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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집? 현실은 ‘은행집’… 최소 삶의 질 원하면 “포기해 홈즈”

    내 집? 현실은 ‘은행집’… 최소 삶의 질 원하면 “포기해 홈즈”

    내 집 마련. 참 무겁고 손에 잡히지 않는 네 글자입니다. 최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년 전보다 내 집 마련 시기가 1.4년 늦어졌고, 첫 내 집 마련에 성공한 평균 연령이 평균 43.4세라고 합니다. 사실 청년이라 하기 어려운 나이가 돼서야 내 집 마련을 하게 되는 셈이죠.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단순히 집을 소유하는 것 이상으로 결혼과 출산으로 직결됩니다. 이번 ‘불온한 회의’에서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부장 :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청년들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은 많지 않습니다. 진호 : 최근 이사를 한 저부터 얘기해볼게요. 대학 때 서울에 올라와 기숙사와 하숙집에서 학교를 다녔고, 입사 후에도 형제와 함께 살면서 제 힘으로 살 집을 알아보는 게 나이에 비해 늦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큰 욕심 없이 원룸 전세를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그래도 아파트 전세나 매매가 좋지 않겠냐는 조언이 많았어요. 당연히 제 힘만으로는 안 되고 은행 대출은 물론 부모님 도움까지 받아야 가능한 거였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재건축 입주권까지 알아봤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벽은 높더라고요. 결국 반전세 원룸을 구했습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보며 그나마 위안은 ‘아직 43.3세까지 남았구나’였어요. 혜진 : 서울 근교에 집을 마련한 신혼부부들도 다 자기 집 아니고 ‘은행 집’이라고 해요. 내 집이지만 실상은 내 집이 아닌 게 현실이에요. 진호 : 저도 만약 무리해서 매매를 했다면 30년간 한 달에 최소 120만원씩 갚아야 하겠더라고요. 정말 숨 막히는 미래였습니다. 혜진 : 저처럼 처음부터 월세로 시작하면 영원히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합니다. 월세의 늪에서 빚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삶이죠. 진호 : 정말 공감합니다. 그래서 첫 독립의 나이를 늦추고 늦춘 거였어요. 부장 : 누군가는 무리하게 뭐하러 내 집 마련을 하느냐고 하지만, 월세도 만만치 않고, 전세는 해마다 오르니 결국 내 집 마련을 꿈꾸게 되는 것 같습니다.보영 : 정부가 청년들의 내 집 마련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정책과 기준이 맞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주택도시기금의 ‘취업(창업)청년가구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현역 병역을 마친 경우에 만 39세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어요. 나머지는 만 34세 이하만 가능해요.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은 통상 사회적인 기준으로 아직 청년인데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 보증금의 80%까지만 대출을 해주는 경우가 많아 금액이 모자라면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청년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어요. 부장 : 얼마 전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행복주택에 들어가려고 결혼식도 하기 전에 혼인신고부터 했다고 합니다. 청년들에게 주택을 제공하는 데 너무 많은 조건이 붙는 것 같아요. 세진 : 제 친구도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 먼저 했다고 해요. 신혼부부가 대출받을 때 이율이 유리하다고 해서요.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내 집에 있는 물건 다 은행 것이지 내 물건 없다’고. 부장 : 아이를 낳아야 행복주택 거주 기간을 연장해준다고도 해요. 저출산 대책이라고는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세진 : 빚 없이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리고 요즘 ‘생활비 대출’이나 ‘비상금 대출’이라는 이름 때문에 대출이 쉽고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데, 대출이 대출을 부르고 나의 소비에 영향을 주는 것을 생각하면 대출은 결코 가볍지 않아요. 그런데 대출 없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살기가 어려운 현실이 서글퍼요.진호 : 내 집 마련은 단순히 자가 소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거 환경의 질도 외면할 수 없어요. 누구나 안전한 환경, 멀지 않은 통근 거리, 자녀 교육에 좋은 학군을 원하잖아요. 삶의 질까지 고려하자면 현실에서의 내 집 마련은 통계적 수치로 나온 것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부장 : 얼마 전 서울시에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 임대주택을 지으려다 무산됐는데, 공공주택은 외곽이 아니라 도심과의 교통이나 입지가 좋은 곳에 지어야 한다고 봅니다. 혜진 : 청년임대주택일수록 출퇴근이 용이하고 자기계발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지어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도심에 청년임대주택을 지을 경우 반발이 상당하다고 해요. 집값이 높은 곳은 집값 떨어진다고 난리, 도심이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은 청년들이 자기네 집에 월세 안 살고 청년임대주택으로 몰린다고 난리라고 합니다. 공존하며 살자는 목소리가 통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부장 : 청년임대주택을 일반 주택에 비해 더 고급스럽게, 학군도 좋은 곳에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호 :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은 사회적 편견을 개선하기 위해 유명 건축가가 참여해 미적으로도 우수한 주택을 공급했다고 하네요. 혜진 : 집이 재테크 수단이 되다 보니 전세가 너무 없어요. 100가구 이상 사는 오피스텔도 전세로 나온 집이 서너 집밖에 없더라고요. 오피스텔은 월세 수입을 통한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지니까요. 진호 : 저도 이번에 집 구할 때 전세 위주로 찾았는데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전세가 귀하더라고요. 부장 : 혹시 외국에 좋은 정책은 없을까. 독일은 강제로 주택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법안이 추진된다고 합니다. 보영 : 서울의 집값이 뉴욕, 도쿄 등 외국 주요 도시들보다 더 비싼 것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 비해서도 고평가됐다는 보고서도 있어요. 소득 수준 대비 주택 가격이 뉴욕, 도쿄보다 높다는 거예요. 임대료도 마찬가지고요. 혜진 : 서구 국가들에는 전세가 없고 대부분 월세라고 하잖아요. 한국도 그렇게 가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고요. 물가도 비싸고 집값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노동의 대가가 한국보다 높다는 거예요. 세진 :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운 것은 청년을 위한 주택 공급이 부족하고 집값이 높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에 반해 노동소득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점도 원인이라고 봅니다. 청년층 취업이 전체 연령층 중 가장 어려운 편이고, 비정규직 비율도 늘고 있습니다. 저축 이율이 낮아 저금통과 다를 바 없고요. 진호 : 이번에 이사를 하기 전에는 내 집 마련이 생애를 안정적으로 보낼 최소 조건이자 최대 과제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삶의 질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커지고 있어요. 결국 내 돈과 은행 빚을 합쳐도 좋은 환경의 좋은 집 구하기는 쉽지 않고, 결국 외곽에 살면서 은행 빚을 갚아 나가야 할 텐데 과연 그렇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혜진 : 이제 번듯한 집을 사려면 할아버지 때부터 건물이나 땅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청년의 자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 월급의 반은 집 주인에게 가고 있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빚 없이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세진 : N포 세대라는 말이 정말 와닿습니다. 혜진 : 신혼부부가 한 푼도 안 쓰고 7년을 모아야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진 : 숨만 쉬어도 비용이 드는 현실에서 한 푼도 안 쓰는 건 정말 딴 세상 일이에요. 진호 : 서울을 포기하면 된다고도 하지만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지방은 그만큼 일자리나 소득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고요. 보영 : 저는 최대한 정부 정책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주택을 마련하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유튜브로 부동산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세진 : 어쩌면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정부 대책은 대학 등록금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부장 :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풀기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대안 제시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불온한 회의’는 정부가 청년의 눈높이에서 제대로 된 정책을 다시 한번 마련하도록 촉구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리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내 별명은 하모…먹어 보면 불끈, 원기 회복 후끈

