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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세이부 쓰쓰미前회장 체포

    |도쿄 연합|일본의 대표적인 민영철도 재벌인 세이부(西武)철도그룹의 쓰쓰미 요시아키 전 회장이 3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전격 체포됐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날 쓰쓰미 전 회장을 연행하고 세이부그룹의 지주회사인 고쿠도 본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쓰쓰미 전 회장은 지난해 5월 고쿠도가 임직원 명의로 위장소유하는 방법으로 계열 세이부철도 주식 65%를 보유한 사실을 보고받고도 43%로 줄여 신고토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같은 지분 허위기재는 상위 10대주주 합산지분이 80%를 넘으면 상장폐지되는 증권거래법 기준을 피하기 위해서로 밝혀졌다. 쓰쓰미 전 회장은 지분 허위기재가 공표되기 직전인 지난해 8·9월 지분 허위기재 등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채 고쿠도 등이 보유한 세이부철도 주식 7200만주를 70여개 거래처에 매각토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쓰쓰미 전 회장은 한때 미국 포천지에 의해 세계 최고의 갑부로 선정됐던 인물로 세이부그룹의 절대권력자로 군림하면서 일본 정ㆍ재계와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 [월드 이슈] 교육개혁 몸살

    [월드 이슈] 교육개혁 몸살

    주요 선진국들이 교육 개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70∼80년대의 정서를 반영한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교육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요즘 세상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는 인격체를 양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교육정책 전문가들은 교육의 ‘현대화’를 내걸고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학생들의 질적 수준 하락도 감안돼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최근 “미국의 고등학교는 폐물이 됐다.”면서 오늘날 필요한 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고교 교육의 전반적인 구조개혁을 촉구했다. 하지만 개혁에는 반발이 따르는 법. 프랑스에선 고교 졸업 전에 한 번만 치러 온 대학입학 자격시험(바칼로레아)을 연중 상시평가 체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의 교육개혁안에 학생들이 반발하며 거리 시위까지 나서 사회이슈가 되고 있다. ■ 佛 대입자격시험 상시평가 진통 |파리 함혜리특파원| 지난달 수차례에 걸쳐 전국적인 시위를 벌인 프랑스 고교생들은 하원 표결을 전후한 1일과 3일에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교육개혁안의 철회와 프랑수아 피용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하원은 2일 찬성 346, 반대 178로 피용 장관이 제출한 교육개혁 법안을 승인했다. 물론 대부분의 찬성표는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의원들로부터 나왔다. 이른바 ‘피용 법안’의 골자는 ▲지식과 경쟁력을 위한 공통 필수과목 이수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 구사능력 확보 ▲컴퓨터 등 정보분야 기술의 습득 ▲초등학교에서의 프랑스 국가(라 마르세이예즈) 습득 의무화 ▲고교 졸업시험 성적에 상시시험 성적 추가 등이다. 이 중 고교생들의 집중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상시시험 성적의 추가 부분. 피용 장관은 당초 2007년부터 바칼로레아의 시험과목을 12개에서 6개로 줄이고, 횟수도 1회에서 연중 수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가 이같은 반발에 부딪혀, 결국 바칼로레아 항목은 삭제했지만 고교 상시평가 시스템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피용 장관은 하원 표결을 앞두고 국영 프랑스2 TV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교육개혁 법안을 철회하는 것은 공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며,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학생들이 별도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은 교육제도 때문에 교육이 마비된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행 체제는 학생들의 규칙적인 학습과는 거리가 멀어 영·미권 학생들에 비해 실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은 시험 방식이 개편되면 과외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이나 지방 학생들이 불리해지며 결과적으로 계급 격차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독립적인 민주화 고교생 연합(FIDL)’의 샤를로트 르 프로보스트는 “피용 장관은 조항을 약간 수정하고, 약간 양보하면서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며 “개혁안을 완전 철회하고 교육의 질을 개선시킬 추가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상원 심의에 앞서 오는 8일 다시 전국적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lotus@seoul.co.kr ■ 美 낙제학생방지법 4년째 공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미국에서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교육 정책을 포괄한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이 4년째 논란이 되고 있다. ‘NCLB’는 미국 학생의 학력 저하에 위기감을 느낀 부시 행정부가 2002년 1월 공교육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시행에 들어간 교육 개혁법이다. 이 법안은 저학년, 저학력 학생의 영어, 수학 학습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은 모두가 영어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또 9100개에 이르는 공립학교들은 3∼8(한국의 초·중등)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읽기와 수학 2과목에 대해 시험을 실시해야 한다. 학교 평균 성적이 2년 이상 각 주가 정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폐교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각급 학교에 대한 연방정부의 엄격한 간섭이 오히려 저학년의 학력을 떨어뜨리는 ‘하향 평준화’를 초래한다는 반발이 생기고 있다. 미 50개주의 주의회 의원 7313명으로 구성된 전미주의회 협의회는 지난달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교사들은 각 주 교육부가 획일적으로 정한 ‘연도별 적정수준’을 충족시키느라 힘겨워하고 있다.”며 “일단 이 기준을 통과하는 데 지친 교사들은 그 이상의 질 높은 교육을 시킬 의지를 잃게 된다.”며 즉각적인 법 개정을 촉구했다. 올해 초에는 부시 행정부가 이 법이 성공적이었다고 홍보하기 위해 일부 언론인을 ‘매수’했던 사실까지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도 주요 쟁점이었으며 이달 들어서도 의회의 2007년도 예산 승인을 앞두고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과 현장에서 법을 집행하는 주정부는 이 법이 효과가 없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오히려 교육예산을 삭감해 이 법의 개혁취지조차 퇴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50개 주를 대표하는 전미주지사 협회는 지난달 22일 전체회의를 열어 고등학생 10명 중 4명은 대학이나 기업이 원하는 지식과 기술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부시 행정부를 성토했다. dawn@seoul.co.kr ■ 日 초·중생 수업시간 확대 논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도 초·중등 교육개혁이 진통을 겪고 있다.‘여유(유도리)교육’을 실시한 뒤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는 조사결과가 지난해 말 나오자 교육 최고책임자가 전면수정 방침까지 밝혔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이를 번복하는 등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77년 이후 학생들을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해방시키겠다면서 ‘표준 수업시간’을 줄곧 줄여오다,2002년에는 주 5일제 수업 실시 등 ‘종합학습’이란 이름으로 전면적인 여유교육을 실시했다. 여유교육은 학생들에게 체험·탐구 학습 등을 시켜 종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나갈 능력을 갖게 하자는 것이 취지다. 학생들을 지나치게 교실에 잡아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교육당국은 지난해 말 국제학력평가조사 결과 일본 고교 1년생의 독해력과 수학의 학력저하가 드러난 데 이어 초·중학생들의 학력저하도 확인되자 즉각 여유교육의 전면손질 방침을 들고 나왔다. 교육정책의 최고책임자인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조사결과가 나온 뒤 잇달아 초·중 학교의 수업시간을 조정, 국어·수학 등 기본 교과목의 수업시간을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 또 올 가을까지 주 5일제 수업 부활 등 여유교육의 전면 수정을 시사, 일부에선 폐지론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일선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종합 학습능력 평가를 자치단체 단위로 부활시키려고 하는 등 교육현장이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모든 학교가 공통시험을 봐 학력을 비교하는 전국 학력시험의 부활이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자 일선 교육현장에서 반발도 심해졌다. 학력저하는 학습의욕과 성취동기를 부여하지 못한 사회풍조의 문제일 뿐 여유교육 실시와는 관계가 없다는 논리다. 여유교육의 본격시행 3년 만에 한 차례 순위가 떨어졌다며 소동을 벌이는 것도 근시안적이라고 반발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지난달 “학생들이 여유교육을 통해 하고 싶은 이것저것을 하도록 해야 학교가 싫어지는 어린이가 없어진다.”며 여유교육에 힘을 실으면서 폐지론에 쐐기를 박았다. 이에 나카야마 문부과학상도 지난달 20일 여유교육을 폐지하지 않겠다고 급선회했다. 다만 학력향상을 위한 수업시간 증가나 수업 내용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절충점을 제시, 추후 결론이 주목된다. taein@seoul.co.kr ■ 英 대입시험·직업교육 부실 쟁점 영국에선 대학입학 평가시험의 공신력 추락과 직업교육 부실화가 교육개혁의 핵심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23일 관련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더 뜨거워졌다.14∼19세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직업교육 강화 방안을 담았다. 그러나 교육계 안팎의 폐지 요구가 거센 ‘GCSE’와 ‘A-Level’이란 평가 체계는 그대로 둔 ‘땜질 처방’이란 비판 여론이 드세다. GCSE는 중등교육과정을 마치면 치르는 중학교 졸업 자격시험이다. 실업학교가 아닌 대학진학을 위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수학 등 일부 과목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 또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얻어야 한다. 한편 A-Level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료해야 할 2년 과정의 명칭이자 졸업전에 치르는 고교 졸업 자격시험 겸 대입시험이다. 두 가지 과정과 관련, 그동안 학점 인플레이션과 직업교육 부실이 지적되어 왔다.GCSE에선 본래 ‘A’가 최고 점수였으나 A를 획득한 학생 수가 크게 늘면서 1994년 궁여지책으로 A 위에 A*를 두었다. GCSE를 마치자마자 취업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GCSE 과정이 부실해 근로자의 수학과 영어 등 기본지식이 형편없다.”는 업계의 불만이 증가해왔다.A-Level 역시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높아졌고 시험 신뢰도는 추락해왔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대학들은 아예 자체 시험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A-Level을 못믿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집권 노동당의 의뢰를 받은 마이크 톰린슨 전 교육감과 교육 평가단은 GCSE와 A-Level을 폐지하고 새로운 평가체계를 만들라는 권고안을 내놨다. 교육부는 이번 개혁안을 통해 GCSE의 수학교육 강화, 대학강의 방식의 A-Level 수준 향상 등을 제시했지만 기존체제 유지를 위한 미봉책이란 반발을 사고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클래지콰이 5개부문 후보에

