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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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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농어촌개발공사(農漁村開發公社) 한정희(韓貞姬)양 - 5분 데이트(64)

    미스•농어촌개발공사(農漁村開發公社) 한정희(韓貞姬)양 - 5분 데이트(64)

    『운이 좋아서인지 직장생활 2년에 사회의 매운 맛은 아직 한번도 겪어 보질 않았어요. 일이 바쁠수록 즐겁기만한게 제 성미예요』 어느 사기업체 한 군데를 거쳐 농어촌개발공사 경리부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1년 남짓한 한정희(韓貞姬)양. 여성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양을 무척 한 끝에야 5분「데이트」에도 응하는 겸손파. 바른 가리마가 유난히 어울리는 단아한 얼굴이 한쪽 입모서리를 살짝 치키면서 미소짓는다. 반달 눈썹이며 꺼풀이 얄팍한 눈두덩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이며 반듯한 이마, 쪽진 머리가 단아하게 아름다운 한국풍 미녀다. 친 할머니, 외할머니 손에서 한국의 고풍(古風)을 속속들이 물려받았다니 47년생 답지 않게「클래식」한 분위기는 이유가 충분하다. 『외할머니께서 나라에서 하사받으신 이조때 접시를 물려 주셨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접시를 모으고 있읍니다』 우선 목제(木製),「플래스틱」製등 종류를 따질 것 없이 모아서 80개쯤. 앞으로는 한가지로 좁혀서 수집해볼 작정이란다. 충남 보령에 집안이 아직 살고 있는 서울 산(産). 광업(鑛業)을 하는 한장원(韓章源)씨의 4남매중 장녀. 문성(文星)여상을 졸업했다. 『할머니께서 전에는 버선 깁는 것이랑 저고리 짓는 것. 수놓는 것을 시키셔서 바느질을 곧잘 했는데-』 이젠 직장 일이 더 바빠서 할 틈이 없단다. 신랑감은 선이 굵고 믿음직스런 성격의 남성이면 좋겠단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11일호 제3권 2호 통권 제 67호]
  • KBS 2TV ‘포도밭 그 사나이’ 출연 윤은혜

    KBS 2TV ‘포도밭 그 사나이’ 출연 윤은혜

    화려한 궁중 의상이 아니라, 싱그러운 포도밭을 뒤로한 시골 아낙의 옷매무새도 제법 어울려 보인다. 인기 드라마 ‘궁’의 황태자비 신채경을 통해 가수에서 연기자로 성공적인 변신을 했던 윤은혜가 대자연에 푹 빠져드는 도시 처녀가 된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챙이 넓은 모자에다 헐렁한 셔츠와 몸뻬바지를 입었다. 지난 13일 포도의 고향 충북 영동 황간면에서 열린 드라마 대박 기원 고사장에 터덜터덜 나타난 윤은혜의 모습이 그랬다.KBS 2TV 월화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연출 박만영, 극본 조명주,24일 시작)에서 시골로 내려간 도시 처자 이지현을 연기한다.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는 그녀는,1년 동안 포도 농사를 지으면 포도밭 1만평을 물려준다는 당숙 할아버지(이순재)의 약속에 귀가 솔깃한다. 게다가 그 밭은 땅값이 10억원이나 치솟았다.1년 고생으로 자기 이름으로 브랜드를 낼 수도 있을 성싶다.‘포도밭 그 사나이’에서는 도시에 익숙한 처녀가 시골에서 문화 충돌을 일으키며 웃음, 향수를 자아낸다. 밤에 화장실 가는 것에서부터 24시간 편의점도 없고, 질퍽한 흙길에다 벌레, 지렁이, 뱀 등 부딪치는 것마다 어렵다. 반면 티격태격하던 시골 총각 장택기(오만석)와의 로맨스는 청포도처럼 영글어 간다. 시골 물정 모르는 화려한 신세대인 줄 알았는데 윤은혜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유치원 시절부터 여름·겨울 방학이면 전북 진안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고 한다. 개울가 물장난이나 과일 서리, 봉숭아 꽃물들이기, 공기놀이 등 작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남아 있다고 하는 그녀는 “생활은 다소 불편할지 몰라도 따뜻한 정이 남아 있는 시골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라면서 “요즘 시골에 내려갈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자유롭고 따뜻한 정서를 잊어가는 어린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어찌 보면 ‘궁’의 채경 캐릭터와 비슷한 역할이다. 밝고 명랑하다. 그렇면서도 나름대로 ‘생각’은 있는, 조금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서포모어 징크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작품 선택에 신중을 기했을 터. 윤은혜는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었어요.”라면서 “경쟁작인 ‘주몽’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자신감이 있다기보단 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제 자신에게 화가 날 것 같았습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냐는 질문이 나오자 정색했다.“처음이잖아요. 어떤 역을 하고 하지 않고 싶다가 아니라 자신감이 생긴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지금도 ‘궁’을 보면 실수하거나 아쉬운 부분만 보여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도와준 작품이죠.” 처음엔 끈 달린 짧은 윗도리와 치마, 하이힐을 입고 왔지만 몸뻬바지가 너무 편하다며 “촬영하며 많이 먹어도 살찐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아 너무 좋아요.”라고 배시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가수 출신 연기자에게 꼬리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나왔다.“다시 무대에 서고 싶냐고요? 요즘엔 신인들도 얼마나 잘하는지 다시 서면 창피할 것 같아요. 이제 연기를 막 시작했고, 더 노력할 것도 많아요….”실제로 10억원이 생긴다면? 방송 카메라들이 끝없이 건네주는 무선 마이크를 전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손에 받아들던 그녀는 “불우이웃을 돕고 싶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영동(충북)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폴 세잔, 그가 환생했다

