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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일 TV 하이라이트]

    ●100년의 기업(KBS1 오전 9시) 한국 기업의 평균 수명은 24년. 우리에게 장수기업은 꿈일 뿐일까. 외환위기(IMF) 이후 지속된 경제 불황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경영 위기에 처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평균 수명은 24년밖에 안 된다. 100년이 넘은 해외 장수기업의 성공 비결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영상앨범 산(KBS2 오전 7시 40분) 히말라야에 에베레스트가 있다면, 캐나다엔 로키가 있다. 이처럼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산이 있고, 그 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산이 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국내외 명산을 찾아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느껴 본다. ●설특집 아이돌 육상·수영 선수권 대회(MBC 밤 8시 40분) 지난해 선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끌었던 ‘아이돌스타 육상선수권대회’가 설을 맞아 ‘아이돌 스타 육상+수영 선수권대회’로 확대 개편됐다. 간미연, 김동완, 나인뮤지스, 다비치, 달샤벳, 미스에이, 브라운아이드걸스, 비스트, 샤이니, 손호영, 시크릿 등 150명 아이돌 그룹이 총출동한다. ●일요시네마 숀 코너리의 대열차강도(EBS 오후 2시 40분) 영국군의 월급은 금으로 지급되고, 열차의 시간과 칸은 매번 바뀌기 때문에 강도들은 군침을 흘리면서도 훔칠 생각을 못 한다. 게다가 열쇠 4개는 비밀 장소에 보관되고, 경보장치도 너무 완벽해 단 한번의 강도사건도 없었다. 이에 애드워드 피어스는 열차 강도를 구상하고 계획에 착수한다. ●한국영화특선 사랑이 미워질 때(EBS 밤 11시) 한국 최고의 재벌 중 하나인 오 회장의 딸 영아(윤정희)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괴한들에게서 그녀를 구해 준 그는 재일교포 재벌 아들 윤태영(백영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평소 재산을 노리는 남자들에게 시달려온 영아는 건실한 태도를 보이는 태영에게 사랑을 느끼는데…. ●시네마 폭풍속으로(OBS 밤 11시 20분) 자니 유타(키누 리브스)는 반항적이고 항상 극단적인 삶을 향해 치닫는 인물. 그는 전도 유망한 풋볼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은퇴한 뒤 미국연방수사국(FBI) 수사관으로 변신한다. 은행 강도 전담반에 배속된 그는 캘리포니아 해안 도시를 무대로 연속 발생하는 은행털이단 사건을 수사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 ‘822만여명’ 1998년이후 전국 인구이동 최저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지난해 인구 이동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가장 적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이동자 수는 822만 6000명으로 2009년의 848만 7000명보다 3.1% 감소했으며 1998년(815만 6000명) 이후 12년 만에 가장 적었다. 이동자 수는 전국 읍·면·동에 접수된 전입신고서를 바탕으로 전입신고 가운데 읍·면·동 경계를 넘어 이동한 수치로 작성된다.아울러 지난해 전국 이동자 가운데 시·도 경계를 넘어 이동한 인구는 266만 2000명으로 전년보다 2.4% 줄었다. 이는 1980년에 260만 5000명을 기록한 이후 30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다. 시·군·구 간 이동 역시 245만 9000명으로 2009년보다 4.5% 감소했으며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5년 이후 가장 적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에스컬레이터형’ 식품물가… ‘무빙워크형’ 임금인상

    ‘에스컬레이터형’ 식품물가… ‘무빙워크형’ 임금인상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33)씨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부터 2년간 임금이 동결됐다. 올해는 경기가 풀리면서 큰 폭의 임금인상을 기대했지만 1.5%만 올랐다. 김씨는 “장을 보러 가면 채소류나 고기류 가격은 한정없이 오르고 주유소에 갈 때마다 오르는 휘발유 가격에 깜짝깜짝 놀라지만 수입은 그대로여서 걱정”이라면서 “지난해도 힘들기는 했지만 경기가 풀리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에 살았는데 올해도 열매는 없으니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평균 임금인상률은 4.8%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해 신선식품물가는 임금인상률의 4배를 넘는 21.3%가 올랐다. 장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물가 상승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인상률 4.8% vs 식품 물가 21%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00인 이상 기업 7816개 중 지난해 임금교섭을 타결한 5408개 기업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4.8%였다.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임금인상률 1.7%보다는 크게 올랐다. 하지만 2005~2008년의 임금인상률인 4.7~4.9%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2000년 7.6%였던 임금인상률은 2003년까지 6%대를 지키다가 2004년 5%대로 낮아졌고, 2009년을 제외하면 2006년부터 4%대에서 움직인다. 반면 물가 상승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게 되는 통계청의 신선식품 물가는 2008년 -5.8%에서 2009년 7.5%, 2010년 21.3%로 급격히 증가했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2.9%를 기록했지만, 지난달 3.5%를 기록한 후 올해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소비자물가가 4.7% 상승한 점을 고려해 보면 일부 회사의 임금인상률은 물가상승률 보다도 낮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경우 실제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임금상승률은 마이너스가 된다. 올해 이뤄질 임금협상에서는 인상 요인이 지난해에 비해 적은 편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6.1%였지만 올해는 5%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투기적 수요로 국제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원유 가격 역시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대외적 요인으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이다. 근로자들의 구매 수요가 늘면서 기업의 생산을 촉진시켜 물가가 오르지만 기업은 이윤을 많이 기록하면서 다시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 힘들다는 의미다. 방하남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실물 경제가 좋아지면서 물가는 바로 상승하기 시작하지만 임금이 오를 때까지는 일정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서민경제에 부담이 될수 있다.”고 분석했다. ●“임금인상까진 시간 걸려 서민 부담” 한편, 지난해 타결된 평균 임금인상률을 규모별로 보면 근로자수 300인 미만 기업 5.2%, 300~500인 기업 5.1%, 500~1000인 기업 4.4%, 1000~5000인 기업 4.7%, 5000인 이상 기업 4.6% 등이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제조업 의존도 30% 넘어섰다

