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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일 TV 하이라이트]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캐나다 앨버타주에 위치한 캘거리 서쪽에서 로키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카나나스키스´.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넓은 초지와 산, 풍부한 물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고 아늑한 카나나스키스로 김재원 아나운서 가족과 함께 떠나본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20분) 한판 ‘태양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여름이다.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우리 피부와 눈을 보호하는 데 녹색 채소만큼 훌륭한 먹거리는 없다. 뿐만 아니라, 중년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는 심혈관질환과 각종 암으로부터도 지켜준다. 녹색채소의 대표주자, 시금치와 브로콜리의 기적을 체험해 본다. ●대결!노래가 좋다(KBS2 오전 8시30분)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릴 시원한 라이브 무대가 마련된다.‘개그계의 성시경´ 문천식,‘나몰라 패밀리´의 김재우, 라이브 실력이 환상적인 정수영, 연기와 노래 솜씨가 모두 압권인 임대호, 불륜전문 배우로 통하는 민지영…. 가수 뺨치는 연예계의 숨은 노래 실력자들이 총출동해 환상의 라이브 무대를 선사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칭얼대는 아기를 잠재우는 자장가 한 곡의 평온함. 선수들과 청중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응원소리. 상대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공통된 소통법,‘소리´. 하지만, 이 소리가 때로는 죽음을 부르는 살생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무시무시한 ‘소리´의 두 얼굴을 들여다본다. ●굿모닝 세상은 지금(SBS 오전 7시35분) 쇠고기 사태 등으로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커진 요즘.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에코테리안´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에코테리안 도나카 매카티. 그의 집은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졌다. 샤워벽의 유리도 모두 길에서 주워온 것들. 자신이 고안한 풍력발전장치는 집에서 필요한 전력수요를 너끈히 감당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밤 12시20분) 12년 전, 불의의 사고로 척추신경에 큰 손상을 입은 은미는 사고 이후 하반신 마비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은미가 사고를 당하고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 후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아오고 있다. 지금은 은미의 건강뿐 아니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다. ●희망풍경(EBS 오전 6시) 수원의 서호공원. 매일 오전 9시쯤 허리에 끈이 묶인 채로 산책을 하는 두 남자가 나타난다. 혼자서는 한 걸음조차 떼기 힘들어 보이는 이기독(뇌병변·지적장애 1급)씨와 그런 그의 허리에 끈을 묶어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 이온엽씨. 희망을 잃지 않고 장애를 뛰어넘으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눈물겹다. ●인사이드월드(YTN 오후 5시30분)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위치한 팡가니강은 물을 둘러싼 분쟁의 중심지다. 최근 몇 해 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물에 목말라 있다. 또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물 부족과 그로 인한 갈등상황, 팡가니 강 유역의 평화대책 등을 살펴본다.
  • 키이라 나이틀리 “난 원래 말랐다” 거식증 부인

    키이라 나이틀리 “난 원래 말랐다” 거식증 부인

    영국 유명 스타 키이라 나이틀리(Keira Christina Knightley·23)가 최근 깡 마른 몸매로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서 “거식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나이틀리는 최근 한 행사에서 흉골과 갈비뼈가 심하게 드러나는 깡마른 몸매를 여과 없이 과시했다. 현재 키 170cm·몸무게 48kg의 나이틀리는 예전의 탄력 있던 몸매에 비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등장해 팬들의 의혹을 산 것. 그러나 나이틀리의 부모는 “내 딸은 천성적으로 말랐다. 거식증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이틀리의 엄마 셔먼 맥도날드(Sharman Macdonald)는 “키이라는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인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마른 몸매를 유지해왔다.”면서 “내 딸은 누구보다도 건강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키이라의 아버지는 그 나이(23세)때 키이라보다 더 말랐었다.”면서 “그나마 꿀과 계란을 섞은 우유를 마시고 운동을 거듭한 결과 지금의 정상적인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나이틀리의 아버지인 배우 윌 나이틀리(Will Knightley)도 “내 딸은 마치 ‘말’처럼 먹는다.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는다.”면서 “큰 키와 마른 몸은 모두 나에게서 유전된 것”이라고 옹호했다. 그러나 팬들의 끝없는 의혹에 나이틀리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거식증을 앓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나는 절대 거식증에 걸리지 않았으며 단 한번도 몸무게를 줄이기 위한 다이어트를 시도해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그녀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배우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는 “그녀는 매우 멋진 여자다.” 면서 “마치 ‘돼지’처럼 잘 먹는다. 거식증은 말도 안된다.”고 편을 들기도 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어린이책꽂이]

    ●내가 지켜줄 게(안미란 글, 정은희 그림, 아이세움 펴냄) 캄캄한 밤을 무서워 하는 아이들 머리맡에 슬며시 놓아 두면 좋을 그림책. 밤에 귀신, 괴물이 나타날까봐 겁먹은 꼬마 범이는 덩치 큰 곰도 알고 보면 겁쟁이라는 사실에 용기를 얻는다.3∼6세.8000원.●디시가 부르는 노래(신시아 보이트 글, 김상인 그림, 김옥수 옮김, 와이즈아이 펴냄) 엄마를 잃은 뒤 14세 소녀 디시와 어린 동생들은 자신들을 돌봐줄 가족을 찾아 미국 전역을 떠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외할머니댁.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외할머니는 마을에서 괴짜로 소문나 있지만, 조금씩 진심을 보여준다. 초등고학년 이상.1만 1000원.●흰지팡이 여행(에이다 바셋 리치필드 글, 김용연 그림, 이승숙 옮김, 사계절 펴냄) 시력을 잃어가는 아이가 좌절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가 점점 자신감을 회복하는 이야기로 옮겨가는 굵직한 메시지의 창작동화. 흰지팡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장애인용 지팡이.‘눈’만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통로가 아님을 일깨우는 그림책. 초등생.9800원.●동물 건축가(존 니콜슨 글·그림, 제종길 옮김, 현암사 펴냄) 동물들이 만든 집 모양은 제각각이다. 진흙으로 뚜껑 달린 주전자 모양으로 빚어내는 장수말벌, 풀을 엮어 푹신한 둥지로 만드는 박새, 어마어마한 댐을 만드는 비버…. 삽화를 곁들여 들려주는 갖가지 동물들의 각양각색 집짓기 이야기. 초등3년 이상.7800원.●눈물나무(카롤린 필립스 글, 전은경 옮김, 양철북 펴냄) ‘눈물나무’란 멕시코 국경 근처의 ‘이민자들의 집’ 안마당에 서있는 나무.15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멕시코 이민자들의 현실을 그린 청소년 성장소설이자 가족소설.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찾아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의 삶이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다. 청소년.9000원.
  • [30일 TV 하이라이트]

    ●60분 부모-2.0(EBS 오전 10시) 결혼 2년차,13개월 딸을 둔 김지혜·이건호 부부. 평소 가정적이고 아내와 아이에 대한 관심이 깊은 남편과 완벽주의적 성향의 아내. 결혼생활 전반에 만족도가 높은 아내와 달리 출산 후 뜸해진 부부관계에 대해 남편은 큰 아쉬움을 표현한다. 전문가에게 이 부부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들어본다. ●코끼리(MBC 오후 7시45분) 핸드폰을 연분홍으로 예쁘게 꾸민 현지. 그러자 세영은 휴대전화를 진분홍으로 바꾸고 나타난다. 현지가 머리를 반묶음 하고 외출하면, 어느새 세영도 방향만 바꿔서 반묶음 머리를 하고 있다. 자꾸만 자신을 따라하는 세영이 얄밉게 느껴지는 현지. 게다가 끝까지 따라한 게 아니라고 우기는 세영 때문에 현지는 점점 더 열받는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어쩌다 보수적이기 짝이 없는 영웅을 만나 결혼하게 된 천방지축 라희. 친구들과 나가 놀기 좋아하던 그녀가 하루 생활비로 몇 천 원 씩 쥐어주는 째째한 남편과 살자니 좀이 쑤신다. 오랜만에 남편 몰래 만난 친구들과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 라희는 하필이면 택시기사인 남편 차에 올라타 딱 걸리고 만다.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KBS1 오후 10시10분) 지난 4월18일,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수입 위생조건을 완화한 이후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곳보다 광우병 논란이 뜨겁다. 지금까지도 안전성과 관련된 과학적 사실과 근거없는 추측이 뒤섞여 혼란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 전문가에게 미국산 쇠고기의 진실을 들어본다. ●주말(N)(YTN 오전 10시35분)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밸리댄스 동호회를 소개한다. 화려한 춤과 의상,S라인을 뽐내는 밸리댄스 미녀들. 심지어 벨리댄스 봉사 공연으로 뜻깊은 주말 만들기에 한창이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매력을 느껴본다. 도심 속 주말코스로 재미있고도 안전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서울 시민안전체험관을 소개한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오후 8시50분) 웅이의 외할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지면서 웅이네 가족에게 위기가 닥친다. 웅 아범과 웅 어멈의 슬프도록 웃긴 가난한 사랑의 노래를 ‘웅이 아버지’를 통해 들어본다. 요절복통 개그 ‘왕 오빠’편에서는 내시들이 왕의 연애를 돕기 위해 나섰다. 내시들이 왕에게 여자를 꼬시기 위한 노하우와 비법을 전수한다.
  • [女談餘談]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급

