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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 포함 100명 성매매 ‘경악’…日애니 ‘너의 이름은’ 프로듀서 실형

    아동 포함 100명 성매매 ‘경악’…日애니 ‘너의 이름은’ 프로듀서 실형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 이토 고이치로(53)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등으로 실형 판결을 받았다. 4일 일본 민영방송인 후지뉴스네트워크(FNN), 재팬타임스 등에 따르면, 와카야마 지방재판소는 이토에게 지난달 28일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는 지난 2023년 소셜미디어(SNS)로 알게 된 15세 소녀에게 현금 2만엔(약 19만 6000원)을 건넨 뒤 자신의 집에서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맺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토의 범죄에 대해 “아동 성매매 11건, 성적 촬영 9건, 아동 포르노 제작 10건, 아동 성매매 1건 중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 1건, 아동 포르노 5점 소지로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밝혔다. 또한 “피고는 인터넷을 통해 성관계가 가능한 미성년 아동을 찾고, 그 중 일부에게는 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게 했으며, 성관계 중 사진을 몰래 촬영하는 행위를 반복했다”며 “이는 의사결정 능력이 미숙한 피해자들의 심신 발달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받을 만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1차 공판에서 이토에게 6년의 징역형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 측은 “피고는 10년 전부터 18세 미만 소녀를 포함한 100명 이상에게 금전을 건네고 외설적인 행위를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이토는 “틀림없다”라며 기소 내용을 인정했다. 과거 이토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호흡을 맞춰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무단속’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두 작품은 국내에서도 수백만명 관객을 끌어모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신카이 감독은 최근 소셜미디어 엑스(X)에 “저희 작품과 관련된 사람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우선 피해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또한 저희 작업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매우 죄송하다”며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 작품의 가치가 훼손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매우 유감스럽고 비참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 “자동차 문이 안 닫힐 정도”… 제주 강풍피해만 30건 넘어

    “자동차 문이 안 닫힐 정도”… 제주 강풍피해만 30건 넘어

    3·1절 연휴 마지막날이자 개학을 하루 앞둔 3일 제주전역에 강풍특보가 발효돼 가로등이 쓰러지고 선박이 전복되는 등 시설물 피해가 잇따랐다. 3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오후 6시 기준 추자도, 제주도 북부·동부·서부·남부에 강풍경보, 산지·중산간에 강풍주의보가 각각 발효됐다. 특히 저기압에 동반된 띠 형태의 강한 비구름대가 형성돼 시간당 90㎞로 동북동진하고 있으며 제주도남쪽 해상에서는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가 치고 있다. 지점별 일 최대순간풍속(오후 4시 기준)은 마라도 초속 31.5m, 가파도 31.2m, 강정 28.3m, 상예 24.1m, 애월 23.5m, 제주공항 22.5m, 김녕 22m, 성산 20.4m, 제주 17.8m, 서귀포 16.7m 등을 기록했다. 강한 바람이 몰아치면서 곳곳에서 시설물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에는 강풍 관련 신고 총 31건이 접수됐다. 오전 10시 8분쯤 서귀포시 색달동에서는 가로등이 쓰러졌고 오전 9시 10분쯤 서귀포시 법환동, 오전 10시 21분쯤 제주시 구좌읍에서는 각각 가로수가 쓰러져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신호등이나 중앙분리대 등 도로 시설물 파손도 잇따랐다. 오후 2시 25분쯤 제주시 구좌읍 한 포구에서 선박이 전복돼 선체 대부분이 물에 잠겼고, 앞서 낮 12시 25분쯤 서귀포시 대정읍에서도 선박이 침수되는 등 선박 피해도 있었다. 기상청은 오는 4일 늦은 오후(오후 6시)까지 제주에 바람이 초속 25m 이상 매우 강하게 부는 곳이 있겠으니 시설물 관리와 보행자 안전 등에 유의하길 당부했다. 더욱이 자동차 문을 열었다가 닫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어 외출을 자제하고 많은 비로 인해 가시거리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어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너울에 의한 높은 파도가 백사장으로 강하게 밀려오거나 갯바위, 방파제, 해안도로를 넘는 곳이 있겠으니 해안가 접근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강풍으로 인한 간판, 비닐하우스 등 실외설치 시설물 점검 및 농작물 관리를 철저히하고 현수막, 나뭇가지 등 낙하물과 부러진 나무에 의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보행자와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전했다.
  • 인니, ‘동성애 커플’ 공개 태형…“실려갈 때까지 때렸다”

    인니, ‘동성애 커플’ 공개 태형…“실려갈 때까지 때렸다”

    인도네시아의 동성커플이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태형을 당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인도네시아 아체 특별자치주(州) 주도 반다아체에서 두 남성이 각각 82회, 77회의 공개 태형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24세 남성과 18세 남성은 흰옷을 입고 공개 장소로 끌려나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5명의 집행자들이 나타나 등나무 회초리로 두 남성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쳐 결국 한 남성은 움직이지 못해 실려가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1월 동성애자로 의심된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샤리아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샤리아 법원은 24일 3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던 것을 고려해 각각 3회씩 태형을 줄여 선고했다. 수마트라섬 북서부에 위치한 아체주는 동남아시아의 ‘메카’로 불리는 등 이슬람 전통과 근본주의가 강한 곳으로 주민 500만 명 중 98%가 무슬림이다. 2001년부터 샤리아를 법률로 시행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성폭력 범죄와 음주, 도박, 간통, 동성애, 혼전 성관계, 공공장소 애정행각, 외설스러운 행동 등이 적발되면 공개 태형으로 다스린다. 특히 2023년 부터는 샤리아가 더욱 강화돼 혈연관계가 없거나 결혼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이 공공장소나 차량에 가까이 있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에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아체주에 공개 태형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아체 지방 정부 측은 오히려 “서구에서는 샤리아를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관대하고 인간적인 율법”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 [포착] 男男 성관계했다고 회초리로…인니 동성 커플 공개 태형

    [포착] 男男 성관계했다고 회초리로…인니 동성 커플 공개 태형

    인도네시아의 동성커플이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태형을 당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인도네시아 아체 특별자치주(州) 주도 반다아체에서 두 남성이 각각 82회, 77회의 공개 태형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24세 남성과 18세 남성은 흰옷을 입고 공개 장소로 끌려나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5명의 집행자들이 나타나 등나무 회초리로 두 남성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쳐 결국 한 남성은 움직이지 못해 실려가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1월 동성애자로 의심된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샤리아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샤리아 법원은 24일 3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던 것을 고려해 각각 3회씩 태형을 줄여 선고했다. 수마트라섬 북서부에 위치한 아체주는 동남아시아의 ‘메카’로 불리는 등 이슬람 전통과 근본주의가 강한 곳으로 주민 500만 명 중 98%가 무슬림이다. 2001년부터 샤리아를 법률로 시행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성폭력 범죄와 음주, 도박, 간통, 동성애, 혼전 성관계, 공공장소 애정행각, 외설스러운 행동 등이 적발되면 공개 태형으로 다스린다. 특히 2023년 부터는 샤리아가 더욱 강화돼 혈연관계가 없거나 결혼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이 공공장소나 차량에 가까이 있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에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아체주에 공개 태형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아체 지방 정부 측은 오히려 “서구에서는 샤리아를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관대하고 인간적인 율법”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 포르노그래픽 디오라마 - 김언희론 1)/신은조 [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문학평론]