    폴 세잔, 그가 환생했다

    |엑상프로방스(프랑스) 함혜리특파원|파리의 리옹역에서 남부 TGV를 타면 3시간만에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한다.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가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1839∼1906)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일생의 3분의 2 이상을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그리고 이곳의 생피에르 묘지에 묻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세잔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꼭 1세기가 흘렀다. 엑상프로방스에선 그의 100주기를 기념, 대대적인 회고전 ‘프로방스에서의 세잔’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엑상프로방스시가 마련한 세잔의 해(www.cezanne-2006)행사 가운데 하일라이트는 시립 그라네미술관에서 9일부터 열리고 있는 ‘프로방스에서의 세잔’ 전시회다. 오는 9월17일까지 100일간 열리는 전시회에는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런던 내셔널갤러리, 파리 오르세 미술관, 생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 전세계 유명 미술관, 박물관과 개인들에게 흩어져 있던 세잔의 작품 117점(유화 85점, 데생 및 수채화 32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젊은 시절 작품과 드물게 남긴 초상화, 정물화들이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은 그가 이젤과 물감통을 메고 다니며 그린 프로방스의 풍경들이다. 어린시절 친구 에밀 졸라와 자주 놀러 다니던 아르크 강가와 비베뮈스 채석장, 샤토 느아르, 작은 해변마을 레스타크, 생트 빅투아르 산을 담은 풍경화들과 ‘목욕하는 여인들’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그라네 미술관의 드니 쿠르타뉴 관장은 “폴 세잔은 평생 프로방스의 자연을 스승삼아 빛과 색채가 지닌 진실을 회화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다.”면서 “시기별·주제별로 그가 남긴 예술적 자취를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쿠르타뉴 관장은 “그의 작품들이 워낙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작품을 보는 것은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세잔의 예술혼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전시회에 언론과 일반인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그라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4년간의 보수공사를 거쳐 전시공간을 900㎡에서 4500㎡(1360여평)로 넓혔다.12개의 방을 옮겨가면서 세잔의 작품이 지닌 가치와 예술 창작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장 지하에는 영상물과 함께 ‘세잔 다르게 보기’라는 기획전도 마련했다. 세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엑상프로방스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최소 40만명이 관람할 것으로 미술관측은 기대했다.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를 맡은 예술사가 브뤼노 엘리(타피스리 박물관장)는 “세잔은 자신만의 구성과 색채로 현대회화의 기원을 열었다.”고 평했다. 엑상프로방스에서는 모든 것이 세잔과 연결된다. 외부인들이 도착하는 관문인 TGV역에는 세잔이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이 걸려 있다. 시내에서 15㎞ 정도 떨어진 이 역의 지붕모양은 세잔이 열정적으로 그렸던 생트 빅투아르 산의 능선에서 따온 것. 역의 메인 출입구 이름도 ‘세잔의 문’이다. 구시가지 중심 대로 쿠르미라보에는 세잔의 해 기념 깃발이 가로수를 따라 걸려 있다. 푸른색 바탕의 깃발들이 강렬한 태양 빛 아래서 축제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시내에는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도록 보도에 ‘세잔’의 이름과 엑상프로방스 시 마크가 새겨진 동판을 박아 놓았다. 동판은 관광안내소에서 시작돼 부르봉 중학교(지금은 미네 중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와 생소뵈르 성당, 마지막 거주지인 불르공, 세잔이 친구들을 만나 자주 차를 마시던 식당 ‘2명의 소년’, 그가 결혼식을 올린 시청 등을 따라 이어진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저택 ‘자 드 부팡’, 세잔이 말년에 작업했던 로브 아틀리에, 그가 이젤을 메고 생트 빅트와르산을 스케치하러 다녔던 길 ‘세잔 루트’, 마르세유와 연결되는 기찻길 옆에 있는 마을 가르단과 해변 마을 레스타크 등도 모두 세잔 그림의 모델이 됐던 곳들이다. 세잔의 해를 맞아 전시회와 토론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들도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자 드 부팡’에서는 멀티미디어 설치전이 열리고 세잔의 재능에 찬사를 보낸 독일의 시인 릴케와 세잔의 예술적 교감을 다루는 토론회,1906년 파리와 엑상프로방스 사진전, 프로방스 지역 화단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에콜 프로방살,1800∼1870’ 전시회가 방돔관에서 열린다. 세잔은 해발 1011m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거의 신성시하며 8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기간 중인 다음달 5일 생트빅투아르 산이 바라다 보이는 퓌르비에 채석장에서는 세잔을 기리며 베를린 필하모니가 말러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엑상프로방스 관광청의 아니 토르세는 “자연과 고독을 향한 여정을 살다 간 세잔이 1세기 만에 되살아난 듯하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화가의 길 걷는 후손 마리 로지 |엑상프로방스(프랑스) 함혜리특파원|“위대한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게 자랑스럽다.”폴 세잔의 후손 중 유일하게 화가의 길을 걷는 마리 로지(45)를 지난 7일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만났다. 로지의 외할머니인 알린 세잔(89)이 세잔의 손녀딸. 촌수로 따지면 외고종손녀다. 순간적인 인상을 담는 추상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로지는 엑상프로방스의 갤러리 클레르 로랭(www.gallerie-laurin.com)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세잔의 후손이라는 점이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나. -세잔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는 사람들이 내 작품에 새삼 관심을 표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 손을 만지면서 세잔의 후손을 만났다는 것에 감격스러워 한다. ▶책임도 느끼나. -예술가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외고조 할아버지인 세잔이 그랬듯이 나도 나만의 예술세계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각자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책임있는 예술가의 자세다. ▶가족 소유의 그림이 남아 있나. -없다. 이번 전시회는 세잔의 작품들이 그려진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잔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린 풍경화들을 좋아한다. 단순하지만 힘이 넘치고, 프로방스 지방의 자연이 주는 느낌이 담겨 있어 좋다. lotus@seoul.co.kr ■ ’근대회화의 아버지’ 세잔은 |엑상프로방스(프랑스) 함혜리특파원|폴 세잔은 1839년 1월19일 엑상프로방스의 오페라가 28번지에서 태어났다. 은행을 설립할 정도로 재산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평생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지만 화가로서는 불운했다.1859년 엑상프로방스의 법과대학에 입학했으나 1861년 그만 두고 파리로 올라간다. 파리의 아카데미 스위스에서 작업하며 모네와 피사로,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의 동반자 오르탕스 피케도 이곳에서 만났다. 국립미술대학 시험에 두차례나 낙방한데다 살롱전에서 거듭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그는 1874년 제1회 인상파 화가전에 출품한다. 빛과 색의 배합에서 인상파 작가로 접근해 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제3회 인상파전을 고비로 인상파 화풍과는 다른 작업은 전개한다. 쏟아지는 비난에 충격을 받은 그는 다시는 전시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이때부터 구도와 형상을 단순화한 그의 그림은 프로방스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색채를 반영한다. 그의 첫 전시회가 파리에서 열린 것은 56세때였다. 젊은 화상 볼라르가 기획한 이 전시회를 계기로 그의 재능과 독특한 작풍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언론은 여전히 적대적이었지만 르누아르, 모네, 드가, 피사로 등 당대의 화가들은 그를 칭송했다. 세잔 전문가인 드니 쿠타뉴(그라네 미술관장)는 “그는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해 화면에 새로 구축해 나갔다.”며 “입체파, 야수파, 추상주의 미술 등 20세기 미술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한다. 하지만 그의 고향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잔은 말년에 큰 명성을 얻었으나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작업에만 열중했다. 말년에 작업했던 로브 작업실의 안내인 크리스틴은 “세잔은 아침 일찍 작업실에 나와 작업하고, 이젤을 메고 산으로 갔다. 작업실을 찾은 사람은 4년간 16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은둔의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세잔은 1906년 10월15일 로브 작업실 근처의 산에서 그림을 그리다 폭우속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튿날 의식이 깨어난 뒤 다시 산에 올랐다가 또 쓰러져 폐렴으로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1906년 10월23일 새벽이었다. lotus@seoul.co.kr
  • [책꽂이]

    ●오만과 편견 19세기 전후 신분 사회와 결혼 문화, 연애관을 다룬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대표작이다. 이번에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했다.‘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 두 번째 편이다. 시리즈 첫 편 ‘오페라의 유령’이 동시 출간됐다. 푸른숲. 각권 9500∼9800원. ●쑤우프, 엄마의 이름 정신 지체장애인 엄마를 둔 열세 살 소녀 하이디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과거와의 대면을 통해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담았다.23개의 단어밖에 말할 줄 모르는 엄마와 광장 공포증이 있는 버니 아줌마와 함께 살아가는 하이디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어디였는지, 왜 다른 가족은 없는지가 알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내뱉는 ‘쑤우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엄마, 외할머니처럼 보이는 사람 등이 뉴욕주 힐탑 요양원이라는 간판 아래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낮은산.232쪽.9000원. ●고구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역사비평’ 편집인 등을 역임하고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 ‘한국사 이야기’ 22권을 발간한 역사학자 이이화 서원대학교 석좌교수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새롭게 쓴 고구려사. 고구려 태동기의 주변 상황부터 주몽 설화가 갖는 역사적 의미, 광개토대왕비에 실린 역사적 사실과 배경, 영토확장 과정, 고구려 문화유산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언어세상.248쪽.1만 2000원. ●꼴찌 축구단, 축구왕 되다 그야말로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여 만든 축구팀 ‘슈퍼 키커스’의 좌충우돌 성공 스토리. 국민서관.192쪽.8000원.
  • 도심하천 생명과 희망이