    [女談餘談]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급

    어릴 적 어느 여름날 외가에서의 일이다. 외할머니는 앞 마루에서 낮잠을 즐기고 계셨다. 그때 우편배달부가 소리쳤다.“김○○씨 계십니까?” 그 김씨는 할머니와 사는 작은 외삼촌의 이름이 아니었다.“그런 사람 없는데요.”라는 어린 꼬마의 답변에 배달부 아저씨가 발길을 돌리려던 참에 할머니께서 벌떡 일어나셨다. 그리곤 “저요.”라며 그 우편물을 받았다. 충격을 받았다. 어린 외손녀에게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 자기처럼 이름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기자가 노인들도 사회의 중요 구성원임을 앞서 깨달은 것도 그 일이 계기가 된 듯싶다. 어젯밤 늦게 TV를 시청하다가 깜짝 놀랐다. 배우 최민수씨가 70대 노인을 폭행했다는 뉴스였다. 할머니와의 따뜻한 추억을 가진 기자에게 톱 스타가 폭력배나 다름없는 일을 영화 찍듯이 해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국민의 인기를 먹고 사는 톱스타라면 적어도 어린이, 노인, 장애인 같은 ‘약자’에 대해서는 더욱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최씨는 뒤늦게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너그럽게 포용하고 지나갈 일은 아닌듯 싶다. 최씨의 사건을 보면서 갑자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올해 최고의 작품상을 비롯해 4개의 상을 받으며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다. 메시지는 최씨의 폭행 사건과는 다소 무관하지만 영화 제목만큼은 최씨의 노인 폭행과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닌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혹 최씨의 이번 폭력도 노인을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터져 나온 것이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노인들은 인생과 사회생활에 대해 젊은 사람들보다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는 사회 발전의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서로 존중하는 풍토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간절히 느끼는 하루였다. 최광숙 공공정책부 차장급 bori@seoul.co.kr
  • [현장 행정]양천구 독거노인 빵 지원

    [현장 행정]양천구 독거노인 빵 지원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생신 축하합니다.”“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오냐 오냐, 내 새끼” 15일 양천구 신정2동 낡은 단칸방에서 오랜만에 감미로운 생일축하송이 흘러나온다. 할머니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손자는 ‘피’를 나누지 않은 독거노인과 자원봉사 학생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쓸쓸히 생일을 맞는 독거노인들을 위해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선물과 함께 전달하는 양천구의 ‘생일축하 행사’광경이다. ●학생들 빵배달 자원봉사도 “정말 고마워 난 생일 케이크가 처음이야. 정말 예쁘네.”라며 눈물만 뚝뚝 흘리는 김정순(71·신정1동) 할머니. 자식도 없이 살아온 할머니는 생일을 잊은 지 오래다. 자원봉사자 이영옥(58·목2동)씨와 아들 형석(16·마포고 1학년), 준석(14·월촌중 2학년)이가 불러주는 노래에 김 할머니는 웃음을 짓는다. 이씨는 “요즘 아이에게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면서 “오늘은 5명의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가야 한다.”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또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마다 빵을 배달하는 병찬(13·한가람중 1학년)이는 “매주 수요일 저녁은 1시간 일찍 집에서 나와 빵을 배달하고 학원에 간다.”면서 “시골에 계시는 외할머니처럼 생각하니 힘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달에 한 번 생일케이크도 전달 양천 자원봉사센터에서는 주민들과 어려운 이웃을 하나로 묶는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의 빵 나누기’이다.3개의 팀이 매주 화·수·목요일을 돌아가며 하루에 50여명의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할 빵을 만든다. 오경옥 봉사팀장은 “제빵봉사자 30 여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만드는 빵을 100여명의 배달봉사자가 오후에 배달을 한다.”면서 “만들 때 사랑과 정성을 가득 담아서인지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말한다. 이렇게 매주 세번씩 빵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씩 생일을 맞은 어르신들을 위해 케이크도 만든다. 또 설거지, 집안 청소를 하는 등 노인 돌보미 역할도 한다. 앞으로 발 마사지 또는 수지침 봉사단과 연계해 독거노인들에게 다양한 봉사서비스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추재엽 구청장은 “자치구의 힘만으론 사회의 그늘진 부분을 전부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봉사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책꽂이]

    ●시로 쓴 유언(오세영 등 지음, 굿 글로벌 펴냄) 73명의 시인이 죽음이라는 삶의 또 다른 길 앞에서 찾아낸 깨달음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한 사화집.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백하는 진실한 마음을 진솔한 언어로 형상화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시인들의 통찰과 예지가 오롯이 담겼다.7000원.●하우스키핑(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타임’이 선정한 100대 현대 영문소설에 선정된 장편소설.‘헤밍웨이 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커다란 호수가 있는 핑거본이라는 허구의 마을을 배경으로 화자인 루스와 어머니, 외할머니에 이르는 여성 삼대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냈다.1만 2000원.●유괴(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미경 옮김, 아름다운날 펴냄) ‘보물섬’‘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널리 알려진 작가의 모험소설. 스코틀랜드 독립 투쟁 당시 고아가 된 주인공 데이비드가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는 큰아버지를 물리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9000원.●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박주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6년 장편 ‘백수생활백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의 장편소설. 연애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20대 후반 여성의 고민과 속내를 요리에 빗대 경쾌한 필치로 그려냈다.1만원.●이별 잦은 시절(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펴냄) ‘20세기 모파상’으로 불리는 작가가 특유의 부드럽고 나직한 어조로 삶의 우수를 전하는 10편의 단편 모음집. 고전적인 깊이와 섬세한 문장, 세련된 감각의 필치가 인상적이다.1만원.●박인환 전집(맹문재 엮음, 실천문학사 펴냄) 195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이 31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쓴 시 81편, 산문 72편 등 모두 173편이 실렸다. 이 가운데 시인이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함께 만든 동인지 ‘신시론’에 발표한 시 ‘고르키의 달밤’과 산문, 번역시 등 15편은 새로 발굴된 작품이다.3만 5000원.●마지막 첫사랑(장마르크 파리시 지음, 강현주 옮김, 브리즈 펴냄) 혁명이 사라진 시대에 유일하게 추구할 가치로 남아 있는 첫사랑을 웅숭깊게 통찰한다. 지난해 프랑스 5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로제 니미에 문학상 수상작.9800원.
  • [女談餘談] 약자를 위한 나라/박상숙 미래생활부 기자

    [女談餘談] 약자를 위한 나라/박상숙 미래생활부 기자

    2003년 가을,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등졌다. 친구는 위암 투병 중이었다.2년 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난 남편을 뭐가 급해서 그리 빨리 뒤따라 갔나 싶어 황망했다. 친구의 아들은 여섯 살이었다. 그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가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하는 생각에 문득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아이는 외할머니와 이모들의 끔찍한 보살핌으로 비교적 티없이 자라고 있다. 너무 일찍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려 불행했지만 다른 가족의 사랑이 남았기에 한편으론 다행이다. 엄마 친구 중 한 분은 젊은 시절 정신을 놓은 딸을 30여년간 돌보고 계신다. 얼마 전 엄마는 그 아주머니 집에 다녀 오셨다.“에휴,○○가 머리가 허옇게 세서 피골이 상접한 채로 누워 있더라.” 쉰 살이 되도록 ‘미친X’으로 손가락질을 받더니 이제 췌장암까지 걸려, 먹지 못해 거동도 못하는 그 인생이 한없이 불쌍하다며 젖은 눈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일흔을 훌쩍 넘긴 아주머니는 딸 때문에 맘 편하게 외출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감옥살이 같은 삶을 살아왔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날, 아주머니는 버스 타고 투표하러 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머리뼈에 금이 갈 정도로 부상을 입었던 아주머니는 엄마에게 “그때 내가 죽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울먹이셨단다. 울산에서 여섯 살 소년의 가슴 아픈 죽음이 전해졌고 안양에 사는 두 소녀의 실종 소식은 어느새 매스컴에서 사라졌다. 미디어의 발달 때문인지 통계상으로도 수치가 오른 것인지 아동,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소식이 빈번하다. 이런 종류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늘 두 집이 떠오른다. 어린 손자와 병든 딸을 돌보는 두 할머니들이 ‘우리가 먼저 가면 저것들을 누가 돌봐줄까.’하고 한숨 짓지 않을까 싶어서다. 한 사회의 품격은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온몸이 부서져라 가족의 울타리를 든든하게 지켜 온 두 할머니가 ‘금쪽 같은 새끼들’을 믿음으로 이웃에, 사회에, 국가에 맡기고 편안하게 눈을 감을 날이 과연 올까. 박상숙 미래생활부 기자 alex@seoul.co.kr
  • [길섶에서] 홍시/국제부 송한수 차장

