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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 맞은 환율 널뛰기

    환율이 연일 ‘널뛰기’를 하고 있다.급격한 등락이 반복되면서 하루 변동폭이 10원을 넘기가 다반사다.올 1월에만 해도 하루 변동폭은 5원을 넘지 않았다.동전의 양면처럼 원화가치의 급락은 환율의 상승기조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환율상승은 다시 원화가치의 급락을 부채질하게 된다.최근의 원화가치 하락은 달러화 강세 영향과 함께 원화 가치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에서 비롯된다.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해 국내외에서 짙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달러 보유 줄이기' 심리 확산 20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10.8원 하락한 1246원에 마감됐다.결과적으로는 ‘해피 엔딩’이었지만 하룻동안의 환율추이는 급등락의 절정을 나타냈다.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5개월만에 최고인 1264원으로 시작했다.그러나 당국의 개입 가능성이 커지면서 1260원대 초반으로 밀렸고 오전 11시쯤 미국-이라크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과도한 달러 보유를 줄이려는 심리가 확산돼 1250원대 후반으로 추가 하락했다.이런 추세는 오후에도 이어져하락폭은 커졌다.결국 이날 환율은 1243.5원(오후 2시45분)부터 1264원(오전 9시30분)까지 20.5원의 진폭을 기록했다. ●출렁이는 환율 이달들어 20일까지 원·달러 환율의 전일대비 변동폭과 하루 변동폭은 각각 평균 7.32원,11.49원이었다.지난달에는 각각 5.0원과 6.1원에 불과했다.당국이 연일 환율과 밀고 당기는 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이라크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원유가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시장참여자들이 갈피를 못잡으면서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고 말했다.외환은행 임희진 딜러는 “환율이 뛰면서 달러 수급이 불안한 가운데 당국의 잇따른 구두 및 직접개입으로 환율 급등락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NDF(역외 차액결제 선물환) 등을 이용한 해외 환투기 세력의 개입도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당분간 활발한 등락 예상 앞으로도 ▲이라크전쟁▲북핵문제▲전쟁 이후 국제경제 전개상황 등 불확실한 요소들이 산적해 있어 큰 폭의 환율 등락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전쟁 추이와 유가 움직임에 따라 환율이 오르내리는 불안한 양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사설] 시장불안 덜어준 韓美 북핵합의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그제밤 전화통화를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했다.대북 폭격론 같은 군사적 대응 보도가 잇달아 경제가 요동치는 시점이어서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전쟁 불가’ 원칙을 수용한 것은 한국측을 북핵 문제의 당사자로서,능동적 역할을 인정해 준 것이다.두 정상의 북핵 합의는 해외의 한국시장 불신감을 누그러뜨릴 것으로 기대되며,증시 등에서도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북핵 합의는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 정신을 재확인하며,이라크 문제에 대한 미측의 입장을 지지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하지만 이는 한반도에서는 ‘평화적’,이라크에선 ‘군사적’이라는 이중 기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국익 차원에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두 정상의 북핵 합의는 각종 위기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더 큰 뜻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북핵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군사적 측면에 앞서 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빚어졌다.한국의 시장뿐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이미 악영향을 가져다주고 있다.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국제적 펀드매니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북핵 긴장은 이라크 위기와 국제경기 침체 등과 더불어 세계시장에 미치는 위험성이 상당하다고 어제 보도했다.한국의 주가 급락의 절반 이상이 북·미간의 긴장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주한미군 문제 등 현안에 있어서의 한·미간 불협화음도 시장의 불안정성을 부채질해 온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의 합의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변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합의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북핵 협상 방식이 다자간 틀 속의 대화로 변경된 만큼 하루빨리 그 실체를 마련해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말로만 평화적 해결 운운하는 것은 북핵 위협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북한측의 자제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 [공직자 에세이] 한 그루 나무를 심는 마음

    국민의 희망을 안은 새 정부가 힘차게 출범했다.나라 안팎이 많은 어려움에 싸여 있는 이때 참여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다. 국내적으로는 대구 지하철 참사,민족적으로는 북핵문제,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여부로 불안해진 우리 미래를 과연 어떠한 희망으로 바꾸어 내야 할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평화로운 나라를 이루는 것,희망적인 경제발전을 지속하는 것 모두 쉽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으로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과제들이다. 걱정과 희망이 중첩되는 이때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네덜란드 철인(哲人)의 경구가 이 시대에 매우 적합한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적(汎神論的) 사고가 함축된 이 말은 세상의 종말이라는 우주적 사건보다 사과나무 한 그루에 구현되어 있는 자연적 생명을 더 가치 있게 여김으로써 자연의 모든 생명을 신적 존재로까지 격상시키는 지극한 생명존중의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우리가한 포기의 풀도,한 그루의 나무도 이렇게 아끼는 마음이었다면 지하철에 탄 2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을 사지(死地)에 방치하거나 얼마간의 예산을 아끼기 위해 안전하지 못한 자재를 사용하는 어리석음은 범치 말았어야 하지 않았는가 깊이 반성하게 된다. 둘째,이 말은 주위 여건이 어떻게 심각히 변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철학을 끝까지 견지하겠다는 의미로 스피노자의 강한 사상적 일관성을 알 수 있게 한다.실제 스피노자는 그의 범신론적 철학 때문에 생존 당시 종교권력자와 타 철학자들로부터 심한 비판과 파문을 당했음에도 굽히지 않았다. 국가정책과 대외관계에서의 일관성은 개인의 일관성보다 훨씬 중요하다.그것은 궁극적으로 국가적 신뢰를 불러일으켜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가장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가벼운 행동은 결코 우리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 셋째,그가 일생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변의 희망’을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하다.개방된 경제체제에서 우리 경제가 외부의 불확실한 여건으로 요동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모든 국민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뢰를 가지고 내실을 기한다면 어떠한 불확실성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얼마 있으면 식목일이다.이미 남부 지역에서는 나무심기가 시작되었다.올 봄에도 ‘내 나무 심기’ 캠페인을 벌여 국민과 함께 총 5400만 그루의 나무를 전국에 심을 계획이다.국민 1인당 1그루가 좀 넘는다. 바라건대 올해 나무심기에서는 우리 모두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자세와 미래의 희망을 믿는 마음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정성껏 심었으면 한다.분명 올해 우리가 심은 나무는 훗날 지금의 많은 어려움을 훌륭히 극복하여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산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최 종 수 산림청장
  • [폴리시 메이커]차흥봉 건보통합단장

    ‘돌아온 건맨’ 건강보험 통합의 주역인 차흥봉(61·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달 18일 건강보험 재정통합의 특명을 받고 다시 돌아왔다.오는 7월로 예정된 건보 재정통합을 마무리짓는 작업을 맡는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통합 추진기획단’의 민간 공동단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정부측 단장이 강윤구 복지부 차관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단장직 수락은 의전을 중시하는 공직사회에서 이례적이다.지난 2000년 8월 의약분업 파동으로 ‘야인’으로 물러난 지 15개월 만에,공직은 아니지만 건보통합의 ‘마무리 투수’로 복귀한 셈이다. ●공무원→교수→장관→교수… ‘골수 (의보)통합론자’인 차 전 장관의 인생역정은 ‘의보통합론’의 부침과 맞물려 요동쳤다.지난 83년 보건사회부 보험제도과장 시절에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장·지역의보 통합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결국 담당국장 등 6명과 함께 옷을 벗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로부터 공금 80만원을 유용한 혐의를 덮어쓰고강제퇴직 당했지만 훗날 무혐의 처분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공직을 떠난 뒤 한림대 부총장,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거쳐 99년 5월 복지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공직을 떠난 지 16년 만이다. 취임 이후 건보통합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의료대란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건보통합은 내가 마무리한다’ 2001년 봄학기부터 다시 한림대 교수로 돌아갔던 그는 이번에 건보 재정통합의 최종 절차를 마무리짓기 위해 복귀했다.그는 “지금까지 계속 통합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측면에서도 (단장직을 맡는 게)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하지만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핵심은 재정 부실이다.의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다,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점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그는 “건강보험이 시작된 77년 당시 국민 한명당 1년에 0.7회 병원을 찾았지만 지난해에는 13회로 무려 20배 가까이 늘었다.”면서 “병원 문턱이 낮아진 만큼 재정의 어려움은 가중됐다.”고 설명했다.재정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행위별 의료수가 기준을 포괄수가제로 개선해 의료비를 낮추고,건강보험 이용 비중의 20%에 육박하는 노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차 전 장관은 “일본에서 지난 97년 만 40세 이상 국민을 의무적으로 가입토록 한 ‘노인요양보험’ 제도를 우리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 “건강보험 재정과 별도로 또 하나의 금고를 만들어 재정악화를 막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직장간,노노간 갈등 해소가 관건 건보통합 추진 기획단에서는 지역·직장간 공평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동일기준,동일소득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보험료 부과기준을 만드는 게 기본목표다.그는 “장기적으로는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여 소득기준으로 단일부과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당장 7월 재정통합 때는 지역·직장간 똑같은 기준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통합으로 한쪽만 손해보지는 않는다’ 재정통합으로 샐러리맨들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은 기우라는 설명이다.현재 직장·지역의 평균보험료는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통합한다고 직장인이 손해를 보지 않으리라는 얘기다.직장에서 지역으로 옮긴 사람들의 58%가 보험료가 인상된 반면,지역에서 직장으로 옮긴 사람들의 40%는 보험료가 내려갔다는 통계를 근거로 제시했다.그러나 상당수 직장가입자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의약분업은 성공적’ 진통은 겪었지만 의약분업 실시 자체는 성공적이라는 자신감도 숨기지 않았다.효과는 30년뒤쯤 국민건강의 향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했다.차 전 장관은 “이해집단의 반발이 컸지만 국민들을 약물 오·남용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다만 당시 장관으로서 환자 이동 등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1조 6000억원의 추가부담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국민연금도 고갈되나? 현재 적게 내고 많이 받게 돼 있는 구조로는 재정난이 불가피하지만 2044년 재정이 바닥난다는 것은 섣부른 추측이라고 지적했다.현재 요율대로 계산하면 고갈이 예상될 뿐이라는 설명이다.차 전 장관은 “현재 30년 가입자 기준으로 직전 보수의 45%를 받게 돼 있는데 5년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게 돼 있다.”면서 “앞으로 보험료는 높이고 소득대체율(소득에 비교해 연금을 받는 비율)은 낮춰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 10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언급,“수급자 규모가 인구의 3% 정도에 불과하고 생계가 어려워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선정기준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사회보험인 건강보험과 달리 국가가 전부 지원하는 공공부조인 만큼 ‘일은 안하고 혜택만 보겠다.’는 사람이 느는 것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김성수·사진 강성남기자 sskim@
  • [사설] 경제위기 대처 시나리오 만들라

