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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B하나은행 ‘환전지갑’ 서비스…10개월 만에 거래 100만건 돌파

    KEB하나은행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모바일 환전 서비스 ‘환전지갑’이 출시 10개월 만에 거래 건수가 100만건을 넘었다고 14일 밝혔다. 환전지갑은 달러, 유로 등 12종의 외화를 터치 몇 번으로 환전 신청을 하면 당일부터 영업점에서 수령할 수 있다. 외화를 받지 않고 1인당 1만 달러를 보관하거나 관심 통화와 목표 환율을 등록하면 알림을 전달하는 기능도 있다. 하나은행 애플리케이션(앱) 외에 카카오페이, 토스, 페이코 등 다양한 앱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달 중순부터 앱 하나원큐나 하나멤버스에서 환전을 하면 추첨을 통해 여행 경비를 지원한다. 이달 말까지 하나멤버스 등에서 환전하면 하나머니 등을 받을 수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홍희경 기자의 규제 클렌즈] 귤 되기도 전 탱자로 만드는 규제들

    국제적인 흐름과 맞지 않게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들은 한국에 규제중독 국가란 이미지를 씌운다. 남아메리카 쪽 섬인 갈라파고스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생태계와 종을 발전시킨 곳이다. 19세기 영국 범선을 타고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찰스 다윈은 섬을 벗어나면 생존하기 어렵게 진화한 생물들을 연구해 진화론을 정립했지만, 현재 한국의 갈라파고스 규제 환경은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각국 상공회의소로부터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당한다. 물론 해외의 규제개혁 사례를 매번 추종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미국·호주·중국 등에서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고 한국에서도 이를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안경사협회는 14일 “시력검사에 약 10만원 정도 검사비를 쓰는 검안사 제도가 있고 국토가 넓어 안경원 찾기가 어려운 해외와 다르게 한국에선 안경원 수가 인구 1만명당 1.60개로 접근성이 좋다”면서 “전문가인 안경사 검진을 거쳐 근처에서 렌즈를 살 수 있는 우리 제도가 국민의 눈 건강 보호에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 속담을 꺼내지 않더라도 사실 기후, 지역 환경, 기업 환경, 국가 체제 등에 따라 국가별로 상이한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양립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벌써 2년 넘게 중국 정부가 한국 게임에 대한 외자 판호(게임 유통허가)를 발급하지 않거나, EU가 매우 강력한 환경 기준 준수를 EU로 진출하려는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모두 지역색이 강한 규제다. 전자는 자국 기업 보호 조치이고, 후자는 지구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며 권역 안팎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조치다. 그런데 한국에선 유독 국내 기업을 더 혼쭐내는 규제가 흔하다. ‘갈라파고스 규제’일 뿐 아니라, 한국의 규제 생태계를 설명할 논리를 제시 못해 외국 기업에 지키라고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규제 생태계 체계를 설명할 논리 부족 상황은 카지노 정책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 십수개 카지노 중 강원랜드를 빼면 모두 외국인 전용이다. 도박은 죄악 산업(정신과 육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을 판매하는 산업)이니 한국인이 해선 안 되지만, 한국으로 관광 오는 외국인의 외화는 벌겠다는 얌체 논리다. 최성락 동양미래대 교수는 이를 두고 “도박도 개인 선택의 자유로 보는 자본주의에서는 카지노를 허용하고, 도박을 마음을 갉아먹는 아편으로 보는 사회주의에서는 도박을 금지하는 게 보통”이라면서 “도박 정책을 카지노 허용과 불허용 두 가지로 나누는 게 아니라 외국인은 카지노를 들어갈 수 있고, 자국민은 카지노를 이용할 수 없게 하는 경우는 한국과 베트남 말고 없다”고 지적했다. 컬러 렌즈, 모유 유축기, 습윤밴드 등 위해 정도에 관계없이 의료기기라면 무조건 광고 사전심의를 받게 한 제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규제’ 중 하나인 동시에 논리가 약한 규제다. 미국은 의료기기 업체들에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되 과대광고와 같은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시장에서 퇴출시킨다.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심장 밸브 같은 기기에 한해 식품의약국(FDA)이 판매, 유통, 사용 제한을 가한다. 나머지 의료기기 제품의 유통 등은 연방통상위원회(FTC) 소관이다. 일본과 캐나다는 의료기기 위험수준에 따라 다르게 대응한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광고를 광고주와 광고매체사 등의 자율에 맡기고, 사후 문제가 되는 광고만 심의한다. saloo@seoul.co.kr
  • ‘불황 시대’ 접어든 1970년대… 한줄기 빛 비춰준 ‘영상시대’

    ‘불황 시대’ 접어든 1970년대… 한줄기 빛 비춰준 ‘영상시대’