    제조업 의존도 30% 넘어섰다

    지난해 국내 산업의 제조업 의존도가 사상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1987년 전체의 20%를 넘긴 뒤 23년 만에 30%를 돌파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우리나라가 생산한 전체 부가가치가 938조 4000억여원이고, 제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287조여원이라고 30일 밝혔다. 제조업이 전체 부가가치의 30.6%를 차지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연간 제조업 부가가치가 132조 8000억여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후 11년 만에 제조업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두배 이상 수준을 기록했다. 정영택 한은 국민계정실장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손꼽히는 전기전자·자동차·철강·조선 등 제조업이 위기에서 우리나라를 끌고 나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환위기나 2008년 말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에 대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면서 국내 산업의 제조업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활동별 전년 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면, 1998년 -7.3%를 기록했던 제조업 성장률이 1999년 23.0%로 급반전했다. 마찬가지로 2009년 -1.6%이던 제조업 성장률이 지난해 14.6%로 돌아섰다. 역으로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더디게 나타났다. 서비스업 부가가치는 지난해 539조여원을 기록했다.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운수 및 보관업·금융보험업·부동산 및 임대업·정보통신업·사업서비스·공공행정 및 국방·교육서비스업·보건 및 사회복지사업·문화 및 오락서비스업·기타 서비스업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를 모두 합한 수치다. 한은 관계자는 “1994년 서비스업 부가가치가 264조 5000억여원이었다.”면서 “서비스업이 두배 규모로 성장하는 데 16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쟁력 격차는 대외 교역 부문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상품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서비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의 5.6배에 달했다. 산업 전문가들은 제조업에 편중된 성장구조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의료·보건·정보통신·금융·보험 등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선을 뚫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지난해 이상기온과 구제역 등의 여파로 농·어업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2009년보다 4.9% 감소했다. 농·어업 부가가치는 2009년 29조 3000억여원이고, 지난해 27조 9000억여원을 기록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회생 기로 대한해운 앞날은

    회생 기로 대한해운 앞날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대한해운 이진방(63) 회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 4위 선사를 이끌면서 선주협회장을 연임한 이 회장은 해운업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내 ‘빅5’ 해운선사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유일한 오너 출신 2세대다. 대한해운 창립주인 고 이맹기 전 회장이 아버지다. 현재 이 회장의 회사 지분은 10%가량. 특수관계인을 포함하면 지분율은 21.4%까지 높아진다. 경영권 유지와 기업회생 여부는 법원 판단에 달렸다. ‘도덕적 해이’ 등이 없다면 한달 안에 판가름난다. 업계에선 특수분야인 해운업의 특성상 대표이사가 관리인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은 다른 해운업체들도 대주주들의 경영권을 대부분 보장받았다. 이 회장 스스로 선주협회장에서 물러나고 회사 경영권은 유지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힘을 얻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남다른 경력을 지녔다. 부친은 1964년 해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해 대한해운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1968년 공사 민영화 때 대한해운을 창업했다. 대한해운은 1976년 옛 포항제철과 철광석 등의 장기운송계약을 맺으며 성장했다. 이 회장은 1971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과 삼성코닝에서 일했다. 해운사 창업주의 아들이었지만 대기업 부장으로 수출 전선에서 조미료와 섬유, 선박 등을 팔았다. 꿈은 삼성물산 사장이었다. 1992년 44세로 대한해운 상무로 입사하면서 오너로 변신했다. 당시 이 회장은 측근들에게 “빨리 승진하고 빨리 퇴직하는 삼성에서의 생활이 차갑게 느껴졌다.”면서 “대한해운에선 가급적이면 오래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996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했지만 실제로 대한해운을 이끈 것은 부친이 작고한 이듬해인 2005년 5월. 당시 1조 1000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액을 2008년 3배인 3조 3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이때가 전성기였다. 이 회장에게 대한해운에서의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1994년 1억 달러를 차입해 선박을 사들였다가 1997년 외환위기로 원화 환율이 급등,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1년간 발을 뻗고 자지 못했다.”는 이 회장은 선박 4척과 분당신도시 땅을 팔아 위기를 넘겼다. 이후 선박을 보유하지 않고 빌리는 방식을 택했고, 빌린 선박의 90%가량을 다시 다른 선사에 대선해 줬다.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이 이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이번 법정관리 신청도 2007~2008년 해운 호황기 때 다수의 선박을 고가에 빌린 뒤 벌크선 시황이 악화되면서 촉발됐다. 지난해 벌크선 시황은 하향곡선을 그렸고 운임료가 10분의1 가까이 줄었다. 운임료가 줄면서 거액의 대선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26일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훼손된 주주 여러분의 권리를 보전할 수 있도록 분골쇄신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거취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난해 12월 실시한 866억원의 유상증자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생결정이 나더라도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라며 “현금을 확보하고도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설] 수도권에 기업 R&D센터 설립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수도권에 연구·개발(R&D)센터가 설립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30대그룹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이 수출을 늘리고 투자를 촉진하는 데는 고급 인력들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R&D센터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설립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R&D센터를 수도권에 두면 고급 (이공계)인력들을 데려오는 데 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재계는 수도권에 R&D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뜻을 밝혀 왔다. 이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에게 긍정적인 화답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수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7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 때 이공계 출신이 구조조정된 비율이 높았던 것도 한 요인이지만, 젊은이들이 지방근무를 꺼리는 게 주요인이라고 한다. 인문·사회·의학계를 졸업하면 수도권에서 일할 수 있는 비율이 높지만 이공계를 졸업하면 수도권 근무가 쉽지 않은 게 이공계 인기 하락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석·박사 등 고급 두뇌도 마찬가지다. R&D센터에 근무하는 소위 고급인력들도 연봉보다는 자녀교육과 근무여건을 더 따진다고 한다. 법으로 수도권에 R&D센터 설립을 규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수도권에는 지을 부지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여유부지는 국유지나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수도권에 이공계 고급 두뇌들이 연구활동을 할 수 있는 R&D센터가 들어서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 관련부처에서는 수도권에 R&D센터가 들어설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적극적, 전향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수도권에 R&D센터가 들어선다고 지방의 발전이 후퇴하는 것도 아니다. 첨단산업을 이끄는 고급 인력들이 R&D센터에서 좋은 연구를 하고 이에 따라 관련 공장들이 지방에 속속 들어서면 양쪽이 상생하는 것이다. 지방을 설득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파이를 키워야 나눠 먹을 게 많아진다. 세계는 한치의 양보가 없는 치열한 경제전쟁을 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뉘어 한가롭게 감정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 금융위 “우리금융 민영화 시간끌지 않겠다”

