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요코하마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3000억원 목표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대선자금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기획전시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서울 자가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20
  • [의열 독립투쟁] (10)田明雲·張仁煥 의사

    국권이 이미 기울 대로 기운 1908년 3월23일 이른 아침.미국 샌프란시스코페어몬트호텔 앞에서 한 한국 청년이 몸을 숨기고 호텔 안의 동정을 살피고있었다.이 시각 한 대의 승용차가 호텔 정문에 정차하자 일본인 관리로 보이는,실크 모자를 쓴 두 사나이가 호텔 안으로 들어가더니 트렁크 몇개를 들고나와 승용차에 싣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무언가를 직감한 이 한국인 청년은 급히 인근 페리 정거장으로 향하였다.그는 오전 9시30분 정각에 발차하는 미국 대륙횡단열차와 관련해 ‘볼 일’이 있는 듯했다.이윽고 9시 15분경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역 구내 한 쪽에 모인 일본인 무리에서 ‘반자이(만세)’ ‘반자이’하는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그들은 한 미국인의 전송차 나온 일행들이었다. 함성소리에 싸여 한 미국인이 탄 승용차가 정거장 앞에 멈추어서자 샌프란시스토 주재 일본총영사 고이게 조소(小池張造)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뒤따라 내린 미국인은 얼굴에 상처투성이였다.9시20분 개찰이 시작되자 승객들이역사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미국인도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나서자 이때 철탑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국인 청년이 품에서 권총을 빼들고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첫 발은 불발이었다.다시 두번째 방아쇠를 당겼으나 이 역시 ‘찰칵’소리만 날 뿐 불발이었다.자신의 권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한국인 청년은 권총을 거꾸로 고쳐잡고 차에 오르려는 미국인을 맹타하기 시작했다. 급습을 당한 미국인이 몸을 피해 도망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첫 발은 한국인 청년의 오른쪽 어깨를 빗맞고 지나갔고 두번째,세번째 탄환은 미국인의 등과 허리에 명중했다.두 사람은 땅바닥에 쓰러졌다.쓰러진 미국인은 친일파 스티븐스과 한국 청년 전명운(田明雲·1884∼1947)의사였다.총을 쏜 사람은 또다른 한국 청년 장인환(張仁煥·1876∼1930)의사였다.이른바 ‘스티븐스 처단의거’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한국의 애국청년들이이국 땅에서 이룩한 쾌거였다. 전명운 의사는 서울 출신으로 일찍 양친을 여의고 불운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가업인 포목전을경영하던 장형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전 의사는 약관 20세인 1904년 2년제 신식학교인 한성학원을 수료하면서 시국과 개화에 눈뜨기 시작했다.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용맹투사로 소문나 있던 전 의사는노상에서 한국인 부녀자를 희롱·모욕하는 일본인들을 응징한 뒤 신변에 위협을 느껴 천주교 신부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다시 신부의 주선으로 미국 화물선 스타피시호의 취사장 인부로 고용된 전 의사는 대만·일본 등을 거쳐 그해 9월 하와이에 도착했다.이곳에서 1년간 농장 인부로 일하던 전 의사는 이듬해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부두노동자,철로공사장 노동자,채소 행상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민노동자와 몇몇 유학생,우국 망명가들이 모여 1905년 4월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기관지 ‘공립신보’를 통해 교민들의 세력을 규합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전 의사 역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한편 1908년 3월 한국통감부의 외교고문이자 친일파인 미국인 스티븐스가워싱턴을 방문하는 길에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한다는 정보가 교민사회에 입수되었다.스티븐스의 귀국은 대외적으로는 일제가 다년간의 공로를 인정,특별휴가를 준 것으로 돼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일본 외무성과 한국통감부의 밀명을 띤 귀국이었다.당시 미국 내에서 일본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격운동이격화돼 미 의회에서 관련 법 제정을 추진하자 일제가 그를 긴급 파견,미 국회의원과 유력자들을 만나 법안 제출·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3월3일 요코하마를 출발해 귀국 길에 오른 스티븐스는 선상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구적인 동양 평화를 위하여 한국은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보호 아래 그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으며 3월20일 샌프란시스코 도착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리하다”는 등 친일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같은 내용은 미국 신문에 보도돼 재미교포 독립운동가들의 격분을 샀다. 공립협회 회원들은 스티븐스가 머문 페어몬트호텔로 찾아가 발언내용 취소를 요구하며항의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를 응징했다.이날 저녁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은 스티븐스 구타 경과보고를 겸한 모임을 갖고 대책을 숙의했는데 이자리에서 전 의사는 자신이 스티븐스를 처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장인환 의사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전·장 두 의사는 23일 아침 일찍 워싱턴으로 가는 대륙철도를 타려던 스티븐스에게 세 발의 탄환을 날렸다.피격 후 스티븐스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긴급 치료를 받았으나이틀 뒤인 25일 복부 탄환 제거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3월27일 전 의사는 병상에 누운 채 살인미수 혐의로,장 의사는 계획에 의한 일급 모살 혐의로 각각 샌프란시스코 경찰법원에 기소되었다.교민사회에서는 두 의사의 무죄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호소하는 한편 변호사 비용 등 경비 모금에 나섰다.공립협회 회원이자 두 의사 후원회 임시서기인 송종익(宋鍾翊)은 현지 신문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에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은 한국의 독립 쟁취를 위한 투쟁이라고 밝히고 재판 과정을 독립전쟁의과정으로 인식해줄 것을재판부에 호소하였다. 3차에 걸친 예심을 마치고 6월27일 전 의사는 증거 부족으로 석방되었으나장 의사는 8개월 동안의 재판 끝에 12월23일 ‘애국적인 발광(發狂) 환상에의한 2급 살인죄’로 판정,극형은 면하고 이듬해 1월2일 열린 언도공판에서금고 25년형을 선고받았다.장 의사는 1919년 1월17일 가출옥으로 석방됐으며1924년에는 자유의 몸이 됐다. 전 의사보다 8세 연상인 장인환 의사는 1876년 평양 출신으로 장 의사 역시 조실부모하고 청소년기를 불우하게 보냈다.각지를 전전하며 상점점원 노릇을 하기도 하고 잡화상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평양에 살면서 청일전쟁을직접 체험하였다.1904년 하와이로 이민,사탕수수 농장에서 2년간 일하다 1906년 캘리포니아로 옮겨 노동자생활을 하던 장 의사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국권을 박탈하자 ‘대동보국회’ 가입을 계기로 항일 대열에동참하였다. 한편 전·장 두 의사의 의거는 항일독립운동사에서 특별한 의미의 성과로기록되고 있다.우선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은 국내 민족진영에활기를 불어넣어 일시 수세에 있던 의병투쟁을 공세로 전환시켰다.또 두 의사의 의거·재판을 모두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국내외에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의거 이후 전 의사는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현지에서 안중근(安重根)의사와 교유한 적이 있는데 전 의사의 의거 이듬해인 1909년 안 의사의 이토(伊藤博文) 처단은 전 의사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미국인 친일파를 처단,한국 청년의 기개를 세계 만방에 드날린 두 의사는 모두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의거 후 재판에서 무죄 석방된 전 의사는 일제의 감시와 암살 위협 등의 압박감에서 이름마저 ‘맥 필드’로 바꾸고 9월 연해주로 일시 망명했다가 1919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그때 부인과 양자로 입양한 조카를 만났으나 두 사람 모두 1927년 사망해 두 딸을 어렵게 길렀다.태평양전쟁이 일어난 후 한인국방군 편성계획을 미육군사령부에 제출,노년까지 항일활동을 하던 전 의사는 해방 이듬해인 1947년 11월18일 63세로 LA 노인아파트에서 타계해 갤버리 천주교묘지에묻혔다. 94년 전 의사의 유해는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장 의사는 전 의사보다 비극적인 노년을 보냈다.1919년 1월 가석방된 후 실의와 병고를 이기지 못한 장 의사는 1930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샌프란시스코 공동묘지에 묻혔던 장 의사의 유해는 75년 국립묘지로 이장돼 사후 45년 만에 영원한 안식처를 갖게 됐다.두 의사는 모두 지난 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田·張의사가 처단 스티븐스는... 전명운·장인환 두 한국 청년이 처단한 미국인 스티븐스는 어떤 인물인가. 처단될 당시 일제 한국통감부의 외교고문으로 있던 미국인 스티븐스는 1852년 미국 오하이오 태생으로 19세때 오버린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학 법리과·외교학과를 졸업했다.처음 미 국무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882년 주일 미국공사관에서 1년간 근무한 것이 인연이 돼 일본과 인연을맺게 됐다. 이듬해 이곳을 사직한 그는 주미 일본영사관의 서기관으로 변신하였고 이듬해 다시 일본 외무성고문으로 채용되어 본격적인 일제의 침략외교를 자문하기 시작했다.그가 한·일 외교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82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결과로 체결된 ‘한성조약’ 체결때이다.일본측 전권대사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따라 내한한 그는 이노우에를 뒤에서 자문한 공로로 욱일장(旭日章)을 받았다. 스티븐스는 이후에도 영·일동맹과 뒤이은 포츠머드 강화조약에서 일본이한국을 ‘병합’할 수 있는 길을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이같은 공로로 그는 1904년 한·일간 체결된 ‘외국인 고문에 관한 규정’에 근거,대한제국 정부의 외교고문(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에는 한국통감부 외교고문)으로 초빙됐다. 그는 ‘몸’은 미국인이었지만 ‘마음’은 일본을 위하는 자였다.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는 물론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 7조약’ 체결때도 그는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이후 그는 한국의 민족진영으로부터 처단 대상으로 지목됐고 전·장 두 의사에게 처단될당시 그의 나이 55세였다. 샌프란시스코 성프란시스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한 그의 사체는 4월2일 이 병원을 출발,6일 워싱턴에 도착됐다.장례는 8일 교회에서 기독교식으로 치러졌으며 워싱턴 온비루묘지에 묻혔다.이튿날 거행된 추도식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조화와 일황의 조전 및 조화,그리고 200여명의 조문객이 참여한가운데 거행됐다. 일본 정부는 장례식에서 스티븐스에게 훈1등 훈장을 추서했으며 유족에게조의금으로 15만원을 전달했다.사후 발견된 그의 예금통장에는 2만6,000여원의 거금이 입금돼 있었는데 이 돈은 그가 일본 정부로부터 친일 대가로 받은것이었다. [정운현기자]
  • [외국인 참정권](2)어디까지 허용되나

