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외환위기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부탄가스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수요 억제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관리소장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수갑 문제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455
  • 3년만에 확 바뀐 쏘나타… “중형세단 새 기준 제시”

    3년만에 확 바뀐 쏘나타… “중형세단 새 기준 제시”

    현대자동차가 3년 만에 옷을 새로 갈아입은 중형 세단 ‘쏘나타 뉴 라이즈’를 8일 출시했다. 2014년 출시된 7세대 LF쏘나타의 부분 변경 모델이다. 신차 수준의 디자인 변화를 주면서 가격은 동결하거나 낮췄다. 이광국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은 이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쏘나타 뉴 라이즈 공개 행사에서 “어느 때보다 치열한 중형차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중형 세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연간 내수 판매 목표는 9만 2000대다.쏘나타는 1985년 출시 이후 3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국내 최장수 브랜드로 ‘국민 중형차’란 별명을 갖고 있지만, 최근 들어 판매 대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내수 판매 대수(8만 2203대)는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6만 2528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점유율은 2014년 52.2%에서 지난해엔 36.0%까지 하락했다. 한국지엠 ‘말리부’, 르노삼성 ‘SM6’ 등 경쟁 차가 무섭게 팔리면서다. 현대차가 약 5년 주기로 쏘나타 신형 모델을 내놓은 만큼 다음 8세대 모델은 2019년 초가 될 전망이다. 이번에 출시된 부분 변경 모델이 앞으로 2년을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일단 2.0 가솔린, 1.7 디젤, 1.6 터보, 2.0 터보(8단 자동변속기 장착) 등 4가지 모델을 내놓고 이달 말 2.0 LPi 모델을 추가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도 연내 출시한다.외관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전면부의 그릴이다. 신형 그랜저에 이어 쏘나타에도 용광로에서 녹아 내리는 쇳물을 연상케 하는 ‘캐스케이딩 그릴’을 적용했다. 후면부의 번호판은 범퍼 밑부분으로 내리고, 발광다이오드(LED) 리어램프 디자인도 고급스럽게 바꿨다. 젊은 고객층을 끌어오기 위해 안전·편의 사양을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주행 조향보조 시스템, 부주의 운전경보 시스템 등 지능형 안전주행 시스템인 ‘현대스마트센서’를 선택품목(옵션)으로 구입할 수 있게 했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실내 공기를 순환시켜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원터치 공기 청정 모드’를 적용했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장치와 애플 카플레이 등도 추가했다. 패밀리케어(뒷좌석 커튼·열선시트), 레이디케어(어라운드뷰 등), 스타일케어(LED 헤드램프, 18인치 휠), 올시즌케어(통풍·열선시트) 등 맞춤형 패키지를 내놓은 것도 눈에 띈다. 가격은 2255만원(2.0가솔린)부터 3253만원(2.0터보)까지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장세훈 기자의 정치샤워]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장세훈 기자의 정치샤워]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국제화와 세계화의 차이가 뭐꼬?”(김영삼 전 대통령) “국제화를 세게 하면 세계화입니다.”(YS 정부 청와대 참모) “세게 하래이.”(김 전 대통령) 1990년대 서점가를 휩쓸었던 풍자 유머집 ‘YS는 못 말려’에 나올 법한 얘기처럼 보이지만, YS 정부 시절 청와대에 몸담았던 한 참모가 전한 실화다(물론 세계화라는 정책 어젠다는 치열한 고민과 논의 끝에 채택됐으며, 이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이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0년대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상징되는 세계화가, 2010년대 들어서는 세계화를 기반으로 국가 위상과 국민 소득 향상에 초점을 맞춘 선진화가 각각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그러나 세계화나 선진화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쳤을지는 몰라도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세계화와 선진화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로 대표되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이 치유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적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생겨난 반면 빚에 허덕이는 영세 자영업자들도 수두룩하다. 사회적으로 양극화 문제는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난제로 자리잡고 있다. 개인의 삶 측면에서도 직업 안정성에 기반한 ‘평생 직장’ 개념은 희석되고 은퇴 후에도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평생 노동’ 개념이 득세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과제를 매개로 한 대립과 반목, 분열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화산처럼 분출되고 있다. 현 상태로라면 차기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우리의 대통령’은 없고 지지 여부에 따라 ‘나의 대통령’과 ‘너의 대통령’으로 나뉠 판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시대정신이라는 표현이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된다. 여야 대선 주자들의 캠프에서도 국민들이 무릎을 칠 수 있는 시대정신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시대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이 거론하는 시대정신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1960~1970년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궁핍의 문제를 해결하자 1980년대 산업화 시대가, 1970~1980년대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에 맞선 결과 1990년대 민주화 시대가 각각 열렸다. 2017년 지금 사전적 시대정신이 우리 사회를 옥죄는 수많은 갈등과 분열이라는 ‘편가름’이라면 정치적 시대정신은 이념·세대·계층·지역 등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이른바 ‘융화’가 아닐까. 화해와 상생의 융화 시대를 열 대선 주자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이런 대선 주자라면 진영 대표나 계파 수장을 넘어 비로소 정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입니까. 또 시대정신을 풀어낼 대선 주자는 누구입니까. shjang@seoul.co.kr
  • [수요 에세이] 희망과 긍정의 사회적 담론/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수요 에세이] 희망과 긍정의 사회적 담론/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에 대해 알고 그 음식과 관련된 문화, 역사, 맛 등을 얘기하며 먹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얘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의로워지려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많이 논의해야 한다. 이를 우리는 통상 ‘담론’이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담론은 현재의 이야기이지만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활발히 논의하는 주제를 손꼽으라면 이것을 사회적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담론은 특정 시대 그 사회를 관류하는 사회구성원의 집단적 관심사의 표출이라고 보면 된다. 많은 경우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어 법제도의 개선과 예산의 투입으로까지 연결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담론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대부분의 신문에서 지속적으로 1면 머리기사나 사설의 주제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요즈음 들어서는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언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표출된 어휘의 반복 정도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뽑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담론은 우리에게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사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을 뛰어넘어 중요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 담론에는 우리 사회가 장차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구성원의 염원이 함께 담겨 있기 있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담론이 무엇인지를 보면 5년이나 10년 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미래 모습은 네가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달렸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처럼 사회적 담론은 사회 구성원의 현재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미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매우 중요한 사회적 담론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표출된다. 첫째는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우려나 정부 대응의 부족에 대한 비난의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이다. 둘째는 문제의 폭로나 비난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나 희망까지 포함하는 긍정의 담론으로 승화되는 경우이다. 첫 번째의 표출방식이 무엇을 담론으로 할 것인가 하는 주제 선택의 문제라고 한다면 두 번째 표출방식은 선택된 주제를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에 대한 방식의 문제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부정과 좌절만을 얘기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를 뛰어넘는 긍정과 희망까지 얘기할 것인가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던 사회적 담론은 문제의 제기로 끝나지 않고 이를 극복해야 하고 또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과 희망의 담론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온 국민이 “우리도 잘살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하던 그 담론으로 우리는 반만년에 걸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 1980년대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민주주의 담론은 끝내 정치 민주화를 이끌어 냈다. 이어 1990년대 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쳤고 지방자치를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관리를 받던 이른바 외환위기 때는 우리가 뭉쳐서 기필코 극복해야 한다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담론을 통해 전 국민을 아우르는 ‘금반지 기부 열풍’을 이끌어 냈다. 지난 1년간 월례조회 특강 등을 통해 시·군의 일선 공무원들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마다 복도와 식당에서 주로 무슨 말들이 넘쳐나느냐에 따라 여러분과 여러분 조직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얘기했다. 만일 자기만 편안하려는, 쩨쩨하고 이기적인 얘기가 복도에 난무하는 직장이라면 5년 뒤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시·군은 쩨쩨해질 것이다. 반면 주민들의 만족도를 다른 시·군보다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해 보자는 긍정과 희망의 말은 반드시 여러분의 미래를 훌륭하게 만들 것이라고. 되짚어야 한다. 지금 국가 사회의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는 무슨 담론을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것은 진정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적절한 문제이고, 또 그 논의 방식은 갈등과 분열의 방식인가, 아니면 희망으로 가는 화해와 긍정의 방식인가. 지금 많은 담론이 우리 사회에 흘러넘치고 있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사회적 담론을 슬기롭게 형성하는 유전자를 입증해 왔다. 부디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유전자가 또다시 발현되어 우리의 사회적 담론이 잘못을 지적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열과 갈등의 담론에 그치지 말고, 문제를 인정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화해와 긍정, 그리고 희망의 담론으로까지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 응답하라 1985...중산층 상징 ‘쏘나타’의 진화