    한겨울 외가를 찾아갈 때면 외할머니는 늘 그러셨다. 큰 외손자 왔냐며 보자마자 장독대로 가셨다. 어르신, 무엇을 놓칠세라 조심조심 되돌아 나오신다. 온갖 풍상에 뼈만 남은 듯 허약해진 당신이다. 쟁반엔 사랑이 그득했다. 몰랑몰랑 홍시 댓개가 담겼다. 할머니 두 볼도 추위 탓에 홍시처럼 빨개져 있었다. 살얼음 살짝 얹힌 홍시는 ‘사각사각’ 소리까지도 맛났다. 이런 노래가 있다.‘홍시가 열리면/생각이 난다/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 주던/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설날, 하늘나라로 가신 어른들을 떠올리는 이야기가 오갔다.“아∼따.76년 이맘 때라. 얼마나 추웠는지….”누구든, 무엇이든 이제 볼래야 볼 수도 없게 된 터에야 뒤늦게 가슴을 치는 게 인생사 아닌가. 새삼 되새길 필요도 없건만, 너무나 간단한 이치를 지키지 못하는 존재 또한 인간이다. 한겨울 외가 뒷마당 빈 감나무 사이로 울어대는 바람은 그리움을 무시로 불어 넣었다. 엊그제 홍시를 댓개 사다가 들여 놓았다. 그제야 어머니의 어머니 생각이 그득해진다. 국제부 송한수 차장 onekor@seoul.co.kr
  • 다시 태어난다면 송이버섯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송이버섯으로

    첼리스트 요요마는 다시 태어나 바퀴벌레가 되고 싶다 했다는데, 나라면 단연 송이버섯이 되겠다. 요요마는 일종의 치기로 그런 말을 했을 테지만, 나는 진심이다. 몇 번이나 되뇌고 발설했는지 모른다. 인터넷 사이트의 암호마저 송이버섯으로 삼았을 정도다. 송이에 대한 첫 기억은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는데, 음식에 유난스러우리만치 정성스럽던 친구 어머니께서 버섯 튀김을 내시며 ‘너무도 비싸다’고 강조하셨다. 그날 그 밥상에서 우리 셋은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심하였다. 한 입에 먹기도 그렇고, 덥석 깨물어 먹기도 그렇고 하여 궁리한 끝에, 친구 어머니는 젓가락을 이용해 결대로 찢어 먹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리셨고, 나도 내 의식 속의 첫 송이를 그렇게 찢어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튀김은 결코 좋은 요리법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대로 찢는 작업은 재미있었다. 이후 송이를 끔찍이도 좋아하신 외할머니께서 속리산의 친구분에게 때마다 공수 받는 덕에 조금씩 얻어먹었고, 어쩌다 집에 들어오는 송이를 엄마와 함께 손질해 먹기도 했다. 송이는 집안에 출현하는 때부터 센세이션이고, 그걸 손질하는 건 의식에 가깝다. 절대 물에 담가두어서는 안되고, 졸졸 흐르는 물 아래서 작은 칼로 살살 흙을 긁어내어야 한다. 손이 닿는 시간도 될 수 있는 한 줄여야 하며, 어쩌다 살 한 점이라도 베어져나가면 아깝기 그지없다. 요즘 송이는 옛날 같지 않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예전엔 송이 하나만 썰어도 부엌 가득 향내가 진동했는데, 이젠 그런 강한 향이 없단다. 옛날에 먹던 음식 맛이 퇴화하는 것 같은 느낌은 송이뿐만이 아닐 터지만, 확실한 건 좋은 물건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져간다는 사실이다. 내게 송이를 주는 사람이 사라진 지 오래되어서, 이제는 직접 그 비싼 것을 일년에 한 번씩 사들인다. 어찌하면 좀 싸게 살 수 있나 생각한 끝에, 경동시장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추석 때는 값이 너무 뛰어서 피하고, 추석이 지나 값을 알아본다. 흡사 주식처럼 매일 매일, 오전 오후 가격이 바뀌기 때문에 전화로 시세를 알아본 후, 꽤 떨어졌다 싶을 때 시장을 향한다. 그 떨어졌다 싶을 때의 가격이 1킬로 당 15만원 전후로, 비가 안 와 수확이 확 줄었다던 작년엔 50만원을 호가했다. 중국산과 북한산은 훨씬 저렴한 편이고, 그래서 작년엔 할 수 없이 중국산을 사먹었다. 유통 문제 때문인지 토양 때문인지, 맛은 확실히 떨어졌지만, 얼려두고 먹을 셈이면 괜찮을 듯도 싶다. 최근 연변 지역을 가보니, 7월 말에도 그곳은 송이 풍년이었다. 여행객이 가는 한국 음식점마다 송이가 거침없이 나왔고, 심지어는 삼겹살과 함께 구어 먹기조차 하였는데, 경애하는 송이에겐 정말이지 실례를 범한 셈이다. 된장국 안에도 말린 송이가 들어있었다. 시장에서 1킬로 당 2만 원 하는 것을 사가지고 와 내 생전 가장 철 이른 송이를 맛보았건만, 말린 송이마저 사오지 않은 것이 영 후회스럽다. 중국 송이도 최상품은 장백산(백두산) 것을 최고로 치는데, 8월 말이 되어서야 나오며, 그중에서도 최상품은 몽땅 일본에 간다고 한다. 내가 먹은 것은 육질이 단단한 것도, 향이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닌, 남방지역 생산품이었다. 중국, 북한, 남한 할 것 없이 최상품 송이는 모두 일본행이다. 그러나 주변 국가의 최상품이 모여드는 일본에서도 가장 으뜸은 물론 자국산이다. 과연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송이가 객관적으로 가장 맛있는 것일까? 일본인의 송이 생각은 신비주의에 가깝지 싶다. ‘송이국’에 들어 있는 실제 송이는 한 조각에 불과하고, ‘송이밥’에 들어 있는 송이 역시 칼로 썬 것이 아니라 대패질 해 벗겨낸 듯한 얇디얇은 조각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송이를 킬로 단위로 사먹는다는 이야기는 엽기 스토리나 다름없다. 송이를 밝히는 탓에 나름대로 여러 가지 요리법을 찾고 실행해보았다. 송이 회, 샤브샤브, 참기름 구이, 버터 구이, 송이밥, 송이 맑은 국, 된장찌개, 장조림, 우동, 장아찌, 오믈렛... 양가집 규수를 위한 고급 요리책 등엔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내 결론은 송이 고유의 향과 맛을 방해하지 않는, 즉 야단스럽게 멋 부리지 않는 소박한 구이가 최고라는 것이다. 송이 장조림이나 장아찌는, 폼 좀 재느라 만들어보긴 하였으나, 솔직히 과시 효과뿐이었음을 고백한다. 송이를 맞이하는 가장 큰 기쁨? 갓이 전혀 피지 않고 아주 단단한 송이를 손에 쥐는 그 느낌, 그리고는 깨끗이 손질하여 칼을 썰 때 드러나는 순도 100%의 흰 살결! 탄성을 금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실은 최고다. 그래서 송이를 좋아하는 여자들에 대해 에로티시즘 운운하며 놀리지들 않던가. 다시 태어나면 송이버섯이 되고 싶은 내 소망의 배후에는 송이의 고상함에 대한 동경이 숨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어쩜 좀 더 냉철한 재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을 수도…? 나의 송이 축제 1. 갓이 피지 않는 중간 크기의 단단한 송이를 흐르는 물에 살살 씻는다. 거무스레한 막은 벗겨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흙과 돌만 제거한다. 2. 저미듯 썰어 맛보기로 날 것을 낸다(송이회). 3. 참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저민 송이를 살짝 굽는다. 이때 소금을 살짝 뿌린다. 기름 없이 굽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는데(참기름 향이 송이 향을 죽이므로), 한 방울의 참기름이 송이를 부드럽고 맛있게 해주는 것 같다. 버터 구이는 금물. 멋 부리기 위해 잣가루 등을 뿌리는 것도 불필요. 4. 맑은 장국(가츠오 우동 국물 류)에 송이를 넣고 뚜껑 있는 그릇에 담아낸다. 밥상 위에서 뚜껑을 여는 순간 분출되는 그 향이란! 5. 밥은 뜸 들 때쯤 송이를 넣어, 밥이 다 되면 섞어서 푼다. 6. 손질하며 생긴 부스러기나 상태가 좋지 않은 부분들은 모아 두었다가 된장찌개에 넣는다. 찌개가 더 할 나위 없이 맛있어진다. 7. 송이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소고기 소금구이 정도면 충분. 너무 맛이 강한 반찬은 함께 내지 않는 것이 좋다. 8. 달지 않은 우리 술, 특히 독주가 반주로는 제격. 9. 송이는 제철 음식으로 신선할 때 먹는 것이 으뜸이지만, 아쉬운 경우를 위해 손질해 저민 것을 적당한 분량만큼 랩으로 싸 냉동한다. 다른 요리용으로는 별로지만, 우동 국물에 넣으면(끓는 맨 마지막 순간에 넣을 것) 일품이다. 10. 참고로 송이를 먹는 방법으로는 결대로 가늘게 쪽쪽 찢어 먹는 것이 육질의 재미를 배가시키니, 한번 그렇게 시도해 보시도록. Enjoy! 글 투투 프리랜서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우리애만 차별대우 한다” 학부모, 수업중 교사 폭행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아이에게 차별대우를 한다.’며 교실로 찾아온 학부모에게 수업시간에 폭행을 당했다. 31일 서울 강동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25일 서울 잠실동 모 초등학교 3학년1반에서 수업을 하던 50대 여교사 A씨가 이 반의 학생 B군 가족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폭행을 당했다. 당시 교실로 찾아왔던 B군 가족은 외할머니와 부모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B군 가족은 “A교사가 우리 애에게 차별대우를 한다.”고 주장하며 수업 도중 교실에 들어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A씨를 폭행했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수업시간에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자 옆 반에서 수업 중이던 교사 등이 찾아와 B군 가족을 말렸고,A교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날 오후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교 측 관계자는 “현재 이 문제에 대해 책임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서 “서로 사과해 조용히 마무리된 것으로만 알고 있다.”고 밝혔다. 관할 교육청인 강동교육청 관계자는 “사건 당사자인 A교사가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어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 “교권회복 차원에서 가해 학부모에게 피해자가 납득할 만한 피해보상 조치와 함께 학생 앞에서 공개사과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비단꽃 흩뿌려진 나라만신 60년길