    197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는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제작사들은 외화 수입 쿼터를 받기 위해 저예산 제작으로 작품 수를 늘리는 데 치중했고, 그 자리는 호스티스영화와 국적 불명의 무협액션영화가 채워 갔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자 관객들도 멀어졌다.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외국영화 상영편수를 한참 앞섰지만 관람객도, 상영일수도 외화 쪽이 2배 이상 많았다. 영화에 대한 당국의 규제도 강화됐다. 영화, 음반, 공연 등을 심의하던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의 기록을 보면 영화 시나리오 사전 심의 결과 1974년 41% 수준이던 수정·반려 비율이 1975년에는 80%에 이를 정도였다. 1970년대 한국영화가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 낸 것은 1960년대의 대표적인 감독들과 ‘영상시대’ 동인들 덕분이었다.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정진우가 각각 ‘장마’(1979), ‘야행’(1977), ‘삼포 가는 길’(1975), ‘심봤다’(1979) 등을 내놓으며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이와 함께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홍파, 이원세 등 영상시대 동인들의 작품이 또 다른 축을 버텨 냈다. 바로 그 중심에 하길종과 그의 세 번째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이 있었다.●뉴웨이브의 기수 하길종 1941년 4월 부산에서 태어난 하길종은 1959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했고, 이듬해 데모대의 최전선에서 4·19 혁명을 겪었다. 문학 활동을 했지만 후배 김승옥 등에 비해 주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졸업 후 프랑스 항공사에 입사, 미국 유학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1965년 UCLA 영화과 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영화학으로 MA(이론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저항운동과 청년 문화가 주도하는 변혁의 시기였고, 특히 그가 미국에 도착한 1960년대 중반은 미국영화의 뉴웨이브, 즉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태동한 때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아서 펜, 1967), ‘졸업’(마이크 니컬스, 1967), ‘이지 라이더’(데니스 호퍼, 1969) 같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이 정치적으로 또 영화미학적으로 영화감독 하길종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음은 분명해 보인다.이러한 문화적 자산에도 불구하고 1970년 한국에 돌아온 하길종의 감독 데뷔는 순탄하지 않았다. 김지하와 야심 차게 개발한 시나리오 ‘태인전쟁’은 제작에 들어가지 못했고, 이효석 원작을 동생 하명중이 각색한 ‘화분’ 촬영도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 1972년 ‘화분’을 데뷔작으로 완성했지만, 파악하기 힘든 이야기와 ‘푸른 집’으로 표현된 정치적 알레고리는 대중적인 호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시나리오들 역시 대중성 부족과 검열 문제로 좌초되면서 하길종은 영화계를 떠날 결심까지 하게 된다. 최대한 현실과 타협해 만든 두 번째 작품 ‘수절’(1974)이 어렵게 공개됐지만, 역시 좋은 흥행 성적을 얻지 못했다. 검열로 20분 이상 삭제된 데다 난해한 미학적 실험도 여전했기 때문이다. 충무로 영화계에서 하길종의 존재감은 세 번째 연출작 ‘바보들의 행진’으로 입증됐다. 1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과 평단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미국 유학파 출신 감독을 기대 반 시기 반으로 지켜보던 영화계 동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하길종 본인은 상업적 성공에 양가적인 기분이었던 것 같다. 당시 기사들에 의하면 그 역시 언론의 관심과 흥행 성공에 매우 흡족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성사에서 연 시사가 끝난 후 김수용 감독이 드디어 대중적 방향감각을 찾았다고 칭찬하자 하길종이 크게 화를 냈다는 일화 역시 존재한다. 이 영화는 그에게 어떤 작품이었을까. 물론 영화의 성공은 하길종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지만, 당대 청년들의 감수성을 읽어 내는 데 탁월했던 최고의 인기 작가 최인호의 원작에 기댄 점도 그의 심정을 복잡하게 했을 것이다. 또 당국의 검열로 인해 117분의 영화가 최종 99분 분량의 작품으로 공개됐지만, 청년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혹은 스스로 행간을 메우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금도 한국영화 10선으로 선정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고 하길종의 대표작임에 분명하지만, 정작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분’을 대표작으로 뽑았던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영화가 성공한 그해 하길종은 ‘영상시대’ 동인이 됐고, 서울예전 영화과 교수로도 부임하게 된다. 이후 그는 ‘여자를 찾습니다’(1976)와 개봉조차 하지 못한 ‘한네의 승천’(1977)으로 주춤했다가, ‘속 별들의 고향’(1978, 32만)과 ‘병태와 영자’(1979, 18만)로 다시 흥행력을 입증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세 작품 모두 최인호의 원작과 시나리오라는 점은 서구의 ‘뉴시네마’라는 이상과 통속적 대중문화라는 현실 사이에 놓인 하길종의 복잡한 고민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는 1979년 2월 38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검열의 상처를 안고 태어난 한국의 ‘뉴시네마’ ‘바보들의 행진’은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를 복기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병영을 방불케 하는 규율사회의 무거운 공기와 청년들의 건강한 저항 정신이 부딪치는 파열음을 영화 그 자체에 오롯이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검열 과정을 살펴보자. 1974년 11월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에 처음 접수된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1975년 1월 말까지 진행된 사전 심의에서 시나리오 곳곳에 개작과 삭제 통보를 받았고, 하길종은 그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두 달간 촬영을 진행했다. 물론 군데군데 삭제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일단 신 전체를 촬영했을 것이고 머릿속에만 있는 장면도 더 찍었을 것이다. 완성된 영화는 4월 초 본편 심의에 들어갔는데, 다시 15군데의 삭제와 단축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4월 3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49일 동안 1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검열에 시달린 감독으로서는 예상조차 하지 못한 히트였던 것이다. 더구나 당국은 이 작품에 우수영화라는 타이틀까지 부여해 1970년대 대중문화 장의 아이러니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영화는 대학생들의 밝은 에너지가 발산하는 경쾌한 분위기와 시대의 공기에서 포착되는 암울한 정서를 오가며 매우 ‘파편적’으로 진행된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 사항을 반영해 만든 영화가 다시 20분 이상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하길종은 검열로 잘려 나간 영화를 어떻게든 살려 내기 위해 신을 흩트리고 다시 배치하는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대항 술마시기 대회 장면 이후 후반부는 영화의 리듬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결국 불균질한 텍스트로 남게 된다. 아마도 하길종은 검열의 흔적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는 개봉 때의 99분 버전보다 2분 29초가량 더 살아 있는 102분 버전(블루레이 출시본)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네거티브(원본)필름 자체에서 삭제된 15분 정도의 분량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바보들의 행진’이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비롯한 서구 뉴웨이브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당대 청년 문화를 직접적인 소재로 선택한 영화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다큐적 질감을 택하고, 투박하지만 인상적인 숏 배열을 선보인다. 특히 과감하게 줌을 쓰는 장면들이 그렇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에서 기성곡을 영화음악으로 활용하며 뮤직비디오 시퀀스를 만든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 ‘고래사냥’, ‘날이 갈수록’을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해 영화의 이미지와 합일하는 인상적인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날이 갈수록’은 영화가 엔딩을 준비하면서 흘러나온다. 무기한 휴강이 결정된 캠퍼스에서 “들립니까”라는 처절한 외침이 들리고 병태(윤문섭)는 구역질을 하는 듯 괴로워 보인다. 그리고 예쁜 고래를 잡겠다고 버릇처럼 얘기하던 영철(하재영)은 자전거를 타고 동해로 떠난다. ‘고래사냥’이 힘차게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영철은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영화의 마지막 신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뽑힌다. 입대를 선택한 병태는 머리를 깎고 입영열차에 타고 있고, 영자(이영옥)가 플랫폼으로 뛰어와 그를 찾아낸다.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 병태에게 영자가 키스하려 하고, 낭만적이게도 헌병이 그녀를 들어 키스를 도와준다. 심의 대본의 “입술을 맞추는 영자, 말리는 헌병”이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의 폭력과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온몸으로 새긴 영화는 이렇게 당대의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포치(破七) 시대’, 미국과 중국 누가 웃을까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포치(破七) 시대’, 미국과 중국 누가 웃을까

    지난 8일 오전 9시 19분(현지시간). 지난달 31일 이후 6일 연속 기준환율을 높여오던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결국 이날 기준환율을 전날(6.9996위안)보다 0.06% 오른 달러당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시장에서 위안화 환율이 이미 달러당 7위안이 깨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기준환율마저 7위안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날아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인민은행 기준환율이 7위안을 넘겨 고시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15일 이후 11년여만이다. 위안화 환율은 5일 홍콩 역외시장에서 7위안을 돌파한 뒤 7위안선을 그대로 유지하며 위안화 가치의 약세를 의미하는 ‘1달러=7위안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이 위안화 약세현상이 뚜렷한 만큼 미중 무역전쟁이 미중 환율전쟁은 물론 글로벌 환율전쟁으로도 옮아갈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중국에 1달러=7위안선, 이른바 ‘포치(破七) 시대’가 공식 개막됐다. 중국 정부가 7위안선이 힘없이 무너져도 시장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바람에 9일에도 전날보다 0.14% 오른 7.0136위안을 기록하는 등 ‘1달러=7위안선’을 유지함으로써 위안화 가치의 악세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의 약세 현상을 용인한 것은 무엇보다 중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진단했다. 위안화의 소폭 절하만으로도 해외에 판매하는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낮추는 효과가 있는 덕분에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의 수출업체에는 위안화 가치의 절하가 반가운 소식일 수 밖에 없다. 장밍(張明)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만약 미국이 계속 무역 갈등을 고조시키면 중국 정부가 시장의 압박에 따라 위안화를 움직이도록 내버려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고율 관세의 충격을 상쇄해 중국 수출업체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안화 가치 약세 기조의 현실화는 미국의 3000억 달러(약 363조원) 규모의 추가 관세부과 예고 등에 따른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중국 경기 둔화로 사실상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동안 경제적 펀더멘탈(기초체력)보다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카드를 들고 으름장을 놓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위안화의 약세를 방어해 왔다. 데이비드 로에빙거 TCW그룹 매니징 디렉터는 중국 지도부가 미국 정부와 선의를 구축하기 위해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에 대한 하락 압박에 저항하면서 대세를 거슬러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추가관세 보복→ 중국의 위안화 7위안선 돌파 용인→ 미국의 환율조작국 명단 등재 등 미중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도박 같은 치킨게임을 벌이는 통에 이제 위안화 환율의 ‘고삐’가 풀려버린 것이다.중국 정부가 위안화 평가절하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관련이 있다. 위안화 가치가 낮아지면 부작용도 있지만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수출단가가 낮아지는 효과를 내는 덕분에 보복관세의 충격을 일정부분 상쇄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미국이 얼마만큼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느냐에 따라 위안화의 환율 수준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뱅크오브 메릴린치는 미국이 예고대로 오는 9월1일부터 중국산 제품 3000억 달러에 1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위안화 가치는 연말까지 7.3위안 수준으로 떨어지고, 25%까지 관세를 부과할 경우 7.5위안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가 약세현상을 보이더라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곳간인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여전히 3조 달러가 넘을 만큼 든든하다는 점에 자신감을 보인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올들어 310억 달러가 늘어난 3조 1037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현상을 용인함으로써 대미 ‘반격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위안화 약세 기조는 중국에 ‘양날의 칼’이다. 미국과 전방위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위안화 약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대규모 자본유출과 이에 따른 증시 폭락, 부채 급증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도 큰 것이다. 대규모 자본유출을 촉발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재개되기 전인 올해 1~4월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외국인 자금의 유입에 힘입어 30% 넘게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상하이 증시는 맥을 못추지 못하는 바람에 투자자들 사이에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위안화 가치까지 추가 절하된다면 환차손까지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팀장은 “달러당 7위안은 자본유출과 금융불안 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위안화 약세 가능성만으로도 대규모 자본유출을 경험한 트라우마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4~5월 두 달간 중국 자본시장에서 이탈한 외국자본은 무려 120억 달러에 이른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위안화 가치 하락 우려감으로 외국자본이 이탈했다는 것이다. 상하이 소재의 자산운용사 MQ인베스트먼트의 존 저우는 “미중 무역전쟁과 위안화 환율이 7위안대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로 외국 자본이 이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안화 가치의 7위안 시대는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중국 경제에 미칠 충격파는 작지 않을 전망이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인들은 더 많은 위안화를 주고 달러화 제품을 사야 한다. 해마다 석유와 옥수수, 콩 등을 대량 수입해야 하는 중국으로선 서민경제와 직결되는 농산물 등의 가격이 폭등하는 인플레 위기에도 직면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갚아야 하는 외화부채 부담도 커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국제금융협회(IIF)는 1분기 중국의 총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04%에 이른다고 밝혔다. 1년 전의 297%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중국 정부가 비공식 통로를 통한 차입, 즉 그림자금융(정부 관리감독 범위 밖의 비제도권 금융)을 통한 차입을 제한하면서 비금융부분에서의 기업부채는 줄었지만 다른 부문에서 대출이 급증하면서 그 규모는 40조 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총부채의 15%에 이른다. 중국 시장조사업체인 윈드(Wind)는 올해 만기 도래하는 중국의 달러화 표시 부채가 113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중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홍콩계 회사나 글로벌 기업들이 빠져나갈 경우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서 고용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위안화 가치가 하락해 대량의 환차손이 발생하면 생산 규모를 줄이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투자 심리도 냉각시켜 중국의 경제체질 전환에도 어려움을 주고, 위안화가 불안정해지면 금융 리스크나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도 커져 장기 투자계획 등이 미뤄지거나 취소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외 개방을 통해 경제성장 구조 전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중국의 전략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위안화 약세 기조는 중국의 최대 이벤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판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에도 독이 될 수 있다. 일대일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막대한 달러화 자금을 각국에 투자하고 있는데, 위안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달러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탓이다.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면서 “위안화 가치가 너무 떨어지는 것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성우 양지운, 스트레스로 파킨스 병...아들 때문에?

