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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환위기10년 그리고 미래] 연매출 200억 中企사장서 노숙인 전락

    [외환위기10년 그리고 미래] 연매출 200억 中企사장서 노숙인 전락

    “몸은 아픈데 돈이 없어서 파스 한장 사기도 버겁습니다. 죽기 전에 자식들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서울 영등포 시장골목.‘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에서 만난 김모(59)씨에게 외환위기는 말 그대로 지옥문이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동네 선배가 운영하는 주물공장에 취직한 김씨는 1977년 공장을 인수해 천막생활을 하면서 공장을 키웠다. 처음에 9명으로 시작했던 O산업주식회사는 외환위기 직전에는 60명까지 직원이 늘었고 연구실까지 두고 신제품을 개발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매출이 200억원까지 됐죠. 거래처에서 돈을 싸들고 와서는 물건을 달라고 했어요. 밤낮 없이 공장을 돌렸죠. 그 때 무리하게 확장한 게 결국 독이 됐지만요. 외환위기만 없었더라면 어음을 어떻게든 막아서 공장을 돌렸을 텐데 하도 정신없이 부도가 나니까 버틸 재간이 없었죠.” ●수면제 300알 먹고 자살 시도 중소기업은 외환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중소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면 대기업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95%는 승인을 안 해줘요. 할 수 없이 대기업에 자료를 넘겨 주면 대기업에서 1억∼2억원 정도 주고 우리에게 물량을 줍니다. 개발은 우리가 하고 하청업체가 되는 거죠. 수송비나 자재비 등을 공제하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외환위기 3∼4년 전부터 이상한 징조가 나타났다고 한다.“돈이 어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음이 3개월짜리가 6개월짜리로 오고 1년짜리로 들어 와요.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다가 갑자기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나니 10억원 정도 부도가 났어요. 하도 어음만 들어오니까 100만원 중에 우리에게 남는 게 100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빚이 빚을 낳는 상황이 됐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다.“은행에서 공장에 경비를 세워 놓고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습니다.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 자체 해결할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채무자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아내와 이혼했죠. 소주 한 병 사들고 어머니 산소에 가서 수면제 300알을 먹었어요. 그때가 1998년 3월쯤이었죠.”다행히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지만 퇴원해 보니 갈 곳이 없었다. ●갈 곳이 없어 시작한 노숙인 생활 당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건망증이 심해지고 항상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 상태로 노숙인이 뭔지도 모르는 채 공사장이나 다리 밑에서 잠을 잤다. 자루 하나 메고 병을 줍고, 구걸해서 100원씩 얻기도 하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밥 달라고 사정하는 생활이었다.“1년인가 2년인가 반쯤 미쳐서 다녔지요.” 다른 노숙인 소개로 교회가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도 가봤지만 예배를 강요하는 게 괴로워 도망쳐 버렸다. 반년 동안 돈도 못받고 목수 일을 배워서 재기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몸이 너무 망가져 있었다. 우연히 지금 이곳에 와서 안정을 찾긴 했지만 일을 할 수 없으니 돈을 모을 방법이 없다. 눈이 나빠져 형광등 불빛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관절이 나빠 오래 걷지도 못한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매월 받는 37만 2000원이 그의 전재산이다. 김씨에겐 두가지 소원이 있다. 하나는 재기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이다. 두번째 소원은 가족들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는 것. 김씨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아들은 아내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고 딸은 인천 어딘가에서 결혼해 살고 있다. 김씨는 “딸만 찾으면 식구들 소식을 알 수 있을 텐데 소식을 몰라 한숨만 쉬고 있다.”고 눈물을 닦았다. 특별취재팀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풀리지 않는 쟁점들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풀리지 않는 쟁점들