    지난해 ‘한국의 그래미’를 지향하며 출범한 대안적 가요시상식인 한국대중음악시상식이 두 번째 행사를 연다.23일 오후 7시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위원장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3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총 17개 부문 후보와 작품을 발표했다. 후보작들은 2004년 한해 발표된 음반을 대상으로 대중음악평론가, 음악방송 PD, 기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 총 30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철저하게 작품성을 기준으로 실시한 3차 심사를 통해 선정됐다. 이번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가수는 모던록 밴드 클래지콰이. 데뷔 앨범 ‘Instant Pig’로 ‘올해의 앨범’‘올해의 노래’‘올해의 가수’‘올해의 신인’‘최우수 모던록’‘최우수 팝’ 등 총 5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밖에 모던록 밴드 마이앤트메리(Just Pop), 가수 이승철(The Livelong Day), 힙합계의 대부 바비킴(Beats within My Soul)이 각각 4개 부문에 올라 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됐다. 이번 시상식은 지난해보다 낯익은 가수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는 점이 특징. 트로트 가수 장윤정이 ‘어머나’로 ‘올해의 노래’ 부문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가수 서태지와 인순이도 각각 ‘올해의 가수’남자 솔로와 여자 솔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공로상은 한국 포크계의 대부 한대수가 받는다. 첫 행사 뒤 공개 토론회까지 거쳤던 시상식은 좀더 체계적으로 정비됐다. 우선 상의 공신력을 높이고자 선정위원 수를 지난해 17명에서 30명으로 늘렸다. 수상부문도 ‘올해의 연주’,‘최우수 팝’, 하드록만을 심사하는 ‘최우수 록’ 등 3개 부문이 신설돼 총 17개 부문으로 늘어났다.18일까지 홈페이지(www.kmusicawards.com)에서 네티즌 투표가 실시되며 결과는 최종수상작 결정에 20% 반영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차후 KMTV를 통해 중계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책꽂이]

    ●대중문화속의 현대미술(토머스 크로 지음, 전영백 옮김, 아트북스 펴냄) 아방가르드 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탐구해온 미술사가의 비평을 담았다. 잭슨 폴록, 앤디 워홀,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등을 둘러싼 생생한 에피소드와, 이들이 20세기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1만 8000원. ●상군서(장현근 편역, 살림 펴냄) 중국 전국시대 정치적 풍운아였던 상앙의 사상을 담은 부국강병의 지침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군주는 그 본성을 이용해 법에 의해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게 기본 요지다. 잔혹한 군국주의 사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8900원. ●건축으로의 여행, 벽(에블린 페레 크리스탱 지음, 김진화 옮김, 눌와 펴냄) ‘벽’이라는 건축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벽이 우리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며 발전되었는지를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넘나들며 살펴본다.1만원. ●무통문명(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창익·조성윤 옮김) 한 철학자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사색이 담긴 책. 쾌락을 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현대 문명, 즉 ‘무통문명’하에서 미래문명이 만들어내는 인간은 혼수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묘사한다.1만 8000원. ●일본의 신화(요시다 아쓰히코·후루카와 노리코 지음, 양억관 옮김) 일본 신화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세계 각지의 신화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사기’와 ‘일본서기’ 등 옛 문헌을 중심으로 일본 신화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설명했다.1만 2800원. ●조피 숄 평전(바버라 라이스너 지음, 최대희 옮김, 강 펴냄)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대학가 운동권의 애독서였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주인공 조피 숄의 삶을 그린 책.1940년대 나치의 광기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을 때 독일 대학생이었던 조피 숄은 오빠 한스 숄과 함께 반나치운동을 펼치다가 붙잡혀 처형됐다.1만 3000원. ●위대한 가르침을 찾아서(P D 우드펜스키 지음, 오성근 옮김, 김영사 펴냄) 러시아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지은이가 그의 영적 스승이었던 구르지예프를 만나 경험했던 강의와 대화내용을 기록했다. 코카서스 지방에서 태어난 구르지예프는 티베트와 이집트,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여행하며 티베트교, 수피즘, 기독교의 신비주의 등 동서양 정신세계의 진수를 섭렵했다.2만 4900원.
  • [조용섭의 산으路] 소백산

    [조용섭의 산으路] 소백산

    ‘바람의 나라’. 소백산(비로봉 1439.5m)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이 있을까?살을 에는 냉기를 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세차게 부는 바람은 그야말로 광풍(狂風)이다. 남녘의 봄바람과는 사뭇 다른 풍광이다. 봄을 거슬러 그 바람의 나라 소백산을 찾았다. 산길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매표소에서 출발, 비로사-달밭재를 거쳐 주봉 비로봉에 오른 뒤, 능선 산행으로 연화봉(1383m)을 잇고 희방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삼가리 마을 바로 위에 매표소와 주차장이 있다. 승용차로 갔을 경우에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매표소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비로사가 나온다. 오른쪽의 다리를 건너 잠시 진행하면 이정표와 민박집 안내판이 있는 달밭골 마을 입구가 나오는데, 마을 끝에서 왼쪽으로 방향이 꺾이며 비로소 산길이 시작된다.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주봉인 비로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 산길은 아주 너른 외길로 나무계단 등의 시설이 잘 되어있고 촘촘히 선 이정표에도 거리표시를 해놓아 별다른 어려움없이 갈 수 있다. 산악인 추모비를 지나면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계단길을 힘들여 오르면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 닿는다. 동북쪽으로 국망봉, 남서쪽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인 주능선에 잠시 눈길을 두었다가 내려 서도록 하자. 이제, 그 엄청난 바람을 정면으로 안고 주목감시초소 쪽으로 내려서야 한다.‘정신없이 쫓기듯 내려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될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 대청봉의 매서운 바람에 담금질되어 있는 산꾼들도 쩔쩔 매는 칼바람이다. 초소에서 식사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주능선으로 올라 연화봉으로 향한다. 북쪽으로 곧장 내려서는 길은 충북 단양 천동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능선에 접어들면 큰 어려움없이 연화봉까지 간다. 연화봉 직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은 천문대로 이어지는데 연화봉으로도 연결된다. 연화봉에서 희방사로 이어지는 길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라 아주 잘 나있지만 가파른 산사면을 가로질러 갈 때에는 주의를 요하며 경사가 심한 이 길은 오름길 못지않게 내려서는 것도 힘들다. 깔딱고개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서서 고즈넉한 희방사를 지나 절 바로 아래 푸른 빛으로 얼어있는 희방폭포의 모습을 감상하며 산행을 마치게 된다. 희방폭포에서 버스정류소가 있는 주차장까지 도로를 따라 약 40여분 걸어내려와야 한다. 문의 소백산국립공원관리공단(054-638-6196) ●교통 자가용:중앙고속도 풍기 IC에서 풍기읍-삼가동으로 이동하면 된다. 서울에서 2시간30분, 대구에서 1시간20분 남짓 걸린다. 대중교통:동서울터미널(02-3436-2114)에서 영주행 버스를 이용해 풍기에서 내린다. 대구북부시외버스정류소(053-367-1861-2)에서 풍기행(소요시간 1시간30분)을 타도 된다. 풍기읍에서 희방사나 삼가리는 하루 6차례 시내버스가 다닌다.20분 걸린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풍기에서 희방사와 삼가리는 1만 5000원. 풍기택시(054-636-2828,636-8181) 기차로도 접근할 수 있다. 중앙선을 이용 풍기역(054-636-7788)에서 내리면 된다. 소백산은 바람이 거세니 방한복이 필수적이다.
  • 韓流 韓도 日도 아닌 잡종문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싱겁게도 ‘한류(韓流)’에 ‘한(韓)’은 없다. 그래서인지 호들갑스러운 외국의 반응에 우리 스스로가 당혹스럽다. 어쩌면 당혹스러워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한류 뒤에 숨어 있는 무차별적인 자본의 욕망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한국문화의 자부심 운운하는 한류 ‘생산자’들의 합창과는 상관없이. 최근 몇 년간 아시아권을 휩쓸었다는 한류의 의미를 짚어 보는 학술대회가 열린다.24일 예정된 광주 ‘아시아문화심포지엄’의 ‘글로컬시대 아시아문화연구의 쟁점’이 그것. 여기서는 한류를 포함한 아시아의 문화교류에 대해 비판적 의견들이 쏟아질 전망이다. ●“아시아 국가간 친근감은 소수의 것” 아시아 영화 발전을 분석한 필리핀 국립대 롤랜드 톨렌티노 교수는 아예 “아시아영화 발전이 아시아에서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했다.50년대 필리핀 영화의 황금기,60년대 일본의 뉴웨이브,75년 필리핀의 뉴시네마,80년대 초 홍콩의 뉴시네마,90년대 후반 한국의 뉴시네마 그리고 2000년대 태국의 뉴시네마로 이어지는 아시아영화의 긴 흐름은 사실 미국의 일본 재건, 대공산 우방으로서 필리핀의 특권화, 홍콩·타이완의 금융중심지 부상,IMF위기 뒤 한국과 태국의 부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영화에서 관철되고 있는 할리우드 규범성이 그 증거다. 규범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다큐멘터리 영화집단’ 같은 독립집단이다. 일본 와세다대 이와부치 고이치 교수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끼리 느끼는 친근함은 공간적으로 가깝다는 것뿐 아니라 “유사한 부의 수준, 세계화된 소비문화와 생활양식을 공유한다는 동시대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류니 뭐니 해도 아시아에서 대중문화의 교류는 다국적 기업의 자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절대적 군사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적 틀을 넘는 것 같지만 혜택은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제공된다.” ●일본에게 한류는 ‘세련된 향수’ 성공회대 백원담 교수는 한류를 비롯한 아시아 문화교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백 교수는 한류가 일본에서는 ‘세련된 향수’, 동남아 등 개도국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선험”이기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로서는 긍정적이지만 “중화민족주의나 대동아공영권 같은 아시아블록화로 재영토화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일 미디어 합작품으로 끝날 수도 한류가 아시아의 진정한 소통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서 22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아시아 대중문화연구 국제 세미나’에서도 제기됐다. 성공회대 신현준 교수는 한국가요 ‘K-pop’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문화연구자 모리 요시타카의 ‘일식 한류’ 개념을 빌려 왔다. 일본문화도, 한국문화도 아니고 한·일 공동문화도 아닌 성립과 기원부터 잡종적 문화가 한류다. 문제는 뿌리가 없기에 아시아의 소통을 겉돌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신 교수는 “일식 한류는 역사에 대한 기억을 소거하는 양국 국영 미디어의 합작품으로 끝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비록 “진부하고 지루한 미학적 품질이 수치스럽더라도” 아시아의 역사를 다시 기억토록 한다면 한류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 ‘적대적 M&A’ 어렵게 한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최근 신흥 인터넷기업인 라이브도어가 외국자본을 빌려 민방인 니혼방송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일본 사회가 들끓고 있다. 정부도 적대적 M&A를 제한하거나 외국자본의 언론사업 간접진출을 제한하는 등 법 개정에 나섰다. 재계와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8일 개장전 시간외 거래에서 니혼방송 주식을 대량 매집하기 시작한 라이브도어가 21일까지 보유한 니혼방송 주식은 의결권 기준 40.07%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최대 민영방송 후지TV나 계열사인 산케이신문 등이 놀라 뒤늦게 니혼방송 지분확보에 나서는 등 소란스럽다. 라이브도어는 32세의 호리에 다카후미 사장이 이끄는 벤처기업이다. 호리에는 1996년 도쿄대 재학 중 컴퓨터업체 ‘온 더 에지(On the Edge)’를 설립,2000년 일본 코스닥시장인 마더스에 상장했다.2004년 ‘라이브도어(Livedoor)’로 회사명을 변경, 지난해 매출이 308억엔이고, 영업이익은 56억엔이었다. 종업원은 1300여명이다. 일본 법무성은 22일 적대적 M&A를 어렵게 하도록 관련 회사법을 개정키로 했다. 기업이 매수를 받았을 때 대항책으로써 정관으로 미리 주주총회의 의결 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다. 현행 법에서는 주식회사가 합병이나 임원 해임 등 경영권 양도를 결정할 때 주주총회에서 대주주를 포함한 ‘참석 주주’ 3분의2 찬성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개정안은 주주총회 ‘결석자’를 포함한 3분의2 찬성을 특별 의결 요건으로 강화했다. 다시 말해 전체 주식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한 것이다. 총무성도 21일 외국자본이 간접적으로 일본의 방송사를 지배할 수 없도록 전파법이나 방송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 아래 여당측과 조정에 들어갔다. 당초 올 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하려던 계획이었으나 라이브도어 파문이 불거지면서 앞당겼다. 현행 전파법 등은 방송사에서 외국자본의 의결권 비율이 20% 이상이 되지 않게 규정하고 있지만, 외국자본이 대주주인 일본 기업이 방송사의 대주주가 되는 것과 같은 간접적인 지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규제하고 있지 않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 규마 후미오 자민당 총무회장 등 정치권도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게 되면 2세 교육에 좋지 않다.”며 호리에 사장을 비판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적대적 M&A 규제에 대해 시장자유화 및 외자 개방추세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taein@seoul.co.kr
  • [월드이슈-생명위협받는 분쟁지역 취재] 로베르 메나르 국경없는 기자회 사무총장

