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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일의 어린이책] 피난 열차/헤미 발거시 글

    요즘 아이들에게 전쟁은 TV뉴스에서나 잠깐씩 보는 먼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반세기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혹함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간 지은이가 외할머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피난 열차’는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이다.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은 수미는 생계를 위해 군에 입대한 엄마 대신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다.생일날,쓸쓸해하는 수미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외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란을 가던 중 붐비는 피란 열차에서 외할아버지와 헤어져 다시 못보게 된 슬픈 과거를 들려준다.순간의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로 굳어진 외할머니에 비해 자신은 곧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수미는 슬픔을 거두고 희망을 되찾는다. 수채화로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한 화가 크리스는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일러스트레이터협회가 주는 금메달상을 받았다.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 책] 엄마는 언제나 너와 함께할 거야/래스키 글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담은 책.‘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단다.’로 시작되는 이야기속 옛날 엄마는 지금의 딸과 하나도 다르지않은 모습이어서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엄마는 딸에게 수줍은 듯 고백한다.‘엄마도 너처럼 어릴 때가 있었어.’그때는 외할머니가 만들어주던 젤리가 마법 같았고,양철 쓰레기통 뚜껑을 엎어놓고 발을 구르며 춤추는 걸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소녀였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안경을 걸친 채 연필을 귀에 꽂고,할 일이 잔뜩 적힌 종이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다닐 때’가 많지만 우아한 치마를 입고 발레리나처럼 발뒤꿈치를 곧추세우던 꿈많던 시절이 있었음을 들려주는 대목은 정겹기 그지없다.엄마의 따뜻한 눈빛과 표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섬세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돋보인다.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외국인노동자 자녀의 어린이날

    82돌 어린이 날을 맞아 평소 소외된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어울려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는 등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과천 서울랜드,경기 용인 에버랜드 등 수도권의 주요 놀이공원에는 3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또 야간까지 문을 연 놀이공원들 때문에 인근 도로는 밤늦게까지 정체현상을 빚기도 했다.하지만 한편에서는 홀아버지의 돌연사로 홀로 남게 된 소녀의 사연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주노동자의 자녀들,모처럼 함박웃음 “어린이날에도 일하러 간 우리 아빠가 같이 올 수 있었으면….” 5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 잔디마당에서 몽골·방글라데시·중국·스리랑카·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자녀 80여명과 우리나라 어린이 90여명이 ‘어린이날 무지개 축제’에 참석,인종과 국적의 벽을 넘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회장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가 마련한 이날 행사에서는 자원봉사에 나선 6명의 소아과·치과 의사들이 건강검진을 실시하기도 했다.또 용천 어린이 돕기 모금 행사도 열렸다. ‘사랑의 썰매 끌기’에서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잔디썰매를 탄 방글라데시 출신 타냐(11)양은 “새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너무 재미있다.”고 좋아했다.낯선 외국인 친구를 처음 만난 이아름(12)양은 “처음에는 피부색,머리카락 등 생김새가 달라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친해졌다.”고 웃었다.하지만 행사장에는 부모가 휴일 근무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외국인 어린이들은 혼자 참석했다.김성수 건강협회장은 “다양한 색깔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처럼,자라나는 어린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 갈등과 전쟁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빠잃고 혼자된 열살 소녀 4년 전 어머니를 잃고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함께 살던 초등학교 3학년생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마저 잃었다. 4일 오후 9시쯤 서울 양천구 신월1동 강모(44·무직)씨 집에서 강씨가 딸(10)과 함께 식사를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강양은 아버지가 쓰러져 움직이지 않자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강씨는 수족관을 운영하다 4년 전 지병으로 아내를 잃은 뒤 딸과 단둘이 살며 식사도 거른 채 매일 소주 2병을 마시다 알코올중독자가 됐다.지난해 12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지난 1월 퇴원하기도 했다.주민들은 “강씨는 끼니 때마다 딸의 식사를 직접 챙길 정도로 자상했다.”고 말했다. 안동환 채수범기자 sunstory@˝
  • [김영희 이혼클리닉] ‘국제결혼’ 부모님 설득 어렵네요

    미국계 은행에 다니는 29세 청년입니다.아버지는 대기업 간부로 일하시고,어머니는 명품가게를 운영하며 여동생도 있습니다.2년째 사귀고 있는 미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데 어머니 반대가 완강합니다.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하시고요.설득할 방법이 없을까요? -정승국 정승국씨.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을 접하고,제 경우와 똑같아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외아들인 승국씨가 미국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 했을 때,어머니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저는 이해합니다.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한국인 의식 속에 잠재하는 유교사상과 단일민족 선호사상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아직도 국제결혼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6년 전,제 아들도 미국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습니다.10여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온 저도 아들이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눈 앞이 캄캄했습니다.국제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 뜻에 철석같이 동의를 해 왔던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이제까지 불효해 본 적 없었는데….”라며 결혼 말을 꺼내더군요.‘하늘이 내려준 효자’라고 칭송받던 아들이,부모가 받을 충격 같은 건 염두에도 없는 것 같아 “저 녀석 내 아들 맞아?”라고 했습니다. 침묵으로 2년을 보낸 어느 날,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해 봤습니다.아들이 사랑하는 여성과 헤어져 가슴 아파 운다면,차마 못 할 짓이다 싶었습니다.결혼을 승낙키로 마음을 정하고 아들을 만났더니 “우리 헤어지기로 했어요.제겐 어머니가 더 소중합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그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을 향한 제 사랑보다,아들이 제게 준 사랑이,훨씬 깊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결혼 승낙하러 왔다.축하한다.”이 한마디로,그동안 우리집안에 자욱했던 안개가 일시에 걷혔습니다.“감사합니다.둘이서 더 많이 노력해서 평생 효도하겠습니다.”아들과 며느리는 우리 부부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지금 미국 며느리는 집안 식구들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하고 있습니다.우리 부부가 그곳을 방문할 때면,인삼차에 잣을 띄워 두 손으로 공손히 대접하고,김치찌개,고추장 불고기,시금치나물을 만들어 내놓습니다.국제결혼에 대한 제 인식이 잘못됐었다는 것을,살아가면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승국씨.미국 여성에게 외아들을 결혼시키고 싶지 않는 부모 마음,당연한 것입니다.문화와 풍습,언어와 생활습관이 전혀 달라서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정’과,여자들끼리만 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외국 며느리와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저도 했었으니까요.하지만 사람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더군요. 승국씨.두 사람은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제 경우와 다를 수 있습니다.부모님께서 결혼 승낙을 하신다해도,결혼 전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승국씨는 영어를,결혼할 아가씨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할 것이며,한국인의 풍습과 예절도 익혀둬야만 문화적 갈등으로 오는 오해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들끼리 결혼을 해도 살다보면 이러쿵저러쿵 탈이 많은데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해 온 두 사람의 결혼은,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둬야 할 것입니다.뜨거운 마음만 앞세우지 말고,앞으로 생길 수도 있을 문제점을 잘 생각해 보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길 바랍니다.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어머니를 설득하되,가족들의 협조를 구하세요.외할머니께서는 찬성하신다니 측면 지원을 받으시고,여동생의 협조도 구해야겠지요.또한 중립을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를 두 사람이 밖에서 자주 만나 뵙고,신뢰받을 수 있는 행동을 보여드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을 십분 이용해 보세요.두 사람의 진실된 사랑과 노력의 자세가 보일 때,어머니께서도 생각을 달리 하실 수 있을 겁니다.‘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어머님을 자극하지 말고,변함없는 극진한 자식사랑을 보여드리세요.‘사랑의 여신’은 당신 편이 될 겁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김영희 이혼클리닉] ‘국제결혼’ 부모님 설득 어렵네요