    8일 현대차 ‘쏘나타 뉴라이즈’가 공개된다. 2014년 출시된 7세대 ‘LF쏘나타’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현대차는 신차 수준의 변신을 통해 과거 위상을 되찾겠다는 계획이지만, 경쟁 차종과의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판세를 뒤집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쏘나타는 1980년대 중산층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아버지 세대가 타는 차’ ‘택시 전용’ 등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국내 최장수 자동차 브랜드의 슬픈 현실이다. 이번에 현대차가 가장 신경을 쓴 것도 젊은 브랜드로의 탈바꿈이다. 중형 세단의 구매 계층이 40~50대에서 30대로 내려온 만큼 30대 고객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3년 만에 새로워진 쏘나타가 위기의 현대차를 구해낼 수 있을까. 시계를 34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83년 현대차는 포니에 이어 두 번째 고유 모델인 중형차 ‘스텔라’를 내놓았다. 1400cc, 1600cc의 두 모델 모두 인기를 끌자 현대차는 2년 뒤인 1985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로 했다. 스텔라의 기본 차체에 1800cc와 2000cc의 엔진(시리우스 SOHC)을 얹히기로 한 것이다. 자동 정속주행장치, 파워핸들, 파워브레이크, 자동조절 시트, 전동식 리모컨 백미러 등 당시로서는 첨단 사양을 적용하고, 5단 변속기도 탑재했다. 차명은 ‘소나타’로 정했다. 1호차 주인공은 배우 신성일씨. 그때만 해도 소나타는 고급 승용차에 속했다. 그러나 소나타는 어감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3개월 만에 ‘쏘나타’로 개명됐다. 쏘나타의 전성 시대는 2세대 모델이 출시된 1988년부터다. 기존의 깍두기 모양의 각진 디자인을 벗어나 공기 역학을 중시한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을 도입했다. 후륜구동 대신 전륜구동을 택한 것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기존 엔진에 2400cc(시리우스 SOHC)를 추가했다. 출시 첫해인 1988년 11월 중형차로는 국내 최초로 미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1991년 2세대 부분변경 모델인 ‘뉴 쏘나타’는 곡선미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급 대형차에 적용된 DOHC 엔진을 최초로 장착하고, 중형 택시 시장을 겨냥해 액화석유가스(LPG) 모델도 출시했다. 1993년 3세대 모델인 ‘쏘나타II’는 국산 중형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모델로 꼽힌다. 33개월동안 60만대가 팔렸다. 브레이크 잠김방지장치(ABS), 전자식 서스펜션(ECS) 등의 첨단 사양이 적용되면서 성능 면에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3년 만에 나온 부분변경 모델 ‘쏘나타III’는 전투기 분사구를 연상시키는 라디에이터 그릴 등 전면부 디자인의 대변신을 시도했다. 1996년 모스크바 모터쇼에서 최우수 자동차에 선정되며 상품성을 인정받은 쏘나타는 출시 1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달성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출시된 4세대 모델 ‘EF쏘나타’는 연미복을 차려 입은 영국 신사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았다. 쏘나타 앞에 붙은 ‘EF’(Elegant Feeling) 역시 우아한 느낌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175마력의 2500cc 델타엔진과 인공지능 하이벡 4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하면서 국내 기술력을 뽐낸 차다. 2001년 부분변경 모델인 ‘뉴EF쏘나타’는 3년 뒤 미국 JD파워가 선정하는 신차품질조사에서 중형차 부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외신에서는 ‘지구는 평평하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한국 차의 선전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2004년 5세대 모델인 NF쏘나타는 현대차를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반열에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차량으로 꼽힌다. 26개월의 개발 기간 동안 2900억원을 쏟아부었다. 차체 크기를 늘리고, 차체자세제어장치 등 안전사양을 대거 적용했다. 3.3 람다 엔진과 2.0 디젤 엔진 등 라인업을 다양화한 점도 특징이다. 2004년 9월부터 약 4년 동안 34만대 판매됐다. 2007년 부분 변경 모델인 ‘쏘나타 트랜스폼’은 2년간 약 22만대 팔리며 신차보다 연평균 더 많은 판매를 달성한 진기록을 달성했다. 2009년 6세대 모델인 YF쏘나타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로 불리는 역동적이고 유려한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이전 모델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로 엿보였지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계기가 됐다. 국내 최초의 중형 하이브리드인 쏘나타 하이브리드 모델도 YF쏘나타가 시초다. 하지만 YF쏘나타는 부분 변경 모델 없이 곧바로 7세대 모델인 LF쏘나타로 넘어갔다. 2014년 3월 선보인 LF쏘나타는 기본기에 충실한 차답게 주행성능을 높이면서 정제된 디자인을 반영했다. 가솔린 터보 엔진,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총 7가지 트림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은 813만 9020대다. 현대차는 “813만대를 일렬로 세우면 그 길이만 3만 9024㎞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대차의 역사를 함께 한 쏘나타가 다시 한 번 변신을 예고했다. 기존의 육각형 ‘헥사고날 그릴’을 버리고 벌집 형태 문양을 보다 촘촘하게 배치해 더 웅장한 느낌을 주는 ‘캐스캐이딩 그릴’로 승부수를 건다. 쏘나타에 앞서 캐스캐이딩 그릴을 도입한 신형 그랜저는 일단 초반 성적은 괜찮다. 3개월 연속 1만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응답하라 1985...중산층 상징 ‘쏘나타’의 진화

    응답하라 1985...중산층 상징 ‘쏘나타’의 진화

    8일 현대차 ‘쏘나타 뉴라이즈’가 공개된다. 2014년 출시된 7세대 ‘LF쏘나타’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현대차는 신차 수준의 변신을 통해 과거 위상을 되찾겠다는 계획이지만, 경쟁 차종과의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판세를 뒤집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쏘나타는 1980년대 중산층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아버지 세대가 타는 차’ ‘택시 전용’ 등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국내 최장수 자동차 브랜드의 슬픈 현실이다. 이번에 현대차가 가장 신경을 쓴 것도 젊은 브랜드로의 탈바꿈이다. 중형 세단의 구매 계층이 40~50대에서 30대로 내려온 만큼 30대 고객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3년 만에 새로워진 쏘나타가 위기의 현대차를 구해낼 수 있을까. 시계를 34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83년 현대차는 포니에 이어 두 번째 고유 모델인 중형차 ‘스텔라’를 내놓았다. 1400cc, 1600cc의 두 모델 모두 인기를 끌자 현대차는 2년 뒤인 1985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로 했다. 스텔라의 기본 차체에 1800cc와 2000cc의 엔진(시리우스 SOHC)을 얹히기로 한 것이다. 자동 정속주행장치, 파워핸들, 파워브레이크, 자동조절 시트, 전동식 리모컨 백미러 등 당시로서는 첨단 사양을 적용하고, 5단 변속기도 탑재했다. 차명은 ‘소나타’로 정했다.1호차 주인공은 배우 신성일씨. 그때만 해도 소나타는 고급 승용차에 속했다. 그러나 소나타는 어감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3개월 만에 ‘쏘나타’로 개명됐다. 쏘나타의 전성 시대는 2세대 모델이 출시된 1988년부터다. 기존의 깍두기 모양의 각진 디자인을 벗어나 공기 역학을 중시한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을 도입했다. 후륜구동 대신 전륜구동을 택한 것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기존 엔진에 2400cc(시리우스 SOHC)를 추가했다. 출시 첫해인 1988년 11월 중형차로는 국내 최초로 미국에 수출되기도 했다.1991년 2세대 부분변경 모델인 ‘뉴 쏘나타’는 곡선미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급 대형차에 적용된 DOHC 엔진을 최초로 장착하고, 중형 택시 시장을 겨냥해 액화석유가스(LPG) 모델도 출시했다. 1993년 3세대 모델인 ‘쏘나타II’는 국산 중형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모델로 꼽힌다. 33개월동안 60만대가 팔렸다. 브레이크 잠김방지장치(ABS), 전자식 서스펜션(ECS) 등의 첨단 사양이 적용되면서 성능 면에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이후 3년 만에 나온 부분변경 모델 ‘쏘나타III’는 전투기 분사구를 연상시키는 라디에이터 그릴 등 전면부 디자인의 대변신을 시도했다. 1996년 모스크바 모터쇼에서 최우수 자동차에 선정되며 상품성을 인정받은 쏘나타는 출시 1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달성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출시된 4세대 모델 ‘EF쏘나타’는 연미복을 차려 입은 영국 신사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았다. 쏘나타 앞에 붙은 ‘EF’(Elegant Feeling) 역시 우아한 느낌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175마력의 2500cc 델타엔진과 인공지능 하이벡 4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하면서 국내 기술력을 뽐낸 차다. 2001년 부분변경 모델인 ‘뉴EF쏘나타’는 3년 뒤 미국 JD파워가 선정하는 신차품질조사에서 중형차 부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외신에서는 ‘지구는 평평하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한국 차의 선전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2004년 5세대 모델인 NF쏘나타는 현대차를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반열에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차량으로 꼽힌다. 26개월의 개발 기간 동안 2900억원을 쏟아부었다. 차체 크기를 늘리고, 차체자세제어장치 등 안전사양을 대거 적용했다. 3.3 람다 엔진과 2.0 디젤 엔진 등 라인업을 다양화한 점도 특징이다. 2004년 9월부터 약 4년 동안 34만대 판매됐다. 2007년 부분 변경 모델인 ‘쏘나타 트랜스폼’은 2년간 약 22만대 팔리며 신차보다 연평균 더 많은 판매를 달성한 진기록을 달성했다.2009년 6세대 모델인 YF쏘나타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로 불리는 역동적이고 유려한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이전 모델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로 엿보였지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계기가 됐다. 국내 최초의 중형 하이브리드인 쏘나타 하이브리드 모델도 YF쏘나타가 시초다.하지만 YF쏘나타는 부분 변경 모델 없이 곧바로 7세대 모델인 LF쏘나타로 넘어갔다. 2014년 3월 선보인 LF쏘나타는 기본기에 충실한 차답게 주행성능을 높이면서 정제된 디자인을 반영했다. 가솔린 터보 엔진,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총 7가지 트림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은 813만 9020대다. 현대차는 “813만대를 일렬로 세우면 그 길이만 3만 9024㎞에 달한다”고 설명했다.이처럼 현대차의 역사를 함께 한 쏘나타가 다시 한 번 변신을 예고했다. 기존의 육각형 ‘헥사고날 그릴’을 버리고 벌집 형태 문양을 보다 촘촘하게 배치해 더 웅장한 느낌을 주는 ‘캐스캐이딩 그릴’로 승부수를 건다. 쏘나타에 앞서 캐스캐이딩 그릴을 도입한 신형 그랜저는 일단 초반 성적은 괜찮다. 3개월 연속 1만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산은, 조선·해운 구조조정 여파 작년 3조 적자

    KDB산업은행이 지난해 3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보유 중인 대우조선해양 지분가치 하락과 구조조정 기업 충당금 적립 등이 원인이다. 산은은 3일 지난해 조선·해운 구조조정 여파로 3조~3조 6000억원(잠정치)의 당기순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때 4조 9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최대 규모 적자다. 산은 자회사인 대우조선의 구조조정 비용만 3조 5000억원에 이른다. 한진해운 9000억원, STX계열 기업 1조 2000억원 등의 구조조정 비용까지 합치면 5조 6000억원이다. 산은 측은 “큰 폭의 적자가 났지만 그동안 축적한 이익이 있어 정부 재정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충당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비용이 발생한 3개 연도(2013년, 2015년, 2016년)를 제외할 경우 2001년부터 누적 순이익 규모가 12조 7000억원이라고 덧붙였다. 3개 연도를 포함해도 누적 순이익은 6조 4000억원이다. 산은 측은 “회계법인 감사가 진행 중이라 정확한 적자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최종 실적은 이사회를 거쳐 이달 말 주주총회 때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해외에서 온 편지] 자바의 교통체증도 내겐 너무 친근한 당신