    비단꽃 흩뿌려진 나라만신 60년길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이에게 국민가수, 국민배우 등의 칭호를 붙인다면 그에게는 ‘국민무당’이란 이름이 어울릴 듯하다.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한 미국 공연 이후 줄곧 나라 굿을 도맡아 온 나라 만신 김금화(76)가 자서전 ‘비단꽃 넘세(생각의나무 펴냄)’를 냈다. 그의 이름인 금화의 뜻이 바로 비단꽃이다. 하지만 이 이름은 김금화가 13살이 되기 전까지 얻지 못했다. 그 이전까지의 이름은 ‘넘세’였다. 넘세는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 아들을 학수고대했던 부모는 첫째에 이어 둘째인 금화도 딸로 태어나자 몹시 실망했다. 한스러운 어린 시절 이름만큼이나 그의 삶도 한 권의 자서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신기가 내린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 횟배·학질·감기 같은 잔병치레가 잦았고, 황해도 연백의 빈농 집안에서 피죽 한 그릇 얻어먹기도 힘들었다. 12살에 무병을 앓기 시작했으나 14살에는 정신대 나가는 걸 면하기 위해 5리쯤 떨어진 동네로 시집을 갔다. 그녀가 묘사하는 시집살이는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호랑이 시어머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시어머니는 하루종일 고된 농사일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구타까지 서슴지 않았다.2년만에 시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17살에 외할머니로부터 내림굿을 받게 된다. 신어머니를 모시고 굿판을 따라다니며 여러가지 절차를 익히는 무당수업 기간도 시집살이 못지않게 맵고 힘들었다.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 일어나면서부터는 무당과 굿은 한낱 미신으로 몰려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로, 시끄러운 굿판을 벌이면 경찰서에 잡혀가기 일쑤였다. 두번째 결혼도 11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김금화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로 꼽는 것은 82년 미국에서 열린 한·미수교 100주년 공연에 참가했던 일이다. 민속에 관심이 많았던, 에밀레 박물관 창설자 고 조자용 선생의 주선으로 성사된 이 공연은 녹스빌에 이어 워싱턴·뉴저지·뉴욕 등 미국의 곳곳을 돌며 석달간 이어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는 당시에 대해 “우리 굿이야말로 진정한 한·미수교의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고 자부한다. 땅과 얼굴색, 언어가 다른 사람이 굿으로 통했으니 진정한 ‘소통’이며 ‘맺어짐’이다.”라고 회고했다. 김금화는 그의 굿이 유명해지자 영화 ‘서울만신’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지미에게 춤과 굿을 가르치거나 직접 단막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해외공연에서도 항상 인간문화재나 국립무용단에 비해 뒷전이었던 김금화는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호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고 있다. 로마대학에서 교황의 진혼굿을 했고,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을 벌였으며, 베를린에서 윤이상을 위한 진혼굿, 사도세자 진혼굿 등을 펼쳤다. 이제 여든이 다 되어가는 가녀린 몸이지만 화려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는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범접하지 못할 기가 느껴진다. 김금화가 강화도에 사재를 털어 지은 조촐한 굿당에 ‘금화당’이란 현판을 써서 걸어준 도올 김용옥이 쓴 시가 책 앞머리에 실렸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내 생애 최악의 남자’서 첫 주연 탁재훈

    ‘내 생애 최악의 남자’서 첫 주연 탁재훈

    TV 오락프로그램의 방청객 혹은 출연자가 된 기분이다. 탁재훈과의 인터뷰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거의 10초마다 한번씩 폭소가 터지지 않았을까 싶다. 고운 목청은 어머니에게서 왔고,“바람끼를 포함한 모든 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익살을 떤다. 유머 감각은 외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체득한 것이라고 한다. ‘컨츄리 꼬꼬’란 간판을 걸고 8개월째 빈둥거리다 출연한 오락프로그램에서 사생결단하고 입담을 펼쳤다. 뭘 하든 개그맨보다 더 웃긴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 꼬리표는 언젠가부터 ‘부적’이 됐다. 그리고 이제 그는 어디에 갖다 놔도 평균 이상은 하는 만능 연예인으로 각인됐다. 카메오로 출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사람들의 눈에 든 영화만 7개. 마침내 불혹의 나이에 당당하게 주인공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첫 주연작은 30일 개봉하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술김에 치른 ‘거사’로 10년 우정을 깨고 대학 동창과 결혼하는 소심남 성태 역이다. 영화는 결혼 직후 완벽한 이상형을 만난 뒤 흔들리는 커플의 이야기다. ●1998년 영화계 첫발… 가수로 데뷔했지만 다시 영화품으로 사실 그는 영화에 먼저 몸담았다.1988년 ‘마님’이라는 작품에서 연출부로 일했다. 군대 제대 후 93년 다시 충무로로 돌아온 끼 넘치는 그에게 주변에선 배우를 권했고,‘혼자 뜨는 달’로 데뷔했다. 하지만 인연은 여기까지였다.4년을 놀다가 31살에 가수로 새출발했다. 가슴 한 구석에 미련은 늘 있었고, 한참을 돌아 원점에 섰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이제야 기회가 오는구나.”했다. 그에 앞서 고마움도 느꼈다고 했다.“나를 택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그래서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연기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만든 작품은 코미디 ‘가문의 위기’다.“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신인상 후보까지 올랐어요. 그런데 0표를 받았어요. 이건 저한테 약을 친 거예요.(웃음)한 세 표 정도 나왔으면 이쯤에서 됐다 했겠는데 자극이 확 되더라고요.” ●“시나리오 제목만 봐도 감이 팍팍” 지금까지 그가 맡은 배역들은 TV에 나온 코믹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들이다. 이번 영화도 그럴까. 뚜껑을 열어보니 망가지는 건 오히려 상대 배우 염정아다.“얼마큼 자연스럽게 가느냐가 관건”이었다는 말처럼 탁재훈은 너무나 멀쩡하다. 그가 아주 많이 웃겨줄 거라고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탁재훈이 망가지지 않으면 무슨 재미? 하지만 현재 촬영 막바지에 있는 그의 또 다른 주연작 ‘어린왕자’를 놓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할 듯하다. 여기서 그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음향효과 기술자로 나온다. 감독은 그의 슬픈 눈을 보고 낙점했단다.“맨날 울어서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에요.(웃음)” 시나리오 선택의 제1요건은 ‘제목’이란다. 실컷 웃었는데 그는 사뭇 진지하다.“진짜로 저는 제목을 보면 감이 와요.” 폼 잡지 않는 것 또한 그의 매력이 아닐까. 다음 작품은 역시 제목에 ‘필’이 꽂혀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 ‘어젯밤에 생긴 일’이다.“노래는 생계가 아니라 생활”이라는 그는 당분간 영화에 ‘올인’할 작정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길섶에서] 예단/함혜리 논설위원

    장조카가 곧 결혼을 한다. 오랜만의 경사다. 아장아장하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장가를 간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신부쪽에서 예단이 왔다. 요즘 방식으로 현금을 보냈다고 했다. 마음에 안드는 물건을 받는 것보다는 현금으로 주는 게 낫다는 반응들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부터 막내 이모인 나까지 꼼꼼히 챙겨 보내 준 사돈댁의 정성이 고마웠다. 내 몫을 전해 받고는 언니에게 “잘 받았다.”고 전화했다. 언니는 “이모는 뭐 해줄건데?”라고 묻는다. 정성을 담은 선물을 하나 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선물보다는 현금이 좋다고 한다. 얼마 정도면 되느냐고 물었다.‘알아서 성의껏’하면 된다고 하더니 그래도 ‘체면 살릴 만큼’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모의 체면을 얼마에 살릴 수 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신부한테서 받은 만큼 내야 할 모양이다. 예단 받을 것을 감안해 이미 결혼식에 입을 옷을 샀건만…. 요즘 예단이라는 게 결국은 체면이 왔다갔다 하는 것일 뿐인데 낸들 알 턱이 없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제3의 맛 ‘젓갈’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제3의 맛 ‘젓갈’