    미국계 은행에 다니는 29세 청년입니다.아버지는 대기업 간부로 일하시고,어머니는 명품가게를 운영하며 여동생도 있습니다.2년째 사귀고 있는 미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데 어머니 반대가 완강합니다.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하시고요.설득할 방법이 없을까요? -정승국 정승국씨.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을 접하고,제 경우와 똑같아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외아들인 승국씨가 미국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 했을 때,어머니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저는 이해합니다.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한국인 의식 속에 잠재하는 유교사상과 단일민족 선호사상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아직도 국제결혼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6년 전,제 아들도 미국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습니다.10여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온 저도 아들이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눈 앞이 캄캄했습니다.국제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 뜻에 철석같이 동의를 해 왔던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이제까지 불효해 본 적 없었는데….”라며 결혼 말을 꺼내더군요.‘하늘이 내려준 효자’라고 칭송받던 아들이,부모가 받을 충격 같은 건 염두에도 없는 것 같아 “저 녀석 내 아들 맞아?”라고 했습니다. 침묵으로 2년을 보낸 어느 날,나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해 봤습니다.아들이 사랑하는 여성과 헤어져 가슴 아파 운다면,차마 못 할 짓이다 싶었습니다.결혼을 승낙키로 마음을 정하고 아들을 만났더니 “우리 헤어지기로 했어요.제겐 어머니가 더 소중합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그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을 향한 제 사랑보다,아들이 제게 준 사랑이,훨씬 깊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결혼 승낙하러 왔다.축하한다.”이 한마디로,그동안 우리집안에 자욱했던 안개가 일시에 걷혔습니다.“감사합니다.둘이서 더 많이 노력해서 평생 효도하겠습니다.”아들과 며느리는 우리 부부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지금 미국 며느리는 집안 식구들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하고 있습니다.우리 부부가 그곳을 방문할 때면,인삼차에 잣을 띄워 두 손으로 공손히 대접하고,김치찌개,고추장 불고기,시금치나물을 만들어 내놓습니다.국제결혼에 대한 제 인식이 잘못됐었다는 것을,살아가면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승국씨.미국 여성에게 외아들을 결혼시키고 싶지 않는 부모 마음,당연한 것입니다.문화와 풍습,언어와 생활습관이 전혀 달라서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정’과,여자들끼리만 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외국 며느리와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저도 했었으니까요.하지만 사람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더군요. 승국씨.두 사람은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제 경우와 다를 수 있습니다.부모님께서 결혼 승낙을 하신다해도,결혼 전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승국씨는 영어를,결혼할 아가씨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할 것이며,한국인의 풍습과 예절도 익혀둬야만 문화적 갈등으로 오는 오해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들끼리 결혼을 해도 살다보면 이러쿵저러쿵 탈이 많은데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해 온 두 사람의 결혼은,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둬야 할 것입니다.뜨거운 마음만 앞세우지 말고,앞으로 생길 수도 있을 문제점을 잘 생각해 보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길 바랍니다.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어머니를 설득하되,가족들의 협조를 구하세요.외할머니께서는 찬성하신다니 측면 지원을 받으시고,여동생의 협조도 구해야겠지요.또한 중립을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를 두 사람이 밖에서 자주 만나 뵙고,신뢰받을 수 있는 행동을 보여드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을 십분 이용해 보세요.두 사람의 진실된 사랑과 노력의 자세가 보일 때,어머니께서도 생각을 달리 하실 수 있을 겁니다.‘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어머님을 자극하지 말고,변함없는 극진한 자식사랑을 보여드리세요.‘사랑의 여신’은 당신 편이 될 겁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초등학교 예비소집뒤 7일째 실종

    초등학교 입학 예비소집을 마친 7세 남자 어린이가 일주일째 집에 돌아오지 않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인천시 동구 송림동에 사는 박모(7)군은 지난 4일 오전 9시 외할머니와 함께 자신이 입학할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참석한 뒤 인근 학원에 갔다가 가방만 남겨둔 채 다시 나가 귀가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박군이 지난 6일과 8,9일 집 인근에서 10대 초반의 학생 1명과 함께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다는 친구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박군 집 주변의 빈집 60여곳과 오락실,만화방 등지를 돌며 박군을 찾고 있다. 한편 과자를 사먹는다며 집을 나가 110일째 연락이 끊긴 장모(8·초등1년)양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도 평택경찰서는 평택시 안중읍 장양의 집에서 가까운 오성 치안센터에 수사본부를 마련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주말매거진We/술따라 맛따라-가야곡왕주