    성우 양지운, 스트레스로 파킨스 병...아들 때문에?

    양지운이 파킨슨병 원인을 언급했다. 7일 밤 방송된 TV조선 교양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성우 양지운(71)이 자신의 파킨슨병 투병과 가족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세 아들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양지운은 지난 201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5년째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이날 제작진은 “모든 병은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느냐”라고 질문했고, 이에 양지운은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양지운은 파킨슨병의 원인으로 과거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전했다. 그는 “아들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로 인해서 감옥에 가고 전과자가 됐다. 셋째 아들도 병역거부 문제로 재판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제가 스트레스가 컸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지운은 “특히 아들들이 실형을 받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양지운은 “밖에 나가서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법정으로 감옥으로 다녔다”며 “아내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힘들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내 윤숙경씨는 “내가 스트레스를 더 받았을 것 같은데 왜 당신이 병에 걸렸을까. 나도 같이 많이 울었다. 면회 가면 울고 집에서 울고 그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윤숙경씨는 “이민 가자고 했다. 그 이른 나이에 제가 갱년기를 앓으며 힘들었는데 10년 후에 둘째 아이가 재판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막내아들까지 감옥에 보낼 수 없었다”면서 “차라리 내가 죽어야 그만할까 싶었다”고 했다. 윤숙경 씨는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고 해도 막내아들을 절대 감옥에 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양지운의 두 아들은 감옥살이를 했다. 셋째 아들도 두 형이 갔던 길을 따라 1·2심에서 징역형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13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양지운의 가족은 아내 윤숙경 씨와 3남 2녀의 자녀를 뒀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이미 수감생활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양지운의 주치의는 “양지운은 이미 휠체어, 지팡이에 의존했어야 했다. 하지만 굳건한 의지와 배우자의 노력으로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전했다. 이날 카라 출신 김성희도 깜짝 등장했다. 양지운의 장남 양원준은 김성희와 한 종교단체에서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2007년 카라로 데뷔한 김성희는 원년 멤버다. 한편 1968년 TBC 공채 성우로 입문한 양지운은 1976년 KBS에서 방영한 미국 TV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성우 배한성과 성우계 양대산맥으로 꼽히며 외화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외화 더빙에 참여했으며 ‘체험 삶의 현장’ 20년, ‘생활의 달인’ 10년 등 TV 교양 프로그램의 내레이션도 오래 맡아 대중에 친숙하다.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포토] ‘초미니 비키니’ 서윤지의 여름밤

    [포토] ‘초미니 비키니’ 서윤지의 여름밤

    모델이자 패션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서윤지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아찔한 자태를 뽐냈다. ‘윤블링’이라는 이름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는 서윤지는 패션모델은 물론 요리, 여행 등 다양한 주제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최근 모델 서윤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비키니화보 내가 제일 자신있는 것. #화보촬영 #bikini”라는 주제로 섹시만점의 사진을 게시했다. 짙은 스모키 풍의 메이크업으로 귀여움에 더해 카리스마도 첨가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도도한 눈빛에 아찔한 볼륨감,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윤지는 그동안 지상파 TV광고의 메인모델을 비롯해서 게임 광고모델, 해외화보촬영, 의류 브랜드모델 등의 활동을 하며 매력을 발산했다. 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서윤지는 다양한 포징과 표장연기로 관계자들의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170cm, 35-22-36의 라인을 자랑하는 서윤지는 SNS에서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츤데레모델’로 유명하다. 스포츠서울
  • [2000자 인터뷰 25]박성빈 “일본발 리스크, 차분한 대응으로 넘겨야”

    [2000자 인터뷰 25]박성빈 “일본발 리스크, 차분한 대응으로 넘겨야”

    외환위기 재현 공산 적지만 방심 금물 일본, 한국에 빌려준 돈 69조원 무시하지 못할 금액이지만 수익 중시 日 은행 뺄 가능성 낮아 한국, 일본 백색국가 제외 신중해야 대일 의존 낮아졌지만 경제협력 중요 신 한일협력 모델 창출을 일본 경제 전문가인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은 “일본이 우리 은행과 기업에 빌려준 돈은 586억달러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 체제의 일본계 은행이 수익을 창출하는 대 한국 여신을 거둬들일 가능성은 낮으며, 일본의 금융공격 하나 만으로 외환위기가 일어날 공산도 적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경제의 상호의존도 저하는 양국 간 정치적 갈등의 억제 기능을 약화시킨다”면서 “새로운 한일협력 모델을 구축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내용. Q: 일본이 지난 7일 수출심사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고 관보에 게재했다. 21일 뒤인 28일부터 1100여개 품목에 대한 대한국 수출관리가 까다롭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제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A: 일본의 무역관리규제는 크게 리스트 규제(list control)와 캐치올 규제(catch all control)로 구별할 수 있다. 화이트국이란 캐치올 규제의 적용이 면제되는 국가이고, 리스트 규제는 화이트국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한국의 화이트국 제외로 인한 변화는 우선 대한국 수출에 캐치올 규제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향후 일본 기업은 한국 수출 때 용도, 수요자 등에 대한 확인을 철저히 해야 하고 경제산업성이 기업에 통지한 경우,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한국에 대해 일반포괄허가(이른바 화이트 포괄)를 적용할 수 없게 되어, 리스트 규제 품목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진다는 것이다. 단 한국에 대한 수출에 대해서는 여전히 특별일반포괄허가(화이트 포괄에 비해 수출업자의 요건이 엄격)를 적용할 수 있다. 즉 모든 수출 품목에 대해 경제산업성의 허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경제산업성이 특별일반포괄허가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 지속적인 추적과 관심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조치로 양국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통상 중소기업은 정부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수출관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일본 중견·대기업에서 한국 대기업으로의 수출은 비교적 원활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은 일본 리스크를 의식하여, 부품조달처를 다양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Q: 시중에는 일본의 금융공격으로 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재현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돌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A: 20년 전 한국의 외환위기 원인에 대해 한국의 정책당국자 간에 일본계 자금 유출이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부 존재하지만, 학술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당시 외환위기는 한국 금융시스템의 취약성과 일본의 심각한 금융위기, 태국의 바트화 폭락에 따른 국제적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일본계 자금의 유출 만으로 한국에 외환위기가 온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말 280%에 달했지만, 현재 그 비율은 3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즉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1990년대 상황과 비교할 때 높지 않다. 또한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 하에서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으로 은행의 수익기반이 악화돼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일본의 메가뱅크 입장에서는 해외사업 확대의 필요성이 높다. 한국 시장이 안정성을 유지한다면 일본 민간은행이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재닛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018년 10월 세계지식포험에서 “한국경제는 견고하여 (외환위기 등)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면서도 “급작스러운 위기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외부적 충격(미중 무역 갈등의 격화,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에 따라 한국의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자금 유출이 가속화되어 한국의 위기를 심화시킬 수는 있다. Q: 한국 시장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은 어느 정도인가. A: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 여신 규모에 대해서는 지난해 9월말 기준 21조원 정도(전체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 총 여신의 27%)로 중국계 은행(34%)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자료를 보면, 일본계 은행이 한국의 은행과 기업에 직간접적으로 빌려준 금액은 586억달러(69조원)에 달한다. 일본계 은행의 한국 여신의 약 60%가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현지 일본계 은행에서 조달한 금액이란 얘기다. 또한 일본계 자금의 상장주식 보유 물량은 12조원를 넘는다.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돈이 한국 은행과 기업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Q: 한국이 대항조치로 일본을 우리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것을 검토했다고 8일 보류를 결정했다. 만일 이런 조치가 내려진다면 일본이 아파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A: 양국 정부 간의 강 대 강의 조치가 반복되면, 한일 상호의 경제적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우선 양국 간 외교 교섭에 집중하고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Q: 한일 간에는 현재 그 어떤 통화스와프도 체결돼 있지 않다. 필요성은 있는가. A: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한국의 외화유동성을 확충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특히 달러를 교환할 수 있는 통화스와프의 유용성이 높다. 한국이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데다 원화는 기축통화도 아니다. 한국이 일본에 통화스와프 체결을 공식적으로 요구한다면 오히려 한국 스스로 외환시장 불안을 자인하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즉 통화 스와프 교섭 과정이 정치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즉 한일 통화스와프는 당장 필요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양국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언젠가 양국 통화스와프 복원을 추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Q: 강제징용 판결로 비롯된 한일의 유례없는 경제전쟁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본다.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A: 화이트국 제외 이후 일본이 무역관리 제도를 실제로 어떻게 운용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속도조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일 간 정치적 갈등이 양국 경제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한일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2001년경부터 시작된 한일 통화스와프가 종료된 바 있다. 2000년대 중반 경부터 한국의 대일 무역의존도가 낮아지고 국제시장에서의 한일 기업 간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일 경제협력의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일 경제의 상호의존도 저하는 양국 간 정치적 갈등의 억제 기능을 약화시킨다. 향후 다양한 형태의 정치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이 재차 경제협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새로운 한일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양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집착하기보다는 양국이 협력하여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확산시키는 선도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Q: 국제분업의 질서를 일본이 깬다고는 하지만 한국 경제이 일본 의존도를 새삼스럽게 부각시킨 경제보복이다. 대일본 의존을 낮출 방법은 무엇인가. A: 이미 대일 의존도는 많이 낮아졌다. 이번 사태로 민간기업 중심으로 부품, 소재 조달의 다양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규제완화, 기술개발 자금 면에서 조용히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 의존도가 낮아졌다고 해도 일본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보수 정치세력과 일본 국민을 구별해야 한다.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日, 보복 이미지 깨기 ‘여론전’… 韓, 日태도 보며 대응 수위 조절