    외환·주식·금융 등 3대 시장이 요동치면서 위기 신호음을 보내고 있다.환율이 폭등하면서 달러와 금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고,암달러상들이 다시 활개를 친다.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시장을 떠나는 외자이탈 현상을 보이며 폭락장세가 멈추지 않는다.주요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조짐을 보이고,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초긴축 경영에 들어갔다.우리 경제의 구석구석마다 위기의 신호음이 뚜렷하다.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위기적 요인은 북핵과 미·이라크 전쟁,그리고 SK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 등 세가지다.이 가운데 미·이라크 전쟁은 그 위험도가 이미 경제에 상당부분 반영됐다고 보는 견해들이 많다.문제는 북핵이다.국내 주요 은행장들은 한 모임에서 북핵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이들은 북핵문제가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중시켜 경제에는 사활적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고 인식한다.여기에다 SK 분식회계 사건까지 겹쳐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이 문제는 한국의 국가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입혀 앞으로 상당기간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1200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고가 든든한 방어벽 역할을 하고 있는 이상 위기가 조만간 현실화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다만 실제 상황의 위급성에 비해 새 정부나 국민들의 상황인식과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는 점을 지적코자 한다.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재의 경제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위기라고 떠들어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아닌 것처럼 숨기고,그 결과 위기 대응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당국은 국내외 경제의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어 단계적인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금융충격 막기 긴급대응,파문확산땐 국가신용 위험 은행권 증시안정협조 유도

    ★정부·채권단, SK대책 부심 정부가 새 정권 출범 이후 첫 금융정책협의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은행장 간담회를 잇따라 가진 것은 이라크전·북핵·SK분식회계 등 대내외 악재로 요동치고 있는 금융시장을 긴급 진화하기 위해서다.분식회계 장본인인 SK글로벌에 대해 ‘채권단 공동관리 방안’까지 대두되는 등 파문이 확산됨에 따라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SK쇼크 진화 부심 주요 채권은행장들이 지난 10일 긴급 심야회동을 가졌을 정도로 상황이 심상치 않다.SK글로벌의 금융권 차입금이 8조원을 넘는데다,종합상사의 특성상 그룹 계열사들과 얽히고 설켜 있어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북핵 문제에서 출발한 ‘코리안 리스크(국가 위험도)’도 증폭되는 양상이다.실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는 1.75%까지 급등했다.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정부와 채권단은 ‘한국판 엔론 사태’로 비화되지 않도록 SK글로벌의 고강도 자구노력을 요구하는 한편 수출입금융 지원을 계속해 일단 조기 정상화를 모색하기로 했다. ●부총리·은행장들,무슨 얘기 나눴나 SK쇼크와 ‘증시안정을 위한 은행권의 협조방안’이 주된 화두였다.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은행장들에게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쇼크가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는데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아울러 가계대출과 채권투자에 치중된 자산운용 행태를 자율적으로 개선해 달라고 주문했다.표면적으로는 권고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직·간접 주식투자를 확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이에 대해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은 주가연계채권(ELN)상품을 은행창구에서도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카드사 대주주 증자 왜 요구하나 ‘가계대출 대란’의 핵심은 카드빚이기 때문이다.실제 28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의 58%가 카드빚 관련이다.카드사의 대출채권은 총 84조원에 이른다.이 가운데 한달 이상 연체돼 카드사가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부실채권은 지난 1월말 현재 8조원이다.연체율로 따지면 11.1%로,6%대인 선진국과 비교하면 갑절에 가까운 수준이다. 재경부 신제윤(申齊潤) 금융정책과장은 “카드사의 현금흐름을 점검한 결과 아직은 큰 문제가 없지만,떼이는 채권이 자꾸 늘어나면 현금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되면 카드사는 무리한 채권회수에 나서게 돼 ‘연체율 상승·신용불량자 급증’의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대주주가 미리 증자를 통해 ‘예비실탄’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연체율이 높은 현대·외환·롯데카드가 1차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환율급등 땐 당국 시장개입 정부의 시장개입 경고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불안한 모양새를 이어갔다.외환당국은 최악의 경우 국책은행을 통한 물량개입이나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직접개입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장기 간접주식투자상품에 대한 배당소득세 면제 등 증시 활성화를 위한 세제혜택 방안도 곧 내놓을 예정이다. 안미현 김태균기자 hyun@ ★남겨진 수사 쟁점 SK그룹 부당내부거래와 분식회계 등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SK글로벌의 SK㈜ 지분 해외 파킹 등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수사과정의 외압 시비는 여전히 남아있다. ●남겨진 것들 이번 수사에서 SK글로벌이 SK㈜ 지분 1000만주를 해외에 ‘파킹(임시보관)’한 사실이 드러났다.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고발이 필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은 공정위에 고발의뢰했다.또 SK글로벌에 대한 형식적인 감사에 그친 Y회계법인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도 남아 있다.검찰은 해당 회계법인을 금융감독원에 통보,추후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SK글로벌이 20여년 전부터 분식이 누적된 상황을 포착됐으나 시간과 인력의 제약으로 이번 수사에선 ‘2001 회계연도’에 대한 부분만 마무리됐다.검찰은 나머지 기간에 대한 조사를 금감원에 의뢰,전체적인 조사가 완료되면 분식회계와 관련,대출사기 적용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수사외압 논란 SK수사 말미에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외압에 대한 여부였다.지난 9일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회에서 SK그룹 수사에 참여한 이석환 검사가 “여당 중진인사와 정부 고위인사가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했고 다음날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검찰에 연락을 취한 적은 있으나 외압은 아니었다.”고 진화를 시도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미사일 환율’ 1240원 육박

    원·달러 환율이 하룻새 20원 가까이 뛰는 등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등 악재로 원·달러 환율은 5개월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주가하락세도 멈출 줄을 몰라 코스닥지수는 5일째 사상 최저치 행진을 하는 등 금융·외환시장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19.80원 오른 1238.50원에 마감됐다.지난해 10월22일(1243.50원) 이후 최고치다.환율급등이 시작된 지난 5일 이후 무려 45.40원 올랐다.이날 상승폭은 2001년 4월4일(21.50원 상승) 이후 가장 컸다. 원·엔 환율도 20.34원이 오른 1060.62원을 기록했다.2001년 11월13일(1063.53원) 이후 16개월만에 최고치다. 원·달러 환율은 안정적으로 출발했으나 오후들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폭의 오름세로 돌아섰다.특히 미국-이라크 전쟁이 임박한 가운데 북핵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외국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환위험을 피하거나 투기를 위한 역외 매수세가 이어져 환율이 가파르게 올랐다.거래소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는 지난주말보다 1.78포인트(0.32%) 내린 544.24로 마감했다.미국-이라크 전쟁 임박설,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 등이 투자심리를 냉각시켰으나 국민은행의 2000억원 추가 투입 결의와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소각에 대한 기대가 낙폭을 줄였다. 코스닥지수는 0.2포인트 낮은 36.49로 출발한 뒤 낙폭을 키워 0.49포인트(1.34%) 떨어진 36.20으로 장을 마감했다.장중 한때 36.14까지 떨어져 35선 진입을 코 앞에 두기도 했다. 김태균 김미경기자 windsea@
  • [대한포럼]‘파격’앞에 작아지는 검찰

    “검찰을 그만둬서 다행입니다.” 지난 27일 오후 노무현 정부 첫 내각 명단이 발표된 직후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전화통화에서 내뱉은 일성이다.검사장 출신 원로 변호사는 “몇번 자문했다.”면서 “검찰이 그렇게 사악한 집단이냐.”고 되물었다. 검찰이 사상 유례없는 ‘3각 파도’에 휩싸여 요동치고 있다.기수 파괴,최초의 여성 장관,판사 출신이라는 강금실 법무장관 시대를 맞아 기존 질서 해체와 변혁을 강요받고 있다. 검찰은 노 대통령이 강 장관 기용 배경을 설명하면서 검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한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노 대통령은 검찰이 법무부를 식민지화하고 국민보다는 권력에 봉사했다고 일침을 가했다.특히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전격적으로 단행한 SK그룹 수사마저도 권력층의 비위를 맞추려는 ‘해바라기성’ 수사로 평가절하했다.강 장관은 취임사에서 한 술 더 떠서 “지난날 검찰이 외부의 영향 때문에 사건을 은폐·축소해온 것이 사실”이라는 말로 자존심의 근간까지 흔들었다. 이 때문에 검찰은 과거 위기 때와는 달리 외부의희생양에도 의지하지 못할 처지가 됐다.한 일선 지검장은 검찰이 칼 자루 대신 칼날을 쥐게 됐다는 말로 표현했다.과거 정권처럼 학연·지연에 따른 강제적인 인적 청산 대신 스스로 시대 흐름에 맞게 뜯어고치라는 주문을 받았다는 것이다.그는 검찰의 독립보다는 행간에 담긴 뜻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외형적으로 수사는 검찰,법무행정은 법무부라는 이원화 구조를 지향하지만 검찰 인사권과 예산권,검찰총장에 대한 일반 지휘권을 법무장관에게 그대로 존치시킨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강 장관 기용에 걸맞은 검찰 변혁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기수 파괴식 후속인사가 되풀이될 것으로 예상했다.한마디로 변혁을 거부하면 ‘떠나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충격파에 수긍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수 중심인 상명하복형 검찰문화야말로 군사문화 또는 식민문화의 잔재라고 꼬집었다.지금의 검찰문화는 5,6공 시절 ‘하나회’처럼 국가나 국민보다는 소속 집단에 대한 폐쇄적인 충성심만 강요한다는 것이다.노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을 위한 검찰’이나 강 장관이 새 검찰상으로 제시한 ‘공익을 우선하는 검찰’의 밑바탕에는 이같은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강 장관 기용 이후 검찰 내부에서는 허탈과 체념,오기 등 만감이 교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 대통령의 총장 임기 보장 약속에 기대어 총장 중심으로 똘똘 뭉치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한다.하지만 이러한 검찰 중심적인 접근방식은 더 큰 역풍만 불러올 뿐이다.한 소장 검사의 표현대로 검찰 스스로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해야 한다.익숙한 것에는 과거 정권에서 효용성이 한껏 검증된 권력층 의중 헤아리기,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엘리트 의식 등 검찰이 지금까지 누려온 모든 특권이 포함된다.검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자존심’도 특권 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검찰의 적폐를 열거하면서 “검찰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집권자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근원적인 개혁과 변화를 주문받은 검찰보다 앞으로 5년동안 검찰을 활용하고픈 유혹을 참아내야 하는 노 대통령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노 대통령이 고통을 감수하는 한 검찰의 개혁은 불가피하다.다만 타율이냐 자율이냐는 검찰의 몫이다. 우 득 정 djwootk@
  • ‘이라크 2차결의안’ 유엔 안보리 제출 여파 증시 급락·유가 급등… 세계경제 ‘요동’

