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외지인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관용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재학생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온라인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소설집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02
  • 서울종합병원 빅5 병상 10명 중 6명은 외지인

    서울종합병원 빅5 병상 10명 중 6명은 외지인

    서울 지역의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외지 사람이다. 5개 주요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환자 비중이 60%를 넘는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 다른 지역에선 경영난 심화로 의료기관이 줄게 되고, 이는 곧 지역 간 의료차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5일 발간한 ‘2012년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의료보장 인구(건강보험·의료급여 대상자)가 지출한 진료비는 모두 53조 4458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환자가 거주지가 아닌 다른 시·도에서 쓴 진료비는 10조 7630억원으로 20.1%를 차지했다. 의료기관 소재지별(시·도)로 다른 지역 환자 비중(진료비 기준)을 집계한 결과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33.8%였다. 2011년 조사 당시(31.4%)보다 2.4% 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서울 5대 대형 상급종합병원(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은 다른 지역 환자 비중이 진료비에서는 61.2%, 내원일수에서는 52.2%나 됐다. 1년 전 55.1%, 49.2%에서 각각 6.1% 포인트, 3.0% 포인트 늘었다. 입원 환자만 놓고 보면 다른 지역 환자 비중이 진료비와 내원일수 기준으로 각각 63.9%, 61.6%로 더 높아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고서를 보면 1000병상이 넘는 상급종합병원의 병상이용률은 지난해 평균 91.3%였다. 서울 등 대도시에 집중된 대형병원은 병상을 설치하기만 하면 환자들로 채울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시·군 지역 의원급 병상이용률은 30% 미만이었다. 지역 간 병상 불평등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에 따라 지역별 병상 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용익 민주당 의원은 “대형병원, 특히 ‘빅5’가 대형화 경쟁을 유발했고 이것이 의료계 전반으로 확산됐다”면서 “이는 환자들을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도 일반 병의원에서 대형 병원으로 흡수하는 양극화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별 총량조절 단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중요한 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의료 분야에 수급조절을 위한 공공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中 민족 갈등 자살테러, 심장부 베이징 처음 덮쳤다

    中 민족 갈등 자살테러, 심장부 베이징 처음 덮쳤다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인근에서 관광객들을 향해 돌진한 지프차의 탑승자들이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소수민족인 위구르인들로 밝혀졌다. 중국 최대 민족 화약고 중 하나인 신장은 위구르족의 분리 독립 요구 테러가 빈번해 올 들어서만 수십 차례의 테러로 1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곳이다. 이에 따라 민족 갈등에 의한 자살 테러가 사상 처음 수도인 베이징까지 번졌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공산당 18기 3중전회(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앞두고 베이징 전역이 경비를 강화하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지난 28일 낮 톈안먼 광장 건너편인 자금성(紫禁城) 주요 게이트 앞으로 돌진해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탑승자 3인 중 최소 2인이 위구르족으로 확인됐다고 홍콩 명보가 29일 보도했다. 신문은 위구르족 탑승자는 위쑤푸 우마이얼니야즈(43)와 위쑤푸 아이허푸티(25)라고 보도했다. 이들 2명 가운데 우마이얼니야즈는 지난 6월 말 테러로 35명의 사망자를 낸 신장 위구르족자치구 내 투루판(吐魯番) 루커신(克沁) 마을 출신이라고 전했다. 미국에 서버를 둔 보쉰(博訊)은 이들 두 사람이 이슬람교도 농민 출신으로 민원 해결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당국으로부터 수차례 정신 개조 교육을 받아 불만이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이번 사건이 신장 위구르족의 이슬람 독립운동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다. 만약 이슬람 독립운동 세력이 신장을 넘어 베이징을 본격적인 타깃으로 삼았다면 문제가 매우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톈안먼 광장은 1989년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 곳으로 베이징시가 ‘톈안먼지구 관리위원회’를 별도로 개설해 물샐틈없는 특별 경비를 벌이고 있다. 경미한 기습 시위 시도가 드물게 있었지만 민족 갈등을 겪고 있는 위구르인이 자살 테러로 추정되는 사건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베이징 전역에 통제의 고삐를 조이는 분위기다.이날 베이징 시내는 물론 외곽인 왕징(望京) 지역까지 공안 순찰차들이 대거 동원돼 긴장 분위기가 조성됐다. 당국이 베이징 지역 위구르인들에 대한 색출 작업에 돌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당국은 또 유사 테러가 발생할 것을 경계해 지난 10월 1일 이후 베이징으로 유입된 외지 차량, 외지인 투숙객, 이들이 빌린 렌터카 등에 대한 전면 조사도 벌이고 있다. 이 밖에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 사건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지 말 것 ▲관련 사진과 동영상을 넣지 말 것 ▲댓글을 주시했다가 문제가 발견되면 즉각 삭제할 것 등을 지시하며 여론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오승호의 시시콜콜] 중국인 제주 투자붐 명암

    [오승호의 시시콜콜] 중국인 제주 투자붐 명암

    제주 출신의 시중은행 간부인 한 지인은 “중국인들이 제주도 땅을 마구 사들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졸부라도 상관없지만 중국인들이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초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다. 추석명절 연휴를 맞아 제주에서 초등학교 동창 녀석과 소주 한 잔 하다 “중국인들이 제주 땅을 많이 매입한다던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부동산투자 영주권 제도가 잘못됐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5억원 이상 부동산에 투자해 5년 이상 보유하면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제 때문에 중국인들이 설쳐댄다는 것이다. 고향 땅을 외지인들, 그것도 외국인들이 잠식해 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겠지만, 제주도민의 배타성도 중국인들의 투자 붐을 곱지만은 않은 시각으로 보게 하는 한 요인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올들어 지난 8월 말까지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83만여명. 이 가운데 중국인은 146만여명으로 전체의 79%가량을 차지했다. 중국인 관광객은 2000년대 초 연간 10만여명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증하고 있다. 비자를 면제해 주는 무사증 입국제도와 투자이민제, 한류 등의 영향 탓이다. 외국인이 보유한 제주도 토지는 전체 면적의 0.56%라고 한다. 재미교포 등 미국인 소유가 371만 1081㎡로 가장 많고 중국인 소유는 222만 1538㎡로 제주도 면적의 0.13%이다. 제주 국제자유도시는 추진한 지 10년이 지나면서 큰 방향은 목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월 제주도의 순유입인구 비율은 0.10%로 세종시(0.4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8월 한 달간 제주에 5784명이 들어오고 5176명이 나가 순유입인구는 608명이었다. 제주도 인구는 8월 12일 60만명을 돌파했다. 1987년 50만명을 넘어선 이후 26년 만이다. 제주도는 2021년에는 70만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제주도 부동산 투자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광야오(光耀)그룹의 중국성 리조트 건설, 루디(地)그룹의 헬스케어타운 건설, (주)제주중국성개발의 성산포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 등이 대기하고 있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가 제주도민들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도민들의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으나 “중국인 관광객들은 넘치는데 돈은 별로 안 된다”는 지적이 적잖다. 중국 관광객 특수는 대기업 면세점으로 쏠리고 있다. 공항 면세점은 1인당 구매 한도가 400달러여서 중국 부자들을 겨냥한 고가품을 갖다 놓을 수 없다. 영세 여행업체들의 난립 등으로 좋은 일자리 창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모텔 청소나 유지 보수, 영세 가게 점원 등의 고용에 그쳐선 안 된다. 외국인 투자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논설위원 osh@seoul.co.kr
  • “50년대 울산말 찾아 녹음기 들고 장터 돌았죠”

    “50년대 울산말 찾아 녹음기 들고 장터 돌았죠”

    “방언을 기록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사라져 가는 방언을 집대성한 게 큰 보람입니다.” 울산방언사전을 집필한 신기상(68·문학박사)씨는 지역의 방언이 소중한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6일 밝혔다. 신씨는 “울산은 공업화 과정에서 많은 외지인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가 섞였다”면서 “그래서 방언을 기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울산 울주군 웅촌면 출신인 신씨는 1963년 창천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할 당시 사투리를 사용하는 자신을 보고 제자들이 웃는 모습에서 사투리 연구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울산을 찾아 방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어 울산시 의뢰로 그동안 수집한 방언을 모아 사전을 집필했고 최근 950쪽에 달하는 작업을 마무리한 후 인쇄 중이다. 그는 1960년대 공업화를 거치면서 울산 지역에 외지인이 유입됐고 순수 방언을 쓰는 토박이의 말투 역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1950년대까지 울산 지역에서 쓰인 말이 순수 방언이라고 생각해 이 언어를 잘 구사하는 시골 사람들이 모이는 장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장터에서 오가는 말을 녹음한 뒤 이를 다시 복원하는 작업을 거쳤다. 울산방언사전에 실은 단어의 예문으로 당시 녹음했던 대화들을 활용했다. 그는 “울산 방언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저장단’에 있다”고 설명했다. 표준어는 장단으로 같은 글자의 뜻이 구별되지만 울산 방언의 경우 ‘새’(間)는 높고 길게, ‘새’(鳥)는 낮고 길어서 같이 길게 읽어도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바뀐다는 것이다. 신씨는 이런 단어마다 고저장단을 일일이 기호로 표시해 사전을 만들었다. 그는 “언어란 여름철 뭉게구름처럼 한시도 머무르지 않고 변하는 것인데 특정 시기의 언어를 정확히 채록해 남기는 것은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고 국어사 자료로도 중요하다”며 사전 편찬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방언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말로 자신의 뜻과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잘하면서도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듯이 방언을 사용하더라도 필요할 땐 표준어를 정확히 구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시는 이달 중 울산방언사전 2000권을 발간해 전국 대학, 국립도서관, 공공도서관, 울산 지역 학교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고령의 주민 병원행 속출… 공사 방해 4명 영장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사흘째인 4일, 밀양 지역 원로와 시의회가 외부 단체의 개입 중단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지만 외부 반핵·환경단체 회원 등이 반대 투쟁에 속속 가세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또 경찰이 반대 투쟁에 가세한 외지인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강경 대응’ 방침을 실행에 옮기고 있어 공사 반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4일 밀양 지역 원로 30여명은 밀양시청 앞에서 호소문을 발표하고 “밀양은 외부 단체의 이념 장소도 투쟁 현장도 아니다”라면서 외부 단체의 개입 중단을 촉구했다. 밀양시의회도 정례 간담회를 열고 “송전탑 갈등 사태는 지역 시민의 힘으로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나선 이유는 반핵·환경단체 회원 등이 희망버스로 밀양에 속속 집결하면서 송전탑 공사 갈등이 자칫 이념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외지인 상당수가 공사 반대 시위와 움막 철거 저지에 나선 가운데 5일 새벽에는 희망버스 2대가 추가로 밀양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버스에 탈 인원은 80여명에 이를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이들은 반대 주민과 합세해 송전탑 공사 저지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환경단체 회원 등 30여명이 3일 새벽 희망버스로 밀양에 도착해 야적장 인근 움막의 철거를 막는 시위 대열에 참여했다. 이처럼 외부 세력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반대 시위도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 이날 오전 6시 30분쯤 단장면 고례리 89번 송전탑 진입로에서 목에 쇠사슬을 서로 묶은 할머니 5명이 여자 경찰관과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김모(79)씨 등 3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위양리 126번 송전탑 현장 주변 농성장에서도 최모(78·여), 신모(48·여)씨가 실려 가는 등 이날 하루 6명의 주민이 병원으로 후송됐다. 경남경찰청은 전날 송전탑 공사 자재 야적장 외벽을 부수고 진입한 환경단체와 반핵단체 회원 등 11명 가운데 가담 정도가 무거운 이모(39·경북 경주시), 홍모(36·여·서울 마포구)씨 등 4명에 대해 업무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편, 한국전력이 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남녀 1000명에게 송전탑 공사 재개에 대해 물은 결과 응답자의 59.6%가 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대 22.5%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또 응답자 중 밀양시 거주 주민들도 50.7%가 찬성해 반대(30.9%)보다 많았다. 밀양 문제에 외부 단체가 개입하는 데 대해서는 전국에서 65.6%가, 밀양에서는 67.2%가 반대했다. 반면 공권력 투입과 관련해서는 전국에서 54%가, 밀양에서는 46.3%가 찬성했다. 밀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오늘의 눈] 잇따른 패륜 부른 사행산업/김학준 사회2부 차장

