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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용차가 출근 거부한 해고 노동자 86%가 불면증

    쌍용차가 출근 거부한 해고 노동자 86%가 불면증

    쌍용차 해고 노동자 46명 중 36명 설문 참여휴직 연장 통보 후 91% “모든 일들이 힘들다”한 달 평균 소득 300만원 이하 비율이 83%“회사 휴직 연장은 부당” 노동위에 구제신청 “지난달 복직 앞두고 하던 일도 접었는데…. 통장 잔고가 별로 없어서 다음 달부터는 당장 일을 다시 해야 해요.” 김모(44)씨는 쌍용자동차에서 2009년 6월 정리해고를 당한 후로 1년 반을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하다가 화물차 운전기사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한 달에 약 300만원이 기름값으로 빠져 나갔다. 또 차가 오래 돼서 고장이 자주 났다. 기름값과 수리비 지출 등으로 월 평균 소득은 250만원에 그쳤다. 김씨는 “몸이 아파도 돈이 안 모이니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에 2018년 9월 쌍용차 해고자 복직 합의서가 체결됐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71명이 지난해 1월 먼저 복직했다. 김씨를 포함한 해고 노동자 46명은 지난해 7월 무급 휴직으로 전환됐고 지난달 31일까지 부서 배치가 완료될 예정이었다. 김씨는 약 10년 6개월 만의 출근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화물차 운전 일을 그만 둔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달 24일 남은 해고 노동자들의 휴직 기간을 연장한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요즘은 누워서도 잠이 잘 안 오고 가위에 계속 눌린다. 숨 막힐 때가 많다”면서 “회사가 사람을 왜 이렇게 피 말려 죽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예정된 날짜에 복직하지 못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의 갑작스러운 휴직 연장 통보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 및 해고자 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지난 10일부터 전날까지 진행된 설문 조사에는 남은 해고 노동자 46명 중 36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회사의 휴직 연장 통보 이후로 잠을 설쳤는지를 묻는 질문에 86.1%가 1주일에 적게는 2~3일, 많게는 6일 이상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잠을 자도 수면의 질이 나빴다는 응답이 72.2%에 달했다. 또 응답자의 91.7%는 지난 2주 동안 ‘모든 일들이 힘들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월 평균 소득이 300만원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은 83.2%였다. 2018년 9월 ‘노·노·사·정’(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차 노동조합, 쌍용차,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에 따라 남은 해고 노동자 46명은 지난해 7월부터 무급 휴직 중이었고, 지난달 31일까지 부서 배치가 완료될 예정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남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 중 70.6%가 복직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그런데 쌍용차와 쌍용차 노조(기업노조)는 휴직자들의 휴직을 유급 휴직으로 전환하면서 휴직 기간을 연장하기로 지난달 24일 합의했다. 지난 7일 경기 평택 쌍용차 본사 공장에서 해고 노동자들을 만난 예병태 쌍용차 사장은 “차 판매량이 늘고 생산량이 늘어났을 때 최우선적으로 여러분들을 공장에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의 52.9%는 ‘판매와 생산이 늘어도 조만간 부서 배치가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2009년 정리해고와 국가폭력 이후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9월 복직 합의는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해 어렵게 도출한 사회적 합의”라면서 쌍용차가 합의 사항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회사의 휴직 연장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구제 신청서를 제출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정의당 탈당’ 진중권 “앞으로 페친은 여성만 받는다” 선언

    ‘정의당 탈당’ 진중권 “앞으로 페친은 여성만 받는다” 선언

    “남성 비율 90% 넘어…건전하지 못한 것정의당서 받은 감사패,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의당을 탈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1일 “앞으로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여성만 받는다”고 선언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페친) 남성 비율이 90%가 넘는데, 이거 건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올리며 몇 가지 ‘페북 친구’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저 한남(한국남자), 마초 싫어하고 페미니즘 강력히 지지하니 엉뚱한 기대 갖지 마시라”면서 “좌빨, 멸동 어쩌구 하는 분도 차단한다. 제가 여러분이 성토하는 그 빨갱이, 공산당이다”라고 썼다. 아울러 진 전 교수는 “(저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빨간 축에 속한다. 한번 꼼이면 영원한 꼼이라지 않는가”라면서 “한국의 보수가 그 좌빨 타령하다가 망한 건데, 자기들이 왜 망했는지도 모르는 게 보수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또 “도배하는 분들, 욕설 퍼붓는 분들도 나가 달라. 특정 정당에 과도하게 몰빵하신 선수분들도 부담스럽다. 여기는 상식, 이성, 공정과 정의가 통하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썼다. 한편 정의당이 진 전 교수의 탈당계를 처리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진 전 교수를 향해 “원하시는 탈당계는 잘 처리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고마웠다. 요즘 좌충우돌한 모습은 빼고”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진 전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용히 처리해 달라고 했더니 가는 마당에 꼭 한소리를 해야 했나”라면서 “당에서 받은 감사패를 최고의 명예로 알고 소중히 간직해 왔는데, 윤 의원 말씀을 듣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정의당, 진중권 탈당계 처리... 윤소하 “그동안 고마웠다”

    정의당, 진중권 탈당계 처리... 윤소하 “그동안 고마웠다”

    정의당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탈당계를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정의당 관계자는 “심상정 대표의 지시로 어제(10일) 저녁 진 전 교수의 탈당 절차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날 정의당 윤소하 의원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시는 탈당계는 잘 처리되었다고 한다”고 진중권 전 교수의 탈당계 처리를 언급하며 “그동안 고마웠다. 요즘 좌충우돌한 모습은 빼고”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진중권 교수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진행했던 팟캐스트 ‘노유진’을 거론하며 “노유진에서의 칼칼한 역할과 양념 역할도 (고마웠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세상사 많이 어렵고 헷갈리기도 하나, 뚜벅뚜벅 보다 나은 세상을 가꾸어 가는 아름답고 수고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마음 추스르시고 보다 진중하게 세상을 살펴달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진중권 전 교수는 정의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 찬성과 관련, 정의당과 입창 차를 보이며 지난 9월 탈당계를 제출했다. 하지만 당시 당 지도부의 만류로 탈당 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 한 네티즌이 ‘정의당 지도부는 조국 사태 시작부터 어설프게 비판하며 끝까지 본질적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 기성정당의 역한 탈을 쓴 한낱 군소정당이 돼 버린 것 같다. 아직 정의당 당적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댓글로 “탈당계 처리해 달라고 말해 놓았다”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혜성 “♥ 전현무 초딩 입맛.. 분식 데이트 많이 해”