    한국인에게 젓갈은 ‘밥도둑’이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 찬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뜨고 곰삭은 젓갈 한 점을 올려 먹다 보면 어느 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어렸을 적 전라도가 고향이신 외할머니께서는 음식솜씨가 유난히 좋으셨고 우리집 밥상에는 할머님이 보내주신 황석어젓이며 멸치젓, 갈치속젓, 토하젓, 어리굴젓 같은 젓갈들이 계절별로 늘 올라왔다. ●어패류의 살·알·창자 등에 소금 20% 섞어 젓갈은 어패류의 살, 알, 창자 등에 소금을 20% 정도 섞어 염장법으로 담근 것으로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다. 젓갈은 숙성 기간 중 자체에 있는 자가분해 효소와 미생물이 발효하면서 생기는 유리아미노산과 핵산 분해 산물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특유의 감칠맛을 내게 된다. 작은 생선의 뼈나 새우, 갑각류의 껍질은 숙성 중에 연해져서 칼슘의 좋은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식해’는 수산물과 소금 외에 밥이나 전분질을 섞어서 담그는 일종의 젓갈이다. 재료 중의 전분이 발효하면서 유산이 생겨 독특한 신맛이 나고 부패를 막아준다. 생선의 삭은 맛이 유별나게 좋다. 젓갈은 수산물이 가장 많이 잡힐 때 염장을 하므로 지방마다 담그는 종류와 시기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젓갈 종류는 140여종에 이른다. 소재별로 분류해 보면, 생선으로 담근 것이 80여 종, 생선의 내장이나 생식소로 담근 것이 50여종, 게나 새우 등 갑각류로 담근 것이 20여종이고, 낙지, 문어, 오징어 등의 두족류로 담근 것이 16종, 그 밖에 해삼이나 성게로 담근 젓갈이 있다. 젓갈의 종류별 이용 빈도는 멸치젓, 새우젓, 명란젓, 오징어젓, 조개젓, 어리굴젓의 순이다. 찌개나 국의 간을 맞출 때에는 주로 새우젓을, 나물을 무칠 때는 멸치젓으로 만든 멸장을 넣는데 간장만으로 간을 한 것과는 달리 독특한 맛이 있다. 새우젓은 서해안이 주 생산지이고, 명태가 많이 잡히는 동해안에서는 명태를 말리는 덕장으로 보내기 전에 알은 모아서 명란젓을 담그고, 창자로는 창란젓을 담근다. 대구아가미젓은 대구모젓이라고도 하는데 얇게 썬 무를 넣고 무쳐서 반찬으로 먹는다. ●단백질 많고 지방분해 효소 다량 함유 젓갈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분해효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소화를 돕는다. 또 쌀이 주식인 우리에게 부족하기 쉬운 라이신과 트레오닌을 보충해주고 비타민 B12가 풍부하다. 젓갈은 단백질뿐 아니라 당질, 지질, 유기산, 기타 성분들이 적당히 분해되고 어울려 진한 감칠맛을 내므로 직접 식용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김치의 부원료인 조미료로서 많이 이용된다. 하지만 젓갈에는 염분이 높아 과도하게 섭취하면 소금 속의 나트륨 성분 때문에 고혈압과 신장병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최근에는 유기산, 알코올, 보존제 등의 첨가로 젓갈의 염도가 많이 낮아지고 있으나 가능하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섭취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서울 중구 신당동 중앙시장 초입에 위치한 ‘성내식당’은 어렸을 적 할머니가 담가 주시던 그 젓갈맛을 느낄 수 있는 소박한 밥집이다. 전라남도 담양 출신의 이순례 사장은 30년 가까이 이 식당을 운영하면서 직접 담근 맛깔스러운 젓갈과 반찬으로 전라도의 진한 향토 맛을 변함없이 낸다. 30년째 같은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뜨끈뜨끈한 돌솥밥에 각종 젓갈과 김치, 나물, 장아찌, 어른 주먹만 한 간장 게장 등 20여가지의 반찬이 딸려 나오는 밥상을 마주하면 감동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 집의 메뉴는 청국장, 갈치찌개, 굴비, 생태찌개, 갈치구이, 삼치구이, 고등어구이, 북어찜 등의 뚝배기 백반인데 청국장(7000원)과 생태찌개(9000원)를 제외하면 모두 8000원이다. 주메뉴를 고르면 멸치젓, 오징어젓, 갈치속젓, 토하젓, 황석어젓, 굴젓, 가자미식해 등의 젓갈을 포함한 20여가지의 반찬과 찌개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전화 (02) 2252-5878. 영업시간 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여성전문병원 유비여성클리닉 원장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복거일이 본 ‘10년뒤 한국’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복거일이 본 ‘10년뒤 한국’

    요양원은 ‘현대적’이었다.‘로즈 가든’이라 쓰인 간판부터 산뜻했고, 널찍한 정원의 잔디는 잘 가꿔져 있었다. 담장을 덮은 덩굴장미도 이름 값을 했다. 휴대 전화가 울렸다. 구보 여사는 급히 가방에서 전화를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누나? 나 원영이야.” “응, 요양원에 방금 도착했다.” 그녀는 애써 쾌활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엄마 어떠셔?”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뭐, 내내… 요양원에 들어가신다는 것도 모르시니…”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동생이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누나, 그럼 수고해.” “그래, 알았다. 들어가라.” 로비로 들어서자,‘현대적’이라는 느낌이 한결 짙어졌다. 밖에서 보기보다는 널찍한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밝고 환했다. 시설들과 장치들이 모두 새로 들여와서 손때가 묻을 새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는데도,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코에 닿는 공기에 옅게 섞인 소독제 냄새를 빼놓으면, 노인 요양 시설임을 일깨워줄 것은 없었다. 구보 여사는 현관 옆에 놓인 큰 화분의 동백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살아있는 나무임을 확인하고서, 그녀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과 함께 그녀 가슴에 묵직하게 고였던 죄의식이 밖으로 나간 듯, 문득 가슴이 가벼워졌다. ‘십년 동안에 많이 변했구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는 큰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던 때를 떠올렸다. 휴전선 가까운 작은 도시에 있던 그 요양원은 정말로 초라했었다. 좁고 어둑했고 더러웠다. 창문을 막은 쇠창살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텁텁한 실내엔 오줌 냄새가 어렸다.‘실버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이 초라함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했다. 그 초라한 시설을 둘러보는 그녀 가슴에 죄의식이 고였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미안해할 까닭은 없었다. 큰어머니는 자식들이 여럿이었고 효자, 효부 소리를 들을 처지는 아니었지만, 아들 셋과 며느리들이 사이 좋게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모셨다. 그러나 치매 증세가 심해지자, 번갈아 모시기가 어려워졌고, 가족회의 끝에 치매 환자들을 수용하는 요양 시설에 들어가시도록 한 터였다. 그래도 그 시설의 초라함이 마음에 아프게 닿아서, 그녀는 눈시울이 따가웠고 속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찾았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이젠 이런 시설도 현대적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 동백 잎새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그녀는 고마운 마음으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저기 있네, 접수대.” 진이가 한쪽의 접수대를 가리켰다. “응, 그렇구나.” 휠체어를 앞세운 딸을 따라, 그녀는 접수대로 향했다. 어머니는 휠체어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무슨 까닭인지,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으면, 유난히 조용했다. 입원 수속은 이내 끝났다. 어저께 남동생 내외가 미리 수속을 밟은 것이었다. “여기 서명해주세요.” 환자와 보호자의 신원을 확인하자, 연분홍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서류를 앞으로 내밀었다. 서류 위에 놓인 검정 볼펜을 집어들면서, 그녀는 문득 목이 메었다.‘이제 내가 엄마를, 날 낳아 길러준 엄마를, 남에게 맡기는구나. 자신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남에게’ 그녀가 서명을 하자, 간호원이 능숙한 솜씨로 휠체어를 밀면서 앞장을 섰다. 그 사소한 동작이 그녀 가슴에 뜻밖에도 아프게 닿았다. 이미 어머니는 가족의 품을 떠나 남에게, 아무런 혈연이 없는 사람들에게, 넘겨진 것이었다. “여깁니다,” 열쇠를 꺼내 들고 병실 번호를 다시 확인하면서, 간호원이 직업적으로 밝은 목소리를 냈다. “네” 진이가 따라서 밝은 목소리를 내고서 휠체어에 조상(彫像)처럼 조용히 앉은 제 외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할머니, 여기가 할머니 방이래요.” 뜻밖에도 어머니가 진이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아직 병들지 않은 뇌의 부분이 외손녀 목소리에 담긴 무엇에 반응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숨을 멈추고 기다렸으나, 어머니의 반응은 더 나오지 않았다. 병실은 꽤 넓었다. 그리고 건물의 다른 부분들처럼 ‘현대적’이었다. 어지간한 호텔처럼 잘 꾸며져서, 구보 여사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쉬었다. 간호사는 방 한구석으로 다가가더니 무슨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구보 여사는 그것이 ‘간호 로봇’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대부분 간호 로봇이 맡았다는 얘기는 이미 들어서 아는 터였다. 그녀는 목을 빼어 간호사가 조작하는 로봇을 살폈다. 언뜻 보면, 사람과 비슷했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팔로 일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얼굴도 사람처럼 보이도록 애쓴 듯했다. 그동안 로봇이 많이 발전되고 보급되어서, 로봇이 있는 병실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준비가 되었는지, 로봇이 휠체어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잠시 휠체어에 탄 사람을 살피더니, 뜻밖에도 보드라운 여자 목소리로 말했다,“환자 이명인, 각인 과정 시작.” “환자의 모습을 각인하는 겁니다. 환자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는 거죠.” 웃음 띤 얼굴로 간호원이 친절하게 설명했다.“저렇게 각인을 해야, 로봇이 환자를 잘 돌보아 줄 수 있습니다.” “로봇이 정말로 환자를 잘 돌보아주나요?” 이런 일에 대해선 잘 모르는 보통 시민 구보 여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요,” 간호사는 이내 대꾸했다. 그리고 밝은 웃음을 얼굴에 올렸다.“사람보다 나아요.” 간호사의 얘기가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어라 할 수도 없어서, 구보 여사는 어정쩡한 웃음으로 대꾸했다. “네에” “사람은 치매에 걸리신 분들을 돌보기가 어려워요. 지치니까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하루 스물 네 시간 환자 뒷바라지하려면, 지치죠. 그래서 ‘치매 환자에겐 효자 없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구보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 “로봇은 지치지 않거든요. 묵묵히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죠. 환자가 계속 방을 어지럽혀도, 불평하지 않고 계속 치우죠. 잠도 안 자고.” “월급을 달라고도 하지 않고요.” 진이가 날름 끼어들었다. 웃음이 터졌다. “그렇죠. 그래서 의료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었다고요. 전에는 치매 환자 한 사람에 들어가는 비용이 말도 못하게 많았어요. 요새는 로봇 유지비밖에 들지 않아요.” “저 로봇 가슴에 있는 건 이름인가요?” 로봇을 유심히 살피면서, 진이가 물었다. “네. 저 로봇은 ‘로빈’이라고 하죠.” 로봇이 주의를 끄는 소리를 내더니,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환자 이명인, 각인 과정 완료.” “이제부터 ‘로빈’이 환자분을 돌보아줄 겁니다. 보호자께선 안심하시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간호사의 얘기가 직업적으로 들려서, 구보 여사는 슬픔이 울컥 솟구쳤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다가서서 뒤에서 조심스럽게 안았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엄마, 나 지금 가는데… 자주 찾아올게.” 절절한 마음이 담겼지만, 그녀 목소리는 그녀 귀에도 어쩐지 공허하게 들렸다.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진이는 쾌활하게 말하고 고개를 까딱했다. 이어 로봇에게로 말을 건넸다.“우리 할머니 잘 돌보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로봇이 머뭇거림 없이 매끄럽게 대꾸했다. 이번에는 진이도 좀 놀란 듯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간호사가 득의의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 제가 이명진 씨에게 ‘잠자는 미녀’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보호자들께서도 들어주시면, 저로선 기쁨이겠습니다.” ●복거일은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기업은행과 한국과학연구원 선박연구소 등의 직장생활을 거쳐 87년 가상역사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등단했다. 시인이자 사회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현재 뉴라이트재단 기관지 ‘시대정신’ 편집위원 등 보수논객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논쟁적 글쓰기 작업을 벌여오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보수적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문화미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대표작으로 ‘비명을 찾아서’ ‘역사 속의 나그네’ ‘그라운드 제로’ 등의 소설과 ‘五丈原의 가을’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등의 시,‘현실과 지향’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등의 평론집이 있다.
  • 14일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헤이그 추모 열기

