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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어촌 청소년지원재단 9월 성립/문화진흥 5개년계획 주요 내용

    ◎지방문예기금 1천억원으로 대폭 확대/연극전용 「정동극장」 내년까지 완공 추진 문화체육부가 23일 발표한 「새문화·체육·청소년진흥 5개년 계획」은 김영삼대통령 정부의 문화·예술및 체육·청소년 정책을 집약한 것이다. 문화체육부는 이번에 발표된 내용이 지난 90년의 「문화발전 10개년 계획」과 91년의 「청소년기본계획」,지난해의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중의 「문화및 체육청소년 부문」을 시대변화에 맞게 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계획연한을 현정부의 임기에 맞춰 5년으로 잡은 이유는 실현가능한 사업만을 국민에게 제시하겠다는 의지 때문이며 그만큼 책임있게 추진할 사업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문화체육부는 특히 문화부문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등 재야 문화·예술단체의 의견을 수용하는등 문화·예술계의 여론을 폭넓게 수렴했다고 밝혔다. 주요사업은 다음과 같다. ▷민족정기의 확립◁ ▲경복궁 복원연도를 당초의 99년에서 97년으로 앞당긴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전계획을 올해안에 마무리하고 95년까지 부지선정과 설계를 마친다.총독부청사는 박물관 이전후에 철거한다 ▲전통음악의 표준음·음정을 연구하고 악기연구소를 운영해 전통음악을 표준화한다.국악교육 자료를 제작,보급하고 「국악사랑」국민운동을 펼친다▲「동학혁명 1백주년 기념관」건립을 비롯,관련 문화축전을 지원한다▲아산 현충사 안에 「임란전사 박물관」을 세운다▲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무형문화재 종합전수시설」을 짓는다. ▷지역문화 활성화◁ ▲국립박물관을 1개 시·도에 1관이상 짓는다▲지방문예기금을 현재 5백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늘린다. 문화환경개선 ▲한국문화정책연구원을 설립한다 ▲연극 전용극장인 정동극장을 내년까지 완공한다 ▲문예진흥기금을 97년까지 3천억원 조성한다. ▷문화산업개발◁ ▲가칭 「종합영상산업진흥법」을 제정,영상산업을 중점 육성한다 ▲다목적 전자서적을 개발하고 전자서점을 설치한다 ▲전통놀이·우리 역사의 위인등을 소재로 한 컴퓨터게임 개발을 지원한다 ▲문화예술 정보자료를 생활정보망과 연계해 「안방자료관」을 실현한다 ▲한글 주요 서체및 컴퓨터 글꼴(폰트)을 개발한다. ▷남북문화교류 활성화◁ ▲광복50주년을 맞는 95년 광복절에 남북공동 민속잔치를 연다 ▲통일국어대사전 발간을 97년으로 앞당긴다 ▲한국문학 번역상을 연내 제정한다 ▲서울야외조형예술제·제주국제영화제를 격년제로 연다. ▷체육부문◁ ▲농어민 문화체육센터를 5년간 13곳 짓는다 ▲농구·배구 가운데 한 종목을 프로화하는 등 프로경기를 활성화한다 ▲학교운동부 육성기금을 97년까지 2백40억원 조성한다 ▲소년체전 출전경비를 전액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지원하는등 소년체전을 활성화한다 ▲체육연금제도를 개선해 일정한 나이가 돼야 연금을 받게 하며 연금지급 상한액을 예외없이 적용한다 ▲2002년 월드컵,2006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선다 ▲통일축구대회를 여는등 남북체육교류를 적극 추진한다 ▲세계 한민족축전행사를 청소년 위주로 바꾼다. ▷청소년부문◁ ▲기금 1백억원으로 농어촌 청소년지원재단을 설립한다 ▲농어촌 출신 학생을 위한 도시내 학사를 짓는다▲유스호스텔을 33개로 늘리고 체인화해 건전한 가족숙소로 활용한다 ▲세계청소년회의(WAY)총회를 96년 9월 서울에 유치한다 ▲학생들을 1개이상의 단체에 가입토록 권유한다 ▲학교 특별활동반과 지역예술단체간에 자매결연을 하도록 한다 ▲「남북청소년 어울놀이」행사를 방학중 1주일 열도록 북측에 제의한다.
  • 오늘부터 시·군청서도 여권 발급

    ◎각종민원서류 7백95종 날인제 폐지/7월부터 달라지는 것들/인접 시군지역 전화 시내요금 적용/국세 자동납부제 서울전지역 확대 1일부터 무역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고 해외여행자가 세금을 내지않고 들여 올수 있는 술이 종전 2병에서 1병으로,담배는 20갑에서 10갑으로 줄어든다.올 하반기부터 달라지는 주요내용을 요약한다. ▷무역·유통·외국인투자◁ 무역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다.매년 실시하던 무역업 효력확인제가 없어지고 대신 2년에 한번씩 등록경신을 받는다.무역업 등록기관을 시·도지사에서 한국무역협회로 넘기고 갑류 무역업체(제한없이 수출입할 수 있는 업체)의 등록요건을 자본금 또는 출자총액 5천만원 이상에서 1천만원 이상으로 내린다.등록신청 서류를 8종에서 5종으로 줄이고 을류무역업(자기물품 제조를 위한 수출입업)의 범위에 농업과 임업을 포함한다. 2만달러 이하의 수출승인을 면제하고 전략물자를 수출하고자 하는 경우 관계행정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3단계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자유업종인 소매업과제한업종인 상품연쇄화 사업에 대한 점포당 매장면적과 점포수가 종전 점포당 1천㎡,점포수 10개 이내에서 각각 3천㎡,20개 이내로 늘어난다. ▷금융·세제분야◁ 퇴직때 처분하게 되어 있는 우리사주를 퇴직은 물론 우리사주 취득후 7년이 지나면 처분할 수 있도록 완화된다.결혼·주택구입등 부득이한 경우 우리사주 취득후 3년이 지나야 처분할 수 있도록 되어있던 예외조항의 처분시기도 2년으로 완화된다.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자와 사업소득·부동산소득에 대한 세금을 중간에 내는 납세자가 이용할 수 있는 국세자동납부제가 서울의 중부·반포세무서에서 서울의 전지역으로 확대된다.기업이 국산기계설비에 투자한 금액의 7%(중소기업 10%) 상당액을 법인세 또는 소득세에서 공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의 적용시한이 연말까지로 6개월 연장된다. ▷제합건설·부동산부문◁ 국민주택 특별공급 대상자를 종전에는 주택사업으로 철거되는 주택소유자와 90㎡ 이상의 토지양도자에 한했으나 토지양도자를 제외하는 대신 제하 군대위안부를 추가하고 철거되는 주택소유자는 사업의 보상공고 때까지 해당 지역에 거주한 경우로 제한한다.주택건설업에 대한 등록시기가 종전에는 건설부장관이 연 1회 지정하는 시기에 한했으나 등록하고자 하는 사람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할 수 있게되며 등록절차도 시장·군수가 확인처리하던 것을 협회가 대행하도록 간소화한다. ▷생활관련◁ 현행 3분 기준 1백원이 적용되고 있는 인접 시군지역 및 30㎞이내 통화권 지역에 대해 3분당 30원의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해진다.예를들어 서울의 인접 지역인 인천(부천)­안양(평촌·산본)­성남(분당)­의정부­김포­고양­구리­광주(하남)등 8개지역 및 안산은 서울과 통화시 3분당 1백원하던 통화료가 시내요금인 30원으로 대폭 내린다. ▷내무행정◁ 각종 민원서류에 주민등록등·초본 첨부제도가 폐지된다.또 건축물관리대장·토지대장·지적도·도시계획도등도 민원 첨부서류에서 제외된다. 지방행정관련 도장날인 서식 8백51종가운데 신분변동및 재산권행사와 관련된 56종을 제외한 7백95종의 민원서식은 도장 날인대신 손도장이나 서명날인으로 가능하게 된다.자연재해로 입은 피해가 신속히 복구될 수 있도록 피해주택 복구비 지급기일이 종전의 80∼1백10일에서 15∼30일내로 크게 단축된다. 면세휴대입국 담배의 양이 종전 20갑에서 10갑으로 줄어들고 파이프담배는 종전의 1백g에서 2백50g까지 허용된다.주유소 상호간및 가연성가스시설과의 거리기준이 철폐돼 주유소 개설이 완전 자유화되고 주유소·유류 판매소등의 방화관리자 채용의무규정도 폐지된다. ▷외무부◁ 지방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시·군청에서도 여권발급신청서류를 접수한다.이에따라 접수된 신청서류는 관할도청으로 보내져 여권이 발급되고 발급된 여권은 다시 시·군청으로 이송돼 신청인에게 직접 교부되거나 등기우편으로 전달된다.
  • 한국,96년께 OECD 가입/올 하반기 옵저버자격 획득 추진

