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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엄동설한(嚴冬雪寒), 그야말로 깊은 한겨울이다. 겨우살이 짐승들은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채 더 이상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한껏 몸피를 움츠릴 터이며, 벌거벗은 나목들도 더 이상 수액을 얼리지 않기 위하여 한껏 중심을 뿌리에 내릴 터이다. 모든 생명들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하여 안간힘으로 혹독한 추위에 맞서고 있을 때, 어디 사람이라고 다르랴. 더군다나 혹독한 추위가 비단 수은주만은 아닌, 사람살이의 여러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라면 더욱 몸피를 움츠리고 차라리 주검이듯 뿌리 밑바닥으로 잦아들 터이다. ●한겨울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여주 8경 추위며 사람살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혹독하다면, 그대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 소중한 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자.‘소풍농월(嘯風弄月)’이라는 멋스러운 말이 있다. 바람에 휘파람을 불고 달을 희롱하며 기꺼이 한 몸이 되는 경지를 이른다. 어떤가, 차라리 저 바람이며 달만은 아닌 엄동설한과도 어울려 기꺼이 한 몸이 되어 보는 것이.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인 여주에는 뜻밖에도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풍광들이 많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여주팔경’ 혹은 ‘금사팔경’이라 하여 여주의 빼어난 풍광 8가지로, 여주 일대의 남한강을 일컫는 여강에 내려앉는 기러기, 청심루에서 바라보는 달빛,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마을의 저녁연기,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 아래 떠있는 고깃배들의 등불, 영릉의 푸른 신록, 팔대수의 청청한 숲을 꼽았다. 과연 어느 곳에나 드맑게 고답한 기운이 서려 있어, 소풍농월의 그대를 금방이라도 감싸 안을 풍광이다. ‘여주팔경’ 중에서도 나로서는 신륵사 종소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가 없다.1980년대에 신륵사에는 원경(圓鏡)스님이 주지로 주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거의 사흘이 멀다 하고 신륵사를 찾았다. 물론 원경 스님을 찾아서이다. 모르기는 해도 나는 자신이 지닌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없는 혹독한 시절이었을 터이다. 어느 때는 스님을 따라 나 또한 머리를 깎고서 단식을 하거나 혹은 한 달 넘어 머물면서 새벽이나 저녁이면 예불 대신에 신륵사의 종을 치기도 하였는데, 아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여 마침내 온누리로 퍼져가던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이라니! 처음에는 속된 중생의 손에 의하여 울리는 종소리가 혹여 삼십삼천의 뭇생명들을 잘못 인도할까 두려워 심장마저 벌벌 떨려났으나, 차츰 내 손으로 울리는 서른세 번의 종소리가 뭇생명들을 깨우고 또한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원력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다 보면 또 알랴, 어느 날 새벽에 저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어떤 무지함에도 번쩍 눈뜨게 될지. 원경 스님을 처음 대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스님은 역시 여주에 있는 흥왕사라는 절에서 주재하고 있었는데, 신륵사와는 달리 달랑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는 참으로 빈한한 절이었다. 절 식구 또한 빈한한 절답게 원경 스님과 벌써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 이렇게 달랑 둘이었다. 당시 작가 송기숙, 작가 황석영, 시인 조태일, 작가 이문구, 시인 이시영 등의 여러 문인들이 어울려 원주의 김지하 시인 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여주를 지나는 어름에 황석영 선배가 갑자기 원경 스님 이야기를 꺼내어, 에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고 흥왕사를 찾은 것이었다. 이미 원주에서 술이 거나해진 일행은 흥왕사에 오를 때도 아랫마을에서 한 말들이 막걸리 두어 통을 들고 올라와 대웅전 앞마당에 대뜸 술판부터 차렸는데, 송기숙 선생이 원경 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신륵사 종소리 뭇생명 일깨우고… “어이, 원경, 저 부처가 내 동생인데, 그러면 자네하고 나는 촌수가 어떻게 되는 것이여?” 그러자 원경스님이 호쾌하게 껄껄, 웃어넘겼다. “부처님 촌수야 너무 어려우니까 따지지 말고, 까짓것 저하고도 그냥 형님 아우 합시다. 형님!” “좋아, 그러면 부처 대신 아우가 먼저 내 술 한 잔 받게.” “좋지요.” 원경 스님은 막걸리 사발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더니 다시 송기숙 선생에게 넘겼다. 그런 원경 스님을 대경으로 우러러보는 나에게 누군가가 귓속말로 ‘저 스님,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들이야.’라고 소곤거렸다.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 행여 이름 모를 새라도 근방에서 귓속말을 엿들을까 싶어서였다. 시절이 많이 좋아진 지금이야 하늘이며 땅에 대놓고 무슨 말인들 못하랴. 그러나 당시로서는 박헌영이니 공산당이니 하는 말은 무슨 비상(砒霜)보다도 더 무서운 독극물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훗날 알았지만,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은 바로 원경 스님의 어머니였다. 빈한한 절, 한 사람은 스님이 되고 또 한 사람은 그 스님의 옆에서 공양주보살 노릇을 하는 박헌영 남로당 당수의 살붙이들. 역시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도 흥왕사 시절의 원경 스님만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젖어온다. 벌거벗은 나목이듯 뿌리를 밑바닥에 깊이 내리고 숫제 주검처럼 살아온 모자에게는 사람살이가 사시사철 엄동설한이 아닌 때가 없었으리라. 소풍농월의 여주에 어찌 드맑게 고답한 맛이 뒤따르지 않으랴. 신륵사 입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로 5km쯤 달려 강천면 이호나루를 지나면 바로 목아불교박물관이라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박물관의 한 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수줍게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걸구쟁이네’(031-885-9875)가 있다. 그러나 걸구쟁이네에 가기에 앞서 반드시 박물관에 들러 먼저 눈을 맑게 할 일이다. ●오신채·육류·해물 없지만 진수성찬 목아불교박물관의 목아(木芽)는 박찬수 관장의 호인데, 목조각 부문의 무형문화재 제108호인 그이가 필생으로 빚어내거나 수집한 6000여 불교 관련 작품들을 2600여평의 드넓은 터에 전시해 놓은 곳이 목아불교박물관이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야외조각공원에는 연못이며 수목들 주변에 돌이며 청동 같은 재료로 정교하게 빚어낸 미륵삼존대불, 백의관음상, 비로자나불,3층석탑 등 4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삼존대불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미륵삼존대불은 제작기법이 종전의 여느 부처상과는 달리 몸체 자체의 선을 반추상 기법으로 과감하게 처리하여 현대적인 세련미를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인도의 석굴사원을 모방했다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건물인 전시관은 외양부터 아름답지만, 안에 있는 여러 전시품을 둘러보다 보면, 박물관장의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깊은 종교적 심성 또한 무슨 향기처럼 저절로 보는 이의 가슴에 드맑게 스며온다. 걸구쟁이네는 주인인 안은자씨가 태어나서 자란 ‘걸구쟁이’란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바로 인근에 있는 강촌면 걸구쟁이에서 나고 자라 마흔 나이에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주인의 순진한 인상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원래 사찰음식은 오신채라 불리는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멀리 하고, 육류며 해류 따위 고기를 일체 쓰지 않은 고답한 음식이다. 오신채며 고기 대신에 스님들의 수행 중에 부족한 기름기는 깨며 콩, 부각 등으로 보충하고, 계절마다 산야에서 나오는 냉이나물, 취나물, 유채나물, 곤드레, 씀바귀, 소루쟁이, 고사리, 도라지, 머위, 근대, 곰취 등 각종 싱그러운 나물들을 주로 한다. 오이며 고추, 무, 가죽나물, 깻잎, 콩잎, 더덕, 산초 같은 여러 장아찌류에 버섯구이, 호박꼬지, 박꼬지, 산초두부, 장떡, 도토리묵무침에 된장국이며 청국장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한상 떡 벌어진 진수성찬이다. 걸구쟁이네는 사찰정식(1만5000원) 이외에도 도토리 요리도 전문으로 해서, 도토리수제비(6000원), 도토리묵밥(5000원), 도토리총떡(5000원), 도토리묵(1만원)이 있고, 각각 8000원짜리인 곤드레돌솥밥, 취나물돌솥밥, 산나물돌솥밥에, 모듬버섯전이며 장떡도 있다. 어느 것이나 안주 삼아 곡차라고 부르는 동동주 몇 사발까지 거나하게 마실 수가 있다. ●12가지 한약재 사용한 별미 돼지고기 보쌈 만일 여러 이유로 목아불교박물관이며 사찰음식이 저어된다면, 역시 신륵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북내면으로 접어들 일이다. 거기에 넓은 벌을 앞마당 삼아 무슨 사대부 집안처럼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의 형태의 ‘예닮골(031-883-5979)’이 있다.‘예닮골’이란 그대로 옛날을 닮은 마을이란 뜻인데, 얼핏 둘러보아도 뜰 안의 대청마루며 물레방아에서 가옥 뒤편의 장독대며 심지어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든 주인 되는 이순옥씨의 섬세한 손길이며 마음씨가 쉽게 묻어난다. 예닮골의 맛은 무엇보다도 예닮정식(1만 2000원)이 우선이다. 무려 12가지 한약재를 사용하여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없앤 돼지보쌈에다가 묵은 김치에 시래기를 섞고, 두부며 당면, 고기를 사용하여 커다랗게 빚은 왕만두에, 뚝배기 위로 샛노란 연꽃처럼 예쁘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며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고등어조림, 동치미, 망초대, 시래기무침, 표고버섯볶음, 도토리묵, 잡채, 짜배기김치,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무장아찌, 멸치조림 등 25가지에 이르는 반찬이 커다란 상이 좁아라고 가득 펼쳐진다. 게다가 이천쌀에 못잖은 여주쌀의 기름진 쌀밥이 나오고, 끝머리에는 누룽지까지 기다리고 있다. 아니, 식사를 끝내기 전에 주인이 자랑하는 예닮주를 반드시 맛볼 일이다. 전통적인 비법에 따라 빚었다는 예닮주의 누룩냄새가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이며 입에 살갑게 감쳐드는 감칠맛은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았다. ■ 전통차 손수 끓여보세요 여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미진하다면 마지막으로 신륵사 앞에 있는 세계도자기엑스포의 토야도예공방에 들러보자. 내가 즐겨 찾던 80,90년대와는 달리 신륵사 앞 넓은 강변이며 들판은 어느 새 관광지가 되어 강에는 황포돛배가 떠있고, 강변에는 보트장이며, 퍼팅장, 야영장 같은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뜻한 외양의 식당이며 숙박시설들이 또한 뒤따르고 있어, 옛날의 황량한 강변이며 들판만 기억하고 있는 나의 눈을 차라리 설게 만든다. 그런 신륵사 일대에서도 먼저 돋보이는 것은 단연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건물들이다. 생활도자전시관을 비롯하여 토야도예공방 건물이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시원시원하게 들어서 있어서 보는 이의 발길을 저절로 이끈다. 토야도예공방은 이를테면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다. 직접 도자기를 빚어볼 수 있는 ‘흙체험’에서부터 도예작가가 될 수 있는 ‘도예교실’, 아이들을 위시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흙놀이’, 전통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토야다실’까지 모두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다. 이중에서 ‘토야다실’(031-884-8552)은 전통차를 다룰 줄 모르는 이에게도 본인이 손수 차를 즐기게끔 찻물을 끓이는 법부터 차를 마시고 난 후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고른 도자기 찻잔으로 차를 담아 입안에 오래 맴도는 드맑은 차향을 얼마든지 즐긴 끝에, 나중에는 도자기 찻잔도 집으로 가져갈 수가 있다. 차향을 즐기고 도자기 찻잔을 챙기는 값이 불과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이다. 토야도예공방의 휴무인 월요일만 제외하면 언제든지 토야다실을 이용할 수 있다.
  • 왜 사는가/무량스님 지음