    한국 경제와 사회를 뿌리째 흔든 외환위기는 만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만약’이라는 전제를 달고 숱한 가설과 회고록들이 난무한다. 정확한 원인과 실체적 진실 규명 노력은 간 데 없고 네 탓 공방만 남아 있다. 당시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풀리지 않고 있는 쟁점들을 짚어 본다. 인터뷰에 응한 관계자들 대부분은 익명을 요구했다. ●불안한 조짐, 잘못된 상황인식 경상수지 적자가 1994년 45억달러에서 96년 237억달러로 확대되자 당시 모 연구기관장은 청와대를 찾았다. 환율인상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를 건의했다. 하지만 역효과만 냈다. 당시 보고서에 관여한 연구원은 “청와대는 환율을 올리기보다 환율을 내려서라도 기업을 정신차리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면박을 줬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환율 890원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물가관리에 치중하고 있었다. 97년 9월 말 재정경제원 모 과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장관실 문을 두드렸다.“큰일 났습니다. 한국물에 대한 해외에서의 인식이 최악입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합니다.”국제시장 점검차 뉴욕을 다녀온 직후였다. 이때까지도 설마하는 분위기에 편승, 위기를 덮으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9월 홍콩에서 열린 투자로드쇼에서 “한국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한 연구기관장은 나중에 잘못된 홍보였다고 인정했다. 정부의 요청에 따라 나선 게 대외신인도를 악화시켰다고 전했다. ●불신당한 재정경제원, 금융개혁 논의에서 배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어떻게 재경원이 금융개혁을 추진하나.”97년 1월 청와대는 민간인 등으로 금융개혁위원회를 구성, 금융감독 개편과 한국은행법 개정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재경원은 발표 하루전까지 낌새도 못차렸다. 한 관계자는 “이석채 경제수석이 재무부가 장악한 재경원에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낸 결과”라고 전했다. 금개위의 과제 100개 가운데 재경원이 받아들인 부분도 15개 남짓뿐이었다. 그것도 김인호 경제수석으로 교체된 뒤의 일이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처음부터 재경원과 협의했다면 금융개혁을 놓고 갈등을 빚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원 역시 중앙은행 독립을 놓고 한은과 정면충돌했다. 강만수 재경원 차관은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재경원이 자금경색을 풀려고 국고 여유자금 1조원을 방출하자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으로 바로 흡수한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정책이 잘될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위기 부채질 부도유예협약, 오락가락 환율정책 기아자동차가 97년 10월22일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국내금융기관의 외환차입이 어려워 외환시장은 요동쳤고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당시 사태해결에 나섰던 관계자는 “7월 기아차에 적용한 부도유예협약은 나중에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들고 나와 성공한 ‘워크아웃’ 개념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실패한 것은 ‘국민의 기업’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기아차가 회장직 사퇴와 구조조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앞서 제일은행과 국민은행을 합병시키려는 묘안도 짜냈지만 해법은 아니었다. 정부의 외환시장 대응책도 오락가락했다. 재경원은 10월28일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는 것으로 실무진들은 모두 반대했다. 당시 관계자는 “강경식 부총리의 지시가 너무나 강경해서 믿겨지지가 않았다.”고 했다. 한은 일각에서는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정치권 압박수단으로 외환시장 혼란을 이용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3일 만에 당국이 시장에 개입했으나 원·달러 환율은 이미 1000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강경식 부총리의 펀더멘털과 경질 배경 “펀더멘털에는 문제가 없다.”는 강 부총리의 주장에 동정론보다 비판론이 앞선다. 동정론의 근간은 “경제 수장이 펀더멘털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관계자들은 “당시 상황은 미시적인 숫자게임이었다. 외환보유고와 환율의 전쟁이다. 당장 거시적으로 풀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강 부총리는 거시적 해법에만 집착했다.”고 말했다.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면 대외신인도가 나아질 것이라는 발상도 불난 집에 지붕을 얹자는 논리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강 부총리의 경질은 예상됐지만 시기와 배경은 의문이다. 윤진식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11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위기상황을 직보한 게 발단이 됐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인호 경제수석은 지금까지로 윤 비서관에게 섭섭함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수석이 왜 상황보고를 안했겠느냐는 것이다. 옛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와 정보기관이 당시 대선을 앞두고 부총리의 전국 순회강연에 아주 불편해했다. 만류해 달라고 직접 전화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강 부총리가 사석에서 “공무원 출신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 강 부총리는 ‘녹색당 총재’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임창열 부총리의 거짓말? 강경식 부총리는 11월19일 “IMF로 갈 수밖에 없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뒤 바로 경질됐다. 문제는 신임 임창열 부총리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IMF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한 점이다. 강만수 차관은 “이런 발언 때문에 IMF와 미국으로부터 불신을 얻었다.”고 호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서울 강남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 모였던 재경원과 한은 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부총리도 별다른 해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임 부총리 역시 IMF행을 알았다. 실무진이 모두 보고했다. 다만 취임 첫날 국치로 기록될 IMF행을 자신이 발표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문제는 인수인계나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말한 점이다. 이후 ‘거짓말 논란’으로 번지면서 번복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원격 조종에 무릎꿇은 한국과 IMF 임 부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 재무부 간부들이 97년 11월 말 IMF와의 협상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협상을 맡았던 한 관계자는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부 차관이 당사자”라고 말했다. 그는 “IMF 협상단이 서울에서 립튼 차관을 만난 뒤부터 잘 진행되던 협상이 틀어졌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들의 협정준수 각서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협상 실무진들은 IMF에 ‘사기극’이라고까지 항의했으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임 부총리가 취임 이튿날 일본을 방문, 대장성 장관에게 ‘브리지 론’을 요청하고 있을 때에도 립튼 차관이 도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희생양 찾기와 계백장군 외환위기 특감의 희생양이 돼 공직에서 물러난 한 관계자는 “정책을 사후적인 관점에서 보면 똑같은 사람이 영웅도, 죄인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감사원 관계자는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여론에 밀린 희생양 찾기였음을 시인한 셈이다. 당시 책임공방의 핵심에 있던 재경원 관계자는 ‘계백장군설’을 피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에 진 계백장군을 백제 패망의 주범으로 몰아붙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특감 관계자도 “최고 정책결정권자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직무유기를 물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 깨달은 뉴욕외채협상 외환위기 회고록을 준비 중인 당시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98년 1월 뉴욕에서 진행된 외채연장 협상에서 채권단을 이렇게 표현했다.“먹잇감을 앞둔 하이에나였다.”협상 전문가나 국제금융전문가가 없던 당시 우리 협상팀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관계자는 “외채연장이 시급한 상황에서 금리를 내려달라는 말 이외에 만기 구조나 상환 기법 등을 따질 계제가 못 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는데 협상에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한 관계자는 “한국이 IMF행을 결정했는데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미 국방부와 국무부가 ‘한반도를 셧 다운시키려느냐.’고 재무부를 몰아붙이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국이 외채연장협상에 나섰지만 투자은행들의 전리품 챙기기는 방치했다는 주장이다. ●유동성 위기냐 구조적 한계냐 1998년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뿔(감기)에 걸리는 건 순식간이지만 치료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IMF체제의 후유증이 오래 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외환부족은 경제운영의 결과일 뿐 원인은 구조적 결함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처럼 외부에서 온 게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 반면 외환위기를 수습했던 ‘국민의 정부’ 관계자들은 구조적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유동성 관리를 제대로 못한 문민정부 책임을 들춰냈다. 전문가들은 “이벤트성 회고록이나 과거를 들추는 검찰이나 감사원 보고서보다 위기의 본질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체계적인 지침서가 나올 때”라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특감팀 회고-“직급따라 조사받는 태도 달랐다”

    “특감을 시작할 때부터 ‘아무도 잘못이 없다.’는 결과는 절대 나올 수가 없었다.” 1998년 1월30일부터 2월28일까지 진행된 외환위기 특별감사에 참여했던 당시 감사원 관계자들은 28일 “감사원이 외환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란 힘들었다.”고 말했다. 직접 특검에 나섰던 한 관계자는 “감사원이 단순한 회계감사 이외에 본격적으로 정책적인 지도나 의견을 피력한 것은 국민의 정부 이후의 일”이라며 “외환위기 특감이 사실상 첫번째 정책감사였다.”고 밝혔다. 조사받는 관계자들의 태도는 직급에 따라 달랐다고 강조했다. 결정권을 쥔 고위관료들은 ‘희생양’이 될 것을 우려해 자신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그들이 열심히 뛰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실무진들은 외환관리 시스템이나 은행권의 부실,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의 대출문제 등 단편적으로 위험을 느꼈지만 정책에 손을 댈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 조사관은 “실무진들이 손을 대더라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선 정책 담당자들의 책임 미루기가 있었다는 뜻이다.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을 직무유기로 수사의뢰한 것과 관련, 관계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이다. 당시 특감팀 관계자는 “두 사람을 직무유기로 판단한 것은 직접적인 책임이 있었다기보다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온 나라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보는데 정책적 판단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감사원이 두 사람을 검찰에 직무유기로 수사의뢰한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서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YS는 책임이 자신한테 있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이와 관련해 특검 관계자는 “감사원이 최고 정책결정권자가 대통령이니까 책임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특별취재팀 백문일 차장, 문소영 차장, 전경하 이영표 이두걸 박건형 기자(이상 경제부), 안미현 차장, 김태균 주현진 김효섭 강주리 기자(이상 산업부), 강국진 류지영 기자(이상 사회부)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1) 비사(秘史)와 그 이후