    외국인들에게 지방참정권이 주어지면 지방공무원도 될 수 있을까. 선거권 피선거권은 물론 공무담임권(공무원이 될 수 있는 권리)을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가도 외국인의 참정권 부여와 관련,주요한 관심 대상이다.우선정주외국인들은 선거권과 함께 후보자 추천권,선거운동원,투·개표 참관권등도 갖게 될 전망이다. 시장·군수나 의원에 선출될 피선거권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지방공무원이 될 수는 있을까. 일본의 경우 지방참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공무담임권은 주고 있다.재일동포 등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가와사키·요코하마·고베 등은 90년대 초반부터 ‘공(公)적인 의사 결정’과 관계없는 직종에 한해서 외국인도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다.이런 직종은 대략 전체 직종 가운데 70%를 점한다. 가와사키현은 지난 97년에 처음으로 일반행정직에도 외국인을 채용했다.외국인으로 일본 자치단체의 공무원이 된 사람은 770명으로 집계된다고 외교통상부측은 밝히고 있다.외국인에게 공무담임권을 주는 지방자치단체는 절반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지난 96년 5월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적이 아니면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데 대해 찬성은 20% 이하로 나타난 반면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데는 45%가 찬성,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선거권에 앞서 공무원이 될수 있는 길이 먼저 열리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지방선거권을 주는 것은 위헌소지가 없다는 게 법무부측의 결론이다.헌법 118조 2항은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고 밝히고 있어 지방선거 참여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공무담임권은 헌법 25조의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바에 의해 공무담임권을 갖는다’는 규정에 따라 지방공무원일지라도 공무원이 되기는 어렵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한다.바꿔 말하면 위헌소지가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계약직 등의 방식으로 외국인의 공무원 채용은 가능하다. 박정현기자
  • [20세기 문명기행] (1) 지구촌의 탄생

    *과학이 이룬 지구촌 한가족 시대 대한매일은 새 천년 D-100일이 되는 23일부터 금세기를 정리하는 ‘20세기문명기행’을 연재합니다.이 시리즈는 매주 월요일 10회에 걸쳐 금세기 1백년동안에 이뤄진 인류의 진보와 거대사건들을 분석,정리하게 됩니다.독자여러분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주] 1901년 12월12일 캐나다 뉴펀들랜드.22세의 이탈리아 청년 귈레모 마르코니는 자신이 만든 한 기계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그리니치 표준시로 정오가 되는 순간.“톡톡톡”작은 반응이 기계를울렸다.수초도 걸리지 않은 짤막한 신호.2∼3m 떨어진 곳에서라면 들리지도않을 작은 소리였지만 마르코니에겐 지축을 흔드는 희망의 함성으로 귓전을울렸다.1,600마일 떨어진 대서양너머 영국에서 보낸 전파신호가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수신한 전파는 모르스 부호로 S자.무선통신 시대의 개막이었다.물리적인 ‘거리공간’을 압축시키면서 인류문명 사상 최초로 전지구를 하나로 묶어나가는 신호였다.지구촌 시대의 서곡은 이렇게 울려퍼졌다. “타임스 빌딩의 타임스 캐논이 힘차게 종을 12번 쳤다.지난해와 지난세기의 종언을 알리고 새해와 새로운 세기를 반갑게 맞아들였다.이를 신호탄으로 종소리와 휘파람 소리,총소리가 폭죽처럼 울려 퍼졌다.군중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환호와 박수로 새해와 새 세기를 환영했다.”(LA타임스,1900년1월 1일자). 무선통신의 발명은 20세기 역사의 출발점에서 온 인류가 걸었던 기대와 희망에대한 작은 반영이었을 뿐이다.스페인의 노벨상수상 과학자인 세베로 오초아는 “20세기의 가장 근본적 특징은 엄청난 과학의 진보”라고 말했다. 인류는 1백년을 통털어 시간과 공간을 획기적으로 압축시켜 나갔다. 1900년 체펠린,1901년 화이트 헤드,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노력에 이어 1927년 5월20일 아침 8시 지구촌시대의 가시화를 위한 또하나의 열매를 맺었다. 린드버그는 ‘세인트루이스 정신’을 타고 뉴욕을 떠나 파리로 향했다.결과는 대성공.33시간 30분 후 그는 파리의 루 부르제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그로부터 12년뒤 판 아메리칸 항공이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최초의 상업비행을 시작,전 세계인의 거리개념에 통렬하게 메스를 가했다. 앞 세기말까지 지구를 한바퀴 돌기위해서는 천재의 머리속에서마저 최소 80일이 걸려야했다. 런던-수에즈 7일(철도나 우편선),수에즈-봄페이 13일(우편선),봄페이-캘커타 3일(철도),캘커타-홍콩 13일(우편선),홍콩-요코하마 6일(우편선),요코하마-샌프란시스코 22일(우편선),샌프란시스코-뉴욕 7일(철도) 뉴욕-런던 9일(우편선 및 철도).1872년,미래학자이자 공상소설가였던 쥘 베른이 그의 소설‘80일 간의 세계일주’에서 제시했던 지구일주의 가장 빠르고 기발했던 타임테이블이다.그러나 이 천재의 구상도 이미 20세기 초입에 전설의 화석속에 매몰되고 만다. 육지에서 시속 300㎞까지 달리는 고속전철,시속 1,000㎞를 오르내리는 대형여객기 덕택에 지구촌은 1일 생활권이 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구상중인 하이퍼 X계획이 실현되면 제트여객기는마하 10,시속 9,000km의 속도로까지 비행하게 된다.토요일 점심때 김포공항을 출발하면 오후 2시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1박2일간 마음껏 즐긴후 돌아온다.그래도 서울은 아직 일요일 오후 3∼4시인게 이 계획의 목표인셈이다. 시·공간적 압축 (time-space compression)이라는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않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은 1962년 펴낸 ‘과학혁명들의 구조’에서 패러다임(Paradime)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다.이 말은 한 시대,한 공간의 가치 체계의 총체적 구조를 의미하며 ‘인식의 틀’로 번역된다.지금 가장 널리쓰이는 어휘다.패러다임은 금세기들어 지구의 총체적구조가 변화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숱한 지식인들은 지구촌의 존재의미에 대해 의문 부호를 던진다.‘지구촌 시민은 단지 첨단 전자게임을 즐길 뿐이다‘‘전세계와 연결된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가 인간 생존의 최소단위인 가족간 단절까지를 야기한다’고 말한다. 석학 앤서니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문화적,인종적 다원주의에 기초한‘세계주의적 민족’을 부르짖었다.지구촌의 인류라면 금세기가 가기 전에그 의미만은 다시 한번 새겨 봐야 할 것 같다. 김병헌기자 bh123@ *인터넷 여권·비자없이 세계를 맘대로 전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은데는 ‘제3의 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통신 발달의 힘이 컸다. 이중 위성통신의 발달은 제도,이념,국경,장소의 제한없이 지구를 하나로 연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7년 10월4일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1945년 영국의 과학자 A.C 클라크가 ‘무선세계’라는 논문에서 인공위성을 무선통신에 이용하자고 한지 12년만의 일이었다. 위성의 등장은 지구상에 더이상 ‘공간적 개념’의 오지를 남겨놓지 않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아마존의 밀림탐험을 안방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됐다.남극과 북극의 동물생태계에 관한 현장 다큐멘터리 역시 TV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게됐다.미 CNN방송이 24시간 전세계를 커버하면서 인도네시아 한 섬에서 일어나는 유혈사태를 현지시간으로 생중계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위성의 위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성에 의한 통신발달은 현재 지상망의 모든 통신망이 두절되어도 어느 누구와도 통화가능한 세계최초의 단일통신서비스 개인휴대통신(이리듐 서비스)의 개막,바로 그 코앞까지 와있다. 정보통신 혁명은 문명사의 새 지평까지도 열고 있다.인터넷은 지구촌을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으며 세계화의 ‘첨병’노릇을 하고 있다.30년전 미국의군사정보통신망이 시초가 됐던 인터넷은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유일무이한지구촌 통신망으로 자리잡았다. 지구촌 통신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터넷은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PC안에서 ‘전세계’를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혜택을 부여했다.외국인 회사에 투자를 해놓은 사람이 미국의 다우존스에서 제공하는 주가(株價)정보를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고 지구 반대편 유럽소식이 궁금한 이는 그쪽 미디어의 홈페이지만 찾아가면 쉽게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원하는 정보를 찾아 전세계를 여권과 비자없이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인터넷 세상’.그 것이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지구촌의 모습이다. 이경옥기자 ok@ * '새즈믄해' D-100일 실행체제로새천년준비위원회(위원장 李御寧)가 새천년 D-100일인 23일을 기해 실행체제로 완전 전환한다. 지난 4월12일 발족한 준비위는 그간 평화,환경,새인간,지식창조,역사 등 5대분야의 천년화(기념) 사업을 구체적으로 기획하면서 이의 실천을 위한 기구 정비에 힘써왔다.60개가 넘는 5대분야의 사업은 10월 초쯤 최종 결정될예정이지만 몇몇 사업은 이미 공식적인 발표 단계를 거쳐 진행중에 있다. 사업시행이 거의 확정된 주요사업 가운데 평화의 열두 대문 건립,비무장지대 문화특구 선포,한중일 반도성 회복 문화회의 개최 등이 평화 부문에 들어 있다.하남 국제환경박람회장 안에 ‘새천년의 숲’을 개관한 환경부문에는새천년을 기념하고 살아있는 생활공간인 도시와 거리를 밝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새즈믄해(새천년) 거리’ 조성 사업이 포함된다. 새인간 부문사업의 핵심은 2,000명의 ‘사이버 프런티어’ 선발사업으로 새천년의 미래 주역인 젊은이들을 비트 공간인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모집한다. 이 프런티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 활동 등을 통해 세계화,천년화의 인간고리로 육성된다.지식창조 부문에선 문자가 없는 민족인 인디언 오난다가족 추장인 라이어스 교수와 연계해 한글을 발음기호로 보급하여 한글의 세계화,정보화 사업의 인프라로 삼으며 예술인과 창조적 지식인을 보호육성하고 새천년을 의미있게 준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조성을 위해 ‘밀레니엄법’ 제정을 추진한다. 역사 천년화사업에선 국가기록보존의 디지털화를 위해 10만명의 주부들이시범적으로 디지털 가계부 작성을 선언한다. 준비위는 1999년 12월31일 일몰,자정 및 2000년 1월1일 일출 의 ‘새천년맞이’ 국가 공식행사를 주관한다.이때 초박막 액정화면 카드섹션과 일몰·일출지역 햇빛 채화 등을 통해 국민단합의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특히 준비위는 새천년 기념사업의 핵인 평화의 열두 대문(‘천년의 문’)건립에 힘을 쏟고 있다.월드컵이 열리는 서울 상암동 근처 옛 쓰레기 매립지인 난지도에 2000년을 시작으로 10년마다 한개의 대문을 세워나가 한 세기 백년 동안 모두 12개(통일되는 해 하나 추가)의 문을 완성하는 이 사업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지난달 말 재단법인 ‘천년의 문’을 설립했다.이 새천년 기념조형물 ‘천년의 문’ 설계시 참고자료로 활용할 아이디어를 D-100일부터일반으로부터 받는다. 준비위는 지난 8월 상임위원회를 설치했다.정부 17개 부처와 16개 시·도에 이관,실행해 오고 있는 사업에 대해 조정,기획지원 및 자문활동 등의 업무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활기띠는 해외건설」주요 공사현장

