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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엑스포 유치 결정 D-25] 파리서 농악·탈춤판… 그들을 감동시킨다

    [여수엑스포 유치 결정 D-25] 파리서 농악·탈춤판… 그들을 감동시킨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확정일(27일)을 25일 남긴 전남 여수 시민들은 이번엔 “꼭 된다.”며 자신에 차있는 모습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시민들은 “여수가 된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일 여수 1청사와 박람회 홍보관, 여수공항 주변 도로변에 내걸린 4000여개의 박람회 홍보 깃발이 가을햇살을 받아 유치 열기를 담아냈다. 어디가나 깨끗한 시내 거리와 뻥뻥 뚫리는 도로 공사장, 친절한 시민의식 등은 박람회 개최 도시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여기에다 ‘청결·질서·친절·봉사’ 등으로 불 붙은 4대 시민운동도 여수시민들의 의식을 한 단계 높이고 있었다. ●유치 노력엔 남녀노소가 없다 2012 세계박람회 여수시준비위원회 밑에는 84개 분과위원회가 거미줄처럼 손발을 맞춘다. 여수시민 29만여명 가운데 18만명이 여기에 직능별로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박람회가 정부나 행정기관의 주도가 아닌 시민 한마당 축제로 가야 한다는 동기 부여로 효율성이 배가되고 있다. 시민들은 대부분 내집앞정리분과위원회에서 뛴다. 집앞과 골목길 쓰레기를 틈나는 대로 치운다. 이젠 동네마다 경쟁이 붙었다. 또 택시기사들은 교통분과, 노인들은 충효분과, 아이들은 학교교육분과, 광고업자들은 광고물분과, 조경업자들은 도시가꾸기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한다. 여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형철(52·신안교통)씨는 “외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도록 세차는 물론 친절한 안내와 말씨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최성남(55·여서동) 도시가꾸기 분과위원장은 “우리 회원들은 조경업자들이어서 가로수와 중앙분리대 나무 가지치기와 화단가꾸기 등을 한 달에 서너 번씩 한다.”고 강조했다. 김두인(51) 여수시 세계박람회지원단 유치지원과장은 “D-25일부터는 이벤트성 행사에서 벗어나 유치 활동을 뒷받침하고 분과위원회별 활동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도보다 유명한 홍보관 세계박람회 홍보관이 오동도보다 더 알려졌다. 지난 4월12일 개관 이후 국내·외에서 40여만명이 홍보관을 찾았다. 부산에서 왔다는 최춘영(56·사하구 장림동)씨 부부는 “홍보관에서 박람회 유치에 따른 파급 효과와 여수시의 준비상황 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여수는 음식이 정말 맛있고 시민들도 친절한데 교통과 숙박시설이 좀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또 경기도 수원에서 왔다는 대학생 양우진(25)씨는 “여수박람회가 이름만 붙은 박람회로 알았으나 홍보관을 보고 세계박람회기구가 인정한 정식 박람회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웃었다. 홍보관에서는 전시실과 영상실로 꾸며져 박람회 유치 파급효과와 해양환경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관람객들에게는 볼펜 등 서너 가지 기념품과 함께 홍보자료가 건네진다. 또 홍보관 여직원들이 사진까지 찍어서 전자우편으로 보내준다. 홍보관 책임자인 이상원(48) 민간협력담당은 “관람객들이 오동도를 보러 왔다가 홍보관을 들르는 게 아니라 일부러 홍보관을 찾아와 오동도로 간다.”고 자랑했다. ●막바지 총력전 오현섭 여수시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함께 지난달 24일 미국 마이애미 리츠칼튼 호텔에서 중남미 세계박람회기구 26개국 대표를 초청, 여수 유치를 호소했다. 또 정부 차원에서는 아프리카와 유럽 등 전략지를 골라 총력 외교전으로 공략 중이다. 여수시는 세계박람회기구 총회 투표장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국민참가단을 모집한다.300여명 모집에 143명이 신청했다. 이들은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3차례에 나눠 프랑스로 가 길거리 응원과 농악놀이, 탈춤 등으로 한국의 한판승을 유도한다. 또 아리랑텔레비전과 영국 BBC방송, 프랑스 르몽드지 등 세계 유수 언론사 등을 초청해 막바지 유치홍보전에 매달린다. 여기에 여수시와 자매결연한 서울시도 오는 10일부터 유치 확정 때까지 지하철 등을 이용해 여수박람회 홍보에 앞장선다. 그러나 유력 경쟁국인 모로코도 만만찮다. 지난 5월 98개이던 회원국이 108개로 늘었고 4개국이 곧 가입한다. 신입 회원국 가운데 6개는 아프리카 대륙이거나 모로코처럼 이슬람 국가다. 한편 여수시는 오는 26일 오후부터 여수시 1청사 앞에 대형 무대를 마련한다.27일 자정을 기해 불교·기독교·천주교 등이 주관하는 박람회 유치 염원 기도회가 이어진다. 새벽 3시쯤 제142차 총회에서 전자투표가 끝나 유치가 확정되면 여수시내는 온통 시민한마당 축제로 달궈진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김석의 갯바위 통신] 철제미끼 ‘지그’ 퐁당 갈치 낚는 손맛 짜릿

    지금 제주도는 ‘라이트 지깅 낚시’ 열풍이 불고 있다. 갯바위나 방파제에서 부시리와 방어, 가다랑어, 줄삼치, 그리고 제주 특산물인 은빛 갈치까지 지그(jig)를 물고 늘어지며 낚시인들의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지그는 낚시 대상어종의 먹잇감이 되는 소형 어류 형태로 만들어진 철제 인조 미끼. 이런 메탈지그를 사용해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일종의 루어낚시가 바로 ‘지깅낚시’다. 지깅낚시에서 주로 사용되는 메탈지그의 무게는 보통 30∼300g 정도. 그 중 60∼80g대의 비교적 소형 지그를 이용해 대상어를 유혹하는 것을 ‘라이트 지깅낚시’라고 부른다. 라이트 지깅낚시의 주대상어는 아주 다양하다. 바다의 난폭자라고 불리는 부시리를 비롯해, 방어나 가다랑어류 같은 회유성 어종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참돔, 넙치, 갈치 등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대상어종의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차량으로 이동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포인트를 찾아 물고기와 파이팅을 벌이는 라이트 지깅낚시 열풍에 제주도내 낚시인은 물론, 외지인들마저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서쪽의 한림읍 용수리 갯바위와 도선으로 5분이면 닿는 차귀도, 한경면 판포리 갯바위 등에서는 ‘대 파란’이라고 할 만큼 부시리, 이빨다랑어(줄삼치), 잿방어 등이 줄지어 낚이고 있다. 씨알은 부시리가 80㎝ 전후, 다랑어와 방어는 50∼60㎝가 주로 낚인다. 파이팅 고기라 불리는 만새기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 제주도는 에기나 웜 등의 루어보다는 소형 지그가 가장 잘 팔린다고 한다. 갯바위 라이트 지깅낚시에서 사용되는 소형 지그는 무게가 가벼워 농어나 오징어를 낚을 때 쓰던 장비를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소형 지그만 별도로 구입하면 되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아 라이트 지깅 낚시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낚이는 어종들이 모두 힘이 좋아 낚는 재미에 쉽게 빠져 들수 있는 것 또한 매력이다. 현재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는 낚이는 고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것이 현지 낚시인들의 전언이다.9월 중순 제주를 덮친 태풍 ‘나리’때문이다.‘나리’가 몰고 온 많은 비로 엄청난 양의 토사와 담수가 바다로 흘러 들면서 제주 북쪽 바다는 거의 초토화됐다. 제주시 덕동이나 탑동 방파제 등에서 지그를 던지면 나뭇잎이 걸려 나오고, 바닥을 긁어도 밑걸림이 생기지 않는 원인은 대량의 토사가 갯바위 근처 바닥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토사가 사라지고 호조황을 기대하려면 최소 2∼3개월은 지나야 된다는 게 현지 낚시인의 전망이다. 제주시 앞바다가 전혀 조황이 없는데 비해 동쪽의 우도에서는 무늬 오징어가 엄청난 양으로 낚여 올라오는 이변이 벌어지고 있다.1.5∼2㎏ 정도의 무늬 오징어를 일인당 30∼40마리씩 낚는다고 한다. 우도가 이런 폭발적인 조황을 보이는 주요한 원인 또한 태풍이라 보여진다. 제주시 앞바다의 오징어들이 태풍을 피해 제주 동쪽의 우도로 피신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주 서쪽 바다에 부시와 잿방어, 다랑어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서 제주도 도로 주변 갯바위나 방파제를 찾은 가족, 연인, 친구들이 손맛을 만끽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제주 루어피싱랜드 064)726-1988.
  • 혁신도시 착공 줄줄이 연기

