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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도피생활 힘들고 괴로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도피생활 힘들고 괴로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도피생활 힘들고 괴로워” 장진호 심장마비로 사망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했던 장진호(63) 전 진로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일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특히 장 전 회장이 숨지기 하루 전 지인에게 “괴롭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2005년 캄보디아와 중국으로 도피생활을 계속해 왔다. 5일 한 매체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사망 전날인 2일 밤늦게 한국의 한 지인에게 만취상태로 전화를 걸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질환에 돌연사했다. 장 전 회장이 이끌던 진로그룹은 1996년 재계 순위 24위까지 급성장했지만 이듬해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05년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으로 기업매각이 이뤄져 회사정리절차 종결결정을 받았다. 장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울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ABA은행(아시아선진은행)을 비롯해 부동산 개발회사, 스몰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불거져 캄보디아 정부의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ABA은행은 1996년 진로그룹이 설립한 곳으로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당시 채권단 관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건너가 게임업체 등에 투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진호 심장마비로 사망, 누구길래?

    장진호 심장마비로 사망, 누구길래?

    10년간 도피생활을 이어온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숨졌다. 장 전 회장은 그제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 있던 가족들은 베이징에 도착해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1985년 진로그룹 2대 회장에 올라 급속한 사세 확장을 이끈 장 전 회장은 그룹을 재계서열 24위까지 올려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진로그룹은 2003년 분할 매각됐고, 장 전 회장은 5천억 원대 사기대출과 비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인 2005년 해외로 도피한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와 중국을 떠돈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사망 전날인 지난 2일 한국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뉴스팀 chkim@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회장 사망, 사인 알고보니..

    장진호 전 진로회장 사망, 사인 알고보니..

    10년간 도피생활을 이어온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숨졌다. 장 전 회장은 그제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 있던 가족들은 베이징에 도착해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1985년 진로그룹 2대 회장에 올라 급속한 사세 확장을 이끈 장 전 회장은 그룹을 재계서열 24위까지 올려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장 전 회장은 도피 중에도 은행업과, 부동산개발업 등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심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회장 누구?… “진로 흥망성쇠 함께한 장본인”

    장진호 전 진로회장 누구?… “진로 흥망성쇠 함께한 장본인”

    장진호 전 진로회장 누구?… “진로 흥망성쇠 함께한 장본인” 장진호 전 진로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지난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장진호(63) 전 진로그룹 회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 전 회장은 진로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인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진로에 입사했다. 선친인 장학엽 회장에 이어 1988년 제2대 회장에 취임했다. 진로그룹은 한때 계열사를 20개 이상 거느리며 재계 19위까지 올랐지만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자금난에 빠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진로의 모태는 1924년 장진호 회장의 선친 고 장학엽 회장이 평남 용강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다. 이후 장씨 일가는 1951년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동화양조’로 상호를 바꾸고 ‘금련’이라는 소주를 생산하면서 남한에 터를 잡았다. 이어 1954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발족해 전국적인 영업에 들어갔으며, 진로 소주의 상징인 두꺼비도 이때 탄생했다. 진로라는 상호는 197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진로는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줄곧 시장을 석권해왔다.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소주를 주력사업으로 해온 덕에 인지도도 높았다. 소주사업에 전념해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던 진로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사업 영역을 급속히 확장하면서부터다. 장 전 회장은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고서 이듬해인 1988년 서울 서초동 본사 인근에 아크리스 백화점을 열면서 종합유통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선, 제약, 종합식품, 건설, 금융, 유선방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종합그룹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다 결국 1997년 9월 부도를 맞았다. 1999년 자회사 진로쿠어스맥주가 오비맥주에 매각되고, 2000년 위스키사업이 진로발렌타인스에 양도됐다. 결국 진로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으로 공중 분해됐다. 이어 하이트맥주가 2005년 진로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 비자금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돼 2004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은 그가 1994∼1997년 자본이 완전히 잠식된 진로건설 등 4개 계열사에 이사회 승인없이 6300억원을 부당지원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5500억원을 사기대출받은 혐의 등을 적용했다. 장 전 회장은 진로의 대주주였으나 2004년 4월 법원의 정리계획안 인가에 따라 진로 지분 전량이 소각됐다. 또 그의 재산도 대부분 법원에 의해 가압류됐다. 외환위기 와중에 진로그룹이 부도나면서 모든 것을 잃은 장 전 회장은 진로를 되찾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외자를 유치하거나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기업을 앞세워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으로 거액의 공적자금을 낭비한 책임이 있는 범죄자인데다가 정서적으로도 다시 경영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경영인으로 복귀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진로를 되찾기도 어려워졌다. 결국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고서 2000년대 중반부터 기약 없는 해외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장 전 회장은 10여년간 캄보디아, 중국 등을 떠돌며 생활했다. 외국에서 은행, 부동산 개발회사, 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에는 기업 회생을 위해 마련했던 거액의 자금을 횡령했다며 옛 진로그룹 임원을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장기 도피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장 전 회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이 많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회장 사망, 재계서열 24위였는데..

    장진호 전 진로회장 사망, 재계서열 24위였는데..

