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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금융감독제도 개선해야/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열린세상]금융감독제도 개선해야/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기가 점차 진정국면으로 들면서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금융감독 정책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이번 금융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국내 은행들의 과도한 외화차입과 무리한 은행대출에 있고 이는 현행 금융감독체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똑같이 이번 위기도 우리 금융기관들이 해외에서 값싼 금리로 많은 외채를 빌려와 수익을 남기려 했고 가계와 부동산 등에 무리하게 대출을 확대하면서 초래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금융감독체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먼저 거시적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에 금융감독의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금융감독 당국은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에만 치중해 경기침체나 부동산가격 하락, 글로벌 금융위기 등 거시적 금융환경의 변화가 개별금융기관을 부실화시킬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지 못했다. 미시적 감독에만 치중해 왔으며 거시적 건전성 확보에 소홀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숲이 불타고 있는데 숲 속에 있는 자기 나무에 물만 주고 있는 우를 범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금융감독당국은 거시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또한 통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은행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거시적 건전성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금융감독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다음으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좀더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도록 감독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에서는 그동안의 정부규제를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금융감독에 있어 정책수립과 집행기능을 분리시켰다. 금융위원회는 정책수립을, 그리고 금융감독원은 집행을 하도록 제도를 개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위기가 발생하면서 분리되어 있는 두 기관 간에 정보교환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정책과 집행 사이에 있어서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금융위기를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자본자유화가 된 상황에서 그리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번과 같은 대외적 충격은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 예상되며 금융감독 역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좀더 긴밀하게 협조가 가능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금융업무에 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경기침체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과 이로 인한 금융위기를 염려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융위기보다는 외환이 부족해 발생할 수 있는 외환위기를 우려했다.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외국인 주식투자의 비중과 은행들의 외화차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경제의 특성 때문이었다. 외환부문의 중요성에 비해 우리의 외환관련 체제는 분산돼 위기대처에 취약하다. 외환은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과 한국은행 국제국이 담당하고 있고 감독 역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분산되어 있어 어느 기관이 책임기관인지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담당기관과의 협조체제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전에 외채에 대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기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도 어렵다. 외환부문에 있어 외환담당기관들과 감독당국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금융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규제와 감독은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서와 같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금융기관들의 행동이 국가경제를 위기로 빠지게 할 경우에는 필요한 규제와 감독은 강화되어야 하며 감독체제 또한 이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과 같이 금융위기를 반복적으로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은 금융감독체제의 개선을 서둘러야 할 때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광장] 신뢰의 정치경제학/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뢰의 정치경제학/오일만 논설위원

    신뢰가 단순히 도덕적 덕목인 시대는 끝났다. 신뢰의 의미가 21세기 들어서 국가 발전의 주요한 경제 자산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사람이 서로를 신뢰할 때 성장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의 명언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생기는 ‘불신과 갈등의 비용’이 줄어들어 조직의 생산성이 급증한다는 논리다. ‘임상실험’ 가운데 ‘도넛가게’ 이론이 있다. 직장인들을 상대로 도넛과 커피를 파는 1인 점포다. 고객들은 아침과 점심시간에 몰려든다.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계산토록 지폐와 동전을 준비했다. 다소의 손해를 각오했지만 신뢰의 힘은 고객을 두 배로 늘렸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거물들도 사업 초기 목전의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고객의 신뢰를 택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신뢰가 주는 효용은 개인이나 회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정책도 마찬가지다. 천금매골(千買骨), 즉 천금의 거액을 주고 죽은 말의 뼈를 산다는 의미다. 중국 연나라 곽외라는 참모가 소왕(昭王)에게서 천리마를 구하도록 명을 받고 전국을 헤맸다. 결국 찾지 못하자 꾀를 내어 죽은 천리마의 뼈를 오백금에 샀다. 이 소식이 듣고 전국의 천리마 주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아무 소용도 없는, 죽은 뼈에 거금을 투자한 구매자에 대한 신뢰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신뢰’인 것이다.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해 실패한 정책은 부지기수다.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IMF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는 경제살리기 명목으로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는 물론 장기 임대주택 100만가구, 판교 신도시 등을 건설했지만 실패로 막을 내렸다. 부동산 문제만은 반드시 잡겠다는 참여정부의 공언에도 불구, 서민들은 등을 돌렸다. 현 정권 역시 ‘8·23 부동산 대책’의 강수를 던졌지만 정부를 비웃듯 아직까지 집값 상승세가 꺾일 줄 모른다. 일관성을 무시한 잦은 정책 변경 때문에 시장이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을 경기 부양책으로 시장이 인식하는 한 어떤 투기 억제책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다. 국정 운영 역시 국민의 신뢰가 기반이 된다. 불신의 정치는 너무도 많은 비용을 치르고 생산성과 효율도 떨어진다. 정책 집행도 쉽지 않다. 문제는 신뢰를 얻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신뢰의 제 1항목은 정직성과 성실성이고 제2항목은 능력과 성과다. 한마디로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경유착 구조로 부정부패의 늪에 빠진 일본 자민당이 경제도 망쳤으니 정권교체는 필연적 수순이다. 참여정부는 높은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정권’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 2항목인 능력과 성과 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연유다. 이명박 정권은 지금 집권 2기 개각을 앞두고 있다. 집권 1기에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신뢰의 기본조차 충족하지 못한 까닭에 엄청난 역풍을 만났다. 집권 2기의 방향을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우리는 지금 분열과 냉소, 좌절과 실망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서로 신뢰가 없는 탓에 쓸데없는 소모전과 불신의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정권이 어떻게 불신의 시대를 종식하고 신뢰의 시대를 열어갈 것인지 집권 2기 내각의 어깨가 무겁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지방시대]건설기업들 윤리경영으로 무장하라/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지방시대]건설기업들 윤리경영으로 무장하라/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건설회사가 망하니 전화기와 책상밖에 안 남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건설업에 발을 디뎠던 사람이라면 귀에 별로 설지 않을 것 같다. 우리 건설업계가 그만큼 인적 네트워크에 치중하며 살아왔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이 말은 건설업계에 창조적 경영 시스템보다 사람이 스쳐간 흔적만 남는다는 극단적인 표현으로도 읽힌다. 물론 인적 네트워크의 당위성과 장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건설과 비건설, 기업과 비기업을 막론하고 인적 네트워크의 본령은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물신주의에 오염된 인적 네트워킹이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차츰 숙성되어야 할 인적 네트워크가 변질, 악용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기업과 기업인의 윤리관을 황폐화시키는 추태의 단면은 볼썽사납다. 1960, 70년대에 베트남과 중동 진출을 통해 성장의 기틀을 다졌던 우리 건설업계지만, 그들의 성장 뒷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최근 터진 경기 파주 교하신도시 비리를 비롯해 턴키입찰을 둘러싼 잡음에는 지역 구분이 없다. 전국 어디서, 어느 기관이 발주하더라도 불공정 심의 논란이 제기될 개연성이 높다. 지난해 부산에서도 유사한 경우가 있었다. 과학기술센터 턴키입찰 공사와 관련, H기업의 심사위원 로비 의혹은 아직 진실이 분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건설업계가 무분별한 로비를 척결하는 자정의 결단을 하지 않으면 업계의 미래는 암담하고 피곤해질 것이 뻔하다. 글로벌 경쟁력은 투명성과 상호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업계가 음습한 부패의 족쇄를 차고 있다면 말이 안 된다. 투명성이 본질인 윤리경영은 시대의 테마다. 사실 윤리경영은 경제 위기 때마다 재무장됐다. 경제위기일수록 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한탕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도덕적 해이에 대한 반성으로 윤리경영이 태동했던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윤리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0세기에 강한 기업이 살아 남았다면, 21세기에는 착한 기업이 곧 ‘좋은 기업’이다. 소비자의 신뢰는 기업 이미지에서 싹튼다. ‘단기적으로 손해와 불편이 있더라도 윤리경영을 하겠다.’는 CEO가 89%에 이른다. ‘임직원 인사와 협력업체 선정 때 윤리성을 반영하겠다.’는 경영진도 90%를 넘는다고 한다(이상 기업사회연구원 조사). 윤리경영에 대한 공감대는 성과를 거둔 모델 기업에서 형성된다. 2001년부터 윤리경영에 매진한 유한양행은 2006년 말 기준 매출액이 23% 늘었다. 순이익은 39% 증가했다. 신세계는 1999년부터 윤리경영을 경영이념으로 선포한 이래 연평균 매출 32.7%, 주가 7배 상승에다 사내 부정 사고율이 1.1%에서 0.5%(2006년 말 기준)로 줄었다는 보고를 내놓고 있다. 윤리경영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등식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윤리경영의 성패는 최고 경영자의 의지에 달렸다. 역동성과 추진력이 요구되는 건설기업일수록 더하다. 마침 부산은 경계표가 될 마천루와 관광단지, 혁신도시, 그리고 산업단지를 만드는 건설현장이 곧 시동을 걸게 된다. 건설 기업인의 윤리 지수가 부산지역 건설 현장의 건강성을 담보하고 시민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것이다. “탁월함 즉, 경쟁력은 도덕성과 양립할 수 있다. 오히려 나는 모든 경쟁력에서 도덕성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건설기업은 잭 웰치 전 GE 회장의 말에 진짜 공감할 수 있도록 경영의 방향타를 ‘턴키(Turn-Key)’하기 바란다. 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 [정책진단] 책임운영기관 10년 점검해보니