    내 별명은 하모…먹어 보면 불끈, 원기 회복 후끈

    무더위 철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을 잘 나려면 고단백 음식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조상들은 예부터 보양식으로 장어를 즐겼다. 갖은 양념을 곁들인 탕 요리를 으뜸으로 쳤다. 요즘은 날것인 회와 ‘샤부샤부’로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장어류는 4종류가 있다. 붕장어, 뱀장어, 갯장어, 먹장어다. 붕장어(일명 아나고)는 횟집 수족관에서 사시사철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양식은 하지 않고 연안과 먼바다를 오가며 통발낚시로 잡는다. 애주가 등이 탕이나 구이, 회 등으로 즐기는 음식이다. 뱀장어는 바다에서 산란 후 민물에서 서식하지만 남획으로 씨가 말랐다. 시중에 나오는 것은 대부분 양식이다. 먹장어(곰장어)는 야행성 연골어류로 얕은 바다의 모래나 펄 속에서 살며 몸체에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있다. 주로 겨울철 술안주용 구이로 이용된다. 이 가운데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은 갯장어(일명 하모)다. 갯장어는 여름 한철 반짝 나왔다가 사라지는 데다 맛 또한 일품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참장어, 개장어, 바닷장어로도 불린다. 갯장어는 최고 길이 2m까지 자란다. 등 쪽은 다갈색이며 배는 흰색이다. 이빨은 매우 날카롭다. 수심이 깊은 해역의 모래와 펄이 섞인 지역에 서식하며 야행성이다. 남해안에서도 상대적으로 개펄이 발달하지 않은 완도 해역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 개펄이 광범위하게 분포한 득량만, 여자만 등이 주산지이다. 작은 새우와 게 등 갑각류를 먹고 살며 6~7월쯤 수심이 상대적으로 얕은 연안으로 이동해 산란한다. 서남해와 일본, 대만 등지에도 분포한다.요즘 득량만(고흥·장흥)~여자만(여수·순천)~경남 고성 등 서남해안 어민들은 갯장어 낚시에 한창이다. 어민들은 수백개씩 달린 주낙에 전어 등의 미끼를 달아 하룻밤가량을 바닷속에 놔둔 뒤 낚싯줄을 걷어 올린다. 줄줄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갯장어는 살아 있는 상태로 지역 수협 등을 거쳐 대도시로 공급된다. 아무나 즐길 수도 없다. 사시사철 잡히지 않는 데다 생산량이 적어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싼 탓이다. 지난 24일 전남 고흥녹동수협 위판장에서는 모두 500㎏가량의 갯장어가 위판됐다. 가격은 ㎏당 4만 5000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30여년간 중매인으로 활동 중인 박휘봉(62)씨는 “지금부터 8월 15일쯤까지 본격적으로 갯장어가 출하된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전라도와 경남도 일부 해안 지역에서만 즐겼던 갯장어가 최근 들어 부산, 서울, 광주 등 대도시로 진출하면서 가격도 폭등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당 가격이 3만원을 넘어서면 국내 소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됐다”며 “갯장어를 즐기는 소비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지난해 성수기 가격이 7만 5000원까지 올랐으나 없어서 못 팔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생산량이 최고에 달하는 8월 15일을 전후해 가격이 크게 내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1814년)에는 갯장어를 가리켜 “입은 돼지같이 길고 이는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뼈가 견고해 능히 사람을 물어 삼킨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고기를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고 했다.갯장어는 하모라는 별명처럼 공격성이 매우 강하다. 하모는 일본어 ‘하무’(물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어부나 낚시꾼이 갯장어를 선상으로 건져 올려놓으면 뱀처럼 입을 벌려 사람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이 물고기를 매우 좋아하며 주로 샤부샤부(유비키)를 해 먹는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 소득격차가 컸던 1980년부터 2000년 초반만 해도 갯장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실제로 갯장어가 시중에 널리 유통된 것은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갯장어가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특유한 맛과 풍미에서 비롯된다. 살코기를 발라내 끓는 육수에 데쳐 샤부샤부로 먹거나 날것을 회로 즐기는 방법이 있다.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여수·광주 등 대도시 음식점에서는 회보다는 샤부샤부가 더 인기를 얻고 있다. 샤부샤부는 남녀노소 누구가 즐기며 육수에 따라 풍미는 천차만별이다. 이 지역 갯장어 요리집에서는 다시마와 멸치, 양파, 마늘, 표고버섯 등으로 푹 고아낸 국물이 기본 육수로 나온다. 여기에 양파, 부추, 미나리, 들깻잎 등 각종 채소를 넣어 데친다. 이어 깨끗하게 손질된 갯장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20~30초가량 익힌다. 살코기 색깔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만 익히면 된다. 너무 오래 익히면 살점이 부스러져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떨어진다. 이를 살짝 데친 깻잎, 양파 등에 싸서 잘게 다진 마늘과 버무린 된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채소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살코기를 다 먹은 후 남은 육수에는 물에 불린 찹쌀과 잘게 썬 당근, 양파 등을 넣어 푹 끓여낸다. 달짝지근하고 감칠맛이 나는 어죽으로 재탄생한다. 요릿집에 따라 김치와 라면 사리를 넣어 식사 대용으로 내놓기도 한다. 해안가 식당이나 산지에서는 회가 더 인기다. 여름철 일반 생선류가 알이 배어 육질이 퍼석해지는 것과 달리 갯장어는 쫄깃하고 씹히는 맛이 고소해 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긴다. 갓 잡은 갯장어의 껍질을 벗긴 뒤 가늘고 길게 썰면 맑고 투명한 살점의 단면에 무지개 빛깔이 돈다. 이는 싱싱함의 척도이다. 갯장어는 다른 장어류와 달리 살 속에 잔가시가 많다. 손질할 때 잔뼈가 씹히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갯장어의 쫄깃한 식감을 능가할 어류는 없다는 게 미식가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전라도에서는 주로 들깻잎이나 상추에 된장으로 쌈을 싼다.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와 간장 소스를 이용해 회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갯장어는 영양도 풍부하다. 특히 8월 15일 이후 잡히는 갯장어는 기름이 꽉 차 있어 노약자 영양식으로 안성맞춤이다. 갯장어를 통째로 고아낸 뒤 믹서에 갈아 국물을 체로 걸러내 끓이면 된다. 양파, 버섯, 호박, 참깨 등을 곁들이면 풍미가 배가된다. ‘동의보감’은 장어를 “오장이 허한 것을 보하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식품”으로 설명한다. 단백질 외에도 여름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A·B가 많이 함유돼 있다. 성인병 예방과 피로회복 기능이 탁월하고 껍질에는 피부탄력성 유지에 도움을 주는 콘도로이틴 성분이 있어 여성들로부터도 인기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닮은 듯 다른 장어의 세계 ① 붕장어: 일명 아나고. 가장 흔한 장어류죠 ② 뱀장어: 바다서 산란 후 민물에서 서식해요 ③ 먹장어: 얕은 바다 모래나 펄 속에 살아요 ④ 갯장어: 날카로운 이빨에 2m까지 자라요
  • 은지원, 10년 만에 솔로 정규앨범… “좋은 가수·멋있는 선배 얘기 듣고 싶어”

    은지원, 10년 만에 솔로 정규앨범… “좋은 가수·멋있는 선배 얘기 듣고 싶어”

    본업인 가수로 돌아온 은지원(41)이 10년 만에 솔로 정규앨범을 낸 소감을 밝혔다. 은지원은 27일 새 앨범 ‘G1’ 발매에 앞서 오후 네이버 V라이브와 YG엔터테인먼트 공식 블로그를 통해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타이틀곡 ‘불나방’을 비롯해 ‘HOW WE DO’, ‘SEXY’, ‘쓰레기(WORTHLESS)’, ‘HOOLIGAN’, ‘GET READY’, ‘비틀비틀(TIPSY)’, ‘HATE’, ‘비슷비슷해(SAME)’ 등 9곡 전곡 음원 일부가 선공개됐다. 은지원은 “가수 은지원으로서 10년 만에 정규 6집 앨범으로 인사드리게 됐다”고 인사한 뒤 “새 앨범을 통해 나를 제일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타이틀곡 ‘불나방’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붐뱁 스타일의 올드스쿨 음악 장르”라며 “어떻게 보면 ‘올드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꾸준히 들었던 음악을 못 버리겠더라”고 설명했다. 은지원은 “송민호의 도움을 받아 요즘 추세와 제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바이브 감성을 접목시켰다”면서 “이번 기회에 송민호한테 많이 배웠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음악 작업을 할 때만큼은 밤을 새워도 피곤함이 없고, 곡을 만들 때 1000번 가까이 듣는다”고 말한 은지원은 “10명이든 100명이든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끝까지 음악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음악적 소신을 밝혔다. 이번 활동 목표에 대해 은지원은 “가수 본업으로 돌아온 만큼 대중들에게 ‘좋은 가수’라는 소리 듣고 싶고, 후배들에게 ‘멋있는 선배’란 칭찬을 듣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답했다. 은지원의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담아낸 솔로 정규앨범 ‘G1’ 음원은 이날 오후 6시 여러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은지원은 다음달 27~28일 이틀간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콘서트를 열고 팬들을 만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3대 이어온 부채 장인 김대석 접선장의 꿈

    3대 이어온 부채 장인 김대석 접선장의 꿈

    대나무 속대로 만든 ‘민합죽선’ 독보적 기능아들에 4대째 가업 전수 묻자 “아직은…” 부채의 계절이다. 아니 엄밀하게 얘기하면 한때는 부채의 계절이었다. 예전엔 여름을 나려면 대나무든 플라스틱이든 부채 몇 개씩은 있어야 했다. 부채보다 좋은 선물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시원한 모시적삼에 합죽선을 쥔 어르신도 있었지만, 보따리이고 장에 다녀오다가 나무 그늘에 앉아 ‘막부채’로 땀을 식히던 우리의 어머니들도 있었다. 시장의 짐수레에는 항상 어딘가에 플라스틱 부채라도 하나 꽂혀 있었다. 그렇게 부채는 더위도 쫓고 여름밤 모기도 쫓았다. 26일 세종시 정부 청사 17동 행정안전부 본부 로비에서 열린 행안부 서예 동호회 연당회 전시회(6월 25일~27일)에서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인 접선장 김대석(72) 선생을 만났다. 그는 연당회 전시에 맞춰 행안부의 초청으로 본부 로비에 그의 작품 60여 점을 전시 중이었다.그가 만드는 부채는 살이 접히는 접선이지만, 여러 면에서 특색이 있다. 고려 시대 접선이 시작됐으니 1000년 가까이 된 역사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재료에 따라 대나무로 만든 죽선, 뿔로 만든 각선, 물고기 가죽으로 만든 어피선까지 가지가지다. 모양에 따라서도 그 종류는 10여 가지가 넘는다. 접선의 대명사인 전주 합죽선은 겉대(대나무 외피)를 얇게 쪼개서 부레풀로 붙여서 만든다. 만들기는 어려워도 유연하고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 선생의 접선은 재료가 다르다. “내 부채는 대나무 외피가 아닌 속대를 재료로 쓰는 것이 달라요. 부챗살에 마디가 없고 매끄러워서 ‘민합죽선’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속대는 겉대보다 약해서 다루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게다가 그는 한지 외에도 마지(麻紙)를 많이 사용하는데 마지는 살이 약하면 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조부 때부터 3대를 이어 익힌 기능이니 가능한 일이지요.” 그는 전남 담양군 만성리에서만 3대째 부채를 만들어오고 있다. “좌우익이 교차하던 ‘6·25’도 거쳤지만, 화를 입지 않았어요. 부채 덕에 주변에 인심 잃지 않고 베풀며 산 덕인가 봐요.” 그의 작품은 일반 크기에서부터 40㎝가 넘는 대선(大扇), 황칠을 한 황칠선까지 다양하다. 요즘은 문재인 대통령 등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나온 신문을 오려서 부채에 배접한 작품을 내놓았다. 김 선생은 재료의 선택에서부터 가공, 제작까지 모든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전남도 무형문화재 선자장(扇子匠)과 접선장(摺扇匠)으로 선정됐다. “대나무는 담양 것만 쓰고요. 한지는 국산만 씁니다. 마지는 보성 것을 쓰고요.” “혹시 4대까지 기능을 이어갈 생각은 없나요.” 4대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제가 48세에 아들을 얻었어요. 지금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전공이 컴퓨터 공학이랍니다. 나야 대를 이으면 좋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방학 때마다 와서 조금씩 보고 배운단다. 그러나 대를 이을지는 모르겠단다. ‘접선 4대’는 아직 그의 기대일 뿐이다. 그는 “전통 부채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면서 “집앞 800여 평의 땅도 제작실과 전시실 등 부채 관련 용도로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sunggone@seoul.co.kr
  • 이재명 ‘경기북도 분도’ 지금은 시기상조...자립기반 확보가 우선