    ‘장진호 전 진로회장 사망’ 10년간 도피생활을 이어온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숨졌다. 장 전 회장은 그제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 있던 가족들은 베이징에 도착해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1985년 진로그룹 2대 회장에 올라 급속한 사세 확장을 이끈 장 전 회장은 그룹을 재계서열 24위까지 올려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진로그룹은 2003년 분할 매각됐고, 장 전 회장은 5천억 원대 사기대출과 비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인 2005년 해외로 도피한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와 중국을 떠돈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사망 전날인 지난 2일 한국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회장, 베이징에서 사망

    장진호 전 진로회장, 베이징에서 사망

    ‘장진호 전 진로회장 사망’ 10년간 도피생활을 이어온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숨졌다. 장 전 회장은 그제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 있던 가족들은 베이징에 도착해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1985년 진로그룹 2대 회장에 올라 급속한 사세 확장을 이끈 장 전 회장은 그룹을 재계서열 24위까지 올려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진로그룹은 2003년 분할 매각됐고, 장 전 회장은 5천억 원대 사기대출과 비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오랜 도피생활 이유는?

    장진호 전 진로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오랜 도피생활 이유는?

    장진호 전 진로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오랜 도피생활 이유는? 장진호 심장마비로 사망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했던 장진호(63) 전 진로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일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특히 장 전 회장이 숨지기 하루 전 지인에게 “괴롭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2005년 캄보디아와 중국으로 도피생활을 계속해 왔다. 5일 한 매체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사망 전날인 2일 밤늦게 한국의 한 지인에게 만취상태로 전화를 걸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질환에 돌연사했다. 장 전 회장이 이끌던 진로그룹은 1996년 재계 순위 24위까지 급성장했지만 이듬해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05년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으로 기업매각이 이뤄져 회사정리절차 종결결정을 받았다. 장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울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ABA은행(아시아선진은행)을 비롯해 부동산 개발회사, 스몰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불거져 캄보디아 정부의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ABA은행은 1996년 진로그룹이 설립한 곳으로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당시 채권단 관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건너가 게임업체 등에 투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도피생활 괴롭다 호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도피생활 괴롭다 호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숨져… “도피생활 괴롭다 호소” 장진호 심장마비로 사망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했던 장진호(63) 전 진로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일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특히 장 전 회장이 숨지기 하루 전 지인에게 “괴롭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2005년 캄보디아와 중국으로 도피생활을 계속해 왔다. 5일 한 매체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사망 전날인 2일 밤늦게 한국의 한 지인에게 만취상태로 전화를 걸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질환에 돌연사했다. 장 전 회장이 이끌던 진로그룹은 1996년 재계 순위 24위까지 급성장했지만 이듬해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05년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으로 기업매각이 이뤄져 회사정리절차 종결결정을 받았다. 장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울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ABA은행(아시아선진은행)을 비롯해 부동산 개발회사, 스몰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불거져 캄보디아 정부의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ABA은행은 1996년 진로그룹이 설립한 곳으로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당시 채권단 관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건너가 게임업체 등에 투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만취 상태로, 힘들고 괴로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만취 상태로, 힘들고 괴로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심장마비로 사망… “만취 상태로, 힘들고 괴로워” 장진호 심장마비로 사망, 장진호 전 진로회장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했던 장진호(63) 전 진로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일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특히 장 전 회장이 숨지기 하루 전 지인에게 “괴롭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2005년 캄보디아와 중국으로 도피생활을 계속해 왔다. 5일 한 매체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사망 전날인 2일 밤늦게 한국의 한 지인에게 만취상태로 전화를 걸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오전 중국 베이징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질환에 돌연사했다. 장 전 회장이 이끌던 진로그룹은 1996년 재계 순위 24위까지 급성장했지만 이듬해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05년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으로 기업매각이 이뤄져 회사정리절차 종결결정을 받았다. 장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울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ABA은행(아시아선진은행)을 비롯해 부동산 개발회사, 스몰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불거져 캄보디아 정부의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ABA은행은 1996년 진로그룹이 설립한 곳으로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당시 채권단 관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건너가 게임업체 등에 투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란 핵협상 타결] 가까워진 중동… 건설·車 ‘휘파람’… ‘금융 실크로드’ 기대감

    핵협상이 타결된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이란 붐’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를 포함해 정유·석유화학, 금융, 자동차, 전자, 조선, 해운, 항공 등 산업계 전반의 수혜가 예상되면서 기업들의 실익 계산도 바빠졌다. 건설업계는 때가 왔다는 분위기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3일 “이란은 중동에서 이집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큰 시장으로, 가스·석유자원이 풍부한 지정학적으로도 요충지”라며 “올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수주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1975년 대림산업이 처음으로 건설·플랜트 사업을 수주한 이후 현대건설, GS건설 등이 뛰어들어 사업을 해 왔으나 2010년 이란 제재 이후 대부분 거래가 끊겼다. 국내 건설사는 제재 전까지 현대건설의 16억 달러짜리 사우스파 가스전 공사 등 총 120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벌여 왔다. 이날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 건설사들은 미국과 이란 간 협상 상황을 지켜본 뒤 수주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수요가 늘 것”이라며 “현지 지사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유업계는 이란산 원유의 추가 생산에 따른 유가 하락을 예의주시하면서도 호재로 평가하고 있다.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는 이란 경제제재 완화가 예상됐던 만큼 급격한 유가 하락에 따른 피해(재고평가손실)보다 중동 국가 간 석유가격 인하 경쟁으로 인한 석유제품 수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원유 매장량 세계 5위인 이란이 2000만~30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유를 내놓을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 원유시장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에도 아시아·중동·유럽을 연결하는 ‘금융 실크로드’ 구축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부터 팽배하다. 은행권에서는 제재가 풀리면 이란과의 교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외환·결제 서비스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안심전환대출 자격 확인 이렇게 “오늘 2차 판매 마지막 날”

