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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정부 ‘대우 일렉’ ISD 패소…이란기업에 730억 지급 판정

    부처 합동 긴급회의… 대응 논의 우리 정부가 외국 기업이 제기한 ‘투자자·국가간소송’(ISD)에서 처음으로 졌다. 7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국제 중재판정부는 전날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을 낸 이란 기업 다야니에 73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앞서 자산관리공사(캠코)는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를 파는 과정에서 다야니가 대주주인 엔텍합과 매매 계약을 맺은 뒤 인수금액의 10%인 578억원을 보증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캠코는 2011년 5월 계약을 해지했다. 당시에는 엔텍합이 대금 지급 기일을 넘겨 계약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엔텍합은 우리 법원에 매각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기각을 결정했다. 결국 다야니는 2015년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공평한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며 보증금과 이자 등 935억원을 반환하라는 취지로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를 제기했다. 정부는 이번 판정 결과에 대해 관계 부처 합동으로 긴급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우리 정부가 외국 기업으로부터 ISD 소송을 당한 것은 총 3건이다. 첫 번째 ISD는 론스타가 2012년 11월 한·벨기에 BIT 등을 근거로 5조원대 ISD를 제기한 사건이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에 외환은행을 팔려 했지만 우리 정부가 승인을 내리지 않아 매각이 무산됐다. 결국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넘겼지만 매각 지연으로 가격이 떨어진 것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론스타는 또 자회사를 통해 서울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사고 팔면서 차익을 봤는데 한국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자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올해 안에 최종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ISD는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 IPIC 자회사 하노칼이 2015년 5월에 낸 소송이다. 하노칼은 1999년 현대오일뱅크 주식 50%를 사들인 뒤 2010년 현대중공업에 1조 8000억원에 팔았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세금을 물리자 과세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듬해 하노칼이 ISD를 취하해 마무리됐다. 여기에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며 ISD를 추진하고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노량진 ‘인강의 그늘’ 신림은 ‘부활의 노래’

    노량진 ‘인강의 그늘’ 신림은 ‘부활의 노래’

    공시생, 실강보다 인강 선호 방값 저렴·조용한 신림동 이주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 쇠락의 길을 걷던 ‘원조 고시촌’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활기가 돌고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터를 잡고 공부하던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이주 러시’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인터넷 강의’(인강)의 확대, 저렴한 방값, 조용한 환경 등이 이유로 꼽힌다. ‘공시 메카’ 노량진의 침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공시생들로 늘 북적이던 식당 ‘고구려’의 폐업이다. 이 식당은 싼 가격에도 뷔페식 메뉴를 제공해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공시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식당 주인은 “공시생 수가 크게 줄어 수익이 나지 않고 건강도 나빠져 폐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15년 넘게 분식집을 운영하는 안모(58)씨도 “잘 나갈 때에는 하루 매출이 100만원이 넘었는데 지금은 50만원도 채 안 된다”고 토로했다. ‘탈노량진화’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주민등록인구현황에 따르면 동작구 노량진1·2동에 거주하는 20~30대 인구수는 2015년 1만 5872명, 2016년 1만 5583명, 2017년 1만 5228명, 2018년 5월 기준 1만 5118명으로 집계됐다. 매년 300여명씩 빠져나갔다. 이와 반대로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의 20~30대 인구수는 2015년 1만 574명, 2016년 1만 906명, 2017년 1만 1023명, 2018년 5월 기준 1만 1310명으로, 매년 300명 안팎으로 늘었다. ‘이노향신’(노량진을 떠나 신림동으로 향하는 것) 현상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인강의 발달’이다. 과거에는 정해진 시간에 학원에 가야 수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노량진에서 신림동으로 넘어온 공시생 배모씨는 “학원에서 직접 수업을 듣는 ‘실강’은 5과목 6개월 과정에 200만~300만원을 내야 하지만 ‘인강’은 1년 내내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프리패스’ 상품이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상대적으로 저렴한 신림동의 방값도 공시생 유인 요소다. 노량진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70만원인 반면 신림동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40만원 선이다. 건물 임대료도 노량진이 신림동보다 3배 정도 비싸다. 노량진에서 8년간 헌법학을 가르치다 지난해 9월 신림동으로 넘어온 박철한 강사는 “건물 임대료 때문에 신림동으로 넘어오는 학원 운영자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신림동으로 넘어온 공시생 다수는 “여의도 등과 인접해 차량 통행량이 많은 노량진보다 관악산에 가까이 있는 신림동이 상대적으로 소음이 덜해 공부하기에 좋다”고 입을 모았다. 신림 고시촌에서 서울신문이 찾아간 부동산 대부분 최근 경시생과 공시생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 부동산은 “원룸이나 고시원에 계약하는 경시생들이 30~40%까지 늘었다” 면서 “경찰공무원 관련 학원도 최근 10개쯤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중개사는 “사시 때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경시생이 늘어나며 거리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림동은 애초 서울대가 1975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현 대학로)에서 신림동으로 이전해 오면서 고시생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이후 사법시험 폐지로 위기를 맞았다가 공시생 유입으로 옛 영화를 되찾고 있는 셈이다. 노량진 학원가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취업난 속에 치솟는 공무원의 인기와 맞물려 호황을 누렸다가 ‘인강’이라는 복병을 만나 위기를 맞은 셈이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손성진 칼럼] 소득 하위 10%를 위한 길