    다니구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사무차장은 멕시코의 경우 OECD가입은 오는 9월부터 교섭을 시작하여 94년에 이루어질 것이며 한국은 그 다음으로 오는 96년경 26번째의 가입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5일부터 3일간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다티구치사무차장은 17일 강봉균경제기획원 대외조정실장을 예방,한국의 OECD 가입 전망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에대해 강실장은 올 하반기에 OECD의 국제투자및 다국적기업위원회에 옵저버자격으로 가입을 추진하는등 OECD 회원국이 되기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국왕·망명객… 역정/「캄보디아의 국부」 추앙 시아누크(뉴스인물)

    캄보디아 과도연립정부의 총리를 맡겠다고 발표한지 하룻만에 수락의사를 번복한 노로돔 시아누크공(70)은 20여년간에 걸친 망명생활을 거치면서도 좌·우파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군림해온 카리스마적 지도자. 국왕에서 국가주석으로,죄수에서 게릴라지도자로 변신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역정은 바로 캄보디아 현대사 바로 그 자체라 할 수 있다.그는 지난 75년 크메르 루주가 집권했을 때 명목상 지도자로 옹립돼 이용당한후 처형될뻔 했으나 당시 중국 총리인 주은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이렇게 살아남은 시아누크는 「신격화된 군주」로 범국민적 추대를 받아 지난 91년 내전종식의 기초가 됐던 파리평화협정 체결뒤에도 캄보디아 민족회의(SNC)의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지난 41년 프랑스식민지 시절 외조부 모니본국왕이 서거하면서 식민지배를 계속하려는 프랑스의 의도대로 아버지를 제치고 왕위에 올라 49년 독립을 선언,국왕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55년 아버지인 스라말릭드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선거를 통해 총리가 된후 60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국가주석으로 다시 복귀했다. 70년 론놀장군의 쿠데타와 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폴 포트정권이 무너지면서 북경과 평양을 오가며 망명생활을 해온 그는 망명기간동안에도 좌·우파를 지휘하며 캄보디아 내전을 「원격조정」해왔다.
  • “군용도 금지된 가스로 다윗파 진압”

    ◎“인화성 없으나 기폭제 가능성” 비난 고조 미연방수사국(FBI)이 지난 19일 사이비 종교집단 다윗파 진압작전 당시 사용한 최루가스가 군사목적으로도 사용이 금지된 화학가스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벤자민 가렛 미생화학무기통제연구소장은 22일자 워싱턴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이 가스는 이라크군인들에 대한 군사적 사용마저 금지된 것』이라며 CS가스가 어린이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줬을 것이라고 비난했다.한 CS분말 제조업자는 이 가스가 인화성은 없으나 건물안에 고르게 퍼질 경우 기폭제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지 스테파노풀로스 백악관대변인은 이날 CS(클로로벤잘말로노미트릴)라는 이름의 이 가스가 지난 1월 파리 화학무기회의에서 금지된 품목임을 확인하면서 『화학무기협정에 법집행을 위한 특별한 예외조항이 있기때문에 미사법당국이 법집행을 위해 이 가스를 사용한데 따른 법률적인 하자는 전혀 없다』고 밝히고 『이 가스는 인화성이 없고 부상을 입히지 않으며 어린이가 견뎌낼 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FBI는 가스투입을 위해 건물벽을 뚫기 전 사교도들이 3곳에서 방화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며 방화에 의한 집단자살을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생존자들은 FBI 장갑차가 건물벽을 뚫으면서 프로판가스 탱크를 들이받아 불이 붙는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조림의 필요성/박태식 서울대 명예교수 산림경영학(굄돌)

    금년도 48회의 식목일을 맞으면서 올해의 국내 조림예정면적을 살펴보니 3만여 정보에 약 8천만주의 나무를 심는 것으로 돼 있다.이 수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매년 심던 조림면적으로 볼때 적은 수치이다.우리나라에서 나무를 많이 심던 1970년대에는 매년 10만정보가 넘는 면적에 3억주 이상의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나무를 많이 심는 나라로 꼽혔다.과거의 나무 심는 일은 산주가 이익을 내려고 한것이 아니라 헐벗은 산림을 녹화하여 국토를 보전하려는 정부와 국민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꾸준히 노력한 결과 1960년대 정보당 평균 축적이 10㎥정도이던 것이 이제 40㎥정도로 증가되어 한일합방이 되었던 1910년대의 축적을 유지케 되었다. 세계 선진임업국의 평균 축적(독일 2백96㎥,일본 1백13㎥)에 비하면 보잘것 없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국토는 녹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과거에는 나무의 질은 생각지 않고 구하기 쉽고 잘 사는 나무위주로 심었던 관계로 용도에 적합하지 않은 나무가 많았다.그러므로 앞으로할 일은 어느정도 자란 나무를 질이 좋은 나무로 바꾸어 심는 일과 이미 심은 어린 나무를 솎아 주어서 잘 키우는 일이다.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국민이 협력해서 나무를 심었으나 이제와서는 그러한 애국심이나 애향심에 호소하여 나무를 심고 산을 가꾸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이제 조림은 이익을 전제로 한 경제원칙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부터 목재 수입을 자유화하고 국내 목재생산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간 목재수요의 90%가 수입되고 있어 국산 임목값은 10년전이나 다름이 없다.10여년전에는 산에서 나무를 1㎥ 매각하면 인부를 7∼8명 쓸수 있었으나 현재는 인부 한명을 쓰기 어렵게 되었다.농산물 수입을 1997년까지 완전 자유화할때 초래될 결과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고 있으나 임업은 이미 10여년전에 자유화된 목재수입으로 현재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그래서인지 국내조림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므로 올해부터 해외조림을 시작하는 기업이 많이 나오고 있다.자본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지만 나무심는 일의 이익은 물질적 이익만이 아니고 수원함양,자연보존,환경보호등의 공공적 이익이 있으므로 공공적 이익에 해당하는 일부를 기업에 보조하여 국내 조림의 진작을 도모하는 것이 요망된다.
  • 새정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7)

    ◎길림시절:6/「조선인 길림소년회」 조직설/민족주의자들이 28년경 만든 단체/“27년 결성주도”… 대조직가로 행세 김일성은 좌익문헌을 읽은 것이 자기 「혁명활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봉건군벌 장작상이 지배하는 중국의 오지 길림에서 그것도 1927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김일성은 전기에서 억지로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독서조 지도 억지 그는 한달에 열람료를 10전씩 내어 오마항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갔고 또 육문중학교에서 두번이나 도서주임으로 되었다고 주장한다.나중에는 몸소 비밀독서조를 조직하고 독립운동가가 경영하는 정미소의 방 한칸을 독서실로 만들어 거기서 좌익서적을 탐독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그가 도서주임이 되었다 하더라도 부유층의 자제가 가는 육문중학교가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구입할 리가 없고 봉건군벌이 경영하는 우마항의 도서관도 그런 책이 있을 턱이 없었다.또 비밀독서조란 것도 29년에 상월선생이 한 독서모임을 자기가 조직한 것처럼 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회고록은 이와같이 별로 좌익서적에 접하지도 읽지도 않았던 그를 대독서가로 만들어 놓았다.그 다음에는 그를 대조직가로 변신시키는 차례인데 그 첫번째가 길림소년회 결성이다. 「우리가 길림에서 처음으로 내 온 조직은 조선인길림소년회였다.그 때 길림에는 민족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소년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름뿐이고 길림시내의 소년들은 그런 조직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우리는 1927년 4월에 손정도네 예배당에서 조선인길림소년회라는 합법적조직을 무었다. 나는 김원우·박일파와 함께 이 모임을 지도하였다.모임에서는 조직부와 선전부·문화체육부와 같은 소년회의 부서들을 내오고 학교와 지역별로 되는 반도 조직하였다」 여기서는 길림소년회의 조직자가 「우리」로 되어 있고 김원우·박일파의 이름도 보이지만 여태까지의 전기들은 한결같이 김일성 혼자가 길림소년회를 결성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점조작 들통 조선인길림소년회는 여러가지 증거로 보면 27년이 아니라 28∼29년에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최형우는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에서 김일성이 길림에서 「소년운동 지도자의 일인으로 일년유여의 시일」심혈을 짜냈다고 쓰고 있다.따라서 김일성은 28년부터 29년 5월에 퇴학할때까지 1년 남짓 소년회에 있었던 것으로 된다.또 이명영교수는 1917년생인 최진무씨가 13세가량이었을 때 길림소년회 회원이었다는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이 증언에 의하면 29년경 김일성은 길림소년회 회장이었다. 그런데 회고록은 이 기림소년회 이외에 길림에는 민족주의자가 만든 이름뿐인 소년회가 따로 있었다고 하고 있다.김일성이 참가한 소년회는 민족주의 조직이 아니라는 주장인데 이것은 사실을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1930년 당시 길림에는 두가지 소년단체가 있었다.그 하나는 길성소년탐험대로서 공산당의 종파인 ML파의 표현단체 주중한인청년동맹 계열이었다.대장은 김일영,제1반장은 허성,제2반장은 진규삼이었으며 정미소 복흥태를 거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고록의 상기 인용문에 나오는 「독립운동가가 경영하는 정미소」란 김일성이 있었던 길림소년회가 아니라 이 길성소년회가 거점으로 한 복흥태를 말한다.그는 자기와 그 입장이 반대되는 이 공산주의 길성소년회의 거점을 제멋대로 「길림소년회의 독서실」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일성은 29년 5월에 길림소년회를 떠났는데 이 조직은 29년 11월에 길림소년탐험대라 개칭하였다.30년의 일본기록은 민족주의단체 국민부산하인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의 지휘를 받는 이 소년조직에 대하여 그 본부도 구성원도 적지 않고 있다.그러나 회고록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조직의 본부는 손정도의 예배당이었다. 이 길림소년회에 대한 1930년의 일본기록은 다음과 같다. 「소년회.예년 5월 제1요일을 소년데이로 정하고 운동회 등을 열고 있다.본년(1930년)은 5월4일이 마침 소년데이에 상당하므로 당일 유길학우회원 김인기,박일파의 사회로 신개문 외 야소례배당에 소년 약20명을 모아서 간단한 기념식을 행하였다. ○29년경 “회원” 증언 그후 소년데이라고 쓴 지제의 수기를 하나씩 배급하여 오후1시부터 강남공원으로 가서 과자를 일동에게 분배하여 유희를 하고 동 5시경 무사히 철수,해산하였다.」 요컨대 조선인 길림소년회란 28∼29년은 정의부,29∼30년은 국민부에 속하는 소년단체였다.김일성은 이러한 소년회에 28년 무렵에 들어가 29년경에 회장으로 되었다.그리고 만약 길림소년회가 27년에도 있었다면 그가 이해 8월경에 입회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소년회가 「27년 4월 그가 결성한」조직일 수는 없다. ▷주해◁ ①「세기와 더불어 1」208면 이하 ②같은 책 238∼9면 ③평전 113면 ④평전 112면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6)