    다음달 21일이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10년이다. 지금까지도 외환위기의 원인과 IMF와의 협상과정, 처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책임 공방에서 국제 음모론까지 무성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한국호’에 기회로 작용한 건 분명하다. 구조조정은 기업의 투명성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였다.‘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진행됐지만 우리 경제가 글로벌화하는 계기도 됐다. 과거의 실패에서 미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외환위기 관계자들의 증언과 이후의 변화상, 앞으로의 과제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청와대 주도로 1997년 1월 출범한 금융개혁위원회가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로 가고 있다.”는 내용의 ‘특별보고서’를 작성하고도 사태 악화를 우려해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위기 특감에 나섰던 당시 감사원 관계자들은 “특감을 통해 정책결정의 잘잘못을 가리는 건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고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을 직무유기로 수사의뢰한 것도 단지 그들이 책임질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기관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97년 8월 당시 기아자동차 주거래 은행이었던 제일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이 검토됐으며 10월 말 외환거래가 3일 중단된 사태는 강경식 부총리의 시장개입 중단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도 보고 됐을 것” 28일 외환위기 당시 옛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 청와대, 감사원, 금융개혁위원회 등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개위는 97년 7월을 전후해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분석,“한국이 금융위기로 가고 있다.”는 특별보고서를 작성했다. 금개위는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위원장을 맡았지만 경제수석에게 보고하는 구조였다. 한 관계자는 “이 보고서는 대외비로 분류돼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다.”면서 “가능성이 아니라 위기가 시작됐다는 내용으로 청와대에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재경원은 97년 1월 한보그룹이 부도 나자 시장안정 차원에서 20조원 규모의 부실정리기금 조성을 논의했으나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또한 7월부터 기아차 사태가 불거지자 청와대와 함께 제일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을 검토했다. 8월14일 관계자들이 모여 합병안까지 마련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해 추진되지 못했다. 대외신인도 하락을 가중시킨 것으로 지적되는 10월28∼30일 외환시장 마비사태는 강경식 부총리가 시장개입 중단을 지시한 결과라는 증언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쓰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직후 강 부총리가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 부총리는 법정에서 이를 전면 부인했다. ●감사원의 ‘정책특감´도 한계 한편 재경원 등을 특감했던 감사원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주범을 찾아내라는 여론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웠다.”면서 “횡령 등과 달리 의사결정 구조나 시스템의 문제는 지적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위관리들은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 적극 해명했으나 실무진은 단편적으로 위험을 느껴 정책에 손댈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특감 관계자들은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은 시스템 문제를 두 사람한테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당시 경제관료들 지금은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당시 경제관료들 지금은

    10년 전 외환위기에 맞섰던 경제관료들 가운데 일부는 ‘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불명예 퇴진했으나 상당수는 공기업과 재계·관계·정계 등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Mr. 펀더멘털’로 불렸던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2000년부터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거쳐 지금은 그룹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다. 앞서 2002년부터는 세계적인 청소년교육전문비영리기관 ‘JA코리아’의 이사장직도 수행 중이다.1991년 자신이 만든 민간연구소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의 이사장도 17년째 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에도 불구, 취임 첫날 ‘IMF에 안 간다.’는 발언을 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성체줄기세포 신약개발 전문기업인 알앤엘바이오의 회장으로 있다.‘환란 소방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그는 정치권에 입문,1998년 경기도 지사에 당선됐다. 강 부총리와 함께 경질됐던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김인호경제연구소’의 대표로 있다. 지난 7월까지는 중소기업연구원장직을 수행했다. 97년 IMF 협상과 98년 1월 뉴욕 외채협상을 지휘했던 정덕구 재경원 차관보는 산업자원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동북아연구재단(NEAR) 이사장으로 있다. 베이징인민대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기환 당시 대외경제협력 특사는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이자 골드만삭스 국제고문직을 맡고 있다. 원봉희 재경원 금융총괄심의관은 법무법인 김&장에서 국제변호사로, 김우석 국제금융국장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사장, 김규복 금융정책과장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각각 있다. 이명박 캠프에서 ‘경제브레인’ 역할을 하는 인사도 적지 않다. 강만수 재경원 차관은 한나라당 경선 시절부터 이 후보의 경제공약을 책임졌다. 선거대책위원회 일류국가비전위 정책조정실장을 맡고 있으며 이 후보의 서울시장 시절에는 시정개발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윤진식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도 이 후보 캠프에 둥지를 틀었다. 이 후보와는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이종구 재경원 은행과장은 이 후보의 정책특보로 있다. 김진표 은행총괄심의관은 정치에 입문, 교육부총리 등을 지내고 지금은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의장으로 있다. 고위 경제관료나 공기업 임원으로 순항한 경우도 많다.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다. 김석동 외화자금과장은 현재 재경부 1차관에, 임영록 자금시장과장은 재경부 2차관을 맡고 있다. 유재한 국민저축과장은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거쳐 주택금융공사 사장으로 옮겼다. 허용석 재경부 차관보와 권태균 경제자유구역 단장은 당시 국제기구팀장과 외채대책팀을 이끌었다. 민간으로 간 사례도 많다. 변양호 재경원 정책조정과장은 2005년 토종자본인 ‘보고펀드’를 설립, 대표를 맡고 있다. 진영욱 국제금융과장은 한화증권 사장을 거쳐 한화화재 부회장으로 있다. 이종갑 자금시장과장은 삼화왕관 사장, 곽상룡 외화자금과 주무서기관은 삼성생명 전무로 변신했다. 외환위기를 경고했던 최공필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정원에 몸담고 있다. 특별취재팀
  • 격동의 시대-신세계에서의 모험/그린스펀 회고록