    14일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헤이그 추모 열기

    |헤이그(네덜란드) 이종수특파원|‘1000년을 기억할 100년전 큰 죽음’ 14일은 100년 전 ‘망국의 한’을 호소하러 헤이그로 왔던 특사 3인 가운데 한 분인 이준 열사가 순국한 날이다. 열사의 추모식이 열리는 헤이그를 향해 12일 오전 파리를 출발했다. 파리 북역에서 초고속열차를 타고 벨기에 브뤼셀 미디역에서 내려 일반 열차로 갈아탄 뒤 4시간 만에 헤이그(Den Haag)HS역에 도착했다.100년 전 6월25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른바 ‘헤이그 특사’ 세 분이 내린 곳이다. ●기념관 건물 입구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 최초의 검사 이준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라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대장정에 나섰다. 일제의 감시가 살벌해 조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이었다.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상설·이위종 열사를 각각 만난 뒤 시베리아를 거쳐 독일 베를린, 벨기에 브뤼셀을 거처 64일 만에 HS역에 도착했다. 낯설고 어색한 풍경의 이국 거리를 지나갔을 열사 3인. 헤이그HS역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니 와건스트라트(Wagenstraat)124A번지에 자리한 이준 기념관이 나왔다. 울분을 못이긴 열사가 순국한 드 용(De Jong) 호텔을 개조한 곳이다. 방문객을 맞은 것은 건물 입구에 당당하게 펄럭이는 태극기와 정문의 “이 집은 이준 열사가 순국하신 역사적인 집입니다.”라는 문구다.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니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과 송창주 이준기념관 관장이 ‘유럽 한민족 평화제전’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독립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이준기념관도 14일 재개관했다. 당시 만국평화회의는 6월15일부터 10월18일까지 열렸다.3인의 특사가 도착한 것은 6월25일. 기념관에서 걸어서 10분 떨어진 빈넨호프의 회의장에 도착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국권을 상실한 나라의 ‘슬픈 숙명’이었다. 주미 공사를 지낸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다니며 서양 문물에 일찍 눈을 뜬 이위종 열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만행을 고발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7월14일 이준 열사가 순국하면서 3인의 투쟁도 종지부를 찍는다. 이준 기념관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그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특사 3인의 이동 경로, 고종의 특사 신임장, 을사늑약 무효를 알리는 트리뷴지 기사…. 대부분 이 원장 부부가 손수 일본·러시아·네덜란드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 등을 뒤져서 모은 것이다. 이날 네덜란드를 관광한 뒤 벨기에로 넘어가는 도중에 기념관을 찾았다는 양윤정(33)씨는 “굳이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들러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獨·佛 교민들 단체방문 줄이어 열사의 넋을 기리는 ‘제의’는 13일 오전 시내 한 호텔에서 국제학술회의로 막이 올랐다. 평화제전 위원장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헤이그 특사의 사명은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노력이었지만 독립을 지켜갈 수 있는 스스로의 힘과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만국평화회의는 일제가 지칭한 것이고 당신 언론에서는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세계평화회의’ 등으로 표현했다.”며 “이준 열사 순국은 이후 국내외 자결 순국, 의열 투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14일에는 기념식과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헤이그시는 이날을 ‘이준 평화의 날’로 지정했다. 한국·네덜란드 예술가들의 공동 기획으로 헤이그 특사 3인의 도착 장면도 재현한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복 보훈처 장관, 최종무 주 네덜란드 한국 대사,W 데이트만 헤이그 시장 등 국내외 인사 120여명이 참석했다. 독일·벨기에·프랑스 등 인근 국가 교민들도 버스를 동원해 단체로 방문하는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vielee@seoul.co.kr ■대한매일신보 ‘그날의 이준’ ‘이준씨가 만국평화회의에 한국 파견원으로 갔던 일은 세상사람이 다 알거니와, 어제 동경전보에 따르면 그가 충분(忠憤)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여 만국사신 앞에 피를 뿌려서 만국을 경동(驚動)케 하였다더라.’ 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분사(墳死)한 소식을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가 1908년 7월18일 호외로 전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황성신문은 다음날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받아 ‘이준씨는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자기의 복부를 할부(割剖)하였다는 전보가 도래하였다는 설이 유(有)하더라.’고 이후 오랫동안 믿음을 준 할복자살설을 기정사실화했다. 대한매일신보의 호외는 이준 열사의 서거 소식에 앞서 급박한 대한제국 정부의 움직임을 먼저 다루었다. 기사는 ‘내각대신 여덟분이 회동하여 어제 오후 7시부터 12시까지 황상폐하를 알견하고 해아(海牙·헤이그)에 위원을 파송함으로 당하시는 곤란을 면하실 방책을 올렸다.’고 적었다. 그 방책이란 ▲광무 9년 11월17일에 체결한 신조약에 어보를 찍고 ▲통치를 대신할 황제의 섭정을 추천해야 하며 ▲황제가 직접 동경에 가서 ‘일황폐하’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조약이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고종이 이때까지 정식으로 비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한매일신보는 ‘황상폐하께옵서는 이 세 가지를 다 윤허치 아니하셨다더라.’고 보도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이준열사 외손녀 유성천여사 “100주기 감회 남달라” |헤이그(네덜란드) 이종수특파원|이준 열사의 외손녀 유성천(80) 여사가 열사의 순국 100주년 추모식을 맞는 감회는 뜻깊었다.13일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는 헤이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유 여사는 어머니(이준 열사의 외동딸)에게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준 열사와 가족들에 대한 기억을 들려줬다. 그 속에는 독립운동가 가족이 겪은 신산한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유 여사는 “외할머니가 헤이그에서 외할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은 뒤 큰 충격을 받아서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결국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심장판막증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이준 열사 가족의 삶과 관련 “일제 강점기여서 애국 지사 집안은 말도 삼가해야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외할머니는 동지적 입장에서 외할아버지를 이해하고 내조를 잘 하셨다고 들었는데 헤이그 특사로 가기 전에 독립운동하시다가 투옥되셨을 때 굳건하게 옥바라지를 하셨다고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100주기를 맞은 소감에 대해 “90주기에 참석한 뒤 귀국하면서 10년 뒤에 다시 이곳에 올 줄 생각도 못했다.”며 “많은 교민들이 오시고 행사를 위해 여러 분들이 노고를 아끼지 않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 “청소년에 민족의식 고취” |헤이그 이종수특파원|1991년부터 이준 열사 기념식을 시작한 이기항(71) 이준아카데미 원장이 열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소회는 남달랐다. 12일 헤이그 이준평화박물관에서 만난 이 원장은 기념식 준비에 정신없이 바빴다. 이준 열사 기념사업에 뛰어든 동기를 물었더니 소박하게 대답했다.“우연히 발을 담갔다가 ‘호랑이 등 탄’ 심정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거창한 명분 대신에 매번 상황이 그의 발을 기념 사업에 한 발짝씩 끌어당겼다는 것이다. 1972년 상사 주재원으로 왔다가 사업가로 변신하며 네덜란드에 살던 이 원장은 그저 간헐적으로 열사의 묘적지를 참배하던 교포였다. 격년으로 추모식을 주관하던 이 원장에게 1992년은 이준 기념사업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네덜란드 일간 NRC신문에서 이준 열사가 순국하기 전까지 묵었던 데 용 호텔이 재개발로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3년 노력 끝에 1995년 사재 20만달러를 쾌척해 ‘사고’를 쳤지만 더 큰 일이 다가왔다. 호텔을 기념관으로 건립하기 위한 자금이 문제였다. 해서 한국에 들어와 소식을 알리고 전경련을 찾아가 기념관 건립 자금을 협찬받았다. “내 나이가 우리 나이로 70이 넘었습니다. 더 바랄 것도 없이 그냥 많이 보고들 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와서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vielee@seoul.co.kr
  • 신문배달… 노숙… 이젠 로봇마스터