    도심하천 생명과 희망이

    안양천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습니다.60대 중반의 이 할아버지는 개천물을 양손에 담아 냄새를 맡아 보시더니 빙긋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친구들과 멱 감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는 할아버지는 “악취를 풍기고 구정물이 흐르던 이곳이 점차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이곳에 오면 그 옛날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합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떠밀려 방치됐던 서울의 하천들이 속속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36곳에 이르는 서울의 하천들이 복원사업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생태 하천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청계천과 양재천, 안양천, 중랑천, 탄천, 불광천, 성내천, 홍제천 등은 이미 안락한 주민쉼터로 탈바꿈했습니다. 둔치에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 인라인스케이트장, 축구장, 농구장, 피크닉장 등 멋진 운동시설들이 생겨나고, 개천에는 물이 맑아지면서 각종 동·식물들도 돌아오고 있습니다. 주말에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가까운 하천을 찾아 가족과 함께 건강을 챙기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kdaily.com ■ 202개 시설 ‘레포츠 만물상’ 일요일인 지난 21일 오후 3시 서남권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안양천을 찾았다. 오랜만에 찾은 안양천은 ‘상전벽해’를 실감할 만큼 크게 달라졌다. 안양천 좌우 양측을 따라 깔끔하게 정돈된 자전거도로가 길게 나 있고, 둔치에는 인라인스케이트장과 축구장, 야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등 스포츠시설과 함께 그늘막과 피크닉장 등 주민 쉼터가 마련돼 시민들을 반겼다. ●자연이 살아있는 도심 속 쉼터 목동교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안양천 탐방에 나섰다. 가슴이 시원하다. 아파트 촌을 벗어나 시원스레 흐르는 물길을 보자 답답함이 사라진다. 도심 속에 복원된 청계천과 비교해 이곳에는 무엇보다 자연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강으로 흘러가는 물길 사이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왜가리 한 마리가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고, 가족단위 나들이객들도 물가에 나와 한층 여유있는 모습으로 휴일을 즐겼다. 자연 그대로의 잡풀이 오히려 단정한 도심의 꽃길보다 정겹게 다가온다. 토끼풀(클로버) 잎 사이로 둥그렇고 하얀 꽃이 활짝 피어 둔치에 하얀 융단이 깔린 듯했다.‘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네잎 클로버를 찾느라 분주한 아이의 모습도 정겹다. 꽃 반지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토끼풀 꽃 향기는 라일락 향기를 닮았다. 목동교와 양평교 사이에 있는 인라인스케이트장에는 인라이너들이 코스를 돌고, 코스 가운데에는 가족끼리 배드민턴을 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이어 자전거도로에는 멋스러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다리 밑에는 때아닌 무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누워 담소를 나누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많았다. 개천 너머 뚝방길 역시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이어 목동교와 오목교 사이에 있는 궁도장과 양궁장이 눈길을 끈다. 인근 그늘막에는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목교를 지나자 넓은 축구장과 농구장, 피크닉 광장이 나타났다. 신정교와 오금교 사이에도 인라인 스케이트장, 축구장, 그늘막, 족구장 등의 풍경이 펼쳐졌다. 하이킹을 즐기던 김은성(41·회사원·금천구 시흥동)씨는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안양천 변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나면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풀린다.”고 즐거워했다. ●금천·구로·영등포·양천구 주민들 주로 이용 안양천은 삼성산과 백운산 등에서 흘러 나온 물이 안양시 석수동에서 만나 북쪽으로 흐르는 개천이다. 물길은 광명시와 서울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양천구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삼성산의 안양사에서 발원했다고 해서 ‘안양천’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대천·기탄이라 불렸다. 길이가 34.8㎞에 이르는 국가하천이다. 안양천 둔치에는 각 자치구에서 마련한 체육공원과 쉼터가 많아 휴일이면 많은 주민들이 이용한다. 안양천에는 야구장과 축구장 15곳, 농구장 29곳, 인라인광장 30곳, 배드민턴장 50곳, 게이트볼장 22곳, 자연학습장·초지 5곳, 휴식공간 51곳 등 모두 202곳에 휴식공간 및 운동시설이 마련돼 있다. 서남권 최대의 휴식처인 셈이다. 특히 둔치에는 국제규격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설치돼 인라이너들의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안양천 좌우 양측에 58㎞가량의 자전거도로가 나 있어 주말이면 하이킹이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크게 붐빈다. 안양천에는 540여종의 식물과 18종의 어류,94종의 텃새와 철새, 족제비와 두더쥐 등 12종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꽃물결·자전거길·철새 ‘삼합’ 노란 물결이 중랑천을 뒤덮었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자전거와 인라인을 타며 늦봄을 만끽하고 있다. 장평교∼월릉교 사이 5.15㎞구간에는 노란 유채꽃이 절경을 이뤄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다. 중랑천은 한강, 안양천과 함께 서울의 3대 하천으로 꼽힌다. 길이 20㎞, 강폭은 최대 150m. 경기도 양주에서 시작해 의정부시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이곳은 자전거도로가 일품이다. 노원교에서 용비교까지 전 구간에서 동부간선도로와 나란히 이어진다. 적갈색 아스팔트에서 자동차와 경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탄천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이 없어 초보자가 타기도 편하다. 서울 한강의 지류 가운데 가장 긴 하천인 중랑천은 모두 8개구를 감싸고 흐른다. 도봉·노원·성북·동대문·중랑·광진·성동구 등이다. 덕분에 체육·휴게시설과 꽃길이 경쟁적으로 조성돼 볼거리가 많다. ●개나리꽃 제방길 중랑천의 시작점은 노원교 부근. 생활체육 공간이 마련돼 가족끼리 느긋하게 나들이하기 좋다. 윗몸일으키기, 허리돌리기, 오금펴기 등 간단한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다. 소나무 그늘 아래 놓인 정자에서 한가롭게 낮잠을 즐겨보자. 도봉산 아래 석양이 드리워진 중랑천을 바라보는 것도 일품이다. 왜가리, 오리, 갈매기 등 철새를 만날 수도 있다. 자전거도로 옆에 조, 수수, 메밀 등 곡식류와 코스모스, 영산홍, 봉숭아, 황아 등 화초가 심어져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된다.4월에는 노란 개나리꽃을 물리도록 감상할 수 있다. ●유채꽃 물결이 넘실넘실 장평교∼월릉교 구간에선 유채꽃이 장관을 이룬다. 강바람을 시원하게 가르며 꽃향기에 취한다. 자전거에서 잠시 내려 연인과 다정히 꽃길을 걸어보자. 가을에는 갈대와 코스모스가 유채꽃을 대신한다. 직장인 박승미(27)씨는 “꽃내음을 맡으며 자전거길을 달리니까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공원이 곳곳에 자리해 쉬어가기 편하다. 중랑교 부근엔 면목체육공원이, 이화교 부근엔 중화체육공원이 있다. 동대문구 쪽에도 공원 5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초봄에는 중랑교∼군자교 구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여의도만큼이나 아름다운 벚꽃터널을 만든다. 낚시꾼이 자주 눈에 띈다. 악취를 풍기던 물이 3급수로 바뀌면서 이화·중랑·장안교 주변에서 붕어, 잉어, 밀어가 잡히고 있다. 살곶이다리 주변에선 청둥오리, 백로, 논병아리가 노닌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도모(35)씨는 “청계천과 이어지는 중랑천 초입에 가로등이 없어 밤에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자전거 대여료는 1시간당 2000원. ●중랑천 가는 길 유채꽃이 만발한 중랑천을 둘러보려면 면목동이나 중화동, 묵동으로 진입하면 편리하다. 주변 주차장이 대부분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면목5동 까르푸 맞은편(동이로) 중간집하장 통로로 차량통행이 가능하다. 장안교와 면목 2동 한신아파트 뒤편 면목체육공원, 중화동 이화철교 남단을 통해서도 들어갈 수 있다. 묵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옆 중화체육공원에 중랑천을 잇는 보도 육교가 놓여 있고, 월릉교 부근 제방 계단으로도 진입할 수 있다. 최근 동대문구 이문3동 이화교와 휘경1동 중랑교, 장안2동 장평교 부근에도 진입육교가 생겨 중랑천 이용이 한결 편리해졌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송사리 벗삼아… ‘물놀이 천국’ 양재천에 가면 시골에 온 느낌을 받는다. 지난 21일 잉어떼가 출현해 화제를 모은 양재천을 찾았다. 양재천에 발을 처음 디딘 순간 첫 느낌은 도심 속의 전원이라는 것이었다. 이날 방문한 ‘영동 6교∼대치교’. 주위 5∼10분 거리에 미도와 은마, 대치 등 고층아파트가 있다. 낮 기온 28.3도. 올해 들어 최고 기온을 기록한 이날 양재천에 오는 동안 속옷에 땀이 배었다. 하지만 계단에 진입해 양재천에 내려온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들과 함께 찾은 양순선(37)씨는 “아∼시원하다.”를 연발했다. 아들 이민수(6)군은 “엄마 나 물에 빠뜨려줘.”라고 하자, 양씨가 민수를 안고 물가에 다가갔다. 민수군이 “싫어∼싫어∼”라고 외치며 활짝 웃었다. ●몇 분만 발담그면 전신이 시원 이날 오후 영동대교 다리 아래. 가족과 연인, 나홀로 산책나온 사람이 70여명이나 됐다. 한 남자는 여자친구의 무릎에 머리를 괴고 누워 있다. 징검다리 위엔 5∼6살 정도 된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이들은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긴 사람이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는 게임을 했다. 징검다리에서 신을 벗고 직접 물 속에 들어간다. 먼저 물 속에 들어간 김지희(15)양은 “여름이 다가오는 느낌이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냇물이 종아리까지 차 오르는 순간 속옷에 젖었던 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래를 밟고 서니 폭신폭신한 느낌이 전해져 ‘해수욕장에 온 건 아닐까.’하는 착각이 일어났다. 다시 징검다리에 올라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꼬마들을 보는 사이 5분도 안돼 물기가 말랐다. 선선한 바람 덕택이다. 함께 발을 말렸던 김형선(40)씨는 “쉬는 날 여기 오면 삶이 재충전되고, 누구보다 아들 수민이가 즐거워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잉어떼를 볼 수 있는 학여울로 가자.”면서 일어섰다. 학여울로 가는 길에 갈대와 억새 군락이 펼쳐졌다. 드문드문 물 속에 종이컵을 담아 송사리와 올챙이를 잡는 아이들이 보였다. 문득 유치원 여름방학 때 시골 외할머니댁 냇가에서 개구리 잡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변은 아파트 촌이지만 폭이 20m쯤 되는 양재천변은 그야말로 시골이다. 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일정에 막혀 시골에 못 가는 회사원 친구가 있다. 다음엔 그 친구와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잉어떼를 볼 수 있다는 학여울에 이르렀다. 다리 밑에 잉어 새끼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꼬마들이 숨을 죽인 채 잉어떼를 내려다보았다. 잉어 등에는 옅은 황금빛이 감돌았다. 저 멀리엔 팔뚝만한 잉어떼가 돌아다녔고 오리 떼와 고니도 보였다. 학여울엔 잉어 외에도 두꺼비 산란장소인 저습지도 있다. 비가 내린 22일 저습지에서 두꺼비 수만 마리가 뛰쳐나와 주변 숲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수질 정화시설등 자연학습장 즐비 학여울 외에 양재천엔 여기저기 볼 거리가 많다.‘영동2교∼영동3교’엔 하천 수질을 정화하는 수질정화시설과 아이들 놀이천국인 물놀이장이,‘영동3교∼영동4교’엔 원두막이,‘영동4교∼영동5교’엔 계류시설과 벼농사학습장이,‘영동5교∼영동6교’엔 곤충과 어류가 사는 생태관찰원 등이 있어 그야말로 자연학습장이다. 해당 구청인 강남구청은 양재천에 이어 양재천과 이어지는 탄천도 지난해 10월 복원 작업을 시작, 올 8월까지 마칠 예정이다. 또 하나의 자연하천인 탄천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악취 가셔내고 자연을 되살린다 서울시 하천들이 복원 및 공원화 사업을 통해 생태하천으로 거듭나고 있다. 악취가 풍기던 하천들이 지역주민들의 휴식처와 레포츠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탄천 옥황상제의 사자가 동방삭을 잡기 위해 숯을 물에다 씻었다는 전설이 숨어 있는 탄천이 오는 8월 복원돼 시민의 곁으로 돌아온다. 양재천 복원에 성공한 강남구가 106억원의 예산을 들여 수서동 광평교에서 한강 합류부에 이르는 5.4㎞를 생태하천으로 바꾸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시작하는 탄천의 총연장 35.2㎞ 중 하류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상류에 고도하수처리시설을 가동해 5등급인 수질등급도 2등급까지 만들 계획이다. 잡목이 무성했던 제방로에는 산책로 및 자전거 길을 만들고, 양 옆에는 ‘벚꽃 십리길’을 만들 예정이다. ●불광천 최근 마포구 월드컵 경기장 부근 불광천에 잉어떼가 나타나면서 주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불광천이 2002년 오수 방지시설 설치와 수초 조성 등 정비사업을 통해 자연하천으로 탈바꿈하면서 길이 40㎝가량의 잉어 10여마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불광천에는 현재 8곳의 체력단련시설과 2곳의 전망 관찰대, 분수대 1곳이 설치돼 있다. 아울러 은평구는 현재 하루 1만t 정도의 지하수가 흐르는 불광천에 추가로 2만t의 유수량 확보를 위해 신흥상가교 상류에 라바댐 설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원이 설치되면 사시사철 물이 흐르게 된다. 천변에는 추가로 프로그램분수와 저협수로, 저수호안 자연석 쌓기, 관람석계단, 수생식물식재 등을 만들어 구민의 휴식공간과 여가공간의 창출 등 친수하천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성내천 청량산에서 시작해 송파구 마천동과 오금동, 풍남동을 지나 한강으로 흐르는 총 연장 8.82㎞의 성내천은 지난해 6월 준공됐다. 성내천은 축구장 2곳, 테니스장 2곳, 물놀이장 1곳, 휴게광장 2곳, 분수대 4곳, 화장실 2곳, 편의시설 2곳 등의 시설을 갖춘 종합 레저시설로 거듭났다. 하천에는 수생식물을 심고, 어도와 여울을 만들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 역할을 하게 했고, 하천 길을 따라 한강까지 이어지는 자전거도로, 우레탄 조깅로 조성과 항아리 풀장, 불빛 분수 등을 설치했다. 성내 4교 주변 ‘벽천분수대’와 지하수를 활용한 어린이용 ‘항아리 풀장’은 구민들의 인기시설로 자리잡았다. ●홍제천 내부순환로 설치로 건천화가 심화되고 있는 홍제천 복원공사가 지난 3월 시작됐다. 공사는 한강 합류부부터 홍지문까지 8.52㎞구간으로 2007년 12월까지 자연 생태하천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현재 3㎞가량의 송수관로가 부설됐다. 홍제천에는 자연 초지와 함께 보행동선, 체육시설, 휴게시설, 수경시설 등 주민이용시설을 신설·보완하며, 제방은 전망휴게시설과 진입로가 만들어진다. 사천교∼연가교 구간은 수변휴게데크, 휴게광장, 다목적운동장, 연가교∼홍남교 구간은 하천분수, 보도, 전망데크, 물놀이장, 얼음 썰매장이, 홍연교∼백련교 구간은 안산의 기암절벽과 하천의 굴곡부가 만나는 절경구간으로 인공폭포, 특화벽면, 카페테라스, 친수데크, 야간 경관조명이 설치된다. 상류구간인 포방교∼옥천2교 구간은 제방에 녹지대가 조성되고, 하천 내에는 자전거 도로와 자연석 식생호안을 조성한다. 현재 홍제천에는 농구장 5곳과 배드민턴장 5곳, 체력단련시설 6곳이 마련돼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36개 ‘실핏줄’… 모두 잇대면 230㎞ 서울시내에 36개의 하천이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당수의 하천이 일부 또는 전부 복개돼 주차장이나 도로 등으로 쓰여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과 함께 시내 하천들이 시와 자치구들의 하천 복원사업을 통해 속속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상당수가 이름뿐인 하천 서울에는 한강과 중랑천, 안양천 등 3개의 국가하천을 포함해 ‘법정하천’만 36개나 된다. 길이로 따지면 모두 230㎞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60% 이상 복개된 13개 하천을 포함해 24개의 하천이 복개돼 있다. 대부분 이름뿐인 하천이다. 서울 동북지역 하천으로는 중랑천이 큰 내를 이루며 지천으로 우이천과 방학천, 도봉천, 수락천, 당현천이 있다. 청계천과 만나는 하천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천, 성북천 등이 있다. 또 월곡천 위로는 대동천과 가오천, 화계천 등이 흐른다. 서북지역에는 홍제천과 봉원천 등이 있다. 동남지역에는 고덕천과 성내천, 탄천, 세곡천, 여의천, 양재천 등이 있고, 서남쪽에는 안양천을 중심으로 도림천과 삼성천, 오류천, 목감천 등이 흐른다. 이 가운데 전농천과 면목천, 월곡천 등 11곳은 완전 복개돼 있고, 우이천과 방학천, 도봉천 등 13곳은 부분적으로 복개돼 있는 상태다. ●2012년까지 매년 800억원 하천 복원에 투자 서울시는 올해 362억원을 자연친화적인 하천 정비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는 등 2012년까지 매년 800억원 이상을 하천 복원에 예산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에 복개하천 복원타당성조사 연구용역을 마쳤다. 내년까지 성북천과 정릉천, 홍제천 등은 부분적으로 나마 복원돼 시민의 품에 안긴다. 도림천의 경우 내년 6월까지 실시설계를 끝낸 뒤 2008년 하천이 복원된다. 녹번·불광·봉원천은 차로 축소시 주변 도로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세부교통영향 평가 등을 분석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내가 뭐 한게 있다고…”