    ▲SK건설 멕시코 까데레이따 정유공장 90년대 초 중동건설시장이 약화되고 동남아 건설시장이 위축될 기미를 보이자 SK건설이 눈을 돌린 지역이 바로 멕시코.93년 진출이래 6건의 프로젝트를수주했고 그 중 가장 큰 공사가 97년 25억달러에 수주한 까데레이따 프로젝트다. 초대형 정유 및 석유화학 공장 건설공사로 97년 12월에 착공돼 2000년 6월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10개의 신규공장 건설,14개 공장에 대한 개·보수 및 현대화 등 총 29개 의작은 프로젝트로 구성된 정유공장 건설과 1,300km의 장거리 송유관 공사를포함하는 이 공사 현장에는 지난 6월말 현재 SK건설의 인원만도 현장과 지사를 포함,약 500여명이 투입됐다. ▲쌍용건설 싱가포르 크란지 경마장 쌍용건설이 싱가포르에서 시공중인 크란지 경마장은 건축·토목 복합공정으로 이루어진 고도의 기술과 수준높은 코디네이션을 요하는 건설현장이다. 국내에는 없는 잔디트랙의 시공이 이 경마장 공사의 성패를 좌우했는 데 쌍용은 7개월에 걸친 치밀한 실험과 조사를 거쳐 무사히 공사를마침으로써 발주처를 감복시켰다. 또 경주마들이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랜드 스탠드의 지붕 트러스트 공사때는 750t짜리 슈퍼크레인을 동원,2개월만에 공사를 끝내 시공력을 과시하기도했다.영국의 엘리자베스 경마장을 비롯해 세계의 유명 경마장관련자들이 현장 견학을 할 정도로 발주처는 세계에 내놓을만한 자랑거리다. 올9월 완공예정으로 싱가포르정부가 실시하는 밀레니엄 행사중 하이라이트인국제경마대회의 개최 장소이기도하다.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동아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중동건설이 내리막 길을 걷고 있던 지난 83년 건설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희망을 심어준 공사였다.당시로서는새로운 형태인 턴키베이스(설계,시공 일괄 수주)로 수주한,해외건설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공사였다. GMR(Great Man-made River)공사!말 그대로 거대한 인공강을 만들어가는 이공사는 20세기말 인류가 지구상에서 벌이는 토목공사 중 최대의 역사(役事)로 꼽힌다.현재까지 공사금액이 105억달러에 이르고 투입인원이 연 2,600만명에 달했다.공사기간도 30여년이나 된다. 지름 4m 길이 7.5m 총길이 4,000km에 이르는 거대한 송수관을 사막을 가로질러 지하에 매설하고 그 속으로 하루 650만t의 물을 북부 지중해 연안에 공급하는 이 공사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릴 정도다. ▲롯데건설 니이가다 월드컵종합경기장 지난 97년 9월1일 외국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정부 공공공사를 수주,한국 건설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롯데건설 니이가다(新潟) 월드컵 종합경기장 공사.패쇄적이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건설시장이 개방된 지 8개월만에 일본 건설회사인 다이세이(大成)건설과 공동 수주한 이 공사는 한·일양국에게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 개최를 위한 협력사례로 꼽히고 있다. 니이가다시(市) 13만9,800여평의 부지에 약 4만3,000명(연면적 2만6,500평)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경기장의 공사비는 2,250억원이다.롯데건설은이 공사외에 도쿄(東京)롯데월드 프로젝트와 요코하마(橫浜)세이부 백화점사업 등에도 진출,일본 건설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 대만 포모사 유화단지 포모사 유화단지는 대만 남부 윈린(雲林)현 마이랴(麥寮)지구 800만평에대만굴지의 포모사 그룹이 오는 2000년까지 100억달러를 들여 조성하는 세계최대규모의 정유·석유 화학단지다. 삼성은 1,2차에 걸쳐 포모사 유화단지에서만 모두 6억달러 이상의 공사를수행하고 있다.1차 공사에서는 무려 1,230만 시간 무재해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삼성의 기술력과 성실시공을 바탕으로 연산 2,100만t규모의 원유정제시설과 연산 45만t급의 에틸렌 생산설비,연산 90만t짜리 나프타 분해공장을갖춘 세계 최대규모의 포모사 단지는 현재 7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오는2000년 완공될 예정이다. ▲대우 파스키탄 고속도로 파키스탄의 라호르와 이슬라마바드를 잇는 고속도로공사로 단일회사가 시공한 고속도로로는 셰계 최대규모의 공사.설계,시공을 포함한 턴키로 수행됐으며 총 공사비는 11억6,000만달러였다.92년 4월에 착공돼 97년 11월 완공됐다. 총 연장 357km의 6차선 고속도로공사로 장대교 3개를 포함,74개의 교량을건설했다.교량 총 길이만 해도 11.7km에 이른다.이 공사 완공으로 사회주의체제에서 탈피,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파키스탄 경제부흥 및 한국과 파키스탄간의 협력증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대우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이 공사는 한국건설업체의 대규모 토목공사 수행능력과 기술력을 세계건설시장에 입증한 대표적인 건설현장이다.
  • 장종훈 통산홈런등 5관왕…프로야구 전반기 기록 결산