    해마다 5월이 되면 서울 종묘에선 조선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고 제례를 올렸던 종묘대제가 재현된다. 이 종묘대제에서 쓰이는 제주(祭酒)가 바로 충남 논산의 ‘가야곡 왕주’다.‘가야곡’은 논산시 가야곡면에서 따왔고,‘왕주’는 왕실에서 마시던 술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술도가의 안주인 남상란(57)씨를 가야곡면 육곡리 가야곡왕주 전시장에서 마주했다.명인 제13호로 지정돼 있는 남씨는 외할머니,친정어머니에 이어 왕주를 빚어왔다. “외할머니(민재득)는 명성황후(민비) 친정인 민씨 집안 분이셨어요.당시 민씨 집안에선 대대로 빚어 마시던 곡주에다 조선 중엽 성행했던 약주를 접목시켜 술을 빚어서 왕실에 진상했다고 해요.그 비법을 친정어머니(도화희)가 이어받아 제게 물려주셨지요.” 지금 ‘가야곡왕주’는 술 이름인 동시에 사업체 상호이다.원래 남씨 시댁은 60년대부터 동동주,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반야주조장)을 운영해온 술도가집.한때 ‘가야곡 동동주’‘뻑뻑주’로 충남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으나,90년대 들어 토속주가 외면당하면서 사업이 위기에 몰렸다. 이때 남씨는 남편(이용훈·57)에게 친정의 가양주를 빚어볼 것을 권유해 91년 ‘가야곡왕주’란 이름으로 빛을 보게 됐다.술이 기대 이상의 호평을 얻고,97년엔 종묘대제의 제주로 쓰이게 되자 부부가 상의해 아예 상호를 가야곡왕주㈜로 바꿨다.왕주는 소곡주처럼 덧담근 약주다.멥쌀떡에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밑술에 찹쌀밥과 누룩,야생국화,홍삼,구기자,오미자,솔잎 등을 혼합해 덧술을 빚는다.재료 하나하나가 예로부터 질병 예방이나 치료에 효능이 탁월한 것만 모아 놓았다.여기에 임금의 입맛과 건강을 생각하며 빚던 정성이 들어있으니,그 맛이 예사롭지는 않을 터. 남씨가 시음용으로 내온 술을 한 잔 권한다.혀끝에 감도는 감칠맛과 그윽한 향은 우리 전통 약주의 맛 그대로인데,무언가 특이한 느낌이 하나 온다.머릿속을 씻어주는 듯한 상쾌함이 그것.누룩 특유의 냄새가 주는 묵직한 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온 숙성과 급속 냉각 여과법을 쓰기 때문이에요.술을 빚어 숙성시킬 때 10도 이하에서 발효시키고,떠낸 술은 특수한 냉각여과기를 이용해 불순물을 깨끗이 걸러냅니다.” 이 방법은 누룩냄새를 싫어하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도입했는데 상당히 반응이 좋다고 한다.또 외국인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미국,일본 등에 수출도 한다. 불순물을 깨끗이 걸러냄으로써 보통 상온에서 보름 정도인 저장기간을 2년으로 늘려,보관에 따르는 문제점도 사라졌고,숙취도 거의 없다고 한다. 가야곡왕주㈜가 생산하는 술은 약주인 가야곡왕주와 증류식 소주,막걸리격인 뻑뻑주 등 3가지.남씨의 세 아들인 이정연(36)·준연(33)·규연(30)씨가 각각 하나씩 맡아 왕주의 계보를 잇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이들은 일대에서 ‘누룩 3형제’로 유명하다. 남씨는 요즘 가야곡왕주와 찰떡궁합을 이룰 만한 음식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일본의 청주인 ‘사케’가 생선회(스시)와 결합해 세계시장에서 대 성공을 거두었듯이 전통주와 고유의 음식 결합을 통해 외국인들의 입맛을 잡아보려는 것이다. 글 논산 임광동기자 sdragon@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논산IC에서 빠져 68번,4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가야곡,양촌 방면으로 15분쯤 가다보면 도로 왼쪽으로 가야곡왕주 공장과 전시판매장이 나온다.천안-논산 고속도로 서논산IC에서 나와 4번 도로를 이용해도 된다.전시판매장에서 가야곡왕주를 시음해본 뒤 구입할 수 있다.(041)741-8353∼4. ●여기도 구경하세요 논산은 부여나 공주처럼 백제 유적지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두 도시 못지않게 백제의 흔적이 많다.우선 계백장군이 5000명의 군사로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황산벌이 있다.4번을 싸워 이겼으나,결국 패했던 이곳엔 통한의 한을 품고 전사한 계백장군의 무덤이 있다. 고려 태조가 936년 후백제 정벌에 성공하고 세우게 했다는 개태사에도 가보자.태조는 당시 친히 지은 발원문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도움 때문이니 앞으로 불위(佛威)로써 나라를 옹호하기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노성면 일대에 있는 노성산성은 논산 동부지역으로부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당시 백제가 논산 일대에 쌓았다고전해지는 13개의 크고 작은 산성들중 유일하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무얼 먹을까 은진미륵이 있는 관촉사 입구에 가면 ‘돌체’란 한정식집이 있다.주인의 깔끔하면서도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손맛이 느껴지는 곳.특히 생선회와 홍어회 등 해산물 맛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4인기준 1상에 7만원.인원이 적거나 한정식이 부담스러우면 갈치정식(1만2000원)이나 불고기(1만원)를 고르면 된다.(041)732-3422.
  • [길섶에서] 꼬마의 밤 나들이

    중학교 다니는 꼬마 녀석이 밤 10시가 넘어 갑자기 놀다 오겠다며 옷을 주섬주섬 챙긴다.며칠 전 외할머니가 미국에 갔다오며 사온 홑겹의 운동복 상의도 걸쳤다.바깥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돈다며 두꺼운 점퍼로 바꿔 입으라고 채근하자 속에 남방 한벌을 더 입겠단다.‘오죽 자랑하고 싶었으면’하는 마음에 외출을 허락했다.그러자 녀석은 잔득 껴입은 옷 때문에 몸이 두배로 불어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현관 문을 나선다. 첫째와 두살 터울인 꼬마는 새 옷을 얻어 걸친 적이 별로 없다.형이 1∼2년 입고 지겨워질 때쯤이면 녀석의 차례다.그래서 큰 녀석은 새 옷을 사주어도 항상 시큰둥한 반면 꼬마 녀석은 어쩌다 새 옷을 사주면 얼굴 가득히 기쁨이 넘친다. 막내인 나도 어린 시절 새 옷을 받았던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언젠가 아버지가 사온 형의 점퍼에 시샘이 나서 몰래 면도칼로 박박 찢었다가 무척이나 혼난 적이 있다.그래도 아직까지 꼬마가 형의 옷에 흠을 내지 않은 것을 보면 나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득정논설위원 djwootk@
  • “福은 나누고 恨은 풀고 사시게나”인간문화재 노만신 김금화 씨