    [정책진단] 책임운영기관 10년 점검해보니

    책임운영기관이 탄생한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관료적 운영으로 전문성과 경쟁력 제고에 한계를 드러낸 정부조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일부를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했다. 이들 중 국립종자원·국립산림과학원·국립재활원 등은 획기적인 기획력과 고객맞춤형 서비스로 예산을 절감하고 만족도와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했다. <서울신문 4월28일자 25면>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서 정체성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책임운영기관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도 ‘C 이하’로 냉혹하다. 법인화의 ‘중간 정거장’이라는 인식 속에 현실과 ‘따로 노는’ 제도 운영 전반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부처 산하의 부속 기관 형태로 운영 중인 책임운영기관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자율성 없는’ 책임운영기관의 허상을 꼽는다. ‘자율성’과 ‘책임’은 행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책임운영기관의 핵심 요소다.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2조)’에는 인사·조직·예산 등에 대해 기관장의 자율을 보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게 중론이다. ●재정자립도 낮아 재정부·소속본부 눈치만 제도 도입 당시 자문위원이었던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법적으로 인사·예산을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돼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현장은 신속한 인력 구조조정과 전환 배치 등 융통성이 필요한데 일일이 관계당국에 보고하고 감사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자율성을 발휘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꼬집었다. 제도의 긍정적인 취지보다 규정에 얽매이는 관료제의 부정적인 측면이 심화됐다는 게 서 위원의 설명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책임과 권한 이양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서구 제도(영국) 도입시 취지와 방법론 가운데 눈에 보이는 취지만 가져 왔다.”며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 연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재정자립능력이 없더라도 기관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법도 자율성을 옥죄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 법에는 자체수입 비중이 10% 미만인 기관도 책임운영기관 지정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예산을 쥔 기획재정부나 소속 본부의 눈치를 운영과정상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수익성을 기대하는 특허청 등 기업형 기관 16곳의 지난해 말 기준 재정자립도는 평균 43.6%이다. 이 중에는 국립중앙과학관처럼 18.9%인 곳도 포함돼 있다. ●전체 90%가 최우수·우수… 평가만 관대 제도와 현실의 괴리는 성과계약제에서도 드러난다. 당초 정부는 정부 조직을 ‘성과중심체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책임운영기관제도를 도입하면서 기관장을 비롯해 직원의 최대 직급별 30%까지 계약직 공무원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기관 대부분이 자체 채용 대신 일반직 공무원 공채 인력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고, 이마저도 공무원으로 이뤄진 조직의 경직된 순환보직형 인사 운용으로 1~2년마다 사람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전문성이 저하되고 책임성이 결여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관대한 성과평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관의 성과평가는 A(95점)~F(70점 미만)로 이뤄진다. 하지만 2년 연속 D(85점 미만) 이하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 지난해 책임운영기관 평가에서 최우수·우수인 A(10곳)·B(30곳) 등급은 전체 90%를 차지했으며 C(85~89점)는 4곳이었다. C에는 재정자립도가 13%에 불과한 국립중앙극장 등이 포함됐다. 성과계약 체결시 명확한 목표 설정을 하지 않거나 성과 달성 정도에 따른 인센티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점도 거론됐다.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위(상위 기관)에서 사람을 심거나 순환보직 형태의 근무로는 책임감을 갖고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면서 “특히 현 제도에는 성과가 제대로 일어나는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본부-기관 간 피드백이 오가는 과정이 없다.”며 관리 체계의 허술함을 잡아냈다. ●자격지심 마인드도 문제… 애매한 정체성 이와 함께 책임운영기관에 대한 소속 공무원들의 인식과 중앙부처 중심의 권력지향적인 공직 문화도 문제로 지목된다. 이창원 교수는 “우리 공직사회 분위기는 중앙부처 소속에서 지방 소속으로 바뀌거나 책임운영기관으로 변화하면 격이 떨어진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율성의 증대라고 생각하지 않고 권력을 상실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일에 대한 집중도나 책임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는 올 연말까지 자율성 제고를 비롯한 책임운영제도의 성과평가나 인센티브 확보 등에 대한 개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성과에 대한 최종 책임을 장관이 지도록 법으로 명시한 상태에서 인력과 예산 운용에 있어 통제는 불가피하다.”면서 “통계·연구·의료·문화 등 각 기관별로 간담회를 열어 제도 개선 건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신혼부부 전세대출 연소득 2.5배로↑