    [월드이슈-생명위협받는 분쟁지역 취재] 로베르 메나르 국경없는 기자회 사무총장

    |파리 함혜리특파원|“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에서 무차별 공격이 자행되면서 기자들의 안전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없는 분쟁은 상상할 수 없다.” ‘국경없는 기자회(RSF)’의 로베르 메나르 사무총장은 “분쟁지역 취재기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기본권인 정보소통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각 채널을 동원해 지난해 프랑스를 비롯해 전세계를 긴장하게 했던 프랑스 기자 2명의 납치사건이 무사히 해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리베라시옹의 바그다드 특파원인 플로랑스 오브나 기자의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메나르 사무총장을 파리의 RSF사무국에서 만났다. 오늘날 위험지역에서 취재하는 현장 기자들의 안전은 어떤 상황인가. -분쟁지역의 상황은 기자들에게 있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다. 2003년 3월 이라크전이 시작된 이후 이곳에서 사망한 기자는 베트남전쟁 동안 희생된 기자의 숫자를 넘어서고 있다. 기자들의 안전 문제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이처럼 위험한 전쟁을 본 적이 없다. 점점 더 위험해 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전쟁 취재에서는 전방에 있을 때 가장 위험하다. 하지만 이라크의 경우 전방이 없이 전면전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이라크에서는 법도,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 기자는 납치범들이 위협의 무기로 삼기 위해 노리는 핵심 목표물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디어가 치지하는 비중이 과거 분쟁에 비해 더욱 커지고 있는 이유는? -오늘날의 분쟁은 싸움터에서의 승패, 외교적인 측면에서의 승패로 판가름할 수 있지만 미디어를 활용한 여론전 또한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이라크전에서 보듯이 미디어도 하나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이라크의 무장 저항세력들은 그들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을 납치한 뒤 파급력이 큰 위성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라크에 있는 기자들의 상황은. -현재 이라크에 있는 외국기자는 100명 미만이다. 이들의 활동범위는 극히 제한돼 있다. 안전이 보장된 지역 이외의 장소에는 가지 않는다. 호텔 로비도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납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고 이라크에 기자를 계속 보내야 하는가. -기자를 파견하고 안 하고는 각 언론사가 판단할 문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라크의 경우 기자가 없다면 그것은 이라크에 더욱 큰 재앙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없다면 누가 전쟁의 실상을, 이라크인들의 고통을, 전쟁이 만들어내는 범죄를 외부에 알릴 것인가. 현장 기자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은 모두에게 위험하지만 기자가 없는 전쟁은 상상할 수 없다. 지난 1월5일 납치된 플로랑스 오브나 기자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우리는 세계가 그들을 잊지 않도록 여론을 환기시키고 연대감을 강화시키며 피랍자 가족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피랍자들에게는 이처럼 많은 지지자들이 있다는 것을 납치범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다. 납치범들은 인터넷을 통해 모든 소식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노력은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lot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6)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6)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신도안 사람 김씨 김철호(가명) 노인(78세)을 다시 만난 것은 금년 초였다. 옛날 신도안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 거기 살던 이를 수소문하던 참에 그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1988년 봄, 먼지가 풀썩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소형차를 몰고 간 곳이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였다. 나는 종교사회학적 입장에서 신도안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부남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유독 김씨가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았다. 차분하면서도 다부진 말씨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집안 내력도 독특했다. 김철호씨는 3대째 신도안에 살고 있는, 이를테면 신도안 토박이였다.19세기 말 그의 조부 김병선이 평안도 정주에서 문전옥답을 다 처분하고 식구를 인솔해 들어온 곳이 바로 부남리였다. 밥술이나 먹던 김씨의 조부가 하루아침에 고향을 등진 것은 ‘정감록’의 예언을 좇아서였다.‘머지않아 난리가 난다. 조선이 망하고 새 왕조가 계룡산에 들어선다.’ 김씨의 조부는 신도안에 들어가면 난리도 피하고 새 세상에서 벼슬도 할 수 있단 말에 귀가 솔깃해 마침내 고향을 등졌다고 했다. 구한말에는 외세의 간섭이 심해지고, 각종 민란과 갑오동학농민운동 등으로 사회가 몹시 혼란했다. 그 시절에 신도안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본격화됐던 것인데 이주민 중엔 수 백 년 동안 지역차별에 희생됐던 서북 출신이 많았다. 본래 살림살이가 유족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정감록’이 처음 출현한 곳도 서북지역이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김철호씨의 조부는 전형적인 초기 이주민이었다. 신도안의 토착인구는 19세기 초까지 수십 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이주민이 점증한 결과,1918년 말 총 584호에 남녀 2667명으로 불어났다. ●신도안의 여러 뜻 ‘정감록’의 신봉자들은 누구나 새 도읍지를 신도안이라 믿었다. 이 태조가 대궐 터를 닦던 곳이고 계룡산에서 가장 빼어난 명당이기 때문에 거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 신도안이란 지명엔 흥미로운 유래가 있다. 신라 때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계룡산에 왔는데, 그는 신라 사람들이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 아래 있는 제자봉(帝字峰)을 제도(帝都)라 일컫는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 엄연히 중국에 황제가 있는데 신라같이 작은 나라에 제도(帝都)란 말은 당치 않으니 당장 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제도’의 ‘제(帝)’ 자에서 양편 획(劃)을 떼 신(辛)자로 고쳐 ‘신도(辛都)’라 불렀다 한다. 신도안이란 지명을 둘러싼 해석은 제각각이다.1988년 조사 당시 내가 현지서 만난 계통불명의 어느 신종교단체 교주는, 새 세상을 가져다줄 구세주가 도읍할 곳이므로 ‘신도안(新都案)’ 즉, 신도읍 예정지라고 했다. 단군을 모신다는 어느 신종교단체의 사제는 이곳은 신정(神政)이 베풀어질 곳이라 ‘신도안(神都案)’이라 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동학 계통의 어느 신종교인은 정감록에 예정된 정씨(鄭氏)의 도읍인 때문에 조선왕조의 도읍은 아니라는 뜻이 있어 ‘新都안’이라고 했다. 그는 ‘안’은 아니라는 부정의 뜻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김철호 씨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은 ‘새로운 도읍지의 안쪽’ 즉, 신도내(新都內)로 이해했다.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 김씨는 21세기엔 드디어 신도안 시대가 열려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 했다. 그는 아직도 3대를 품어온 희망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지명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달랐지만 신도안이 장차 일대변화를 불러올 중심지여야 한다는 믿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정감록’의 신봉자들은 세상이 그냥 이대로 지속돼선 안 된다, 뭔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듯하다. 따지고 보면 이런 믿음은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한 이른바 모든 고등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정감록’ 신봉자들은 질적 변화의 진원지를 신도안이란 구체적인 장소로 못 박은 점이다. 신도안의 지리적 범위를 묻는 내 질문에 김철호씨는 이렇게 답했다.“계룡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한참 내려오면 암용추와 숫용추 두 폭포가 있어. 바로 그 아래 한 자락이 신도안이지.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석계리, 용동리, 정장리에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를 더한 5개 마을이 신도안이란 말이여. 일제 때부텀 행정구역으론 그랬어.” 지도를 펴놓고 보니 대략 동서 6㎞, 남북 7㎞ 정도 공간이었다. ●3·1운동으로 조성된 신도안 열풍 1919년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신도안을 향한 이주 물결이 한층 거세졌다. 엄밀한 의미로 독립만세운동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 영향으로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졌고 식민당국도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정책’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수십만 명이 일경의 체포, 구속, 구타로 시달림을 겪은 터라 후유증이 몹시 컸다. 상당수 민중은 일종의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심리적 위안을 받는 일이 시급했다. ‘정감록’이 그 문제를 떠맡았다. 알다시피 정감록은 현재의 평안과 미래의 성공을 기약하는 길지(吉地)를 선사했다. 정감록을 믿었던 민중은 가족을 거느리고 이주대열에 섞였다. 무엇보다도 신도안이 가장 인기 있는 길지였다. 거기서 기도하면 소원성취 할 수 있다, 암수 폭포수가 흐르는 신도안 개울물에 서식하는 올챙이를 복용하면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김씨가 부친 김연수에게 들은 바로,1920년쯤 3·4월이면 올챙이를 잡으러 개울가로 몰려드는 인파가 수천 명이나 됐단다. 김씨도 개구쟁이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올챙이를 꽤 많이 잡았다고 한다. 실제로 1919년 이후 4∼5년 동안 신도안의 인구는 급성장했는데 이 점은 통계로도 입증된다.1923년 말 1570호에 7008명으로 5년 전인 1918년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났다. 신도안은 이미 사람이 가득 찼기 때문에 그 주변 마을로 이주민이 몰려들 지경이었다. 그들은 대개 ‘정감록’을 신봉하는 신종교단체들에 속했다. 아예 그런 신종교단체가 수백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이주해온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금강교가 그랬다.‘금빛 병풍 산기슭에 만 명이 살 수 있다’는 ‘정감록’의 구절을 근거로 금강교도들은 신도안에 근접한 충남 연기군 금남면 금천리에 터를 잡았다. 하루아침에 100호도 넘는 큰 마을이 들어섰다. ●신도안에서도 꺼지지 않는 대한독립의 꿈 나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지만, 신도안 이주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맞물려 있었다. 이미 1910년대 중반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증산교의 일파인 음치교와 태을교 측은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돌아간다. 정진인이 한국 출신 장교를 거느리고 독일편에서 싸우기 때문이다. 세계전쟁이 끝나면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 인류가 모두 사멸하게 돼 있으나 음치교나 태을교를 믿는 신도들만은 재난을 면한다. 어쨌거나 세계전쟁을 마무리지은 정진인은 대한독립을 이룬 다음 계룡산에 도읍한다. 이때가 되면 음치교나 태을교 신도들은 신앙심과 포교성적에 따라 관직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흥미롭게도 그들 신종교단체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할 것으로 점쳤고, 그 이유를 정진인에게서 찾았다. 당시 독일은 일본과 적대관계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심정적으로나마 독일편을 들었다고 풀이된다. 음치교나 태을교도 그랬지만 신종교의 대부분은 정감록을 믿었다. 그들은 진인왕의 등극을 기다렸는데 그것은 나라의 독립을 뜻하기도 했다. 진인왕은 어떤 경우에도 일본의 꼭두각시일 수가 없었다. 여러모로 허황된 예언이었지만 신종교 단체가 퍼뜨린 유언비어에는 대체로 독립을 열망하는 민중의 마음이 얼마간 담겨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부터 민중은 국가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일단 나라를 되찾아야 개인의 평안과 출세도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식민지 당국은 이들 ‘위험한’ 신종교단체를 탄압했다. 일제는 그런 단체들에게 사기, 폭력, 금품 갈취, 음란행위 따위의 죄목을 씌워 마음대로 탄압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들 단체의 특징이었던 민족주의 성향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빌라도 총독이 신종교 지도자 예수를 처형할 때 파렴치범과 나란히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도 그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1920년대에도 신도안 이주를 부추기는 유언비어들이 계속해서 나돌았다.1921년쯤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에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유행했다.‘정감록’에 왜왕(倭王) 3년을 지내고 가도(假都) 3년이 되면 참된 정씨 왕이 나타나 계룡산 신도에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왜왕 3년이란 총독 삼대(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요, 가도 3년은 상해임시정부 3년이다. 요컨대 1921년쯤 계룡산 신도안에 임시정부가 도읍을 세운다는 예언이었는데, 그 말이 퍼지자 신도안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1921년 한 해 동안 모두 610호에 2443명이 신도안에 정착했다. 김철호씨는 고향마을 선배 중에도 그 때 이주해온 집안이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경기도 교하 지방에도 조선독립에 관한 유언비어가 널리 퍼졌다. 계룡산 바위틈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었다.‘음력 2월15일은 독립을 외치는 날이다.10번을 외치면 일가를 보존하게 되며,20번을 외치면 독립을 회복한다. 이 취지를 쓴 종이 두 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자기 한 몸이 보존되고,8장을 전하면 충신 효자가 된다. 만일 이를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다. 주술적 효과를 가진 종이 쪽지가 계룡산 바위틈에서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은 어느덧 계룡산은 독립을 실현해 줄 희망의 등잔이요, 신도안은 그 불꽃이 타오를 심지가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느덧 신도안은 민족의 성지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신도안의 명물 칠성교의 ‘지푸라기 북’ 1920년대 민중의 관심사는 신도안이 과연 언제 도읍이 되는가, 달리 말해 나라가 독립될 시기를 점쳐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24년 신도안 사람들은 지푸라기 북(草鼓) 하나를 만들었다. 그 북은 김철호씨의 고향 부남리의 칠성각에 안치되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 마을에 있던 칠성교란 신종교의 보물이었다. 부남리에 관한 일이라 나는 김씨에게 그 북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김씨의 부친과 평안도 박천에서 내려온 부친의 친구 분이 모두 칠성교를 믿었다고 한다. 김씨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칠성교당에 다녔단다. 1928년 그 북을 쳐 만약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한국 종교계의 우두머리로 삼는다는 소문이 원근에 파다했다. 이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만 해도 무려 2만 5000명이었다. 당황한 식민지 경찰은 서둘러 지푸라기 북을 불태워버렸다. 그러나 민중의 아쉬움은 수그러지지 않아 2년 뒤 북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지푸라기 북이 소리를 낼 리는 없다. 하지만 ‘정감록’ 속의 정진인이 나온다면 그 정도 기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민중의 믿음이었다. 1989년 김씨를 포함한 신도안 주민들은 신도안에서 쫓겨났다. 이른바 6·20 사업으로 신도안 일대에 군사시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제5공화국의 시퍼런 서슬에 누구도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알고 보면 신도안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신앙이 약화되었다. 상당수는 생계의 어려움과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로 떠나갔다. 김씨는 고집스럽게 신도안에 눌러앉았지만 그의 두 자녀만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서울로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지푸라기도 북도 없고,‘정감록’의 예언에 목을 매는 이들도 많지 않지만 때로 간절한 소망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팔순을 바라보는 김철호 씨가 아직 신도안 시대를 꿈꾼다 해도 그 허망함을 탓하기만 해야할지 모르겠다.(푸른역사연구소장)
  • [시론] 반확산정책에 대비하라/전봉근 평화협력원장·정치학 박사

    [시론] 반확산정책에 대비하라/전봉근 평화협력원장·정치학 박사

    북한의 ‘만용’은 끝이 없다. 보통 비공식 핵개발 국가는 핵능력과 핵개발 의도를 감추기에 급급하나, 북한은 유례없이 공공연히 핵개발 의지를 드러낸 데 이어 지난 2월10일 마침내 핵보유를 선언했다. 핵폭탄급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모두 놀랄 정도로 차분한 대응을 보였다. 지난 15년간 북한이 외치는 ‘늑대놀이’에 익숙해졌거나, 북한을 국제사회의 열외(列外)국가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양치기 소년’이 아니며, 핵무기는 ‘늑대’가 아니다.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보유하였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핵무기 능력과 핵보유 의지를 가졌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지난 십수년간 한국,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하여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무위로 끝나곤 하였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비확산정책이 실패하였을 경우에 대비한 정책을 심각하게 검토할 시기가 됐다. 흔히 비확산(nonproliferation)정책이 실패하면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정책으로 이행한다고 한다. 핵위협에 대비하고 핵확산 이전단계로 원상회복시키는 정책이다. 반확산정책은 핵무기 제거, 핵무기 이전 차단, 핵사용에 대한 대비, 정보활동 강화, 공세적 정치개입 등 정치군사적 조치를 동반한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아직 핵보유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고 외교적 수단이 소진되지 않아 현단계에서 군사적 조치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북 반확산정책을 적극 검토하되, 현단계에서 외교적 수단에 의존하는 ‘외교적 반확산정책’이 필요하다. 상황은 심각하게 인식하되, 대응조치는 신중하자는 말이다. 이를 위하여 세가지 조치를 제안할 수 있다. 첫째, 다자 대응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북한의 ‘막가파’식 공갈에 홀로 대응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한의 6자회담 ‘판깨기’ 전략에도 불구하고,6자회담과 한·미공조 코스를 수정할 이유는 없다. 판깨기를 시도한 것은 그만큼 6자회담이 효과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설사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고 하더라도 다자협상은 여전히 효과적인 협상틀이다. 필요시 유엔 안보리도 활용해야 한다. 둘째, 힘에 기초한 외교가 필요하다.2월10일 북한이 외교부 성명에서 ‘강력한 힘만이 정의를 지키고 진리를 고수한다.’고 주장했듯이 북한 지도부는 힘을 숭상하는 현실주의자이다. 북한은 힘 앞에서만 타협한다. 북한이 협상력 강화를 위해 ‘핵보유를 병행한 협상’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압박을 병행한 협상’으로 대응해야 한다. 북한의 핵위협을 내버려 둔다면 북한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고 핵보유를 더욱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우리의 힘은 한반도 비핵화의 명분이며 경제력이다. 북한이 핵에 의존할수록 우리의 비핵화 의지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핵위협과 대북 지원은 양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이 알게 해야 한다. 실제 핵위협은 국내의 대북 인도적 지원 분위기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비료는 식량증산을 위한 인도적 물품이지만, 그 양이 50만t에 이른다면 정치적 물품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만약 북한이 대북 지원의 정치적 분위기를 계속 해친다면 순조로운 비료지원도 어렵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한 반확산정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가 현실화된다면 남북간 세력균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북한의 행동은 더욱 대담해질 것이다. 반확산정책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듯, 북한의 비확산을 위하여 반확산도 준비해야 한다. 전봉근 평화협력원장·정치학 박사
  • 울릉군의회 “독도서 3·1절 행사”