    “전국에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상까지….”(전옥연·75·여·춘천시 서면)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합니다.”(최일순·66·여·전북 일실군 청웅면, 민정기·71·남·서울 종로구) “그저 오래오래 살아 주시면 고맙지요.”(권옥화·70·경북 안동시 와룡면) “남보다 나은 게 없고, 칭찬받을 일 하지 않았는데….”(김양순·65·여·충남 서천군 문산면) “의당 해야 할 일인데 부끄럽습니다.”(변종희·46·여·전남 곡성군 옥과면 이문리) 어버이 날인 5월8일 정부로부터 장한 어버이와 효부·효자로 선정돼 훈장과 포장을 받는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이다. 하나같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 어른을 봉양하는 따뜻한 마음과 겸양이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들의 살아온 모습도 다양하다. 전옥연씨는 4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자녀 4명 모두 석·박사로 훌륭히 키워냈으며, 최일순씨는 남편을 여의고 치매에 걸린 90세 시어머니를 정성스레 돌보고 있다. 어려운 가정에도 집에서 키운 채소를 팔아 돈을 마련하면서 자녀 6명을 우애롭게 키워냈다. 권옥화씨는 2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7남매를 키우며,100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시어머니와 생일이 같아 본인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드물다고 한다. 김양순씨는 언어장애가 있는 남편과 살면서 3남매를 키워냈다.30년 전부터 동네 어른들에게 간식을 제공하는 등 처지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민정기씨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버지 민병욱(104세)옹을 40년 동안 정성스레 모시고 있다. 그는 검소하게 살면서 경로당에 쌀을 보내고, 소년소녀 가장을 돕고 있다. 그는 자신을 “결혼을 하지 못한 불효자”라고 말했다. 변종희씨는 10년 동안 시할머니·시어머니모시고 살다 두 분이 세상을 뜨자 시외할머니까지 모셨으며, 김치수씨와 송재희(80·여·울산시)씨 등도 부모를 봉양하고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다. 특히 송씨는 장한 어버이상 수상을 한달앞두고 사망,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전국종합
  • 儒林(536)-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6)

    儒林(536)-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6)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6) 1년 반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중에 상운정에서 자신의 소회(所懷)를 털어놓은 율곡의 시는 다음과 같다. “가을바람에 풍악(금강산)을 떠나,/ 석양 무렵 상운정에 당도하니, 모래 위에는 바위들 늘어섰고,/소나무 사이에는 길이 하나 나 있구나. 파도소리 우르르 바다를 몰아가고,/기러기 떼 듬성듬성 전자모양 형성했네. 말 죽 먹여 급히 길 떠나니,/앞산에 벌써 저녁 안개 어둑어둑(秋風別楓岳 斜日到祥雲 沙上千巖列 松間一路分 殷雷波捲海 疎篆雁成 馬催程發 前山晩霧昏)” 이 무렵 율곡의 고향 임영에는 외할머니 이씨가 눈이 빠져라 율곡을 기다리고 있었다. 율곡의 생애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외할머니 이씨. 흔히 율곡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을 율곡의 어머니였던 신사임당 한 사람으로 압축하고 있으나 오히려 율곡의 천재성을 처음으로 꿰뚫어 본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였다. 이러한 사실은 세살에 불과한 율곡에게 이씨가 석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이 무엇과 같으냐.’고 묻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때 율곡은 옛 고시를 인용하여 ‘석류껍질이 부서진 붉은 구슬을 감싸고 있네(紅皮囊裏 碎紅珠)’라고 대답함으로써 주위사람을 탄복시켰는데, 어쨌든 이 ‘석류시’가 율곡이 지은 최초의 절구이고 보면 율곡의 천재성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였던 것이다. 이 무렵 외할머니 이씨는 76세의 노인이었고, 특히 4년 전에 사랑하는 딸 신사임당을 여의고 시름에 잠겨있었으므로 간다온다 일체의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살아 돌아오는 율곡을 본 순간 미친 듯이 맨발로 뛰어가 율곡을 맞아들였을 것이다. 율곡은 이곳 강릉에서 한겨울을 지낸다. 이듬해 봄 또다시 강릉을 떠나 한성시에서 장원으로 뽑혔으니, 비록 한겨울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금강산에서 있었던 불자로서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의미 깊은 전환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울 동안 율곡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목표를 곰곰이 생각한 후 그가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아온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자신을 경책하는 지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경계하는 글’이라는 뜻의 자경문은 불교와의 결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글이며, 또한 다시 청산을 버리고 세속으로 환속하여 복귀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의 아폴로기(apology)였던 것이다. 한겨울 동안 율곡은 치열하게 외갓집에서 입산하기 전부터 계속해왔던 과거시험공부를 계속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듬해 봄 한성부에서 주관하는 한성시에 응모하기 위해서 율곡은 서둘러 한양으로 귀향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장원에 급제하여 화려하게 입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儒林(52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0)