    이라크 문제 처리를 위한 2차 결의안이 24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되자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전쟁 가능성에 대한 시장 불안감이 현실화돼 나타났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25일 전날보다 2.39%(204.46포인트) 떨어진 8360.49에 거래가 종료됐다.홍콩 항셍지수도 0.98%(91포인트) 하락한 9148.50을 기록했고 타이완 자취안지수 역시 3.36%(154.90포인트) 떨어져 4454.30으로 마감하는 등 아시아 대부분의 증시가 이날 급락했다.유럽증시 역시 24일 주요지수가 급락한 데 이어 25일에도 장 초반 하락세를 나타냈다. 뉴욕증시의 주요지수들은 24일 모두 2% 가까이 급락한 가운데 장을 마감했다.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99%(159.87포인트) 하락한 7858.24를 기록,7900선까지 무너졌다.나스닥종합지수 역시 1.98%(26.64포인트) 떨어진 1322.38로,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1.84%(15.59) 밀린 832.58로 마감했다.줄리어스 베어의 미국지역 주식거래 담당 수석 브레트 갈레거는 “중동지역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이같은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유가도 불안감이 가중돼 25일 2년 3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급등세를 보였다.이날 4월물 인도분 북해산 원유는 오전 한때 배럴당 33.72달러까지 치솟으며 지난 2000년 11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앞서 2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는 4월물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가 지난 주말에 비해 배럴당 90센트(2.5%) 오른 36.48달러에 장을 마쳤으며 시간외 전자거래에서는 한때 배럴당 36.84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이는 1년 전에 비해 80%나 상승한 가격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상품선물거래업체 E 스트리트 트레이딩의 크리스토퍼 버튼 선임 파트너는 “유가가 계속 오르고 있으며 폭탄이 날아다니기 전이라도 40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세계경제에 대한 미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의 전망도 밝지 않다.모건스탠리 스티븐 로치 수석연구원은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점을 감안해 2003년과 2004년 세계경제 성장 전망을 하향조정했다.”면서 “올해는 당초 예상했던 2.9%에서 2.5%로,내년은 4.0%에서 3.8%로 각각 낮췄다.”고 밝혔다.그는 “이라크의 원유 생산량 감소,베네수엘라 총파업 여파,재고 감소 등으로 현재 북해산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32.50달러 수준인 국제유가가 다음달 40달러 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4월이 돼도 소폭 하락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도 24일 이라크 전쟁은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며 전쟁 여파를 우려했다.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세계은행은 전쟁의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아시아의 석유 의존 국가들은 유가 급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인 우리나라가 원유 수입 관세 인하를 계획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도 원유 비축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우리 정부는 다음 달부터 석유수입관세를 ℓ당 4원으로 50% 인하할 계획이며 중동산 두바이 원유 가격이 배럴당 33달러를 넘어서면 전략비축분을 방출할 예정이다.중국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8%나 늘어난 840만t의 원유를 지난달에 수입,비축 작업에 들어갔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무디스 ‘2단계 하향’ 안팎 ‘北核 뒤통수’ 맞은 신용등급

    11일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한꺼번에 두 단계나 낮춤으로써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무디스의 발표 직후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는 등 국내 금융시장에는 불안심리가 그대로 반영됐다.특히 이번 무디스의 조치는 출범 보름여를 앞두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상당한 부담을 안기게 됐다. ●“뒤통수 맞은 기분” 재정경제부 당국자는 무디스의 발표 직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지난달 말 방한했던 무디스 실사단이 한국 신용등급을 조정할 뜻이 없다고 밝혀온 상황에서 한꺼번에 두 단계나 하락했기 때문이다.재경부는 실사단의 의견이 미국 본사에서 제대로 수용되지 않은 결과로 보고 있다.하지만 토머스 번 국가신용등급 담당 부사장이 이달초 “북한과 미국의 갈등으로 한국은 앞으로 5년간 연간 1000억달러의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았다는 지적도 있다. ●‘긍정적’→‘부정적’ 이번 무디스의 조치가 Aaa,A1,Baa3 등 21개로 세분화돼 있는신용등급 자체를 떨어뜨린 것은 아니다.통상 실제 등급조정 전후에 하는 ‘신용등급전망’(outlook)만 바꿨다.지난해 11월15일 등급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한 단계 올렸다가 불과 3개월만에 ‘안정적’을 건너뛰고 ‘부정적’(negative)으로 두 단계나 강등시켰다.등급전망이 의미를 갖는 것은 등급을 올리고 내리는 신호등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무디스는 지난해 3월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A3로 올리기 4개월 앞서 ‘긍정적’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이번에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북핵이 가장 큰 이유 무디스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관련)행동 및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등급 하향조정의 이유로 들었다.최근 제기했던 여중생사망 관련 반미감정과 차기정부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재경부 관계자는 “새 정부가 안보환경 악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보여왔던 성공적인 경제성과를 지속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다행스럽다.”고 말했다.그러나북핵 문제가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볼 여지가 별로 없는 ‘경제외적인 요인’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부담 가중될 듯 신용등급 전망 하향조정으로 외국으로부터의 차입금리 상승 등 우리경제가 안아야 할 부담은 한층 높아지게 됐다.외국인 투자유치가 어려워지고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해외자금 조달 금리가 높아져 기업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무디스의 발표가 있은 뒤 홍콩과 싱가포르 시장에서 2008년 만기 10년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금리(스프레드)는 7bp(0.07%) 올랐다.스프레드가 7bp 오르면 연간 1억달러 정도 금융비용이 더 든다.특히 기업들은 한반도 주변의 불안한 상황이 지속돼 신용등급 전망 하향이 이어질 경우 외화유출과 주가하락 등 금융시장 경색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기업들로서는 ‘현금 보유’에 나설 수밖에 없어 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신용평가기관도 낮출까 무디스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기관은 한국 신용등급에 손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S&P는 이날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이며 북한 핵문제를 감안해도 적절하다.”고 밝혔다.피치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당분간 현행 A로 유지하고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그러나 북핵 문제가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이런 언급은 언제든 번복될 수 있는 상황이다.피치 관계자는 “북핵과 관련된 긴장이 심각한 수준까지 높아지면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에 대한 견해의 수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유가 1달러 오르면 성장률 0.1%P 하락

    설상가상(雪上加霜).우리 경제의 현실이다.국제유가 30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거시지표가 위협받고 있다.여기다 무디스의 신용등급전망 하향조정의 여파로 11일 하루동안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가 떨어지면서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경상수지 적자우려 1월에 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면서 간신히 적자를 면했던 무역수지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적자로 반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된다.”고 전망했다. 재정경제부가 예상한 소비자 물가는 3%,경상수지는 20억∼30억달러 흑자.배럴당 국제유가(두바이산) 22∼24달러를 근거로 한 전망이었기 때문에 30달러시대를 맞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유가는 연평균 27∼28달러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유가 시대의 경제흐름은 경상수지 악화→물가상승→수요급감→경기침체→경제성장률 둔화다.금융연구원 정한영(鄭漢永) 연구위원은 “유가가 1달러 오르면 성장률은 0.1%포인트 하락하게 된다.”며 성장률 둔화를 우려했다. 한국은행이 올 성장률을 5.7%에서 5.5%로 0.2%포인트 낮춰잡았지만 실제로는 0.4%포인트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유가 30달러 시대가 지속되면 우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고에너지 산업의 재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물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도 우려된다.정부는 앞으로 성장과 물가라는 두마리 토끼를 좇을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 기로에 서 있다.오문석 상무는 “정부는 물가와 성장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적절한 정책조합을 해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금융시장 “좋은 뉴스가 하나도 없다.” 금융시장의 반응이다.유가 상승이 환율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무디스의 신용등급전망 하향조정이 환율상승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전망 하향조정 여파로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이 16.9원이나 급등했다. 이날 환율 1209.2원은 지난해 12월13일 1200원이후 2개월만에 최고치다.환율은 지난 5일 이후 잇따라 35원이나 올랐다. 그러나 무디스사 전망 변경의 핵심인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전망이 호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이런 금융여건이 얼마나 오래갈지 관심사다.그때까지 금융여건이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현기자 hpark@
  • [씨줄날줄] 早出 短命

    세대교체와 파격인사가 온통 세간의 화두다.설왕설래를 모아 극단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우리는 57세 대통령에 40대 장관,30대 청와대 비서관을 갖게 될 모양이다.파워엘리트의 중심이동으로 386세대,40대 초반이 주류세력이 되는 바람에 60대이상은 물론이거니와 40대 중반 이후 50대까지 ‘낀세대’들의 푸념이 말이 아니다.이건 숫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 점프’가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상 ‘낀세대’들은 국민의 기본권까지 반납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국가발전을 추동해 왔다.이제 권한을 갖고 경륜을 펼쳐볼 시기에 추월선을 달려오는 복병을 만나게 된 것이다.이런 현상은 한참 요동치고 있는 정계나 관계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부장 보직을 앞두고 있는 한 후배는 “회사에서 내 앞으로 5년 정도의 입사 기수가 뭉텅이째로 사라졌다.”고 말했다.인사적체에 밀려 순번만 기다리더니 부장 한 번도 못해보고 한두명씩 사라져 어느날 문득 보니 한 세대가 비더라는 것이다. 이런 ‘세대교체’,혹은 ‘세대 점프’는 인터넷 세대를중심으로 한 정치 개혁의 열망과 정보기술 발달 등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가용 인력의 사장 등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리도 높다.유권자의 12.9%에 이르렀던 50대 인구를 비롯해 40대 중·후반 등 이른바 ‘낀세대’ 들은 종래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똑똑한 중년’을 자처한다.교육도 받았고 6월항쟁 등 사회와 경제참여 경험도 많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것은 스스로의 생각일 뿐 사회 흐름은 이들을 우회해 갈 기세다.더구나 기대수명의 증가로 은퇴 후 2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인구학적 상황하에서 조기 소외의 문제는 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캐나다의 한 대학교수가 “젊은 나이에 일찍 출세하면 일찍 죽는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조기성취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사회심리학적 연구결과이긴 하지만 역시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경력추구가 평화로운 인생을 만든다는 뜻으로 읽힌다.인생뿐만 아니라 사회도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변화가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이경형 칼럼]선거구제와 ‘헤쳐 모여’