    지난 연말 중단됐던 우리금융의 민영화 작업이 조만간 재개될 전망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4일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문제와 관련, “시간을 끌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서울 영등포 노인케어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면서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또 “결자해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급해 조만간 우리금융 민영화에 재시동을 걸어 임기 내에 민영화를 매듭짓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금융이 출범할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담당국장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오는 28일 올해 첫 전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주목된다. 정부는 현재 경영권 매각과 지분 분산 매각을 민영화 추진의 양대 축으로 보고 있지만 여전히 경영권 매각에 무게를 둔 분위기다. 경영권 매각이란 정부가 보유한 우리금융 지분 56.97%에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파는 방식이다. 외형상 지난해 정부가 추진했던 방식과 동일하지만 변화된 환경을 반영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해졌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경영권 매각을 하더라도 지나간 책장을 다시 들춰 보는 식의 논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 재입찰 때에는 유효경쟁 요건이 좀 더 완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지난해 지분의 절반인 28.5% 이상을 사겠다는 후보자가 두 곳 이상 나와야 유효경쟁이 성립한다고 간주했지만 가장 강한 인수자로 분류됐던 우리금융 컨소시엄마저 이 요건이 지나치다며 입찰 참여를 포기할 정도였다. 정부 관계자도 “유효경쟁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검토 대상 중 하나”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민영화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먼저 우리금융의 몸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인 지분 분산 매각은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우리금융 지분이 상당히 많이 줄어든 상황이어서 소수지분 매각이 능사는 아니다.”면서 “지분을 낮추려고 ‘블록 세일’과 같은 지분 분산매각이 과연 필요한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의계약으로 입찰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우선순위에서는 상당히 밀려나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수의계약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경영권 매각에 다시 무게를 두는 것은 KB금융지주나 산은금융지주 등 지난해 우리금융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후보가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50대 “난 죽지 않았어”… 위기에 강했다

    50대 “난 죽지 않았어”… 위기에 강했다

    K기업에 다니던 이모(54)씨는 2009년 12월 말 회사로부터 명예 퇴직을 권고받았다. 나올 때는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는 것도 막막했다. 지난해 8월부터 기업체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해 합격 통보를 받았다. A중소기업에서 3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던 황모(58)씨는 2009년 5월 초 정년 퇴직을 했다. 퇴직 뒤 한달간 공백기 동안 재취업을 하고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나이 제한에 걸려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받아주는 곳조차 없었다. 지난해 1월 그는 천주교 재단에 지원서를 냈다. 경쟁률이 6대1이나 됐지만 합격통보를 받았다. 50대의 고용률이 올라가고 있다.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부머(1955~1965년생)들을 대상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기업도 채용에 있어 신참자보다는 경력자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50대(50~59세)의 지난해 고용률은 70.6%로 2008년 이후 3년 연속 70%대를 기록했다. 50대 고용률은 1989년 71.0%로 70%대로 올라선 뒤 1997년까지 70%대를 유지하다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66.4%로 떨어졌다. 이후 2007년까지 계속 60%대 후반의 고용률을 보여 왔다. 반면 취업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연령대인 20대(20~29세)의 고용률은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59.1%로 떨어진 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50%대에 머물고 있다. 정동원 취업포털 커리어 팀장은 “요즘은 퇴직 후에도 파트타임이나 임시직이라도 꾸준히 일하려는 의지가 높으며 지원자의 경력을 인정해 연령에 관계없이 채용하는 고용주들의 인식 개선이 고용률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50대 취업 증가는 (베이비부머에 따른)인구효과가 크지만 50대에 대한 기업의 수요도 적지 않다.”면서 “재취업 시장에서 일정 영역을 만들고 사회 경제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의 질은 낮은 편이다. 지난해(8월 기준) 50대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9.3%로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 33.3%보다 6% 포인트가 높다. 2008년(5.6% 포인트), 2009년(5.7% 포인트)보다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50세 이상 고령자의 약 24%가 근로시간이 일정한 임금근로자다. 50세 이전에 정규직 임금근로로 일하던 사람들의 절반이 정규직으로 남고 나머지는 자영업이나 기타 근로 상태로 전환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즉 50대 퇴직자의 절반만이 정규직으로 남는 것이다. 전경하·황비웅기자 lark3@seoul.co.kr
  • [데스크 시각] ‘신종 샌드위치’ 한국의 생존전략/오일만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신종 샌드위치’ 한국의 생존전략/오일만 경제부 차장