    [오늘의 눈] 잇따른 패륜 부른 사행산업/김학준 사회2부 차장

    몇해 전 경기도 시흥에서 경마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가장이 부인 및 자녀 2명과 동반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인천에서 일어난 모자(母子) 살인사건도 도박빚에 쪼들려온 아들에 의한 패륜범죄로 드러났다. 용의자 정모(29)씨는 지난 1년 동안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에 32회나 드나들면서 돈을 잃어 8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카지노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씨는 어머니에게 수차례 거액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머니 김씨는 실종되기 전 지인에게 “막내아들 눈빛이 무섭다. 돈을 주지 않으면 날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김씨 시신이 유기된 장소도 정씨가 강원랜드를 드나들면서 알게 된 곳이다. 카지노가 들어선 탄광촌 정선은 사연 많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개인과 가족의 몰락사와 관련이 있다. 그곳에서는 재산을 탕진해 오갈 곳 없는 ‘난민’들이 속출해 현지민과 뒤엉켜 이상한 풍속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멀쩡했던 사람이 몇달 만에 폐인이 되다시피 하고, 한쪽에서는 술집·전당포 등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여염집 아낙네가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일도 있다고 한다. 탄광은 흔히 막장으로 불렸지만 지금 상황은 막장보다 더 위태로워 보인다. 예전에는 몸은 상해도 돈이라도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탈출구 없는 갱도’와도 같다. 외지인은 물론 재력이 별로 없는 현지 주민들도 카지노에 취하면서 사행산업 대박에 일조하고 있다. 쇠락해 가는 탄광촌 경제를 살리기 위해 특별법을 통해 강원랜드를 만든 취지가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선 카지노의 환급률은 73%. 쉽게 말해 100원을 걸면 73원만 돌려받는 구조다. 단기간 게임을 하면 몰라도 장기간 몰입하면 귀신도 돈을 딸 수 없는 구조다. 경마·경륜·경정의 환급률도 비슷하다. 문제는 강원랜드나 마사회 등이 공기업이라는 점이다. 강원랜드는 정부와 강원도 등 공공부문이 51% 지분을 갖고 있다. 홈페이지를 보면 폐광지역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책사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일하게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이다 보니 한 해 이용객이 300만명을 넘는다. 지난해에만 1조 2962억원(순수익 30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마사회는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공기업이고, 경륜·경정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이 관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정부 내에서도 물 좋은 자리로 소문나 임원으로 가려면 상당한 ‘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행성 게임의 종말을 알면서도 헤어나질 못한다. 개인의 의지 부족을 탓하기에는 사행성 경기가 가져다 주는 짜릿함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사행성 경기를 ‘적당히’ 즐기지 못하는 개인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소시민의 파탄을 가져올 수 있는 사행성 경기에 공공기관이 앞장서고 있는 현실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격’이다.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는 사행성 시설에 대해 보다 효율적이고 엄격한 운용 기준 등을 마련해 이로 인한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고민해 볼 때이다. kimhj@seoul.co.kr
  • 제주인의, 제주인을 위한 록페

    제주인의, 제주인을 위한 록페

    인구 60만의 제주도는 ‘문화의 변방’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려면 티켓값보다 더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뭍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 ‘육지’에서는 불가능한 음악적 실험이 제주도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 인디밴드들의 재능기부로 운영되는 무료 록페스티벌이 10년째 이어지고, 제주도 사투리로 노래하는 록 밴드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번에는 최초로 2박 3일간의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름은 ‘젯 페스트’(Jet Fest·Jeju Experience Tour & Festival). 해외 아티스트는 없지만 국내 아티스트와 제주의 음악인, 생태여행과 문화체험이 있는 페스티벌이다.제주에서 록 페스티벌을 개최하려면 아티스트들의 항공료와 체제비, 부족한 내수시장 해결 등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제주 출신 음악인들은 도전장을 내밀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사장, 부세현 독립 제작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3월 ‘제주바람’이라는 기획사를 설립했다. “제주는 자연과 문화자원, 교통과 숙박시설 등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에 사는 사람이든 제주에 온 외지인이든 즐길 만한 문화 콘텐츠가 없어요. 저희는 제주를 작지만 문화가 가득한 곳으로 만들려 합니다” 박 평론가의 설명이다. 이들은 록 페스티벌에 앞서 가능성을 시험했다. 아티스트들의 공연과 2박 3일간 생태여행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겟인제주’를 진행한 것. 지난해 5월부터 총 7회에 걸쳐 외지인 160여명과 현지인 1500여명이 참여했다. 여행과 공연을 함께 즐기며 아티스트와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젯 페스트는 기존 록 페스티벌의 모든 틀을 깨뜨린다. 우선 소셜 펀딩을 통해 후원금을 모으고 후원자들로부터 출연진과 프로그램을 추천받았다. 주최 측과 관객이 함께 페스티벌을 만들어 나간다는 취지다. 또 낮에는 생태여행과 문화체험, 강연 등을 진행하고 밤에는 공연을 즐기는 복합형 페스티벌로 기획됐다. 오직 제주에서만 가능한 페스티벌이자 관객들의 능동적 문화 경험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음악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텀블벅 후원금은 목표치인 500만원을 뛰어넘어 1000만원에 달했다. 이에 화답하듯 자전거 하이킹, 물질 체험, 목장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YB, 언니네이발관, 장필순, 뜨거운감자 등 화려한 라인업이 확정됐다. 제주의 인디 뮤지션과 아마추어 밴드들이 설 수 있는 무대도 마련됐다. 공연이 끝나면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하는 ‘미드나잇 파티’로 이어진다. 돈 되는 록 페스티벌에 대기업의 자본이 몰려들어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박 평론가는 자신했다. “록 페스티벌에 수십 억원의 자본이 투여돼도 관객의 만족도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젯 페스트는 제주에 지속 가능한 공연 문화의 토양을 다지고, 록 페스티벌 시장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겁니다.” 10월 18~20일 제주시청소년야영장 및 제주도 전역. (070)4122-2534.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진도-해海 그리고 서화가무書畵歌舞