    [손성진 칼럼] 소득 하위 10%를 위한 길

    최저임금 인상은 백약이 무효라는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이해됐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빈민 1000만명이라는 사회적 모순을 풀지 않고서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도리어 저소득자의 소득을 줄이는 역효과를 보였음이 통계로 확인됐다. 근로소득자의 소득은 늘어도 고용 악화로 자영업자나 임시직 근로자의 수입은 줄어든 탓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큰 흐름은 이어 가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정책을 평가하기엔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기도 하다. 진득한 마음을 갖고 인상의 효과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책이 모든 사람의 이익을 다 충족시킬 수도 없다. 알바 근로자, 자영업자, 기업주 등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계층의 이익에 더 중점을 둘지는 정책적 판단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미세 조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부작용은 이미 나타났다. 식당이나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줄어든 것은 현장에 나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내년에도 최저임금을 15% 올리면 고용이 9만명 감소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는 국책연구기관이기에 한편으로 뜻밖이기도 하지만 예상된 측면도 있다. ‘편의적이고 부정확한’ 보고서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부작용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대비 없이 맞는 것보다 유비무환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은 사회 전체가 나눠 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쪽도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데 문제가 있다. 정부 재원으로 지원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고용주들이 감당할 정도의 인상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하위 10%의 소득이 감소한 것은 1인 가구의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 즉 소득 없는 자녀의 분가와 노인 인구의 증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사업체에서 근로소득자의 근로소득이 증가한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최저임금을 올려 주었으니 전체적인 임금 상승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고임금 근로자들이 어부지리의 이득을 본 것도 있다. 통계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어쨌든 하위 10%의 소득이 감소한 것은 정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다. 하위 10% 중에는 무직자도 있고 직업이 있더라도 40% 이상의 임시·일용직이거나 영세 자영업자다. 일자리와 일감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이들이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경제 상황에 매우 민감하다. 생계형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불황으로 수입이 줄거나 폐업을 선택하기도 한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장사가 안 된다’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니 종업원을 고용한 자영업자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설상가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할 일은 이들을 보호할 정책적인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복지 재원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따라서 복지 재원의 재분배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의 틀에 갇혀 고소득층에 복지 예산의 상당 부분이 지원되는 현실을 과감히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소득 최하위 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방법의 하나가 지자체별로 실시하고 있는 공공근로다. 꼭 필요한 국가적, 사회적 사업을 일으켜 실업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감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7년 후면 노인 인구 1000만명 시대에 도달한다.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으로는 이들의 생계를 완전히 지탱할 수 없다. 상당수가 소득 하위 10%에 편입될 것이다. 지금부터 노인 일자리와 복지 대책을 챙기지 않으면 양극화의 간격은 더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일자리는 성장의 열매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좇는 두 마리 토끼의 하나인 혁신성장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는 필요조건이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두둑한 외화 곳간… 4000억 달러 육박

    두둑한 외화 곳간… 4000억 달러 육박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5월 말 기준 3989억 8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5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검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DGB금융지주 김태오 회장

    DGB금융지주 김태오 회장

    DGB금융지주는 31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김태오 신임 회장을 선임했다. DGB금융 창립 이후 첫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경북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1978년 외환은행 입사 후 하나은행 대구경북지역본부장,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등을 거쳤다. 은행의 지역 영업 관리와 지주사의 리스크, 인사, 전략 등 경영 관리 전반을 경험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WKBL 총재에 ‘노무현 사람’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WKBL 총재에 ‘노무현 사람’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64)씨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을 이끌게 됐다. WKBL은 31일 서울 중구 달개비 콘퍼런스 하우스에서 임시 총회를 열고 이병완 전 비서실장을 3년 임기의 새 총재로 뽑았다. 7월부터 제8대 총재로 임기를 시작하는 이씨는 광주고와 고려대 출신으로 KBS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1999년 대통령 국정홍보조사비서관을 지냈다. 그 뒤 2002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상임부의장, 2003년 대통령 기획조정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1997년 출범한 WKBL에서 역대 정치인 총재는 2대부터 5대 총재를 지낸 김원길 전 보건복지부 장관, 6대 총재였던 최경환 전 부총리에 이어 그가 세 번째다. 경기인 출신인 신선우(62) 현 총재는 6월 말까지 임기를 채운다. WKBL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3월 해체된 KDB생명 구단을 위탁 운영 중인데 새 총재 선임으로 인수 기업 선정에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날에는 함영주 KEB하나은행 행장이 채용 비리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여러 은행들이 채용 비리 수사를 받고 있어 여파를 최소화하는 데도 신경써야 한다. 이 총재는 WKBL을 통해 “리그 활성화와 구단 확충, 남북 스포츠 교류 등에 앞장서겠다”고 취임 일성을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감사원 “KIC, 국부펀드 투자 관리 주먹구구”