    2006년 4월 20일,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 하나가 중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백악관 환영식장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의 소매를 ‘기분 나쁘게’ 잡아당기는 모습이었다. 식전 행사가 끝난 것으로 착각한 후 주석이 단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부시 대통령의 오만한 표정과 후 주석의 일그러진 얼굴이 오버랩됐다. 미국은 이날 타이완(Republic of China)의 호칭을 사용했고, 중국 당국이 극도로 기피하는 파룬궁 시위마저 방치했다. 미국은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중국인들은 한동안 ‘굴욕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절치부심, 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들은 ‘세기의 담판’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중국의 위상이 불과 5년 만에 주요 2개국(G2)으로 우뚝 섰고, 미국도 최상의 예의를 갖춰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달도 차면 기울 듯, 전후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구가하던 미국도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2극, 다극체제로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는 대세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 형국이 된 한국의 자화상이다. 샌드위치라는 말은 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신흥 중국과 기술력에서 앞선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의 어려움을 빚댄 말이다. 하지만 2011년의 상황은 당시보다 더욱 엄중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변수로 G2(미·중)의 글로벌 경제패권 전쟁을 꼽는다.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환율과 금리, 재정 등 모든 경제전략을 놓고 불꽃 튀는 대결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11월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의 환율 갈등은 길고 긴 경제전쟁의 서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한반도 냉전체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진행형’이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을 중국은 대중 포위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분간 한·미·일 3국과 북·중·러 3국이 대립하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안보적 입지는 더욱 좁아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안보의 최대 파트너(미국)와 경제의 최대 협력자(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생존 전략을 펴야 하는가. 우선 한국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소규모 개방경제’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다. 온갖 외풍이 곧바로 우리 경제에 직격탄으로 날아오는 구조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우리의 무역 의존도는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82.4%로 G20 국가 중 가장 높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출규모(1168억 달러)는 이미 미국과 일본을 합쳐 놓은 액수보다 더 커졌다. 중국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길목을 선점해서 역량을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손자병법 36계 가운데 18계인 ‘금적금왕’(擒賊擒王)의 전략이다. 적을 제압하기 위해 가장 핵심부인 적장부터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다행히 중국은 산업재편 과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차 5개년 경제개발 규획(規劃)을 통해 신재생 에너지와 바이오, 신소재 등 6대 분야를 핵심 전략산업으로 결정했다. 중국기업들도 일본과 한국기업의 성장 경로를 따르지 않고 곧바로 첨단 산업에서 승부를 보는, ‘도약형 성장’을 택했다. 중국이 향후 10년 동안 집중투자에 나설 6대 미래 지식기반 산업을 우리가 빨리 선점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거대중국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지만 중국이 한국에서 기술과 지식을 사가도록 경제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고래등(중국)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고 일갈한다. 결국 용중(用中)의 국가전략은 ‘샌드위치 한국’이 피할 수 없는 외통수인 것이다. oilman@seoul.co.kr
  • [사설] 복지·재정 건전성 논쟁 소모적 정쟁보다 낫다

    무상 급식·의료·보육 등 민주당의 무상 시리즈로 촉발된 복지 논쟁이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는 시대정신’이라며 고삐를 더욱 죌 모양이다. 내년도 총선과 대선의 핵심 어젠다를 선점했다고 자신하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복지 포퓰리즘’ ‘표장사’라고 폄하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논쟁에 가세한 것처럼 비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대기업 그룹의 손자·손녀는 자기 돈 내고 (급식을) 해야 한다.”면서 “공짜로 해준다면 오히려 화를 낼 것”이라고 무상복지 공세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우리는 정치권의 이 같은 논쟁이 ‘BBK사건’이나 ‘색깔논쟁’, 지역감정 자극 등 과거의 소모적 정쟁보다는 낫다고 평가한다. 아직 선진국의 복지 논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을 염두에 둔 담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복지 논쟁이 증세나 재정 건전성과 같은 연계된 이슈로까지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민주당의 주장처럼 세금을 늘리거나 재정을 악화시키지 않고도 재원을 염출할 방안이 있는지, 추가 재정 투입규모가 적정한지 등을 따져보라는 얘기다. 올 1년 동안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면 여야 각당의 지향점과 정책 신뢰도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와 저출산·고령화라는 국가 지속성에 적신호를 울리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타개책으로 ‘기회의 균등’과 더불어 일정한 수준의 ‘결과의 균등’까지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역풍이 거센 상황에서 정치권도 국가 개입의 적정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우리는 복지논쟁이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결론 나선 곤란하다고 본다. 아직 우리의 국가 채무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다소 낮다고 하나 채무 증가속도는 우려할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의 부담을 재정에 떠넘긴다면 후세대의 밥그릇을 빼앗아 현세대가 자신들의 배를 채우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비록 소수당이기는 하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주장이 오히려 정직하다.
  • 부실 저축銀 대주주 경영권 박탈

    부실 저축은행 처리의 3대 핵심 과제가 관심을 모은다. 우선 오는 7월 시작하는 저축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이목이 집중된다. 부적격 대주주는 심할 경우 경영권까지 박탈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16일 “부실 저축은행의 대주주가 경영정상화 계획을 제출해 놓고는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부적격 대주주에게는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해 강도 높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저축은행 설립이나 인수 때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있지만 7월부터는 대형·계열 저축은행의 대주주는 매년, 나머지는 2년에 한번씩 심사를 받아야 한다.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6개월 이내에 적격성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시정명령을 받고 주주로서 의결권이 정지된다. 매물로 나온 삼화저축은행을 놓고 벌어질 금융지주사 인수전도 주목된다. 삼화저축은행은 영업 권역이 서울이라 지방 저축은행 매각 때보다 관심이 높다. 그럼에도 금융지주사들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로선 부실 정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조만간 매물이 많이 나와 저축은행 몸값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 까닭에서다. 정부가 부실을 어느 정도 책임져 줄지 조건도 따져봐야 한다. 셋째로 저축은행의 부실을 털기 위해 투입돼야 할 공공자금 규모다. 예보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 11월 말까지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과 예보기금 등 공공자금은 17조 2807억원으로 이 가운데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은 10조 8019억원이다. 정부는 올해 저축은행 부실 채권을 인수하려고 3조 5000억원의 구조조정기금을 마련해 놨다. 예보기금도 추가로 투입될 전망이다. 영업정지되는 저축은행이 추가로 발생하면 예보기금 투입액은 커진다. 공공자금 투입 누적액이 20조원이 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대출자 ‘사색’ 보험사 ‘숨통’

    대출자 ‘사색’ 보험사 ‘숨통’