    경북 울릉군의회는 13일 새달 1일 3.1절 기념행사를 독도에서 개최키로 했다. 최근 일본 시마네현(島根)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TV광고를 내보낸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표시다. 군의회는 주민대표와 사회단체 대표, 군의원 전원 등 30여명과 함께 독도의 동도에서 3.1절 기념행사를 갖고 일본의 침탈 야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키로 했다. 군의회가 3.1절 기념행사를 독도에서 열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의회는 앞으로 울릉군, 군내 기관·단체와 공동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주장에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또 오는 17일과 22일 각각 개최할 예정인 전국 시·도 의회 의장협의회와 전국 시·군자치구 의장협의회에 ‘독도의 날’지정을 건의할 방침이다. 경북도의회도 오는 23일 독도에서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 규탄대회를 열기로 했다. 한편 이의근 경북도지사는 지난 4일 자매도시인 시마네현 쓰미다 노부요시 지사에게 서한을 보내 “지난 89년부터 교류해 온 경북도와 시마네현 관계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시마네현 지사가 이에 대해 현명한 조치를 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스미다 노부요시지사는 “영토문제는 한·일 양국의 외교교섭으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고 경북도와 시마네현의 15년 동안 맺은 교류는 계속 추진하기를 희망한다.”는 서신을 지난 11일 이의근 지사에게 보내왔다. 울릉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아리랑’ 원본필름 공개될까

    ‘아리랑’ 원본필름 공개될까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 최초의 영화인 ‘아리랑’의 필름 원판이 드디어 발견되나. 일본의 전설적인 영상수집가 아베 요시시게가 지난 9일 타계, 춘사(春史)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원본필름이 발견될지 주목된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조선총독부 경찰의사를 지낸 부친 때부터 영화를 수집,5만점 이상의 희귀 필름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아베가 오사카병원에서 상속인 없이 타계함으로써 일본 문화청이 소장품을 승계,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이 전했다.‘아리랑’ 원본은 6·25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아베가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언론은 그의 자택 소장목록에서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목록을 확인했다. 고인도 생전에 자신이 ‘아리랑’을 소장하고 있음을 시사했지만 공개는 거부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남북 영화관계자들이 고인으로부터 아리랑을 얻어내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북한측은 조총련 산하 총련영화제작소장인 여운각(78)씨가, 한국측은 다큐멘터리 작가 정수웅(62)씨가 건네줄 것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아리랑은 식민지시대 반일(反日)영화인 만큼 일본인으로서 생각할 점이 있다.”며 “내놓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남북한이 통일되면 평화를 위해 내놓겠다.”고 말했었다. taein@seoul.co.kr
  • 귀경 체증…광주~서울 8시간30분 걸려

    귀경 체증…광주~서울 8시간30분 걸려

    설날 연휴 마지막날인 10일 오후 전국의 고속도로에서는 귀경 차량이 몰려 밤늦게까지 정체와 서행이 반복됐다. 이날 하루 서울로 들어온 차량은 34만대로 전날의 31만대보다 많았다. 승용차로 서울까지 오는 데 부산에서는 7시간 30분, 광주 8시간 30분, 대전 4시간 50분, 목포 5시간 30분, 대구 5시간 10분, 강릉 4시간 10분이 걸렸다. 11일에는 평소와 비슷한 28만대, 주말인 12일과 13일에도 30만대가 각각 서울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번 설 귀경길은 서울∼부산, 서울∼광주 구간의 최대 소요시간이 예년에 비해 30분 정도 짧았지만,10일 오후 차량이 몰리면서 혼잡을 빚었다.”고 밝혔다. 도로공사는 그러나 “공휴일 직후 금요일에도 쉬는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많아 귀경길 교통이 적당히 분산되면서 극심한 정체현상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 방향 청주∼천안 37㎞, 망양휴게소∼성환활주로 9㎞, 안성휴게소∼남사정류장 7㎞ 구간에 부분지체 현상을 보였다. 중부고속도로는 일죽∼모가정류장 5㎞구간에서 정체됐다. 영동고속도로는 이천∼용인 22㎞ 구간에서 차량들이 밀렸다. 호남고속도로에서는 삼례∼여산휴게소 15㎞ 구간이 부분 지체현상을 보였다. 서해안고속도로는 해미∼서산 10㎞, 화성휴게소∼비봉 7㎞ 구간에서 차량이 서다가다를 반복했다. 서울에서 빠져나간 역귀성·행락 차량은 20만대로 전날의 30만대보다 훨씬 줄어 원활한 흐름을 보였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고속철 광명역 부근 터널 (서울기점 19㎞)속에서 서울발 부산행 KTX 제9호 열차가 고장으로 멈춰섰다. 이 사고로 하행선 KTX 7개 열차가 1시간 이상,3개 열차가 10∼30분 지연됐다. 열차에 탔던 승객 600여명은 뒤따라오던 83호 열차가 사고열차를 터널밖으로 밀어내기까지 1시간 넘게 갇혀 불안에 떨었다. 사고는 터널 내 신호장애로 KTX 열차가 천천히 가던중 전기공급이 끊기는 ‘사(死)구간’에서 차량에 이상이 생겨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고속선과 기존선이 갈라지는 시흥역 남쪽 구간에서 회로 장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재훈 박지윤 박승기기자 nomad@seoul.co.kr
  • 천안서 전철타면 ‘귀경체증 끝’

    “이제 명절 교통은 걱정없어요.” 10일 오전 10시쯤 충남 천안 전철역은 고향에서 설을 보내고 귀경하는 인파로 붐볐다. 지난달 경기도 수원 병점∼충남 천안구간의 전철이 개통되면서 서울까지 연결된 덕분이다. 이곳에서 만난 K대 4년 김경태(25)씨는 여자 친구와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서울행 전철에 올라탔다. 김씨는 “서울 아현동까지 간다.”면서 “고향인 공주에서 설을 쇤 뒤 전철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시외버스 편으로 천안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설 이틀 전 같은 방법으로 고향에 내려왔다고 했다. 김씨의 여자 친구도 “시발역이라 자리도 많이 나 좋다.”고 거들었다. 서울∼공주는 명절에 버스를 타면 보통 4∼5시간, 체증이 심할 경우는 그 이상 걸리지만 전철을 이용하면 시외버스 소요시간을 합해도 2시간 반이면 족하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서울 구로동 친정길에 나섰다는 주부 이상희(44)씨는 “일부러라도 타고 싶었는데 전철을 타고 명절에 친정을 간다니 마음이 설렌다.”며 활짝 웃었다. 이씨의 남편도 “시간도 단축되고 교통비도 크게 줄어 일석이조”라고 장단을 맞췄다. 승용차로 가면 3∼4시간이 걸리고 기름값과 고속도로통행료까지 하면 4만여원이 들지만, 전철을 이용하면 2시간쯤 걸리고 3명에 6000원이 채 안든다. 천안역의 경우 평일 승하차 승객이 각각 6000명에 그쳤지만 설날(9일)에는 귀경객만 1만 559명에 달했다. 김진철 천안역 역무팀장은 “설 연휴엔 출퇴근자가 없어 이같은 승객수는 엄청난 것”이라고 밝혔다. 병점역 아래 오산에서 천안역까지 새로 개통된 8개 역을 이용하는 승객수도 평일 5만 2000명에서 설날에는 7만 9800명으로 크게 늘었다.5박6일간 휴가를 얻은 이교흔(21) 상병은 “예전에는 휴가를 받으면 버스로 경기도 안산 집까지 갔는데 설 연휴로 길이 막힐 것 같아 전철을 타러 나왔다.”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고향가는 길’ 덜 막힌다

    ‘고향가는 길’ 덜 막힌다

    설 연휴의 교통혼잡은 8일 오전 귀성길과 10일 오후 귀경길이 가장 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휴기간이 길고 고속철도(KTX) 등으로 귀성객이 분산돼 고속도로나 국도의 정체가 극심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6일에도 평소 일요일이면 혼잡을 보이는 경부고속도로 오산∼안성, 추풍령∼김천, 남구미∼왜관 등 일부 구간에서 오후 들어 지체가 있었지만, 다른 구간에서는 원활한 소통을 보였다. 한국도로공사는 “설 연휴 고속도로를 이용할 귀성차량은 지난해 118만대보다 3.1% 늘어난 123만대로 예상된다.”면서 “하지만 길게는 9일까지 이어지는 연휴에 교통량이 분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7일 휴무하는 직장인과 자영업자가 적지않아 사실상 연휴에 들어간 사람이 많은 6일 오후에도 KTX의 예약률이 80%에 그치는 이변을 보이기도 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현재 귀성 예상 소요시간은 ▲서울∼부산 5시간 15분 ▲서울∼대구 3시간 15분 ▲서울∼광주 3시간 35분 ▲서울∼목포 3시간 25분 ▲서울∼강릉 2시간 20분 ▲서울∼대전 1시간 30분으로 평일 주말과 큰 차이가 없었다. 6일 오후 8시 현재 서울을 빠져나간 차량도 평소 휴일보다 20% 정도 적은 22만여대에 그쳤다. 하지만 7일에는 31만대가 귀성길에 나서 일부 구간에서 지체현상을 빚을 전망된다. 고속도로상황실 관계자는 “7일 오후를 고비로 8일 오전까지 귀성길의 혼잡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7일 낮 12시부터 9일 오후 6시까지 경부선 잠원·반포·서초·수원·기흥·오산 IC와 서해안고속도로의 매송·비봉 IC에서 하행선 진입을 통제한다. 역귀성으로 인한 지체 현상을 막기 위해 같은 기간 경부선의 잠원·서초·양재 IC도 진출이 통제된다. 또 7일 낮 12시부터 10일 자정까지 경부고속도로 서초 IC부터 청원 IC 구간 양방향에 24시간 버스전용차로제가 실시된다. 유영규 유지혜기자 whoami@seoul.co.kr
  • “피해자는 韓日민중” 反戰메시지