    ◎길림시절:5/육문중 입학경위 날조/“27년 2학년 편입… 29년 중퇴” 새 주장/사실이라면 28년 6월 졸업했어야/27년 1월 아닌 8월 오동진집에 이번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이 길림에가서 육문중학교로 들어간 경위를 전에없이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그 내용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김일성은 1927년 정월 중순에 무송을 떠나 길림으로 왔다.그는 먼저 성내 차루가와 상부가 사이에 있는 오동진의 집으로 찾아 갔다.오동진은 길림으로 온 이상은 여기서 너의 우물을 파라고 격려한 후 그에게 기숙사에 들어가지 말고 자기 집에 있으라고 하였다.거기에서 그는 최형우(최일천)와 만나 그와 「동지」가 되었다. ○다른 전기 없는 내용 그날 하오 오동진은 그를 삼풍잔에 데리고 가서 이 여관에 머물고 있었던 독립운동가에게 인사시켰다.거기에는 김시우가 소개신을 써 준 김사헌도,정의부 경호대장인 장철호도 있었다. 김사헌은 소개신을 보고 그를 길림육문중학교의 한인 교사 김강에게 소개하고 김강은 이 학교 교장 이광한에게 그를 만나게 하였다.이광한 교장은 김일성이 나라를 찾는데 한몸 바치겠다고 하자 1학년을 거치지 않고 2학년에서 공부하게 해달라는 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그는 길림에 가서 처음에는 오동진의 집에서 학교에 다녔고 그가 체포된 다음에는 장철호의 집에 한 1년,현묵관네 집에서 몇달,그리고 오동진의 후임으로 정의부 사령을 하던 이웅의 집에도 얼마간 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과거의 그 어떠한 전기에서도 전혀 볼 수 없었던 새 이야기들이다.그러면서 이 이야기들은 당돌하게 나온 것 치고는 또 너무 자세하다.이것이 사실이 아니라 소설이란 것이 금방 탄로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첫째로 김일성은 조선노동당의 전통을 날조하는데 이용한 「해외조선혁명운동사」의 저자 최형우를 27년 1월에 길림에서 만난 것같이 왜곡하였다.그러나 최형우는 30년에 오가자에서 그를 본 기사를 쓰고 있을 뿐이다. 또 김일성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하여금 살해하게 한 최형우를 파렴치하게도 「동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그가 김일성의 동지였더라면 해방직후 어째서 그는 월북하지않고 한국전쟁 때까지 이남에 남아 있었겠는가. 둘째로 그는 58년에 중국에서 귀국한 김시우를 평북 전천에 귀양보내다시피 쫓아내 평양에 한번도 부르지도 않고 그곳에서 죽게 하였다. 그런데 화성의숙 시대의 자기를 우상화할 필요가 생기게 되자 그는 이 김시우를 전기에 등장시키고 그의 서재에서 자기가 마르크스 문헌을 읽었다는 산화를 만드는데 이용하였다.이번에는 그를 다시 이용하여 중학교에 들어가는데 그가 마치 중간다리를 놓아준 인물인 것처럼 만들어 놓고 있다. ○김시우소개로 꾸며 셋째로 그는 이왕 거짓말을 꾸밀 바에야 「통이 크게」(김일성,김정일의 평소 입버릇)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그는 당시 정의부에서 활약한 인물 중에서도 최고지도자였던 오동진,현정경(현묵관),이웅 등의 집을 전부 자기의 하숙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대목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감촉할 수 있는 것은 68년 전기 이후 자주 그 이름이 나오는 장철호와의 관계 뿐이다.그러나 그 집에 1년이나 있었다는 것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넷째로 이 인물들중 중국인 이광한은 육문중학교 교장이었던 것이 문헌에 보인다.따라서 어떤 한일의 중개로 이광한이 김일성과 만난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또 그 사람이 김강이란 선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27년 1월17일은 아니다.앞에 인용한 문장에는 이광한이 1학년이 아니라 2학년에 넣어달라는 김일성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서 그를 2학년에 넣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회고록의 다른 부분에서는 「육문중학교는 정의와 법도를 매우 중시하는 학교」라고 하고 있다. 또 육문중학교가 아니라도 1학년에 넣을 학생을 교장이 독단으로 2학년에 집어 넣을 학교는 없을 것이다. 당시의 중학교 학년학기 일정표를 보면 1월에 2학년에 편입되면 28년6월에는 중학교를 졸업해야 한다.29년 5월에 중퇴한 실지 경력보다 김일성은 1년이나 더 빨리 「졸업」해 버리는 것이다.그가 1월에 1학년생이 됐다고 할 수도 없다.그의 현재 주장은 2학년 전학이기 때문이다. 이상을 보면 이번 회고록의 길림 입성 부분은 어느 모로보나 소설가의 창작,그것도 앞뒤가 너무 맞지 않는 졸작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 ○교장결정 납득안가 김일성은 실지로 길림에 입성한 27년 8월보다 반년 이상 이전인 1월의 길림을 자신의 「활무대」로 삼았다.실지로 자기가 있지도 않았던 이 길림을 무대 삼아 그는 김시우를 자기의 심부름꾼으로 만들고 최형우와 「동지」가 되며 오동진을 하숙집 주인으로 격하시키고 이광한에게 1학년이 아닌 2학년에 전학시키라고 강박하여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없었던 일을 아무리 있었다고 주장해 보더라도 없었던 것은 없을 수 밖에 없다.김일성은 27년 1월에는 길림에는 없었던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Ⅱ」199∼204면 ②같은책 202면
  • 거액재산 은닉·축소 속속 판명/민자의원 허위공개에 국민들 눈총