    개인통산 263홈런,31경기 연속 안타,최소경기 30홈런,통산 200세이브-.장종훈(한화)과 박정태(롯데) 이승엽(삼성) 김용수(LG)가 장식한 프로야구 전반기 주요 기록이다. ‘촌놈’장종훈은 개인 통산 기록을 차례로 갈아 치워 전반기 동안 가장 주목을 받았다.4월 22일 최다 득점과 타점을 경신한데 이어 5월 23일 광주 해태전에서 253호 홈런을 터뜨려 이만수(252개)의 종전 개인 최다홈런을 경신한 뒤 신기록 행진(현재 263개)을 계속하고 있다.장종훈은 최다 2루타와 최다 타점 기록마저 바꿔 개인 통산 부문 5관왕의 기염을 토했다. ‘악바리’박정태도 연일 안타 행진으로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5월 5일 한화전부터 6월 9일 두산전까지 27경기째 연속 안타를 때려 97년 김기태(당시 쌍방울)가 세운 연속경기 안타기록을 깼다.박정태의 신기록행진은 31경기에서 아쉽게 멈췄다. ‘라이언 킹’이승엽은 5월 월간 최다홈런(15개)을 터뜨리더니 지난달 6월23일 대구에서 69경기만에 30홈런을 달성,지난해 자신이 세운 최소경기(78경기) 30홈런 기록을 바꿨다.이승엽은 현재 36홈런으로 시즌 최다홈런(42개)경신도 눈앞에 뒀다. 노장 김용수는 4월 15일 인천 현대전에서 통산 20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200세이브는 60년 역사의 일본에서도 사사키 가즈히로(요코하마) 단 1명만이달성했을 정도의 대기록이다. 이밖에 신동주(삼성)는 최초로 1이닝 연속 3도루의 진기록을 세웠고 정민철(한화)은 선동열(주니치)을 제치고 최연소 100승 투수가 됐다. 김민수기자 kimms@
  • 축구대표팀 ‘젊은피’ 3명 보강

    오는 12일 개막되는 코리아컵에 출전할 축구국가대표팀에 올림픽대표팀의박진섭(고려대)과 이영표(건국대), 김도균(울산 현대) 등 3명이 보강됐다. 대한축구협회는 7일 기술위원회를 열고 벨기에와의 평가전을 치르면서 다친 하석주(세레소 오사카)와 유상철(요코하마 마리노스),이상윤(로리앙)을 제외시키고 이들 3명을 대표팀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했다.
  • 주니치 삼총사-태양·삼손·바람 ‘함께 뜬다’

    ‘주니치 삼총사’가 첫 합작승을 일궈낼 호기를 맞았다. 최근 심한 기복을 보이던 이종범이 11일 하마마쓰구장에서 벌어진 요코하마와의 원정경기에서 5타수 4안타 2도루로 맹활약,잘 때리고 잘 달리던 해태시절 ‘바람의 아들’의 진수를 유감없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종범도 경기후 “타격 감각과 벨런스가 모두 좋아지고 정상 컨디션을 찾았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이종범의 부활은 곧바로 ‘주니치 삼총사’의 첫 합작승을 예고한 것이나다름없다.그동안 ‘나고야의 태양’선동열은 여전히 위력적인 투구로 상대를 압도하고 ‘삼손’이상훈도 지난해와는 확연히 달라진 구위로 코칭스태프를 흡족케 했다.다만 이종범만이 들쭉날쭉한 타격으로 주니치의 합작승에 마치 걸림돌처럼 돼 왔다.그러나 이종범의 컨디션 회복으로 이상훈 선발승에 이종범의 호타,선동열의 세이브로 이어지는 이른바 ‘한국인 삼총사의 합작승’이 마침내 눈앞으로 닥친 것.그 무대는 이상훈이 시즌 6번째 선발 등판하는 14일 고시엔구장에서의 한신 타이거즈전이 될 전망이다. 개막이후 2연승을 달리다 2패를 당한 이상훈은 이날 반드시 시즌 3승째를따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이상훈은 2연승뒤 3차례 경기에서 7이닝 3실점,7이닝 2실점,완투패(0-4) 등 잘 던지고도 팀 타선의 불발로 패한 아쉬움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이번 경기에서 마저 3승이 불발될 경우 이상훈의 올 시즌 행보에 치명타를 입을 우려마저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상훈은 ‘구원불패’선동열이 든든히 버티고 있는 데다 이종범이살아나 그 어느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다. 이종범은 이상훈이 패전을 기록한 지난달 23일과 지난 8일 히로시마전에서각각 4타수 무안타로 침묵,이상훈의 애간장을 태웠다.게다가 한신은 지난해8월13일 일본 데뷔이후 첫 승의 제물이 됐던 팀.6이닝동안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호투한 바 있어 기대를 더욱 부풀리고 있다.
  • 日人 눈에 비친 지하철파업

    “승객들의 생명이 위험한데도 파업이 장기화되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없습니다” NTT(일본전신전화) 서울사무소에서 1년2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일본인 요시모토 시게미(사진·吉本 茂美·32)씨는 23일 닷새째를 맞고 있는 서울지하철 파업사태에 대해 한마디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요코하마에서 도쿄까지 전철로 출퇴근했다는 그는 “일본에서는 지하철파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지하철은 일반기업과 달리 공공성이강하기 때문에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도 출근시간 전까지는 타협을 이끌어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를 결코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설령 파업을 하더라도 출근시간 전 1∼2시간만 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파업을 하고있는지 모를 정도라고 덧붙였다. 요시모토씨는 또 자신도 근로자이자 노동조합원이기 때문에 파업은 근로자의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파업 끝에 지하철이 시간을 앞당겨 멈춰서는 것에대해서는 ‘고객’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노사가 서로의입장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내는 손님의 편의와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파업을 벌이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출발,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까지출근하는 요시모토씨는 지하철이 단축운행을 시작한 22일부터 퇴근수단을 버스로 바꿨으며 당산역 사고소식을 듣고는 출근 때도 아예 버스를 이용하고있다.
  • ‘10년 표류’ 국제종합전시장 立地 이달말 확정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도권 국제종합전시장 유치를 위한 경기도와 인천시의 막바지 경쟁이 치열하다.현재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와 인천시 송도신도시 등 2곳의 후보지를 대상으로 대한국토도시학회에서 입지 선정을 위한 평가작업을 하고 있다.이달 말 산업자원부의 입지선정위원회에서 부지를 최종확정할 예정이다. 추진경위 정부는 1,919억원을 들여 수도권지역에 2002년 상반기까지 전시장을 건립,월드컵대회 때 활용한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3만평 부지에 연건평 2만6,500평이며 전시실 면적만 1만7,000평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 89년 일산신도시 조성 당시 일산신도시를 국제교류 및 통일의전초기지로 개발한다는 계획 아래 이곳에 전시장을 건설하기로 했었다.고양시는 90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요청에 따라 전시시설 용지로 10만평을 확보했다. 그러나 김영삼(金泳三)정권 초기인 93년 9월 정치적 이유로 돌연 당초 후보지에 없던 부산지역이 국제종합전시장 후보지로 급부상하는 소동을 치렀다. 정권교체 이후 다시 수도권내 국제전시장건립 필요성을 느끼던 기획예산위원회는 지난해 6월 수도권 국제종합전시장 건립을 민자유치 대상사업으로 선정,고시했다. 약 1조원의 부대효과가 예상되는 수도권 국제종합전시장 건립이 지자체간의 유치경쟁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소모전으로 치달으며 10년 가까이표류하는 바람에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 낭비를 자초한 셈이다. 경기도 입장 93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국제종합전시장 건립 타당성조사’를 한 결과 일산신도시가 98.6점을 얻어 85.2점에 그친 송도신도시보다 적지로 꼽혔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일산 전시장 건립 계획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해 경기도 방문 때도 지원을 약속했다. 전시장 실수요자인 전국 사업체의 47.3%,수출액의 30.3%,외국인 투자액의 48.1%가 경기도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일산신도시는 서울과 거리가 17㎞밖에 안돼 관람객들이 접근하기 편하다.국제회의 및 전시회의 76%가 일산신도시에서 가까운 서울에서 열려 외국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도시로 개발돼 상·하수도와 전력 등 도시기반시설을 완비했기 때문에 2002년 월드컵대회 개최전 전시장 완공 및 활용이 가능하다.월드컵 주경기장인 서울 상암경기장과 인접해 있다.사회간접자본 건설비용도 절감된다. 각종 도로 및 교량의 확충·정비로 물류수송 여건이 좋아졌고 김포공항·인천국제공항은 물론 서울과 연계된 도로망이 잘 발달돼 있다.앞으로 건설될경인운하가 일산과 연결돼 무거운 화물의 수송도 가능하다. 고양시는 세계꽃박람회 개최 등으로 국제적 지명도가 높고 북으로 가는 관문에 위치해 남북교류 거점으로서의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동양 최대 규모의 인공호수(30만평)가 전시장 건설부지와 인접해 있고 서울에 있는 각종 위락·숙박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인천시 입장 수도권 국제종합전시장 예정지인 송도신도시는 물류 접근성이나 파급효과 등 입지조건이 좋다. 2001년 개통되는 인천국제공항과는 10분 이내,인천항과는 직접 연결되며 오는 10월 개통되는 인천지하철 1호선,서울외곽순환도로,제1·2경인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 등과도 각각 연결돼 입체적으로 교통이 편리하다.송도신도시내에 세계무역센터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국제무역과 연계된 제반업무를 한자리에서 볼수 있으며 국제적 지명도도 높다. 물류 접근성 때문에 외국 대부분의 전시장이 항만을 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천은 항만은 물론 공항·고속도로 등과도 직접 연결돼 국내외적으로물류 접근성이 용이하다. 특히 전시장 주변에 인천지역 8,000여개 제조업체를 비롯해 시흥 안산 수원 평택 아산 등 서해안권의 2만여개 업체가 밀집돼 전시장 수요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송도신도시에는 컨벤션센터 등 국제 비즈니스 전문타운과 테크노파크와 미디어 밸리 등 첨단산업단지 등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전시장이 유치되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전망이다. 또 송도신도시는 지반안정성이 뛰어나다. ‘수도권종합전시장 인천유치위원회’는 지난달 17일 ‘종합전시장 인천유치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한데 이어 100만 인천시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타당성 조사서 최적지 이미 검증”…이래서 일산 “국제종합전시장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주요 정책사업입니다.이미 객관적인 타당성 조사 등을 통해 확연히 적지임이 입증된 후보지에 대해 뒤늦게 지역주의나 앞세워 발목을 붙잡는 행위는 행정력 낭비요,국가경쟁력을 도외시한 소모적 정쟁에 불과합니다” 조한유(趙漢裕·50) 고양시 국제종합전시장 유치건립 기획단장은 “일산 국제전시장 건립은 이미 지난 89년부터 정밀조사 등을 통해 정책결정이 이뤄진 만큼 이제는 2002년 월드컵 행사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국민총화를 모아 건립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에는 이미 국제수준의전시장이 3곳이나 건립돼 있다”면서 “서울무역전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달해 전시행사를 신청하고도 6개월∼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할 형편이고 당장2002년 월드컵 행사에 따른 전시장 확보도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후보지 결정문제와 관련,조단장은 “그동안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일산 후보지가 돌연 부산으로 뒤바뀌었다가 이번에는 인천시가 가세해 또다시 불필요한 소모전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국제전시장은 단순히 주민들의 바람이나 정치적인 지역논리가 아닌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신중히결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기준에서 볼 때 “일산은 서울과의 접근성이나 물류수단,교통,도시기반시설 등 어떤 측면에서도 준비된 곳이나 다름없으며 객관적인 검증도 끝나 있는 상태”라고 단언했다.전시장이 2002년에 완공되더라도 신도시1단계 조성이 2005년에야 완료돼 허허벌판에 전시장만 덩그렇게 들어서는 상황이 연출될 송도신도시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는 인천시가 내세우는 항만조건에 대해 “서울이 항만이 없는 내륙이라해서 국제전시장 운영에 차질이 많으냐”고 반문하고 “오히려 이미 설치된대륙철도 이용이 가능하고 경인운하가 건설되면 해상운송 여건도 갖추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 안목서 투자적지 결정을”…이래서 송도 “국제종합전시장 입지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감안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유발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역으로 선정돼야 합니다” 이병록(李炳祿·42) 인천시 투자진흥관은 “국제전시장의 주된 수요자는 해외기업체와 외국바이어들”이라며 “따라서 전시장 문제는 인천과 일산의 경쟁이 아니라 추후 외국도시와의 경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도시가 홍콩 싱가포르 요코하마 등 국제전시장이 있는 도시와대등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명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국장은 “일산은 남북교류의 축이지 국제교류의 축이 될수 없다”면서 ”육·해·공 입체적인 교통망을 갖춘 인천만이 세계적인 도시와 경쟁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국제전시장에 전시되는 외국의 자본재는 중량과부피가 커 육로수송에는 한계가 있고 인천은 배로 들어온 제품을 신도시 접안시설과 레일을 통해 바로 전시장으로 수송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송도신도시에는 인천세계무역센터 미디어밸리 테크노파크 등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종합전시장이 이들과 연계돼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종합적인 지원기능이 갖춰져야 비로소 국제전시장으로서 완벽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국장은 고양시측이 즉시 착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는 데 대해 “입지 선정이 되더라도 설계 등의 절차가 끝나는 연말쯤에나 착공이 가능하다”면서 “송도도 그때 가면 기반시설 조성이 끝나기 때문에 착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송도가 매립지여서 지반이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 “지질조사 결과 송도신도시 지하가 내륙보다 안전한 암반층으로 돼 있음이 입증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종합전시장 입지가 정치적인 논리에 좌우돼서는 안되며 최소한 10년 이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이국장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인천 김학준기자
  • [정직한 역사 되찾기](33)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