    [해외에서 온 편지] 자바의 교통체증도 내겐 너무 친근한 당신

    학창 시절 나에게 인도네시아는 석유, 주석, 원목과 같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 한반도의 9배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2억 6000만명이 사는 국가 등 책 속에서만 존재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도네시아는 시나브로 친근한 나라로 다가왔다. 동남아라는 왠지 모를 친근감, 한국의 대형 할인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산 의류 등 다양한 상품들로 낯설지 않았다.친근함에 마치 이웃에 있는 나라인 듯 착각했던가. 부임 이후 난 여러 가지로 놀라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공항까지 5290㎞, 하늘길로 7시간이 걸린다. 서쪽 끝단 아체에서 동쪽 끝단 파푸아까지 5120㎞, 역시 7시간을 비행해야 도달할 수 있다. 얼마나 광활한 국토인가. 하지만, 이런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했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크게 놀랐다. 인도네시아는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복잡한 나라다. 자바, 수마트라 등 5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1만 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섬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종족이 500여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340여년간 네덜란드 식민지 지배를 거쳐 1945년 독립했다. 아픈 역사와 경제발전 과정의 부작용을 겪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국가 주도의 급격한 경제성장도 일궜다. 정경유착과 체계적인 계획 부족 등 누적된 사회적 문제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도 급격한 경제개발의 산물인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7위이면서도 1인당 GDP는 3600달러에 불과하다. 대도시에는 최고급 호텔과 쇼핑몰이 즐비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기초생활 수준 이하의 생활을 한다. 경제적으로 가장 큰 약점은 인프라의 부족이다. 국제적 도시인 수도 자카르타는 당초 500만명을 기준으로 설계됐지만, 현재 1200만명이 살고 있다.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해 오토바이의 수송 분담률이 70%가 넘고, 오토바이로 인해 도시 곳곳의 교통 정체가 심각하다. GDP에서 물류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7%나 되다 보니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수입하는 물건이 외려 자국산보다 저렴할 때도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이슈화되던 지난해 명절, 자바주 브리베스 인근의 도로 21㎞ 구간에서 3일간 교통 체증으로 인해 노약자 1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또 다른 ‘브렉시트’(Brebes Exit)라고 부르며 인프라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대사관 업무로 2.4㎞ 목적지를 다녀오는 데 4시간이 걸렸던 적도 있다. 11개월 동안 주재관 생활을 하면서 느낀 진짜 놀라움은 무한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 단계 성숙하고자 하는 인도네시아의 용틀임이다. 2015년 ‘흙수저’ 출신인 조코위 대통령 당선 이후 곳곳에서 국가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만연한 부조리에 대해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고, 경제성장과 인프라 확충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공무원, 공공기관, 발주처 사람들로부터 변화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기득권의 정치적 공격에 불구하고 뚜벅뚜벅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경제정책은 철저히 실용주의를 따르고 있다. 부족한 인프라 건설을 위해 주요 기반시설의 민관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에는 잠재력이 현실화된 기회의 나라다. 용틀임 속에서 나의 소소한 목표는 인도네시아어를 더 공부하고 현지인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회에 동화될수록 국내 건설기업의 수주 지원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나라 국가 이념인 ‘다양성속의 통합’을 스스로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엄혹한 세월

    [나태주의 풀꽃 편지] 엄혹한 세월

    둘러보아 좋은 소식이나 조짐은 없다. 지난해 원숭이의 해를 살면서 우리는 참 많이 위태위태했고 머리가 쭈뼛쭈뼛해지는 일들을 많이 보아 왔다. 원숭이의 해, ‘병신년’이라서 그렇다고들 농담을 던지며 내년에는 좀 좋아지겠지 자위하면서 얼음 찬 강을 건너듯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닭의 해인 올해 정유년은 또 새해를 맞으면서 조류독감이 사상 최대로 번져 알을 낳는 닭의 3분의1을 살처분했으며 오리와 메추라기를 합쳐 살처분한 가금류가 3200만에 육박한다니 이러다가는 달걀이라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지 걱정스런 심정이다. 더구나 청년실업률이 1999년 외환위기 이래 최고치인 9.8%에 육박하고 있다는 통계청 발표는 사뭇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든다. 나이 들고 직장에서 물러난 우리 같은 사람들하고는 무관한 일이지만 그것이 젊은 세대들, 자식이나 제자들의 일이니 결코 무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로 돌아보아 소망스러운 일, 좋은 일, 가슴 따뜻해지는 일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심기일전’이란 말이 있다. 마음이나 생각을 바꾸어 달라지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다. 정말, 정말로 지금은 그러한 때다. 달리 방법이 없다. 이대로 우리가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어려서 가난하고 춥고 배고프던 시절. 우리들보다 더욱 가난했던 우리들의 어버이들은 길고 긴 겨울밤 잠을 자면서도 마음속으로 기와집을 몇 채씩 지었다 부셨다 했다. 바로 닭에 대한 꿈이다. 겨울이 가면 봄은 올 것이다. 그러면 시장에 가서 병아리를 몇 마리 사 가지고 와야지. 그것들을 어미닭으로 키운 다음 다시 알을 낳아 병아리를 깨어 기르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아침이 되면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마는 아버지의 기와집이었다. 그런 아버지들의 아들들로 자라서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 그런데 우리들의 어린 자식들, 젊은 세대들이 일터가 없어 신음하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니 마음이 아프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 말들이 절로 나온다. 지금, 여기서라도 마음을 바꿔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찾아보면 어떨까? 어떠한 순간에도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조건과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무언가를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장 나쁜 것은 절망하는 일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버리는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절대적 빈곤 시대는 아니다. 나의 20대는 절대 빈곤의 시대 60년대였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사범학교를 졸업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아 1년도 넘게 룸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집에서만 견디기 곤란해 아버지한테 차비 좀 마련해 달라 해서 서울 외숙 댁에 가서 밥을 빌어먹으며 서울 거리를 떠돈 날들이 있었고 그런 날들의 어떤 날들은 서울의 남산시장 냉면집에 찾아가 심부름꾼의 일을 자청해 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냉면을 나르다가 저녁 때 숙소에 돌아오면 발등이 소복이 붓곤 했다. 그런 날 밤엔 잠을 자면서도 돌아누워 흐느껴 울기도 했다. 결국은 그 일도 못하여 시골집으로 돌아와 농사짓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해 보려고 했지만 반거충이 농사꾼한테 맞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날씨까지 가물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밤새워 물자새(무자위)라고 불리던 기구에 올라가 밤새도록 물을 품던 일도 있었다. 그런 날에도 우리들의 아버지는 결단코 내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씩씩했으며 우리들 또한 그런 아버지들을 닮아 어떠한 일에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넘어지는 일은 있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일은 없었다. 어찌 우리가 힘든 일 없이 일생을 살기를 바랄 것인가. 젊은 아들딸들아. 제발 지금 그 자리에서 기죽지 말고 일어서기를 바란다. 견디기를 바란다. 언제든 좋아지는 날이 있겠지. 나의 시에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그런 시(풀꽃3)가 있지만 이런 시도 차마 안쓰러워 읽어 주지 못하는 마음이다. 지금은 참 엄혹한 세월이다.
  • [최만진의 도시탐구] 돈을 세지 않은 LH 행복주택

    [최만진의 도시탐구] 돈을 세지 않은 LH 행복주택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효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960년대에 건설한 마포아파트다. 이는 당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행된 사업이었다. 이 때문에 마포아파트는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준공식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분위기를 띄웠다고 한다. 아파트의 인기가 그야말로 고공행진을 하게 된 것은 1970년대에 불패 신화를 이룩한 강남아파트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아파트는 투자의 대상으로 변했고, 온 나라가 부동산 투기로 몸살을 앓게 됐다. ‘강남 복부인’은 이때 생긴 유명한 신조어였고, 아파트의 크기와 위치는 곧 부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에 시행된 신도시 사업으로 정점을 찍었고, 외환위기로 잠시 잦아들었다가 경기가 회복된 뒤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원래 마포아파트는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부아쟁 계획안’을 본떠 만든 것인데, 그 핵심은 저층의 조밀한 건축물 대신 초고층 아파트를 대량으로 짓고, 남은 공간은 외부 공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시 내의 인구밀도를 늘리면서도 자연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목표를 가졌다. 또한 정돈된 기하학적인 질서, 유리로 된 고층 건물, 서정적 자연 공간 등이 어우러진 눈부신 풍광을 연출한다는 의미에서 ‘빛나는 도시’라 명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아파트는 대량 생산화와 고층화 아이디어는 차용하면서 워낙 빼곡하게 지어 공지 정원과 서정적 경관을 조성하는 것은 도외시했다. 이러한 변형된 형태의 아파트는 무미건조한 회색 콘크리트 도시 경관을 만들어 냈고, 도시 정주 환경을 피폐시켰다. 또한 지나친 경제 논리에 따른 주택 건설로 빈부격차의 심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고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고자 나온 정책이 ‘행복주택’이다. 이는 도심의 철도 부지 또는 빈 땅에 지어지는 이른바 도심형 공공 임대아파트로 주로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근로자, 노인과 취약 계층에게 저렴하게 제공된다 하여 반값 임대주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아파트를 지금까지의 투기 및 재산 형성 개념이 아닌 순수한 주거 건축으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공동주택의 최우선 과제는 양질의 주거 환경을 만드는 데에 있고, 이를 위해서는 코르뷔지에의 원래 개념을 충실하게 따라갈 필요가 있다. 즉 건물은 고밀도의 고층 형태를 취하되 외부 공간의 질과 양을 매우 높이고, 주민 공동 및 커뮤니티 시설의 확충을 통해 주민의 자긍심과 사용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은 가난하고 힘없는 시절 잠시 살다 떠나거나, 경제적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도시의 슬럼가로 전락할 것이 강 건너 불 보듯이 빤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특히 LH와 같은 주택 전문 공사가 주도해 주민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역 여건과 입주자 특성에 따른 특화형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외부 정원, 다양한 복지시설, 서정적 경관을 창출해 내지 못한 행복주택은 그 지속 가능성을 잃어버려 머지않아 슬그머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의 아파트가 돈을 세고 있는 곳이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진정한 삶의 터전이 돼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 [시론]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 환율정책/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