    日, 보복 이미지 깨기 ‘여론전’… 韓, 日태도 보며 대응 수위 조절

    정부 “백색국가 日 제외 시기 신중하게” 맞대응 의지 확고… 단계적인 압박 전략 ‘백색국가 日 제외’ 실효성 의문 현실론도 日, 규제 확대 방침 여전히 굽히지 않아 28일이후 개별허가 추가지정 불씨 여전 전 산업 규제 가능한 ‘캐치올’ 가능성도우리 정부가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에 맞대응하는 성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 발표를 연기한 것은 일단 일본의 추가 규제 수위를 지켜본 뒤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전략적 태도로 분석된다. 지난달 4일 이후 한일 양국의 ‘강대강 대치’가 한 달여 만에 다소 완화된 양상이다. 다만 일본이 수출규제 확대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시행되는 오는 28일을 전후로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 지정하는 등 ‘강온 양면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 양국의 긴장 관계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8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일본을 수출 우대국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미룬 것을 두고 “배제 시기를 신중하게 짚어 보자는 취지”라면서 속도조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드러냈다.정부 안팎에서는 일본이 지난 7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공포하면서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 지정하지 않은 것을 속도 조절의 배경으로 꼽는다. 게다가 8일에는 일본이 수출규제 이후 처음으로 포토레지스트 수입을 허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애초 90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수출 규제 품목에 대한 심사·승인 절차를 3분의1 정도로 단축해 진행한 선례를 남긴 셈이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한국에 대해 수출금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출관리를 조금 더 엄격하게 하는 것’이라던 기존 입장대로 조치를 한 것”이라면서 “한국이 백색국가 배제라는 강력한 대응카드를 소진하면 나중에 쓸 전략이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의 일본에 대한 백색국가 배제 조치가 큰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의 총수입금액 39조 1322억엔 중 한국 수입분은 4.1%인 1조 6229억엔이다. 국내 수출 기업의 피해도 불가피하다. 다만 일본의 경제 도발에 대한 맞대응 의지를 천명한 만큼 정부는 언제든 대응 수위를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1개에 한해 허가를 내준 것도 이번 조치가 전면적 수출 금지가 아니라는 것을 강변하기 위한 명분 쌓기인 만큼, 향후 자의적으로 수출 제한 품목을 더욱 늘려 우리 경제를 압박할 여지가 충분하다.일본 정부가 이날도 “부적절 사례가 나오면 해당 품목을 개별허가 대상에 추가할 수 있다”면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제외에 이어 3번째 규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28일 이후에는 일본 전략물자는 물론 비전략물자도 ‘캐치올’(Catch all) 제도를 이용해 한국 수출을 막을 수 있어 수출규제가 전 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이 우리 쪽 대응카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국제 여론이 좋지 않고 우리 정부도 맞대응 방침을 밝혔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면 어떤 근거와 법령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기재부는 이날 최근 대외여건 불확실성과 관련해 외화 유동성 상황을 점검한 결과 일본계 자금과 관련한 특이 동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종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양지운 “세 아들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 파킨슨병 원인

    양지운 “세 아들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 파킨슨병 원인

    양지운이 파킨슨병 원인을 언급했다. 7일 밤 방송된 TV조선 교양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성우 양지운(71)이 자신의 파킨슨병 투병과 가족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세 아들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양지운은 지난 201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5년째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이날 제작진은 “모든 병은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느냐”라고 질문했고, 이에 양지운은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양지운은 파킨슨병의 원인으로 과거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전했다. 그는 “아들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로 인해서 감옥에 가고 전과자가 됐다. 셋째 아들도 병역거부 문제로 재판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제가 스트레스가 컸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지운은 “특히 아들들이 실형을 받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양지운은 “밖에 나가서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법정으로 감옥으로 다녔다”며 “아내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힘들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내 윤숙경씨는 “내가 스트레스를 더 받았을 것 같은데 왜 당신이 병에 걸렸을까. 나도 같이 많이 울었다. 면회 가면 울고 집에서 울고 그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윤숙경씨는 “이민 가자고 했다. 그 이른 나이에 제가 갱년기를 앓으며 힘들었는데 10년 후에 둘째 아이가 재판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막내아들까지 감옥에 보낼 수 없었다”면서 “차라리 내가 죽어야 그만할까 싶었다”고 했다. 윤숙경 씨는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고 해도 막내아들을 절대 감옥에 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양지운의 두 아들은 감옥살이를 했다. 셋째 아들도 두 형이 갔던 길을 따라 1·2심에서 징역형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13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양지운의 가족은 아내 윤숙경 씨와 3남 2녀의 자녀를 뒀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이미 수감생활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양지운의 주치의는 “양지운은 이미 휠체어, 지팡이에 의존했어야 했다. 하지만 굳건한 의지와 배우자의 노력으로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전했다. 이날 카라 출신 김성희도 깜짝 등장했다. 양지운의 장남 양원준은 김성희와 한 종교단체에서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2007년 카라로 데뷔한 김성희는 원년 멤버다. 한편 1968년 TBC 공채 성우로 입문한 양지운은 1976년 KBS에서 방영한 미국 TV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성우 배한성과 성우계 양대산맥으로 꼽히며 외화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외화 더빙에 참여했으며 ‘체험 삶의 현장’ 20년, ‘생활의 달인’ 10년 등 TV 교양 프로그램의 내레이션도 오래 맡아 대중에 친숙하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호사카 유지 “日, 금융발 ‘제2 IMF’ 노려”…정부 “가능성 낮다”

    호사카 유지 “日, 금융발 ‘제2 IMF’ 노려”…정부 “가능성 낮다”