    무량 스님의 8인승 자동차 번호판에는 ‘Y ALIVE’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왜 사는가. 자신의 자동차를 보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이 질문을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포크레인을 손수 몰면서 10년째 한국식 절 ‘태고사’(영문 이름 Mountain Spirit Center)를 짓고 있는 미국인 무량 스님이 ‘왜 사는가’(열림원 펴냄)라는 제목으로 2권의 책을 출간했다. 어머니와의 사별 등 어린 시절의 아픔, 성장기, 숭산 스님을 만나 23세에 출가해 시봉이 된 이야기(1권), 태고사를 짓는 다사다난한 과정(2권)을 포함해 자신의 인생관, 종교관, 환경과 평화에 대한 소신을 진솔하게 담았다. 전편에 걸쳐 소년 같은 맑고 순수한 감수성과 구도자의 자세가 묻어난다. 그는 예일대 시절 포스터를 보고 참가한 법회에서 숭산 스님에게 ‘오직 할 뿐(Only Do)’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후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우며 화계사와 수덕사의 선방에서 수행생활을 한다.1986년에는 여러차례에 걸쳐 전국을 걷는 만행을 시작한다. 무량은 1992년부터 미국 서부에 한국식 절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동부에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고 조직도 정비되었지만 서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그때 자신의 속에서 놀랍게도 “그래, 내가 해야겠다.”는 답이 명쾌하게 올라왔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할 때부터 땅과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무량은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직접 현장을 답사한 끝에 1년여 만인 1993년에 현재 태고사가 들어서 있는 모하비 사막 터를 발견했다. 앞은 탁 틔어 있고 뒷산은 웅장하고 좌청룡 우백호 주작봉 현무봉까지 완벽한 땅이었다. 무량 스님은 ‘일생에 한번이라도 전혀 의심 없는 상태, 보자마자 완전히 믿게 되는 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그 감격을 표현하고 있다. 무량 스님은 위대한 의문,‘나는 무엇인가’를 묻고 깨어나, 우리의 참된 인간성을 찾고 올바른 길, 진리, 올바른 삶을 얻을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행을 통해 내면의 본성품을 발견하면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고 순간순간 무엇이 올바른 상황인지, 올바른 역할, 올바른 관계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오직 할 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태고사에는 현재 요사채와 대웅전이 들어서 있다. 내년 초에는 ‘평화의 종’을 타종할 예정이다. 하지만 태고사 공사는 언제 완료될 지 모르는 기나긴 과제다. 태고사는 완성보다 그것을 짓는 과정, 즉 노동 수행의 의미가 더 중요한 현장이다. 무량은 ‘참나’를 찾았을까. 무량은 자신도 무량을 모른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요청한다.“우리는 먼저 참나를 찾아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이며 누구입니까. 당신과 나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무량은 태고사에서 한국 불교가 세계와 연결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한국의 불교 문화와 역사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지, 태고사가 어떤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한다.‘왜 사는가’의 출간으로 얻는 수익은 한국의 선불교를 미국과 세계에 전하는 태고사를 발전시키는 데에만 쓴다. 각권 9500원 황진선기자 jshwang@seoul.co.kr
  • 조계종 초대종정 한암 生家 복원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한 한암 스님 생가가 복원되고 기념관이 조성된다.이와 함께 보물 496호 계성사지 석등이 있는 계성사지가 복원되고 200여명 수용 규모의 수련관이 건립된다. 강원도 화천군과 월정사는 23일 ‘한암 대종사 생가복원 및 기념관 조성사업’계획을 발표,“화천군 출신인 한암 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군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 586답 외 4 지역에 생가복원 및 기념관 조성,수련관 건립,계성사지 복원 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스님의 생가 복원은 2008년까지 총 94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생가와 기념관 복원,수련관 건립,계성사지 복원 등으로 진행된다.생가,기념관,문간채로 구성되는 생가 및 기념관은 총 3만 7198㎡(1만 1252평) 규모로 조성된다.이가운데 생가는 73.6㎡(22.2평),정면 5칸,측면 4칸으로 전통한식 목조로 복원된다. 한암 스님의 생애 및 자료가 전시되는 기념관은 194.4㎡(58.8평),정면 5칸,측면 3칸으로 건립된다.이곳에서는 화천군 불교 유적지와 함께 한암 스님의 생애및 관련 유물,화천군 관광자원 등을 볼 수 있다. 계성사지는 325.58㎡(98.48평) 규모로 복원되어 꾸며지는데 여기에는 극락전(153㎡),요사채(148.2㎡),산신각(17.1㎡),종각(7.2㎡),석탑,석등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암 스님은 1897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조계종 초대 종정과 3대 종정 등을 지냈으며 이후 27년간 평창 상원사에 주석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나를 찾는 휴가/여연 스님·대흥사 일지암 암주

    저녁예불이 끝나고 유천(乳泉)의 샘물을 떠서 차 한잔을 마신다. 만경 영안스님께서는 생의 근원을 찾아가는 산승의 하루를 차 한잔에 기대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금사자/ 오음굴 여기 쪼그리고 앉아있다/ 그러나 그 몸 한 조각 수경(水鏡)이/ 모공으로부터 빛 쏟아 일천강에 달빛이어라” 진흙의 푸른 돌속의 뼛속에 소나무는 늙은 용의 비늘 같은 화두를 참구하는 산승에게 시간은 마치 천강의 달빛처럼 무의미한 것이다.요사채앞에 피워놓은 모깃불이 사그라지고 귀뚜라미가 우는 듯싶더니 어느덧 창호지를 바른 창틀사이로 희멀건 달그림자가 떠오른다.벌써 늦은 저녁시간이 된 것이다.차구를 덮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즈음 가까운 산비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이른 아침 서울서 출발했다던 친근한 처사의 가족들이었다.“아이구 스님 죄송합니다.차가 막혀서요.겨우 지금 도착했습니다.” 처사를 제외한 3인의 가족들은 거의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늦은 이유는 단 하나 휴가를 떠난 사람들이 많아서 고속도로가 온통 가족을 태운 차량판이었기 때문이었다.산속에 사는 산승은 잘 알 수 없는 이유들이었다.제때 공양을 해야 하고 제때 예불을 드려야 하는 사찰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온가족이 무던히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지친 일상을 피해 전라도 남녘땅 깊은 곳까지 온 그들에게 이번 휴가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휴가가 돼버린 것이다. 지금 전국은 휴가중이다.물 좋고 계곡 깊은 곳이나 유명한 해변은 온통 사람들의 바다다.가는 곳마다 사람이 넘쳐나고 그리고 그들이 함께 토해내는 소음과 먹을거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준다.직장에서 지친 가장들이나 가족의 뒤치다꺼리에 지친 주부들,학업 스트레스에 쌓인 학생들에게 또하나의 스트레스가 더해진 것이다.어느때부턴가 우리나라의 여름휴가는 명절처럼 관례가 되어버렸다.마치 그 대열에 합류를 하지 못하면 떨어진 가족,무능한 가장이 돼버리기 때문이다.우리에게 연례행사처럼 다가오는 휴가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과 소비로 써버린다.짧고 고생스러운 휴가에서 돌아오면 일상의 큰 굴레를 힘들게 하는 막막한 공허가 가슴속에 밀려들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이쯤되면 휴가는 휴가가 아닌 또 다른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휴가(休暇)’란 말 그대로 사람이 나무아래서 편안하게 쉰다는 뜻이다.그리고 그속에서 잃어버린 나의 생이나 일상을 되돌아보는 사고(思顧)의 시간인 것이다.‘나’를 잃고 사는 삶은 인간에게 무척이나 무의미한 것이다.어느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진리란 무엇입니까.” 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마삼근.” 조주스님께서는 “뜰앞의 잣나무”,운문스님께서는 “해속의 산을 본다.”, 향림스님께서는 “ 오래 앉아 있으니 피곤하구나.”라고 대답을 하셨다.휴가란 나를 찾는 것이다.그리고 그 ‘나’속에는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풀어낼 화두가 있는 것이다.삶의 휴가란 바로 여행이나 먹는 곳에 있지 않다.나를 찾고 그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생의 길들을 천천히 음미하고 복기해보는 것이 바로 휴가인 것이다.그리고 마음의 여행을 떠난 자들에게 기다리는 행복이 있다.바로 늘 즐거운 생의 활력이다.지금이,오늘이,내일이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우리의 행복은 즐거움에 있기 때문이다.산과 계곡 해변 그리고 집에서도 우리는 ‘나’를 찾는 휴가를 통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연습을 해야 할 때다.달빛이 산 깊은 곳으로 기울자 수런거리던 서울가족들의 달디단 숨소리가 들려온다.풀벌레 소리와 얕은 물소리가 그들을 깊은 잠으로 이끄는 교향곡인 것이다. 여연 스님·대흥사 일지암 암주
  • 美 캘리포니아 태고사에 ‘평화의 종’ 세우는 무량 스님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 한국식 사찰 ‘태고사(太古寺·영문명 Mountain Spirit Center)’를 10년째 건립중인 미국인 무량(44·미국명 에릭 버럴) 스님이 한국을 찾았다.이전에도 10여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이번 방문은 경기도 용인에서 주조 중인 ‘평화의 종’ 타종식을 가진 뒤 이 종을 태고사 착공 10주년인 오는 9월19일에 맞춰 미국으로 운반할 계획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스님이 우리의 에밀레종을 본뜬 범종을 제작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미국 9·11 테러 직후.“테러 후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너무 속이 상해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죠.하지만 내가 시위에 참가해 목소리를 높인다면 결국은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종을 만들기로 결심했지요.”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로 설명하기보다 ‘평화의 종’을 통해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종소리를 들을 땐 모든 생각이 소리에만 모이게 마련인데,그 순간 종소리를 통해 평화가 실천되는 거지요.” 평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라는 스님은 “인류는 항상 싸워 왔고,전쟁 때면 저마다 다른 이유를 내세웠지만 결국은 석유 등 남의 물건을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150㎞ 떨어진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자리한 태고사도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대웅전과 요사채는 완성됐고,종각은 공사 중이라고 했다. “일요일마다 법회를 여는데 보통 20명,많으면 50명 정도가 찾아옵니다.아무것도 없는 산에서 돌 나르고 땅 파던 일이 힘들긴 했지만,그만큼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음식은 몸과 영혼을 지키는 일/여연 스님