    평가 점수 조작해 운용사에 위탁 최하 등급사에 “4800억 더 맡겨” 우리나라 국부펀드(정부 외환보유고 등 자산을 전 세계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가 헤지펀드(파생상품·주식·채권·외환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높은 운용 이익을 노리는 투자기금) 위탁운용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의 평가 점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위탁운용사의 실적이 저조함에도 이를 숨기고 위탁 한도를 크게 높여 준 것도 적발됐다. 감사원은 이런 내용의 ‘공공자금 해외투자실태’ 감사 결과를 29일 공개했다. KIC 위탁운용팀은 2015년 6월 헤지펀드 위탁운용사 선정 안건을 투자실무위원회에 상정하면서 A사의 평가 점수를 임의로 올렸다. 원래는 A사가 탈락 회사보다 1.25점 앞섰지만 조정을 통해 6.25점 앞서는 것처럼 고쳤다. 선정 대상과 탈락 대상의 평가 점수 차이가 크지 않으면 투자실무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A사는 임의로 상향 조정된 점수 덕분에 헤지펀드 위탁운용사로 선정됐다. KIC는 2015년 9월 이 회사에 1억 5000만 달러(약 1600억원)를 투자했지만 A사는 이듬해 6월 실적이 나빠지자 이 펀드를 청산했다. 같은 달 위탁운용팀은 또 다른 헤지펀드 위탁운용사로 B사를 선정하면서 투자액을 1억 5000만 달러로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안홍철 사장이 “투자액 늘리는 것을 고려하라”는 취지로 발언하자 별다른 검토 없이 B사 투자액을 2억 달러(약 2130억원)로 높였다. 결국 KIC는 안 사장이 트위터 막말과 정권 편향 논란 등으로 사퇴한 뒤인 이듬해 4월에야 B사에 대한 투자액을 전액 회수했다. 아울러 KIC는 위탁운용사 3곳이 반기별 모니터에서 최하 등급을 받아 주요 관찰 대상으로 지정됐음에도 이를 투자위원회에 알리지 않고 위탁 한도를 4억 5000만 달러(약 4800억원)로 증액하는 투자 검토 보고서도 상정했다. 감사원은 “선정 대상과 탈락 대상 간 점수 차이를 임의로 벌리지 않았다면 최종 선정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며 “앞으로 위탁운용사 선정 때 합리적 근거 없이 평가 점수를 부여하거나 위탁금액을 결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경고했다. 이어 “투자 검토 보고서에 주요 관찰 대상으로 선정된 위탁운용사에 대한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라”고 주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시론] 통상대국 한국, 통상정책이 없다/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통상대국 한국, 통상정책이 없다/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 글로벌 한국엔 글로벌 통상정책이 없다. 기껏해야 떠난 버스에 손 흔들 듯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건설적 비판과 객관적 평가를 귀담아들어야 통상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해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객관적 외교 분석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보수로 몰아 가는 경향도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전방위적 무역 보복 정책에 대해 제대로 예측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정부의 대응 결과를 언론에 과대포장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악순환마저 일상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통상대국의 통상정책 결정 절차라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미국 측의 일방적 요구 사항을 100% 수용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고, 사상 유례없는 공산품(철강)에 대한 불법적 쿼터 제도까지 양자협정 체제로 용인해 버렸다. 그런데도 한·미 관계의 불확실성이 제거됐기에 성공적인 협상이었다는 것이 청와대와 정부의 일관된 자평이다. 한·미 FTA 재협상의 선례에 힘입어 최근 트럼프 정부는 철강관세 부과 때와 똑같은 국가안보 논리로 자동차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도입할 것을 선언했고, 우리 자동차산업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또다시 관세 면제를 위해서는 자동차 수출 쿼터를 수용하라는 압력이 몰아칠 것은 뻔하다. 자동차 다음에는 선박과 반도체에 대한 관세와 쿼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한ㆍ미 관계에 무슨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말인가.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 시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한ㆍ미 FTA 투자자ㆍ국가간소송(ISD) 조항을 근거로 제소했다. 2012년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 건과 관련해 ISD에 제소했고, 지금은 한국 정부의 패소 판정이 임박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ㆍ미 FTA ISD 조항의 문제점조차 제대로 미측에 제시하지 못했다. FTA 재협상 시 정부가 끝까지 수용하기를 거부했다던 미측의 환율시장 개입 내역 공개 요구는 두 달도 안 지나 정부가 자발적으로 수용해 버렸다. 차라리 FTA 재협상 시 이를 공식 수용했더라면 ISD 조항 개정과 주고받기 협상으로나 이끌 수 있었던 이슈를 왜 슬그머니 떼어내어 나중에 아무 대가도 없이 수용해 버렸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복적인 통상 보복에 대해 실효성 없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총체적 난국에 총체적 대응정책 기능이 상실된 상황인데도, 청와대와 통상교섭본부는 비판을 수용해 근본적 구조 개혁이나 정책 결정 인력의 쇄신을 단행하기는커녕 기존 체제를 뒷받침할 실무 인력을 대거 보강하는 작업이나 진행하고 있다. 상부 조직과 정책 결정 체제의 문제점 때문에 엉터리 같은 통상정책이 반복 시행되고 있는데, 하부 인력을 보강해 폐쇄된 정책 결정 체제를 통해 수직적으로 하달되는 정책이나 충실히 집행하는 조직원들만 양산하려 한다. 트럼프식 외교는 안보와 통상 분야를 연계해 제시함으로써 상대국으로부터 최대 이익을 취하는 전방위 게임을 시행하고 있다. 미ㆍ중 무역전쟁이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2000억 달러 줄이기로 약속하고 봉합된 것은 북ㆍ미 정상회담을 위한 일시적 휴전에 불과하다. 이런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두 분야의 연관 관계를 때로는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때로는 엄격히 분리해 각 분야에서의 방어 이익을 취하는 식으로 유연성 있는 대응을 해나갈 수 있는 체계와 전략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능력과 전문성 위주의 인사는 뒷전이고 이념과 코드에 기반한 로비력이 청와대 인사 라인을 지배하고 있다. 화려한 외교공관 생활이 보장되고 낙하산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눈총으로부터 자유로운 외교통상 부문이 정권의 창출에 기여한 캠프 인사들의 대표적 등용문이 돼 버렸는데, 어떻게 이런 전문 실리통상외교가 발휘될 수 있겠는가.
  • 은행은 장기 휴가 중