    일본이 2차 경제보복으로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조치를 취한 가운데 3차 보복은 금융분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본계 은행이 한국 기업의 신용장 보증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금융 부문 보복조치를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이런 조치의 가능성이 작고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으로 귀화한 한일관계 전문가 호사카 유지(63) 세종대 교수는 지난 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한국에 ‘제2의 IMF’를 일으키는 것이 목표”라며 “3차 보복의 타깃은 금융 분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금융보복을 단행해 한국 시중은행들을 마비시키는 것을 내부적으로 꿈꾸고 있다”며 “이는 일본 언론 ‘데일리신초’와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주장해온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시중은행들이나 기업들이 신용장으로 해외 국가와 금융거래를 하는데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신용도가 낮다”며 “이때 일본 시중은행들이 신용장에 대한 보증서를 많이 써줬는데 이를 중단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신용장은 국제무역에서 수입업자가 거래은행으로부터 발급받는 신용 보증서다. 신용장이 개설되면 거래은행에서 해외에 있는 수출업자에 물품 대금을 대신 지급하고 수입업자는 물건을 팔아 번 돈으로 기한 내에 은행에 대금을 상환하면 된다. 그는 “이것이 현실화되면 수출규제인 화이트리스트 배제보다 충격파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호사카 교수는 5일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호사카 교수의 주장에 대해 “가능성이 작고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가 인용한 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전체 수입액 기준 신용장의 무역 거래 결제 비중은 1998년 62.1%에서 지난해 15.2%로 46.9% 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송금 방식은 같은 기간 15.3%에서 65.3%로 늘었다. 금융위는 “그동안 무역 거래 결제 형태가 신용장 방식에서 송금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일본계 보증 발급 은행이 발급 거부 등으로 보복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내 은행 신용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은행의 대일 수입 관련 신용장 중 일본계 은행의 보증 비중은 지난해 약 0.3%였고, 올해 상반기에는 0.1% 수준에 그쳤다. 금융위는 국내 금융 부문이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은 점, 외화 보유액이 충분한 점 등을 근거로 일본의 금융 보복 조치 가능성을 크지 않다고 봤다. 금융위는 “금융 부문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고, 보복의 영향력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시장의 일반적 평가”라며 “금융 당국은 향후 사태 추이 등을 예의 주시하면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점검하는 등 면밀히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주말N극장가]“따--따--따따따 따-따-”, “쌍투스”…영화 살린 명대사

    [주말N극장가]“따--따--따따따 따-따-”, “쌍투스”…영화 살린 명대사

    주말 극장가 이슈를 얄팍하게 살펴보는 ‘주말N극장가’ 코너다. 심도 깊은 분석보다 의식의 흐름을 타고 수다 떠는 코너에 가까우니, 딴죽 거시려면 살포시 ‘백스페이스’ 눌러주시면 감사하겠다. 영화를 살리는 것은 무엇일까. 감독일까. 배우일까. 아니다. 다 틀렸다. 바로 명대사다. 어마 무시한 명작이 아닌 이상, 고만고만한 영화는 어차피 영화관 나서면 줄거리와 인상 깊은 장면 몇 개 빼놓고 다 까먹게 마련이다. 그러나 명대사는 영화관을 나서더라도 여전히 당신의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번 주 극장가는 반갑게도 ‘엑시트’, ‘사자’, ‘나랏말싸미’ 세 편의 한국 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거미인간도, 아프리카 사자도, 퍼런색 요정도 잠시 숨을 고르는 터에 한국 영화가 상위권에 포진했다. 그래서 세 편의 한국 영화 명대사를 골라봤다. (어차피 외화는 대사 기억하기가 어렵기에...) “내가 생각하는 명대사는 이건데?”라고 하면 할 말 없다. 타인의 취향도 존중해달라. “기X기가 또 스포 하나?” 할 수도 있겠다. (어흑, 이 정도는 좀 봐줘라...ㅠㅠ)우선 ‘엑시트’ 되겠다. 시내에 퍼진 독가스를 피해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윤아 분)가 도망간다는 내용이다. 칠순 가족잔치를 마친 뒤 독가스가 퍼지자 옥상으로 올라간 용남의 가족들. 구조를 바라지만 깜깜한 밤이어서 헬기가 이들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소리를 질러봐도 헬기는 오지 않는다. 그러자 의주가 꾀를 낸다. “휴대폰 꺼내세요!”라고 외친 의주는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가렸다 뗐다 하면서 “따라하세요!”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입으로 낸 소리. “따--따--따따따 따-따-” 바로 ‘SOS’를 뜻하는 모르스부호다. 영화 보면서 무릎을 탁 쳤던 장면이기도 하다. 잠깐 나오는 장면이지만, 나도 모르게 “따--따--따따따”를 속으로 되뇌는 자신을 보게 될 터다. 그리고 이 부호는 꼭 알아두시길 권한다. 누가 알겠나. 당신이 재수 없게 외딴 섬에 남을 수도 있잖은가.다음 영화는 ‘사자’다.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구마의식을 소재로 한다. 주인공 용후(박서준 분)가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로 스트레이트와 훅을 날린다면, 바티칸에서 파견 나온 안신부(안성기 분)는 가볍게 잽을 날린다. 처질듯한 영화 분위기를 안 신부가 독특한 애드립으로 살려놓는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는 다른 거 없나?”라든가, 시종일관 질문에 “다 주님의 뜻이야”라고 받아치는 대사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정작 명대사는 이거다. 마귀에 들린 이의 머리를 부여잡고 외치는 바로 그 말. “쌍투스, 쌍투스, 쌍투스” 외국어임에도 쏙쏙 들어오고, 자칫 웃음까지 유발하는 이 대사. 그러나 뜻밖에 심오한 대사이니 조금 진지하게 바라보자. 라틴어로 “거룩하시도다”라는 뜻이다.마지막으로 최근 ‘핫’한 영화 ‘나랏말싸미’ 되겠다. (핫하긴 한데, 역사왜곡 논란으로 핫해서 문제지만) 영화는 세종대왕(송강호 분)이 승려 신미(박해일 분)를 만나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세종대왕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특유 억양으로 수많은 명대사를 히트시킨 이른바 명대사 제조기다. 예컨대 전작 ‘기생충’의 명대사 “아들아, 너는 계획이 있구나~”는 올해 명대사 중 명대사로 꼽힌다. 그러나 이번 영화 명대사는 신미가 거진 책임진다. 역적의 아들이어서 불가에 귀의한 인물로, 인도 글자 등에 능한 똑똑한 인물. 그러나 당시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고, 불교는 탄압받는 종교였다. 역적의 아들인 데다가 승려여서 아무래도 속이 배롱나무처럼 배배꼬인 캐릭터로 나온다. 세종대왕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절을 하지 않는 신미. 세종이 “너는 왜 왕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느냐?”고 하자 “개가 어떻게 절을 합니까”라고 기세 좋게 맞받는다. 그래도 언어를 만들어야 하기에, 세종이 “난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넌 부처를 내려놓고 와라”라고 말한다. 그러자 신미가 던질 말. “아니오. 나는 부처를 타고 갈 테니 주상은 공자를 타고 오시지요.” 신미의 툭툭 던지는 말에 어이없어 하는 세종의 표정도 볼거리다. 상대방의 말을 멋지게 비트는 센스라니!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열린세상] ‘국민의 재벌’ 가능할까/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민의 재벌’ 가능할까/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국민의 재벌.’ 현 상황에서는 거의 형용모순이다. 국민경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기여하는 재벌은 초안밖에 없었다. 현실은 ‘재벌국민’에 훨씬 가깝다. 재벌이 잘돼야 한국 경제가 잘된다는 이데올로기적 압박에 국민의 인내와 희생이 감내돼 왔다. 반세기 넘는 한국 경제사는 재벌기업과 재벌가의 보호와 육성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과 ‘갑질’은 해외 언론에서 한글 발음 그대로 표기될 정도로 한국 경제의 특이 사항이 됐다. 한국민 스스로도 당당하게 자부심을 갖고 사랑과 존경을 표현할 만한 재벌기업은 사실 없다. 그동안 다양하게 요구해 온 ‘재벌개혁’도 그 내용을 보면 상당 부분 ‘재벌국민’을 ‘국민재벌’로 대체하자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정부’를 자임하면서 ‘재벌개혁’을 공약한 현 정부마저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 재벌개혁의 ‘비자발적, 잠재적 원군’이 외부에서 나타나 재벌체제를 흔들기 시작했다. 재벌기업에는 아베 정부의 요구대로 한국 정부가 굴복하고 한 달 전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가장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연기일 뿐이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대일 경제 관계가 치명적 약점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때까지 수출주도성장 30여년 동안 외환보유고가 바닥날 정도로 외환을 유출시킨 것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였다. 부품소재의 과도한 대일 의존 때문에 수출이 늘어날수록 대일 무역적자도 커졌다. 그래서 수입선 다변화도 시도해 봤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1997년 한국 자본시장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가 결국 국가부도 위기의 불을 댕긴 것도 일본 자본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로 반전되자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는 물론 외화가득률, 국산화율의 문제는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지난 20년 동안 다시 누적되는 적자에도 경고음 한번 울리지 않았다. 이는 한반도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의 ‘혼네’를 읽지 못한 대한민국의 뼈아픈 실착이었다. 아베의 무역보복이 가져다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한국 경제가 회생할 길은 하나뿐이다. 하루빨리 경제적 종속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국민재벌’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재벌의 국민’이 ‘국민의 재벌’로 대전환하는 게 새 ‘경제독립국가’의 시작이자 끝이다. 가장 시급한 부품소재의 국산화뿐만 아니라 개발 제품에 수요처를 제공하는 등 동반성장의 길을 여는 데 재벌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이 전환이 재벌에는 상당한 비용을 유발하겠지만, 재벌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이 동반성장의 길밖에 없다. 이 길에서는 중소기업에 창업 기회도 열리고 지불 능력도 개선되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혁신과 실적에 따르는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생태계가 조성되면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일부 해소돼 소득불평등의 완화와 내수 확대, 경제성장의 촉진이라는 작은 선순환도 시작될 수 있다. ‘일본수출규제대책민관정협의회’가 출범했다. 반세기 넘게 묵은 숙제를 ‘벼락치기’로 해결하려니 중구난방일 수 있다. 그래도 불화수소 생산 규제 완화나 52시간 탄력근로제 후퇴와 같은 ‘좀비’ 대책은 꺼내지 말자. 정부 정책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모두 국회의원들이 자녀 취업을 청탁할 만한 일자리가 돼야 한다. 일본 제품을 대체할 ‘좋은 물건’은 ‘좋은 일자리’에서 만들어진다. 그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부품소재산업의 독립을 중간 목표로 하여 ‘혁신성장’의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부품소재산업육성법’ 개정안도 정권과 무관하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 생태계 혁신과 결합된 기술 혁신과 제품 혁신만이 ‘메이드 인 재팬’을 뛰어넘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만들 수 있다. “2차 벤더에도 신경 쓰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약속과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사회적가치협의체’를 구성한 최태원 회장의 의지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만 선진국인 일본을 넘어서면 정치적, 문화적, 도덕적인 자부심과 결합하면서 일본과는 급이 다른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비전이다.
  • [포토] ‘22인치 허리’ 서윤지, 베이글녀 모델