    동다정에 올라 산밑을 내려다보다 보면 맑은 하늘의 바람이 산골짜기를 따라 슬금슬금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먼 대양의 어느 한 곳 깊은 심해에서 시작해 동해바다의 어느 해변까지 우렁차게 밀어닥치는 파도처럼 쏴아와 소리를 내며 나뭇잎들이 거칠게 울어댄다.때로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처럼 장중하게,때로는 베토벤의 ‘합창’처럼 완벽한 협주곡을 스스로 연주해내고 있는 것이다. 사방이 탁 터진 3평 남짓한 툇마루에 앉아 눈을 감고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자연의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천상에서 가릉빈가가 내려와 연주하는 음악보다 더 깊고 오묘한 느낌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간다.그러면 세상의 강물이 긴긴 역사의 회랑을 돌아 굽이치고 저 넓디넓은 창공의 별밭에 은구슬보다 많은 별꽃들이 으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듯 생의 환희가 가닥가닥 그리움의 물살로 내 깊은 곳까지 엉켜든다.그런 점에서 삶은 화엄(華嚴)의 바다요,세계일화(世界一花)의 바다에서 흩날리는 유영(遊泳)같은 것이다. 우리 암자에는 아주 특별한 신도가 몇분 있다.몇십리길을 버스를 두 번 타고 내려서 깊은 산골짜기 중턱까지 무명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오는 노보살들이다.산비탈을 올라오느라 쉴 법도 하지만 그냥 쉬는 법이 없다.그 노보살들은 암자에 오자마자 보따리째 부처님 앞에 바친다.“부처님 내가 약도 안 치고 계분(자연산 닭똥)을 듬뿍 먹여 키운 무공해 채송께 잘 잡수시오 잉.그럼 부처님이 자신 줄 알고 얼릉 찬을 맹글어 우리 스님께 올릴라요.” 옷을 걷어붙이고 요사채 앞마당 수곽에 굽은 허리를 디밀고 보따리를 푼다.검게 익은 곱디고운 흙들이 점점이 묻어있는 연푸른 빛깔이 도는 고추,상추,배추가 쏟아져 나온다. 얼갈이 애기배추는 참기름과 태양초 고춧가루 들깨를 듬뿍 묻혀 겉절이를 만들고,푸르다 못한 맑고 투명한 연한 무 잎사귀와 총각무는 유천(乳泉)의 맑은 물과 함께 시원한 백물김치가 된다.방구들에 푹 익혀담은 된장과 함께 올라온 풋고추는 보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정도다.“씨님 싸게 드시지요.” 나에게 직접 만든 점심을 권하는 그들을 보노라면 마치 깊은 산속에 자리를 펴고 하늘빛과 광휘하는 금싸라기들을 보듬은 지고지순한 관세음보살을 보는 듯하다.그런 점에서 그들은 종종 나에게 화엄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생의 환희를 제공한다. 지금 세간에는 ‘먹을거리’에 대한 것이 중요한 화두중 하나인 것 같다.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먹을거리에 인간의 몸을 황폐화시키는 못 먹는 것들을 집어넣은 것이다.문제가 발생한 ‘만두소’나 ‘공업용 고춧가루’파동 문제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던 식품유통 문제중 하나다.1000만원 미만의 벌금을 물고 14억원이란 큰 돈을 만지기 위해 버젓이 상행위를 하는 기업주들에게 단 한점의 ‘양심’이 남아있지 않다. 음식은 자신의 영혼과 몸을 지키는 중요한 일 중 하나다.가공음식을 파는 기업주도 문제겠지만 인스턴트음식을 사먹는 사람들도 문제다.자신을 가꾸는 소중한 일을 기계나 남에게 대신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를 피폐하게 하고 속도주의에 물들게 하기 때문이다. 음식 만들 재료를 직접 고르고 정성을 다해 만들 때 존재의 무한한 기쁨을 확인할 수 있다.우리 일상생활에 음식을 만들어 먹는 기본속에서 우리는 그속에 숨겨진 생의 진리와 그 가치에 대한 광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속에서 정말로 멋스럽고 품격있는 생의 여유와 한적을 즐기고 있다는 아름다운 생의 자부심,그리고 먹을거리의 진정한 공유를 통해 이세상 가득가득 넘쳐난 맛깔스러운 생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여연 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 비구니 도량 운문사 ‘동안거’ 르포/ 3개월 긴 話頭… 불 밝히는 산사

    동안거(冬安居) 결제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경북 청도군 운문면의 비구니 사찰 운문사.호랑이가 걸터앉은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호거산(虎踞山) 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천년고찰에 비구니와 사미니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 운문사에서 비구니와,공부하는 학승 사미니들은 일년 365일 어느 한 날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고된 수행과 공부를 이어가지만 동안거는 이들에게도 다른 수행 납자들 못지 않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8일부터 3개월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정진하는 동안거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몸가짐이 어느때보다 조심스럽다. ●300여명 하루 평균 12시간 용맹정진 올해 동안거에 참여하는 스님은 이곳 강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미니 270명과,다른 사암에서 동안거를 나기 위해 문수선원으로 찾아든 비구니 28명 등 300여명.평소 하루 8시간씩 수행에 정진하지만 동안거 기간엔 평균 12시간에서 길게는 18시간씩 참선에 드는 용맹정진을 강행한다. 새벽 3시에 기상해 4시25분까지 아침 예불을 마치고 1시간 가량 입선(入禪).아침 공양에 이어 7시20분까지 청소,9시30분까지 강의를 마치면 아침 일정이 끝난다.오후2시까지 울력 등 자유시간을 가진뒤 1시간 가량 입선에 들고 저녁공양 뒤 밤 9시까지 다시 입선정진한뒤 취침에 든다. 현재 국내에는 비구니들을 교육하는 강원 5곳이 있지만 운문사 강원은 마치 ‘군대식’의 엄격한 질서와 규율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최대의 비구니 도량이다.수행 정신의 핵심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一日不作 一日不食’.공부와 일이 따로 있지 않다는 정신아래 모든 스님들이 각자 맡은 소임을 철저히 수행한다. 강원에 소속된 270여명의 학인 스님들은 어느 순간도 자기 소임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공양에 드는 쌀만 해도 하루 한 가마.김장에는 배추 1만2000포기가 필요하다.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스님들이 손수 쌀농사를 지어 모내기며 벼베기,탈곡까지 했지만 지금은 소작을 준채 밭농사를 지어 먹거리들을 자체 해결하고 있다.물론 공양과 청소같은 살림살이는 모두 스님들의 몫이다.공양시간 때만 되면 공양간에서 밥이며 반찬 짓기 소임을 맡은 스님들은 비지땀을 쏟기 일쑤.그시간 곳곳에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 청소며 울력이 착착 진행된다. ●공양에 드는 쌀만 매일 한 가마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금당과 요사채에서 엄숙한 회의를 갖는다.동안거 한 철 맡을 소임과 수행시간표를 짜기 위한 모임이다.옛날과 달리 스님들의 소임도 각양각색.‘종두’라고 불리는 1학년에겐 설거지며 허드렛일이 맡겨지고 2학년 ‘원두’에겐 채소가꾸기,3학년 ‘미화’에겐 부엌살림이,4학년 ‘화엄’에겐 절 살림을 총괄하는 일이 주어진다. ‘추승구족’.가을 스님은 다리가 아홉이라고 한다.가뜩이나 가을철엔 할 일들이 많은데 동안거의 수행정진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그래도 이들의 동안거 준비는 어김없이 마무리됐다.저녁 입선까지 모두 마친 밤9시,산사는 비구니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던 한낮과는 달리 쥐죽은듯 고요하기만 하다.동안거가 공식 시작하는 입제까지는 12시간.그러나 환하게 불을 밝힌 금당이며 인근 문수선원에서 스님들은 너 나 없이 화두를 잡고 참선에 들었다. 글 사진 운문사 김성호기자 kimus@ ■천년고찰 운문사는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신라 진흥왕대인 557년 한 신승(神僧)이 3년간 수도끝에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600년 원광국사가 중창해 귀산,추항 등 두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했으며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1955년 금광 스님이 비구니 초대주지로 부임한 뒤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됐고 현 회주 명성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도량의 면모를 크게 바꾸었다.운문승가학원이 1987년 4년제 운문승가대학으로 개칭,지금까지 2000여명의 비구니를 배출했으며 현재 270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연구하고 정진하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자 수행도량이다.
  • 茶 “마시는게 아니라 수행입니다”한국차 문화운동 펼쳐온 여연 스님