    결혼 5년 이내의 신혼부부들이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전세자금 규모가 연간 소득의 2.5배까지로 늘어난다.한국주택금융공사는 27일 신혼가구의 주거와 생활 안정을 돕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특별보증 지원 방안을 3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연간 소득의 2배까지만 인정되던 전세자금 보증 한도는 결혼 5년 이내인 신혼가구(결혼 예정자 포함)에 한해 2.5배까지 확대된다. 용도가 주택구매자금이면 보증 한도도 1인당 1000만원씩 늘어난다. 예를 들어 연 소득 2800만원인 신혼가구가 전세자금 보증을 이용하면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은 종전 56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신혼가구엔 보증료도 0.1%포인트 낮은 0.2~0.6%를 적용한다. 우리은행, 농협중앙회, 신한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외환은행 등 6개 은행에서 가능하다. 공사 측은 “특별보증을 통해 연간 5만 2000여 신혼가구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인사]

    ■국무총리실 ◇승진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이효연 ■농림수산식품부 ◇3급 승진 및 전보 △국립식물검역원 국제검역협력과장 장승진◇과장급 전보△장관비서관 김인중△홍보담당관 최명철△정보화〃 배상두△지역개발과장 김영준△농촌사회여성팀장 서재연△유통정책과장 조재호△축산정책〃 김정욱△소비안전정책〃 박병홍△친환경농업〃 신현관△지도안전〃 서해동△원양정책〃 손건수△농림수산식품부 우동식△농업연수원 교육기획과장 고학수△〃 전문교육〃 김승환<국립식물검역원>△방제과장 안용덕△인천공항지원장 배원길△중부〃 박창용△영남〃 노수현 ■국토해양부 ◇국장급 △감사관 이재덕 ■식품의약품안전청 △대전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장 장동덕 ■부산시 ◇4급 승진 및 전보 △홍보담당관 하철용△부산도시공사 파견 윤종석△고령화대책과장 이동점△교통관리〃 강길호△인재개발원 교육지원〃 정원수△상수도사업본부 시설관리사업소장 장민조 ■충남도 ◇4급 전보 △자치행정국 총무과(충청권광역경제발전추진위원회 파견) 권혁이 ■한국방송통신대 △교무처장 김영구△기획〃 김성수△통합인문학연구소장 이원주△산학협력단장 김영임 ■가톨릭대 <성심교정> △교육대학원장 정남운△사무처장 이 남△입학〃 최창완△국제언어교육원장(서리) 빅토리아 조△인간학교육원장 조정환△교양교육〃 하병학△교수학습센터장 김수경<성의교정>△연구처장 조양혁△대학원장 이준성△보건〃 이원철△의료경영〃 황태곤△임상간호〃 김희승△의학전문〃(의과대학장 겸임) 김 진△간호대학장 김희승△도서관장 주대명△의대교무부학장 김성윤△의대교육제1부학장 정욱성△의대교육제2〃 심성보△의대연구〃 박원상△간대제1〃 안성희△간대제2〃 유양숙△산학협력단장 조양혁△성의산학협력실장 강진한△성의연구진흥〃 윤건호△성의산학협력부실장 박원상△공동연구지원센터소장 전흥재△면역생물학연구〃 김완욱 ■인제대 △의무·연구부총장 김기용△사회복지대학원장 이성기△보건〃 이기효△의과대학장 이병두△생활관장 김재형△한국어문화교육원장 박재섭△산업보건센터장 김정호△음주연구소장 김광기△스포츠재활연구〃 김덕영△메스메티카 기술·교육센터장 김향숙△의예과장 박세광△특수교육〃 유은정△통일학부장 진희관△경찰행정〃 정진우 ■외환은행 ◇관리본부장 △전략분석팀/IR팀 담당 박희준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민주화·평화정신 영원히 남을 것”