    진도-해海 그리고 서화가무書畵歌舞

    진도에선 알게 된다. 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왜 소리꾼이 창을 하고, 왜 시인이 시를 쓰는지를. 씹어도 삼켜도 내려가지 않는 응어리를 진도 사람들은 ‘예술’이라 했다. 바다도 울고 칼도 울고 해海 용산역에서 KTX로 3시간을 달려 목포에 내렸다. 호남선의 시작과 끝을 찍는 목포역은 개청 10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1913년 태어난 목포역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겪으며 1세기를 무던히 견뎌냈다. 목포에서 다리 하나만 넘으면 진도다. 진도대교를 넘는 순간, 바다가 흐느껴 울었다. 생명줄을 잡고 있는 존재만이 운다. 그래서 진도대교가 길게 누워 있는 ‘울돌목’은 그냥 바다가 아니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낀 울돌목의 파도는 제 존재를 증명하고자 부지런히 온몸을 비틀고 꼬았다. 바다의 연주에 맞춰 칼의 노래가 들렸다. 충무공 이순신이 울돌목을 굽어봤다. 순우리말 울돌목을 한자로 대치하면 ‘명량鳴梁’이 된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명량을 이용해 이순신은 왜구의 배 330척을 물리쳤다. 그가 거느린 배는 고작 13척뿐이었다. 영웅담은 과대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이순신의 이야기에선 왠지 모를 진정성이 느껴졌다. 허깨비를 좇는 정치에 죽을 뻔하고, 백의종군하던 중 모친상을 당하고, 전쟁 도중 아들을 잃었다. 그건 할리우드 영화 속에 나오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로 피눈물을 흘린 인간의 이야기였다. 매년 울돌목에선 명량대첩일인 음력 9월16일을 기점으로 ‘명량대첩축제’가 열린다. 올해 9월27일부터 9월29일까지 울돌목에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마음으로 싸운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진도의 바다는 우는 것도 모자라 시커먼 제 속을 드러냈다. 검게 타들어 간 진도의 가슴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를 잇는 바닷길이다. 길이 2.8km, 폭 40m의 이 길을 멀리서 바라보면 푸른 바다 위에 갈색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만 같다. 뱀의 비늘이 알록달록해 보이는 건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때문이다. 진도군은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35번이나 치렀다. 지난 4월 나흘간 개최된 올해 축제에는 무려 51만명이 다녀갔다. 매년 4~5월경 잠깐 열렸다가 닫히는 ‘찰나의 길’인지라 여름에 찾은 바닷길은 행방불명이었다. 바닷길을 지켜본 동상 두 개가 ‘기적을 믿어라’고 했다. 목격자는 멀리서 바닷길을 지켜보는 피에르 랑디 동상과 다른 하나는 축제 현장을 지키고 선 뽕할머니 동상이다.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였던 피에르 랑디는 진도의 바닷길을 보고서 ‘모세의 기적’이라 프랑스에 전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신문에 진도가 소개될 수 있었다. 피에르 랑디는 실존 인물이지만 뽕할머니는 전설 속 인물이다.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빈 마을에 혼자 남겨진 뽕할머니가 이웃 섬으로 도망간 가족을 그리워하자 용왕이 ‘길’을 내주었다는 전설은 신비의 바닷길의 모태가 됐다. 신비의 바닷길┃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신비의 바닷길 74 홈페이지 miraclesea.jindo.g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풍경 앞에선 붓이 춤춘다 서화書畵 진도의 바다 옆에는 늘 논이 따라다녔다. 바다 너머 논, 논 너머 바다…. 물과 흙이 진도 사람을 빚어냈을 것이다. 진도에선 보이는 대로 툭 찍어내는 사진이 아니라 뭉툭한 연필로 쓱쓱 그리고 고운 물감으로 덧칠한 풍경화가 갖고 싶었다. 사물 하나 제대로 스케치하지 못하는 아둔한 손을 원망했다. 재주 없는 외지인의 마음이 이러한데, 진도에 살았던 사람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진도의 미술관은 진도 출신의 작가와 진도의 풍경이 담긴 그림 위주로 전시를 꾸리고 있었다.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를 들여 만든 남진미술관은 아늑하고 소담했다. 미술관 정원에는 색이 고운 토기와 조각품이 가득 메워져 있고 별관에는 분청사기, 백자, 청자 등이 높은 몸값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가면 책에서 봤던 역사 속 인물들이 걸어 다닌다. 이름만으로 무게가 느껴지는 추사 김정희와 한호 한석봉의 글씨를 알현하고, 대원군 이하응의 박력이 느껴지는 글씨도 볼 수 있다.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무정 정만조, 고균 김옥균, 계정 민영환 등의 작품도 미술관 곳곳에 촘촘하게 박혀 있다. 미술관의 벽면 한쪽을 크게 메운 그림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다산 정약용의 ‘홍매도’다. 다산의 유배지는 진도가 아니라 강진이건만 정약용이 그린 매화 그림은 진도에까지 진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진도의 그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의 흔적을 밟아야 한다. 운림산방은 진도 출신의 허련이 여생의 끝자락을 보내던 화실이다. 이곳을 지키는 건 연꽃이 동동 떠 있는 호수와 의젓한 소나무, 하늘거리는 배롱나무 등이다. 운림산방은 배우 배용준과 전도연 주연의 영화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허련은 평생 한 스승를 우러러봤다. 허련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 준 추사 김정희 말이다. 추사는 중국 원나라의 4대 화가로 손꼽힌 ‘대치’ 황공망과 견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린다 하여 제자의 호를 ‘소치’라 지어 주었다. 소치 허련이 운림산방에 기거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추사의 죽음 때문이었다. 허련은 스승을 만나러 제주도까지 찾아가곤 했다는데, 스승을 향한 사랑은 운림산방에서도 느껴진다. 심지어 운림산방은 뜻밖의 선물을 내어 놓았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인 세한도를 본 것이다. 메마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마주 보고 꼿꼿하게 선 세한도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글씨가 숨어 있었다. ‘서로 오래 잊지 말자’는 이 말은 귀양살이 중이던 추사가 중국에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띄우는 감사의 인사다. ‘예술 혼’은 세월의 바람 앞에서도 쉽게 꺼지지 않는다. 소치 허련에 이어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인 허림, 임전 허문, 허진 등 소치의 집안은 5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했다. 호수 오른편에 보이는 소치 기념관에선 소치 집안의 가계도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피는 같을지언정, 각자 그려낸 그림의 느낌은 천차만별이었다. 한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들의 그림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남진미술관┃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하미길 39 문의 061-543-0777 운림산방┃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문의 061-543-0088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진도 Q&A Q.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갤러리가 있다? 그림을 전시하고 커피와 케이크를 파는 갤러리형 카페는 봤어도 그림을 전시하며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곳은 생전 처음 봤다. 진도니까 가능한 일이다. 우초 박병락 선생이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이자 음식점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수제비와 파전. 진도의 바다를 표류하던 각종 해산물이 수제비와 파전에 들어 있다. 노란 색감이 퍼지는 막걸리도 진도의 특산품인 ‘울금’으로 만들어져 독특하다. 울금은 생강과 식물로 울금의 주성분인 커큐민은 카레의 주원료가 된다. 우초 선생의 그림은 진도스럽다. 진한 먹으로 그려낸 작품에선 검정빛 개펄이 살아 있다. 소나무 너머의 바다, 갯벌의 변화, 낙조 등 작품의 주제는 진도를 비켜가지 않는다. 작은 갤러리┃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300 문의 061-544-0071 Q. 진도개? 진돗개? ‘진도개’는 진도를 알리는 일등공신이다. 1993년 5살짜리 진도개 백구가 대전으로 팔려갔으나 주인을 잊지 못하고 7개월간 팔백리길을 달려 옛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얘기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진도개 테마파크에서는 똑똑한 진도개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명연기부터 조련사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고난이도 묘기도 부린다. 여기서 잠깐! 진돗개와 진도개 중 어느 것이 맞을까? 사이시옷 맞춤법을 따르자면 ‘진돗개’가 맞지만 진도 사람들은 진돗개를 ‘진도개’라 부른다. 1963년 진도개가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될 당시 진돗개가 아니라 진도개로 등재됐기 때문이란다. 진도개라는 단어에는 ‘진도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진도 군민의 자부심이 배어 있는 셈이다. 진도개 테마파크┃주소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홈페이지 dog.jindo.go.kr Q. 홍주는 섞어야 맛있다? 진도의 특산품은 헤아리기 어렵다. 꼬들꼬들하고 튼실한 돌미역,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불리는 구기자, 한겨울에도 잘 자라는 대파 등…. 수많은 특산품을 비집고 진도 토속주인 ‘홍주’가 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됐다. ‘지초’라는 약초를 가미해 색을 낸 홍주는 이름 그대로 새빨갛다. 도수가 무려 40도를 웃돌기 때문에 주당이 아니라면 그냥 마시기 쉽지 않다. 맥주잔에 맥주를 70% 가량 채운 뒤 홍주를 약간 부으면 마치 맥주 위에 해가 뜬 것 같은 ‘일출주’가 된다. 맥주가 든 맥주잔 안에 홍주가 든 소주잔을 넣으면 ‘일몰주’. 또한 투명한 사이다와 홍주를 섞으면 접점 부분이 분홍빛으로 바뀌어 상당히 곱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핏방울 터트리듯 노래하더라 가무歌舞 “진도 앞에선 서화가무를 자랑하지 마시오”라는 충고는 허풍이 아니었다. 예술이라는 향수를 얼마나 뿌린 것인지, 나중에는 예술이라는 말만 들어도 특유의 진도 내음이 풍겨 왔다. 아리랑마을 관광지 내 아리랑체험관에서 아리랑은 물론이고 사물놀이, 진도씻김굿 등을 간접 체험했다. ‘지잉’ 징이 울면 바람이 불고, ‘둥둥’ 북이 울면 구름이 따라왔다. ‘꾕꾕’ 꾕과리가 소리치면 천둥이 밀려왔고, ‘덩기덕’ 장구가 움직이면 비가 쏟아졌다. 논밭을 일궈 살기 위해 그들은 악기를 쳤다. 자연을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드는 우리 민족의 지혜다.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전승된 ‘남도 들노래’는 아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남도 들노래 하면 지산면 인지리의 조공례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소리에 미친 조공례 할머니의 윗입술은 “노래하지 말라”는 남편의 돌팔매에 찢겼다.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에서 곽 시인은 입술이 찢기던 순간을 “그날 흘린 피가 꼭 매화꽃잎처럼 송이송이 서럽고 고왔는디”라 묘사한다. 윗입술이 찢기고도 ‘핏방울 터트리듯’ 노래한 그녀는 남도들노래 창 기능 보유자중요무형문화재 51호가 됐다. 농사지으랴, 밥하랴, 아이 키우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진도의 부녀자들은 때론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남도들노래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의 탄생기다. 이곳저곳 정처 없이 진도를 염탐하다 보니, 해日와 이별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해와 만나고 헤어지는 건, 먹고 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 아니던가. 그러나 진도에선 해조차 특별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듯 진도의 해는 애잔하게 바다의 품에 안긴다. 떠나가는 해를 보려 세방낙조 전망대로 달렸다. 일몰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공백기를 달래 준 건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공연이었다. 중중모리 가락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관람객의 몸 사위를 따라 흘렀다. “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아이고 아니로구나. 초장화, 초장화, 초장화, 장화초, 장화초 아이고 이것도 아니로구나….” <흥부가> 중 화초장 대목. 부자가 된 동생 흥부에게서 ‘화초장’을 빼앗아 온 놀부가 화초장을 ‘고초장’이라고 했다가 ‘초장화’라고도 했다가 정신없이 소리 질렀다. 흥부가가 끝나기 무섭게 북을 맨 세 사람이 등장했다. 양손에 북채를 쥐고 북을 장구처럼 양쪽으로 치는 ‘진도북놀이’는 잔가락이 많기로 유명하다. 두 손에 북채를 들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심장도 북의 장단에 맞춰 쿵쿵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쩌렁쩌렁 울리던 소리가 자취를 감출 무렵, 해가 서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숨을 멎을 듯 말듯 해가 어느 순간 바다에 스며들었다. 아리랑마을 관광지┃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아리랑길 95-5 문의 061-544-8839 세방낙조┃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세방낙조로 문의 061-544-0151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진도군청 www.jindo.go.kr 한국관광공사www.visitkorea.or.kr
  • 산속에 안긴 중국 오지마을… 원석 같은 사람과 자연을 만나다

    산속에 안긴 중국 오지마을… 원석 같은 사람과 자연을 만나다

    “7할은 산이요, 1할은 물, 나머지 2할은 전답(田畓)이다.” 거대한 중국 대륙 안에서 손바닥처럼 좁은 저장성은 예부터 ‘숨은 보석’으로 불려 왔다. 대륙 동남쪽 연해에 자리해 산이 많고 자원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장성은 살아있는 자연 박물관으로도 일컬어진다. 수려한 풍경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자연, 첩첩산중에 자리한 소박한 마을과 때 묻지 않은 사람들….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고유한 전통을 이어 가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EBS는 26~29일 밤 8시 50분 세계테마기행 4부작 ‘대륙의 숨은 보석, 저장성’을 연속 방영한다. 박현규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여행 큐레이터로 나선다. 제1부 ‘치유의 길을 걷다, 쑤이창’에선 저장성 안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쑤이창현을 찾아 첫 여정을 시작한다. 해발 1000m 이상의 산으로 둘러싸인 쑤이창현에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푸른 삼림과 신비로운 운무 속에서 나타난 작은 마을 다컹춘은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다닥다닥 모여 앉은 수십 채의 가옥들로 이뤄졌다.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탓에 지금도 외지인을 만나면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내지만 이내 순박한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다컹춘은 우리네 시골과 많이 닮은 모습이다. 조용한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이는 시기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문 땅에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낼 때다. 조상 대대로 용신에게 기원을 드려 온 다컹춘만의 전통 기우제를 소개한다. 첩첩산중 쑤이창의 또 다른 오지 마을은 훙싱핑. 산 몇 개를 넘고도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청정 그대로의 자연이 살아있는 훙싱핑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만난다. 제2부 ‘103개 섬들의 고향, 둥터우 열도’에선 저장성의 2000여개 섬들을 조망한다. 이 중 100여개의 섬들이 모여 있어 ‘섬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둥터우 열도를 방문한다. 특별한 볼거리는 어부들이 잡아 온 물고기를 보관하고 팔기도 하는 수상시장으로, 이른바 ‘어부들의 집’이다. 둥터우에서는 광활한 갯벌에서 수월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특별한 배 ‘갯벌썰매’가 특히 눈길을 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귀농귀촌 실패 사례… 정착 성공하려면

