다.강소성 담양현에서 그 파란의 삶을 마쳤는데 그 해가 1938년이다. 백암 박은식은 황해도 황주태생의 이름높은 성리학자로서 본래 황성신문의 논설기자였다.이 신문이 정간된 뒤 양기탁의 추천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논설기자)로 자리를 옮겨 정력적인 항일언론 활동에 나섰다. ○신민회에도 참여 신민회가 결성되자 그 원로회원으로서 교육 및 출판부문을 담당하기도 한 그는 신보를 통해 주로 애국계몽에 관한 글을 집필했다.신교육구국사상·사회관습개혁사상·애국사상·대동사상 등 애국계몽사상을 설파,국권회복운동을 적극 고취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한일합방뒤에는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에 나서는 한편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등 많은 역사 저술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투쟁정신을 심는데 크게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박은식의 뒤를 이어 신보의 주필로 활동한 단재 신채호는 충남 대덕출생으로 명성 높은 사가였다.역시 황성신문의 논설기자였다가 양기탁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됐다.민중계몽 및 정부편달 중심의 시론과 우리나라 역사관계 사론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10년 망명할 때까지 그는 대한매일신보에 「일본의 3대충노」「이십세기 신국민」「서호문답」「금일 대한국민의 목적지」등의 논설과 「독사신론」「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전」등 역사관계 논문및 시론등을 연재,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신민회조직에 참여했고 국채보상운동에도 가담했다.한마디로 그는 신보의 국권회복운동을 이끈 주역의 한사람으로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 논리를 구축하고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이밖에 대한매일신보를 이끌어온 사람들로는 임기정 이교담 옥관빈 강문수등이 있다.이들은 주로 업무분야 종사자들로 신보의 조직을 통해 일본세력을 몰아내려 했던 사람들이다.
  • 재일교포 위한 「민족대학 강좌」 개설

    ◎민단본부,교포 2·3세들 민족의식 고양위해/역사·문화·경제 등 교육내용 다양/대학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 재일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민족대학」이 개설된다.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중앙본부는 오는 30일 재일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오사카(대판)에 민족대학강좌를 우선 개설한뒤 도쿄,나고야,교토,후쿠오카,요코하마등 주요 도시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민단중앙본부가 민족대학을 개설하는 목적은 재일동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2세,3세들에게 한국의 역사,문화등 민족교육을 시키기 위한 것이다.재일동포사회에는 민족의식이 강한 1세 인구가 줄어들면서 후세세대와 민족의식의 단절이라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대학강좌는 첫학기은 1월30일부터 4월24일까지 토요일마다 모두 12차례 열린다.2학기는 9월에 개설되며 강의시간은 하오6시부터 8시까지.강좌의 주요 과목은 한국의 역사,한일교류사,문화,언어,인권,경제,세금등으로 민족교육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다. 강사진은 역사,언어,문화,사회,법률,경제,무용,요리등 각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대학교수,연구가,전문가들로 짜여있다. 민족대학은 30∼40대의 재일동포들을 주요 수강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18살이 넘는 재일동포는 누구라도 수강할 수 있다. 민족대학은 정기강좌말고도 어머니강좌,특별강좌,통신강좌등도 두게된다.어머니강좌에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가할수 있다.특별강좌는 민단 관계자및 민족학교교원,지역활동자들을 대상으로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집중교육을 한다.통신강좌는 정기강좌교육내용을 녹음해 정기강좌에 참석하지 못하는 재일동포들에게 배포하는 것이다.
  • 한·일관계 자료관/일 관동지방 개설

    【도쿄 연합】 근대 한·일관계와 재일동포 문제에 대한 문헌을 모아한 곳에 전시한 사설 자료관이 일본에서 최근 개설돼 화제가 되고 있다. 문제의 자료관은 일사이타마(기옥)현 가와구치(천구)시에서 지난 9일 문을 연 「문화센터 아리랑」이다. 이 자료관은 재일 한인 2세 박재일씨(63·건설업·요코하마시)가 자신이 살던 집을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로 개조한 것으로 보존 자료가 무려 2만여점에 이르러 한·일관계 자료로서는 일 관동지방에서 가장 많이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 국회 계속 공전땐 중의원 해산 경고/일 와타나베 외상