    혁신도시 착공 줄줄이 연기

    참여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혁신도시 조성사업이 토지보상협의 문제에 부딪쳐 난항을 겪고 있다.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제주와 경북(김천)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지역이 편입 토지 보상협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못해 착공을 잇달아 연기하고 있다.22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건설교통부 등에 따르면 편입토지에 대한 협의보상이 최소 50% 이상 이뤄진 지역부터 올해 안으로 혁신도시 착공을 마칠 방침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은 토지보상이 30%를 밑돌거나 보상가를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착공시기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광주·전남 보상률 13% 불과 전남 나주시에 들어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의 보상률은 전체 대상 부지 604만㎡의 13%에 불과하다. 지주들이 배나무 등 지장물 보상가의 현실화를 요구하면서 당초 9월 말까지 마치기로 했던 토지보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따라 다음달 4일로 예정된 기공식이 8일로 연기됐다. 김춘식 나주혁신도시주민대책위원장은 “대상 주민의 54%가 1억 5000만원 미만을 보상받게 된다.”며 “배나무와 집 등 지장물 보상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상률이 38%인 경남 진주혁신도시도 26일 예정됐던 기공식이 연기됐다. 보상가 인상을 요구하는 일부 주민들이 조사반의 현장접근을 막으면서 협의보상이 상당 기간 미뤄질 전망이다. 특히 금산면 속사리 일부 주민들은 운동장 부지로 뒤늦게 편입된 66만여㎡를 사업부지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어 차질이 불가피하다. 울산 우정지구에 건설될 혁신도시 역시 지난 9월 착공 예정이었으나 연내 착공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울산 주민, 보상 통지서 반납 등 반발 협의 보상을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으나 22%(430명)만 보상에 응하는 등 진척이 더디기 때문이다. 감정가 책정에 반발한 일부 주민은 협의보상 수령 통지서를 반납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울산혁신도시건설단은 다음달 17일까지 협의보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편입토지에 대한 강제 수용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져 마찰도 예상된다. 음성·진천에 들어설 충북 혁신도시는최근 보상에 착수했으나 주민들이 “가격이 낮다.”며 반발하고 있다. 신기섭(36) 음성지역 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주변 땅값이 3.3㎡에 25만∼30만원 하는데 보상가는 12만∼20만원에 그치고 있다.”며 “양도세도 걱정이고 원주민은 주변에 농사 지을 대토를 마련해야 하는데 땅이 별로 없고 비싸 불만”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보상률이 1.6%를 조금 넘고 있어 이곳 역시 연내 착공이 불투명하다. ●건교부 “보상률 50% 넘어야 기공” 다음달 착공 예정이던 전북혁신도시 건설사업도 부처간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간이 지연되면서 3∼4개월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구 신서혁신도시의 착공식도 비슷한 이유로 지난 9월에서 무기한 연기됐다. 토지 보상이 이뤄진 토지는 전체 3554필지 중 18.8%인 667필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구나 20%에 달하는 외지인(부재지주)의 경우 양도소득세가 실거래가로 적용돼 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들이 보상에 합의하지 않고 최대한 버티는 것도 지연 이유로 꼽힌다. 건교부 관계자는 “혁신도시 착공은 현지 보상협의가 50% 이상 끝난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무리하게 착공시기를 앞당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토지 소유주가 보상협의(보상 시점으로부터 60일 이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사업시행자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법률’에 따라 보상비를 법원에 공탁하고 강제 수용해 공사에 들어간다. 전국종합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지방행정 혁신 우수사례] (1) 고객 만족 분야

    [지방행정 혁신 우수사례] (1) 고객 만족 분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혁신 사례 경연 잔치인 ‘2007 지방행정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의 3개 부문 수상작이 확정, 발표됐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1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경진대회 출품작 중 고객만족 분야에서는 광주광역시 서구, 업무프로세스혁신 분야 충북 청주시, 행정투명성·조직혁신 분야에서는 충북 증평군이 각각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의 ‘다산프로젝트’(고객만족), 강원 원주시 ‘U-지방세 8572(바로처리) 시스템 구축·운영’(업무프로세스혁신), 충남 아산시의 ‘착수에서 준공까지, 하나로-클린 시스템 운영’(행정투명성·조직혁신)이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나머지 13개 사례는 행자부 장관상을 받았다.3회째를 맞은 올해 행사에는 시·도 경진대회를 거친 95개 사례 중 19개가 3개 부문별로 발표됐다. 분야별 수상작 내용을 3회에 걸쳐 싣는다. 광주 서구의 ‘비즈니스 365일 24시간 업무지원 시스템’은 행정·상업·금융 등 서비스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상무지구 특성을 잘 활용한 행정 사례로 꼽힌다. 서구는 지난 3월 이곳에 ‘365 민원 봉사실’을 열었다. 주민과 외지인의 ‘비즈니스 활동’이 활발해 야간에도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신도심에 거주하는 1만여가구의 아파트 주민들도 맞벌이 등으로 야간활동을 선호하는 경향도 파악했다. 서구는 주민등록 등초본 등 각종 서류를 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하고, 광주은행과 금융·행정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기로 협약을 했다. 상무지구 중심가에 위치한 롯데마트 한켠에 자리를 마련하고 은행측과 함께 ‘365 민원봉사실’을 운영했다. 처음에는 공휴일·야간 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원성도 샀다. 그러나 기업이 고객을 대하듯 행정도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구청장의 의지에 공감했다. 민원봉사실이 문을 열자 맞벌이 주부·외지인 등 시간이 빠듯한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첫달엔 하루 평균 110건 등 모두 2199건을 처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용객이 증가, 총 5만 5774건의 서류를 발급했다. 많을 경우 하루 320∼380건으로 서구 관내 1개 동사무소가 처리한 294건을 웃돈다. 전주언 구청장은 “고객의 입장에서 민원봉사실의 문을 열었는데 이렇게 큰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이를 더욱 보완해 서구의 ‘혁신명품 브랜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논산 연무~상월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논산 연무~상월

    전북 여산에서 1번 국도와 갈라진 옛길은 충남 논산 연무대와 닿아 있다. 이 길로 접어 들면 연무읍 고내리에 봉곡서원이 나온다. 서원 앞에 사는 80대 할머니는 “여자들이 꿈을 꾸면 옛날에 욕을 본 사람들이 나타난다며 (서원을) 옮기라고 해유.”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최근까지 사람이 살다가 떠난 흔적이 있다. 특별하게 보이는 서원은 아니지만 이계맹 등 조선시대 때 귀향을 갔던 선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기에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논산훈련소 주변 경기도 옛말 서원 앞에는 ‘황화정(皇華亭)’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다. 황화정은 서원에서 400m쯤 북쪽에 있던 정자다. 옛날 현감(군수)이 관찰사(도지사)를 맞고 배웅을 하던 곳이다. 황화정이 훼손된 뒤 비석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황화정이 있던 마을은 지금 한적하고 쇠락한 농촌일 뿐이다. 예전에 전라도 지역에 속했던 마을이다. 이 마을 끝에서 옛길은 다시 1번 국도와 만난다. 곧 이어 육군훈련소(옛 논산훈련소·연무대)와 입소 대대가 나온다. 훈련소 앞에서 식당 호객을 하던 김영심(74)씨는 “훈련소도 옛날 훈련소지, 지금은 아녀. 자꾸 오그라져.”라며 최근의 경기를 전했다. 흔한 술집도, 다방도 없다. 입소병의 ‘총각딱지’를 떼주던 아가씨촌도 사라졌다. 교통이 좋아져 입소날에 부모의 차를 타고 오고 면회 때도 멀리 나가 먹는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호객을 하던 70대 할머니는 “재수 있으면 하나 걸리고 공 치는 날이 많아.”라고 한탄을 했다.“밥 먹고 가슈.” 두 할머니는 끝내 객(客)의 소매를 잡아끈다. 훈련소 입소 대대 앞도 마찬가지다. 식당이 줄지어선 거리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논산은 역사상 최고 전쟁터 훈련소에서 옛길을 따라 좀더 올라가다 옆길로 2㎞쯤 빠지면 견훤 왕릉이 나온다. 이 왕릉은 기념물 26호로 연무읍 금곡리에 있다. 견훤은 완산(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세력을 키웠으나 아들 신검과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을 빚으면서 고려 왕건에게 멸망했다. 죽으면서 “완산이 그립다.”고 해 이곳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전주 모악산이 보이는 것도 이런 연유다. 논산은 후백제가 왕건과 전투를 벌였고 백제가 멸망할 때 계백장군이 신라와 싸운 황산벌이 있는 곳이다. 육군훈련소도 이곳에 있고 계룡대도 있다.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는 현재 계룡시에 속하지만 이전에는 논산 땅이었다. 논산지역 향토 사학자 류제협(61)씨는 “논산은 넓은 곡창지대여서 전투식량 조달이 손쉬워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치러졌다.”며 “삼국시대 때는 접경 지역이라 전쟁이 많았고 계룡대는 높은 계룡산이 둘러싼 천혜의 요새여서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논산은 최대 전쟁터일 뿐만 아니라 삼국 통일을 이끌어 통일을 상징하는 고장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견훤 왕릉에서 다시 탄 옛길은 연무터미널과 개태골을 거쳐 1번 국도와 갈라져 은진향교로 향한다.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이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봄과 가을에 제향을 지낸다. 공자 등 성현 22명의 위패를 모신 향교는 평상시에 문이 닫혀 있다. 향교 안에 3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떨어진 은행 열매가 옛 정취를 이어준다. 향교에서 1㎞쯤 올라가면 망보기마을이 나온다. 고개에서 적들이 오는지 망을 보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양이나 전라도로 갈 때 선비들이 이곳에서 쉬었다고 한다. 큰 정자나무 밑에 계단식 서낭당이 있다. “20년 전만 해도 소몰이꾼들이 정자나무 밑에서 쉬다 갔어.” 나무 밑에서 붉은 고추를 널어 말리던 70대 할머니가 넋두리처럼 내뱉었다. 이 마을을 지나면 옛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촉사가 있다. 보물 232호 석등도 있지만 높이 18m의 국내 최대 석불인 은진미륵(보물 218호)이 서 있어 유명하다. 고려 목종 9년(1006년)에 완공된 이 석불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구절초가 절 안에 가득 꽃망울을 터뜨려 가을 분위기를 한껏 뽐냈다. 사찰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 세워진 이승만 박사 추모비는 이 곳의 옛 정취와 달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추모비는 방공청년회 논산지부가 1965년 건립한 것이다. ●‘춘향전´에 7군데나 지명 나와 옛길은 다시 논산시 부적면으로 이어진다. 향토 사학자 류씨는 “전북 여산에서 충남 공주 경천까지 가는 길의 지명이 춘향전에 7군데나 나와 이 구간이 ‘춘향전 옛길’이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새다리도 이 가운데 하나다. 부적면 신교리 논산천에 있는 이 다리는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면서 다리를 놓았던 돌이 냇가에 묻혔다고 한다. 부적면사무소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옛길은 지금도 넓은 논 사이를 달린다. 호남선 건널목을 건너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2리의 자연부락인 지밭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무당이 후백제를 멸망시키려 왔던 왕건의 꿈을 해몽해줘 왕건이 이를 믿고 공격, 끝내 멸망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서용호(81)씨는 “한양으로 가던 길은 농로가 됐거나 경지 정리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푸념했다. 4∼5㎞쯤 되는 비포장 농로를 달리다 보면 노성천이 나오고 이 하천을 건너자마자 초포마을이 나온다. 이 일대 주민들은 이 마을을 ‘풀개’라 불렀다. 주소는 광석면 항월리다. 이곳은 한양을 오갈 때 반드시 거치는 마을이었다. 자연히 주막촌이 형성됐고 왈패들이 많았다.‘최장사’니 ‘팔장사’니 하는 힘센 전설적인 장사 이름이 전설로 내려온다. 주민들은 이들이 들었던 거대한 돌이 있다고 전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새로운 교량이 들어섰지만 예전 다리를 쓰던 돌들이 냇가에 흩어져 있다.20∼30년 전까지만 해도 논산장을 가려면 지나던 길이다. 주막집들은 지금 슬래브 주택으로 바뀌었다. 허름한 기와집 한 곳에서만 막걸리를 팔았다. 주민 이유영(67)씨는 “주먹 깨나 쓰던 장사들이 많아선지 ‘아사리 풀개’라고 불렀다.”면서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이곳에 5일장이 서면 노성, 상월 등 인근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 오는 걸 꺼렸다.”고 회고했다. 풀개를 떠난 옛길은 노성천 옆을 따라 올라간다. 노성면으로 들어서자 교촌리 ‘윤증고택’이 맞는다. 윤증(1629∼1714) 선생은 조선시대 숙종 때 한학자로 스승 송시열 선생의 논리를 비판하는 등 성품이 대쪽 같았다. 대사헌, 우의정 등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양했다. 고택은 윤증의 성품대로 간결하고 품위가 있다. 중부지역 양식에 남도풍이 가미돼 있다. 중요민속자료 190호다. 길은 이어 상월면을 거쳐 공주시 계룡면으로 들어간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부인2리 지밭마을 유래 “옛날 선비들이 한양에 말 타고 갈 때 서낭당 앞에서 내려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말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대유.” 논산시 부적면 부인2리 지밭마을 주민 오영근(65)씨는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전하면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마을안 논 옆에 세워져 있는 서낭당은 무당을 모신 곳이다. 이 무당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아들 신검의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사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이 후백제를 치려고 개태사 근처에 진을 치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자신이 무쇠솥을 쓰고 물속에 빠지는 꿈이었다. 왕건이 “불길하다.”고 고민하자 부하들이 “이 마을에 해몽을 잘하는 무당이 있으니 한번 물어보자.”고 했다. 무당의 딸로부터 ‘흉몽’이라는 얘기를 듣고 낙심해 되돌아가던 왕건을 때마침 집에 돌아온 무당이 붙잡았다. 무당은 “길몽이다. 솥은 왕관을, 물은 등극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왕건은 무당의 말에 곧바로 후백제를 쳐 멸망시켰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뒤 무당의 은혜를 갚고자 ‘부인’이라는 작위를 내리고 땅을 하사했다. 지금의 마을 이름도 이 작위명에서 유래하고 있다. 지밭이란 자연부락명도 ‘제사를 지내는 데 쓰는 밭’이란 뜻에서 변형됐다. 오씨는 “쳐다봐서 보이는 땅은 전부가 무당 땅이었다고 해요.”라고 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왕건이 하사한 엄청나게 넓은 토지의 일부가 지금도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 땅은 두 마지기(400평 정도)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쌀로 매년 대보름 전날 마을 서낭당에서 무당의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요즘 서낭당 앞에는 건축폐기물이 어지럽게 쌓여 있지만 제사 때는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지낸다고 한다. 제삿날이면 일부 주민이 풍물을 치면서 서낭당으로 올라간다. 제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 풍물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준비해놓은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뒤따른다. 제사는 성대하다. 오씨와 함께 도랑에서 우렁이와 참게를 잡고 있던 서일웅(67)씨는 “(제사를 지내는) 그날은 주민 모두가 멸치도 안먹는다.”고 웃었다. 비린 것을 피할 정도로 무당의 제사를 신성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여년 전만 해도 제사 때면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다.”면서 “지금도 제삿날 직전에 초상집에 갔던 주민은 서낭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무안 세발낙지 ‘서울 나들이’