    [시론]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 환율정책/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달러화 가치는 방향성을 잃고 움직이고 있다. 달러화 지수는 지난해 말에는 약 14년 만에 최고치(103.3)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 달러화 지수가 올 1월 말 99.5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101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달러화 가치의 급등락은 일관성 없어 보이는 환율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트럼프 정부의 환율정책은 일면 강달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인프라 투자 확대, 감세, 규제 완화 등 경기부양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국채 발행 확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상승 등을 통해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달러화 강세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미국 내 투자 확대 유도, 국경세 부과 등 여타 정책도 자금 유입 확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상승 등을 통해 달러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약달러를 선호하는 정책도 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 등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압박의 목소리를 높였다. 올 1월에는 중국, 일본, 독일이 자국에 유리하게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압박을 통해 달러화는 약세, 중국, 일본 등 다른 국가의 통화는 강세로 유도하겠다는 정책이다. 환율정책 측면에서 트럼프의 정책이 상호 모순된 것처럼 보이나 미국이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 트럼프 정부는 내수 경기 부양 정책을 주된 정책으로 추진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역수지 적자 확대, 달러화 강세는 보호무역주의,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양면성을 가진 미국 환율정책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미국의 금리 상승에 따른 달러화 강세는 한국 경제에는 자금 이탈 등이 이뤄질 수 있는 금융시장 불안 요소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이 일시적으로 불안할 수 있으나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최근 외환보유액은 3700억 달러를 넘어 외환위기 직전(1996년) 332억 달러,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2007년) 2622억 달러에 비해 크게 늘었다. 단기 외채 비중도 27.6%로 1996년 48.5%, 2007년 49.0%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특히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이 2014년 3분기부터 통계 산출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로 돌아섰고 규모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을 가졌다는 의미다. 환율조작국 지정 압박에 따른 달러화 약세, 원화 강세로 발생할 리스크를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압박은 중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에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선 한국은 미국의 압박에서 다소 비껴나 있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환율조작국 지정 이슈 자체만 불거져도 원화는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00원을 넘어섰다가 최근에는 1140원 수준으로 크게 하락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수출 기업의 생산기지 및 수출시장 다변화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2015년 한국의 무역의존도((수출+수입)/명목 GDP)가 84.8%로 미국 28.0%, 일본 36.8%, 중국 40.7%에 비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강달러와 약달러 정책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우선 양방향으로 초래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금리 상승으로 강달러가 발생하면 한국의 외환 건전성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국내 취약 부분의 유동성 공급, 외국과의 양자 간 통화 스와프 체결 확대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주 타깃은 아니지만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리스크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최근 원화 약세가 금리 인상 등 달러화 강세에 기인한 바가 크고 한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환율보다 저유가, 인구 고령화 등 비환율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야 할 것이다. 또 경제성에 기초한 미국 물자 구매 확대 등의 노력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트럼프 정부의 환율정책을 계기로 한국의 중장기 경제성장 전략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 [新전원일기] 애들 돌 반지 팔아 ‘허브 공부’ 올인…농촌·도시 경계 허물 거라 믿었기에

    [新전원일기] 애들 돌 반지 팔아 ‘허브 공부’ 올인…농촌·도시 경계 허물 거라 믿었기에

    겨울의 끝자락, 어디를 둘러봐도 메마른 풍경이다. 잿빛 먼지로 뒤덮인 아스팔트와 건물들, 앙상한 나뭇가지로 경계가 흐릿해진 산등성이와 누렇게 얼어붙은 들판에도 봄이 오긴 오는 걸까. 마음마저 스산해지며 벌써 초록이 그립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남짓, 수원역에서 내려 원평리를 경유하는 버스로 갈아탄다. 금세 도심을 벗어나 차창 밖 풍경이 바뀐다. 원평 정류장에서 내려 마주 보이는 2차선 도로를 따라 100여m쯤 걸어 들어가자 통나무를 잘라 촘촘하게 이어 붙인 나무판자를 외벽처럼 두른 비닐하우스 몇 동이 나타난다. 이종노(57) 대표와 그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화성시 매송면 ‘원평허브농원’이다.#국내 유일 입장료 없는 허브 농원 입구에서부터 축축한 흙냄새, 상큼한 허브 향기가 훅하고 끼쳐 든다. 실내로 들어서자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초록으로 뒤덮인 세상이 펼쳐진다. 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노랑, 연두 깃털 고운 앵무새들이 지저귄다. 원목으로 짠 벤치와 탁자가 곳곳에 놓여 있어 규모가 제법 큰 정원 카페, 내지는 식물원을 연상시킨다. 신발을 벗고 앉아 쉴 수 있는 평상이 있고, 아이들이 놀기 좋은 버섯 동산과 미니 미끄럼틀과 그네도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농원이고 쉼터다. 입장료도 없고, 따로 허브티 코너가 있지만 음료는 주문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김밥이나 과일 등의 냄새가 심하지 않은 종류에 한해 음식물 반입도 가능하단다. “오는 사람들마다 얼마라도 입장료를 받으라고 난리인데, 내가 여기 일에 관여하고 있는 동안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공간을 삭막한 도시 생활로 지친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거든요.” 농원이 개장한 것은 1999년.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나무처럼 늠름하게 자란 밑동 굵은 로즈마리와 라벤다, 율마 등의 짙은 향과 자태가 그 세월을 가늠하게 해 준다. #결혼하며 귀농… 열무·상추 농사부터 시작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서울 토박이가 1988년 올림픽 준비로 한참 들뜬 서울을 뒤로하고 결혼과 더불어 귀농한 것은 도시 생활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농촌에 대한 동경이나 농업을 위한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먼저 귀농하신 어머니, 아버지가 생경한 농사일에 힘겨워하시는 모습을 더이상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뵙고 갈 때마다 수원역 앞에 눈물도 참 많이 뿌렸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건데, 처음에는 손가락만 한 열무를 첫 작품이랍시고 아주 자랑스럽게 도매시장으로 가져가서는 상인들을 어이없어 웃게 하기도 하고, 상추는 무조건 크면 좋은 건 줄 알고 부채만 하게 키워 당당하게 갖고 나갔다가 한 박스도 못 팔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던 거죠.” 게다가 자연 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폭설로 작물이 잔뜩 들어 있는 비닐하우스가 폭삭 주저앉기도 하고, 부모님 살림집으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가 누전으로 몽땅 타 버리기도 했다. 홍수가 나서 농장이 온통 흙속에 파묻혀 버린 적도 있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짐을 실은 경운기를 몰고 가다가 신호 대기로 교차로에 서 있는데, 맞은편 승용차 안의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돌아보게 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주어진 현실을 꿋꿋하게 견디며 동틀 무렵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했다.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쌓였다. 수원 도매시장에서는 성실한 사람, 신용이 있는 사람으로 통하게 됐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가족의 기본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게 됐고, 자식들을 위해 허리 한 번 펴지 못하며 고생하신 부모님도 가끔은 낮잠을 자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상추값이 폭락하기 전까지는. “그해 상추가 정말 예쁘게 잘 자라더라고요. 꿈에 부풀었죠. 이게 다 돈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농산물 가격이라는 것이 생산자인 우리가 결정하는 시스템이 아니잖습니까. 출하를 해 보니 4㎏ 한 박스가 250원에 낙찰되더군요. 그것도 다 팔지 못해 썩어 나가는 게 태반이었죠.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어떤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서 농촌과 농업의 잠재적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할 결심을 그때 하게 된 거죠.” 대학원에 가겠다는 그에게, 아내 이덕화(55)씨가 아이들의 돌 반지를 팔아 학비를 마련해 줬다. 외환위기로 한창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였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찬물로 샤워하고 책상 앞에 앉아 공부했지만 갈등도 컸다. “장학금을 타기도 했지요.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굳어진 머리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가 들기도 했죠. 그때마다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습니다. 적금을 깨고, 아이들 보험까지 해약해 가며 제 학비를 다 대주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난 것이 허브였다. 허브라는 식물과 유용성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때였는데, 수업 시간에 본 해외 영상 자료가 잊혀지지 않았다.#처음엔 하우스 귀퉁이에 어렵게 구한 모종 심어 하우스 한쪽 귀퉁이에서 허브 재배를 시작했다. 광주의 친구에게 부탁해 어렵게 구한 모종을 가꾸고, 삽목 가지들을 얻어 아내와 함께 밤새 다듬어 새벽에 심었다. 허브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하우스 하나를 통째로 비워 흙을 돋우고 자갈을 깔고, 통나무를 잘라 칠해 가며 하나씩 하나씩 허브 정원을 꾸며 나갔다. 부모님과 이웃 농민들의 눈에는 당연히 헛심 쓰기, 혹은 고급 취미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반대가 거셌고, 압박이 너무 심해 한때는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일단 밀어붙였다. 이 대표에게는 허브가 단순한 1차 작물이 아니라 농민과 도시민이 유기체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새 자원으로 보였다. 석사 논문도 허브로 썼다. “석사 학위증을 부모님 앞에 놓고 큰절을 하는데, 정말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요. 아내도 ‘여보 수고했어요’ 하고 말끝을 흐리며 우는데….” 채소 농사를 짓던 온실에서 그대로 허브를 가꾸었던 터라 처음에는 실패도 많았다. 모종 5만본을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다. 홍보할 방안을 알지 못하니 판로도 마땅치 않았고, 방문객 역시 있을 리 없었다. 1999년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온실 위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지나가다 안을 살펴보더니 물었다. “홈페이지 하나 만드실래요?” “그거 공짜예요?” 당시 이 대표는 홈페이지가 뭔지도 몰랐다. “물론 공짜지요.” 그는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이었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의 도움으로 어렵게 홈페이지(www.herbsfarm.co.kr)를 만들어 개설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에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성심껏 답변하느라 하루 서너 시간도 자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의 진정성 있는 답변을 받은 사람들이 농원으로 직접 찾아오고, 꾸밈없고 소박해서 좋다는 입소문을 타며 동호회 등이 결성돼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누적 방문객이 수만 명에 이르게 되고 신문과 잡지와 방송 등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이종노가 일약 허브계의 스타가 돼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허브가 막 소개돼 붐이 일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아직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허브 가공품 생산과 판매를 위해 2000년 12월에는 ‘허비너스’라는 법인도 설립했다. 유명세를 타고 나니 해외 허브 제품을 수입하는 업자들이 찾아와서 판매를 종용하는데, 허브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더란다. “우리가 재배한 허브로 우리 제품을 만들면 되는데, 왜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요? 그래서 또 연구를 시작한 거죠. 특별한 방법으로 추출한 오일은 물론이고 허브 소금, 비누, 양초, 샴푸 등 제가 개발한 향과 원료를 바탕으로 지역의 기업과 협력해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허브 아토피·비염 치료제 등 특허도 여러 개 허브를 함유한 아토피 치료제, 비염 치료제, 두피 보호제 등 여러 특허를 획득해 벤처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국내외 각종 박람회에 참여해 허브 소금 등을 수출하기도 했다. 내방객들이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리 예약한 단체 손님에 한해 허브를 이용한 음식들을 제공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장려하기 전에 이미 그는 허브로 6차 산업의 비전을 보고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경기도지사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등 유수의 상을 비롯해 각계로부터 표창장과 감사패를 받았다. 허브와 관련된 강연뿐 아니라 귀농, 귀촌에 대한 교육, 농산물 홍보와 마케팅 및 컴퓨터 활용법 등 농촌 생활 전반에 걸쳐 각 교육장마다 강사로 나가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농림부 베스트 강사 상을 받기도 했다. #“성공 비결, 두려움 없는 도전… 그리고 진정성” 원평허브농원은 5000평 규모의 시설에서 연간 3억 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대표는 성공 비결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 의식과 성실과 진정성에서 찾는다. 항상 메모지를 갖고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하고 실행에 옮겼단다. 거기에 입장료도 없이 농원을 개방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 따로 고객 관리라는 것을 할 필요도 없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대했다고 한다. 현재 농원 운영은 거의 세 자매가 맡고 있다. 어릴 때부터 흙과 허브와 함께 자란 첫째가 결혼해 사위와 함께 농원을 가꾸고 분화를 생산하고, 둘째 딸이 허브 차와 제품 판매 및 체험 프로그램을 맡고, 올해 대학에 들어간 셋째 딸이 아르바이트로 틈틈이 농원 일을 돕는다.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사라지고, 도시민과 농민이 소통하고, 세대를 넘어 젊은 농부들이 꿈을 펼치는 곳,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루고 그들이 이어 가는 우리 농촌의 미래가 밝다. 이번 주말에는 짙은 허브 향에 싸여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산뜻하고 담백하게 마음의 평안까지 얻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 역시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그곳이 벌써 그립다.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이 있다.
  • 17년 만에 꺾인 임금… 파랗게 질린 ‘블루칼라’

