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인가 기회인가 IMF체제:중(눈높이 경제교실)
◎어떻게 되나/환시안정이 금리안정에 ‘최대변수’
IMF와 합의한 경제지표도 1개월 남짓 사이에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환율과 금리가 예상과 달리 높게 형성되는 등 당초 의도대로 움직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현상이란 게 워낙 복잡해 그 해법이 간단치 않음을보여준 것이다.
○물가 하락요인 불구 9%선 예상
▲물가=IMF와의 합의 이후 환율이 예상보다 높은 달러당 1천700원 내외에서 움직였다. 환율급등으로 원유나 액화천연가스(LNG) 설탕 밀 등 원자재의 도입단가가 올라 소비자물가가 매우 불안해졌다.
휘발유 값만해도 원유도입가가 높아진데다 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교통세마저 올려 l당 1천1백원까지오르게 됐다. 기름이나 가스 값 인상은 버스 등 교통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물론 경기위축에 따른 서비스 요금의 하락과 임금상승률 둔화라는 물가하락요인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쇄요인을 감안해도 물가는 9%까지 오를 것이란게 정부와 IMF의 생각이다.
○‘금융기관 급전’ 콜금리 30%로 뒤어
▲금리=재정과 통화긴축은 고금리를 낳는다.시중에 돈이 덜 풀리니 돈값인 금리가 뛸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이 급전으로 쓰는 콜(Call) 금리는연 30%선이다. 일반은행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도 20%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IMF요구에 따라 최고 연 25%였던 이자제한도 풀어졌다. 사채시장에서는 최고 50∼60%까지 간다고 한다. 통화긴축에다 연쇄부도 여파로 사채시장의 전주들이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한 탓이다. 은행들은 IMF요구에 따라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려고 대출을 꺼리고 대기업들도 구조조정의 한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금을 틀어쥐고 있어 시중에 돈은 더귀해졌다. 멕시코의 경우도 상업은행간 인수합병이 이뤄졌던 95년 상반기 단기금리가 연 18.5%에서 75%까지 급등했다. 이후 20% 대로 안정됐다. 따라서 금리는 외환사정이 풀려야 안정세를 찾을 전망이다.
○대기업·금융기관서 실업자 쏟아질듯
▲실업=지난해까지만해도 불명예스럽게 생각했던 ‘명예퇴직’.그러나 이제 명예퇴직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 됐다.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매달 수천명의 실업자가 쏟아진다.그동안은 중소기업에서 실업자가 많이발생했지만 이제는 대기업과 금융업종에서 많이 나오게 됐다.특히 2년간 시행이 유보됐던 정리해고제가 전업종에 도입되면 실업자가 급증,1백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와 IMF는 실업률은 당초 3.9%로 보았지만 이보다높은 4.7%에 달할 것같다. 정부가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현행보다 30일 더 늘려 150일로 하기로 한 것도 실업급증 대비책이다.
○서시경제지표 1달러=1,400원 기준
▲환율=당분간 고환율시대가 이어질 것같다. 그러나 정부의 위기극복노력과 금융기관 부실정리 등으로 대외 신인도가 높아지면 외채만기가 연장되고 신규차입이 이뤄져 외화가 유입될 전망이다. 채권·주식시장 개방도외화 유인책이다. 외화유입이 늘면 환율은 안정된다. 연구기관마다 다르지만 낮게는 달러당 1천100원선에서 1천300∼1천400원까지 보고있다. 정부와 IMF도 달러당 1천400원 내외로 보고 거시지표를 조정했다.
○경상흑자 수출증가로 30억달러선
▲경상수지=올 경상수지는 애초 43억달러 적자로 보았으나 저성장에 따른투자축소와 환율급등에 따른 수출촉진,수입감소 여파로 30억달러 내외의 흑자가 예상된다. 경상수지는 개선추세다. 지난해 12월에 월간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36억4천만달러의 흑자가 났다. 수출이 잘되고 해외여행이 줄어든데다 교포송금 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적자도 88억5천만달러로 전년보다 1백48억7천만달러가 개선됐다. 경상수지 개선만이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경쟁력 강화가 아닌,급격한 환율상승의 결과라는 점에선 씁쓰레하다.
○채권·주식시장 핫머니 유입 불안요인
▲자본시장=현재 외국인투자자가 상장기업의 주식을 55%까지만 살 수 있으나 연내 100%로 확대된다. 외국인들은 아직 대그룹 계열사들이 상호지급보증으로 얽혀있어 선뜻 주식매집에 나서지않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대기업들의 상호지급보증의 철폐시기를 앞당길 계획이어서 이 문제가 풀리면 외국기업들의 국내 기업사냥(M&A)이 본격화될 것같다. 이제 국내 채권·주식시장이외국의 투기성자금(핫머니)의 유출입으로 매우 불안해지게 됐다. 따라서 핫머니 유출입과 외국투자자들의 국내기업 인수·합병에 대한 대비책이 강구돼야 한다.