    무안 세발낙지 ‘서울 나들이’

    요즘 제철을 만난 전남 무안산 세발낙지가 서울로 나들이간다. 무안군이 올부터 낙지 특산지에서 열던 낙지축제를 접고 대도시 직거래 판매로 판촉전략을 바꿨다.19일 군에 따르면 자매결연한 서울 도봉구청에서 다음달 13∼14일 열리는 김장철 직거래장터에 무안 갯벌에서 잡아 실어온 세발낙지를 선보인다. 여기서는 쩍쩍 달라붙는 힘 센 세발낙지를 산지 도매가로 서울시민들에게 판다. 군은 산지값에 맞춰 팔도록 하기 위해 판매상들의 운송료와 숙박료, 포장비 등을 지원한다. 즉석에서 요령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주고 시식도 할 수 있다. 세발낙지는 산 채로 나무젓가락에 끼워 돌돌말아 잘근잘근 씹어야 제맛이다. 또 ‘탕탕탕’ 도마질로 낙지를 잘게 잘라 기름장에 찍으면 고소함이 묻어나고 연포탕은 시원해서 좋다. 밭갈이에 지친 소에게 세발낙지를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낙지는 보약으로 친다. 낙지값은 대개 날씨값으로 친다. 요즘 무안읍내 낙지골목에서 세발낙지는 접당(20마리) 4만∼5만원이지만 바다에 파도가 높아지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런 날이 이어지면 낙지는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해 한때 접당 10만원까지 올랐으나 물량이 달리기도 했다. 세발낙지는 낙지 종류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발이 길고 가늘다 해서 붙여진 이름. 무안낙지는 망운·해제·현경·운남면을 사이에 둔 탄도만과 청계만, 함해만에서 주로 잡힌다. 이곳의 펄이 깊고 찰져 낙지 발이 더 길어졌다고 한다. 무안읍내에서 세발낙지 도매점을 하는 종합수산 배쌍오(53·성남리) 사장은 “무안산과 중국산 낙지 구별은 색깔과 다리 길이로 한다.”며 “무안산은 잿빛에 길이가 30㎝나 되지만 중국산은 붉은색에 20㎝도 안 된다.”고 말했다. 값은 무안산이 중국산보다 5배가량 비싸다. 또 중국산은 씹으면 솜처럼 퍽퍽하고 무안산은 쫄깃하고 연하다. 낙지철인 요즘 무안읍내 낙지식당 등에는 세발낙지를 맛보려는 외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때쯤 무안군청 직원들은 맛있는 낙지 식당 등을 찾는 문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군은 읍내 낙지 식당과 노점상 등을 대상으로 원산지 표시제 위반 여부를 단속, 중국산을 차단하고 있다. 지난해 무안군에서는 800여 어가가 40만접(800여t)을 잡아 200억원대 수입을 올릴 정도로 낙지는 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박홍량 군 자원계장은 “이번에 낙지축제 대신 대도시 직판행사로 결정하면서 주민들의 반대가 적잖았다.”며 “하지만 대도시에서 무안 세발낙지의 명성을 이어가면 판로가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Metro] “성남 화장요금 인상 부당” 광주시의회 반대 건의문