    사카모토 신이치의 만화 ‘이노센트’에서 등장인물 마리 조셉 상송은 조소한다. “정치는 남자들끼리 독점하고 있으면서 기요틴 앞에서는 여자와 애들도 평등하다 이거로군.” 물론 처벌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그 처벌을 가능케 하는 법령이 평등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법을 준수하지 않은 인간이 처벌받는 이유는 법이 인간을 보호할 수단이기 때문이지, 법 자체가 고귀한 것이라서가 아니다. 만약 어떤 법이 오직 법을 수호하기 위해 이행된다면 그것은 차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상송의 조소는 푸념이 아니라 통찰이다. 여성과 아이,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원칙주의의 모순을 꼬집는 대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만화가가 프랑스 대혁명 시대 여성의 입을 빌려 내뱉은 이 대사가 현 한국 사회를 향한 진단으로 읽힌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원칙주의의 모순에 매몰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과하며 우리는 대부분의 사회 규범이 가부장적 시선을 기반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여성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 구조의 단면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란 이와 같은 구조와 규범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된 이론 틀이기에 여성 혐오에 대한 여성들의 항의가 젠더 갈등, 갈라치기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기 일쑤인 근래의 정황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일컫는 일은 이와 같은 압제에 대한 저항의 표현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는 여성들이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독해해야 할까. 이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을 처형하는 칼날의 집행 주체가 비단 남성이나 가부장적 시스템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야 하겠다. 걸 밴드 QWER은 데뷔와 동시에 국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석권하고, 펜타포트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등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일부 멤버가 노출도 높은 의상을 입고 선정적인 춤이나 언행을 통해 남성 시청자들의 유료 후원을 유도하는 방송, 이른바 “벗방” BJ 출신이라는 사실이 대두된 이래 그녀들을 향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QWER의 메인스트림 데뷔가 여성 인권의 하락을 촉진하는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여성의 몸을 재화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 “벗방”의 본질이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연예인을 꿈꾸는 어린 여성들이 “벗방”으로 흘러 들어갈 위험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QWER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각각 “그녀들이 진행한 방송은 유명 스트리밍 사이트의 규제를 위반하지 않았으므로 벗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과, “옷을 벗는 방식으로 자신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여 금전을 취했으므로 벗방, 더 나아가 성매매 종사자와 다를 바 없다”는 의견이 부딪치며 격화되고 있다.2) 물론 QWER을 향한 비판이 전부 그녀들의 과거 행적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다. 그녀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 지점만을 지적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벗방 BJ의 양지 진출”이 토론의 주된 쟁점인 이상 해당 토론은 여성이 스스로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행동 그 자체에 대한 논의를 놓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의 보존이 아닌 “여성 인권”인 이상 진정 고민해야 하는 것은 벌거벗은, 음란한, 자신을 대상화하는 그 여성들의 존재를 삭제하지 않은 채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따사로운 빛이 포괄하지 못하는 “음지의 여자”들에게 줄곧 주목해 왔던 시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한 사람과 과민 체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집을 읽을 수 없으며, 시집을 읽고 난 후 온갖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시인. 김언희의 시에는 난도질당한 여성 육체의 단면이 가감 없이 삽입되어 있으며 음부와 성기, 성교와 폭력의 장면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와 같은 태도는 시집 전체의 맥락에 영향을 미쳐 마치 시인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시어와 심상 너머에 외설적인 함의가 담겨 있는 것처럼 읽히도록 만든다. 이것만으로도 섬뜩한 문구를 적어 둘 근거로는 충분하리라. 기실 임산부나 노약자가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처녀막을 찢어”드리겠다 엄포 놓는 목소리를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독자란 그리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가족극장, 이리 와요 아버지’). 그래서일까. 지금껏 수많은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김언희의 시에 달아 둔 각주들은 크게 두 가지의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김언희 시에서 그로테스크한 여성 이미지를 발굴한 이해운3)이나, 김언희 시의 여성을 서발턴으로 정의하는 장서란4)은 김언희의 시를 남성 중심적 현실을 전복할 에너지로 대우한다. 반면에 임지연5)은 김언희 시가 남성적 시선을 내면화하고 남성/여성이라는 근대적 시스템을 보존함으로써 기존 문제 틀에 갇힌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두 시점의 맹렬한 대립은 김정란과 남진우 사이에서 벌어졌던 설전을 펼쳐 볼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찍이 김정란은 김언희 시가 “여성에 의해서 여성 육체에 가해지는 성폭행”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김정란이 엄격한 페미니즘에 근거하여 김언희 시의 벌거벗은 몸들을 체제의 프로파간다로 독해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6) 하지만 남진우는 그에 대해 김언희의 시선은 “남성들의 시각적 쾌락에 봉사하는 남근적 응시가 아니라, 거기 붙들린 사람을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인 혼돈으로 초대하는 메두사적 응시”라고 반박했다. 그녀의 시가 “메두사의 시선을 통해 포착한 자아/세계의 추악한 실체를 메두사의 형상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시인의 시를 읽는 사람은 마치 메두사의 얼굴을 앞에 두고 그러하듯이 “시 앞에서 분노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7) 두 의견은 일정 부분 타당하고, 그래서 여태까지도 그 시비를 팽팽히 겨루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정말 이 여성들이 성폭행범이나 메두사에게 필적할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날 때부터 고기”였다는 그녀들의 고백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난도질당하고 있다. “육회와 수육/ 창창한/ 육절기(肉切機)의 세월”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다(‘태어나보니’). “시인” 또한 사정은 매한가지인데, 그것은 “여자가 시인이 된다는 것”은 “개가 뒷다리로 서서 걷는 것과 같”다는 독백으로부터 드러난다(‘Eleven Kinds of Loneliness’). 다시 말하자면, 그녀들이 비명 지르는 것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력한 화자들의 비명을 듣고 있노라면, 전성기의 메두사보다는 차라리 사후의 메두사가 더 떠오른다. 눈을 마주쳤다면 누구라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으로 수많은 영웅을 쓰러뜨렸던 메두사는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린 후 방패의 장식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메두사의 이야기는 전승되지 않는다. 이렇듯 단죄의 칼날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여성과 아이들의 목도 평등하게 잘라 버리는 기요틴처럼 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일견 세계를 파괴할 힘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메두사도 영웅의 칼날 앞에서는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앞선 연구들이 전부 터무니없는 오독이라거나, 김언희의 작업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언희의 작업을 절대 방어하려는 의도 또한 아니다. 단지 이 여성들의 “육체 전시”가 가능하기 위해서 어떤 숭고한 의미가 뒷받침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 질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문학비평이라 하는 장르가 언제나 작품에서 문학적 의미를 창출하는 작업이고, 김언희 시의 위계-모독이 여성의 몸을 중핵으로 삼아 작동하고 있는 이상 페미니즘적 읽기는 불가피한 일이리라. 하지만 이 여성들에게 엄격한 문학적·사상적 잣대를 들이밀기 이전에 이들이 호소하고 있는 고통의 정체를 규명하고, 이 시점에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여러 가지 담론들이 여성의 몸을 횡단하고 있는 이 시대에 김언희를 읽는다는 것은, “음지”에서 뒤척이는 몸과 그에 잇따르는 감각을 시의 최종 심급으로 두고 있는 이 시인에게 여성이란 무엇인지 자문을 구하는 일과도 같다. 여성의 삶은 어디까지 다양하고, 어떻게 여성은 삭제되는가. 물론 대화 없는 공감은 언제까지고 모독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도하는 이 독해가 모독이라는 사실을 주지한다면 김언희의 화자가 실감 나게 들려주는 증언을 통하여 여성이 스스로 몸을 전시하는 일이 무슨 의미일 수 있는지 알아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것은 오독이다. 여성이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것이 단순한 욕망 전시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모독이다. 그 모독적 오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김언희의 첫 시집 ‘트렁크’는 “가죽 트렁크”를 묘사하며 시작한다.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가죽 트렁크. 그것에 담겨 있는 것은 “토막난 추억”이다. 짧은 진술을 통해 이 트렁크를 둘러싼 진실들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누가 어디로 보낸 것인지, 트렁크를 둘러싸고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지어는 “토막난 추억”이라고 일컬어지는 내용물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기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트렁크가 수취를 거부당한 이유만큼은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그것이 너무나도 흉측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디 가야 할 곳으로부터 거절당한 후 갈 곳을 잃은 가죽 트렁크. 이것의 이미지를 김언희의 시와 같이 놓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인의 말에 적혀 있듯, 김언희는 시가 고통뿐인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검출하는 작업이라고 여겨지는 보편적 인식을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트렁크”를 시인의 작업물 그 자체에 대한 은유로 읽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로 김언희의 시는 “토막”난 것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이때 토막 나는 대상은 다양하다. “고기”, “개구리”, “당신” 등 수많은 생명이 시에서 도륙되지만, 가장 빈번히 유린당하는 것은 바로 화자 자신이다. 무형의 관념인 “고요”마저도 도살하고 도살당하기를 반복하는 이 “백정의 나라”에서 김언희는 참수도를 다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다(‘고요의 나라 1’). 의자였는데 내가앉으니도마였다 베개였는데 내가베니작두였다 사람이었는데내가안으니 내가안으니포장육 손톱발톱이길어나는포장육 막다른데가따로없었다 꽃한송이꽃절벽 사람하나사람절벽 여기이절벽에서저기저 절벽으로내입에서내어놓은 거미줄에매달려간댕 간댕건너간다끊어 질듯끊어질듯 ‘의자였는데’ 안락하고 편안한 사물이어야 할 “의자”와 “베개”도 내가 베기만 하면 “도마”와 “작두”가 되어 버리는 정황은 김언희의 화자가 탑재하고 있는 세계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난해한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날 때부터 고기”였다는 다른 시의 진술을 경유해야만 하겠다(‘태어나보니’). 나를 낳은 “엉덩짝”이 갈고리에 걸려 있고, 심지어는 그 엉덩짝의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지하 식품부”의 “냉장고 속”으로부터 비롯된 고백을 참조해 보자. 이 세계가 나에게 적대적인 이유가 비로소 명료해지지 않는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처럼 비체는 언제나 주체의 의도에 귀속된다. 인간이 도마 위에 앉으면 도마는 의자처럼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일련의 심상들은 화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이 나를 공격하고 재단하는 상황을 “막다른 데”라고 일컫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언술 행동이겠지만, 나에게서 뽑혀 나온 “거미줄”에 의존해 위태롭게 이곳저곳을 오가야 하는 상황까지 읽어내고 나면 이 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보다 더 극단적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극단의 상황에서 김언희가 채택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그 세계의 작동 방법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것이다. 막차를 놓치고 저녁을 때우는 역 앞 반점 들기만 하면 하염없이 길어나는 젓가락을 들고 벌건 짬뽕국물 속에서 건져내는 홍합들…… 불어터진 음부뿐이면서 생은, 왜 외설조차 하지 않을까 골수까지 우려준 국물 속에서 끝이 자꾸만 떨리는 젓가락으로 건져올리는 허불허불한 내 시의 회음들, 짜장이 더글더글 말라붙어 있는 탁자 위에서 일회용 젓가락으로 지그시 빌려보는, 이 상처의 모독의 시, 시, 시, 시울들……… ‘허불허불한’ “벌건 짬뽕국물 속에서 건져내는 홍합”이라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직후 “불어터진 음부”로 변환된다. 이 회음은 “시”의 것으로, 시가 전적으로 화자에 의한 발화라는 것을 견지한다면 직후 들어오는, 왜 세상은 “외설조차 하지 않”느냐는 탄식은 자신에게 주어진 발화 방식도 충분히 이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외설밖에는 할 수 없는 화자 자신에 대한 통렬한 메타인지이기도 하다. 그렇다. 김언희에게 있어 세계란 외설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아니 외설밖에는 할 수 없는 침묵과 고요의 공동이다. “골수까지 우려준” 국물이 그렇듯 이 세계는 인간의 몸을 극한까지 착취하면서 성립하는 세계다. 달콤한 복숭아의 “향기”에 “전신이 가려워”지는 방식으로 세계와 몸이 불화하는 상황이라면,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몸의 시 쓰기는 모독과 외설, 배설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나의 몸에서 복숭아의 일각을 발견하는 상황에서 고통이 창작을 추동한다는 오래된 격언 또한 폐기를 피할 수 없다(‘복숭아’). 이렇듯 김언희에게 몸과 세계는 서로 공명한다. 지독한 자기도취로도 보이는 이 세계 인식이 쾌락적 나르시시즘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공명이 상처와 고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김언희의 시가 성감을 전면에 내세워 시를 창작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적으로 읽힐 수 있는 지점이지만, 앞선 표현을 참조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금기 내지는 윤리를 깨뜨리기 위해 성감만을 강조하고 있다기보다는 몸과 감각에 대한 탐구에 치중하면서 그와 맞닿아 있는 가장 일차적인 감각의 일환으로 성감을 이용하고 있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시 쓰기와 배설이 살아남기 위한 외설의 표현으로 동등한 위치를 획득할 때, “봉합되지 않는” 인생으로부터 타액처럼 시가 흘러나오며 김언희의 세계-자기 인식은 완성된다(‘……?’). 장바구니를 들고 오늘은 또 무엇을 똥으로 만들어줄까 미나리 상추 쑥갓 바지락 피조개 펄펄 뛰는 저 도다리란 놈을 똥으로 만들어버려……? 항문을 쩝쩝 다시며 지나가는 과일전 좌판 위에 황도 백도 천도 복숭아들 등천하는 저 향기를 구린내로 저 신선한 과육들을 똥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분뇨의 회로 나를 거치면 모든 것은 왜 심지어 당신, 심지어 하느님까지, 내게서 나오는 것은 왜 모조리 ‘왜 모조리’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고 “항문을 쩝쩝 다시”는 행위는, 앞서 언급했던 몸과 세계의 미적 판단 기준이 불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각의 교란으로 이해된다. 더 나아가, 생명력 넘치는 도다리까지 모두 화자의 몸을 통과하며 똥으로 변모하는 상황으로부터 김언희의 화자가 갖추고 있는 소화 능력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함축한다는 결론 또한 도출할 수 있다. 김언희의 몸을 통해 세계는 모독의 대상이 되어, 역겹고 끔찍한 형상으로 변환 출력된다. 그러므로 배설은, 시 쓰기는 무서운 일이다. 대상이 미륵이건 나발이건 고려하지 않고 제 식대로 씹어 삼키는 방식은 그 원리의 측면에서 세계가 화자를 착취해 온 방식과 동일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칼날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그 칼날이 휘두르는 자에게도 유효하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미륵과 하느님. 언젠가 재림하여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어지는 선지자와 절대자 그 자체. 또는 규범의 화신. 그들을 욕보이는 행위가 화자의 자긍심으로 기능하는 것은 화자 스스로 그 행위에 혁명이나 대항, 자기표현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해 볼 수 있겠다. 김언희의 화자가 외설과 배설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화자들이 흉측하기 때문이다. “늙은 창녀”, “주검”, “미친년”과 같은 멸칭으로 묘사되는 화자들은 모두가 그 자체로 금기시되는 존재로, 이와 같은 꺼림칙한 감각은 김언희의 화자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용하는 시어와 제시하는 정황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사항이다. 트렁크는 수취 반송되었고, 고기는 잘려서 매달렸다. 이들이 스스로 발화하는 것을 통해 권위에 상처 입는 당사자는 누구인가. 누가 그녀들을 가공하고, 왜 그녀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가. “아버지”, “하느님”, “당신”으로 호명되는 착취의 수혜자들. 그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저 여자가 죽지 않는다 나는 한 구멍을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은 쬐그만 구멍, 그 한 잎의 구멍을 사랑했네. 그 구멍의 솜털, 그 구멍의 맑음, 그 구멍의 영혼, 그 구멍의 눈물,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구멍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구멍을 사랑했네. 구멍만을 가진 구멍, 구멍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구멍, 구멍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구멍, 눈물 같은 구멍, 슬픔 같은 구멍, 병신 같은 구멍, 시집 같은 구멍, 그러나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구멍 영원히 나 혼자만 가지는 구멍, 나밖에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구멍,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가혹한 구멍 ‘한 잎의 구멍’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는 김언희에 의해 다시 쓰이는 과정에서 “구멍”으로 치환된다. 이때 기묘한 것은 오규원의 시에서 “여자”가 화자와 철저히 구분되는 타자로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김언희에 의해 다시 쓰인 시의 “구멍”은 화자 자신이자 동시에 사랑하는 대상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단순히 김언희가 여성 시인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여성의 대명사로서 기용되는 구멍은 다분히 여성의 성기처럼 읽힌다는 지점에서 앞선 독해에서 줄곧 발견해 왔던 “모독에 의한 모독”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김언희는 이 “덮어씀”을 통해 기존 남성 권력이 선사하는 여성에의 사랑을 비웃음과 동시에 자신-여성마저도 비웃고 있다. “누가 내 시에 마요네즈를 발랐”고, “내 시에 대고 수음을 했느”냐며 범인을 색출하려는 행동은 그래서 이해될 수 있다(‘누가 내 시에 마요네즈를 발랐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채택했던 수단인 모독이 효과적인 이상, 상대를 색출해야만 모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대표적으로 불려 나올 수 있는 존재가 “아버지”다. 거울 속의 아버지, 새빨간 페티큐어를 하고, 아이, 꽃만 보면 소름이 져요, 허리를 꼬는 아버지, 과부가 된 아버지, 생리중인 아버지, 시뻘건 아버지의 음부, 아버지의 질, 하룻밤에 여든여덟 체위로 내 남자와 하는, 빗자루 손잡이와 그짓을 하고, 자동차 뒷자리에서 스무 켤레의 구두와 하고, 유리상자 속에서 왕과 동거를 하는, 아버지이, 아버지의 목청으로 부르르 나를 부르는 아버지 ‘가족극장, 과부가 된 아버지’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걸려 있는 어머니”에게서 자신을 “들고 가는” 존재다. 다시 말해, 세계 규범의 화신과 같은 존재이다. 시집의 한 부 전체가 “가족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내부에서 일어나는 위계 관계를 뒤집고, 기제를 모독하는 것으로 메워져 있는 것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시인은 주님, 아버지, 오빠 등 남성적 주체들에게 여성의 음부와 행위를 오려 붙임으로써 그것의 권위를 훼손한다. 이와 같은 시적 전략은 ‘보고 싶은 오빠’를 비롯한 이후 시집에서도 두드러지게 활용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거울”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하겠다. 거울이란 세계를 비추는 시선임과 동시에 내가 나를 자각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이미지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를 다시 읽어 보면, 거울 속의 “아버지”는 여성의 신체를 하고 내 남자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나” 같다. 다시 말해, 김언희의 화자들은 아버지를 훼손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남근중심주의적 관점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모독이 가질 수 있었던 승리의 감각은 피로스의 승리로 격하된다. 내 얼굴로부터 매 순간 아버지의 얼굴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녀를 고기와 구멍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외설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시 쓰기는 이 시점에서 오독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상가”로 가도 “카바레”가 나오고, “꽃집”으로 가도 “족발집”이 나오며, 발걸음한 “예식장”은 “도축장”으로 변모하는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세웠던 모독의 바리케이드가 되려 여성 자신을 음란함에 가두게 된다는 모순이다(‘피치카토’). 이 책이 소리를 전부 빨아먹는다 이 책이 비명을 전부 빨아먹는다 이 책이 피를 전부 빨아먹는다 육절기로 썰어 넘기는 책장 한 장 한 장이 혓바닥이다 흠씬 피를 빨아먹은 페이지 페이지, 면도날로 밑줄을 친 붉은 밑줄들이 줄줄 흘러내리는 이, 책이 ‘이 책’ 김언희는 시에 발린 “마요네즈”, 즉 “아버지를 내포하는 몸”을 경멸한다. 그래서 김언희의 시는 재생산이나 자신만만한 자의식의 표출이 아니다. 오히려 소화이며, 소비다. 먹어서 없애야 하는, 똥으로 만들어 버려야 하는 무엇이다. “아버지에게서 아버지를 파내드릴게”라고 이야기하는 김언희. 내 몸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것은 “아버지의 좆대가리”에서 자신을 “벗겨내 달라”는 요청의 수행적 표현임과 동시에 화자를 포박하는 사상과 논리로부터 탈각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벗겨내주소서’).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가 아직도 죽지 않”은 이유는 이 탈각이 모독으로써는 정복될 수 없는 무인도이기 때문이다(‘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난자당한 살점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 섬”에 닿을 때까지 그녀들은 죽을 수 없다(‘그 섬에 가고 싶다’).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을 고수하면서 삶의 결말을 유보하고 있는 이 화자들의 태도는 의미 없는 감각과 침탈을 반복하면서 이중의 모순을 안은 채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만 같다. 그렇다면 폭로를 위해 오독을 감수해야만 하는, 살을 취하기 위해 뼈를 줄 수밖에 없는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 여성들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아니, 질문을 바꾸어 보자. “음부”밖에는 없는 세상에서 “외설”로만 발화할 수 있는 여성들의 이와 같은 몸부림을 다만 윤리적 잣대로 처벌할 수 있겠는가? 쉽게 답변을 내릴 수 없는 질문, 그에 대한 사유의 약진이 김언희의 근작에서 드러나고 있다. 여자가 시인이 된다는 것 -인격이라는건온도와습도에따라변하는거야고환처럼 -1은홈리스II는섹스리스III는홈리스에섹스리스너에게는좆밖에없고나에겐그마저없고 -니체고시체고나랑맞바꾼개는잘커?네터럭이목구멍에엉겨죽을뻔한그개? - 죽여준다정말죽여줘新옥보단3D로보니온세상이肉蒲團之極樂寶鑑이네 -30년동안카데바노릇을하고있어6개국어로거짓말하는카데바그게나라고 -저개하지도못하고짖지도못하는저개엊저녁에광견병접종을하고온저개이제는미칠수도없게된저개 -난죽은년조차아냐시체조차도없어난내눈에도안보여 -정색은질색이야난잠을자면서도하품을해잠을자면서도존다고가래침이야말로내인생의토핑이지 -모든것을포기하고미쳐버리면시간이절약되지않을까 -나무젓가락같은잣대로젓대로나좀들쑤시지마지뢰를밟고선자만이경멸할수가있는거야똥밟은자를 -개가뒷다리로일어서서걷는것과같소…… 여자가시인이된다는것은 -내주여저는알알이익었나이다새까만악의의포도송이로나의모든사랑을다해나의모오든화냥을다해 ‘Eleven Kinds of Loneliness’ “까마귀에게 있어서 까마귀 자신만큼 불길”한 것이 또 없듯이, 여성의 몸은 그것이 여성의 몸이기 때문에 한 번의 오독을 거치고 있다(‘미얀마’). “죽은 년조차도 아니고, 시체조차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나, “개하지도 못하고 짖지도 못하는 개”라는 호명은 그것이 비체화되고 있음의 표상이다. 기실 세상만사가 각각 결핍을 갖는 방식으로 성립하는 법이라지만, 남성 성기를 가진 “너”에게 “나에게는 그마저도 없”다는 화자의 토로는 화자 본인이 너보다 더 다중적인 압제 밑에 억눌려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렇듯 발화다운 발화를 할 수 없는, 내가 나로 살 수 없는 이러한 치욕과 모멸의 세상에서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학대에 가까운 성교, 폭력뿐이다. 이 화자가 “사랑”과 “화냥”을 병치하면서, “새까만 악의 포도송이”만을 기를 수 있는 것은 날 때부터 고기로 다루어졌던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는 여자들에게 걸려 있는 저주들이 말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태여 여성에게 씌워져 있는 성적 필터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작가의 작품이 작가 자신의 성분을 근거로 성기게 맥락화되는 상황을 여럿 마주쳐 왔다. 말이 말로만 판단될 수 없는 이 연좌제의 굴레 속에서 여성이 더욱 취약할 것임은 당연하다. 다시, 이 지점에서 김언희 화자의 발화가 일차적인 몸의 감각으로 소급되는 양상에 대한 재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 그것은 김언희의 무력한 화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발화 방식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여성의 발화가 받아들여지던 방식이다. 오로지 자궁의 병 탓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히스테리처럼, 멸시가 멸시를 낳고 오독이 오독을 낳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을 어떻게 “정확히” 읽을 수 있을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촘촘히 짜인 의미망으로 기능하는 몸. 구멍과 음부와 외설로 대변되는 여성의 몸. 그러한 관점에서 의도가 없고, 말이 없고, 생각이 없는 “시체”는 역설적으로 여성 화자가 갈망해야 하는 종착점임에 틀림없다. 여성이라는 몸은 그야말로 죽어야만 해방되는 저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섹스와 끼니”, “모욕과 배신”, “지저분한 농담”과 “어처구니없는 삶”과 “죽음”에서 해방되기 위해 제시되는 방안이 죽음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여느 날, 여느 아침을’). 김언희의 화자는 지속적으로 “6개국어로 거짓말하는 카데바”, 자라면서 뇌를 버리는 “멍게”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죽음에의 달성을 꿈꾼다(‘Endless jazz 19’). I 혓바닥에 검은 털이 빡빡이 돋아나고 있어 입속의 검은 구두 솔 구두거나 귀두거나 모조리 光내줄 수 있어 막창에서 밑창까지 II 엉겁결에, 만인의 연인이 되고 말다니 만인의 黃狗가 영원히 삭제 불가능한 리벤지 포르노의 주인공이 1초도 혼자 있을 수가 없어 1초도 혼자 있을 데라고는 없어 아무도 날 잊어주지 않아 단 1초도 더 이상 혀를 못 놀리게 된 자만이 진짜 죽은 자라고 발화의 욕구는 성욕보다 백배는 강해 귀를 대주라고, 언니, 뒤를 대주듯이 III 세 번이나 하고도 한 기억이 전혀 없어 이제 난 어제 한 거짓말도 기억이 안 나 난 매 순간 나에게서 빠져나가야 살아 말매미처럼 내 손으로 내 등짝을 가르고 ‘황색 칼립소’ ‘황색 칼립소’에서 “입”은 “구두 솔”의 이미지를 경유하여 여성 성기와 동등하게 취급된다. 그것이 “구두”와 “귀두”를 광내는 도구로 취급된다는 지점에서 여성 몸의 현주소를 선고한다. “엉겁결에” 만인의 연인이 되어 평생 그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체의 끝이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나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역설이 당연시되는 이 세상에서 내 발화들이 전부 “거짓말”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언희의 화자는 “발화의 욕구”가 “성욕보다/ 백 배는/ 강”하다는 말을 통해 스스로가 이러한 무용한 반복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타진한다. 하지만 언제나 “귀를 대주”는 것보다 “뒤를 대주는 것”이 더욱 수월하다. 여성의 몸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니”도 여성이고 화자도 여성인 이상 자신의 발화를 순수한 자신의 발화로 전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들의 대화가 대화로써 성립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김언희의 시는 이 시집이야말로 “엽색”과 “치정의 끝”이라는 발화를 통해 모독이 모독당할 수밖에 없고, 오독이 오독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슬프게 폭로한다(‘격에게’, 96쪽). 이 시집은 모리스 블랑쇼의 “오늘 밤 나를 죽여주지 않으면 당신은 살인자요”라는 책망으로 끝을 맺는다. 모리스 블랑쇼는 여러 격언을 남겼지만, 이 시점에서 들여오기에 적합할 만한 다른 말이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부터 쫓겨난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작품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말이었던 앞선 발언은 김언희와 맞닿았을 때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빗나가 버리는 오독의 광경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읽히게 된다. 이조차도 원 의미를 왜곡하는 오독이지만, 김언희의 화자가 오독과 적극적으로 싸우는 방식으로 오독당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시인의 시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모리스 블랑쇼의 말이 해석 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은 그 불가역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지점일 수 있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완결되어 있는 내 몸의 의미.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몸이 자꾸만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함과 동시에 탄생하는 시. 타자에의 침탈에 맞서는 이 힘 있는 비명이 어떻게 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김언희에게 폭력에 대한 감상은 세계에 대한 단상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독해가 옳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벗어던져야 하는 마지막 실오라기”가 어디에 있냐는 질문과 “매 순간 나에게서 빠져나가야” 살 수 있다는 진술이 서로 호응하는 것처럼 읽히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시집 ‘보고 싶은 오빠’ 중 ‘쌍십절 2’). 내 몸은 포르노가 아니다 그리스의 남성 영웅 카이네우스는 본디 카이니스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여성이기를 포기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이 그녀가 포세이돈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설이다. 그녀는 자신을 차지하고자 했던 포세이돈에게 강간당한 이후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을 견디지 못해 분노에 떨었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에게 닥쳐온 모든 불행이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강간당했으며, 여성이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었고,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욕구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달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포세이돈에게 남성이 되기를 청했고, 그렇게 카이네우스가 되어 신화에 이름을 새긴다. 우리가 카이니스와 카이네우스의 신화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신체적·정신적 특성을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며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비윤리적이라고 일갈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일 테다. 어떤 폭력이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면, 어떤 여성들이 그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 아님”을 소망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폭력 자체를 근절하는 것보다 그 자신이 여성 아니게 되는 것이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더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대로 “여성”이라는 범주가 그 위신을 공고히 할수록, 오히려 그 집단이 갖고 있는 힘이 허약해진다는 것과도 동일하게 읽을 수 있다. 기실 이것은 김언희 시에서도 “종이 고환”을 단 “여류 시인”의 이미지와(‘어지자지’), “몸만 여자지 음탕한 남자 아닐까” 되묻는 자조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아닐까’).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 범주를 부정하며 여성 없는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여성이라는 동일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은 가능하며, 되려 여성만이 페미니즘을 허락받을 때 이론은 허약해진다는 것이다. 이때 가장 강조되는 것이 “수행 뒤에 수행자는 없다”는 명제다. 바꾸어 말하자면, 젠더와 성 정체성 등의 “범주”는 나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결코 자아의 본질이나 골자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정체성이 여러 가지 속성들이 화합하고 상충하면서 교차적으로 성립하는 것이거니와, 나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이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이 미국 동부 해안의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현재까지도 투쟁하고 있는 젠더퀴어들에게 감응하고, 그것이 페미니즘과 맞닿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젠더 트러블’의 개정판 서문 (1999)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이와 같은 착안점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학계라는 서로 만난 적 없는 문화지평의 수렴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8) 연거푸 강조하지만, BJ의 노출과 김언희의 비명을 동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일시될 수도 없거니와, 동일시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어떤 폭력이 페미니스트이기에 가해지고 있고, 자신의 주변이 그러한 폭력을 기꺼이 휘두를 자들로 가득하다면,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복종하는 방식이 가장 안전할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으리라. 물론 이 사실을 주지하고서라도 자신을 “반페미”라고 지칭하며 몸의 이미지를 판매했던 QWER 일부 멤버들의 행동을 완전히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 또한 순수히 그녀들을 방어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님을 밝힌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성 해방을 위해 고안된 이론 틀이기에, 만약 페미니즘이 여성의 삶, 또는 한 여성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성질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면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점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요청이다. “여자의 완성이 얼굴”인 나라에서(시집 ‘보고 싶은 오빠’ 중 ‘르 흘레 드 랑트르꼬트’) 페미니즘마저 여성을 불순하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면, 그 여성들의 사활을 건 투쟁도 포르노로 전락하게 되지 않겠는가. 아니, 설령 그것을 포르노라고 일컫는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참작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침투를 불허하고 “음지”에 잠재우는 것은 “보기 편안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한 가지의 방법일 수는 있겠으나 그와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기회 또한 그녀들과 함께 영영 잠들게 하는 일일 것이다. 폭력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해석의 여지가 불가능하도록 맥락을 거세하는 것이 폭력이며, 알몸과 외설만을 보는 것이 포르노다. 그래서 포르노는 만들어지는 동시에 해석된다. 이것이 도발적이고, 충격적이고, 외설적이라고 할지언정, 그 너머에 무엇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것을 실로 포르노로 만든다. 여성의 알몸과 성교를 그저 “외설적”이라고 말하면 그것들은 모두 외설로 남는다. 여성의 목소리를 그저 비명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단지 비명에 머무른다. 그러나 여성의 알몸이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해석하는 순간 그것은 외설적인 알몸을 넘어 저항의 표현이 된다. 기실 비평은 언제나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작업이었고 약자에게 견고한 법령에 틈입하는 몸짓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김언희의 시 세계를 톺으며 오독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저 죽은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닌 모호의 세계에 잠자는 여자를 깨우는 것이다. 그 후로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감을 위해 태어나지 않은 음부로, 분뇨의 입구로 태어나지 않은 입으로. 1) 이 글에서는 김언희의 시집 ‘트렁크’(세계사, 1995),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 ‘GG’(현대문학, 2020)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위의 시집에서 시를 인용할 경우 해당하는 제목만 표시하며, 맥락상 구분이 필요한 경우나 다른 시집에서 인용된 시의 경우 시집명이나 쪽수도 함께 명기하도록 한다. 2) 이정수 기자,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 여캠 BJ들… “벗방이랑 뭐가 달라” 시끌’, 서울신문, 2024년 8월 12일, https://v.daum.net/v/20240812113303539 3) 이해운, ‘현대시에서의 그로테스크’, 한국문학과 예술 9(2012,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4) 장서란, ‘김언희 시의 서발터니티 연구 -‘말하는-죽음’과 ‘여성-괴물-되기’를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연구(2022, 한국현대문학회). 5) 임지연, ‘1990년대 여성시의 이상화된 판타지와 역설적 근대 주체 비판’, 한국시학연구(2018, 한국시학회). 6) 김정란, 남진우, 이희중, ‘특별좌담/올해의 시를 말한다’, 월간 현대시 56호, 1997년 12월호. 7) 남진우, ‘메두사의 시- 김언희의 시세계’, 계간 문학동네 25호, 2000. 8)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2006, 문학동네) 58~61쪽 참조.
  • 트럼프 ‘30년 전 성추행’ 재판 또 패소…74억원 물어줘야