    “나는 밴드의 지식인으로 통했다. 물론 다른 음악가들과 잘 지내긴 했지만(나는 그들의 세금 보고를 처리해 주었다)내 생활양식은 그들과 달랐다. 나는 20분간의 휴식 시간을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분야는 사업과 금융 분야였다.…J P 모건에 관련된,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든 책을 읽었다.…월스트리트는 흥미진진한 장소였다. 오래지 않아 나는 결정했다. 다음 목표는 바로 이곳이라고 말이다.” 지난 18년간 백악관의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를 굳건히 지킨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당시 동료 연주자들은 자신들이 담배나 마리화나를 피며 쉬는 동안 구석에 앉아 책에 빠져 들었던 이 청년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인물이 되리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그린스펀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신세계에서의 모험(현대경제연구원 옮김, 북@북스 펴냄)’이 국내에 출간됐다. 지난 9월 미국에서 출간하자마자 온·오프라인 서점가를 점령한 화제작이다.“이라크 전쟁은 석유 때문이다.”“부시 정권은 ‘긴축 재정을 통한 작은 정부’라는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등 부시 꼬집기 발언으로 파문이 일기도 했다. 책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어린 시절 야구와 모스 부호에 빠져 있던 그린스펀이 연주자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 어떻게 성공적인 금융인으로 변신했는지 개인적인 여정이 먼저 펼쳐진다. 후반부에선 1987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FRB 의장으로 임명된 후 지난해 1월 퇴임하기까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하면서 겪은 증시 폭락, 아시아 고도 성장기 및 외환 위기,9·11테러 등 격동기의 세계 경제의 흐름을 풀어 놓는다. 마지막 장에는 2030년 세계 경제에 대한 예측이 담겼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한 언급이다. 그린스펀은 외환위기가 한국정부의 ‘돈놀이’ 때문에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정부가 외환보유고의 대부분을 민간은행에 빌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놨다. 이로 인해 악성 대출이 증가했고, 이는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는 것. 그린스펀은 태국, 말레이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 일본 은행의 한 간부가 “다음 대상은 한국”이라며 “일본의 은행들은 한국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은 지표상으론 급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은 550억달러라는,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금융구제책을 마련했다. 나쁜 선례로 남을 위험은 있었지만 한국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가 채무불이행에 빠지면 국제시장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에 그대로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린스펀은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 등 ‘아시아의 네 호랑이’가 외환보유고 부족을 적극적으로 개선했고 고정환율제를 폐지했기 때문에 앞으로 ‘제2의 IMF사태’를 겪을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한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내린 평가도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닉슨은 “똑똑하나 의심과 편견이 많은 인종차별주의자”이며, 포드는 “능력은 있으나 추진력이 부족”한 인물이다. 레이건은 “결단력에 있어서는 최고”였으며, 전 대통령인 H W 부시의 아킬레스건은 경제 문제로 그린스펀 자신과의 관계는 끔찍했다는 것. 그린스펀과의 악연은 부시 부자에겐 부전자전이라 할 만하다. 가장 죽이 잘 맞는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다름 아닌 빌 클린턴이다. 그린스펀은 클린턴을 “경제 커플”이라고 부르며 그의 경제정책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2만5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한국의 대표기업] (2) 현대자동차

    [한국의 대표기업] (2) 현대자동차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매출액은 27조 3000억원으로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2위였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3.2%다. 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였다. 하지만 이것은 완성차 기준이고, 전·후방 산업 연관효과를 합하면 비중은 더욱 커진다. 직간접적으로 국내 제조업 종사자의 8.9%인 25만명의 고용을 책임졌고 그룹의 양대축인 기아차와 함께 협력업체로부터 41조원어치의 부품·물품을 구매했다. 한국 기업사에서 ‘현대’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왕회장’(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정점으로 전개된 드라마틱한 성장과 위기와 부활의 과정이 걸어온 길 갈피마다 조조의 지략, 관우의 뚝심과 함께 녹아 있다.‘현대 신화’의 상징 현대자동차는 앞으로도 계속 성공의 드라마를 그려갈 수 있을까. 현대차는 오는 12월29일 출범 40주년을 맞는다. 자동차는 왕회장의 꿈이었다.1940년 25세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업체를 차렸던 왕회장은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67년 평생의 숙원이었던 자동차 제조회사를 세운다. 고속도로와 댐 건설, 중동특수 등 현대건설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력이 바탕이었다. 경영의 기초를 다진 사람은 왕회장의 동생 고 정세영(2005년 별세) 명예회장이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형의 권유로 현대차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처음에는 미국 포드자동차의 기술로 ‘코티나’를 조립생산했다. 이를 탈피해 ‘기술독립’에 시동을 건 것은 포드와의 제휴가 틀어진 72년부터였다.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고유모델은 불가능합니다. 코티나의 도면조차 제대로 베껴내지 못하는 실력으로 어떻게 고유모델을 설계해서 만들겠다고 그러십니까.’ 당시 기술책임자의 솔직한 말이었다.”(정세영 명예회장 회고록) 갖은 어려움을 헤치고 75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포니’가 세상에 나왔고 이듬해 양산이 시작됐다. 이 때부터 현대차는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가며 도약의 기반을 다졌다.86년에는 ‘포니 엑셀’이 자동차산업의 본고장 미국에 수출돼 기록적인 판매기록을 세웠다. 99년 기아차 인수와 함께 출범한 현 ‘정몽구 체제’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매김하는 전기가 됐다.69년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정몽구 회장은 이듬해 현대차와 인연을 맺었다. 현대차 부품과장, 자재과장 등을 거쳐 74년 설립된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정 회장이 현대차를 맡게 된 데는 왕회장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왕회장은 모든 면에서 자기를 닮은 정 회장을 향후 현대차를 발전시킬 적임자로 판단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부친의 믿음대로 강한 추진력과 과감한 공격경영을 바탕으로 위기 때마다 정면돌파하며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세계 자동차 산업 사상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일궈냈다. 특히 2000년 ‘6시그마’ 혁신 선포,2002년 품질총괄본부·2003년 해외품질 개선조직 신설 등 취임 이후 역점을 둔 ‘품질경영’이 큰 효과를 냈다. 그 덕에 각종 품질평가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으며 ‘싸구려’의 이미지를 떨쳐버렸다. 지난해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의 신차품질평가에서 3위를 했고 올 3월에는 내구품질에서도 전체 36개사 중 7위(미국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 리포트’)를 차지했다.2000년 24만 3000대에 불과했던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 45만 5000대로 90% 가까이 늘었다. 내년은 어느 해보다도 현대차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해다. 연초에 신개념 럭셔리 세단 BH(프로젝트명)가 출시된다. 최고급 브랜드로 도약을 겨냥한 BH의 성공여부는 현대차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한국이 벤츠·BMW급 프리미엄 차량 보유국이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현대차는 갈수록 높아지는 해외판매 비중에 맞춰 미국·중국·인도·터키 공장에 이어 체코공장을 짓는 등 글로벌 생산기지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96만대 수준이었던 해외 생산이 2009년부터 190만대로 늘어난다. 러시아·중남미 등으로도 생산기지를 확대할 계획이다. 하이브리드·수소 등 미래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도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글로벌 잣대 ‘OK’ 내게 적용 ‘NO’