    【도쿄 연합】 와타나베 미치오(도변 미지웅)일본부총리겸 외상은 19일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중의원 해산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와타나베 외상은 이날 요코하마(횡빈)시에서 개최된 정치 집회에서 최근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임시국회문제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추가갱정예산안의 조속한 심의를 촉구하면서 『다음주까지 국회가 열리지 않고 소동이 계속된다면 내각은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 18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와 더불어 이에 대해 협의한바 있다고 밝혔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중의원 해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밝힌 것으로 대야 견제성 발언으로 풀이되고 있다.
  • 일 플루토늄선 불 출발/아카쓰키호,1.7t 적재

    ◎호위 일 함정,감시선박 들이받아 【셰르부르(프랑스) AFP AP 로이터 연합】 일본의 플루토늄 수송선 아카쓰키호는 7일 프랑스의 셰르부르항에서 1·7t의 플루토늄 선적을 완료한후 이날 하오9시(현지시각)일본의 요코하마(횡빈)항을 향해 출발했다. 【파리 AP 연합 특약】 플루토늄 1.7t을 싣고 프랑스의 셰르부르항을 떠나 일본으로 귀항중인 아카쓰키호의 호위선인 일본해상보안청소속 선박이 8일 아카쓰키호에 대한 감시활동을 벌이며 이 배를 뒤쫓던 국제환경감시단체인 「그린피스」소속 선박 솔로호를 들이받았다고 그린피스 대변인이 말했다. 출항 10여시간만에 일어난 이 사건은 솔로호가 아카쓰키호와 5㎞거리로 쫓고쫓기는 항해를 하던중 일어났으며 이 사건으로 호위선인 시키시마호는 우현이 심하게 패고 난간이 떨어져나갔으며 헬기 격납고에 구멍이 뚫리는등 심한 피해를 보았으나 솔로호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이 대변인은 말했다.
  • 일 플루토늄선적 착수/불 세르부르항/삼엄한 경계속 1.7톤 실어

    【세르부르(프랑스) AP AFP 연합】 환경보호단체를 비롯한 세계인의 관심속에 플루토늄 수송을 위해 프랑스 세르부르항에 입항한 일본의 수송선 아카스키 마루(효환)가 7일 상오9시5분(현지시간)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가운데 플루토늄 선적을 시작했다. 이날 프랑스 인부들과 수백명의 경찰,해군특공대와 수중잠수대원등이 군함 한척과 해상 장애물 등을 동원,선적 상황을 기자들과 환경보호단체,구경꾼들로부터 차단한 가운데 세르부르항의 기중기는 총 1·7t의 플루토늄을 담은 15개의 컨테이너를 운반트럭으로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플루토늄의 일본 수송을 담당한 장 루이 리코씨는 선적이 7일밤 완료될 것이며 선적 수시간후 이 선박은 요코하마항으로 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프랑스군당국은 플루토늄 운반지역인 라그에서 세르부르까지의 도로를 점거,항의시위를 벌이던 환경보호단체 「로빈후드」와 프랑스 녹색당 소속 요원 등 약 2백명을 몸싸움끝에 격리시켰다.
  • 고층아파트 유아/자립도 크게 낮다/아사히신문,도쿄대 조사결과 보도