    [커버스토리-귀농귀촌 2.0시대] 귀농귀촌 실패 사례… 정착 성공하려면

    # 은행 간부를 지낸 이모(66)씨는 최근 강원도를 떠났다. 퇴직 후 사업에 실패하고 건강까지 나빠지자 아내와 함께 “공기 좋고 물 좋은 데서 농사나 짓자”며 3년 전 서울을 버리고 내려왔던 귀농자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남의 땅을 임대해 고추, 오이, 고구마 농사를 지었지만 연거푸 실패했다. 경험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서울로 다시 돌아왔지만 귀농하면서 빌린 영농자금은 지금도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 # 3년 전 전남 순천시 별량면으로 귀농한 서모(57)씨는 최근 농촌 생활을 접었다. 그런 대로 오이를 잘 길렀지만 판로가 없었다. 농사는 과학 영농, 날씨, 유통, 인터넷 판매 등 여러 가지가 혼합된 종합세트였다. 빚만 잔뜩 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서씨는 “해충, 말파리, 모기 등이 있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도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판로 확보에 애를 먹었다”면서 “도시에서 막노동을 해도 농촌보다는 벌이가 나을 것 같았다”고 귀농했던 것을 후회했다. 귀농귀촌이 느는 것 못지않게 실패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장밋빛 꿈을 안고 도시 생활을 청산한 뒤 내려왔다가 영농 기술 미숙과 주민과의 마찰 등으로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귀농인이 부지기수다. 많은 도시인이 ‘농사나 짓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농어촌에 덥석 정착했다가 큰 코 다치고 영농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다. 경험과 영농 기술 부족이 원인이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던 김모(50)씨는 2007년 제주로 귀농했다가 3년 만에 되돌아갔다. 김씨는 귀농 직후 감귤밭 1000여평을 매입해 농사를 시작했다. 농대를 나와 ‘농사는 좀 안다’고 자부했지만 현장에서는 완전히 초보였다. 실패를 거듭했다. 김씨는 차별화 전략으로 유기농 감귤을 재배했으나 판로 개척에 애를 먹었다. 김씨는 “다른 과일보다 감귤 농사가 비교적 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는데 부족한 영농 경험이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김씨의 농지는 현재 제주 현지인에게 임대돼 있다. 해발 400m 이상으로 일교차가 심해 사과 주산지로 유명한 전북 장수군에 내려와 과수원을 하던 또 다른 김모(54)씨도 2년 만에 농사를 포기했다. 추석 사과 ‘홍로’를 재배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헛심만 쓰다가 끝내 도시로 되돌아갔다. 마을 주민들과 섞이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구동관 충남농업기술원 귀농지원팀장은 “농촌은 30% 이상이 마을 일이다. 귀농인 일부는 ‘내 일 열심히 하는데 왜 이상하게 보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충남 부여군 장암면에서 수박 농사를 짓던 50대 이모씨는 1년 만인 지난 5월 도시로 다시 돌아갔다. 농사일도 힘들었지만 무뚝뚝한 성격에 주민들과 섞이지 못하면서 외딴섬처럼 지내는 것을 못 견뎌 했다. 단체로 내려와도 마찬가지다. 풍광이 아름다운 경북 영주시 부석면 소백산 자락은 예술인들의 귀촌 부락이었다. 3~4년 전부터 예술인 10여 가구가 찾아와 텃밭을 일구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이후 한두 가구씩 도시로 떠나더니 지금은 달랑 세 가구만 남았다. 송재익 부석면장은 “주민들은 의식주, 예술인들은 예술 활동에 각각 골몰하다 보니 서로 왕래하지 않고 단절돼 있었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느릅실 주민들은 지난해 전원마을 조성 사업을 무산시켰다. 아산시가 2014년까지 이 마을 2만 4151㎡에 30가구 규모의 전원마을을 조성하려 하자 주민들이 집단 반발한 것이다. 이장 주영석(70)씨는 “농사도 안 짓는 사람들이 몰려와 ‘독립 부락’을 만들어 놓으면 우리들과 잘 지내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주민은 “농촌이 도시인에게는 따 먹기 좋은 과실로만 보이느냐. 모든 사람이 짐을 싸서 도시로 나갈 때 외롭게 마을에 남아 농업을 지켜 온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을 텃세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우스꽝스러운 태도”라고 꼬집었다. 원주민들과 섞이지 못하면 외톨이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농기계를 빌려주지 않거나 “내 땅이니 지나가지 말라”며 길을 막아 승용차 운행이 어려운 일도 있다. 농사일은 품앗이가 많은데 일꾼 사는 것도 쉽지 않아 쩔쩔맨다. 마을 아낙네들의 쑥덕거림도 당해야 한다. 지난해 아산의 한 마을은 외지인 7명이 집단 귀촌해 오자 “주민들 식수원인 지하수가 크게 달린다”며 상수도를 끊기도 했다. 원주민들과 잘 지내지 못한 것도 적잖이 작용했다. 강성모(57) 부여군귀농귀촌인협의회장은 “시골 인심이 옛날 같지는 않다. 귀농인이 먼저 다가가야 하고 마을 이장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귀농인이 주민들에게 너무 잘 보이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얼마 전 40대 귀농인이 이웃집 전기를 고쳐 주다가 감전돼 숨지는 사고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전북 진안에서 귀농에 실패한 뒤 충남 아산 유곡리로 옮겨 8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형(44)씨는 “육체 노동을 안 해봐 귀농 초기에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손가락이 쑤셨고, 주민들이 새벽 5시에 문을 벌컥 여는 것도 힘들었다”면서 “마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어울려 살고 나누려는 자세가 우선이다. 농법은 시간이 지나면 배워지지만 이것은 그렇지 않다”고 충고했다. 김씨는 “농사를 짓지 않고 살기만 하는 귀촌인은 유대 관계나 애착이 덜해 주민들과의 갈등이 더 심하다”면서 “귀농인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인정을 안 한다”고 덧붙였다. 자치단체에서는 다양한 귀농귀촌 유인책을 내놓는다. 창업·주택자금 2억 4000만원 융자에 지자체에서 빈집 수리비와 농기계 구입비로 500만원씩 무상 지원하기도 하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게 귀농인들의 생각이다. 순천에 귀농했던 서씨는 “지원이 일시적이어서 2~3년 농사에 실패하면 큰 부채로 남는다”면서 “지자체들이 영농교육 등보다 인구 늘리기 수단으로 현금만 쥐여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구 팀장은 “귀농 후 3년은 지나야 자리가 잡히는 만큼 현지 실태를 충분히 파악하고, 초기에 너무 큰 돈을 들이지 말고 임대 등을 통해 경험을 쌓은 뒤 규모를 키워도 늦지 않다”고 귀농인 스스로 치밀하게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아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단종의 恨과 눈물을 목격하다