    트럼프 ‘30년 전 성추행’ 재판 또 패소…74억원 물어줘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30여년 전 패션잡지 칼럼니스트 성추행 관련 2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뉴욕 맨해튼 연방고등법원은 30일(현지시간) 패션칼럼니스트 E. 진 캐럴의 성범죄 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트럼프에게 500만 달러(약 74억원)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트럼프는 1심 법원의 오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재심을 받기 위해서는 1심 재판의 오류가 트럼프의 실질적 권리에 영향을 미쳤음을 입증해야 했으나,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캐럴은 1990년대 중반 뉴욕 맨해튼의 버그도프굿맨 백화점 탈의실에서 트럼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5월 승소했다. 배심원단은 성폭행 증거는 찾지 못했으나 성추행 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트럼프는 캐럴을 알지 못하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다. 트럼프 측 변호인단은 사건과 무관한 증인 진술과 증거가 1심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며 재심을 청구한바 있다. 당시 증인으로 나선 제시카 리즈는 1970년대 후반 뉴욕행 항공기 좌석에서 트럼프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고, 미 주간지 ‘피플’ 기자 나타샤 스토이노프는 2005년 마러라고에 위치한 트럼프 자택에서 강제 키스를 당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또한 트럼프의 외설 발언이 담긴 ‘액세스 할리우드’ 녹음파일도 증거로 제시됐다. 캐럴 측은 “당사자 양측 주장을 신중하게 고려해준 법원에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반면 차기 백악관 공보국장으로 내정된 스티븐 청 대변인은 “사법제도의 정치 무기화를 즉각 중단하고 민주당이 지원한 캐럴의 거짓 주장을 포함해 모든 마녀사냥을 신속히 기각할 것으로 요구한다”며 상소 의지를 밝혔다. 한편 트럼프는 캐럴이 별도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도 패소해 8330만 달러(약 1228억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았으며, 이에 대해서도 항소한 상태다.
  • “외설 행동 이어질라” 아프간 탈레반, 주택에 창문 설치 금지 [핫이슈]