    이혜성 “♥ 전현무 초딩 입맛.. 분식 데이트 많이 해”

    아나운서 이혜성이 연인 전현무와의 데이트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편스토랑’에서는 KBS 이혜성 아나운서가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도경완 아나운서는 이혜성에 대해 “요즘 사랑을 하고 있는 이혜성 아나운서”라고 소개했다. 이경규는 “아나운서인데도 ‘편스토랑’에 나온 이유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붐은 “서울대 경영학 전공에 식품 쪽에 관심이 많아서 식품영양학을 부전공했다. 또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따서 별명이 ‘KBS의 장금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정일우는 “얼마 전 KBS2 ‘해피투게더4’ 촬영을 했다. 그 때 전현무 선배님께서 일면식도 없는데 손을 잡으시더니 ‘그 친구 잘 좀 부탁한다’고 하시더라”며 전현무의 사랑꾼 면모를 공개했다. 붐은 이혜성에게 “(전현무와) 맛집도 자주 다니냐”고 물었다. 이에 이혜성은 “그런 편이긴 한데 그분이 초딩 입맛이셔서 분식 이런거 같이 많이 먹는다”고 말하며 “(해피투게더4) 녹화 전날 같이 라볶이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사진=KBS2 ‘편스토랑’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소월에서 성다영까지… 등단작 담은 ‘시인의 시작’

    김소월에서 성다영까지… 등단작 담은 ‘시인의 시작’

    김혜순에서 문보영까지, 김소월에서 황인찬까지… 시인들의 첫 시를 담은 시선집이 출간됐다. 최근 출간된 시선집 ‘시인의 시작’(미디어창비)는 시인 100인의 첫 등단작들을 담았다. 신춘문예 발표를 기다리던 시인의 떨림과 설렘, 독보적인 시 세계를 열어갈 시인의 원형을 경험할 수 있다. 등단 연도의 역순으로 시를 수록해 눈길을 끈다. 지난해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성다영의 시를 시작으로 ‘한국 대표 시인’ 김소월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새해를 맞아 해돋이를 보러가는 이들처럼, 이들 시에는 남다른 처음을 시작하겠다는 소망이 깃들어 있다. 떠오르는 붉은 해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표지는 이러한 ‘시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내포한다. “산(山)턱 원두막은 뷔었나 불빛이 외롭다”(‘정주성’(定州城))고 말하는 백석이나 “나의 시간에 스코올과 같은 슬픔이 있다”(‘거리’)는 박인환처럼 고독함 가운데서 피어난 처음이 있다. “우리를 불러내는/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애쓰는 처음도 있다. 요즘 시인들의 다짐은 보다 귀엽고 다부지다.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문보영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며 수줍어하기도 하지만, “혼자 살면서 저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며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국내 최초 시 큐레이션 앱인 ‘시요일’에서 엮었다. 기획위원인 박신규·박준·신미나 시인의 안목으로 고르고 골랐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그는 창씨개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인이건만 유창한 일본말에 비해 오히려 한국말이 서툴렀다. 약국, 제과점, 철도 역부 등으로 일하면서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길 즐기던 ‘모던뽀이’였다. 이 청년은 일본 내지로 건너가 기꺼이 ‘기노시타 쇼조’가 됐다. 그는 꼬박 88년 전인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습기를 머금은 수류탄은 불발탄이 됐고, 그는 곧바로 체포된 뒤 그해 10월 10일 사형됐다. 이봉창(1901~1932) 의사다. 그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은 볼 때마다 정말 놀랍다. 아무리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염원하는 펄펄 피 끓는 청년이라 하더라도 의거 뒤 뻔한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합성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긴 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싶지 않았던 이봉창은 조선에서 차별은 당연했고, 차라리 일본으로 건너가면 동등한 대우를 받으리라 믿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임에도 호기롭게 돈을 쓰며 유흥을 즐기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창씨개명을 하고,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조선인 꼬리표는 어딜 가든 붙어다녔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이봉창의 각성은 이때 시작됐다. 일왕 히로히토 즉위식을 볼거리 삼아 구경하러 갔다가 오로지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고 9일간 유치장에 갇힌 점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상하이임시정부를 찾아가 무턱대고 김구(1876~1949)를 찾았고, 밀정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상하이의 한 철공소에서 일하며 틈만 나면 술과 국수를 사와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리를 가졌다. 술잔 공세에 의심이 무뎌졌을까. 그의 진심은 조금씩 통했다. 무엇보다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에게 전한 이봉창의 편지는 ‘모던뽀이’였던 그가 왜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렸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됐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저는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圖)키 위해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비장하긴 한데 뭔가 유쾌하다. ‘쾌락’을 독립운동의 이유로 삼다니. 이봉창답다.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온 뒤 열흘 동안 김구로부터 처음 받은 300원이라는 거금을 몽땅 술과 유흥에 탕진하고, 이후 200원을 추가로 받아 역시 밥값, 술값에 기꺼이 써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족히 1000만원이 넘는 돈인데 말이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의도적 쾌락’이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 1호 단원 이봉창의 모습을 백범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기념 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자연 회연한 기색이 있는지 이씨는 나를 권한다. “나는 영원한 쾌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자체는 합성일지는 모르지만, 철저히 이타적인 영적 쾌락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 88년 전 식민지 청년의 기백에 찬 표정과 말투가 떠오른다. 88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쾌락을 누리려 바둥거리고 있는 걸까.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그는 창씨개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인이건만 유창한 일본말에 비해 오히려 한국말이 서툴렀다. 약국, 제과점, 철도 역부 등으로 일하면서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길 즐기던 ‘모던뽀이’였다. 이 청년은 일본 내지로 건너가 기꺼이 ‘기노시타 쇼조’가 됐다. 그는 꼬박 88년 전인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습기를 머금은 수류탄은 불발탄이 됐고, 그는 곧바로 체포된 뒤 그해 10월 10일 사형됐다. 이봉창(1901~1932) 의사다. 그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은 볼 때마다 정말 놀랍다. 아무리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염원하는 펄펄 피 끓는 청년이라 하더라도 의거 뒤 뻔한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합성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긴 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싶지 않았던 이봉창은 조선에서 차별은 당연했고, 차라리 일본으로 건너가면 동등한 대우를 받으리라 믿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임에도 호기롭게 돈을 쓰며 유흥을 즐기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창씨개명을 하고,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조선인 꼬리표는 어딜 가든 붙어다녔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이봉창의 각성은 이때 시작됐다. 일왕 히로히토 즉위식을 볼거리 삼아 구경하러 갔다가 오로지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고 9일간 유치장에 갇힌 점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상하이임시정부를 찾아가 무턱대고 김구(1876~1949)를 찾았고, 밀정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상하이의 한 철공소에서 일하며 틈만 나면 술과 국수를 사와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리를 가졌다. 술잔 공세에 의심이 무뎌졌을까. 그의 진심은 조금씩 통했다. 무엇보다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에게 전한 이봉창의 편지는 ‘모던뽀이’였던 그가 왜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렸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됐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저는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圖)키 위해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 비장하긴 한데 뭔가 유쾌하다. ‘쾌락’을 독립운동의 이유로 삼다니. 이봉창답다.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온 뒤 열흘 동안 김구로부터 처음 받은 300원이라는 거금을 몽땅 술과 유흥에 탕진하고, 이후 200원을 추가로 받아 역시 밥값, 술값에 기꺼이 써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족히 1000만원이 넘는 돈인데 말이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의도적 쾌락’이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 1호 단원 이봉창의 모습을 백범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기념 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자연 회연한 기색이 있는지 이씨는 나를 권한다. “나는 영원한 쾌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자체는 합성일지는 모르지만, 철저히 이타적인 영적 쾌락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 88년 전 식민지 청년의 기백에 찬 표정과 말투가 떠오른다. 88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쾌락을 누리려 바둥거리고 있는 걸까.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온라인투어, 창립 20주년 맞아 여행 비즈니스 선도 포부 전해