    단종의 恨과 눈물을 목격하다

    지금부터 꼬박 556년 전입니다. 만 열여섯 살 단종은 한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숙부 수양대군은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냅니다. 딱 이맘때, 그러니까 가마솥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 어린 임금은 길을 떠납니다. 유배지까지는 700리. 얼추 하루 100리 씩 강행군했다지요. 6일째 저녁 다다른 영월 초입에서 청령포까지는 또 100리. 칼 같은 산들이 얽히고 설킨 영월땅을 하루 만에 지난 단종은 7일째 되던 날 마침내 청령포에 닿습니다. 이처럼 지난했던 단종의 영월 여정을 모티브로 조성된 길이 ‘단종유배길’입니다. 길 곳곳에 스민 단종 애사가 가슴을 적시는 데다 영월의 관광지들 또한 굴비처럼 엮여 있어 한번쯤 돌아볼 만합니다. 먼저 단종(端宗·1441∼1457)에 대해 개략적이나마 알고 가자. 그래야 영월 풍경이 좀 더 잘 보인다. 조선 6대 임금이었던 단종은 애초부터 불행했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를 잃고(1441년 7월 24일, 조선왕조실록, 이하 음력) 12세 되던 1452년엔 아버지 문종마저 승하했다. 창졸간에 왕위에 올랐으나, 3년 뒤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에게 권좌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1457년엔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돼 신분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된 채 6월 22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여기서부터의 기록이 문제다. 정사와 야사가 마구 뒤섞였다.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은 “첨지중추원사 어득해에게 명하여 군사 50명을 거느리고 호송하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일각에서 회자되듯, 왕방연이 단종 호송을 담당했다는 대목은 없다. 단종의 죽음을 다루는 부분에선 확연히 사실관계가 엇갈린다. 실록은 1457년 10월 21일 “노산군이 자결했고, 예로써 장사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믿는 백성은 없었다. 되레 세조 타살설이 훨씬 설득력을 얻었다. 장릉지(莊陵誌)의 경우 “세조 3년 10월 24일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공생(貢生)이 활끈으로 노산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노산군의 옥체는 청령포의 강물에 던져 버린 것을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거두어 영월군 북쪽 5리쯤의 동을지에 매장했다”고 적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례를 치렀고 어떤 곳에 묘를 정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는 실록에 견줘 훨씬 정교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초’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여기에 숙종이 ‘결정타’를 날린다. 실록에 따르면 재임 25년째인 1699년 1월 2일, 숙종은 하직 인사 온 수령을 만난 자리에서 “단종대왕이 영월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도사 왕방연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중략/단종대왕께서 관복을 갖추고 마루로 나아오시어 온 이유를 하문하셨으나, 왕방연이 대답하지 못하였었다/중략/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라며 단종이 교살(絞殺·목을 졸라 죽임)됐다고 보던 자신의 견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야사에서 전하는 역사를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이를 지켜보던 좌의정 최석정이 “덮어두자”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숙종이 발설한 내용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았다. 단종유배길은 6월 22일 한양을 출발한 단종이 영월 관내에 들어온 26일 이후의 행적을 따라간다. 전체 길이는 43㎞. 통곡의 길(솔치고개~주천 10.5㎞)과 충절의 길(주천~배일치 마을 17㎞), 인륜의 길(배일치 마을~청령포 15.5㎞)등 3개 코스다. 김원식 문화관광해설사는 “저물녘 영월땅에 들어선 단종은 솔치고개에서 7.5㎞ 떨어진 역골(공순원)에서 묵은 뒤 이튿날 길을 재촉해 청령포에 이르렀다”고 했다. 100리 가까운 35.5㎞를 하루에 걸은 셈이다. 이팔의 나이긴 하나 가마솥 같은 무더위에 험한 영월의 산길, 강길을 하루 만에 걷는 건 무리였을 터다. 그러니 그 길 곳곳에 얼마나 많은 단종의 땀과 눈물, 그리고 한숨이 배어있을지는 누구라도 쉬 짐작할 수 있다. 차로 단종유배길을 돌아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명소들이 88번 지방도에 인접해 있어 승용차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들머리인 솔치고개는 원주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예서 단종이 목을 축인 샘물터 어음정(御飮亭)과 다리쉼을 했다는 주천쉼터 등을 지나면 군등치(君登峙)에 닿는다. 단종이 오르다 하도 힘이 들어 이름을 물으니 호송하던 관리가 “임금이 오르는 고개니 군등치”라 했다는 유래를 가진 고개다. 고갯마루에 서면 단종이 걸어왔던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한눈에 보인다.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 인근엔 방울재가 있다. 단종이 타고 가던 말에서 방울이 떨어졌다는 전설이 담긴 고개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는 반드시 들르시라. 단종유배길과 거리는 있지만 영월의 아이콘일 정도로 절경인 데다, 군등치 등 영월의 산자락들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배일치(拜日峙)는 단종이 서산에 지는 해를 보고 절을 했다는 고개다. 88번 지방도 배일치터널 못 미쳐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정표는 없다. 외지인이 찾기가 쉽지 않다. 걷는 길 못지않게 차도에도 이정표를 세웠으면 좋으련만 후세의 인심이 야박하기 짝이 없다. 사실 단종유배길에 대한 정보도 박약하기 그지 없다. 영월군청 홈페이지나 관광지도 등 어디에도 전체 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보는 없다. 단종이 어떤 경로로 험한 영월땅을 지나왔는지 볼 수 있다면 어린 임금이 겪었던 고통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고갯마루에 세워둔 단종 조각상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엎드려 절하는 형태의 조각상을 가까이서 보면 기골이 장대한 무장(武將)을 보는 듯하다. 단종의 당시 나이에 적합한 체구의 조각상을 세웠더라면 좀더 사실적이고 처연한 느낌이 더했지 싶다. 단종이 아내 정순왕후를 그리며 이름 지었다는 옥녀봉과 선돌 등을 지나면 마침내 청령포(명승 제50호)다. 휘휘 돌아가던 서강이 동강과 몸을 섞기 직전 만들어둔 몰돌이동이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이다. 나머지 한쪽은 험준한 육육봉으로 막혔다. 유배지로 제격인 셈이다. 단종어소 입구의 소나무가 특이하다. 담을 넘어 마당 한가운데까지 가지를 뻗었다. 어린 임금 앞에 부복하는 듯한 모습이다. 솔숲엔 국내 소나무 중 가장 키가 크다는 관음송(30m)이 서있다. 단종의 유배 생활을 지켜보고(觀) 단종의 절규를 들었다(音)는 수령 600여년의 노송이다. 솔숲 뒤편은 단종이 아내를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다. 돌아 나오는 길에 왕방연 시비도 잊지 말고 찾아야 한다. 청령포 맞은편 강변 언덕에 있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읊었다는 시구가 새겨져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발길 예놋다’ 단종유배길은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여정은 이제부터 절정이다.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은 두 달 만에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다.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길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이어 작은아버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가 발각되고, 단종에게 사약이 내려진다. 물론 실록엔 신하들이 줄기차게 사사를 외쳤지만 세조가 윤허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때 관풍헌으로 사약을 가져온 이가 왕방연이다. 그가 사약을 내밀지 못하고 머뭇대자, 공명심에 눈 먼 공생이 활줄로 단종의 목을 졸라 숨을 끊는다. 단종의 주검은 청령포 앞 강물에 버려진다. 후환이 두려운 탓에 장례를 치르겠다며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며 시신을 수습한 이가 영월 호장(지금의 읍장) 엄흥도다. 그는 아들 광순과 함께 영월 인근 산기슭에 단종을 묻는다. 노루가 앉아 있다 인기척에 놀라 뛰쳐나갔다는 자리다. 초겨울 날씨지만 산을 오르는 그의 등줄기는 땀으로 흠뻑 젖었을 터다. 늘어진 소년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고, 세조의 서슬 퍼런 눈초리가 시종 뒷덜미에 꽂히는 듯했을 테니 말이다. 그날 밤 엄흥도는 가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떠난다. 단종의 무덤은 중종 36년(1541) 영월군수 박충원이 찾아냈고, 숙종 24년(1698)에 장릉(莊陵)으로 명명된다.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을 나와 88번 지방도를 타고 주천을 지나 영월 방면으로 내처 가면 된다. 영월 읍내로 곧장 가려면 제천나들목에서 38번 국도를 타는 게 낫다. ■맛집:주천면 다하누(1577-5330)에선 한우를 싸게 맛볼 수 있다. 영월읍내에선 상동식당(033-374-4059) 막국수, 청산회관(033-374-3030) 곤드레밥, 장릉에서 1㎞쯤 떨어진 장릉보리밥집(033-374-3986) 등이 이름났다. 글 사진 영월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新 대한민국 24시] (3) 국내 최대 ‘군인 관사촌’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新 대한민국 24시] (3) 국내 최대 ‘군인 관사촌’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신흥종교 본거지에서 국방 중추도시로 탈바꿈한 계룡산. 정상 천황봉(해발 845m)에서 남쪽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다 수용추와 암용추를 지나면 계룡대(鷄龍臺)가 모습을 드러낸다.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한국 군의 심장부다. 북한의 주 공격 대상이지만 “경사가 가팔라 곡사포로도 타격이 불가능하다”는 곳이다. 작대기 하나부터 별 넷까지 군의 모든 계급이 빠짐없이 뒤섞여 있다. 명령에 죽고 사는 철두철미한 계급사회이지만 냇가(두계천) 하나를 건너 이들이 가족과 함께 사는 국내 최대 군인 관사촌으로 들어서면 계급은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주소는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주민은 전부 군인 가족이다. 용남초 4년 김모(10)양은 “친구들과 하루 종일 놀아도 아빠 계급은 물어보지 않는다”고 웃었다. 여기마저 계급화되면 얼마나 피곤할까. 이 마을에서 계급에 관한 질문은 ‘절대 엄금’이다. 그저 정을 나누는 이웃일 뿐이다. 9일 찾은 신도안면 최대 만남의 장소 계룡대쇼핑몰은 비교적 한가했다. 불볕더위 탓도 있지만 바로 앞 1500가구 규모의 군인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 주민들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현재 주민은 1345가구 4735명으로 2066가구 7266명이었던 지난해 6월과 비교하면 3분의1이 사라진 셈이다. 쇼핑몰 옆에 수영장과 중부상가가 있고, 주변은 아파트와 학교로 둘러싸였다. 관사는 100% 아파트, 이마저 면소재지에 몰려 있다. 이곳과 계룡대 영내 군인이 면 주민의 전부이지만 사병 등은 주소가 여기에 없다. 계룡대 안에 장군 관사가 있고, 이곳에는 영관급에서 부사관까지 거주한다. 대령이라고 해 봐야 대략 쉰살 전후이니 마을이 젊다. 주민 평균 연령이 28세, 전국 면(面) 가운데 최연소다. 학력도 무척 높다. 사관학교, 학사장교, 3사관학교 출신이 부지기수다. 부사관도 군 복무 중 대학을 많이 가 고졸 군인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이장은 모두 부인들이 맡는다. 남편이 군생활로 바쁘기 때문이다. 계급이 직접 충돌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속셈도 있다. 김세겸 신도안면장은 “이장이 전부 여자인 곳은 전국에서 여기뿐”이라며 “여성이 섬세하고, 꼼꼼하고, 감성적이고, 친절해 대민서비스가 우수하다”고 자랑했다. 관사 아파트단지 하나가 헐리면서 16명이던 이장이 절반인 8명으로 줄었다. 군인이 미인을 좋아해서인지, 미인이 군인을 좋아해서인지 이장뿐 아니라 신도안면에는 미남미녀가 많다. 섹시 가수 아이비가 이곳 학교를 나왔다. 아버지가 해군 군악대 출신이다. 다행히 이장이 할 일은 다른 곳보다 많지 않다. 우선 기초생활수급자가 한 명도 없다. 비슷한 월급에 생활 수준이 고만고만하다. 집단민원도 발생하지 않는다. 국방부가 자기 땅에 집을 지어 민원이 있을 수 없다. 학원은 인근 엄사면 금암동에 있다. 군인들은 그저 3.3㎡(평)당 6만원 정도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관리비를 내면서 살면 된다. 이장의 역할은 국·시정 홍보물을 주민들에게 배포하거나 알리고, 주민 불편사항을 면에 전달하는 게 거의 전부다. 범죄도 없다. 군인 집단촌에 들어가 도둑질하고 흉기를 휘두른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용남중 3년 정모(14)군은 “밤에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점이 좋다”고 귀띔했다. 육해공군과 영관·부사관이 따로따로 있던 관사촌이 2009년 통합된 뒤 이질감이나 위화감이 사라지면서 주민 화합이 더 견고해진 분위기도 한몫한다. 이곳은 예부터 명당으로 꼽혀 왔다. 1983년 이른바 ‘6·20’ 사업이 있기 전까지 국내 최대 신흥종교촌이었다. ‘정감록’을 믿는 이들은 “신도안이 언젠가 천년왕국의 새 도읍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24년 동학계인 시천교(侍天敎) 3대 교주 김연국이 교인 1000여명을 데리고 이곳에 터를 잡은 뒤 104개 신흥 종교단체가 몰렸다. 동학, 단군신앙, 풍수도참 등 다양했다. 6·25 전쟁 때는 피란처로 유명했다. 철거될 즈음에도 교주와 농민 등 1000여 가구에 5600여명이 살았다. 지금도 계룡시 하면 몰라도 ‘신도안’ 하면 대번에 알아듣는 외지인이 많다. 요즘의 사이비종교 같은 행태는 없었다고 하지만 정권마다 ‘나쁜 사상을 유포시킨다’고 눈을 흘겼다. 계룡대가 조성되자 1989년 3월부터 육군본부부터 이전을 시작했다. 당시 군무원이었던 최선국(67)씨는 “초기에는 편의시설이 없어 대전, 논산까지 가서 장을 봐왔다”면서 “술 먹을 곳도 없어 대전 유성까지 나갔는데 교통사고가 잦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육군은 백발백중 들이받았고, 공군은 차가 붕 날아올라 도로변 논밭에 처박혔다. 군 기질에 따라 사고도 다르게 나더라”며 웃었다. 최씨는 또 “옛날에는 논산이 깡패로 유명했는데 연산면 술집에 가면 어깨를 툭 치면서 ‘어이, 군바리’ 하고 시비를 거는 거야. 숱하게 싸웠지. 계룡대 헌병들이 출동하고…”라면서 “지금은 그때 그 친구들하고 얼마나 친한지 몰라. 도움도 많이 주고”라고 보탰다. 지금은 쇼핑몰이 잘 갖춰져 있고 인근 농민들이 직접 가꾼 농산물을 파는 ‘금요장터’도 열린다. 계룡대쇼핑몰은 시중보다 20~30% 싼 물건이 많아 대전, 논산, 공주 등에서도 찾아온다. 수영장 이용료도 저렴하다. 기이한 것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영업이 중단되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다른 곳과 달리 사재기가 없어서다. 신도안면 이장협의회장 강부자씨는 “가장이 전쟁터에 나갈 판에 나만 살겠다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군인들은 영내에 대기하고, 회식 등은 전면 금지된다. 강씨는 “개성공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석 달 넘게 그런 상황이 계속됐다”면서 “그럴 때는 관사촌도 서로 말조심하는 분위기라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동일 직업촌락이어서 불편한 점도 많다. 부부싸움을 하면 곧바로 관리사무소에 ‘소원수리’가 들어가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는 이들도 있다. 밀집된 아파트에 동료 군인들이 모여 살다 보니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김덕회 군인아파트관리소장은 “동질감 때문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입소문이 쏜살같다”고 말했다. 다양성이 부족한 것도 단점이다. 별의별 직업이 다 섞여 있는 딴 곳과 달리 세상 사는 얘기들이 단순할 수밖에 없다. 외부와의 연결 통로는 열악하다. 대전에서 버스 2편이 들어오지만 대전역까지 1시간 20분 걸린다. 대전으로 나가야 큰 병원이 있다. 집집마다 승용차가 있고, 부인들은 대부분 운전을 할 줄 안다. 문모(38·여)씨는 “대전으로 조조영화를 보려 가려고 아침 8시부터 버스정류장에 나와 있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다”고 전했다. 계룡대가 1주일에 한 번 영내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날, 마을에 버스를 보낼 때도 학생과 주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다. 그곳에는 영화 선택권도, 팝콘도 없지만 문화에 목 마른 그들에게 그런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문씨는 “PC방 등 학생들이 에너지를 발산할 데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어른용 나이트클럽 등이 없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사도 잦다. 2년쯤 살다가 전방 부대 등으로 발령이 난다. 고3 자녀 등 조건이 안 되면 더 머물 수 없다. 매년 가을 인사가 있을 때마다 주민 3분의1 정도가 이동한다. 정군은 “친구와 친해질 때쯤 헤어진다”고 아쉬워했다. 네 번째로 이곳에서 산다는 문씨는 “지금 고교 2학년인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남편이 국방부로 발령 나 서울로 이사를 가려는데 ‘여기에서 그냥 살면 안 되느냐’고 물었을 때가 가장 난처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용남초·중·고 동창회와 주민 친목단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잦은 이동 탓이다. 주민들의 바람도 학교 문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주사대부고, 한일고 등 인근 명문고로 빠져나간다. 강씨는 “(학교 문제로 가족이 서울에 있어) 주말에 계룡역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가 일요일 다시 내려오는 군인이 많다”면서 “관사촌 거주 조건을 완화하고 이곳에 군인자녀 전문 고교를 설립해 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계룡시도 전체 인구 4만 1000여명의 절반이 군인 출신 가정이다. 전역 후 계룡대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봉학 시 문화체육과장은 “고향에 가봐야 친구도 없고, 동료 군인들이 많고, 싼 값에 골프(계룡대·구룡대CC)를 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로 전역 후에도 계룡시를 못 떠난다는 말이 있다”고 웃었다. 그는 “골프는 군인들의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이다. ‘계룡시에는 골프채가 파리채보다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군의 핵심 도시인데도 경찰서, 소방서, 교육청 등 공공기관이 없는 점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계룡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푸른숲, 五感을 깨우다] (5) 진화하는 한국의 ‘산림 치유’Ⅱ