    [포토] ‘22인치 허리’ 서윤지, 베이글녀 모델

    모델 서윤지가 자신의 근황을 SNS로 알렸다. 서윤지는 최근 홍콩의 한 호텔 수영장에서 진행된 화보촬영에서 환상적인 몸매를 뽐내는 수영복 자태를 보여줬다. 청초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갖춰 모델계의 ‘베이글녀’로 불리는 서윤지가 물오른 미모로 남심을 저격하며 자신의 화려한 S라인을 자랑했다. 서윤지는 그동안 지상파 TV광고의 메인모델을 비롯해서 게임 광고모델, 해외화보촬영, 의류 브랜드모델 등의 활동을 하며 매력을 발산했다. 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서윤지는 다양한 포징과 표장연기로 관계자들의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35-22-36의 라인을 자랑하는 서윤지는 SNS에서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츤데레모델’로 유명하다. 스포츠서울
  • ‘외화 더빙 단골주연’ 성우 박일 별세

    ‘외화 더빙 단골주연’ 성우 박일 별세

    외화 더빙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유명 성우 박일(본명 조복형)이 별세했다. 69세. 고인은 1967년 TBC 3기 공채 성우로 데뷔해 1970년부터 MBC 성우극회 소속 4기로 활동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알파치노, 피어스 브로스넌, 말런 브랜도 등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 목소리를 도맡아 연기했고, 영역을 넓혀 TV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다. 성우 교육 아카데미 ‘박일 STA’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디즈니 인기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캐릭터 버즈의 목소리로 최근까지도 활동을 이어 간 터라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특별한 지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빈소는 MBC 성우극회가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성우 박일 별세…‘CSI’ 그리섬 반장, ‘토이 스토리’ 버즈 등 연기

    성우 박일 별세…‘CSI’ 그리섬 반장, ‘토이 스토리’ 버즈 등 연기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의 길 그리섬 반장 등의 목소리 연기로 유명한 성우 박일(본명 조복형)씨가 별세했다. 69세. 31일 한국성우협회 등에 따르면 고인은 31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고인에게 특별한 지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구체적인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1967년 TBC 3기 공채 성우로 데뷔해 1970년부터는 MBC 성우극회 소속 4기로 활동했다. 고인은 외화 더빙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며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목소리를 각인시켰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알파치노, 피어스 브로스넌, 말론 브랜도 등 할리우드의 중후한 남성 톱 배우들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CSI’ 시리즈 속 길 그리섬 반장, 디즈니 인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버즈의 목소리로 유명하다. 최근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 4’ 더빙에도 참여했으며, 이와 관련해 일부 매체와 인터뷰도 남겨 갑작스러운 고인의 죽음에 업계 관계자들도 충격에 빠졌다. 박일은 젊은 시절에는 TV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으나 이후에는 성우 활동에만 전념했다. 한때는 성우 교육 아카데미 ‘박일 STA’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그가 생전 속했던 MBC 성우극회가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 중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설] 심상찮은 경제지표, 정부에 대한 경고다

    기업들 실적과 경기 심리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7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모든 산업의 업황BSI는 한 달 전보다 1포인트 내린 73이다.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를 보여 주는 지표로 기준치인 100이 안 되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좋게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앞으로의 경기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 주는 8월 업황전망BSI는 71로 4포인트 내렸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2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보다 낮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지고 시중금리가 더 떨어질 것(채권값은 상승)이라 보고 장기 채권을 비싼값에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 전망이 어둡자 기업도 투자자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외화증권 결제 금액은 총 840억 6000만 달러(약 99조 5000억원)로 지난해 하반기보다 60.3% 증가했다. 올 1∼3월 해외 직접투자액은 141억 달러로 1년 전보다 44.9% 늘어났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부동산펀드 잔액은 올 들어 7조 7000억원 증가했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는데 정부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 미중 무역분쟁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일본의 수출 규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6%대 초반까지 떨어져 중국이 위험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수출은 이달까지 8개월 연속 감소세가 확정적이다. 정부는 ‘경제 위기’라는 일부 주장에 억울하다고 할 일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에 매달리는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내수와 일자리 창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8년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는 국회만 탓할 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되물어 봐야 한다. 올 들어 시작한 규제샌드박스, 규제자유특구 등 규제 개혁의 속도를 지금보다 가속화시켜야 한다. 경제주체의 경고를 흘려들어서는 경제가 회복될 가망이 없다.
  • 미, 북 군수공업부 소속 1명 제재…“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미, 북 군수공업부 소속 1명 제재…“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미국이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북한 군수공업부 소속 인사 1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군수공업부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담당하는 곳으로, 미국과 유엔의 제재 대상인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 단체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는 29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베트남에 기반을 둔 대량살상무기(WMD) 기관 대표 제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게시하고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 군수공업부 소속 김수일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재무부에 따르면 김수일은 군수공업부와 연계된 경제, 무역, 광업, 해운 관련 활동을 하기 위해 2016년 베트남 호치민시에 배치됐다. 그는 올해 초까지 무연탄과 티타늄 등 북한 내 생산품을 수출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원자재를 비롯한 다른 여러 제품의 수출과 수입 등에도 관여해 북한 정권에 외화를 벌어다 줬다. 베트남 제품을 중국과 북한 등지에 수출한 책임도 있다고 재무부는 설명했다. 김수일에 대한 제재는 대통령 행정명령 13687호에 따른 것이라고 재무부는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1월 발표된 13687호는 북한 정부와 조선노동당 당국자 등을 포괄적으로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재무부의 시걸 맨델커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김수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결의를 위반했고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을 지원했다”면서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는 이들에게 기존의 제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무부는 이번 제재가 신규 제재가 아닌 기존 제재 이행의 차원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추가 대북제재를 철회한 후 신규 제재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무부 제재 대상이 되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시민과의 거래가 금지되는데, 북한 국적자가 미국 내 자산을 보유하기 쉽지 않아 실효성은 크지 않다. 재무부는 최근 북한 기관이나 인사를 직접 겨냥하기보다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해운사 등을 타깃으로 삼았다. 북한 인사로는 북미 대화 교착 국면에서 지난해 12월 인권유린을 문제 삼아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을 제재한 것이 마지막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숨 막힌 검열의 시대가 낳은 ‘별들의 고향’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숨 막힌 검열의 시대가 낳은 ‘별들의 고향’