    부교재는 조선통신사와 16세기 임진왜란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임진왜란에 대한 소개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한국은 피해자라는 종전의 이분법을 넘어 두 나라 민중들이 모두 전쟁의 피해자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전쟁의 승패를 떠나 국가간 전쟁에서 민중들이 겪는 아픔을 소개하고,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부교재의 분량은 150쪽에 이른다. 기존의 한국 교과서가 3∼4쪽, 일본 교과서가 1∼2쪽에 걸쳐 간단히 소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일본 교과서가 임진왜란에 대해 ‘조선으로의 진출, 조선과의 전쟁’으로만 표기해오던 데서 벗어나 일부 ‘침략’이라는 표현을 쓴 점도 눈에 띈다.‘제1장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침략적 야심을 펴기 위하여 몇몇 일본 장군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조선과 명에 대한 침략을 준비하였다.‘라고 표현한 것을 비롯해 곳곳에서 소제목과 내용에 ‘(조선에 대한)침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전쟁의 책임과 관련, 기존 교과서와 교재들이 도요토미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는 반면, 부교재는 역사에서 개인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학생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측 대표집필을 맡은 대구 포산중 강태원 교사는 “한국 교과서가 한산도대첩이나 행주대첩 등 전쟁의 승리만을 강조한 반면, 일본 교과서는 국가라는 명분을 강조하고 있어 전쟁으로 인한 민중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양국의 입장을 떠나 학생들에게 전쟁의 의미를 깨우쳐주자는 생각에서 부교재를 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교재는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다.1장과 2장에서는 침략전쟁에 반대했던 일본인들을 비롯,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도자기 부흥을 일궈냈던 이삼평, 조선에 귀순한 왜군인 김충선씨, 그 자손들이 살고 있는 대구 근교 우록동 등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던 울산성 전투 상황을 묘사한 종군승려 경념(慶念)이 쓴 ‘조선인 일기’를 인용,‘우물이 없었던 울산성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해 말의 목을 찔러 피를 빨아마시거나 소변을 마시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성 밖의 태화강으로 나가기도 했다.’며 전쟁의 참상을 소개했다.3∼6장에서는 조선통신사를 다뤘다. 통신사의 명칭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뀐 사실과 양국간 문화교류 상황, 통신사의 이동경로, 당시 통신사 접대에 동원된 엄청난 규모의 선물과 답례품, 통신사가 남긴 유적, 당시 쓰시마(對馬島)번의 외교관인 아메노모리 호슈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그 영지가 아이들 미래…” 지율스님 단식중단

    ”그 영지가 아이들 미래…” 지율스님 단식중단

    고속철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며 100일째 단식을 해 온 지율(48) 스님이 3일 단식을 풀었다. 이강진 국무총리 공보수석은 이날 밤 “정부는 3일 오후부터 밤 늦게까지 지율 스님측과 최종 협상을 벌인 결과, 3개월 동안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벌이되 정부는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지율 스님은 단식을 중단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율 스님은 이날 밤 10시40분쯤 단식을 풀고 정토회관에서 요양에 들어갔다. 또 공동조사단의 조사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사를 진행하되 정부와 지율 스님측이 인선한 공동조사단이 3개월간 환경영향공동조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동안 지율 스님이 요구해 왔던 ‘3개월간 터널 발파공사 중단’이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공동조사단의 요청에 따라 필요시 부분적인 공사의 중단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공보수석은 “정부는 공동조사단의 활동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필요하다면 일시적으로 발파를 중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실제로 조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공사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는 3개월간의 환경영향 공동조사기간 동안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면서 “지율 스님측과 정부측의 공동조사단이 구성되면 정부로서는 조사단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수용할 것을 정부와 지율 스님측이 동의했다.”면서 “공동조사단의 결과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없더라도 관습적으로는 구속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정부측 인사 7명과 지율 스님 등이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 7명 등 14명으로 구성키로 합의했다고 남영주 국무총리 민정수석이 밝혔다. 서울 서초구 정토회관의 법륜 스님은 “지율 스님이 정부와 국회, 종교 지도자, 국민의 여망을 받아들여 단식을 끝내고 건강을 회복하기로 했다.”면서 “한국 사회에 많은 갈등이 있어왔는데 이 문제가 해소됨으로써 화해와 희망이 꽃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경호 이효용기자 jade@seoul.co.kr ■ “그 영지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길…” 지율 스님은 정부와 합의를 한 3일 밤 ‘단식을 풀며’라는 제목의 편지를 써 공개했다. 다음은 편지의 전문이다. 힘겨운 시간에 함께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든 생명과 우리들이 둘이 아니라는 데서 천성산 이야기를 시작했으며 지금은 대립되는 듯 보이는 정책과 저희들이 동화처럼 쓰는 도롱뇽의 이야기가 둘이 아니라는 데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미숙함으로 인해 많은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이제 마른 땅에 심어진 생명의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그 영지가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함께하여 주신 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일어서겠습니다. 2005년 2월3일 지율 합장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왜 계룡산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왜 계룡산인가