    ◎“어머니와 함께있는 시간 많은게 원인”/동해대,“위층 살수록 유산많다” 발표도 일본의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임신부들은 유산비율이 높고 유아들은 자립이 늦다는 의학보고서가 발표되어 주목되고 있다. 일본 동해대의학부의 오사카강사(지역보건학전공)의 조사에의하면 고층건물에 살고 있는 임신부의 유산과 사산비율은 1층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2배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7일 보도했다. 오사카강사가 요코하마에 살고 있는 1천5명의 임신부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결과,사산·유산비율은 1층건물거주자가 5.6%,아파트등 집합주택의 1∼2층이 6.3%,3∼5층이 8.3%,6층 이상이 13.2%로 나타났다. 오사카강사는 『이같은 결과는 고층건물거주가 임신부에 직접 영향을 준다기 보다는 외출부족에 의한 스트레스가 임신초기의 담배·음주등과 결부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라고 추정하고 있다. 한편 도쿄대의학부의 오다조교수(모자보건학전공)가 실시한 유아의 발달상황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유아들의 자립이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오다조교수는 도쿄의 고층단지에 살고있는 어머니 70명·유아 9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조사결과 인사를 하지못하는 유아 비율이 고층(14층이상)은 15%,중간층(6∼13층)은 6%,저층(5층이하)은 0%로 나타났다.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비율도 고층이 30%,중간층8%,저층은 0%로 나타나 고층에 사는 유아의 자립도가 늦음을 나타내고 있다. 체질면에서는 낮에 오줌을 싸는 비율이 저층유아가 9.5%인데 비해 고층유아는 43%,밤에 오줌을 누는 비율은 저층유아가 43%,고층유아는 71%로 나타났다. 오다조교수는 고층에 살고 있는 어머니들의 외출이 적어 어린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이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 일 플루토늄선 프랑스로 떠나

    【도쿄 연합】 프랑스로부터 대량의 플루토늄을 일본으로 운반해올 전용수송선 아카쓰키마루(4천8백t급)가 24일상오 5시10분쯤 경비정의 삼엄한 경비하에 정박해 있던 요코하마(횡빈)시 미쓰비시(삼릉)중공업 요코하마제작소를 빠져나가 프랑스로 향했다. 이 수송선은 40∼50일후에 프랑스에 도착,연내에 플루토늄 분말 1t을 일본에 반입할 예정이다.
  • 일 플루토늄 수송선/금명 요코하마 출항/마이니치신문 보도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핵무장화와 사고로 인한 환경오염우려등으로 세계적인 논란을 빚고 있는 일본의 플루토늄해상수송을 위해 플루토늄 수송선 「아카츠키마루호」가 17일 상오 요코하마(횡빈)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조선소 도크를 떠났으며 이날 밤이나 18일밤 출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보도했다. 플루토늄 수송선은 배의 이름과 국적등을 은폐한채 이날 상오9시전 도크를 떠나 해상보안청의 전용호위함 「시카시마호」와 함께 도크밖에 접안돼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 “불임수술 받고 전선에 끌려 갔다”/생존자들의 생생한 체험 증언