○자동차·반도체업체 구조조정 ‘회오리’
▲산업=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도 한층 발걸음이 빨라지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일본은 한국업체들의 확장적인 기업투자에 못마땅해 왔다. 특히 미 자동차업체들은 한국의 자동차시장 개방문제로 한차례 마찰을 빚은데다 대우자동차의 폴란드 FSO사 인수 등에서 참패해 ‘복수의 기회’를 노려왔던 터다. 때문에 자동차산업에 대한 여신제한 등을 촉구,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을 유도할 공산이 크다. 기아자동차 인수에 포드가 관심을 갖는 것도 하나의 사례다. 또 수입선다변화의 조기해제로 일본자동차의 국내 상륙이 본격화될 경우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구체적 요구 뭔가/예산 삭감·금융산업 구조조정 주문/자본시장 개방 통한 환시안정 촉구
IMF는 우리나라에도 예의 강도높은 긴축를 요구했다.나라살림을 좀 줄이고(예산삭감) 써야할 돈도 부실채권 정리 등 금융기관을 건실하게 하는 데 쓰도록 했다. 방만한 적자 경제구조를 건실한 흑자경제 구조로 만들라는 주문이다.
재정긴축은 성장률 둔화→세수감소로 이어진다. 환율급등에 따른 기업들의 환손실 증가와 기업들의 연쇄부도로 그렇지 않아도 법인세에 ‘구멍이 크게 생긴’ 상황이다. 그러나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더라도 사회간접자본이나 농어촌투자는 지속해야 해 세수확보차원에서 휘발유 등에 부과하는 교통세를 올리기로 IMF와 합의했다.
IMF는 또 기축기조 차원에서 한은이 시중에 돈을 덜 풀도록 했다. 이 여파로 시중에 돈이 귀해져 금융기관끼리 빌려쓰는 단기금리(하루짜리 콜금리)가 연 30%를 오르내린다. 통화량 축소에 따른 일시적인 금리상승은 감수해야 한다는 게 IMF입장이다. 금리가 올라야 금리 차를 겨냥한 외국의 투자가들의 뭉치돈(달러화)이 들어오고 그래야 환율이 안정된다는 논리다. 고금리정책을 씀으로써 빚에 의존하는 한계기업들을 퇴출시킨다는 측면도있다. 정부가 기업의 연쇄부도를 우려해 통화고삐를 너무 죄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질않았다. IMF는 돈을 풀면 일시적으로 자금사정이 나아질지 모르지만 기업구조조정이 늦어진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IMF는 특히 금융산업의 구조개편에 대해 주문이 많았다.“외환위기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가 금융기관의 부실이다.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지 않고는 외화차입이 더욱 어렵게 돼 외환위기를 구조적으로 치유하기 어렵다. 부실 종금사들을 하루 빨리 정리하고 은행의 부실채권을 줄여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한다” 등등…. 금융기관들로서는 고통이 따르는 일이지만 반대할 명분이없는 요구사항들이다.
IMF는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이 국내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기업의주식을 제한없이 살 수 있게 하고 채권에도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자본시장 개방 폭을 확대하도록 했다. 이는 IMF를 실제 움직이는 미국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결과지만 외국인투자자금(달러화)의 유입을 촉진시켜 하루빨리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의 하나다. 채권시장도 완전 개방했다. 주식투자 한도확대 시기를 좀 더 늦추고 채권시장 개방폭도 최소화하려고 했지만IMF요구가 워낙 거세 ‘안방’을 많이 내주어야 했다.
정부와 IMF는 밀고당기는 협의끝에 올 경제성장률을 지난해의 절반수준인 3%이내로,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 이내,경상수지 적자목표는 국내총생산(GDP)의 1% 이내인 43억달러 적자로 설정했다.지난해 12월 3일의 일이다.
◎까다로운 조건 왜 다나/국제통화·수지 불안 방어가 목적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달러를 주었다.그러나 아무런 조건없이 주지는 않았다.
은행이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무리한 투자를 하지 말고 부동산을 팔아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하라”고 요구하듯 IMF도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돈거래라는 차원에선 다르지 않은 것이다.
IMF는 전통적으로 자금지원 조건으로 강도높은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멕시코에 그랬고,태국에 대해서도 금융기관 폐쇄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이는 국제통화 안정과 국제수지 균형 추구라는 IMF의 설립목적에 부합되는 일일뿐더러 지원자금을 상환받기 위한 담보적장치로 볼 수있다. 때문에 IMF는 한꺼번에 돈을 다 주지않고 이같은 요구조건들의 이행상황,다시말해 해당국의 노력상태를 점검해가며 단계별로 자금을 나눠 지원한다.
우리나라에 지원되는 자금에는 IMF 자체자금 외에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세계은행(IBRD),G7국가들로부터 지원되는 ‘협조융자’가 있다. 이들 자금역시 IMF가 주도적으로 유도해낸 것이다. 따라서 자금지원 조건에는 미국 일본 등 G7 국가들의 요구도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