    ●태조 이성계와 계룡산 1392년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옛 귀족이 건재한 개성이 싫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듯 이 태조는 충신으로 가득한 새 수도에 새 왕조의 터전을 닦고 싶었다. 이때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부상한 곳이 계룡산이었다. 이 태조는 1393년 음력 정월 직접 계룡산에 행차해 산세를 휘둘러 보았다. 그해 3월부터 왕도 건설의 삽질 소리가 계룡산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일설에 따르면 계룡산이란 명칭도 그때 비롯됐다. 이 태조를 수행해 현지로 내려온 무학대사는 신수도 예정지 신도안의 좌우 산세를 살핀 다음 이렇게 평가했다고 전한다.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다. 여기서 말한 ‘금계’는 부의 상징,‘비룡’은 현명한 임금을 의미한다. 즉, 이곳에 도읍하면 풍요한 태평세월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무학대사는 금계의 ‘계’와 비룡의 ‘룡’을 차용해 산 이름을 계룡산이라 부르자 했고 그 말대로 됐다 한다. 계룡산 신도안에 한창이던 천도 사업은 1393년 연말 문신 하륜(河崙)의 맹렬한 반대로 파국을 맞는다. 하륜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계룡산을 반대했다. 첫째, 남쪽에 너무 치우쳐 한반도의 동쪽·서쪽·북쪽과 교통이 불편하다. 둘째, 주변에 큰 강이 없어 세금은 물론 물산을 운반할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한다. 셋째, 계룡산의 풍수는 중국의 풍수가 호순신(胡舜臣·송나라)이 말한 이른바 ‘수파장생쇠패입지(水破長生,衰敗立至)’의 땅이다. 즉, 흘러나가는 물이 땅의 기운을 약화시켜 나라가 곧 쇠망할 곳에 해당한다. 조정 대신들은 공방 끝에 하륜의 주장을 채택해 계룡산 천도 계획은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뜻밖의 결정에 남부지방 사람들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수년 뒤 태종은 마이산(전북 진안군)이란 명산에 친림해 천도 백지화에 대한 산신(山神)의 뜻을 점쳤다 한다. 물론 산신은 그 결정이 옳다는 답을 줬고, 이에 민심도 안정됐다 한다. 한낱 전설에 불과하지만 계룡산 천도에 기대를 걸었던 남도 민심이 여실하다. ●18세기 말부터 계룡산의 인기는 급상승 수도가 한양으로 결정되자 계룡산 천도설은 한동안 잊혀졌다. 계룡산의 풍수에 대한 평가도 신통치 않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계룡산은 웅장하기가 개성의 오관산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도 서울의 삼각산만 못하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계룡산 신화는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민심은 조선왕조를 이반하기 시작했고 그로 말미암아 천도설이 다시 고개를 든 것 같다. 홍만종은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조선 태조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했다.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 즉,鄭)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한다. 이 설화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이로 보면 계룡산에 정씨가 도읍한다는 이야기는 양반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던 것 같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감록’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 ●바위에 새겨진 비밀 19세기 후반 계룡산에서 신비한 각석문자(刻石文字)가 하나 발견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연천봉 바위에 “방백마각구역화생(方百馬角口或禾生)”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아무도 해석을 못하다가 사람들은 드디어 한 가지 해석에 도달했다. 방(方)은 4방이요, 글자도 4획이라 4를 뜻한다. 마(馬)는 오(午)인데 오라는 글자는 八十을 더한 것이라 80이다. 각(角)은 뿔이다. 모든 짐승이 두 개의 뿔이 있으므로 2가 된다. 이를 모두 더하면 482란 숫자가 된다. 구(口)와 역(或)은 국(國)자가 되고, 화(禾)와 생(生)을 합치면 禾生인데 이것은 이(移)의 옛글자다. 전체를 다시 조합하면 ‘四百八十二 國移’란 구절이 된다. 요컨대 조선은 개국 482년째 되는 1874년에 망한다는 뜻이다. 이런 뜻이라면 그것을 몰래 바위에 새긴 사람이 누굴지는 뻔하다. 그는 조선왕조의 몰락을 염원한 사람이다. 어쩌면 ‘정감록’의 신봉자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각석의 풀이는 한동안 민심을 동요시켰다. 그 때는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소문이 연달았던 시절이다. 마침 ‘정감록’에는 위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 계룡산에서 정진인이 나타나 새 나라를 세운다고 돼 있어, 많은 사람들은 계룡산이 새 수도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조정대신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19세기 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은 계룡산으로 천도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천도를 통해서라도 이미 달아난 민심을 조선왕조에 매어 두고 싶었던 것이다. ●명산 중의 명산 계룡산 계룡산은 최고봉의 높이가 845m로 별로 큰 산은 아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국중(國中)의 손꼽히는 명산이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엔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명산대천이었다. 해마다 국왕은 제관을 보내 계룡산 산신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을 정도다. 내가 만나본 현지 주민들은 우선 계룡산이란 이름의 뜻이 각별하다고 말했다.‘계’ 즉, 닭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가축인데다 새벽을 알리는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하므로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풀이했다. 그런가 하면 ‘용’은 전설 속의 영물로 기린, 봉황 등과 함께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 믿어졌다. 용은 성스러운 지배자를 뜻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 ‘계룡’에는 성스러운 통치자의 출현 또는 새 세상의 시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명산인 계룡산은 풍수지리설에 힘입어 더욱 독특한 이미지를 갖게 됐고, 오랫동안 풍수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요컨대 계룡산은 유서 깊은 명산인데다 조선 초기 도읍 후보지가 되기도 했고, 그 뒤에도 풍수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정씨가 도읍한다는 전설도 있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정감록’에서 계룡산이 새 왕조의 도읍지로 예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풍수로 본 계룡산 ‘정감록’에는 천하의 지맥이 흘러가는 큰 줄기가 언급돼 있고 그 가운데 계룡산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천하의 산맥은 곤륜산에서 발원해 백두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흐른다고 했다. 금강산에 옮겨진 내맥(來脈)의 운은 다시 태백산(太白山)과 소백산(小白山)으로 내려가며 산천의 기운을 받아 지기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계룡산(鷄龍山)으로 들어감으로써 장차 정씨(鄭氏)가 도읍하여 800년을 누릴 길한 땅이라 했다. 근세의 풍수가들은 계룡산의 특징을 회룡고조(回龍顧祖),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3가지 개념으로 평했다.‘회룡고조’란 계룡산이 그 조산(祖山 조상에 해당하는 산)인 대둔산을 되돌아보는 모습이라 나온 말이다. 풍수지리에서는 보통 조산이 너무 높으면 명당을 내리눌러 명당 기운이 죽는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조산인 관악산(629m)이 진산인 백악(342m)보다 수백m나 높다. 서울의 풍수가 이런 탓에 서울을 떠나지 않는 한 한국은 외세의 압박에서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풍수상의 해석이다. 그러나 계룡산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산인 대둔산(878m)은 높이는 계룡산(845m)과 30m밖에 차이가 없다. 게다가 조산과 진산의 거리도 멀기 때문에 계룡산의 기세가 대둔산에 눌릴 리가 만무하다고 본다. 지맥의 흐름으로 볼 때 계룡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큰 줄기가 진안의 마이산까지 내려오다 다시 갈라져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온 형세다. 마이산에서 반전된 산세가 대둔산과 천호산을 향해 달음박질하다 공주 동쪽에서 C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꺾였다. 산세의 이런 흐름은 마치 태극과 같아 풍수가들은 ‘산태극’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계룡산의 둘째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계룡산의 물길 또한 산세와 마찬가지로 ‘수태극’을 빚어냈다. 전북 장수읍 신무산(神舞山) 아래 수분리(水分里) 뜸샘(또는 물뿌랭이)에서 시작된 금강의 도도한 흐름은 무주, 영동, 대청호, 부강, 공주, 부여, 강경을 차례로 휘감아 돌다 장항을 거쳐 서해로 들어간다. 이런 금강 물줄기에 합류하는 것이 계룡산 명당수인데 그 모양이 태극과 같다. 계룡산의 명당수는 신도안 용추골에서 시작되어 우청룡을 휘감아 흘러들어가 금강과 만난다. 풍수설만 가지고 보면 계룡산은 도읍터로서 매력적인 곳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미 하륜이 정확히 지적했듯 한나라의 수도를 정하는 데는 교통, 행정 및 경제적인 요건이 풍수설보다 더 중요하다. 정감록은 계룡산 도읍설을 펴고 있지만 그것은 조선왕조 자체를 부인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지 계룡산이 정말 도읍할 만한 곳인가를 따진 것은 아니다. 정감록에 담긴 메시지는 민중은 새 세상을 원한다는 그 말이다. ●계룡산 바위가 희어질 때 계룡산에 큰 의미를 부여한 때문일 테지만 정진인이 왕으로 등극하기 직전 여러 가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다고 한다. 정치 사회적 변화 못지않게 자연계에 큰 변화가 예언돼 있는데 계룡산이 관련된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계룡산의 바위가 흰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바위 색깔이 희게 변하는 일이 보통은 불가능하다. 흥미롭게도 우리 풍습엔 예부터 흰색 바위를 미륵불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 당나라에도 똑같은 풍습이 있었다. 흰 바위는 미륵불의 출현, 달리 말해서 복된 새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상서로운 표징이다. 여러 해 전 현지조사 때 직접 주민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조선 후기부터 계룡산의 바위가 조금씩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내 육안으론 그런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진인왕이 올 때가 되면 계룡산 아래 있는 초포(草浦)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들락거린다는 예언도 있다. 초포는 금강과 계룡산 사이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인데 먼 옛날엔 거기까지 작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엔 금강의 토사가 많이 쌓여 배가 통행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랬는데 1990년 금강하구 제방공사가 완공되자 강물이 불어 이제 초포에도 다시 작은 배들이 다닐 만하게 되었다. 어떤 주민은 이를 두고 ‘정감록’ 예언은 반드시 들어맞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선 다른 견해도 있다.‘정감록’에 바닷물이 초포까지 들어온다고 한 것은 해수면이 높아지는 해양 생태계의 대변화를 예고한 거라는 현대적 해석이다. 정감록에 또 예언하기를, 말세엔 생선과 소금 값이 아주 떨어진다고 돼 있는데, 이 역시 생태계의 일대변화를 예고한 것이란다. ●말세엔 계룡산으로! 정감록에 예고된 급격한 환경 변화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사흘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는 예언은 최근 몇 년 동안 여름철이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을 온통 뒤덮는 짙은 연기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구제역 등 전염병을 몰고 오는 황사현상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가올 재난은 황사 이상이다. 