    ◎경포대 호화별장 2채 은닉/김재순/군산 50억원대땅 신고누락/임춘원/영주지역 2만평 투기의혹/금진호 민자당국회의원들이 최근 재산공개에서 상당수의 재산을 은닉하거나 축소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처음 공개될 당시만 해도 상당수 재력가 의원들의 재산규모에 놀랄 뿐이었으나 점차 은폐 및 축소사실이 밝혀져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재력가로 손꼽히는 일부 의원들은 주변사람들이 다 알만한 덩치 큰 재산을 태연하게 빼놓고 신고하거나 위장신고 또는 축소신고를 해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 실제로 임춘원의원은 군산관광호텔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고 유학성의원은 충주의 과수원 면적을 절반으로 축소시켜 공개했다. 또 금진호의원은 미공개 재산 가운데 밭과 임야·과수원 등이 아들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이 새로 밝혀졌으며 남평우의원은 제주에 세아들 명의로 10만평이 넘는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땅값을 공시지가의 10%로 줄여 공개했다. ▷임춘원의원(서울서대문을)◁ 임의원은 이번 재산공개과정에서 자신과 처,두아들의 명의로 총34억7천82만1천원의 재산이 있는 것으로 공개했으나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북 군산시 경장동의 군산관광호텔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군산관광호텔은 임의원 소유인 동교기업이 87년 매입했다가 91년11월14일 임의원의 외조카뻘인 원모씨 명의로 소유주가 변경됐으나 관광호텔의 모기업은 장남과 차남이 대주주인 (주)세림인것으로 밝혀졌다. 이 호텔은 대지 2천2백50평에 연건평 2천6백평*지하1층 지상8층)규모로 시가 50억∼60억원대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 세림의료재단명의로 된 군산지 경장동 462의18등 6곳에 있는 1천74평(시가 50억원)의 토지로 실제는 임의원소유로 밝혀졌으나 이번 공개에서는 빠져있다. ▷김재순의원(철원·화천)◁ 부인 이용자씨(61·서울 용산구 한남동 1의168)의 명의로 신고한 강릉·명주지역의 2건의 토지 외에도 별장 2채와 별장부지 1백12㎡를 숨긴 사실이 드러났다. 김의원이 신고한 동해안 관광지의토지는 경포해수욕장옆 비치관광호텔에 인접한 강릉시 강문동 262의2일대 3천5백34㎡와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고 주변풍치가 뛰어난 명주군 연곡면 영진리 산45의1 3천5백34㎡등 2필지로 신고액은 강문토지가 8천7백16만9천원,영진 토지가 2천34만9천원이였다. 그러나 김의원은 명주군 연곡면 영진리 산45의1에 85㎡짜리 별장 1채와 영진리 46번지 1백12㎡의 토지와 여기에 신축한 79㎡짜리 별장 1채등 토지 1필지와 별장 2채는 은닉한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정호용의원(대구서갑)◁ 부인 김순환씨 소유로 신고한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2리 87의1,2,3일대 임야 13만여평은 매입당시 군사시설보호구역이었으나 이후 산림보전지역으로 바뀌면서 땅값이 폭등했다. 정의원은 참모총장으로 재직중이던 84년7월 당시 군사시설보호구역인 이 일대 임야 43만7천3백57㎡를 정모씨(65·서울 관악구 노량진동)등 2명으로부터 평당 1만원선에 매입,부인과 딸 명의로 분할등기했다. ▷유학성의원(경북 예천)◁ 둘째아들 중하씨명의로 돼 있는 충북 충주시 연수동 16의9과수원 1만1천7백69㎡를 신고하면서 면적을 절반으로 줄여 공개했다. 이 지역은 공시지가로도 지난해말 현재 ㎡당 6만8천원으로 유의원 아들의 명의로 돼 있는 5천8백84㎡의 땅값은 모두 4억14만6천원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과수원 전체면적을 5천8백84㎡라고 줄이고 이중 중하씨가 절반의 지분을 갖는 것으로 신고한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이 과수원은 중하씨가 지난 85년 7월 부동산거래업자 오모씨와 각각 5천만원씩을 투자해 공동명의로 매입한뒤 지난 90년 신규 온천개발지구로 지정돼 땅값이 매년 큰 폭으로 올라 투기의혹을 사고있다. ▷금진호의원(경북영주영풍)◁ 장남 한대씨(32·영주시 하망동 318의22)명의로 경주 영주시 상망동 257의2 일대 밭 1만1천3백2㎡(5천4백24평,시가 2억원)와 임야 2만2천5백12㎡(6천8백24평,시가5천5백만원),영풍군 장수면 두전리 과수원 5만3천3백94㎡(1만6천1백80평,시가 1억6천만원)등 모두 3필지 8만7천2백8㎡(2만5천4백28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투기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가흥농공단지 인근땅들은 금의원이 가흥농공단지 조성공사가 완공된 지난88년6월4일 증여세를 내지않기 위해 측근인 김동영씨(53·영주시 휴천동)와 정명훈씨(50·영주시 휴천동) 등의 명의로 사들였다가 이듬해 아들 명의로 등기 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 41,886명 대사면 단행/건국 최대규모

    ◎문익환·유원호·김철호씨 포함/새달 「전과기록 말소법」 제정/경미사범 5백만명도 혜택 정부는 6일 공안·시국사범과 일반사범등을 포함,모두 4만1천8백86명에 대해 대사면 조치를 단행했다. 이번 사면대상은 공안및 시국사범 5천8백23명과 일반형사범 3만6천63명에 이르러 건국이래 사상 최대규모이다. 정부는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대사면을 의결했다. 출소자들은 이날 상오10시부터 전국 35개 교도소에서 일제히 출소했다. 정부는 또 이번 대사면조치와 함께 향토예비군법위반등의 혐의로 벌금이하의 형을 받거나 기소유예·무혐의 처리된 5백여만명에 대해서도 오는 4월 관계법규를 고쳐 컴튜터기록을 빠른 시일내에 삭제,전과기록을 말소키로 했다. 신건법무부차관은 이날 『국민 대화합과 획기적인 민주발전의 계기를 마련키 위해 은전 대상폭을 과감히 확대했으나 예외조치는 가급적 축소했다』고 밝히고 『특히 공안및 시국관련사범에 대해서는 갈등시대의 반목청산이라는 차원에서 죄질이 중하더라도 과감히 석방했다』고 설명했다. 사면대상자들을 유형별로 보면 ▲잔형면제 3천21명 ▲형선고 실효 3만1천1백26명 ▲감형 1천76명 ▲복권 2천9백87명 ▲사면및 복권 2천7백3명 ▲형집행정지 6명 ▲가석방·가퇴원 9백67명 등이다. 이에따라 이날 실제 출소한 사람은 일반형사범 1천9백88명과 공안사범 1백44명등 모두 2천1백32명이며,유형별로는 ▲잔형면제 1천1백59명 ▲형집행정지 6명 ▲가석방 7백63명 ▲가퇴원 2백4명이다. 이번 조치로 밀입북사건관련 문익환목사(75)와 유원호씨(63),전 명성그룹회장 김철호씨(55)등이 특별가석방됐고 ▲박문재씨등 70세이상 장기복역 좌익수 6명 ▲부산 동의대 방화사건관련자 10명 ▲정원식총리 폭행관련자 7명 ▲「전교조」관련 이부영·이수호씨 ▲「전민련」공동의장 한상렬씨 ▲한미문제연구소결성사건 관련 김현장씨등 1백38명이 특별가석방됐다. 또 밀입북기도사건 관련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한겨레신문 고문 이영희씨,시인 고은씨,홍근수목사,안동수 전KBS노조위원장등 KBS사태 관련자 11명등 이미 풀려난 공안및 시국사범 5천6백여명에 대해서는 복권조치가 취해졌다. 아울러 성폭행한 의붓아버지 살해혐의로 집행유예와 함께 직권보석으로 풀려난 김보은양은 특별복권됐고 함께 구속돼 5년형을 받은 김진관씨(22)는 특별감형 됐다. 또한 5공비리 청문회때 증언거부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 사회정화위원장 김만기씨(63)는 특별사면및 특별복권됐다. 그러나 임수경양 밀입북조종혐의로 복역중인 임종석·박종렬·전문환씨등 「전대협」간부들과,밀입북사건의 서경원 전평민당의원,「사노맹」관련자,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씨등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 또 이재근 전평민당의원등 뇌물외유사건및 수서사건관련자,박종철고문치사사건 관련자,김근태고문사건 관련자,대학입시부정사건 관련자등과 조직폭력배등 민생치안사범도 제외됐다. 이밖에 서석재 전민자당의원등 선거사범도 제외됐다.정부는 이와함께 형기3년이하의 징역,금고형의 경우 10년으로 된 형실효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고 벌금형의 경우 형집행종료 또는 형집행면제후 3년으로 된 실효기간을 벌금선고후 무조건3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 기반 흔들리는 조총련/「김정일 세습」에 하부조직의 저항 확산

    ◎젊은층 충성심 사라져 사상교육 위기 조총련내부에서 「김정일 체제화」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는등 갈등이 증폭되고 조총련의 사상교육도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최대 해외조직인 조총련지도부는 지난해부터 지도체제를 「김일성 체제」에서 「김정일 체제」로 바꾸어가고 있다.한덕수 조총련의장은 지난해 5월16일 도쿄에서 열린 조총련 제16회전체대회에서 『조총련조직내에 김정일서기의 지도체제를 철저히 확립하여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고 『김정일서기체제를 확고히 하는 것은 조총련의 장래 운명을 결정하는 사활문제』라고 강조,체제전환을 선언했다. 조총련지도부는 이같은 체제전환을 위해 「동포방문 3개월운동」을 강화하는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러나 조총련하부조직과 일반교포사이에서 이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고 있어 「김정일지도체제 확립운동」은 조직내에 제대로 침투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한 북한문제전문가는 『일본과 같은 민주주의사회에서 생활하는 조총련 사람들은 논리적으로도 납득되지 않는 권력의 부자세습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그들은 다만 북한에 있는 친척및 생활의 불이익이 두려워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자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그는 『김정일이 권력세계에 등장한 지난 67년부터 북송교포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기 때문에 조총련사회에는 김정일에 대한 강한 불신과 거부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부자세습에 대한 저항은 교육현장에도 나타나고 있다.지나친 개인숭배및 신격화등 사상교육에 편중된 조총련계 학교의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북한문제에 정통한 일본주재 한 서방외교관은 『조총련계 학생수가 한때는 4만5천명이었으나 지금은 1만7천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쿄에 있는 국민학교만 해도 1개반을 구성하기 위해 적어도 30명이 필요한데도 실제로는 10명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오사카에서는 더욱 심해 학생모집을 하면 1개반에 3∼5명밖에 오지않을 때도 있다.조총련계 학생수가 이처럼 급격히 줄고있는 것은 출생률이 낮아지는데도 이유가 있지만 그보다는 부모들이 『사상교육이 강조되는 조총련계학교를 졸업하면 경제적 경쟁이 치열한 일본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자녀들을 조총련계학교에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조총련은 이같은 교육의 위기를 타개하기위해 지나치게 사상교육을 강조한 교과서를 개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평양당국으로부터 아직 「허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 북한전문가는 말한다. 조총련은 또 북한과의 연계를 강화하기위해 지난해 「조국방문국」을 신설했다.북한은 「인질성격」의 10여만 북송교포를 이용,정기적인 조총련의 북한방문과 자금지원을 강요하고 있다.그러나 1세대가 줄어들고 젊은 세대가 증가하면서 북한에 대한 「충성심」은 사라지고 있다.상당수 사람들은 일본에서의 생활기반을 잃지않기 위해 조총련조직에 남아있을 뿐이다. 동구권의 잇단 대혁명등 국제정세의 변화와 함께 조총련도 어쩌면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음에 틀림없다.
  • 보도사고 등 3종도 특례 예외조항 포함