    17년 만에 꺾인 임금… 파랗게 질린 ‘블루칼라’

    제조업 일자리의 7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블루칼라 계층의 소득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허리’라고 할 수 있는 100~299명 고용 제조업체의 지난해 임금이 17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기업들의 이윤이 감소하면서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특별상여가 줄었고, 일감이 끊겨 연장·휴일근로에 주는 초과수당도 동반 감소했다. 수출 및 제조업 부진의 여파가 대기업에서 1·2차 하도급 업체로 전이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3·4차 하도급 업체 등 영세한 업체로 임금 감소 현상이 전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작년 평균 월급 272만 1558원 19일 중소기업중앙회의 ‘2016년 중소 제조업 직종별 임금조사’에 따르면 상시종사자(고용인원)가 100~299인인 중소기업의 월 급여 총액은 지난해 272만 1558원으로, 전년(272만 7059원)보다 5501원(0.2%) 감소했다. 이 규모의 중소기업 임금이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중소 제조업 직종별 임금조사는 중소 제조업체(상시종사자 20~299인) 3만 2000여곳 가운데 1500곳을 임의로 뽑아 해마다 실시한다. 고용인원이 100~299인인 기업은 제조업에서는 ‘중기업’에 속하며, 대기업의 2차 하도급 업체가 대부분이다. 중소기업계에서는 블루칼라 계층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분류한다. 임금을 항목별로 분석해 보면 기본급과 통상수당, 기타수당은 늘었지만 특별급여와 초과수당의 감소가 워낙 커서 전체 급여가 줄었다. 상여금, 성과급, 임금 인상 소급분처럼 정기 또는 비정기적으로 주는 특별급여는 종사자 수에 관계없이 모든 중소기업에서 감소했다. 중소 제조업의 특별급여는 지난해 평균 11만 8486원으로 전년 대비 4만 3199원(26.7%) 줄었다. 같은 기간 100~299인 고용 기업의 특별급여는 32.3% 감소해 해당 항목을 조사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 규모 기업의 특별급여는 2012년(52만 3117원) 정점을 찍고 급격히 감소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4분의1 가까이 줄었다. 한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근 2년간 매출이 감소한 수출 대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1·2차 하도급 업체를 압박하면서 해당 기업들이 연말에 지급하는 상여금부터 줄이는 제 살 깎기를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수·수출 업종 가릴 것 없이 특별급여 감소 폭이 컸다. 전체 22개 업종 가운에 16개 업종에서 전년보다 특별급여가 줄었다. 이 가운데 6개 업종은 감소 폭이 50%가 넘었다. 식료품업의 감소 폭이 68.4%로 가장 컸고 전기장비(-59.1%),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55.0%), 섬유제품(-54.3%) 순이었다. ●영세 하도급으로 임금 감소 전이 우려 연장·야간·휴일근로에 주는 초과수당도 감소했다. 100~299인 고용 제조기업의 초과수당은 지난해 41만 9538만원으로 전년(44만 3949원) 대비 5.5% 줄었다. 일감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파악됐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지난해 72.5%로 2011년(80.5%)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홍보실장은 “지금도 대기업의 56.5% 수준에 불과한 중소 제조업체의 상대적 임금격차는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중국의 내수 중심전략이 공고화될수록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블루칼라의 소득 기반이 흔들리면 내수 소비가 침체되는 악순환도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2017 공직열전] “작지만 강하다” 265명 초미니…금융정책 진두지휘

    [2017 공직열전] “작지만 강하다” 265명 초미니…금융정책 진두지휘

    금융위원회의 탄생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공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만수 사단으로 대표되는 이 당선자의 경제 브레인들은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3개로 나뉜 구조를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다. 이듬해 조직 일원화 과정을 통해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기능과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정책 기능을 통합했다. 그렇게 해서 금융당국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금융위가 생겨났다.금융위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을 합쳐도 직원 수가 265명인 초미니 부서다. 작지만 강하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 때문에 엘리트주의가 강하다는 시선도 있다. 금융 제도를 만들고 각종 인허가 및 제재를 담당하며 필요할 때 시장에 경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일상 업무다. 현직 관료 중 대표적인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로 통하는 임종룡 위원장 밑에서 일하는 업보(?)로 가뜩이나 높은 노동강도가 더욱 세졌다. 지난해 말 정부 1청사로 이사 온 뒤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부처다.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지만 조직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이 나뉜 현 경제부처 조직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금융위 넘버2인 정은보(55) 부위원장은 행정고시 28회 재경직 수석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선이 굵고 정책의 큰 방향을 잡는 데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옳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임 위원장이 경제부총리에 내정됐을 때 내부 직원들은 차기 위원장 1순위으로 꼽았다. 까칠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정이 많아 따르는 직원도 많다.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의 맏사위로, 방송인 강호동과도 친척이다. 김학균(53) 상임위원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국은행 정책부서에서 10년간 근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잘 아는 인물이라는 점이 발탁 이유로 꼽힌다. 영어에 능통하며 오랜 외국 생활로 매너가 좋다. 손병두(52) 상임위원은 누구보다 임 위원장의 신임이 두텁다. 금융위 핵심 현안인 조선·해운업 등 구조조정 업무를 손 위원에게 맡긴 이유이기도 하다. 합리적인 일 처리와 온화한 성격으로 기재부 시절부터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상사로 수차례 꼽혔다. 갈등 조정에도 능하다. 아버지가 손재식 전 통일부 장관이다. 유광열(52)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기재부에서 국제금융정책관부터 국제금융심의관, 국제금융협력국장을 거친 국제통이다. 다양한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 시야가 넓고 직원들과의 친화력도 좋다. 정완규(53) FIU 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금융협상, 저축은행 구조조정 등 금융 전반의 큰 틀을 많이 다룬 정통 금융 관료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할 줄 안다는 평을 듣는다. 젊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김용범(54) 사무처장은 정책에 대해 학구적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아이디어가 좋고 정책입안 과정에서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시장 및 소비자와 소통한다. 한때 재경부 ‘군기반장’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금융위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따뜻한 상사로 통한다. 임규준(53) 대변인은 오랜 기간 언론사 기자 생활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정부와 언론의 소통 방식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항상 새로운 방식을 연구해 정책홍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쇄신파다. 유재수(52) 기획조정관은 큰 그림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전반적인 금융정책 실무에 밝아 막혔을 때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어려운 정국 속에서도 국회 업무를 원만하게 추진했다는 평가다. 도규상(50) 금융정책국장은 금융위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별명만큼 전반적인 금융위 업무와 인사를 꿰뚫고 있다. 일을 미루는 법이 없는 부지런한 성격으로 업무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정이 많고 업무 능력만큼 패션 감각도 뛰어나다. 김학수(52) 금융서비스국장은 ‘통화계장’이란 옛 직함이 자랑스럽다. 재경부 금융정책과에서만 5년(1997~2002년)간 근무하며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겪었다. 대우그룹 구조조정에도 참여했다. 온화한 성격으로 직원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줄 아는 상사다. 김태현(50) 자본시장국장은 원칙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별명은 불도저. 업무에 대한 열정이 높고 추진력이 강해 붙여졌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면도 있다. 술자리 등에서는 직원들과 격 없는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이다. 이명순(48) 구조개선정책관은 현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 멤버다. 금융위 내에서는 대책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은행 민영화 등 어려운 사안들을 합리적으로 처리해 냈다. 임 위원장이 ‘사명감이 투철한 공무원’이라고 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 윤창호(49)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보살’로 통한다. 부하 직원이 큰 잘못을 해도 절대로 화내는 법이 없다. 카드 수수료 조정과 신용정보원 설립 등 갈등 현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이해관계 조정에 능하다는 평이다. 숫자에도 강해 업무보고 때 후배에게 의존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조직 내 소문난 주당이다. 박정훈(47) 금융현장지원단장은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던지고 직원들과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는 스타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및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합쳐 5년간 외국 생활을 해 국제 감각도 뛰어나다. 서재홍(52) 국제협력관은 뛰어난 국제 감각과 세련된 매너로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소통을 중시한다는 평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기습 이자 폭탄은 ‘무효’ 선이자는 ‘불법’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기습 이자 폭탄은 ‘무효’ 선이자는 ‘불법’