    “아직도 무속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이나 정신유산으로 보아야 합니다.” 11월 중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 예능 보유자 20여명이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굿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은 목이 길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김금화(金錦花·72) 선생이었다. 고운 얼굴에선 신기(神氣)가 풍겨나오는 것 같았다.굿 막바지엔 나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날래게 사다리를 올라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영령과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무속은 미신이 아니라 민족신앙 11월 말 서울 이문동 자택 ‘김금화무속연구소’에서 만난 노만신(老萬神)은 외래종교에 밀려 무속(巫俗)을 체계화하여 무교(巫敎)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노만신은 불교나 기독교를 인정하듯이 무속도 하나의 신앙으로 보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할머니들은 집안이나 뒤꼍에 정화수를 떠놓고 소복 차림으로 ‘자식들이 건강하게 해달라.’‘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지요.한 집에서 굿을 하면 온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잔치를 했습니다.굿은 사람들이 그간 쌓인 앙금을 풀고 마지막엔 울기까지 하면서 새로 결속하는 화해의 마당이었어요.무속은 그런 정신과 전통을 잇는 것이지요.” 1985년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 82-나호가 된 노만신은 국내외에서 해마다 30,40차례 굿이나 굿 공연을 하며 우리의 민속신앙과 전통예술을 알리고 있다.배연신굿은 배를 가진 선주와 선원의 안전과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뱃굿,대동(大同)굿은 마을의 평안과 생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마을공동체의 굿이자 제사다. 지난해 4월에는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와 하와이대 등을 순회하며 서해안 풍어제를 공연했다.11월에는 프랑스 파리 가을축제에서 관객들의 환호 속에 대동굿을 펼쳤다.올 7월과 11월에도 미국 뉴욕 링컨센터 페스티벌과 일본 미야자키현 초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링컨센터에서 9·11 테러 참사의 아픔을 위무하고 인류 평화를 비는 대동굿이 펼쳐지자관객들은 감탄을 연발했고 출연진 20여명과 어우러져 떡과 과일,술을 나누고 춤을 추며 뒤풀이를 했다. 지난 10월에는 서울대 학술회의 초청으로 인류학 민속학 국문학 종교학 교수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굿의 의식과 정신 등에 대해 강연했다. ●美·佛등 해외 굿공연 관객들 환호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금화가 무당이 된 것은 17세 때.14살에 이웃마을로 시집을 갔다가 시어머니가 일을 하지 못한다며 때리고 밥도 주지 않아 친정에 되돌아왔다.그런데 혼잣말을 하고,각혈을 하고,말발굽 소리가 들리고,꿈 속의 호랑이가 옆구리를 물고,속이 메스껍고,진저리를 치며 울었다.무병이 든 것이다.그러나 큰 무당이었던 외할머니 김천일은 “방자한 년”이라며 손녀가 천대받는 무당이 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그러나 손녀의 무병이 더 깊어지자 외할머니는 어느날 장구를 치며 춤을 춰 보라고 했다.그러자 김금화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나는 듯 춤을 추며 무당이 되는 것을 막았던 외할머니에게 호령을 하고 야단을 쳤다. ‘신의 말문’이 트인김금화는 마을을 돌며 쌀과 쇠를 걸립해서 외할머니를 신어머니로 모시고 내림굿을 받았다.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와 인천 화수동에 머물다가 부평과 서울 석관동 등으로 전전했다.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는 무속을 미신이라 천대하며 굿만 하면 경찰이 붙잡아가 무업을 그만두었다가 집안에 액운이 잇따라 다시 시작했다. 만신이 된 지 56년째인 요즘에는 더 늙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쩍 북한 점을 자주 친다고 한다.그러나 통일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또 날마다 신령님들에게 우리나라가 잘 되게하고,훌륭한 지도자가 나와 나라를 잘 이끌고,온 국민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그런 기도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난다고 한다. ●온 국민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굿이나 공연이 없으면 하루에 7∼8명씩 예약 고객을 상담한다.그 때 노만신은 “인내하면서 마음을 비워라.” “건강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 “한걸음 물러나 기도하라.” “상대편이 되어보라.”라고권한다.점을 치면 다 맞느냐고 물었더니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하고 웃었다. 사람을 보면 영화의 필름처럼 어떤 장면이 순간적으로 쓱 지나가거나 어떤 소리가 귀에 들리고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한단다.그런데 마음이 얽혀있거나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새벽 4시쯤이면 일어나 30∼40분 동안 2층 신당에서 기도를 하고,3시간 가량 가까운 경희대에서 조깅도 하고,뒷걸음질도 친다.그러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단군신,장군신,조상신 등 신령님의 보살핌 덕분이고,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만신은 1년에 30차례 넘게 날카로운 작두를 탄다.순간적으로 어떤 힘에 이끌려 작두에 오르는데 내려올 때까지는 자신도 다치지 않을지를 모른다고 했다.부정한 마음으로 작두에 오르면 다치는데 50여년간 서너차례 발을 베었다. 지금까지 내림굿을 해준 신딸과 신아들이 40여명인 ‘나라 만신’이자 ‘한국문화예술명인’인 김금화는 요즘 강화군 화전면 신봉리에 우리의 무속과 정신,음식문화를 연구하고 전수하는 ‘김금화당’을 짓고 있다.그 곳에서 1995년에 지은 책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라는 제목 그대로 우리 굿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생각이다. 글 황진선기자 jshwang@ 사진 강성남기자 snk@
  • 집중기획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 / (하)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라고 부르겠다는 이은숙 양