    “외설 행동 이어질라” 아프간 탈레반, 주택에 창문 설치 금지 [핫이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는 주택 신축 시 옆집의 마당이나 부엌 등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 보이는 창문을 내지 말라는 칙령을 내렸다. AFP통신 등은 30일(현지시간)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정부 대변인이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탈레반 최고 지도자의 이런 칙령 내용을 지난 28일 밤 소셜미디어(SNS)인 엑스(X)에 올렸다고 보도했다. 이 칙령은 소급 적용돼 기존 주택의 경우 창문이 있으면 주인은 벽을 세우는 식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행정당국은 이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한다. 탈레반은 이번 칙령이 주민들의 사생활을 보장하고 여성들을 잠재적 위험에서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이 부엌이나 마당에서 집안일을 하거나 우물에서 물을 긷는 모습을 보면 ‘외설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무자히드 대변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창문 설치조차 막는 것은 여성 권리를 제한하는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탈레반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으로, 2021년 8월 미군 철수 후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뒤 샤리아(이슬람 율법) 이행이라며 여학생의 중학교 진학을 금지하고 취업을 제한하는 등 여성 권리를 침해하는 조치를 잇따라 취해왔다. 지난 8월부터는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내용의 도덕법을 제정해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도덕법에 따르면 여성은 집 밖에서 신체를 완전히 가려야 하고, 공공장소에서는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음악 공연을 관람하는 것조차 금지한다. 탈레반은 또 여학생들에게 상급학교 진학을 불허한 데 이어 유일한 교육시설로 기능해온 보건학원마저 최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은 탈레반의 조치들을 ‘젠더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여성 차별정책)라고 비판한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만큼 국제사회의 인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런 여성 탄압적 정책으로 인해 어느 국가로부터도 공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야한 소설’ 쓰면 감옥 보내는 ‘이 나라’…“최대 5년 6개월 형”