    지난해 11월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액이 4년 만에 가장 많이 증가한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가계의 이자부담이 커졌다. 반면 낮은 시중금리로 역마진 상황을 감내하던 보험사는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은행권 예금금리도 오르고 있다. ●대출금리 0.1%P↑ 서민부담 5902억↑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예금취급 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590조 2000억원으로 한달 전보다 6조 6000억원 증가했다. 주택가격이 급등한 2006년 12월(7조원) 이후 3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이 대출 금리를 0.10%포인트만 올려도 서민들은 5902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350조 1000억원에서 353조 8000억원으로 3조 7000억원 증가했다. 은행권에서 2조 9000억원, 비은행권에서 8000억원 증가했다. 시중은행들은 1·13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06~0.18%포인트 인상했다. 대출받아 집을 산 서민들은 연 2123억~6368억원의 이자를 더 내야 한다. 은행들이 오는 17일 코픽스(COFIX) 연동 대출금리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기준금리를 몇 차례 더 올리거나 은행이 가산금리를 높이면 이자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준금리 인상으로 보험사들의 자산 운용에는 청신호가 켜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현금 유동성이 나쁜 시절 7.5~8.0%대 확정금리로 유치한 저축성 보험을 안고 있던 생명보험사들이 ‘금리 역마진’으로 인한 피해를 만회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확정금리 저축성 보험 판매가 2000년 이후 중단됐지만, 업계는 여전히 역마진 손실을 입고 있다.”면서 “기준금리가 상승세에 접어들면, 손실분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저축성보험 금리역마진 일부 해소 자동차보험의 대규모 적자로 인한 영업 손실을 자산 투자 수익으로 메워오던 손해보험사도 기준금리 인상 소식에 반색했다. 보험사는 채권·대출 등 금리 연동 상품을 통해 자산 운용을 하는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자산운용 수익률이 한층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 지난해 말 3.45%까지 떨어졌던 5년 국고물 금리는 현재 4.3% 수준까지 상승했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6개월 만에 연 4%대로 진입하는 등 은행권 예금금리도 올랐다. 신한·외환·하나은행이 이날 자로 정기예금 금리를 0.05~0.20%포인트 올렸다. 국민·우리은행은 다음 주초에 예금금리를 올릴 예정이다. 홍희경·오달란기자 saloo@seoul.co.kr
  • [유가의 진실은] “원화 절상 용인해야 가격 불투명성 개선을”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가격 억제’ 정책보다는 원화절상,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제 유가와 국내 기름값 간의 비정상적 가격 차이 등 불투명한 유통 구조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 유가가 오를 땐 국내 기름값이 빨리 오르는 반면 내릴 땐 천천히 내리는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면서 “석유제품에 대한 정제·유통마진이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대통령이 일일이 기름값, 밀가루값, 설탕값을 언급해 가격을 인하할 수 있겠느냐.”며 “국제 유가뿐 아니라 해외 원자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해 이제는 원화절상을 용인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외환위기 이전의 원화 환율이 900원대였고 현재 1120원 안팎으로 외환위기 때보다 20% 넘게 절하됐다.”면서 “경쟁국인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도 절상이 돼 원화를 100원 절상한다고 해도 수출경쟁력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제 유가와 환율 변동 등 대외적 요인에 따라 소매 공급 단가도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정유업계의 마진을 줄여도 인하폭은 20~30원에 그쳐 국민의 체감 효과는 미미하다.”고 말했다. 그는 “원화 절상이 더디게 이뤄져 원유의 수입 부담이 크고 유류세 비중도 높다.”고 지적했다. 김창섭(석유시장감시단 부단장) 경원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8년 고유가 때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내린 것처럼 정부가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론] 물가를 안정시키려면/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시론] 물가를 안정시키려면/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어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했다. 그동안의 저금리로 과잉유동성이 있는 데다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으로 자본 유입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주가와 부동산가격 버블이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가 회복되면서 수요가 늘어나 물가가 높아지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금리인상만으로 오르고 있는 물가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의 물가상승이 경기회복으로 총수요가 늘어나는 데 있지 않고 국제원유 가격이나 원자재 가격 그리고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원가 상승 압력 때문에 공공요금과 공산품 가격이 오르고, 한파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이렇게 수입 물가와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경우에는 금리를 높여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도 물가를 안정시키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금리인상의 부작용 또한 우려된다. 자본시장이 자유화되지 않았을 때는 금리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줄여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개방된 경우에는 금리를 높이는 경우 외국과의 금리차이가 벌어지면서 자본 유입으로 인해 유동성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과잉 유동성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행의 유동성 조절능력이 과거에 비해 약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금리인상은 경상수지를 악화시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금리인상은 외국자본의 유입을 촉진시켜 환율을 하락시키고 수입 물가를 안정시킨다. 그러나 수출이 감소하면서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고, 경상수지 악화로 외환위기가 초래된다. 과도한 금리인상은 가계부채의 부실로 금융위기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자본시장이 개방된 시기에 지나친 고금리·저환율 정책 사용은 그 부작용을 고려할 때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도 금리를 높이는 정책을 사용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높이거나 환율을 낮추는 거시경제정책도 중요하지만 물류체계와 유통구조를 개선시키는 미시적 정책 또한 중요하다. 우리 유통구조와 물류체계는 아직도 다단계로 되어 있고 또한 정보화되어 있지 않아 그 비용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비용은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따라서 유통구조와 물류체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정부조직을 만들어 물류·유통체계를 선진국형으로 개선해야 한다. 생산지와 소비지에 있어 큰 차이가 나는 농산물가격과 선진국보다 높은 공산품가격을 안정시키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시장구조를 경쟁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우리 공산품 가격과 공공요금은 현재 독과점 시장구조 하에서 결정되고 있다. 전기, 가스는 물론 통신과 방송광고까지도 모두 독점이거나 몇몇 대기업이 지배하는 과점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가격이 선진국보다 훨씬 비싸다. 이는 선진국보다 비싼 통신요금을 봐도 잘 알 수 있으며 일반 가정상비약도 미국과 같이 슈퍼마켓에서 팔게 하면 가격을 내릴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비록 물가안정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시장구조를 경쟁구조로 만들어 생활물가를 안정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토록 해야 한다. 공기업은 임금을 과도하게 올리고 경영을 방만하게 해 그 비용을 가격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또한 공기업의 손실분은 정부재정으로 보전받고 있다. 적극적인 공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원유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비용인상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도록 해서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 수입 물가가 크게 오르면 우리 경제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환율을 올릴 수 없어 경상수지가 악화되면서 국가신뢰도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올해와 내년은 원유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전망되고 우리 경제는 경상수지가 악화되면서 어려움에 처할 것이 예상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올해와 내년에 우리 경제가 위기를 겪지 않도록 효과적인 물가안정대책을 세워야 하며 동시에 금리와 환율 정책 운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부 전파 바이러스 해외 정상급 정치인들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부 전파 바이러스 해외 정상급 정치인들