    여야 정치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3일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화해에 대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일제히 영면을 기원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우리 국민은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야만 하는 마음에 슬픔이 크다. 이제 슬픔을 승화시키는 새로운 시작을 함께해야 한다.”면서 “고인의 민주화와 인권,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아쉽고도 아쉽다. 이 이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고인이 떠나신 지 엿새 동안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확인했다.”면서 “이제 남기신 뜻대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겠다. 더 이상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를 받들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핵심 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고인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분단 반세기 만에 진정한 화해·교류·협력의 시대를 열었지만 현재는 남북대화가 단절됐다.”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문단이 빈소를 방문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두 번째 다시 열게 됐다.”고 언급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서거를 계기로 망국적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동서와 남북 화합의 계기가 된다면 고인의 공과가 보다 더 가치있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고인이 호소한 ‘행동하는 양심’을 가슴에 새기고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남북관계가 전진하는 새 희망을 영전에 바치겠다.”며 애도를 표했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장례절차는 끝났지만 고인의 뜻인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화해는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학계, 종교계, 문화계 및 진보·보수단체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국민통합을 이끌어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르는 등 민주화운동 동지였던 고려대 이문영 명예교수는 “일생 동안 김 전 대통령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행동하는 양심’을 이해하자.”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국민들이 지금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이어가 도덕성과 행동하는 습관을 잊지 않는다면 그의 뜻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는 “김 전 대통령을 보내며 우리는 그가 목숨처럼 여겼던 민주주의와 평화적 남북관계 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쌓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적 통일전략을 초석으로 놓고 현 시대의 의제들을 고민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주가 떠나가신 것에 비통함을 금치 못하겠다.”면서 “이제 그의 정신을 물려받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보수 성향의 단체들조차 그가 남긴 유산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김 전 대통령은 우리사회의 발전축이었던 민주화를 성숙시킨 지도자”라며 “이 부분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기 드문 큰 그릇의 지도자였고 IMF 외환위기 등 국가적 절체절명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한 점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을 잃은 것은 단순히 한 인물의 죽음이 아닌, 우리사회 한 세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민주화와 남북화해, 경제위기 극복 등에서 그가 해낸 일들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는 서울광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김 전 대통령의 1987년 대선 연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귀국 기자회견 등 추모영상이 상영된 후 신형원 경희대 교수가 추모곡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부르자 곳곳에서 시민들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국악인 오정해씨의 공연과 황지우 시인의 추모시 낭독이 있었다.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지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주현진 박건형기자 jhj@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이후 한국사회’ 각계 인사의 제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각계에서는 고인이 평생을 두고 노력해온 민주화, 국민 대통합과 화해, 지역주의 극복, 남북통일 등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각계에서 듣는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 화해정신 담을 헌법개정 필요 민주주의의 선봉과 지식인들 사이에 반복된 반목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문병과 조문을 통해 대승적 차원에서 해소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전두환 전 대통령, 영원한 경쟁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문은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화합과 화해의 정신을 국민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평생 몸바쳤던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국민적 대통합과 화해의 정신을 담은 헌법 개정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특히 대통령이 우리사회의 ‘큰 어른’이자 ‘지식인의 본보기’로서 권위를 세우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고민할 때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가발전에 온 국민이 힘써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가적으로 힘든 시기에 원로를 잃게 됐다는 점에서 큰 불행이자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정착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고 외환위기 때 우리의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기셨다. 이제 고인이 남긴 큰 뜻과 업적을 기리면서 국가 발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고인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지역주의 극복이 이뤄지고 국민통합의 새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 온 국민이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출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 막 어둠의 터널을 지나기 시작한 경제가 완전히 회복돼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고인이 가장 바랄 것이다. ●김창국 초대 국가인권위원장·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장 보복 않는 화합정신 계승을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공은 ‘보복을 하지 않는 화합의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또 이같은 사회통합 정신을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철학으로 계승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할 때 김 전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탄압을 극복하고 보복 대신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승인한 점에서 우리가 키울 자산을 찾아야 한다. 남북화합, 동서화합도 자산이다. 이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이 싹틔운 ‘과거사 창산’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역사 인식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결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 미완의 과제 노사선진화를 김 전 대통령은 수출증대정책을 통해 무역수지 흑자를 늘려갔고, 외국인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빠르게 유입된 달러화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상환해 갔다.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으로 유수의 기업과 은행이 문을 닫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뼈를 깎는 고통을 주었지만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우리 기업과 금융회사가 버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4대 부문 개혁 중 특히 노동부문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경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 기업, 정부 모두가 지혜를 모아 노사관계의 선진화에 나서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한국문화의 비전 숙제로 평생 추구했던 민주화와 통일, 세계 평화의 뜻을 채 이루지 못해 가시는 마음도 편치 않으셨을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역대 대통령 중 문화에 대한 식견과 애정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문화 산업 정책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셨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철저히 지켜내셨다.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분이었기에 문화인으로서 더욱 아쉬움이 느껴진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한국 문화의 비전에 대한 숙제는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고, 나 개인에게도 남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나라의 큰 어른들을 연이어 보내는 슬픔이 남아 있다. 이것이 슬픔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모두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천석 울산동구청장 해묵은 지역감정 뿌리뽑자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망국적인 지역감정 해소와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만큼 고인의 큰 뜻을 받들어 이제 해묵은 지역감정을 완전히 뿌리뽑을 때가 왔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노력과 대통령직 당선으로 상당히 해소됐지만 여전히 선거철만 되면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영호남은 다양한 교류와 공동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벌이면서 지역감정 해소에 노력해 왔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자칫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되살아나지 않도록 국민들의 성숙한 견제 의식이 필요하고 정치권도 선거제도 개선 등을 통해 지역감정의 불씨를 사전에 잡아야 한다. ●소설가 공지영 민주화의 후퇴 없었으면… 원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뭐라고 말하기는 딱히 그렇지만 소설을 쓰면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업적을 알게 됐다. 2004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기 위해 취재에 들어가면서 사형수들을 많이 만났다. 이때 구치소와 교도소 등의 시설과 상황을 새삼 보게 됐는데 일본보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변화는 김 전 대통령 재임시절 대부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가 대체적으로 약자와 소외자, 장애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을 평소 가졌는데 김 전 대통령은 이런 곳에 많은 관심을 가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더 있어야 하고 또 민주화의 후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장현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역사의 계승 발전 동기 찾을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게 사회통합이다. 남북문제든 내부문제든 간에 사회통합이 절실하다. 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하는 지난 역사도 겸손하게 평가하고 계승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파도 속에 휘말린 나머지 정치·경제·사회·계층적으로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단절시키고 새로 쓰는 게 역사가 아니다. 남북 문제나 민주주의 문제 등 역사를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동기와 전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사회통합은 통합위원회 등 기구나 제도의 차원이 아니다. 용산참사나 비정규직, 노사문제 등 우리가 당면한 각종 현실에 진정성을 갖고 함께 아우르는 자세로 나아갈 때 이것들은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사설] 김 전 대통령 가신 길 평화·화해로 기려야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떠나고 우리는 남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기고, 인권을 살찌우고, 얼어붙은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햇살을 안겨다 준 김 전 대통령이 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영면의 길에 들어섰다. 김대중, 그 이름 석자는 역사가 됐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가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부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는 데 있어서 고인이 이룩한 업적은 실로 지대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외침으로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의 불꽃을 지켜냈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가 흔들릴 때 국민을 하나로 묶었고, 장롱 속 금붙이들마저 끌어내며 이룩한 경제 회복으로 다시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분단 한반도에 대화의 물꼬를 텄고, 남북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공영의 대상임을 일깨웠으며, 인류는 그런 평화의 전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갈채를 보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권의 숭고한 가치와, 용서와 화해만이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을 힘이라는 가르침을 고인은 안겨주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로 지난 엿새 이 땅엔 용서와 화해, 평화와 사랑의 물결이 넘쳐났다. 동서로는 평생 민주화 동지이자 정적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화해가 이뤄졌고,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손을 잡았다. 남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의를 받아든 북한 조문단이 빈소를 찾았고, 우리 정부와 막힌 대화의 실타래를 풀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분향소로 신분과 계층을 떠난 조문행렬이 꼬리를 물었지만, 거기에 이념과 지역 대립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고인의 자취가 크고 깊은 만큼 그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우리의 과제 또한 막중하다. 지역과 이념, 계층의 대립이라는 이 나라 3대 갈등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선 고인이 평생을 바쳐 극복하려 했던 지역주의의 골을 메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당파를 떠나 지역갈등 극복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말로만 지역주의 극복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제도 개선 등을 논함에 있어서 이 나라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이념 과잉의 대결구도 또한 극복해 내야 한다.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의 모든 주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식민통치와 남북 분단, 군부통치라는 현대사의 굴곡이 만든 이념의 덫에서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나라가 이념의 굴레에 묶여 주춤거리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탈이념의 세계사적 조류에서 우리만 퇴행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친서민 행보를 보다 강화,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갈등을 극복하는 데 더욱 매진해야 한다. 기회의 균등과 정의로운 분배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하나가 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인동초가 피워 낸 평화와 화해의 꽃을 이제 우리가 가꿔야 한다.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을 빈다.
  • 中이번엔 金 큰손

    │베이징 박홍환특파원│경기침체와 금 가격 급등으로 전세계 황금 수요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중국이 처음으로 황금장식품 시장 1위에 올랐다. 중국이 올 상반기에 처음으로 인도를 제치고 세계에서 황금장식품 수요가 가장 많은 국가로 올라섰다고 21일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가 보도했다. 세계황금협회 통계에 따르면 2·4분기 전세계 황금 수요는 전년 동기대비 9% 감소, 219억달러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중국내 황금 수요는 오히려 9% 상승했다. 장신구 등에 사용된 황금까지 포함하면 전세계적으로 22% 감소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5.5% 증가했다. 특히 중국인들이 올 상반기에 구매한 황금장식품은 161.7t으로 122.3t에 그친 인도를 제쳤다. 세계황금협회 중화권 회장인 왕리신(王立新)은 “기본적으로 중국 경제와 위안화가 안정돼 있는데다 소비자들의 자산가치 보존 심리가 작용해 황금장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2003년 600t에 불과했던 중국인민은행의 금 보유량은 지난 6월말 현재 1054t으로 늘었다. 이는 세계 5위 규모다. 위안화 국제화 및 외환보유 다각화를 꾀하고 있는 중국이 황금 매입을 늘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 황금 선물시장이 요동치기도 했다. stinger@seoul.co.kr
  • “한국 내년까지 재정확장해야”