    안심전환대출 자격 확인 이렇게 “오늘 2차 판매 마지막 날”

    안심전환대출 자격 안심전환대출 자격 확인 이렇게 “오늘 2차 판매 마지막 날” 안심전환대출 2차 판매 마지막 날인 3일 오전 시중은행 지점의 신청 창구는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1차 안심전환대출은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판매돼 나흘만에 한도 20조원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2차 안심대출은 그에 비해 인기가 시들해진 탓이다. 아파트 밀집지역이어서 1차 안심전환대출 판매 때 아침 일찍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연출됐던 신도시 일대 은행 지점에서는 2차 판매 마지막 날임에도 부산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신한은행 인천 청라지점 관계자는 “1차 판매 때는 영업점 문을 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고객들이 있었지만, 2차 판매 때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그래도 안심대출을 신청하려는 고객은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편”이라고 전했다. 국민은행 파주 금촌지점 대출 담당직원은 “고객들이 몰려들었던 1차 안심전환대출 판매 때보다 손님은 많이 줄었다”면서 “다만 오늘이 2차 판매 마지막 날이어서 오후에 고객들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지역에서는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하려는 고객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나은행 종로지역 지점 관계자는 “안심전환대출 신청 고객이 아침에 한 분 오셨고 아직은 매우 한산한 편”이라며 “마지막 날인 만큼 오후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고객이 많이 몰릴 것 같지는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환은행 선릉역지점 대출 담당자는 “어제까지 방문이나 전화로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들이 상당히 있었던 반면 오늘은 한산한 편”이라면서 “안심전환대출 신청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판매된 2차 안심전환대출 신청 물량은 2일까지 나흘 간 9조 5000억원이다. 나흘간 하루 평균 2조 4000억원꼴로, 1차 판매 때 하루 평균 신청액인 4조~6조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2차 안심전환대출 신청액은 13조~15조원 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조건을 충족하는 신청자 모두 대출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2차 안심전환대출 자격조건은 1차와 변화가 없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자로 주택가격 9억원 이하, 대출 취급 후 1년 경과한 대출, 6개월내 연체 기록이 없는 대출, 변동금리 또는 이자만 상환 중인 대출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안심전환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은 필요한 서류 중 하나라도 빠뜨리면 해당 서류를 갖춘 후 지점을 다시 방문해야 하므로 서류를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필요 서류는 ‘본인 확인’, ‘소득 증명’, ‘담보 관련’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대출자 본인임을 확인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므로, 신분증과 함께 주소 변경 내역이 포함된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하다. 근로소득자는 다니는 직장에서 재직증명서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발급받아야 하고, 자영업자는 관할 세무서에서 소득금액증명원을 떼와야 한다. 담보 관련 서류로는 등기부등본을 챙겨야 한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연립주택 거주자는 시세 파악과 토지용도 확인 등을 위해 건축물관리대장, 토지이용계획확인원, 지적도등본, 토지대장 등도 필요하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특정근저당’이거나, 기존 2~3건의 주택대출을 1건의 안심전환대출로 합치려고 할 때에는 근저당 설정 서류도 갖춰야 한다. 특정근저당은 해당 대출 외에는 근저당 설정이 불가능한 것을 말한다. 등기권리증,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전입세대 열람내역 등이 필요하다. 안심전환대출의 자격 요건을 갖췄는지는 한국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www.hf.go.kr)나 콜센터(1688-8114) 등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심전환대출 필요서류·자격 무엇? “2차 판매 마지막 날 한산”

    안심전환대출 필요서류·자격 무엇? “2차 판매 마지막 날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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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심전환대출 자격 확인 이렇게 “2차 판매 마지막 날 분위기는?”