    온라인투어, 창립 20주년 맞아 여행 비즈니스 선도 포부 전해

    대한민국 대표 여행기업 ㈜온라인투어(대표 박혜원)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여행 비즈니스를 계속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2000년 1월 10일 창립 이래 매해 항공과 여행을 중심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내며 종합 여행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다져온 온라인투어는 지난 19년간 온라인투어는 자체적인 ERP 및 통합상담 예약 시스템인 CTI 구축, 고객 중심의 기업문화 형성에 따른 CCM 인증 획득, ISMS 및 IS027001 인증을 통한 안정화된 보안시스템 구현 등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왔다.온라인투어 박혜원 대표는 “여행업계의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온라인투어가 지난 20년간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대한의 업무 역량을 발휘해준 임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요즘 여행 시장을 둘러싸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온라인투어도 혁신적인 성장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변화의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다. 그 안에서도 변함없는 가치는 바로 고객 만족이다.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 상품, 플랫폼이 결국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는 근간이라는 것 역시 변함없는 사실이다.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 플랫폼 리뉴얼을 기점으로 상품 다각화, 고부가 상품 개발 등 고객 친화적 경영, 서비스 구축을 단단히 다져, 고객 만족과 신뢰라는 기업 핵심 가치를 더 견고히 해 나가야 한다. 지난 19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임직원 모두가 적극적인 협력 자세로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는 고객 편의성을 강화한 사이트 리뉴얼, 모바일 개선, 소비자 트렌드에 맞춘 상품 다각화, 고부가 상품 개발 등 고객 지향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한편 최근 온라인투어는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우수한 업무 태도를 인정받은 우수사원과 장기 근속자(10년·7년·5년) 등 총 30명에게 포상을 진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예술가, 술의 얼굴을 그리다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예술가, 술의 얼굴을 그리다

    술과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과 두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음주를 통해 영감을 얻고 걸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도수가 70도에 가까운 독주 ‘압생트’를 마시고 알코올 중독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던 고흐처럼, 술은 이들에게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지만 예술가들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아마 오늘날 인류의 문화유산이 이렇게까지 찬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주류 비즈니스 세계에서 술과 예술가는 종종 ‘술병’에서 만나는데요. 술의 얼굴이자 술이 가진 개성이나 이미지를 구현하는 ‘레이블’을 예술가들이 직접 그리기도 하고 또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레이블로 쓰는 협업이 어느 업계보다 더 자주 이뤄진답니다. 비싼 그림을 돈 주고 사지는 못해도 이들의 작품이 들어간 술병은 심미적으로 뛰어나 술과 그림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에게 특히 인기죠. ●증류주 소호, 이계송 작가의 ‘상춘’ 사용 국내에서 ‘술병의 예술’을 가장 잘 구현하는 곳은 경기 평택시 밝은세상영농조합의 ‘호랑이배꼽’ 양조장입니다. 서양화가 이계송(72)씨 가족이 직접 술을 빚어 막걸리, 프리미엄 증류주 등을 내놓는 곳인데요. 이 가운데 화려한 색감이 인상적인 증류 소주 ‘소호’의 레이블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이 레이블은 이 작가의 작품 ‘상춘’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요. 이 작가의 딸 이혜인 대표에게 이 작품을 특별히 레이블로 고른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상춘은 ‘항상 봄이소서’라는 뜻을 가졌다”면서 “이 술을 마신 사람들이 봄의 기운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고 설명하네요. 그는 이어 “주당이자 상당한 미식가이기도 한 아버지(이 작가)는 술에 대해 평소 마시고 취하기만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제대로 즐기면 기분이 좋아지고 관계를 돈독히 하며 평화를 느끼게 하는 대상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면서 “양조장의 철학까지 레이블에 함께 녹이고 싶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외국 화가들의 작품 등도 레이블로 적극 사용할 것”이라면서요.●美와인 부켈라 레이블에 하종현 작가 작품 유럽에선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명가 샤토 무통 로실드가 ‘아티스트 레이블 마케팅’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샤토 무통 로실드는 1945년 빈티지 이후로 지금까지 매년 피카소, 앤디 워홀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의 작품을 사용한 레이블을 뽐내고 있는데요. 2013년 빈티지는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병에 새겨져 한국 팬들을 설레게 했었죠. 로실드의 영향으로 와인 업계에선 예술가와의 레이블 협업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국내 주류수입사인 신세계L&B도 최근 한국의 추상화를 대표하는 화가인 하종현씨와 손잡고 미국의 부티크 와인인 ‘부켈라’의 한정판 레이블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고요. 이에 대해 신세계L&B 관계자는 “양조기술이 발전해 맛있는 와인들이 넘쳐나는 요즘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작품을 레이블로 사용하면 확실히 차별화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면서 “화가의 작품을 레이블을 통해 소개하는 것은 판매를 위한 마케팅이기도 하지만 술과 예술의 가치를 아는, 술 회사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프로젝트로 봐 주었으면 한다”며 웃었습니다. macduck@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한 후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 [데스크 시각] 공약은 검찰개혁만이 아니었다/유영규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공약은 검찰개혁만이 아니었다/유영규 사회부장