    권역별 비례대표제 효과적 정치개혁 기운 새롭게 분출 올해도 작년 대통령선거 과정에 못지않게 정치가 넘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내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당 개혁,선거제도 개혁 등으로 정치권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여 한국 정치의 큰 흐름이 대변혁의 궤도로 진입하고 있다.사회 전체의 움직임이 세대 교체의 물결을 타고 있는 가운데 ‘3김 정치’로 대변되는 지역할거주의 정치구도도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새로운 정치 구도는 영남·호남·충청권 등 지역 기반에 의해서가 아니라,민주노동당의 세력 확장 등 이념적 스펙트럼에 의해 형성될 수 있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참여 민주주의 바람은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변화를 희구하는 바람은 필경 국회의원 충원 방식도 변경하도록 만들 것이다. 노 당선자는 ‘국민과의 TV 토론’에서 내년 총선후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담하는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제) 운영 의사를 밝혔다.그러면서 정치의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언급은 국회의원 선출 방식의 변경을 강력히 희망한 것으로 봐야 한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면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거나,전국구 대신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그러나 소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꾸는 것은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매우 어렵다.또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에 비해 정치 신인들의 진출을 막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에 반해 현행 시·도의회 비례대표 의원 선출에 적용하고 있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상대적으로 반발이 적을 것이다.지역주의도 극복하면서 이념적으로 차별화된 정당의 원내 진출도 촉진하는 효과를 꾀할 수 있다. 대한매일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지난 15∼17일 선거구제 등에 관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1지역구 1인 선출의 소선거구제는 51.5%의 지지를 얻은 반면,2인 이상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40.3%에 그쳤다.또현행 전국구 비례대표제(35.2%)보다는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의석 독식을 막는’ 권역별 비례대표제(62.4%)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현역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좌우하는 선거구제를 기꺼이 바꾸기는 어렵다.그렇다고 온 세상이 새로운 물결로 넘실거리는데 현행 제도를 철밥통처럼 껴안고 있을 수는 없다. 이미 헌법재판소도 현행 ‘1인1표식’ 투표제로 전국구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그런 만큼 ‘1인2표제’로 각기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결국 소선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갈 공산이 크다. 지역주의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전국을 서울,인천·경기,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호남,충청,강원,제주 등으로 나눠 권역별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이 경우 현행 광역의회 비례대표제 의석 배분처럼 제1당이 아무리 득표를 많이 해도 3분의2이상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면제2,3당도 특정 지역에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의를 효율적으로 극복하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는 의석수가 지금의 전국구 의석(46석)보다는 크게 늘어나야 의미가 있다.지방분권적 역사가 깊은 독일은 지역구와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이 균등하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기존 선거 제도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분출되는 정치 개혁의 기운을 잘 읽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논설위원실장 khlee@
  • [길섶에서] 雪 原

    해발 1458미터 발왕산은 소문난 겨울산이다.11월 중순부터 눈이 내려 어느 산보다 일찍 설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스키어들에게 발왕산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환경파괴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찔리지만 악천후와 깎아지른 예각의 슬로프는 도전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겨울의 발왕산 행은 차라리 고난이었다.기록적인 한파에 강풍까지 몰아쳤다.곤돌라는 혼신의 힘으로 매달려 있는 마지막 잎새인 듯 요동치더니 승객들을 부려놓고 돌아갔다.무거운 스키를 들고 서있는데도 몸이 날아간다.금세 고글이 얼어붙고 체온이 떨어진다. 자연의 심술 앞에 던져진 사람들.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문득 설원에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주목(朱木) 한 그루가 시야에 들어온다.수백년 바람을 견뎌내선지 나무 밑둥이 유난히 굳건해 보였다.선택은 하나다.험로를 뚫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자연의 도전 앞에서 인간은 자연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와 맞서게 되는 것임을 쭈뼛하게 느낀다. 신연숙 논설위원
  • 증권업계 헤쳐모이나/한화증권 상반기 합병 물밑협상

    증권업계의 지각변동이 드디어 시작되나.한화증권이 9일 상반기안에 모 전환증권사와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금융당국도 칼자루(적기시정조치) 날을 세우며 증권사 옥죄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이대로’를 외치며 인수합병을 거부해오던 증권사들은 움찔하는 기색이다.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대형화만이 능사는 아니라며 금융당국과 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한화증권,“합병협상 진행중” 한화증권 안창희 신임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상반기중에 금융상품이 강한 회사와 합병할 계획이며 전환증권사 한 곳과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투신사에서 증권사로 간판을 바꾼 전환증권사는 대한투신·한국투신·현대투신·제일투신·동양오리온투신증권 등 5곳이다.이 가운데 대투·한투는 자본금이 수조원대여서 합병여유자금 1500억원대의 한화가 인수하기엔 너무 버겁다.현투는 미국계 금융그룹 푸르덴셜과 매각협상이 진행중이다.제투는 현투와의 합병이 유력하다.결국 동양투신증권이 협상 상대로 좁혀지고 있는 가운데 M증권사이름도 거론된다. ●대투·한투·현대,매물 줄이어 현대 금융3사도 매각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다.푸르덴셜은 현투와 현투운용을 인수한 뒤,제일투자증권과의 합병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투·한투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하다.현대증권도 매물 출하가 예고돼 있다.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시장이 물밑에서 요동치고 있다.”면서 한화의 합병이 촉매제가 될 것”이라며 반겼다. ●금융당국,적기시정조치 강화로 증권사 압박 금감원은 증권사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이를 위해 모든 증권사를 상대로 현행 감독기준을 적용했을 때 고객예탁금을 100% 지불할 수 있는 지 시뮬레이션(모의실험) 작업을 시행중이다.관계자는 “큰 퇴출잣대(영업용 순자본비율 100∼150%)는 국제기준인 만큼 변경이 어렵지만 세부기준은 강화할 방침”이라면서 “개별 증권사의 성적표도 적극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수위는 그러나 “대형화가 꼭 경쟁력 제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해대형화를 외쳐온 금융당국을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금감원측은 “인수위의 공식견해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증권산업 구조조정의 방향이 바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안미현기자 hyun@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 장난감 총