    현승종국무총리는 11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임시국회회기중에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들이 심의·처리될 수 있도록 해당부처는 총리실·정무1장관실·법제처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하고 주요정당과도 적극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개정안등 법률안 4건,대통령령 18건,일반안 3건등 25건이 처리됐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안은 교통사고때 종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형사처벌의 범위를 기존의 8개 예외조항외에 보도침범사고·개문발차사고·무면허건설기계조종사고등 3개조항을 신설,교통사고방지기능을 강화했다.
  • “현정부 임기마지막까지 최선을”/현 총리(국무회의 11일)

    제6회 국무회의는 현승종국무총리주재로 상오8시부터 약1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개정안을 의결,형사처벌범위에 보도침범사고·개문발차사고·무면허건설중기계조종사고 등 3개조항을 추가했다.또 환경영향평가법안도 처리했다. 의결안건은 비교적 많아 대통령령 18건,법률안 4건및 일반안 3건 등 25건이었다. ◎…현승종국무총리는 『정부가 이번에 제출한 법률안들이 가급적 임시국회회기중에 심의·처리될 수 있도록 해당부처에서는 총리실·정무1장관실·법제처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할 것은 물론 주요정당과도 적극 협의하라』고 지시. 현총리는 『국무위원 여러분은 현정부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국무위원으로서 지난5년간의 치적과 관련해 책임있는 국정수행자로서의 의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 ◎…이정우법무장관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개정안을 상정하면서 『종래에는 종합보험이나 공제에 가입돼 있으면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또는 도주차량의 경우와 8개공소권면제의 예외조항해당사고가 아닌 한 형사처벌을 면제케 되어있어 운전자의 교통사고방지의식의 약화를 초래,높은 교통사고율의 한 원인이 되어 왔으므로 공소권면제의 예외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변화된 교통여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교통사고방지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이장관은 『이에따라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의 공소권면제의 예외사유에 무면허건설중기계조종사고·보도침범사고및 개문발차사고등 3개조항이 신설 추가된다』고 설명. ◎…이재창환경처장관은 환경영향평가법안을 상정,『대규모 개발사업때 환경영향을 평가·검토해 환경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사업시행을 유도함으로써 개발과 보전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키고 쾌적한 환경의 유지·조성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고. ◎…이문석총무처장관은 안건심의가 끝난뒤 92년도 정부합동민원실 민원업무처리결과를 보고. ▷의결안건◁ ▲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하도급거래공정화에관한 법률시행령(개) ▲예산회계법시행령(개) ▲외자도입법시행령(개) ▲관세법 제10조의 규정에 의한 정제인산에 대한 덤핑방지관세의 부과에 관한 규정(제) ▲관세법 제16조의 규정에 의한 할당관세의 적용에 관한 규정(개) ▲군인사법시행령(개) ▲사립학교법시행령(개) ▲군납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수도권정비계획법시행령(개) ▲주택건설촉진법시행령(개) ▲주택건설기준등에 관한 규정(개) ▲체신창구업무의 위탁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검찰청사무기구에 관한 규정(개) ▲농수산조사통계심의위원회규정(개) ▲총무처와 그 소속기관직제(개) ▲국가보훈처와 그 소속기관직제(개) ▲검찰청법(개) ▲교통사고처리특례법(개) ▲학교급식법(개) ▲환경영향평가법(제) ▲93년도 일반회계 예비비지출(안) ▲개발농지의 농업외 전용허가(안) ▲개발제한구역내 행위허가(안)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4)

    ◎소년시절:15/「화전」의 「ㅌ·ㄷ」날조 과정/최형우 전신진당간부의 「소사」근거로/결성장소서 시기까지 아전인수 조작/6·25때 암살후 명예회복도 안시켜 김일성이 화성의숙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결성했다는 회고록의 주장은 그가 「동급생」들보다 5살이나 어린 소년이었던 점과 재학기간이 3∼4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해 보더라도 그 날조가 명확하다. ○인민군에 총살당해 그러나 김일성은 북한의 어용학자들을 시켜 명약관화한 이러한 유치한 날조에도 무슨 근거가 있는 것같이 만들고 있다.어용학자들은 그 「근거」로 해방직후 서울에 있었던 최형우가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자료로 삼는다. 「1926년이었다.김일성은 자기의 시련과 함께 이상 실현에 필요한 무대와 동지를 찾았다.이·회간(이통현·회덕현 양현의 사이)을 적지로 정하고 동반한 이·계 양인과 같이 이·회의 사회적 중견인 장기명,이정락,현균,김혁,최천,문시선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22∼23세의 청년으로 급진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신사회 건설에 적응한 학술,사상,문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전반적 환영리에 김일성은 이 동지들과 악수하였다.좌우익의 소아병적 경향을 배제하고 「ㅌ·ㄷ」즉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였다」. 김일성은 1930년 9월부터 11월까지 장춘의 서쪽 근교에 위치하는 회덕현 오가자에 머문 일이 있었다.이 때 이 오가자에는 삼성학교가 있었는데 최형우가 교원을 하고 있었다.그는 거기서 김일성이 여기에 찾아오는 것을 목격하였고 2개월 정도 그의 동정을 지켜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던 최형우는 해방직후 서울에서 북한에 김일성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그래서 그는 마침 자기가 쓰고 있던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1권에 「ㅌ·ㄷ」과 김일성이란 항목을 설정하여 이상과 같은 문장을 실은 것이다. 최형우는 이명영교수에 의하면 해방후 서울에서 신진당 중앙위원이 된 일이 있었고 농림부에도 근무하였다.그러나 그는 6·25사변때 북한 인민군에게 총살당했다 한다.이것이 그에 관한 남한의 소식이다.한편 북한에서는 1985년 무렵까지 최형우란 이름 석자는 알려진 일이 없었다.그래서 필자는 최형우가 북한에서 명예회복된 일이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일본의 와다(화전춘수)교수는 이번에 그의 저서에서 1989년 4월 3일자 노동신문에 「태양과 일생­위대한 수령님께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저자인 최일천선생께 베풀어 주신 은정에 대한 이야기」란 기사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거기에는 최형우(일천은 별호)의 「소사」가 66년쯤에 비로소 북한에서 주목받게 되었고 그의 문장이 68년에 나온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 반영되었다고 씌어 있는 모양이다. ○오기를 최대한 악용 그러나 이러한 기사를 뒤늦게 내게 한 김일성이지만 그는 그가 암살하게 한 최형우의 명예는 회복시키지 않고 있다.반대로 그는 66년부터 이번에는 최형우가 남긴 문장에 난도질을 가하여 그를 다시 한번 능지처참하고 있는 것이다.그 처참한 난도질의 광경은 아래와 같다. ⑴최형우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의 결성장소가 이통현과 회덕현 사이 즉 이·회간이라고 하였다.그는 이 장춘 서교에서 교원을 하고 독립운동도 하고 있었다.그러한 그는 당시 목격한 바를 그대로 그의 책에 쓴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 「ㅌ·ㄷ」의 결성장소를 제멋대로 이·회간의 동남쪽에 있는 화전현성으로 바꾸어 버렸다.장춘에서 철도를 타서 반석으로 3백㎞,거기서 다시 도로로 65㎞ 가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화전현성에 그는 「ㅌ·ㄷ」을 일부러 끌고 온 것이다. ⑵최형우는 위의 문장에서 「ㅌ·ㄷ」이 마치 1926년에 결성된 것처럼 쓰고 있다.그러나 그가 회덕현 오가자에 있었던 것은 1930년의 일이고 그가 이곳에서 김일성과 만난 해도 30년이다.한편 김일성은 26년에는 무송과 화전 이외에 간 일이 없었다.따라서 최형우가 쓴 26년이란 30년을 잘못 계산하여 적은 오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 최형우의 어쩌면 단순한 잘못을 최대한으로 악용하여 26년 그가 화성의숙에 있을 때 「ㅌ·ㄷ」이 결성된 것으로 사실을 왜곡하였다. ⑶당시 이·회간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사회적 중견의 한 사람이었던 최형우는 「ㅌ·ㄷ」를 결성한 인물은 장기명·이정락·현균·김혁·최천·문시선 등과 김일성·이·계 양인이었다고 증언하였다.그런데 김일성은 「화전의 ㅌ·ㄷ」을 날조하기 위하여 「이·회간의 사회적 중견」들을 모두 집어치워 버렸다. ○동지이름 처음 밝혀 김일성은 이 날조된 「ㅌ·ㄷ」에도 있어야할 「동지」의 이름에 대하여서는 그 발표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고 이번 회고록에서 처음으로 밝히게 되었다.최창걸 김리갑 이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이종락 박차석 등이 「화전의 ㅌ·ㄷ」성원이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회간의 ㅌ·ㄷ」을 소재로 하여 「화전의 ㅌ·ㄷ」를 날조하는데 있어서 이상과 같이 역사와 최형우에게 난도질을 하였다. ①「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1」46년 서울 동방문화사간 2천9백30면 ②「사인의 김일성」2천6백78면 ③평전 26면 ④「김일성과 만주항일무장투쟁」53면 ⑤「세기와 더불어 1」1백66면
  • 「국가경제 조정위」 대통령직속 설치를/경영전략연 세미나