    안심전환대출 자격 확인 이렇게 “2차 판매 마지막 날 분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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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사드·AIIB와 마주한 한국/조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시론] 사드·AIIB와 마주한 한국/조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한국은 큰 틀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전략구도 위에서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동북아의 복합적인 역학구도로 인해 안보와 경제의 조화로운 선택이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서로 다른 사안이나, ‘제로섬’ 구도로 부각되고 있다. AIIB는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틀을 구축한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언을 고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에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해 오면서 개도국의 지분 확대 요구를 계속 거부해왔고, IMF의 과도한 요구는 개도국의 원성을 샀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AIIB의 ‘지배구조 투명성’ 개선 등 다자개발은행의 원칙을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이 가입 의사를 밝힘으로써 미국 주도의 반(反)AIIB 전선의 대오이탈로 결정적 균열이 초래되었다. 이는 중국의 도전으로 워싱턴 중심의 세계경제권력 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 유럽국가마저 실리 추구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상황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한 미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유대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AIIB 창설로 ‘워싱턴 컨센서스’가 약화될 경우, ‘베이징 컨센서스’가 형성되면서 미·중 간 세력 전이의 한 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AIIB는 한국의 가입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었으며, 우리는 국제 금융외교 분야에서 보다 높아진 지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의 입장과 지분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IMF에 당한 굴욕적인 경험을 돌아봐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1월 굴욕적인 온갖 의무사항 이행을 감수하며 IMF에 195억 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당시 11월 말 외환 보유액은 244억 달러였다. 그런데 195억 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치욕을 맛봤다. 발언권이 있었다면 이 정도의 굴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다자금융기구의 대주주가 되는 호기로 삼으면서 아시아의 대규모 인프라시장 개척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통일 한반도의 미래 구상과 관련하여 AIIB가 대북 개발자금 및 통일비용 마련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이에 지분율을 최대한 확보하고 서울에 지부 또는 하부기구 유치를 제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협의회, 이사회, 집행기구 구성 비율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의 입장을 적극 관철시켜야 한다. 사드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결례와 전방위 압박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한·중 양국 간의 신뢰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 더욱이 한반도가 중국의 미사일과 레이더의 사정권 내에 놓여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일방적인 압박은 한·미동맹을 흔들려는 의도로 비쳐 대중(對中) 의구심만 키우는 역작용도 무시하기 힘들다.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이 미국과 직접 협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은 먼저 한국과 미국의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려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다 강력한 의지와 역할이 오히려 사드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창과 방패’ 논리로 접근하는 미국의 전략은 미 국방부 강경파와 군산복합체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가 어렵다. 사드는 검증되지 않은 무기체계라는 지적도 주목되며,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위협을 근본적으로 해소시켜 줄 것으로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에 사드 배치의 필요성에 대해 관련 분야 전문가의 면밀한 기술적 검토와 보다 많은 논의 과정을 거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북한의 대남 핵위협 해소에 명백히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배치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북핵 문제에 대한 피로감과 체계적인 전략의 부재 상황을 이해하면서 우리 스스로 북한을 관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위상은 예전과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적 국면을 우리의 위상을 재확인하고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때다.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인문학자 김경집 ‘엄마의 혁명’을 말하다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인문학자 김경집 ‘엄마의 혁명’을 말하다