    1970년대는 한국영화가 침체와 불황의 긴 터널로 진입하는 시기였다. 1971년 202편의 제작편수를 유지했던 한국영화는 1972년 122편으로 급감했고, 이후 한국영화는 텔레비전과 대작 외국영화 사이에 끼어 호스티스 멜로와 무협 액션 같은 저예산 장르로 연명하게 된다. 1970년대가 극심한 암흑의 시대였다고 해서 청년들의 에너지와 희망마저 꺾을 수는 없었고, 영화계는 이를 포착해 작은 위안들을 발신했다. 서구영화의 뉴웨이브 정신과 교감하는 청년 감독들이 새로운 감수성과 신선한 영상감각을 앞세운 영화들로 젊은 관객들과 만났다. 그 포문은 이장호가 열었다. 그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은 46만 관객이라는 초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면서 산업적 활로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영화’라는 새로운 방향까지 제시했다.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이 그 뒤를 이었고, 이들을 포함한 젊은 감독들은 청년영화집단 ‘영상시대’를 결성해 한국의 뉴시네마운동을 선포한다. 이번 연재는 1970년대 한국영화가 쇠퇴하게 된 배경 그리고 ‘별들의 고향’이라는 기념비적인 데뷔작을 선보인 이장호 감독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국책영화 만들어 외화 쿼터 따낼 방법에 골몰 1972년 10월 유신정권이 들어섰고 영화계 역시 더욱 경직되어 갔다. 그리고 1973년 2월 유신 체제를 반영한 영화법 4차 개정이 있었다. 영화 제작을 하려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제작업과 수입업이 다시 통합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1973년 시점 20개였던 제작사는 12개로 줄었고, 허가받은 12개사에 제작권을 부여해 연간 제작편수를 130편으로 묶었다. 50편 내외였던 외국영화 수입권도 12개 제작사만 나눠 가졌다. 국산영화 3편을 제작하면 외화 쿼터 1편을 받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영화는 외국영화 수입 쿼터를 받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작자들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보다 저예산으로 빨리 만들 수 있으면서 관객들의 호기심과 볼거리를 채울 수 있는 영화들로 눈을 돌렸다. 특히 대중적 신파 감성에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호스티스 영화, 깡패, 스파이, 무협 등으로 분화한 액션영화가 유행했던 이유다. 물론 외화 쿼터를 더 따낼 방법 역시 존재했다. 정부가 제시하는 ‘국책영화’, ‘우수영화’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성웅 이순신’(이규웅, 1971)을 위시로 박정희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획된 ‘성웅사업’ 영화들, 문학을 영상으로 옮긴 ‘무녀도’(최하원, 1972) 같은 문예영화들, ‘진짜진짜 잊지 마’(문여송, 1976)로 시작한 ‘진짜진짜’ 시리즈, ‘고교얄개’(석래명, 1976)가 대표하는 ‘얄개’ 시리즈 등 하이틴영화들이 그 대상이 됐다. ●깡패·스파이·호스티스 영화 붐으로 이어져 4차 영화법 개정으로 설립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 역시 국책영화 제작을 주도했다. 국가가 직접 나서 ‘증언’(임권택, 1973) 등의 전쟁영화, ‘아내들의 행진’(임권택, 1974) 같은 새마을영화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들이 실질적인 국책 전파에 기능했는지는 의문이다. 1960년대부터 이어온 국가 주도의 영화 정책은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닌 것이었고, 1970년대는 그 폐해가 더 커져 갔다. 흑백이긴 했지만 텔레비전 보급률이 급증하면서, 반대로 전국의 영화관수와 관객수는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외화 한편을 수입하기 위해 졸속으로 제작된 영화들과 상업성이 없어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리고 마는 우수영화들에 흥미를 잃어 갔다. 이러한 침체 일로의 영화계에 일순간 활력을 불어넣은 작품이 바로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이었다. 1945년 5월 서울에서 출생한 이장호는 영화 검열관이었던 부친 덕에 어릴 때부터 영화와 가깝게 지냈다. 아버지가 일하던 검열실에 따라가 채플린 영화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보기도 했고, 집에서는 아버지가 가져온 필름을 만지고 놀았다. 그의 영화적 원경험이었던 셈이다. 학창 시절 문학에 탐닉했던 그는 홍익대 건축미술학과에 입학했지만 제도권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부친은 방황하던 그를 ‘신필림’으로 데려간다. 애초 배우를 희망했지만 신상옥 감독 앞에서 자존심이 상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1968)를 비롯해 신필림에서 연출부 생활을 했으나, 적극적으로 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도에 연출부를 그만두기도 했고, 극단 일도 하면서 자신만의 일을 모색하는 쪽이었다.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한순간에 바뀌었다. 1973년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소설 ‘별들의 고향’ 판권을 치열한 노력 끝에 확보한 것이다. 사실 소설가 최인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역시 감독 데뷔도 하지 않은 친구에게 덜컥 판권을 내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장호는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최인호의 집에 던져놓고 오는 막무가내식 고집을 부리며 결국 승낙을 받아낸다. 하지만 이후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도제 시스템이 확고하던 시절, 신필림에서 연출권을 확보하기 힘들 것을 직감한 그는 도망치듯 떠나 하길종 감독이 소개한 화천공사로 옮긴다. 연출부 제2 조수 출신의 영화청년이 일순간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여하튼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데뷔작 ‘별들의 고향’이 46만 관객을 동원하는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이장호는 일약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1000만 영화’ 시대인 지금으로 치면 대단치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영화 개봉이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로 세 달 내내 이 영화만 상영했던 결과인 것이다. 개봉관은 바로 을지로 4가의 국도극장이었다. 이후 그는 ‘어제 내린 비’(1975)로 흥행을 이었고, 1975년 8월 동료 감독 하길종, 김호선, 홍파, 이원세 그리고 영화평론가 변인식과 함께 ‘영상시대’를 결성한다. 1975년도 한국영화 흥행 1위부터 3위까지 작품이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36만),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5만), 이장호의 ‘어제 내린 비’(14만)가 랭크된 것에서 영상시대 동인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작품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1976)으로 이장호의 1970년대 연출 활동은 갑자기 끝나버렸다. 1976년 연예인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활동 정지를 당한 것이다. 촉망받는 젊은 감독에서 순식간에 낭인으로 전락했던 4년간, 그는 말 그대로 각성의 시기를 보낸다. 특히 염무웅의 평론집 ‘민중 시대의 문학’은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1979년 12월 유신정권 종식으로 감독 자격을 회복한 그는 그간의 고민을 담아 연출한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작가주의적 인장이 새겨진 ‘바보선언’(1983), ‘과부춤’(1983)의 흥행 실패로 위기감을 느꼈지만, 보란 듯이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을 히트시키며 뛰어난 상업적 감각을 입증하기도 했다. ●김홍준, ‘바람불어 좋은 날’ 보고 ‘감독의 길’로 이장호는 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영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인력들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배창호, 장선우, 김동원 등은 그의 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했고, 신승수, 정지영, 장길수 등은 ‘영상시대’가 개최한 오디션을 통해 영화계로 진입한 바 있다. 또 김홍준, 강우석, 임상수 같은 감독들이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바로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나서라는 것도 잘 알려진 얘기다. 그는 1980년대 한국의 ‘뉴웨이브’ 영화, 더 나아가 현대 한국영화의 기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장호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자. 김홍준 교수가 기록한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작가, 2013)에서, 이장호 감독이 직접 ‘별들의 고향’의 기록적인 흥행에 관해 언급한 대목이다. “관객이 10만명 들었을 때 이 소설의 인기를 진짜 실감했어요. ‘어떻게 이 소설이 인기가 있어서 관객을 이렇게 끌어왔나.’ 10만을 넘어서 20만 되는 동안엔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면 ‘이장희 영화음악도 참 효과를 탔구나.’ 사람들이 음악 얘기를 많이 하니까. 근데 30만이 드니까 그제야 비로소 내 잃어버렸던 자존감 ‘영화도 잘 만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디어 싹트기 시작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30만이 넘어서 40만이 드니까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슬퍼져요, 뭔가 배신당한 느낌. 이 영화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구나, 혼자 달려가는 말 같구나, 주인 없는 말처럼 달려가는구나.”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기성 감독 누군가가 영화화를 맡았다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별들의 고향’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당시 충무로의 수많은 선배 감독들이 판권을 탐내고 있는 상황에서, ‘초짜 감독’ 이장호는 어떻게 한국영화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거칠고 투박하지만 신선하고 감각적인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그의 타고난 직관력과 돌파력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는, 카메라를 직접 잡는 신상옥 감독 특유의 촬영 현장에서 게다가 제2 조감독에 머물렀기 때문에 연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구영화를 섭렵했던 영화 청년으로서의 세월이 그의 연출 방향을 직관적으로 알려주었다. 사실 ‘별들의 고향’은 이전의 한국영화처럼 이야기를 촘촘하게 설명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광나루에서 한 첫 촬영부터 즉흥적으로 연출하며 장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촬영해 놓은 필름을 돌려본 편집실에서 비로소 구성을 시작했다는 이장호의 증언처럼, 그는 편집 감각을 통해 아마추어리즘을 참신함으로 바꿔놓았다. 영화는 플래시백 구조의 리듬도 균일하지 않고 차라리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지만, 이는 도리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영화 속으로 몰입시킨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이장희 음악도 큰 몫… “아마추어리즘의 승리”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도 큰 몫을 했다. 이전의 한국영화들은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 영화음악의 대가들이 녹음실에 오케스트라를 불러 잠깐 맞춰본 뒤 일사천리로 즉흥적인 음악을 녹음하는 식이었다. 이장호는 고교 후배인 가수 이장희에게 음악을 맡겼고, 아예 레코드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무려 40여일을 투자했다. 물론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혹은 잘 몰라서, 신선하게 음악을 배치한 것이 주효했다. 이장희가 부르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소녀가 울고 있네’가 흐르는 장면들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일 것이다. 이장호가 “아마추어리즘의 승리”라고 규정한 것처럼, ‘별들의 고향’이라는 흥행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새로운 세대들이 그들의 느낌대로 과감히 밀고 나간 덕분이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별들의 고향’은 이후 두 가지 경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선취한 도시 속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김호선, 1977)로 이어지며 흥행과 비평을 두루 만족시켰다. 하지만 이 작품들의 성공은 1970년대 후반, 순수한 여주인공이 호스티스로 전락하는 과정을 관음증적 볼거리로 전시하는 것에만 주력하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유행을 낳았다. 한편 새로운 감수성과 영상 감각은 ‘청년영화’의 선명한 줄기를 만들어냈다. 다음 연재를 통해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과 영상시대 활동을 살펴보기로 한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이도헌의 돼지농장 주인으로 살기] 일본 경제 도발의 극복, 지킬 것은 지켜야