    험하고 힘든 세상이지만 우리 주위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많다.이 사회를 대신해 아무런 연고도 없이 위탁아동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키우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12월5일은 설희의 생일 김미심(金美心·37·여·서울 구로구 구로5동)·오진석(吳眞錫·38·목사)씨 부부는 부모없는 아이 3명을 데려다 키우고 있다.외동딸 하나(7)양을 두고 있지만 갈 곳 없는 김설희(7·유아원)양,신재민(8·신구로초등 2년)·강현호(12·신구로초등 5년)군을 대리양육하는 이른바 위탁가정이다. 설희는 지난해 11월,재민이는 98년 봄,현호는 지난해 10월 각각 데려와 주민등록에 얹었다.다행히 친딸 하나와는 친남매처럼 잘 지낸다. 설희의 부모는 이혼 후 각각 재혼했다.갓난애 적 사진이 있지만 부모의 얼굴은 기억 속에 희미하다. “오늘 이모에게 야단을 맞았다.엄마·아빠와 함께 살던 때가 그립다.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두 달만 참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다.힘들어도 참아야지.” 어느 날 김씨는 우연히 현호의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주위의 편견이 두려워 친딸보다 더 잘해줬는데….데리고 올 때를 생각하면 애가 이럴 수는 없는데….”잠깐이나마 후회스러운 마음이 스쳐갔다고 털어놓는다. 재민이는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살갑게 다가온다고 했다.“엄마,설거지 도와드릴께요.”라고 말할 땐 가슴이 뭉클해 힘껏 안아주곤 한단다.처음엔 말도 붙이기 어려웠던 재민이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표정이 꽤 밝아져 김씨 부부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들었다고 했다.고민을 덜어주려고 “이제부턴 엄마·아빠라고 불러라.”고 말한 뒤부터다.엄마·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만족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김씨는 분석했다. 구로5동 강남교회 목사인 김씨의 남편 오씨는 “세 아이에게도 조부모 등 친인척이 있지만 이혼과 재혼을 거듭해 아이를 맡을 수 없는 가정”이라면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성결대학에서 2년째 사회복지학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가정위탁아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중·장기 대책이 절실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재민이는 아주 어릴 때 데리고와 어쩔수 없이 동사무소에 가정위탁아동으로 등록해 적은 돈이나마 지원받고 있다.그러나 설희와 현호는 언젠가 부모들이 데리러 올 것이라는 생각에 등록을 미루고 있다. 최근엔 마음을 바꿨다.자꾸 불안해져서다.아이들이 행여 뜻밖의 사고로 다치기라도 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뒷수습할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씨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버티다 이마저 꽉 차는 바람에 얼마 전에는 교회 차량을 팔아 400만원을 마련했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오는 12월5일은 설희의 생일.이들 ‘사랑의 여섯 가족’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얘기꽃을 피울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중학교 졸업 전 엄마라 부르겠어요 유기봉(55·아산시 도고면 봉농리)씨는 부모없는 이은숙(15·아산 도고중 2년)양을 두 살 때부터 데려다 수양딸처럼 키우고 있다.유씨는 미혼인 막내 아들(28),은숙이와 한 집에 산다.아들 2명은 결혼해 분가했다. 유씨는 은숙이를 2살 때 만났다.13년 전,유씨집에 세들어 살던 은숙이 아버지는 30대 초반의 목수였다.한집에 1년쯤 같이 살았을 때 부부싸움 끝에 엄마가 은숙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은숙이에게 외할머니 집에서의 생활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은숙이는 “나만 집에 남기고 매일 외출하는 외할머니와 엄마가 미웠다.”고 말했다.외할머니 집에 온 지 10여일 후 엄마는 재혼하고 은숙이는 아빠 집으로 보내졌다. 딸이 다시 돌아오고 부인이 재혼했다는 얘기를 들은 은숙이 아버지는 목수일마저 팽개치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급기야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간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당시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유씨는 초콜릿회사를 다니면서 어렵게 살았지만 은숙이를 받아들였다.졸지에 고아가 된 은숙이는 부모 없는 스트레스 탓인지 머리숱이 모두 빠지는 병을 앓았다.유씨는 매일 약을 사와 정성스럽게 돌봤다.그는 “너무 불쌍하고 속이 상해 은숙이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숱하게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씨의 사랑 덕분에 은숙이는 밝게 자라주었다.성격이 밝아 친구가 많고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다.은숙이는 아침 6시반에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수다를 떨며 등교한다.유씨는 “저것이 아니면 새벽 5시에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며 애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유씨는 사춘기인 은숙이가 혹시 나쁜 길로 빠질까봐 걱정이다.어릴 적부터 친오빠처럼 은숙이를 챙겨준 유씨의 아들들도 요즘엔 신경을 더 쓴다.아주머니와 오빠들이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신경써라.”라고 하지만 가끔은 부모없는 설움을 겪는다.은숙이는 “일부 친구 엄마가 ‘엄마없는 애’라고 깔봐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유씨는 “남의 집 애를 3명이나 키웠지만 시집가니까 찾아오지도 않는다.”면서 “저것은 시집가면 찾아올라나 몰라.”라고 농담을 던졌다.은숙이는 “건축디자이너가 돼 남편,아줌마와 함께 살,잔디가 넓은 집을 짓고 싶다.지금은 부끄러워 아줌마를 엄마라고 못부르는데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엄마라고 부르기로 다짐했다.”며 유씨의 손을 꼭 잡았다. 특별취재반 ■나현민 충남 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 “대화단절이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는 가난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복지재단 충남가정위탁지원센터 나현민(羅賢民·30) 팀장은 “조부모와의 세대차가 너무 커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맡겨진 위탁아동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없다.”며 “고민을 숨기면서 지내서인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핵가족시대여서 평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오지 않은 점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 자녀를 규제하는 엄마·아빠가 없다 보니 절제력도 떨어진다.나 팀장은 “할머니·할아버지는 ‘어미·아비없이 크는 불쌍한 손자’로만 여겨 아이들에게 관대하다.”고 설명했다. 경제력 부재도 문제다.손자를 떠맡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남의 논밭을 부치거나 식당에 다니는 등 어렵게 살고 있다.위탁아동에 대한 지원이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맡겨 위탁아동을 돌보게 하고 있으나 시·도당 3명의 월급만 지원해 손이 모자란다.”며 세대간 단절을 막으려면 부모 나이의 후견인을 둬 그들의 고민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또 읍·면사무소에서 가정봉사자를 파견,할머니·할아버지를 도와 위탁아동을 돌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팀장은 “농어촌지역은 도시와 달리 친구 사이에 ‘왕따’가 심하지 않아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이들이 비행아동이 될 위험은 크지 않지만 농어촌도 가정해체가 가속화돼 위탁아동이 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관심과 보호가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가정위탁' 전문가 조언 전문가들은 가정위탁아동 문제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관심을 요구했다. 한국아동권리학회 이재연(李在然·53·여·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회장은 “아동문제만은 아직 ‘인권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면서 “아동에 대한 정책의 방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같은 약자층이지만 장애인,노인은 참정권 등을 통한 의사표시와 인권개선 요구가 가능하지만 아동에 대해서는 정부 등 사회적으로 보호의무가 있는 계층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상 문제로는 협의이혼 때 양육자 지정 없이도 이혼이 가능하도록 한 허점을 꼽았다. 또 친부모 아닌 사람이 양육을 맡을 경우 ‘양육수당’의 현실화 등을 통해 정신적 부담에다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지 않도록 함으로써,아동이 정상적 여건 아래 자랄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이 회장은 “어릴 때부터 교육문제에 휘둘리는 등 우리 사회의 아동 방기(放棄)가 아동문제에 대한 무대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서 “가정위탁아동 문제는 국가의 총체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세경(朴世鏡·32·여) 책임연구원도 “가정위탁아동이 좋은 환경에서 생활해도 모자랄 판인데 새 삶을 꾸려나갈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쁜 결과가 빚어진다.”면서 이 회장과 의견을 같이했다. 우선 정부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위탁가정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혜택이나 교육비 지급 등 충분한 지원책이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그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정해체로 조부모가 친손자,손녀를 키울 경우 조부모에게 부모와똑같은 법률적 지위를 부여해 최상의 여건에서 결손아동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탁가정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입양과는 달리 위탁받은 쪽이나 아동이 모두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함께 생활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알맞은 관계설정이 절실하다는 점에서다.더 나아가서는 가정위탁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체계적인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별취재반
  • ‘집으로‘ 최우수작품상 받아

    지난 17일 막내린 제1회 블라디보스토크 국제영화제에서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장편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했다.도시에서 자란 7세 철부지가 시골 외할머니집에 맡겨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따뜻하고 코믹하게 그린 ‘집으로…’는 지난 1월에도 모스크바 국제아동ㆍ청소년영화축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 “냉국에 날된장 풀어 만든 물회 여성미용·남성정력에 좋지요”제주 향토요리 대가 김지순 씨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인 김지순(金志純·67)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제주요리 역사의 산증인이다.향토음식에 관한 연구와 체계화 작업은 물론 교육·전수에 이르기까지 그의 제주음식 사랑과 자랑은 손사래를 칠 정도다. 72년 10월 유신이 선포돼 식생활개선운동이 한창일때 한국음식의 대가인 고 왕준련 선생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혼·분식 장려와 토끼고기 요리법 등을 외쳤다. 또 73년 제주 최초로 제주전문대에서 관광식품조리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20여년전 제주에서 첫 관인 요리학원을 연 사람도 그다. 84년부터는 전통차연구회인 ‘관향회’를 설립, 50여 회원들과, 차와 함께 할 수 있는 다식이나 정과 등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어릴적 외할머니와 어머니 어깨너머로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이것 저것 보고 묻고 만드는 과정에서 제주 향토음식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셈이다. 성게알로 담근 구살젓,독특한 향미가 나는 차조밥,배추꽃동으로 담근 동지김치 등은 예로부터 섬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한 토속 음식이라며“둥글고 큰 두레반을 놓고 밥과 찬을 함께 담아 먹는 방식도 넉넉지 못한 살림 가운데 나온 생활의 지혜였다.”고 소개했다. 이런 가운데 명절·단오·추석·유두·백중·동지 등 계절음식과 출산·백일·돌·혼례·회갑·제례·포제·당굿 등 통과의례 음식 등의 구분이 명확하고 쇠고기같은 육류음식보다는 해산물이 풍부해 생선국이나 조림류가 발달한 것이 제주음식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재작년에는 ‘제주도 음식문화’라는 책을 냈다.지난 73년부터 현 산업정보대의 전신인 제주전문대에 20년간 출강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현장을 누비며 연구한 내용 등을 담은 명실상부한 제주의 음식사전이다. 그의 제주시 노형동 요리학원은 언제나 성시를 이룬다.제주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본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멀리 중국 연길 등지에서도 그의 제주 돌솥밥과 김치,불고기 솜씨를 배우기 위해 왔다 간다.여성 관광객들은 남편이 골프치는 사이 김치 만드는 법을 익혀 가기도 한다. 제주시 고용촉진훈련생들과 노동부 재취업훈련생들도 그의 제자들이다.음식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했더니 ‘새마을 자장’을 아느냐고 되물었다.집 된장을 볶아 자장을 만드는 것이 ‘새마을 자장’이라고 한다. 그는 또 ‘키친 카’를 아느냐고도 물었다.모른다고 했더니 “양쪽으로 문이 열리고 위에는 큰 거울이 달린 싱크대,찬장,냉장고,등을 모두 갖춘 움직이는 부엌이 바로 키친 카”라며 “운동장에 의자만 같다 놓으면 바로 강의실이 된다.”고 했다. 식생활 개선운동이 한창일때 주부들이 낮에는 모두 일하러 나가고 없어 주로 밤에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든지 석유곤로를 들고 제주도 전역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정열도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제주음식 중 여성 미용에 좋고 남성 정력에 좋은 음식이 없는가 물어봤다.그는 “된장이 들어가는 모든 음식이 남녀 모두에 좋은 음식에 속할 것”이라며 “냉국에 날된장을 풀어 만드는 자리·한치·어랭이물회 등 물회류와 쌈밥,탕·국류 등이 그런 음식”이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개고기요리에 대해서는 “필리핀이나 중국 북한 등지에서 즐겨 먹고 있으며 우리 문헌에도 보신요리로 소개되고 있다.”며 “개고기도 요리재료인 만큼 무조건 거부할 것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키면 훌륭한 영양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토음식보존회부원장으로 있는 차남 양용진(39)씨를 비롯,첫째·둘째 며느리가 현재 김씨의 제주음식 전수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길섶에서] 어머니의 한가위