    ‘야한 소설’ 쓰면 감옥 보내는 ‘이 나라’…“최대 5년 6개월 형”

    중국이 최근 수개월간 자국 내 성인 웹소설 작가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해 수십 명을 체포하고 실형을 선고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RFA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와 홍콩 성도일보 등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지난 6월부터 전국적으로 성인 웹소설 작가들을 체포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고액의 벌금을 물었고 여러 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연합조보에 따르면 대만의 성인 웹소설 플랫폼 ‘해당문화 온라인 문학도시’에 작품을 연재한 중국 본토 작가 50명 이상이 안후이성 경찰에 검거됐다. ‘흰 구름 사이 멀리’라는 필명의 간판 작가는 징역 4년 6개월, ‘이셰’라는 작가는 징역 1년 5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벌금 납부에 협조적이었던 사례로, 벌금을 내지 못한 작가들은 최대 징역 5년 6개월 등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의 2010년 관련법 해석에 따르면, 온라인상 외설 자료 유포 시 벌금은 불법 수익의 1~5배를 부과하도록 규정돼 있다. ‘흰 구름 사이 멀리’ 작가의 여동생은 지난 10월 16일 웨이보(중국판 엑스)를 통해 “6월 20일 이후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며 “온 가족이 언니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있지만 빚만 쌓이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작가는 이달 초 “8월 체포 이후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았다”며 돈을 빌려 벌금을 내고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일부 작가들은 벌금을 마련하기 위해 웨이보에서 모금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의 웹소설 시장 규모는 약 400억 위안(약 7조 9600억 원)으로 추산되며, 작년 말 기준 3500만 편이 유통되고 있다. 인기작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지만, 성애 묘사가 포함된 성인 웹소설은 지속적으로 당국의 검열 대상이 되어왔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웹소설을 써온 ‘쓰웨수’라는 작가는 RFA 인터뷰에서 “수년간 작품이 예고 없이 삭제되는 등 검열이 계속됐다”며 “이를 피하고자 이제는 해외 플랫폼에서만 활동한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문학은 진입장벽이 낮아 인기를 끌고 있지만, 무엇을 쓸 수 있고 없는지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토로했다.
  • “좋아해서 욕망 억제 못해” 14세 여학생 마사지 해준다며 성폭행한 日교장 ‘뻔뻔 변명’