    성남시가 화장장 사용요금을 현행 3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대폭 인상하자 인근 광주시의회가 건의문을 채택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 경계지역에 위치해 피해가 큰 만큼 지역주민들을 위한 배려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18일 광주시의회에 따르면 성남시는 지난달 말 ‘장사시설 설치 및 운영조례’를 개정해 영생관리사업소 내 화장장에 대한 외지인(15세 이상 기준) 사용료를 현행 3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233%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외지인이 성남 화장장을 이용하려면 성남시 거주자와 비교해 화장장(5만원)은 20배, 추모의 집(10만원)은 10배 비싼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광주시의회 관계자는 “현재 갈수록 늘고 있는 성남시 화장장 이용률을 감안할 때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향토미인대회 입상자 활용도 낮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개최하는 향토미인 선발대회가 너무 흔하고, 뽑은 미인들의 활용도도 매우 낮다는 비난 여론이 높다. 뽑힌 미인들도 상당수 외지인들로 지역 특산물 홍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상당수의 미인선발대회는 전국을 휩쓸고 다니는 수도권 연예기획사나 이벤트사 소속 인물의 몸값 올리기와 경력 쌓기 행사로 전락한 실정이다. 지자체들은 지역축제를 개최할 때 대체로 미녀선발대회를 함께 갖는다. 전국에서 어림잡아 해마다 70여개의 미인선발대회가 열린다. 전북지역에서는 춘향선발대회, 사선녀선발대회, 벚꽃아가씨 등 7차례의 미인선발대회를 갖는다. 미인대회에는 적게 15∼20명, 많게는 300∼400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흔해 빠진 미인대회… 전국 70개 안팎 경북지역도 김천 포도아가씨, 안동 한우아가씨, 영양 고추아가씨 등 지역특산품 이름을 붙여 7차례의 미인선발대회를 열고 있다. 이 때문에 미인대회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성과 수준이 보통 수준에 머물러 특산물 홍보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인대회가 서울 등의 연예기획사, 이벤트사에 소속된 미인들의 몸값 올리는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전북 임실군 소충사선문화제에서 선발된 8명의 사선녀는 모두 임실 출신이 아니다. 향토 미인상마저 타지역 출신이 받았다. ●기획사 소속 적잖아 출연료도 높아 향토축제의 특산물 미인은 그 지역과 축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인물을 선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선발 기준에 특색이 없고 축제에 부합하지도 않아 겉모습만 화려한 미인을 선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전국 미인선발대회들의 기준이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실군의 한 주민은 “아름다움과 지·덕을 고루 갖춘 미인 보다는 외모만 치중해 ‘우량가축 품평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선발한 미인의 활용도도 매우 낮은 편이다. 이들은 특산품 판매전이나 관광홍보행사에 간혹 출연하지만 상당한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자자체들이 초청을 꺼리고 있다. 따라서 선발대회때 관광객 앞에서 자태를 뽐내는 것으로 사실상 이들의 역할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실의 사선녀들은 지역사회 홍보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고, 전북 장수의 ‘주논개 선발대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남 장흥군은 매년 억새미인과 철쭉미인 3∼4명씩을 선발하지만 이들은 선발된 뒤 특별한 활동이 없다. 전남 보성군은 차 아가씨를 선발하지만 녹차 제품을 홍보할 때만 활동한다. ●폐지된 미인대회도 수두룩 전북 완주군은 대둔산 아가씨를 선발해 오다 7∼8년 전 폐지했다. 선출된 미인들이 지역 홍보대사로 나서지도 않고 이들을 활용할 특별한 방안도 없기 때문이다. 전북 고창군도 매년 가을 열리는 모양성제에서 공주를 선발해오다 3∼4년 전 중단했다. 지역에 있는 조그만 성인 모양성에 공주가 살았을 가능성이 희박한데 공주를 선발하는 것은 축제 본래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전남 무안군은 10년 전에 양파아가씨 선발을 중단했다. 양파 값이 너무 싸서 홍보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 전남 장흥군은 천관산 억새제와 철쭉제에서 억새미인, 철쭉미인들을 해마다 3∼5명씩 선발하지만 가파른 산을 잘 타야만 입상 가능성이 있다. 경북 영덕군 복사꽃 아가씨 선발대회도 호적 또는 주민등록이 영덕인 여성들만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대구 김상화·무안 남기창기자 shlim@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그동안 인기리에 연재됐던 ‘산이 좋아 산이’ 코너는 전국의 가볼 만한 명산을 대부분 다뤘습니다. 따라서 당분간 산 소개를 중단하고, 대신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 남도의 주요 산자락에 숨어 있는 ‘산골 마을’을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혹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산골을 지키는 마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등산을 떠날 적에 그곳 주변 마을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본다면, 그 보람과 의미 또한 일석삼조이겠지요. 먼저 지리산 지역의 산마을을 10여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구례 최고의 명당이라는 토지면 오미리에서 지리산 품속으로 차를 돌려 닿는 곳이 ‘문수리’인데, 저수지 위쪽의 상죽(웃대내)·중대(영암촌)·불당·밤재 등이 문수리에 속한 마을들이다. 노고단(1507m)∼왕시루봉∼형제봉을 삼각점으로 생성된 이 골짜기의 넓이는 약 2660㏊. 따라서 예부터 좁고 긴 계곡과 동·북·서로 막힌 산자락 때문에 사람이 숨어살기 적당했고, 그것이 또 문수리 일대를 ‘피의 전장’으로 전락시켰다. ●사람 숨기 적당한 지형이 주민에 고통 안겨 해방과 분단을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기간은 지리산 촌로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특히 명당 인근에 산다는 문수골 사람들에겐 목숨이 수십 개라도 모자랄 괴로운 시기였다. 지리산과 강 건너 백운산이 여순사건(10·19사건) 때 소위 빨치산과 경찰 토벌대의 피 비린내 나는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구만들을 거쳐 문수골로 숨어든 주민들은 경찰 추산 2000여명. 낮과 밤으로 이념을 달리하며 살아야 했던 문수골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이 희생된 것은 물론 동네도 급격히 쇠락해 간다. 구례군 토지면 주민들은 1948년부터 약 7년의 세월을 전쟁 속에서 보낸 셈이다. 다시 이념이 갈리고 전쟁이 난다면 그때 또 지리산은 반란군을 품어줄 은신처가 될 것인지, 그때도 이 산은 그들을 잡아내려는 토벌대의 총성과 그 총성 속에 쓰러진 수많은 젊은이의 피로 물이 들 것인지, 이제 문수골은 과거의 일 따위는 잊은 것처럼 한없이 고요하고 청명하다. 문수사로 이어지던 도로 우측으로 ‘영암촌’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기 전에 조금 더 직진하면 폐교된 문수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앞에서 내려다보는 영암촌의 모습이 제법 아름답다. 영암촌에서 태어나 여태껏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조삼남(87) 할머니는 “타지에선 데려갈 총각이 없어 고향인 이 마을에서 혼례를 치렀다.”고 너스레다.“한때는 35가구쯤 되었던 마을이 여순사건 때 많이 사라졌다.”며 지금도 한숨을 쏟아낸다.“14연대 반란군이 먼저 들어오고 그 후에 군인들이 들어왔지. 바위틈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붙였응께.”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 서울과 부산을 거쳐 20년 전쯤 영암촌으로 들어온 황창옥(64)·신연남 동갑내기 부부의 어둑한 방안에는 외손자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딸만 넷을 둔 딸부잣집이다. 밤과 한봉, 고로쇠 수액 채취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사실 큰돈이 될 만큼은 아니다. “물 좋고 산도 좋지만 노인들은 불편해.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야 하거든. 병원비보다 택시비가 몇 배는 더 비싼께. 노인들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해 전만 해도 다랑이논에 농사도 지었고, 기계가 들어갈 수 없으니 소로 밭을 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땅을 경작할 사람도 없어 경작지라야 텃밭 정도가 고작이다. 작년 추석 즈음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내려와 이곳에서 생포되기도 했다. 도로 끝에 자리한 문수사에선 불자가 방생했다는 곰을 키울 정도니 이래저래 산이 깊긴 깊은 모양이다. ●봄엔 산수유·여름엔 피서인파로 북적 영암촌 곳곳에 멋지게 들어선 집들은 예상대로 외지인들의 별장이다. 번창하던 마을이 주민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바다가 되기도 하였으니, 이 마을에 다시 집이 들어서고 사람이 드나드는 건 차라리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봄이면 마을 곳곳에 핀 산수유 꽃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모이고, 여름엔 계곡을 찾아든 피서 인파로 북적이고, 가을엔 밤과 감을 수확하는 손길로 바쁘고, 겨울이 되어야 그나마 조금 한가해지는 작은 산골마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 노고단 너머로 짧아진 하루해가 황급히 저물고 있었다. ●교통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19번 국도를 지나는 군내버스는 있지만 문수리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 구례읍에서 영암촌까지 택시비는 1만원 안쪽.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진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전주∼순천간 4차선 산업도로로 들어서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의 경우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 [Local] 영산포에 역사·관광거리 조성

    전남 나주시 영산포 일대가 일제 수탈의 교육현장으로, 일본 관광객을 겨냥한 역사·관광거리로 꾸며진다. 영산포에는 옛 영산포 선창에서 정미소까지 750여m 구간에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의 가옥과 상가, 정미소 등 100여채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나주는 목포항과 연결돼 호남지역 쌀과 곡물 등 일본인들의 수탈 전진기지였다. 예부터 뱃길따라 흑산홍어의 집산지로 유명한 영산포는 지금도 홍어의 거리로 조성돼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다. 신정훈 시장은 “처참했던 수탈 현장인 영산포를 새롭게 해석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인근 영암군의 왕인문화축제에 오는 일본인들을 끌어들이겠다.”고 말했다.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8) 강원 영월 모운동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8) 강원 영월 모운동마을

    안개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망경대산(1088m)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영월군 하동면 주문2리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이다. 하동면 면소재지에서 옥동천을 따라가다 주문교를 건너 산 아래에서 숲길을 오른다. 마을이라곤 없을 것 같은 길을 따라 4킬로미터를 오르면 느닷없이 해발 700미터의 마을이 나타난다. 종종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여 되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32가구 60여명이 살고 있는 산꼭대기 마을이다. 비가 온 다음이면 어김없이 골골이 낀 안개와 구름이 신비함을 더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잡화를 가득 실은 트럭(일명 늴리리차)이 확성기를 통해 유행가를 울리며 찾아오는 오지이지만, 믿기지 않는 전성시대가 있었다. 80년대 말 석탄산업합리화법 발표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민이 1만명에 이르렀다. 현재 영월인구가 4만명 정도이니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짐작이 간다.6개 이(里)로 나뉘어졌던 마을이 지금은 1개 이(里)로 통합되었다. 탄부로 일했다는 박효정(67)씨는 “예전에는 이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이 세 번 놀랐다.” 며 “첫 번째는 영월읍에서 몇 시간이고 산길을 타고 오는 데 놀라고, 두 번째는 멀리서 보는 마을의 휘황찬란한 야경에 놀라고, 세 번째는 자고 나서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판잣집에 놀랐다.”고 한다. 전성시대의 흔적은 지금도 찾을 수 있다. 마을 곳곳에는 약국 극장 당구장 목욕탕 이발소 색싯집 등 그 옛날 흥청망청하던 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영월읍내에도 들어오지 않던 낭랑쇼단과 여성극단 등이 이 마을엔 들어왔단다. 번성기 때 마을에서 요정을 두 개나 운영했고 지금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문마담’으로 통하는 김할머니는 “영월에서 문마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당시가 좋았어!”라며 “그때는 지긋지긋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어! 광산돈은 햇볕 보면 없어지기라도 하듯이 흥청거렸어.”라고 회상하며 당시 손님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인물평을 했다. 옛날 당구장을 개조한 토박이 김흥식(54) 이장집은 탄광촌의 유물들로 가득하다. 올해 강원도 선행도민 대상을 받은 김 이장은 비록 마을이 폐광촌이지만, 고원휴양지를 만들어 제2전성기를 되찾겠다고 열심이다. 마을 곳곳에 각종 야생화를 심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한테는 집도 무상으로 빌려 주었다. 주민들은 밋밋하던 작은 담장에 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수려한 지형을 이용한 트레킹 코스를 만들고, 마을 위를 지나던 무연탄을 나르던 전철길을 되살리고, 폐광산굴을 이용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각종 채탄 장비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단다.800여명의 학생들이 2부제 수업을 하던 모운초등학교는 지금은 폐교되고 외지인을 맞이하기 위한 숙박시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논 한평 없고 변변한 밭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최근에는 생활환경 개선과 공동체의식 복원을 위해 추진하는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마을로 선정되어 마을을 정비했다. 매년 5월에는 고향을 떠난 수백 명이 마을을 찾아오고, 나무를 심으며 고향사랑을 실천한다. 떠나간 사람이 찾아오고, 터를 잡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가꾸는 마을이다. 마을을 뒤로하면서 상상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구름 모여 있는 마을에 편안한 표정의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사진 글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HAPPY KOREA] (22) 경기 안성시 ‘안성맞춤 문화마을’

    [HAPPY KOREA] (22) 경기 안성시 ‘안성맞춤 문화마을’