    변 혜 령 등장인물 - ♂ 정만석 (30대 초반) ♀ 나채연 (20대 후반) ♂ 박 PD (30대 초반) ♂ 이실장 (40대 중반) 무대 - 스튜디오가 갖추어진, 전형적인 성인 인터넷 방송국이다. 무대 중앙 (스튜디오) - 알록달록한 스테이지, 천장에는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가 매달려있고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모니터의 글들이 관객에게 보여진다. 그밖의 공간 (사무실) - 커튼으로 무겁게 가려진 커다란 창문. 책상 위엔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 바닥, 트라이포드 위에 놓인 카메라에선 작동중임을 알리는 빨간 시그널이 켜져있고 그 옆으론 여기저기 놓여진 방송용 소품 바구니.스테이지와 사무실은 분위기, 조명등이 확연히 다르다. 결국 하나의 공간이지만 이중 공간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르면, 알록달록한 스테이지만 현란한 조명으로 반짝인다. 선정적인 속옷 차림으로 홀로 미친 듯이 춤추는 채연. 마치 애무라도 하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동작. 음악 소리 작아지면, 동작 멈추고 간드러지게 웃는 채연. 컴퓨터를 사람 대하듯, 요염하게 시선 보내며 대화한다.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에 빠르게 떠오르는 자막들.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들과 이모티콘, 기호들이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보여진다. 글 올리는 접속 회원들의 아바타도 성격에 맞게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거나 입혀져 있는 옷들이 선정적이다. 불끈:졸려염 아함~ @@ 무기:열심히 춤춘 당신, 벗어라~ (입 찢어져라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야수:벗어라~ 벗어라~ (양볼이 붉게 물든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자막을 확인하고는, 거리낌 없이 상의를 벗어 던지는 채연. 채 연:아이~ 급하긴….저 나채연, 이름값 톡톡히 한다구요. 달래 PJ라 부르겠어 요? PJ가 뭐냐구요? 아잉~ 순진한 척은….포르노 쟈키의 약자! 다들 아시죠? 전요, 체질적으로 벗는 걸 즐기걸랑요. 안 벗겠다구 내숭떠는 년들, 그 년들은 프로두 아니에요. 몸매가 뭣 같으니까 그런 거지. 다시 떠오르는 자막들. 야 수:마저 벗어 줘~ 이잉~ ㅡ..ㅡ앗 싸:앗싸~ 나채연 홧팅~ *^^*채연, 마저 벗으려는데 무대 구석에서 불쑥등장하는 만석.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스테이지로 뛰어든다. 만 석:진아야. 이실장:저 미친놈 뭐야? 엉? 잡아와. 빨리! 박 PD, 끌고 들어가려는데 만석의 저항이 거세다. 엎치락뒤치락 격렬하게 버둥대는 두사람. 결국 이실장까지 합세해 스테이지 밖으로 만석을 끌어낸다. 달려가 카메라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박 PD. 카메라가 정지되면, 무대조명이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이실장, 다짜고짜 만석에게 주먹부터 날린다. 주먹이 만석의 얼굴에 닿기 일보 직전, 버럭 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 그마안~ 만석의 고함에 스틸 사진처럼 정지하는 사람들. 만석, 가쁜 숨 몰아쉬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씨익 웃으며 뻗어 있는 이실장의 팔에 가방을 걸어 놓는 만석. 이실장을 건드리지 않고 날렵하게 빠져나온다. 만 석: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동방예의지국, 말 그대로 선비의 나라 대한민국! (음 넣어 부르며 방방 뛴다.) 오~ 필승 코리아~ 에서 백주 대낮에 말만 한 처녀가 옷을 벗습니다. 저요? (채연 가리킨다.) 아, 그야진아를 보고 반 가워서 뛰어들었습니다만, (눈 가늘게 뜨고 채연의 얼굴 살핀다.) 아닌가 봅니다. 자 그럼- 이실장 앞에서는 만석, 처음의 자세를 취한다. 만석, 조심스레 가방을 빼낸다. 만족한 웃음 웃으며 자세를 바로 잡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만 석:어디더라? 오른쪽? 왼쪽? (어느 쪽이 맞을까 손가락으로 점쳐 보고는) 그렇지, 왼쪽. 만석이 왼쪽에 가방 메고 서면, 곧바로 주먹을 날리는 이실장. 샤샤샥 피하는 만석. 두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 채연. 박PD:의상 안 갈아입어? 부리나케 퇴장하는 채연. 이실장:저 새끼 뭐야? 엉? 뭐 하는 새낀데 남의 방송을 통째루 망가 먹어? 박 PD:(연신 카메라 장비 살피며 잔뜩 주눅든 소리로) 그러니까…그게요…회원수 준다고 김작가 짜르구…저 친구 저래뵈두 글발이 장난 아니거든요. 이실장:작가? 저런 띨빵진 놈이 작가란 말이야? 당장 다른 놈으로 갈아치워! 박 PD:웬만한 작가는 우리 방송국 안 와요. 성인 인터넷 방송…머시기 하잖아요? 이실장:머시기? 월급을 두 배나 주는데 멋이 뭐시기해? 거 배때기들 불렀구만? 박 PD:작가 출신은….그 뭣이냐 작가 주의에 입각해서 예술을 하려는…. 이실장:닥쳐! 너 지금 국민 교육헌장 읊어대냐? 무슨 주의? 이~입각? 예술이 밥 멕여주냐? 박 PD:실장님이 주신 돈으루다가 밥사먹죠. 갑자기 모니터에 떠오르는 회원들의 항의성 자막들. 야 수:모야? 모야아~~ 방송사고?? (칼 날리는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조아조아:돈 물어내랏!!! 삐리리 사깃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무 기:당장 탈퇴할래~ 잉잉~ ㅜ ㅜ의상 갈아입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어떻게든 해봐. 항의가 빗발친다구. 이실장:재방 내보내. 빨리! 박 PD:사과 방송 자막 큐! 박PD가 장비를 만지면, 다시 스테이지로 가서 서는 채연. 재방 방송을 재연하기 시작한다. 리와인드 화면처럼 춤추고 옷벗고 간드러지게 웃음 웃고를 반복하는 채연. 스테이지밖에 있는 사람들은 채연의 재방송과는 무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실장:2부 방송 어쩔 거야? 엉? 이 십분 뒤잖아? 박 PD:(덥석 만석 끌어다 놓으며) 이, 이 친구가 쓸 겁니다. 만석, 소란을 떠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몽롱한 시선으로 채연만을 바라본다. 이실장, 신경질 부리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요즘 유행하는 컬러링 벨소리다. 섹시한 여자 목소리로 “오우~ 어빠아~ 전화 받으세요~” 발신 번호 확인하고 180도로 태도 바뀌어 전화 받는 이실장 이실장:예. 예. 고의원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 고…예? 지금 즉시 사업 기획서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의원님께서 벤 처 투자 건에 저희를 밀어만 주신다면, 분골쇄신! 의원님의 돈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통화하며 퇴장) 박PD, 재빨리 만석을 노트북 앞에 끌어다 앉힌다. 박 PD:급하다. 급해. 글쓰란 말이다. 글! 만 석:글? (희미한 미소) 글! (여전히 채연만 바라보며) 처음…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했다. 진아만의 줄리엣…로미오와의 첫날밤을…줄리엣에게 웨딩 드 레스를 입혔다…. 빠른 속도로 자판을 쳐 대는 만석. 장난감 총을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만석이 대본 치는것을 보고는 화가 누그러진다. 이실장:(장난감 총 건네며) 방송에 써먹을 소품이다. 박 PD:(꼼꼼히 살펴보다) 키야~ 이거 진짜 총 같은데요? 이실장:세상 참 좋아졌다. 가짜가 진짜 찜쪄먹으니 원. 자판만 눌러 대던 만석, 쓰던 걸 멈추고 물끄러미 장난감 총을 바라본다. 총을 조심스럽게 책상 서랍에 넣는 박PD. 빤히 쳐다보는 만석. 박PD, 시선 느끼고 박 PD:다 썼어? 노트북으로 걸어가는 박PD와 이실장, 만석이 써 놓은 것을 읽는다. 이실장:로미오와 줄리엣? 새하얀 웨딩드레스? (몸짓 발짓 줄리엣 배역 흉내내며 새된 소리로) 벌써 가시렵니까? 겁에 질린 당신 귓전에 방금 울린 그 소리는 종달새가 아니라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랍니다. 로미오님, 정말이지 그 소리는 나이팅게일이었습니다. 박 PD:오~ 줄리엣. 나는 잡혀도 좋소. 사형을 당해도 좋소. 이대로 마냥 머물고 싶소. 죽음이여, 오려면 오라. 반갑게 맞아 주마. 줄리엣님의 소원이시다. 이실장:이따우를 대본이라고 쓴 거야? 이걸 엇따 써먹어? 엉? 박 PD:아후~~ 상상해 보세요. 삐리리의 글래머 줄리엣,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헤헤- 그러니까요, 웨딩 드레스란게 안감을 다 뜯어내는 겁니다. 그 러면 속살이…흐흐흐. 거기다 갑자기 비를 뿌려 주는 겁니다. 완전한 영상 미 아닙니까? 하얀 색이 화면 가득, 비에 젖어 있기까지 하니까…거기서 끝나느냐? 말밥 아니죠. 클라이맥스에는 그 하얗고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천천히, 천천히 벗는 겁니다. 마치, 마치 순결이, 순결이…헤헤헤. 이실장: 거 좋다. 빨리 방송 준비해. (퍼뜩) 그런데? 웨딩드레스가 우리 소품 중에 어딨어? 박 PD:그, 그게… 만 석:내가 가지고 있다. 웨딩드레스…진아가…줄리엣이 입었다….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눈부시게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꺼내는 만석. 반색하며 달려가 뺏어 드는 박PD. 희희낙락하는 이실장. 박 PD:그거 보십쇼. 저놈아, 소품두 준비 안 하구 글쓰는 놈이 아닙니다. 똑부러지 는 놈이다 이겁니다. (폼나게 사인하며) 자- 방송 오분전. 스테이지 조명, 더욱더 천박하게 반짝인다. 그제야 동작을 멈추는 채연. 박PD와 이실장, 웨딩드레스의 안감을 무자비하게 뜯어낸다. 그러고는 채연에게 던져 준다.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는 채연. 요란한 화장을 고친다. 화려하게 웨이브진 가발까지 벗으면, 긴 생머리가 가지런하다. 어느새 순결한 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해 있다.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만석. 또다시 채연을 진아로 착각한다. 만 석:진아? 진아야! 달려가 채연을 스테이지에서 끌고 내려오는 만석. 갑작스러운 만석의 행동에 넋빠져 보고만 있는 박PD와 이실장. 두사람, 속수무책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테이지 조명 아래 서 있다. 스테이지 밖의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 몽환적이다. 채연은 스테이지에서 내려오자마자 진아로 변한다. 만 석:진아야. 진 아:오빠. 만 석:며칠만 있으면 결혼식이다. 우리 결혼식…이쁘다 드레스 입은 내색시…. 진아(채연):(주룩 눈물 흘린다.) 오빠…어쩌지…어쩌지? 우리… 할매목소리: 안 된다아~ 만석아~ 이놈~ 이놈시키~ 그년은 창녀여~ 만 석:하, 할매? 진아(채연):(슬피 울며 스스로 스테이지로 걸어간다.) 만 석:(멍하니 보기만 한다.) 진아야? 뭔 소리여 그거이 시방? 응? 진아가 스테이지에 올라서자마자 일순 천박한 조명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스테이지에 올라선 순간 채연으로 변하는 진아. 현란한 음악이 나오면,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이실장. 카메라 작동시키는 박PD. 요염한 포즈로 모니터 앞에서 춤을 추는 채연. 야수:나채연 결혼 하냐? (모니터에서 조그맣게 장송곡이 울려 퍼진다.) 불끈:키야아~ 의상 쥑인다! (눈알 튀어나오는 이모티콘이 떠오른다.) 터프게이:벗는 거보다 더 야시시? 그래두 벗어라!! 귀족:유부녀 돼두 출연하죠? 추카추카~ (장미꽃 다발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힘:벗어라! 벗어라! 음악 소리 작아지며 천천히 몸을 흔드는 채연. 위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나온다. 온몸으로 물을 맞는 채연, 젖은 머리 쓸어 올리며 모니터 바라본다. 천천히 옷을 벗는 채연. 반라가 되자마자 확 꺼지는 스테이지 조명. 무대에는 만석만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실장:으흐흐 하하 으흐하하.좋았어. 아주 좋았어. 오늘 접속 회원 수가 근래 들어 최고야. 최고! 돈이 아주 다발로 굴러 들어오는구나 엉? 우히히히. 박 PD:앞으로 모바일과 연계한 성인 방송도 문제없겠어요. 사람들의 소리 들으며 서 있는 만석, 울상이다. 만 석:뭔가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고향 친구 놈이 서울서 출세했답니다. 무지하게 커다란 방송국에 취직을 했다나요? 그래서…염치 불구하고 친구 놈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아주 반갑게 취직을 시켜준다지 뭡니까? 자그마치 이백.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통 헷갈립니다. 진아를 닮은 저 여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속옷만 입고 있습니다. 나처럼…가난해서일까요? 추워 보입니다. 진아…나의 진아가 말입니다…(웃옷 벗더니) 덮어 줘야겠어…덮어줘야 돼…. 홀린 듯 비척이며 스테이지로 걸어가는 만석. 만석이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조명 밝아진다. 사람들, 우르르 만석에게 다가온다. 이실장:수고했어, 정작가. 내 한눈에 범상치 않은 작가다 싶었어. 이실장,만석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퇴장. 과장되게 포옹하는 박 PD. 악수를 청하는 채연.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 만석. 덥석 손을 잡아 흔드는 채연. 만석을 잡아끌다시피 노트북 앞에 앉히는 박PD. 채연은 컴퓨터 앞에서 사람한테 하듯 요염하게 웃기도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박PD, 무대를 바쁘게 왔다갔다하며 만석만 재촉한다. 박 PD:땡기는 대로 써라. 그게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거다. 만 석:써? 뭐를, 박 PD:좋은 거 많잖아? 일곱난쟁이와 백설공주! 그거 조오타~ 일곱 명의 난쟁이와 백설공주가 벌이는 정사씬! 키야아~ 만 석:동화? 안데르센? 개구리왕자! 만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테이지 조명이 천박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소품 바구니에서 얼른 왕관을 찾아 쓰는 채연. 스테이지 중앙에 올라선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를 작동하는 박 PD. 큐 사인 보낸다. 또박또박 들려 오는 어린아이 해맑은 목소리. 꼬 마:(목소리만) 옛날 옛적, 어여쁜 공주님이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만큼 모든 사 랑을 한 몸에 받았던 공주는, 예쁜 황금 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품 바구니에서 황금 공을 꺼내 얼른 채연에게 던져 주는 박 PD. 아이의 목소리대로 연기하는 채연. 꼬 마:(목소리만) 어느 날, 공주는 황금 공을 가지고 놀다가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공주가 엉엉 울고 있는데, 연못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기괴한 음악 흘러나오면, 흉측한 개구리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이실장. 손이며 발이며 개구리의 형상으로 분해 있다. 개구리라기보다는 기묘한 괴물 형상이다. 이상한 춤동작으로 채연에게 다가가 희롱하는 개구리. 그와 대조적으로 맑고 또렷한 꼬마의 내레이션이 계속 된다. 꼬 마:(목소리만) 공주님, 공주님, 울지 마세요. 제게 키스해주면 황금 공을 찾아 줄게요. 채연 위로 올라타는 개구리. 채연과 개구리,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엎치락뒤치락 뒤엉키기 시작한다. 점점 커지는 기괴한 음악. 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대는 두사람. 두사람의 몸놀림 위에 더욱더 현란하고 천박하게 요동치는 조명. 스테이지 밖에서 아랑곳없이 글만 쓰던 만석,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러고는 스테이지의 광경을 바라본다.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만석, 바라만 보다가 웩웩거리며 토악질을 해댄다. 간신히 비척이며 일어서려는 순간,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괴롭게 헐떡이는 만석, 스테이지가 어둠에 휩싸이자 풀썩 주저앉아 다시 웩웩거리기 시작한다. 만 석:이상…하다…이건 안데르센이 아니다…. 스테이지 조명 밝아진다. 그 위에서 이실장, 박PD, 채연은 흥겨운 분위기로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다. 이실장:우히히히. 좋아 좋아. 갈수록 퀄리티가 높아지는구만? 채 연:호호호. 실장님 기분 요즘 왔다네?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야. 그치? 나…출연료 좀 올려주라 응? 이실장:나채연이 너, 재계약 도장 찍었어? 박 PD:(바로 주머니에서 계약서 꺼내 머리 조아리며) 준비됐습니다. 계약서. 채 연:도장 없는데? 이실장:지장 찍어. 박 PD:(얼른 귓속말로) 그래도 계약선데 도장을 받으세요. 이실장:요 앞에 가서 이쁜거루다 하나 파라. (주머니에서 오천원짜리 꺼내 쥐어 준다.)힘없이 쳐다보다 돈 받아들고는 퇴장하는 채연. 둘러보다 널브러져있는 만석을 부축하는 이실장. 아무렇게나 만석의 주머니에 돈 봉투 찔러 넣어 주며, 이실장:앞으루두 잘해 보자구. 정작가. (퇴장) 박 PD:수고했다. 만석아. 만 석: 고향 사람들…니가 성공한 줄 안다. 박 PD:너, 돈벌구 싶댔지? 잘만 하면 돈버는 거 시간문제다. 만 석:돈? (절망적으로) 진아…. 박 PD:진아가 그렇게 됐다는 거, 나도 마음 아프다. 하지만, 다 잊고 살궁리를 해야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다. 요즘 세상, 돈 있음 못할 거 없다. 만 석:다…잊어…? 박 PD:할매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며? 그래서 불러 줬음 돈벌 궁리나 해 임마. 만 석:진아가…나를 버렸다. 세상이…. 박 PD:그러니까 너도 양심을 버리란 말이다. 그러면 사는 거 편해진다. 그러면 세 상에서 대우받고 잘살 수 있다. 만석을 쳐다보다가 퇴장하는 박 PD. 고개 숙여 흐느껴 우는 만석. 아련하게 진아의 목소리가, 채연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진 아:오빠…만석 오빠…. 만 석:(벌떡 일어난다) 진아? 어딨어 진아야? 진 아:여기….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면 어두운 스테이지에 진아의 실루엣이 보인다.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그러나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앉아 있는 진아, 청순함은 바래지고 채연이의 선정적인 분위기가 묻어 난다. 요동치는 조명. 조그만 테이블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채연 앞에 놓고 앉는다. 양복 입고 촌티 나게 가르마 탄 머리를 올 백으로 넘겼다. 진아가 다녔던 단란 주점의 단골손님으로 분해 있다. 일순 스테이지가 단란 주점으로 변한다. 분주하게 등장하는 박PD, 시골 단란 주점 웨이터로 분해 있다. 쟁반에 양주와 잔을 받쳐들고 진아의 앞에 세팅하기 시작한다. 술 따르기 시작하는 진아. 허허거리며 진아를 더듬는 이실장. 진아가 몸을 빼내려 하자 돈 뭉치 꺼내 진아의 가슴팍에 넣어 주는 이실장. 만 석:(고함 지르려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간신히 쥐어짜는 소리로) 진아야. (스테이지로 올라가려는데) 진 아:(일어서서 만석을 막아선다) 지쳤어. 만 석:우, 우리 결혼…. 진 아 :모르겠어? 나…술집 다니는 거 소문 다 났어. 만 석:괘, 괜찮다…. 진 아:(슬픈 표정이나, 모질게) 돌아가. 술취한 이실장, 비틀거리며 진아에게 다가와, 안 듯이 스테이지 쪽으로 끌고 간다. 따라가려는데 눈 부라리며 막아서는 박PD. 진아를 따라가려고 버둥거리는 만석. 박PD, 만석을 세차게 밀어 버린다. 그 힘에 바닥에 엎어지는 만석. 만석이 넘어지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퇴장하는 사람들. 넘어진 채로 흐느껴 우는 만석. 만 석:진아야…. 도장 들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엎어져서 뭐하는 거야? 4부방송 써야지?등장하는 박PD. 채 연:(도장 내민다.) 오빠가 찍어. 박 PD:(계약서 보이며) 읽어는 봐야지? 고개 젓는 채연. 채연만 바라보던 만석, 계약서를 가로채 읽는다. 계약서를 박박 찢어발기는 만석. 박PD, 경악해서 말까지 더듬는다. 박 PD:너, 너? 이, 이, 이거? 기가 막혀 입까지 헤- 벌리는 박PD,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한숨 쉬며 찢어진 종이를 주워 가지고 퇴장하는 박PD. 미친 듯이 깔깔대며 웃어대는 채연. 채 연:호호호호. 진짜 귀엽네 이 오빠? 박PD랑 이실장 찜쪄먹겠어? 만 석:도장 찍으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모르는 거니, 진아야? 채 연:(담배 꺼내 문다.) 오년 뒤에 대 스타가 되는 거지. 만 석:거짓말. 채 연:인터넷에, 휴대폰에, PDA에 내 모습이 팍팍 뜰 거야. 앞으로. 만 석:다 거짓말이다. 채 연:멀쩡하네? 안 미쳤어? (만석의 얼굴에 담배 연기 내뿜는다.) 맞아. 말 그대 로 노비 문서. 계약서라는 이름의 노비 문서. 만 석:(콜록거리며) 벗으라면 벗고, 춤추라면 춤추고. 꽃다운 나이 다 보내고 조 금 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위약금 물어내야 한다…. 갑자기 스테이지로 뛰어 올라가는 채연. 스테이지 조명이 다시 강렬하게 비추어진다. 과거, 채연의 모습이므로 조명이 강렬할 뿐 천박하지는 않다. 채 연:안녕하세요? 접수 번호 445번 나채연이에요. (꾸벅)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는게 제 꿈이랍니다. 36-24-38. 특기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춤, 노래, 연기…(섹시하게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댄다.) 라크 버진~ 우~ (갑 자기 노래를 뚝 그친다.) 네? 신음 소리요? 시나리오에 그런 내용은 없던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할 수 있어요. (리얼하게 신음 소리 내는) 오우~ 아~ 아~ 채연의 간드러진 신음 소리가 최고조를 이르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멍하니 쳐다보는 만석. 일어서려는데, 온통 붉은 빛으로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스테이지 중앙에 섹시한 포즈로 누워 있는 채연. 그 앞에서 에로 영화 감독으로 분한 이실장이 확성기 들고 앉아 있다. 카메라 들고 설쳐대는 박PD, 에로 영화 촬영겸 조감독으로 분해 있다. 감독(이실장):(소리질러 댄다.) 야-야- 가슴팍 드러나게 팍팍 벗어제끼라니까? 채 연:(겁먹은 목소리로) 가, 감독님. 시나리오가, 내용이 달라요. 