    “좋아해서 욕망 억제 못해” 14세 여학생 마사지 해준다며 성폭행한 日교장 ‘뻔뻔 변명’

    14세 여학생을 성폭행한 일본의 한 중학교 교장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좋아해서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는 망언을 해 공분을 하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 등에 따르면 도쿄 네리마구립 미하라다이 중학교 교장 기타무라 히사요시(57)는 지난 9일 여중생을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혐의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기타무라는 지난해에도 한 여학생의 나체 영상이 담긴 캠코더를 소지했다가 아동 성매매 및 음란물 금지법 위반(소지)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당시 경찰은 기타무라의 근무지와 자택을 수사했고, 교장실 책상 안에서 캠코더가 발견됐다. 캠코더에는 그가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비롯해 외설적인 영상 여러 개가 저장돼 있었다. 이에 대해 기타무라는 “영상은 이전에 근무하던 중학교 학생을 찍은 것”이라면서 “다시 볼 일이 있을 것 같아 저장했다”고 진술했다. 피해 여학생은 당시 “(영상을) 지워달라”고 말했으나, 기타무라는 “알겠다”고 해놓고선 영상을 삭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사를 이어가던 중 기타무라가 다른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2010년 당시 14세였던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실을 알게 됐고, 준강간 혐의로 재구속했다. 기타무라는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여학생을 불러낸 뒤 교사 지위를 이용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여학생은 “모두에게 알려지면 학교에 못 다니게 한다고 해 불안해서 알릴 수 없었다”고 전했다. 또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힘들어 울면서 집으로 돌아간 날도 많았다”며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기타무라는 재판에서 준강간과 과실치사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여학생을 좋아해서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면서 “당시 여학생과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고, 학생은 나를 받아들였다고 여겼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사건 발생 후 14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는 아직도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며 “교사와 학생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이용한 비열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 한강 “‘채식주의자’ 오해 가슴 아파…책, 타인과 공존 가능케 해”

    한강 “‘채식주의자’ 오해 가슴 아파…책, 타인과 공존 가능케 해”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를 고통스럽게 공감하면서 읽어주시는 분도 많죠. 하지만 오해도 많이 받고 있어요. 그것이 이 책의 운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긴 한데 이 소설에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것은 책을 쓴 사람으로서는 가슴 아픈 일인 건 사실입니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54)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그에게 아시아 여성 최초로 영국 부커상의 영예를 안겨준 소설이다. ‘채식주의자’의 성공으로 이번 노벨문학상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에서는 호평이 주를 이루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여러 수난을 겪었다. 지난해 경기 지역 학교에서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목돼 폐기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소설 속 다소 강렬한 묘사가 외설적이고 선정적이라는 게 이유다. 한강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감라스탄(구시가지)에 있는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변론’을 펼쳤다. 관련 논란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한강은 “‘채식주의자’가 스페인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며 운을 띄웠다. 그는 “스페인어로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윤선미 선생님과 함께 산티아고에 가서 학생들이 토론하는 과정에 참여했는데, 굉장히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점을 보고 감명이 깊었다”고 했다. 이어 “가끔 한국에서 낭독회를 할 때 고등학생들이 ‘채식주의자’를 가지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데 이건 나중에 읽고 ‘소년이 온다’부터 읽으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제목이 ‘채식주의자’인데 주인공은 한 번도 자신을 채식주의자로 명명한 적이 없다”며 “제목부터 아이러니한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한강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문학적 장치가 이 소설에 있다”면서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야기할 때 문장마다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생각한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문학 융성의 근본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문학교육에 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공존하는 법을,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다양한 사람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러면서 성숙한 태도를 가지게 되며 열려있는 공동체가 된다”며 “그런 인문학적 토양의 기초가 되는 것이 도서관이고 사서선생님의 권한을 잘 지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또 “어릴 적부터 문학 작품을 학교에서 최소한 1년에 3~4권 정도 읽고 토론하며 다각도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문학을 읽는 ‘근육’을 기를 수 있게끔 해야 한다”면서 “문학은 장르별로 독법이 다른데, 다양한 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반복적인 경험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오전 노벨박물관에 자신의 소장품인 작은 찻잔을 기증한 한강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한국의 비상계엄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강은 7일 자신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강연을 펼친 뒤 10일 시상식과 이어지는 만찬에 참석한다.
  • 美 한인 갱단, ‘소녀상 모욕’ 소말리 응징 예고…“장난치는 민족 아냐”

    美 한인 갱단, ‘소녀상 모욕’ 소말리 응징 예고…“장난치는 민족 아냐”

    한국에서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고 욱일기를 찬양하는 등 기행을 벌인 미국 국적 유튜버 조니 소말리(24)에게 한국계 미국 갱(범죄 조직)들이 응징을 예고했다. 20일(현지시간) 해외 거주 한인 네트워크 ‘bada’에는 한국계 미국 갱 단원들이 소말리를 향해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자신을 갱이라고 소개한 한국계 남성 A씨는 소말리에게 “미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며 “너와 동료들의 목숨을 원한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남성 B씨는 “우린 장난칠 만한 민족이 아니다. LA 옥상에 올라가서 너의 머리를 총으로 조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한국에 입국한 소말리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서울 도봉구 창동 역사문화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거나 소녀상 앞에서 외설스러운 춤을 추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놀이공원과 길거리, 대중교통 등에서 고성방가를 하거나 행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추태를 일삼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거나 컵라면에 담긴 물을 테이블에 쏟는 등 업무를 방해해 경찰 수사를 받았다. 이에 소말리를 쫓아 사적 제재를 하겠다고 선언한 유튜버들이 그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고, 지난달 24일, 27일, 31일 세 차례에 걸쳐 보복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말리는 자신이 저지른 기행에 대해 “미안하지 않다. 무릎 꿇고 사과하길 원한다면 거절하겠다”고 했다. 또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 피해자들을 언급하며 “매춘이었다. 자발적이었고, 합법적으로 돈을 받고 일한 것이다. 일본군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벌었고, 부자였다”고 말했다. 결국 소말리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입건됐으며 이외 폭행과 마약 등 혐의로도 고발돼 출국금지됐다. 이에 소말리는 지난 7일 돌연 평화의소녀상 앞을 다시 찾아가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 하고 싶다. 여러분의 자부심에 이렇게 큰 상처를 줄 의도는 전혀 없었다. 여러분은 훌륭하고 좋은 분들이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 직후 그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돼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소말리는 다른 나라에 가서 공공장소에서 민폐 행위를 하고 이로 인해 출동한 경찰을 모욕하는 등의 상황을 주된 콘텐츠로 내세운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원폭을 다시 투하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벌이는 등 곳곳에서 추태를 부리다 경찰에 체포돼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비자 기한을 넘겨 체류한 이유로 추방됐다. 올해 3월에는 태국을 방문해 길을 가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4월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경찰관을 향해 성희롱 발언을 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 ‘소녀상 모욕’ 미국인 유튜버 소말리 “스토킹 당하고 있다” 112 신고

    ‘소녀상 모욕’ 미국인 유튜버 소말리 “스토킹 당하고 있다” 112 신고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는 등 이상 행동으로 논란인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본명 램시 칼리드 이스마엘)가 “스토킹 당하고 있다”며 112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소말리는 지난 8일 새벽 경기 구리시에서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려 한다”며 112에 신고했다. 소말리는 “유튜버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왔고, 현재 머무는 구리시의 거처 위치를 유튜버들이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며 위협을 느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필요한 안전 조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누군가가 소말리를 쫓아오거나, 폭행 등 불상사는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스토킹으로 신고가 접수됐고 정식 입건 전 사건을 살펴보는 입건 전 조사 단계인 상황”이라며 “해당 사안이 스토킹이 맞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조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입국한 유튜버 조니 소말리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거나 소녀상 앞에서 외설적인 춤을 췄다. 또, 지난달 17일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담긴 물을 테이블에 쏟는 등 업무를 방해하기도 해 공분을 샀다. 이에 소말리를 쫓아 사적 제재를 하겠다고 선언한 유튜버들이 그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고,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20대 유튜버가 소말리를 폭행하기도 했다. 소말리는 지난 6일 서울 도봉구 창동역사문화공원 내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돌연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 하고 싶다. 여러분의 자부심에 이렇게 큰 상처를 줄 의도는 전혀 없었다. 여러분은 훌륭하고 좋은 분들이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소말리는 현재 업무방해 등 혐의로 서울 마포경찰서에서도 입건됐으며 이외 폭행과 마약 등 혐의로도 고발돼 출국금지 상태다.
  • ‘소녀상 모욕’ 소말리, 112에 “누가 나를 공격한다” 신고