    2015년 한국의 엄마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남편의 성공과 자녀의 진학 사이에 끼인 존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일부 극성 엄마 때문에 교육을 망치고 아이들도 버릇없어졌다고 문제가 터질 때마다 곳곳에서 손가락질을 해 댄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들 한다. 누군들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아내’ ‘○○엄마’로 살고 싶겠나. 더이상 정치인도, 정부도, 학교도 믿지 못하겠다며 목소리를 내는 엄마가 하나둘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엄마들에게 분연히 일어나 세상을 바꾸라고, 혁명을 하라고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 인문학자 김경집(56) 전 가톨릭대 교수다. 무책임한 주장 같기도 하지만, 귀 기울일 대목도 적지 않아 지난달 31일 만나 김 전 교수가 말하는 엄마가 시작하는 인문학 혁명에 대해 들어 봤다. →여성 인문학, 주부 인문학도 아니고 왜 엄마 인문학인가. 마케팅 전략 같다. -우리 사회의 변화에 있어 엄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엄마 인문학은 4년 전 숭실대학교 관계자와 인문학을 대중화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출발했다. 엄마 인문학은 작년에 처음 시작했는데, 때맞춰 서울시교육청에서 관심을 보여 함께하게 됐다. 200명 강의에 2400여명이 몰려 12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통상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줄어드는데, 이 경우는 오히려 늘어났다. 서울시 전역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이 참여했다. 반응이 좋아 올해 2차 강의가 다음주에 시작된다. →엄마와 인문학의 접점은. -인문학은 삶과 세상에 대한 의미를 보여 주고 질문하게 하는 동시에, 미래로 가는 길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 꾸러미를 갖고 있다. 그 열쇠를 우리 아이들에게 쥐어 줘야 하고, 그러려면 엄마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교육에 있어 마지막 희망은 엄마다. 여기에 엄마와 인문학의 접점이 이뤄진다. →임계점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 -1997년은 우리 사회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외환위기 또는 IMF 사태를 떠올린다. ‘속도와 효율’만 강조된 사회 구조에 의해 대한민국 전체가 붕괴한 때라고 본다. ‘속도와 효율’ 지상주의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착각한 우리가 ‘창조와 혁신, 융합’을 추구하는 현대 세계의 변화를 외면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채 낡은 프레임을 계속 밀고 갔기 때문에 겪은 필연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은 하위 구조에서만 이뤄지고 부담은 국민이 다 떠안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후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착각하고 있다. 사회적 구조와 관련된 문제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예전처럼 힘들어도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으로나마 조금 나아지던 삶조차 요원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체념´을 학습했다. 이런 의미에서 임계점을 넘었다. 그런데도 미련을 갖고 남아 있는데, 객관적으로 현 상황을 인식하면 미련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2015년 대한민국의 엄마는 어디에 서 있나. -남편의 사회적 성공과 소득, 자녀의 진학에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이렇게 해도 양산되는 게 명문대 출신 취업준비생 자녀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불행하게 살 것인지, 엄마들은 걱정을 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혼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엄마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고 주장한다. 자칫 ‘치맛바람’으로 통칭되는 입시 과열과 사교육 열풍, 경쟁에만 매몰된 반쪽짜리 가정교육 등의 책임을 오롯이 엄마에게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엄마들 책임이라고 전가하는 게 아니다. 엄마를 윽박지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선 자존감부터 찾자는 것이다. 남편과 자녀의 성공으로 내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건 무모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해 자존감을 회복하면 아이들에게 공부가 인생에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나를 되찾는 것이 바로 가정을 회복하는 길이다. →엄마들의 ‘섹시’한 ‘혁명’. 어째 부조화라고 생각된다. -섹시한 혁명,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 섹시를 성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장 세련되고 멋지고 깔끔하다는 의미다. 혁명은 도발적이고 선동적이다. 하지만 머뭇거릴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다. 남자들은 변화를 주도하기가 쉽지 않다. 목에 식구들 밥줄이 걸려 있으니까. 민주적인 구도도 아니고. 남자들은 권력을 쥐려고 피를 흘린다. 하지만 엄마는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아이와 가정을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연대하면 입시제도도 바꿀 수 있다. →아빠들의 역할은, 자리는 없나. -최근 아버지회가 구성돼 활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런 아빠들에게는 변화의 메시지가 공유된다고 생각한다. →‘강남 엄마’들을 변화시키는 게 빠르지 않을까. -강남 엄마들은 안 변한다. 지금까지는 1%인 이른바 강남 엄마들이 나머지 99%를 변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제는 99%가 1%를 따돌리자는 것이다. 전체 아이의 3%만이 부모들이 생각하는 500개 직업군에 속한 일자리를 구하는 게 현실이다. 실력 못지않게 운에 좌우되는 인생을 아이들 대에서는 바꿔 주겠다는 인식, 기성세대처럼 평생직장이 아니라 앞으로는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교육 방식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엄마들과 다른 계층을 상대로 한 인문학의 다른 점은. -직장인 대상 인문학 강의에서는 ‘아, 그럴 수 있겠네, 어떻게 적용해 볼까’가 최우선 관심사다. 그런데 엄마들은 대단히 직설적이다. 아이에 대한 문제에만 집중한다. 시야가 좁아진다. 입체적으로 사유하게 되면서 인식의 변화가 생긴다. 자각의 반응이 제일 빠른 집단이다. 옆에 같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꿔보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엄마가 아닌 남자가 엄마에게 세상을 바꿔 보라고,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솔직히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집안 사정상 10년간 주부의 삶을 병행했다. 아이들(아들 둘)에게 밥을 사다 먹이는 것보다 솜씨가 없어도 내가 직접 밥을 해 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겠구나 싶었다. 때로는 옆에 있는 사람이, 훈수 두는 사람이 문제를 더 잘 볼 수 있다. →엄마들 반응은 어떤가. -앞서 잠깐 말했지만 상당히 공감들을 한다. 강의가 끝나면 혼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한다. 인천북구도서관에서 엄마 인문학 강의를 했었는데, 수강했던 엄마들이 책 읽는 소모임을 만들었다. 어떤 책을 읽을지부터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 소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다. 엄마들이 자존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명함을 만들라고 권한다. 직장도 없는데 무슨 명함이냐고 처음에는 생각하지만 명함을 나눠 주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자신의 처지를 처량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누구네 집 CEO 또는 이름과 좋아하는 문구만 넣어 명함을 만들라고 한다. 만들어 본 엄마들은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며 주위 친구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알려 준다.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한 주장에 그칠 뿐 아니라 오히려 체념을 강화시킬 수 있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임계점을 한참 전에 넘어섰기 때문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변화는 위로부터 오는 것보다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생겨야 한다. 엄마의 변화는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결국 정치인도 방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변화의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장이고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예로 든다면. -한 달에 한 번, 가족이 모두 서점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라고 권한다. →엄마들의 변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나. -수시로 바뀌고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입시제도의 노예 노릇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걷어차 버리자고 얘기한다. 먼저 학원을 보내지 않는 일부터 가능할 것이다. 학원을 보내도 20%만 성적이 오른다는 통계가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수학, 영어, 국어 학원 보낼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을 찾아서 집중 투자하는 것이다. 다음은 유권자 운동이다. 강의를 마치고 엄마들에게 슬쩍 물어보면 절대로 지금처럼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할 때 가능성을 본다. →어린이집 문제를 보면 엄마들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 -맞다. 정치인들이 이미 엄마들 눈치를 보고 있지 않나. 선거를 앞두고 있어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이 변화의 적기다. →인문학 열풍 속에 정부와 기업들의 지원이 늘고는 있는데, 효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제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인문’ 자만 붙으면 지원해 준다. 인문학 장사, 인문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지금 인문학을 하느냐’라는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인문학이 자칫 또 다른 자기계발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분야별로 막혀 있는 벽을 터서 융합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인문학이 바로 이 융합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당장 다음주부터 2015년 엄마 인문학 강의를 시작한다. 그 외 전남 여수 등 지역에서도 비슷한 강의들이 열린다. 정치 담론을 빼고 교육·경제·사회·종교 문제에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으로 접근하는 100~150쪽 분량의 소책자를 낼 계획이다. 이 밖에 ‘엄마의 서재’ 캠페인을 연말부터 펼쳐 볼까 생각 중이다. 서재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라 부엌과 거실 사이, 아니면 부엌에 작은 탁자와 의자를 놓고 엄마가 언제든 앉아서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은 엄마의 서재에서 시작된다. 김균미 편집국 부국장 kmkim@seoul.co.kr ■김경집 박사는 누구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다 2012년 2월 사표를 던지고 충남 서산 해미로 내려왔다. 원룸을 구해 ‘수연재’(樹然齋)라 이름 짓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살고 있다.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을 쓰면서 살겠다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 ‘생각의 융합’이라는 책을 낸 데 이어 지난해 엄마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인문학 강의를 모아 ‘엄마 인문학’이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지금까지 공저를 포함해 20여권의 책을 냈다. ‘책탐’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고 ‘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등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에, ‘인문학은 밥이다’가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각각 선정됐다.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을 환영하면서도 교양과 지적 자산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창의적 융합과 연대를 강조하며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인문학을 지향한다.
  • [인사]