    ‘삶의 정상에서 빈손으로 물러나다.’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전 재산의 사회환원을 선언했다. 사회환원의 의의와 중요성에 모두가 공감하지만, 실천은 전혀 다른 일이다. 기부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잡은 미국, 유럽 등의 사례를 통해 각국 정상 등 정치인들의 재산 사회환원에 대해 살펴봤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은 개인 재산 전체를 사회에 환원하는 ‘상징적’인 행동보다는 사회 활동을 통한 ‘사회 환원 전파 운동’에 치중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이나 연구소를 세우고 이를 통해 캠페인과 모금활동 등을 벌이는 방식이다. 대통령이라는 경험과 인맥을 활용한다. 물질적인 기부와 재능기부가 결합된 형태다. 인세와 강연료 등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여러 자선단체로 전달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2009년 노벨 평화상 상금 1000만 크로네(약 16억 8000만원)를 10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살아 있는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나눔 활동을 펴고 있는 사람은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이다. 카터는 퇴임 후인 1982년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카터 센터를 설립했다. 카터 센터는 비정부기구로 28년 동안 세계 평화와 열악한 보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다. 8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1984년부터 살 곳이 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탯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8년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로 집을 잃은 이들을 위해 대규모 집짓기 운동을 벌였고, 지난해에는 메콩강 유역에서 166채의 집을 지어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다. 빌 클린턴은 퇴임 직후인 2001년 클린턴재단을 설립해 빈곤과 질병 퇴치, 환경보호와 경제성장 등을 위해 각국 정부와 재계, 비정부기구,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에이즈 퇴치를 위해 치료제 가격 인하 운동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보건과 기후변화, 빈부격차 해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통령 재직 때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2005년에는 세계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클린턴 이니셔티브를 발족해 매년 9월 유엔 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국제적인 현안들에 대한 각국의 관심과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억만장자로 유명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가족은 문맹률을 줄이기 위한 ‘패밀리 리터러시 재단’을 비롯해 ‘아동교육지원재단’ ‘바버라 부시 재단’ ‘수월성교육재단’ 등 수많은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록펠러 가문 역시 미국 정계의 기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부통령을 지낸 넬슨 록펠러는 월급을 모두 기부했고, 윈스럽 폴 록펠러 아칸소 부지사 역시 자신의 연봉으로 학교를 세웠다. 캐나다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총리를 지냈던 윌리엄 매킨지 킹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정치인’으로 키워지는 유럽 정치인들은 재산의 사회환원보다는 사회적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뜻을 같이하는 기업과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재단 설립에도 적극적이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퇴임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했다. 버이너이 고르돈 헝가리 총리는 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자 매달 1포린트씩만 받고 있으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베스트셀러가 된 자서전 ‘여정’의 인세 모두를 상이군인 재활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반면 자녀에 대한 세습문화가 강한 아시아권에서는 기부문화가 넓게 정착되지 못했다. 최근 들어서야 일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기부와 사회환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치권은 재계와 유착관계를 통해 후원금을 받아 소속 의원들을 관리하는 계파 정치의 전통 탓에 기부에 인색하다. 일본 최대의 전기전자그룹 파나소닉을 창업한 고 마쓰시타 고노스케 전 회장이 지난 1979년 사재 70억엔을 들여 재단법인 마쓰시타정경숙을 설립해 정치지망생들을 배출하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사회환원의 예다. 워싱턴 김균미·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사설] 금융위 시장개입 新관치는 경계해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그제 취임사를 통해 “금융위원회의 존재감만으로 시장의 질서와 기강이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산업의 자율을 존중하겠지만 시장 자율은 질서와 규율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평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해왔다. 김 위원장은 소신대로 관치를 하겠다는 것을 취임사에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금융시장의 질서는 잡혀야 한다. 또 기강도 바로 서야 한다.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무책임이 용인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시장이 붕괴되는 우(愚)를 범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제 역할을 못하는 시장을 방치해서도 안 되고 방관해서도 안 된다. 교통신호등이 고장 난 곳을 팔짱 끼고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문제가 크게 불거지기 전에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질 각오도 해야 하지만 최근 관료들은 소위 ‘변양호 신드롬’ 탓에 문제가 될 만한 사안에는 미온적으로 대응해 왔다. 이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일이다. 김 위원장이 이 점도 질타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현대건설 매각이 매끄럽지 않고 우리금융지주사의 민영화가 순탄하지 않은 것을 관료들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많다. 금융위 앞에는 이러한 사안 말고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 증가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금융위는 현안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금융위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많지만 지나친 관치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직후에는 관치가 불가피한 측면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민간부문의 힘도 커졌다. 어느 선까지의 관치가 용인되는지에 대해서는 칼로 두부모를 자르듯 명확한 기준이 있을 수 없다. 금융위는 운용의 묘를 살려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금융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기 바란다.
  • 역대 인상 현황은