    연 27.9% 넘는 이자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금리 변동 가능하나 예측 범위 내에서만 계약서 꼼꼼히… 피해 땐 금융당국에 신고직장인 A(30대)씨는 집안 사정으로 급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가 기막힌 일을 당했습니다. 아파트 보증금을 담보로 900만원을 대출받고 7%의 이자율을 적용하기로 했는데요. 계약 시 3개월 분할 납부하기로 한 근저당설정비 45만원을 이자와 함께 약 20만원씩 부담하는 계약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대부업체로부터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번 달부터 이자를 27만원 넘게 내라는 겁니다. 깜짝 놀란 A씨는 바로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어 “갑자기 이자를 올리는 게 어딨냐”고 따졌습니다. 대부업체 직원은 “조달금리가 올라서 대출금리가 36%로 인상됐다”면서 “계약서를 보면 조달금리에 따라 이자율은 변동될 수 있다고 다 써있다”고 우기네요. A씨는 “도대체 조달금리가 얼마나 올랐길래 그러냐”고 물어봤지만 대부업체 직원은 “그건 외부에 알려줄 수 없다”고만 말합니다. 갑자기 ‘이자 폭탄’을 맞게 된 A씨는 정말 대부업체가 올린 이자를 다 내야 할까요? 1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A씨의 경우 대부업체의 요구대로 이자를 다 낼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서에 ‘이자율은 변동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더라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갑자기 이자율을 대폭 올리는 행위는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어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효가 되기 때문이죠. 이성만 소비자원 서울지원 금융보험팀 부장은 “대부업체에서 계약서에 변동금리라고 써 놓으면 금리를 올릴 수는 있다”면서 “하지만 소비자가 예측 가능해야 하고, 금리를 올리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부장은 “IMF 외환위기처럼 국가적인 경제위기라면 몰라도 갑자기 이자율을 급격히 올린다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면서 “계약 당사자인 채무자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이자율 인상은 법에 따라 무효”라고 강조했습니다.현행 법정 최고금리는 연 27.9%입니다. 전국 시도에 등록이 안 된 대부업체의 경우 이자제한법 적용을 받아 최고금리가 연 25%죠. 즉 등록된 대부업체는 최대 연 27.9%, 개인 등 등록 안 된 대부업소는 최대 연 25%의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업체가 이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았다면 소비자에게 되돌려주거나 원금에서 빼줘야 하죠. 하지만 대부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받은 이자를 친절하게 돌려주는 일은 거의 없겠죠. 대부업체가 갑자기 이자를 터무니없이 올렸다면 소비자원이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에 신고하고 피해 구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성만 부장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때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면서 “대부업체에서 말도 안 되는 변동금리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숨겨 놓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일부 대부업체에서 선이자를 떼는 경우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1000만원을 빌려준다고 하고 선이자 100만원을 뗀 900만원만 주는 거죠. 소비자원에 따르면 선이자는 불법입니다. 만약 대부업체에서 선이자를 뗐다면 이자가 아니라 대출 원금에서 빼야 합니다. 즉 대부업체에서 처음부터 1000만원이 아닌 900만원을 빌려줬다고 보는 거죠. 최근 TV에서 ‘1개월 무이자’라는 대부업체 광고가 많이 나오는데요. 소비자원에 따르면 무이자라는 말만 믿고 덜컥 대출을 받았다가 낭패를 보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1개월 뒤에 이자를 조금이라도 갚지 못하면 높은 연체이자율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서죠. ‘1개월 무이자’라는 광고 뒤에 숨은 높은 이자율 등 계약조건을 잘 체크해야 합니다. 또 이자율이 낮은 대출을 중계해 주겠다면서 신용조사 비용 등 수수료를 받는 중계사들도 있는데요. 대출중계사가 수수료를 받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대출중계사는 대부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아야 하죠. 어떤 경우에도 소비자는 대출중계사에게 수수료를 줄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성만 부장은 “소비자가 대출 원금과 이자를 못 갚으면 전화 등으로 협박하는 일부 대부업체가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이럴 때는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esjang@seoul.co.kr
  • 17년 학교 경비원 아저씨의 ‘공감 축사’

    17년 학교 경비원 아저씨의 ‘공감 축사’

    “여러분이 교문을 들어설 때부터 지켜봤는데 이렇게 사회로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에서 축하를 보낼 수 있어 기쁩니다. 말도 못할 혼란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홀로서기가 힘들겠지만, 차곡차곡 쌓아가면 될 거라고 믿습니다.”16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졸업식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는 학교경비 김창진(73)씨였다. 그는 17년째 이 학교 건물의 경비를 맡고 있지만 연단에서 많은 학생들에게 마음을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짧은 축하인사 속에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미래’, ‘꿈’, ‘열정’ 대신 미안함과 진심이 담긴 응원을 담았다. 긴장한 김씨가 말을 더듬거나 실수하자 그의 말을 경청하던 졸업생들은 “아저씨 파이팅”, “멋있어요”라고 외치며 용기를 북돋웠다. 학생들을 배려한 듯 3분도 채 되지 않는 축사가 끝나자 김근상 이사장, 이정구 총장을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연단에서 내려온 김씨의 손은 땀으로 흥건했다. “그냥 세상살이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는데 잘 전달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익숙한 얼굴들이 학교를 떠나는 게 아쉽습니다.” 김씨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그만두고 2000년부터 이 대학의 경비를 시작했다. 17년간 학생들을 보면서 이 친구들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혼란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같은 노인보다 이제 막 사회로 첫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이날 졸업식에는 김씨를 비롯해 학교의 미화와 경비를 담당하는 직원 23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졸업식에서 학교 측에 발전기금 2000만원을 전달했다. 김씨는 “회식자리에서 누군가 먼저 ‘우리가 그래도 학교 덕분에 먹고사는데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어주자’고 이야기를 꺼냈고, 실천에 옮긴 것일 뿐”이라고 쑥스러워했다. 졸업생 김선영씨는 답사를 통해 “여러 사람의 도움이 모여 무사히 학교를 다니고 졸업할 수 있었다”며 “부모님과 교수님, 그리고 학교 경비와 미화를 책임지시며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덕분”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긴급진단 상법 개정안] SK 등 경영권 방어 때 출혈 커 ‘악몽’…대주주, 소수세력 이사회 진입 꺼려

    [긴급진단 상법 개정안] SK 등 경영권 방어 때 출혈 커 ‘악몽’…대주주, 소수세력 이사회 진입 꺼려

    “상법 개정안은 세계 유례없는 희귀 법안”(한국경제연구원), “기업들을 ‘테이블 데스’(수술 중 사망)로 몰 수 있다”(대한상의), “중소·중견기업에도 부담”(한국상장회사협의회)…. 2월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제기된 뒤부터 16일까지 재계는 연일 공포증(포비아)에 가까운 반응을 쏟아 냈다. 재계의 ‘상법 개정 포비아’는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그럼에도 개정안이 지지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정리한다.외국계 투기자본, 해외 기업사냥꾼 등이 재계가 공포의 원천으로 꼽는 대상들이다. 2005년 소버린의 SK 경영권 공격, 2006년 칼 아이컨의 KT&G 경영권 공격 경험이 재계에 트라우마를 남긴 탓이다. 이 중 칼 아이컨은 KT&G 지분(14.99%)을 매집한 뒤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적극 주장해 이사회 진출에 성공했다. 대주주 이외 진영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유리한 집중투표제는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도입됐고, 이번 상법 개정안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추진되고 있다. 이미 10여년 전에 벌어진 소버린 사태와 칼 아이컨 사태가 재연될 개연성이 약하다는 반론도 있다. 얼핏 보기엔 외국계 투기자본이 한 덩어리로 보이지만, 실상은 운용 주체와 국적이 모두 다른 외국계 자본이 소액지분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투자 목적과 투자금 회수 시기가 다른 수십 개 투기자본이 한통속이 돼 특정 감사를 밀거나 특정 안건에 몰표를 던지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계의 공포는 ‘경영권 공격을 받을 확률’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경영권 공격을 받을 수 있는 토양’ 자체에 집중돼 있다. 낮은 확률이더라도 투기자본과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다면 막상 국내 기업은 ‘질 수 없는 전투’를, 투기자본은 ‘져도 되는 게임’을 하는 형세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SK와 KT&G 모두 투기자본의 공격을 방어해 냈지만 ‘출혈이 큰 승리’였다. SK는 경영권 방어에 약 1조원을 들여야 했고, 소버린은 9459억원의 차익을 남기며 ‘이문이 남는 패배’를 거뒀다. 재계 관계자는 16일 “SK와 KT&G 모두 지주회사 전환이나 주주 보호책 마련과 같은 정부 정책을 충실히 따르다 경영권 공격을 겪었다”면서 “기업엔 칭찬받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일축했다.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고 입법 취지대로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소수 세력이 이사회에 진입하는 상황도 기업엔 영 마뜩잖은 부분이다. 대주주를 견제하는 이사가 올라온 안건마다 반대해 주요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대주주 견제 세력에 기업의 핵심 정보가 제공된다는 점도 기업이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재계의 상법 개정 포비아는 우호 여론을 놓쳐 가고 있다. 최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자한 53개 기업 중 단 2곳만 출자 여부를 이사회에 상정하는 등 ‘대주주가 필요로 할 때 동원되는 이사회’의 후진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정경유착이며, 상법 개정안은 정경유착 근절법”이라고, 고연호 국민의당 대변인이 이날 브리핑에서 “상법 개정안은 오너하기 좋은 나라가 아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개혁 입법”이라며 강행 의지를 내비친 배경이다. 그러나 정작 야권 내 혹은 여야 간 조율이 어려워 정치권 논의 과정에서 상법 개정안이 좌초될 수 있다는 예측도 제기된다. 야권에선 김종인 민주당 의원,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각각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서 미묘하게 다른 지점이 발견된다. 김 의원은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감사 분리 선임 등 상법 개정안의 큰 틀을 만든 ‘원조’임을 자처하고 있다. 채 의원의 법안은 김 의원 법안에 비해 개정안 적용 기업 범위를 넓힌, 한층 강화된 상법 개정안으로 분류된다. 야권에서 발의한 법안의 합의 지점을 도출한 뒤엔 모든 상임위원회 일정을 거부 중인 자유한국당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9일 상법 개정에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재계가 강하게 반발한 이후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다시 뛰는 금값… 장기 투자는 ‘실물’ 몰빵은 ‘금물’