    ■국무조정실 ◇국장급 <승진>△광복70년기념사업추진단장 송경원<파견>△녹색성장지원단 부단장 임석규 ■기획재정부 ◇부이사관 승진△정보화담당관 유성수 ■교육부 ◇부이사관 승진△산학협력정책과장 김일수△학부모지원팀장 김현동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 승진△지역발전위원회 파견 박병찬◇과장급 전보△통상정책총괄과장 서덕호△에너지수요관리정책과장 김상모△석탄산업과장 최광국△무역위원회 무역구제정책과장 정경회△국가기술표준원 지원총괄과장 이용구 ■법제처 ◇서기관 파견 <법제협력관>△인천시 채향석△충남도 박종일△충북도 김태현◇서기관 전보△경제법제국 법제관 최영찬 ■국세청 △조사1과장 이동운◇복수직 서기관△청장실 김길용 ■문화재청 ◇승진 <부이사관>△유형문화재과장 윤순호<서기관>△법무감사담당관실 곽수철△유형문화재과 이문갑 ■한국시설안전공단 △경영본부장 문동주 ■서울메트로 △기술본부장 최승봉 ■외환은행 ◇전무 선임△경영기획그룹 권태균△마케팅그룹 윤규선 ■동국제약 △I&I사업부 전무(보) 조봉호△구매부 이사 구재성△연구개발부 부이사대우 유기웅△품질경영부 이사대우 김윤관 ■유한양행 ◇승진 <상무>△해외사업담당(수출팀장 겸임) 신명철△영업기획부장 이병만<이사>△경영기획팀장 김재용△ETC영업1부 서울2지점장 이혁재△ETC영업5부 북부지점장 황학선△영업기획팀 권한근△생산2부장 박경산△품질관리팀장 이학주△개발1팀장 박승철△비임상평가팀장 오세웅△R&D전략팀 이원희 ■일동제약 ◇승진△이사 고석태 김병성 김성상 김재진 김현중 박종개 박진규 ■보령제약그룹 ◇이사대우 <보령제약>△수출팀 박재록△생산지원부 이민호△구매팀 김종우△건설본부 기획팀 강상진<보령바이오파마>△생산팀 송주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승진 <상무>△서비스기술본부 신우찬△법무정책기획총괄본부 조장래<이사>△서비스기술본부 정우진△정보기술부 우제완 ■EBS미디어 △상임이사 정봉식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배지 경영’ 소통 강화…장자일계 원칙 이어질 듯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배지 경영’ 소통 강화…장자일계 원칙 이어질 듯