    儒林(52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0)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0) 전해오는 야사에 의하면 이원수는 꼬박 사흘 낮 사흘 밤을 쉬지 않고 오백그루의 밤나무와 오백 개의 밤톨을 혼자서 심었다고 한다. 이원수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졌으나 노추산은 이로부터 원효가 태어난 밤나무계곡, 즉 ‘율곡(栗谷)’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강릉의 오죽헌 집에 탁발승 하나가 찾아들었다. 외할머니는 정성껏 담은 쌀 한 되를 가져다 바랑에 넣어다 주는 순간 그 스님이 1년 전에 찾아왔던 바로 그 스님이란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스님께서는 작년에 오셨던 그 스님이 아니신가요.” “그래, 밤나무는 모두 심으셨는가요.” “스님의 말씀대로 더도 덜도 아닌 꼭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지금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럼 이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밤나무를 심은 파주의 노추산에 있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 즉시 파주의 노추산을 찾아간다. 노추산에서는 이원수가 땀을 흘리며 밤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이원수가 스님을 쳐다본 순간 스님은 다짜고짜로 밤나무의 숫자를 세어보기 시작하였다. “한 그루, 두 그루,….” 스님은 지팡이로 밤나무를 일일이 확인해 나가면서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다. “998,999,….” 하나하나 밤나무의 숫자를 헤아리던 스님의 지팡이는 마침내 땅위에서 멎어섰다. “한 그루가 모자라는군요.” 한 그루가 모자란다는 말에 이원수는 깜짝 놀라며 다시 세어보았다. 그러나 과연 스님의 말대로 꼭 한 그루가 모자랐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히 오백그루의 밤나무 묘목과 오백 개의 밤톨을 심었는데, 한 그루가 부족하다니. 그러자 스님이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이제 당신의 아이는 하늘의 것이요. 곧 하늘이 당신의 아이를 데리고 갈 것이요.” 그때였다. 낙심하던 이원수는 땅에 떨어진 낙엽을 헤치다 이제 막 땅을 뚫고 솟아나오는 새싹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여기도 있습니다.” 이원수는 소리쳐 말하였다. “분명히 밤나무 새싹입니다.” 스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하였다. “내가 졌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순간 스님은 호랑이로 변하여 울부짖으며 하늘을 박차고 사라졌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로부터 파주의 노추산은 밤나무가 많은 율곡리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한갓 야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율곡의 호는 이러한 야담의 본거지인 ‘율곡리’에서 따온 것이었으며, 실제로 원효가 태어난 곳이 율곡의 ‘사라수’ 아래였다고 삼국유사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율곡이란 이름도 이처럼 원효와 깊은 인연을 가진 불교적 숙연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 儒林(51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9)

    儒林(51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9)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9) 마을 동구 밖에서 간신히 스님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외할머니는 스님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스님, 저희 집으로 가셔서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선선히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두 사람은 오죽헌으로 돌아왔으나 스님은 한참 동안을 마당에서 놀고 있는 현룡을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말씀하여 주십시오, 스님. 저 아이를 하늘이 가만히 놓아둘까 그것이 걱정되다니요.” 외할머니가 채근하자 스님이 무거운 입을 떼었다. “저 아이가 지나치게 똑똑하여 하늘의 천기를 해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액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마침 소문을 전해들은 현룡의 아버지 이원수도 이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 “저 아이를 위해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야 합니다.” 밤나무 천 그루라는 말에 기가 막힌 외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밤나무 천 그루를 한꺼번에 어떻게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저 아이의 아버지가 혼자서 심어야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아버지 혼자서 밤나무를 심어야한다는 스님의 말에 이원수가 따지듯 물어 말하였다. “아니, 무슨 이유로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저 아이의 재능을 탐낸 하늘이 호랑이를 보내어 잡아갈 것입니다.” “하필이면 밤나무여야 하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옛날 원효(元曉)대사께오서는 압량(押梁:지금의 경산군)의 남부 불지촌(佛地村)의 북쪽에 있는 율곡(栗谷)의 사라수(娑羅樹) 아래서 태어났습니다. 대사의 어머니께서 원효를 잉태, 만삭이 되어 마침내 그 율곡 골짜기의 밤나무 아래를 지내다가 홀로 해산을 하셨습니다. 창황 중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해서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어두고 그 아래서 해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라고 불렀습니다. 사라수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 부처님을 편안하게 모셨던 상서로운 나무로 이 아이를 보호해주기 위해서는 원효대사의 가피(加被)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침내 할 말을 마친 스님이 합장을 하고 사라지자 외할머니는 사위에게 말하였다.“여보게, 어서 저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하게나. 저 스님은 보통 분이 아닌 것 같으네.” 장모의 말을 듣고 이원수는 하인을 불러 모아 밤나무 묘목 천 그루를 구해오도록 하였다. 하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밤나무 천 그루를 일시에 구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간신히 구한 것은 밤나무 오백그루. 나머지는 할 수 없이 밤톨로 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원수는 오백그루의 묘목과 오백 개의 밤톨을 가지고 하인들과 함께 파주의 노추산으로 갔다. 스님의 말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아버지 혼자서 이 모든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므로 이원수는 혼자서 땅을 파고, 혼자서 밤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 ‘소설가 무당’이 엮어 낸 무당 소설

    ‘소설가 무당’이 엮어 낸 무당 소설

    중견 작가 이경자(59)가 만신 김금화씨를 모델로 한 신작 소설 ‘계화’(생각의나무)를 펴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큰무당 계화와 무병을 앓는 스물다섯의 연주. 가난한 집에서 입 하나 덜 요량으로 열여섯에 시집을 간 계화는 갖은 구박과 설움 끝에 친정으로 쫓겨와 외할머니에게 내림굿을 받는다.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동생마저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연주는 아버지의 무관심과 계모의 학대를 못이겨 가출한 뒤 험한 생을 살아왔다. 소설은 신딸 연주가 신어머니 계화로부터 황해도 내림굿을 받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찍듯 꼼꼼하게 그려나간다. 산청울림굿을 시작으로 조상신을 모시는 일월성신맞이굿, 잡귀 잡신을 벗기고 풀어주는 허주굿, 여러 신들을 즐겁게 놀려주는 초부정 초감흥굿, 그리고 솟을굿과 마당굿으로 마무리되는 내림굿의 전모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된 김씨와 ‘소설가 무당’이라는 애칭을 지닌 작가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의 내림굿에 구경갔다가 김씨를 처음 만난 작가는 이후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김씨에게 의지하며 무당과 굿에 큰 관심을 가졌다. ‘계화’는 그즈음, 작가가 한 여성잡지에 김씨의 일생을 극화한 소설을 연재하던 중 잡지사가 부도 나는 바람에 중단됐던 것을 완성한 것. 소설 앞뒤에 무속 전문 사진작가 김수남씨가 김씨의 내림굿을 찍은 화보와 한국 전래 무속을 연구해온 김인회 연세대 교수의 해설을 실어 이해를 도왔다.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절반의 실패’‘혼자 눈뜨는 아침’ 등 여성주의 계열의 작품을 주로 발표해왔다.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儒林(518)-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8)