    은행은 장기 휴가 중

    일부 은행 최대 23일 연속 사용 휴가비 지원… 지점평가 반영도 #1. 신한은행의 서울 한 지점에서 일하는 과장급 직원 A씨는 지난해 가족들과 스페인에 다녀왔다. 초등학생 자녀가 TV에서 본 ‘부뇰 토마토축제’를 꼭 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10영업일을 연속으로 쉴 수 있는 휴가를 이용해 주말 포함 16일을 쉬었고, 스페인 주요 도시를 여유롭게 여행했다. 학기 중에 열리는 체육대회나 학부모 상담일에는 휴가를 쪼개 하루씩 내고 참석한다. #2. KB국민은행 본부에서 일하는 대리급 직원 B씨는 입사 5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9월 2주간 휴가를 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영국, 프랑스 등을 다녀올 생각에 매일이 설렌다는 B씨는 “기존엔 일주일 이상 길게 쉬려면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최근엔 은행 차원에서 장기 휴가를 독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최근 직원들에게 휴식을 독려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고 주 52시간 근무 도입도 다가오면서 장시간 노동이 관행이던 은행원의 생활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2~3주 장기 휴가는 더 이상 은행원들에게 ‘꿈’이 아니다. 신한은행은 직원들의 재충전을 위해 10영업일 연속 연차휴가 사용을 의무화하는 ‘웰프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제 1년에 한 번 장기간 휴가 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꽃바람 솔바람 행복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주도 4박 5일 리조트 숙박을 지원하는 등 휴가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상·하반기 각 한 번씩 추첨하는데, 여름휴가 기간에 집중되는 인력 공백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있다. 은행 휴가제도의 ‘업그레이드’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부터 5영업일을 꼭 붙여서 쉬어야 하는 ‘우리 투게더’ 휴가를 신설했다. 특히 휴가를 가지 않으면 지점 평가에 반영하는 등 강제성을 높였다. 15년차 직원 기준으로 휴가비 55만원도 지원한다. KEB하나은행의 ‘리프레쉬 휴가’는 연차휴가 10일과 특별휴가 5일을 붙여서 쓸 수 있게 했다. 최대 23일까지 연속 쉴 수 있고, 쪼개서도 사용 가능하다. 오는 9월까지는 구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복지제도를 통합하고 근무시간 단축 논의도 진행하기로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 휴식이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지난주 석가탄신일 같은 징검다리 휴일이 있으면 휴가사용 독려 안내문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기업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대물림 안 된 도전·혁신 DNA…한국경제의 맥까지 끊어진다