    ◎상대 거부·우리말 쓰면 마구 매질/안끌려가려 목맨 처녀들 수두룩/자매 한곳서 같이 위안부생활도 ▷사례1◁ 1938년 8월 위경의 놋그릇 상납요구및 창씨개명 반대이유로 가족이 경찰서로 연행됐는데 이장의 권유로 애국봉사대에 지원하면 아버지가 석방될 수 있다기에 스스로 지원했으나 그길로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위안장소(자카르타)로 연행돼가는 도중 광동에서 불임수술을 받았다.1946년 3월경 미군의 도움으로 자카르타에서 배를 타고 귀환했다. ▷사례2◁ 1943년 1월 혼자 집을 보던중 낯모르는 신체건강한 남자 2명이 찾아와 볼 일이 있으니 무조건 나오라며 강제로 끌고가 최초로 하차한 곳이 만주 하얼빈이며 그곳에서 이동해 용관현에서 계속 생활했다.도착 첫날부터 방 1칸(약 2평)당 여자 1명씩 배치돼 하루 평균 20명 정도의 군인을 상대하며,평소 한국말을 하거나 남자받기를 거부하면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주일마다 성병검사를 실시해 감염자는 완치때까지 치료해 치료후 다시 같은 생활을 계속했다. ▷사례3◁ 동네어귀에서 언니와 쑥을 뜯던 중 일본경찰이 강제로 차에 태워서 끌려갔으며 경찰이 군인들의 숙식및 뒷바라지 일을 하는 곳으로 간다며 기차로 부산까지 데려갔다.히로시마(광도)근처 군부대에서 하루 일본군 10∼15명 정도를 상대로 위안부생활을 했으며 언니와도 잠깐 같이 위안부생활을 하기도 했다(연행연도 미상). ▷사례4◁ 1942년 11월 16살때 만주 봉천 기차여행중 옆자리의 군인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갔다.군병영내 막사에 중국여자들을 포함해 약 20명이 수용돼 위안부생활을 했다. ▷사례5◁ 1942년 3월 처녀공출이란 명목으로 영장을 받고 일본순사한테 강제로 연행돼 끌려갔다.여러 명을 창고에 가둬놓고 1명씩 불러내 조그만 방으로 데리고 가서 말 안들으면 죽여버리겠다며 하루 3회정도 성폭행을 했다. ▷사례6◁ 1938년 4월 산에서 동생과 나물을 캐던중 일본군 2명과 한국사람 1명에 의해 강제연행됐으며 부산으로 내려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끌려갔다.오사카에 내려서 3일쯤 머무른뒤 홋카이도(북해도)로 끌려가 그곳에서 1년간 살았으며 그후 다시 오사카에서 살았다.일본 수용생활중 심한 구타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정신분열증세가 심해 일본군인들이 산에 내다버린 기억이 있다. ▷사례7◁ 1944년 9월 방직공장에서 야간조업중 무장한 일본군인 15명 정도가 들어와 『여러분은 앞으로 일본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미리 눈치챈 사람들은 도망가고 나머지 49명만 연행됐다.요코하마(횡빈)과 히로시마에서 군부대 위안부로 10여년간 있었으며 1개소대 50명으로 편성된 10개소대 5백여명이 함께 생활했다. ▷사례8◁ 1941년 2월경 일본인 여자 1명과 한국인 남자 1명이 부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을 권유해 나를 포함해 약 50명정도의 여자가 그곳에 갔다가 일본군에 강제징발돼 현지주둔 일본군부대에 체류했다.일본군부대에서 매일 12∼15명의 일본군을 상대(계급별 출입시간과 요금에 차등)하는 위안부생활을 한뒤 군부대 이동에 따라 싱가포르에 이송된후 중국 목단강과 빈강성·남경·도문·만주등 부대에 배속돼 일본에서와 같은 위안부생활을 강요당했으며 일체의 영외출입이 금지됐다.현지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반이상 사망하기도 했다. ▷사례9◁ 1942년 3월 약 14살때 부산에서 식모살이 하던중 놀러나갔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혀 임시구금소(민간인 가옥)에 약 10일정도 구금된후 기차로 부산에서 만주 간도성까지 가 군부대밖에 있는 위안소(군인만 상대)에 넘겨져 해방될 때까지 생활했다.위안소에 약 20여명의 위안부가 있었으며 하루 15∼20명 정도의 군인을 상대했다. ▷사례10◁ 1938년 12월 군인 20여명이 총검을 들고 집에 난입,강제로 군용 트럭에 싣고가 영산포소재 창고에 있는 15명의 여자와 나주에서 온 15명의 여자들과 함께 열차로 신의주,만주를 거쳐 천진주둔 일본군 히노마루부대로 끌고갔다.15명씩 한 조를 이뤄 임시로 지은 여러개의 가건물에 수용됐다.가건물속에서는 가마니로 칸(간)을 만들어 한사람씩 넣는 치욕적인 생활과 고통을 참다못해 목을 매거나 도망치다 총에 맞아 죽는 여자들도 있었다.
  • 일 플루토늄 수송선 불서 출항 임박