    노인의 부고를 알린 건 구멍가게 아줌마였다. 집 위치가 헛갈려 들른 가게 주인장은 김 할머니를 기억했다. “매일 박스 가져가던 할머니 말이죠. 요즘은 도통 안 보여요. 진작에 돌아가시고 집도 이사 갔다는 것 같드만.” ‘3년 만인데 좀더 비싼 걸 살걸….’ 내 마음 씀씀이가 딱 만 원짜리 두유 박스만 한 듯해 창피하고 민망했다. 기억을 더듬어 이번에는 서너 블록 아래 이씨 할아버지 집에 이르렀다. 그런데 반지하 주차장 한쪽을 빼곡히 채웠던 폐지와 빈병, 캔, 플라스틱 더미가 온데간데없다. 남들에겐 냄새 풍기는 쓰레기였지만 할아버지의 월급봉투였고 할머니의 병원비였다. 주차장 바닥이 깨끗한 걸 보니 폐품을 모으지 않은 지 꽤 된 듯했다. 뭔가 사달이 나긴 한 거다. 초인종을 눌러 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이제 우리 나이로 여든 후반이다. 실은 돌아가셨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15분쯤을 서성이다 발길을 돌렸다. 폐지 줍는 노인들을 만난 건 5년 전 초겨울이다. 당시 노인빈곤 문제를 취재하던 터라 함께 거리에서 만난 두 분께 폐지 줍기를 청했고, 이후 3일간 함께 폐지를 주웠다. “젊은 사람이 일을 도와주니 너무 편하고 좋네. 고마워.”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실은 내가 고마웠다. 창피해서 못한 이야기지만 ‘노인들 덕에 덜 쪽팔리다’는 못난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몇 년에 한 번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연락을 이어 갔다. 그런 두 분이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사라졌다. 어렵게 5년 전 취재수첩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쇼.” 부인이었다. “전에 할아버지랑 폐지 주웠던 젊은 사람인데 기억나시죠. 집 앞에 폐지가 하나도 없어서 무슨 일 생겼나 싶었어요.” 다행이다. 두 분 모두 큰 탈 없이 그냥저냥 먹고산다고 했다. 폐지는 너무 돈이 안 돼 잠시 쉰다고도 했다. 요즘 폐지를 주워 고단한 삶을 이어 가는 노인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하긴 그들의 삶이 벼랑 끝이 아니었던 때가 있긴 했나 싶지만 이번엔 정말 심각하다. 폐지 가격이 역대급으로 떨어졌다. 폐지를 줍는 노인의 수입은 시간당 평균 2200원으로 최저임금의 2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 발표가 있었지만 그나마 해당 조사는 폐지 가격이 좋았던 2017년 9월 수도권 기준이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노인이 한 시간 내내 폐지를 주워 봐야 벌 수 있는 돈은 1000원짜리 한 장 정도다. “영감은 무료급식하는 데 나가서 끼니를 해결하고 와. 시집간 딸이 가끔 용돈 조금 보태 주고. 요즘은 그걸로 꾸역꾸역 살지 뭐. 실은 딸이 와서 엄청 울었어. 팔순 넘어 폐지 줍는 지 아버지가 불쌍하다며….” 가난을 물려준 거 같아 미안하지만 심성은 누구보다 곱다던 자식 이야기를 할머니는 어렵사리 꺼냈다. 노부부는 ‘찢어지게’ 가난하다. 다만 자식의 존재 때문에 우리 사회 제도가 노인의 가난을 가난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조기대선 당시 공약이었다. 당선 이후에는 100대 국정과제에도 담겼지만, 어느 순간 약속은 두루뭉술하게 사라졌다. 과거 정부가 그랬듯 현 정부도 가난의 자격을 따지며 주판알만 튀기는 모양새다.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전반전이 그랬으니 후반전도 비슷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개인적으로 적폐청산과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은 중차대한 개혁과제라고 믿는다. 동의하고 동감한다. 다만 어느덧 반환점을 돈 현 정권이 검찰개혁에만 올인하다 다른 공약들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엔 시간은 없고 뱉어버린 약속이 너무 많다. whoami@seoul.co.kr
  • 이낙연·황교안 종로 빅매치설… 여당 강세 속 사직·평창은 野風

    이낙연·황교안 종로 빅매치설… 여당 강세 속 사직·평창은 野風

    인구 16만 소도시지만 거물 정치인 다수 정세균 의원 연승… 김영종 구청장 3선 사직·평창동 한국당 강세… 정권 심판론 청와대 있어 현직 대통령 인기 큰 영향 집회 잦아 일부 주민은 “정치 혐오 커져”“최근 추세처럼 더불어민주당 계열 후보가 강세를 이어 갈 겁니다” VS “요즘 살림살이가 팍팍하니 자유한국당에 표를 몰아줘야겠어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2위를 달리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황교안 한국당 대표 간 맞대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통적인 정치1번지인 서울 종로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인구 16만 4257명인 미니 도시 종로는 지정학적 정치 중심지로서의 역사와 전통을 가졌고 윤보선·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장면 전 총리, 박순천 전 민주당 총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의 지역구였다. 11~18대 총선까지 한국당 계열 후보들이 약진했으나 최근에는 진보 진영으로의 쏠림현상이 뚜렷하다. 실제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17개 행정동 중 사직·평창 두 곳을 제외한 15개동에서 민주당 정세균 후보가 선승했다. 구청장을 뽑는 지방선거는 지난해 치러진 7대까지 민주당 소속인 김영종 구청장이 내리 3회 연속 당선됐다. 지난 8일 종로에서 만난 주민들은 전직 두 총리의 출마설에 관심을 나타내면서도 당에 대한 선호도에 주목했다. 사직동, 평창동 등 한국당 강세가 뚜렷한 지역 주민들은 민주당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사직동에서 만난 자영업자 박모(67)씨는 “여당이 소득주도 성장이니 뭐니 해서, 서민들만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있는 종로는 현직 대통령의 인기와 연결 지어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도 있다. 효자동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36)씨는 “종로의 위치상 현직 대통령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직 국회의원이자 총리 후보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역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등 그동안 지역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반면 통의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모(40)씨는 “요즘 살림살이가 팍팍한 게 좀 달라져야 할 때라고 본다”면서 “여당보다는 야당에 표를 몰아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앞이나 광화문 광장에서 연일 이어지는 집회로 동네에서 편히 지내기가 어렵다며 정치 혐오를 이야기하는 주민도 많았다. ‘경희궁의 아침’ 등 오피스텔이 밀집한 내수동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 장모(28)씨는 “품격 없는 막말과 비난을 퍼붓는 청와대 인근 이념 집회를 보고 있으면 정치 혐오감만 커진다”면서 “전통의 정치1번지답게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겠다”고 말했다. 통의동 한 주민은 황 대표의 경우 용산, 구로, 금천 등 타 지역 출마 검토 보도가 나오는 것과 관련, “인물보다는 당으로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천장까지 스크린…VR 같은 몰입감, 아찔한 영화 속 장면들 그대로 느껴