    “차(茶)의 기본은 겸손과 덕행입니다.그런데 요즘은 정신은 사라진 채 달이고 마시는 기술과 형식에만 치우쳐 안타깝습니다. 고려 도공의 혼이 담기지 않은 요즘 청자가 ‘현대 자기’일 뿐 고려청자가 될 수 없듯이 우리 고유의 온전한 가치와 정신을 담지 못한 차는 한낱 음료수일 따름입니다.” ●“때묻지 않은 인성과 같은 차” 쌀쌀한 날씨이지만 산에는 여전히 푸른 빛이 휘돌아 대롱대롱 매달린 감 몇 개만이 유난히 붉은 기운을 퍼뜨리는 전남 해남 두륜산 자락.대흥사 대웅전을 지나 가파른 숲길을 40여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일지암에서 만난 암주 여연(57)스님은 초의선사(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을 거듭 읊었다. “예부터 차와 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초의선사는 차의 성품을,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같은 것으로 보았지요.” 여연 스님은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 차만이라도 우리 민족문화의 건강한 주체성을 찾자는 차문화운동을 일관되게 펼쳐온 조계종 스님.한국의 다성(茶聖)으로 통하는 초의선사 장의순(張意恂)이 말년 40년을 보낸 한국 차의 성지 일지암을 13년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물면서 다산 정약용,완당 김정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차를 매개로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인연을 맺었으며 그 유명한 ‘동다송’‘다신전’같은 저술을 남겼다. 지금의 일지암은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지난 1978년 복원해 대흥사에 기증한 것으로,초의선사의 살림채였던 자우산방과 작은 법당,허름한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초의선사가 주창했던 ‘다선일미(茶禪一味)’는 비단 불교에 국한하지 않는 사상입니다.모든 주장과 사상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화합의 원칙을 강조한 셈이지요.요즘 각별히 새길 만한 이론입니다.” 흔히 불가에서 차는 스님들이 의례로 마시는 것이라지만 여연 스님에게 있어서 차는 수행은 물론 우리의 것을 사랑하기 위한 각별한 방편이었다.출가 동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스님이 초의선사의 흔적이 남은 일지암을 택해 지키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세대 철학과재학시절 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흥호 목사의 공개강연을 듣고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학자였던 김흥호 목사는 벽암록이며 노자·장자 같은 동양철학을 두루 꿴 석학이었습니다.하루 한가지 반찬에 한끼 밥만 먹는 1종식을 어기지 않는 도인이었지요.자신에 철저하면서 열린 생각을 가진 목사의 모습에서 새벽별같은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결국 졸업하던 해 가을 가출했으나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한 채 태백산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한 선방에서 만난 학승으로부터 해인사 이야기를 듣고 해인사로 출가,지난 연말 입적한 혜암 전 조계종 종정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스님은 혜암 종정의 네번째 상좌).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스님은 해인사에서 만난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에게도 할 말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74년 본격적으로 ‘차' 입문 “인도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때였지요.성철 스님을 만나,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한번에 500∼600명이 몰리지만 불법을 전할 잡지를만든다면 1만명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간곡히 말씀을 드렸지요.” 그래서 창간된 게 월간 ‘해인’지다. 1974년 해인사 강단에서 차를 익히기 시작한 스님은 당시 한국 차의 거봉이었던 효당 스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77년 전국 10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차연합회를 결성한 주역이다. 이같은 이력을 눈여겨본 대흥사가 지난 90년 스님을 일지암 암주로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80년대 중반 한때 재야운동에도 몸담았지만 당시 변혁세력이 해방신학이니 사회과학에 치우친 데 불만,대승불교승가회란 조직을 만들었다.이 조직은 나중에 정토불교승가회와 합쳐 지금 대표적인 불교 실천단체인 실천불교승가회가 됐다. “당시 대학가나 지식인 사회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아무 비판없이 빠져드는 세태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그에 맞선 대안으로 차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지금 차 인구가 300만을 넘었다고 하지만 차를 제대로 알고 마시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일지암 앞 텃밭과 뒤뜰에서 직접 일구어 딴 찻잎으로 만들어낸 차에는 스님의 법명인 ‘여연차’라는 이름을 붙였다.‘여연차’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차’로 통한다.일지암을 찾는 도반이나 지인,뜨네기들에게 베푸는 스님의 차 인심도 넉넉하다. ●현대를 결합한 전통으로 계승 “이제 마시는 음료로서의 차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코드로서의 차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우리 차가 온전하게 계승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흉내내기를 넘어 역사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신라차’‘고구려차’‘선차’ 등 각양각색의 이름을 지닌 차들이 난무하지만 사실상 깊이 들여다보면 내용없는 형식의 홍수일 뿐”이라는 스님은 그래서 지난 2000년 일지암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초의차문화연구원’을 발족시켜 초의선사의 전반적인 사상을 발굴하고 있다. 차에 관심이 많은 불교계,학계,언론계 인사 32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달 중순 광주 ‘예술의 거리’에 번듯한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실을 직시하여 역사의질곡을 극복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관념의 유희에 매몰돼 참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스님은 “전통이란 그릇 속에 현대를 채워야 하며 우리 차도 같은 이유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며 일지암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해남 일지암 글·사진 김성호기자 kimus@
  • 전시 리뷰 / ‘영혼의 여정’ 특별전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찾아가기 쉬워진 절 중 하나가 서산 개심사(開心寺)다.상왕산 기슭의 개심사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산지중정(山地中庭)형 절이다.마당을 중심으로 전각이 사방을 둘러싼 크지 않은 사찰이다. 안양루를 지나 중정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보전이 있고,좌우에 요사채인 심검당과 무량수각이 자리잡았다.조금 떨어진 곳에 명부전이 있다. 불국사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시대 절은 물론,발굴이 한창인 여주 고달사 같은 고려시대 절 하고도 구조가 다르다.전각이 아주 단출해진 것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에 따라 불교가 퇴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혼의 여정-조선시대 불교회화와의 만남’ 특별전은 이런 추측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사후 세계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유교의 빈 자리를 조선 불교가 파고들면서 현실의 고통을 내세에서 보상받는 명부전 신앙으로 발전시켰고,신앙 체계에 맞게 공간을 확립시킨 결과가 바로 개심사와 같은 구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기획 전시실은 대범한 공간 구성이 먼저 눈길을 끈다.가로 242.2㎝,세로 364㎝에 이르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등 큼직큼직한 유물 40여점으로만 꾸몄다. 전시실은 불화(佛畵)를 통하여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사찰 하나를 표현하려 한 듯하다.실제 절에서는 불화들이 여러 전각에 흩어져 있고,컴컴한 법당 안에서 흐릿한 촛불만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지만,여기에선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저승사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명부전(冥府殿)에 들어선 셈이다.지금은 없어진 북한산 태고사에 걸려 있었다는 시왕도(十王圖)는 생전의 죄과를 심판받는 모습이 생생하다.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의 죄과를 비춰보아야 하는 업경대(業鏡臺)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그러나 고통이 가득한 명부전에도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 담긴 천진난만한 동자상이 있고,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계신다. 극락으로의 여정을 가시화한 것이 감로탱(甘露幀)이다.고통받는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올리는 천상세계의 모습이다.현실세계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중생을 질병의 고통에서 헤어나게 하는 약사불,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의 모습은 영혼이 궁극적으로 닿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상징한다. 조선 후기답게 몇몇 그림에서 서양식 명암법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간혹 눈에 띄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표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여래도(四如來圖)를 비롯한 보물 3점도 나왔다.사여래도는 1997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71만 7500달러(당시 환율로 6억 3000만원)에 낙찰받아 화제가 됐던 유물이다.특별전은 10월5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 기자 dcsuh@
  • 무안으로 떠나는 초가을 마중/은빛 물결 너머 소리없이 가을이…

    전남 무안은 요즘 연꽃이 한창이다.무더위 끝의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 소담스럽게 피어난 연꽃은 무안 초가을 풍광의 백미.도리포 가는 길 옆의 한적한 해안에선 구릿빛 얼굴의 어부가 석양빛을 받으며 투망을 던진다. 산 밑 구릉지는 온통 황톳빛 세상이다.이밭 저밭 황토 속에서 실하게 영근 양파를 수확하느라 동네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23일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는 처서.무안으로 초가을 마중을 나간다. 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의 회산 백련지(回山 白蓮池).연잎이 10만평 저수지를 가득 덮은 가운데,드문드문 흰 연꽃이 초록빛 수면을 장식하고 있다.나들이객이 제법 많다. 누군가 ‘꽃이 별로 없다.’고 불평한다.하지만 서너달동안 꾸준히 꽃이 피고 지면서 군자다운 풍모를 지키는 게 바로 백련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그는 모르는 듯하다.연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렴계(周濂溪)의 ‘애련설’(愛蓮說)을 한번쯤 음미해보아야 할 듯싶다. ●초록빛 수면 흰 연꽃 ‘백련지' ‘나는 연꽃을 유독 좋아한다/진흙 속에 피어나면서 더럽혀지지 않으며,잔 물결에 흔들리면서도 요염하지 않다/…/멀리서 바라볼 수 있지만,가까이 두고 감상할 수 없다/여러꽃 가운데 연꽃은 군자이다.’ 이곳 백련지는 일제 때 한 주민이 백련 12주를 심은 것이 번식을 거듭하여 동양에서도 손꼽을 만한 백련 자생지가 되었다고 한다.저수지 가장자리엔 백련 말고도 화려한 자태의 홍련과 희귀식물인 가시연,꽃이 물 위에 뜨듯이 피는 아기수련 등 수련과 식물이 자라고 있다.연꽃은 해뜬 직후인 아침 8시쯤 가장 싱싱하고 소담스럽다. 백련지를 나서 무안 북단의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로 방향을 잡았다.811번 도로를 타고 가다보니 몽탄역 못미쳐 분청사기 도요지인 ‘무안요’(務安窯) 간판이 보인다.조선 분청사기의 맥을 이어 14대째 도자기를 굽고 있는 김옥수씨의 작업현장이다. 관람객의 발길이 뜸해서인지 전시실의 불을 꺼놓았다가 사람이 들어가자 켠다.이곳에선 화병과 항아리,다완,주전자,대접 등 다양한 분청사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구입도 가능하다.미리 연락하고 가면 도자기체험코스에도 참여할 수 있다.(061)452-3513. ●진홍색 배롱나무꽃 저편 쪽빛바다 장관 무안읍을 거쳐 60번 도로를 타고 도리포까지 가는 길은 해변 풍광이 아름답다.압권은 해제면 유월리 서쪽 바닷가.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진홍색 배롱나무꽃 너머로 쪽빛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그 위로 소형 낚싯배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랫동안 핀다고 해 ‘나무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데,7∼9월 석달동안 꽃을 볼 수 있다.마침 해질녘 석양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결을 배경으로 어부 한 사람이 해변에서 투망질을 하고 있다.저녁 땟거리라도 마련하려는 모양이다. 도리포는 바다낚시로 유명한 곳.포구 앞 방파제와 갯바위에서 도미,농어 등이 잘 잡힌다.포구 앞바다는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칠산바다와 인접해 있다. 포구에 자리잡은 10여군데의 횟집에 가면 칠산바다에서 잡힌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도리포 동쪽으로는 산 기슭을 따라 해안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아직 포장이 끝나지 않은 도로를 따라 만풍리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보니 왼쪽 절벽 아래로 펼쳐진 풍광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백로·왜가리 집단서식지 ‘상동마을' 다음 목적지는 무안읍 용월리 상동마을.천연기념물 제 211호인 백로와 왜가리 집단 서식지다.도리포에서 다시 무안읍쪽으로 나와 서해안고속도로 무안IC 방향으로 가다보니 왼쪽으로 백로·왜가리 사진이 붙은 입간판이 서 있다.여기서 길을 꺾어 5분쯤 들어가자 상동마을이 나온다. 백로와 왜가리의 보금자리는 마을 뒤 청용산이다.매년 3∼4월이면 동남아지역에서 월동한 새 4000여마리가 이곳을 찾아와 집단을 이루어 번식한 뒤 10월이 되면 다시 동남아로 날아간다. 청용산 앞엔 연 잎으로 뒤덮인 용연저수지가 있다.이곳은 백련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홍련이 볼 만하다.아이 주먹만한 꽃봉오리가 불그스름하게 물이 오른 채 수면 위로 비죽비죽 나와 있는 것이 백년지와는 또다른 맛을 낸다. 저수지 한가운데 조성된 인공섬과 산을 오가며 노는 백로들의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연못 앞의 전망대엔 백로의 우아한 자태를 담아보려는 사진작가들이 진을치고 있다.하지만 가까이 다가왔다 싶으면 이내 멀리 날아가버리는 새들을 보며 이들은 온종일 안타까움만 삭이고 있다. 무안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식후경 무안은 세발낙지가 많이 나는 곳.목포 세발낙지가 유명하지만,갯벌의 생태변화로 요즘엔 목포보다는 무안에서 세발낙지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읍내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낙지골목이 있다.20여군데 업소가 모여 있는데,어느 집이나 값은 동일하다. 한 업소에 들어가니 주인 아주머니가 1만원에 4마리라고 한다.얼마전까지만 해도 6마리였는데 요즘 낙지가 귀해 값이 올랐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즉석에서 먹기를 원하자 물이 든 큰 대접에 세발낙지를 담아서 내준다.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세발낙지를 하나 집어 나무젓가락에 둘둘 감아 입에 넣고 꼭꼭 씹어먹는다.약간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세발낙지 맛은 언제 먹어도 변함없다.생마늘을 집어 쌈장에 찍어 먹으니 비린 맛이 싹 가신다. 돼지짚불구이도 무안이 자랑하는 먹거리.암퇘지 목살이나 목등심을 숯불이 아닌 짚불에서 구워낸다.육질이 부드럽고 지방이 제거돼 담백한 맛이 난다.몽탄면 사창리의 ‘녹향가든’(061-452-6990)이 잘한다고 소문 나 있다.1인분 6000원. 가이드 ●가는 길 회산백련지는 서해안고속도로 일로IC에서 빠져야 가깝다.백련지 이정표를 따라 811번 및 820번 도로를 잇따라 타고 10여분쯤 달리면 저수지에 닿는다.도리포는 무안IC에서 가깝다.IC에서 빠져 1번 국도를 타고 무안읍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백로·왜가리 서식지 입간판을 지나 60번도로와 만난다.여기서 우회전해 해제면 방향으로 계속 달리면 홀통유원지 및 유월리 해안이 나오고,송석리 도리포로 이어지는 길과 만나게 된다. 서울역에서 일로역까지 하루 11회 열차가 출발하며,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25분 및 오후 4시20분 하루 2회 무안행 버스가 출발한다.광주에서 무안까지 15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문의 무안터미널(061-453-2518),일로역(061-281-7788). ●숙박 망운면 톱머리해수욕장에 위치한 무안비치호텔(061-454-4900),무안읍내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우광파크모텔(061-452-7980)의 시설이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백련지 주변엔 민박집이 많다. ●가볼 만한 곳 승달산 자락에 있는 법천사 및 목우암에도 가보자.신라 성덕왕 24년(725년) 서역에서 온 정명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엔 법당 및 요사채,축성각 등이 있다.법당 안의 부처님은 종이로 만든 아미타 삼존불로,조각 솜씨가 뛰어난 조선시대의 불상이다.
  • 남북불교 ‘단청 불사’ 손잡았다/내년 3월 기술자 평양 파견