    [기업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대물림 안 된 도전·혁신 DNA…한국경제의 맥까지 끊어진다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1983년 ‘도쿄선언’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경영 일선에서 마지막 도전이었으며, 이 전 회장은 그로부터 약 4년 뒤 세상을 떠났다. 반도체 산업은 당시 재계에선 시기상조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세계 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이 됐다.●이병철 반도체·정주영 “해 봤어?” 정신 어디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이봐, 해 봤어?”의 도전정신으로 ‘제3세계’였던 한국에 처음 완성차 업체를 만들었다. 그는 앞서 그리스 선주에게 거북선이 그려진 당시 500원 지폐를 보여 주며 조선소도 없이 선박을 수주, 영국에서 차관을 내 조선소 건립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했다. 두 회장을 비롯한 ‘창업가 1세대’와 그들의 기업을 물려받아 이끈 2~3세들, 또 1980년대 이후 창업 신화를 만들어 낸 창업가 2세대는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으로 오늘의 한국을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하지만 2018년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기업들 중 그런 혁신과 도전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창업 신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1세대 창업가들이 세운 거대 기업들은 정경유착, 탈세, 경영권 편법 승계, 불공정 거래, 골목상권 침해 등으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재벌 3~4세’들은 할아버지 세대들이 보여 줬던 기업가정신은커녕 입시비리, 갑질, 폭행 등 사건을 몰고 다녔다. 2세대 창업가들이 썼던 신화는 상당수 ‘새드엔딩’을 맞기도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온실 속에서 자란 3세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이런 것이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정보포털(OPNI)에 따르면 2018년 5월 한국 대규모 기업집단 매출 순위 10위 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농협, 현대중공업 순이다. 이 기업집단들은 약 30년 전인 1987년 한국 10대 기업(현대, 삼성, 럭키, 대우, 선경, 쌍용, 한화, 한진, 효성, 롯데 순)과 대부분 일치한다. 10대 기업집단 중 30년 전에도 10위권이 아니었던 곳은 포스코와 농협 두 곳뿐이다. 상위 기업집단은 약 40년 전인 1980년대부터 큰 변동이 없었다. 상위 기업집단끼리 순위를 오르내렸고, 새롭게 진입하는 창업기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로 진입하는 기업집단은 대체로 포스코(포항제철), KT(한국전기통신)와 같이 과거 공기업으로 국가 재정의 지원을 받았던 민영화 기업들이었다. 상위 기업집단의 변동폭이 작다는 것은 얼핏 전통 있는 기업들이 오랜 세월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작다는 의미로, 경제학자들이 계속 지적해 온 문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5년 보고서에서 “기업의 진입률과 퇴출률의 합인 기업교체율은 경제 역동성을 측정하는 척도 중 하나”라면서 “기업 역동성은 생산성 향상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상위 60개 기업집단 중 창업한 지 20년이 되지 않은 곳은 50위 이하로 내려가서야 단 4곳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네이버(1999년)가 50위, 카카오(2010년) 56위, 넷마블(2000년) 57위, 셀트리온(2002년)이 59위다.●‘2세대 신화’ STX·웅진 휘청 ‘창업가 2세대’ 신화를 쓰며 승승장구했던 일부 대기업은 경영 실패로 그룹이 해체돼 공정위가 지정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창업주 강덕수 전 회장은 쌍용중공업 최고채무책임자(CFO)로 일하던 중 외환위기 여파로 그룹이 흔들리던 2001년 퇴출이 결정된 중공업을 인수해 사명을 STX로 바꿨다. 그는 조선사업에 진출한 뒤 에너지, 해운, 건설, 금융 등에 이르는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STX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STX는 오히려 무리한 사업 확장이 독이 돼 2013년 채권단 공동관리 체제를 맞았다. 이후 대부분의 계열사가 매각·정리돼 STX는 전문 무역상사로 남았다. 강 전 회장은 2조 3000억원대 횡령·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혐의를 무죄로 인정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1980년대 윤석금 회장이 교육·학습지 사업에서 시작해 식품, 정수기, 화학 등으로 사업을 확장, 재계 30위권까지 성장시켰던 웅진그룹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2012년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윤 회장은 14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뒤 방문 판매, 교육, 렌털 사업 중심으로 그룹 재건에 매달리고 있다. 코웨이를 매각할 당시 5년 동안 렌털시장에 진출하지 않기로 계약했는데, 올해 그 기간이 끝나 이 사업에 재진출했다. ●미래에셋, 1990년대 창업 대기업 중 20위권 유일 1990년대에 창업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곳 중 유일하게 20위 안에 든 미래에셋만이 창업가 2세대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동양증권 소속으로 업계 최연소 지점장이었던 박현주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직원 8명과 벤처캐피탈을 시작해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었다. 미래에셋은 현재 부동산 투자, 생명보험 등 금융·비금융을 망라한 13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경제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물려받은 기업과 자산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해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대기업을 만드는 신화를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는 ‘흙수저’가 노력만으로 ‘금수저’가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김병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서 ‘도전력’에서 “생산성이 정체된 기업들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고 새로운 기술과 열정으로 무장한 신규 기업들이 이를 대체하면서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향상되는 경제가 역동적인 경제”라면서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생산성이 저하된 좀비 같은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개선하고 국민의 기업가정신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국내 첫 항공 이송 시스템 갖춰 고품질 의료서비스 제공