    아파트단지를 둘러싼 담장은 흔히 외부와의 단절을 상징한다. 폐쇄성 때문에 ‘아파트 단지는 있어도, 아파트 문화는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경기 안성시 보개면·금광면 일대 ‘안성맞춤 문화마을’은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경계를 허물며 도시와 농촌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한적한 농촌 지역인 이곳에 1700여가구,4400여명이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은 2005년. 안성시내로부터 3∼4㎞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리적 이점으로 당초 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학생 수요가 줄어들면서 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청량산 자락에 20층 높이로 솟아있는 아파트 외관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아파트단지 안팎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문화’를 간과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아파트 주민과 인근 농민간 농산물 직거래가 대표적이다. 현재 직거래는 쌀과 콩 등 곡류를 비롯, 배추·고추·파 등 채소류까지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판로 확보 등 판매가 수월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농산물 재배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중간 유통마진이 없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가격 측면에서 10∼20% 이상 이득이다. ●농산물 직거래로 ‘소통의 물꼬’트다 김윤백(58)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입주자들의 70∼80% 정도는 외지인들이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필요했으며, 농산물 직거래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면서 “직거래 활성화를 위해 상설매장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산물 직거래가 가져온 부산물도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공원·놀이터·게이트볼장·레크리에이션장 등 단지내 시설·프로그램을 단지 밖 이웃에게 모두 개방하고 있다. 때문에 단지 밖 6개 자연마을 1300여명의 주민들은 농촌 속에서 도시민들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다. 복거마을 이임섭(55)씨는 “아파트단지를 제외하면 공원 하나 없고, 병·의원 역시 단지내 상가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기초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교류 활성화가 아파트와 농가의 이질감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브 등 경관작물 재배로 화답 올 초부터는 천편일률적인 농촌 경관을 바꾸는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 이곳 농민들이 한경대와 손을 잡고 13만 2000㎡(4만평) 부지에 경관농장을 조성했다. 도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 제공과 농민들을 위한 새로운 소득원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취지에서다. 농장에는 계절에 따라 허브, 유채, 해바라기 등의 경관작물을 심었다. 아파트단지 앞, 경제성이 떨어지는 계단형 농지 등으로 경관작물 재배를 확대할 구상이다. 또 경관작물이 일반작물에 비해 아직은 소득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 소득 증대 방안에 대한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경섭 한경대 교수는 “경관농장을 농촌 체험의 장으로 활용, 농지에서 얻는 직접소득보다는 농장 운영을 통한 간접·파생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초기단계인 만큼 주민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시민·농민·문화예술인 ‘한 울타리 생활´ 특히 마을 주변에는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안성 최대 종합운동장과 레포츠공원, 정구 돔구장, 실내체육관, 문예회관, 시립도서관 등 문화·체육시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때문에 외지인들이 마을을 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성시내와 마을을 잇는 조령천 5㎞ 구간에 자전거도로를 연결하는 사업도 올 초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씨는 “안성시내와 멀지 않은 전형적인 도농복합지역”이라면서 “도시민과 농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성 김병철·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이동희 안성시장 “문화가 살아야 농촌도 살아나” “농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복지 차원의 접근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동희 안성시장은 “농촌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농업정책적 시각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 시장은 “60세 이상 노인층이 대부분인 농촌은 양로원과 다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농촌 문제를 다룰 때 갈수록 줄어드는 소득을 어떻게 보전해 줄지에 대한 고민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복지·문화 차원의 접근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시장은 안성 특산물인 배·포도 등을 테마로 개최되던 농산물축제를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2001년부터 남사당놀이를 앞세운 문화축제인 ‘바우덕이축제’를 열고 있다. 남사당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 등으로 구성된 대형 전통종합예술이다. 영화 ‘왕의 남자’ 흥행을 계기로 축제 방문객만 5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올 축제는 오는 3일부터 7일까지 열린다. 이 시장은 “농산물 특화 생산만으로는 지역발전이나 소득증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문화가 살아야 주민들의 참여의식을 높이고, 지역이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도 전통항아리마을, 음악인촌, 경관농장 등 문화가 숨쉬는 공간으로 가꿔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안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김병준 담당관, 중앙정부에 ‘쓴소리’ “‘살기좋은 지역만들기’는 책상 앞에 앉아 머리로 그리는 게 아니라, 주민들과 막걸리 마시고 싸워가며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김병준 안성시 안성맞춤마케팅담당관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가 하향식 정부 지원사업 방식에서 탈피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의 통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담당관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야 하는 일을 중앙정부가 일일이 관리하려고 하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관리하려 들면 지방정부나 주민 입장에서는 시키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고, 믿고 맡겨야 열심히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 대한 책임은 지방정부와 주민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중앙정부는 결과에 대한 평가를 보다 엄격히 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담당관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겠지만, 평가 결과가 나쁘면 지원을 중단하면 된다.”면서 “주민들에게도 스스로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지원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중앙정부 관련 예산을 하나로 묶는 ‘정책 패키지’가 차츰 축소되면서 지원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 지역 발전의 새로운 성공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패키지 지원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안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Metro] 성남화장장 외지인 사용료 인상

    성남화장장의 외지인 사용료가 대폭 인상된다. 성남시민에 비해 무려 20배 높은 수준이다. 26일 성남시에 따르면 시는 올해 안에 ‘장사시설 설치 및 운영조례’를 개정해 영생관리사업소 내 화장장에 대한 외지인(15세 이상 기준) 사용료를 현행 3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233% 인상하기로 했다. 또 추모의 집(납골당)도 외지인 사용료를 현행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100% 올리는 한편 이용할 수 있는 자격도 지금은 연고자가 성남에 1년 이상 거주하면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당사자가 1년 이상 거주하도록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외지인이 성남 화장장을 이용하려면 성남시 거주자와 비교해 화장장(5만원)은 20배, 추모의 집(10만원)은 10배 비싼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성남시는 화장문화가 정착단계에 들어서고 있으나 화장장 운영에 매년 1억∼2억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5∼6년 내 화장로 시설보수비로 수십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돼 이같은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지자체별 화장장 설치를 의무화한 새 장사법이 내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어 님비 현상과 소극적인 행정 등으로 화장장 건립을 미루고 있는 타 지자체에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사막중국/ 폴리테이아 펴냄

    봄철만 되면 황사가 기승을 부리면서, 그 원인을 퇴치하겠다며 적지 않은 한국 기업과 단체가 황사발원지로 지목되는 중국이나 몽골의 사막으로 달려가 나무를 심는다. 지리학자인 이강원 전북대 교수는 그러나 사막화는 사막을 녹지로 바꾸고 초지를 경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인 만큼 그 과정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한다. 지하수위가 낮거나 강수량이 확보되지 않는 곳에 나무를 심으면 관정을 파거나 하천수를 끌어들여야 하는 만큼 지하수위를 더욱 하강시켜 오히려 사막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막중국’(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중국연구총서 9, 폴리테이아 펴냄)에서 “사막화 현상은 순수한 자연적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토지이용의 변화와 맞물려 있으며, 토지이용의 변화는 다시 사회변동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사막화 현상 또한 사회변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북방 건조지역 개발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시도되었다. 그 가운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시도가 가장 규모가 컸고 지속적이었다. 쑨원(孫文)이 1965년 ‘건국방략(建國方略)’에서 표방했을 만큼 북방 건조지역에 대한 이주와 개간 정책이 당시 중국에서는 일종의 숙원사업이자 시대정신이었다는 것이다. 1958년 시작된 대약진운동은 ‘자연개조’의 차원에서 북방으로 인구이동과 대규모 개간을 촉진시켰다.1966년 문화대혁명은 또다시 건조지역에 외지인구를 유입시켰고 초원과 사막의 개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면서 북방 건조지역 농민들이 개인적으로 토지확대와 가축의 수 불리기에 몰두하면서 사막화는 더욱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막화 현상의 원인이 바로 사막을 옥토로 바꾸겠다는 시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근본적인 대책은 사막화 지역의 주민을 이주시키고 경지와 지하수 관정을 폐쇄하는 등 지극히 인간적인 정성을 다하는 것뿐”이라면서 “이후 사막을 없애거나 황사를 소멸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장구한 자연적 치유과정의 몫”이라고 말했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남해와 만나는 또다른 방법-망운산(望雲山)

    남해와 만나는 또다른 방법-망운산(望雲山)

    ‘보물섬’ 경남 남해의 산들은 어디를 올라도 파란 남해와 만날 수 있다. 다랑논과 멀리 앵강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설흘산, 다도해의 일출이 더없이 아름다운 금산 등이 그 중 손꼽히는 명산이다. 이제 남해의 명산 목록에 망운산을 추가해야 할 듯하다. 깨끗한 풍모와 드넓은 기상으로 다도해를 보듬으며 우뚝 선 망운산은 최근에 와서야 외지인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발 786m로 남해에선 최고 높이의 산이다. 금산, 설흘산 등이 남해를 찾는 외지 손님들의 산이라면, 망운산은 남해군민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산이다.360도 어느 방향에서든 푸른 다도해와 만날 수 있는 말 그대로 풍경의 ‘보물산’이다. 글 사진 남해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산중에 핀 연꽃 ‘화방사´ 망운산 오르는 길은 남해읍 공설운동장 인근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서상면 예계마을 코스, 고현면 대곡마을 화방사 코스 등 다섯개 가까이 된다. 이번 산행은 망운산 중턱의 절집 화방사(花芳寺)를 들머리 삼았다. 그리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 수월할 뿐 아니라, 산행 내내 다도해는 물론, 닥나무 군락지나 망운암 등 많은 볼거리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소요시간은 왕복 3시간 남짓. 절 아래 약수터에서 맑은 물로 목을 축인 다음, 돌다리와 몇 개의 나무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화방사 일주문과 만난다. 청아한 독경소리가 들려오는 돌계단 저편에 화방사가 연꽃 같은 자태로 앉아 있다. 호구산 용문사, 금산 보리암 등과 함께 남해 3대 사찰이라 일컬어지는 곳.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망운산 남쪽에 연죽사를 건립한 것이 화방사의 시작이라 전해진다.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소실된 것을 인조 15년(1637) 서산대사의 제자 계원과 영철 두 선사가 현 위치에 ‘연화형국’이란 뜻의 화방사로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뭍의 대가람과 비교할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대웅전 좌우에 시립한 응진전과 명부전, 강당 역할을 담당하는 채진루 등이 짜임새있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단아한 자태의 절집이 왜 진작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리지 않았을까. 큰 사람 밑에서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어도 큰 나무 아래서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없다던가. 남해의 명찰 금산 보리암의 명성에 가려진 탓일 게다. 깊은 차향 우러나는 다원과 반야교를 차례로 지나면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숲길이 이어진다. 깊은 정적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계곡물 소리가 반갑다. 망운암 못미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닥나무 자생지는 잊지 말고 들러야 할 곳. 철쭉보호지역 아래 약수터에서 길이 양갈래로 나뉘어진다. 약수터 뒤로 난 길보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걷는 편이 다소 수월하다. #일망무제가 동행하는 산길 정상을 향해 임도를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바다 건너 멀리 하동 화력발전소와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어떨까. 임도를 버리고 동네 앞산처럼 야트막한 산자락을 타고 올랐다. 평탄한 정상 능선길을 따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절경이 펼쳐졌다. 일망무제. 산의 기운을 빨아들인 구름이 하늘로 솟구치는 가운데, 우람한 내륙의 산봉우리들은 바다를 향해 줄달음치고, 점점이 떠 있는 섬들 너머로 사천과 고성, 광양, 여수 등 바다에 기댄 도시들의 자태가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정상표지석에서 KBS송신소 아랫길로 300m쯤 더 가면 망운산 전망대 겸 산불감시초소다. 억새가 거센 바람에 몸을 누이는 전망대 앞 공터에서 하늘 향해 두 팔 뻗고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시라.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가는 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 순천 방향 진교나들목에서 내려 남해대교를 지나야 한다. 국도 19호선을 타고 남해읍으로 향하다 고현면 이어마을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3㎞ 남짓 더 가면 화방사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5분 정도 더 가면 화방사 주차장. 다소 돌아가더라도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사천에서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 국도 3호선을 따라 달리다 창선교와 1024번 도로, 이동면 등을 차례로 지나는 길을 고려하시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해공용터미널(055-864-7101)에서 대곡행 버스(1000원)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화방사로 가기 위해서는 대곡에서 하차한다. #이곳도 가보세요 승용차로 망운산을 찾았다면 해안관광도로를 따라 사촌 해수욕장과 가천 다랭이 마을, 상주 해수욕장을 거쳐 창선·삼천포대교까지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좋다. 미조 상록수림, 물건방조어부림, 원시어업 죽방렴 등 많은 볼거리가 동행하는 코스다. 상동면 지족1리 죽방렴 옆에서는 바다낚시가 잘 된다. 어촌계에서 만든 좌대나 어선 위에서 6시간 낚시를 즐기는데 미끼 포함 2만4000원.010-4842-5511.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7) 충북 영동 장선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7) 충북 영동 장선마을