    불교계가 내년 3월부터 2006년까지 북한지역 사찰 59곳의 건물 144동에 5만여㎏의 안료를 지원하는 대규모 단청불사를 시행한다. 13일 불교계에 따르면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최근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과 북한사찰의법당·요사채 단청불사 지원에 합의,두 단계로 나눠 불사를 실시키로 했다.이에 따라 불교계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1단계 단청작업을 하는데 이어 2005∼2006년 2단계 불사를 통해 북한 사찰의 단청 불사를 마무리하게 된다. 남북 불교계는 단청 불사에서 남쪽의 단청 기술자가 북의 기술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으며,상태가 양호하고 사료가치가 높은 단청은 그대로 보존키로 했다. 북 사찰의 단청지원 불사에 가장 적극적인 평불협의 경우 첫 단청지원 대상사찰을 평양 만경대의 용악산 법운암으로 정했으며,내년 3월 단청 기술자를평양에 파견해 법운암 단청을 우선 실시한 뒤 사리원 성불사의 불상 개금도추진할 계획이다.법운암은 김구 선생이 3년간 승려생활을 한 곳이다. 한편 평불협과 조불련은 법운암 단청불사때 남한 불교합창단을 파견하고,조불련이 북쪽의 홍송(紅松)으로 제작한 ‘통일불상’을 평불협 서울 법당에안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맞물려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평불협과 민족공동체추진본부와 협의해북한사찰의 단청지원을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단청 불사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조불련이 단청 불사에 앞서 북한지역 사찰의 단청 상태를 조사해 작성한 ‘북반부 사찰 단청지원과 관련한 자료’에 따르면 사찰 59곳의 총 단청면적은 3만7489평,단청에 필요한 안료의 양은 4만7260㎏에 달한다. 김성호기자
  • 종교단신/ 내원정사 창건 30주년 기념법회 外

    ◆ 내원정사 창건 30주년 기념법회 부산 구덕산 내원정사(주지 정련 스님)가 창건 30주년을 맞아 새달 5일 오후 1시 기념법회를 갖는다. 내원정사는 지난 72년 신도 10여명과 함께 천막법당으로 시작해 대표적인 교육·복지의 대승도량으로 자리잡은 사찰.3차례 불사를 통해 5000여평의 대지에 대웅전과 요사채 등 전통식 사찰을 일궜으며 복지관과 문화의 집도 마련했다.1080평 규모에 600여명을 수용하는 유치원을 설립했고 석암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초·중·고교생 2000여명에게 장학금도 지급했다. ◆ 봉은문화센터 새달 7일 준공식 서울 강남 봉은사(주지 원혜 스님)에 시민선방과 전시공간·연회장·문화강당 등을 갖춘 대규모 문화센터가 들어섰다.착공 8년만에 완공된 지하 4층,지상 3층, 연면적 5600여평의 현대식 건물인 ‘봉은문화센터’는 새달 7일 준공식을 갖고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문화센터는 시민선방과 기초문화 예절학교,문화강좌,외국인 불교문화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며,특히 시민선방은 오전 4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방해 기초 참선교육,외국인 대상의 영어 참선강좌,열린 수행상담 등을 제공한다.
  • 국내 최대 납골추모사찰 해인사 ‘미타원’ 13일 개원

    해인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납골 추모사찰인 미타원을 경기도 고양시 대자산 자락에 마련해 오는 13일 문을 연다.미타원은 1만 3000기의 납골 수용시설을 갖춘 추모관으로 현대식 건축의 법당과 납골당,요사채 등을 갖춘 해인사의 말사격 사찰이다. 대림산업이 150억원을 들여 완공,해인사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문을 여는 이곳은 화장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납골시설 1만 3000기 가운데 대림산업이 1만기를 직접 분양,건립에 소요된 비용을 충당하게 된다.1년 안에 1만기가 모두 분양되면 남은 3000기의 분양은 해인사가 맡는다. 개원 법회는 13일 오전 11시에 열리며 법회가 끝난 뒤 장례문화 서명식과,관 속에 직접 들어가 명상하는 죽음체험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 동안거 마친 무상사 국제선원/ 한국참선 울력병행 인상적

    “동안거(冬安居)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결제(안거를 시작하는 일)를 같이했던 대중들 모두가 부처님 법 안에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결제 이후 내내 함께 했던 도반들이이 곳을 떠나더라도 흐트러지지 않는 수행자세를 견지하실것을 바랍니다.” 지난 25일 동안거 해제법회가 열린 충남 계룡산의 외국인전용 국제선원 무상사(조실 대봉 스님) 법당.벽안의 수행자41명이 좌복(방석)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합장한채 돌아가며 해제의 소감을 밝혔다. 러시아 출신의 한 비구 스님은 “지난 세월의 업을 녹이려참가했지만 능력이 부족하고 게을러서 스님들의 깨우침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감이 있다”면서 다음 안거에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미국에서 온 비구니 스님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한국의 안거를 통해 독특한 수행방식을 알 수 있게됐다.”면서 “이 안거는 평화의 의미를 몸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상사는 화계사 조실 숭산스님의 원력으로 1년전 완공된국내 유일의 외국인 전용 참선도량.단청도 들이지 않은 2층짜리 선방 건물과,54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3층짜리 요사채가 전부로 별도의 대웅전과 조사실 건물 공사를 곧 착수한다. 사실상 첫 동안거인 무상사의 이번 결제엔 비구 비구니와재가 불자 등 15개국의 외국인 87명이 참가했으며 35명이 3개월 결제를 꼬박 채웠다.오전3시에 기상해 대중회의를 갖고 4시 아침예불후 2시간동안 참선에 들어가는 등 하루 일정은 끊임없는 참선의 연속이었다. 6시 아침공양후 1시간동안 울력(힘을 합해 일함),9시부터또다시 2시간동안 참선한뒤 점심공양,오후1시부터 3시간30분동안 참선,그리고 공양 후 6시 예불,7시부터 2시간 참선후묵언으로 이어지는 한국불교의 안거 의식을 그대로 따라 외국인 납자들에겐 여간 힘든 수행이 아니다. 특히 외국 선원의 수행과는 달리 울력과,각자에게 각각 주어지는 소임 등 일과 수행을 병행하면서 자신을 다져가는,힘들지만 독특한 수행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참석자들은 입을모았다. 법회에서 수행 대표들은 조실 대봉스님께 예를 갖춰 감사의 뜻을 모은 선물을 올렸다.해제법회를 마치고 이들은 각자자신의 소속 사찰과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별리의 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그럼에도 표정엔 감정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주지 오진 스님은 “한국은 지구상에서 선 불교의 맥이 온전히 이어지는 유일한 곳이며 이는 지난 1700년간 수행정신을 지키려는 승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 한국의 훌륭한 전통이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 열매를 맺게 하는 초발심의 터전으로 무상사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산 글 김성호기자 kimus@ ■대봉스님 “‘모른다’는 생각으로 참선해야”. 무상사 조실 대봉(大峰·세수 52)스님은 해제법회 직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수행정신과 숭산스님과의 인연,수행방향에 대해 밝혔다.대봉스님은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심리상담사로 일하던중 숭산스님의 법문에 감명을 받고 출가해 지난 91년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다. [참선은 어떻게 진행됐나] 숭산스님이외국상황에 맞춰 만든 공안집 ‘세계일화’에서 선별한 공안을 따랐다.한국 선 수행엔 1700개 이상의 공안이 있다.이는 365일 내내 수행의 모든 과정에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참선지도때 대중들에게 강조한 부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은6년간을 ‘모르는 마음’으로 참선했다.그것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수행의 기본 목표는 우리의 근성을 깨달아 중생을 돕는 것이다.항상 나는 누구인가를 꾸준히 묻고 ‘오직 모른다’는생각으로 정진해야 함을 강조했다. [숭산스님을 어떻게 생각하나] 11살때 가족과 함께 일본여행에서 불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불교 경전보다 스승을 찾고자 했는대 1977년 예일대학에서 한국의 선사가 법문을한다고 해서 찾아가 들은 스님의 법문이 인연의 시작이다. 서양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허무함을 갖고 살았다.큰 스님의 법문은 그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울림으로다가왔다. [한국불교의 맥을 잇는 자신의 수행관은] 모든 동물이 배고플때 먹지만 이것은 동물의 마음이다.인간과 동물의 차이는왜 먹어야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편견과 집착을 중단하고 잘라내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매일 매일 일상에서 하는 것이 수행이지만 우리가 그것을깨닫지 못할 뿐이다.그래서 별도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김성호기자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도둑과 숨은 손