    국내 첫 항공 이송 시스템 갖춰 고품질 의료서비스 제공

    울산대병원이 국내 최초로 국내외 환자 전문 항공 이송 시스템을 구축해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과 울산 의료관광산업 활성화에 나섰다.울산대병원은 지난달 24일 병원 부속운영회의실에서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 프로텍션메드와 ‘국내외 환자 항공 이송 및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울산대병원은 이번 협약으로 환자 이송에 특화된 항공사 및 관련 전문기업과 협업, 해외 환자 이송과 관련된 토털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구축해 수준 높은 이송 및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일반 환자와 중증 응급환자가 국내외 이송이 필요할 때 항공사의 응급환자 이송 전용기 및 헬기를 이용해 신속한 원스톱 이송 서비스를 받게 된다. 소그룹의 의료관광 때에도 전세기 투입을 통해 지리적 단점을 없애 최적화된 의료관광 일정의 수립도 가능해진다. 울산대병원은 항공을 통한 환자의 접근성이 수월해지면 해외환자 전담 코디네이터의 경우 진료지원 업무에 집중하게 돼 환자와 의료관광객에게 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울산 지역의 특수성을 활용해 환자 이송뿐 아니라 해외 환자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돼 앞으로 울산 의료관광산업 활성화에 큰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정융기 울산대병원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해외 환자들의 접근성을 대폭 높이는 것은 물론 울산대병원에서 치료받은 해외 환자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편리성도 높아진다”며 “환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나아가 울산의 의료관광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쓸쓸한 죽음, 떠나는 길엔 가족 돼 주고 싶어”

    “쓸쓸한 죽음, 떠나는 길엔 가족 돼 주고 싶어”

    21년간 무연고 사망자 장례치러 “고독사는 모든 세대·계층 문제” ‘착한 장례식장 인증제’ 제안도“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고인이 떠나는 길만큼은 외롭지 않게 가족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5일 조현두(55) 나눔코리아 중앙회장은 가정의 달인 5월 요양원에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100세 노인의 장례를 치르며 이렇게 말했다. 조 회장은 21년 전 나눔코리아를 설립해 지금까지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해 ‘사랑의 장례식’을 치르고 독거노인들을 위한 돌봄 활동 등을 해 왔다. 205회차를 맞은 이날 장례식에서 조 회장은 시신을 염하는 것부터 납골당 안치까지 모든 과정을 살뜰히 챙겼다. 그는 “혹시나 소홀함이 있을까 봐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사랑의 장례식을 치른 것은 1997년이다. 조 회장은 “당시 무료급식 봉사활동으로 만나 가족처럼 지내던 박끝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자택에서 발견됐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가족을 찾을 수 없어 시신을 두 달이나 안치하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장례를 치렀다”고 돌이켰다. 조 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라도 가족이 되어 주는 게 인간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의 지인들은 “그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아홉 남매의 가장인 그는 “여섯 아이는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 입양한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라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가족애’”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아이들이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 주고 존경한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도 했다. 무연고 사망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2010명으로 4년간 증가율이 57%에 이른다. 이에 조 회장은 적극적으로 사회적 대안을 내놨다. 2014년 그가 제시한 것이 현재 부산과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운영 중인 ‘고독사 지킴이’ 제도다. 도시가스 검침원, 우유배달부 등을 고독사 지킴이로 임명해 독거노인 등 위험군 거주지를 살피게 하는 것이다. 그는 “‘연고가 있는 무연고 사망자’ 증가 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해결책이 절실한 과제”라고 분석했다. ‘연고가 있는 무연고 사망’은 가족이 있지만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 경우다.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조 회장이 내놓은 대안 중 하나는 ‘착한 장례식장 인증제’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많이 치르는 장례식장을 정부가 ‘착한 장례식장’으로 인증해 지원하고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자”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당신의 장례식은 안녕하십니까.” 이날 사랑의 장례식을 마친 조 회장은 이렇게 물었다. 그는 “고독사는 노인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기반이 붕괴된 50대, 고시원에 사는 20~30대까지 전 계층의 문제”라면서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북한 개방 준비하는 은행들...TF 발족 속속