    다시 뛰는 금값… 장기 투자는 ‘실물’ 몰빵은 ‘금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금(金)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달러와 금은 모두 안전자산이어서 달러가 강해지면 금값이 떨어지고, 달러가 약해지면 대체 안전자산을 찾아 금값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상품의 경쟁력을 위해 달러 약세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창 떨어졌던 금값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부동산과 달리 현금화 상시 가능 15일 금 시세(한국거래소)를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그램(g)당 4만 3150원(종가 기준)까지 떨어졌던 금은 올해 들어 4만 5000원대로 올라섰다. 투자자들이 금을 선호하는 이유는 부동산과 달리 언제든지 현금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금값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의 신용도나 부실에 관계없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상황이 올 때마다 주목받았다. 금 투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직접 골드바 등 금 실물을 사서 향후 금값이 올랐을 때 파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골드뱅킹이나 펀드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금을 사고팔거나 금에 투자하는 것이다. 실물을 사고팔면 수수료가 비싸지만 향후 되팔면서 남긴 시세 차익에 세금이 붙지 않아 장기적인 투자와 상속에 용이하다. 골드뱅킹은 0.01g 단위로 매매가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단기 시세차익 노릴땐 ‘골드뱅킹’ 금을 직접 구입하면 사고팔 때 각각 5% 수수료가 붙는다. 또 시세에서 부가세 10%를 제하는 등 다소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시세 차액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장기적으로 투자해 차익을 남기거나 자녀에게 상속할 때 절세 목적으로 고려하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골드뱅킹은 예금 통장에 시세에 따라 금을 사서 저금해두는 상품이다. 실제 금을 보유하지 않는다. 작은 단위로 금을 사고팔 수 있기 때문에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고 단기간 시세차익을 노릴 때 적합하다. 매매 수수료가 1% 정도로 실물 거래보다 훨씬 싸다. 시세 차익으로 얻은 수익에는 15.4% 세금이 부과된다. ●0.01g 단위 소규모 투자 상품 봇물 신한은행 골드리슈 골드테크통장은 금 거래 예금 통장이다. 기한과 금액의 제한없이 0.01g 단위로 입출금 거래를 할 수 있다. 예약매매 서비스를 이용하면 목표가격 달성 시 자동으로 사거나 팔 수 있으며, 반복매매 서비스를 이용해 미리 지정한 가격 이상으로 오르거나 떨어질 때 일정량을 사거나 팔아 위험 분산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국민은행 ‘KB골드투자’와 우리은행 ‘우리골드투자’ 상품도 유사하다. 신한은행 골드리슈 금적립통장은 적금처럼 통장에 금을 적립할 수 있는 상품이다. 시세에 따라 금을 적립하고 만기(6개월~5년)에 금 실물로 인출하거나 팔아서 현금으로 찾을 수 있다. 만기 전 10회까지 부분 해지가 가능하다. ‘달러&골드테크통장’은 달러로 금을 거래하는 상품이다. 원·달러 환율에 관계없이 국제 금 가격에 연동해 거래하기 때문에 환율 리스크가 없고 달러 외화예금을 보유한 고객의 환전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오름세로 돌아선 금펀드 ‘급등락’ 주의 금값이 오르면서 금 파생상품이나 금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금 펀드’ 상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였던 펀드들이 올해 들어 전부 플러스 전환하며 일부는 10% 중반 이상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다만 1% 안팎의 선취 수수료와 1.6~1.7%가량의 운용 수수료를 고려해야 한다. 이창석 신한은행 PWM일산센터 팀장은 “최근 많이 떨어졌던 금값이 향후 달러 약세 정책과 인도, 중국의 금 수요와 맞물리면서 상승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2011년도 1㎏당 7900만원까지 폭등했던 금이 지금은 4950만원 선까지 떨어지면서 금펀드 수익률 역시 한동안 바닥을 친 적이 있다”면서 “가격 급등락이 심한 상품이라는 점에 유의하라”고 강조했다. 이민구 씨티은행 WM상품부장은 “금은 기본적으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자산이기 때문에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꼭 필요하다”면서도 “어디까지나 위험 대비 차원이기 때문에 금의 비중을 과도하게 늘리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2000만원 9급에 22만여명 몰렸다

    2000만원 9급에 22만여명 몰렸다

    올해 9급 국가공무원을 선발하는 공개경쟁채용 시험에 역대 최다 인원인 22만 8368명이 몰렸다. ‘졸업이 곧 실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용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민간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공직에 눈을 돌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올해 국가직 9급 선발 인원을 지난해에 비해 20% 가까이 늘리는 등 공공 일자리를 늘리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인사혁신처는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2017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 응시원서 접수를 진행한 결과 46.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경쟁률은 지난해 53.8대1에 비해 다소 감소했다. 올해 선발 예정 인원이 지난해에 비해 19.2%(790명) 늘어난 4910명이기 때문이다. 응시자는 지난해 22만 1853명에서 6515명이 증가했다. ●40대 1만 507명·50대 1100명 몰려 올해 최고령 응시자는 1957년생으로, 최연소 응시자인 1999년생보다 42살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공무원 정년이 60세인 만큼 최고령 응시자의 경우 합격하더라도 1년도 채 다니지 못한다. 50세 이상 응시원서 접수자는 1100명으로 전체의 0.5%를 차지했다. 최근 10년간 국가직 9급 공채 출원자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08년까지만 해도 16만명대였으나 지난해 22만명대를 넘어섰다. 취업 준비생이 60만명 안팎임을 감안할 때 3분의1이 국가직 9급 시험에 도전한 것이다. 이른바 ‘공시(공무원시험) 열풍’은 갈수록 약화되는 고용 안정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사회 전반의 질 높은 일자리 감소 등과 맞물려 있다. 인사처에 따르면 국가직·지방직 9급 공무원의 초임 연봉은 2059만 2000원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을 합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 정규직 초임인 2500만원 수준인 데다 연금을 비롯해 육아휴직 등이 보장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민간 일자리보다 낫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명문대생·변호사도 응시 조직 안에서 비교적 단순하고 일상적인 행정 업무를 맡는 공직 최하위직인 9급 공무원의 경우 과거엔 고등학교 또는 전문대 졸업 후 시험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 ‘명퇴(명예퇴직) 바람’이 불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요즘엔 소위 ‘명문대’로 이름난 대학의 졸업자는 물론 변호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도 시험에 응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박용성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명문대에 들어가고 전문자격증을 따도 더이상 우리 사회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기가 힘들어진 슬픈 현실을 보여 준다”며 “경기침체로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더라도 공무원의 임금은 물가 상승률에 맞춰 지속적으로 오르기 때문에 고급 인력까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지선다형으로 출제되는 9급 공채 시험은 공직에 요구되는 자질을 절대로 검증할 수 없다”며 “시험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입직하는 공무원의 역량에 맞게 현행 하위직 공무원이 담당하는 직무에 대해서도 조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단독]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손사탐 시절 연수입 50억…10대 때 청강한 청년들에 20년 만에 ‘빚’ 갚게 됐죠