    충북의 ‘설악’이라고 불리는 영동군의 천태산. 고려 천태종의 본산인 그 산자락에 폭 안겨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장선마을.10가구 20여명이 살고 있는 초미니 마을이다.10가구 중 네집은 영동쪽에 있고, 중고개라는 작은 재를 넘어 여섯집이 떨어져 있는데 그 여섯집 중 세집은 작은 도랑을 경계로 충남 금산군으로 들어간다. 마을 앞을 휘감아 돌아가는 금강지류는 강원도 정선의 동강 못지않게 청정하다. 강을 건너는 철교가 놓여지기 전까지 장선마을은 외부인들이 감히 들어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요즘은 깨끗한 강물에서 잡히는 피라미, 빠가사리 등을 넣고 끓여내는 어죽이 맛깔스럽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외지인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초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에 당도한 산골마을. 풀냄새 물씬 나는 더 없이 맑은 공기가 불청객을 맞는다. 비탈진 들판에서 한가롭게 소에게 풀을 뜯기고 있던 마을주민 주석수(71)씨가 모처럼 외지인을 보자 반색한다. 주인 따라 나온 풍산개와 진돗개들도 낯선 이를 경계하기는커녕 반갑게 꼬리를 친다. “여가 시방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 외졌댜.6·25때는 근동에 피란 온 이북 사람들이 죄다 일루다 숨어 들었을 정도였으니께.” “예전에 다리가 워디 있었간디? 배두 없지…. 나갈라고 해도 어렵구 들어올라구 해도 심들었던 동네여.” 산비탈에서 인삼을 캐고 있는 주씨의 부인 강순임(66)씨는 대뜸 인삼자랑부터 한다. 인삼이 언뜻 봐도 뿌리가 크고 잘 생겼다. “여그 삼은 그냥 삼이 아니여. 산삼이나 매한가지여. 삼은 배수가 잘되는 산비탈에서 길러야 제대루지. 시방도 금산서 인삼재배하는 사람덜이 자기들 먹을라고 여그꺼 사러 많이 와. 논에다 약치문서 기르는 것 하고는 질이 다르거든.” 주민들의 생활권은 충남 금산이다.5일장도 금산으로 가고 몸이 아파 병원을 가려고 해도 금산으로 간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나이들고 홀로 돼 살아가기가 빡빡하다. 자식들 출가시키고 남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는 이경자(70)씨.“자석덜한테 뭐 바랠 게 있겄어? 산골서 혼자 벌어 먹고 살아가면 그만이지.” 중고개라는 작은 재를 넘으면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난다. 재를 넘기 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집도 없을 것 같더니 재를 넘자 그림 같은 돌담장의 허름한 옛날 가옥 여섯 채가 들어 앉아 있다. 해질녘 황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황인중(76) 씨를 만났다. 오랜 토박이에게서 풍기는 짙은 흙냄새가 났다. 기자를 만나자 대뜸 농업정책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낸다. “왜정때부텀 여그서 농사 지음스롬 살아왔는디, 앞으로 농사나 지어 먹을란가…. 농업이 걱정이여.”기자가 건네준 담배를 깊게 빨며 한숨부터 짓는다. 농산물 개방에 대한 걱정이다. 농사가 걱정이고 버거우면 자식들하고 같이 사시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봤다. “여그가 내 탯자린디…. 늙어 워디 가야 뭐 하겄어. 그저 고향이 젤루 편하고 좋은 곳이여. 자식들 성화에 서울도 올라가봤음서도 거기는 겁나게 심심허고 더 외로운 곳이여.” 어두워져 마을을 걸어 돌아 내려오는 길에 오전에 만난 강씨 아주머니가 손에 쥐어준 4년생 인삼을 꺼냈다. 한입 베어 물자 찐하면서도 쌉쌀하고 살짝 달달한 수삼이 아작아작 씹힌다. 깊은 산속의 흙맛이자 고향의 맛이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난곡 겉은 바뀌었지만 속은 그대로