    일제강점기 친일파는 조선내는 물론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만주사변 이듬해인 1932년 수립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나 일본 본토도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이들은 대개 군부나 행정기관 등 일제의 권력기관에서 일제통치의 수족으로 활동하였다.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사를 나와 고급장교로 활동한 친일 군인들이 이에 속하며 또 일본이나 만주국의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고급엘리트 관료로 활동한 자들을 들 수 있다.한 단계 낮은 직급에서는 밀정이나 행동대원 등 앞잡이로 활동한 자들을 거론할수 있겠다. 일본 본토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친일파로 박춘금(朴春琴·1891∼1973)을 들수 있다.그는 조선인으로서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두 번씩이나 대의사(代議士·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그의 친일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극력 친일파 가운데 일제말기 일제가 임명한 귀족원 의원을 제외하면 일제통치 전 기간을 통해 일본 국회에 진출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박춘금은 여러 형태의 친일파 가운데서상당히 드문 유형에 속한다.친일파 가운데는 지식을 팔아 일제에 아부한 집단이 있는가하면,경제적 기반을 일제통치에 제공한 대가로 기득권을 보전하고 일제와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부류도 있다.그러나 박춘금은 그도저도 없는 자였다.그는 오직 몸뚱이 하나로친일대열에서 성공한 자였다.그는 수하에 폭력조직을 거느린 소위 ‘정치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였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하수인으로 폭력집단이 존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식민지시절에도 이같은 집단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주먹으로 친일배의 정상에 오른 그의인생역정을 더듬어 보자. 박춘금은 1891년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도 밀양이다.부 박금득(朴今得)과 모 박차연(朴且連)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청년시절 그는 일본인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본말을 배운 것을 밑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판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일본으로건너간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하지가 않다.다만 그가 한 연설에서 토로한 말에 따르면,일본에 도착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원 49전뿐이었으며 당시 일본에는 관비유학생 50명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했다. 1920년경 그가 이기동(李起東) 등과 함께 도쿄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아 ‘상구회(相救會)’라는 단체를 조직한 사실은 확인된다.이기동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재일 친일파다.상구회는 1921년말 ‘상애회(相愛會)’라는 사회사업단체로 개편되는데 23년 요코하마·나고야·오사카 등에 지부를 조직,조직을 확대하였다.그럴듯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이 ‘상애회’가 바로 박춘금 일당의 일본내 친일활동의 모태가 된다. 막노동판의 주먹패 박춘금이 일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인근 지역을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었다.수 십만 명의 인명피해는 물론 재산피해도 엄청났던 이 천재(天災)를 맞아 일제는 동요한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탄압할 목적으로 당국의 개입하에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거나 방화를 일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여기에는 미즈노(水野鍊太郞) 당시 내무상의 조선인에 대한 개인감정이 개입됐다는 지적도 있다.미즈노는 1919년 9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따라 정무총감으로 조선에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첫 발을 디뎠다가 강우규(姜宇奎)의사의폭탄세례를 받은 인물).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관헌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체포와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최소 6,000명이 이때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바로 이때 박춘금은 상애회 회원 300여명을 동원,‘노동봉사대’를 조직하여 조선인 희생자 시체처리와 복구작업을 자청하였다.이 무렵 박춘금 일당은이미 일제당국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상호 자연스레 교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박춘금은 일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상애회 본부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입지를 넓혀갔다.28년 박춘금은 상애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고는 이사장에 총독부 경무총감 출신의 마루야마(丸山鶴吉)를 영입했다.회장에는 이기동을 앉히고 자신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였다.이 무렵 상애회는 일본내 주요도시에 지방본부를 설치하였고 회원수도 2만명을 헤아렸다.이듬해 29년 상애회관을 지어 사무실도 독립하였고 마루야마 취임 1주년때는 사이토를 기념식 행사장에 초청하는 등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세력가로 부상한 그는 상애회 조직을 바탕으로 정계진출을 추진하였다.32년 2월 실시된 제18회 총선때 그는 도쿄 5구(區)에 출마,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놀라운 것은 조선인 유권자가 1,236명뿐인 이곳에서 6,966표를 얻었다는 점이다.그의 열렬한 친일성이 일본인 유권자들을 설득시킨 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정계 실력자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직후인 2월 23일자로 그가 사이토 전 조선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불초 이번에 중의원 의원에 당선의 영관(榮冠)을 얻게 된 것은 모름지기 귀대(貴台,손위사람의 높임말)의 두터운 정과 성원을 입은 것이라 여기며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한데서 이같은 점을 엿볼 수 있다.이후 그는 한 차례 낙선했다가 40년 제20회 총선에서 재선하였으나 그의 정치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이후 그는 활동무대를 조선으로 옮겨 친일대열의 선봉장을자처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친일활동이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학도병 징집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 주최 학병격려대연설회에 참석하여 “고이소(小磯)총독이 (조선)군사령관 시절 군사령부를 방문,내선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도인에 대한 병역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밝히고는 “(학도병)4천이나 5천이 죽어 2천5백만 민중이 잘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고 외쳤다(매일신보 1943.11.19). 당시 일제가 학도병을 전선으로 내몬 것은 그 이면에는 조선의 미래의 지식분자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었다.그가 이같은 일제의 의도를 대변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에게는 그런 혐의를 둘만한 사건이 하나 있다. 8·15 해방을 불과 50일 앞둔 1945년 6월 25일.그는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청사)에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친일파들을 동원,대의당(大義黨)을 결성하고 그 자신이 당수에 취임하였다.당시 전세는 이미 기울어 일본은 패퇴를거듭하였고 미군의 일본 본토공격이 임박한 시기였다.대의당은 바로 이 때‘최후결전’의 자세로 결성된 것이다. 대의당은 ‘강령’에서 “모든 비(非)결전적 사상(事象)에 대해서는 단연이를 분쇄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비결전적 사상’이란 ‘반전·반일’의 총칭이다.해방후 친일파들의 죄상을 조사,폭로한 ‘민족정기의 심판’에따르면 대의당은 항일·반전 조선민중 30만명을 학살하려 했던 ‘살인단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당시 총독부 경무국이 세운 ‘요시찰인에 대한조치계획’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해방후 그는 살길을 찾기 위해 수하를 시켜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돈봉투를보내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밀항하였다.이 때문에 그는 반민특위의 체포,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특위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를 송환하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모두 3번 결혼했는데 첫째,둘째 부인은일본여자였고 66년 75세때 세번째로 결혼한 여자는 당시 60세의 한국여자(82년 사망)였다.두번째 일본인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장남 박춘남(朴春男·89년 일본에서 사망)은일본 릿교(立敎)대학 3학년 재학중 자진하여 학도병에 출진했었다. 일제당시 일본에서 박춘금과 교류한 적이 있다는 한 일본군 장교출신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마약중독으로 거의 폐인이돼버렸다고 한다.73년 3월 31일 박춘금은 일본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사망,현지에 묻혔다.친일 반민족자 박춘금의 일생은 그제서야 막을 내렸다.죽어서도 그는 고국보다 일본을 택한 것인가,아니면 죽어서도 고국으로 올 수가 없었던 탓일까. 정운현기자 jwh59@
  • 이상훈 오늘 요코하마戰 첫 출격