    儒林(518)-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8)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8) 물론 율곡은 이 상소문에서 한때 자신이 심취하였던 불교의 교리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이 상소는 요승 보우의 악행에 대한 논척(論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교를 ‘이단’이라고 분명히 못 박음으로써 한때 자신이 ‘이단’에 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율곡의 이러한 태도는 율곡이 가진 남다른 엘리트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퇴계와 율곡 두 거인의 차이점이기도 하였다. 만약 퇴계가 율곡처럼 한때 궁향(窮鄕)에 들었더라면 설혹 불교의 폐단을 알고 있다 해도 퇴계는 불교를 이단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퇴계가 율곡에게 ‘권하노니 그대는 제때에 바른 길을 추구하고 궁향에 들었던 일 슬퍼하지 말아 주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을 미뤄 보면 율곡은 그 무렵 자신이 불교에 심취했던 것을 슬퍼하고 그러한 고민을 사흘 동안 퇴계에게 모두 털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율곡이 이처럼 한때 불교에 심취하였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였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불경을 좋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율곡의 아버지가 벼슬에 관심이 없고 유유자적한 청빈생활을 즐겨하였던 것은 이처럼 불교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율곡은 불교와 많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데, 그의 호가 율곡, 즉 ‘밤나무계곡’이라고 불린 것도 본가가 있는 파주의 노추산에 밤나무가 많다고 해서 ‘율곡리’에서 불리는 데서 따온 것이지만 노추산에 밤나무가 많게 된 것은 율곡과 한 스님과 맺은 불교적 인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율곡이 다섯 살 무렵,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강릉에서 성장하고 있던 율곡에게 어느 날 스님 한사람이 찾아온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탁발을 하고 있던 스님에게 외할머니 이씨는 얼른 광으로 가서 쌀 한 되를 퍼서 스님에게 시주하였다고 한다. “복 받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합장하고 인사를 할 때 현룡이 할머니를 부르며 뛰어왔다. 현룡은 율곡의 아명. 뒤로 돌아서려던 스님은 그 소리를 듣고 현룡을 쳐다 보았다. 한참을 쳐다 보던 스님은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참 총명해 보이는 아이로군요.” 스님의 말에 외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서 웃으며 대답하였다. “네 아주 똑똑한 아이랍니다.” 그러나 스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꼭 살아있어야 하는데, 쯧쯧.” 혀를 차는 스님의 말에 외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러자 스님은 다시 합장을 하며 말하였다. “저 아이는 분명 영특한 아이지만 하늘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스님은 말을 마치고 벼랑을 꾸며 훌쩍 길을 나섰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이 너무 궁금하였던 외할머니는 스님을 차마 보낼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곧 스님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스님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 ‘당신이 그녀라면’ 12일 개봉

    ‘당신이 그녀라면’ 12일 개봉

    유능한 변호사이지만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여자. 불어나는 체중 걱정에 먹는 일조차 스트레스인 못 말리는 워커홀릭이다. 그녀의 동생은 딴판이다. 직장에서는 사흘을 못 버티고 셈은커녕 읽기조차 제대로 못하는 ‘텅빈’ 사고뭉치. 그런데 몸매 하나는 끝내주니 둘째 가라면 서러운 연애박사이다. ‘당신이 그녀라면’(In Her Shoes·12일 개봉)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자매의 사랑과 연애에 주목한 드라마이다. 잡담에 가까운 그렇고 그런 할리우드 연애담이란 편견은 걷어내도 좋겠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소재로 출발은 하되, 드라마 몸피를 굵혀가는 요령이 예사롭지 않다. 노처녀 변호사인 로즈(토니 콜레트)는 툭하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고나 치는 동생 매기(카메론 디아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새 엄마의 구박을 못 이겨 또 짐을 싸들고 온 매기. 자매의 동거가 시작되고, 영화는 두 여자의 티격태격 갈등 에피소드들을 부지런히 나열한다. 연애엔 젬병인 언니, 그런 언니를 끌고 다니며 남자 낚는 법을 시연해보이는 동생의 상반된 캐릭터는 그 자체로도 한참동안 유쾌하다. 두 여자의 갈등 동기는 사뭇 강도가 높다. 로즈가 천신만고 끝에 사귄 남자를, 매기가 유혹하고 만 것이다. 자매의 캐릭터가 빚는 발랄하고 유쾌한 파열음 행진이 꽤 진지한 메시지를 향해 고개돌리는 건 이때부터이다. 언니에게서 쫓겨난 매기가 찾아간 곳은, 얼굴도 모르는 외할머니 엘라(셜리 매클레인)가 일하는 실버타운. 가족과 떨어진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사이에 매기의 삶은 조금씩 성숙해간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여성취향에 가까운 드라마이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잠자는 자아를 일깨워 삶의 진실에 눈떠가는 주인공들 이야기에는 사려와 통찰의 힘이 깃들어 있다. 매기가 떠난 뒤 그 빈자리를 돌아보며 뜻밖에 자신의 반쪽짜리 자아를 고민하고 성찰하는 로즈의 에피소드들은 관객의 연민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새로운 지평을 열 삶의 여지는 얼마든 있다는, 격려와 다독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카메론 디아즈의 천방지축 연기는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암팡지다. 중반부 이후, 고요히 여유롭게 삶의 끝자락을 채워가는 실버타운에 던져진 그녀의 캐릭터가 생기로 넘친다. 커티스 핸슨 감독.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山寺 체험뒤 아이가 차분해 졌어요”

    “山寺 체험뒤 아이가 차분해 졌어요”

    3일 오전 4시30분 경기 여주군 신륵사.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지만 천년 고찰은 고사리 같은 어린이들의 기지개로 기운이 넘치기 시작했다. 사찰 생활 체험 이틀째를 맞아 30명의 초등학생들은 현담(40) 스님의 채근에 하나 둘 찬물로 세수를 하며 잠을 쫓는다. 오전 5시. 이들은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목탁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우는 가운데 덕중(42) 스님이 불경을 읽기 시작했다. 2002년 이후 삶에 지친 중생들이 수행자의 정갈한 삶을 배우며 삶의 여유를 느끼고자 산사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맞춰 전국의 유명 사찰들은 겨울방학을 맞아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템플 스테이(Temple stay)’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성인들이 참가하는 정통 사찰 체험은 아니지만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은 자연의 소중함과 전통문화를 배우는 좋은 기회이다. 신륵사는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어린이 불교학교’를 여름·겨울방학 동안 한 차례씩 운영하고 있다. 실무간사 오희영(36)씨는 “불교색이 짙은 수련회와 달리 템플 스테이는 예불과 발우공양을 빼면 불교색이 거의 없어 기독교인 등 다른 종교인들도 많이 참가한다.”면서 “참가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특별한 종교가 없으며 불교신자는 25%, 나머지는 기독교, 천주교 등이다.”고 전했다. 아침예불을 마친 아이들이 아침 공양(식사)을 하기 위해 공양간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가부좌를 틀고 발우(식기)를 자리 앞에 놓은 뒤 허리를 곧추세웠다. 사찰 음식을 발우에 담은 뒤 보해(46) 스님이 “조용하게 소리를 내지 않고 먹습니다.”고 말하자 젓가락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아이들은 발우에 담긴 음식을 깨끗하게 비우고 물로 발우를 헹군 뒤 수건으로 닦아 수납함에 올려 놓았다. 아침 식사가 비로소 끝났다. 5번째 템플 스테이에 참가한 김예인(14)양은 “발우공양을 다소 더럽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좋은 의미가 담겨 있다.”면서 “평소 부산스럽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싸리비를 들고 사찰 곳곳을 쓸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 불가의 원칙을 따르기 위해서다.1시간 동안 경내 곳곳을 청소하던 아이들은 요가 프로그램이 준비되자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갔다. 지루한 절 문화를 감안하면 이벤트 물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는 제격이었다. 주임교사 권태선(27·여)씨는 “어린이들은 만들기와 율동 등 직접 해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되도록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넣었다.”고 밝혔다. 점심공양을 마친 아이들이 종이컵을 이용해 자그마한 연등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연꽃제작은 꽃에 담긴 불가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보다 또래들과 모여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것에 무게를 더하는 분위기다. 김동현(12)군은 “절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없지만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조유진(10)양은 “일찍 일어나는 것을 빼면 나머지는 다 좋다.”고 털어놨다. 연꽃을 만든 어린이들은 사찰 옆에 위치한 얼음판에서 얼음을 지치며 재래식 썰매를 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점점 활기를 띠었다. 몇몇은 연을 만들거나 제기차기에 열중하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점차 흔적을 감추었거나 이제는 설날에만 즐길 수 있는 옛 어린이 놀이다. 손자 심재윤(12)군이 못 미더워 찾아온 외할머니 임규봉(63)씨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발우공양으로 손자가 음식을 남기지 않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면서 “투박하지만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 등 자연산을 먹는 것도 좋은 체험인 것 같다.”고 했다. 겨울철 놀이를 끝낸 아이들은 이어 저녁 공양과 예불, 촛불의식 등 템플 스테이 일정에 따라 산사의 하루를 채워갔다. 주지 세영(52) 스님은 “사찰 체험을 통해 전통문화를 익히며 어린이에게 집중력과 안정감, 공동체 의식 등을 배울 수 있다.”면서 “절 특유의 고요함에서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밤 10시.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점차 사그라들며 어느덧 사찰의 하루도 저물었다. 여주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儒林(501)-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3)