    역대 인상 현황은

    4일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공무원 성과급여 포털에 따르면 공무원 월급은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과 1999년 깎인 것을 제외하면 2009년과 2010년 동결이 가장 낮은 보수 인상률이다. 2008년 발생한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였다. 1998년과 1999년에는 기본급이 동결되면서 전체 보수가 1998년에는 4.1%, 1999년에는 0.9%씩 깎였다. 올해 봉급 인상폭 5.1%는 2003년 6.5%가 오른 뒤 최대 인상폭이다. 공무원 임금 인상률에 대한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80년 이후 가장 높은 임금 인상은 1980년에 있었다. 기본급은 10% 올랐지만 가족수당이 생기고 다른 수당이 올라 전체 보수 인상률은 22%를 기록했다. 1981년에는 자녀학비보조수당이 생기고 4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보비가 신설되면서 총 보수는 17%가 올랐다. 신군부 집권 이후 공무원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 점에서 보듯 공무원 임금 인상률은 들쑥날쑥하다. 인상 여부가 사회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권력층의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임금 인상도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공무원 임금 인상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 마련됐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수당을 기본급에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1980년대에 직무수당, 체력단련비 등이 생겨났고 1990년대에는 국제전문직위수당, 업무추진교통비 등이 만들어졌다. ☞2011년도 공무원 보수 인상 결정 자료 보러가기 수당이 총 49종에 이르고 복잡해지면서 공무원 자신도 자신의 월급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올해 가계지원비와 교통보조비가 기본급에 통합됐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서울신문 신년특집] 한국 패션 세계화의 원년 - 디자이너에게 묻다

    [서울신문 신년특집] 한국 패션 세계화의 원년 - 디자이너에게 묻다

    2010년은 ‘국민 디자이너’로 불리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패션 디자인을 시작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허덕이던 1997년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 전시회를 열었다. “파리에서의 첫 전시회 때 막 옷을 진열하고 있는데 북한 인공기가 걸려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라 전시 주최 사무실로 가서 태극기로 바꿔달라고 했지요. 당시만 해도 우리로서는 조심스러운 때였으니까요.” 파리 반응에 고무되어 독일에서 연 전시회에서는 한창 옷을 주문하다가 갑자기 접고 나가는 구매업자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디자이너로 착각했던 것이다. ●97년 사비 털어 해외전시… 이젠 정부지원 활발 그가 해외 진출을 할 때만 해도 디자이너가 사비를 털어 전시회와 패션쇼를 열었지만 최근에는 문화콘텐츠진흥원, 서울시청, 지식경제부 등에서 국가적 지원이 활발해졌다.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은 외국 디자이너와 같이 소통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다 연결되니까요. 패션은 국력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경제선진국에서 패션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갈 때지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세상을 뜬 뒤 이상봉에게 붙여진 ‘국민 디자이너’란 칭호는 과분하다는 것이 그의 심정이다. 앙드레 김이 청문회를 통해 패션 철학이 널리 알려졌다면 이상봉은 2006년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젊은이들에게도 친숙한 디자이너가 됐다. 방송을 통해 한글 서체 등 우리의 전통을 현대화해서 패션에 접목한 그의 노력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한글 디자인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무렵인 1986년 인터뷰를 보니 한국 패션을 서구 패션과 접목시키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더군요. 1985년에 발표한 패션 화보도 백의민족, 태극기 등을 주제로 한 사진이 많았습니다.” 30여년 전의 자료를 최근에 다시 들춰본 것은 곧 출간될 아트북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의 외국 활동 등을 정리한 책이다. ●한글 서체 등 전통 현대화… ‘패션한류’ 이끌어 2009년 초반에 이상봉은 미국 뉴욕 첼시에도 사무실을 열었다. 딸 이나나씨가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뉴욕 진출로 비욘세, 레이디 가가, 리한나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그의 옷을 입고 공식석상에 섰다. 특히 비욘세와 함께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멤버였던 가수 롤런드는 수만명이 운집한 유럽 콘서트와 미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 공연에 이상봉의 옷을 입고 올랐다. 언제든 필요하면 와서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할 정도로 롤런드는 이상봉 옷의 마니아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이상봉과 함께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김연아는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외국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아이스쇼에 이상봉의 옷을 입고 은반 위를 수놓았다. 이상봉이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해 대중에게 부탁하는 것은 적극적인 응원과 지지다. “요즘은 본인의 열정과 노력만 있다면 해외 진출에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나가는 게 중요하지요. 하지만 전통을 현대화하는 노력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응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오는 2월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열리는 ‘컨셉 코리아Ⅲ’에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참여한다. ‘컨셉 코리아’는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마련한 프로젝트다. 지난 9월에는 곽현주, 이주영, 이진윤이 뉴욕 패션위크에서 그룹 패션쇼를 열었다. 이번에는 한국 패션을 좀 더 깊이 있게 알리는 발표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패션 해외진출은 장기적인 도전 과제” “행사 준비를 위해 만난 문화부의 한 공무원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패션의 해외 진출은 끈기를 갖고 지속적으로 해야지 한두번 만에 승부가 나지 않는다. 몇 년의 계획을 갖고 장기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100% 공감합니다.” 공무원들의 패션에 대한 시각이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에 대해서도 이상봉은 열린 자세를 보였다. 그들이 패션 전문가가 아니므로 충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며, 설득과 대화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봉이 내다보는 대한민국 패션의 미래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으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습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기 “꿈을 펼치기에 한국은 좁 았죠” “외국 유명매장에 내 옷 걸리길…” “사실 뭐 아시아에서 한국을 빼고 중국 디자이너나 필리핀 디자이너, 하다못해 태국 디자이너까지 뜨는 이 마당에 더 이상 자존심 상해서 안 되겠어요.”(다큐멘터리 ‘구호’ 중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만든 정구호(48) 제일모직 전무가 2010년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헥사 바이 구호’의 첫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남긴 말이다. 한국 패션의 첫 해외 진출은 1966년 고(故) 앙드레 김이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연 패션쇼로 기억된다. 1956년 패션쇼라는 것 자체를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노라노(72)는 1979년 미국 뉴욕에 진출했다. 디자이너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51)는 1997년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패션 전시회를 열었다. 한국에서의 성공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야망이 컸다고 우씨는 밝혔다. 현재 우영미의 남성복이 판매되는 나라는 14개국에 이른다. 홍콩의 고급 백화점 하비 니콜스는 우영미의 매장과 옷을 전면에 내세워 백화점의 외관을 꾸밀 정도다. 2010년 1월에 발표된 유러피언 바이어스 리뷰(EUROPEAN BUYERS’ REVIEW)에서 우영미는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 순위 18위를 기록했다. 1위에 오른 디오르, 2위 돌체앤드가바나, 15위 구치, 17위 알렉산더 매퀸 등 세계적 디자이너와 비슷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21살에 패션 디자인을 시작해 현재 ‘제너럴 아이디어’란 브랜드를 이끄는 최범석(33)은 2009년 1월 뉴욕에서 열린 트레이드쇼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2월에는 당당히 뉴욕패션위크에 진출한다. 최씨는 “국내에서는 패션쇼를 많이 열었고, 이제는 모든 게 세계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아닌가. 나 역시 트렌드를 맞추고 싶었다. 힘들겠지만 계속 두드려 그 문을 열고 싶은 오기도 있었다.”라고 처음 해외 진출을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 세계 패션의 중심인 뉴욕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최씨가 미국 패션 잡지사를 돌며 인사를 다니는데 대부분 동성애자인 직원들은 그도 역시 동성애자라고 생각해 엄청난 추파를 던졌다고 한다. 심지어 한 잡지사에서는 최씨가 게이가 아니라고 밝히자 직원들이 다 나가버리기도 했단다. 2010년 2월 열린 ‘헥사 바이 구호’의 첫 뉴욕 패션쇼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쇼 당일에 40년 만의 폭설이 내렸고, 옷 몇 점은 희귀동물보호 관련 규정으로 세관에 묶여 결국 찾지 못했다. 쇼의 중심이었던 톱 모델 프레야 베하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갑자기 심각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무릅쓰고 그들이 뉴욕, 파리와 같은 세계적인 패션쇼 무대에 서는 것은 “외국의 유명한 매장에 나의 옷이 걸리기를 바란다.”는 최범석의 말처럼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일본인이 세계 패션 무대를 휩쓸었지만 현재 외국 유명 패션학교에는 한국 유학생의 수가 더 많다. 한국 학생들은 졸업 패션쇼에서 굳이 동양미와 한국적 전통을 가미하지 않은 작품으로도 1위에 오른다. ‘한류’가 있기 전에 한국인의 드라마에 대한 열광적인 사랑이 있었듯 디자이너들이 공통으로 당부하는 것은 우리 패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구조조정 기술자’ 김석동 컴백