    “한국 내년까지 재정확장해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년까지는 재정 확장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IMF는 한국경제가 2011년 이후 4~5%대의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대 회복 시점은 2012년으로 전망했다. IMF는 20일(현지시간) 발표한 한국경제 현안 보고서를 통해 “한국정부가 그동안 펴온 재정확장 정책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면서 “적어도 2010년까지는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2010년 재정적자가 적어도 2009년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IMF는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는 수비르 랄 IMF 한국과장 등 5명의 연례협의단이 지난 6월25일부터 10여일간 한국을 방문해 협의를 가진 뒤 나온 결과물이다. IMF는 “한국의 외환시장 안정은 자금 흐름의 급격한 회복을 가져와 국가 부도를 막았다.”면서 “대규모 통화 및 재정 지출이 경제 활동을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초부터 원화 약세에 기반한 수출 등의 이점이 사라져 경제의 빠른 회복이 유지될지 불확실하다.”면서 “무역 상대국의 부진한 경기 회복과 과도한 개인 및 중소기업 대출이 복병”이라고 지적했다. IMF는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올해 -1.8%에서 내년 2.5%로 회복되고 2011년 5.2%에 이른 뒤 2012년 5.0%, 2013년 4.7%, 2014년 4.5%를 나타낼 것으로 예측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1만 635 4달러로 떨어져 2012년이 돼서야 2만 448달러로 2만달러대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 재정은 2012년까지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다가 2013년 GDP 대비 1.0%, 2014년 2.1%의 흑자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세계 3대 신용평가사 S&P는 2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3~-2.8%에서 -2.0~-1.5%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데스크 시각] DJ노믹스/류찬희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DJ노믹스/류찬희 산업부장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한창이다. 국민화합과 남북화해,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성공한 지도자라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 1998년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시기에 취임, 짧은 시간에 국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 경제 분야에서도 성공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취임할 때나 지금의 경제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DJ노믹스’를 다시 평가해볼 만하다.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당시 39억달러로 바닥을 드러낸 외환보유고를 1214억달러로 늘려놓고, 임기 5년간 611억달러의 외국인투자를 유치했다. 마이너스 6.7%에 이르던 연간 경제성장률을 2002년에는 6% 성장시켰다. 이런 노력으로 국가신용도를 A등급으로 회복시켰음은 물론이다. DJ의 경제위기극복 해법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취임하자마자 강력하게 밀어붙인 각 분야의 구조조정은 국민들과 기업의 지지를 얻었다. 금 모으기가 그렇고 기업 구조조정이 그랬다. 금융·공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따라줬고, 해당 기관도 적극 동참했다. 적어도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인들도 크게 다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 투쟁은 있었지만 경제문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도록 지도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사업을 놓고 물고 뜯는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DJ정부가 밀어붙인 경제정책이 투명화·경쟁력 확보의 밑거름이 됐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특히 금융권 건전화는 지난해 9월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우리가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 은행 경영부실을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살린다는 비판이 따랐지만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이어 기업 구조조정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일부 기업의 경우 기업인수합병 과정에서 외국 자본의 배를 불려줬다는 비판도 따랐지만, 기업이 체질을 개선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기르는 데는 더없이 좋은 약이 됐다. 1997년 396%에 달했던 기업 부채비율이 2002년에는 135%까지 낮아졌을 정도다. 지난해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이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이때부터 다진 체질강화 덕분이다. IT기반 벤처기업 육성도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굴뚝산업 중심에서 지식정보산업 강국으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취임사에서 밝힌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IT산업을 적극 육성했다. IT벤처기업 지원과 인터넷 이용자 1000만명 가입 정책이 결국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통신 강국을 만드는 초석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취임하던 해 6.8%에 달했던 실업률이 2002년에는 2.5%로 떨어졌다. 현 정부가 밀어붙이는 녹색산업도 잘만 추진하면 미래 고용창출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녹색벤처’로 승화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은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다는 슬픔과 함께 DJ에 버금가는 경제 지도자를 원한다. 경제회복에 앞장설 정치인을 찾는다. 문제는 지도자들의 의지다. 말로만 경제 살리기를 외칠 것이 아니라 실천이 따라야 한다. 기업과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개발과 가려워하는 곳을 찾아 긁어주는 정책이 절실하다. 국민들은 정치싸움을 그만두고 머리를 맞대며 경제 위기의 파고를 넘을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는 정치인을 보고 싶어 한다. 류찬희 산업부장 chani@seoul.co.kr
  • 김대중 전 대통령 일기 일부 공개

     지난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일기 일부가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의 유족측은 21일 오전 공식 추모 홈페이지에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일부를 게재했다.  이번에 공개된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1일부터 입원하기 1달전인 6월4일까지 쓴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전문. 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100일간의 ‘메모’… 인생소회 - 현정부 인식 등 꼼꼼히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100일간의 ‘메모’… 인생소회 - 현정부 인식 등 꼼꼼히

    ‘행동하는 양심’은 마지막까지 무엇을 기록하고 싶었을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으로 기록한 100일간의 일기 가운데 일부가 21일 공개된다. 김 전 대통령 쪽의 최경환 비서관은 20일 “고인이 입원하기 한 달 전까지 쓴 일기 가운데 일부를 40쪽 분량의 소책자로 만들어 언론에 공개하고 전국 분향소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책자의 제목은 ‘김대중의 마지막 일기-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이다. 일기는 지난 1월1일부터 6월4일까지 고인의 하루하루에 대한 소회와 단상을 다이어리에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최 비서관은 “일기를 쓰신 날이 100일 정도 된다. 그 가운데 30일치를 소개하겠다.”고 전했다. 일기의 상당부분이 한자로 돼 있어 김 전 대통령 쪽은 이를 한글로 풀기로 했다. ●100일 가운데 30일치 소개 일기에는 지난 인생에 대한 소회와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애틋함,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저명 인사들과의 만남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심경과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인식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생전에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던 만큼 한반도 상황과 국내 정치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심경이 상세히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고인에 대한 추모열기에 더해 여권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 비서관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책을 열어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DJ가 직접 구술한 동영상도 공개 이와 함께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인생역정을 직접 구술한 방대한 분량의 동영상도 공개된다. 고인은 지난 2006∼07년 김대중 도서관이 진행한 구술사(Oral History) 프로젝트에 참여, 41회에 걸쳐 총 46시간 분량의 방대한 영상물을 녹화했다. 동영상에는 하의도에 태어나 성장한 과정과 정치역정을 이기고 집권한 것을 비롯해 IMF 외환위기 극복, 남북정상회담 개최, 한반도 평화교류시대 개막 등의 성과에 대한 자전적 목소리가 담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곧 출간될 예정인 고인의 자서전과 미공개 옥중서신도 관심을 끈다. 옥중서신에는 고인이 이 여사와 주고 받은 ‘우유팩 편지’ 사연이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연은 고인이 1976년 3·1 명동 구국선언사건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뒤 1년 남짓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신체제를 비판하며 선언문에 서명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인사들이 77년 석방됐지만, 고인은 마지막 석방기회를 앞둔 그해 12월18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강제치료를 받았다. 군사정권은 고인이 입원한 9층 병실 주변에 보초를 세우고 창문까지 막았다. 서신 왕래는 물론 면회도 통제됐다. 고인은 병실에서 우유를 먹고 난 뒤 우유팩을 모아 뒀다가 못으로 글을 써서 유일한 면회객인 이 여사에게 전했다. ●옥중서신중 우유팩 편지 내용도 관심 ‘우유팩 편지’에는 ‘나의 감금생활과 처지를 바깥 사람들에게 알리고 상의하라. 외신에게 알려라.’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이 여사는 이를 면회갈 때 가져간 반찬통에 담아 몰래 밖으로 날랐다. 자서전 출간 관계자는 “편지 내용이 희미해 해독이 어려웠지만 엄혹했던 시절에도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고인의 발자취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김지훈 이재연기자 kjh@seoul.co.kr
  • [테마 스토리-서울](9)아현동 웨딩타운