    외환위기를 전후로 샐러리맨들의 의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글로벌 기업문화에 대한 개방이다. 하지만 이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는 것에는 여전히 거부반응이 강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 안정성이 줄어든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10명 중 6명은 지금의 직장에서 정년까지 다니고 싶다고 밝힌 것이 그 한 예다. 이같은 결과는 현대경제연구원이 외환위기를 전후로 사회에 진입한 3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남녀 직장인 500명을 설문조사한 데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조사를 토대로 24일 ‘외환위기 10년, 직장인 글로벌 의식과 과제’ 보고서를 냈다.●공무원 65% “고용 상태 불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의 46%는 외환위기 이후 고용 상태가 불안정해졌다고 응답했다. 한때 ‘철밥통’으로 불렸던 공무원들의 불안감(65%)이 더 커 눈길을 끈다. 이 때문인지 직장인 10명 중 7명꼴(74.4%)로 “앞으로 한번 이상 직장을 옮길 것 같다.”고 응답했다. 평균 예상 이직 횟수는 1.48회였다. 그러면서도 “현 직장에서 정년을 맞고 싶다.”는 응답은 62%나 됐다.‘현실’과 ‘희망’의 괴리를 직장인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연공서열보다 성과주의” 61% 글로벌 기업문화에도 비교적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연공서열주의가 타당하다는 답변(24%)보다는 성과주의를 편드는 응답(61.4%)이 훨씬 많았다.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이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 영입에도 60% 이상이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특징인 ‘CEO 및 임원에 대한 파격 보수’에는 절반이 부정적이었다.●“평생근로기간 확대 정책 필요” 보고서를 쓴 이주량 연구위원은 “외환위기를 통해 글로벌 경영기법에 대한 직장인들의 의식이 많이 개방됐지만 자신과 이해관계가 직접 얽히거나 고용 문제로 옮겨오면 여전히 보수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2년 일찍 취업하고 5년 늦게 퇴직하는 ‘2+5 제도’ 등과 같은 평생근로기간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촉구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하루 평균 342쌍 결별 이혼 보험 있었더라면?

    유명연예인들의 이혼이 잇따르고 있다. 야박하지만 대중의 다음 관심사는 위자료다. 증가하는 이혼율을 고려하면, 위자료를 대신 주는 이혼보험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해외에는 이혼보험이 있다. 스웨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보험료는 결혼 연수와 수입에 따라 다르다.‘이혼 위기의 해’에는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혼 위기의 해란 통계에 의해 이혼확률이 높아지는 해다. 스웨덴의 이혼확률은 결혼 후 3·7·12·17년이 가장 높다고 한다. 국내 상품 중 가장 유사한 상품은 1999년부터 2년 동안만 팔린 한 손보사 ‘결혼보험’의 ‘이혼위로금’ 특약이다. 단기(1년)상품으로 결혼식 전후에 불의의 사고가 날 때를 보상하며 100일 안에 이혼할 경우 위로금을 주는 특약을 선택할 수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지 않는 측면이 강해 몇 십건 판매에 그쳤다.”고 전했다.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이혼율을 고려하면 ‘진정한’ 이혼보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한해 동안 12만 5032쌍, 하루 평균 342쌍이 이혼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증권사 장외 파생상품 인가 심사 서류만 459개 논란

    증권사 장외 파생상품 인가 심사 서류만 459개 논란

    증권사가 장외파생금융상품 겸영인가를 받는 데 측정·평가하는 사항이 무려 500개에 육박, 증권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장외파생상품에는 주식워런트증권(ELW), 주식연계증권(ELS) 등이 있는데 증권사들에게는 ‘가장 따기 어려운 자격증’이다. 준비에만 1년 이상 걸린다. 이를 놓고 세계적 수준에서 과도하다는 지적과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에는 필요한 조치라는 당국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당국은 장외파생상품의 경우 증권사의 손실을 막기 위해 리스크(위험)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하다” vs “필요하다” 2003년 시작된 장외파생업무 자격증이 있는 증권사는 9월말 현재 18개다.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인가 신청을 낸 증권사는 국내사가 4개, 외국계 증권사가 6개다. 외국계의 신청이 늘면서 과다규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리스크 관리 및 내부통제 등에 관한 평가준비자료’ 측정 항목은 470개 수준이다. 요청하는 서류 항목은 459개다. 금감원 관계자는 “관련 규정 하나를 제시함에 따라 수십 개 항목을 충족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숫자를 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신청자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모 증권사 임원은 “요청하는 것의 3분의1 정도면 충분하다.”면서 “시장 상황에 뒤떨어진 요소도 많다.”고 반박한다. 요청 내용은 크게 리스크 관리를 위한 조직·인력, 내부통제 절차, 전산시스템 등 세가지다. 인가를 따기 위해 증권사들은 10명 이상의 작업반을 구성,1년에 걸쳐 심사를 준비한다. 마지막 평가과정에서 담당 임·직원들은 구술면접과 필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이 과정을 “고통스러운 군대에 다녀온 느낌”이라고 했다. 시험은 인가 획득 이후에도 계속된다. 증권업계 임원은 “전문인 확보는 해당 회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금감원이 시험 결과를 평가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한편에서는 “엉뚱한 사람 갔다 놓고 갖췄다고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라고 지적한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인가 획득 과정을 통해 회사가 환골탈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임원은 “리스크에 무감하던 전체 조직이 준비과정을 통해 리스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리스크 관련 조직이 회사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담당 부서만이 아닌 회사 전체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것”이라는 금감원의 설명과도 일정 부분 통한다. ●세계적 금융 그룹들은 실패 파생금융 분야 전문지인 아시아리스크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적 금융그룹인 씨티와 모건스탠리는 인가 획득에 실패했다. 당시 동부·서울증권은 인가를 획득했다. 현재 인가가 있는 외국계 증권사는 법인으로는 매쿼리, 지점으로는 CS(크레디트스위스)·메릴린치·리먼브러더스 등이다. 실제 거래를 위해서는 현지 법인이어야 하기 때문에 매쿼리만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그룹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서울에 별도 조직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내 증권사 임원은 “국내에서 영업하려면 조직을 갖추라는 압박이고, 이를 통해 고용창출 기능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장외파생상품 인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증권사들은 이공계 출신 채용을 늘리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실행에 맞춰 정부는 장외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 취급기관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금융사들도 장외파생상품시장에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문제는 내년 하반기부터 모든 금융투자회사들은 현재 자격증을 갱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증권사들은 “현재의 인가 과정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보험에서 성공한 첫 성악가 되는게 꿈”