    새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새 정부가 해야 할 국정개혁의 방향 및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책세미나가 1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한국경영전략연구원(이사장 강경식)주최로 열렸다. 황인정 산업연구원 원장은 「새 정부의 기능 재정립과 조직개편 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국정 전반에 걸쳐 장기적 시각에서 국가이익을 챙겨온 경제기획원의 기획기능 정책조정기능 대외조정기능 일부를 사무국으로 하는 상설 국가경영(경제조정)위원회(가칭)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 최대시장 「통합EC」 공식출범/12국 단일경제권 합의 7년만에

    ◎자본·서비스 이동자유화 【파리=박강문특파원】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들이 국경없는 인적교류와 상품,자본및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시장이 1일 0시(현지시간)를 기해 공식 출범한다. EC단일시장발족은 지난 85년 EC집행위원회가 유럽통화제도(EMS)마련등 그동안의 경제통합 성과를 바탕으로 EC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일등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장벽을 철폐키로 합의한지 7년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EC집행위원회는 단일시장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회원국간의 사람,상품,자본및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해온 출입국검사및 세관검사등 국경통제로 인한 물리적 장벽,회원국 상호간의 상이한 정책및 제도로 인한 기술적 장벽,그리고서로 다른 세제로 인한 재정적 장벽을 제거키로 했었다. EC집행위는 이를 위해 2백82개의 법률및 지침을 마련키로 하고 이미 그 대부분의 입법조치를 완료했으며 현재 단일시장출범에 필수적이 아닌 회사법등 몇가지의입법조치를남겨두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입법조치가 완료된 분야중에서도 국경개방 이후에도 계속 실시되는 국경통제조치등을 예외조치로 간주,일정기간 후 또는 조기에 철폐토록 하고 있는데다 EC의 입법조치에 뒤이은 회원국별 국내 입법화조치도 지난해 11월말 현재 약80%선에 머무르고 있어 EC단일시장은 일단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미비점에도 불구하고 EC차원의 입법및 회원국별 국내입법화 작업은 시한에 관계없이 추진되며 단일시장완성을 위한 관계법규도 계속 보완될 예정이다.
  • 김용신 정주시장(만나고 싶었습니다)

    ◎“전북서남권 중핵도시 발돋움 총력”/첨단공단조성 등 중·장기계획 수립/향토특색살려 「시상정립운동」 추진 「정읍사」의 고장.정주시는 요즘 시가지가 온통 단풍빛으로 가득하다.시내 주요 도로변 담장이 모두 단풍이고 건물벽과 아파트 벽면도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각종 플래카드와 전화카드·우편엽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요식업소의 컵받침,간판,실내장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단풍 일색이어서 마치 내장산 단풍이 겨울추위를 피해 내려와 있는 느낌이다.이처럼 정주시가 화사한 단풍으로,눈덮인 내장산의 설경을 더욱 비경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시상정립운동의 열매」라고 시민들은 입을 모은다.정주시는 특히 시상정립운동을 시민들의 자긍심과 진취적 기상을 드높이는 시민정신운동에 접목시켜 시와 시민들간의 거리감을 좁히고 공무원들도 공복의 자세를 더욱 가다듬는 계기로 삼고 있다.이 시상정립운동을 총지휘하고 있는 김용신정주시장(59)은 정주시를 전북서남권의 중핵도시로 발전시키기위해 오늘도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비고 있다.예총정주시지부장 신태근씨(64·정주시 수성동 675)가 새로운 정주시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김시장을 만나 정주시 개발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 보았다. ▲신태근씨=시장부임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상정립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를 시작하게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김용신시장=정주시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내장산과 현존하는 최고의 백제가요 정읍사의 고장으로 9만시민 모두가 망부의 여인상에 담겨있는 정과 의를 기리는 순박한 성품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발달로 향토문화가 소외 당하고 도시마다 지니고 있는 독특한 개성이 퇴색되어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상실돼가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에 정주시는 지방화시대를 맞아 내장산의 단풍과 정읍사가요 등 시의 상징물을 널리 알리고 도시의 면모를 보다 특색있게 가꾸기 위해 정주시상정립 기본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신씨=시상정립을 위한 사업내용을 좀 소개해주실수 있습니까? ▲김시장=정주시는 시상정립운동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독일의 한스자이델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 환경대학원 연구진에 의뢰해 시상정립기본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서울대 연구진들은 시상이 될만한 자료를 찾기 위해 시전역과 문헌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시민설문조사를 실시해 결국 단풍과 정읍사 망부상 등을 시상의 주제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신씨=이같은 시상정립운동이 한때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한 계획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김시장=정주시를 단풍과 망부상으로 뒤덮인 국내 최대의 상징물도시로 키워나가기 위해 9천만원을 들여 과교동에 정읍사여인의 생가를 복원하고 1억3천5백만원으로 정읍사 공원안에 정읍사사우를 건립,정읍사의 문학적 가치를 드높일 계획입니다. ▲신씨=정주시는 전북 서남권의 중심이기도 합니다.이러한 시상정립운동과 함께 정주시를 전북 서남권의 거점도시로 육성시킬 계획은 없는지요. ▲김시장=다가오는 21세기에 대비,정주시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생활환경이 편리하며 문화적으로도 앞서가도록 장기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 내용을 잠깐 소개하자면 오는 94년까지 제2공단을 조성하고 산업기술지원센터를 건립하며 공공직업훈련원을 세워 공업화기반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또 2001년까지는 첨단산업공단을 조성하고 관광문화센터를 건립하며 도시내 순환도로와 공원·문화·체육시설·신시가지 등을 만들어 인구 15만명이 살기에 적합한 중핵도시로 가꾸어 나갈 방침입니다. 2011년에는 인구20만의 쾌적한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상하수도시설·도시가스공급시설·문화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4년제 산업대학,초·중·고교 등 교육시설을 대폭 늘리며 쇼핑센터·교통·체신망확충·택지조성 등 폭 넓은 도시개발사업들이 추진될 예정입니다. ▲신씨=향토문화진흥과 문화공간확충을 위해서는 어떠한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습니까? ▲김시장=정읍사공원에 36억원을 들여 도내 최대·최고시설을 갖춘 연건평 1천19평 규모의 예술회관을 건립한 것은 시민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정읍사공원의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 20억원을 들여 연건평 1천5백평 규모의 청소년수련관을 건립할 계획을 확정했으며 민속박물관·야외조각공원건립을 구상중입니다. 이로써 정읍사공원은 도서관·국악원·예술회관·청소년수련관을 갖춘 문화의 전당으로 지역문화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신씨=시민봉사행정에도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시민편익증진을 위한 계획은 어떠한가요. ▲김시장=시민들의 어려움을 스스로 체험해 보기 위해 지난 9월부터 매일아침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도출된 문제점들은 가급적 현장해결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올빼미시장」 「자전거시장」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소방도로개설·천변로인도개설·시내버스연장운행·교통난해소대책등 각종 사안들을 청취하면서 시의 발전계획을 수립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산하 전공무원들에게는 민원현장을 직접 찾아가 해결해주는 발로 뛰는 행정을 실현함으로써 공직자와 시민들간에 신뢰감을 두텁게 하고 있지요. 또 지역동향과 주민불편 불만접수창구를 일원화하고 시민한가족사업을 추진하며 「1공무원 1통담당제」를 실시,주민과 공무원간에 유대를 강화토록 하는 등 공복으로서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고 있습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4)