    [테마 스토리-서울](9)아현동 웨딩타운

    결혼을 앞둔 신부에게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포기할 수 없는 단꿈이다. 서울 북아현동·아현동 ‘웨딩타운’도 1970~90년대 웨딩드레스의 메카로서 단꿈에 젖었다.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에서 아현역까지 이어지는 도로 양편에는 한때 200개가 넘는 웨딩숍이 밀집했었다. 이들이 국내 웨딩드레스 수요의 50% 이상을 공급했다. 웨딩타운의 원조는 1960년대 말 아현동 육교 부근의 ‘시집 가는 날’이라는 웨딩숍.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인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웨딩숍들이 도로쪽은 물론 골목까지 들어찼다. 1982년부터 북아현동에서 웨딩숍을 운영 중인 윤학남 서대문구 웨딩협회장은 “당시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밀려들어 하루평균 10~20여벌의 웨딩드레스의 주문을 받을 정도였다.”면서 “막판에는 외환위기도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일단 이곳에서 웨딩숍을 열기만 하면 누구 하나 망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업하던 웨딩타운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웨딩플래너를 앞세운 강남의 웨딩숍들이 유행을 주도하고, 강북 업소 간 과다경쟁으로 독창적인 패션 창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자고나면 문을 닫더니 지금은 60여개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떠난 자리에는 카페나 입시학원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최근 북아현동 웨딩타운에 ‘부활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웨딩컨설팅 업체의 획일화된 서비스에 불만을 느낀 실속파 예비부부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다시 찾기 때문이다. 오랜 전통과 가격경쟁력도 한몫하고 있다. 2대에 걸쳐 웨딩숍 ‘윤디자인’을 운영 중인 김혜진 실장은 “강남이라는 이름값보다 드레스 자체의 품질을 보는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고, 디자이너가 직접 상담부터 제작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파티용 드레스 등 품종을 다양화하고 웨딩숍 공동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젊은층을 공략하는 등 노력도 돋보인다. 또 최근 늘고 있는 소박한 형태의 재혼용이나 임신한 신부용 등 세태를 반영한 상품전략도 먹혀 들었다. 한 웨딩숍에서 만난 일본인 아야코 와카야마(29·여)는 “한국여행을 온 김에 피로연용 드레스를 사러 왔는데, 디자인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련되고 화려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웨딩숍 ‘고운집’의 박귀연 실장은 “아현동 드레스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7~8년 전 가격을 그대로 받고 있다.”면서 “품질과 디자인으로 꿋꿋이 승부한다면 언젠가는 과거의 영광이 돌아올 것” 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주말 데이트] 국내 첫 사진미술관 설립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장

    [주말 데이트] 국내 첫 사진미술관 설립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장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고 했다. 처음엔 다들 말렸지만 이젠 세계적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어엿한 ‘사진미술관 관장님’이 됐다. ‘당신이 사진미술관 하겠다고 나섰다가 모기업( H약품)이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국내 최초의 사진미술관을 열기 위해 2001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구비서류를 들고 동부서주할 때 주위에서 이런 지청구를 듣기 일쑤였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주요 기업들이 도산할 때 기업 창고에서 발견된 미술품들이 지탄의 대상이었던 것을 상기시켰던 것이다. ●40년간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 송영숙(61) 한미사진미술관 관장. 처음 사진미술관을 열겠다고 나섰을 때 사진이 무슨 예술이냐며 차라리 사진박물관이나 하라고 박대하는 등 색안경에 한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다. 그럴수록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 송 관장은 사실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H약품 회장의 부인이다. 편안한 길을 마다하고 남들이 안하는 일을 택했다. 그는 타고난 예술 열정으로 40년 간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해 오고 있다. 그가 사진작가의 길을 내디디게 된 계기는 사진기자였다가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이 됐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에 심취했던 소녀적 감성이 큰 몫을 했다. 1966년 숙명여대 교육학과 1학년 때였다. 서울 방이동 H약품 19층에 위치한 미술관장실에서 19일 송 관장을 만났다. 얼핏 보아도 ‘회장 사모님’ 같지 않아 보였다. 듣던 대로 검은 뜨개 모자에 소탈한 바지차림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는 관장이란 직함보다 사진작가라는 강한 자아의식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국내 제1호 사진미술관 설립이 사진작가라는 자아의식에서 출발했음은 물론이다. 또 있다. 배 고프고 홀대받은 1세대 사실주의 사진작가들이 후배 작가인 송 관장에게 ‘사진작가 사랑방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이때가 2000년 갤러리 사간에서 ‘The Truths· 또 하나의 진실’이란 일곱번째 개인전을 마친 직후였다. 그렇게 시작된 사진전용 미술관 사업이 어렵게 2002년에 허가를 받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 이제 8년째. 미술관은 당초 20층 한 층 규모에서 19층까지 두개 층으로 확장됐다. 항온항습이 잘 되는 수장고에는 수집한 국내외 유명 사진작가들의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2006년부터는 제1회 한미사진예술상을 제정해 매년 2000만원의 상금을 전달하고 있다. 1회 수상자는 이상현 작가. 그는 이를 계기로 현재 바젤아트페어 등에서 잘 나가는 세계적 작가로 부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세계적인 사진작가들, 이를테면 고명근씨 등이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한번 초대전을 열고 나면 작가들과의 인연도 끈끈하게 맺고 있다. 전시회를 할 때마다 열심히 찾아가 작품을 2~3점씩 구입하는 후원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 송 관장은 “나는 씩씩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의 재능있는 사진작가들이 세계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근대 사진 꾸준히 모아 해마다 기획전 그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귀중한 근대 사진들도 꾸준히 모아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사진 중 1년에 한 차례씩 기획전시회를 여는데, 올 봄 순종임금의 친경식 사진을 공개한 ‘대한제국 황실사진전’ 등도 그 일환이다. 송 관장은 더 나아가 근대사진 박물관도 세우고 싶다고 했다. 2007년부터 경북 안동의 폐교를 보수해 사진작가들에게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기록사진 등 ‘전통사진’에 집중했지만 세계적인 추세가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사진들인 만큼 그들 사진에도 관심을 쏟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미술관 관장이 아닌 사진작가로 작업하고 싶다.”는 열정을 보이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진솔하게 접근할 수 있을 때까지 7~8년씩 머릿속에 이미지를 숙성시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아울러 “앞으로 찍을 사진들은 머릿속에서 이미 충분히 익었다.”며 웃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해운대’ 윤제균 감독 “기대이상이란 말 많이 들어… 믿기지 않아요”