    도회지에서 자란 큰며느리였던 어머니는 명절이 되면 불만이셨다.지척에 둔 친정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시고 ‘언제 나는 우리 가족끼리만 오순도순 명절을 한번 보내보나.’를 입버릇 처럼 되뇌셨다.아버지의 사돈네 팔촌까지 줄 선물꾸러미를 바리바리 챙겨들고 아흔아홉 연재를 넘어서면 늘 입이 이만큼 나오셨던 기억이 새롭다. 며느리에 사위까지 본 지금도 마찬가지다.결국은 따라나설 양이면서 퇴직한 아버지께서 갖은 비위를 맞춰야 못이기는 척 산소길을 따라나선다.그러면서 나를 보고는 늘 “나는 니 애비 고향에 묻지말고 화장해라.”라며 웃으신다.아마 모르긴 해도 올해도 별반 다른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리라. 고향은 ‘어머니 품속’ 같아 한나절 거리도 지루한 줄 모르는 데,우리네 어머니들에게 남편의 고향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것일까.하긴 연분홍 치마가 곱던 처녀시절의 친정이 더 아련하시겠지.올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산소에도 한번 들르자고 해야겠다. 양승현 논설위원
  • [스포츠 라운지]돌아온 ‘주부 총잡이’ 부순희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자.’ 원조 ‘주부 총잡이’ 부순희(사진·36·우리은행)가 암을 딛고 다시 사선에 섰다.지난 2001년 말 위암 판정을 받은 그녀는 지난해 4월 위의 절반 이상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이 때문에 155㎝·43㎏의 가녀린 체격이 더욱 야위어 보이지만 특유의 투혼만은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과녁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 재기를 향한 의지가 이글거린다. ●근성으로 일군 여자 권총 1인자 그녀는 사격선수로서는 때늦은 지난 1983년 제주여상 1학년 때 처음 총을 잡았다.당시 국민은행 사격선수이던 언니 신희씨가 “차분하고 집중력이 좋아 사격선수로서 적당한 성격”이라며 권유했다. 86년 한일은행에 입단,첫해 태극마크를 달았다.총을 잡은지 3년 만에 타고난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그는 “언니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면서 “사격에 대한 노하우와 전술을 전수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장점은 작은 체격임에도 눈빛만으로 상대를 누를 정도로 근성이 강하다는 것.이를 바탕으로 그는 90년대 여자 권총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25m권총 국제대회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았다. 세계 최고수들이 참가하는 94년 세계선수권,99년 월드컵파이널 등을 석권했고,2001년 전국체전에서는 25m권총 비공인 세계신기록(결선합계 696.3점)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메달 후보에는 늘 그의 이름이 올랐지만 모두 발길을 돌렸다. ●아테네올림픽을 겨냥한 몸부림 암 수술로 총을 잠깐 놓은 사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 후배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전보다 갑절 이상 땀을 흘리고 있다.수술 전에는 하루 80분 정도의 훈련에 그쳤다.항상 정상에 있다 보니 자만심이 생겨 훈련량이 적었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3시간 이상 훈련한다.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시로 태릉사격장 뒷산인 불암산에도 오른다.그는 “수술 받기 전에 이렇게 열심히 훈련했으면 올림픽 메달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선 메달을 반드시 따겠다.”고 다짐한다. 권오근 우리은행 코치는 “연습 때는 전성기 기량의 85% 정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빨리 1등을 해야겠다는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대회 성적은 아직 연습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좌절은 없다.’ 그녀의 집안은 끈질기게 암의 그늘에 시달렸다.친어머니 김숙자(72)씨는 8년 전 위암수술을 받았다.다행히 지금은 손자 동규(8)를 돌봐줄 정도로 회복됐다.외할머니는 위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지난 2000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시어머니가 폐암으로 그해 10월 돌아가셨고,두 달 뒤 국가대표였고 그녀의 정신적 지주이던 언니 신희(당시 39세)씨마저 폐암에 걸려 13개월 동안의 투병 끝에 두 아들을 남기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자신마저 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며 남편 최재석(39)씨와 아들의 끝없는 격려가 없었다면 주저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그녀는 요즘 내년 4월 시작되는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겨냥해 쉴틈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글·사진 김영중기자 jeunesse@ ■병마와 싸워 이긴 스포츠 영웅들 병마를 이기고 정상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의 투혼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불굴의 스타’ 가운데 대표적인 선수가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33·미국).1997년 생존율 50% 이하의 고환암 진단을 받은 뒤 고환과 뇌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서도 지난 7월 프랑스일주 도로사이클 대회(투르 드 프랑스)를 5연패하는 신화를 일궈냈다.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100m를 세차례나 제패한 게일 디버스(37·미국)는 지난 89년 갑상선 종양의 일종인 ‘그레이브스 병’을 딛고 재기에 성공,92바르셀로나 올림픽과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100m 2연패를 이뤘다.디버스는 99년 세계선수권 여자 100m 허들에서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루드밀라 엥퀴스트(39·스웨덴)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엥퀴스트는 그해 암 판정을 받고 오른쪽 젖가슴을 잘라낸지 4개월여만에 출전했다.당시 디버스는 12초37로 우승했고,엥퀴스트는 12초47로 3위를 차지했다. 96애틀랜타올림픽 여자 200m와 400m를 석권한 프랑스의 마리 호세페레(35)도 올림픽 직후 ‘엡스타인 바 병’이라는 만성피로 증후군에 시달리며 선수생명이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페레는 2000년 프랑스 니스 국제대회에서 400m 3위에 올라 재기에 성공했다.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은퇴했지만 올해 다시 트랙에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U대회 스타덤 / 유도 81㎏급 권영우