    이재명 ‘경기북도 분도’ 지금은 시기상조...자립기반 확보가 우선

    이재명 경기지사는 27일 “지금 당장 경기북부를 분할 한다면 주민들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나빠질수 있는 만큼 최대한 정치적인 요소를 줄이고, 북부 주민들의 삶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도청에서 취임 1년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다시금 불거지고 있는 ‘경기도 분도’ 주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지사는 “분도론이 대두되는 것은 경기도가 너무 넓고, 인구가 많은 문제도 있지만 실상은 재정문제와 각종규제 등 불균형 발전에 따른 북부 주민들의 소외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 된다”면서 “하지만 현재 남부의 세수입으로 북부의 재정지출을 상당부분 커버하고 있는데 분도를 해서 이런 혜택이 없어진다면 북부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경기북도를 분도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북부의 균형발전과 기반시설 확보를 통해 자립기반을 최대한 갖추는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다. 또 ‘경기도 생애 최초 청년 국민연금’ 등 일부 정책을 놓고 중앙정부와 충돌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충돌이라는 표현보다 의견이 다른 것들이 적지 않나 생각된다”면서도 “정책은 경쟁해야 하는 것으로, 기초지방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좋다면 광역지방정부도 해보고, 중앙정부 주도로 전국단위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이 지사는 “지난 1년은 공정의 씨앗을 뿌린 시간이다. 세상이 공정해지면 삶이 바뀌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중에서 최우선 가치는 언제나 ‘공정’이었고 규칙을 어겨 이익을 볼 수 없고 규칙을 지켜서 손해 보지 않는다는 믿음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공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지사는 그동안 역점을 뒀던 수술실 CCTV 설치, 기본소득 논의 확대 등을 언급하면서는 “불과 1년 사이 경기도의 날갯짓이 대한민국에서 공정 세상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며 “공정 세상에 대한 경기도의 열망이 대한민국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도 산하기관의 근로시간 단축과 이와 맞물린 추가 인력 채용방안 구상도 밝혔다. 이 지사는 “일부 산하기관과 협의를 해서 (주 52시간인)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고 단축한 시간만큼 일할 인력을 추가로 채용해볼까 생각 중이다. 시범적으로 해보고 효율이 나면 다른 공공기관으로 확대하고 대한민국 전체로도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쳤다.이어 이 지사는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 활동 범위를 큰 폭으로 확대해 불법 고리 사채, 부동산 허위매물과 같은 생활 적폐를 엄단했고, 맞춤형 체납관리단은 탈세와 체납을 적발해 조세정의를 구현하고 생계형 체납자를 구제해 억강부약을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지사가 행정가냐 정치인이냐에 물음에는 “저도 정치 비중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1년을 겪으면서 행정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선거까지는 정치인인지 모르겠지만 당선 후 업무를 시작한 후부터는 철저하게 행정가여야 한다. 말보다 실적을 내는 것이 지사가 할 일이라는 생각에 요즘 자주 말을 안 한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반려견 밀라, 인생 최고 선물이 제 아킬레스건이죠’ 배우 이본

    ‘반려견 밀라, 인생 최고 선물이 제 아킬레스건이죠’ 배우 이본

    “인터뷰 진행하시면서 다른 분들도 저처럼 많이 울었나요. 저를 너무 많이 울리는 인터뷰 같은데요” 지난 19일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27년차 배우 이본(47)씨를 만났다. 하지만 인터뷰 중, 본의 아니게 그녀를 제대로 울리고 말았다. 최근 방송활동, 그녀만의 건강관리와 동안(童顏) 비법, 주당 언니라는 오해, 프로선수 뺨치는 골프실력 등의 유쾌한 질의를 이어가다 그녀의 아킬레스건 두 개 중 하나를 건드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12년간 동고동락했다 하늘나라로 먼저 간 인생 최고의 선물인 반려견 ‘밀라’였다. “제가 지금 인터뷰하면서 눈물이 많이 나는 건, 밀라가 저를 놀라게 하지 않고 너무 예쁘게 하늘나라로 갔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만일 어떤 전조증상도 없이 어느 순간 훌쩍 떠났다면 제가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을 거예요. 그래서 당시 저도 매우 의연하게 밀라를 안은 채 ‘우리 밀라가 이렇게 가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면서도 정신을 멀쩡하게 차렸던 거 같아요” 90년대 하이틴 스타. 당시 톡톡 튀는 스타일링과 거침없는 말투로 뭇여성들의 롤모델이 된 트렌드 전도사 이본. 그녀에게만 유독 세월이 비껴가는 걸까. ‘방부제 미모’란 별명에 걸맞게 그녀의 얼굴에선 세월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난 7년간 어머니의 길고 긴 암투병을 곁에서 함께 싸워 온 그 세월만은 그녀에겐 그 무엇보다 뚜렷하고 혹독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완치, 그 가슴 벅찬 기쁨을 기점으로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방송에서 종행무진 활약하고 있던 그녀에게 지난해 반려견 밀라를 심장마비로 잃게 되는 또 다른 아픔이 찾아왔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밀라를 생각하며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그 슬픔의 깊이가 어떤지 쉽게 알 수 있었다. “12년을 동고동락한 밀라가 죽고 나서 6개월 만에 아픔을 털고 일어났어요. 지금은 밀라 얘기만 꺼내지 않으면 예전처럼 늘 웃으면서 이본처럼 지낼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밀라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줬기 때문인 거 같아요”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1년 전 올리와 시드란 이름의 두 마리 푸들을 새롭게 입양해 12년간 밀라에게 주었던 똑같은 사랑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물론 밀라로 인한 가슴속 깊은 생채기가 말라붙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려견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그녀와의 만남을 정리했다.(Q) 오랜 시간 방송과 DJ로 활동해오시면서 꾸준히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최근 ‘돌아이덴티티’ MC에 캐스팅 됐는데붐씨는 예전에 프로그램을 같이 한 적 있어서 낯설지 않아요. 하지만 최화정 언니와는 방송을 함께 진행하는 게 처음이라 많이 기대되고 의지도 많이 할 거 같아요. 저는 제 자신이 굉장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방송 스텝들은 저를‘돌아이’처럼 봤나 봐요. 그래서 캐스팅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죠. (Q)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운동하진 않아요. 저는 건강이라는 거 자체가 타고난 거라고 생각을 해요. 나에게 주어진 몸을 아프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거 같고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운동을 골라서 하는 편이에요. 집 아파트 19층 계단 오르기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해요. 요즘은 사이클, 필라테스, 스쿠버 다이빙, 골프도 치면서 몸 관리를 하고 있죠. (Q) 19층 계단 오르기의 효과와 장점이 있다면19층 계단을 오르려면 복근에 힘이 있어야 돼요. 그냥 ‘나도 한 번 올라가 볼까’하는 생각으로 시도하다간 관절에 큰 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꾸준히 하다 보면 복근에 힘이 생기고 힙 업도 되는 효과가 있어요. 노래 한 곡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하체 근력강화에 효과적인 운동인 거 같아 많이 추천하는 편이에요.(Q) 이본씨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는 ‘술을 잘 마실 거 같다’다. ‘해명’ 한 말씀1~2년 받아온 오해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해를 가져도 전 상관없어요. 생긴 게 이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저를 술을 ‘짝’으로 갖다 놓고 마실 거라 오해하는데 사실 저는 술을 일절 못하고 술과는 친하지 않아요. (Q) 프로선수도 기죽이는 벙커 버디까지, 골프실력이 대단하다. 어떻게 ‘실력자’가 된 건지엄마 병간호할 때 고른 운동이 골프였어요. 병간호만 하다 보면 저도 너무 힘들고 지칠 거 같아서였죠. 필드에 한 번 나가면 5~7시간은 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과 웃으면서 힐링도 돼서 너무 좋았죠. 그렇게 시작한 골프가 구력이 붙으면서 실력이 꽤 좋아진 거 같아요. (Q) 40대 중반이 넘은 나이다. 동안(童顔)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생김새와 달리 제 사고방식과 생활 자체는 굉장히 FM이에요. 동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가 생각했던 몇 가지 미션들이 있었어요. ‘귀찮아도 해야 된다’는 거죠. 제 자신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많이 동안이다’란 말을 많이 듣는 거 같아요. (Q)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13년간 함께했던 ‘밀라’와의 첫 만남은2005년 일본 반려견 대회를 우연히 구경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한 지인의 소개로 제 팬을 만났어요. 그분이 이본씨 팬이라며 주신 귀한 선물이 바로‘밀라’였어요. 결국 그 밀라가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됐죠. (Q) 밀라가 떠나기 전 이상 증후는 없었는지2세를 생각하지 않아서 중성화 수술을 어릴 때 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10년 정도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근데 어느 날 밀라를 위에서 내려다봤는데 체형이 좀 이상한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자궁축농증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취하고 수술했는데 후유증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노령견에게 잘 나타난다는 쿠싱증후군(부신피질기능항진증)도 오고 시력도 잃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한 거죠.(Q) 결국 지난해 밀라를 하늘로 보냈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그날 촬영을 끝내고 집에 들어갔는데 밀라가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꿀에다 짠기를 뺀 황태를 묻혀서 줬더니 먹는 거예요. 다행이라 생각하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샤워하고 나왔죠. 근데 갑자기 밀라가 몸을 부르르 떠는 거예요. 다시 일어나겠지 하고 놀라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일어날 거 같은 밀라가 계속 몸을 떨더라고요. 결국 밀라를 들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잘 안됐죠. (Q) 밀라를 하늘로 보내고 지금 돌이켜 볼 때 아쉽고 미안한 맘은 없는지미안하고 후회되는 마음이 전혀 없어요. 밀라와 안 해본 게 거의 없기 때문이죠. 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부모님에 대한 효도예요. 부모님께 잘해도 후회할 게 많을텐데 하물며 효도를 못하면 나중에 후회가 엄청 밀려올 거 아니겠어요. 밀라한테도 마찬가지였어요. 너무 예뻐했고 늘 함께했고, 같이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어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낌없는 사랑을 밀라에게 줬어요. 그래서 미안하고 아쉬운 맘은 없는 거 같아요. (Q) 밀라를 메모리얼 스톤으로 만들려다가 포기했는데밀라를 제 몸에 항상 지니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톤 목걸이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녀야겠다는 마음으로 유골 스톤 만드는 곳을 찾았죠. 근데 또 한 번의 뜨거운 과정을 맛보게 하는 게 못할 짓 같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고 유골을 다시 들고 왔죠. (Q) 새로운 가족 푸들종 올리와 시드, 어떻게 입양했는지사실 밀라만 한 강아지가 없어서 엄마가 입양을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마 마음이 바뀔 때까지 저도 입양을 포기하고 있었죠. 밀라가 죽고 20일이 지난 때였어요. 일 마치고 저녁 이른 시간 집에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람이 없는 듯 생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삭막한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순간 ‘아, 이건 안 되겠다’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결국 얌전하고 공주같았던 밀라와 성격이 반대인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든 애들을 데려왔죠. 그게 올리와 시드였어요. 엄마가 관심을 보이셨고 ‘기회는 이때다’란 마음으로 데려오게 된 거죠. 물론 올리와 시드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아직까진 밀라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먼 거 같아요.(Q)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부대표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사실 개인적으로 소소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부모 없는 한 아이를 4살까지 틈틈이 돌봐 준 적 있었는데 그 아이가 4살 때 지방에 있는 고아원으로 가게 됐어요. 너무도 이별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죠. 그래서 내가 보살피는 아이를 내 아이인양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런 와중에 ‘24년 지기’ 류시원씨가 이런 모임을 만들자고 했을 때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죠. 결국 지속적인 요청 끝에 제가 두 손 들고 합류하게 됐고 지금은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엔 공인들은 ‘오른손이 하는 착한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해야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오른손이 하는 착한 일, 왼손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배우, 스포츠선수, 가수 등으로 구성된 45명의 따사모 회원들이 매달 한 번씩 만나 다음 봉사활동에 대한 회의도 하고 있어요. (Q) 반려동물과의 교감에서 오는 행복감어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웃음’인 거 같아요. 그 친구들도 저에게 바라는 것 없고 저도 그 친구들에게 바라는 거 없고. 그냥 옆에 있어서 마냥 행복하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그런 건강해지는 행복을 주는 친구들인 거 같아요. (Q) 유기견 돕기 캠페인에 참여를 독려하는 등 반려견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는데제가 올리와 시드를 데려왔을 때, 제 가슴을 콕콕 찌르며 질타하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유기견을 입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죠. 그래서 제가 그분들에게 얘기했어요. ‘제가 아직은 아픔이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보살피고 돌 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토양이 갖춰지지 못한 거 같다’라고요. 아픈 밀라를 보면서 떠나보낼 때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인 거 같아요. 제가 혼자 사는 거라면 유기견에게 눈길과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었지만 부모랑 함께 살고 있고 아픈 엄마도 아픈 강아지들을 보면서 속상해하시고, 저 역시 엄마도 아프고 강아지도 아프고, 그런 모든 상황을 다 떠안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픔이 있는 유기견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 같아요. 제 능력이 거기까지밖에 안 되는 죄송스런 맘은 늘 가지고 있었죠. 방송 등에서 학대받는 강아지들을 보면 너무 화도 나고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죠. 그래서 제가 그들과 늘 함께 하고 보살필 수는 없지만 그런 유기견과 관련된 봉사활동이 있으면 매번 거절하지 못하고 참여하게 된 거 같아요. (Q) 반려견을 키우려는 초보맘들에게반려견이 주는 행복한 교감을 충분히 느껴보시라고 권하고 싶지만, 만일 반려견을 키울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면 해요. 사정이야 다 있겠지만, 내가 집 밖에 나가면 강아지는 혼자 있어야 하고, 직장에도 데려갈 수 없고 등 여러 걱정거리가 있다면 시작을 안 하는 게 좋다는 데 ‘한 표’예요. (Q)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결혼계획은 없는지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해야 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요. 그리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는 그날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자친구한테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때가 돼서 결혼하게 되면 하면 되는 거고 아니면 지금처럼 연애하면서 살면 되는 거죠. 근데 제가 정말 결혼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론 걱정스러워요(웃음) (Q)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있다면꿈은 없어요. 저는 한 번도 목표, 어떤 기대치를 갖고 살아오지 않았거든요. ‘하루하루 행복하게, 후회 없이 살다보면 내가 추구했던 그런 곳으로 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편이에요. 어느 누군가가 ‘이본씨,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정말 답하기 힘들어요. 너무 재미없잖아요. 그냥 흘러가는 물에 저를 맡기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예요.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허규♥신동미, 뮤지컬 ‘썸씽로튼’ 관람 데이트 “달달”