    로봇은 더 이상 꿈의 존재가 아니다. 단순한 청소용 로봇부터 애완용, 산업용, 군사용, 의료용에서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영화 속 세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양한 로봇이 현실 생활로 들어오고 있다. EBS ‘다큐 人(인)’은 9일 오후 9시20분 ‘21세기 로봇마스터, 절망은 없다’에서 로봇 산업에 도전장을 던진 (주)콘테크 이동환(30) 사장의 프로정신을 조명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전국을 누비는 이 사장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제작부터 판매까지 책임지고 있는 로봇마스터. 말이 좋아 사장이지 회사를 차리고 지금까지 1년 동안 여유롭게 앉아 있는 날이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춤, 노래, 화상통화와 홈 네트워크가 가능한 엔터테인먼트 로봇 ‘로군’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 오늘도 ‘로군’을 데리고 한 주에도 몇 건씩의 실사평가와 세미나, 행사장을 오간다. 이 사장의 경력은 노숙자, 구두닦이, 접시닦이, 신문배달원, 군고구마 장수, 고시원 총무 등 그야말로 ‘화려’하다. 경남 마산의 명문고에 다니던 그는 선배와의 문제로 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서울을 찾았다.17세의 그가 쥐고 있던 돈은 22만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꿈꿔온 로봇의 꿈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6개월 동안 외할머니가 계신 섬에 틀어박혀 공부에 매진했고,2000년 명지대 정보제어과에 입학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1983년 10월 아웅산테러사건이 발생하기 1년여 전, 그러니까 1982년 봄 어느날이다. 한 전직 장관(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부인이 지인 소개로 용하다는 무당을 서울에서 만났다. 부인의 남편은 다름아닌 외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있었다. 무당은 부인에게 “염려말라. 가만히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면서 말미에 “요즘 들어 국상(國喪)이 자주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원혼을 풀어야 한다.”는 말을 뱉었다. 며칠 후 무당의 말대로 전직 장관 부인 등을 포함, 몇몇 지인들이 서울시내 모처에 모여 고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원혼을 달래는 굿을 조용히 치렀다.(이때 지난해 작고한 사진작가 김수남씨가 무당옷을 빌려 입고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참석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무당은 전직 장관 부인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장관 지명에서 자신의 남편은 탈락되고 대신 이범석씨가 신임 외무장관이 됐다는 것이었다. 목소리에는 약간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무당은 “변명 같지만 전화위복이 될 테니 두고 보라.”고 위로했다. 해가 바뀌어 1983년 9월. 무당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생일날(음력 8월18일)에 주위 친한 사람들을 일부 초청, 점을 봤다. 그런데 이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무당은 “버마(미얀마) 가면 안 되는데, 버마 가면 정말 안 되는데!”라고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뱉어냈다. 한달 뒤인 10월7일 밤, 무당은 대통령이 죽는 꿈을 꾸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건 개꿈이야, 개꿈!”하면서 남쪽을 향해 침을 퉤퉤 내뱉었다. 공교롭게도 이튿날 아침 아웅산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위기일발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범석 외무장관을 포함,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수행원 17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운명을 ‘재천’이라고 할 때 몇 가지 흥미로운 상황이 떠올려진다. 첫째, 당초 전직 장관 부인의 뜻대로 남편이 외무장관에 발탁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무당의 말대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둘째, 무당이 ‘버마’를 운운한 점, 또 ‘대통령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 미얀마가 있는 남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어쨌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운 좋게도 살아 돌아왔다. 운명의 조화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사건을 앞두고 신(神)의 전주곡 같은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삶과 죽음이 피범벅이 된 끔찍한 사건일수록 그 뒷얘기는 더욱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살아온 60년 이 시대의 큰무당,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金錦花·77)는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뿌린다. 작두 타며 신을 만나는 그야말로 이승과 저승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뭔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17세 때에 처음 신과 만났으니 올해가 꼭 60년째가 된다. 한때는 혹세무민이라는 이유로 핍박과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한국인’이 됐다. 그가 세계 여러 나라에 갈 때마다 단연 ‘인기캡’으로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국내에서 서해안풍어제(무형문화재82-2호) 굿판을 벌일 때도 많은 외국팬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그는 2년 전 강화도 북쪽 해안가에 3000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무속체험장인 ‘금화당’ 간판(글씨는 ‘도올’이 썼다.)을 내걸었다. 서해안풍어제 굿판을 벌이기에도 좋고 고향인 황해도 연백땅을 바라보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이문동의 서해안풍어제연구소와 금화당을 오가며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신과 가까이에서 ‘경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주 이문동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소박한 한복차림에 활짝 웃으면서 반긴다. 평범하고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금화당’ 얘기를 먼저 꺼냈더니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워싱턴·LA 공연을 비롯, 유럽 각지의 해외공연을 수십차례 다니면서 무속 체험장 같은 공간을 꼭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여러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줘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국으로도 소문이 퍼져 최근에는 세계 연극평론가 70여명, 외국 신문사 기자, 천주교 수녀들이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무속박물관이 내 꿈 아울러 여력이 되면 무속박물관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200여년된 탱화 등 우리 무속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귀중한 사료들을 다수 소장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31년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의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자동생을 본다는 뜻에서 처음에는 ‘넘새’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이 다섯에 남동생이 태어나자 이름을 ‘금화’라 했다. 그의 신기는 어릴 적부터 신통방통했다. 열살 무렵에는 아이들과 놀면서 시퍼런 낫을 맨발로 타고 올라가 춤을 췄다. 또 어느 집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고, 임신한 사람을 보면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맞혔다. 열일곱살되던 정월 대보름날 밤이었다. 시름시름 무병을 앓던 그가 달맞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울을 건너려 하자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에 쏟아져내렸다.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이때부터 ‘신의 딸’이 됐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신 어머니가 돼 금화의 허주굿(온갖 잡신을 몰아주는 굿)을 해주었다. 금화는 이어 내림굿을 하면서 작두를 탔다. 열아홉살되던, 즉 6·25직전 어느날었다. 금화는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뚝뚝 떨어지고 달구지가 피묻은 옷가지를 싣고 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물론 신의 계시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무당을 반동분자로 취급했던 터였다. 나라에 큰 난리가 날 것을 안 금화는 숨어다녔으나 자주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전쟁 초기에는 북한군인들이 찾아와 피란간 사람들의 명단을 대라며 윽박지르더군요. 반동으로 몰리자 마을 원두막에 앉아 혼자 인공기를 만들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28수복 직후에는 남한 군인들이 와서 빨갱이 노릇한 사람의 명단을 대라고 하더군요.‘너는 무당이니 다 알지 않느냐.’고 하면서 목에 총을 들이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지요.” ●올해 일어날 일은 비밀 결국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리 중에 인천으로 피란오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질 때에는 굿을 할 수가 없어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석, 우수상·공로상·개인상·단체상 등을 싹쓸이하면서 당당한 민속예술인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장의 초청공연이 계기가 됐다. 이때 작두 타는 모습 등을 비롯, 한국의 토속 샤머니즘을 선보여 많은 관중을 불러모았고 이후 매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해외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올해 큰 사건은 없느냐고 하자 “그건 천기누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너무 빠르다. 순리대로 가야 하며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 금화당에서 무녀인생 60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큰 굿판을 벌일 예정이니 그때 구경 오라고 당부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황해도 연백 출생. ▲46년 외할머니에게 허침굿(허주굿), 내림굿, 솟을굿을 받음. 방수덕·권만신에게 대덕굿, 철물이굿, 배연신굿, 대동굿 등 전수. ▲82년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 문화사절단으로 방미. ▲84년 미국 하와이주 인간학연구위원회 및 하와이대재단 초청공연,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배연신굿·대동굿 기능보유자 지정. ▲95년 김금화대동굿(연강홀)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