    【도쿄 AP 연합】 프랑스로부터 플루토늄(1t)을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한 일본의 한 화물선이 핵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보안 속에서 출항 준비를 마친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출항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반핵단체인 일본 시민핵정보센터의 아유카와 유리카씨는 수송선이 이날 요코하마(횡빈)항 내 미쓰비시(삼릉) 중공업조선소의 비밀 정박지를 떠났으며 이는 훈련 임무인 것으로 믿어진다고 밝혔다.
  • “재일 한국노동자 군사행동 가능성”/자민당 간부 망언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자민당의 모리(삼희랑) 정조회장은 5일 일본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단순 노동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한국인은 한사람의인솔자 밑에 1천명 가량만 모일 경우 엄청난 군사 행동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라는 등의 매우 자극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6일 일본의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모리 회장은 이날 도쿄시내 와세다(조도전)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지난번 미국 로스앤젤레스 폭동때 한국인이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기로 대응한 예를 인용하면서 『요코하마의 한 경찰서관내에는 1천5백명 가량의 한국으로부터 온 노동자가 있다.이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총을 쏘는 데는 별로 별로 낯설지 않다. 한 사람의 리더 밑에 1천명 가량 모인다면 엄청난 군사행동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위험성이 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리회장은 『한국인에 대한 이같은 평판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 한·일 관계/“감정대립 지양,이해폭 넓혀야”