    사미승 둘이 서로 제 절 자랑을 한다.“우리 절에선 동짓날 팥죽을 쑬 때 스님 둘이 배를 타고 저어야 한다.”“우리 절의 요사채(숙소)에 스님들이 누우면 반대쪽 끝이 안보인다.” 절 집이 크면 얼마나 크고,그 속의 인총이 많아야 얼마나 많다고 자랑일까.세인들의 우물안 개구리격 허욕을 빗댈때 절집에서 우스갯소리로 흔히 하는 말이다. 속인들과는 다르다는 스님들의 인정이 이럴진대 사바세계의 욕심을 탓해 무엇할까.인류의 역사가 모두 욕심의 점철이다.“의인(義人) 10명이 없어 망했다”는 구약 성서의‘소돔과 고모라’구절은 욕심의 끝을 경계함이다.불교의‘적멸’이나 ‘열반’도 모든 욕심의 소멸 경지를 뜻한다. 전북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의 서쪽 벽이 휑하게 비워진데에는 흥미있는 전설이 얽혀 있다.절을 찾은 한 나그네에게 대웅보전의 벽화 그림을 맡겼더니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절대로 들여다보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작업에 들어갔다.그러나 스님 하나가 참지 못해 창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새 한마리가 몸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신빙성을 떠나,하릴 없는 욕심을 버리라는 교훈적인 이야기에 다름아닐 것이다. 누구인들 더 갖고 싶고,더 누리고 싶은 욕심이 없을까.하지만 세인들의 ‘새우젓 구경하기가 어렵다’는 절집 넘보기는 욕심의 도를 넘은 것 같다.조계종이 견디다 못해 마침내 전국 사찰에 무인 방범 시스템을 설치키로 했다고 한다.국보·보물급 불교 문화재들이 있따라 훼손되고 도난당한 끝에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낸 방책이다. 불교의 회향(回向)다짐은 고행중인 싯달타의 헐벗은 모습에 감동한 한 천민출신의 여인이 누더기 옷을 벗어바친 게 계기가 됐다.절집 도둑막이 소식은 석가모니와 불교의 회향 의미를 거꾸로 쫓는 것 같아 씁쓸하다.지난 봄 “문화재를 도난당한 절의 주지직을 박탈하겠다”던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그런가 하면 구세군 자선냄비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100만원이 든 익명의 봉투가 담겼다고 한다.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전해지는 미담이 세밑 인심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절집의도둑 방책이 과도한 욕심 탓에 생겨난 비극이라면,구세군 자선냄비의 ‘숨은 손’은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는 실천의 전형이다.욕심도 욕심 나름이라고 하지만 웬만하면 그욕심도 좋은 쪽으로 부릴 일이다. 김성호기자
  • [한강 그곳에 가면] 육지속 호수 ‘소양댐’

    물안개 피는 춘천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육지속의거대한 호수 소양댐이 벌써부터 초가을 정취를 담아내고있다. 지난 봄의 가뭄과 여름의 집중호우를 의연하게 담아낸 댐 주변 길섶에는 코스모스와 풀벌레가 어우러지고 울창하게 늘어선 활엽수들이 벌써부터 누런 낙엽을 드리우고있다. 아침 저녁 싸하게 피어 오르는 물안개도 여름을 저만치 밀어내고 있다. 소양댐은 춘천시와 인제군,양구군,고성군,홍천군 등 강원도 영서지역 5개 시·군을 흐르는 유역면적만도 2,703㎢에이르는 장대한 담수호다. 저수용량 29억t,물 깊이만도 198m로 상상을 초월한다. 73년 국내 처음 만들어진 다목적 사력댐(돌과 자갈을 쌓아 만든 댐)으로 댐 자체도 볼만하지만 주변의 청평사와 세월교 등 볼만한 곳도 많다. 우선 댐에 오르면 탁트인 담수호와 함께 호수 건너에 붙여 놓은 ‘소양강다목적댐’의 대형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선착장에서 오가는 배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정상에는 커피숍과 식당 그리고 길가에 늘어선 알루미늄박스 상인들이 철마다 맛깔스런 음식을 내밀며 분위기를돋군다.요즘에는 산더덕이나 옥수수,찐고구마 등 고향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음식들이 정겹다. 댐에 오르기 위해서는 평일의 경우 승용차로 바로 댐까지오를 수 있지만 주말이나 관광철에는 입구에 승용차를 주차한 뒤 셔틀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소양댐이 간직한 청평사는 가을이 좋다.댐에서 뱃길로 10분, 또다시 터벅걸음으로 30분이면 사찰까지 족하다. 천년사찰로 향하는 길은 계곡과 산이 잘 어우러져 있어 세상근심 덜고 홀가분하게 돌아오기 안성마춤이다. 소양호 한쪽에 우뚝 솟아있는 오봉산 기슭에 자리한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됐으며 조선 명종때 보우선사가 중건,대사찰이 되었단다.한국전쟁때 거의 소실된것을 70년대 전각들을 새로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다. ‘섬 속의 절’ 청평사로 이어지는 길은 철길, 버스 혹은승용차, 뱃길, 걷는 길 등 교통편을 갈아타는 재미 때문에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짱’이다. 소박하고 단아한 정취를 풍기는 청평사 위로 우뚝 솟은오봉산(해발 779m)은 아기자기한 암릉길의 스릴에다 바위봉우리 아래 소양호가 펼쳐져 있어 산행후 관광과 뱃길의재미까지 겸할 수 있어 가족 산행지로도 제격이다. 댐으로 오르기 전 소양댐을 건설할 당시 놓았다는 샘밭골삼거리와 동면 월곡(月谷)리를 잇는 ‘세월교’도 명물이다.콧구멍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해서 일명 ‘콧구멍 다리’로도 불리는 이 다리는 여름이면 춘천시민들의 피서지로,겨울이면 낚시꾼들의 빙어잡이 명소로 인기다. 세월교주변의 카페와 막국수집들도 덩달아 호황이다. 세월교는 달빛을 씻으며 마음을 정갈하게 헹구는 세월(洗月)의 다리라는 뜻.수온차가 심해 이곳에는 사철 물안개가피기도 한다. 소양댐은 내륙의 바다인 만큼 새벽이면 주변 어부들이 그물을 걷기 위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살을 가르는 생활터전이기도 하다. 예전같으면 노를 저어가며 몇 시간씩 그물걷이에 나섰던 어부들. 이제는 동력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얼마전 오음리고개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육지속의 섬이었던 호수건너 마을품안리와신이리 주민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했다. 오지마을이 다 그렇듯 품안리는 목적없이 한가로움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물속의 또하나의 마을인 신이리 곳곳에서는 고기를 낚는조사(釣師)들이 눈에 띈다. 보트를 갖고 있는 어부들은 이들을 낚시터로 안내해주면서 배삯을 받거나 민박으로 부수입을 올리지만 IMF 이후로는 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올 가을여행은 조용한 소양댐으로 떠나보자.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 (12)한필원교수의 생태주의 건축