    천장까지 스크린…VR 같은 몰입감, 아찔한 영화 속 장면들 그대로 느껴

    놀이동산 줄서듯 첫날부터 사람 몰려 이틀간 112회차 상영… 2700여명 관람 스크린끼리 맞닿는 곳은 영상 안 나와‘요즘은 집에도 큰 TV를 많이 설치해 놓으니 영화관이 필요 없지 않으냐’고 물으면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사업자인 CJ CGV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댁의 집 TV는 혹시 정면, 좌, 우, 천장 4개면에 모두 스크린이 있습니까.” 사람들을 어떻게든 영화관으로 끌어내려는 CGV의 열성이 영화관의 진보를 이뤄냈다. CGV의 자회사인 ‘CJ 4D플렉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에서 세계 최초로 ‘4면 스크린 영화관’을 선보였다. 2012년에 3개면(정면·좌·우) 스크린 영화관을 처음 선보인 CGV가 8년 만에 천장 스크린까지 추가해 4개면 영화관을 들고 나온 것이다. CGV는 주로 정보기술(IT)·가전 업체들이 많이 참가하는 CES에 CJ그룹 계열사 중 처음으로 참가해 전 세계 관람객에게 4개면 영화관을 자랑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 있는 4면 스크린 체험부스 앞에는 아침부터 길게 줄이 늘어섰다. 놀이동산에 줄을 길게 섰다가 입장한 적은 있지만 영화관을 이렇게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7분 후에 입장 가능’이라는 안내 문구까지 등장했다. CGV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사람이 몰려서 CES 개막 첫날인 7일부터 이틀 내내 쉬지 않고 상영을 돌렸다. 점심시간에도 교대로 밥을 먹어야 했다”고 답했다. 24명씩 입장하는 체험관이 이틀 합쳐 112회차 상영해 2700여명을 불러 모았다.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끝에 마침내 들어선 영화관 천장에는 정말로 스크린이 달려 있었다. 영화관 전체를 뒤덮은 것은 아니고 천장의 3분의1 정도만 스크린이었다. 7분짜리 영상의 초중반은 할리우드 영화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3개면 스크린에 펼쳐지다가 말미에 ‘1인치’라는 애니매이션이 4개면 스크린에 상영됐다. 갑자기 곤충 크기만큼 작아진 주인공이 탐험을 떠나는 내용인데 영상이 역동적이라 4면 스크린에 적절했다. 집채만 한 사마귀가 등장하는 장면이 천장 끝에서부터 펼쳐지니 작게 변한 주인공의 상황에 더 쉽게 이입하게 됐다. 새가 주인공을 낚아채 하늘을 나는 장면도 천장까지 영상이 나오니 높은 상공의 아찔함이 배가됐다. 어디에 시선을 두더라도 애니메이션 속 세계의 모습이 보여 마치 가상현실(VR) 영상을 감상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CGV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12월 1일 부산항에서 출발해 선적으로 18일이 걸려 라스베이거스까지 영화관을 통째로 옮겨 왔다. 이를 조립하는 데 또 일주일이 걸렸다. 4면 스크린에 최적화하기 위해 원본 영상을 컴퓨터그래픽(CG) 등을 통해 수정하고, 천장에 영상을 쏘기 위한 프로젝터도 영화관 앞쪽 바닥 좌우에 하나씩 설치했다. 단점을 꼽자면 정면·좌·우·천장 스크린이 일체형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스크린끼리 서로 맞닿는 테두리 부분에만 영상이 안 나와 다소 몰입감이 방해되는 점이 있었다.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실제 출시되면 표값도 비싸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라스베이거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해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 ■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오동도, 이순신을 꿈꾸다 - 여수 오동도해상공원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오동도, 이순신을 꿈꾸다 - 여수 오동도해상공원