    ◎소년시절:5/“만경대서 야학개설” 새 전기에 삽입/한문독음 미숙… “동료학업 지도” 어불성설/“일재수업 거부”­“모범생” 상반된 기술/“외조부담당 성경·한문과목 질색” 동급생 증언 김일성이 팔도구소학교에서 전학한 창덕학교는 조선에서 제일 먼저 포교를 시작한 개신교인 북미 장로파에 속하는 대동군용산면하리교회가 1909년에 설립한 5년제 사립학교이다.학생수가 1백명이 넘는 당시로서는 큰 학교였는데 하리교회를 세우는데 공로가 있었던 그의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었다.북한에서 부주석을 지낸 강양욱도 당시 교원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가 담임을 한 학급에 편입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강양욱학급 편입 현재 보존되어 있는 학교를 보면 ㄱ자형인 기와집으로 교실이 세개 있고 그 모통이는 직원실로 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창덕학교시절에 대한 우상화를 극단적으로 하고 있다.「무지개 비낀 만경대」의 속편은 「조선을 알아야 한다」인데 이 책의 창덕학교시절은 크게 두 체계로 나뉘어 그의 「언행」을소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첫째 체계는 그가 부친의 말을 「명심」하여 둘도 없는 수재며 모범생이 되었고 지덕체가 겸비되고 있었다는 선전이다.그 중 전자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⑴공부:그는 교실에서는 학습규율을 잘 지키고 집에서는 깊은 밤까지 남포등을 켜서 공부하였다. ⑵학습조:「학습조」를 조직하여 자주 결석하는 학생의 집에 가서 학교에 나오라 하였다.또 그들을 데리고 뒤산에 올라 그들이 배우지 못한 내용을 가르쳐 주었다. 밤에 잠 자지 않는 것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이후의 김일성의 습성이다.어용학자들은 그의 이러한 후천적특성을 소년시절에까지 거슬려 올리고 있다. 「학습조」이야기는 83년에 나온 「조선을 알아야 한다」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인데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새로 「야학」까지 등장시켰다. ○처음 한글 배운듯 「나는 가난 때문에 학교에 못 다니는 아이들을 생각하여 방학때 만경대에 가서 야학을 열었다.처음에는 1학년용 조선어독본을 가지고 우리 글부터 시작하였다.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되는 소박한 계몽운동이었다」 이러한 우상화를 식민지시대의 현실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당시는 일제가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와 지리를 어느 정도 가르치게 하고 있었다.만주의 팔도구소학교에서 한글을 배우지 못한 김일성은 전기들에서 과대 선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마도 이때 처음으로 창덕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것이다.「사인의 김일성」에는 창덕학교시절의 그의 동급생이 한 증언을 싣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성주는 별로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특히 그의 외조부가 가르치고 있던 성경공부는 싫어하는 것같았다.그분이 가르쳤던 한문도 그에게는 질색이었다」 만경대에서 우리 말로 한문을 읽어 5세때 불학이문장이었다고 선전되고 있는 김일성은 중국학교인 팔도구소학교에서 정과목인 국문(한문)을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창덕학교시절의 그의 동급생들이 보면 대체로 이런 정도의 한문실력밖에 없었다.그 원인의 하나는 한문을 중국어로는 읽어도 우리 말로는 읽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따라서 한글을 다른 아이에게 가르칠만한 실력은 그에게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추측하는 것은 또 다른 예가 있기 때문이다.북한에서는 창덕학교가 당시 사용하고 있었던 국어독본의 「국」자를 김일성이 「일」자로 고쳐서 일어독본으로 하였다고 선전하고 있었는데 이번 회고록에서는 「나는 일본말을 익히느라고 애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조선사람은 응당 조선말을 해야 한다고 깨우쳐 주었다」고 강조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 일화는 애국심의 관점에서 보면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제시대는 학교 수업은 일본어로 하고 있었다.그는 교수용어가 일본어인 식민지 학교에서 일본어교과서를 거부하고,배우는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학생들이 일본말을 할때마다 일일이 조선말을 하라고 막았다. 그렇다면 결국 일본말로 진행되는 수업도 소홀하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자연 그의 학업은 떨어지게 되고 학과성적도 불문가지로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업면에서 뒤진 그가 「학습조」나 「야학」을 연다는 것도 어불성설로 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일행적에 치중 창덕학교시절에 대한 우상화작업을 위하여 어용학자들이 설정한 체계중 둘째 체계는 김일성이 일제와 지주,자본가를 증오했다는 이야기들이다. 빈민들이 사는 평양의 보통강가 토성랑을 보았다든가 창덕학교가 있는 칠곡에 전깃줄을 치러 오는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길 복판에 큰 돌을 놓았다든가,요컨대 「왜놈과 지주 자본가는 한 배속이다」는 증오심 일변도의 계급교양이다.다 아는 투이기 때문에 그 설명은 생략하겠다. ①「위대한 수령 김일성원수님의 영광스러운 어린시절2」 부제 「조선을 알아야 한다」 1983년 간 35∼57면 ②「4인의 김일성」 2백37면 ③「세기와 더불어」 85면
  • 발레리나 김혜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9)