    허규♥신동미, 뮤지컬 ‘썸씽로튼’ 관람 데이트 “달달”

    허규♥신동미 부부가 최초내한 뮤지컬 ‘썸씽로튼’ 관람 데이트를 즐겼다. 가수이자 뮤지컬배우 허규는 26일 자신의 SNS에 “드디어 봤다. 뮤지컬 ‘썸씽로튼’ 너무 재밌다. 왜 이제 봤나.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 대체 저런 아이디어와 발상을 어떻게 해내는걸까? 음악도 무대도 내용도 배우들 기량도 짱짱짱. 셰익스피어 너무 섹시해”라는 글을 남겼다. 글과 함께 공개한 사진은 허규와 신동미 부부가 ‘썸씽로튼’ 공연장에서 함께 찍은 인증샷으로 동갑내기 부부의 달달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앞서 허규는 지난 5월 “요즘 무지 관심가는 뮤지컬, 에릭 클랩턴의 ‘Change the world’ 작곡가가 음악감독이래”라는 글을 남기며 뮤지컬 ‘썸씽로튼’에 기대를 내비친 바 있다. 한편 뮤지컬 ‘썸씽로튼’은 영국 코미디 작가 존 오 페럴과 캐리 커크패트릭·웨인 커크패트릭 형제의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인류 최초의 뮤지컬이 탄생하는 순간’ ‘셰익스피어 시절 런던이 뮤지컬의 황금기인 브로드웨이의 30년대와 비슷했다면’ 등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품으로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렌트’ ‘인 더 하이츠’ ‘애비뉴Q’ 등으로 토니상 3회 수상에 빛나는 프로듀서 케빈 맥컬럼, ‘북 오브 몰몬’ ‘알라딘’ 등을 연출한 케이시 니콜로가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르네상스 시대 당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서 인류 최초의 뮤지컬을 제작하게 된 바텀 형제의 고군분투기를 코믹하게 그려내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오리지널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마친 ‘썸씽로튼’은 지난 5월까지 전미 투어를 진행했다. 미국 공연 이후 갖는 첫 해외 투어 도시로 서울을 선택했다. 가수 임재범·박효신·양파 등과 함께 작업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신재홍 대표가 이끄는 엠트리뮤직이 이번 공연을 개최하며 오는 6월 9일부터 30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며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예매가 진행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문화마당] 야만 사회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김이설 작가

    [문화마당] 야만 사회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김이설 작가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지난해 오늘은 물론이고 계정을 처음 만든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려 주곤 한다. 과거의 글과 사진을 무작위로 선별해 다시 알림해 주는 기능인데, 그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을 재회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이 기능이 새삼 즐거울 때가 많다. 아이들의 하루하루도 따라가기 버거워 애틋한 어릴 적 모습이 너무 빨리 잊힌 탓이었다. 최근 그 기능 덕에 5년 전의 첫째와 2년 전 둘째 아이 사진을 만났다. 안 그래도 한참 사춘기인 첫째와 곧잘 투덕거렸는데, 갑자기 받게 된 사진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첫째는 노란 원피스를 입고 분홍색 실내화 가방을 흔들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연립방정식과 일차함수가 기말고사 범위인 지금의 아이가 구구단을 외우고 막 나눗셈을 시작했을 때였다. 2년 전의 둘째 아이는 모래사장에서 뒹굴고 있었다. 빨갛게 살이 타도록 해수욕을 하고 저녁엔 불에 구운 소시지와 마시멜로를 양손에 들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 떠들던 아이, 사진 속의 둘째는 영락없이 열 살짜리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들 사진을 물끄러미 보다가 마음이 점점 처참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근래 경악에 빠뜨렸던 소식, 열 살 어린이 성폭행 감형 판결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35세 남성 보습학원 원장이 열 살 초등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학원장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최근 2심 재판부에서는 학원장의 성폭행 직접 증거가 피해 초등학생의 구두 진술이 유일하며, 진술만으로는 폭행과 협박으로 간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2심 재판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판사를 파면하라는 내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일었다. 재판부는 처벌의 적법성을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법정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 혼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동성폭력범에 관대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여서 그런 것일까. 열 살 초등학생 어린이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고 해서,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합의하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에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열 살이라는 나이는 숫자를 만 단위까지만 익히고 나눗셈을 배우는 나이다. 어깨가 타들어 가는 것을 걱정할 줄 모른 채 뛰어노는 나이고, 새 학기가 되면 제일 먼저 소풍 날짜를 확인하고, 문방구에선 스티커 판매대 앞을 서성거리는 나이다. 그런 어린이를 성폭행한 사건이다. 어린이를 성폭행하고도 변명이랄 것이 있단 말인가. 변호할 의미는 있는 것인가. 분노는 자꾸 확장된다. 초등학교 학생이 성폭행 피해자일 때는 성적자기결정권 행사를 한 성인 취급을 하면서 왜 중고등학교 학생이 불법 촬영을 하면 철없는 애들 장난 취급을 하는가. 성인영화를 볼 수 없고 투표권도 없는 나이가 이성적으로 성행위에 동의할 수 있는 나이라는 건 도대체 무슨 연유인가. 19세 미만에게 술·담배를 판 성인도 처벌받는데, 성적결정권은 만 13세에 있고, 열 살 어린이에게 술을 먹여 강압적으로 성폭행한 범인은 5년이나 감형을 받는다고? 이번 일에 관해 SNS에서 만난 문구가 잊히지 않는다. ‘35세 성인 남자가 열 살 어린이에게 술을 먹이고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형이어야 한다. … 그것이 문명사회다.’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후벼 팠다. 야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매일이 힘겨운 이유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북한 음식 그 쓸쓸함에 대하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북한 음식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한식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타입은 아니다. 애써 멀리까지 왔는데 기왕이면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가자는 주의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몇 차례 쓰디쓴 경험을 통해 어차피 외국에서 먹는 한식의 맛이란 그리 기대할 만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외국에서 한식을 파는 식당 자체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할까. 과연 한국의 맛을 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을까, 아니면 가능한 한 현지의 식문화를 존중한 현지화된 맛을 내는 데 방점을 두었을까. 북한 음식과 관련한 취재를 위해 탈북 요리사들을 차례로 만났다. 남한에서 요리를 하게 된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지만 공통점은 ‘제대로 된 북한의 맛’을 지키고 알리고 싶다는 사명감이었다. 문득 해외의 한식당 사례가 떠오르면서 궁금해졌다. 지금의 북한 사람이 남한에 내려와 북한 식당에 가 음식을 맛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게 바로 고향의 맛이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까, 아니면 ‘이건 이북의 맛이 아니야’ 하고 화를 낼까. 음식에 있어 종종 오해하는 게 있다. 어떤 음식의 맛에 진짜 또는 원형이 있다는 착각이다. 그것은 마치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다. 모두가 평양냉면의 참맛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개념적인 것일 뿐 각자가 먹어 보았던 맛의 기억에서 비롯되는 개별적인 경험일 뿐이다. 평양냉면의 이데아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는 건 어떤 형태의 의자가 진정한 의자이냐를 따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서초동 ‘설눈’의 평양냉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평양냉면과는 달리 양념장이 딸려 나온다. 평양냉면 하면 심심한 육수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었던가. 탈북한 지 4년째 되는 사장님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는 옥류관 말고도 유명한 냉면집이 많다고 한다. 옥류관이 대중식당이라고 한다면 청류관이나 고려호텔의 냉면은 달러를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고급 냉면집에 속한다. 요즘 평양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즐기게 되면서 평양냉면도 양념이 된 게 인기라고 하니 설눈의 냉면은 북한에서 유행하는 최신 스타일인 셈. 조리법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레시피가 성문화된 법이 아닌 이상 먹는 이의 입맛, 그리고 요리사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따라 변주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설눈의 냉면이 지금 북한의 맛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평양냉면은 과거 평양냉면의 맛에 서울 사람들의 입맛이 반영돼 있다. 속초 함흥냉면 원조집으로 알려진 ‘함흥냉면옥’의 2세도 본인이 어릴 적 맛본 아버지의 함흥냉면의 맛과 지금의 맛은 다르다고 한다. 그것은 의도된 차이다. 맛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길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변하는 재료와 기술의 문제도 있다. 전통을 이어 가면서도 변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맛을 개선시켜 나가야 망하지 않기에 혁신은 2세들의 숙명이다. 요리사에게 ‘당신이 만드는 음식이 현지의 맛이냐 아니면 현지화된 맛이냐’ 따지듯 물을 수 있지만 요리라고 하는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굳이 헤겔의 변증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양 극단의 길 중 하나를 취하지 않고 제3의 길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태백에서 전통된장을 만드는 허진 명인이 그러한 경우다. 탈북한 그는 북한에서 먹던 된장 맛을 재현하고 싶어 가능한 한 북한의 방식으로 된장을 만들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기후와 재료, 거기에 따른 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는 남한에서 된장 만드는 방식을 연구한 끝에 북한의 방법과 남한의 방법 중 장점을 취해 본인만의 전통된장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은 온전한 북한 된장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남한 된장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되레 남북이 통일되었다고 한다면 그때 만들어질 수 있는 된장 제조법이 미리 세상에 나온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맛보고 있는 북한 음식은 실제로 북한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그 맛이 아닐 수 있다. 남한에서 장사를 하려면 남한 사람 입맛에 맞춰 조리법을 현지화해야 살아남는다는 건 탈북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개별 음식의 맛을 걷어내고 남은 자리엔 공통적인 식문화와 음식의 문법이 남는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건 아마도 맛보다는 한식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 해외 출장 땐 그동안 피해 왔던 한식당에 들러 보려 한다. 한식이 어떤 모습으로 이역만리에 피어 있을지.
  • [한 컷 세상] 올바른 친구들의 모습