    “보험에서 성공한 첫 성악가 되는게 꿈”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영산아트홀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렸다. 대한생명 정성락(38) 설계사가 1년 동안 함께한 고객 400명을 초청한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정씨가 유럽에서 활동하던 성악가라는 것을 안 한 고객이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서 만들어진 ‘첫 한국무대’였다. 절반은 대한생명이 지원했다. 장로회 신학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정씨는 1995년 결혼과 함께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외환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틈틈이 여행가이드와 통역 등으로 돈을 벌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어려움을 견뎌내고 뉴욕 브루클린 콘서바토리(음악학교)와 필라델피아 장로교회 음악감독, 오스트리아 그라츠 주립오페라단 상임단원 등으로 활동했다. 그가 귀국을 결심한 이유는 부모의 건강악화였다. 국내에서 서울 마포의 한 교회 성가대 지휘자와 교회음악원 교수로 음악활동을 하던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쳐 지난해 9월 대한생명 남성전문설계사에 지원했다. 그의 고객은 독일 유학시절 여행가이드로 만났던 출장객, 여행객들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계속 연락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그는 “세계적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한때 생계를 위해 보험설계사를 했다.”면서 “보험업에서 성공한 최초의 성악가 출신 설계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鄭 “중소기업부 장관 둬야”

    鄭 “중소기업부 장관 둬야”

    문제는 ‘금산분리’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23일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경우는 7개뿐”이라며 금산분리 고수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립전선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정 후보는 이날 오전 중소기업중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를 잇따라 방문했다. 후보 선출 이후 첫 경제계 방문이다. 본격적인 ‘정책 투어’ 시작인 셈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 후보와 차별화된 경제 정책을 내놓기 위해 노력했다. 정 후보는 대한상의를 방문한 자리에서 “야당과 야당후보가 은산(은행-산업자본)분리 해체를 주장하는데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건 정글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행한 김진표 통합신당 정책위의장도 거들었다. 그는 “일전에 부시 대통령과 만났을 때 ‘일본과 독일 경제의 문제는 산업자본의 금융시장 지배’라고 지적하더라.”며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의견차이가 존재했다. 재계 지도자들은 금산분리 완화를 건의했다. 대한상의 손경식 회장은 “융통성이 필요하다.”며 “IMF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여러 불씨는 금융감독체계가 정비되면서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에 정 후보는 경제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그는 “정동영이 통합신당 후보가 된 것을 걱정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업계 대표 여러분을 존경한다. 마음 놓으셔도 된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은 자리에선 중소기업 육성책을 역설했다. 정 후보는 “차별없는 성장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재벌경제 이명박 대 중소기업경제 정동영 구도를 만들겠다는 계산으로 읽혔다. 그는 “대기업 하청구조에 신음하는 억울함이 없도록 불공정한 현실을 개선하고 개편해내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했다. 정 후보는 또 “다음 정부에서는 중소기업부 장관을 두어야 한다.”고 복안을 밝히기도 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은행 환전수수료 2000억 부당이득

    시중은행들이 외환을 사고 팔 때 적용하는 외국환 수수료율을 지난 7년간 담합, 최근 2년에만 20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외환 수수료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보다 2.5배나 올랐다. 신학용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22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받은 국내 은행 9개의 환전수입과 환율 비교표를 분석,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금융 빗장 풀린 베트남을 가다] (상) 국내은행 진출현황과 전망

    [금융 빗장 풀린 베트남을 가다] (상) 국내은행 진출현황과 전망

    최근 국내 은행들이 앞다투어 베트남으로 진출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들의 투자도 급증, 한국은 베트남 투자 1위국이 됐다. 금융기관들의 베트남 진출 현황과 전망, 증시 상황을 두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하노이·호찌민 문소영 특파원|‘금융 수출’ 깃발을 들고 해외 금융시장 개척에 나선 시중은행들이 베트남으로 몰려가고 있다. 우리·신한은행 등은 이미 진출해 있다. 국민·하나은행 등은 내년까지 영업허가권을 딴다는 계획이다. 이에 외환위기 직전과 같은 과당경쟁이라고 보는 시각과 아직 베트남 시장의 미래가 밝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이래서 레드오션” 베트남의 정치1번지인 하노이에서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이 지점 영업을 하고 있다. 경제도시인 호찌민에서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신한은행과 베트콤은행의 합작회사인 신한비나가 영업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미 인가를 받은 외환은행과 기업은행이 뛰어든다. 뒤늦게 베트남 진입을 노리는 국민·하나은행, 농협 등은 사무소를 내고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영국의 HSBC와 스탠다드 차타드도 한국인 대상 창구를 만들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영업하다 보니 기업자금을 중개하면서 시중은행의 수수료가 0.17%에서 최근 0.10%까지로 크게 축소됐다. 국내 시중은행들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들의 공격적인 영업에 한국의 은행들과 거래하던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거래처 변경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수출입은행 호찌민 지점이 리스회사에서 올 초부터 기업 여신을 겸업하게 된 것도 국내기업 중심의 영업을 하는 시중은행으로서는 부담이다. 외환은행 김규성 호찌민 사무소장은 “최근 베트남 정부가 금융간 칸막이를 허물기에 앞서 시범적으로 최초의 베트남 리스회사를 운영해본 수출입은행에 여신기능을 부여해 상황을 살펴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호찌민 한용성 지점장은 “아직은 베트남의 금융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만큼 한정된 ‘파이’를 가지고 진출한 은행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금융권 자체에서 자율적으로 시장 진출을 결정하기보다는 금융감독당국에서 관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래서 블루오션” 수출입은행 호찌민 사무소의 홍영표 사장은 “아직까지는 한국계 기업만을 대상으로 금융영업을 해도 이익이 나고 있다.”면서 “앞으로 현지인을 대상으로 여수신 영업을 하게 될 경우 시장은 넓고 할 일도 많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국민 9000만명 가운데 은행을 이용하는 비중은 전체의 6%이고, 이중 2%만이 예금통장을 가지고 있다. 또 30세 이하가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잠재력은 많다. 신한은행 호찌민 박인호 지점장은 “앞으로 신용카드 시장도 크게 발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8%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함에 따라 기업 환경이 투명해지고 공개적으로 변화는 것도 장점이다. 즉, 기업 대출 시장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추가 진출 가능할까 상반된 견해를 분석해 볼 때 현재 상황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시장의 여력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진출이 가속화될 경우 베트남 당국의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금융관계자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가 이미 한국계 시중은행들에 많은 인허가를 내 준 만큼 앞으로 진입 은행을 규제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영업권을 따낸 기업은행도 인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후발로 뛰어들려는 국민·하나은행의 경우는 현지 은행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이 아니면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symun@seoul.co.kr
  • [사설] 금·산 분리 완화 시기상조다