감독(이실장):니가 메멘토냐? 한말 또하구 또하구 되풀이하게? 퀄리티를 위해서 씬을 추가했다고 몇 번을 말해? 채 연:그, 그치만, 그치만…. 감독(이실장):니 한 몸 바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겠다며? 오디션 때 니 입으루다가 읊었냐? 안 읊었냐? 채 연:그때는 시나리오가 정상적이었구요…. 감독(이실장):그래서? 채 연:(결연히 일어선다.) 못 찍겠어요. 감독(이실장):(채연의 얼굴에 계약서 던진다.) 이건 엄연히 계약 위반이야. 알아? 채 연:파기할래요. 계약…. 조감독(박PD): 위약금 물어내야 될 건데? 자그마치 삼십배! 채 연:네에? 사, 사, 삼 십배?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채연의 신음 소리와 이실장의 목소리만 들린다. 감독(이실장):(소리만) 자-자- 좀더 섹쉬하게- 과감하게 리얼리티를 살려서, 그렇 지. 좀더, 더, 더…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만, 그만, 그만! (스테이지는 소리도 조명도 없이 조용해진다. - 스테이지 잠시 보고)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악몽! 어른이 되어 갈수록 악몽이 늘어 만 갑니다. 그렇게 악몽을 꾸고나면 하나 둘 씩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젠 꿈이 무섭습니다. 꿈…나만의 꿈…(불현듯이) 진아를…찾아야 하는데…진아를….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잠시 그 앞에서 주춤 선다. 두려운 얼굴로 스테이지를 바라보다천천히 올라선다. 스테이지에 올라서면, 조명이 밝아진다. 소품을 정리하면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채연. 그 옆에 앉는 만석. 채 연:이 세상엔 뭐가 있는지 더 높이 날을 거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주 지 않아~ 애잔하게 채연을 바라보는 만석. 채연의 짙은 화장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후다닥 채연의 시뻘건 입술을 손으로 지우는 만석. 채 연:뭐, 뭐야? 태연하게 눈의 화장까지 벅벅 지우는 만석. 만 석:이쁘다. 진아야. 채 연:아우씨이~ 변태네 이 오빠? 세차게 만석을 밀어젖히는 채연. 풀썩 엎어지는 만석. 채 연:(거울 찾아 얼굴 본다.) 아우~ 씨바. 엉망이네. 만 석:미…안하다…. 채 연:그렇게 닮았어? 끄덕이는 만석. 거울 보면서 대충 화장기 지우고 스스로 머리를 반듯하게 묶는 채연.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는 만석. 일순 얼굴 마주보며 웃는 채연과 만석. 채 연:진아라는 사람, 오빠 애인이야? 어딨는데? 만 석:죽…었다. 인간은…환생한다.…그게…너다.…그렇지 진아야? 채 연:순정파네 이 오빠. 그런 사람이 이 바닥엔 뭐하러 기어 들어왔대? 하긴…직업에 귀천 없다잖아? 이왕 온거 빨랑 돈 벌구 이 바닥 떠. 그래야 오빠 두 알콩달콩 여우 같은 마누라랑 살지. 만 석:진아랑 결혼할 거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채연에게 건네주는 만석. 목위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얌전하고 고상한 원피스다. 만 석:입어 봐. 채 연:나 주는 거야?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 채연. 흡족한 표정으로 패션쇼하듯 무대를 워킹 한다. 만 석:결혼하자. 채 연:나? 나랑? 실수한 거야. 작가 오빠. 남자들은 말이야, 나를 만지려고는 해 도…특히 결혼이란 말 따윈…안 해. 만 석:진아야…채 연:채연이라니까? 따라 해봐. 천천히. 나, 채, 연. 만 석:나, 채, 연, 결혼…하자. 채 연:첫눈에 반한 거야? 나한테? 만 석:그래. 진아는…채 연:프로포즈라…가능성 있어. 오빠는 에로 작가, 난 에로배우. 딱이다. 딱! 바쁘게 등장하는 박 PD, 채연보고 기겁한다. 박 PD:그 옷 입고 촬영할 거 아니지? 채 연:어때서? 박 PD:이미 써먹었잖아, 그 컨셉? 식상해.채 연:그건 웨딩드레스고 이건…. 박 PD:벗어. 그 옷은 아니야. 영상이 안 된다구. 오로지 자극적인 거 볼려고 돈 내는데. 채 연:믿어 봐.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박 PD:실시간 방송이라구. 항의가 빗발칠 거야. 만 석:(시계 보더니 퍼뜩) 카메라 앞에 서. (박 PD 흉내내) 방송 오분전. 박 PD와 만석, 실랑이 벌이는 몸짓. 컴퓨터 앞에 서는 채연. 기어이 박 PD를 뿌리치고 카메라 작동시키는 만석. 손가락으로 큐 사인 보내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차분히 앉아 있는 채연. 채 연:안녕하세요? 불끈 님, 무기님, 조아조아님. 그 외에도 많이들 들어오셨네요. 순간 모니터에 빠르게 항의성 자막이 떠오른다. 무 기:벗는 게 최상의 정치!! (이빨 드러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노 예:안 벗는 년 프로도 아니라며? (화난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 힘:삐리리 웬일이니 웬일이니 웬일이니? 나채연 웬 내숭? 미스터빅:오늘, 전 회원 탈퇴의 날… (검은 장미의 이모티콘이 다발로 떠오른다.)떠오르는 자막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채연. 안절부절못하는 만석에게 눈짓 보내는 박 PD. 씨근덕거리며 뛰어들어오는 이실장. 무대를 한바퀴 휘익 둘러본다. 이실장:어떤 새끼야? 누가 방송을 이따우로 하래 엉? 둘러보다 카메라 잡고 있는 만석에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린다. 맞고만 있는 만석, 쓰러진다. 계속 짓밟아대는 이실장. 말릴 생각조차 하지못하는 박 PD. 이실장:개새끼. 누굴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어. 말해 봐 새꺄. 계속되는 발길질과 주먹질. 당황한 채연, 다급해져서 원피스를 세로로 ‘부욱’ 소리나게 찢는다. 일순 무대에 스치는 적막. 모든 동작 정지하고 채연만 주목하는 사람들. 암전.조명 밝아지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만석. 코며 입이며 피가 엉겨 붙어 있다.손으로 만석의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채연. 채연의 손길을 느끼며 시니컬하게 키들거리는 만석. 그런 만석을 바라보다 같이 키들거리는 채연. 영 불편하게 서 있는 박 PD. 박 PD:너…진아가 죽고나서는 정말 이상해졌다. 만 석 ; 아무 것도 모른다. 다들…. 박 PD:결혼할 여자가 술집나간거, 가슴 아프겠지. 자살한 건 더욱 충격일 테고. 하지만…. 만 석 ; 임신했었다. 진아…. 박 PD:뭐, 뭐라고. 너 사고 친 거야? 만 석:내 애…아니다. 박 PD:그러면 술집에서, 만 석:홀아버지 약값 벌겠다고 아무도 모르게 나간 거다. 박 PD:그런걸 동네 사람들한테 들켰으니…. 만 석:세상은 바뀐다는데, 휴대폰에서는, 인터넷에서는 성(性)을 판다는데…진아는…진아는 …. 채 연:원래가 순수한 건 깨지고 흠집 나는 거야. 현실이 그래. 현실이…. 박 PD: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사람도 잊혀진다. 만 석:움직이는 거라구? 사랑이? 광고가 떠들고 인스턴트가 판치고…나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채연 바라본다.) 진아는 남아 있는데,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데…왜 모든 게 변할까…. 좋은 건…. 채 연:멋지다. 이 오빠, 맘에 들어. (박PD 보고, 자랑하듯) 나한테 결혼하쟀어. 박PD, 어이없게 쳐다본다. 만석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하는 진아. 때마침 등장하는 이실장. 이실장:어쭈구리? 눈까지 맞았어? 저 새끼 짜르라니까 너 뭐하는 놈이야? 채 연:벗을게.화끈하게 벗는다구. 회원수 안 줄어. 봤잖아? 옷 찢어서 반응 좋았 던 거. 처음부터 컨셉이 그거였어. 그거였다구. 이실장 ; 뭐야?박 PD:그, 그게, 그러니까…. 이실장:더듬지 말고 말해. 새꺄. 박 PD:마, 맞습니다. 고전적인 원피스에 갑자기 옷을 찢을 꺼라고 누가 상상을 하겠습니까? 이실장:그랬단 말이지? 다시 방송 시작해. 지금부터 내가 방송에 관여한다. 박 PD, 카메라를 손본다. 살며시 만석의 머리를 바닥에 편히 눕히는 채연. 아니꼽지만 참는 이실장. 채연, 카메라 앞에 선다. 차분하게 묶은 머리를 풀어헤친다. 카메라가 작동되면 이실장, 채연에게 인사 멘트하라고 사인 보낸다. 무시하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춤추는 채연. 이실장, 말하라고 계속 손짓해 댄다. 채연, 말없이 옷 벗는다. 잠든 것 같던 만석, 벌떡 일어나 채연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러다가 소리 없이 서랍으로 간다. 장난감 총을 꺼내 드는 만석. 각자의 일에 몰두해 만석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만 석:소, 손들어! 이실장:또 뭐야? 만 석:쏘, 쏜다.이실장:저거 미친놈 아니야? 장난감 총 들고 설치면, 어쩔 건데? 박 PD:그만해. 만석아. 만 석:모두 카메라 앞에 서. 이실장:장난 하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만. 그래, 오랜만에 우리 빙신 춤 한 번 춰 보자. 엉. 이실장이 만석에게 다가가려 하자, 급하게 이실장을 안다시피 카메라 앞에 세우는 채연. 천천히 춤추며 이실장의 온몸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채 연:(귀에 대고) 속삭이는 컨셉이야. 저 총, 소품으로 쓰라며? 이실장:그래? 은근슬쩍 채연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이실장, 기묘한 성적인 쾌감을 느낀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채연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 이실장. 이제는 방송이라는 자각보다는 본능에 따르고 있다. 순간 모니터에 여러 개의 자막이 빠르게 떠오른다. 야 수:와- 새롭다!! 새로운 장르? 에로다큐? (두 눈 튀어나오는 이모티콘 떠 오른다.) 불 끈:앞서가는 삐리리! 오늘 방송 별 다섯 개! (별모양의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터프게이: 에로 방송 대상 줘라~~ 무교동:리얼리티 짱이다! (엄지손가락 보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귀족:전국에 알려 회원수 늘려 주자!! 갑자기 쏟아지는 반응을 보고 입이 찢어져라 웃는 이실장. 이실장:와하하하. 이것 봐라? 반응이 이렇게 좋아? 박 PD:크, 클릭 수가 급증해요. 갑자기 폭주해서 접속이 안될 지경이에요. 이실장:그래 그래. 이 한 몸 바쳐서 한 밑천 땡겨 보자. 우히히. 좋았어. 아주 좋아. 클릭수. 만 석:(총구를 박 PD에게 겨누며) 카메라 앞에 서. 박 PD:너 정말 미쳤어? 이실장:들어와 새꺄. 대장이 벗는데 쫄병이 구경만 해? 울상이 되는 박 PD. 눈을 부라리는 이실장.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서는 박 PD. 스스로 옷을 벗는 이실장. 동물적인 본능과 자극에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PD 역시 처음엔 어색하게 움직이지만, 차츰 채연의 동작에 동화된다. 점점 행위에 몰입하는 사람들. 한 몸이 되어 뭔가에 홀린 듯 같은 동작을 한다. 만 석:나는 너희들을 저주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내게 행한 악은 너무 크고 내가 너희들한테 행한 악도 너무 커서 그것은 자발적인 것일 수 없다. (詩-이지도르 뒤카스) 자연스럽게 채연의 몸을 더듬는 이실장. 그 모습 바라보는 만석. 부들부들 떤다. 총까지 떨린다. 이실장을 겨냥하는 만석. 박PD, 장난감 총인지라 말리지 않고 피식 웃는다. 이실장:쏴. 쏘란 말이야 임마. 그래야 클릭수 늘어나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쳐 잡는 만석. 침착성을 되찾는다. 만석, 다시 한번 이실장과 박PD, 채연을 차례로 바라본다. 아랑곳없이 채연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이실장. 순간, 분노로 경련을 일으키는 만석,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탕-’ 찢어지는 듯 한 파열음. 겨냥이 빗나가 풀썩 힘없이 쓰러지는 박 PD. 시뻘건 피가 흥건히 번져 나온다. 놀라 만석을 바라보는 채연과 이실장. 만석, 총을 한 번 쳐다본다. 넋이 나가 풀썩 주저앉는 채연. 이실장, 갑자기 무릎꿇고 애걸복걸 빌기 시작한다. 비굴하기 짝이 없다. 이실장:저, 정선생, 아, 아니, 정작가님, 훌륭하신 작가 분이 이러시면 안되죠? 예? 진정하세요. 예술을 하신다는 분이 이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예? 잘못했어 요. 사,살려줘요, 응? 내가, 내가 다 사과할게. 응? 만 석:너희는 너희들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걸었으되 그 두 길은 모두 유사하 고 모두 삐뚤어진 길이었다. (詩- 이지도르 뒤카스) 무표정한 얼굴로 이실장을 바라보는 만석, 악마적인 미소 날린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만석의 얼굴에 피 흩뿌리며 쓰러지는 이실장.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만석을 쳐다보는 채연, 벌벌 떨고 있다. 총을 떨어뜨리는 만석. 털썩 주저앉는다. 아련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채연, 놀라서 만석의 팔을 잡아끈다. 움직이지 않는 만석. 채 연:어, 어쩌지? 만 석:쉬고 싶다…. 채 연:무서워…도망치자. 응? 도망치자. 만 석:니 옆에서…잠들고 싶어 … 채 연:나, 난 아니야. 대 스타가 되는 게 꿈이야. 도망쳐야 돼! 만 석 ; 진아야…. 채 연:옆에 있어 줄게. 일어나. 만 석:(두 눈 감는다.) 채 연 ; 이대로 끝낼 수 없어! 긴박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불안감에 싸여 도망 갈 곳을 찾아 무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채연. 두껍게 덮여있는 창문 앞에 선다. 와락 커튼을 젖히는 채연, 힘들게 창문을 연다. 밖을 내려다보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채 연:(주저앉으며) 토할 거 같아. 노, 높다. 주, 죽으면 어쩌지? 만 석:(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같이 가 진아야. 채 연:주, 죽는 게 나을까? 아, 아니 잡히는 게? 만 석:이제는 안 놓친다. 점점 더 가깝게 들려 오는 사이렌 소리에 동요하는 채연. 채 연:여기서 끝내는 건 너무 억울해. 도망 쳐야 돼. 만 석:너만 있으면 된다. 사색이 되어 출입문을 바라보는 채연.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려 온다. 점점 울상이 되는 채연, 만석과 함께 창틀에 올라선다. 망설이던 채연, 만석을 의지하며 꼬옥 끌어 안는다. 다시 한번 절망스럽게 문을 바라보는 채연. 문 앞까지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뒤이어 들려 오는 확성기 목소리. 두 눈 질끈 감는 채연. 경관 목소리:너희들은 포위됐다. 손들고 순순히 자수해라. 셋을 세고 들어간다. 하 나, 두울, 세엣- 크게 문 부서지는 소음과 동시에 비명 지르며 뛰어 내리는 채연과 만석.“아악”하는 두사람의 비명이 찢어지듯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암전. 어두운 무대에 음악 흐른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뉴스. 소 리:다음 뉴스. 오늘 새벽 인터넷 방송국 내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 당시 비디오 자키로 촬영 중이던 나모 여인과 가해자 정모씨는 1층에서 도주하려다 추락, 병원에 이송됐으나 나모 여인은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모씨는 현재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받아먹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각 정부 부처의 반응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광부와 내무부는 서로 조사권을 주장, 부서간에 큰 충돌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여성부에서도 관심을 표명하는 가운데…. 음악 흐르면서 막. ◆당선소감 이제 겨우 조그마한 목소리로 소리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저기요… 저 아직 죽지 않고 글써요….”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 속에서 꿈결처럼 당선 소식을 들었다.믿어지지 않아 텅 빈 머리로 조금 더 누워서 빈둥거렸다. 남들이 열 개를 가질 때 다섯 개를 가지면 만족한 것이 나라는 사람이었다.하지만,그 다섯 개를 가지지 못하면 미쳐 버리는 것 또한 나라는 사람의 습성이었다.글이라는 것이…,내게는 그 다섯 개였고 전부였다.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했던가? 책임감처럼 전화질을 해댔다.그러고는 곧 또다른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앞으로 단명하지 말고 더욱더 좋은 글을 쓰라는 달콤한 채찍질이구나….더 많이 공부하고,겸손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는 거구나….그 사실에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졸업하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오교수님,깊이깊이 고개숙여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정말 감사합니다.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보아주신 큰아버님과 큰어머님,고맙습니다.당선 소식에 너무나 좋아한 윤환 오빠와 새언니,성희언니와 형부에게도 이 기쁨을 전합니다.선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어 준 박수진 선배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준 성예 경희 나연 미현 현철 정석 우석 석윤 재중 남헌이…,모두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변혜령 ●약력 71년 서울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우승컵 양보없다” ◆심사평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T S 엘리어트나 제임스 조이스는 모두 극을 최고의 예술장르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쓴 희곡들은 시나 소설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한정된 시공간에서 살아있는 배우가 압축된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희곡은 무엇보다 입체적인 연극적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문학지망생들에게 희곡은 그만큼 긴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장르다.이번 희곡 응모작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분단문제나 문명비판,지하철 노숙자나 재개발 문제를 둘러싼 사회문제와 가족관계 등을 골고루 다뤘다.식지 않은 월드컵의 열기도 느껴진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진부한 시각과 관념적인 글쓰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많은 경우 서술적인 전개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최종심의에 오른 작품은 ‘나난 가노란 말도 못다 고’와 ‘장난감 총’이다. ‘나난…’은 남편의 오랜 병수발을 한 아내가 남편이 잠시 숨을 멈추자 불효한 아들에 대한 분노로 먼저 세상을뜬다는 내용의 작품이다.상황 설정이 기발하고 반전의 묘미를 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장난감 총’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이의가 없었다.성인 인터넷 방송국을 무대로 성과 양심이 매매되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 단면을 드러낸 작가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다.다채로운 무대활용 기법,동시대적 언어감각,시종 극적 긴장을 이어가는 탄탄한 구성력이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희곡에 연극적 재미를 더해준다. 오래도록 우리 무대를 지키는 작가로 남길 바란다. 오태석 김미희
  • ‘北核한파’ 증시 당분간 꽁꽁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주로 납회해버릴 것을…” 올 마지막 개장일인 30일 증시가 폭락세로 마감하자 납회일의 들뜬 분위기는 간데없고 객장에는 투자자들의 ‘비명소리’만 가득했다.개장 10분만에 650선이 무너진 종합주가지수는 30분만에 640선,2시간여만에 630선을 뚫고 내려간 뒤 곧바로 613선대까지 낙하하는 급행 미끄럼틀을 탔다. ◆갑작스레 커보이게 된 북핵 리스크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한·미국간 공방전 수위가 갈수록 강경 일변도로 치달으면서 지난 주말 전세계 시장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북핵 위기감이 지난 주말 2개월째 랠리를 계속해오던 글로벌 증시를 일제히 끌어내린 것을 비롯,유가급등,원자재가격 상승,달러 약세 등 국제적 경제지표들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면서 “이에 영향받은 국내 투자심리는 급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증권 현정환 연구원은 “북핵 공방이란 하루아침에 가닥이 잡힐 수 있는문제가 아닌 만큼 폭락세가 멈춘다 해도 당분간 지지부진한 횡보국면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까지 가세한 수급불안 대선 이후 잇단 하락장세에서도 꿋꿋이 매수 기조를 유지해온 외국인들이 30일 1500억원어치의 매물을 한꺼번에 팔면서 시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분석팀장은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연말이 휴가시즌이며,개인투자자들은 미수 잔고 정리에 급급해 외국인 매물을 받아내줄 주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내년 주가예측 다시 써야 하나? 연말 장이 밑도 끝도 없이 폭락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악재가 장기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마저 나오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2·4분기에 바닥을 찍고 하반기에 뛰어오르리라는 경기·주가 전망을 고쳐쓰기엔 아직 이르다는 반응이다. 김지영 팀장은 “1월초 600선대 초반까지 밀릴 수도 있겠지만 주가가 단기간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기술적 반등의 가능성도 높다.”면서 “그러나 북핵문제가 가닥을 잡을 때까지는 현금 보유비중을 늘리는 보수적인 접근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폐장 주가’ 29P 폭락