    지난 2001년 베이징대회에 정상에 우뚝 선 권영우(22)는 자신의 2연패뿐 아니라 남자 유도에 안긴 첫 금이어서 기쁨이 두 배였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유도를 시작했다.지난 1984년 LA 올림픽에서 하형주(동아대 교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본 외할머니의 권유로 아기 티를 채 벗지 못한 4세 때 처음 유도장을 찾은 것.보성중을 거쳐 유도 명문 보성고에 진학한 뒤 오른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아 6개월 공백기로 위기를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현 남자 대표팀 사령탑 권성세 감독으로부터 집중 조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급상승했다. 같은 체급 세계 최강자인 조인철(용인대 교수)이 2001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최선호(남양주시청)라는 라이벌이 버티고 있었다.베이징대회 우승에 이어 지난해 코리아오픈과 올해 헝가리오픈을 제패했지만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최선호에게 세계선수권행 티켓을 넘겨주고 만 것.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당당히 정상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출전 좌절로 겪은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모두 털어냈다.그는 “성적이안 나올 땐 운동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많았지만 묵묵히 앞만 보고 연습했다.”며 감격해 했다.
  • 이 집이 맛있데요/ 서울 필동 고향식당

    멋이나 분위기를 찾기보다는 어린 시절 맛봤던 외할머니 손맛과 정성이 그리워질 때,딱 맞는 집이 바로 서울 중구 필동의 ‘고향식당’이다.단골 직장인들은 “입맛이 없거나 감기를 앓고 난 후에는 고향식당 밥이 좋다.”고 말한다.맛의 비결은 전남 영암출신 임연심(69)씨의 깔끔한 성격에서 비롯된다.“내가 먹어서 맛없는 것은 못 판다.”는 주인 할머니는 아예 원가 계산은 하지 않고 요리한단다.이 식당의 주 메뉴는 청국장찌개,뚝배기 불고기와 오징어불고기. 청국장의 주재료는 전남 나주에서 군불을 지핀 온돌방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띄운다.묵은 김치를 썰어 꽉 짜서 넣고 돼지고기 사태를 몇 점 썰어넣어 끓인 뒤 매운 고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청국장 냄새가 싫다.”는 사람의 입맛마저 잡고만다. 오징어불고기는 냉동오징어보다 3∼4배는 값비싼 신선한 오징어를 선택한다.‘전라도 고춧가루’에 배를 갈아넣고,간장과 양파,고추를 썰어넣은 다대기 양념을 냉장실에서 숙성시켜 씁쓸한 맛을 없앤다.또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여 고추장을 얹어서 내오는 뚝배기 불고기도 맛깔스럽다.밑반찬도 입맛을 더해준다.매일 시장에 나가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게 밑반찬 맛의 노하우란다. 고향이 팔도 어디든 ‘고향식당’에선 고향맛이 느껴진다. 허남주기자 hhj@
  • “고통받던 근현대사 뒤안길 밀알된 인물생애 그렸어요”/ 10년만에 장편 ‘황금이삭’ 펴낸 노동자소설가 안재성

    1989년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노동문학의 역량을 훌쩍 키운 작가 안재성(43)이 10년만에 장편 ‘황금 이삭’(삶이보이는창)을 냈다. 서울 구로동에서 노동운동하던 경험을 살린 ‘파업’은 노동문학 진영에 가뭄의 단비였다.내용의 진정성에 비해 그 ‘문학적 그릇’이 울퉁불퉁하다는 노동문학에 대한 비판을 무색하게 만든 수작이었다.주목에 값하듯 안재성은 다음해 ‘사랑의 조건’으로 더 향기를 뿜었다.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노동문학 역량 ‘업그레이드’ “93년 일하던 구로 노동인권회관의 상담소도 문닫고 노동운동이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체제로 통합되면서 운동환경이 변했습니다.개인적으론 83년부터 몸담은 노동운동판의 긴장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글쓰는 낙농가’라는 낭만적 꿈을 갖고 강원대(축산과 78학번)에 다니던 그가 민주화운동에 기운 것은 YH사건과 광주 민주화 항쟁.79년 텔레비전에 잠시 비친 YH노동자들의 연행장면은 그의 목가적 문학관을 무너뜨리는 충격이었다. 현실에 눈뜬그는 다음해 서울과 춘천에서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리는 시위를 주도하다 연행된 뒤 강제징집당했다.83년 제대후 본격적으로 구로동과 강원도 탄광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파업’은 수배기간의 산물이었다.가파른 세월이 지난 뒤 평범한 생활을 찾아 막노동판 등을 전전하다 경기도 이천에 내려가 굴착기 운전을 하고 농사도 지으며 살았다.그런데 왜 소설을 냈을까,그것도 10년만에. ●“연애소설 범람 현실에 화나” “2년 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90년대 이후 소설 흐름이 관념적이거나 포르노에 가까운 연애소설만 판치는 현실에 화가 나더라고요.그런 작품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만 난무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거죠.역사가 살아있고 삶이 녹아있는 리얼리즘 계열이 너무 적어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황금 이삭’은 주인공 윤여옥과 조카 윤상국,그리고 베트남 여인과 사랑을 키운 이채훈 등 세 등장인물의 삶을 프리즘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베트남전 등 한국 근현대사에 담긴 폭력성을 포착한다. 작가는 실화에 ‘소설의 옷’을 입혀 작품을 완성했다.노동으로 가난을 극복한 외할머니의 삶과, 베트남전에 차출된 뒤 양민학살 등 목불인견의 참상에 참전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 목사로 참회하며 살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삶을 마친 외삼촌의 인생이 복원된다.그는 이 고난을 조명하되 힘차게 묘사한다. “우리에겐 피해의식이 느껴질 정도로 비관적 작품이 많습니다.그러나 경제발전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룬 진취적, 긍정적 측면도 있거든요.저는 이런 관점으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그래서 ‘황금 이삭’도 고통받은 역사 속에서 그것을 극복해가는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었지요.” ●“일제 노동운동 주역 그릴 것” 그래서 그는 후일담 문학을 싫어한다.노동운동의 주변부에 있던 이들의 관념이 빚는 ‘징징 짜는’작품은 지겹다는 것이다.운동의 중심에서 청춘을 불사른,이 역사의 발전을 믿는 작가는 곧 일제 강점기 노동운동사의 주역 이재유의 삶을 소재로 한 ‘경성트로이카’(가제)를 출간할 예정이다. “김삼룡 이현상과 함께 남한 공산주의 운동을이끌다 체포·투옥된 뒤 전향을 거부하다 44년 옥사하는 바람에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말 속엔 역사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황금 이삭’을 낳은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그것은 작가 안재성이 걸어온 길과 너무 닮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녹색공간] 살아있는 물을 위하여