냇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두고 어떤 이는 수자원의 고갈, 녹색환경의 파괴를 예언한 것으로 읽었다. 말이 나온 김에 좀더 알아보면 정감록의 일부인 ‘서계이선생가장결’엔 이런 섬뜩한 내용이 있다.‘9년에 걸친 흉년,7년간의 수재(水災), 그리고 3년 동안의 역질(疫疾)이 닥칠 것이다. 열 집 중 한 집만 겨우 살게 될 것이다. 이상하구나, 세상의 재난이여! 전쟁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구나. 가뭄 아님 물난리, 흉년이 아니면 돌림병이로다!’ 정감록은 새 세상이 밝아오기 전 민중이 넘어가야 할 마지막 고난의 문턱이 다름 아닌 자연재해, 전염병, 그리고 경제대란이라고 못박았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1821년,1822년,1858년,1886년, 그리고 1895년에도 전국에 콜레라가 유행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1858년 한 해만도 50만명이 쓰러졌다. 조선 후기엔 독감,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해 사망자수가 수만을 헤아렸다.5∼6년이 멀다하고 찾아든 홍수와 가뭄으로 흉년이 끊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1807년엔 서해안 일대에 해일이 발생하여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1815년과 1817년의 대홍수 역시 처참한 피해를 안겨줬다. 이런 예에서 확인되듯 ‘정감록’이 예언한 말세의 조짐은 그저 막연한 공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상 민중이 겪은 집단적 고통의 기록이었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예언과 만나는 것이다. 대환란이 닥쳐오면 어떻게 피할 것인가? ‘정감록’은 특출한 10개의 명당 즉,‘십승지(十勝地)’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여러 지역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계룡산이 최고의 피난처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계룡산 인근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사이도 또한 길지라고 했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그 지역에 신행정수도가 예정된 것은 흥미롭다. 현지에서 만난 노인들은 ‘정감록’을 직접 인용해 가며 이 지역으로 반드시 새 수도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계룡산,600년 전엔 조선왕조 건국 세력이 정한 도읍지였다.300년 전엔 조선왕조를 혐오하던 민중의 희망이었다. 지금 또다시 그 계룡산은 신 행정수도 논란의 와중에 서 있다. 우리에게 계룡산은 과연 무엇인가? (푸른역사연구소장)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세계3위 ‘자전거 대국’ 일본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세계3위 ‘자전거 대국’ 일본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자전거는 생활의 필수품이다. 출근 전용이나 보조용, 장보기용으로 애용된다. 휴일에는 온가족 나들이용으로도 사용된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국민 3명당 2대이상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전거가 많다 보니 각종 사고나 방치된 자전거가 많아 사회적 문제로도 부상하고 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자전거 대국이다.2003년 8593만대로 중국(4억 6556만대·2002년), 미국(1억 2000만대·1998년)에 이어 세계 3위의 자전거 보유국이다(표 참조).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는 물론 작은 도시까지 자전거 이용자가 많다. 특히 집에서 전철역까지 출근보조용으로 애용하는 탓에 자전거 관련 산업도 발달했다. ●3명당 2대 보유… 의원들이 정착 앞장 7선의 중의원 의원 고스기 다카시 전 문부상은 자택에서 10㎞ 정도 떨어진 국회까지 자전거를 이용, 등원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아침 7시쯤 국회에 도착, 샤워를 한 뒤 8시쯤 자민당내의 부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55년째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다. 고스기 의원은 국회의원 회원만 107명인 ‘자전거활용추진의원연맹’ 회장이다. 연맹은 1999년 창립, 건전한 자전거문화를 만들고 문제해결을 위한 법률 정비 등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타니가키 사다카즈 재무상이 명예회장이고, 여야의 중·참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은 빠르게 늘고 있다. 회원 중 상당수는 교통난 해소 등을 위해 5㎞ 이내, 혹은 10㎞ 이내를 이동할 때 거의 자전거를 이용하고, 그 이상은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다. ●자전거 통근자에 특별교통비 지급 50대인 이사카에게 자전거는 보물이다. 매일 아침 자전거로 도쿄도내 나카노구에서 직장이 있는 지요타구 사무실까지 30여분 걸려 자전거로 출근한다. 시내에서 약속이 있을 때도 자전거로 움직인다. 저녁 약속이 늦게까지 있어도 큰 문제가 없으면 자전거로 귀가한다.20년째 이런 생활이다. 최근엔 나고야, 니가타, 후쿠오카 등 자치단체들이 자전거 통근을 위한 장려정책을 실시, 콩나물 전철이나 자동차 정체를 피하려는 자전거 통근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 사회경제생산성본부 주임연구원 고바야시 시게키의 설명이다. 나고야시는 통근거리 10㎞ 이내 직원 중 자전거 출근직원에게 특별교통비를 지급, 수백명의 직원이 차량출근을 포기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자전거 시민권 선언’이란 저서를 낸 고바야시 연구원은 “자전거를 이용한 통근은 상쾌하고 운동이 되기 때문에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매우 좋다.”며 “교통비도 절약하고, 환경도 지키는 일석삼조의 자전거 타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회귀현상에 따른 직장 근처 거주자가 느는 것도 자전거 출근이 느는 요인이다. 이에 따라 나고야시 등 많은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출근 뒤 가벼운 샤워를 하고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게 샤워시설을 보강하는 등 자전거 이용 활성화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자전거택시 등장… 관련산업 번성 일본은 2003년 기준 자전거 신규수요가 1122만대나 됐다. 관련 산업도 그에 따라 발달하고 있다. 전철역에는 자전거렌털 서비스 회사(하루 300엔 정도)가 등장했고, 자전거택시인 베로택시도 운행 중이다. 베로택시는 지역차가 있지만 첫 500m는 300엔이고, 추가 100m당 50엔이 더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전동보조 자전거도 인기다.2003년 기준 1년 생산대수가 20여만대로 언덕 지형에서는 자전거 운전자의 힘을 덜어주기 위해 동력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도쿄 등 대도시에선 경찰의 순찰용 자전거와 관련설비 산업도 번창하고 있다. 유아용 자전거의자, 자전거우산꽂이, 마일리지계산기, 벨, 발전기 등의 산업도 번창하고 있으며 자전거판매점도 전국에 2만 6113개(2002년 기준)일 정도로 번성하고 있다. 도쿄도내에만 자전거 소매점이 1876개나 되고, 오사카에서도 1737개소에 이른다. 소매점의 연간 자전거 판매액이 2083억엔(약 2조 830억원)일 정도로 시장규모도 크다. ●연간 600만~700만대 방치 일본은 자동차(2003년 7739만대·총무성 자료) 보다 자전거가 많은, 자전거 대국이지만 자전거 문화는 아직 문제점 투성이다. 특히 70년대 말 자전거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자전거가 인도로도 통행할 수 있게 돼 각종 문제점이 쌓이고 있다. 차도로 달리면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위협하고 인도로 달리면 보행자가 싫어하는 상황이다. 현재 도쿄 등 상당수 지역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거나 시범운용 중이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값싼 수입자전거가 늘어나면서 연간 600만∼700만대가 방치되고, 안전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주행 중 고장으로 인한 사고도 많다. 방치된 자전거는 수거돼 대부분 폐기처리되고 일부가 수리, 재활용된다. 일본자전거산업진흥협회에 따르면 방치 자전거 중에서 14% 정도가 소매점 등에서 고친 후 판매됐다.17% 정도는 시·구청 등지서 수거해 경매하거나 폐기처분했고, 69% 정도는 쓰레기로 수거돼 분해 재활용되거나 매립됐다. 시마노 요시조 자전거협회 이사장은 “품질이 떨어지는 자전거가 유통되면서 방치 자전거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자전거 안전기준 인증제도(BAA)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 자전거가 차도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하지 않은 것도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 중고 연간 5만대 北에 수출 |도쿄 이춘규특파원|전기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해간 중고자전거가 ‘가정용 발전기’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자전거산업진흥협회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중국제와 함께 일본의 중고자동차가 인기가 높다.”면서 “가정에서는 성능이 좋은 자전거 발전기를 손이나 발로 돌려 전기를 생산,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자전거산업진흥협회 국제사업부 오에 타구지 주임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방치 자전거를 수거한 뒤, 일부를 1400엔(약 1만 4000원)에 업자들에게 경매한 뒤 업자가 이를 수리,400∼500엔의 중간이익을 붙여 북한 등에 1900엔 안팎에 수출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에 수출되는 일본의 중고 자전거는 2003년 한해만 5만 3145대였다. 북한 외에도 캄보디아 31만 4000대, 홍콩 30만 9000대, 가나 7만 4000대, 기타 11만 6000대 등 86만 5000대가 수출됐다. 특히 북한에 대한 수출은 한차례 출렁인 뒤 증가세로 돌아섰다. 자전거산업진흥협회 통계에 따르면 1992년 대북한 자전거수출은 276대에 머물렀다. 북·일 수교협상이 시작된 직후다. 이후 급증추세에 있다.93년 395대,94년 1458대,95년 3000대였으나 96년에는 1만 492대가 된다. 이어 97년엔 2만 1000대,98년에는 4만 9000대가 수출된다. 하지만 99년 1만 9800대로,2000년에는 1만 4500대로 줄었다가 2001년 다시 2만 4000대로,2002년에는 3만 5000대로 늘어나고 있다. ■ 자전거 사고 ‘골치’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자전거가 많다보니 사고도 많다. 경상자, 중상자는 물론 사망자도 의외로 적지 않다는 점이 통계로 입증된다. 일본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도쿄 시내에서만 자전거사고 발생건수가 1만 3868건이었다. 그 중에서 사망자만 28명이었고, 중상자는 152명이었다. 일본 전국적으로도 자전거교통사고 사망자는 연간 1000명 안팎이다.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자료에 따르면 2003년의 경우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973명이었다.2002년 991명,2001년 992명,2000년 984명이었고,1999년에는 1032명이나 됐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10%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사고건수도 2003년 2만 5779건,2002년 2만 5500건이었다. 중·경상자는 매년 1만 7000명 안팎에 달한다. 이처럼 자전거로 인한 각종 사고가 많이 발생하면서 일본 정부 당국은 사고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일본자전거협회 등 자전거관련 단체들이 나서 ‘안전 캠페인’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강구 중이다. 자전거협회 이마자와 사부로 전무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미흡,“협회가 자주적으로 세계 수준의 안전기준을 마련, 계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전거 교통사고 안전교육은 민간차원에서 주로 이뤄진다. 자전거협회와 자전거산업진흥협회는 자체 ‘자전거안전기준’을 마련, 자전거 소매점과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되는 자전거의 표본을 추출, 자체적으로 안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국산·수입품을 막론하고 결함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2003년 기준 일본의 전체 자전거수요 1122만대 중에서 국내 생산은 252만대에 그쳤고, 나머지 870만대는 수입품이었다. 그 중에서 중국산이 92.5%인 805만대이고, 타이완산이 6.8%인 59만대였다. 베트남이나 그밖의 제3국산은 극소수였다. 일본 자전거 수입량은 1992년 100만대를 돌파한 뒤 급격하게 늘고 있다. 반면 국내생산은 5년전 연산 500만대가 무너지며 계속 줄고 있다. taein@seoul.co.kr
  • [장일의 바스켓 굿]김승현의 ‘즐기는 농구’