    다음달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경제개방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은행들도 북한 진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대북 금융사업 준비를 전담할 태스크포스(TF) ‘남북 하나로 금융사업 준비단’(가칭)을 이달 중 출범시킬 예정이다. 준비단은 남북 경제협력과 금융지원 관련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북미관계 변화, 정부정책 방향과 연계해 단계적으로 대북 금융사업을 추진하고 지원사업을 발굴한다. 단장은 일단 은행 임원이 맡을 전망이지만, 추후 외부전문가 넘겨받을 수 있다. 하나은행은 또 지주와 은행 간 대북 금융사업 시너지를 꾀하기 위해 중국 하나은행과 지린은행, 옌볜대학 등과 협력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신한금융도 이달 중 지주사를 중심으로 남북관계의 변화와 경협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협의체를 구성할 예정이다. 학계와 연구기관 등 외부 북한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대북경협 금융지원, 정책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경협사업 참여, 북한 금융개혁을 위한 인프라 구축 지원 등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이미 ‘남북 금융협력 지원 TF’를 발족했으며, 오는 7월까지 3개월간 운영할 예정이다. TF에는 전략기획부, 글로벌, 외환, 투자은행, 개입영업, 기업영업 등 8개 부서와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참여했다. TF는 우선 개성공단 재가동 시 개성공단에 재입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개성공단지점은 2004년 12월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건물에 입주해 영업을 시작했으나 2016년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으로 철수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구본무 회장이다.’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1] 글로벌 창업주… 매출 5배 껑충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2] 선구자… 2003년 지주사 전환 일찌감치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3] 정도…“편법 1등은 싫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 드문 ‘현역병’ 출신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제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 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19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입사 10년 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다시 10년 뒤에야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구 회장은 이후 “1등을 해야한다”고 줄곧 강조하면서도 “편법은 싫다”고 단호히 주문했다. [4] 끈기…LCD·2차전지 1위 우뚝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액정화면(LCD) 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5] 눈물…외환위기 때 반도체 내줘 시련과 굴곡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 반도체 빅딜을 사실상 막후에서 조정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쪽은 눈길도, 발길도 주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급한 자금을 일부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을 매각하는 등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6] 몰입…조류도감 펴낸 새 전문가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냈을 정도로 새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지만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도 있었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모든 사업장에 비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7] 마곡…4조 투자 융복합단지 꿈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였다.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다. 투자비만 4조원이다. “마곡에서 수만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80년 LG의 상호 변천사... 락희->금성사->럭키금성->LG

    80년 LG의 상호 변천사... 락희->금성사->럭키금성->LG

    20일 구본무(73) LG 그룹 회장이 병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LG 그룹의 변천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LG그룹의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은 1931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구인회상점이라는 상호명의 포목상을 창업하였다. 1940년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발전, 사업 운수와 무역 등으로 사업이 확대되었다. 해방 이후 사업들을 모두 정리하고 부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당시 동생인 구철회(LIG그룹 초대 회장)와 함께 동업을 하였는데, 사업이 확장이 되면서 1941년 사돈관계에 있던 허창수(현재의 GS그룹) 일가와 6대 4의 지분을 가지고 동업을 시작했다. 1945년 해방이후에는 조선흥업사를 설립, 1947년 LG그룹의 직접적인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1958년에 금성사(현 LG전자)가 설립되는 것으로 오늘날 LG그룹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은 국가에 기여하는 사업을 해야한다는 사명 하에 대한민국 최초 플라스틱 생산, TV 생산 등의 시장을 주도하는 선구적 기업으로 키워나갔다. 평소 구 회장은 인간 사이의 화합을 기원하는 인화라는 정신으로 경영을 실천했다. 그의 아들 구자경 회장이 1970년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25년 동안 그룹을 이끌면서 연평균 50%이상 매출을 끌어리는 성과를 거뒀다. 1984년부터 ‘금성사’에서 ‘럭키금성’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못지않게 기업문화를 글로벌 위상에 걸맞게 바꾼 것도 구 본무 회장이었다. 구 회장 취임 직전인 1994년 그룹 명칭은 ‘럭키금성’이었다. 국내에선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명칭이어서 주변에선 CI 변경 반대 의견이 심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그러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CI를 바꿔야 한다며 변경 작업을 끈기있게 추진했다. 현재 LG의 심벌마크인 ‘미래의 얼굴’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결정한 것 역시 구 회장의 결단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반면교사가 됐다.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순환출자와 사업 확장의 덫에 걸려 어려움을 자초했다. LG는 순환·상호출자 구조 고리를 해소하고 2003년 3월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수직적 출자구조로 지배구조를 바꿨다. 그는 지병으로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나기 직전까지는 미래 성장동력 사업을 육성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자동차 부품과 에너지 성장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서울 마곡에 그룹 R&D 집결체인 LG사이언스파크를 조성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구 회장은 평소 한 해의 이익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씨를 뿌리고 시장을 이끄는 시도를 했는지가 중요한 사업 성과 판단기준이란 지론을 여러번 강조했다”며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20일 타계한 구본무 회장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 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현재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LG그룹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드문 현역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재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구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다. 입사 10년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는 데 이후 10년뒤 회정에 3세 경영을 시작한다.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LCD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현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라 의견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됐다. 만만찮은 시련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게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 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할 정도였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일부 유동성을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 등을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서운 집중을 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한 전문가다. 실제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 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었다고 한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전 사업장에 사전 준비에 비상이었다고 한다.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다. 4조원을 투자해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마곡에서 수만 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들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노년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환율 조작국’ 오해 벗고 韓 대외 신뢰도 높인다