    #오동도 #이순신 #거북선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을 것이다)' 1592년 4월 14일, 일본이 우리땅으로 넘어온다. 임진왜란이다. 즉시 임금은 나라를 팽개쳐 버렸다. 임금은 죽더라도 천자의 땅에서 죽겠노라 지껄였다. 임금은 한양을 벗어나 신의주를 건너 요동으로 건너갈 채비였다. 임금마저도 내버린 나라에서의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은 여수에서 거북선을 만든다. 곡창지대였던 호남지방이 왜적에게 넘어가는 순간 나라는 무너진다. 왜적은 전라도를 휩쓸고 군량을 채워 서울로 가고자 하였다. 어림도 없었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 본영과 휘하의 각 진의 전선을 이끌고 호남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한산도 앞바다에 진을 친다. 여수 앞바다로 넘어가는 왜적은 모조리 도륙되었다. 1593년 사헌부 현덕승에 보낸 편지글인 ‘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을 것이다)’는 국보 76호 서간첩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순신의 넋이 붉게 피었다. 동백꽃으로 가득한 여수 오동도해상공원이다. 여수는 이미 남도 관광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시(市) 가운데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라남도에서는 일찌감치 최다 인구(28만 2946명. 2019.5 기준)를 자랑하는 전남 대표 도시기도 하다. 둘러싸인 3면이 그리도 고와서인지 930년, 즉 고려 태조 23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수(麗水)'라는 이름을 놓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여수의 관광지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손들어 주는 곳이 곧 ‘오동도’다. 오동도는 여수 한려 해상 국립 공원의 출발지이자 지금도 가장 많은 외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1935년에 만들어진 길이 768m의 방파제를 따라 내륙과 연결된 오동도는 전체 면적이 0.12㎢에 불과한 자그마한 섬이다. #시누대화살 #동백꽃 #여수밤바다 하지만 오동도에는 관광지로 이름날만한 수준의 기암절벽들과 겨울이면 섬을 빨갛게 흔들어놓는 붉은 동백(冬柏)꽃들과 광나무, 팽나무, 참식나무 등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난대성 식물 193종이 우거져 있다. 또한 군량미 한 톨도 아쉽던 이순신 장군은 흔히들 시누대라 부르는, 오동도에서 지천으로 자라는 곧은 대나무 줄기로 화살을 만들어 왜적을 심장을 뚫었다. 오동도 관광은 겨울이 제격이다. 섬 입구에 도착하면 방파제 입구에서 동백열차를 타거나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요즘 1월부터 오동도에 자생하는 3천여그루의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3월까지 오동도는 곳곳마다 붉은 동백꽃 터널이 만들어 진다. 또한 오동도 정상에는 1952년에 설치된 높이 25m의 등대가 있어 매년 200여만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 등대에서 바라보는 여수항과 광양항의 바다 풍광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섬 아래 중앙광장에는 여수엑스포기념관이 있어 여수엑스포 유치성공 과정과 오동도에 관한 영상과 입체영상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4D영상 체험관도 가족단위로 체험할 수도 있다. 오동도 중앙광장 바로 옆에는 유람선선착장도 있어 오동도를 일주하거나 돌산대교, 향일암, 금오열도를 유람할 수 있는 유람선을 탈 수도 있다. 따라서 이곳 중앙광장에서 거꾸로 2.5Km에 달하는 오동도 순환산책로도 배편으로 감상할 수도 있으며 동쪽의 방파제는 광양만과 남해바다로 쭉 뻗어나가있기에 강태공들의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오동도 해상공원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5개 만점) - 여유를 누리고 싶다면, 넉넉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슬로우, 슬로우!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연인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여수시 오동도로 222 - 전라선 여수엑스포역에서 도보 30분. 버스 2, 333, 68, 76번 오동도 입구 정류장 하차 4. 오동도 방문의 특징은? - 여수 관광의 핵심. 오동도와 인근 볼거리가 많다. 5. 방문 전 유의 사항은? - 생각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들이 몰릴 수 있다. 평일 오전 시간이 여유를 누리기 좋은 시간 6. 오동도에서 꼭 볼 곳은? - 등대, 중앙공원, 해안 산책로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여수 오동도 먹거리는? - 여수는 대표적인 남도 먹거리의 중심지. 게장백반 ‘두꺼비게장’, ‘로타리식당’, 갯장어 ‘자연횟집’, 장어탕 ‘자매식당’, 철판짜장‘순심원’, 게장‘맛나게장’, 갈비찜‘원조400번’, 돼지국밥‘나진국밥’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www.yeosu.go.kr/tour 9. 주변에 더 방문할 곳은? - 향일암, 진남관, 여수밤바다/산단야경, 여수해상케이블카, 이순신대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여수와 순천 지역은 겨울이면 더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다. 여수는 볼거리, 먹을거리도 이름나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충무공 이순신의 넋이 잘 남아 있는 곳. 역사적 의미도 큰 지역이라는 사실도 함께 생각하자.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태사자 이동윤, 과거 범죄에 연루설 ‘보호관찰 도중 이민’

    태사자 이동윤, 과거 범죄에 연루설 ‘보호관찰 도중 이민’

    태사자 이동윤이 과거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 ‘슈가맨’ 출연으로 주가를 올린 아이돌그룹 태사자 멤버 이동윤이 학창시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앞서 9일 온라인커뮤니티 예능 프로그램 갤러리에는 이날 ‘슈가맨이 나온 태사자 멤버 중 한 명 전과자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 작성자는 “이동윤이 과거 술, 담배, 여자, 학폭 등 사고 많이 쳤다고 한다. 중학교 때 ‘뻑치기’(금품 갈취 행위)하다 경찰에 붙잡혀 구치소에도 갔다. 몇 개월 살다 보호관찰 교육받는 도중 미국에 이민 갔다”고 주장했다. 또한 “태사자 활동할 때는 스마트폰이 있던 시대가 아니어서 잘 넘어갔지만, 요즘은 시대가 다르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복귀해 활동해도 되느냐. 범죄자가 TV에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이동윤의 한 지인은 “이동윤이 과거 범죄에 연루돼 경찰에 체포됐고 한 달 넘게 유치장 신세를 지고 나와 보호관찰 됐던 거로 알고 있다”며 “당시 멋모르던 어린 시절 여러 친구가 무리를 이뤄 그런 행동을 했다”고 인터뷰했다. 한편, 이동윤은 지난 1997년 태사자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팀 내에서 리드 보컬과 메인 래퍼를 맡았다. 최근엔 미국 산타 모니카에 거주하며 일식집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사자는 지난해 11월 JTBC 예능프로그램 ‘투유프로젝트 슈가맨3’에 김영민, 김형준, 박준석, 이동윤 등 완전체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이동윤은 지난 7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경제 블로그] 공급 부족은 과장이라는 서울시…부동산업계 “현실 모른다” 한숨

    [경제 블로그] 공급 부족은 과장이라는 서울시…부동산업계 “현실 모른다” 한숨

    서울시는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미친 서울 집값의 원인은 부동산 공급 부족’이라는 외부 지적을 정면 반박했습니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동산 공유제’를 제안하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공급 부족이 문제인데 엉뚱한 해법을 제시한다’고 발언한 데 대한 반격이었죠. “공급 부족은 과장”이라는 서울시에 대해 부동산업계는 “현실 모르는 소리를 한다”며 한숨을 쉽니다. 우선 공급물량 ‘총량’만 볼 게 아니라 ‘질’도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8일 “공급량이 충분하다고 해도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총량보다 지역별, 상품별(신축·구축), 유형별(아파트·주택) 등 세분화된 수급 상황 분석이 더 중요하다”면서 “예컨대 임대나 옛날 아파트까지 다 합친 총량이 충분해도 ‘새 아파트 선호현상’이 강한 요즘 세대 특성을 감안하면 왜 신규 아파트 공급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특정 지역 선호 현상도 마찬가지”라며 “강북에 입주물량이 충분하다고 가정해도 실제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강남이나 인기지역의 재건축 등이 묶여 아파트가 공급되지 않으면 전반적으로 집값을 잡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주택공급 물량 예측을 놓고도 말이 많습니다. 서울시는 내년에만 3만 8000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부동산114는 그 절반 수준인 2만 1993가구일 것으로 봅니다. 아파트 공급물량 전망치에 차이가 나는 까닭은 서울시는 ‘인허가’를 위주로 따진 데 반해 부동산114는 ‘입주자 모집공고’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울시의 전망치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대다수입니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조합 의견 수렴, 철거 준공과정서 변수가 하도 많아 당장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실제 입주시기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단 것이죠. 거기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영향으로 인허가를 받은 뒤 아예 장기전을 고려하는 재건축 조합원들이 적잖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보통 분양부터 입주까지 2~3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분양하는 일부 단지가 2022년 입주할 수도 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민간 기관이 발표한 주택공급 물량 전망치보다 두배가 많은 서울시 수치만큼 절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2020 청년정치]총선에 ‘90년생 온다’ 경험多·열정甲…“배지 안주 기득권 청산해야”