    참여정부의 핵심 재벌정책인 금·산 분리정책이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한나라당과 범여권이 뚜렷한 경계선을 긋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론스타의 사례를 들며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 해소 차원에서 금·산 분리정책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금융강국을 지향하려면 사전적 규제인 금·산 분리정책을 완화해 대기업도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가칭) 문국현 후보는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를 초래한다며 규제완화에 반대다. 이 후보가 성장 측면에서 금·산 분리정책에 접근한다면 정·문 후보는 부작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업의 투자를 발목 잡는 각종 규제는 더욱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우리경제의 당면과제로 대두한 성장잠재력 위축을 극복하려면 기업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만 일자리가 생기고 양극화의 덫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산 분리정책을 기업 투자의 애로 요인으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기업들이 지금 돈을 쌓아두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은행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돈벌이 될 만한 사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국감에서 지적했듯이 법으로 규제하든 규제하지 않든 산업자본의 금융 소유를 제한하는 것은 세계적인 대세다. 금·산 분리가 완화됐을 때 생기는 독과점 심화의 피해를 우려한 까닭이다. 우리의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 투명화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도 미흡하다는 게 지배구조 분석자료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재벌 총수의 독단적 의사결정과 전횡이 불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상황에서 금·산 분리완화는 시기상조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 대우인터내셔널 파푸아뉴기니발전소를 가다

    대우인터내셔널 파푸아뉴기니발전소를 가다

    |포트 모르즈비(파푸아뉴기니) 이건규특파원| 인구 580만명의 남태평양 섬나라 파푸아뉴기니. 이곳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기업인 대우인터내셔널 파푸아 발전소가 가동 9년째를 맞았다. 그 사이 현지 수도권 전력 사용량의 40% 이상을 담당하며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대우 파푸아 발전소는 1999년부터 하루 460㎿의 전력을 수도인 포트 모르즈비 등에 공급하고 있다. 아직도 공항·호텔 등 주요 시설에서 하루 몇차례씩 정전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푸아 발전소 덕분에 현지 전력사정이 예전보다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이상하 대우 파푸아 법인장은 21일 “2003년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지난해 매출액 2032만달러, 순이익 407만달러를 내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지역주민들에게도 신뢰도가 높아 이곳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호의를 보인다.”고 전했다. 파푸아 발전소 사업은 1995년 대우인터내셔널의 전신인 ㈜대우가 국제입찰로 낙찰받았다. 하지만 진행 초기에 외환위기가 발생해 자금난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식 명칭은 ‘한중 파워’로 ㈜대우가 771만 8000달러, 두산중공업(당시 한국중공업)이 803만 2000달러를 각각 투자했다. 이 법인장은 “현지인들이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한 점을 고려해 부지 확보를 정부에 맡기고, 송전선 공사로 인한 주변 부족과의 마찰을 일자리 제공으로 무마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원만한 관계를 최우선해 고려한 것이 성공 원인”이라고 말했다. 파푸아 발전소 계약기간은 2014년까지다. 이후 계약을 연장하거나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566만달러에 되사가게 돼 있다. 대우는 재계약이 안 되더라도 이곳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필리핀, 베트남, 아제르바이잔 등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발전소 프로젝트를 펼칠 계획이다. letsdream@seoul.co.kr
  • ‘금산분리 존폐’논쟁

    ‘금산분리 존폐’논쟁

    기업집단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 금산분리 원칙 존폐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19일 격화됐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관을 투영하는 바로미터로 금산분리가 부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자는 입장이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이를 완화해 대기업 그룹도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금산분리 완화를 시사한 참여정부 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금산분리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정 후보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후보가 어제 해외자본인 론스타가 건설업과 은행업을 동시에 영위한 적이 있다고 예를 들면서 금산분리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신당이 견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은 엄밀히 말해 은행과 산업을 분리하는 ‘은산분리’로써 차별화된 성장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중 자금이 경색되면 은산분리 해제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게 서민과 중소기업”이라면서 “10년 전 일부 재벌사들의 금융사와 종금사가 사금고화돼 금융위기를 부른 게 생생하다.”고 우려했다. ●“금산분리완화 정부·삼성 유착 의혹” 김진표 정책위의장은 “이 후보가 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세계금융을 선도하는 미국이 은행에 관하여 금산분리를 지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전날 이 후보의 주장이 100%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산분리 완화가 재벌 편들기라면, 오히려 금산분리를 고집하는 것은 외국자본 편들기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 뒤,“국내 산업이 은행을 인수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국내에서는 외국 금융기관 외에 살 데가 없다.”고 현실적인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정책위의장은 또 “외환위기의 발단은 재벌의 종금사 소유가 아니라 정부의 외환관리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우리는 제2금융권부터 완화하고 그 다음에 일반은행을 완화하는 등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후보 선대위 경제2분과위원장인 윤건영 의원도 “은행을 설립 또는 인수할 때 건전 운용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 감독기관이 적정성 테스트를 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금산분리는 결국 사후감독을 철저히 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측 심상정 선대위원장은 금산분리 문제와 관련,“정 후보가 모처럼 옳은 얘기를 했지만, 정 후보는 우선 참여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배경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야 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심 의원은 또 “금산분리 정책이 무너져 내린 데는 삼성과 참여정부 유착이 자리잡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은총재 “산업자본 은행경영 신중을” 한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서 금산 분리 정책과 관련,“산업자본이 은행 경영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좋다.”면서 “한은은 이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외국의 경우 법률로 산업자본의 은행 참여를 제한한 국가도 있고 법률로 제한하지 않는 국가도 있지만 법률로 규정해놓지 않은 국가에서도 산업자본이 은행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은행의 경영이 금융논리가 아닌 다른 힘에 의해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먼저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두걸 홍희경 구동회기자 douzirl@seoul.co.kr
  • “관료독주가 민주주의 위협한다”