    [단독]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손사탐 시절 연수입 50억…10대 때 청강한 청년들에 20년 만에 ‘빚’ 갚게 됐죠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내던 1997~1998년. ‘손사탐’(손 선생 사회탐구)의 제자들은 맨날 학원 책상에 ‘박찬호 연봉 vs 손사탐 연봉’을 적어 놓고 비교를 하곤 했다. “아! 손사탐이 더 버네. 돼지 아냐. 그렇게 돈 많이 벌어서 뭐할 거야.” 이런 비아냥거리는 낙서도 종종 발견됐다.‘손사탐’ 손주은(56) 메가스터디 그룹 회장은 당시 오프라인 학원 강사료로만 한 달에 4억원을 벌었다. 여기에 교재비까지 더하면 연간 수입이 50억원에 달했다. 보통 월급쟁이들은 평생 만져볼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손 회장은 이렇게 번 돈을 토대로 2000년 교육기업 메가스터디를 설립했다. 메가스터디 그룹은 시가총액이 한때 2조 5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손 회장은 항상 빚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워낙 돈을 쉽게 벌었으니 학생들한테 일부는 환원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인생이 생각대로 잘 안 돼서 이걸 그냥 가지고 죽으면 안 되겠다고….” 2015년 말에 구체적인 결심을 한 그는 지난해 10월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윤민창의투자재단을 설립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했던 약속을 20년 만에 실행한 거죠. 이제 빚을 갚았다는 느낌에 홀가분해요.” 그래서인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메가스터티교육 본사에서 만난 손 회장은 표정이 유달리 밝아 보였다.→청년 창업을 위한 재단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애초에는 청년 창업보다는 인재 양성을 위한 재단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인재 양성도 중요하지만 요즘 30대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과거 10대 때 제 수업을 듣던 애들이죠. 당시 제가 “공부가 너희를 구원할 거다”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구원이 안 됐어요. 한국이 지금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들어온 상태에서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건 결국 청년들이 힘을 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에서 청년 창업 지원 쪽으로 생각을 바꿨죠. →재단 이름 윤민은 무슨 뜻인가요. -아까 회의실에서 보셨겠지만, 관동별곡에 나오는 한 구절이 벽 액자에 걸려 있어요. ‘음애(陰崖)에 이온 풀을 다 살와내여사라’. ‘그늘진 벼랑에 시든 풀을 다 살려내라’, 즉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기업을 만들면 이런 정신을 가져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이걸 두 자로 줄이면 윤택할 윤(潤), 백성 민(民), 윤민입니다. 1992년 교통사고로 먼저 간 딸 이름이에요. 집사람은 1991년 같은 교통사고로 먼저 숨진 아들 이름(광욱)에서도 한 글자를 따서 ‘광윤’으로 하자고 했는데,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아 그냥 윤민으로 했어요. 회사가 더 커지면 이름을 ‘윤민그룹’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 단계로 가기는 어려워졌고…. →25일까지 첫 지원을 받는데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요. -시도를 하나도 안 하면 0이지만, 한번 시도를 해 보면 언젠가 자기뿐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큰 걸 만들 수 있어요. 여기에서는 꼭 해서 성공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건 벤처캐피탈이 하는 거고. 우리도 벤처캐피탈을 갖고 있는데 대상을 찾을 때 성공할 애들을 찾아요. 그러면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는 사람만이 벤처캐피탈 지원을 받죠. 그보다 낮은 단계는 과감하게 시도조차 해보기 어려워요. “일단 원서를 내 봐라. 도전을 해 봐라. 실패도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 300팀 정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10팀을 뽑습니다. →재원은 얼마인가요. -300억원을 출연합니다. 지난해 100억원, 올해와 내년 100억원씩이죠. 첫해엔 부동산 63억원, 현금 37억원을 출연하고 올해와 내년은 현금으로 지원합니다. 처음에는 400억원을 생각했는데 막상 딱 내는 순간에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100억원을 또 깎게 되더라고요. 실제 사람 심리가…. 이사장은 숙대 법대의 성민섭 교수님이 맡아 주셨어요. →이미 장학 사업을 하고 있지 않나요. -기존에 메가스터디가 학생들한테 올해까지 350억원 가까이를 지원했죠. 그거 말고도 여러 대학을 중심으로 기부활동을 해 왔어요. 특히 모교인 서울대 인문대에는 ‘손주은 인문학 장학금’이라 해서 인문학 후세대 양성을 위해 연간 1억원 가까이 계속 내왔는데 앞으로 그 부분을 이 재단에서 일부 담당하려고 해요. →기업인들이 재단을 재산 증여 등 관리 목적으로 설립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게 절대 아닐 거라는 걸 압니다. 늘 얘기했듯이 다른 직업에 비해 한국 사교육 종사자들, 그중 스타 강사는 너무 쉽게 돈을 많이 벌었어요. 사교육이 하나의 열풍이었잖아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손사탐 시절에는 특히 그랬죠. 제가 1997~1998년 대중강의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한 5개월 만에 학생 2000명이 20개반에 몰렸어요. 한 반에 100명씩 쭉 줄을 서서 등록했죠. 1998년부터는 한 교실에 250명으로 늘려도 줄이 끝도 잘 안 보여요 .그걸 20개반을 하니 월 5000명, 게다가 저는 최고의 스타 강사니까 5대5 배분 비율이 깨지죠. 강사가 절대 강자니까 7대3(수입을 강사가 70%, 학원이 30%로 가져가는 것)까지 갔어요. 그래도 학원은 많이 남으니까. 엄청난 돈을 벌었죠.→외환위기 직후니 더 많아 보였겠네요. -그냥 돈 많이 번다가 아니고 노력에 비해 훨씬 큰 소득이죠. 예를 들어 그 당시 했던 16주 강의는 48만원을 받았는데. 그러면 저는 250명을 넣고 어떤 선생님은 10명도 못 넣었어요. 당장 25배 차이가 나잖아요. 그런데 25배가 아니죠. 그분은 배분을 5대5. 저는 7대3. 30배 이상, 한 40배 차이가 나잖아요. 어떤 선생님은 한 시간 강의하면 시간당 2만~3만원 정도가 평균가라면, 저는 한 시간에 100만~150만원. 하루 평균 9시간 강의를 했는데 하루 소득이 1000만원을 넘었어요. 분명 같은 노력에 비해 과도한 수입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두 가지 원칙을 정했어요. 하나는 정직하게 소득 신고를 해서 세금을 정확하게 내자. 그게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으니. 그래서 지금까지 소득세, 양도소득세, 토지보유세 등 이래저래 낸 세금이 500억원 가까이 돼요. 또 하나는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청교도 윤리에 따라 양심적으로 할 수 있는 기부활동을 했어요. 그걸 드러낸다는 건 나를 파는 것밖에 안 되니 모르게 했죠. →그래서 ‘깨끗한 장사꾼’을 모토로 삼은 건가요. -제가 서른여섯 살 때 10년간 사교육으로 번 돈을 접고 사립학교 하나 사서 이사장이 되려고 했어요.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의식이 숨어 있었던 거죠. 제가 대학생들한테 강연 중에도 말하는데 생산력이 엄청 올라간 사회에서는 이 질서는 거꾸로 돼야 한다. ‘상공농사, 상자지천하대본’이다. 기업 하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이 사회 주도층이 돼야 한다. 법률가 등이 사회 지도층이 되는 게 옳지 않다. 지금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에너지와 원리는 기업이다라고요. 근데 내가 고작 강의 팔아서 하니까 나 보고 장사꾼이라고 욕을 할 거니까 장사꾼이라고 하자. 대신 깨끗하게 하자. 이런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저 스스로 ‘깨끗한 장사꾼’이라고 안 합니다. ‘깨끗한 기업인’이라고 합니다. →안철수 캠프를 도와주면서 정치를 할 거라는 말도 나옵니다. -아닙니다. 교육 관련 해서 조언만 해 준 것 뿐이에요. 안 의원과의 인연은 10년 전 손학규씨를 대신해 메신저 역할을 하기 위해 만나서 시작됐어요. 지난해 두 번째 만남을 가졌죠. 당시 입장(기업인으로 특정 정파를 지원하지 않는다는)을 분명히 밝혔어요. 이후 지난해 안 의원 쪽에서 교육 관련 대담을 하자고 했고 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게 전부입니다. 무슨 캠프에 들어가거나 정치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정치는 인생 자체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때와 경남 도의원 등 네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제가 직접 선거캠프에서 도와준 적이 있어 정치 세계를 잘 압니다. 더구나 저는 정치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사교육에서 돈을 번 사람이 정치하겠다고 하면 후안무치죠.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교육정책에 대해서 제언을 한다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입시를 바꾸는 게 현실적인 하나의 대안으로서는 맞지만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에요. 교실이 다 바뀌어야 해요. 한 교실에 애들을 다 집어넣고 수업을 한다는 건 근대 시민사회 초기에 있던 모형 아닙니까. 어느 정도 수준의 보편적 지식과 기능을 만들기 위해선 효율적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지식은 세상에 널려 있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또 그걸 가지고 실제 도전해 보고 체험해 보고 이런 작업들이 중요한 시대에 왔어요. 시간표 짜서 선생이 들어오는 이런 교실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봐요. 입시 제도를 백날 바꿔서 되는 게 아니고 근본적인 교실 혁명이 있어야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대전환이 가능합니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의 패러다임은 어떤 건가요. -완전히 깨부수어야 하는데 국민들은 일종의 의식의 지체에 빠져 있어요. 아직도 대학 잘 가서 우리 애가 성공하는 것, 아주 우수하면 의사 되는 것, 그다음으로 우수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는 것 아니면 교사가 되거나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 들어가거나…. 그런 질서의 세상이 얼마 안 남았는데 부모들은 아직도 이렇게 생각해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죠. 30년간 고도 압축 성장을 하면서 계속 해마다 나아지는 삶을 살았던 유례없는 경험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명문대 나와도 취직이 안 되고, 취직이 돼도 임금에 한계가 있고 위로 올라가면 층층이 쌓여 있고.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 돼도 몇 개 대형 로펌 외에는 답이 전혀 없어요. 더구나 지금까지 교육은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주로 했어요. 옛날에는 이기고 나면 뭔가 소득이 있었죠. 지금은 경쟁에서 이겼는데도 ‘헬조선’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런 교육을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교육의 본질에 기초한 비즈니스가 뭔지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노량진이 공무원시장이잖아요. 공무원 학원도 있고 입시 학원도 있고. 거기에서 저희도 오피스텔 이런 걸 지어 분양해서 성공도 했지만, 학생들한테 입시를 계속 팔고 있거든요. 노량진을 보면 세계에서 20대 인구 비율이 1등인 곳입니다. 군대 같은 특수한 곳 빼고는 일반인이 사는 곳 중에서는 유일할 겁니다. 그런데 많은 공무원 학원들은 “너희가 공무원 되면 안정된 미래가 열릴 거다” 이러잖아요. 실상은 2~3년 어두운 인생의 터널을 지나서 패배의 상처를 안고 가는, 젊음이 썩어 들어가는 공간이잖아요. 비극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젊은이들에게 삶이 그렇게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면서 ‘힐링’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연내 노량진에서, 시험에 찌들어 사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빛을 줄 수 있는 시도를 하나 할 겁니다. →오래전부터 “사교육은 끝났다”는 말을 해 왔는데. -사교육업체들도 2000년대 후반 2010년쯤 와서 “어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사교육 시장이 끝났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 지 7~8년쯤 됐죠. 실제로 끝났고 일종의 잔불이 남아 있는 걸로 보는데.그런 비판을 해 오다가 최근에 얻은 영감은, 일본 도쿄에 가면 ‘쓰타야’라는 서점이 있거든요. 마스다 무네아키라는 분이 쓴 ‘지적자본론’에 나오는 얘긴데요. 서점은 다 망한다고 했어요. 당연히 인터넷 서점으로 가고 있으니. 그런데 이분이 거꾸로 서점수를 일본 전역에 1440개로, 회원수는 5000만명으로 늘렸어요. 연 매출 2조원에 영업이익 1000억원 이상 내는 신화적인 일본의 오프라인 서점으로 성장시켰죠. 이분이 하는 말이 서점은 서적을 팔면 망한다고 합니다. 그럼 뭘 팔아야 되냐. 책 안에 들어 있는 새로운 삶의 양식, 철학, 행복 등 여러 가지를 팔아야 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직원들에게 “사교육업체가 사교육을 팔면 틀림없이 망한다”고 해요. →그러면 사교육업체는 뭘 팔아야 하나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인 더 나은 삶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이걸 팔아야만 진정한 교육 기업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교육에 대해선 지금도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소비를 하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당장 우리 애 성적이 안 나오니 한다, 이런 생각으로…. 이런 소비는 오래가지 않아요. 그런데 교육 기업이 우리한테 행복을 줬다고 생각하면, 행복을 팔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미래 지향적인 가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수요자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이 뭐냐.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김성수 산업부장 sskim@seoul.co.kr ■프로필 ▲1961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 동성고 졸업(1979년)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1987년) ▲2000~2010년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사장 겸 이사회 의장 ▲2007년 코스닥 상장법인협의회 이사 ▲2010~2014년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 ▲2014년~현재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겸 메가스터디 이사회 의장 ▲2015년~현재 메가스터디교육 이사회 의장 ▲2016년~현재 윤민창의투자재단(이사장 성민섭) 이사
  • 채용방식 60년 만에 수시·직군별로 바뀌나

    채용방식 60년 만에 수시·직군별로 바뀌나

    재계 신입 공채 폐지론 재점화 ‘기수문화 없애기’ 등 변화 예고삼성그룹이 60년 만에 공개채용(공채) 제도를 폐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주요 그룹 인사팀들도 분주해졌다. 삼성이 공채를 폐지하면 다른 그룹들도 마냥 공채 제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짧은 시간에 대규모 인력을 뽑을 수 있다는 공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직무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인력을 필요 이상으로 뽑는 경우가 많아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삼성, 신입 채용방식 순차적으로 변경 채용 담당자들도 “공채가 최선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삼성이 하면 따라할 수밖에 없다”는 국내 경영 풍토와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 방식 변경을 주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4대 그룹의 한 인사 담당자는 9일 “삼성이 공채를 없애면 분명 여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발(發) 후폭풍이 거셀 것이란 얘기다. 우리나라 공채 역사는 삼성의 채용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삼성의 모체인 삼성물산은 1956년 11월 대졸 신입사원 공개 모집 공고를 내고 이듬해 1월 첫 필기시험을 실시했다. 국내 첫 민간 기업 공채 시험이다. 당시 2000여명이 지원해 27명이 최종 합격했다. 이후 삼성은 채용 제도에 변화를 주면서 국내 기업의 채용 방식을 주도했다. 1992년 국내 최초로 대졸 여성 공채를 실시하는가 하면, 1995년 “학력, 성별 등의 차별을 없애겠다”며 ‘열린채용’을 주창했다. 삼성직무적성검사(SSAT·현 GSAT)를 도입한 것도 이때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그룹 통합 채용에서 각 계열사, 사업부별 채용으로 모집 방식을 바꿨다. 삼성그룹이 아닌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각 계열사에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공채의 골격은 지난해까지 변함 없이 유지됐다. 연령 제한 폐지, 지원 횟수(동일 계열사 3회) 제한 폐지 등 세부 변화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올해 특검 수사를 받으면서 상반기 채용에 차질이 발생하자 삼성이 공채 폐지를 검토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당장 공채를 없애기에는 준비할 게 많아 무리가 있다”면서도 “다음달 삼성전자가 직무 역할 중심의 인사 체계로 개편하는 만큼 신입 채용 방식도 (순차적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간 우수인력 확보 ‘눈치전쟁’ 우려 다른 기업들이 염려하는 건 삼성 각 계열사가 필요 인력을 그때그때마다 뽑을 경우 앞서 공채를 통해 뽑아 놓은 우수 인재가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기업 간 ‘눈치보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컨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채용 일정에 맞춰 SK하이닉스가 채용을 진행하는 식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인사에 따른 행정비용과 인력 유출 최소화를 위해 필기시험 및 면접 날짜를 의도적으로 같은 날 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선 수시 채용이 보편화돼 있다는 점, 불필요한 스펙 쌓기와 ‘기수 문화’를 없앨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공채를 없애는 게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