    [한 컷 세상] 올바른 친구들의 모습

    늦은 밤 아파트 1층에서 중학생들이 자정이 되면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며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입에 담기에도 흉한 일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요즘 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만드는 모습에 지나가는 아저씨도 함께 축하해 주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홍은미 지점장의 생활 속 재테크] 변동성 커지는 뉴노멀 시대, 공모주·공모주펀드 관심을

    요즘은 직장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다. 따지고 보면 좋은 투자도 결국 자신의 상황에 맞춰 수익률과 위험의 밸런스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다수의 국내 투자자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혹은 ‘안전 지향’ 같은 극단적인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곤 한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뉴노멀 시대에는 ‘중위험, 중수익’ 투자가 현명한 선택지다. 공모주와 공모주 펀드가 대표적이다. 올해는 기업공개(IPO)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IPO 공모액은 5년 만의 최저치인 2조 7505억원에 그쳤지만 올해는 지난해의 두 배 이상인 6조~7조원으로 금융업계는 예상한다. 조 단위의 대형 IPO가 줄줄이 예정돼서다. 일부 기업의 경우 상장이 미뤄질 수도 있지만 코스닥에 등록된 IPO 기업들의 ‘상장 대박’도 꾸준하다. IPO 공모주는 주변지역 시세 대비 저렴한 아파트의 분양처럼 상장 후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예상가보다 10~30% 할인된 가격에 사면 상장 후 손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인기 공모주는 미리 사둘 수 있다. 지금처럼 마땅한 투자처가 없을 땐 적정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한국거래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거래소는 지난 1월 발표한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올해 주요 사업계획에서 “대형 IPO 추진, 코스닥 관련 투자 유망 증권 상품 상장, 상장요건 개선 등을 통해 자본시장의 활력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코스닥에 10여개 회사가 상장한 뒤 주가가 공모가보다 크게 올랐다. 물론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유망 공모주는 경쟁률이 1000대1에 달해 배정 주식수가 형편없다. 청약 증거금도 준비해야 해 부담이 크고, 상장 직후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사례도 빈번하다. 경쟁이 치열하면 공모가격이 높아져 상장 후 큰 수익이 나지 않거나, 침체기에는 손실도 본다. 공모가격이 적정 수준보다 높으면 손실이 불가피하다. 상세한 분석이 어려운 개인투자자라면 공모주 펀드도 대안이다. 특히 공모주 하이일드 펀드는 내년까지 발행물의 10% 이내에서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도 있다. 일반 공모주 펀드는 안정성을 중시하지만, 공모주 하이일드 펀드는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지만 우량한 기업을 엄선해 기업의 하이일드 채권에 투자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모주 하이일드 펀드의 수익률은 3.24%로 공모주 펀드의 평균 수익률(1.38%)보다 높았다. KB증권 광화문지점장(WM스타자문단)
  • “외화벌이용 어획 많은 6월 北단속 소홀…어선에 몇달치 식량, 전형적 탈북 유형”

    두만강 1800만원 비용탓 동해 택한 듯 귀환 2명, 처음엔 탈북 몰랐을 가능성 지난 15일 북한 목선 선원 4명의 ‘해상 노크 귀순’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은 26일 앞서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자 7명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물어봤다. ●북한 목선은 왜 동해를 선택했나 탈북은 두만강을 넘어 육로로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방법과 서해나 동해 등 바닷길을 통해 건너오는 방법이 있다. 최근 두만강 루트로 탈북하는 비용이 상당히 비싸져 조난 위험이 따르는 바닷길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탈북자 A씨는 “요즘 두만강으로 탈북하려면 비용이 1800만원이나 든다고 한다”며 “탈북자가 예전보다 많아지면서 가격이 비싸졌다”고 했다. 이어 “국경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첨단화된 경비 장비가 많이 들어와 탈북이 쉽지 않다고 한다”고 했다. ●왜 6월인가 군 당국은 남하한 4명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오징어잡이 배가 많아진 것을 이용해 위장 조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C씨는 “북한에서는 5~6월이 되면 전국에서 고기잡이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며 “어획 활동으로 상당한 외화벌이를 하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단속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D씨는 “큰 배들은 당국에서도 멀리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해 철저히 감시하지만 목선같이 작은 배는 먼 해상에 나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감시가 소홀하다”고 했다. ●왜 가족단위 탈북이 아닌가 E씨는 “탈북이 빈번한 탓에 가족 단위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면 당국의 의심을 받는다”며 “그래서 이번에 가족이 아닌 사람들끼리 모여 바다로 탈북한 것”이라고 했다. 목선에서 쌀 29㎏을 포함한 음식물이 발견된 것도 전형적인 탈북 유형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서해로 탈북에 성공한 G씨는 “보통 배로 탈북할 때는 배가 고장 나거나 길을 잃을 가능성이 있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나 몇 달치 식량 등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필수”라고 했다. 반면 탈북자들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B씨는 “선원 중 한 사람은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는데 이는 평소 탈북을 결심한 사람의 차림은 아니다”라며 “두 명만 탈북을 결심했고 다른 두 명은 고기잡이하러 가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뒤늦게 귀순 사실을 알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A씨는 “바닷길로 탈북을 결심한다면 보통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 하기 마련”이라며 “그런데 당시 해류가 북쪽으로 흐르는 등 탈북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는데도 탈북을 결심한 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여자)아이들, ‘뉴트로 열풍’ 정조준… 소연 “트렌디함엔 정답이 없죠”

    (여자)아이들, ‘뉴트로 열풍’ 정조준… 소연 “트렌디함엔 정답이 없죠”

    데뷔 때부터 독보적인 색깔을 보여준 그룹 (여자)아이들이 또 한 번 변신했다. 이번에는 1990년대 힙합인 붐뱁 장르를 소화하며 최근 불고 있는 ‘뉴트로 열풍’에 합류했다. (여자)아이들은 2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디지털 싱글 ‘어-오’(Uh-Oh) 발매 쇼케이스를 열고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최초로 공개했다. 데뷔곡 ‘라타타’(LATATA)부터 ‘한(一)’, ‘세뇨리따’(Senorita)까지 3연속 히트곡을 탄생시킨 리더 소연이 이번에도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았다. 90년대 트렌드를 (여자)아이들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90년대 음악을 즐겼던 기성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요즘 젊은 세대에겐 새로움을 환기시킨다는 목표다.소연은 “90년대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고 이번에는 (여자)아이들만의 힙합을 하고 싶었다”며 “데뷔 전부터 꼭 해보고 싶던 장르였고 이런 힙한 콘셉트를 했을 때 멤버 각자의 개성이 보여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거가 유행했다 지나간 장르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소연은 “저는 지난 장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트렌디함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멤버들과 작업하면서 오리엔탈적인 것이나 아날로그적인 것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많이 하는 트랩 힙합 같은 신나는 곡보다 붐뱁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신곡 제목 ‘어-오’는 미국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쓰곤 하는 감탄사로 미국 촬영을 갔을 때 듣고 응용했다. 가사에는 처음엔 관심 없다가 뒤늦게 와서 친한 척하는 사람들을 재치 있게 디스하는 내용을 담았다. 소연은 “힙합의 매력은 솔직한 가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에도 재치 있는 디스로 솔직한 가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미연은 “누구나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얘기한 가사”라고 부연했다. 이날 처음 공개한 무대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댄서가 등장해 멤버들과 호흡을 맞춘다. 이번 무대 연출 콘셉트를 묻는 질문에 수진은 “저희와 대중 분들이 같이 즐기는 무대를 연출하고 싶어서 많은 댄서 분들과 함께했다”고 말했다.이날 사회를 맡은 같은 소속사 개그맨 허경환은 “소연이 만든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멤버들은 어땠나”라고 물었다. 민니는 “소연이가 힙합곡을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기대를 많이 했는데, 처음 듣자마자 되게 새롭다. 끝까지 들어봤는데 아웃트로 부분을 한번 듣자마자 따라 부를 수 있었다. 팬 여러분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좋다”며 웃었다. 지난해 신인상을 휩쓴 (여자)아이들은 더 큰 목표를 밝혔다. 수진은 “원래 음원 차트의 높은 순위가 목표였는데 하나가 더 생겼다”며 “네버랜드(팬덤명)와 소통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미니 콘서트나 팬미팅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미연은 “음악 방송 1위도 하고 싶지만, 제일 이루고 싶은 건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이라며 “직설적이고 속 시원한 게 장점인 가사를 들으면서 답답했던 부분을 풀어내시고 즐기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탈북자들이 풀어보는 북한 목선 남하 궁금증…그들은 왜?

    탈북자들이 풀어보는 북한 목선 남하 궁금증…그들은 왜?