  • [시인과 고향]향수는 시인을 놓아주지 않는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오늘의 강연 주제인 ‘시인과 고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앞서 저가 생각하는 시에 대해 나름대로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시와 눈 저는 시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할 것도 없이 눈이 보배입니다. 그 보배는 반짝이는 보배입니다. 보석과 같은 눈이 바로 시인의 빛나는 눈입니다. 시인은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것. 눈을 뜨고 눈 속 깊이 감춰 둔 그것, 그것이 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시의 눈도 하나의 풍경입니다. 시인의 눈은 풍경을 창조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시가 풍경이요 나아가서는 시인 자신도 풍경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보는 것을 배우고 익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시는 내면의 뒤집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내면의 뒤집기’는 시의 또 다른 하나의 눈입니다. 참으로 오묘한 눈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번 시는 눈이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한자어의 관음(觀音), 문향(聞香)이란 말에서 시를 보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볼 觀, 소리 音, 소리를 본다는 것. 그리고 들을 聞, 향기 香, 향기를 듣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시가 없는 곳에 시가 있습니다. 시인은 한 줌의 햇빛을 사냥하기 위해 언어 하나하나를 낚아챕니다. 그리고 말을 갈고 닦습니다. 그래야만 말의 빛을 더하게 되지요 .말의 빛은 바로 시의 빛입니다. 반짝입니다. 靑馬와 大餘 시 속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는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고향은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예술가에게는 고향이 예술입니다. 시입니다. 미술입니다. 음악입니다.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지만 청마 유치환 선생과 대여 김춘수 선생은 경남 통영이 고향입니다. 청마 선생은 1908년, 대여 선생은 1922년에 태어났습니다. 두 분의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대여 선생의 시에 청마 선생이 종종 등장합니다.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 우리 고향의 선창 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을 끼고 /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 내가 크던 돌다리와 집들이 /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 그 길을 찾아가면 / 우리 집은 유 약국 / 행이 불언하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덧 /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 나는 끼고 온 신간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이 시는 청마 선생의 <歸故>라는 작품 전문입니다. 고향 통영을 소재로 한 초기시입니다. 통영의 냄새가 물씬 나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향수> 등 고향을 노래한 작품이 있습니다. ‘깃발’을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인의 향수는 영원한 것입니다. 향수에는 시가 깃들어 있습니다. 시와 사투리 우리 현대시의 큰 획을 그은 김춘수 선생의 시는 고차원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상 풍경입니다. 어떤 이는 고급 장식품이라고도 했습니다. 선생의 풍경 속에는 고향이 보입니다. 대여 선생은 언어의 예술가입니다. ‘긴장된 말놀이’를 즐기는 고수의 테크니션이기도 합니다. 선생의 시는 그림이 있는 지적인 기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릭도 지척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여 선생은 고향을 소재로 한 시를 만년에 많이 남겼습니다. <통영> <귀> <앵오리> <귀향> <명정리> <고향으로 가는 길> <나의 생가> <방풍>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밖에 초기시와 대표작인 <처용 단장>에도 고향이 전면에 선명하게, 혹은 배경에 보일 듯 말 듯 아득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의 기억들이 시속에 배어 있습니다. 기억은 소중한 것입니다. 시인은 기억을 시로 승화시킵니다.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 잠자리를 앵오리라고 한다. /부채를 부치라고 하고 고추를/고치라고 한다. /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 통영을 토영이라고 한다. / 팔을 폴이라고 하고 팥을 / 폴이라고 한다. / 코를 케라고 한다. /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 멍게를 우렁싱이라고 하고 똥구멍을 / 미자발이라고 한다. /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통영을 퇴영이라고 하셨고 동경을 / 딩경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 까치는 까치라고 하셨고 까치는 / 깩깩 운다고 하셨다. 그러나 / 남망산은 / 난방산이라고 하셨다. / 우리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 내 또래의 외삼촌이 / 오매 오매 하고 우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시는 <앵오리>의 전문입니다. 시에서 보다시피 통영의 사투리가 많이 나옵니다. 사투리는 바로 향수입니다. 향수는 시인을 그냥 놓아주지 않습니다. 선생의 시에는 사투리뿐만이 아니라 통영의 산과 바다와 섬이 자주 나옵니다. 고향은 햇빛도 바람도 생선맛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또 갯바람은 어머니의 젓내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대여 선생은 전혁림 화백과 윤이상 음악가와도 친교가 깊었습니다. 세 분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동향인이기도 하지만 같은 빛깔을 갖고 있는데 그 빛깔이 바로 코발트 블루이지요. 통영의 바다 빛깔입니다. 작곡가는 가락에, 화가는 색채에, 시인은 언어에 그 빛깔이 숨쉬고 따라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입니다. 언어가, 색채가, 가락이 쪽빛 파도를 친다고 할까요. 기막힌 해후 대여 선생은 80년대 초 서베를린에서 죽마 고우 윤이상 작곡가를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얼싸안았다고 합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 기막힌 해후. 그때 윤 선생은 “춘수야, 나 고향 좀 데려가 줘…” 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눈물범벅이 되었다는 후일담입니다. 그때 눈물은 얼마나 진하고 뜨거웠을까요. 향수는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그날 그때의 눈물이 통영 앞바다의 얼룩진 코발트 불루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윤이상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때 윤이상의 일시 귀국조차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안타깝다고 해야 합니까. 아니 슬프다고 해야 합니까. 대여 선생은 ‘서베를린서의 만남’을 그 뒤에 <귀>라는 시에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982년 / 서백림(西伯林) 윤이상의 집이다. / 앉았단 섰다 또 앉다가 / 막 피어나는 앵초꽃 너머로 / 본다. / 귓속에 귀가 있다. / 누군들 이름을 부르지 말아요. / 테레사 할머니, / 우리들의 고향은 통영입니다. / 앵초꽃 피는 / 그때가 4월 초순 / 귓속에서 물새가 운다 쉬었다가 울고 /쉬었다가 또 운다. / 귓속에 귀가 있다. / 한려수도 아득히 트인 / 귀가 귓속에도 귀가 있는, 귓속에도 눈물이 고이는, 눈물도 울림이 뜨거운 ‘귓속의 귀’가 찡하지 않습니까. 두 분의 귓속의 귀에서 고향 통영이 보이고 물새가 우는 소리와 한려수도가 물결치지요. 시인에게도 고향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고향은 지구상의 한정된 한 지역이 아니고 전 우주가 고향입니다. 시인은 한 방울의 이슬에서도 우주를 보고, 그리고 대화를 나눕니다. 햇빛 속에서 우주의 빛을 보고, 바람 속에서 우주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특히 청마 선생의 시에서 우주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의 오묘한 사유의 깊이는 물론 그 넓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청마 선생과 대여 선생을 기리며 쓴 저의 졸시 <靑馬, 그리고 大餘>를 낭독하겠습니다. 이는 통영 시민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안합니다 / 통영 시민 여러분/ 간밤에 바다를 훔쳤습니다 / 머리맡에 두고 꿈도 꾸었습니다/ 발치에 섬들이 보채곤 했습니다 / VOU, 수평선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 청마의 깃발이 하늘 깊게 나부꼈습니다/ 전혁림 화백의 빛부신 코발트 블루 위로/ 대여의 꽁지 하얀 새가 날아올랐습니다 / VOU, 수평선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 바다를 택배로 다시 보냈습니다 / 파도 소리만 가슴 깊이 감추고 / 바람은 더 푸르게 물결쳤습니다/ 통영 시민 여러분, / 감사합니다/ 유치환 선생과 김춘수 선생은 가셨지만 시는 살아 있습니다. 시 속의 고향도 살아 있습니다. 시의 행간행간에 통영 앞바다가 파도칩니다. 아! 눈부신 코발트 블루, 지금 이 시간에도 한려수도에서 바람이 부네요. 꽁지 하이얀 새가 쪽빛 바다를 물고 날아갑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원고는 통영문인협회 초청으로 강연한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일부는 계간 시지 《다층》에 발표한 것과도 중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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