    ◎「분노의 왕국」파문 계기,바람직한 발전방향을 찾는다/일왕저격장면은 픽션… 흥분은 과민반응/과거앙금 씻고 아태시대 협력길 모색을 한일관계가 불편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연초 일본총리의 방한에 때맞춰 본격적으로 제기된 정신대문제와 최근 MBC에서 제작·방영중인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에 의해 표출된 한일양국의 반일·혐한감정이 외교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민족감정의 대결은 한일 두 나라의 국가이익을 위해 어느쪽에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과거청산을 위한 관점에서도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감정대립을 지양하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해 보았다. ▷좌담◁ 신희석·외교안보연 교수 이병훈·M­TV 제작부국장 이시즈카·신지 동경신문 서울지국장 ▲신희석=요즘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있다고 합니다.미야자와 일본수상 방한후 긴장되기 시작한 양국간 관계가 최근엔 MBC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에 대한 일본측 반응으로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듯합니다.우선 최근 문제가 된 「분노의 왕국」제작동기와 배경 그리고 MBC의 입장에 대해 이국장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역사성 높아 드라마화 ▲이병훈=「분노의 왕국」은 지난해 MBC문학상 당선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입니다.구한말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 순종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가설을 설정한 이 작품은 당시 일본의 침략분위기가 무르익고 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던 때 우리역사가 자주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었음을 감안해 역사의 굴절되고 탈락된 부분이 있었음직하다고 보고있지요.거기서 순종의 아들 이하연이란 가상 인물이 왕족의 후손임에도 겪은 비참한 생활끝에 모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일왕 즉위식때 저격을 기도하게 됩니다.MBC측으로선 이 작품의 역사성이 높다고 판단,드라마로 제작키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시즈카신지=「분노의 왕국」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개인적으로 일본 천황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이 됐지요.앞으로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선 서로가 양국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번 MBC드라마는 일본사람들에게 있어서 천황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일에도 「국왕암살 영화」 ▲이=천황을 한 나라의 원수요 상징이라고 볼 때 당연히 존중해야지요.문제는 픽션드라마는 별개라는 인식입니다.실제로 영국 저격수의 드골대통령 암살기도를 다룬 영국작가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더 데이 애프터 자칼」도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일본의 경우에도 천황암살을 다룬 「벌거벗은 군대」라는 영화가 지난 87년 제작된 사례가 있습니다.국왕을 존중하는 심정이 없는 게 아니라 있음직한 가상의 세계를 다룬 픽션에 불과하다는 얘기죠. ▲신=MBC드라마 자체가 문제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저변엔 지배와 피지배로 구별된 과거역사가 깔려 있다고 보는데요.특히 정신대문제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저질러진 한 수단이란 견해가 이 땅에선 지배적인데 일본 지식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시즈카=정신대문제는 한일협정체결로 일단락됐다고 보는 게 일본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제개인적으론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또는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일관계를 다루는 양국의 언론이 조심스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만은 틀림없다고 봅니다.한국에선 정신대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의 신문들이 정신대=종군위안부라는 인식으로 몰아갔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이=정신대문제는 일본의 물질적 보상보다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했다」는 역사에 대한 일본인의 반성이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면 된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정신대=종군위안부라는 표현방식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역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시즈카=현재 한일관계는 「싸움」의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그 싸움의 관계는 나쁘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유럽에서 프랑스­독일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는데요.논쟁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신=한국측의 언론책임을 지적하셨는데일본측 매스컴에도 문제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일본 언론의 한국관계 교양프로속에서 한국인들이 상당히 왜소하고 부정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한 경험이 있습니다.이런 점에서 양쪽이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시즈카=맞습니다.일본매스컴도 사실상 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갖고 있지요.정도의 문제지만 무언가 반성할 게 있다면 양쪽 모두가 반성해야겠지요. ○양국언론도 신중해야 ▲신=우리 사극에선 역사속의 일본인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습니까? ▲이=과거 한일관계에서 우리쪽은 문화전수,일본쪽에선 침공의 주체로 인식되는 게 보편적이지요.그런 점에선 미래거향적이어야 한다는 견해에 긍정합니다.다만 이번 프로그램과 관련해선 젊은 사람들이 과거 한일역사를 잘 몰라 어느면에선 이 드라마가 과거 한일역사를 통해 미래지향적 시각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유쾌하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느끼는 자세가 선진 민주주의 국민의 자세가 아닐까요.예를 들어 일본 문예춘추에서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다루지만 한국에서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우스꽝스런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신=상호간에 인식의 갭이 크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이시즈카=현재 한국인에게서 보여지는 일본에 대한 인식의 갭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고 봅니다.첫째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잉태된 「미움」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현재 일본의 모습에 대한 「동경」이지요. ▲신=「분노의 왕국」방영과 관련해 발생한 일본 극우파의 요코하마 총영사관 차량진입사건은 정신대·무역불균형·문화갈등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양국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곧 닥쳐올 21세기는 흔히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합니다.아·태국가중 지정학·역사적으로 가장 인접한 한·일 양국이 앞으로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고 바람직한 존재양식을 찾는다면 무엇이 될까요. ○일 근대사교육에 소홀 ▲이=서로가 과거를 잘 알고 화합한다면 바람직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고 봅니다.3년전쯤 작품헌팅관계로 30대 중반의 일본 방송인을 현지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당시 「민비암살」이라는 일본인이 쓴 작품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 젊은이는 전혀 민비암살사건을 모르고 있더군요.이번 요코하마 총영사관 난입사건도 일본국민이 과거 역사를 잘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신=피해자의 상처가 더 오래가는 법입니다.과거와 현재를 무시하고 무조건 미래지향으로 치닫기는 불가능하지요. ▲이시즈카=전적으로 동감입니다.일본 우익단체의 요코하마 한국총영사관 난입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일본 역사교육과정에서도 근현대사가 다루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그래서 일본 젊은이들이 특히 한일 근대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저만해도 고교시절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졸업후에야 알게 된 부분이 많지요.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교육이라고 봅니다.양국관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선 정부대 정부의 협상도 중요하지만 민간레벨,그 중에서도 청소년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고 있습니다. ▲이=그렇습니다.한일양국이 과거를 잘 알때 아·태시대속의 동반자관계를 무리없이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그런 측면에서 「분노의 왕국」과 관련된 이번 사태도 프로그램측면에서만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번에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면 양국관계에서 악순환이 계속될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이번 드라마가 일왕을 모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상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한일과거사를 짚어보자는 뜻이기에 혐한감정의 빌미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시즈카=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현재 한일간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사회적 특성을 고려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되겠지요. ▲신=어찌 보면 한일관계는 휴화산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항상 불을 머금고 있지만 언제든지 내뿜을 수 있는 상태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드라마가 과거역사를 정확히 알자는 계몽의식을 담았다는 배경이해를 통해 더이상의 불상사가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양국이 서로의 이해를 통한 21세기 아·태시대의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 요코하마 총영사 유종현씨

    정부는 16일 유종현 외교안보연구원 소련·동구연구관(사진)을 요코하마(횡빈)총영사로 임명했다. 정부는 또 최배식 전요코하마총영사와 명인세 볼리비아특명전권대사,이병해 토론토총영사,김문경 제다총영사는 본부에 근무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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