    “관료독주가 민주주의 위협한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시장만능주의’로 무장한 관료들의 독주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19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주최로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세계화시대 관료독주와 민주주의의 위기’ 심포지엄에서 쏟아진 쓴소리다. ‘금융 허브 계획의 현황과 문제점’을 발표한 금융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은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켜야 할 관료들이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공공성을 파괴하는 기술관료적 정책 결정을 비밀리에 주도하고 있다.”면서 “비전문가인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을 간단히 무시하는 것이 민주화 20년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제 관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각종 경제학 개념과 수치와 통계로 무장하고 모든 중요한 사회적 사안들을 모두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로 바꿔버렸다.”면서 “이들이 국가 개조에 맞먹는 결과를 가져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금융허브 전략을 추진하면서 국민적 동의나 추인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정책위원장은 ‘투기자본-관료-로펌’의 삼각동맹을 가능하게 하는 회전문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경제관료는 론스타 등 투기자본의 감시자가 아니라 첨병 구실을 하는 공생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헌재 사단으로 대표되는 ‘회전문 인사’들은 공직 경험을 기업이나 로펌에 활용하거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회전문 현상을 이용한다.”면서 “그것 때문에 개혁과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기업에만 우호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들이 하는 일은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국가기관과 민간의 뚜쟁이 역할을 하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부패의 커넥션을 이루는 것”이라면서 “결국 입법·행정·사법 전 부분에 걸쳐 부패를 만연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의 10%에 이르는 43명이 지난해 민간근무 휴직제도를 이용해 직무와 연관된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거액 연봉을 받고 청탁과 뇌물을 받는 비리 행위로 징계를 받았다.”면서 “고위공무원단제도, 민간근무 휴직제도, 개방형 공무원 임용제도가 실제로는 회전문 인사를 제도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안으로 “로비스트법을 제정해 회전문 인사들을 규제하고, 민간근무 휴직제도를 개선하며,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고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내부고발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유류세 이제는 내려야 한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국제유가가 올해 안에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은 어제 장중 사상 처음으로 88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수입 원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도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국가 에너지정책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하고 새로운 고유가 대비전략을 수립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에너지 소비 효율성 제고 노력을 배가하고,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단기적으로는 기름값의 58%나 되는 유류세를 인하해 고유가로 인한 기업들과 자영업자, 서민들에게 닥칠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휘발유는 이제 생필품이나 다름없다. 기름값 상승에 따른 서민 가계의 부담증가와 유류제품을 필두로 한 물가 상승은 경제 전반에 걸쳐 비용을 증가시키고 소비를 위축시킨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생필품에 세금폭탄을 물리는 것은 가계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여러차례 정부에 유류세 인하를 권유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세금은 한번 내리면 다시 올리기 힘들다.”“유류세를 낮춰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는 나라는 없다.”며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러면서 고유가로 인해 참여정부가 지난 5년간 거둬들인 기름 관련 세금은 104조원에 이른다. 유류세 인하 시기를 늦출수록 국가경제에 미치는 충격만 더 커질 뿐이다. 기업과 소비자들의 고통을 국제유가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유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정확히 말하면 외환위기 이후 왜곡된 유류세 구조를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정유 업계도 홍보·판촉에만 열 올리지 말고 휘발유 가격 거품빼기에 적극 동참할 것을 당부한다.
  • 드림랜드 어떻게 바뀌나

    드림랜드 어떻게 바뀌나

    서울시가 강북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내놓은 또 하나의 카드인 ‘강북 체험테마 녹지공원’은 낙후된 강북지역의 발전을 성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한강 주변에 몰려 있는 대규모 녹지공원이 주변의 발전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또 10년 가까이 방치되다시피 한 드림랜드 놀이공원을 지역 주민들의 숙원대로 재개발한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서울시 2305억 들여 사유지 매입 90만㎡에 이르는 공원의 위치는 강북구 번동 산 28의6. 올림픽공원(145만여㎡)보다는 적지만 어린이대공원(56만여㎡)이나 보라매공원(42만여㎡)보다는 2배 안팎으로 더 큰 규모다. 이 땅은 본래 사유지가 81만여㎡나 되기 때문에 서울시가 2305억원을 특별회계(예산)로 처리하면서 전격 매입했다. 특히 공원 중심부인 드림랜드(33만여㎡)의 경우 소유주인 안동 김씨 동강공파 종친회가 최근 서울시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매각 의사를 전해 오면서, 수년째 난항을 겪던 재개발 문제가 순조롭게 풀린 것으로 알려졌다. 공원 부지는 반경 5㎞ 안에 강북·성북·도봉·노원·동대문·중랑 등 6개 자치구(138㎢)를 아우르고 있다. 지하철 1·4·6호선과 10∼15분 거리에 있다.2011년에는 동북부 경전철도 공원 중심부를 관통할 예정이다. 또 공원 주변에는 미아·길음·장위 뉴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결국 공원이 지역발전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공원 부지는 이미 1977년 공원부지로 개발이 제한된 곳이라 다른 용도의 개발은 쉽지 않았다. 1987년 부지 중심에 놀이공원인 ㈜드림랜드가 들어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관람객 감소, 수익성 악화, 투자부실 등으로 악순환을 겪으며 사실상 방치됐다. ●구체적 아이디어 시민공모 예정 서울시는 우선 장위동 방향쪽 공원에 조형게이트를 세우고, 반딧불숲, 야외공연장, 가족 피크닉장, 태양열 휴게소 등을 세울 예정이다. 미아삼거리 쪽에는 에코브리지(생태통로)와 산책로, 초화원 등을 만든다. 중심부와 북쪽에는 아트갤러리, 산업과학체험관, 조각공원, 인공호수, 수변 카페테리아, 웰빙 테라스, 테라스 가든 등이 들어선다. 하지만 이 조성안은 기본 구상으로 다음달 중 시민·대학생·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현상공모를 할 방침이다. 응모는 서울시 공원홈페이지(parks.seoul.go.kr)를 참조하면 된다. 이에 따라 내년에 기본·실시 설계를 하고 2009년 공사를 발주해 2010년 1단계 공사구역(66만여㎡)을 완공하고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부지 왼쪽을 개발하는 2단계(24만여㎡) 공사는 2013년에 끝난다. 강북구는 본래 이 지역의 재개발을 서울시에 건의하고 개발이 확정되면 대형종합병원, 쇼핑몰, 레포츠타운 등으로 개발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부지가 용도제한에 묶여 개발 방향이 다소 어긋난 셈이다. 김현풍 강북구청장은 “용도를 무엇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면서 “서울시가 버려지다시피 한 땅을 다시 거두어 주민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고 여유로운 삶을 제공하는 공원을 만든다니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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