    난곡 겉은 바뀌었지만 속은 그대로

    ‘난곡’(蘭谷)이라고도 했고,‘낙골’(落骨)이라고도 했다.‘난초 향기 그득한 골짜기’라 부르기도 했고,‘굴러 떨어진 해골’이라 칭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유배지에 갇힌 강홍립이 난초를 많이 길렀다고 해서 ‘난곡’이었고, 청소차에 실린 도시 철거민들이 뼈 굴러다니는 공동묘지에 쓰레기처럼 내던져졌다 해서 ‘낙골’이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은 그렇게 향기롭고도 자조적인 별명으로 불렸다. 최근 난곡의 마지막 판자촌이 철거됐다. 문학작품 곳곳에 발자국을 남겼던 난곡이 희미한 흔적마저 지우고 있다. 작가 조경란은 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소설집 ‘국자이야기’에 수록, 문학동네 펴냄)에서 난곡을 “폐허”라고 썼다. 대규모 철거가 이뤄진 2003년의 난곡을 “태풍 루사가 지나간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조경란에게 난곡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있는 곳”이었고,‘달동네지만 추석 보름달을 볼 여유를 빼앗긴 곳’이었다.“봉천동 주택개발 사업 때 봉천동 산동네에서 떠밀려나간 사람들 중 일부가 옮겨간 곳”이 난곡이었지만, 난곡이 철거돼도 봉천동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 난곡에 있었다. 봉천동 옥상에서 허물어지는 난곡을 바라보며 소설의 ‘아버지’는 ‘나’에게 말한다.“집은 사라져도 거기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잊어서는 안 되느니라.” ●“낙골에서도 굴러 떨어지면 어디로…” 신림7동 산94번지. 철거되지 않고 남았던 마지막 판자촌이 사라졌다.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뚫린 공가(空家)가 완전히 헐렸고, 이달 1일 건설사는 재개발 아파트 기공식을 마쳤다. 포클레인이 땅을 다졌고, 골조를 세울 준비도 끝냈다.2003년 철거 당시 산94번지는 1종 일반주거지역이었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재개발에서 제외됐다. 올초 관악구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바꿨다.2009년 9월이면 지하 2층, 지상 7층의 주상복합건물 2개동이 들어선다. “낙골에서도 굴러 떨어지면, 이젠 어디로 더 떨어질 거여?” 철거가 시작된 지난 5월, 이삿짐을 싸던 세입자 신동석(가명·63)씨는 말했다.“난곡 꼭대기에 살다가 아파트 들어서면서 밑으로 내려왔는데, 이젠 여기서도 나가래.” 세입자 신씨에게 아파트 재개발은 또 다른 이주를 뜻할 뿐이었다.1960년대 말 대방동, 청계천, 동부이촌동, 남대문, 용산 등지에서 떠밀려온 도시 철거민들은 구청에서 횟가루로 선을 그어주면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았다.2003년 17만 1770㎡에 대한 재개발이 시작됐고, 지난해부터는 신축 아파트가 새 주인을 맞았다. 주인은 주로 외지인들이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난곡 세입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산101번지의 경우 전체 세입자의 34.6%), 입주한 이들도 비싼 임대료를 못내 아파트를 내줘야 했다. 난곡 세입자들은 인근의 지하방과 옥탑방을 떠돌고 있고,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던 서씨도 지금 난곡 아래쪽 어딘가로 떠나갔다. 과거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할수록 높은 곳에 살았으나, 이젠 부유할수록 높은 곳을 찾는다. 달동네 주민들은 달과도 멀어졌다. 판자촌은 사라졌으나, 판자촌 주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난곡을 찾은 6일, 온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바라보고, 분노하고, 기억하던 곳 구충씨(김영종 다큐 소설 ‘난곡 이야기’ 주인공, 청년사 펴냄)는 누가 잘해준다고 해서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다. 눈빛은 꼿꼿해서 누군가 담배 한 보루 소주 한 병을 사주면 ‘카악∼’ 하고 가래 한번 끌어올리면 그만이다. 관의 우두머리가 “만일 처방을 잘못하거나 치료를 늦추면 이 구충으로 인해 생명을 잃게 된다.”고 선언하자, 서울 시민들은 국가 최고 의료기관이 조제한 관중환을 일제히 먹고 구충을 전멸시켰다. 난곡 주민 구충씨는 마치 박멸해야 할 박테리아와도 같았다. 김영종은 난곡을 온정적 눈길로 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향수나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가난담론’, 타인의 가난에 대한 책임을 연민이나 동정과 바꾸려는 시도에 분노했다. 난곡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가난도 없어질까, 난곡을 보며 맘 불편했던 사람들도 안도할 수 있을까. 김영종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세상에 구충이 살아진 뒤로 구충의 망령은 서울의 구석구석을 떠돌고” 있고,“거리거리, 빌딩 숲, 아파트, 급기야 나의 마음 속”까지 구충이 틈입한다. 사실 난곡에도 판자촌이 다 없어진 건 아니다. 박멸해도 박멸되지 않는 구충처럼, ‘산93번지 2´의 7가구는 마지막 재개발에도 끼지 못했다. 개울을 옆에 끼고 일렬로 늘어선 집 구조상 개발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부동산 업자들이 “웬만해선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라 말하는 곳에서, 그들은 또다시 섬으로 남고 말았다. 이웃 주민 중 누구는 “이대로 놔두면 난곡에서 그 사람들만 매장되고 만다.”고 하고, 누구는 “저 집 판 돈으로 어디 가서 살겠냐.”며 “그냥 눌러 앉아 있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홀로 루푸스병을 앓으며 개 두 마리를 가족 삼아 사는,‘산93번지 2´의 끝머리 최수희(가명·39)씨 집 앞엔 채 영글지 못한 어린 감들이 때리는 빗방울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뒹굴었다. “23살에 걸린 병, 부모에게 짐 되느니 혼자 죽는 게 낫다.”며 최씨는 막소주를 들이켰다. 소설가 황석영은 한국전쟁 때 부모님을 따라 거처를 자주 옮겨 다녔다. 황석영은 “나중에 관악산 나가는 길목에 임시 거처를 옮겼는데 그곳은 ‘나꿀’이었다.”고 추억했고,“이곳도 나중에야 신림동 외곽의 난곡이라는 걸 알았다(‘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고 기억했다. 조경란처럼 바라봐주고, 김영종처럼 분노해주고, 황석영처럼 기억해주는 것. 난곡을 기록하는 문학의 한 방식이었다. 이제 작가들이 바라보고, 분노하고, 기억해야 할 난곡의 판자촌은 사라졌다. 난곡을 오르는 길 양쪽으로 아파트만 우뚝우뚝 가파르다. 폐허의 겉은 바뀌었으나, 폐허의 속은 바뀌지 않았다.‘난곡’은 바뀌었을지 모르나,‘낙골’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 보이는 폐허가 아닌 보이지 않는 폐허를 고발할 숙제를 문학은 안게 됐다. 글 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정국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은 당내 예선을 치르느라 바쁘다. 대선 정국인 지금, 대통령들이 꿈을 키웠던 생가(生家)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하고 있을까.‘명당(明堂)’으로 불리지만 업적과 인기에 따라 발길 빈도가 엇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큰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에 나서면서 발길이 크게 잦아졌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한창 복원 중이다. 대통령 생가라면 단연 박 전 대통령 집이다.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최고의 대통령으로, 민주화를 억압한 장본인으로 관심의 중심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다. 박 대통령 생가를 6년째 청소하고 있다는 김영순(56·구미시 사곡동)씨는 “생가를 찾는 연세 드신 많은 분이 박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곡을 한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눈물 쏟는 관람객들 이곳에는 연간 45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생가보존회 김재학(82·전 초등학교장)옹은 “관람객들이 초라한 생가를 보고 ‘이건 아니다.’ ‘너무 했다. 심하다.’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구미시 박 대통령기념사업단 박경하 계장은 “홍보를 안하는데도 찾는 사람이 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에도 발길이 잦은 편이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에는 외지인들이 연간 1500∼2000명 가량 찾고 있다. 이승현 하의면사무소 직원은 “여름방학 때는 하루 30∼40명, 방학이 끝나면 10명 안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포항에서 하의도까지 2시간20분이 걸리는 데다가 배편도 하루 2∼3번밖에 안돼 방문객이 갈수록 줄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를 향한 배’에 동승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조금 낫다. 요즘 하루 30∼40명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의 생가를 찾고 있다. 방학 때면 학부모가 자녀들을 동반한다. 지난해 7만 3000명이 다녀갔고 올해 6만 4000여명이 찾았다. ●을씨년스러운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반면 ‘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는 발길이 뜸하고 썰렁하기까지 하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도로변 전 전 대통령 생가는 대문을 열어 놓아 오가는 행인들이 간간이 들른다. 대구 동구 신용동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생가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훼손이 많이 됐다. 전형적인 시골 촌집으로 2∼3년 전만 해도 주민들에 의해 청소 등 관리가 이뤄졌으나 이후에 방치되고 있다. 한 주민은 “관광객이 가끔 찾기는 하나 전직 대통령의 생가 관리에 정부도, 자치단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전 전 대통령 생가는 84년 경남도가 2800만원에 사들여 합천군으로 소유권을 넘겼다. 군은 매년 11월 이엉을 엮어 초가 지붕을 보수하고 있다. 강원 원주에 있는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는 현재 없다. 터만 있었지만 2000년 원주시립박물관이 들어서 흔적조차 사라졌다. 박물관에도 유품이나 생가에 대한 자료가 없어 박물관이 최 전 대통령의 생가 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원주에서조차 최 전 대통령은 잊혀져 가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다. 주민 임승희(54)씨는 “한달에 100명 정도는 구경을 온다.”고 말했다. 특히 풍수가 뛰어난 명당이란 소문이 퍼져 지관 등이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생가는 마을 노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年 2000여명 발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구미시는 생가 주변 7만 7600여㎡를 성역화하고 있다.2020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추모관과 생가 원형복원, 연대별(1920∼70년) 시대촌, 내자(內子)의 공원 등을 조성한다. 현재 생가에서는 서거일(10월 26일)과 출생일(11월 14일)에 매년 2차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거제시는 김 전 대통령 생가 옆에 기록전시관을 건립한다.19억원을 들여 738㎡에 2층 규모로 만들어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와 소장품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마당 왼쪽에 청동 흉상이 설치돼 있다. 이 흉상은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허난성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참관한 뒤 휘호를 써준 데 따른 감사의 뜻으로 한원비림이 기증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신안군에서 관리인을 두고 제초비와 비품비 등으로 연간 120만∼150만원을 대주고 있다. 추수 후에는 초가지붕 보수비 등으로 700만원을 더 지원한다. 이장 이형열(60)씨는 “대통령 생가가 너무 초라하다는 여론이 있어 생가와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려고 최근에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 자주 개입하면서 대선 후보로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생가보다 묘가 위치한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마을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달 22일 자발적으로 1000여만원을 모아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 탄신 110주년 추모행사를 갖고 ‘대통령 마을’로 선포했다. 마을 이장 이성복씨는 “생전에 1주일에 한번씩 내려와 마을에 나무와 꽃을 심고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등 음덕을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그들의 생가 형태와 규모 대통령 생가 중 가장 큰 집은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다.‘아흔아홉칸’이라고 하나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등 4동뿐이다. 기와집에 총건평 352㎡에 이른다.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이 192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진다.1984년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중부지역 가옥형태로 윤 전 대통령 장남이 소유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58㎡의 초가집과 안채(114㎡), 분향소(119㎡)로 돼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금오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현월봉 아래 자리한 명당 중의 명당으로 ‘대통령이 날 만한 자리’라고 입을 모은다.1993년 2월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다. 이 집은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살았다. 대구사범시절 쓰던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전시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본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돼 있다. 목조 기와집이지만 본채는 76㎡, 사랑채는 26㎡로 보잘것 없는 규모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초년생때부터 대통령 당선때까지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1950년 공비가 침입, 모친을 살해했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거제시에서 2명을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연간 관리비 2000여만원을 지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가, 관리동, 헛간, 소금전시관, 화염(불에 구운 소금) 제조공장 등 5채로 초가집이다. 김 전 대통령은 4학년 1학기까지 이 집에서 살다가 목포로 전학을 갔다.1999년 김해 김씨 종친회에서 8000여만원을 모아 생가를 복원했다. 대통령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 12개, 붓글씨 액자 2개, 책상과 20여권의 책, 벽시계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안채, 행랑채, 대문 등 초가 건물 3채이다. 총건평은 251.5㎡이다. 당초 5채였으나 2채는 1988년 11월 방화로 소실됐다. 군과 면사무소 직원이 수시로 들러 제초작업 등 보수를 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는 생가, 우사, 창고로 꾸며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경북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국풍’이라고 하는 풍수학자들은 연기산·윗도덕산 등 생가 앞에 큰 산이 많아 인물이 났다고 얘기한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머물 사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지어지고 있다. 생가 뒤편이다. 시공 업체가 공사현장에 펜스를 치고 작업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공사현황을 알 수 없다. 김해시 관계자는 “작업현장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정확한 진척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준공 예정일을 감안하면 공정률이 90%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사저는 다음달 말 준공될 예정이다.3991㎡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총건평이 933㎡에 이른다. 지난 1월15일 기공식이 열렸다. 노 대통령의 생가는 사저 앞쪽 463㎡의 터에 목조 슬레이트 건물로 지어져 있다. 본채와 20㎡ 남짓한 헛간이 있다. 마당은 40㎡쯤 된다. 이 집에는 하모(65)씨 부부가 살고 있으나 지난 2월 강모(61)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하씨는 연말까지 집을 비워 주기로 했다. 강씨는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로 경남 창원에서 자동차부품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강씨가 생가를 매입한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친형인 건평씨가 생가를 매입하려고 했으나 가격이 맞지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저가 생가 바로 뒤에 건립되고 있어 조만간 생가를 복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퇴임 후 강씨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거나 증여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관광객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즘도 휴일이면 200여명씩 찾고 있다. 훗날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업적을 어떻게 평가받고 인기를 얻어 어떤 대통령 생가를 닮아갈지 궁금하다. 김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6) 경남 산청군 오봉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6) 경남 산청군 오봉마을