    [이도헌의 돼지농장 주인으로 살기] 일본 경제 도발의 극복, 지킬 것은 지켜야

    주 52시간 근무제로 외식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다. 이전 같은 회식 문화가 사라지면서 식당의 저녁 매출은 줄어들고 대신 점심시간대 매출 비중이 늘고 있다고 한다. 단위 매출이 작은 점심의 비중이 늘면서 대표적인 자영업인 식당 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다. 식당의 매출 변화는 돼지고기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저녁 회식 자리의 단골 메뉴가 삼겹살이다. 회식 자리가 줄면서 돼지고기 소비도 줄어든다. 그래서인지 요즘 돼지고기 가격이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52시간 근무제로 엉뚱하게 자영업과 축산업이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당장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을 반길 사업자는 없을 것이다. 예상 못한 불경기를 다들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현장에서는 저녁이 있는 사회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적 도발로 우리 사회가 뒤숭숭하다. 당장 반도체 등 우리 경제의 간판격인 대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라가 어려우면 가만 있을 우리 국민들이 아니다. 택배 노동자들은 일본 제품의 배송을 거부하고 나섰고, 중소 상인들은 일본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개인적인 손실을 부담하면서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여행객까지 포함하면 일본의 경제 도발에 응대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은 눈물겹기만 하다. 부품 조달 시장 다변화는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기업의 기본적인 기능이다.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일본 정부의 도발이 일차적인 규탄의 대상이 돼야 하겠지만,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특정 국가 특정 기업에 핵심 원부자재를 전적으로 의존한 국내 대기업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범국민적인 일본 제품 거부 운동은 국내 대기업의 경영상 난맥상 그리고 정부 기관의 미온적 대응에 일반 국민이 나서는 모양새가 됐다. 사실 이런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1998년 외환위기는 대기업들의 무리한 차입경영과 금융기관의 방만한 외화 차입 그리고 금융시장 규제에 실패한 정부에 주된 책임이 있었다. 대기업ㆍ금융기관ㆍ정부의 무능으로 텅 빈 나라 곳간을 한 푼이라도 채우고자 온 국민이 금 모으기에 나섰고, 가혹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자유화를 받아들였다. 온 국민이 합심해 외환위기에서 벗어났고 경제는 회복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회복의 성과는 외환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대기업과 금융산업에 귀속됐고, 정든 직장을 떠난 노동자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후 빈익빈 부익부는 더욱 심화됐다. 지금 정부는 일본의 경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현 정부 들어 심혈을 기울여 온 52시간 노동제도에 예외를 두고, 화학물질과 관련한 환경 규제도 유예하겠다고 한다. 주 52시간 노동제도는 정부가 추진한 제도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고, 자영업자와 축산업자 등 여러 경제주체들이 희생을 감수하며 정착되고 있다. 그리고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의 배경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참사가 있다. 일본 정부의 경제 도발은 우리 경제에 중대한 위기이자 도전이다. 하지만 정부가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사회적 공감대와 여러 경제주체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착돼 온 정책에서 후퇴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위기 대응과 극복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성과가 과거처럼 특정 산업이나 집단에 편중돼서는 안 될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의 모순, 비용과 희생은 국민들이 부담하고, 그 성과는 대기업에 편중됐던 시행착오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다시 외환위기가 와도 금붙이를 내다 팔 국민도 없을 것이고, 수입 반대 운동에 나설 국민적 연대도 없을 것이다.
  • [데스크 시각]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두걸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두걸 경제부 차장

    #1. A국가는 ‘쌀 가격이 20㎏당 10만원이 되기 전까지 쌀 수입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마련했다. 쌀값 하락에 반발한 지주들을 의식한 조치였다. ‘언제까지 비싼 가격에 쌀을 사서 먹어야 하냐’는 일반 국민들의 반발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2. B국가는 원래부터 관세 장벽을 높게 쌓기로 악명이 높았다. 과세 품목의 평균 관세율이 53%를 넘었을 정도다.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현실이 다른 부작용을 덮고도 남았다. A국과 B국은 자유무역주의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재의 기준으로는 패도(霸道) 국가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A국은 19세기 초 영국, B국은 20세기 초 미국이다. 영국이 자유무역의 모태라면 미국은 자유무역을 번성시킨 주역이다. 영국이 지주 계층의 보호를 위해 활용했던 법안은 곡물령이다. 1815년 제정돼 무려 31년이나 존속한 뒤에야 폐지됐다. 20세기 초까지 미국 역시 보호주의 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신들이 경제력 면에서 압도적인 패권을 장악한 이후에야 보호무역주의자에서 자유무역의 전도사로 돌변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자유무역주의는 만고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의 창출을 위해 동원한 이데올로기에 가까웠다. 최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는 자유무역 체제에 노골적으로 역행한다. 그러나 미국은 팔짱만 낀 채 지켜보고 있다. 미국의 행보는 어찌 보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자국 중심주의 극대화라는 면에서는 이란성 쌍둥이다. 미국은 순순히 ‘팍스아메리카나’에서 ‘팍스시니카’로의 전환을 마냥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 일본 역시 ‘IT의 쌀’ 반도체 등을 무기로 부상하는 한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 전쟁과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는 자유무역으로 굴러가던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지만 이들이 정책의 방향을 바꿀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이라는 ‘이상’을 좇기에는 위상 약화라는 ‘현실’의 무게가 그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국 기업들의 대한국 수출이 막혀 일본이 정책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은 단견에 불과하다. 내가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경쟁자가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보면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에 해당한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압박이 장기화될 여지가 높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해지는 것 역시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1950~1970년 ‘황금기’에 세계 경제는 연평균 4.8%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1970년대 4.4%, 1980년대 3.3%, 1990년대 2.9% 등 추세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 4.0%로 반등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 보수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기 마련이다. 유럽과 남미 등에서 우익 정당들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봉했던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이라는 신앙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더 확실한 것은 기존 선진국처럼 국수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선택했을 때의 한계는 명확하다는 점이다. 부족하던 내수시장과 부존자원이 갑자기 커질 리 만무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반대에 선 편이 있다면 그들은 현해탄 건너에 있다’는 식으로 적대감을 부추기는 대신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앨프리드 마셜)을 갖는 것이다.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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