    한국 프로농구에서 팬과 감독,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는 단연 김승현(대구 오리온스)이다. 지난 28일 한·중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수비수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현란한 드리블과 송곳같은 어시스트, 날다람쥐같은 가로채기, 상대의 허를 찌르는 ‘클러치 3점슛’ 등 그의 플레이는 한국농구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비결은 무엇일까?본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저는 농구를 즐기면서 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중요한 대답이다. 김승현의 ‘즐기는 농구’는 인천 송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만들어졌다. 김승현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인 강동희 LG 코치 역시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고, 김승현 만큼이나 즐기면서 농구를 했다. 이렇게 좋은 선수들이 배출된 것은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전규삼 코치가 바로 이들을 길러낸 주인공이다.‘인천농구’의 대부였던 고(故) 전규삼 코치는 강동희와 김승현이 ‘즐기는 농구’를 할 수 있도록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 줬다. 눈앞의 성적보다는 선수의 장래를 중요시한 지도자의 철학이 자양분이 된 것이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하부리그인 NBDL에서 ‘빅리그’ 입성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방성윤은 한국 최고의 포워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NBA 전문가들은 창조적인 농구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최근 NBA의 한 스카우트 역시 “방성윤이 가장 많이 보완해야 할 점은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농구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세계 최고들이 모인 NBA에서도 창의성이 농구선수의 필수요건으로 꼽힌다. 전 코치의 지도 철학을 새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김승현은 행복한 선수다. 요즘처럼 힘든 세상에서 자신의 직업을 마음껏 즐기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까지 받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나이가 스물여섯에 불과해 앞으로 5년 이상은 전성기를 누릴 것 같다. 대학 감독인 필자는 김승현의 플레이를 볼 때마다 제자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농구의 ‘마당’을 열여줘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당장의 성적이 어린 선수들과 코치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현실이 힘겹지만 김승현과 같은 제자가 곧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제자들과 땀을 흘린다. 중앙대 감독·SBS해설위원 jangcoach200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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