    儒林(501)-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3)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3) 성주를 떠난 율곡은 정처 없이 북행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강릉의 외갓집. 그로서는 실로 3년만의 귀향이었다. 19세 되던 해 3월. 율곡은 불교에 귀의하고 금강산에 입산하였으나 1년 만에 하산한 후 한때 강릉의 오죽헌에 머물며 와신상담하고 있었다. 이때 율곡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었던가는 이 무렵 율곡의 머리가 너무나 길어서 머리를 빗을 때면 선 채로 빗을 만큼 봉두난발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율곡은 그 무렵 자신의 행색에 대해서 무신경할 만큼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다행히 20세의 청년 율곡의 곁에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4년 전 사랑하는 딸 신사임당을 여의고 시름에 잠겨있던 외할머니는 어느 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가 1년 만에 나타난 외손자를 보자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온 것만큼 반겨 맞았다. 외할머니 이씨는 이미 76세였고, 오죽헌에는 율곡의 넷째이모부였던 권화(權和)가 안팎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권화는 원래 강릉사람으로 아들이 없는 이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장모를 모시고 가장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었는데, 그는 율곡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사랑하였다. 질풍노도의 청년 이율곡에게 외할머니와 이모부 권화만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각별한 사람들이었다. 훗날 이조좌랑이었던 33세의 율곡이 11월 외할머니가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달려간 것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에는 권화가 대관령 아래에까지 배웅하며 작별을 아쉬워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 두 사람이 율곡의 생애에서 차지한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율곡은 이처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외할머니와 따뜻이 대해주는 이모부의 배려 속에서 모처럼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자신의 나아갈 방향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목표를 심사숙고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때 율곡은 그 유명한 ‘자경문(自警文)’을 짓는다. ‘자경문’이란 문자 그대로 ‘스스로 경계하여 조심하는 글’이란 뜻으로 전문은 11조로 구성되어 있다. 율곡의 인생에서 커다란 삶의 전환을 의미하며 그의 사상은 그 이후에 다방면으로 전개되어 더욱 깊고 심화되었으니, 자경문은 그의 일생의 이정표를 스스로 정립한 일종의 소크라테스적 아폴로기(Apology:변명)였던 것이다. 원래 ‘자경문’이란 불가에서 초발심문(初發心文)과 함께 사미승이 맨 처음 공부하는 기본서로, 승려 야운(野雲)이 지은 책이었다. 그러므로 방금 금강산에서 하산하였던 율곡이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지었다는 것은 아직도 불교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한때 불교교리에 심취하였던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유학으로 나아가고자하는 입지를 결연하게 드러내 보인 문장으로, 이는 율곡이 평생 동안 지켜나간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던 것이다.
  • 儒林(48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

    儒林(48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 당시 조정에서는 이씨에게 정려(旌閭)하여 열녀문을 세우고 뜻을 기린 바 있었는데, 신사임당의 총명과 부덕은 바로 그러한 어머니의 행실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사임당이란 호는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고자 한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태임은 아들 문왕을 공자가 그토록 존경하였던 성군으로 키우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던 중국 역사상 최고의 현모양처. 사임당은 육신으로는 어머니 이씨로부터 부덕을 물려받았고, 정신으로는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을 본받으면서 율곡을 키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곡은 강릉으로 간다 해도 그곳에는 이미 어머니는 없고 오직 외할머니만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사립문을 나설 때에도 발길은 천 길처럼 무거웠던 것이다. 외할머니 이씨. 율곡의 나이 세 살 때 외할머니 이씨는 어느 날 석류(石榴) 한 개를 놓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현룡아, 이 물건이 무엇과 같으냐.” 현룡(現龍)은 율곡의 아명. 율곡을 낳던 해 봄, 신사임당은 기이한 꿈을 꾼다. 꿈속에 그녀는 동해바다로 나아갔는데, 어떤 선녀가 어린 사내아이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살결이 옥처럼 깨끗하고 이상한 광채가 나면서 사람들의 주위를 끌 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곧이어 문득 그 선녀가 그 아이를 신사임당의 품속으로 던져주었는데, 이를 받고나서 얼마 후에 임신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사임당 신씨가 율곡을 낳던 저녁에도 꿈을 꾸었다. 그것은 검은 용이 침실 쪽으로 날아와서 마루에 서려 있는 꿈이었으므로 어린 율곡을 현룡이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오죽헌에서 율곡이 태어난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인 것이다. 그러자 세 살의 어린 율곡은 석류를 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이른바 ‘석류껍질이 부서진 붉은 구슬을 감싸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율곡의 대답은 옛 고시(古詩)를 인용한 말. 따라서 그의 연보에 나와 있는 대로 ‘율곡은 말을 배우면서부터 곧 글을 쓸 줄 알았다.’는 기록이 과장만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율곡은 여섯 살 때 서울의 본가로 올 때까지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 살면서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던 것이다. 그러나 강릉을 찾아가면 비록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어머니 사임당의 부재가 한층 더 공허하게 느껴져 새삼스러운 인생허망에 사로잡힐 것이 아닌가. 이미 율곡은 어머니가 죽자 3년간 시묘하였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천착하여 1년간 금강산에 입산,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던 뼈아픈 전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절. 이 무렵 청년 율곡의 초상은 가히 ‘슈트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즉 ‘미친 바람과 성난 파도’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 [유림] 儒林(47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유림] 儒林(47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 1558년 명종 13년 봄. 한양에서 600여리나 떨어진 경상도 성주(星州)에서 한겨울을 난 율곡은 해동이 되자 강릉의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성주는 율곡의 처갓집으로 그곳에는 장인 노경린(盧景麟)이 목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노경린은 성주목사로 재임할 때 서원을 세워 유학을 장려하였으며,6년 동안 그곳에서 크게 선정을 베풀어 조정으로부터 포장을 받을 만큼 바른 시정을 펼치고 있었다. 노경린이 세운 서원은 훗날 퇴계가 천곡서원(川谷書院)으로 명명할 만큼 유서 깊은 서원이 되었는데,1년 전에 율곡은 노경린의 딸과 혼인하였던 것이다. 이때 율곡의 나이는 22살. 당시로서는 드문 만혼(晩婚)이었다. 원래 율곡의 장인 노경린은 서울의 수진방(壽進坊), 즉 오늘의 청진동에 함께 살던 이웃이었다. 그러므로 율곡의 부친이었던 덕형 이원수(李元秀)와 노경린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였다. 따라서 노경린의 딸과 율곡 간의 혼례는 덕수 이씨 집안과 곡산 노씨 집안의 결합이기도 했던 것이다. 율곡의 정부인이었던 노씨는 율곡과 여섯 살의 차이로 이 무렵 17살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폐질을 알아서 건강한 몸은 아니었으므로 율곡이 처갓집이었던 성주에서 월동을 하였던 것은 어쩌면 신행(新行)겸 처가살이였던 것처럼 보인다. 겨우살이를 끝낸 율곡은 봄이 되자 성주를 떠난다. 목적은 강릉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한 것. 그러나 실은 정처 없이 사립문을 나선 나그네의 여정이었다. 왜냐하면 율곡의 고향이었던 강릉의 오죽헌에는 이미 사랑하는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사임당.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현모양처 상으로 손꼽히는 신사임당은 이미 7년 전 율곡의 나이 16세 때 세상을 떠났다. 부덕과 재능을 갖추고 남다른 교육열로 직접 율곡에게 글을 가르쳤던 신사임당은 율곡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엄격한 스승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율곡은 외할머니 이씨를 어머니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이씨는 사임당의 아버지인 진사 신명화(申命和)의 부인으로 신씨 가에 시집가서 율곡의 어머니인 사임당을 비롯하여 딸 다섯을 낳아 키우고 ‘삼강행실도’를 외워 부덕을 닦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남편이 병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자기 손가락을 칼로 잘라 쾌유를 빌었다고 ‘중종실록’은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강원도 관찰사가 왕에게 보고한 치계(致啓)에 의하면 이씨는 서울에서 돌아온 남편이 전염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자 밤낮없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효험이 없자 어느 날 새벽 몰래 남편의 패도(佩刀)를 품고 선영에 나아가 향불을 피워 기도하며 남편의 쾌유를 간절히 빌었으며,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잘라 지극정성으로 간구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그날 밤 그녀의 꿈에 하늘에서 대추만한 약이 떨어지는 장면이 현몽하였고, 이튿날 남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 얼마나 무서웠을까

    부모 이혼으로 외갓집인 주거용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지내던 초등학생이 도사견에 물려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11일 오후 3시쯤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비닐하우스에서 의왕시 모 초등학교 3학년 권모(9)군이 집에서 기르던 도사견에 물려 숨져 있는 것을 담임 장모(53) 교사와 지난해 담임 김모(56) 교사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김 교사는 “권군이 등교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겨 장 교사와 함께 집을 찾아갔는데 비닐하우스 문앞에 권군이 쓰러져 숨져 있었다.”면서 “권군의 시신 주변에 길이 1m가 넘는 도사견 한 마리가 목줄이 풀려 사납게 덤벼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도사견을 생포하려다 실패, 권총 3발을 쏘아 사살했다. 발견 당시 권군은 옷 대부분이 찢겨 있었으며 도사견에 물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권군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지난 2003년 1학년때 부모 이혼으로 외갓집인 의왕으로 왔다. 평일에는 외조부모가 농사일로 충청남도 서산에 머물러 이모와 단둘이 지내왔으나, 지난 9월 이모가 집을 옮긴 뒤 줄곧 혼자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학교 관계자는 “최근 1∼2개월간은 주말마다 집에 오는 외할머니가 해놓은 밥을 먹고 개밥도 챙겨주며 혼자 잘 지내왔다.”면서 “말수는 적지만 선생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학생이었는데 이런 일을 당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권군이 전날 오후 7시쯤까지 친구와 놀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늦게 귀가하다가 목줄이 풀려 있던 도사견에게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조사중이다.의왕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가출 며느리, 아들 유산 달라는데…