    ‘소녀상 모욕’ 소말리, 112에 “누가 나를 공격한다” 신고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는 등 기행으로 논란이 된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가 스토킹 공포에 젖어 112에 신고했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소말리는 지난 8일 새벽 시간대 경기 구리시에서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려 한다”며 이 같이 신고했다. 소말리는 이날 “유튜버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왔고, 현재 머무는 구리시의 거처 위치를 유튜버들이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고 주장하며 이에 위협을 느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필요한 안전 조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누군가가 소말리를 쫓아오거나, 폭행 등 불상사는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스토킹으로 신고가 접수됐고 정식 입건 전 사건을 살펴보는 입건 전 조사 단계인 상황”이라며 “해당 사안이 스토킹이 맞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9월 한국에 들어온 유튜버 조니 소말리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거나 소녀상 앞에서 외설스러운 춤을 췄다. 또, 지난달 17일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담긴 물을 테이블에 쏟는 등 업무를 방해하기도 해 공분을 샀다. 소말리를 쫓아 사적 제재를 하겠다고 선언한 유튜버들이 그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고,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20대 유튜버가 소말리를 폭행하기도 했다. 이후 소말리는 지난 6일 서울 도봉구 창동 역사문화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소녀상의 중요성에 대해 몰랐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소말리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서울 마포경찰서에 입건됐으며 이외 폭행과 마약 등 혐의로도 고발돼 출국금지 상태다.
  • ‘소녀상 모욕’ 美 유튜버, 이번엔 욱일기 들고 “다케시마”

    ‘소녀상 모욕’ 美 유튜버, 이번엔 욱일기 들고 “다케시마”

    한국을 찾아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고 편의점에서 난동을 피우는 등의 기행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본명 램시 칼리드 이스마엘)가 이번에는 욱일기를 들고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을 언급하며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향해 도발한 사실이 알려졌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누리꾼들이 제보해줬다”면서 “어제(지난달 31일) 조니 소말리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며 노트북 화면에 욱일기를 깔고 ‘독도 아니고 다케시마’라며 한국인에게 도발을 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소녀상을 모욕하고 욱일기를 사용하며 다케시마를 외치는 건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강력한 처벌로 좋은 본보기를 만들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입국한 조니 소말리는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고 외설스러운 춤을 추는가 하면, 편의점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등 공공장소에서 행패를 부려 각종 언론에 보도됐다. 행인 향해 욕설하고 고성방가…일본선 추방조니 소말리는 다른 나라에 가서 공공장소에서 민폐 행위를 하고 이로 인해 출동한 경찰을 모욕하는 등의 상황을 주된 콘텐츠로 내세운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원폭을 다시 투하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벌이는 등 곳곳에서 추태를 부리다 경찰에 체포돼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비자 기한을 넘겨 체류한 이유로 추방됐다. 올해 3월에는 태국을 방문해 길을 가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4월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경찰관을 향해 성희롱 발언을 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조니 소말리는 한국에서도 놀이공원과 길거리, 대중교통 등에서 고성방가를 하거나 행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추태를 일삼다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달 31일 업무방해 혐의로 조니 소말리를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니 소말리는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소주와 컵라면을 주문한 뒤 테이블에 앉아 시끄러운 노래를 틀며 소란을 피웠고, 이에 직원이 그의 행동을 제지하자 영어로 욕설을 하며 컵라면을 테이블에 쏟았다. 경찰은 조니 소말리가 당시 상황을 유튜브에 올린 것을 보고 불법행위를 인지해 수사에 착수했다. 또 그에 대해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유튜버들 ‘조니 소말리 때리기’ 유행조니 소말리에 대한 공분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유튜버들 사이에서 조니 소말리를 추적해 폭행하는 경쟁이 붙었고 실제 폭행이 이뤄지는 등 파장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거리에서 20대 남성 유튜버 A씨가 조니 소말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온라인에는 조니 소말리가 A씨의 주먹에 맞아 넘어지고 경찰이 황급히 제지하는 영상이 퍼졌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A씨를 폭행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조니 소말리가 곳곳에서 소란을 피워 경찰이 출동하고, 또 관심을 끌기 위해 조니 소말리를 폭행하려는 유튜버들마저 등장하면서 ‘민폐 유튜버’로 인한 경찰 행정력 낭비마저 우려되고 있다.
  • 안영미, ‘젖년이’ ‘씨×’ 논란 뒤 SNS에 올린 사진 ‘의미심장’

    안영미, ‘젖년이’ ‘씨×’ 논란 뒤 SNS에 올린 사진 ‘의미심장’

    개그우먼 안영미가 SNL ‘젖년이’ 패러디와 라디오 생방송 욕설로 연이어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사진이 눈길을 끌고 있다. 30일 안영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파프리카 등이 올려진 접시 위에 얼굴만 내민 사진을 올렸다. 몸 아래 부분이 사물에 가려져 있어 마치 접시 위에 안영미의 얼굴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본 한 네티즌은 댓글로 “지금의 심정을 빗대신 건가요?”라고 물었다. 안영미는 최근 두 차례 구설에 올랐다. 지난 26일 안영미는 쿠팡플레이 코미디쇼 ‘SNL 코리아’ 시즌6에서 tvN 주말극 ‘정년이’를 외설적으로 패러디했다. 안영미는 ‘윤정년’(김태리)을 희화화한 ‘젖년이’로 등장, 판소리 ‘사랑가’를 부르면서 ‘이리오너라 업고 놀자’를 ‘이리 오너라 벗고 허자’로 개사해 불렀다. 또 가슴을 부각하거나 허리 짓을 하는 등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몸짓을 해 비판을 받았다. 지난 29일 방송된 MBC FM4U ‘두시의 데이트 안영미입니다’에서는 그룹 ‘더보이즈’ 선우, ‘갓세븐’ 영재와 생방송 중 실수를 이야기하며 욕을 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안영미는 ‘아이돌 라디오’를 진행 중인 선우에게 “생방송 도중 팬 분들 요청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팬서비스에 대해 물었고 선우는 “‘아이돌 라디오’는 (라디오부스) 밖에 팬분들이 계신다. 스케치북에 다 적어온다. 노래 나오면 그때 그걸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안영미는 “그리고 뒤에 가서 씨× 하는 거냐”고 생방송 중 욕설을 했다. 게스트인 영재와 선우가 당황하자 “신발신발 하신다고요”라며 수습을 시도했다. 선우는 “(팬들이) 신발끈 묶으라고 하면 뒤돌아서 묶고 한다”고 안영미의 말실수를 덮어주려 애썼다.
  • “엉덩이 보고 투표함” 미니스커트女 선거운동 ‘포착’…日 경악한 모습

    “엉덩이 보고 투표함” 미니스커트女 선거운동 ‘포착’…日 경악한 모습

    지난 27일 제50회 일본 중의원 선거가 실시된 가운데, 선거운동을 도운 여성 스태프들이 짧은 하의를 입고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현지에서는 “부적절한 방법으로 표를 얻으려 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9일 일본 후지TV에 따르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도쿄도 제26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의사 다부치 마사후미의 선거운동을 함께한 여성들이 부적절한 옷차림으로 시민들을 만나 물의를 일으켰다. 다부치는 낙선했다. 엑스(X)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형광 점퍼를 입은 한 여성이 흰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후보 홍보 전단을 들고 있는 뒷모습이 담겼다. 다만 너무 짧은 치마 길이에 엉덩이 일부가 보일 정도였다. 지난 23일 올라온 해당 게시물은 이날 기준 2017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200건 가까이 의견이 달리고 있다. 다부치 선거운동에 참여한 한 여성 스태프는 자신의 X에 직접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망사 스타킹과 반바지를 입고 시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장면이었다. 이 역시도 반바지 길이가 짧아 엉덩이가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다소 외설스러운 의상에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진지하게 임해라”, “변태 표를 얻으려는 것이냐”, “저런 의상으로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 등 비판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X에 “엉덩이 보고 다부치에게 투표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누군가 (여성들에게) 부탁한 것 아니냐”, “저런 복장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의 품위를 의심하게 된다” 등 다부치가 일부러 여성들에게 짧은 옷을 요구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다부치는 “엉덩이가 노출돼 과격하다고 생각했다”며 본인이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선거운동을 할 때 연두색 점퍼를 입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하의에 대해서는 특별히 정한 규정이 없었다”며 “충분히 관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다만 여성 스태프는 “특별한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는 입장이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던 여성은 “단순히 더워서 그랬다”며 “망사 스타킹도 평소 신었던 것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복장의 자유’를 언급하며 “다부치도 ‘(짧은 의상이) 상관없지 않냐’는 느낌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사례를 단속하지 않으면 앞으로 저속한 선거운동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안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 “한국이 우습나” 소녀상 희롱·지하철서 음란물…美유튜버, 계정 삭제됐다