    [푸른숲, 五感을 깨우다] (5) 진화하는 한국의 ‘산림 치유’Ⅱ

    ‘소나무’가 한국을 상징하듯 ‘편백’은 일본과 대만을 대표하는 나무다. 일본은 조림면적의 70%가 편백이고, 대만 편백은 ‘대만의 국보’로까지 평가받는다. 피톤치드 효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편백이 산림치유 수종으로 급부상했다. 피톤치드는 심리적인 안정과 심폐기능 강화, 기관지 천식과 폐결핵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를 소독하는 약리작용도 있다. 국내외 연구를 통해 편백 정유를 포함한 비누·로션 등이 아토피성 피부염의 가려움증 완화와 항균 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편백이 ‘건강 전도사’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 최대 난대 조림지인 전남 ‘장성 치유의 숲(축령산휴양림)’은 전체 조림면적(240㏊)의 64%인 153㏊가 편백인, 한국의 대표적인 편백 숲이다. 지난 2010년 치유의 숲으로 지정됐다. 장성 치유의 숲은 인공 시설을 최소화하고, 숲의 다양한 물리적 환경요소를 이용해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일한 곳이다. 치유의 숲길이 4개(10.2㎞), 숲 가운데를 관통하는 임도(8.5㎞)가 조성돼 있다. 치유 프로그램은 4개 숲길 중 숲내음과 산소 숲길에서 진행된다. 현재 건강·하늘 숲길의 활용 계획을 마련 중이다. 이곳에서는 생애주기별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반인을 위한 대표적인 프로그램(해피락)을 비롯해 청소년 및 아토피 편백숲 학교(드림락), 국내 유일의 암환우 및 만성질환자 대상 프로그램(케어락) 등이 있다. 암 환자들에게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방문이 늘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별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들이 숲속에서 쉴 수 있는 ‘환우쉼터’도 만들었다. 케어락은 환우들의 체력 등을 고려해 4시간이 아닌 100분간 진행한다. 점혈법과 기체조 및 명상(수승화강운동), 산행 30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승화강운동은 ‘불은 내려가고 물은 올라간다’는 의미로 원을 그리듯 음양의 조화를 조율하는 산림 치유법이다. 환우들은 매일 숲을 거닐고 치유법을 반복하며 관리를 한다. 지난 6월부터는 청소년 치유교육을 시범 실시하고 있다. 인근 중학교와 협력해 15명이 매월 한 차례, 3학년(6명)과 1~2학년(9명)으로 나눠 총 6회 진행할 계획이다. 문제가 있거나 의사 치료가 필요한 청소년이 아닌, 말이 없고 내성적·소극적인 학생들로 부모와 교사 상담 및 동의를 얻어 이뤄지는 학교참여 지원 사업이다. 평일 오후 수업시간을 대신하기에 선생님이 동행한다. 아이들은 편백 숲 그늘에서 인사를 나누고 친구를 칭찬하는 마음열기 놀이와 손수건 염색 등을 수행했다. 손수건 염색은 자신이 원하는 나뭇잎이나 풀 등을 수건에 넣은 뒤 고무망치를 두드려 염색하는데, 정성과 노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원하는 색상이나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하경좌 산림치유운영요원은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한다”면서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고학년에서 학습 효과가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최금옥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귀찮아하지 않고 참여하는 것 자체가 변화”라면서 “특수학급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학교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사회공헌 네트워크, 소방공무원 직무스트레스 치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해 방문객 21만명, 치유 프로그램 이용자가 8000명에 달했다. 최근 주말에는 하루 3000여명이 찾는다. 방문객이 늘면서 주변 마을도 활성화됐다. 장기 치유객을 위해 숙식이 가능한 한옥민박이 생겨나고 특산품과 농산물 등을 구입할 수 있는 판매장이 들어서는 변화가 일고 있다. 그러나 지역과 연계성이 떨어지면서 요금이 과하게 비싸고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서부지방산림청 김철 주무관은 “지자체, 마을과 협의해 방문객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며 “방문객 증가에 따른 나무 스트레스를 감안해 권역별 휴식년제와 휴무일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남진’으로 유명한 전남 장흥군 장흥읍 우산리 억불산에 조성된 ‘편백숲 우드랜드’는 지난해 태풍으로 30%가 넘는 편백이 피해를 당해 지금도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억불산 120㏊에 이르는 편백 숲을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해 운영하는 유일한 치유의 숲이다. 풍부한 자연 조건을 활용해 국내 최초로 ‘누드’ 풍욕(風浴)을 계획하고, 편백소금집 등 차별화된 시설 도입을 통해 관광자원화에 성공했다. 우드랜드에서는 사방에 진동하는 편백의 향기로 목욕하는 풍욕을 만끽할 수 있다. 누드 풍욕장인 비비에코토피아(2㏊)는 풍욕을 원시 상태에서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직접 체험하면서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도 했다. 바깥쪽에 대나무를 심어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반대여론이 거세자 현재는 종이옷을 입는 것으로 변경됐다. 에코토피아에는 편백이 울창한 곳에 비치의자를 비롯해 평상과 원두막, 토굴 등을 설치해 다양한 방식으로 풍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바닥에는 편백 톱밥을 깔아 관절환자들이 걷는 데 불편하지 않다. 걷는 것만으로 향 치유가 가능하다. 최대 100명까지 입장 가능하고, 편안한 휴식과 치유를 위해 휴대전화 반입은 제한한다. 풍욕은 피톤치드 발생이 가장 활발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40~120분 정도 진행하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다. 억불산 정상(518m)까지 이어지는 무장애데크인 말레길(3.8㎞)과 벽체까지 소금으로 조성한 편백소금집 등 다양한 체험시설도 마련돼 있다. 지난해 방문객 69만명, 수입 15억원을 기록했다. 지역민은 무료 입장하는데 방문객 90%는 외지인이다. 문재춘 장흥군 환경산림과장은 “치유의 숲이 중요한 관광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숲치유사 채용 및 자체 인증 프로그램 도입 등 프로그램 내실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장성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사람 잡는 ‘다슬기 잡기’… 매년 10여명 물에 빠져 숨져

    사람 잡는 ‘다슬기 잡기’… 매년 10여명 물에 빠져 숨져

    휴가철을 맞아 물놀이를 갔다가 재미 삼아 다슬기를 잡던 중 물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4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해마다 전국에서 10여명이 다슬기를 잡으려다 목숨을 잃고 있다. 올해는 더위가 빨리 찾아오면서 최근 석 달여간 벌써 14명이 사고를 당했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하천의 수심이나 물속 지형, 유속 등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이다. 이들은 수경을 쓰고 물속을 들여다보면서 다슬기를 잡는 데 정신이 팔려 자신도 모르게 점점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곳으로 들어가다 변을 당한다. 하천의 수질이 탁하면 웅덩이가 보이지 않아 더욱 주의해야 한다. 대전에 사는 송모(59)씨는 지난 1일 일행들과 충북 영동군 심천면 기호리 금강 하천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물에 빠져 숨졌다. 이 하천의 가장자리 수심은 1.5m 정도로 얕지만 깊은 곳은 12m에 달한다. 하천의 중심부는 유속도 매우 빠르다. 이를 모르는 송씨는 수경을 쓴 채 물속만 바라보면서 하천의 중심부 쪽으로 들어가다가 변을 당했다. 영동소방서 관계자는 “하천 중심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절벽과 웅덩이가 곳곳에 있어 가장자리에서만 다슬기를 잡아야 한다”면서 “다슬기를 찾기 위해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잡은 다슬기를 담기 위해 허리에 고무 대야나 대형 채집망을 달고 물에 들어가는 것도 위험하다. 물에 빠졌을 때 방해가 된다. 지난달 10일 영동군 양강면 구강리 금강 하천에서 다슬기를 잡다 숨진 신모(51)씨의 경우 시신을 인양해 보니 허리에 대형 고무 대야를 달고 있었다. 튜브를 타고 수심이 깊은 곳에 들어가 다슬기를 채취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지난 6월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천교 인근 하천에서 다슬기를 채취하던 서모(56)씨는 튜브가 뒤집혀 목숨을 잃었다. 옥천소방서 관계자는 “위험한 곳에서 다슬기를 채취하는 사람들을 계도하기 위해 6월부터 순찰을 돌지만 소방관이 다가가면 물속에서 나왔다가 다시 물에 들어가곤 한다”면서 “수심이 얕아 보이더라도 구명조끼를 입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지방시대] 잘나가는 축제, 까닭 있다/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