    ◆ 현대건축의 대안 뭘까. 1972년 ‘로마클럽’이 “현 추세대로 진행된다면 지구의성장은 앞으로 100년이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후 인류는 환경의 심각성에 눈뜨기 시작했다.그 후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명제가 대두 됐고 1997년 ‘교토 환경회의’에서 유엔의 ‘기후협약에 관한 의정서’가 채택 되면서 각 분야에서 생태주의적삶의 방식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생태주의란 지구 생태계가 부분과 전체,개체와 환경이 밀접하게 연결된 유기체라는 인식에서 출발 한다.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자원 및 생명순환의 법칙을 깨지 않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생태적 삶이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환경친화적 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먹는 문제와 함께 삶의 근간이 되는 주택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 되었다.즉 어떤 집이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육체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런데 이 명제는 자연환경과 조화,그리고 자원 절약과 맞물린다.자연과의 조화가 정신적 안정을가져다 주고 자원절약형주택구조가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건축가들은 전통 마을과 가옥에서 이같은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환경친화적 건축의 전형을 찾는다.그 결과 소비 지향적이고 반생태적 현대 주택의 대안으로 전통 마을과가옥들이 눈길을 끌기 시작 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기술 개발 이전에 지어진 가옥들은 자연히 환경에 적응하는구조를 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 가옥은이제 건축사, 혹은 건축 미학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생명원리에 역행하는 현대 건축의 대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것이다. 생태주의 건축가들은 전통 가옥의 친환경적 요소와 현대건축의 편의성을 결합 시키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있다.동아시아 주거 건축을 연구한 한필원(韓弼元,한남대건축공학과)교수는 “전통 가옥의 생명친화적 요소와 현대건축 기술이 접목될 때 건축의 새로은 패러다임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생태 건축에 대한 의식이 싹튼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1990년대는 국제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생태적 관점이 싹트는 시기였습니다.그무렵 우리나라는 신도시 개발로 대규모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는 데 그 여파로 환경파괴적 건축에대한 반성이 일어 났습니다. ■아파트가 건강은 물론 공동체적 삶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막연하게 느끼고 있습니다.아파트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어떤 것을 들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는 대체로 평지에 들어서 있습니다. 공사하기 쉽고 공기도 짧아지니까 업자들은 선호 하지만 일조량 확보,배수 등을 고려하면 5도 이상의 경사가 필요 합니다.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아파트들이 얼마나 무감각하게 지어졌는가를 알 수 있지요. ■전반적인 문제점을 한번 짚어 주시죠. 첫째 대부분의 수도권 신도시가 그린벨트 경계 내에 있어서 환경,생태학적으로 적절치 않습니다.둘째 개발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연녹지,하천 등 자연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셋째 주거단지 내의 조경수 등 복원된 자연도 근린 생태계와 연결성이 없습니다.조경은 단지 미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그 지역 자생수종과 연결성이 있어야 합니다.넷째동(棟)의 획일적 배치로 냉,난방에 있어서 태양열,바람 등의 활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다섯째 자원의 소비형태와 순환방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기존의 공급처리 시스팀은 자원 및 에너지의 일방적 소모체계라 할 수 있지요.이러한 문제점들은 부분적인 개선으로는 극복하기 어렵습니다.즉 인간의 이용목적에 맞춰 자연조건을 극복하는방식에서 자연조건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에 대비해서 전통 마을의 친환경적인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입지조건 부터 다릅니다.삼면을 산과 구릉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데 우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자연스럽게 영역을표시 하면서 방풍 역할을 합니다.지형은 산을 등지고 있으면서 경사가 급격히 완만해진 곳에 자리잡고 있지요.대개남향이어서 일조시간이 길고 통풍이 잘 되는 곳입니다. ■산을 등지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하지요.계곡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이용하기 위해서 입니다.물이 흐르니까 앞에는 하천이있기 마련입니다.하천이 없는 곳에는 저수지를 만듭니다.산이 바람막이가 되기도 하고요. ■가옥들의 배치는 어떤가요. 조금씩 엇갈리게 배치돼 있지요. 햇빛과 조망을 방해하지않으려는 배려지요. ■대밭이 있는 집이 많은데 관상용만은 아니겠지요. 우리선조들은 대를 지조의 상징으로 숭상 하기도 했지만빽빽한 대밭이 방풍 역할을 합니다.생활용구를 만드는 원자재로도 쓰이고.그 대신 뜰에는 활엽수를 심습니다.활엽수는여름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겨울에는 잎이 지고 없으므로 일조량을 방해하지 않거든요. ■소재는 대개 조립식 목재에 흙벽인데 지붕은 소재가 다양한 것 같아요. 대부분 볏집 지붕이지만 논농사가 많지않은 곳에서는 너와,억새풀 등 다양한 소재를 쓰지요.어쨌든 전통 가옥의 소재는 흩어지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재들입니다.주위에많이 널려 있는 것들이어서 경제적이고 인체에도 좋구요. ■에스키모인들이 얼음 집을 짓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습니다.흙,나무 등 소재를 가까이서 구하는 것은 경제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환경친화적이거든요.■농촌 마을에 슬레이트 지붕이나 벽돌집은 넌센스인 셈이군요. 바로 거기에 현대 건축의 문제가 있습니다.서구 건축 양식이 들어 오면서 집의 구조나 소재까지 획일화 되다 보니 우선 지역 풍토와 맞지 않고 자원의 고갈을 재촉 합니다. ■전통 마을이나 가옥이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룬 것은 당시 목수들의 미적 감각일까요. 자연 환경과 더불어 오래 살다보면 이론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몸에 배는 것 같아요.대표적인 건물로 전북 부안에 있는 내소사 요사채를 꼽을수 있을것 같습니다.양쪽박공이 뒷산 봉우리와 비례를 이루고 용마루 선이 능선과기막히게 일치 하거든요. ■전통 가옥의 이런 것들을 도심의 주택단지 특히 아파트에도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동안에는 정부 정책이 우선 물량공급에 역점을 두다 보니 환경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또한 모델 하우스만 보고도 사람들이 몰려 드니까 시공업자도 환경친화 같은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지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주택보급율이 어느정도 올라갔고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달라지리라보는데 손쉬운 것부터 시작해 볼만 합니다. 예를 들자면단지내 조경지역을 텃밭으로 만들어 보는 겁니다. 꼭 잔디를 심어 놓고 들어 가지도 못하게 할 이유가 없지요.텃밭을만들어 노인들 소일거리도 되고 아이들 정서에도 좋지않겠습니까.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퇴비로 사용할 수도 있고.단지에 따라 연못을 만들수도 있다고 봅니다.연못은 장마철 비를 가두어 하수도가 넘치는 것을 막고 온도조절 역할도 합니다. ■아파트 내부는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될수 있으면 맞바람이 통하게 해야 합니다.층수를 줄여 바닥을 두껍게 하면 발코니를 정원이나 상추나 고추 정도 자급할수 있는 채마밭으로 가꿀수도 있지요. ■‘가이아 주택헌장’(The Gaia House Charter)에 보면 ‘정신의 평화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그와 관련해서 대개 아파트 주민이 되면 소비지향이되고 개인주의성향으로 변하는 데 아파트의 어떤 점이 주민의 의식을 이렇게 바꿔 놓는지 모르겠습니다. 아파트의 구조가 우선 이웃과 단절돼 있는 것이 문제 입니다.또편의성만 강조한 것도 원인입니다.제 친구중에 매일자고 일어 나면 103이라는 앞 동의 숫자만 보니까 짜증스럽다는 사람이 있습니다.이렇듯 삭막한 구조와 환경이 인심을각박하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파트에도 전통 마을의 우물,정자,사랑방같은 기능을 할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텐데요. ‘에코 빌리지’라는 말을 넣은 분양광고가 많더군요.아직은 말 뿐이지만.이 말이나왔다는 자체가 곧 환경에 신경을쓴 아파트도 지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이를테면어느 동의 한층을 빈공간으로 두어 공동 공부방,탁구장, 더발전하면 공동 취사장이나 빨래터를 만들수도 있지요. ■개인이 각자 자기 집에서 환경친화적으로 사는 습관도 중요 하겠지요. 물론입니다.이른바 편리함이라는 것이 그만큼의 역작용이있거든요.요즈음 웬만한 다가구 주택도 초인종을 누른 사람의 얼굴을 안에서 확인하고 대문을 열어주는 장치가 있습니다.오디오,비디오,컴퓨터 시스팀은 말할 것도 없고 냉난방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장치들이 있는데 모든 편리를 다 누리는 것은 전자파 홍수에 갖혀 사는 꼴입니다. 김재성 논설위원. ◆ 한필원 교수 프로필. ▲1961년생▲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사,석사,박사▲중국 칭화(淸華)대학 건축학원 연구학자▲공간 종합건축사무소 근무 ▲한남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1996∼현재)▲저서:‘주거의 문화적 의미’(공저)▲역서:‘인간 형태와 건축 디자인’(C.M.Deasy저)등
  • 성철스님 생가 복원 “의지 굳으면 영원한 깨달음”

    흔히 성철(性徹)스님과 해인사는 바늘과 실처럼 연상되지만 정작 성철스님의 생가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엄혜산을 뒤로 하고 앞에 진주남강 지류인 경호천이 내려다보이는 분지에서 성철스님은태어났다. 해인사 성철스님문도회와 산청군은 지난 98년 스님 열반5주기를 맞아 시작한 성철스님 생가 복원공사를 최근 마치고 오는 30일 현지에서 ‘성철대종사 생가복원 및 겁외사(劫外寺·주지 원구스님)창건 회향법회’를 갖는다.올해는스님 탄생 90주년,열반 8주기가 되는 해. 국고보조 16억원과 신도 모금 등 52억을 들여 복원한 생가와 겁외사의 규모는 3,789평.생가는 안채,사랑채,기념관으로 이뤄졌으며 그 옆에 대웅전,선원 쌍검당(雙劒堂),요사채 정오당(正悟堂),누각 벽해루(壁海樓)로 구성된 겁외사가 들어섰다. 성철스님은 1936년 동산(東山)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24년을 살았다.부친 이상언은 대지주였는데 장남이 출가한 뒤 곧바로 집을 헐고 앞 대나무 숲에 집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이후 스님의 생가터는 논밭으로 남아 있었다. 복원된 생가에는 스님이 30여년간 주석한 해인사 백련암염화실을 재현해놓았다.새벽예불 때마다 바라보던 석굴암부처님 사진과 평소 사용하던 낡은 책상,삿갓 등 일상적인 물건들에서 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그 옆 오른쪽 방은 모친의 거실,안채 오른편 사랑채는 부친의 방으로 꾸몄다. 기념관에는 스님이 40년동안 입어 누더기가 된 두루마리와 지팡이,덧버선,검정 고무신 등 30여점의 유품이 전시됐다.‘마삼근(馬三斤)’이란 친필 화두와 단성초등학교 시절의 학적부,젊은 시절 읽은 책 목록과 메모도 보인다. 겁외사는 스님이 말년 겨울철에 요양하던 부산의 작은 암자에서 따온 이름.‘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절’이란 뜻으로,세속을 초월한 영원한 삶을 화두로 평생을 정진한 스님다운 면모가 물씬 풍긴다. 김호석 화백이 그린 성철스님 진영과 불상을 모신 대웅전오른쪽에는 이달 말 조각가 강대철씨가 만든 6m 크기의 청동입상이 들어서게 된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란 주제로 열리는 30일 법회에선하객들에게 화환대신 20㎏들이 쌀1포씩을 보시받아 산청군내 어려운 주민에게 전달한다. 겁외사는 앞으로 인근 폐교를 임대해 ‘퇴옹수련원’을세워 청소년과 청년 불자들을 위한 선(禪)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스님의 맏상좌 원택(圓澤)스님(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은 “영원한 깨달음을 추구한 스님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면서 누구나 의지와 실천이 굳으면 성철스님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표본으로 삼고자 생가를 복원했다”고 말했다. 산청 김성호기자 kimus@
  • 고성 화암사 “설악 깊숙한 절집… 외로움 달래네”