    ‘삼손’이상훈(주니치 드래건스)이 시즌 첫 출격채비를 마쳤다. 이상훈은 7일 오후 6시20분 나고야돔에서 지난해 우승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상대로 시즌 첫 선발등판,지난해 구겨졌던 자존심을 되찾는다는 각오다.지난해 1·2군을 오가며 부진했던 이상훈의 이번 선발등판은 매우 중요한의미를 갖는다.이상훈은 지난해 요코하마전 4경기 10이닝동안 홈런 1개를 포함,12안타에 5실점했다.
  • 한국 패기-브라질 개인기 한판승부

    “브라질은 과연 강하다.그러나 우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허정무 감독) “축구의 진수를 보이러 왔다.온 힘을 다할테다.”(반델레이 룩셈부르고감독) 28일 오후 7시 잠실 주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경기. 대표팀 사령탑은 이 한판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이다.한국은 국내외에서활약하는 최고의 플레이어들을 총망라한 상비군(39명) 가운데서 다시 22명을 가려뽑은 ‘스타중 스타’의 집합.또 브라질은 98월드컵 준우승 주역 뿐만아니라 새로운 21세기를 이끌 신진 선수들을 대거 끌여들여 ‘젊은 축구’를선보인다는 포부. 허정무 감독은 일본에서 뛰다 고국을 위해 다시 모인 J리그 ‘한국인 빅7’에 큰 희망을 품고 있다.무엇보다 월드스타 홍명보(30 가시와 레이솔)는 뛰어난 수비수이면서도 전광석화처럼 골에어리어를 돌파하는 공격력까지 갖춰이번에도 한몫 단단히 해주리라는 기대.또 빗셀 고베 3인방이 어떤 골묘기를 선사할지도 지켜볼 만하다. 프랑스월드컵 때 통렬한 중거리포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은 ‘왼발슛 달인’ 하석주(31) 일본에서 지난해 17골을 터트리며 J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김도훈(22) 상무에서 제대한 뒤 현해탄을 건넌 ‘꾀돌이’ 최성용(29)이 버티고 있다.세레소 오사카의 황선홍(31) 노정윤(28),요코하마 마리노스의 유상철(28)까지 가세해 힘을 실어준다. 브라질 룩셈부르고 감독은 신·구 세대간 조화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자랑한다.우선 현재 스페인리그 득점 2위를 달리는 히바우두(27 FC바르셀로나)가 이번 엔트리에서 빠진 호나우두의 공백을 메우고도 남는다.29골로 전유럽 득점선두인 자르데우(26 포르투갈 FC포르투)와 97말레이시아 세계청소년대회 우승 일등공신인 ‘영스타’ 호니(22 브라질 플루미넨세) 등을 축으로 삼아 나라의 명예가 달렸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뛸 것이라고 다짐한다. 송한수
  • 범양상선, 日시미즈항 정기운항

    범양상선은 오는 20일부터 일본의 시미즈(淸水)항을 매주 수요일 주 1항차로 정기 운항한다고 3일 밝혔다.이 운항에는 새로 건조된 700t급의 ‘포스에인절’호와 ‘포스 브리지’호가 투입돼 청도∼광양∼마산∼부산∼도쿄∼요코하마∼시미즈∼나고야를 오가게 된다.시미즈항은 일본 컨테이너 항구 중 물동량 기준으로 6번째의 대형항구이다.
  • 심장·폐수술 예정 환자 병원 실수로 뒤바꿔 수술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 요코하마(橫浜)시립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병원측 실수로 엉뚱한 부위의 수술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병원측은 지난 11일 심장과 폐 수술이 예정돼 있던 2명의 60대 남자환자를 수술을 했으나 수술후에 환자가 바뀐 사실이 드러났다고 13일 밝혔다. 이들 환자는 병원측 실수로 수술실이 바뀌어 옮겨진 뒤 담당의사가 각각 멀쩡한 심장과 폐를 예정대로 일부 절개하는 등 엉뚱한 수술을 받았다. 병원측은 수술이 끝난 뒤 회복실에서 조리중이던 이들 환자가 바뀐 사실을뒤늦게 파악했다. 부위를 바꾸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병실이 가깝고 나이도 비슷한데도 수술 예정시각이 같았는데 병원측이 이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수술실로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측은 “이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며 이들이 회복되는대로 다시 수술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위를 바꾸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집도의가 절개했을 당시 우연히 심장병 환자는 폐가,폐 환자는 심장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일본판 禹 조교 사건’ 판결 눈길(뉴스 인사이드)

    ◎“저항 안해도 성희롱 성립” 피해자 승소 【도쿄 黃性淇 특파원】 상사나 동료로부터 성희롱을 당할 때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거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가해자는 처벌을 받을까. 최근 일본에서 목격자나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밀실에서의 강압적 성희롱에 철퇴를 놓는 판결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판 ‘禹조교 사건’이다. 센다이(仙台) 고등재판소는 지난 10일 아키타(秋田) 현립 농업단기대학 보조연구원(45·여)이 같은 연구실의 교수(55·남)를 상대로 낸 성희롱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에서 “피해자가 저항은 하지 않았지만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93년 9월 피해자가 피고인 교수와 함께 요코하마(橫濱)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 발생했다. 직장 상사인 교수가 피해자의 호텔방에 느닷없이 들어와 침대에 밀어 쓰러뜨린 뒤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으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저항은 하지 않았다는 게 사건의 개요. 피해자는 교수가 강제로 성추행을 했다며 334만엔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교수도 “감사와 격려의 기분으로 어깨에 손을 올렸을 뿐이다”라고 피해자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한 550만엔의 위자료지급 청구소송으로 맞섰다. 지난해 1월 아키타 지방재판소의 1심 판결. 재판장은 “침대에 쓰러진 상태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은 점 등은 강제추행의 피해자로선 부자연스럽다”며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오히려 피해자가 교수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60만엔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피해자는 항소를 제기했고 1심을 뒤집는 판결을 받아냈다. 센다이 고등재판소는 “직장의 상하관계나 동료의 우호관계를 지키려는 생각에서 피해자가 반드시 저항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결,‘저항하지 않으면 성희롱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종래의 개념을 깨버렸다.
  • 배설의 상해 복역(대한매일 秘史:6)