    지난 15일 북한 목선 선원 4명의 ‘해상 노크 귀순’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은 26일 앞서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자 7명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물어봤다. ●북한 목선은 왜 동해를 선택했나 탈북은 두만강을 넘어 육로로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방법과 서해나 동해 등 바닷길을 통해 건너오는 방법이 있다. 최근 두만강 루트로 탈북하는 비용이 상당히 비싸져 조난 위험이 따르는 바닷길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탈북자 A씨는 “요즘 두만강으로 탈북하려면 18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며 “탈북자가 예전보다 많아지면서 가격이 비싸졌다”고 했다. 이어 “국경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첨단화된 경비 장비가 많이 들어와 탈북이 쉽지 않다고 한다”며 “그래서 감시망이 비교적 소홀한 바다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B씨는 “제3국을 거치는 탈북은 길게는 수년 이상 걸릴 수 있는 데다 중간에 당국에 적발될 가능성이 높아 수일 내로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바닷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6월인가 군 당국은 남하한 4명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오징어잡이 배가 많아진 것을 이용해 이들이 위장 조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C씨는 “북한에서는 5~6월이 되면 전국에서 고기잡이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며 “어획 활동으로 상당한 외화벌이를 하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단속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D씨는 “큰 배들은 당국에서도 멀리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해 철저히 감시하지만 목선같이 작은 배는 먼 해상에 나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감시가 소홀하다”고 했다. ●왜 가족단위 탈북이 아닌가 E씨는 “탈북이 빈번한 탓에 가족 단위로 물고기를 잡으러 오면 당국의 의심을 받는다”며 “그래서 이번에 가족이 아닌 사람끼리 탈북을 결심한 사람들끼리 모여 바다로 탈북한 것”이라고 했다. F씨는 “4명 모두 가까운 사이로 봐야 한다”며 “누군가를 속이고 탈북하면 바다 한가운데에서 갈등이 벌어져 자칫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고 했다. 목선에서 쌀 29㎏을 포함한 음식물이 발견된 것도 전형적인 탈북 유형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서해로 탈북에 성공한 G씨는 “보통 배로 탈북할 때는 배가 고장 나거나 길을 잃을 가능성이 있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나 몇 달치 식량 등 준비를 철저히 준비하는 게 필수”라며 “이번에도 그와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반면 탈북자들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B씨는 “선원 중 한 사람은 말끔한 정장 차림인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평소 탈북을 결심한 사람의 차림은 아니다”라며 “나머지 두 사람이 서둘러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도 탈북이란 사실을 모르고 도착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명만 탈북을 결심했고 다른 두 명은 고기잡이 하러 가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뒤늦게 귀순 사실을 알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A씨는 “바닷길로 탈북을 결심한다면 보통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 하기 마련”이라며 “그런데 당시 해류가 북쪽으로 흐르는 등 탈북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는데도 탈북을 결심한 점이 이해가 쉽게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타향 살이 서러움에 하늘이 구멍 나도록 소리쳤죠… 그게 시로 돌아왔습니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타향 살이 서러움에 하늘이 구멍 나도록 소리쳤죠… 그게 시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살이 서러움을 승화한 정인환 시인이 말하는 ‘인생’“젊은 시절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30대 후반에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나온 이후 고생이 시작됐습니다. 식당, 음반 판매, 봉제공장, 알루미늄제조업, 소각장 경영, 정제유협회, 환경신문 등등,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도 좋지 않아 세상을 원망하고 비관도 했습니다만 그 모든 저의 외로움, 아픔을 달래준 것이 바로 시였습니다.” 전남 보성군 벌교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는 정인환(73) 시인.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한 그는 KTX를 타고 올라왔다고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짐 탓인지 땀을 흘리며 트렁크를 끌고, 백팩을 매고 왔다. 시골에서의 그을린 얼굴과 약간 까칠한 모습이었다. 인사가 끝나자 트렁크를 열더니 시집을 끄집어 내어줬다. 시인은 “헝클어진 마음을 여과하고, 쓰리고 아린 가슴을 침전시켰던 것”이라고 했다. 노트북 컴퓨터가 들어 있느냐고 묻자 시인은 자신이 아날로그라며 시는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질감으로 쓴다고 했다. 소설과는 달리 몇 자 되지 않는 글을 어떻게 컴퓨터로 치겠느냐고도 한다. “37살에 다니던 직장서 해직… 청년 백수 생활을지로서 공사장 함바집도… 단골에 거액 떼여영어회화 카세트 외판원도… 인생 많이 배워”- 국방과학연구소에 몸담았다고? 시인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군대를 제대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1976년에 ADD에 연구지원 인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이던 1982년 말에 연구소의 사업과 인력조정으로 해직됐습니다. 연구원을 포함해서 859명이 거리로 쫓겨났습니다. 그 뒤 ADD 해직자 구제차원에서 제가 벌교상고 출신이니 대전에 있는 은행에 들어가라고 취업을 알선해 줬지만 사정상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해직된 게 37살 때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청년 백수’가 된 거죠.” - 그 뒤 어떻게 지냈나.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되고 나니 을지로 입정동에서 한식당 토담집을 운영했습니다. 그때 지하철 2호선 공사 당시여서 우리가 함바집도 겸하며 공사장 인부들에게 라면을 200~300개를 끓여줬습니다. 사회 경험이 없었으니, 단골로 믿었던 손님에게 삼백만원가량 떼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에겐 무척 큰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받으러 그 사람 사무실에 가니 출입구에 신문만 쌓여 있고, 도망가버린 뒤였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식당을 접어야 했습니다. 당시 종로3가 시사영어사 직원들이 우리 식당을 많이 찾았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그 회사가 경기도 군포에서 클래식 음반 카세트 테이프를 생산하는 서울음반 자회사가 있었는데, 저는 영어회화와 음악 테이프 외판원으로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인생 공부 많이 했습니다. ” 시인의 변명 살다가 보니새롭게 무엇을 더 갖는다는 것이두려워졌습니다 인연을 끊어 버린다는 것은 더욱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목 잘린 후 겨우 이름만 붙들고살아왔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는하늘 위에 구름을 바라보았고그리운 것마저도 보지 못할 때는흐르는 강물에 귀 기울였습니다.이내 말까지 못하게 될 때에는 이렇게시를 써 왔습니다.“아들 초등학교 시절 5번 이사… ‘3곡’ 생활도재봉틀 못 다뤄도 봉제공장 취업… 사회 배워軍에 녹슬지 않는 알루미늄 텐트 폴대도 납품” - 서울생활 혹독했군요. “맹모삼천(孟母三遷)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부득이하게 오천을 했습니다. 제 큰애(45)가 초등학교 6년 동안 5번 전학을 했습니다. 저는 ‘3곡’(경기도 의왕 부곡, 서울 광진구 중곡, 관악구 난곡)을 찍은 사람입니다. 이 3곡에 제가 살던 곳은 요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빈민촌이었습니다. 지금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그땐 정말 달동네의 대명사이기도 했죠. 그 아들을 생각하면 아버지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재봉틀을 전혀 모르는 제가 부평구 효성동의 봉제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옷감을 재단해서 옷을 만들면 그 판에 깔린 옷감으로 주머니 덮개인 포켓 플랩, 칼라, 깃에 넘버링 작업을 하여야 다른 색이 나오지 않습니다. 옷감 한 롤에서 나오는 천도 색깔이 진하고 연하기도 했죠. 그 라인 작업이 색깔이 다르면 그 옷은 못 쓴다는 것, 즉 옷도 사회도 그 맞춤, 조각이 맞아야 돌아가는 것이구나를 또 배웠습니다. 제가 경험한 가장 어려운 사업이 식당이고, 두 번째로 어려운 사업이 옷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참, ADD 근무 경력을 살려서 알루미늄 제조업체에 가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병참에 대한 물품납품을 땄습니다. 녹이 슬어 처진 철조망을 녹이 슬지 않는 알루미늄으로 바꿨습니다. 또 침대나 텐트의 폴대 등이 옛날에는 나왕으로 만들어졌고, 끝에만 쇠붙이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알루미늄으로 제작해서 바꿨습니다. 그 이전엔 나무재질이었는데, 비가 오면 습기를 머금어 엄청 무겁잖아요. 그런데 알루미늄은 가볍고 녹도 슬지 않아요. 손에 나뭇가시도 박히지 않고, 국방에 기여한 셈입니다.” “난곡 생활중 전세금 300만원 인상 요구어머님, 머리띠 매고 식음전폐 드러누워‘집 샀다’하니 머리띠 푼 머리엔 상처만아들 샀다는 집 들여다보다 창살에 찍혀어머니 이 집에서 임종… 아직도 못 팔아” - 서울 생활 보람은 없었나. “난곡에서 살던 1986년쯤 전셋집 주인이 한꺼번에 300만원을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또 이사를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어느 날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님이 머리에 하얀 띠를 묶고 식사도 안 하시고 드러누워 계셨습니다. 그래서 전세금 올려주려던 300만원을 들고 집 사겠다고 나갔습니다. 마침 5700만원에 나온 집이 있어 앞뒤 생각지 않고 바로 계약했습니다. 계약하고 ‘어머님, 집 샀습니다’라며 위치를 설명해 드렸더니 어머님도 그 집 위치를 아시는 거였습니다. ‘응, 그 집, 은행나무도 있고, 무척 좋은 집 같은데…’ 그러시더라고요. 다음날 퇴근하고 오니 어머니 머리띠가 없고, 머리 한쪽에 찍힌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다쳐 머리띠를 한 것이냐’고 여쭈니 어머님은 ‘아냐, 아무것도 아냐’라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것이 아들이 산 집인가 보다 하고 담 너머 기웃거리며 들여다보다가 담장 창살에 찍혀 다치신 것이었습니다. 집을 산 것이 보람이었다는 게 아니라 어머님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가 제 보람이었습니다. 이 집을 팔고 집을 굴려 재산을 늘릴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이 동네 노인들 많이 아시지, 집 밖에 나가면 꼬마들이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하지, 교회에서도 ‘권사님, 권사님’ 하지, 그래서 이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재산 증식이 안 됐지요. 지금도 팔지 않고 있는데 어머님은 십사 년 전에 돌아가셨지요.” - 환경 쪽 일도 많이 했다던데. “신문사 환경일보에서 일하다가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폐유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로 자동차윤활유 폐유는 끈적끈적해서 침전되면 그 주위는 그냥 다 죽습니다. 이 폐유를 정제유로 만들어서 재활용하는 회사들의 뜻을 모아 2001년 한국이온정제유협회를 만들어서 폐유에서 기름을 뽑아 목욕탕, 도자기 가마 등에 공급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버리는 폐유를 공짜로 받아와서 이렇게 돈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이게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니 돈을 주고 폐유를 사게 되고, 업체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통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을 떼고 나왔습니다. 2005년쯤 폐기물 처리업체인 경기도 평택에 있는 금호환경에 대표이사로 취임했습니다. 그런데 평택시의 환경정책과 경영악화로 2008년 초쯤 그만둔 적도 있습니다. 금호환경은 평택 미군기지에서 헬기가 뜨지 못할 정도로 큰 화재를 내고 결국은 정리하여 폐업하였습니다. 그 후 환경안전공사를 만들어 공동대표로 있다가 너무 힘들고 하여 역시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보니 회사를 많이 옮겼습니다. 그러나 옮겨 다녔던 회사마다 그 과정이 생과 삶의 필수과목처럼 저에게는 고스란히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詩作, 여기저기서 부딪혀 가슴 아파 시작서러움 벗어나려 하늘 구멍 나도록 소리쳐詩란 쓰면 쓸수록 다시 고이는 넉넉한 사랑나를 치유해줘… 좌절할 땐 방향도 잡아줘”- 시, 언제부터 썼나요. “시작은 ADD 나와서 봉제공장 다니면서 여기저기 돌다가 부딪혀 가슴이 굉장히 아팠습니다. 상처를 많이 받았지요. 고통의 서러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늘이 구멍 나도록 소리쳤던 겁니다. 첫 시가 ‘수석’인데 사실은 저의 자화상입니다. 1985년쯤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89년에 해동문학에 수석을 뒤늦게 발표했습니다. 시집 1집 ‘뜨개질하는 여인’은 1992년도에 나왔습니다. 한 7년간 쓴 시를 모아낸 것이죠. 지금까지 5집을 냈고, 올가을쯤 6집 ‘보리밭 저 청보리밭’(가제)을 낼 생각입니다. 쓰면 쓸수록 다시 고이는 넉넉한 사랑이 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석 비바람 천둥 소리에조각난 돌이 되어구르며 깎이면서수석(修石)이 되고저계곡 따라 굴러가며물 따라 흘러와서모습을 드러내니수석(愁石)이어라 여덟 폭 폭포수에물길은 마흔 세 구비지나온 터 돌아보니수석(羞石)이구나.갈 길도 험하지만지나온 보람 안고이끼 낀 돌 물리치고수석(水石)으로 족하고 무구(無垢)의 시석(詩石)으로갈고 닦여져불굴의 생 얼룩진수석(繡石)이어라.과거를 침묵으로우주를 좌대 삼아홀로 서 임 그리는수석(壽石)인 것을. - 수석, 그런데 한자가 다 다르다. “이 시를 쓰고 난 다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수석의 한자를 다 다르게 했습니다. 좌대를 찾아서 가는 수석, 그러니까 물건이고 사람이고 있어야 할 곳에 가야 하는, 자기 자리 찾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있을 곳이 그렇게 없냐, 있을 곳 찾기가 이렇게 어렵느냐는 제 마음이 묻어 난 것입니다. 제자신이, 사회가 너무 절박한 것이었죠. 첫발 내디딘 사람을 사회가 포용해야 하는데 배타적으로 튕겨내서, 어디에 발붙일 곳이 없었던 거죠. 시를 쓰면서 제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제 정신적 치유 방법으로 많이 썼습니다. 시는 저의 좌절에 방향을 잡아주고 나태할 때는 회초리로 다가왔습니다.” “어릴적, 절구통에 묶여 닭똥 주워 먹어동기 7남매, 한방에서 생활… 어렵게 성장7남매 함께 하는 우애… 봉사활동도 앞장늘그막 귀촌 생활… 정체성 회복하는 과정”- 형제간 우애가 돈독하다고 들었다. “제가 전남 보성군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해방 후 일본에서 트렁크 두 개에 백솥 하나 들고 나와서 살림을 일궈냈습니다. 어머님이 저를 절구통에 띠로 묶어두고 들에 나가 일했습니다.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고, 또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그랬던 거죠. 저는 절구통 주변을 돌면서 놀다가 울다가 배가 고프니 닭똥도 주워 먹고 했다 합니다. 아버지가 1980년 돌아가시고 난 다음 어머니는 서울에 올라오시고, 많은 식구에 집사람이 말도 못하게 고생했습니다. 제가 7남매의 맏이인데 동생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사촌들까지 들락거렸습니다. 서울 봉천동의 집이라곤 방 2개뿐인데, 한 방은 아이들이 다른 방에는 동생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부모님 택호가 강촌인데, 요즘 우리 7남매를 무지개로 부르며 ‘강촌 무지개회’를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1월1일과 4월 부모님 기일, 5월 야유회를 갖고 있습니다. 7남매 부부가 모두 모여서 쌍무지개라고도 합니다. 분당에 사는 둘째 여동생(55)이 김치를 담가 독거노인들에게 택배로 보내고 법무부 법사랑 위원으로서 다른 봉사활동을 하는 등 동생들이 지역 사회에서 남을 돕는데 앞장선다고 듣고 있습니다. 어릴 적 좁은 방에서 어렵게 같이 지내서,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시골 생활 어떻나. “2012년도에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나이가 들고 해서 농사를 짓지는 못하고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틈나면 글 읽고 시 쓰고…. 읍내에서 지인들이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합니다. 집 바로 옆에 부모님 산소가 있어 잡초도 뽑아주고 시묘살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참 괜찮은 일입니다. 그리고 제 탯자리도 바로 옆입니다. 도시에서 은퇴하는 사람들은 먼저 마음이 살 곳을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서울 생활만 36년이었습니다. 잃었던 나를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귀촌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실은 시인의 시에 대한 뒷얘기도 듣고 시와 생활에 얽힌 사연도 들어서 옮기려고 했으나 시인이 살아온 날의 체험담을 쓰다 보니 여기서 줄여야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대담노트를 접는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에이티즈, ‘더쇼’ 1위로 2관왕 달성… “에이티니 덕분에 매일이 행복”