    1977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한 이웅열(59) 회장은 1985년 미국 뉴욕지사와 일본 도쿄지사 근무, 아시아지역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일찌감치 쌓은 글로벌 감각을 토대로 코오롱그룹의 해외 사업 전략을 이끌었다. ㈜코오롱 대표이사 등을 거쳐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시기는 1996년이다. 회장 취임 이후에도 2002년 중국 시장 진출, 2013년 중국 지주회사 설립 등 코오롱그룹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2006년에는 ‘라이프스타일 이노베이터’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나일론 도입과 생산으로 한국 의복 생활에 혁신을 일으켰던 코오롱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혁신시키겠다는 포부다. 이 회장은 화학섬유 제조와 건설, 무역에 주력하던 코오롱그룹의 사업 영역을 하이테크산업 및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확대시켰다. 바이오 신약과 웨어러블 기술이 대표적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이 20년 이상 개발해 온 ‘티슈진-C’는 세계 최초의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로,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치료제는 임상실험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쯤 출시될 계획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 소재로 주목받는 유기태양전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연료전지용 수분제어장치, 국내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전자섬유 ‘히텍스’ 등은 이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온 코오롱의 미래 먹을거리다. 코오롱은 지주회사인 ㈜코오롱이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 회장은 ㈜코오롱의 지분 47.38%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의 별명은 ‘행동파’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때 숨거나 피하기보다는 직접 나서 돌파구를 마련해 왔다. 그룹 회장 취임 2년 만인 1998년 외환위기로 경영이 어려움에 빠지자 신속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0년대 중반 노조 파업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현장으로 달려가 근로자들과의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의 발품은 ‘신뢰’라는 가치를 챙겼다. 덕분에 2007년 4월 ㈜코오롱(현 코오롱인더스트리)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노조와 손을 맞잡고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며 노사 상생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10년간 이어 온 정리해고자 시위대와의 갈등도 직접 해결했다. 이미 대법원은 코오롱이 2005년 진행한 정리해고에 대해 ‘경영 상황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사측은 노사 상생·문화 발전을 위한 기부금을 제3의 기관에 전달하고, 정리해고자들과 시위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생전에 강조했던 ‘노사불이’(使不二)의 뜻이기도 하다.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 당시에도 이 회장은 보고를 받은 직후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고 발생 약 9시간 만인 오전 6시쯤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고 수습을 지휘하는 한편 사재를 출연해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고 후유증을 최소화했다. ‘배지 경영’은 이 회장의 소통 방식이다. 임직원에게 매년 경영 방침을 형상화한 배지를 착용하게 함으로써 그룹의 미래상을 임직원과 공유한다. 지난해에는 ‘마음을 더하고 열정을 곱하며 서로 힘든 것을 나누면 무한대의 성공을 이뤄낸다’는 뜻으로 ‘□ + O x △ ÷ = ∞’라는 공식을 새긴 ‘더하고 곱하고 나누기 배지’를 만들어 나눠 줬다. 올해는 빠르게 돌아가는 목표 달성에 주력하자는 뜻에서 ‘타이머 2015 배지’를 선보였다. 코오롱의 후계 구도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장남 이규호(31) 체계가 조만간 가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구체화되고 있다. 코오롱은 이 명예회장 이후 장남만 참여하는 장자일계(長子一系) 원칙을 이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장남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2012년 입사해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에서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 부장은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코오롱글로벌㈜ 건설 현장 등을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재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부자가 모두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 이 회장은 전방 근무를 자원해 비무장지대(DMZ) 수색대에서, 규호씨는 경기 동두천시 포병여단에서 각각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특히 일병이었을 당시엔 레바논 유엔 평화유지군에 지원해 동명부대 소속으로 파병을 가기도 했다. 이 부장은 재벌가 3세답지 않게 소탈한 성격이다. 미국 유학 시절엔 자동차 없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고, 구미공장 근무 시에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했다. 이 부장은 여전히 개인 소유의 승용차가 없다. 사적인 약속이 있을 때면 여동생들과 함께 쓰는 기아차 ‘쏘울’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일한 임직원들은 규호씨가 겸손하지만 업무에는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곽태헌 칼럼] 이젠 운 좋은 ‘586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1990년대 들어 ‘386세대’라는 조어(造語)가 나왔다. 30대, 대학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을 종합한 게 ‘386세대’다. 어원(語源)은 당시 성능이 좋았던 386급 컴퓨터다. 종전의 286급 컴퓨터에 비해 기능이 훨씬 뛰어났던 386급 컴퓨터와 같은 자랑할 만한 좋은 별칭이다. ‘386세대’가 제대로 업그레이드됐는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30대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됐다. ‘486세대’를 거쳐 ‘586세대’가 되면서 요즘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86세대’로도 불린다. 기자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이 세대는 운이 참 좋다. 입시 지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쉽게 들어갔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느닷없이 과외와 본고사를 없애고, 예비고사와 내신성적으로만 대학에 들어가는 내용의 ‘교육개혁안’을 내놓았다. 당시 모든 언론이 찍소리를 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이었으니 가능했다. 대학 정원도 늘리고 여기에 덧붙여 졸업정원제라고 해서 30%를 더 뽑게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데모하지 말고, 공부를 하도록 하려는 꼼수가 깔려 있었지만 어쨌든 입학의 문은 활짝 열린 셈이다. 1981학년도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은 18만 7050명으로 전년보다 7만 350명 늘어났다. 졸업정원제 첫해인 그해에는 원서접수에 제한이 없어 허수(虛數) 지원이 많았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치러진 면접에는 한 곳만 선택해야 했으니,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 곳곳이 미달이었다. 1984년에는 30%를 더 뽑을 수 있도록 된 것을 대학 자율로 하도록 바뀌었고, 1988년에는 졸업정원제는 완전 폐지됐다. ‘86세대’는 직장도 골라서 갔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3저(달러·유가·금리) 호황을 타고 이들이 졸업할 1980년대 말에는 취업도 쉬운 편이었다. 요즘 웬만한 기업의 경쟁률은 100대1이 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 말, 상경계 출신들은 투자금융·종합금융·리스·증권·투자신탁 등 당시 잘나가는 금융회사를 골라서 가기 바빴다. 상경계 출신들은 요즘 인기가 있는 시중은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져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했지만 입사 경력 10년을 넘지 않았던 ‘86세대’들은 이 위기도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보통 기업에서는 고참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 좋은 ‘86세대’는 국회의원들의 도움까지 받았다. 재작년 국회 본회의에서는 직원이 300명 이상인 기업의 경우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고비마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넘어가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통 55~58세가 정년이던 곳에서는 1958~61년생도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86세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을 위해 양보할 때가 됐다. 요즘 20대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부모 세대보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더 많이 힘들게 했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훨씬 어려워졌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은 없다. 지난 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1%로 1999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취업하는 게 본인과 가족에 가장 큰 축복인 상황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는 정반대인 주문을 해왔다. 배당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한 게 최 부총리다. 배당을 늘리고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여윳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배당 압박을 할 게 아니라, 고용 압박을 해야 한다. 임금을 올리라고 할 게 아니라, 임금을 동결해서라도 채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게 맞다.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정치권, 정부, 재벌을 믿을 수 없다면 기성세대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고, 임금동결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을 잃어가는, 꿈을 잃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기성세대가 양보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단군 이래 최고라는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를 우리의 아들, 딸이 더이상 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 [글로벌 경제] “시진핑, AIIB·일대일로 목표는 한 배 탄 아시아 번영의 바다로”