    ◎더위·모기떼 시달리며 3주간 혹독한 옥고 치러/판사 “한국민 선동” 판결.英 군함으로 상해 이소/한국인들 연일 몰려오자 형무소 면회 아예 금지/영어 공판기록 번역 대한매일 한달반 연재 4일째인 6월18일(1908년) 판사 보온은 배설에게 3주일간의 금고(禁錮)형을 선고했다.또한 복역 후 6개월간 근신을 서약해야 하며 350파운드의 보증금(피고 200파운드,보증인 150파운드) 납부를 판결했다.판사는 문제된 논설 3건은 한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에 대항한 봉기를 선동한 것이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단정했다.그러므로 앞으로 계속 반란을 선동한다면 추방령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판결 결과가 알려지자 재판정 밖의 많은 한국인들은 실망하고 격분했다.어떤 사람은 돈 4천환을 가지고 와서 배설의 금고형을 돈으로 대신 면제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놓겠다고 말했고,변호인 크로스의 노고를 치하하는 연회를 제의하는 사람도 있었다.주일 영국대사 맥도날드는 한국인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는 배설의 처벌로 그들의 감정이 악화될 것을 우려,서울의 영국 총영사관이 습격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미국의 한국교포들이 친일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한 것을 보더라도 그런 위험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고 영국 총영사관 부근에 경찰관을 순회시키는 등의 예방조치를 취해달라는 편지를 일본측에 보냈다. 배설을 어디에 수감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주한 영국 총영사관이 해결해야할 문제였다.서울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수 있는 형무소 시설이 없었다.편법으로 호텔이나 집을 세내어서 감금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당국이 불만을 제기할 것이다.그렇다고 일본인 관할 하의 형무소에서 복역케 한다면 영국이 배설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이었다.마지막으로는 배설을 상해로 호송,그곳의 형무소에서 복역케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었다.그러나 배설을 어떻게 상해까지 보내느냐 하는 것이 난관이었다.당시 인천­상해간 정기 배편이 없고 일본을 경유하도록 되어 있었다.그러나 배설이 일본을 거쳐 상해로 가는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일본의 사법권 관할하에 놓이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코번은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배설을 인천에서 상해로 직접 싣고 갈수 있도록 요코하마에 정박중인 영국 군함을 보내달라고 본국 정부에 건의했다.외무성은 이를 받아들여 요코하마에 있던 영국 군함 클리오(Clio)호를 단 한 사람의 죄인 배설을 상해로 호송하기 위해 급히 인천으로 파견했다.배설에게는 6월18일 오후에 금고형을 언도하였으나 상해로 싣고 갈 군함이 올때까지 일단 석방,이틀 뒤인 6월20일에 출두하도록 명령하였다.이에 따라 배설은 20일 오후 4시 총영사관에 출두,곧장 서울역으로 가서 5시20분 발 인천행 기차를 타라는 지시를 받았다.배설이 서울역을 떠난다는 소문이 퍼지면 많은 군중들이 서울역에 몰려올 것이고 그러면 소란이 일어날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상해로 가는 낡은 군함을 탄 이후부터 배설의 고생은 시작되었다.배 안의 생활은 이미 복역 기간이었다.더욱이 상해 형무소에 들어간 후에는 밤이면 더위와 모기에 시달리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팔다리를 격렬하에 휘저어대며 방안을 거니는 것으로 겨우 모기떼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배설은 자신을 「온정적으로 처리」한다면서 상해로 이송,복역하도록 결정한 판사가 원망스러웠다.판사가 감옥의 혹독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고 출옥 후 일본의 영국인 발행 영어신문 재팬 크로니클에 실은 옥중기에서 밝혔다. 배설의 상해도착 소식을 들은 상해거주 한국인들은 연일 면회를 왔다.형무소 당국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재소자들의 면회마저 금지시켰다.감옥의 3주간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한없이 느리게 갔다.그가 출옥한 날은 7월11일이었다. 한편 서울의 대한매일은 국한문판과 한글판에 배설이 상해로 떠나던 바로 그날인 6월20일부터 공판의 상세한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무려 한 달 반이 넘도록 연재되어 배설이 돌아온 뒤인 8월7일까지 실렸다.영어로 진행된 공판 내용을 번역하여 거의 완벽하게 게재하였다.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일본이 한국을 억압했기 때문이라는 피고의 주장과 변호인 크로스의 변론,증인들의 증언 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 高宗 밀서사건(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0)

    ◎을사조약 강제성 낱낱이 들춰/영지게재 6개 조항 1면 논설통해 소개/일제 정정요구 거부/밀서 사진으로 전재 “고종 진의 확인” 공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뒤 발생한 ‘고종 밀서사건’은 언론을 통해 을사조약의 강제성과 대한제국의 주권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것이다.한국침탈을 강행한 일제는 이 사건으로 이미지를 크게 손상받았고 한반도 정책에서 더욱 강경책을 시도하게 된다. 특히 이 사건은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국내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반일감정을 급속히 확산시켰고 결국 일제가 대한매일 등 민족지를 탄압하고 노골적인 침략정책을 진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이다. 고종 밀서사건은 대한제국 황실과 영국의 런던트리뷴 특파원인 더글러스 스토리 간에 극비리에 진행된 일종의 작전이었다.스토리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주한 미국공사 모건을 만나 을사조약 체결전말을 들은 뒤 고베에서 통감부 총무장관으로 새로 임명된 스루하라 일행과 함께 한국에 온 것은 1906년 초. 서울의 지인들과 두루 접촉한 끝에 고종을 만난 스토리는1906년 1월29일 고종의 밀서를 전달받는다.밀서는 모두 6개 조항으로 고종이 ▲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고 ▲조약을 일본이 반포하는 데 반대했고 ▲독립권을 한치도 타국에 양여할 수 없고 ▲이 조약의 외교권도 근거가 없으므로 내치상 한건도 인준할 수 없고 ▲통감의 주둔을 허락하지 않는 동시에 황실권도 외국인에 허가하지 않고 ▲세계열강이 한국을 집단보호통치하되 그 기한은 5년이 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고종의 붉은 옥쇄가 찍힌 이 밀서는 고종의 측근들이 일본측 정탐꾼들 눈을 피해 바짓가랑이 속에 감추고 나온 것이다. 스토리는 이 밀서를 대한매일 사주 裵說에게 보여준 뒤 일본군의 경계망을 뚫고 제물포에서 노르웨이 배에 올라 2월7일 중국 지부에 도착한다.영국영사 오브라이언 버틀러를 찾아가 고종의 밀서사실을 알리고 밀서내용 기사를 런던트리뷴 본사로 송고했다. 다음날 트리뷴 3면 머리에 이 기사가 실렸다.“을사조약은 고종의 재가를 받지 않았고 고종은 실질적으로 포로의 신세”라는 내용이었다.을사조약 체결 경위와밀서 6개항이 영문으로 함께 번역 게재됐다. 일본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주영 일본대사관은 트리뷴의 보도가 전혀 사실무근임을 주장하고 나섰다.또 고종이 보호조약에 날인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오히려 고종이 이 조약에 동의했다고 억지를 부렸다.그러자 스토리는 2월10일자 또 다른 기사로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다.일본이 한국 황제와 대신들을 협박해 보호조약을 체결하게 된 상세한 전말을 고종 측근의 말을 인용해 썼다. 이 기사는 트리뷴에 실린 뒤 로이터 통신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대한매일은 2월28일자 1면 논설 ‘保護’에 트리뷴의 기사를 소개했고 코리아 리뷰도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을 인용,한국황제가 을사조약의 신빙성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고종 밀서사건은 영국·일본·중국·한국 신문에 계속 보도됐고 1907년 1월부터 한국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는다.스토리는 1906년 10월부터 트리뷴에 ‘동양의 장래’란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다섯번째로 12월1일자에 문제의 밀서를 크게 실었고 대한매일은 이 밀서 사진을 1907년 1월16일자에 그대로 올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통감부가 적극 나서기 시작한다.밀서가 근거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무색해졌고 고종의 진의를 한국민들이 확실하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통감부는 “고종이 밀서를 준 일이 없다”고 강력 부인한 뒤 대한매일에 제동을 걸었다.裵說 추방책을 영국정부와 타진하기 시작했다.먼저 “밀서는 불순한 자들이 한일 양국의 친의(親誼)를 해치려고 날조한 것”이라는 내용을 1월21일자 관보에 실었다.또 한국정부 외사국장 李建春을 시켜 “대한매일에 실린 밀서기사는 사실무근이니 이를 정정하라”는 공문을 裵說에게 보냈다. 몇몇 친일계열 신문이 관보에 실린 내용을 게재했지만 대한매일은 오히려 밀서가 진짜라는 주장으로 맞섰다.1907년 1월23일자에 “이 밀서가 거짓이 아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까지 갖고 있으나 그 증거를 제시하면 관련 한국인들에게 보복이 떨어질 것이므로 이를 내놓을 수 없다”는 기사를 싣고 기사정정 요구를 무시했다. ◎고종 밀서 전말/한국의 중립화 목표/미·러 협조 실현안돼/외지에 일 음모 고발 고종의 밀서사건은 국내 반일감정 악화에 따른 통감부의 여론통제 방침을 더욱 강경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다.통감부는 밀서사건 뒤 곧바로 대한매일 등 항일 민족지의 논조를 희석시키고 통감부의 정책을 그대로 대변할 수 있는 친일지들을 만들어 갔다. 그러면 이처럼 일제를 자극한 고종의 친서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외세 강점기 이 밀서가 나오기까지 고종의 생각은 한국이 시종일관 중립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종은 일제 강점을 막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방향으로 열강의 협조를 구했고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세계 각국에 이를 알리기 위한 비밀문서까지 만들어주게 된 것이다. 밀서사건 때까지 고종의 이같은 노력은 수차례에 걸쳐 추진됐었다.1900년 주일 한국공사 李夏榮이 처음 제기한 ‘한국의 중립화’안은 러일간에 고조된 긴장상태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 사실.그리고 4년 뒤인 1904년 1월21일 고종의 명을 받은 외부대신 李址鎔이 한국의 엄정중립을 명기한 성명을 냈다.각국 주재대표 11명이 각국 정부에 이 선언서를 알렸지만 결국 2월23일 한일의정서가 체결됐고 이같은 중립화 정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고종은 열강의 힘을 본격적으로 빌리기 시작한다.1905년 2월 고종은 러시아 육군소장 데시노를 통해 러시아 황제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밀서를 보냈다.이 밀서는 주한 러시아 공사였던 파블로프를 통해 러시아로 전달됐다.또 을사조약 직전인 그해 10월에는 헐버트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프랑스 주재 한국공사 閔泳瓚을 미국에 보내 미국의 개입을 요청한 것도 유명한 사건이다.민영찬은 12월초 현지에 도착해 미 국무장관 루트에게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했으나 미국은 무심한 입장표명을 했다. 결국 고종은 이같은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국내에 와있던 외국기자를 통해 만국에 알리는 방안으로 밀서를 쓰게 됐던 것이다.
  • ‘도로에 지능’ 체증없는 21세기로/ITS 서울세계 대회