    [지방시대] 잘나가는 축제, 까닭 있다/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

    지역 축제 가운데 외지인이 일부러 찾아가 즐기는 축제는 얼마나 될까. 이름만 다를 뿐 행사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고, 예산의 대부분이 유명 가수 초청이나 경품잔치 등에 사용되고 행사 내용은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인 축제가 많지 않은가.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획하는 축제는 또 얼마나 되는가. 2008년 네덜란드 나이메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90여년째 열리는 걷기 축제에 참가했다. 4일 동안 적게는 120㎞에서 많게는 200㎞를 걷는 행사인데, 세계에서 5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걷기 축제다. 행사 기간 내내 주민들은 전통 캔디나 오이·과일·샌드위치 등을 들고 나와 걷는 이에게 나눠 주는가 하면, 마을의 작은 밴드들은 길거리 공연으로 응원했다. 나이메헨 걷기 축제는 행사 운영자나 참가자만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민 전체의 축제였다. 제주올레에서도 그런 축제를 꿈꾼다. 길 위에 사는 주민들이 길을 걸으러 온 여행자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 지역이 가진 다양한 자랑거리들을 집약해서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는 축제, 그래서 매년 제주올레 걷기 축제를 즐기기 위해 제주도를, 제주올레를 일부러 찾게 하는 축제를 꿈꾼다. 제주올레 축제는 ‘놀멍 쉬멍’ 걸으며 제주의 자연과 문화, 제주의 음식과 사람들을 만나는 행사다. 아름다운 포구에서는 해녀들의 공연이, 숨겨진 아늑한 숲길에서는 클래식 오케스트라 연주가 펼쳐진다. 길이 지나가는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한 고유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마을 어린이들의 귀여운 오카리나 연주도 만난다. 2010년 제주올레 걷기 축제를 처음 준비할 때만 해도 대다수 마을 주민들의 관심사는 ‘마을에 지원되는 축제 예산이 얼마인가’였다. 물론 예산도 부족하지만, 제주올레는 물고기를 안겨주기보다 물고기 낚는 법을 주민들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돈’ 대신 ‘공연 전문가’를 마을에 보낸다. 마을의 공연 동아리들을 세련되게 탈바꿈시키고, 요리 전문가를 보내 도보여행자들이 기꺼이 사먹고 싶어하는 그 마을만의 독특한 메뉴를 개발해 판매하게 한다. 축제 때 개발한 음식을 1년 내내 올레길에서 판매해 마을이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싶다. ‘공연비나 재료비도 안 주면서 무슨 축제를 하느냐’며 투덜거리던 주민들의 반응도 축제가 끝나면 달라진다. “우리 마을에서 수없이 많은 축제를 했지만, 이런 축제는 처음이다. 이렇게 많은 외지인들이 우리가 하는 공연, 우리가 만든 음식을 사먹기 위해 우리 마을을 일부러 찾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평가한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제주관광학회에서 지난해 발표한 제주올레걷기축제 참가자 만족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축제 참가자의 85%가 제주올레 걷기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도를 일부러 찾는다. 외국인 축제 참가자도 마찬가지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중국 올레꾼들은 연초부터 축제 일정을 미리 알려달라고 조를 정도다. 올해도 10월 31일~11월 2일 제주올레 14, 15, 16코스에서 3일간 2013 제주올레 걷기 축제가 열린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지만, 제주올레 홈페이지(www.jejuolle.org)를 통해 사전 참가 신청을 하면 축제 프로그램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 “정선으로 나를 넘겨 주게”

    “정선으로 나를 넘겨 주게”

    정선에 갔더니 아리랑이 들렸고, 아리랑을 들으니 정선이 보였다. 죽은 것도 살려내는 영험한 고장이 바로 정선이다. 오일장도 아라리촌도 아리랑 삼매경 애국가를 부르듯 아리랑 한 소절쯤이야 조건 반사적으로 부를 수 있다. 아리랑 부르기는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증표다. 그러나 강원도 정선에선 쉽게 ‘아리랑을 안다’고 선뜻 말할 수 없었다.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아리랑의 정체를 정선 땅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이라 함은 정선아리랑과 함께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말한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아리랑과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으로 잘 알려진 진도아리랑은 듣기만 해도 엉덩이가 들썩이고 어깨가 저절로 덩실덩실거린다. 그러나 정선아리랑은 두 아리랑과 사뭇 다르다. 가락이 느릿느릿하고 구슬픈지라 새하얀 손수건을 손에 쥐고 눈물을 훔치면서 불러야 할 것만 같다. 정선아리랑을 떠올리자 후렴구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만 입가에 뱅뱅 맴돌았다. 실제 정선아리랑의 가사는 8,000수를 훌쩍 넘는단다. 심지어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아리랑 가사를 정리한 ‘정선아리랑 사전’을 발간하고자 계획 중이다. 아리랑을 사랑하는 강원도민의 마음이 정선 곳곳에서 느껴졌다. 정선에서 나고 자란 싱싱한 농산물이 난장을 펼치는 정선오일장에선 인형극 ‘정선아리랑’이 매주 토요일마다 장터 공연장에서 열린다. 심지어 화장실 한쪽 벽면에도 노래 가사가 고급스럽게 새겨져 있다. ‘산천에 올라서 임 생각을 하니 풀잎의 마디마디에 찬 이슬이 맺히네’, ‘이밥쌀밥에 고기반찬 맛을 몰라 못 먹나 사절치기 강냉이밥도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오일장엔 마음 편한 음식이 넘쳐난다. ‘오일장’인 만큼 2일과 5일에 맞춰 방문하는 게 정석이다. 토요일에는 주말장이 서는데, 주말장은 오일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공연도 풍성하다. 정선오일장은 ‘100% 메이드 인 정선’을 내세웠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세상인지라 정선은 외지인을 안심시키는 안전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두고 있었다. ‘청정지역 고랭지 정선에서 재배한 것임을 확인합니다’라는 산나물 등록증이 현수막으로 걸려 있고 “도시에선 이런 거 못 사드레” 하며 외치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쩌렁쩌렁하다. 봄에는 곤드레, 달래, 냉이, 곰취, 두릅 등이 정신없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시장의 몸값은 최고점을 찍는다. 여름엔 바싹 말린 산나물과 백숙에 넣어 먹으면 좋은 황기 등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눈으로만 보던 정선아리랑을 귀로 들은 건 정선오일장에서 멀지 않은 아라리촌에서였다. 일종의 전통 민속촌인 이곳에선 정선아리랑이 쉴 틈 없이 흘러 나왔다. 게다가 노래가 흘러나오는 진원지는 다름 아닌 자그마한 돌덩이 스피커. 약자의 진통제인 아리랑은 의지할 데 없는 민중의 마음을 구성진 가락으로 다독였다. 풍자미가 돋보이는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도 아리랑과 잘 어울렸다. 아라리촌은 양반전의 줄거리를 한눈에 쉽게 알 수 있도록 동상을 세우고 그 앞에 팻말을 꽂아두고 있었다. 가난한 양반이 ‘신분’을 파는 모습,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산 상민이 억지 양반 행세를 하는 모습 등이 차례로 나열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두 손을 번쩍 들고 “양반이 싫소” 하며 줄행랑을 치는 상민 동상이 가장 인기다. 아라리촌의 백미는 ‘집 구경’이다. 돌집, 저릅집, 귀틀집, 굴피집 등 전통 가옥이 한데 모여 거대한 전시장을 이뤘다. 어떤 집이든 간에 척박한 땅을 맨손으로 일궈 살았던 산간 지방 사람들의 지혜가 묻어났다. 떼돈 벌던 시절은 간데없고 레일바이크만 굴러가네 선조들이 ‘아리랑’을 가장 많이 불렸던 시기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 섭정기로 짐작된다. 경복궁을 재건할 당시, 강제로 동원된 인부들과 그의 가족들은 서러운 마음을 달래고자 노래를 불렀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그들의 애환은 아리랑 문화를 꽃피우는 자양분이 됐다. 정선아리랑이 한양으로 전파된 시기도 경복궁이 재건될 무렵이었다. 그 단서를 아우라지에서 포착했다. 정선아리랑 전수관이 자리한 ‘아우라지’에 서면 이곳에서 뗏목을 저어 목재를 운반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떼돈 번다’는 말의 어원도 바로 강원도 뗏목꾼에게서 유래했다. 배를 끌고 정선에서 한양까지 나무를 운반하면 두둑하게 돈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우라지에는 뗏목으로 ‘떼돈’을 벌던 이는 온데간데없고 뗏목이 아닌 레일바이크를 타고 아우라지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여행자만이 가득하다. 레일바이크의 출발점은 강의 상류인 구절리역. 역 입구에는 ‘여치의 꿈’으로 불리는 여치 암수 한 쌍이 서 있다. 여치의 정체는 돈가스, 스파게티 등을 파는 레스토랑이다. 여기서부터 약 50분 동안 페달을 굴려야 아우라지역까지 갈 수 있다. 두 역 사이의 거리를 계산해 보면 무려 7.2km. 당연히 여기저기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인승은 두 사람 모두 운전해야 하지만, 4인승은 다행히 뒤에 앉은 두 사람만이 운전자다. 4인승 레일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은 서로 앞자리에 앉으려 옥신각신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러나 막상 타 보면 알게 된다. 선로의 경사가 아래로 기울어 있어 정작 페달을 굴리는 구간은 길지 않다. 발에 약간만 힘을 줬을 뿐인데, 육중해 보이던 바이크가 앞으로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스르륵 움직일 때마다 오감이 하나둘 살아났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매만졌고, 컴컴한 동굴을 통과할 때면 서늘한 바람이 두 볼을 훑고 지나갔다. 아름다운 영상이 펼쳐지는 무성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마음도 잔잔해졌다. 레일바이크가 아니었다면 철로는 그저 애물단지로 구박받았을 것이다. 모 건축가가, 좋아하는 여행지로 ‘폐광’을 꼽았는데 이유가 참 재밌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특정 기능에서 해방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거다. 그의 말이 떠오르자 더 이상 석탄을 나르지 않는 철로가 새삼 예뻐 보였다. 죽은 기찻길을 레일바이크가 살렸다면 북평면 북평 5리는 항아리와 돌탑이 살렸다. 1990년대 나전광업소가 수명을 다하면서 마을이 쇠락하자 주민들은 돌탑을 쌓아 마을의 번영을 기원했다. 그들의 바람이 닿은 것인지 죽었던 마을은 항골계곡 유원지로 되살아났다. 광업소가 있던 자리는 한국폴리텍대학 정선 캠퍼스가 차지했다. 캠퍼스를 지나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항아리와 돌탑이 나란히 줄을 서 관람객을 굽어본다. 계곡이 줄기차게 흐르는 위로 야외 캠핑장이 설치돼 있다. 화장실과 음수대도 들어서 있어 여름 피서지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한때 이곳은 백석봉과 상원산에서 흘러드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워 ‘한골계곡’으로 불렸다. 계곡 주변을 가득 메운 항아리의 행렬을 보면 왜 한寒이 항缸으로 변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정선 여행이 끝난 뒤에서야 10년 넘게 쓸쓸하게 버려져 있던 폐광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적을 몸소 행한 장본인은 문화예술공간 ‘삼탄아트마인’. 올해 5월 전면 개방한 이 공장에선 광부들이 사용하던 샤워실도 작업복을 빨던 세탁기도 전시 작품이다. 삼탄아트마인이 자꾸만 눈에 밟혀 또다시 정선 여행을 계획 중이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www.koreatravel.or.kr ▶travie info 정선오일장┃주소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정선로 1359 아라리촌┃주소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애산로 37 입장료 무료 문의 033-560-2059 아우라지┃주소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길 69 정선 레일바이크┃주소 정선군 여량면 노추산로 745 이용료 2인승 2만5,000원, 4인승 3만5,000원 홈페이지 www.railbike.co.kr 항골계곡┃주소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북평리 444 문의 1544-9053 삼탄아트마인┃주소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함백산로 1445-44 문의 033-591-3001 samtanartmine.com
  • 강화군 ‘인구 늘리기’ 공무원들은 뒷짐