    올해 주식시장 마지막날인 30일 주가가 북핵 문제 등으로 대폭락했다.코스닥 주가지수는 장중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대부분 종목의 주가가 외부충격에 무너져 내렸다. 거래소시장에서 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29.37포인트(4.46%) 하락한 627.55로 마감,닷새째 내리막길을 걸었다.이같은 하락률은 1990년 이후 최대이며 폐장일 하락을 기록한 네번째 사례로 기록됐다.종합주가지수는 오전장 한때 613.76까지 떨어졌다가 다소 반등했다.코스닥지수는 1.92포인트(4.14%) 떨어진 44.36으로 마감,97년 개장 이후 폐장일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코스닥지수도 장중 한 때 사상 최저치인 43.32까지 떨어졌지만 개인·기관의 저가매수세가 유입되며 낙폭을 소폭 줄였다. 북한 핵문제,전주말 미국시장 하락,유가급등,수급불안 등 각종 악재가 동시다발로 터져나오며 투자심리를 급랭시켰다.증권관계자들은 북핵문제 등 외부 변수가 상당기간 계속될 경우 주가의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거래소에서는 지난 주말 소폭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던 외국인투자가들이 1492억원어치를 순매도,장을 요동치게 했다.개인은 882억원,기관은 프로그램순매수(767억원)를 포함,89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전 업종이 약세를 보인 가운데 전쟁 위기감과 유가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받은 운수장비(-6.94%),종이·목재(-5.37%) 등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내린 종목은 693개(하한가 13개)로 오른 종목 97개(상한가 7개)를 압도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2002 공직사회 5대뉴스