    지리산 아래 사방으로 뻗은 다섯 산봉우리 사이 분지에 자리잡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오봉마을. 산 아래 동네는 몇 십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도 해발 600m 고지에 위치한 이곳의 밤 공기는 서늘함이 느껴진다. 13가구 30여명이 살아가는 오봉마을의 토박이는 마을 최고령자인 이이순(83) 할머니. 나머지는 10여년 전부터 이곳에 요양차 이주해 눌러앉은 외지인들이다.17년 전 산세가 너무 좋아 터를 잡은 최호경씨. 그는 함양에서 종묘업을 하면서도 거주는 이곳에서 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최씨가 마을 자랑을 한다.“몇년 전 술땜시 간이 문드러질 정도로 상해서 들어 왔던 사내가 여 살문서 병이 싸악 나아가꼬 펄펄해져가 나갔다 카데예.” 물하고 공기가 ‘엉캉’ 좋았기 때문이란다. 페인트공장에서 일을 하다 폐에 이상이 생겨 낙향한 민대호(44)씨도 건강을 다시 찾았다. 지금은 집 앞으로 펼쳐진 지리산을 정원 삼아 토종꿀, 나물, 약초 채취를 하며 살고 있다. 마을 이장 강신국(57)씨는 기자를 만나자 찾아오는 데 고생이 많았다며 아내를 시켜 손수 만든 콩국수를 내온다.“산골이라 이런 거밖에 대접해 드릴 게 없어서….” 진하고 고소한 콩국에 소금을 반숟가락 정도 넣고 간을 맞춘 다음 국물을 맛보았다. 고소하면서도 입안 가득 느껴지는 풍미에 염치 불구하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함께 나온 겉절이의 감칠맛은 입안에 짝짝 붙는다. “콩이며 배추며 이곳에서 나는 모든 게 농약을 안친 유기농 채소라예.” 주민 대부분은 특별히 농사를 짓지 않고 텃밭 정도만 일구며 지리산을 터전 삼아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몸에 해로운 농약은 아예 쓰질 않는다. 부족한 수입은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 민박을 치며 메운단다. 이이순 할머니는 예전엔 산에서 곰, 노루 등 야생동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요즘은 먹잇감을 찾아 내려오는 멧돼지를 겨울철에나 볼 수 있다. “자연의 섭리가 진리인 기라. 하늘 무서븐 줄 알고 순리대로 살믄 병도 안 생기고 생겼던 병도 시나브로 낫는다 카이.”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들어와 살길 바라고 있다. 그래야 마을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풍토가 좋고 청정한 지역이라지만 새사람이 터잡고 살지 않으면 점점 쇠락하기 마련. 작은 오지마을에서 평화롭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론 외진 마을이 혹여 버려지지나 않을까 염려를 하는 것 같다. 마을을 뒤로하고 내려 오는 길. 이이순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한다.“찬찬히 경치 보고 쉬엄쉬엄 가이소. 우리 마을 좋다꼬 이우재 소문도 쫌 내주시고예. 잘 댕기 가입시데이.” 글·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HAPPY KOREA] (19) 강원 화천군 ‘하늘빛 호수마을’

    [HAPPY KOREA] (19) 강원 화천군 ‘하늘빛 호수마을’

    강원도 화천군은 대부분의 지역이 휴전선과 맞닿아 있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군용 차량과 탱크 저지선과 같은 군사시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지역 주민들이 ‘주민 보다 군인이 더 많다.’고 말할 정도이다. 북한과 인접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되지 않았다. 불과 얼마전까지 ‘오지’로 불렸다. 그런 화천이 요즘은 여유로운 생활을 찾는 외지인들의 새로운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대부분 지역이 산이나 농지, 호수 등으로 자연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깨끗한 자연과 호수는 지친 도시민을 유입하기에 충분하다.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와 원천 1·2리 등 3개 마을에 조성되는 화천군의 ‘하늘빛 호수마을’계획을 들어봤다. “이곳은 청정지역입니다. 공기도 좋고,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서울에 살면서 주말농장이 있는 화천에 자주 온다는 이성영(하이웰빙 발행인)씨는 화천군이 ‘살기좋은 마을’로 추진하고 있는 원천 2리에 대해 이 같이 소개했다. 그는 “직원들과 화천지역에서 주말농장을 하는데 생활을 해보니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씨는 “화천군이 지역을 찾는 외지인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조성한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는데, 정말 잘 꾸며놨다.”면서 “반드시 외지인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이씨처럼 화천을 찾는 외지인들이 늘면서 화천군은 서오지리와 원천1·2리 등 3개 마을을 ‘하늘빛 호수마을’로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파로호를 끼고 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이미 차근차근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공간의 질 개선 작업’은 행자부에서 직접 도와주고 있다. ●평화의 댐 등 주변 관광자원은 풍부 이 마을의 컨셉트는 천연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도시민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소득을 올리는 게 목표다. 가장 좋은 조건은 금강산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흐르는 북한강이다. 북한지역에서 흘러들어 평화의 댐을 거쳐 지역을 관통하는 물줄기는 화천에서 호수를 형성했다. 이를 파로호(破虜湖)라고 부른다. 군에서 ‘하늘빛 호수마을’로 조성하는 원천1,2리는 앞에는 파로호가 손에 잡힐 듯하고, 뒤는 장군산의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 속에 생활하는 것 자체가 휴식이다. 게다가 평화의 댐을 비롯해 주변에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북유럽 펜션 벤치마킹… 한국 색 가미 화천군은 최근 파로호를 배경으로 산자락에 8개동의 펜션 단지를 지었다. 외부인들이 이곳에 머물다 가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름은 아쿠아틱리조트.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도 있고 실내에서 반짝이는 하늘의 별도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화천군 최문순 자치행정과장은 “펜션을 짓기 위해 핀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관광산업이 발전한 외국을 방문해 벤치마킹했으며, 여기에 한국적인 분위기를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군청에서 운영을 하지만, 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하면 운영을 주민들에게 맡길 예정이다. 그러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운영 책임자는 관광대학을 졸업한 전문가를 영입하기로 했다. 총괄관리는 전문가가 맡고, 운영은 주민들이 하는 방식이다. 이미 주민 3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는 식당과 매점 등 편의시설이 없는데, 조만간 이런 시설도 조성하고 농산물 판매장도 개설한다. 시설을 보완해 외지인을 유인하고, 농촌체험과 농특산품을 판매해 수입을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4계절 리조트 단지 조성 계획 화천군은 이 지역을 4계절 리조트로 조성할 구상도 갖고 있다. 펜션단지 바로 밑 산자락에는 9만여㎡의 야생화 단지를 조성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조만간 330㎡ 규모로 공간을 만들어 호수위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호수변 하천부지 3만 3000여 ㎡를 활용해 축구장 2곳과 축구연수원도 지을 구상을 하고 있다. 부지는 확보한 상태다. 또 펜션 뒤의 임야에 6홀이나 9홀의 퍼블릭골프장을 만드는 계획도 갖고 있다. 하지만 산림법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군청에서는 살기좋은지역특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자유치를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펜션단지와 바로 아래에 있는 연꽃단지를 연결하는 도로가 없다. 군에서는 도로 개설 보다는 자전거 길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펜션단지 뒤 야산으로 연꽃단지까지 등산로도 조성한다. 카누트래킹 코스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화천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연 재배·유기농으로 소득도 ‘쑥쑥’ 마을 주민들은 요즘 친환경에 눈을 돌렸다. 새로운 경쟁력을 실감하고 있다. 최근엔 연(蓮)재배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수십년 동안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생활해왔는데, 깨끗한 환경을 갖춘 호수주변에 연을 심어 새로운 수입원을 개발했다. 양태식(52·하남면 원천리)연 작목반장은 “3년 전부터 10만여㎡에 연을 심고 있다.”면서 “연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친환경적이어서 관광객 유치에도 유리하고 볼거리도 제공한다. 10여 가구로 작목반이 구성됐으며, 현재는 연차(蓮茶), 연주(蓮酒)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앞으로 연베개, 연향(蓮香)등의 다양한 상품을 만들 예정이다. 이 마을 주민 홍재훈(64)씨도 “예전에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연을 재배하면서 생계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군청에서는 주민들이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연 전시관과 판매시설을 지어 줄 계획도 갖고 있다. 유기농이나 친환경농법으로 농특산물도 생산한다. 호박이나 토마토, 쌀 등을 주로 생산하는데 전국적으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마을 곳곳에서 주렁주렁 달린 호박을 볼 수 있다. 화천지역에서 생산되는 쌀 ‘토고미’는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삼성전기에는 6만명이 먹는 쌀을 공급하고 춘천의 한림대학교 구내식당도 이 지역의 쌀을 소비한다. 유종열(47)원천2리 이장은 “농사를 지으면서 농공단지의 식품가공회사를 다니는 주민이 많아 다른 지역보다는 다소 소득이 높은 편”이라면서 “유기농 재배는 지역의 또다른 강점”이라고 자랑한다. 이춘의(53)서오지리 이장 역시 “이미 마을주민들은 새농촌건설사업 등 몇개의 공모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으며, 그동안 생활여건도 많이 개선돼 농촌체험을 위해 찾는 외지인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화천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펜션 운영 3개 마을주민에 맡길 것” “30개 시범지역 가운데서 최고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군에서 살기 좋은 마을로 추진하고 있는 하남면 서오지리와 원천1,2리는 지역여건이나 자연환경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면서 “30개 국가지정 마을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마을로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 군수는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기 앞서 군에서 먼저 이 지역을 대상으로 발전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파로호를 끼고 있어 연꽃단지와 야생화 단지 등 볼거리를 조성하고 수입원을 개발하는 한편 펜션단지를 조성해 외지인이 머물게 하려는 계획을 스스로 세웠다. 그는 “우리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정확히 붙이지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정부의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와 화천군에서 하려던 것이 동일한 컨셉트였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어떤 자치단체보다 사업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모든 청사진이 머리에 들어 있는 듯했다. 그는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진단했다.3개 마을이 합쳐 공동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각각의 마을은 서로 협조가 잘 되는데,3개 마을을 모아 놓으면 ‘단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정 군수는 이 문제를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 정 군수는 “그래서 3개 마을이 화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라고 마을 대표들에게 요청한 상태”라면서 “이들이 화합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군에서 조성한 펜션단지의 운영을 맡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요금을 비싸게 받지 못하도록 운영에 관한 규정도 조례로 마련할 예정이다. 대신 주민들은 펜션단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농·특산품과 음식 등을 판매하고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화천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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