    ‘해운대’ 윤제균 감독 “기대이상이란 말 많이 들어… 믿기지 않아요”

    호평 쓰나미, 인터뷰 쓰나미, 관객 쓰나미…. 이 모두가 오는 주말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영화 ‘해운대’에 몰려온 쓰나미다. 즐거운 ‘삼중 쓰나미’를 겪고 있는 ‘해운대’의 윤제균(40) 감독은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제작사 ‘JK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얼떨떨함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손익분기점(약 550만명)만 넘겨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1000만명은 한마디로 ‘꿈의 숫자’였죠.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1000만명을 동원한 비결을 물어보자 “나도 그게 궁금하다.”고 말한다.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는데, 한마디가 떠올랐어요. ‘기대 이상’. 영화를 보신 분들이 ‘기대 이상’이란 말을 가장 많이 하시더라고요. 아마도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재난영화’란 장르에 대한 불신에다, 코미디 감독인 윤제균에 대한 불신까지 겹쳐서 기대를 많이 안 하셨던 것 같아요.”(웃음) 하기야 ‘두사부일체’(2001년), ‘색즉시공’(2002년), ‘1번가의 기적’(2007년) 등 데뷔 후 꾸준히 코미디 영화만 찍어온 그가 재난영화를 찍으리라곤 아무도 예상 못한 바였다. 감독은 ‘낭만자객’(2003년)으로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고향 부산에 내려가 있던 2004년 겨울, 우연히 동남아시아 쓰나미 뉴스를 접하곤 ‘해운대에 쓰나미가 몰려온다면’이란 생각을 했다.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간 건 ‘1번가의 기적’이 개봉한 직후인 2007년 초였다. 착상부터 탄생까지 5년이 걸린 ‘해운대’는 하지만 언론시사회를 갖기도 전 루머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충무로에는 ‘컴퓨터 그래픽(CG)이 별로라더라.’ ‘재난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재난이다.’는 근거없는 비방이 떠돌았다. 많이 속상했다는 감독은 “내가 전작들에서 신뢰를 많이 못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 짊어져야할 짐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해운대’의 뚜껑이 열리자 여기저기서 “CG가 할리우드 못지않다.”는 평이 쏟아졌다. CG에 투입된 물량은 순제작비 130억원(총제작비 160억원) 중 50억원가량. CG를 담당한 이는 ‘스타워즈’, ‘투모로우’, ‘퍼펙트 스톰’ 등에 참여했던 할리우드의 CG 프로듀서 한스 울릭이었다. 울릭은 다년간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스펙터클 넘치는 시각효과를 구현해냈다. 계약 때의 조건도 지켜 한국 CG업체 ‘모팩’에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했다. 무엇보다 ‘해운대’가 주목을 받은 건 휴머니티 강한 스토리 때문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하는 시선도 생겨났다.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할리우드 재난영화는 두 가지 플롯으로 대별할 수 있어요. ‘투모로우’처럼 영웅이 재난을 막는 가운데 휴머니즘이 곁들여지는 영화와 ‘타이타닉’처럼 드라마가 한창 쌓여가다 재난과 함께 증폭되는 영화. 양자 택일을 한다면 저는 ‘타이타닉’처럼 가고 싶었어요.” ‘해운대’가 재난 중심이 아닌 드라마 중심의 영화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사실 그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과정도 영화만큼이나 드라마적이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광고회사를 다니던 그는 1998년 외환위기때 한달간 무급휴직을 해야했다. ‘남들은 다 외국여행 간다는데 돈이 없어서’ 그는 집에서 무작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영화 ‘신혼여행’(2000년)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감독을 맡은 것은 두번째 시나리오 ‘두사부일체’를 통해서다. 영화사에서 적당한 감독이 없어 애를 먹자 자신이 직접 연출할 것을 제안했고, 한달 만에 허락을 받아냈다. ‘무데뽀 정신’이 남다른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고 말했다. ‘해운대’가 800만명을 넘겼을 즈음, 그는 영화관계자들과 가진 자축파티에서 기어이 눈물을 쏟았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한때 투자자를 모으지 못해 연출부, 제작부를 해산한 적이 있어요. 3~4개월 함께 일한 스태프들에게 돈 한푼 못 주고 갈길 가라고 했죠. 정말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렵사리 투자를 따낸 끝에 작품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짐작 가능한 대로 감독도 배우도 누구도 러닝 개런티를 받지 않았다. 감독은 대신 보너스를 지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막내 스태프들까지 계좌번호를 다 받아서 직접 다 쏴주려고요. 스태프들이 제일 고생을 많이 한 만큼, 저도 그렇고 투자자들도 그렇고 보너스를 챙겨드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싶어요.” 감독이 차기작으로 염두에 둔 아이템은 3가지다. SF 호러 ‘제7광구’, 가족 판타지 ‘템플스테이’, 그리고 제목 미정의 SF멜로. 이르면 8월 말~9월 초쯤 결정될 다음 작품은 세계 진출을 위해 영어 대사로 제작할 예정이다. 감독은 “해외 시장을 넓히는 의미에서 도전해볼 생각”이라면서 “한국어로 만들어서 팔면 수익에도 한계가 있다. 10분의1 예산으로 할리우드와 똑같은 퀄리티의 영화를 제작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분자분한 말투에선 ‘1000만 클럽’ 감독으로서의 도전정신과 책임감이 물씬 묻어났다. 글 사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이번 주말 1000만 돌파할 듯…한국영화에 시너지 효과 기대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해운대’(감독 윤제균)가 관객 1000만명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해운대’는 상영 29일째인 이달 19일 누적관객 930만명을 넘어섰다.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주말인 22일 또는 23일 관객 1000만명을 넘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괴물’(1301만명), ‘왕의 남자’(1230만명),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명), ‘실미도’(1108만명) 등 4편이다. 순수 오락영화 ‘해운대’가 흥행 돌풍을 일으킨 이유로는 우선 한국형 재난영화로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다른 차별성을 선보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윤제균 감독이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라고 밝혔듯이, 가족과 인연의 소중함 등 한국적 정서를 담은 드라마가 극 전반에서 큰 호소력을 발휘한다. 또 주인공 한명만 따라다니는 영웅주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애를 강조했다는 점도 친근감을 상승시킨다. 컴퓨터 그래픽과 관련,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스 울릭 등 할리우드 기술진은 해운대에 닥친 거대한 쓰나미의 위용을 실감나게 화면에 표현해 놓았다. ‘해운대’의 ‘1000만 클럽’ 합류는 한국영화산업이 극심한 불황을 겪는 가운데 2006년 ‘괴물’ 이후 3년 만에 나온 것이어서 더 의미가 크다. ‘국가대표’ 등 다른 한국영화들과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영화계에 등을 돌린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 그들의 발길을 충무로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해 국민이 비통에 잠겼다. 운명적으로 비슷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떠나보내게 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빨갱이’ ‘좌익 용공분자’ ‘후광’(後廣) ‘인동초’(忍冬草) ‘토머스 모어’ ‘동교동’ ‘행동하는 양심’ ‘아시아의 만델라’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햇볕정책’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등은 김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수사(修辭)들이다. ‘빨갱이’와 ‘좌익 용공분자’는 여운형 선생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일시 몸담았던 인연으로 평생의 꼬리표가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오히려 그는 우파 반동세력으로 몰려 복역한 바 있다. 1957년 가톨릭 교회의 영세를 받았으며,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였다. 15세기말 영국의 대법관과 하원의장으로 활약했고, ‘유토피아’(1516)의 저자이기도 한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데 불응, 반역죄로 처형된 인물이다. 토머스 모어는 193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諡聖)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우리 역시 김 전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기를 희망한다. ‘빨갱이’에서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했다. 1971년 선거 지원유세서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1973년 유신독재 치하 정보요원들에게 납치되어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릴 때마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일어섰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인동초’(忍冬草)였고, ‘행동하는 양심’과 ‘아시아의 만델라’가 덧붙여졌다. 그리고 5·18 내란 음모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또 한 번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7년 ‘서울의 봄’과 6월 민중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정권의 수립 기회를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지연시킨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 5년 후 노태우 정권 후계자로 지명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를 영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지지자들 역시 오열하고 세상을 등졌다. 우여곡절 끝,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후락과 전두환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뇌리에 사무친 정적(政敵)의 이름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같은 용서와 화해의 노력은 서거 직전 병상에까지 계속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1998년의 외환 위기사태를 3년 만에 극복했으며,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육성하고 각종 인권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2000년 6월,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빛나게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은 실책에 속한다. 자신의 햇볕정책을 전방위로 수행했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이념적으로만 해석하여 민주당을 거리투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구시대의 이념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독도문제를 지나치게 양보하고, 오는 9월3일로 100년이 만료되는 청·일 간도협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도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트랜스 DJ’, 그것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통하여 그의 유지를 존중하되 그의 실책과 한계를 지양하면서, 내일의 삶에 필수적인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는 ‘희망의 변증법’을 펼치는 일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외환거래 1년만에 증가세로