    Q얼마전에 장남(44)이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아들은 시가 5억원 정도인 아파트 한 채를 남겼습니다. 또 생명보험금으로 2억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3년 전 가출했던 며느리와 손녀가 나타나 장남의 상속재산을 모두 가지겠다고 합니다. 집에는 미혼인 저의 차남과 장손자만 남아 있습니다. 자식까지 버리고 가출했던 며느리에게 장남이 남긴 재산을 모두 주어야 하나요. -고영희(가명·65) A돌아온 며느리와 손녀의 상속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 민법은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인 자격에 대해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피상속인 등의 생명을 위협한 사람과 유언서를 위조하는 등 유언을 방해한 사람을 결격자로 규정해 상속자격을 박탈합니다. 즉 고의로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인 직계존속·배우자 등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사람들은 모두 상속자격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상속순위의 사람에게 단순히 상처를 입혀 숨지게 했을 때는 상속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부모나 남편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행패를 부리는 등의 행동을 일삼는 ‘패륜’을 저지른다고 상속인 자격을 빼앗지는 않습니다. 상속자격이 없어지는 경우는 ‘고의’로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상해치사한 경우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고의’는 살해나 상해에 대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상속과 관계없는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에도 상속자격이 없어집니다. 손자가 외할머니를 살해하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 그 사례입니다. 하지만 피상속인 등을 살해하면 자신이 상속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는 인식이 있었는지 여부는 상속인 자격 상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1992년 대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던 남편이 자동차 사고를 내 동승한 아내가 사망했습니다. 고의로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편은 상속인 자격을 잃지 않았고, 보험금을 청구해 아내의 재산을 상속 받았습니다. 두번째로 유언행위에 대한 부정행위 부분입니다. 피상속인을 속이거나 협박해 유언에 영향을 미치거나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하면 상속자격이 없어집니다. 만일 유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면 상속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에 열거된 상속 결격사유는 제한적으로 해석됩니다. 앞서 설명한 사유가 아닌 경우라면 가출했거나 불륜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도 상속 결격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고영희씨 장남의 경우처럼 오래 전에 가출해 이혼한 것과 다름없는 배우자가 상속이 개시된 뒤 나타나 자신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상속인의 자격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설명드렸던 결격자를 용서해 상속인 자격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피상속인을 살해해 상속 결격이 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없기 때문에,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살해가 미수에 그친 경우나 유언서를 위조한 경우에만 용서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더 많이 차지하려고 부정행위를 하는 자를 응징하는 차원에서 “결격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게 다수설입니다.
  • [29일 TV 하이라이트]

    ●행복의 오솔길(EBS 오전 6시20분) 외우는 노래만 200여곡,20년 동안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어왔다는 ‘걸어다니는 노래방’ 83세의 강말란 할머니의 건강 비밀을 알아본다. 노인들의 맞춤형 구직 프로젝트 ‘무한도전’ 코너에서는 아이들에게 전통놀이, 전래동화, 전통예절 등을 가르치는 전통문화 지도사에 도전해본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웰빙시대를 맞아 연인과의 데이트 스타일도 변하고 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감각으로 무장한 웰빙형 데이트 코스가 신세대 커플들을 사로잡고 있다. 둘이서 나란히 받을 수 있는 커플 전용 피부관리는 기본이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커플 마사지로 건강도 찾고, 달콤한 칵테일을 곁들이며 즐기는 풋스파도 좋다. ●결혼합시다(MBC 오후 7시45분) 무역업을 한다며 거짓말을 했던 게 들통난 재원은 변변한 변명도 못한 채 나영의 집에서 쫓겨난다. 애절하게 재원을 부르는 나영을 뒤로한 채 재원은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걸어간다. 한편 스타워즈를 열심히 보고 있던 석순은 비를 맞고 들어오는 재원을 보고 나영과의 사이에 심각한 기류가 흐름을 느낀다. ●실제상황 토요일(SBS 오후 6시)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한 ‘이불공주’의 문제점을 알게 된 가족들은 일상 생활의 변화를 시도한다. 아빠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불공주’는 떼를 쓰며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외할머니집, 놀이방, 엄마의 일터 세 곳을 전전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4살 ‘이불공주’에게 묘책은? ●KBS 스페셜(KBS1 오후 8시) 외국인과 결혼한 국제 가정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모습이 아니다. 특히 농촌 총각 4명 중 1명이 국제결혼자로 농촌지역의 국제결혼 비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갖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아내이자,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의 자리를 지켜가려는 억새풀 같은 외국 여성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시선을 맞췄다. ●슬픔이여 안녕(KBS2 오후 7시55분) 성민과 여진은 정우의 공백으로 백화점 프로모션 준비에 애를 먹는다. 선옥은 정우를 수소문하기 위해 서영을 찾아가지만 연심은 언짢아하며 선옥을 피한다. 선옥은 정우가 돌아오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혜선에게 말한다. 한편 정우는 후미진 바닷가에서 고통으로 신음을 하는데….
  • 40대 두 여류의 흡인력

    40대 두 여류의 흡인력

    기생과 여자 목수.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보기 드문 캐릭터다.40대 두 여성 작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놓은 신작 소설이 맨 처음 눈길을 잡아끄는 이유다. 이 시대 마지막 기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현수(46)의 ‘신기생뎐’(문학동네)과 양귀비 꽃살문 전문가인 한 여성 목공예가의 비극적 삶을 그린 송은일(41)의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랜덤하우스중앙). 그러나 희귀한 소재가 불러일으키는 은밀한 호기심은 아주 잠깐이다. 책을 열면 탄탄한 구조, 찰진 문장 등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작가의 깊은 내공에 꼼짝없이 압도당한다. ●이현수 ‘신기생뎐’ 목포의 유명한 기방 부용각을 그대로 이은 군산의 부용각은 부엌어멈 타박네와 소리기생 오마담이 평생을 일궈온 전통 기방이다. 소멸돼가는 기방의 풍류를 고집스레 지켜가는 이곳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깃들어 산다. 호시탐탐 재산을 가로챌 궁리를 하는 오마담의 기둥서방 김사장, 오래 전 오마담의 소리에 끌려 부용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집사 박기사, 오마담의 뒤를 이을 부용각의 마지막 기생 미스 민…. 연작 형식의 ‘신기생뎐’은 이들을 고루 주인공으로 불러내 저마다의 애절한 사연을 풀어낸다. “제 고향(충북 영동)에선 가을마다 난계 박연을 기리는 국악축제가 열려요. 그 덕에 어릴 적부터 국악 장단이 자연스레 몸에 뱄는데 작가가 된 이후 그때 기억과 더불어 기생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옛 기방이 하나의 문화집단으로 기능했고, 현재의 예술이 기방문화에 빚지고 있음에도 지금껏 어느 작가도 기생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특히 황진이 같은 역사에 기록된 명기가 아니라 이름없이 사그라진 보통 기생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에 묘사된 기방의 법도와 기생들의 정서는 마치 작가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인 듯 생생하다. 이 때문에 계간 문예지에 2년 연재하는 동안 ‘의혹’(?)의 눈길도 많이 받았다.“기방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고, 기생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는 작가는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와 풍속도 등을 바탕으로 짐작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내용에 걸맞게 똑떨어지는 맛깔진 문체는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이다. 기생의 노랫가락처럼 흥을 타는 문장은 인간사 희로애락을 정성껏 어루만진다.“소재가 소재인 만큼 격조가 떨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문체에 목숨걸었다.”는 작가의 결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1997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 ‘마른 날들 사이에’로 당선된 작가는 소설집 ‘토란’과 장편소설 ‘길갓집 여자’를 냈고,2003년 무영문학상을 수상했다.9000원. ●송은일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 양귀비 꽃살문을 새기는 목공예가 이율희와 그녀의 어머니, 외할머니 등 모녀 삼대에 걸친 비극적 사랑의 악연을 전설처럼 풀어놓은 소설이다.‘양귀비 꽃살문’은 ‘목수’로 불리길 원하는 목공예가 이율희가 8년 전 대한민국 공예대전에 출품한 병풍의 제목이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사악함이 느껴진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금기의 꽃 양귀비를 닮은 이율희와 그녀 집안의 남다른 내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속 비극의 잉태지는 씨족 마을인 달아실(월곡)이다. 율희는 근동의 병원집 아들 유태준과 연인 관계였으나 결혼을 약속한 그로부터 어느날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는다. 상고를 나와 은행을 다니던 율희는 이후 두명의 스승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워 목공예가로 성공했다.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 태준은 뒤늦게 율희를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이씨 집안 여자들과 유씨 집안 남자들의 얽히고 설킨 애증의 역사가 실타래처럼 하나씩 풀려나온다. 소설은 양귀비 꽃살문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율희의 예술혼과 대를 이어 유사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씨 집안 여인들의 ‘불온한’ 삶을 촘촘히 교직해낸다. 이런 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유씨 집안 남자들의 폭력이 숨어 있다. 사랑과 운명이라는 이름아래 펼쳐지는 치명적인 폭력. 태준의 아이를 세번이나 지워야했던 율희가 태준의 사촌동생인 사준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쌍둥이를 잉태하는 대목은 그래서 섬뜩하면서도 남성들의 폭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 “어릴 적 시골에서 달구지에 상을 싣고 다니며 팔던 여자 목수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 1년 정도 소목일을 직접 배우기도 했다. 그는 “유씨 남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일상적인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아스피린 두알’로 당선된 작가는 장편 ‘불꽃섬’‘소울메이트’‘도둑의 누이’ 등을 냈다.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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