    가을을 떠나보낸 설악(雪岳)은 그리움에 몸을 떨었다. 그 외로움을 달래는 것은 산정에 쌓인 흰눈이 아니었다.외려 늦가을정취를 품에 안은 고즈넉한 사찰과 황량한 들판에 일렁이는 억새가떠나는 가을의 고독에 답하고 있었다. 설악이라면 모두들 제 손바닥 보듯 안다고 지레짐작한다.그만큼 서울이나 타관 사람들의 발길이 일년내내 끊이지 않는다.하지만 설악 자락에 이처럼 예쁜 절집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않다.화암사(禾岩寺).44번 국도가 확장돼 길이 많이 짧아졌다고는 하나 서울에서 3시간을 쉼없이 달려야 미시령.흰눈 덮인 고개를 넘어 20여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대명콘도 안내판과 함께 ‘금강산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들어온다.화진포를 거쳐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길이라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스쳐 지나간다.하지만 화암사로 발길을 돌린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겨울나무의 열병식을 구경하며 5분을 더 내쳐달리면 왼쪽에 군부대가 보이고 그 뒤로 큼직한바위가 눈에 확 들어온다. 꼭 두꺼비 같기도 하고 계란을뒤엎은 것 같기도 하다.수(秀)바위.그아래 널찍한 평지에 절집이 틀어 앉아있으니 수바위는 곧 이 절집의얼굴인 셈이다. 신기하게도 이 절집은 바위를 향해 들어앉아 있다.절집에선 바다가보이지 않고 마당에 내려와야 동해 바다가 훤하다.절과 바다 사이 영랑호가 있고 양양과 간성의 모든 산줄기와 평원이 절집의 품에 들어온다.절 앞으로는 신선골이 흐른다.무려 30리를 흘러흘러 동해로 접어든다.그 물은 결코 많지 않지만 내는 소리는 벽력같다.시원하다. 신선봉이라 불리운 이 산자락은 미시령의 바로 오른편 봉우리.금강일만이천봉이 시작되는 봉우리로 오래전부터 여겨져왔다.이를 반증하듯 절집의 서북쪽 삼성각에는 상팔달,세존봉 등 금강산 봉우리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금강에는 8만9개의 암자가 있었다하니 이 절집은 그 암자군의 첫째인격. 신라 진흥왕때 지장율사가 화엄경을 설법했다 하여 처음에는 화엄사로 불렸단다.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로 쓴 현판 ‘무량수’가 완당이라는 호와 함께 새겨져있어 눈길을 끈다. 또 이 절집에는 한가지 특이한 게 있다.신선골 계곡에 기둥을 곧게박고 전통찻집 ‘란야원’(033-633-9998)이 들어선 것.요사채에 절집이라니.단청은 적당히 퇴색해 낯선 이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그저푸근하게 차향의 감미로움에 빠져들게 한다. 안에 들어앉아 동해바다를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다.눈이라도 내리면 그 삼삼한 정경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절집을 나와 500m를 달리면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렸던 신평벌.농사를짓던 땅이 분명한 구릉에 억새물결이 일렁인다.때마침 울산바위에 해가 얹어지자 그만 억새는 눈이 되고 만다.하늘하늘 춤추다가 이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토하고 만다.“눈이 부셔.”이곳은 강원도 양양의 여운포 억새밭(대한매일 10월19일 18면)과 함께 드라마 ‘가을동화’를 찍었던 곳으로 알려져있다.극중 준서(송승헌)와 은서(송혜교)가 키스를 나누던 장면이란다. 산봉우리에 걸친 햇살은 더욱 예광을 발하고 그 빛을 받은 억새는 더슬프게 흐느낀다.자동차를 몰고 억새밭을 누빌 수 있다. 다음날 낙산 앞바다에서 일출을 만끽함으로써 산과 계곡,사찰,평원,바다가 어우러진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어떻게 가나] 설악산 가는 길이야 다 아는 것이고,미시령 넘어 20여분 달린다.금강산 가는 길에 들어서 5분 정도만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왼쪽으로 수바위가 눈에 들어와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바위가 가까워질 무렵,화암사 일주문도 눈에 들어온다. 군부대 앞에서 3분 정도를 더 달리면 신평벌 억새밭.여기에서 15분정도 더 내려가면 방포항.방파제에 부서지는 거친 파도를 보며 겨울바다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다. [가을동화의 위력]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의 ‘순례’인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우리여행사(02-335-7137)는 2∼3일(무박) 화암사를비롯,가을동화 촬영지를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열린답사(02-2282-0624)와 옛돌(02-2266-1233)도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속초 임병선기자 bsnim@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첫 가출길 절집서 먹어 본 쑥밥엔 매캐한 향내... 내가 절집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열 아홉 살 무렵이었다.어느 잡지의 신인상을 받고나서 오랜 숙원이던 고등학교 자퇴와 가출을 동시에 해냈다.나중에대학에 가서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때에 유치장에서 만난 부랑 노동자와 간석지 공사장엘 찾아갔던 것은 본격적인 방랑이 되었지만. 하여튼 첫 가출은 거의 한 해가 걸렸다.동행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전여행비슷한 출발이었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오랫동안 국토를 누벼 본 적이 없었다.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삼학년 무렵이었는데 부둣가에 서자마자 배를 타고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겠다는 강열한 소망에 들떴다. 동행과 청주 대구 마산을 거쳐서 진주 어름의 농가에서 보리 베기를 하며 밥을 얻어 먹다가 중국집에서 -그때는 철가방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상자로 배달을 했는데- 자장면도 배달하다가 빵공장에서 빵 목판을 나르는 일도 했다. 청주에서는 아이스케키 집에서 합숙을 하면서 얼음통을 메고 거리로 나가 팔기도 했다.칠북이란 작은 면에 갔다가 야산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절집에 불목하니로 들어앉게 되었다.우연히 주지 스님과 이야기 해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산하겠다는 말이 나와 버렸던 것이다.스님은 거의 달포 가까이 나를 절에 두고 관찰해 본 다음에 일봉서신과 함께 부산으로 보내 주었다. 내가 절에서 난생 처음 먹어 본 음식이라면 쑥을 넣어 지은 밥과 엉겅퀴로끓인 된장국이다.쑥밥은 그냥 산야에 널린 쑥을 뜯어다가 콩나물밥이나 무밥처럼 넣고 지은 밥을 양념장을 쳐서 비벼 먹는다.역시 들판에 지천인 엉겅퀴를 캐다가 냉이국처럼 된장과 들깨를 넣고 한소끔 끓일 뿐인데 입안에 싱싱한 풀향기가 가득찬다.푸른 물이 든 쑥밥의 매캐한 향내도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내가 끝내 맛을 들일 수 없었던 것은 산초라는 이상야릇한 향내가 나는 열매를 가지 채로 간장에 담근 장아찌였다.열매의 알알이 약간 여물게 씹히는데 입 속에서 톡톡 으깨지면서 독특한 향내를 진동 시킨다.나중에 이 열매나 잎을 가루로 내어 미꾸라지 추어탕에 쳐서 먹던 것이 생각났다. 보살 할머니가 정성을 들여서 가죽잎을 말리던 것도 생각난다.너푼너푼한 가죽나무 잎을 따서 땡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찹쌀로 풀을 쑤어서 마른 나뭇잎에다 정성껏 바른다.앞 뒤에 찹쌀풀을 발라서 채반이나 자리에 널어 놓고 다시 말린다.이것을 저장해 두고 먹을 때에 기름에 튀겨낸다.마치 튀긴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아삭거리고 고소했다. 스님은 나를 동래 범어사에 있는 그의 도반이던 고광덕 스님에게 보냈다.광덕은 나중에 대학생불교연합의 지도법사를 거쳐서 불광이라는 잡지도 만들던분이다. 그는 당시에 범어사의 원주를 지내고 있었다.조실은 저 유명한 하동산 스님이었다.편지를 찬찬히 읽어 보고나서 그는 나를 동산 스님에게로 데려 갔다. 어린 아이처럼 곱게 늙은 노스님이 나를 힐끗 보고 나서 한마디 했다. 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있을라고 그러는고…?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묵묵히 앉았을 뿐이었다.절하고 나오기전에 한 말씀 올렸다. 갈 데가 없으면 쭉 있을랍니다. 그것이 아마 면접에 해당이 되었던지 광덕은 나를 말없이 재우고 나서 이튿날 범어사를 방문한 스님에게 붙여서 보냈다. 그것은 아마도 울산 거의 다 가서 후미진 바닷가에 있는 작은 암자였을 것이다.바로 지척에서 바위를 때리는 세찬 파도 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나를 데려간 스님은 불을 때라 밥을 해라 시키더니 저녁 밥으로 밥 한 사발씩에 고구마순 나물과 시어 터진 김치에 국 한 가지로 저녁을 먹고 나서 건너가 자랜다.단칸 오막살이인 줄 알았더니 부처님 모셔 놓은 법당 마루를 지나 왼편에 길죽하고 비좁은 변소 같은 토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방은 그대로흙을 바르고 오래 되어 꺼풀이 일어난 멍석 한 장이 깔렸다. 파도 소리에 잠을 못이루고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호통소리가 들렸다.부처님에 귀의하겠다는 놈이 예불 시간도 모르고 쳐질러 잔다고 그 꼭두새벽에 나가라는 소리였다.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을 달려 와서 걷고 또 걸어서 당도한 곳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지만 쫓아내니 가방을 달랑 들고 길을 찾아 나오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걷다가 타다가하며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보니 이미 끼니 때가 넘은 저녁무렵이었다.가방을 들고 산문에 들어서니 누구 하나 아는 체 하는 이가 없었다. 마침 요사채 툇마루에 얼굴 아는 동승이 앉아 있었다.그는 내가 범어사를 찾아올 제 버스에서 내려 십여릿길을 함께 걸어오며 이야기를 나눈 아이였다. 나이는 한 열 대여섯쯤 되었을까,살결이 희고 코가 오뚝하며 눈이 맑은 미소년이었다.그는 지금쯤 한소식 하고 큰 스님이 되어 있을지.내가 마루에 가서털썩 주저앉으니 그는 내가 멀리까지 다녀온 것을 모른 모양이었다. 내 얘기를 듣고는 동승이 빙긋이 웃었다. 문을 세 개쯤 지나야 입산이 되어요.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그가 나에게 왜 스님이 되려느냐고 물었다.나는 표를내는 건 어려서부터 질색이었으므로 이렇게 답했다. 어디 가서 밥 먹을 데가 없어서 여기나 들어오려구 해요. 엊그제 여기서 처음 자려고 할 적에 행자 하나 들어오더니 제법 능숙한 자세로 합장하고 나서 내게 자기를 찾으려고 왔느냐는 둥 소크라테스 같은 폼을잡길래 한마디 했다.집이 없어서찾아 왔을 뿐이라고 대답했는데 동승도 그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일은 집에 갈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리는 시험은 몇 번 더 계속 되었고 나는정말 세상에서 아무 데도 갈곳이 없는 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정처를 정하여 주었는데 거기가 참선 공부의 산실인 해운대 금강원이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공양의식에 참례하기 시작했다.스님들은 모두 목기로 만든 자신의 발우를 보자기에 싸서 대중방 선반에 올려 두고 있었는데 공양 때에는 그것들을 펼쳐 두고 모두 벽을 등지고 늘어 앉는다.제일 먼저 물을 받아 그릇을 씻고 밥과 국과 찬을 자기 먹을 만큼만 덜어 내어 각기의 목기에담아 공양한다. 국은 언제나 채소 된장국이고 찬은 나물 두 가지에 김치다.행사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는 기름기 있는 전붙이나 튀김도 나온다.식사를 끝내면 남은 음식물을 모두 제 뱃속으로 버린 다음에 물을 받아서 남겨 둔 김치 쪽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밥풀이며 음식 찌끼들을 말끔히 닦아내고 그 물을 마신다.그리고 다시 맑은 물을 받아헹구고 또 마신 다음에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서 보자기에 싼다. 나는 머리를 깎고 계를 받기 전까지 겉 모양은 스님과 같지만 아직은 연습중인 행자가 되었다.내가 맡은 일은 주로 절집 안팎의 청소와 허드렛일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마당과 앞 뒷뜰을 쓸고 법당에서 선원에 이르기까지 비질 걸레질을 하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스님들도 빨래는 각자가 알아서 했지만 각 방에 큰 스님들 밥상을 나른다거나 잔심부름 할 일도 만만치 않았다.부엌에 들어가 밥과 반찬을 만드는 일은커녕 불을 때는 일도 내게는 차례가오지 않았다.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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