    더운 여름날 몹시도 목이 마른 나그네가 우물가에 다가와 물 한 그릇을 청하던 시절이 있었다.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한바가지 물을 건네는데 그 바가지 위에 우물가의 버들잎을 몇 장 따서 띄워 놓던 사람들이 있었다. 급히 들이켜면 물도 체하는 법,후후-- 버들잎을 불어 가며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었다.얼마나 보기에 어여쁜 풍경인가.그런저런 일들로 인해 우물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었다.그 시원한 우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십여년이 조금 넘었을까.외국에서는 물을 사먹는다며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렇게 된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물을 돈을 주고 사먹는다는 것일까.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지금 어떠한가.당장 집 밖을 나서 돌아다니다 목이 마르면 음료수와 같은 마실 것보다는 시원한 물 한잔이 간절해져서 물을 사먹기에 이른 것이다. 기름보다 물 한 병 값이 더 비싼 세상이다.우리나라가 머지않아 물 자원이 부족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고된 지는 오래 전부터이다.우선 눈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하여 장기적인 수자원 관리를 하지 못하고 막무가내 댐 건설 위주로 나가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나라의 잘못된 행정 정책만을 탓할 수는 없다.아껴 쓰지 않으니 제아무리 많은 생활용수를 공급한다 해도 부족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렸을 적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시고는 했다.꼭 쓸 만큼만 써야 한다.한바가지 물이라도 더 쓰게 된다면 이 다음에 용왕님이 네가 필요없이 쓰고 버린 발씻은 물,세수한 물들을 다 마시게 하는 벌을 내린단다. 어린 날 외할머니의 말씀은 지금도 귀에 쟁쟁해서 휴게실 등의 공중 화장실이나 대중 목욕탕을 가게 되었을 때 옆 사람이 물을 틀어놓고 면도를 한다거나 자리를 떠나면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수도꼭지를 잠가 버리게 된다.물론 물을 틀어놓고 잠시 자리를 떠났던 사람이 다시 와서는 내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힐끔거리는 일은 다반사이다. 삼사년 전에 내가 사는 전주근교 구이 쪽에서 신리방면으로 도로가 개통되었는데 그 후 한 일년여쯤 있다가 그 도로 옆으로 4차선의 도로가 다시 뚫리고 있다.앞서 개통된 2차선의 도로에도 교통량이 많지 않아 정말이지 한적하기만 한데 새로 그보다 더 넓은 도로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4차선 도로를 계획해서 냈다면 이중으로 국고가 낭비되는 일도,그 도로를 개설하면서 무수히 잘려나가는 산림 파괴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뭉툭뭉툭 허리가 잘려나간 산,거기 뽑혀지고 베어 넘어졌을 나무들 한그루 한그루가 내리는 빗물을 저장해 놓던 수량은 이제 고스란히 강물을 범람하게 만들 것이다.지상의 곳곳에서 자행되며 되풀이되는 이러한 일들은 머지않아 자연 재해가 되어 고스란히 돌아오게 될 것이다. 지리산 댐 건설을 반대하는 일도,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는 일도 다 물을 살리자는 것이다.살아있는 물 곁에 살고자 하는 것이다.며칠후면 바다의 날이다.생명의 근원인 바다,삼면이 바다인 이 나라의 인근 바다는 해마다 적조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그건 내가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다는 바다의 신음성이다.귀기울여야 한다. 강물이,바닷물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집안에서 행주를 쓰거나 걸레를 사용하며 휴지 한 장 아끼는 일은 나무를 살리는 일이며 바로 물을 살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박 남 준
  • “작가 운명은 시시포스와 같아”두번째 소설집 ‘폭소’ 낸 이상문학상 작가 권 지 예

    지난해 문단의 특별한 관심을 모았던 작가 권지예(43).등단 6년째,무명에 가까운 신인이 첫 소설집을 내기도 전에 한편의 소설 ‘뱀장어 스튜’로 전통을 자랑하는 ‘이상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연이은 축하 행사 등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엄청난 부담이 다가왔다.‘이상 문학상’수상자에 쏟아지는 기대에 눌려 질식할 것만 같았던 것.하지만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교수(동해대)도 그만두었던 열정으로 다시 자신을 추스려 두번째 소설집 ‘폭소’(문학동네)를 내놓았다. “‘뱀장어 스튜’와 첫번째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트’(창작과비평사)는 상을 받기 전에 써둔 것이라 부담이 없었어요.그런데 두번째 작품집은 달라요.특히 표제작 ‘폭소’는 수상 뒤의 첫 작품이라 심리적 부담이 엄청났어요.글을 쓰면서 ‘돈이나 벌면서 잘 살면 되는데 내 팔자가 왜 이리 험한가.’ 한탄까지 했어요.” 그가 토로해온 내면 풍경은 작품 ‘폭소’에서도 잠깐 비친다.도입부와 말미에 그의 자화상인듯 한 작가가 ‘바위보다 강한 시시포스’로 자신의 운명을 암시한다. ●다양한 인간관계로 시선 넓혀 “첫 소설집에 내려진 ‘페미니즘 소설’‘불륜 문학’이란 평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물론 30대 여성의 사랑 얘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그런 범주에 갇히는 게 싫었어요.그래서 세계 속의 인간관계 등으로 시야를 넓혔습니다.” 표제작 등 7편의 중단편에는 변화를 위한 몸짓이 배어있다.대부분의 작품이 여주인공의 사랑 타령(?)이나 내면 풍경에 집착하지 않는다.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다.심신을 바쳐 자폐아 아들을 고치려다 좌절한 뒤 남편과 관계 도중에 폭소를 터뜨리는 여성(‘폭소’)을 통해 광기에 가까운 슬픔을 그리거나,외할머니·엄마와 이모·주인공 등 여성 3대의 대화를 통해 옛 시골 풍경을 회화적으로 묘사한다(‘누군가 베어먹은 사과 한 알’).또 교통사고를 당해 5인실에 입원한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인간상(‘행복한 재앙’)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렇듯 작가는 시선을 확장해 첫 소설집과 다른 세계를 구축했다.그러면서도 그만의 빼어난 장점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전편에 흐르는 촘촘한 구성과 탁월한 심리 묘사,작품 ‘스토커’에서와 같은 혀를 내두르게 하는 반전 등의 솜씨는 읽는 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사람을 묘사하는 관찰력은 더 섬세해졌다. ●“펜 놓는 순간 살아있음 느껴” 그렇게 ‘힘들고 괴롭고 외로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넌지시 물었더니 곧바로 “평생”이라며 “펜(그는 물론 컴퓨터로 쓴다)을 놓는 순간 전 살아 있음을 느끼거든요.”라고 답했다.‘폭소’에 등장하는 작가가“ 굴러 떨어진 바위를 향해 다시 내려가는 순간이야말로 시시포스가 자신의 운명을 이기는 순간”이라고 말한 것도 권씨의 ‘평생 작가’의 다짐처럼 들렸다. 권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7년동안 교직에 몸담다가 1991년 남편과 프랑스로 유학가 파리7대학 동양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7년 문예지 ‘라쁠륨’으로 등단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5·18 특집다큐 ‘윤도현의 5월 이야기’

    SBS 러브FM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윤도현의 5월 이야기’를 17·18일 오전 8시에 마련한다.30분짜리 4부작으로 가수 윤도현이 주인공 ‘나’와 내레이션을 동시에 맡는다. 실제상황을 설명하는 다큐멘터리와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드라마적 요소를 결합하는 형식으로 5ㆍ18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본다. 1980년 초등학교 4학년인 주인공이 외할머니 생신을 맞아 광주에 내려갔다가 5ㆍ18을 만난 대목에서 시작해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직ㆍ간접으로 접하는 5ㆍ18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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