    에이티즈, ‘더쇼’ 1위로 2관왕 달성… “에이티니 덕분에 매일이 행복”

    그룹 에이티즈(김홍중, 박성화, 정윤호, 강여상, 최산, 송민기, 정우영, 최종호)가 데뷔 후 첫 2관왕에 오른 기쁨을 전했다. 에이티즈는 25일 SBS MTV ‘더쇼’에서 1위에 해당하는 ‘더쇼 초이스’에 선정됐다. 에이티즈는 이날 우주소녀와 SF9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에이티즈는 지난 20일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 데뷔 후 첫 1위에 오른 데 이어 2관왕의 영예를 얻었다. 에이티즈는 방송 후 공식 SNS 계정에 대기실 사진과 함께 팬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올렸다. 에이티즈는 “에이티니(팬덤명) 덕분이 매일이 행복한 요즘”이라며 “오늘은 또 새로운 추억이 생겼다. 1위를 축하하며 건배~ 건배~”라고 적었다. ‘더쇼 초이스’ 트로피를 앞에 두고 장난스러운 포즈로 줄지어 앉아 있는 사진 등도 게시했다. 데뷔 초부터 강렬한 음악과 개성 넘치는 퍼포먼스로 국내는 물론 해외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에이티즈는 지난 10일 청량감 가득한 앨범 ‘TREASURE EP.3 : One To All’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WAVE’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에이티즈는 다음달 27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첫 번째 팬미팅 ‘ATEEZ The 1st ATINY PARTY [DEL MUNDO]’를 개최하고 데뷔 때부터 에이티즈를 응원해온 팬들과 만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9급서 39년 만에 부이사관 단 공무원 눈길

    9급서 39년 만에 부이사관 단 공무원 눈길

    노경달 행안부 운영지원과장 부이사관 승진1980년 9급으로 입직해 올해 ‘별’ 달아 고시 출신에 밀려 요즘은 ‘하늘의 별따기’ 9급 말호봉에서 시작해 중앙부처에서 부이사관을 달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과거 같으면 중앙부처에서도 9급이나 7급 출신이 부이사관이나 이사관, 관리관, 차관, 장관이 되는 사례도 종종 나왔지만, 요즘은 고시 출신에 밀려 일반직 국장은 고사하고, 부이사관도 하늘의 별 따기다. 비고시 공무원들 사이에서 “아 옛날이여”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9급 출신은 승진을 시키려 해도 중앙부처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쉽지 않다. 설령 지방에서 시작해 중앙부처에 둥지를 틀더라도 그런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옷을 벗거나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9급 말호봉 입직자 가운데 부이사관 승진 자격을 갖춘 고참 서기관은 공직사회에서 매우 찾아 보기 힘든 존재다. 지방과의 인사교류가 잦은 행정안전부 등을 제외하면 이런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9급 출신 부이사관을 두고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25일자로 부이사관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지방에서 9급으로 공직을 시작한 노경달 운영지원과장도 부이사관을 달았다. 6명의 승진자 가운데 그는 유일하게 9급 출신이다. 노 과장의 승진으로 산하기관을 제외한 행안부 본부 직원 1500여명(과장급 이상은 250명) 가운데 9급 출신 부이사관은 4명으로 늘었다. 노 과장은 1980년 10월 9급 공채에 합격해 경북 영주시청에서 근무하다가 경북도청을 거쳐 7급 시험을 치러 행안부의 전신인 내무부로 옮겼다. 입직 이후 무려 39년 만에 ‘별’을 달았지만, 사무관도 못 달고 옷을 벗은 사람들에 비하면 그는 행운아다. 행시 출신은 사무관을 단뒤 서기관, 부이사관까지는 수월한 편이지만, 9급 출신에게는 멀고도 험한 길이다. 노 과장은 “승진을 축하한다”면서 말을 건네자 “공무원 승진이 무슨 얘깃거리가 되느냐”며 손사례를 친다. “공직에 입문한 뒤 아들과 딸 잘 키우고 30년간 밥 안 굶고 살았으면 됐다”면서 “승진은 덤”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안부에서 홍보관리팀장과 행정팀장, 분권1과장, 조사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주변에서는 그의 생존(?) 비결을 ‘적극성’을 꼽는다. 성실한데다가 매사에 적극적인 점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에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6명을 출신별로 보면 9급 노경달 과장 외에 7급 출신 양홍주 감사담당관(59), 행시 출신 배일권 혁신기획과장(47·행시 42회)과 박연병(47·행시 42회) 자치행정과장, 지방고시 출신 명창환(51·지시 1회) 지역공동체과장, 박용수(50·지시 6회) 재난관리정책과장 등 9급과 7급이 각각 1명, 행시, 지시가 각각 2명이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진영 장관 부임 이후 첫 부이사관 승진 인사에서 능력과 출신에 따라 균형감 있게 배려가 된 것 같다”면서 “인재의 다양성 차원이나 직원들의 성취감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현상이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sunggone@seoul.co.kr
  • “돌아온 20세기 아이돌… ‘추억 팔이’만 하다간 사고치죠”

    “돌아온 20세기 아이돌… ‘추억 팔이’만 하다간 사고치죠”