    올해 공직사회는 ‘6·13지방선거’를 통해 140여개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폭 물갈이된데 이어 총리인준안의 잇단 부결,공무원노조의 출범·연가파업·징계 등이 이어지면서 심하게 요동쳤다. 그러나 민간근무휴직제가 처음으로 실시되는 등 공직사회와 민간기업간 인사교류의 물꼬가 트였고,전자정부 출범으로 ‘안방민원’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음은 데한매일이 선정한 공직사회의 5대뉴스이다. ◆민선 3기 지방자치단체 출범과 인사전횡 전국 16개 광역단체장과 232개 기초단체장을 뽑는 ‘6·13지방선거’에서광역단체장 9명과 기초단체장 133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민선 3기 출범을 앞두고 일부 퇴임직전의 단체장들이 ‘내사람 챙기기식’ 선심인사를 단행하거나 특혜성 공사를 발주하고,인·허가 사항을 결정해 물의를 빚었다.이에 대해 새 단체장들도 전임자의 인사나 추진사업을일방적으로 중단·변경하거나,선거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나서 주민들의눈살을 찌푸리게 했다.특히 선거법 위반으로 단체장 3명이 구속되고 50여명이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공무원노조 출범,연가파업과 징계 3월 6급 이하 공무원 7만여명이 참여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출범하면서 공직사회의 심각한 갈등이 시작됐다. 출범식 이후 37명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3명이 파면되거나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고,같은달 17일에는 노조원들이 행자부 장관실을 점거해 2명이 구속됐다. 이어 정부가 노조명칭을 불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무원조합법’을 상정하자 11월 4,5일 노조원 5000여명이 사상 초유의 ‘연가파업’에 들어갔고,정부는 연가투쟁에 참여했던 공무원 22명의 배제징계(파면·해임)와 35명의 중징계(파면·해임·정직) 등 491명에 대한 대규모 징계결정을 내렸다. ◆첫 여성총리 탄생 좌절과 총리인준 부결 7월11일 이한동 전 총리의 사퇴 이후 장상·장대환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이 잇따라 부결되면서 총리 부재상황이 86일간 지속되면서 국정혼선과 행정 공백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장상씨를 내세워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 시대를 열려 했으나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국회 인사청문회의 고비를 넘지 못했고,이어 임명된 만50세의 언론사 사장 출신인 장대환씨도 장상씨와 마찬가지로 도덕성 문제로또다시 인사청문회 문턱에서 좌절됐다.결국 정부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낸 김석수씨를 지명,인사청문회의 높은 벽을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공직사회와 민간의 인사교류 활성화 올해 처음으로 ‘민간근무휴직제’가 도입되면서 10개 부처 13명의 공무원이 1∼3년간 민간기업에 근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공무원이 민간기업에일정기간 근무하면서 민간의 최신 경영기법 등을 배워 공직에 접목한다는 취지의 이 제도는 공무원은 물론 민간기업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다. 또 외부인사를 공무원으로 임용해 공직사회의 폐쇄성을 보완하고 전문성을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개방형 임용제’의 채용대상이 중앙부처 국장급에서 과장급으로 확대돼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제도과장 등 9개 부처 13개 과장급직위에 민간인이 임용됐다.그러나 전체 132개 직위 중 외부인사는 20여명에그쳐 ‘공무원만의 잔치’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안방민원시대를 연 전자정부 출범 11월1일 ‘대한민국 전자정부’(www.egov.go.kr)가 출범하면서 행정기관을방문하지 않고도 주민등록 등·초본과 토지(임야)대장 열람 및 교부 등 393종의 민원서류를 인터넷을 통해 신청할 수 있고,4000여종의 민원을 열람할수 있게 됐다.또 연간 13만건의 서류발급을 줄여 1조 9000억원의 예산 절감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전자정부는 출범 한달만에 등록회원 11만명을 돌파했고,접속건수가 430만건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그러나 개인정보보호 등의 보안문제가 해결 과제로 남았으며,발급서류가 전체서류의 25% 수준에 불과해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공정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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