    ◎12∼16일 COEX서 40개국 참가/신호체계­정보통신·전자제어 접목/안정성 향상­물류비 절감­오염 방지/미·일 실용화… 한 2010년 본격 가동 제5회 ITS 서울세계대회가 오는 12일부터 16일까지 ‘새로운 삶은 첨단 교통시스템으로’라는 주제로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한국종합전시장(COEX)에서 열린다. ITS(Intelligent Transport Systems)는 지능형 교통시스템으로 기존의 교통체계를 전자,정보통신,컴퓨터 등의 첨단기술에 접목시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교통문제 개선을 목표로 개발,보급되고 있다. ITS세계대회는 국가간 기술교류를 통한 ITS의 발전 및 보급을 목적으로 지난 94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서울대회의 주요 행사로는 개·폐회식,전체회의,집행회의,전시회,기술시찰등이 있으며 40여개국 약 4,000명의 각국 정부관리,회사 대표,ITS전문가 등이 참석 예정이다. 전시회는 최근 개발된 기술 및 장비들이 전시되는데 16개국 83개 업체가 353개 부스를 신청,성황을 이루고 있으며 KOEX 대서양관에서 12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된다.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된 첨단 차량 및 도로시스템이 13,14일 양일간 선보이게 된다. ITS의 개념과 기대효과,국내외 추진현황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알아본다. ▷ITS의 정의 및 기대효과◁ 도로,차량 신호시스템 등 기존의 교통체계에 정보통신,전자제어 등의 첨단기술을 접목,교통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이 시스템의 구축배경은 기존 교통체계로 인한 교통혼잡 비용 과다 지출,교통사고 건수 및 사망자 수의 지속적 증가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장래 교통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것. 교통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통해 안전성의 향상과 물류비의 절감을 가져오며 환경오염 방지 효과도 거둔다.또 첨단산업의 국가경쟁력 강화와 교통혼잡 완화,에너지 절감 등의 기대효과가 있다. 주요 구성 내용을 보면 첨단 교통관리,첨단 교통정보,첨단 대중교통,첨단 화물운송,첨단차량 및 도로 분야 등이다. ▷ITS 세계대회◁ 미주와 유럽,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각각 대표하는 ITS조직이 구성되어 첫 대회가 94년 프랑스 파리에서 34개국 2,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각국 정부의 지원하에 매년 개최되며 일본,미국,독일 등에 이어 이번 서울대회가 5번째다. 서울대회는 지난 95년 11월 유치가 확정되어 97년 4월 준비위원회를 구성,올 5월 한국도로교통협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조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서울대회를 계기로 국내 ITS산업의 발전과 교통문제의 해결에 큰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ITS 추진현황◁ 미국은 의회와 교통부가 후원하는 민간협회 성격의 ITS­America를 구성하여 80년대부터 개발에 착수,현재 실용화 단계에 있다.2011년까지 2,000억달러를 투자하며 지난 91년 육상교통 효율화법을 제정하는 등 관련 법제 정비도 한창이다. 일본도 운수성 등 5개 정부 관련부처가 후원하는 조직(VERTIS)을 만들어 지난 85년부터 92년까지 5억달러를 투입,현재 동경권 도로교통정보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건설교통부 주관으로 지능형 교통시스템에 대한 단계별 기본계획을 확정,2010년까지 첨단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2000년까지는 기반기술 개발과 수도권지역시스템 구축 등 기반 조성에 치중한다.2005년까지 추진되는 2단계사업은 응용기술의 연구와 대도시 권역으로 시스템을 확대하며 이어 2010년에는 전국에 걸쳐 지능형 교통시스템을 구축하며 차세대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현재 건교부 추진현황을 보면 지난 97년 9월부터 과천지역에 교차로 교통제어,주행안내 등 8개 시스템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경찰청,수도권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차내장치,문자방송,가변전광판을 통한 정보제공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시는 경찰청과 공동으로 57개 주요 교차로에 새로운 신호시스템,도시고속도로 교통관리시스템을 시범운영 중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서울∼대전간 고속도로교통관리시스템을 구축,운영 중이며 오는 2002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한다. 정부기관의 사업 추진과 맞물려 민간부문에서도 차량항법장치,화상정보검지 등의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향후 추진계획◁ ITS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시급하다.따라서 정부는 정보,통신,전자,제어기술 등 연관기술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할 계획이다.교통 차원의 국가 표준을 제정하고 선진국 표준화 기준을 받아들이는 ITS표준화도 함께 추진한다. ITS산업화도 병행 추진,정부의 시스템 구축을 통해 민간기업의 투자 위험을 극소화해 주고 관련시장을 육성하며 기술개발 협력체계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ITS 서울대회 조직위원장 鄭崇烈 도로공사 사장/“우리 기술 해외진출 촉진”/선진정보 도입·관광분야 외화획득 기여/정부·업체 관심 낮지만 성공적 개최 확신 “ITS라는 단어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이번 세계대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기술개발이 실용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도로공사 사장 겸 한국도로교통협회회장인 鄭崇烈 ITS서울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은 이번 대회가 국민들이 ITS의 개념이라도 제대로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鄭위원장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큰 세계대회임에도 불구,관련 부처는 물론 업계 마저도 관심이 부족한 것같아 안타깝다”며 “며칠 안남은 대회 준비를 철저히 해 역대대회 중 가장 실속있는 대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의 개최 배경은.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6년부터 ITS 국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도입단계다.선진국에서는 이미 실용화 단계에 있는 이 분야에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기술개발과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95년 제2회 요코하마 대회에서 서울세계대회를 유치하게 됐다. ­ITS 한국개최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어떤 것들이 있나.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로 개최돼 세계적으로 ITS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이번 대회를 통해 국내적으로는 ITS 기술의 현실화로 교통량 증가에 대비한 교통정책을 수립하고 지자체,산업계,일반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선진국과의 최신 정보 및 기술을 교류하고 우리의 ITS 관련 제품과 장비의 해외진출을 촉진시킬 수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관광,숙박분야의 외화 획득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ITS 시설 구축계획은. ▲만성적이고 전국적인 교통혼잡과 SOC(사회간접자본)투자를 위한 자본조달의 어려움,또 차량 이용자들의 고급 교통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증대되는 가운데 정부는 ITS시설 구축을 97년 5월 국가기본계획으로 확정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3단계로 나누어 ITS사업을 추진하는데 오는 2000년 까지를 1단계로 시범사업,핵심기술개발,표준화 등 ITS 기반을 조성하여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시스템을 구축 운영할 계획이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2단계 기간에는 기존 운영중인 ITS에 대한 보완 발전 및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추가 제공하고 운영지역도 주요 광역시 전역으로 확대 구축하게 된다. 3단계인 2010년까지는 기존시스템을 연계 통합하여 차세대 서비스를 도입하고 전국으로 구축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 색바랜 木商앨범 뒤지며 “외국어 잘했던 반장” 회고

    ◎金 대통령 日人은사 무쿠모토翁/‘金군’ 기다리며 “이렇게 좋을수가…”/청와대 “시간쪼개 만날것” 金大中 대통령이 이번 방일기간중 59년전 목포상고 은사였던 무쿠모토 이사부로를 만난다.무쿠모토는 현재 80세로 도쿄 동쪽 항구도시인 요코하마에 살고 있다.지난 39년부터 41년 9월까지 목포상고에서 영어와 상업을 가르친 그는 2년반 동안 金대통령의 담임을 맡았다.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았으나 시간을 쪼개서라도 만나겠다는 게 金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청와대 朴仙淑 부대변인이 전했다. 金대통령에 대한 무쿠모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워낙 뛰어 났어요.반장이었고,성적도 1등이었지요.일어·영어가 탁월했고,특히 웅변을 잘해서 칭찬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정치가가 되면 성공하겠다는 말을 해준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金대통령의 빛바랜 사진이 담긴 목포상고의 졸업앨범을 가보처럼 간직하고 있다는 무쿠모토는 해방 직후 외교관으로 변신,에티오피아 대사와 우루과이 대사를 끝으로 지난 83년 은퇴했다.특히 지난 73년터키공사 시절 ‘DJ 도쿄납치사건’ 당시 金대통령이 풀려난 뒤 “아무 것도 못해줘 애가 탔고,무사해 다행”이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무쿠모토는 金대통령의 방일소식을 듣고 “내 평생 이렇게 기쁜 일이 있겠느냐”고 즐거워했다고 한다.그는 여전히 金대통령을 ‘김군’이라고 부른다고 청와대측은 전했다.
  • 金 대통령 訪日 간담회에/북한 국적 문화인 첫 초청

    【도쿄=黃性淇 특파원】 오는 7일 일본을 국빈방문하는 金大中 대통령의 동포간담회에 ‘조선적’(朝鮮籍·북한 국적)을 가진 문화인들이 초청됐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2일,오는 7일 오후 도쿄시내 호텔에서 열리는 동포간담회와 9일 저녁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서 열리는 간담회에 작가 金贊汀씨(61·요코하마시 거주)와 시인 金時鐘씨(69·나라현 거주) 등 10여명의 조선적 문화인들을 초대했다고 밝혔다. 역대 대통령의 방일 행사중 하나인 재일동포 간담회에 조선국적의 동포가 참석하기는 처음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