    [2020 청년정치]총선에 ‘90년생 온다’ 경험多·열정甲…“배지 안주 기득권 청산해야”

    “국회의원 배지에 안주하는 기득권은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이 사회의 미래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고한 기성정치 풍토에서 젊은 정치인의 성공은 드물다. 그럼에도, 청년의 때를 노리고 칼을 갈고 있는 젊은 정치 인재가 전국 곳곳에 숨어 있다. 자유한국당 박진호(30) 예비후보자도 21대 총선에서 경기 김포갑에 출사표를 던졌다. 젊지만 오랜 준비로 지역을 꿰뚫는 전문가다. 박 예비후보는 ‘바닥 정치‘부터 시작했다. 2014년 대학 졸업 직후 한국당 김포시당에 입당했고 2018년 최연소 당협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지난해 2월에는 한국당 청년 최고위원 경선에 도전했지만 안타깝게 낙선했다. “미친 듯이 도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는 청년 정치인의 강점으로 추진력, 청렴, 체력을 꼽았다. 다음은 지난 7일 김포 박진호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박 예비후보와의 일문일답.-어떻게 정치인이 됐나.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2014년에는 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학생 인권, 등록금 투쟁 등 여러 권익 활동을 해 왔다. 열심 다했지만, 변화를 불러오는 데 한계를 느꼈다. 국회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구해도, 의원들의 관심은 그저 청년들을 만난 활동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뿐이었다. 모든 이를 대표할 순 없겠지만 필요한 법·제도를 마련하겠다는 포부로 직접 정치에 나서게 됐다.” -21대 총선에 출사표를 내게 된 계기는 뭔가. “자유한국당 김포갑 당협위원장으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김포는 평균 나이 39세의 굉장히 젊은 도시다. 많은 김포 시민이 새로운 시대정신과 세대교체를 원하고 있다. 변화와 유동적 대처능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때고, 그동안 지역 현장을 열심히 뛰며 이날을 준비해 왔다.” -흔히 정치인은 금수저라는 인식이 있다. 선거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금수저와는 영 거리가 멀다. 마침 오늘(7일) 후원회 계좌를 개설했다. 그동안 당협위원장은 펀딩을 받을 수 없어서 생업으로 행사 기획 이벤트 사업을 계속해왔다. 3년 정도 일하며 결혼 자금을 모았는데 그걸 이번에 썼다.(웃음) 지금은 공식적으로 펀딩 받을 수 있는 계좌가 만들어졌으니 지난 3년간 제가 지역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믿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실 것이라 믿는다.” -공고한 기성정치에 도전하는 청년으로서는 선거 자금이 더 많이 필요할 듯 한데. “물론 있으면 좋다. 최고위원 경선에 나갔을 때도 문자 한 세트 돌리는 데 800만원이 나가니 남들보다는 덜 보낼 수밖에 없었다.(웃음) 하지만 노력하면 도전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당협위원장 사무실에서도 직원 여럿 둬서 전화 돌리는 대신 내가 직접 전화하면 비용이 줄어든다. 자금보다도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노력과 진심이다. 대충 10명과 악수하는 것보다 1명과 제대로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본다. 기성정치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했다. 더는 조직적 선거, 패거리 정치가 얼마나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 같이 평범한 정치인이 오히려 더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품은 많이 들지만, 체력은 젊은 정치인의 능력 아니겠나.” -기성 정치인과 다른 청년 정치인으로서의 강점은 뭔가. “정말 이른 나이에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없다. 빚진 게 없어서 당당하게 목소리 내고 내 정치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정치를 하다 보면 수많은 이해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더라. 눈치 볼 것도 많고 챙겨야 할 사람도 많으면 자기 정치를 할 수 없다. 진짜 자기 지역을 위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깨끗한 정치가 필요한 때다. 전 빚 안 지고 이해관계를 최소한으로 하려고 노력해 왔다. 소신 있는 정치, 깨끗한 정치. 그 방면으로는 제가 일등이라 자부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청년 정치인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현장에서 체감하나. “예전에는 워낙 젊은 사람이 적으니 우려 섞인 시선도 상당했는데, 요즘은 인사드리면 현장 반응이 매우 좋다. 이전까지는 청년 정치인의 수 자체가 적어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없었다면, 이제야 유권자들에게 젊은 정치인이라는 옵션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청년 정치인이 대거 정치권에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조금씩 정치 풍토가 바뀌는 것이라고 본다. 더 많은 청년이 함께 도전했으면 한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열린세상] ‘그림자 금융’ 갭투자와 시스템 리스크/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그림자 금융’ 갭투자와 시스템 리스크/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갭투자’는 전세를 끼고 주택에 투자하는 것이다. 세입자로부터 전세금을 빌려서 자신은 주택 매매가격과의 차액만큼만 투자한다. 세입자가 거주하는 주택은 빌려준 전세금에 대한 담보라 할 수 있다. 주택 가격이 오르게 되면 자신의 돈으로만 투자하는 것에 비해 수익성이 좋은데 그만큼 위험도 크다. 전세금에 더해 주택담보대출까지 이용할 수 있다면 수익성과 위험이 훨씬 더 높아진다. 최근에는 정부가 아파트 매입에 대해 금융기관 대출규제를 대폭 강화했기 때문에 주로 전세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갭투자를 이용해 주택을 여러 채 매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은, 즉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에서 수백 채의 주택을 매입한 사례도 발견된다. 요즘엔 고가의 ‘똘똘한 한 채’를 전세 끼고 매입하는 것이 인기라고 한다. 어느 쪽이 됐건 전세금을 2년 동안 빌려서 이보다 훨씬 만기가 긴 주택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니 일종의 ‘금융중개’라고 할 수 있다. 금융중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만기 변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행들은 만기가 짧은 예금으로 돈을 모아 기업들에 장기로 대출함으로써 만기를 변환시킨다. 갭투자의 경우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개입하지 않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융중개이다. 은행시스템 밖에서 이루어지는 금융중개를 일컬어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라고 하는데 갭투자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 등에서는 최근 그림자 금융 대신 ‘비은행 금융중개’(non-bank financial intermediation)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여기서는 더 친숙한 용어인 그림자 금융을 계속 쓰자. 그림자 금융은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로 흔히 지목된다. 은행을 통한 금융중개는 감독당국이나 중앙은행의 규제와 감독하에 이루어지는데 그 밖에 있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잘 모르고 통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금융회사가 자산유동화증권을 매입한 다음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 또 자산유동화증권을 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새로 산 증권을 담보로 또 돈을 빌려 자산유동화증권을 더 사는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당초 투자금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증권에 투자할 수 있다. 자산유동화증권의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높은 수익률을 자랑할 수 있는데 반대의 경우라면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택을 구입한 다음 전세를 놓아 전세금을 받고 주택담보대출로 돈을 더 빌려 다른 주택을 새로 사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 여러 채의 주택을 매입했다는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역시 주택가격이 소폭 상승해도 당초 투자금에 대한 수익률은 아주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투자자 본인이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세입자들이 ‘깡통주택’의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까지 갭투자 등 주택에 대한 투자가 금융위기로 연결된 적은 없다. 일부 지역의 주택 가격이 떨어져서 역전세난이 벌어진 적은 있지만, 금융위기나 시스템 리스크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잠시 주춤할 수는 있어도 붕괴되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부동산 불패의 기록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큰 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 많은 사람이 대출을 받거나 갭투자를 통해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앞에는 늘 부채 증가가 선행했는데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금도 부채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편 가계뿐 아니라 증권사, 자산운용사, 여전사 등 금융회사들도 최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부동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말을 들을 만큼 늘어나 있는 상태이다. 부동산 시장에 충격이 발생해 더 큰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을 서둘러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충전·택배·빨래방… 당신은 주유소에서 기름만 넣나요