    ‘환율 조작국’ 오해 벗고 韓 대외 신뢰도 높인다

    외환시장 양·질적 성장 자신감 환율 변동성 클 경우 미세 조정 투기세력 빌미 줄 위험도 낮춰 전문가 “시장 영향 크지 않아” 일각 “외환 당국 운신 폭 축소” 김동연 “경제 月 통계 판단 성급” 정부가 17일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기로 한 배경에는 환율 조작국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벗고 대외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공개 대상과 방식도 시장에 줄 충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외환시장이 출렁일 때 정부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간주됐다. 시장에서는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다. 정부가 개입 내역 공개로 선회한 데는 외환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날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시장 규모는 1997년 12월 자유변동환율제 시행 이후 급성장했다. 1998년 11억 달러에 그쳤던 은행 간 외환거래량은 지난해 228억 5000만 달러로 20배 이상 늘었다. 대외 충격에 대한 대응 능력도 향상됐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9억 달러까지 쪼그라들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3984억 2000만 달러로 100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는 환율 변동은 시장에 맡기고 변동성이 클 때 미세 조정에 나서는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만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유도한다는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낳았다.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꾸준히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국들의 공개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2015년 미국과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TPP 참가 12개국은 공동 선언문에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3개월 이내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공개 시차를 3개월로 설정해 부담을 최소화했다. 또 매수액과 매도액을 개별적으로 공개하는 게 아니라 순거래액(매수액-매도액)만 공개함으로써 투기 세력에게 빌미를 줄 위험을 낮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지난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환율 문제를 협의했다는 ‘환율 주권’ 논란은 일단락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윤경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환율 문제와 통상 문제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재확인했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 이번 조치가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인한 한·미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승지 삼성선물 책임연구원은 “시장에선 외환시장 개입 공개 주기가 분기나 1개월이 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상보다 상당히 완화된 수준”이라며 “1년 뒤 공개 주기가 3개월로 줄어도 공개 대상이 매수·매도 총액이 아닌 순액이라 부담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원화 강세에 영향을 주겠으나 강도가 세지 않을 것”이라면서 “환율 쏠림 현상이 발생할 때는 여전히 개입이 유효한 만큼, 환율 변동성도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더 짧은 공개 주기를 요구할 것”이라면서 “이를 받아들이면 외환 당국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편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우리 경제가 침체국면 초기 단계에 있다’고 평가한 데 대해 “지금 경제 상황을 월별 통계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반박했다. 정부 내에서도 경기 판단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는 셈이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서울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서울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오늘의 경제 Talk 톡] 플라자 합의

    1985년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외환시장에 개입해 미 달러를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에 대해 절하시키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재정·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는 그 결과 1990년대 회복세를 보였지만 일본은 수출경쟁력 약화에 따라 ‘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됐다.
  • 외환 개입 투명화… 내년 3월 첫 공개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이 정기적으로 공개된다. 국제사회에서 원화의 위상이 높아진 방증이다.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해를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의 면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정부는 17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을 확정했다. 공개 대상은 달러 매수액에서 매도액을 뺀 순거래액이다. 방식은 일정 기간 동안 개입 내역을 모은 뒤 사후 공개하는 것이다. 공개 대상 기간은 당장은 6개월 단위로, 1년 뒤부터는 3개월마다 이뤄진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7~12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은 내년 3월에 최초로 공개된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라가르드 IMF 총재 “한국, 외환시장 개입 자료 공개 환영”

    라가르드 IMF 총재 “한국, 외환시장 개입 자료 공개 환영”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7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공개키로 한 데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성명에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자료를 공표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유연한 환율 조정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약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결정은 유연한 환율 체계를 만들 것이고, 인플레이션 기대치의 ‘앵커링(anchoring)’과 정책 목표를 강화함으로써 한국의 인플레이션 목표 체계를 제고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6개월마다, 1년 후부터는 3개월마다 외환 당국의 외환 순거래 내용을 공개하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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