    ‘구조조정 기술자’ 김석동 컴백

    ‘영원한 대책반장’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1차관이 2008년 2월 이후 3년 만에 금융위원장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신임 김 위원장은 그간 금융실명제(1993년), 부동산실명제(1995년), 외환위기(1997년), 신용카드 사태(2003년) 등 국가경제의 위기상황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도맡아 ‘대책반장’으로 통한다. 유력 정치인이 아닌 정통 경제관료임에도 불구하고 위기 때마다 보여 준 강력한 추진력과 카리스마 때문에 이례적으로 ‘SD’라는 이니셜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다. 이번 발탁도 가계대출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뇌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데다 현대건설 매각, 우리은행 민영화 등 다양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고려한 인사로 알려졌다. 행정고시(23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및 1차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쳤고 민간에서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를 역임했다. 성격이 화통하고 리더십을 갖춰 공무원 조직내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평소 금융시장 안정과 발전을 위한 관(官)의 역할론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수선하고 느슨해진 금융권의 분위기 다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는 2003년 카드대란 당시 관치 논란에 대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김 내정자의 또 다른 별칭은 ‘구조조정 기술자’다. 이명박 정권 집권 4년차를 맞아 느슨해질 수 있는 기업 구조조정과 매각 등에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매각 문제로 냉각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우리은행 매각을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은 시장과의 소통이 소원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 내정자가 평소 업무 스타일대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경우 관의 번번한 개입에 대한 우려가 금융시장에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들] CJ그룹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들] CJ그룹

    CJ그룹은 올해로 5년째 온라인 기부프로그램인 ‘CJ도너스캠프’(www.donorscamp.org)를 통해 저소득층 아동지원 사업을 해오고 있다. ‘가난한 어린이들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자.’는 이재현 회장의 철학을 바탕으로 CJ나눔재단 설립과 함께 문을 연 ‘CJ도너스캠프’는 그동안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 공부방에 필요한 시설과 교육 지원금을 후원해 왔다. CJ도너스캠프에는 지난 9월 말 현재 16만여명의 일반 기부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 2100여개 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를 후원하고 있다. CJ도너스캠프는 기부자가 1000원을 기부하면 CJ나눔재단이 1000원을 추가로 기부해 2배의 사랑을 키우는 매칭 그랜트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기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또 기부자가 온라인을 통해 직접 기부할 곳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투명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전·현직 CJ임직원과 가족들은 ‘CJ도너스클럽’이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소외 아동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펼친다. 공부방을 찾아 책꽂이를 만들어 주는가 하면 등산이나 가을운동회를 함께 해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도 힘쓰고 있다. 올해 처음 시작한 ‘청소년 꿈키움’ 프로그램은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행사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CJ의 각 사업장으로 초대된 청소년들은 CJ계열사의 임직원뿐 아니라 장래희망에 맞게 CJ오쇼핑의 쇼호스트나 CJ헬로비전의 아나운서, CJ푸드빌의 요리사들을 만나 직업에 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여기에 CJ그룹의 인사담당자 10여명이 청소년들에게 모의 면접을 실시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등에 대한 멘토링도 해준다.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약한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조언과 노하우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가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한다는 CJ사회공헌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프로그램이다. CJ그룹은 1999년 사회공헌팀을 처음 만들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직후 악화된 경제 사정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는 등 긴축 경영기조를 유지했던 데 반해 이재현 회장은 사회공헌팀을 신설해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다. 사회공헌은 기업의 책임이다.”라고 강조하며 나눔의 경영 철학을 실천해 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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