    충전·택배·빨래방… 당신은 주유소에서 기름만 넣나요

    “난 한 놈만 패.” 1999년 개봉한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20년이 흘러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대사의 강렬함은 오래 남기 마련이다. 영화의 등장하는 주유소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루한 녹색 아스팔트 바닥에 음산한 느낌을 주는 백색등. 이렇게 고리타분했던 주유소가 달라지고 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드라이브스루’ 매장이 들어온 것은 이미 옛날 일이다. 요즘은 택배보관소와 빨래방도 있다. 최근 전기·수소차가 확대하는 움직임에 발맞춰 다양한 연료를 한꺼번에 충전할 수 있는 ‘복합 에너지 스테이션’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오로지 기름 ‘한 놈만 패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7일 국내 정유사 4곳에 ‘당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주유소를 한 곳씩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봤다.SK이노베이션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군자동주유소’를 추천했다. 대단히 특별해서가 아니다. 전기차 충전기가 이곳에 있어서다. 회사는 지난해 9월과 지난달 두 차례 일부 매장에서 ‘전기차 무료충전 서비스’를 실시했다. SK에너지 멤버십에 가입한 운전자는 군자동주유소를 포함해 전국 10곳에서 전기차를 공짜로 충전할 수 있었다. 회사가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을 추진한 것은 앞으로 전기차가 대세로 떠오르는 미래를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는 아직 주류가 아니지만 변화는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2040년에는 전 세계 승용차 30%가 전기차일 것”이라고 대담한 전망을 내놨다. 이외에도 앞으로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 거란 전망은 수도 없이 많다. SK이노베이션은 “2023년까지 전국 190곳 주유소에 충전시설을 갖춰 전기차 시대에도 국내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다짐했다.전기차 확산의 관건은 역시 ‘충전 속도’다. 아무리 충전소가 많아진다 한들 지금처럼 느릿한 충전 속도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렵다. GS칼텍스는 서울 송파구 소재 ‘스마트위례주유소’를 소개했다. 회사는 이곳을 ‘미래형 주유소’라고 부르면서 자부심을 보였다. 이곳에도 마찬가지로 전기차 충전기가 있다. 앞서 소개한 군자동주유소를 포함해 지금은 다른 곳에도 많이 생겼지만 서울 도심 주유소에 100㎾급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설치한 곳은 스마트위례주유소가 최초였다는 게 GS칼텍스의 설명이다. 일반 충전기보다 속도가 2배 가까이 빠르다. 64◇ 용량의 전기차는 30분이면 250㎞나 달릴 수 있는 전기를 충전할 수 있다. 버거킹 드라이브스루 매장에다가 자동·셀프세차 공간까지 갖췄다. 예전 음산한 느낌을 주는 주유소와는 달리 확실히 쾌적한 느낌을 준다. GS칼텍스는 전기차 충전기에다가 수소충전소까지 한 번에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해 10월 서울 강동구의 한 주유소에 첫 삽을 떴다. 이곳에 ‘토탈 에너지 스테이션’이라는 멋진 이름도 붙여 줬다. 조만간 완성될 예정이다.에쓰오일은 가장 ‘힙한’(멋진) 곳을 귀띔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하이웨이주유소’다. 무려 ‘미래형 무인편의점’이라고 불리는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매장이 이곳에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성업 중이다. 에쓰오일에는 ‘구도일’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노랗고 동그란 얼굴에 까만 눈을 가진 캐릭터로 에쓰오일 광고마다 등장한다. 이곳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매장에는 ‘구도일존’이 있다. 구도일 관련 캐릭터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덴마크식 핫도그 매장인 ‘스테프핫도그’도 들어섰다. 주유소는 지금껏 어른들의 공간이라고만 생각됐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들도 판매하기 시작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현대오일뱅크도 굉장히 의미 있는 변신을 꾀했다. 서울 구로구 소재 ‘구로셀프주유소’가 그 주인공이다. 주유시설 옆 사무동 2층으로 올라가면 사물함이 가득하다. 현대오일뱅크는 스타트업 ‘오호’와 제휴를 맺고 여기서 공유창고 사업을 하고 있다. 의류나 이불 등 다양한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개인창고를 빌려주는 것이다. 물건을 이용자에게 전달해 주거나 세탁까지 해 주는 서비스도 추가할 수 있다. 원래 교육장으로 쓰던 곳이다. 활용도가 떨어져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현대오일뱅크는 특히 구로셀프주유소를 포함해 서울 시내 주유소 5곳에서 여성들이 범죄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여성안심 택배함’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는 1만여곳의 주유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방방곡곡 소비자와 가까이 있는 주유소망은 정유사들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다. 이런 변신을 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유업계 분위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공급과잉으로 정제마진은 계속 시원치 않다. 지난해 말에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마이너스로 전환되기도 했다. 미중 사이에 1차 무역합의가 이뤄져서 어느 정도 개선되나 싶더니 이번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싹트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연이어 터지면서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은 위기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서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떤 변화에도 ‘탈것’의 수요는 꾸준할 것이고 그에 따라서 연료를 충전할 장소도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연료를 충전하던 곳에서 더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쪽으로 주유소가 변하고 있다”면서 “당장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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