    [글로벌 경제] “시진핑, AIIB·일대일로 목표는 한 배 탄 아시아 번영의 바다로”

    중국 경제가 변곡점에 서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28일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2020년까지 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며 중국 중심의 경제질서를 구축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로 대표되는 중저속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징후도 곳곳에서 보인다. 서울신문은 지난 30일 중국의 진보적인 경제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후싱더우(胡星斗) 베이징이공대 경제학과 교수를 찾아 중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했다.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건설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의도는 무엇인가. -아시아를 한 배에 태우려는 것이다. 중국의 힘은 경제에서 나온다.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60%를 중국이 차지한다. 엄청난 돈을 풀어 공동 번영을 이루겠다는 포부다. →패권적인 중화주의의 부활 아닌가. -나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 일대일로와 AIIB는 중국을 세계에 융합시킬 것이다. 당장 AIIB가 성공하려면 세계적인 규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중국 지도부가 중화주의를 염두에 뒀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중국은 각종 협약과 표준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세계 질서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이는 중국 사회의 민주화도 앞당길 것이다. →AIIB가 미국 중심의 금융체제를 바꿀 만큼 강력한 것인가. -현재 미국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떠받치는 기구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무역기구(WTO)다. AIIB가 이들과 맞서려면 10년 혹은 20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시 주석의 강력한 통치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나. -시 주석은 현재 강력한 리더십으로 철권통치만 하는 게 아니라 개혁까지 주도하고 있다. 철권통치만 한다면 파시스트의 길을 걸을 텐데 지금 중국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적절하게 발휘하고 있다. 관례로 굳어진 10년 집권의 틀을 깨고 15년 동안 집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로 잡았는데, 달성할 수 있다고 보나. -중국의 경제 관련 수치는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보통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치를 보이는 발전(發電)량 증가량이 지난해 2%에 머물렀지만, 경제성장률은 7.4%로 발표됐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성장률 수치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인민은행장도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은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증가 상태로 디플레라고 보긴 어렵다. 3~6개월 뒤면 디플레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디플레 전에 정부가 금리 인하와 부동산 규제 완화와 같은 부양책을 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많은 수단을 갖고 있다. →중국 경제의 뇌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위기를 거론하지만 기업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다. 중국 기업의 부채 총계는 국내총생산(GDP)의 130%나 되는데, 이런 나라가 없다. 진작에 파산했어야 할 기업도 부채로 연명하고 있다. 경제가 둔화되면 기업의 부채 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이는 곧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이 중국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나. -창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볼 것이다. 그러나 혁신은 사상, 제도 등의 경직성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 국유기업이 이미 대부분 영역을 장악해 혁신할 공간도 별로 없다. 중국 기업의 평균 수명은 3년에 불과하고, 90%의 기업은 돈세탁을 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는 구조다. 맹목적인 창업과 혁신은 또 다른 거품을 만든다. 글 사진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경제 블로그] 美 프로야구단 지분 사려는 한국의 ‘국부펀드’ KIC 왜 불안불안 할까요

    [경제 블로그] 美 프로야구단 지분 사려는 한국의 ‘국부펀드’ KIC 왜 불안불안 할까요

    우리나라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투자처 찾아 삼만리’입니다. 미국 프로야구(MLB) 구단인 LA다저스에 지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A다저스는 국내 프로야구가 ‘직수출한’ 류현진 투수가 소속된 팀으로 국내 팬층이 두텁습니다.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구단입니다. 그런데 왜 내심 걱정이 될까요. KIC가 2008년 2월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쪽박’ 직전까지 몰렸던 아픈 기억 때문일까요, 아니면 국민연금 수익률(2007~2013년 6.08%)보다 못한 국부펀드 KIC(4.02%)의 운용 능력 때문일까요. KIC의 LA다저스 투자는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KIC는 구단주인 구겐하임 파트너스로부터 다저스 주식 일부를 유상증자 방식으로 사들이기로 하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계약이 성사되면 KIC는 LA다저스 지분의 19%를 보유한 공동 구단주가 됩니다. 이에 따른 투자비는 4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홍철 사장은 지난 1월 직접 LA다저스 구장을 방문하는 등 이번 투자에 의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IC 관계자는 30일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관심은 투자 대상보다 수익률입니다. LA다저스에 투자해 돈만 번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최근 LA다저스의 매출은 소폭 증가세이지만 수년간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MLB에서 선수 연봉이 가장 비싸서 이른바 ‘사치세’(팀 연봉 총액이 상한선을 초과하면 무조건 내야 하는 과징금)를 해마다 내고 있습니다. 수익률을 올리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또 흘러나오는 계약조건에 따르면 KIC는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어 구단 운영에 관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물주’ 역할만 한다는 얘기죠. 국가로부터 외환보유액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국부펀드가 스포츠 구단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꽤 이례적입니다. KIC가 투자수익률이 낮다는 세간의 비판에 자존심이 꽤 상한 모양인데 그렇다고 ‘오버 액션’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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