    “한국이 우습나” 소녀상 희롱·지하철서 음란물…美유튜버, 계정 삭제됐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외설적인 춤을 추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쏟는 등 한국에서 각종 기행을 일삼아 논란을 빚었던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의 유튜브 채널이 삭제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유튜브에서 특정한 사유 때문에 본계정을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그의 유튜브 부계정만 남아있는 상태다. 앞서 조니 소말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한국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 영상을 올려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영상에서 조니 소말리는 K팝 음악을 틀어놓고 소녀상 앞에서 외설적인 춤을 췄다. 소녀상에 입을 맞추는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기도 했다. 또 한 편의점에서 나이 지긋한 여성 종업원이 ‘가게 내에서 너무 시끄럽게 하지 말고 소주를 마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자 욕설을 퍼붓고 편의점 테이블 위에 일부러 컵라면을 쏟았다. 이 외에도 지하철 객차 안에서 실수인 척 음란물을 재생하거나, 버스에선 큰 소리로 북한 음악을 틀기도 했다. 조니 소말리는 지난 24일 밤 서울의 한 거리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던 중 행인에게 폭행당하기도 했다. 조니 소말리는 당시 일행과 함께 스마트폰을 켠 채 방송하고 있었는데, 한 남성이 그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일행은 “왜 그러느냐”며 놀라서 소리쳤고, 남성은 조니 소말리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멀리 던져버리고는 자리를 떴다. 조니 소말리와 일행이 “왜 도망가느냐”고 외치며 남성을 한동안 따라갔으나, 남성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조니 소말리는 이후 방송에서 눈 위에 밴드를 붙인 채 나타났다. 영상에서 유튜버를 폭행한 남성의 신원과 폭행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니 소말리의 민폐 행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일본 식당에서 방송을 하다가 영업 방해 혐의로 기소돼 20만엔(약 183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 소녀상 희롱하던 외국인, ‘길거리 폭행’ 당했다

    소녀상 희롱하던 외국인, ‘길거리 폭행’ 당했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외설적인 춤을 추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쏟는 등 한국에서 민폐 행동을 이어가던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가 라이브 방송 도중 행인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장면은 지난 24일 밤 조니 소말리가 동료와 함께 서울의 한 거리에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 중 포착됐다. 해당 영상을 보면 조니 소말리와 동료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던 도중 뒤쪽에서 한 남성이 평범한 행인처럼 자연스럽게 걸어오더니 갑자기 주먹을 날려 조니 소말리의 얼굴 쪽을 가격했다. 옆에 있던 동료가 깜짝 놀라며 “왜 그러느냐”고 소리치자 남성은 조니 소말리가 라이브 방송을 위해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빼앗더니 자리를 떴다. 조니 소말리 일행은 “왜 도망가느냐”고 외치며 남성을 따라갔지만, 남성은 들고 있던 조니 소말리의 휴대전화를 멀리 던져 버리고는 가던 길을 갔다. 이후 방송에서 조니 소말리는 오른쪽 눈 윗부분에 밴드를 붙인 채 나타났다. 조니 소말리를 폭행한 남성의 신원이나 폭행 이유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영상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며 화제가 됐다. 조니 소말리가 저지른 그간의 민폐 행동을 알고 있던 네티즌들은 “보기 드문 용자다”, “상남자네”, “한국에서만 민폐 행동한 게 아니어서 외국인들도 다 때린 사람 응원하고 있다”, “진짜 통쾌하다” 등 반응을 보이며 가해자를 응원했다. 앞서 조니 소말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한국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불쾌한 행동을 일삼는 영상을 올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영상에서는 K팝 음악을 틀어놓고 소녀상 앞에서 외설적인 춤을 추며 회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소녀상 앞에서 상의를 벗고 소녀상에 입을 맞추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한 편의점에서는 나이 지긋한 여성 종업원이 ‘가게 내에서 너무 시끄럽게 하지 말고 소주를 마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자 방송에 대고 욕을 한 데 이어 편의점 테이블 위에 일부러 컵라면을 쏟았다. 조니 소말리의 민폐 행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는 앞서 일본 식당에서 방송을 하다가 영업 방해 혐의로 기소돼 20만엔(약 183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6월엔 일본 지하철에서 음란물을 재생하고, 도쿄 디즈니랜드에서는 ‘원자폭탄’이라는 가사가 담긴 음악을 트는 등 동아시아 곳곳에서 몰상식한 행동을 저지르며 이를 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 “목덜미가 뜨거워” 모르는 남성의 ‘충격 행동’…피해女 쏟아진 日상황

    “목덜미가 뜨거워” 모르는 남성의 ‘충격 행동’…피해女 쏟아진 日상황

    여성의 몸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지만 일부러 가까이 붙어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이른바 ‘만지지 않는 치한’이 최근 일본에서 급증하고 있다. 급기야 출퇴근길에 피해를 입은 여성이 결국 공황장애 치료를 받는 사례도 나왔다. 10일 산케이신문은 최근 ‘만지지 않는 치한’ 피해가 늘고 있다고 보도하며 한 여성의 사연을 전했다. 일본 간토(關東) 지방에 사는 회사원인 20대 여성은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전철을 탈 때마다 누군가 목덜미에 숨을 불어넣는 걸 느꼈다. 상대는 항상 같은 남성이었으며, 그는 필요 이상으로 여성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여성은 며칠째 지속되는 남성의 소름 끼치는 행동에 철도경찰에 피해를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착각 아니냐”는 말이었다. 철도경찰은 몸을 만진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세한 조사도 실시하지 않았다. “(남성이) 직접 몸을 만진 것은 아니지만, 매우 기분이 나빴다”는 여성은 이후에도 전철을 이용해 출퇴근했으나 날이 갈수록 남성의 부적절한 행위는 심해졌다. 몇 달간 매일 같이 ‘만지지 않는 치한’ 피해를 당한 이 여성은 과호흡과 공황장애로 전철을 더 이상 탈 수 없게 됐다. 그는 결국 회사를 휴직하고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여성은 “굉장히 불쾌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해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피해 호소 늘고 있지만…“입증 어려워” 산케이에 따르면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여성과 같이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대부분 범죄 입증이 어려워 신고조차도 못 하고 있다. ‘만지지 않는 치한’ 행위로는 ▲귀나 목덜미에 숨을 불어넣는 행위 ▲가까이 접근해 냄새를 맡는 행위 ▲스마트폰 데이터 공유 기능을 활용해 외설스러운 영상을 보내는 행위 등이 있다. 출퇴근 직장인뿐 아니라 대학생들도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리서치 업체 ‘써클업’이 지난 2월 대학생 남녀 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 3명 중 1명(35%)이 ‘만지지 않는 치한’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비접촉형 치한 피해 호소가 확산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터넷 발달로 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할 기회가 늘면서 ‘만지지 않는 치한’이라는 말의 유행과 함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행위를 아예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요코하마 합동법률사무소의 시미즈 변호사는 “공공장소 등에서 다른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기 위해 외설스러운 언동을 한 것이 입증되면 각 도도부현의 민폐행위 방지 조례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가해자를 특정하고 범죄 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형사·민사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게 시미즈 변호사의 설명이다.
  • “더워서 벗었는데 男승무원이 ‘가리라’며 여성혐오” 여객기서 쫓겨난 美여성들

    “더워서 벗었는데 男승무원이 ‘가리라’며 여성혐오” 여객기서 쫓겨난 美여성들

    가디건 벗고 크롭톱만 입었다 지적받아“환불도 안 해줘서 135만원 추가 지출”쫓겨난 여성들 옹호한 아기 엄마도 내려 미국 저비용항공사(LCC) 스피릿항공에 탑승한 여성 승객들이 배가 드러나는 크롭톱을 입었다는 이유로 출발 직전 여객기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고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지역매체 KABC 등이 전했다. 사건은 지난 4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국제공항에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향하려던 여객기에서 벌어졌다. 남부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알려진 두 여성이 비행기에 탑승해 좌석에 앉았는데 이륙 전 한 남성 승무원이 이들의 복장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중 한 명인 테레사 아라우조는 지난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같이 “끔찍한 서비스”를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라우조에 따르면 그와 친구는 당시 기내에서 크롭톱을 입고 있었다. 크롭톱은 가슴 부위 위주로 가린 짧은 상의로 가슴골과 배 일부 등이 드러나는 형태의 의상이다. 이들은 크롭톱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치기도 했으나 이륙 직전 기내에선 가디건은 벗은 채 크롭톱만 입고 있었다. 이때 이들에게 온 남성 승무원은 “(신체 노출을) 가려라. 뭔가를 입으라”고 말했다. 이에 아라우조와 친구는 스피릿항공의 복장 규정 정책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승무원은 이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라우조는 “승무원이 우리를 계속 나쁘게 대하면서 왜 내쫓으려는지에 대한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며 “다른 승객들이 가세해 우리를 변호했지만 결국 한 선임승무원이 오더니 ‘스스로 내리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결국 비행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항공편 예약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환불 역시 거절됐다. 이 때문에 1000달러(약 135만원)를 들여 다른 항공사에서 새로 표를 구해야 했다. 아라우조는 “공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이것은 편견과 차별, 여성혐오 행위이며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쫓겨난 승객은 이들 2명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여성 승객 한 명이 “크롭톱이 부적절하다면 저도 부적절하겠다. 가디건 안에 크롭톱을 입고 있다”며 여성들을 옹호했다. 이 승객은 아기를 데리고 있었으나 아기와 함께 환불도 받지 못한 채 비행기에서 내렸다. 아라우조와 친구 타라 케히디는 KABC에 “비행기 탑승 전 대기실의 에이컨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원하게 있기 위해 가디건을 벗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을 옹호한 아기의 엄마 칼라 헤이거 역시 “비행기가 매우 더웠고 다른 승객들 역시 가디건 등을 벗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여성들을 지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피릿항공 측은 KABC에 보낸 답변에서 “모든 고객은 당사 서비스를 예약할 때 특정 복장 기준 등이 포함된 운송계약을 따라야 한다”면서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스피릿항공의 운송계약서에는 고객이 ▲맨발이거나 부적절한 옷을 입은 경우 ▲옷차림이 음란하거나 외설스럽거나 불쾌할 경우 등에 탑승을 거부하거나 내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어떤 종류의 옷이 부적절하거나 외설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진 않으며, 크롭톱에 대한 언급 역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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