    인천 강화군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각종 묘안을 짜는 데 골몰하고 있으나 정작 소속 공무원 가운데 30%가량이 인천시내, 경기 김포시 등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나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강화군에 따르면 ‘사람이 경제’라는 기치 아래 인구 증가를 위해 귀농 권유, 전입세대 지원, 출산장려금 지급, 기업 유치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군 전체 공무원 656명 중 30%(200여명)가 자녀교육, 생활편의 등을 이유로 외지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특히 인천시에서 강화군으로 발령받은 직원은 인천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본청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한 시간 반이면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이 이들의 역내 거주를 강제할 수 없어 공무원들의 타지역 거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강화군의 인구는 2011년 6만 6779명, 2012년 6만 6752명, 올해 6월 말 현재 6만 6463명으로 답보 상태에 있다. 2008년 6만 7387명에 비하면 오히려 조금 줄어들었다. 이러한 인구 정체현상과 주민 노령화로 경제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군의 지방세, 세외수입은 지난해 526억 7900만원이며 이 가운데 공무원 인건비가 435억 6800만원으로 80%를 차지하고 있다.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공무원 월급이 지출되는 점을 고려하면 월급은 강화군에서 받고 소비는 타지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강화군은 직원들의 역내 거주를 독려하고 외지인구 유입을 위해 전입세대 지원, 출산장려금, 유치원 신설, 신규 채용 시 군 거주자 가산점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재정여건 등 한계가 많아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는 실정이다. 강화군 재정자립도는 12.9%로 전국 244개 시·군·구 가운데 201위다. 급기야 군은 고육지책으로 ‘출산장려 및 전입지원에 관한 조례’를 고쳐 지난달부터 모든 출생아에게 출산용품 지원비 30만원, 출생장려금 및 양육비로 첫째아 120만원, 둘째아 340만원, 셋째아 840만원, 넷째아 이상은 102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군은 또 강화일반산업단지 등이 정착되면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교육, 의료, 생활편의시설 등이 동반되지 않으면 인구 증가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강화군 관계자는 “타 지역에 거주하는 직원 상당수는 자녀교육, 배우자 직장 문제 등으로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인구 증가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적 대책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왜 차별하냐” 中농민공들 파출소 습격·시위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외지 농민공과 현지 주민 간 갈등으로 농민공들이 현지 파출소를 습격하는 등 군중 시위 사건이 발생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8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지난 7일 광둥성 마오밍(茂名)시 정부청사 앞으로 허난(河南)성 출신 농민공 100여명이 화물차 30대를 몰고 와 건물 입구를 봉쇄한 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현지인과 외지인을 차별한 경찰의 사건 처리 태도에 불만을 터뜨리며 지난 6일 체포된 같은 고향 출신의 동료 노동자 2인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작은 다툼에서 비롯됐다. 지난 6일 마오밍시 인근에서 허난 농민공이 운전하던 경운기에 현지 주민이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치료비 문제를 둘러싼 언쟁이 현지 주민들과 노동자 간의 집단 패싸움으로 번졌다. 당시 인근 샹산(祥山) 파출소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이 일대 허난성 출신 농민공 40여명이 떼지어 샹산 파출소를 습격했다. 이들은 쇠몽둥이로 파출소 내 각종 집기를 때려 부수고 경찰 2명을 납치했다. 명보는 경찰들이 분쟁을 조정하면서 현지인들이 농민공의 경운기 4대를 파손한 것을 방치하는 등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해 시위를 촉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민공들의 시위는 인근 마오밍 경찰서가 인력을 투입하면서 제압됐고 이 과정에서 사건을 주도했던 농민공 2인이 체포됐다. 7일 시위는 당시 체포된 농민공들에 대한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내 개발 지역에는 돈벌이를 하러 온 외지인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 이따끔씩 군중 시위가 일어나는 등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포토 다큐 줌인] 섬마을 주민 건강지킴이 병원선 ‘인천 531호’

    [포토 다큐 줌인] 섬마을 주민 건강지킴이 병원선 ‘인천 531호’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변한 진료소 한 곳 없는 섬 마을 주민들이다. 특히 고령자들이 많다 보니 아픈 몸을 이끌고 뱃길로만 3시간 이상 걸리는 병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병을 참다가 더 큰 병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매주 힘찬 항해를 하는 배가 있다. 바로 ‘병원선’이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서해 앞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3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 지도(池島). 거친 파도를 헤치고 주민 29명의 섬을 찾아온 병원선 ‘인천 531호’의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소리가 요란하다. 접안 시설이 없어 병원선은 섬에서 100여m 떨어진 바다에 정박했다. 병원선이 내린 0.5t 종선이 배와 섬을 천천히 오가며 섬사람들을 열심히 실어 나른다. 조용했던 병원선은 진료를 받기 위해 모여든 주민들로 북새통이다. 저마다 먼저 진료를 받기 위해 한바탕 순서 쟁탈전이 벌어졌다. 김용숙(81) 할머니는 “뭍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꼬박 이틀 동안 생업을 포기해야 해요.” 섬사람들에겐 병원선이 아니고선 진료를 받기 어려운 까닭이다. 인천시는 병·의원이나 보건소가 없는 섬 주민들을 위해 병원선을 운영하고 있다. 공중보건의 3명, 간호사 3명, 의료기사 1명, 선박지원 8명과 취사원 1명 등 15~16명이 근무 중이다. 선상진료 과목은 내과·치과·한방과 등 3개 과다. 가장 인기 높은 진료과목은 한방과다. 고기잡이로 온몸 어디 한 군데 쑤시지 않는 곳이 없는 주민들에게 한방은 만병통치약이다. 허리가 불편한 김영덕(73) 할아버지는 “마땅히 치료할 곳도 없는 섬에 병원선이 오면 침도 맞고, 약도 탈 수 있어 한결 몸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채승석(27) 한방과 진료의는 “환자가 많아 힘들긴 하지만 의료진을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튿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강풍이 잦아들어 주민 113명이 사는 문갑도(文甲島)로 출항을 했다. 전날과는 반대로 의료진이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에 올랐다. 주민들이 모두 병원선에 오를 수 없어 마을 경로회관에서 진료를 하고, 정밀검사가 필요한 사람들만 병원선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병원선이 온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경로회관이 떠들썩하다. 주민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속속 모여들었다. 같은 시간, 치과 의사는 문갑도의 분교를 찾아 학생들의 치아 상태를 점검했다. 병원선은 의료진들의 근무지 중에서도 가장 힘든 도서벽지로 분류된다. 때문에 자원자를 모집한다. 주요 임무는 배를 제외하고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 섬을 돌며 지역민을 치료하는 것. ‘병원선 사람’들은 1년 중 150일 이상을 배에서 보낸다. 의료업무가 이들의 주 업무이지만 외지인을 접하기 어려운 섬사람들에게 바깥 소식을 전해주며 말벗이 되어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황정진 선장은 “육지와 왕래가 별로 없는 낙도 주민들은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탄다”며 “이들과의 대화도 중요한 진료”라고 말했다. 최근 진주의료원 폐업 사건으로 공공의료기관의 적자 문제가 전국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셀 수 없이 많다. 현재 전국적으로 병원선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4곳에 불과하다. 병원선도 5척밖에 안 돼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낙도 주민들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황정진 선장은 “경제성보다 중요한 것은 낙도 주민의 건강과 복지”라며 “공공의료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병원선 사람들은 배가 집이고, 섬사람들이 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처럼 병원선 인천 531호의 항해로 좀 더 많은 이들이 건강과 웃음을 찾게 되길 기대한다. 글 사진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생각나눔] 지자체 자연휴양림 이용 주민 우선권 논란

    [생각나눔] 지자체 자연휴양림 이용 주민 우선권 논란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이 정작 지역 주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자연휴양림 이용 예약이 전국에서 인터넷으로 동시에 이뤄지면서 지역민들의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1일 산림청 등에 따르면 현재 지자체가 조성해 운영 중인 자연휴양림은 모두 96곳(국유 및 민간 자연휴양림 56곳 제외)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18곳으로 가장 많다. 충북 15곳, 강원·전남·충남 각 11곳, 경남 10곳, 전북 7곳 등이다. 그러나 전액 지자체 예산으로 조성·운영 중인 휴양림이 외지인 위주로 운영되면서 지역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용 예약이 인터넷 추첨으로 이뤄지면서 지역민들의 예약 실적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경북지역 지자체 관계자들은 “해마다 이용객들이 크게 몰리는 여름 성수기에 주민들의 이용 실적이 10%에도 못 미쳐 민원이 많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은 휴양림 숙박시설 이용의 20~30%를 지역민에게 우선 배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이런 가운데 충남 아산시는 지난달부터 전국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자연휴양림 숙박시설에 대해 시민 우선 예약제를 도입, 시행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오전 8시 30분부터 9시까지 30분 동안은 시민들이 우선 예약할 수 있도록 하고, 9시 이후부터는 타 지역민과 동시에 예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조정한 것이다. 시는 지난달 이 제도를 운영한 결과 주민 이용 실적이 종전 10%에서 40%로 크게 향상됐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지역에 휴양림을 두고도 예약이 어려워 아예 이용을 못하거나 다른 지역의 휴양림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면서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지역의 장애인 및 노인 등 노약자들이 휴양림을 우선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북도 일부 지자체 관계자는 “주민 배려 차원에서 휴양림 이용 우선권을 부여하려고 해도 다른 지역 주민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을 우려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산림청은 내년부터 노인 등 정보 소외계층에게 국유림의 자연휴양림에 대한 이용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