    ◎도약때 새의 비상 방불… “춤의 요정”/외지,“미감번득이는 탐미주의적 포즈” 격찬/세계적 명성 얻고도 자만하지 않는 노력형/포용력있는 성품… 「사치와 무관한 예수셰계」 추구 꽃잎처럼 여리고 가늘고 향기로운 느낌.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 김혜식씨의 이미지다.곧고 균형잡힌 체격과 세련된 용모,예술가의 찬란한 경력과 연륜,세계적 명성에 비해 그의 어느 구석에서도 자랑과 오만,자부심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알프스 소녀같은 순백한 표정에 말씨도 미소도 웃을때의 눈매도 부드럽다.걸음걸이도 발레리나 특유의 티를 내지않는다. 그러나 목선과 어깨선 조용히 앉아있거나 책을 읽을때 주스를 따를 때도 그에게선 어쩔수 없이 일가를 이룬 한 발레리나로서의 기품이 엿보인다. 잔잔한 리듬이 밴 발동작과 우아한 스텝은 그가 국립발레단 시절 「레 실피드」에서 보여준 「공기의 정령」,또는 몸속에 쇼팽의 선율이 흐르는 듯한 물결같은 움직임이다. 일명 「백색발레」(aballetblanc)로 불리는 「레 실피드」에서의 아라베스크와 절정을 향한 앙트리샤는 그의 많은 묘기중에서도 눈부시게 뛰어난 테크닉으로 손꼽힌다.특히 그의 도약은 그림자무게만큼이나 가벼울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곧잘 새의 비상(비상)에 비유되곤 한다. 한발로 선채 한 다리와 한팔을 마음껏 뒤로 뻗치는 앙트리샤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신문과 댄스 전문지등에서 일찍이 「미감이 번뜩이는 탐미주의적 포즈」로 호평된바 있다. 외지 보도에서 그는 언제나 「혜식(Haeshik)」으로 불리고 한국의 임성남 사사를 밝히는등 최근의 「댄스 티처나우」지(92년 1월호)는 「서울에서 온 김혜식」특집기사속에서 「잠자는 미녀」의 「오로라」,또는 「봄의 요정」에서의 「요정(Fairy)」자체로 그의 춤을 표현하고 있다. ○임성남씨에 사사 그는 무대위에서 「사랑스럽고 감미롭고 고혹적」이다.그러나 이 글을 쓴 무용 평론가 레슬리 프라이드맨은 그의 무용가로서의 이면에는 「고집이 세고 책임감이 강하고 주어진 일에 대한 확고한 판단력과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완벽주의가 도사려 있다」고 밝힌다. 이대 무용과에서 같이 무용을 공부한 미스코리아 출신 오현주씨는 「예술가적 양심과 도덕성,세계적 수준의 발레 기교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동시에 갖추었으나 언제나 온순하고 겸손하고 관대하다」고 친구를 자랑한다. 그의 관대함과 포용력은 이번 국립발레단 새단장 내정때 이를 질투하고 항의하는 전화를 받고도 수화기를 든채로 코를 골고 잔 이야기가 잘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그의 국립발레단 새단장은 새삼스럽게 거론된 것은 아니다.3년전부터 해마다 동아무용콩쿠르 심사위원자격으로 서울에 올때마다 스승인 임성남씨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고 무용계에서도 양식있는 실력자의 출현을 당연히 환영하는 빛이었다. 「임성남씨가 은퇴하더라도 김혜식이 있으니 안심」이라는 반응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 깊이 외국무대에 뿌리를 내린 그로서는 거미줄같은 스케줄에 얽매여서 이를 뿌리치고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지난 16년간 교수로 몸담아온 프레스노대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다.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농공학교수인 부군 김주익씨와의 섬세하고도 다각적인 의논끝에 「나를 키워준 고국에 대한 감사의 차원」에서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입장이었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 김혜식은 서울에서 태어났다.아버지 김응순씨(70년 작고)는 고대출신으로 오랫동안 교통부 해운국장으로 재직,비교적 건강하고 구김살없는 환경에서 명랑하게 자란 편이다.집안에 무용을 하는 사람은 없다.다만 사촌언니이며 문단의 중진인 시인 김양식씨가 김혜식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발레리나의 꿈」을 심어주었다. 성공회 유치원시절부터 춤을 추기 시작하여 이화여중때 일본에서 러시아발레를 전공하고 돌아온 임성남무용연구소에 입소,중학교 3학년때 「꽃의 왈츠」에서 군무로 명동 시공관 무대에 섰고 고3 되던해 「백조의 호수」에서 스승인 임성남씨의 파트너로 본격 무대에 데뷔,「발레 신데렐라」로 떠올라 무용계는 일찍이 김혜식 발레시대를 예고했다. 「타고난 재능보다 부족함을 메운다는 노력」을 신조로 하여 그는 밤낮없이 포즈연습에 매달렸고 하루가 멀다하고 토슈스를 해어뜨리는 딸의 춤을 그의 부친이 말없이 뒷바라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 「수정 온디누」를 보고 그때부터 막연히 마것 폰테인의 영국 로열발레 진출을 꿈꾸게 되었다. 당시 미국대사관 공보관으로 와있던 미스터 핸더슨은 김혜식의 「백조의 호수」「레 실피드」에서의 연속회전인 푸에테에 반해 뉴욕시티발레·로열발레 뤼스 드 몬테카를로 공연 필름을 구해주었고 새들러스 웰즈의 「불새」공연에서 눈이 핑핑 돌것같은 마것 폰테인의 현란한 선회를 마치 그 자신의 운명을 응시하듯 지켜봤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드디어 그는 67년 5·16장학금을 받아 영국으로 갔고 런던의 로열발레스쿨에 입학,세계적 프린시펄인 줄리아 파론,일리아 워드 도널드 리튼을 차례로 사사,발레스쿨 수료후엔 에롤 에디슨에게서 알레그로 스텝의 보충레슨을 위해 1년간 수업을 연장했다. 그러나 시즌엎이어서 로열발레단 오디션을 놓치는 바람에 「잠자는 미녀」솔로로 니콜라스 베리오소프 감독에게 발탁되어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에 입단,이 사실은 국내에도 널리 보도되었었다.그는 아름다운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 머물면서 각국에서 모여든 재능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이상 행복하기만 했다. 그때 미국에 살고있던 동생이 그를 만나러 왔다가 「유명 발레리나의 춥고 가난한 생활」을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자 『예술은 사치스럽다든가 풍요로운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모든 동작이 정지까지도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만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춤출 때외엔 화장을 하지 않는다.멋진 옷을 탐내지도 않는다.유럽 구석구석을 누비는 투어중에도 이 도시에서 저도시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모든 발레리나들이 그런 것처럼 그도 겨울에 입을 스웨터나 머플러를 뜨개질 하면서 공연 틈틈이 보았던 샛별같은 발레들을 머리속에 그리곤 한다.그중에서도 유럽공연을 가진 캐나다 레그랑 발레 캐나디안의 토슈스를 신지않은 「카르미나 브라나」는 퍽이나 인상적인 무대였다. 그는 이에 자극받아 취리히 발레단과의 3년계약을 끝내고 캐나다 몬트리올 발레단에 입단,오디션에서 2백명중 1명으로 뽑혀 처음엔 세미 솔로이스트,다시 솔로이스트로 올라서 모든 공연에서 「작은 코리안의 센스있는 작품해석,유연한 기량」등의 개인평과 함께 차츰 춤의 요정으로 변신해갔다. ○공연때마다 호평받아 「나이든 모습으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30세가 되던 72년,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있었던 록 발레 「토미(Tommy)」공연에 찾아온 김주익씨와 그해 12월20일 프레스노에서 결혼,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농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익씨는 「무용하는 와이프를 원치않아」결혼과 함께 그곳 신문들은 「프린세스 차밍과의 결혼을 위해 토슈스를 포기한 발레리나」를 대대적으로 보도해주었다.예상치못한 김혜식 발레 포기는 미국은 물론 한국무용계를 크게 놀라게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정주부로 머물면서 뜨개질이나 하고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발레 필름에 넋을 빼앗기는 아내를 발견한 김주익씨는 「그는 아내이기전에 한사람의 예술가」임을 뒤늦게 깨달았다.더구나 「이 도시에 세계를 누빈 발레리나가 와있다」는 소문과 함께 결혼 3개월만에 프레스노 시립발레단이 「호두까기인형」「잠자는 미녀」공연에 초청,네 왕자와 더불어 추는 「로즈아다지오는 비길데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란 극찬등 프레스노 시립발레단 초청발레리나겸 안무자로 활약하다 77년 프레스노대 연극무용과 교수로 초빙됐다. 자녀가 없는 이들은 푸들 스카티를 아들삼아 키우면서 친구처럼 남매처럼 오로지 세상에 두사람뿐인 것처럼 누구보다 다정한 부부다. 발레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던 부군도 언제부턴가 발레전문가를 능가하는 발레이론가가 되어 어떤 외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혜식으로서는 그동안 큰 좌절이나 난관은 없었다.좌절과 난관이 있기 전에 철저한 연습으로 이를 대비했기 때문이다.슬픔이 있었다면 20년 가까이 친자식처럼 키워온 스카티를 지난해 모국방문기간 동안 잃은 일이다.스카티 얘기가 나오면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닮아서 춤을 잘추었는데,바느질 스티치같은 부우레가 얼마나 귀여웠는데』하며 소녀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나 그런 이면에는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과 판단,완벽주의」가 도사려 오는 1월 단장취임에 앞서 지난 3주동안 발레단체의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연스케줄이 짜져야만 2∼3시간씩 하던 연습을 하루 8시간으로 대폭 늘렸다.타성이 된 모든 잘못된 포즈나 폼은 연습을 통해서 고친다는 각오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김혜식 발레시대의 출범과 함께 그가 세계무대에서 호평받았던 젤롬로빈스의 「목신의 오후」,조지 발란신의 「알레그로 블리리안」그리고 토슈스 없는 「카르미나 브라나」를 국립극장 무대에서 보게될지도 모른다.그리고 그것은 그의 우상이었던 마것 폰테인의 이미지를 몸속에 간직한 꽃잎과도 깃털과도 같은,김혜식 특유의 미감이 번뜩이는 불멸의 예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연보 ▲1942년4월 서울출생 김응순씨와 백운정여사의 3남2녀중 셋째(장녀) ▲61년 이화녀고 졸업 ▲57∼64년 임성남 무용연구소 사사 ▲63년 제1회 동아무용콩쿠르 김상 수상 ▲64년 이대 체육대 무용과 졸업 ▲64∼66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66년 5·16장학금과 동아일보 장학금 받아 도영,영국 로열발레 스쿨 수학(RADDIPLOMA) ▲67∼69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특별연수,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차석 무용수 ▲69∼72년 캐나다 몬트리올 발레단 프리마발레리나및 솔로이스트 ▲73∼77년 미캘리포니아 피그가든 댄스아카데미 안무및 지도위원 ▲72∼92년12월 미캘리포니아 주립대 프레스노대 연극무용과 교수 ▲67년 이탈리아 댄스페스티벌 초청예술가 참가 ▲68년 스위스 주네브 댄스페스티벌 초청예술가 ▲69년 캐나다 퀘백주립고교및 대학에서 발레교육과 테크닉을 위한 설기지도 ▲70년 미 자코브스 필로댄스 페스티벌 초청예술가 ▲71년 미 케네디센터 개관기념 공연 참가 ▲73∼74년 미 프레스노 시립발레단 발레리나 「잠자는 미녀」「호두까기인형」공연·안무 ▲77∼92년12월 프레스노대 포타볼댄스 투톱을 위한 안무와 초청발레리나 ▲82·86년 포타볼댄스 투톱의 일본 대만등 순회공연 ▲83년 홍콩아카데미 아트센터 발레실기지도 ▲85∼89년 센트럴 캘리포니아 발레콩쿠르 심사위원 ▲87∼89년 미국대학 발레전공 장학생 선발 콩쿠르 심사위원 ▲90∼92년 동아일보 주최 동아무용 콩쿠르 심사위원 「백조의 호수」「로미오와 줄리엣」「잠자는 미녀」「코델리아」「호두까기인형」「프린스 이글」「연」「아이다」「파우스트」「토미」「파이어버드」「미스줄리」「카르미나 브라나」「더트립」「아루키(ARUKI)」「인터플레이」「알레그로 블리리안트」「세레모니」「레 실피드」「목신의 오후」「봄의 요정」등 수십편.
  • “10개국으로 유럽통합 가능”/콜 독 총리

    ◎93년 마스트리히트조약 발효확신 【본 AFP 연합】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성탄메시지에서 유럽공동체(EC)는 93년부터 단일 목소리를 가져야할 것이라고 촉구하면서 12개 회원국중 10∼11개국만으로도 유럽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 총리는 27일 주간 벨트 암 존탁지에 공개될 성탄메시지에서 유럽공동체의 정치.통화통합에 관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93년부터 발효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면서 EC가 단일 목소리를 낼 경우 유럽의 이익과 세계속에서 EC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유럽공동체가 비록 회원국 12개국중 10∼11개국으로만 구성돼 출발할지라도 하나의 실체가 될 가능성은 최근 개최된 에딘버러 정상회담이후 더욱 명료해졌다고 덧붙였다. EC 12개 회원국 정상들은 에딘버러 회담에서 지난 6월 마스트리히트조약비준을 거부한 덴마크에 대해 국방.통화등의 분야에서 예외조항을 인정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93년 예정인 국민투표에서의 조약 비준 전망을 밝게했다. 콜총리는 또 중부및 동남부 유럽국들이 최근 겪고 있는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을 고려할 때 유럽통합조약은 유럽의 장래 진로를 보다 명확하고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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