    외환시장이 안정되고 수출 규모가 늘어나면서 국내 외국환은행의 외환거래 규모가 1년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19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 2·4분기 외국환은행의 하루 평균 외환거래 규모(은행 간 거래와 대고객 거래 합계)는 전분기보다 13.6% 증가한 444억 6000만달러로 집계돼 지난해 1분기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를 나타냈다.전기 대비 하루 평균 외환거래량 증감률은 지난해 1분기 6.9%에서 2분기 -2.7%로 돌아선 뒤 3분기 -4.3%, 4분기 -22.5%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1.4%를 기록하며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서정석 한은 외환조사실 과장은 “2분기 들어 외환시장이 안정되고 수출 규모가 늘어난 데다 해외펀드 증가분에 대한 자산운용사들의 환 헤지가 늘면서 파생거래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1분기 평균(종가 기준) 1418.30원에서 2분기 1286.10원으로 낮아졌고 전일 대비 환율 변동률도 1분기 1.17%에서 2분기에 0.78%로 감소했다. 통관 기준 수출입 규모는 1분기 1459억달러에서 2분기 1644억달러로 증가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한국 순채권국 복귀 ‘초읽기’

    한국 순채권국 복귀 ‘초읽기’

    우리나라가 지난해 말 이후 달고 살아온 순채무국이란 불명예를 조만간 벗을 전망이다. 경상수지 흑자 등으로 외국에서 빌리는 빚보다는 거둬들일 채권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2009년 6월 말 국제투자대조표(잠정)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순대외채무 잔액(대외채무-대외채권)은 75억 6000만달러로 3월 말 240억 8000만달러에 비해 165억 2000만 달러나 줄었다. 여전히 가계부 상엔 빚이 채권보다 75억 6000만달러 많지만 차이(채무-채권)가 줄어드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3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사상 처음 순채무국이 됐다. 이후 2006년 3월 말엔 순대외채권 규모가 1303억 2000만달러까지 늘어났지만, 지난해 9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순대외채무가 326억달러까지 늘어 9개월째 순채무국으로 머무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증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통화스와프 자금 상환 등이 순대외채무가 빠르게 줄어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6월 순채무 75억 6000만달러 통계를 들여다 보면 지난 석달 간 채무와 채권은 함께 늘었다. 다만 채권이 증가하는 속도가 채무가 느는 속도를 앞질렀다. 한은에 따르면 대외채권은 6월 말 현재 3725억 6000만달러로 3월 말에 비해 275억달러 증가했다. 통화당국의 외환보유액 증가로 254억달러 늘었고, 정부 부문도 3억 1000만달러 증가했다. 반면 대외채무는 3801억 2000만달러로 3월 말에 비해 109억 8000만달러 증가하는 데 그쳤다. 통계상 국가의 빚은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긍정적인 신호들도 숨어 있다. 유동성 위기와 연결될 수 있는 단기외채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1년 미만 단기외채(총 1472억 5000만 달러)가 1·4분기(1~3월)와 비교해 11억 5000만달러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장기외채(2328억 6000만 달러)는 8.5배인 98억 3000만달러나 증가했다. 단기외채 비중은 2분기 38.7%로 1분기에 비해 0.9%포인트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서는 6%포인트 감소했다. 빚의 성격도 변했다. 한은은 “채무가 는다고 해도 어떤 종류의 채무인지 여부가 중요하다.”면서 “최근 늘어난 채무는 순수한 빚인 차입보다는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에 투자하면서 통계상 채무로 잡히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분기(4~6월) 외국인 투자액 518억 8000만달러 가운데 132억 8000만달러가 채권 투자였다. ●“경상수지 흑자·외국인 투자 증가” 한은 국제수지팀 관계자는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는 현재의 추세라면 빠른 시일 안에 외채국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은 42.9%로 일본(42.1%)과 비슷하다. 미국(95.1%), 독일(142.5%), 홍콩(302.4%), 영국(354.0%)에 비해서는 크게 낮은 수준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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