    새달 JTBC에서 방영되는 ‘캠핑클럽’에는 14년 만에 다시 모인 핑클 멤버들이 나온다. 2014년 MBC의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로 젝스키스(젝키)와 H.O.T.와 god, S.E.S가 재결합을 할 당시 핑클의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뭉쳐 팬들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엠넷 ‘프로듀스 101’ 출신인 아이오아이나 워너원의 재결합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팬들이야 갈망하겠지만, 그때 그 아이돌의 재결합, 마냥 득일까. 득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시 만날 핑클을 고대하며 평론가와 시인과 기자가 만나 아이돌 재결합을 이야기해 봤다.이정수 기자(이하 이) 핑클 재결합에 대한 팬들 기대감이 높네요. 어떻게들 보세요.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이하 김) ‘1세대 아이돌 끝판왕’이 온 거죠. 이미 앨범과 공연으로 재결합 붐을 일으킨 젝스키스와 H.O.T.가 있었고, S.E.S도 불완전하나마 ‘토토가’에서 무대를 보여 준 적이 있었어요. 마지막 퍼즐이 핑클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많다 보니 더 주목 받는 것 같습니다. 개인활동만 봐도 멤버들 성향이 완전히 달라서 재결합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4명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반갑고 기분 좋아요. 서효인 시인(이하 서) 앨범을 다 샀던 ‘핑클빠’가 바로 접니다. 사실 그래서 불안한 마음도 있어요.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데, 뭘 꼭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다른 그룹들보다 걱정이 덜 되는 게 핑클의 네 멤버는 계속해서 미디어에 노출돼 왔기 때문에 요즘의 방송 시스템 등에 적응이 돼 있거든요. 아이돌 재결합 양상을 보면, 너무 오래 쉬어서 팬들의 방향성이나 방송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90년대에 머물러 있던 멤버들이 꼭 사고를 치더라고요.이 젝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처음 젝키가 ‘토토가’로 재결합했을 때 기대감이 높았어요. YG에 둥지를 틀기도 했고. 김 당시 엄청났죠. ‘냉동인간’으로 대표되는 예능화제성도 좋았고, 무대매력도 준수했거든요. 콘서트에 가면 20년 전 젝키를 좋아하던 1세대 팬들과 예능을 통해 새롭게 팬이 된 10·20대가 마구 섞여 있어서 그야말로 ‘신구’의 결합이었는데. 서 얘기할수록 아쉬워요, 재결합으로 꽃핀 시기가 너무 짧은 거 같아서.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잘 몰랐던 걸까요. 강성훈 같은 경우 예전에는 ‘그런 말’을 해도 묻히거나 해명이 잘 먹혔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시대착오적이었죠. 외모만 냉동인간인 줄 알았는데 마인드까지 냉동인간인 줄이야.(강성훈은 후배 아이돌 외모 비하, 팬클럽 방만 운영 등 잇단 논란 끝에 젝키에서 방출됐다.) 김 시대를 사로잡았던 1세대 아이돌 재결합에 대한 대중의 열기는 뜨거운데, 정작 당사자들이나 제작·기획자들이 그만큼 준비가 안 돼 있는 듯해요. 음악도 기획도 오늘날에 맞춰 과거의 것을 재생산해야 지금과 호흡할 수 있는데 추억만 가져와 급하게 팔면 금방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거든요. 서 특정 예능이 불러일으킨 바람이 컴백의 계기가 될 순 있지만, 너무 거기에 기대면 곤란하죠. 케이팝의 시간은 빨리 흘러요. 예전의 케케묵은 마인드로는 버티기 어렵죠. 이 계약에 있어서도 현역 아이돌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좀더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겠죠. 개인 활동보다는 그룹 활동을 우선순위에 두는 쪽으로. 김 지난해 잠시 재결합한 솔리드는 재결합의 좋은 예로 꼽고 싶습니다. ‘Into the light’ 같은 여전히 세련된 신곡과 팬들을 위한 음반 포함 스페셜 패키지 상품, 공연, 방송 등을 준비해 돌아왔습니다. 재결합 기념 언론사 인터뷰를 시작으로 공연까지 이어지는 활동 전반이 굉장히 멋스러웠어요. 서 재결합이든 롱런이든, 오래 활동을 하려면 음악적 스펙이 중요하다는 건 불변의 진리겠죠. 육성형 아이돌었다고 할지라도 작곡이든 프로듀싱이든 음악적 재능을 갖춰야 나가야 하잖아요. 김 적어도 멤버들 사이에 목표나,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룹 신화를 보면 ‘신화’라는 브랜드에 대한 청사진이 멤버들 사이에 공유돼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앨범만 봐도 팀에 대한 멤버들의 생각이 보이거든요. 재결합의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그룹들의 사례에서 시간이 가진 무게감, 추억과 이름에 대한 책임감 등을 본받아 미리 가슴에 새기고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앞으로도 재결합은 계속될 듯한데, 한 번 더 보고 싶은 아이돌이 있다면? 김 원더걸스가 해체하는 순간부터 우울했어요. 10년의 역사도 역사지만 멤버들이 직접 곡을 쓰는 흔치 않은 걸그룹이었고, 특히 해체 직전 발표한 노래들의 퀄리티가 높아서 더욱 아쉬웠어요. 서 2NE1을 보고 싶습니다. 인기가 사그러들지도 않았고, 앨범이 크게 실패하지도 않았는데 사라진 과정이 너무 석연치 않아요. 억울할 지경이랄까요. 이 비교적 최근의 그룹 중에는 씨스타요. 해체 이후 개인 활동 성적이 좋진 않았어요. 원래부터 같이 모여 있을 때 빛이 나는 팀인데, 매우 아깝죠. 김 우리들의 여름에 씨스타가 필요하다! 서 ‘터치 마이 바디’라고 당당하게 노래할 수 있는 걸그룹은 당분간 씨스타가 유일할 걸요. 이·김 (웃음.) 정리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대담자 소개합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무대에 반해 시작한 케이팝 ‘덕질’도 어언 1n년차. 서효인 시인, 작가, 문학편집자. 그러나 무엇보다 가요 애호가일 때가 가장 평화로운 사람. 이정수 ‘덕업일치’를 실현 중인 문화부 대중음악 담당기자. 그룹 소방차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꼬마가 몸만 자랐다.
  • 강주은 앞에서 무릎 꿇고 손든 최민수 ‘바닥에 눕기까지?’

    강주은 앞에서 무릎 꿇고 손든 최민수 ‘바닥에 눕기까지?’

    최민수가 강주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강주은은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요즘같이 하늘색 좋은 날들 우리 민수와 같이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네. 이런 즐거움은 결혼 초창기엔 상상도 못했지. 오히려 에너지 넘치는 요즘 다시 신혼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글을 남겼다. 이어 “더구나 며칠전 6월 18일은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였네. 신혼 초 하루하루 바쁜 삶이라는 무거운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정작 우리가 인생을 잘 키워 가는지 가끔 구름이 머리위로 지나가던 기분이 들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기분이 올때마다 서로에게 힘이되길 바라면서 우려를 안심으로 책임있게 지켜낸 우린우리 서로에게 영웅이였지. 그렇게 살아오면서 취미도 같아져 벌써 7년이라는우리의 라이딩 문화도 생겼네.사실 우리 민수 뒤에 매달려 가는게 자존심 상해 7년전 바이크 면허를 따긴 했지만”이라고 함께 취미 생활을 하게 된 계기를 공개했다.강주은은 “모든 부부도 부부만의 문화를 만들어야지. 내가 앞에 민수가 뒤에. 늘 우리 부부의 문화를 만들고 있지. 그런데 나도 우리 민수처럼 슬슬 길에 눕기. 결혼기념일인줄도 몰랐던 우리 민수 무릎꿇어!! 혼나아주 그냥”이라고 유쾌하게 덧붙였다. 공개된 여러장의 사진 속 강주은, 최민수는 바이크를 즐기다 길가에서 쉬고 있다.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는 최민수와 그런 최민수를 혼내는 강주은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사진 = 강주은 인스타그램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정부와 국민 사이의 벽을 허물려면/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월요 정책마당] 정부와 국민 사이의 벽을 허물려면/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1394달러를 기록하며 선진국 진입선이라 할 수 있는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도 1조 5300억 달러로 세계 12위를 차지했다. 외형적으로 대한민국은 놀라운 발전을 일궜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사회적 양극화는 봉합되지 않고 있고 저출산·고령화도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과거 우리에게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과제가 놓여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국가 역량을 경제성장에 집중했다.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하며 국제사회의 모범 사례가 됐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압축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환부가 곪아 터지고 있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정부가 단독으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을 이뤄야 하고 정부와 국민이 목표를 함께 고민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한 것이 바로 ‘정부혁신’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만들려고 한다. 그 첫걸음으로 국민과 정부 사이의 벽을 허물고자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벽을 허물 수 있을까. 이에 관한 해법으로 ‘3C’를 제안한다. 먼저 국민과 정부 간 진심 어린 ‘공감’(compassion)이다. 세계적인 비언어 소통 전문가인 폴 에크먼(84)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43개의 미세한 얼굴 근육을 활용해 19가지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정말로 기뻐서 웃는 미소는 단 한 가지인데, 놀랍게도 이를 접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이처럼 진정한 공감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넘어 심리적 유대로까지 이어진다. 다음으로 ‘공동체’(community)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 모두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가족을 부양하기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국민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국정 참여를 요청하면 과연 몇 명이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때 공동체 정신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공동체는 정부와 국민을 연결하는 고리다. 국민들이 입법·행정에 참여하기 위한 기반이 되고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공동체 연대성은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꼴찌다. 어느 때부터인가 공동체의 가치가 뒷전으로 밀린 탓이다. 이제부터라도 공동체 의식을 깨워야 한다. 마지막 해법은 ‘공동창조’(co-creation)다. 정부와 국민이 다 함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혁신을 이뤄 가는 것이다. 지역 주민이 중심이 돼 사회적경제를 이뤄 가는 협동조합이나 생활 속에서 주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 리빙랩, 미국 정부가 국가적 이슈를 해결하는 데 시민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고자 만든 ‘챌린지닷거브’(challenge.gov)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국민의 집단지성으로 해결하려는 방안은 모두가 함께 잘살기 위한 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벽을 허무는 데서 시작했다. 14세기 유럽에서는 르네상스를 통해 문화·예술·학문 간 경계의 벽이 무너졌고 인류의 큰 진보를 일궈 냈다.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이 철거되면서 냉전 시대가 끝났다. 2019년의 대한민국 또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국가 운영의 중심을 경제적 가치에서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고 혁신적 포용국가도 달성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정부혁신이다. 이제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돼 우리 내부의 벽을 허물고자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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